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청 실 홍 실
“ 미아리 눈물고개에~~~ 임이떠난 이별고개에~~~ 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뜨고
헤매일때애~~~ 당신으은~~~ 철사줄로 두손꽁꽁 묶인채로~~~ ”
“ 한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습이 그립구
나아~~~ ”
시간이 흘러 광일의 나이가 어느덧 4-5세 정도가 되었다. 경환과 가인 내외는 이 무렵 신길동 우진아파트에서 광희,광일 두 남매를 키우며 살 때인데 원래 제 엄마가 품에 안고 그런 노래를 자장가랍시고 들려주며 자랐기 때문일까. 어쨌든 제 엄마가 ‘한많은 대동강’이니 ‘단장의 미아리고개’니 주로 6.25나 실향민의 아픔을 다룬 노래를 흥얼거리면 칭얼거리지 않고 새근새근 잠들더라는 아이. 그래서인지 어느정도 자라서 말도 또렷하게 잘 하고 TV 화면속의 내용도 조금씩 인식이나 이해를 하게되기 시작할 무렵. 아이가 종종 이런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했다. 제 어미를 닮아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제 어미 품안에서 그런 노래를 들으며 자라서 그런지 저런류의 노래를 즐겨 부르고 흥얼거리곤 하는 아이. 다만 가인이야 아이가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개의치 않았지만 할머니가 그 사실을 아시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달에 한두번정도 아들내외 사는 모습이 궁금해 들러주곤 하시는 전노파. 결국 노인의 눈에 손자 광일이가 그런 노래를 부르는게 눈에 뜨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 광일아, 너 그 노래 대체 누가 가르쳐준거니 ? ”
할머니의 표정이 뭔가 심상치 않게 느껴져서일까. 뭔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음인지 광일은 할머니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그러자 결국 할머니가 다그쳤다.
“ 아니 도대체 애가 어른이 묻는데 왜 그러고 있어 ? 그딴 노래들 대체 누가 가르
쳐준거냐구 !!! ”
아무래도 짚이는데가 없지는 않아서인지 노파는 결국 막내며느리 가인을 호출했다. 사실 가인도 원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 그런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인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따금 혼자 그런 노래를 부르기는 했다. 허나 가인이 무슨 가수 지망생도 아니고 더욱이 신혼초 한동안은 시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이니 눈치때문에라도 자주 부르진 않았었지만 혼자 집안일이라도 하거나 할 때 그런류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전노파의 눈에 안 뜨일수가 없었다. 허나 어쨌든 가인이야 다 자란 어른이고 또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며느리가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책망할일은 없는법. 다만 아이까지 제 엄마를 따라 그런 노래를 좋아하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것인지 결국 며느리를 불러 꾸짖은 것이다.
“ 네가 아이에게 저딴 노래를 가르쳐준거냐 ? 무슨 미아리고개가 어쩌구 대동강이
어쩌구 하는 ? ”
사실 6.25에 대한 트라우마도 의외로 그 세대를 겪은이들에게 제각각이라서 오히려 그런 노래를 들으며 두고온 고향이나 가족이 그리워 눈물지으며 공감하는이도 적지 않으나 오히려 전쟁때 고생하던 일들이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나 눈살 찌푸리는 이들도 제법 있다. 헌데 전노파는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쪽에 가까운지 1950년생인 며느리까지야 그렇더라도 아직 유치원도 다니기 전인 막내손자가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는지 며느리를 불러 그렇게 다그친 것이다. 가인은 일단 손을 내저으며 나름의 해명을 했다.
“ 아...아니지라. 지가 애가 어릴 때 하도 칭얼거리길래 자장가삼아 그런 노래를 불
러준적은 있지만...그런 노래를 가르쳐준적은 없지라. 생각해 보셔라. 지가 애한테
그런 노래를 왜 가르쳐 준다야... ”
하긴 가인의 해명이 적어도 거짓 대답은 아니다. 가인이 적어도 광일이 갓난아기일 때 자주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주고자 품에 안고 그런 노래를 자장가 대용으로 부른적은 있어도 직접 구체적으로 가르쳐준적은 없지 않은가. 그저 아이가 지 에미 품안에서 그런 노래를 들으며 아주 애기때부터 자연스레 익혔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지 가인이 의도적으로 그런 노래를 가르쳐 준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허나 전노파는 반신반의하는 가운데서도 엄중히 경고하듯 며느리한테 말했다.
“ 동요 가르쳐라. ”
“ 야 ? ”
시어머니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것인지 되물은 가인. 전노파가 혀를 끌끌차며 말을 이어간다.
“ 아이가 아이답게...어린이 노래를 불러야지 대체 저게 뭐하는 짓이야 ? 아이한테
아이다운 노래를 가르쳐야지. 그 동요인가 뭔가 하는...그런 어린이 노래 가르치라
고 !!! 도대체 저게 애가 뭐하는 짓이야 !!! ”
비단 전노파뿐만 아니라 이 시대 인식이 그랬다. 요즘이야 아이가 어른들 앞에서 대중가요나 유행가를 부르는게 흠도 안되고 심지어 소위 ‘트로트 신동’이다 뭐다하여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TV에 나와 그런 노래를 구성지고 자랑스레 부르기까지 하는 그런 시절이지만 적어도 70년대는 물론 80년대 어쩌면 대략 90년대까지도 사회 인식은 보편적으로 그랬다. 어린이들에겐 일단 ‘동요’를 권장하지 특히 학교나 공식석상에서 대중가요나 유행가를 부른다면 그건 큰일날짓이다. - 가령 어느어느 드라마에서 90년대 배경으로 20대 여주인공을 등장시키면서 그 주인공의 20년전 추억이랍시고 어릴 때 친구들과 학교나 행사장 같은데서 어른들 유행가를 춤까지 춰가며 부른다 ? 이건 분명 고증오류다. 방송은 물론이고 아동학자등의 지식인 또는 사회계몽 차원에서도 어린이들이겐 어른들 대중가요나 유행가보다는 ‘어린이 노래’를 부르도록 권장하고 계몽하는 그 자체가 1970년대 사회 분위기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노파가 아무리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는게 국가시책인 시절에 막내며느리한태 ‘아들 열명 안 낳아주면 쫒아낸다’며 노골적으로 반정부(?) 성향을 드러낸 전력이 있을지언정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만은 이와같은 사회계몽이 바람직하고 옳은일이라 생각하는 대략 그런 노인이었다. 아니 비단 초등학교도 다니지못한 전노파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시절은 여하튼 어린이가 어른들 노래를 부르는 것은 대체로 곱게 보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다. 사적인 자리 가령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켜본다 해도 가령 동요나 만화영화 주제가를 부르는 것은 그리 흠이 못되고 박수받을 일이긴 하지만 어른들 대중가요를 그것도 6.25때 월남한 실향민이나 이산가족의 아픔 같은 것을 다룬 노래를 부른다 ? 겉으로는 예의상 박수쳐주었을지 몰라도 뒤돌아 집에갈때는 자기네들끼리 ‘저 집안은 도대체 애 교육을 어찌 가르쳤기에 국민 학교(* 지금의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어린 아이가 저런 노래를 부르나 ?’ 하고 수군거렸을법한 그런 시대다.
“ 휴전선 달빛아래 녹슬은 기찻기일~~~ 어이해 핏빛인가 말좀하려마~~~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
할머니가 그렇게 엄포를 놓고 가셨지만 아직 어린 아이가 무슨 눈치가 있을까. 아이는 여전히 애기때부터 제 엄마품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노래를 여전히 구성지게 불렀다. 심지어 한술 더 떠서 이제는 제가 어디서 보고들은 것이 있는지 노래 간간이 무슨 막간극(?)마냥 이런 대사를 읊조리기까지 했다.
“ 내 고향 내 강토를 모두 왜놈들에게 빼앗기고 부모형제잃고 고향없이 떠돌게된
몸 !!! 왜놈과 공산당놈들은 모두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들인 것
이여 !!! ”
하긴 이 시절은 무슨 6.25나 삼일절,광복절 같은때 6.25때 공산당들의 만행이나 일제때 왜놈들의 수탈과 거기에 저항하는 독립운동 같은 이야기를 무수히 특집극으로 다루던 시절이고 또 그런 시절을 배경으로 힌 시대극도 종종 만들어지던 시절이니 어린 아이가 이따금 제 엄마,아빠가 즐겨보는 TV 드라마나 쇼프로 같은데서 탤런트나 가수들이 나와 하는 그런 막간극 같은 대사를 익혀보지 못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여하튼 어느덧 다섯 살이 된 광일이 간간이 그런데서 보고 들은게 있는지 ‘단장의 미아리고개’나 ‘한많은 대동강’ 같은 노래 간간이 그런 대사를 읊조리기도 하고 이쯤되면 정말 아이가 가수나 탤런트쪽으로 무슨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까지 해봐야할판이긴 한데, 다만 이따금씩 집에 들르시는 할머니는 손주의 그런 모습에 그저 기가막힐뿐이었다.
“ 덱끼 !!! 애기는 그런 노래 부르는거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었냐 !!! ”
아이들은 동요나 어린이 노래. 즐거운 노래 같은 것을 부르는거라고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여전히 ‘한많은 대동강’ 따위나 부르고 있는 다섯 살 광일. 더는 안되겠다 싶은지 다시 며느리를 불러댔다.
“ 넷째는 종아리를 걷거라. ”
“ 야 ? ”
어느덧 가인도 경환과 결혼한지는 이미 수년이나 지났으니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뜻하는 ‘새아가’란 표현도 이젠 어색할 시기고 그래서 막내 며느리이기도 한 가인을 그와같이 부르고 있는 전노파. 다만 시어머니의 그런 태도에 가인은 ‘설마’ 싶은 심정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듯 시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며느리를 때리는 시어머니가 이 시절만 해도 가령 일제 강점기쯤 배경으로 한 시대극 같은데 이따금 묘사되는 장면일수는 있어도 70-80년대 정도만 되어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때린다는 것은 웬만큼 몰지각한 사람이 아니고는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인도 그저 황당하고 해괴하다는 듯 전노파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시어머니의 태도는 단호하고 엄격하기만 했다.
“ 무엇을 하고 있어 ? 시에미 말이 이제 말같지도 않은게냐 ? 냉킁 종아리를 걷으
라는데도 !!! ”
아무리 그렇기로 요즘 세상에 정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때리기야 하랴. 설마하는 심정으로 가인은 발목 부위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일단 무릎쪽까지 걷어올리긴 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더 걷어 올리라’고 호통을 쳤고 어디서 구해온 회초리를 들고 이렇게 며느리를 꾸짖었다.
“ 자고로 애들은 제 에미,애비 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고 했다. 헌데 애들 교육을 어
찌 시켰기에 아직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인 어린 아이가 저따위 노래나 부르고 있어
!!! ”
“ 어...어머니 지는 정말 억울하구만이라...지가 아무리 그렇기로 광일이한테 일부러
그런 노래를 가르치겄어라 ? ”
적어도 애기때 너무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느라 그나마 자신이 ‘단장의 마아리고개’니 뭐니 6.25나 실향민을 소재로 한 노래를 불러주면 아이가 그게 무슨 자장가로 인식되는지 신기하게 뚝 그쳐서 그나마 효험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리한것뿐. 어떤 의도를 갖고 일부러 아이한테 그런 노래를 가르친 것은 아닌데. 허나 노파는 거듭 아이가 그런 노래를 다섯 살 나이에 자꾸 부르며 익히게 된 것이 다 그 에미 가인때문이 아냐겠냐며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가인은 시어머니가 어느정도 엄포나 꾸지람선에서 그치겠지 설마 진짜 종아리를 치랴 했는데 시어머니는 정말로 가인을 회초리로 때리기 시작했다.
“ 내가 그렇게 말했거늘...애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그렇게 말했거늘...아이에게 어
린이 노래를 가르치라고 그리 말했거늘...시어머니 말이 아무리 우습기로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버려 ? 아무리 배운 것 없는 계집이기로 애 교육을 어찌 이렇게
망쳐놓을수 있단 말이냐 !!! ”
“ 어머니 지는 정말 억울하구만이라 !!! 지가 일부러 광일이한테 그런 노래 가르친
적 없어라... ”
“ 아니, 그런데 이것이 그래도 끝까지 ? 당장 잘못했다고 빌지 못하겠느냐 !!! ”
한두대로 끝나는일도 아니고 정말 옛날 사극같은데서 볼법한 마치 학동들 종아리 치는 훈장어른 같은 모습으로 수십대도 넘게 그야말로 피멍이 들게 가인을 때렸다. 그리고 가인이 엉엉울면서 ‘잘못했다’고 다음부터는 광일이 제대로 가르치겠노라고 어린이 노래 부르게 하겠노라고 신신당부를 받은뒤에 할머니는 돌아갔고 가인은 일어나서 걷기조차 힘든 상태가 되어 방바닥에 없드려 한바탕 구슬피 울었다.
“ 거기...OOO호에 사는 아기 엄마 아니어라 ? ”
사실 집안에서도 마음놓고 울수도 없는 처지라 가인은 그렇게 시어머니로부터 종아리를 맞고 나면 우진아파트 단지내 어느 빈구석을 찾아 혼자 구슬피 울고는 했다. 사실 생각해보니 너무하지 않은가. 며느리 종아리를 때리는 시어머니 ? 그 자체가 이 시대에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웬만해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것도 마치 아이가 어린이 동요를 부르지 않고 6.25때 노래를 자꾸 부르는 것이 자기 책임이기라도 한양 그렇게 매섭게 회초리를 치신 시어머니. 게다가 가인으로선 이런 자신의 처지를 어디 붙잡고 하소연할때도 마땅치도 않아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낮에는 그래도 집에 아이들만 있으니 상관없지만 퇴근한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이 부분에 대해 답하기도 난감하다. ‘어머니가 대체 무슨일로 당신을 때리셨냐 ?’ 이렇게 물어볼 때 대답하기도 난감하거니와 원래 전남 진도에서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던 가인으로선 그래서 친척도 많지 않았고 또 숫기도 그리 많지 않은 성격이라 학창시절 친구도 그리 많지 않았다. - 그저 초등학교 또는 고등학교 시절에 종종 어울리던 2-3명 정도의 친구가 있을뿐이다. - 게다가 단 몇 명이라도 그런 먼 친척이나 친구가 있다할지라도 그 먼 진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일부러 가인을 만나줄만한 사정이 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 아닌가. 아직 그렇게 서울에서 진도까지 오가기가 그리 쉽지 않은 시절이기도 하고, 따라서 가인도 실은 막상 그렇게 경환과 결혼하고 나서는 친정인 진도에 내려가본일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근본적으로 진도까지 가기가 아직 당일치기로 쉽지 않고 2-3일 정도는 날을 잡아야 가능한일이라 명절때라고 해도 쉽지 않았고 게다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거기까지 내려가기도 쉽지않아 다만 연휴때 같을때를 이용 가인 혼자서 혹은 남편 경환과 둘만 진도에 이따금 가인은 친정어머니에게 경환은 장모님에게 인사드리러 간 것이 전부다. - 다만 중간에 한번은 가인이 교통비를 대줘서 친정어머니가 어렵사리 서울까지 와서 한 일주일여 머물다 가신적은 있다. 그때가 광희가 세 살 광일은 아직 돌도 지나기 전인데 광희와 광일로선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할머니’를 만나뵌것이고 가인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낳은 외손주들을 그제서야 처음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가인 어머니의 건강상태도 이때는 많이 안 좋아지고 있어서 얼마를 더 살지 이미 기약이 없기도 했다. - 나이 40을 넘겨서 딸을 낳은 가인 어머니다.
여하튼 그래서 시어머니한테 종아리를 맞은 것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심한 구타나 모욕을 당했다 하더라도 어디 하소연할 친정식구고 친구고 마땅치가 않아 그저 이 무렵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신길동 우진아파트 한 구석에서 혼자 서럽고 슬피 울뿐이었다. 헌데 그게 이미 어쩌다 한두번도 아니고 몇차례 반복되자 그 모습을 목격한이가 있었다. 가인에게도 낯선이는 아닌데 이따금 인근 슈퍼에 장을 보러 가거나 그 외 일로 외출을 할 때 이따금 마주친 일이 있는 동네 아주머니였다.
그러고보니 그 아주머니도 자신처럼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여자였다. 물론 전라도도 넓다면 넓은 지역이라 같은 호남출신이라도 가인처럼 진도가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여하튼 고향 누구라도 일단 만나면 반갑다는 속설처럼 일단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그 아주머니는 가인을 알아보고는 반갑고도 좀 놀라운 듯 다가왔다. 허나 가인은 이미 일전에 그 아주머니가 물어볼 때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 혹시 그쪽도 전라도여라 ? 봉께 그쪽도 그 지방 사투리를 쓰는 것 같더만... ”
“ 아...아니여라. 지는 전라도 출신 아니구만이라...뭘 잘못 아신 것 같구만이라...
”
누가봐도 대번에 전라도 사투리임을 인지할 수 있는 그렇게 짙은 사투리를 쓰면서도 되려 그 지역 출신이 아니라고 완강히 부인하는 가인.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로부터 종아리나 맞는 그런 며느리의 처지로서 동향인을 만나서 반가와하긴 영 민망하고 무안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지역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이런저런 가인의 출생내력으로 인한 자격지심 때문일까. 그러고보면 가인에게 말을 걸어온 아주머니는 가인이 사는 OOO동 OOO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사는데 나이도 가인과 대충 엇비슷해 보였고 심지어 자녀도 가인과 비슷하게 1녀1남 두 남매를 키우는 듯 했다. 우진아파트에서 일반인들의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곳에 쇼핑센터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우진아파트 젊은 주부들이 단골로 이용하든 슈펴이기도 했다. 가인이 보통 광희와 광일을 데리고 장을 보러 오면 그 호남출신 여인도 애 둘을 데리고 장을 보러 나오곤 했는데 보니까 딸이 광희와 비슷한 나이, 아들은 오히려 광일보다도 어린 느낌이었다. 여하튼 무슨 평행이론마냥 똑같은 호남출신의 젊은 주부가 아직 미취학 아동 연령대인 1녀1남 두 남매를 키우는 상황. 이런저런 동질감과 반가움에라도 그 호남출신 젊은 주부는 이렇게 말을 걸어왔지만 가인은 그럴때마다 완강히 손을 내저으며 부인한 것이다.
“ 사람 잘못보셨어라. 뭘 잘못 아셨구만이라...지는 절대 전남 진도출신이 아니지여
라... ”
시간이 좀 더 흘러 광희는 어느덧 국민 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되었고 광일은 아직 유치원 들어가기 전. 어느 토요일 오후엔가 광희가 광일을 불렀다. 토요일이지만 아버지는 회사일이 바빠 늦게 귀가하시게 되어있고 어머니도 다른 일이 좀 있어서 외출을 하신 어느날. 그렇게 광희,광일 두 남매만 집에 있는 어느날 누나가 동생을 부른 것이다. 광일은 혼자 방에서 장난감이라도 만지며 노닥거리고 있는데 그런 광일을 부른 광희. TV를 시청중이었다.
“ 광일아, 지금부터 누나가 하는거 잘 따라해봐. ”
마침 TV에선 어린이용 쇼 버라이어티 프로가 방영중이었다. 그러고보면 요즘은 이런류의 TV프로를 잘 하지 않는데 이 시절에는 그런 프로를 방영하곤 했었다. 보통은 남성 1인,여성 1인 이렇게 2인 사회자가 진행하며(* 여성 진행자는 대개 합창단이나 아역배우 출신이었다) 보통은 성인 가수들이 나와 어린이 동요나 만화영화 주제가 같은 것을 들려주거나 또는 역사속 일화나 이런저런 동화 같은데 나오는 이야기들을 아역배우와 방송국 합창단들이 함께 나와 단막꽁트 같은 형식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또 어린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역사나 지리,과학,세계정보 같은 것을 전문가 선생님이 나와서 인터뷰나 대담 혹은 다큐 같은 형식으로 진행하기도 하는. 한마디로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오락과 거기에 알아두면 좋은 교양,지식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글자그대로 ‘어린이 종합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었다. 대표적으로 KBS에서 하던 ‘모이자 노래하자’란 프로가 있었고 시간이 지난뒤 전두환의 ‘언론 통폐합’ 정책으로 사라지게 되는 민간 상업방송 TBC에서 하던 ‘호돌이와 토순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 착한마음 고운마음 여기있어요~~~ 둥실둥실 떠오르는 풍선과 같이~~~
파란꿈 하얀꿈 이어나가는~~~ 호돌이와 토순이나라 친구들 모여~~~ ”
광희가 TV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나와서 율동을 섞어서 보여주는 해당 프로그램의 주제가를 율동을 따라하며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동생인 광일에게도 따라하라고 하는 것이다.
“ 자아...광일아. 따라해봐. 착한마음 고운마음 여기있어요~~~ 둥실둥실 떠오르는
풍선과 같이~~~ ”
TV 프로에선 이미 해당 주제가 순서는 끝나고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진행중이긴 했으나 광희는 동생에게 본격적으로 그 노래 주제가를 가르쳐 주려는 듯 광일보고 계속 따라하라고 하는 것이다. 허나 광일은 누나의 노래와 율동동작을 따라하지 않은채 뭔가 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제 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뭐해 광일아. 어서 따라해 보라니까. 착한마음 고운마음 여기있어요~~~!!! ”
“ 싫어 !!! 나 안해 !!! ”
노래 자체가 별로인걸까. 아니면 이런 어린이 프로그램 주제가(동요)를 따라하는게 싫은것일까. 거듭 따라해보라고 재촉하는 누나 앞에서 대놓고 거부반응을 보이는 동생 광일. 그러자 누나가 동생을 달래듯 말한다.
“ 자아...그러지말고 따라해봐 어서. 아주 재미있는거야. 착한마음 고운마음 여기있
어요~~~ ”
“ 싫어 !!! 재미없어 !!! 안해 !!! ”
그리고 토라지듯 주저앉으며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광일. 이후에도 광희가 몇 번 해당 프로가 방송되는날에 동생을 불러 TV 앞에 앉혀놓고 해당 프로그램 주제가와 율동을 가르쳐주려 했으나 동생은 여전히 거부반응으로 나왔다. 결국 광희가 안되겠다 싶어 작심하고 말했다.
“ 최광일. 너 정말 왜 그러냐 애가 !!! ”
“ 싫다니까 !!! 나 안해 !!! ”
“ 너 정말 누나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는거야 ? 누나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
르는거냐구 !!! ”
여하튼 어느덧 초등학교 1학년인 광희. 사리판단이라는게 조금씩은 생길법한 나이고 집안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아주 눈치못챌 그런 나이도 이젠 아니라고 봐야할듯하다. 게다가 대체로 보면 동생이 있는 장남이나 장녀들은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자신이 동생들을 돌봐야한다는 책임감이 어릴때부터 자연스레 생기는것인지 동갑내기 아이들과 비교해봐도 다소 성숙해 보이는 느낌이 어릴때부터 들기도 한다. 여하튼 그런 광희가 동생에게 도저히 안되겠다는 듯 이러는 것이다.
“ 너 때문에 자꾸 엄마가 할머니한테 혼나는거잖아. 그래서 누나가 이러는거 몰라
서 그러는거야 !!! ”
이미 할머니가 어머니를 수도없이 회초리를 치셨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혼자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을 나가서 아파트 단지한 사람들 눈에 잘 안뜨이는 구석으로 가서 한참을 슬피울다 들어오시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을리 없는 광희. 그래서인지 바로 자신이라도 나서서 동생 버릇이라도 고쳐줘야겠다고 작심한 듯 날잡고 이러는 것이다. 허나 그런 누나의 의도를 이제 조금 눈치를 챈 것인가. 광일이 반항하듯 외쳤다.
“ 싫어 !!! 난 저런노래 유치해서 안 불러 !!! ”
이제 겨우 ‘만 5세’ 정도인 아이가 ‘유치하다’는 단어를 알고 있을까 ? 그런 단어를 안다는것도 좀 뜻밖이고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겠지만 바로 그런 어린아이가 ‘동요’나 TV 어린이 프로그램 주제가를 ‘유치하다’고 하면 이건 또 어떤 모양새가 되는가. 어른들뿐만 아니라 불과 두 살위인 1학년 누나 광희가 봐도 참 어처구니 없는일. 그래서 결국 광희가 다시금 동생을 다그쳤다.
“ 유치하긴 뭐가 유치하다는거야. 어린이가 어린이 노래를 불러야지...니가 맨날 그
런 이상한 노래나 부르고 어른들 노래 부르니까...할머니가 맨날 엄마한테 종아리
치시며 꾸중하시는거잖아 !!! 어린이한테 어린이 노래 안 가르치고 이상한 어른노
래 가르쳐줬다고 엄마가 할머니한테 야단맞는단말야. 그래서 내가 이러는거 정말
몰라 ? ”
어찌되었거나 가인이 광일을 품안에 안고 갓난아기때 자장가 대신 들려줬던 노래는 대개 6.25나 실향민,이산의 아픔을 담은 그런 노래다. 그래서 애기때부터 익숙해진 노래를 광일은 뜻도 모르는채 무작정 따라부른 반면 광희는 그 노래를 ‘어른들이 부르는 이상한 노래’로 인식한것일까 ? 하긴 동생이 그런 노래를 부를때마다 할머니가 매번 어머니를 그렇게 회초리까지 치시며 매섭게 꾸중하셨으니 광희 입장에서 ‘동생이 이상한 어른노래 부르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수 있는일이지 무리가 가는 상황은 분명 아니다. 그래서 거듭 동생의 버릇을 제대로 고쳐주겠다며 어린이 노래를 제대로 가르쳐주겠다며 TV 어린이용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호돌이와 토순이’ 주제가를 율동과 함께 손수 가르쳐주려 한것인데, 이후에도 몇 번이나 광희가 광일을 해당프로가 방송될 때 TV앞에 불러세워 그 노래를 가르쳐주려 했으나 광일은 그럴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 싫어 !!! 난 저런 유치한 노래 안 부른다니까 !!! 난 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를거야
!!! ”
그리고는 뭔가 서럽고 억울한게 있기라도 한 듯 엉엉 울기까지 하는 동생. 광희는 광희 나름대로 골치가 아프기라도 한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기까지 했다. 동생 가르치는게 힘이들어 ‘절망스러운 감정’이 드는 초등학교 1학년 누나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 정직한 어린이들은 어른들 부르는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흉내내지 않습니다. ”
이 시절에 실제 어린이날이나 방송의날 특집프로 같은데 아동문학가나 동요 작곡,작사를 하는 선생님들이 나오시면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어쨌든 아이들이 어른들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은 금기시되었던 시대. 금기시되었다기 보단 그렇게 아이들은 동요나 어린이 노래를 부르면서 순수한 동심을 계속 간직해 나가길 바라는 어른들의 바램으로 봐도 될듯하다. 광희가 하루는 날잡고 광일에게 그런 특집프로를 하는날 일부러 동생을 불러 해당 방송내용을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어린이는 어린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의식을 주입시키려고까지 했지만 동생의 버릇과 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이 무렵은 아니고 한 1년이나 2년쯤 지난 어느날. 그러고보면 광일도 어느덧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이가 되었을 무렵인데 이때 한 어린이날 특집프로엔 어린이프로를 제작하는 제작진들이 패널로 나온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순서가 되기도 했는데 한 어린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 OOO 연출자 선생님. 제가 알고 있기로는 요즘 어린이 시간대에 방영되는 만화
영화 대다수가 우리나라에서 만든게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해온 만화인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건 왜 그런건가요 ? ”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아이들중 눈치빠른 아이들은 이미 이 시기(70-80년대)에 어린이 시간대에 방영되는 만화영화 대다수가 일본만화임을 눈치채기 시작할때다. 방송사 제작진이야 제법 능청스럽게 해당 만화들이 국산 만화이기라도 한양 방영하기도 했지만 – 가령 작품속 일본지도가 나오는 장면을 슬쩍 한국 지도로 바꾸던가 일본식 이름이나 지명을 한국식으로 바꾸던가 심지어 일본풍의 주제가 가사까지 좀 더 한국 친화적인 내용으로 의역(?)을 한다던가 – 실제 이 시절 아이들이 보는 소년잡지나 어린이만화에도 ‘국내 어린이 시간대 만화 대다수가 외국만화’라는 식으로 – 대놓고 ‘일본만화’라는건 차마 밝히지 못해도 –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으니, 평상시 그런 기사 유심히 보는 어린이였다면 눈치를 못챌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분위기속에서 나왔을법한 질문. 다만 미리 준비된 ‘어린이날 특집프로’에서의 질의,응답 시간이라서인지 대담 상대로 나온 방송국 PD는 침착하고도 태연하게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 그게 실은...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같은 선진국보다 텔레비전을 만든 역사가
짧기 때문에 그래요. 선생님도 여기 OOO어린이만한 자녀가 있는 어른이기도 하지
만 선생님이 처음 방송국 일을 시작할때만 해도 아직 우리나라에 ‘어린이 프로’라
는 개념을 가진 선생님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었어요. 그래서 어쩔수없이 외국에
서 제작,방영하는 만화영화를 들입다 수입해서 어린이 여러분이 보는 어린이 시간
대에 방영할 수밖에 없었던거에요. 하지만 여기 있는 어린이 여러분들이 커서 이
다음에 선생님만한 나이가 되어 방송국 프로그램을 제작할때가 되면 그때는 여러분
이 직접 만든 국산 어린이 프로그램, 국산 어린이 만화영화를 많이 만들어주기 바
래요. 아셨죠 ? ”
- 6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