부제 : 청 실 홍 실
시간이 좀 더 흘러 어느덧 광일도 국민 학생(* 지금의 초등학생)이 되었다. 한편 광일이 국민 학교에 입학할 무렵 경환 내외는 강남구 압구정동에 새로 생겨난 아파트 단지에 이사를 왔다. 이때가 강남이 막 개발되기 시작한 직후라 한참 특히 아이들 학교보낼 나이가 된 학부모 연령층이 한참 유입되던 시점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경환내외도 그때쯤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경환과 가인 내외는 결혼후 광일이 태어날때까지 대략 3-4년 정도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이후 신길동 우진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광일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 그곳에서 산 것인데 그러니 우진아파트에서 산 시간이 대략 6년정도 되는 셈이다. 그리고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이사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광일. 물론 어느덧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는 광희도 신길동에 있는 국민 학교에서 강남구 청담 국민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광희와 광일 남매의 학창시절은 대체로 처음 한동안은 큰 탈 없이 무난하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광희는 그래도 좀 숫기가 있어서 친구들하고도 곧 잘 어울리고 달리기 같은 운동도 제법 하는 반면 광일은 말수적고 무뚝뚝한 분위기가 아무래도 제 아버지를 닮았는지 어울리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운동도 잘 못하는 편이며 과목은 대체로 국어나 사회,도덕같은 인문계 과목에 더 흥미를 느끼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특히 뜻밖에도 ‘반공교육’시간을 좋아해 도덕시간에 이따금 하게되는 반공교육이나 6월 현충일이나 6.25 같을 때 이따금 학교에서 초빙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귀순용사나 안보강사들의 안보강연이나 북한실상 증언따위를 듣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냉전시대이기에 이 무렵 아이들에게 ‘반공교육’은 거의 기본적인 필수과목이나 다름없이 가르치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반공교육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태도나 그릇은 천양지차가 될 수밖에 없다. 헌데 어쨌든 뜻밖에도 광일은 이런 반공교육 시간을 재미있어 하거나 즐겨들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두 살터울의 누나 광희는 국민 학교때까지는 딱히 좋아하는 과목 같은 것은 없고 달리기나 운동에 좀 취미가 있고 성적은 딱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대략 중간정도였다. 그런 광희가 오히려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그때부터는 뜻밖에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 무렵엔 요즘으로 치면 ‘선행학습’에 해당되는 중학교 영어,수학 과목을 조기교육을 시키는 경우를 종종 볼수 있었는데, 광희의 경우 그 어머니 가인이 인근에 영어레슨을 하는 학원을 6학년 봄부터 다니게 해서 그때부터 광희가 뜻밖에도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광일이 초등학교 1,2학년때부터 국어나 도덕같은 인문계 과목에 유난히 흥미를 느끼는것과는 달리 6학년애 될 때까지도 딱히 좋아하는 과목이나 이런게 없어서 혹시 자신처럼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것 아닌가’ 가인은 이런 우려를 하기도 했었는데 다행히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가인 입장에서도 이래저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게 광희,광일 두 남매 모두 학창시절은 그런대로 큰 탈 없이 잘 보내고 있다가 광희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좀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자연스럽게 초등학교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을 중학교에서도 계속 보게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같은 중학교에 배치되어 다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원래 청담동 언덕배기에 있던 ‘청담 국민 학교’를 다녔던 광희는 방향이 그 정 반대쪽인 ‘구정중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 큰 이변이 없는한 광일도 이 중학교에 다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 대략 광희가 중학교에 들어와서 한두달여쯤 시간이 지났을때일까. 광희가 엉뚱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광희와 같은 학교인 ‘청담 국민학교’가 아닌 구정이라던가 언북등 다른 국민 학교에 다니다가 구정중학교로 진학학 된 아이들에게서 먼저 나온 소리다.
“ 광희야, 근데 니네 엄마 간호사시니 ? ”
“ 뭐 ??? ”
광희로선 이게 웬 뜬금없고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해서 어이없이 그 친구를 바라보았다. 이때는 한반 평균 학생수가 60-70명 정도였는데 구정중학교는 지리적 위치상 그 60여명중 3분의1 정도가 청담 국민 학교 출신, 또다른 3분의1 정도가 구정 국민 학교 출신으로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이 언북이라던가 언주등 그 외 기타 다른 국민 학교 출신들인데, 광희와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닌 다른 국민 학교 출신으로 중학교에서 같은반이 된 아이들. 주로 그 아이들에게서 이런 소리가 나오니 광희로선 이게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해서 그저 어이없고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다.
“ 내 동생이 그러던데 ? 내 동생이 니 동생... - 니 동생 이름이 최광일 맞지 ? 내
동생 친구가 근데 광일이 친구랑 잘 안다구 그러면서 그렇게 말하더라. 최광일 엄
마가 사실은 서울대 나온 간호사라고. 그리고 무슨 심장병 어린아이들 치료해주러
미국도 데려다주고 그런다던데 ? ”
“ 뿐인줄 알아 ? 원래 장애인이나 자폐아들 가리키는 특수교사도 했었대. 옛날에
는... ”
대체 이게 무슨 해괴하고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아무리 사람말이 한두계단 건나가다보면 과장과 왜곡이 생기기 마련이기로 대체 누구에게서 무슨말을 들으면 이런 얼토당토 않은 헛소문이 퍼진단 말인가. 가인은 실제로는 17세 나이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않고 가출한 진도출신의 여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출생과 환경 때문에 처음엔 경환의 어머니 전노파가 못마땅하게 여겨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전노파가 중매를 통해 이화여대를 나온 간호사를 한명 경환이 소개받게 만든적은 있다. 허나 현재 광일네 가족 구성원중 그런 이야기를 굳이 자녀들이나 그것도 아이들 친구한테 할만한 사람은 없다. 일단 상식적으로 경환이나 가인이 굳이 그렇게 결혼전에 있었던 일을 자기 아이들에게 해줄리는 없고 할머니 입장에서도 – 한편 광일의 할아버지 최웅돈 선생은 80년대 초반쯤 노환을 앓으시면서 그때까지 운영하던 잡화점도 접고 그 무렵에 세상을 떠나셨다. - 그런 이야기를 손자,손녀한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며느리가 못마땅한 시어머니였기로 막내아들 결혼시키기전에 원래 중매본 여자가 따로 있었다며 그것도 그 여자가 무슨 이대출신 간호사라느니 어쩌느니 그런 이야기를 일부러 아이들에게 해줄 그런 몰지각하고 생각없는 할머니가 어디있겠는가.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광희나 광일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만한 사람은 없을터인데, 일단 광희가 주로 광희와는 다른 국민 학교를 나온 반친구 아이들로부터 듣게된 이야기가 대략 이런식이었던 것이다.
“ 내 동생이 니 동생 광일이 친구랑 잘 안대. 그런데 걔가 그런다던데 ? 광일이 엄
마 사실 서울대 나온 간호사 출신이고...게다가 원래는 자폐아나 장애인 가르치는
특수교사도 했고...선천성 심장병 앓는 아이들 치료해주러 미국도 드나들고 그런다
고... ”
사실 광일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서로의 가족관계나 이런걸 물어보거나 할 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가 나온 듯 한데, 헌데 보통 그냥 아버지가 어떤 직업을 가지셨는지 정도나 궁금해서 물어보지 아버지도 아닌 그것도 굳이 어머니의 ‘학력’을 물어보는 경우는 웬만해선 잘 없다. 일단 아직은 직장여성보다는 전업주부가 훨씬 보편적이던 시절이고 그리고 이 정도 시대의 부모님들이라도 어머니는 아무래도 아버지에 비해 학력이 일천한 경우가 많다. - 그래도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학부모 정도의 사회적 지위,위치라면 대개는 최소한 고등학교는 나왔을것이고 대학까지 나온 경우도 꽤 된다. - 아무튼 보통 60-70년대 정도에 학교를 다닌 여성들이었을 것 아닌가. 따라서 광일이 자연스럽게 자기 어머니의 학력과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꼈던것인지. 가령.
“ 우리 아버진 서울대 나오시고 지금은 OOOO에서 부장님으로 계셔. ”
여기까진 사실이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해 물어올 때 말문이 막힌 까닭인지.
“ 우리 엄마도 서울대 나왔어. 가...간호학과... ”
아버지가 서울대를 나온것까진 어쨌든 사실이니 그 다음 어머니에 대해 물어볼 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서울대를 갖다붙인것인지. 사실 서울대는 지금이나 이 시대나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광일 정도 나이의 부모님 세대에서는 아직은 그래도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이 그리 높지 않았던 시절이고 게다가 보통은 ‘여성’은 ‘이화여대’를 최고의 명문대로 쳤지 굳이 ‘서울대’를 들먹이는 경우는 – 사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 웬만해선 잘 없다. 물론 굳이 세세히 살펴보자면 70년대는 물론 그 이전 시절인 50-60년대에도 서울대를 나온 여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것이지만 확률적으로 따졌을 때 그 비율이 높지는 않았을 한마디로 ‘서울대 나온 여성’이 그리 많지도 않은 시절이 아닌가. 그러니 보통 ‘그래도 우리 엄마가 대학은 나왔다’는 식으로 둘러대려면 일반적으로 ‘이화여대’를 들먹이는게 자연스럽지 여자가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은 – 50-60년대 정도만 되어도 서울대에 여학생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 어쩌면 금방 들통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하다면 위험한 거짓말이다. 물론 요즘처럼 인터넷이라도 있어 작정하고 신상털이를 한다던가 할 수는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어쨌든 강남에 사는 학부모들이 작정하고 수소문을 해보면 ‘서울대 재학’ 혹은 졸업여부가 사실인지 여부는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해볼수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광일이 왜 하필 이화여대도 아니고 서울대를 들먹였는지는 참 수수깨끼 같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간호학과’의 경우 간호사는 굳이 강남 아줌마들이 이 시대에 ‘계집애들이 성차별 안받고 적당히 돈벌다 좋은데 시집보낼수 있게 하려면’ 간호사나 선생질 정도가 적당하다는 편견섞인 발언을 쉽사리 입에 담던 시절이기도 했지마, 그보다 간호사는 어쨌든 초등학생이나 그 이하 미취학 아동연령에게도 충실하게 인식될수 있는 ‘직업여성’이 아니던가. 따지고보면 간호사나 학교선생이나 둘 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친숙하고 쉽게 접할수 있는 직종인 것은 분명하다. 선생님이야 학교가면 누구나 다 선생님한테 가르침을 받는것이고 어릴 때 누구나 다 병원가서 젊은 간호사 누나한테 주사맞아본 경험은 다 있지 않을까. 무슨 어릴때부터 잔병치레 한번없는 ‘철인소년’처럼 자랐다면 혹시 모를까. 어릴 때 간호사한테 주사맞아보지 않은 아이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상 전체를 통털어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화여대 출신의 간호사는 원래 실제로 경환이 가인을 만날 무렵에 경환의 어머니 전노파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선을 보게한 상대여성이 아니던가. 물론 이런 이야기를 전노파든 다른 누구든 굳이 광일에게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대체 광일은 무슨 생각으로 실제로는 전남 진도 출신의 고2때 무작정 상경한 가출소녀였던 가인을 이화여대도 아닌 ‘서울대 나온 간호사’로 신분을 둔갑시킨것일까. 여하튼 소문이 너무 황당무계하고 해괴해서 광희는 하루 날잡고 동생을 은밀히 불러 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광희가 광일을 의심했던 것은 아니다. 헌데 소문의 출처가 대개 어른들은 확실하게 아니고 자신의 학교 친구들이 ‘동생의 친구로부터 들었네’, ‘자기 동생의 친구가 광일이 친구를 잘 아네’ 이런식으로 이야기가 들려오니 광일을 의심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광희가 결국 동생 광일을 불렀다.
“ 광일아, 누나랑 잠깐 이야기좀 하자. ”
광일이 유치원도 다니기 전 4-5세 무렵 실제로는 가인이 광일을 품에 안고 자장가대신 불러주었던 ‘단장의 미아리고개’나 ‘한많은 대동강’ 같은 노래들. 그걸 어릴때부터 친숙하게 익혀서인지 동요도 배우기전에 그런 노래부터 흥얼거리자 할머니가 매섭게 ‘아이 교육을 어찌 시켰길래 이모양이냐 ?’며 어머니의 종아리를 치셨고 이를 보다못한 누나 광희가 동생에게 제대로 ‘어린이 노래’를 가르치려고 당시 유명했던 모 민간방송사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주제가를 율동과 함께 손수 가르쳐주려고까지 않았던가. 헌데 그때 오히려 ‘저런노래 유치해서 싫다’며 뛰쳐나가던 동생 광일. 다만 그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광희와 동생 광일이 딱히 부딪힐일은 없었다. 평일 대략 늦은 오후시간을 이용 광희가 동생을 집에서 나오게 해서 인근 공터로 데리고 갔다. 이때 경환의 가족이 살던 OO 아파트 앞에는 아직 활용이 되지 않는지 그냥 애들끼리 나와서 자기네들끼리 축구도 하고 겨울이 되면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는 그런 너른 공터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광희가 광일을 불러낸곳이다. (* 참고로 지금 가보면 그때 그 아이들이 축구나 달리기 같은 것을 즐기던 OO 아파트 앞 넓은 공터는 지금은 온갖 삐까번쩍한 상가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옛날 공터있고 테니스장 있고 하던 그 운치는 흔적조차 찾아볼수가 없다.)
“ 최광일. ”
심각하고 진지하게 동생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서 그렇게 부르는 광희. 그리고 묻는다.
“ 너 요즘 뭐하고 돌아다니는거니 ? ”
“ 뭐...뭐가 ??? ”
동생은 아직 누나가 뭘 갖고 그러는지 눈치를 채지 못하는것일까. 그저 어리둥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고 있고 쉽게 나올만한 자백은 아닐 것 같다 생각했는지 광희도 일단 유도심문을 해보려 한다.
“ 너 혹시 친구들한테 이상한 소리 하거나 그런거 없어 ? ”
“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해 내가 ? ”
이쯤되면 광일도 제 누나가 뭘 갖고 그러는지 눈치를 못챌 머리는 아닐텐데, 하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완강히 부인을 하는것인지 아니면 ‘설마’ 하는 심정으로 이러는것인지 모르겠지만 완강히 부인을 하는 광일을 중학생인 광희의 능력으론 더 추궁할 자신이 없어서일까. 일단 골치아픈 듯 이마로 제 손을 한번 짚어보고는 그 정도로 물러나려 한다. 다만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우려되고 걱정되는 듯 이렇게 말한다.
“ 최광일. ”
여전히 영문모른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나를 바라보는 동생. 광희의 말이 이어진다.
“ 엄마도 알고보면 많이 힘들게 살아오신 분이야. 상처도 많으시고... ”
전남 진도 출신의 고등학교 중퇴 학력의 여성. 나이 40넘은 여인의 늦둥이 외동딸로 태어나 자라온 그 시기는 둘째치고라도 그런 일천한 학력과 신분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최경환의 아내가 되어 지내면서 있은 힘든일이 왜 없었을까. 실제 경환이 과장을 거쳐 부장의 위치까지 오르면서 무엇보다 H그룹에서 어느덧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직장동료라던가 상사,후배 부하직원들이 없지는 않은데, 따라서 이따금씩이라도 그런 사람들과의 부부동반 또는 부인들끼리의 모임을 안가질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과장님 사모님’이든 ‘부장님 사모님’이든 그런 가인을 모신(?) 자리에서 남편 경환의 부하직원 부인들은 그녀 앞에서는 예의를 취하면서도 자기네들끼리는 결국 이런식으로 수군거리는 분위기가 안 생길수 없었을 것이다.
“ 그 여자(가인) 고등학교도 제대로 안 나왔다더니 역시 어쩔수 없나보네요. 못배운
게 어쩔수 없이 티가 난다니까요. ”
“ 아휴 관둬요 관둬. 우리가 뭐 어디 부장님 사모님이라 어쩔수 없이 대접해 드리
는거지 뭐 그 여자가 좋아서 이러는거에요 ? 아무리 그래도 지가 아주 눈치없는
돌머리가 아닌이상 우리가 어쩔수없이 상전으로 떠받드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알
아서 처신해 주겠죠 뭐... ”
초등학교 4학년때 이런일이 있었다. 1학기 한 중반쯤에 전학을 온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여학생이었고, 마침 그때 광일의 옆자리가 비어있어서 짝궁이 되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광일이 사는 아파트 바로 인근에 그 여학생이 새로 이사온 집이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께서 전학생이 새로 이사온 동네 지리에 아직 익숙치 못할테니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광일이가 도와주라고 특별히 당부하셨다. 그래서 한동안은 등,하교길에 광일이 여학생과 함께 오가게 되었다.
헌데 뜻밖에도 여학생은 아버지가 목사님이었다. 학생의 이름은 장봉희라고 했고 그 아버지는 몇 년전 까지 교육전도사로 있다가 수년전에 목사안수를 받고 최근에 이 지역으로 이사와 교회를 개척하려는 듯 했다. 나중에 봉희 아버지가 세운 교회에 봉희가 거듭 권해 한동안 함께 다니기까지 했는데 그 봉희가 하루는 이런말을 했다.
“ 우리 아빠 젊었을 때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하러 간적도 계셔. ”
여하튼 봉희 아버지는 목사님이고 그런 사람이 젊은시절 선교활동을 간것이라면 어느덧 10년전 일로 봐야할텐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한국도 경제사정이 많이 열악하던 시절이라 아프리카든 어디든 무슨 다른나라를 구호하거나 도울수 있는 처지도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시절이 한국 교회가 한참 쭉쭉 성장하던 시절이니 전도사든 선교사든 그 시절에 이미 해외선교에 비전을 품고 한두번쯤 가본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 시절에 20대 신출내기 전도사의 몸으로 아프리카 선교활동까지 갔다온 몸이라면 대단한 선교열정을 가졌단이가 분명해 보이는데, 그 봉희네 집에 몇 번 놀러간적도 있었는데 그때 봉희가 자기 아버지 젊은시절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을 몇장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 아프리카엔 불쌍한 사람이 참 많지 ? ”
“ 어...그렇구나. ”
아프리카가 가난한 나라라는 것은 여하튼 이 시대 어린아이들에겐 굳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기본적인 상식으로 자리잡아 있는때. 사실 60년대는 물론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이제 막 경제성장이 시작하던때이니 아프리카를 ‘못살고 열악한 나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처지는 못되었을텐데 그래도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 이 땅의 어린아이들에겐 그저 아프리카는 ‘덥고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 그 정도로만 인식되어 있었다.
여하튼 그 젊은시절 자기 아버지가 아프리카 선교활동을 하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봉희. 그래서 순간 어떤 오기심이 발동했던것일까. 아니면 자격지심이 들어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광일이 이런말을 했다.
“ 실은 우리엄마는 장애인들 가르치는 특수교사셔. 예전에 그런일을 많이 하셨어.
그러니까...이를테면 헬렌켈러 가르치던...그 설리반 선생이라고 하던가...그 비슷
한 역할이지 뭐... ”
80년대면 그래도 어느덧 ‘장애인의 날’도 제정되고 최소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이전에 비해 많이 바뀌어가던 시기이긴 하다. 무엇보다 ‘헬렌켈러’ 정도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든 또는 위인전 같은 것을 통해서든 들어보지는 않았을것이고 소위 삼중고(三重苦)를 앓는 중증장애의 처지로도 나름 열심히 살아갔다는 여인 헬렌켈러. 헌데 그 헬렌켈러를 가르쳤다는 (그 시절에 분명 흔치 않았을) 설리반 선생이 따지고보면 헬렌켈러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아직 초등학교 4학년 어린아이지만 그 정도는 그런대로 인식이 되어있어서인지 또는 그 시절 그래도 가끔 장애인의날 특집극이나 단막극 같은데서 – 꼭 특집극이 아니더라도 일일극이나 주말극에도 그런 설정이 종종 안 나오진 않았다. - 어느정도 먹고살만한 집에서 중증장애인이 있을 때 아이를 어떻게든 가르쳐 온전히 키우긴 해야겠기에 특수교사를 들여 가르치는 설정. 아마 광일도 못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목사님 딸이고 그 목사인 아버지가 소싯적에 아프리카 선교활동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괜한 자존심에 혹은 자존감에 이런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 장애인을 가르친다고 ? 어떤 장애인 ? ”
봉희도 아직 어린 초등학교 4학년인 것은 마찬가지라 그런것에 대해 잘 모르는지 다만 장애인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은 모르진 않는지 그렇게 물어온것이고 광일은 마치 미리 준비해온 시나리오라도 있는양 봉희 앞에서 술술 거짓말을 잘도 해냈다.
“ 그게...청각장애인도 있었고...자폐증 환자나 농아도 있었던걸로 알아. ”
“ 그럼 대개 어린아이들이었겠네 ? ”
“ 그...그렇지 뭐. 기억에 나보다 어린 여자아이도 있었고 또 나보다 한두살 많은
형도 있었어. ”
“ 너도 직접 그 아이들을 만나본적이 있었다는 소리야 ? ”
광일의 말이 거짓이든 아니든 그 여부를 떠나서 장애인 특수교사를 하든 간호사를 하든 그런 여성이라면 여하튼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별도의 직업을 갖고 일하는 ‘직업여성’이라는 소리 아닌가. 적어도 70-80년대엔 아직 보편적이지 않았던 결혼후에도 일하는 직업여성. 그래서일까. 광일이 이런식으로 둘러댔다.
“ 그게 뭐...엄마가 그렇게 일 나가시면 집에서 나 돌볼 사람이 없는거니까...그래서
할수없이 장애인들 가르치러 가는날에는 별수없이 나도 데리러 가곤 했던거지 뭐.
그래서 OO이 형네나 OO이 누나네 가서 엄마가 그 OO이형이나 OO이 누나 가르
칠때면 옆에 별도의 방에서 혼자 놀고...그러면서 지냈던거지 뭐... ”
“ 그 집에서 방해되었을 것 아냐 ? ”
무슨 청문회 질의하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허점을 잘도 찾아내서 집요하게 캐묻고 있다. 다만 어쨌든 지금처럼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자녀들 보육시설 같은게 잘 없던 그런 시절이니만큼 이런식의 거짓말이 그런대로 이해가지 않을 그런 시절은 아니다. 여하튼 광일은 무슨 소설가도 시나리오 작가도 아닌데 한번 입에서 나온 거짓말이 봉희가 궁금하기라도 한지 아니면 무슨 의심이라도 가는지 집요하게 캐물어오자 거짓말을 제법 치밀하게 잘도 지어냈다.
“ 그게...OO이형 가르치던때는...OO이형 위로 누나가 둘 있었거든. 근데 OO이형
만 자폐증 환자고 위에 두 누나는 정상인이니까. 엄마가 OO이형 가르치는 동안에
는 OO이형네 누나들이 나 심심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동안 나랑 어울리고 놀아주
고 그랬던거지 뭐. ”
“ 아, 그랬었구나... ”
한번은 또 이런일이 있었다. 4학년때는 아니고 그보다 좀 지난 5학년인가 6학년때 일. 워낙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광일이지만 그래서인지 친구들을 자기집으로 데려오는일도 잘 없었다. - 어떻게 보면 4학년때 목사님 딸 봉희가 참 이례적인 일이다. 사실 봉희의 경우도 우연히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아서 담임 선생님이 ‘봉희는 한동안 광일이가 집에까지 데려다주렴’ 하는 부탁이 없으셨다면 둘이 딱히 친해질 일이 없었을수도 있다. 그래도 아주 어울리는 친구가 없는건 아니라 그래도 가끔 광일과 뜻이 맞아 함께 어울리거나 같이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그러는 아이들이 한학년에 평균 두어명꼴로 없지는 않았다. 헌데 그 어쩌다 1년에 두어명 정도 생기는 그 어울리는 친구들에게도 광일은 그 아이들이 자기집에까지 오는 것은 내키지 않아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집에 찾아온다고 하면 또 이런 거짓말을 했다.
“ 아...안돼. 지금은 우리 엄마 외국 나가셔서 안 계셔서 안 돼. ”
“ 너네 엄마 간호사라며 ? ”
원래 그렇게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고 물으면 서울대 나와서 H그룹 부장으로 계신다고 답했고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 다음 ‘엄마가 서울대 나온 간호사’라는 것이 거짓말 아닌가. 그러나 그 거짓말을 곧이 들었을 친구들. 그래서 의아하게 묻는 친구들에게 광일은 이렇게 둘러댔다.
“ 서...선천성 심장병 앓는 아이들 치료해주러 미국가셨어. 그래서 한두달 뒤에 돌아
오실거야. ”
“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을 치료해주러 가셨다구 ? ”
아마 그때가 이른바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아이들에 대한 문제가 한참 언론,방송에서 이슈화되어 떠들어댈때고 심지어 대통령 영부인이 직접 나서서 그런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무슨 재단까지 만들던 시절이 아닌가. 물론 나중에 그 재단도 기업에게 돈을 받고 특혜를 주었다는 문제가 불거지긴 하지만, 일단 여기선 그런 정치적 문제는 논외로 하고 워낙 언론,방송에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문제를 떠들때고 그런 아이들을 돕는 재단을 만든다고 대통령 영부인이 직접 팔걷고 나서서 그걸 또 매스컴이 한참 떠들어대던 시절이니 초등학교 5학년 정도 아이들쯤 되면 그런 이야기 못들어보진 않았을 것이다. 헌데 바로 그런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접해 들었기 때문일까. 자기집에 놀러오겠다는 친구들에게 핑계를 이런식으로 댔던 것이다.
“ 우리 엄마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 치료해주러 미국가신거야. 그래서 한두달 뒤
에 돌아오실거야. ”
“ 가만...그럼 너네 엄마 아직도 현역 간호사로 일한다는 소리가 되는거잖아 ? ”
간호사도 뭐 병원 규모에 따라 여러 가지 직위가 있을터이니 여하튼 서울대를 나온 간호사가 그 산하 대학병원에 다니는 문제까진 그렇다 치고 그 병원에서 어느덧 ‘간부급’ 위치가 되어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을 미국까지 데려가 치료해주는 그 실무를 손수 맡아하고 있다 ? 스토리텔링상 그런대로 말이 안 되진 않는 것 같다. 여하튼 가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최광일의 거짓말. 이래저래 그나마 학교에서 어울리는 몇 안되는 친구들조차 집에 못 데려오는 그런 타당한 이유가 그런 이유가 되어가고 있었다.
“ 최광일,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 ”
엄마 가인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가 어느덧 중학교 2학년인 자신의 친구들로부터도 계속 들려오자 더욱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된 광희. 다시 두 살터울 동생 광일을 공터로 불렀다. 그리고 추궁했다.
“ 너...솔직하게 말해봐. ”
일전에 이 이야기를 꺼냈을땐 부인하던 동생.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이제 아예 정면돌파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날 광희는 ‘엄마도 알고보면 상처많고 힘들게 살아오신 분’이라며 그런 엄마에 대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당부를 사실상 한것이나 다름없는 광희. 허나 그 이후에도 광일의 태도가 아무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 이와같이 나오고 있는 광희.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엄마가 대체 언제부터 간호사였니 ? 게다가 난데없이 서울대는 또 뭐고 ? ”
“ 누...누나... ”
바보가 아닌이상 그것도 같은 학교를 쭉 다닌 누나 광희에게 그런 이야기가 안 들어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을텐데. 적어도 한두살 터울의 형제나 남매,자매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일 아닌가. 어차피 그정도 터울의 형제나 남매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선 피차 비밀이 생길수가 없다. 니 동생 친구가 내 동생 친구이기도 하고 내 누나 친구가 니 누나 친구이기도 하고 대충 그런식의 연관관계가 충분히 만들어질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런식으로 누나 광희에게 들려왔을 동생 광일이 제멋대로 떠들고 다니는 엄마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들. 적어도 전남 진도 출신의 전통된장 담그는 할머니의 나이 40넘어 낳은 늦둥이 막내딸이고 고등학교 2학년떄 무작정 상경한 그런 엄마 가인의 신분을 적어도 광희는 지금껏 한번도 부끄러워 한적이 없기에 동생의 이런 행동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화가난 것이다. 광희가 광일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 최광일, 단도직입적으로 이것 하나만 묻자. ”
“ ...... ”
“ 너...엄마가 싫은거니 ? ”
어쨌든 이 시대 그래도 강남에서 학교다니는 아이를 키우며 사는 그 정도 연령대의 학부모라면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대개 돈을 벌기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거나 하는 그런 사례가 많던 시절에 젊은시절을 보냈을 학부모이니만큼 출신으로 따지면 서울출신보다 경상도든 충청도든 전라도든 그런 지방출신이 훨씬 더 많을 - ‘방학때 시골 외갓집으로 피서가는 것’이 이 시절 아이들의 가장 보편적인 여름방학 보내는 방식이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다. - 그런 시대이긴 하다. 어쨌든 이런 시대에 전남 진도 출신의 학력 일천한 제 엄마의 신분을 부끄러워 하고 있는것만은 분명한듯한 최광일. 엄마가 무슨 서울대를 나온 간호사 출신이니 자폐아들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했었다느니 이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꾸며낸 곡절의 뿌리가 결국 거기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광희는 문득 신길동 우진아파트 살던 그 시절의 일을 상기해내며 동생을 타이른다.
“ 사실 나 내심 좀 후회하고 있었어. ”
“ 갑자기 뭐가 또 ? ”
좀 난데없이 나온 이야기라서인지 광일이 의아해서 이와같이 묻고 광희가 그런 동생을 보며 말을 이어간다.
“ 너 내가 그렇게 야단쳤었잖아 그때. 니가 자꾸 무슨 6.25나 이산가족...이런거 소
재로한 그런 노래 부르니까...너 때문에 엄마가 자꾸 할머니한테 종아리 맞는다면
서 그런 노래 부르지말라고...일부러 ‘호돌이와 토순이’ 노래 가르쳐주려 하던거...
”
어느덧 광희는 중학교 2학년이고 광일도 초등학교 6학년이니 6.25나 이산가족 이런 개념을 전혀 모르지 않을 나이다. 여하튼 어린시절 그런 노래를 부르다 할머니로부터 야단맞고 심지어 엄마가 할머니한테 ‘애들 교육 똑바로 못시키겠느냐 ?’며 회초리까지 맞던 모습. 보다못한 광희가 광일에게 ‘어린이 노래’를 가르쳐주겠다며 ‘호돌이와 토순이’라는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어린이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주제가까지 가르쳐주려하지 않았던가. 사실 지금은 그 프로를 방영하던 해당 방송사는 그 무렵 어느 정치적 사정으로 폐방되었고 ‘호돌이와 토순이’도 더 이상 방영하지 않는 과거 추억의 프로가 된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하튼 그때 누나 광희가 ‘호돌이와 토순이’ 노래 가르쳐주려하자 광일이 유치하다며 싫다고 뛰쳐나가던 모습. 광희는 물론 동생 광일도 그런대로 생생하게 기억하는 남매간의 일인 듯 하다. 허나 이 시점에서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오는것인지 광일이 입을 삐죽이며 제 누나한테 말한다.
“ 그게...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
광일이 엄마에 대해 무슨 서울대 나온 간호사라느니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 치료해주러 미국까지 간적이 있다느니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는 것, 광일이 이렇게 뭔가 천성이 비뚫어진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이 어린시절 그 일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광희는 생각하고 있는것일까. 그래서 그 일을 끄집어낸 듯 한데 허나 광일은 누나 광희가 이러는 것이 여전히 이해 안간다는 듯 나오고 있고 광희가 다시 광일에게 말을 건넨다.
“ 최광일. ”
어쨌든 누나한테 야단맞는 상황이라 그런지 동생은 풀이죽어 말이 없고 광희가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너...우리가 외갓집 간게 몇 번인지 알기는 해 ? 외할머니 뵈러간게 몇 번인지 알
기는 하냐구 ? ”
서울에서 진도까지 아무래도 거리상 너무 멀어서 물론 이때는 고속버스도 생기고 했을때니 적어도 60-70년대에 비해선 지방으로 갈때의 대중교통 이용이 많이 편리해져 있는 시기이긴 하다. 허나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연휴는 아직도 하루이긴 마찬가지고, 이래저래 전남 진도가 고향인 여자가 아이들까지 데리고 부모님이나 친정식구에게 인사드리러 가긴 여전히 부담스럽고 벅찬일이긴 하다. 어차피 가인에겐 가족,친척이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몇몇 되던 먼친척도 그 사이 고령이나 사고로 떠난 경우가 많아서 이제는 전통장 만드는 일조차 고령이라 더 이상 하지 못하시는 어느덧 나이 칠순 넘기신 그녀의 친정엄마 달랑 한분뿐이지만 그 어머니마저 뵈러가기 쉽지 않은 그게 가인의 처지였다. 그나마 아이들 방학때 애들을 데리고 진도까지 한 2-3일이라도 내려가 외할머니께 인사드리고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갖게 하기도 했고 간간이 한 2-3년에 평균 한두차례 정도는 경환이나 가인이 직접 여비등을 챙겨드려 가인의 친정어머니가 서울까지 올라와 며칠 머물다 내려가신적도 있긴 하지만 여하튼 이래저래 가인에겐 여전히 명절때든 여름휴가철이든 진도에 혼자계신 친정어머니에게조차 인사드리러 가기 쉽지 않은 그런 처지만은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엄마의 그 딱한 처지를 생각하니 새삼 그 심정이 전이라도 되는것일까. 광희가 순간 눈에 눈물까지 고이는데, 여하튼 원래 동생의 일을 단단히 야단치고자 부른 것 아닌가. 긴말이 필요 없다는 듯 갑자기 광희의 손찌검이 올라왔다.
“ 철썩~~~!!! ”
동생의 어이없는 언행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한껏 치솟아 올라서일까. 아니면 긴말보다 아예 이 한가지 행동으로 동생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는게 차라리 효과적이라 생각한것일까. 그냥 장난도 아니고 실수로 살짝 스친 수준도 아닌 광희는 온 몸에 본노와 힘 그리고 동생에 대한 실망감을 한몸에 담아 광일의 뺨을 후려쳤다. 광일도 전혀 예상못한 누나의 행동이라 아픔보다 더 황망한 감정으로 광희를 바라보고 있는데, 광희는 한 대만으로 분이 안 풀리는지 한 두어대 더 때릴 기세로 한쪽손을 치켜들었다. 헌데 그때였다.
“ 아그야... ”
어디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여인이야 세상에 얼마든지 있을수 있지만 광희든 광일이든 그런 엄마의 목소리를 못알아들을 아이들은 아미 아니다.
“ 대체 이게 뭣이다냐 ? 뭣들 하고 있는것이냐 너희들 ? ”
- 7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