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팬픽 - 우주소녀 설아 (4)

whaedra.egloos.com/5408547


                             부제 : 청  실  홍  실  

 


 “ 아들 열명 안 낳아주면 쫒아낼게야 !!! ” 

 마침내 가인을 경환이 정식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시키러 데려온날 전노파가 엄포라도 놓듯 그렇게 말했다. 사실 처음 가인이 인사드리러 오던날 그렇게 문전박대를 해서 내쫒았던 전노파임을 생각해보면, 두 번다시 그런 여자를 보지 않을것만 같은 기세이기까지 했는데, 뜻하지 않은 반전이 있었다. 

 실은 명숙이 그날 자기가 졸업한 대학 이화여대 내부의 한 방을 빌려 그런 프로포즈 이벤트를 벌이려했다가 경환이 끝내 나타나지 않아 무산되어버린뒤 한바탕 발악을 하다시피 하던 명숙을 그녀의 친구가 집으로 연락을 취해 동생들이 급히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가긴 했지만 그것으로 마무리된 일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명숙은 한동안 대체 누굴 지칭해서 하는 말인지 ‘전부 죽여버리겠다’느니 ‘불에 태워버리겠다’느니 하는 소리를 발악하듯 외쳐댔고 심지어 식칼을 들고 집밖으로 뛰쳐나가거나 심지어 철길로 뛰어드는 일까지 있었다. 이때 안명숙의 가족들은 신촌 인근의 한 주택가에 살고 있었는데 인근 지역에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은 폐철로가 하나 있어서 그곳으로 뛰어들려고 한 것을 가족들이 가까스로 만류하였다. 다행히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은 폐철로이길래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이 날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 아닌가. 보다못한 가족들이 급기야 명숙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전노파는 이 일을 나중에 애초 경환과 명숙의 두 집안을 연결시켜 주려했던 매파로부터 전해들었다. 매파는 이때 경환과 명숙이 그때까지는 순조롭게 만나고 있는것으로만 알고 명숙의 가족으로부터 들은 그녀의 정신병원 입원사실을 전하며 사뭇 걱정된다는 듯 ‘(앞으로 혼사 문제를) 어찌 처리하실 생각이시냐 ?’고 물은것인데 그제서야 뒤늦게 전노파가 안명숙의 정신병원 입원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원래 비록 이화여대를 나온 간호사라곤 하지만 8남매중 맏이에 심지어 아버지가 비리혐의로 구속되어 사망하여 집안이 몰락한뒤로 사실상의 가장역할을 해온 여자라는 점 때문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전노파가 아니던가. 헌데 그런 무렵에 되려 데려온 경환의 사귄다는 여자가 지방출신의 키크고 뚱뚱한 무식한 여자라서 ‘더 볼 것 없다’는 식으로 야멸차게 내쫒고 명숙과 선을 보는 일을 그대로 추진하려 헀던것인데 이제 그 명숙이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니 전노파로선 다시 다른 선택을 생각하는수밖에 없었다. 사실 정히 이렇다면 안명숙을 단념하고 다른 혼처를 알아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경환이 아직 그 가인이란 여자아이를 계속 만나는 눈치였음을 생각한다면 만약 경환이 다시금 ‘가인 아니면 결혼 안한다’는 식으로 나올시 전노파도 막내아들의 고집을 꺾을 자신은 없었던 듯 하다. 결국 하는수없이 가인을 받아들이기로 한 전노파. (1) 안명숙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니 더 거론할 가치도 없고 (2) 가인은 아무래도 지방출신의 뚱뚱하고 무식한 여자라는 점이 마음에 안들고 (3) 이제와서 새로 선자리를 알아보자니 그것도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고. 선택지가 셋이지만 그 셋이 모두 그리 쉬운 선택지가 아니길래 전노파도 한동안 근심과 시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 아이구 부처님...보살님...무당님...아무래도 좋으니 저 하늘에 누가 계시기라도 하 

  면 제발...이 늙은이 고민이나 좀 해결해주시오. 대체 어찌하면 좋으리까... ” 

 원래 전노파도 기독교든 불교든 그런 종교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있는 여인은 아니었지만 대개 이 세대의 노인들이 그렇듯 때론 불가에 연이 닿으면 통크게 시주를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디 용하다는 점장이나 무당이 있으면 사주,관상 따위를 보기위해 찾아가기도 하는 그런 ‘보통 노인’이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그야말로 부처든 귀신,도깨비든 누군가라도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식으로 빌기까지 했다. 그리고 고민고민 끝에 결국은 흡족하지 못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게 무난하겠다’는 식으로 다시 가인이를 데려와보라는 식으로 결국 허락을 한 것이다. 

 “ 아들 열명 안 낳아주면 쫒아낼게야 !!! ” 

 그것이 마지못해 허락은 하지만 아직까지 마땅치 않은 며느리감 가인을 혼사를 허락하는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전노파다운 압박이라고나 할까. 하긴 비록 최웅돈 선생의 대에서 밑으로 아들 넷을 낳아 이쯤되면 ‘손귀한 집안’이란 부담은 많이 던 셈이긴 하지만 여하튼 최웅돈 선생의 윗대인 부친과 조부가 2대째 무녀독남 외동아들인 독자였고 최웅돈 선생의 대에선 밑으로 열 살터울지는 남동생이 하나 더 있다고는 하지만 (* 물론 그쪽에도 슬하에 자녀가 몇 명 더 있기는 하다.) 전체적으로 봐서 손귀한 집안의 구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그런지 전노파가 그렇게 가인을 압박해온 것이다. 그러고보면 전노파야말로 ‘대를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과 잔소리를 윗대인 시어머니,시할머니로부터 얼마나 들었을것이며 덕분인지 때문인지 여하튼 전노파는 아들 넷을 낳아서 최소한 ‘대가 끊길뻔한’ 손귀한 집안의 자손을 그나마 다소 창성케 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셈이다. 그러니 그 아들 넷 낳은 가문의 일등공신인 전노파. 그녀가 막내며느리로 들어올 예정인 여자에게 ‘아들 열명 안 낳아주면 쫒아낼게야’ 하는식으로 엄포를 놓았으니 그런말을 예비 시어머니로부터 듣는 그녀의 압박감과 부담감은 또 어떠하였으랴. 긴장한 표정 가운데서도 애써 밝은 기색을 읽지 않으려 하며 ‘야, 그리 하겠지라’ 하고 가인은 대답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사가 치러지긴 했다. 다만 이때 장남 영환과 차남 정환은 모두 수년전에 결혼 영환은 딸 둘, 정환은 아들 둘을 낳은 상태고 경환과 두 살 터울인 셋째형 정환이 선을보고 만나는 여자가 있었으나 아직 혼인식을 치르지 못해 먼저 정환이 식을 올리고 그 석달뒤에 경환이 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것이 1969년 여름을 지나 가을 무렵의 일이다. 

 결혼식장 하객은 대개 신랑쪽 하객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화공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경환의 학창시철 친구나 선후배 현 직장동료들도 많지만 근본적으로 부친 최웅돈 선생이 잡화점을 하고있는 지금이나 그 이전 화장품공장 시절이나 이런저런 주변 인맥이 많았던 관계로 그런 인연으로 알고있는 최선생네 막내아들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와주시는 손님들이 많았다. 또 경환의 세 분 형님 영환,정환,성환등도 여하튼 각자 그런대로 번듯한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이들이라 그 인연으로 아는 주변 친구,동료,지인등. 여하튼 결혼식장의 하객 대다수는 신랑 최경환쪽의 하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가인의 경우엔 워낙에 전남 진도에서 서울까지가 올라오기 부담스러운 먼 거리인 탓도 있지만 그 가인조차 어머니가 나이 40 넘겨서 낳은 늣둥이 외동딸(* 다른 형제가 없음)인데다가 아버지도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상태라서 친척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인에게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래봤자 그나마 가인 어머니에게 사촌이나 오촌뻘 되는 친척 아저씨나 친척동생,조카들 정도뿐인데 그런 친척 몇몇뿐. 그리고 가인이 그나마 국민 학교(* 지금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몇. 그리고 특별히 가인이 고등학교 2학년 – 바로 가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하던 해의 – 담임선생님에게까지 초청장을 보내 그 선생님까지 특별히 옛 제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와 주어 대략 그렇게 진도에서 올라온 손님 십여명 정도가 신부측 하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게다가 그나마 먼거리를 와야하는 손님들이며 사돈측 하객이기에 그 여비까지 일정부분 신랑쪽에서 부담을 해 주었다.  

 ‘ 하다하다 이젠...신부쪽 하객들 여비까지 대줘야 하는 그런 혼사를 다 치러야 하 

  는구려... ’ 

 전노파 입장에선 그런 푸념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막내아들 결혼식이기까지 했고, 게다가 근본적으로 가인 입장에서 초청장을 진도로까지 직접 가서 전해주는수밖에 없어서 – 고등학교 2학년때 가출을 해 서울로 올라가더니 한동안 소식이 없던 동네친구, 혹은 먼 친척조카가 어느날 갑자기 청첩장 한 장만 달랑 보내온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런 완고한 시대에) 이래저래 민망한 일인 것이 분명하다. 직접 청첩장을 그래도 여유분까지 포함 한 스무장 가까이 들고서 다시 어머니를 찾아왔다. 

 “ 가인아... ” 

 친척어른이든 친척오빠나 동생이든 그런이들 몇몇, 그리고 자신의 학교동창 몇몇에게 직접 자신의 청첩장을 전해주고자 내려왔다는 딸을 보며 오히려 어머니는 불안하고 더욱 의심이 가서 이렇게까지 나왔다. 

 “ 가인아,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너 어디가서 무슨일을 하든 이 엄니는...그저 너 

  몸 건강히 잘 있기만 하면 되는것이랑께. ” 

 아무래도 딸아이가 서울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 지 에미를 안심시키려고 이런일을 벌이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서인지 어머니는 이렇게 나왔고 결국 가인이 하도 어이가 없어 발끈했다. 

 “ 엄니,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겨 ? 딸을 도대체 어떻게 보고 자꾸 그런소릴 

  하냔말씨...그게 아니라...그때 데려온 그 아저씨...나가 다니는 한OO약에 함께 다 

  니는 아저씨랑...이제 정식으로 시부모님 되실분들 허락도 받고 그래서 이렇게 정 

  식으로 청첩장까지 들고 인사드리러 찾아온것이란말씨... ” 

 이럴줄 알았으면 아예 경환까지 직접 데리고 내려올걸 하는 후회까지 드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가인이야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둘 사람이지만(* 어쨌든 이 시대엔 이게 보편적인 인식이었고 게다가 가인은 어차피 지금으로 치면 ‘비정규직 알바’에 불과한 고졸 사환일뿐이다.) 경환은 이런일로 자꾸 회사를 쉬는 것은 부담스럽게 여겨져서인지 결국 자신은 안 내려가고 가인혼자 이틀 휴가를 내어 청첩장을 직접 전해주려고 고향을 찾은 것이다. 여하튼 경환도 안보이는 상황에서 가인 혼자 청첩장을 전해주네 어쩌네 설치는 모습을 어머니는 처음엔 여전히 믿겨지지 않아서 이렇게 말한것이고 결국은 가인이 전화통화로나마 경환의 집에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경환 부모님과 짧게 인사를 시키기까지 해서 그제서야 어머니가 조금이나마 딸의 말을 믿는 쪽으로 기울고 있기는 했다. (* 물론 이 시대에 아직 이런 시골의 일반인들이 전화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잘 없으니, 가인은 동네 이장님댁까지 직접 찾아가 임시로 전화를 빌리기까지 하는 한바탕 소동까지 벌어졌다.) 

 


 결혼식을 올리기전에 양가 상견례는 가져야하기 때문에 그때 가인의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왔다. 사실 그때까지도 가인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던 상태였는데 그렇게 서울까지 올라와 정식으로 경환의 부모님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나서야 가인 어머니는 딸의 결혼이 실감이 나는 듯 했다. 

 “ 지는 참말로 배운 것이 없는 여자인지라...그저 젊은시절 남편잃고 혼자된 몸으 

  로 저런 딸아이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지금껏 살아왔는지라... ” 

 “ 예, 이해합니다. 그 시절에는 다 그리 살 수밖에 없었죠. ” 

 어쨌든 일제와 6.25등의 그 힘든시기를 다 같이 살아온 비슷한 연배의 여인들이라서일까. 적어도 그런 부분은 피차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전노파도 가인 어머니의 처지를 그런대로 이해하며 더 자세한 것을 물으려 하진 않았다. 다만 그저 ‘객지 나와서 그래도 지금까지 고생한 아인데...저희가 며느리로 거두어 잘 데리고 살겠습니다’ 라는 인사의 말만 입에 담을뿐. 한편 가인 어머니로선 생전 처음이기도 한 서울길은 보호자 차원에서 가인 어머니의 사촌뻘 되는이의 자녀들 즉 조카 두명이 함께 서울까지 동행해주었다. 가인이 혹시 어머니가 길을 잃을까 걱정되어 손수 서울역까지 나와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조카 두명도 서울길이 처음이긴 마찬가지인지라 만나기까지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식. 그렇게 멀리 진도에서 올라온 가인의 먼 친척이라던가 학교동창 그리고 가인의 고2때 담임선생님까지. 그렇게 10여명 정도의 진도에서 올라온 신부쪽 하객. 그렇게까지 포함해서 예식장이 꽉 채워진 모습으로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전노파 입장에서도 이제 막내아들의 혼사까지 다 치르는 셈이라 이제 부모로서의 할 도리를 할만큼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두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기왕 서울까지 올라오신 것 저희가 좋은데도 구경시켜 드릴테니 한 며칠 더 머물다 가시라’는 경환 부모님의 인사도 있었지만 가인 어머니도 여하튼 된장파는 장사하느라 바쁜 몸이라 일터를 오래 비워둘수는 없어 딸의 결혼식까지 보고 다른 진도 하객들과 함께 그날 밤차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경환과 가인은 애초 경환이 약조했던대로 대략 3박4일 정도의 일정으로 강원도 강릉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 아들 열명 낳아달랬더니 딸이여 ? ” 

 경환과 가인이 결혼식을 올린게 69년 가을의 일이고 이듬해에 가인이 임신을 해 그 다음해 봄인 71년에 딸을 낳았다. ‘손귀한 집안’이라며 ‘아들 열명 낳아주지 않으면 쫒아내겠다’ 그리 엄포까지 놓았는데, 첫 아이가 딸이라 전노파는 실망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남편인 최웅돈 선생이 그런 전노파를 달래야할 지경이었다. 

 “ 허허...그만하면 되었지...그대는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은가. ” 

 최웅돈 선생의 아내를 부르는 평상시 호칭은 ‘여보’,‘임자’가 보통이었고 가끔 ‘그대’라고 하는적도 있었다. 이 시대 이 정도 나이의 노인들중에 부인을 ‘그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일반적이거나 흔히 볼 수 있는 호칭이었는지까진 모르겠는데 여하튼 최웅돈 선생의 경우엔 아내를 ‘그대’라 부르는 경우가 이따금 있었고, 막내아들 경환내외가 첫애가 딸이란것에 전노파는 그렇게 끝내 서운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는거였다. 최웅돈이 그런 아내를 달래듯 또는 나무라듯 한마디 했다. 

 “ 정환이네가 여하튼 아들이 둘이고...그러면 되었지...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거야 

  ? ” 

 “ 하지만 첫째네도 아들은 없는거잖아요. ” 

 여하튼 60년대 초반에 결혼한 첫째 영환이 슬하에 딸이 둘, 그리고 그보다 좀 늦게 혼인식을 치른 둘째 정환은 아들이 둘. 다만 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사실 전노파는 첫째 영환 내외가 딸을 낳았을때는 그렇게까지 싫거나 실망한 기색을 내비친적은 없었다. 대신 둘째 정환내외가 아들 둘을 낳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듯 하기도 했고, 헌데 막내 경환내외가 첫애로 딸을 낳자 그 손녀를 안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듯 외면하고 있었다. 

 “ 허 참...당신...거...혜림이,유림이 낳았을때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말야... ” 

 확실히 전노파는 첫째 영환이 낳은 두 손녀딸 혜림과 유림은 그래도 자신으로서도 처음 보는 손녀딸들이라서인지 극진히 예뻐하고 아껴주시는 그런 할머니였다. 허나 가인이 낳은 딸에 대해서만은 유독 싫은 기색을 보이는 전노파. 애초부터 못마땅하게 여긴 며느리감이 첫 아이로 하필 딸을 낳아 더더욱 그런것인지. 전노파의 깊은 속내까지야 어찌 다 파악할수 있겠냐만 하필 첫애가 딸이어서 할머니의 막내 며느리에 대한 눈총은 그래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첫째 이름은 광희라고 지었다. 원래 이 집안 영환-정환-성환-경환 4형제 다음대(代)의 돌림자가 ‘빛 광(光)’자였고 거기에 딸아이니 이름을 그와같이 지은 것이다. 그리고 광희가 태어난지 2년만에 둘째를 낳았는데 그것이 아들이었다. 이쯤되면 가인 입장에서 그런대로 시어머니 눈총을 받을 부담은 줄어든 셈이다. 그렇게 둘째로 본 아들 이름을 ‘광일(光日)’이라고 지었다. 

 “ 아따 뭔 아그가 이리 울어싼다냐... ” 

 아직 갓난아기이니 젖줄 때 되면 먹고 졸리면 자고 그것외에 할게 더 무엇이 있겠냐만 유난히 어릴때부터 울어제끼는 광일로 인해 가인은 힘들어지고 있었다. 헌데 그러고보면 첫째 광희의 경우엔 이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래서 한층 더 이해할수 없다는 듯 가인은 우는 아가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 니 누나는...계집아이기도 하지만...그래도 갓난아기때 참 안울고 순둥이었는데... 

  니는 어쩌자고 이리 울어쌌느냐 말이다...좀 진정좀 해 보거라. ” 

 원래 사내아이는 계집아이에 비해 어릴 때 이렇게 잘 우는것인지. 주변에 자문을 구할만한 친구나 친지도 많지 않은 가인으로선 이런 편견까지 생길 수밖에 없을터. 어느덧 세 살(만 2세)이 되어있는 광희가 그런 제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돕겠다고 나섰다. 

 “ 엄마...내가 해볼게... ” 

 “ 니가 뭣을 한다고 그랴 ? 괜히 정신 사납게 말고 너는 저그 가서 장난감이나 갖 

  고 놀아라. 알겄제 ? ” 

 하긴 이제 겨우 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무슨 재주로 아이를 돌볼수 있을까. 그야말로 가인의 눈에는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채 내뱉는 헛소리로밖에 여겨지지 않을터. 헌데 신기한 일이 없지는 않았다. 제 엄마 품에선 그렇게 울어대던 아기가 누나가 안아주면 신기하게도 뚝 그치는 것이다. 광희도 아직 두 살밖에 안 된 아기니 그런 아이가 무슨 서서 아이를 돌본다던가 안아본다던가 하는 것을 할 수는 없겠지만 대충 자리에 누워있거나 유모차에라도 태운 아이를 광희가 다가가 한번 안아주면 광일은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쳤다.  

 “ 아따 신기하구만이라...어째 좀전까지 울어쌌던 아이가 어찌 이리 뚝 그칠수 있을 

  까잉... ” 

 “ 엄마...광일이 안 울어...광일이 내가 안아주면 안 울어. ” 

 확실히 광희도 두 살 터울 동생이 자기가 안아주면 안운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지 제법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고 가인도 어린 딸이 기특하다는 듯 한번 쓰다듬어주기까지 하며 이렇게 말했다. 

 “ 고것참...신기한 아그구만이라...어찌 이런 아그기 신기하게 아그를 잘도 돌볼까잉 

  ...이 다음에 이 에미가 힘들면...그때도 니가 동생좀 대신 돌봐주그라 잉... ” 

 제 엄마의 말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하는것인지. 여하튼 광희는 자신이 우는 동생을 달래고 재울 재주가 있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한 듯 뿌듯하게 혀를 한번 낼름 내밀고 있었고 가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렇게 두살 터울지는 광희와 광일 남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1969년 가을에 결혼한 경환과 가인 내외는 결혼후 한 3-4년정도는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고 그러다 신길동에 새로 생긴 우진아파트란 30평짜리 아파트로 분가를 해 나가 살았다. 이는 경환보다 석달 앞서 결혼한 셋째 정환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처음 한동안은 그렇게 최웅돈 선생과 전노파 내외 그리고 결혼한 셋째와 넷째 내외까지가 한집에 살다가 먼저 경환내외가 분가해 나갔고 정환 내외는 경환내외 보다는 조금 늦게 내집을 마련 역시 분가해 나갔다. 한편 결혼은 정환내외가 경환내외보다 석달 앞서 했지만 자녀를 본 시기는 다소 늦어 정환은 첫째 아들을 경환의 딸 광희보다 1년 늦은 72년에 낳았고 그보다 두 살 터울로 74년에 딸 하나를 더 낳아 1남1녀를 두게 되었다. 여하튼 그렇게 정환과 경환까지 각자 분가해 따로나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고 무엇보다 어느덧 경환은 가인과의 사이에 광희,광일 두 살터울 남매를 낳고 그럭저럭 평온하게 살고있는 무렵. 

 “ 미아리이 눈물고개애~~~ 임이떠난 이별고개애에에에~~~ 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 

  뜨고 헤매일때에~~~ 당신으은~~~ 철사줄로 두손꽁꽁 묶인채로~~~!!! ” 

 학창시절 가인에게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 두명이 있었다. 일종의 ‘삼총사’였던 셈인데 그런 세 친구가 함께 어울려 동네 뒷산이나 바닷가등으로 놀러다니고 할때면 가인은 종종 구성지게 ‘단장의 미아리고개’나 ‘녹슬은 기찻길’ 혹은 ‘한많은 대동강’ 같은 노래를 제법 구성지게 불렀다. 사실 가인은 1950년생이니 엄밀히 말해 6.25를 겪은 세대라고 할 수는 없는데 – 6.25 당해연도에 태어나 휴전협정때 겨우 서너살 어린아이였던 사람을 ‘6.25를 겪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게다가 전남 진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면 전쟁의 여파가 그리 크게 미치지도 않았을것이고. 헌데 무슨 이유인지 가인은 주로 그렇게 6.25 혹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담은 그런 노래를 대충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즐겨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가인이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었는지 못 부르는편이었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해낼 방법은 없다. 그러나 여하튼 가인이 원래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던 여자라는 것이 학창시절 가인과 함께 지냈다는 친우들이 이따금씩 하는 증언이기도 하다. 그렇게 친구들과 종종 어울려 놀러다니거나 하면 그런 6.25 관련 노래를 구성지고 구슬프게 불러 6.25를 직접 겪은 세대라고도 할 수 없는 1950년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공감과 공명심을 울려 함께 눈물적시기도 했다는 그런 가인의 노래실력. - 그렇다고 가인이 가수가 되겠다고 가출을 했던 것은 아니고 가출동기는 어디까지나 그 시절 무작정 상경처녀들이 대개 그럤듯이 ‘서울 올라가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여하튼 최소한 그런류의 노래 부르는 실력만은 빼어났다는 가인. 그래서일까. 결혼을해서 애를 낳고 키우면서도 종종 엉뚱하게 자장가로 그런 노래를 불렀다. 사실 첫째 광희만 해도 순둥이라 잘 울지 않아서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류의 자장가(?)를 부를일은 없었는데 너무 잘 우는 둘째 광일을 달래고 얼르고 하느라 그때부터 자장가삼아 종종 그런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 미아리 눈물고개애~~~!!! 임이떠난 이별고개애애애애~~~ 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 

  뜨고 헤매일때에~~~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꽁꽁 묶인채로~~~ ” 

 “ 휴전선 달빛아래~~~ 녹슬은 기찻길~~~ 어이해 핏빛인가 말좀하려마~~~ 전해다오 

  ~~~ 전해다오~~~ 고향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 

 어쨌든 가인은 무학력의 일자무식은 아니고 비록 중퇴했을지언정 고등학교까진 다녀본 여자인데, 그런 여자가 자장가로 주로 부르는 노래를 모를까. 설마 유치원을 안다녀 그때 자장가를 안 배우 모르는것이라 해석할수도 없는 일일테고. 여하튼 가인은 아이를 달래는 자장가로 그런 ‘한많은 대동강’이니 ‘녹슬은 기찻길’이니 하는 6.25 관련 노래를 선곡(?)하여 즐겨부르곤 했던 것이다. 

 헌데 진짜 신기한 것은 광일은 지 엄마가 그런 노래를 부르면 신기하게도 울음을 뚝 그쳤다는 것이다. 원래 갓 태어나고 한동안은 두 살 터울 누나가 안아주거나 재워주면(?) 울음을 그치던 아이. 그러다 시기가 좀 지난 어느 순간부터는 가인이 ‘한많은 대동강’이나 ‘녹슬은 기찻길’ 따위의 노래를 들려주면 신기하게도 울음을 그치고 새근새근 잠만 잘 들더라는 그게 광일의 한두살 때 만 세 살도 되기전 어린시절 모습이다. 사실 가인도 엄밀히 말해 6.25를 겪었다고 할 수 있는 세대가 아니지만(1950년생) 그런 6.25가 있은지도 20년이나 지난 1970년대에 태어났고 게다가 6.25고 남북분단이고 그런 것을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으며 배우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 아직 말도 잘 할줄 모르고 한글도 깨치기 전인데 – 그런 어린 아기가 저런류의 노래 뜻을 알기나 하려는지. 감정적으로 전달이나 되려는지. 참 알수도 없고 수수깨끼 같은 일이지만 여하튼 최경환과 가인 내외 사이에서 나온 최광일이란 70년대 초반 태생의 어린 아기. 그 아기에게만큼은 이상하게 ‘한많은 대동강’이나 ‘녹슬은 기찻길’ 따위가 아이를 쉬이 잠들게 만드는 광일이에게만 특화된 ‘신기한 자장가’가 되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 나다 에미야. ”  

 “ 어...어머니 오셨어라. ” 

 60년대 초반과 중반에 첫째와 둘째가 결혼하고 이어 69년에 셋째와 넷째도 석달 시간차를 두고 결혼시킨뒤 그 몇 년후 분가시켜 내보낸뒤 한 평균 한두달에 한번꼴로 전노파는 아들내외들 사는 모습이 궁금해서 돌아다녀보곤 했다. 그렇게 하루는 넷째 경환내외를 찾아온날. 긴장되면서도 정중한 태도로 가인은 시어머니를 맞았다. 

 "그래 그간 별일은 없었구 ? “ 

 ” 그야...어머니께서 이리저리 신경써주시고 각별히 염려해 주신탓에 별탈없이 잘 살 

  고 있지라. “ 

 ” 할머니 안녕하세요 !!! “ 

 어느덧 4-5세 정도로 성장한 첫째 광희가 할머니 전노파가 오자 제법 깎듯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고 원래 마땅치 않게 여겼던 넷째 며느리 가인이 낳은 첫딸 광희이건만 그래도 손녀가 인사올리는 모습은 귀엽고 기특한지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셨다. 그리고 광일에게도 가보았다. 

 ” 어이구 그녀석도 참 음전하게 잘 크는구나. “ 

 광희와 두 살 터울이니 아직 광일은 세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직 어린 아기인 상태. 그래도 지금은 걸음마도 하고 말도 짧은단어 한두마디 정도는 구사할줄 알 정도로 성장을 했을텐데, 여하튼 손주,손녀들 다달이 커가는 모습이 전노파에게도 신기하고 기특하게 여겨지는 듯 했다. 무엇보다 넷째 며느리 가인을 처음 들어올때는 그리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때의 감정은 그래도 많이 가신 상태인지, 여하튼 막내아들네 사는 모습에 그런대로 흐뭇해 하는 모습이다. 

 ” 나야, 오늘 별일 없었지. “ 

 ” 낮에 어머니 잠깐 다녀오신거 외엔 별일이야 없었지라. “ 

 경환이 회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한것도 아마 대충 이 무렵일텐데, 따라서 경환도 직장일로 점점 바빠지고 있었고 그래도 저녁때가 되어 퇴근하면 어느덧 하루하루 자라고 있는 광희와 광일 남매 보는 것으로 하루 피로를 잊곤 하였다. 오늘따라 회사에 일이 많았는지 좀 늦은 퇴근시간. 제 아빠 들어오시기도 전에 먼저 잠이든 광희와 광일 남매. 새근새근 귀여운 모습을 경환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 아그들이 당신을 닮았는지 참 얌전도 허요. 예의바르고... “ 

 ” 뭐어 ? “ 

 평소 무뚝뚝하고 말수적은 경환의 성정을 닮아 아이들이 얌전한 것 같다. 이런식의 해석이 가능할련지는 몰라도 경환이 잠시 어이없다는 듯 아내 가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 광일이 걸핏하면 잘 울어 그걸로 골치를 썩였던 것이 불과 1년도 채 되기전 한 몇 달전까지의 일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나마 제 누나 광희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더라는 그런식의 일도 있었지만 이후 또다른 비법을 가인이 터득하기라도 했는지 여하튼 이전에 비해 우는일은 많이 줄어든듯한 둘째 광일. 다만 아직까지 최경환은 가인의 그 광일이 울음 그치게 하는 비법만은 눈치 못챈 듯 하다. 

 

5회에 계속 

  


닉네임
비밀번호
블로그
비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