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팬픽 - 우주소녀 설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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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청  실  홍  실 

 


 사실 최웅돈 선생의 집안은 특정지역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의 정서가 있는 그런 집안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60년대면 아직 그런 정치적 문제로 인한 지역차별 문제나 정서가 생기기도 전이고, 게다가 최웅돈 선생 집안은 6.25때 호남 남부지역으로 피난을 가서 1년 이상이나 그곳에서 머물며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오히려 최선생 집안 입장에선 은인과도 같은 지역이기도 한 호남. 따라서 그런 지역출신의 며느리감이라고 해서 못마땅하게 여겼을린 만무하고 아무래도 전노파가 가인을 못마땅하게 여긴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외모적인 문제때문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서울대 나외 대기업에 취직한 막내아들을 그에 어울리는 짝을 지어줘야 한다며 동분서주 돌아다니셨던 것 아닌가. 그러다 들어온 선자리가 이화여대 나온 간호사라는데 그런 여자가 8남매중 맏이라 집에서 가장역할을 하고 게다가 그 아버지란 사람은 비리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세상을 떠난이라고 해서 그조차도 못마땅하게 여긴 전노파. 그렇게 이화여대 나온 간호사조차도 성에 안차던 전노파에게 잔뜩이나 출신,학력등 모든 것이 열악하기만 한 경환이 사귄다는 여자아이가 외모나 그나마 마음에 들면 그것만이라도 보고 허락을 했을까말까 한데 키도 크고 뚱뚱한데다 특정지역 사투리 짙은 한눈에 봐도 무식해보이는 여자. 첫눈에 보자마자 바로 손사래를 치며 기겁하고 문을 닫아버린 것은 바로 그런 이유때문인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여하튼 기왕 들어온 선자리를 그 맞선보는 날짜까지 유보하고 데려오도록 한 경환의 여자를 보자마자 문전박대하여 내쫏았으니 이후의 일은 불을보듯 뻔한 것 아닌가. 경환으로선 더 이상 가인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어영부영 한달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애초에 유보되었던 맞선자리 날짜를 다시잡이 이 무렵에 선자리에 나아가게 되었다. 이화여대를 나온 간호사라는 여자의 이름은 안명숙. 1945년생으로 이때 나이 어느덧 20대 중반에 접어드는 여자다. 헌데 막상 선자리에 나간 경환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대출신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근본적으로 선자리에 나온 안명숙이란 여자가 외모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경환도 키는 작은편에 속하긴 하지만 그런 경환보다도 왜소한 키에 다소 동글동글한 외형의 여자. 간호사출신이라더니 오히려 안경이라도 하나 씌워놓으면 마치 80년대 일본만화 같은데서나 흔히 볼법한 까칠한 수학선생이나 영어선생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키작고 못생긴 여자’. 그게 경환이 안명숙을 처음 보았을때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 ‘고작 이런 여자를 소개시켜 주시려고 우리 가인이를 그렇게 문전박대하셨나’ 선자리 마련한 어머니 전노파에 대한 원망감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인의 외모. 하지만 그렇다고 첫마디부터 야멸차게 나올수는 없어서 일단 차분한 분위기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진행되었다. 

 “ 헌데... ” 

 원래 예정되었던 맞선날짜가 한달뒤로 미뤄진 것은 그녀도 알고 있을터. 그래서일까. 안명숙의 입장에서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그것부터 물었다. 

 “ 듣자하니...얼마전에 친척상을 당하신것이라면서요 ? ” 

 위로의 인사라도 전하기 위해 이런 운을 뗀 것인지. 사실은 가인이를 먼저 데려와보라고 부모님이 말씀하셔서 안명숙쪽에는 맞선을 볼수 없는 부득이한 사유를 그런식으로 댄 것 아닌가. 그러니 어쨌든 이래저래 말은 맞춰야할터. 최경환도 원래 거짓말을 그리 잘 하는 성격은 아닌데, 그럼에도 당황해서인지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거짓핑계가 술술 잘도 나왔다. 

 “ 아...그게 죄송합니다. 실은 광주 사시는 외삼촌이 한분 계신데...그분이 갑자기 돌 

  아가셨다고 해서... ” 

 “ 그러시구나...안되었네요. ” 

 아직 안명숙이 최경환의 구체적인 집안내력까지야 알수 없겠지만 여하튼 경환의 조부와 증조부가 무녀독남 외아들이고 아버지 최웅돈 선생의 열 살 터울지는 남동생 최승돈은 아직 멀쩡히 살아계시다. 그러니 ‘먼친척’ 핑계를 대려면 천상 외가쪽을 들먹이는수밖에 없어서 그런지 이렇게 나온 최경환. 광주야 어쨌든 6.25때 피난갔던 지역이니 그런식으로 둘러댄듯하고. 졸지에 어머니쪽 족보에 ‘광주사는 외삼촌’을 한명 추가시킨셈이 된 경환.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일단 경환과 명숙의 맞선자리는 선보는 자리에서 처음보는 남녀간에 오갈만한 그런 평범한 대화가 오가고 그리고 명숙이 나름 어떤 궁금한게 있는지 이렇게 물어왔다. 

 “ 저...그리고 이건 혹시나 걱정되어서 여쭤보는건데요... ” 

 “ ??? ” 

 “ 혹시 저 만나러 여기 나오기전에 따로 사귀는 여자가 계시던게 그런건 아니죠 ? 

 ” 

 “ 예엣~~~!!! ” 

 이 여자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을까. 선자리가 한달 연기된 그 사이에 혹시 내 뒷조사를 하기라도 했나. 순간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순간인데, 일단 경환의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명숙의 이야기는 차분하게 이어졌다. 

 “ 실은 별건 아니고요...제 친구중에 그런 사람이 하나 있어서 그래요. ” 

 어쨌든 대학 졸업한 여자가 직장생활 한 2-3년 정도 하다보면 슬슬 주위에 선자라 하나둘 들어오게 되고 집에서도 ‘이제 그만 선봐서 시집가라’는 이야기 나오기 시작할 그런 시절이다. 그러니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선 이대나온 간호사 안명숙의 비슷한 연배 친구들이라면 역시 너도나도 여기저기 한참 중신자리 들어오거나 집에서 ‘이제 그만 시집가라’는 소리 한참 나올만한 그런 나이인것만은 분명하다. 헌데 그런 친구들중 어떤 남다른 사연이라도 있다는것인지 명숙의 말은 좀 더 이어졌다. 

 “ 실은 제 친구중에...OO이란 친구인데...얼마전에 선을 봤는데 그랬다고 하더라구 

  요. 처음엔 무난히 한 두세달정도 만났는데...달리 크게 문제가 없어서 그냥 이대로 

  결혼을 진행시켜야 하는건가 그런 생각까지 하는중이었는데...실은 그때까지 몰랐 

  었는데 그 남자가 선을 보기전에 따로 사귀던 여자가 있었나보더라구요. 그리고 집 

  안에선 반대를 했기 때문에 선을 본 뒤에도 계속 몰래 만나구 그랬나본데... ” 

 일제때처럼 무슨 10대 후반 나이에 부모님 뜻대로 – 사랑의 감정도 느껴보기 전인 나이에 – 결혼했다가 유부남의 몸으로 서울에서 학교다니고 직장을 다니다 새 여자가 생기는 그런 경우까진 아니더라도, 이때만 해도 아직은 중매가 연애보다는 보편적인 시절이라 이런 문제가 종종 발생하긴 했었나보다. 여하튼 선을 보러가기전에 사귀는 여자가 따로 있었건 어쨌건 그전에 정리를 했다면 문제가 안되었을텐데 남자 성격이 우유부단했는지 본의아니게 두 여자를 만나게 된 상황. 명숙 입장에선 그 친구 처지가 안타깝고 딱하게 여겨지는지 이렇게 말을이어갔다. 

 “ 보니까 둘이 그 사이 어느덧 살림차리고 아이까지 생긴 그런 모양이더라구요. 헌 

  데 그런 사람과 선을 보고 계속 만났으니...나중에 알게되고나서 난리가 나고...그 

  러다 깨졌다지 뭐에요... ” 

 “ 저런... ” 

 다행히 최경환은 가인과 아직 그런 사고(!)까지 치진 않았지만 막상 명숙의 이야기를 들으니 식은땀나는 소리다. 명숙은 여하튼 여전히 걱정되는지 경환에게 이와같이 묻는다. 

 “ 죄송해요. 예의가 아닌줄 알면서도 어쩔수없이 걱정되어 묻게 되네요. 혹시 다른 

  사귀는 여자가 있거나 그런건 아니신거죠 ? ” 

 


 스토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부득이하게 순서를 바꾸긴 했지만 그날 그렇게 문전박대를 받고 돌아간 가인도 가만있을 여자는 아니다. 보통 아닌 상처를 받았을 것 아닌가. 일단 그날은 울며불며 자신이 거처하는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가인. 월요일에 경환을 만나고서도 가슴팍을 쳐대며 따졌다. 

 “ 내가 뭐랬소 ? 그러게 내가 아저씨네 부모님 만날 자신 없다고 하지 않았소. ” 

 이래저래 자신의 열악하고 일천한 출신과 환경탓에 경환의 부모님을 만날 자신이 없다고 하던 가인. 그 가인을 설득하고 설득해 결국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자리까지 성사가 된 그런 상황이 아닌가. 헌데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으니, 애초에 경환이 이런 자리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그런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았을것이라는 생각에 원망이 온통 경환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다. 

 “ 미안하구나 가인아. ” 

 지금으로선 그말밖에 더 할말이 없을 경환. 허나 그래서 가인은 더 기가막히다. 

 “ 미안하긴 대체 뭣이 미안하다 그런다요 ? 이게 그리고 지금와서 미안하다 한다고 

  해결될 일이다요 ? ” 

 “ 가인아... ” 

 경환도 원래 말주변이 좋은 성격은 아니라서인지 이렇게 상처받은 연인의 심정을 어찌 달래줘야할지 참 난감하기만 하고, 한번 안아주기라도 해볼까 한들 그런다고 가인의 마음이 풀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더욱 어쩔줄 모르는 경환. 한참만에 가인이 그나마 좀 진정이 되었는지 경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 아저씨...근데 정말 뿌리깊은 양반집안 맞다요 ? ” 

 “ 뭐라구 ? ” 

 굳이 자랑하려고까지 하지 않아도 사귀는 여자한테 자신의 집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쩔 수없이 나왔을 이야기인 경환의 집안내력. 일제때 ‘토지조사사업’으로 억울하게 땅빼앗긴 그렇게 몰락한 양반집안이란 경환의 집안 내력은 가인도 이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헌데 지금 이 판국에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어리둥절하고도 당혹스럽기만 한 경환에게 가인은 거듭 이렇게 따져든다. 

 “ 아무리 그래도 집에 찾아온 손님을 그리 문전박대 하는법이 어디있다요 ? 우리집 

  안이 아무리 근본없는 집안이래두 그렇지...세상에 그런 근본없는 법도가 있다는  

  소린 못들어보았소. 아들이 사귀는 여자고 뭐고 하기전에 집에 찾아온 손님이 아 

  니오. ” 

 하긴 연애결혼-중매결혼 이런 논란은 둘째치고라도 어쨌든 아들이 집에 데리고 오는 손님이 아닌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온 불청객도 아니고 엄연히 약속날짜를 잡고 경환이 신경써서 데려온 여자 가인이다. 헌데 아무리 뚱뚱하고 못생겼기로 그렇게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내쫒아버리다니. 정말 양반집안이 맞기는 한건지 의심이 가고도 남을법한 전노파의 처사이긴 했다. 일단 경환이 가인을 납득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변명을 해본다. 

 “ 어머니가 그날...많이 당황하셔서 그랬던 것 같아. 그건 그러니 가인이가 이해해 

  줘. ” 

 “ 대체 뭣이 그리 당혹스럽다요 ? 내 무엇이 그리도 어머니를 당황하게 만들었단 

  말이오 ? ” 

 사실 그날 전노파가 가인이 싫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날 당일은 얼굴을 보자마자 ‘우리아들이 사귀는 여자가 아닌 것 같은데 잘못 찾아온 것 같다’며 그런식으로 내쫒은것이고, ‘왜 그렇게 나오셨느냐 ?’는 경환이나 다른 아들들의 물음에도 노파는 대꾸가 없었다. 어떻게보면 지금껏 그렇게 키크고 뚱뚱한 여자를 70평생을 산 전노파의 기억에 본적이 없어 너무 놀라고 당황한것일까. 사실 그런일이 있고나서 한 며칠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던 전노파이기까지 하다. 시간이 훨씬 지나고나서야 손자,손녀들이 그런대로 말하고 글읽을줄 아는 나이 되었을때쯤 ‘어디서 고릴라나 킹콩같은 여자가 들어오는줄만 알았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그제서야 이해를 하는것이지 이 당시로선 전노파의 구체적인 문전박대 이유를 경환이든 가인이든 따지고보면 전노파의 남편 최웅돈 선생까지도 노파의 충격받은 진짜 이유를 알아낼 방도는 없다. 여하튼 ‘너무 키크고 뚱뚱하고 무식해보이는 여자라서 싫었다’ 그것 외에는 문전박대의 다른 합리적 추론이 불가능할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이래저래 난감하기만 한 경환은 상처받은 애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한동안 애를 먹었을 따름이다. 

 “ 아저씨... ” 

 그런일이 있고나서 경환과 가인은 한동안 어색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회사에서 늘 보는 사이니 어느 한쪽이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한 계속 보는 사이인것만은 달라질것이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때쯤 가인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 선...보실것인가요 ? ” 

 원래 보기로 한 맞선자리를 유보하고 가인을 데려오게 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데려온날의 일이 ‘문전박대’로 끝이 나버린것이고, 그렇게되니 경환으로선 한달후가 되었든 언제가 되었든 날짜를 다시 잡아 이화여대 나온 간호사라는 여자와 다시 선을 보는수밖에 없다. 그 사이 새 날짜가 잡혀졌다는 이야기를 오히려 가인이 어디 다른 동료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들었는지 조심스레 물어온 것이고 고민하는 듯 하던 경환이 가인의 손을 꼭 잡아본다. 

 “ 걱정마 가인아. ” 

 그렇게 바라보는 경환을 과연 믿어도 되는것인지. 사실 경환이나 가인이나 말주변도 별로 없고 쑥맥같은 스타일인것만은 둘 다 똑같다. 따라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기에 쉬운 묘안이 떠오르긴 쉽지 않을 사람인것만은 둘다 마찬가지. 불안하게 바라보는 가인을 바라보며 경환이 이렇게 말한다. 

 “ 내가 어떻게든 잘 해볼테니까...일단 지켜봐줘. ” 

 최소한 최경환의 성격이 책임지지 못할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그런 경환이 대체 앞으로 어쩌려고 이런말을 하는것인지. 일단 그런식으로 가인을 위로하고 달랜뒤 맞선자리에 나아간 것이다. 허나 그렇게 이화여대 나온 간호사라는 안명숙이란 여자를 만나보고 돌아온 경환. 말이 없었다. 의아해진 형 성환이 다시 물었다. 

 “ 어떻게 되었어 ? ” 

 대꾸없는 경환. 짜증이 나서 성환이 화를 냈다. 

 “ 아니 근데 이 녀석이 진짜 ? 아니, 어찌되었든 선보러 나간자리가 어떻게 되었는 

  지 정도는 말을 해줘야할거 아냐. ” 

 그저 단순히 동생이 만난 여자가 어땠고 선자리가 어땠는지 그걸 묻는 호기심 차원의 질문이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애초에 동생보고 ‘사귀는 여자가 있다고 사실대로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권했던것도 성환이고 심지어 경환이 여전히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먼저 말씀을 드려 그런 자리가 마련되도록 이끌어낸것도 성환이다. 이래저래 경환의 여자 혹은 혼사문제가 어찌 진행이 되어갈지 더 관심이 크고 걱정될 수밖에 없을터. 허나 형의 물음에 어찌 대답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한 경환의 처지. 다그치는 형한테 이러다 한 대 얻어맞을 것 같은 공포감 때문인지 마지못해 한마디 내뱉긴 했다. 

 “ 별로였어요. ” 

 그 한마디만 짤막하게 내뱉은 경환. 그래도 형한테라도 솔직하게 말해버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하는것일까. 헌데 그 별로인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이렇게 나오니 이 또한 답답하다면 답답한 일이다. 대체 어디가 별로였다는것인지. 외모 ? 성격 ? 아니면 대화분위기나 그 자체가 ? 경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키도 작고 못생겨서 별로였어요.’ 아마 안명숙이란 여자에 대한 경환의 솔직한 인상비평 첫느낌은 그와같았을 것이다. 다만 이런말을 하기가 힘든 처지인게 솔직히 경환이라고 해서 남 외모 흉볼만한 처지가 아닌탓도 있다. 그렇다고 경환이 아주 비호감의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무뚝뚝해보이고 무거워보이는 분위기의 얼굴. 그게 최웅돈의 아들 4형제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가령 막내 경환이나 둘째 정환은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종종 사람들이 ‘혹시 화가났거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 ?’고 물어볼 정도로 오해하기 쉬운 – 심지어 어떨때는 ‘어두워 보인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 그런 외모와 분위기였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셋째 성환의 경우엔 그나마 키가 좀 크고 덩치도 있는 편이라 호방한 장군이나 사장님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 그런 얼굴과 분위기였다. 한편 첫째 영환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작고 왜소한 분위기라 평소에도 부친 최웅돈 선생보다는 어머니쪽을 더 닯지 않았나 그런 평을 듣기도 하는 외모이기도 했다. - 덩치로 비교하면 첫째 영환이 셋째 성환의 절반정도 수준일 것이다. - 여하튼 대체로 무뚝뚝하고 무거워 보이는 분위기의 외모를 가진 최웅돈 선생의 아들 4형제. 그리고 그중 막내인 경환이 선보러간 자리에서 만난 안명숙이란 여자에 대한 첫 느낌은 그와같았다. 

 “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겨서 별로다... ” 

 


 확실히 경환은 명숙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게 분명했고 따라서 그날 맞선자리 이후에도 별도의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취하거나 하는일은 없었다. 허나 가인의 경우엔 이미 그렇게 어머니가 문전박대를 하신일이 머릿속에 생생하니 이런 상황속에서 가인과의 관계를 그냥 밀어붙일수도 없는 일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속에서 ‘에라 모르겠다...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다보면 적당히 넘어가게 되겠지...’ 설마 이런 생각인것인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이쯤되면 당연히 안명숙 입장에서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진지하게 본 맞선자리고 헌데 그 뒤로부터 연락이 없다면 ‘이거 내가 딱지맞은 것으로 봐야하는건가 ?’ 눈치가 아주 없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충분히 그리 짐작할수도 있을터인데. 명숙 입장에서 어떤 아쉬움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딱지맞은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것인지 결국 명숙이 경환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여하튼 그날 최소한 서로간의 연락처나 명함정도는 교환했을터. 명숙이 경환의 회사로 전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이 시대의 문화나 정서상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먼저 전화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이미 안달이 나 있는 명숙으로선 나름의 자존심때문에라도 선자리에서 ‘딱지맞은’ 사실을 인정하고 이 사실을 겸허히 수긍하는게 쉽지 않을수도 있었다. 

 “ 여보세요. ” 

 “ 설마 우리 선본 사실까지 잊은건 아니시죠 ? ” 

 물론 경환도 눈치없는 성격은 아니라서 확실히 안명숙이 전화를 해왔음은 인지하고 있었다. 허나 평일 근무시간인 사무실 아닌가.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는 일.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어쩐일로...전화를 다 하셨어요 ? ” 

 “ 그러는 그쪽은요 ? ” 

 “ 예 ? ” 

 “ 어쩜 그리 무심하시냐구요 ? 하다못해 한번쯤 만나서 식사라도 한번하자, 영화라 

  도 한편 보거나 어디 고궁이라도 같이 놀러가자 뭐 이런 이야기가 한번쯤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 ” 

 “ 아...저 그...그게... ” 

 아직은 말단사원 처지인 경환 입장에선 다른 동료,선배들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길게 통화할 수는 없을터. 그렇다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난감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고 일단 결국 이런식으로 핑계를 댔다. 

 “ 헌데 제가 보다시피...회사원이고 일하느라 바빠서... ” 

 “ 누가 그걸 몰라요 ? ” 

 어쨌든 안명숙도 무직(無職)의 여성이거나 집에서 신부수업만 하는 여자는 분명 아니고, 엄연히 간호사로 일하는 현업 직장이 있는 여성이다. 그런 명숙이 평일에 일부러 이렇게 전화를 했을 정도면 그녀가 얼마나 몸이 달아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을터. 명숙은 공연히 빙빙 말돌리는 것은 싫어하는 성격인지 사뭇 저돌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 OOOO에서 일하신다면서요 ? ” 

 당연히 그날 맞선을 보면서 서로 무슨일을 하는지 정도야 충분히 이야기 나누었을것이고 무엇보다 선보는 상대가 직업이나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매파를 통해 양가 집안이 원래 정보를 충분히 얻게되는것아닌가. 따라서 명숙이 경환의 일하는 회사를 모른대서야 그게 더 이상한 일일터이고 여하튼 명숙은 자신이 먼저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려는듯한 사뭇 대담한 모습으로 이와같이 나오고 있었다. 

 “ 토요일날 제가 회사 근처로 갈께요. 제가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을 알아요. ” 

 사실 1960년대 정도면 서울에도 아직 데이트 장소가 그리 많지가 않던 시절이다. 기껏해야 경복궁이나 지금은 이미 ‘창경궁(* 그 당시에 ’창경원‘)’으로 더 익숙한지 오래인 바로 그곳등 몇몇 고궁등의 관광지나 혹은 조금 유명한 호텔이나 극장 인근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그정도일터. 이화여대를 나온 명숙이니 학창시절에도 친구들과 제법 어울리며 놀러다녔을법한 그런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로 그런 자신이 잘 아는 식당 한군데를 추천하며 마침 그곳이 경환이 일하는 H그룹 본사 건물에서 머지 않은곳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주말에 만나자는 식의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것이다. 경환의 난감함은 아랑곳없이. 

 “ 아...저 그게...실은 전 주말에도 바빠서... ” 

 “ 제가 그리고 갈께요. 그럼 토요일날 퇴근시간 무렵에 만나면 되는거잖아요. ” 

 그렇게 경환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장소를 정해버린 안명숙. 경환이야 이래저래 통화를 빨리 끝내는게 좋을 것 같아 마무리를 해 버리고, 헌데 경환의 그런 통화를 목격한 것은 난감하게도 다름아닌 사환인 가인이었다. 회사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그런 가인은 오늘도 그렇게 동분서주 움직이고 있는데, 그러다 우연히 경환의 옆자리까지 와서 그의 통화내용을 지켜보게 되었나보다. 궁금함에 이렇게 묻는다. 

 “ 무슨전화여라 ? ” 

 “ 아...아니 저 그게... ” 

 경환은 불륜이라도 저지르다 아내에게 걸린 남편의 모습보다도 훨씬 기겁한 모습으로 당황해 어쩔줄 모르고, 그런 경환이 더욱 궁금해져서 가인에게 묻는다. 

 “ 그게 저...아니 대학 동창인데...여학생이긴 한데...여하튼 나한테 사적인 문의사항 

  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더라구. 그런데 그것 외에도 다른 용건이 좀 많은 듯 해서... 

  바쁘다고 그냥 끊은거지 뭐. ” 

 헌데 기왕 학교동창이라고 ‘거짓말’을 할거면 굳이 여성이란 ‘사실’을 안 밝혀도 될 것 같은데 본의아닌 실수를 해버린 셈인 경환. 가인이 아무리 쑥맥이고 평상시 둔한 성격이라도 이런건 그래도 눈치가 좀 있는지 의아해서 추궁하듯 묻는다. 

 “ 혹시...선봤다는 그 여자분 전화 아니여라 ? ” 

 “ 아...아냐 무슨...그 여자가 평일날 여기 전화를 왜 해 ? 그런거 아니야. ”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하는 가인을 적당히 달래서 돌려보내려 하는데 가인이 다른 할 일 지시를 받아서인지 다른곳으로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때 경환이 다시 가인을 부른다. 

 “ 가인아... ” 

 “ 또 무슨일이여라 최경환씨 ? ” 

 보통 직장에서 직위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아무개씨’란 호칭을 쓰기도 하지만 아무래 그래도 열 살이나 많은 정직원인 경환한테 고졸사환이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순간 경환뿐만 아니라 곁에있는 다른 동료직원들까지 경악할 판인데 경환이 나지막한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 그러지말고 우리 주말에 어디 같이 갈래 ? ” 

 “ 가긴 어딜 간다고 그라요 갑자기 ? 그리고 나도 일하느라 바쁜께 이만 가볼라요. 

 ”  

 그렇게 피하듯이 가버리는 가인. 근무시간이니 어차피 길게 사적인 대화로 물고 늘어질수도 없는 일이라 경환이 뭔가 안타깝게 가인을 잠시 바라보다 자기자리로 돌아간다. 

 허나 경환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퇴근후에 다시 가인에게 제안을 해 주말에 결국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말했지만 이 시절(60년대 후반)은 젊은 사람들의 데이트할만한 장소가 그리 많지도 않던 시절이다. 그래서 굳이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유명한 고궁이라던가 유명한 호텔이나 극장 근처의 레스토랑 대충 그 정도를 배회하다보면 우연히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던 시대. 아니나 다를까.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명숙은 그날 평일 근무시간임에도 자신이 그렇게 간곡하게 전화를 해서 한 제안이니 경환이 그렇게까지 야멸차게 나오진 않을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바로 퇴근을 하자마자 발걸음을 서둘러 H그룹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허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은 오지않고 속절없는 시간만 계속 흐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사로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최경환씨는 이미 퇴근하셨다’는 당직자의 답변만 돌아올뿐이었다. 결국 허탈해진 명숙은 그저 혼자 울적해진 기분이나 달랠겸 인근에 있는 고궁이나 한바퀴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허나 실은 그곳은 다름아닌 경환과 가인이 주말데이트를 가기로 한 것. 그렇게 공교롭게도 경환과 가인 커플이 안명숙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 아...아니 ??? ” 

 안그래도 선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하기도 했던 명숙이 아니던가. 자기 친구중에 그런 사례가 있다고. 선보기전 원래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문제가 정리가 안된채 자기네들끼리 살림도 차리고 애도 낳았더라는. 그래서 혹시나 해서 경환에게도 다른 여자가 있는건 아니냐는 질문을 했던것인데 그날 실은 경환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마주하게 된 세사람. 격분한 명숙의 따귀가 날라왔다. 

 ‘철썩~~~!!!’  

 당사자인 경환뿐만 아니라 가인까지도 당황해 어쩔줄을 모르고 명숙은 격노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어댔다. 

 “ 나쁜자식 !!! ” 

 


 얼마후 명숙이 가인의 하숙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일단 그날 현장에서 데이트 현장을 들킨뒤 상황을 무마하면서 경환이 ‘자신의 회사 사환직원’ 정도라는 가인의 신분이야 밝혔을테고 그 와중에 가인이란 이름까지도 명숙이 익혔을테니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요즘이야 개인정보 유출문제 때문에 웬만해선 잘 안 가르쳐주지만 예전에야 해당회사로 전화를 걸어 아무개란 사원의 주소나 연락처를 알고싶다고 하면 그걸로 끝나는 일이다. 남자라면 혹시 의심이 가서 전화를 받은 사무실쪽에서 안 가르쳐줄수도 있지만 같은 여자고 전화를 건 당사자가 적당히 친구라고 하든 학교나 고향 선후배쯤 된다고 하든 그런식으로 말하면 사무실에선 별다른 의심없이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런일이 있은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이 거처하는 하숙집에서 전화를 받게된 가인. 주인 아주머니가 ‘고향 선배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왔다’고 하길래 가인은 처음엔 의아해했다. 아무리 자신의 전력과 과거 그리고 고향 진도에서의 기억등을 복기해도 자신의 하숙집 전화번호까지 일부러 알아내어 전화를 걸어올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누군가 궁금해서라도 일단 전화를 받은 가인. 상대방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 나 누군지 모르진 않죠 ? ”  

 “ 야 ? ” 

 일단 명숙과 가인이 목소리만 들어도 알아들을수 있는 사이는 분명히 아니고 어리둥절해하는 가인에게 명숙이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혔다. 

 “ 안명숙이란 이름을 말한다고 그쪽이 알지는 않을테고 지난주 토요일에 덕수궁에서 

  봤잖아요. ” 

 “ 아... ” 

 그제서야 그날 그 여자가 전화를 해온것이란 것을 깨달은 가인. 헌데 퇴근시간도 지나 하숙집으로 돌아와 편히 쉬고있는 가인에게 그런 명숙이 대체 무슨 연유로 전화를 해왔다는 말인가. 더욱 긴장되는 상황속에서 그쪽의 말이 이어졌다. 

 “ 우리 직접 만나죠. ” 

 “ 야 ? ” 

 아무리 그래도 지금 가인 입장에서 안명숙을 만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더더욱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명숙의 목소리는 한옥타브 높아졌다. 

 “ 나 지금 그쪽이 사는 하숙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까지 와 있을거에요. OO번 버 

  스 정류장 인근에 있는 빵집인데...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죠. ” 

 회사에 전화했을 때 명숙은 가인의 하숙집 주소까지 알아냈단 말인가 ? 허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전화의 국번 정도를 안다면 그 사람이 대충 어느 지역쯤 사는지 작심하고 알아내면 못알아내는 정도의 시대는 이미 아니다. 그런걸보면 안명숙도 작정하고 가인의 신상에 대해 캐내보려 했던것만은 분명해보인데, 이미 거절하기는 쉽지 않음을 가인도 직감했음인지 명숙이 와있다는 버스정류장 근처 빵집으로 가봤다. 

 “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죠. ” 

 그날은 참 황망하고 정신이 없었는데 한 일주일 지나 다시 만나보게 된 명숙은 그저 키가 작고 왜소한 젊은 여인. 그 이외의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체구도 크고 뚱뚱한 가인의 그야말로 3분의1도 채 되지 않는 몸집이라고나 할까. 만약 가인이 작심하고 한 대 치기라도 하면 한방에 나가떨어질 것 같은 그런 작은 몸집의 여자인것만은 분명한데 그런 외양과는 달리 의외로 강단도 있고 할말,못할말 다 하는 성격인지 가인에게 거침없이 쏟아붓는다. 

 “ 어느 대학 나왔어요 ? ” 

 “ 야 ? ” 

 이 시대에 그것도 여자가 굳이 학력 콤플렉스까지 느낄 필요까진 없지만 그래도 여하튼 명문대까지 나온 여자라면 누구나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볼만한 그런 여자가 안명숙인것만은 사실이다. 허니 그에비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채 무작정 상경한 지방출신의 가인은 얼마나 초라해보이겠는가. 그래서라도 일부러 자신의 학력이라던가 이런걸 밝히고 싶지는 않았을텐데 대뜸 마치 가인이 ‘4년제 대학을 나온 여자’로 기정사실화 하고 이렇게 대뜸 물어온 명숙. 가인이 바로 풀죽은 목소리로 답한다. 

 “ 아...아녀라. 지는 대학은 안 나왔어라... ” 

 “ 그럼 고등학교는 나왔을거 아니에요 ? 어디 고등학교 나왔어요 ? ” 

 가인은 아찔해졌다. 심지어 가인은 지금 사환으로 일하는 H그룹에 이력서를 낼때도 고등학교 중퇴인 학력을 ‘졸업’이라고 살짝 속였다. 자연스레 자신의 나이도 한두살정도 높일 수밖에 없었을텐데 이 시대에 그 정도 학력위조(?)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테지만 그래도 만의하나 알려지기도 하면 경우에 따라선 직장에서 해고된다던가 그런 위기에 몰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면 가인이 이런 ‘학력위조’ 사실을 밝히기가 무척이나 난감할텐데 바로 그런 문제를 청문회라도 하듯 안명숙이 계속 추궁하니 가인은 아찔해지지 않을수가 없다. 이 깊은 밤시간에 오히려 하늘이 노래지는듯한 느낌마저 받는 가인. 빵집안 조명불빛은 확실히 노란빛이긴 하다. 

 “ 지...지는...진도에서 학교를 다녔지라... ” 

 “ 진도 ? 전남 진도 말씀하시는건가요 ? ” 

 명숙이 지리에도 그런대로 밝은편인지 ‘진도’라고 하니 대뜸 전남 진도를 말하는것임을 알아차렸다. 다만 가인은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고만 말했지 졸업인지 중퇴인지는 밝히지 않은상황. 허나 안명숙은 그 정도만으로도 이미 자존심이 상하는지 골치가 아파오는 듯 손으로 이마를 한번 짚어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가인에게 다시금 말을 건넨다. 

 “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묻죠. 지금 그쪽이 최경환씨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하는거에요 ? ” 

 “ 야 ? ” 

 이쯤되면 이 상황을 ‘삼각관계’로 기정사실화하지 않는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인은 이런식으로 물어오는 명숙의 태도가 몹시 불쾌하기만 했고 이런 가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명숙의 말은 여전히 거침없이 쏟아진다. 

 “ 최경환씨는 아무튼 서울대를 나와서 지금은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또 명문 

  가의 자손이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최경환씨에게 그쪽이 어울리기나 한다고 생각 

  하는지 그걸 묻고있는거에요. ” 

 결국 그런 이야기를 하러 보자고 불렀구나. 가인은 눈을 질끈감았다. 사실 이런식의 스토리는 60년대에 나오는 삼각관계 로맨스 영화에도 흔히 보는 설정이긴 하다. 허나 가인이 스스로 그런 영화속 주인공같은 처지가 될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는데 여하튼 학력으로 보나 출신이나 집안배경으로 보나 도무지 어울리는 짝이기나 하냐는 식으로 추궁하는 명숙으로 인해 가인은 이미 한바탕 울고싶은 심정이 된다. 십칠세 나이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돈이나 좀 벌어보고 싶다며 무작정 상경한 여인 가인. 이렇게될줄 알았으면 왜 그때 그런 쓸데없는 짓을 다 벌였던고. 별의별 후회가 다 들 지경이다. 명숙이 거듭 추궁을 한다. 

 “ 이것봐요. 솔직히 나도 뭐...‘여자는 시집이나 잘가면 그만’이라느니 그런말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그렇다고...우리 사회가 뭐 여자가 직장생활 오래한다고 

  알아주거나...또 크게 출세할 가망이 있는 그런 사회나 나라도 아니고...어쨌든 여 

  자는 근본적으로 남편의 내조를 잘하는 아내로서의 역할 그게 진짜 중요한거에요 

  그런데 학력도 출신도 일천한 그대가 명문대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최경환씨의 

  내조를 잘할수 있는...그런 역할이 어울리는 사람인지 그걸 묻고 있는거에요. ” 

 그래도 ‘여자는 시집이나 잘가면 그만’이라는 식의 이야기 별로 안좋아한다는 것을 보면 명숙도 이 시대에 어느정도 의식이 깨어있는 여성인것만은 분명해 보인데, 그렇다고 자신이 그런 세상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거나 개혁시키려는 그런 의지까지 있는 것은 아니고, 세상에 불만은 있을지언정 그런 불만을 적당히 수긍하고 타협하며 그렇게 살아가고픈 그런 여성인것만은 분명해보인다. 허나 어찌되었거나 학력도 배경도 일천한 그대가 대기업 다니는 그런 사람의 내조를 잘 할 자신이 있느냐는 식의 명숙의 추궁. 가인은 결국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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