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안) 귀여운 새어머니 2
나나가 결국 집을 나갔다. 오갈데 없는 처지인 나나가 과연 어디로 갈것인지가 의문이긴 하지만 일단 나나가 없는 상태에서 준성과 승호 부자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준성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막힌 일이라 아들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지 않을수가 없다.
“ 도대체 넌 어떻게 된 아이냐 ? ”
화를 내는 아버지 앞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승호도 안절부절이기만 하고 준성은 준성대로 답답한 듯 외쳐댄다.
“ 나나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넌 나한테 이야기를 했어야지. 이걸 그래 시치
미를 뚝 떼고 있어. ”
“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
“ 하지만 뭐 ? ”
일단 아들의 변명이나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승호를 바라보는 준성. 그의 말이 이어진다.
“ 솔직히 말씀드리기도 난감했고 저도 이 상황이 많이 혼란스러워서... ”
“ 어쨌거나 넌 최소한 나한테 이야기를 했어야 정상인거 아니냐 ? 나나 그 아이가
니 대학 후배라는 사실을... ”
“ 죄송합니다 아버지. ”
사과의 말 이외엔 더 할말이 없을것만 같은 승호의 모습. 한편 준성은 준성대로 나나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한번 곱씹어보니 더더욱 어이없고 기가막힌지 이렇게 말한다.
“ 그러니까...나나가 말한 그 까칠했다는 선배가 바로 너냐 ? ”
“ 예 ? ”
“ 나나 말로는 지 혼자 좋아서 쫒아다니기만 했고 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던데 ?
”
바로 그런 첫사랑의 상처가 있다는 것을 나나가 준성과 사귈때도 그리고 결혼후에도 입에 담은일이 몇 번 있다. 헌데 그때까지만 해도 준성은 그저 나이어린 여자애가 첫사랑의 상처가 심해 나름 힘든 시간을 살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위로해준것뿐인데, 생각해보니 나나에게 상처를 준 선배가 바로 승호였다는 것. 그걸 생각해보니 더더욱 어이없지 않은가. 착잡한 표정으로 준성이 승호를 바라보고 승호가 나름 해명삼아 덧붙인다.
“ 저희 정말...그런 사이 아니었어요. 그냥...소리선배라고 나나의 선배되는 사람이
나나를 한번만 만나달라고 해서...몇번 만나다가 어차피 너무 안 맞는게 많아서 헤
어지자고 한 것...그게 전부에요. 게다가 전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군대도 가야
했기에... ”
적어도 그것만큼은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말해버리는 승호. 하지만 어쨌든 그 일련의 일이 철없고 순진한 1학년 여대생 나나에게 깊은 상처가 된것이니 준성이 그 부분을 나무라듯 나온다.
“ 아무리 그래도 니가 좋다는 여자애한테 그런 상처를 주면 쓰나. 헤어질땐 헤어지
더라도 차라리 아름답게 헤어질 방도라도 궁리해보던가... ”
“ 면목없습니다 아버지. ”
승호야 그저 사과의 말만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고 준성은 그저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막힌지 이렇게 말을 건넨다.
“ 나나는 그러더만...니가 엄마없이 자라서 혹시 여자보는 눈이 잘못된거 아니냐고..
그런소리까지 하던데... ”
실제 준성에게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했었고 나나는 승호에게도 ‘여자의 진정한 매력을 일깨워주고 싶노라’니 ‘선배 여자가 될수 없다면 엄마라도 되어보고 싶다’느니 그런말을 하기도 했다. 어찌되었거나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이 될 수밖에 없는 준성과 승호. 일단 준성이 술 한잔을 더 비운뒤 승호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 근데 너...나나가 한 그 이야기는 무슨 소리냐 ? 무슨 운동하는 여자애나 남자같은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는 소린 ? ”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그렇게 말할수야 있겠지만 사실 그게 꼭 맞다고 볼수도 없다. 가령 남자같은(?)여자를 좋아한다는 식의 표현도 어폐(語弊)가 있고, 승호가 여군이나 여자 운동선수 이런 여자들한테 어릴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꼭 그런식으로 표현하는것도 곤란하다면 곤란한 일이다. 여하튼 승호 입장에선 아버지 준성에게도 솔직하게 고백하기 난감한 일이라 말을 안해왔던 문제를 나나는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은가. 그래서 더 한층 궁금해지기도 하는 준성. 승호도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숨길일도 아니라는 듯 입을 연다.
“ 나나가 어떻게 이야기헀는지는 모르지만...저 원래 너무 이쁘거나 그런 여자는 부
담스럽고 질색이었던건 사실이에요. ”
“ 그리고 뭐 이를테면 운동하는 여자라던가 그런 여자가 좋다 그소리인게냐 ? ”
“ 꼭 반드시 그렇다기 보담도. ”
어차피 이렇게 된거 사실대로 다 말하자 그런 결심이라도 든것인지 승호는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보고는 그도 역시 술 한잔을 입에 대더니 차분하게 입을 연다.
“ 실은 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 ”
“ 따로 있다고 ? ”
적어도 그런 이야기까진 나나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해서인지 준성이 다소 놀랍고 뜻밖이라는 듯 나오고 있다. 승호가 작심하고 말을 이어간다.
“ 아버지나 나나가 말한것처럼 꼭 무슨 그런 남자같은(?) 혹은 그 무슨 걸크러쉬...
그런 여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어쨌든 1학년때 2학년 선배로 처음
만난 그런 사이에요. 그리고 성격도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
어서... ”
“ 게다가 연상이라는 소리잖아 ? ”
요즘 세상에 연상녀-연하남 같은게 무슨 흠이나 논란이 될일도 없겠지만. - 그리고 거듭 고찰하지만 40-50년대까지만 해도 오히려 여자가 한두살 많은 경우가 더 많았다. - 준성 입장에선 설상가상같은 느낌이라도 들어서일까. 승호를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승호는 그런 아버지를 사뭇 설득하듯 말을 이어간다.
“ 어차피 이렇게 된거 다 말씀드리겠지만...애초 나나는 제가 마음에 들었던 여자도
아니고...원래 그렇게 저보다 한 살많은 소리선배를 좋아했어요. 지금까지도 계속
만나고 있고...원래 대학 졸업하고 직장잡고 나면 적당히 기회봐서 아버지한테 말
씀드릴 생각으로 있었는데... ”
“ 그 와중에...나나하곤 절대 깊이사귄 사이가 아니라는 말은 꼬박꼬박 하는구나. ”
승호 자신 입장의 솔직한 고백인지 아니면 아버지인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나나하곤 그런사이 아니었다’는 말을 거듭 덧붙이는 승호를 보면서 준성도 어이없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터트린다. 이 상황이 공연히 웃긴지 승호도 그만 실소를 머금고. 부자(父子)가 술은 어느덧 알딸딸하게 취해있는 그런 분위기다.
한편 나나는 일단 모텔방에 머물고 있었다. 사실 나나라고 해서 모아놓은 돈이 많거나 한 것은 아니니 모텔방 생활이라고 해야 오래 지속되기도 힘들 것이다. - 다만 준성과 결혼하면서 그전까지 살던 집(성남 분당 소재)을 팔긴 했으니 그 돈이 있기는 할 것이다. - 허나 어쨌든 지금은 빈털터리 몸으로 준성의 집을 나온 상태라 언제까지 여기서 계속 생활할수도 없고 모텔방값이 많이 밀리기전에 월세방을 구하든 단칸방을 구하든 해야하긴 할 것이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직장도 다시 구하긴 해야할것이고. 여하튼 영문과를 나왔고(정확히는 중퇴) 통역사로도 잠시 일했던 것을 보면 그쪽으로 재능과 능력이 좀 있긴 한 나나이긴 하지만 현재로선 어찌 살아야할지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한 상황. 한 며칠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을 근교지역 모텔방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허나 그러다 뜻밖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은 요 며칠전부터 나나는 몸이 좀 이상하고 이전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단순한 감기증상인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고, 특히 식사를 할 때 음식맛이 이전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산부인과를 찾아갔다가 임신 2개월째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충격과 놀라움에 나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물론 준성과의 결혼생활 때 잠자리도 대체로 정상적으로 가졌으니 그 상황에서 임신 자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하필 이럴 때 임신사실을 알게되다니. 이제 뭘 어찌해야하는지 그저 하늘이 노랗기만 했다.
딱히 도움을 청할만한곳이 마땅치 않은 나나로선 소리를 찾아가보았다. 이 상황에서 하필 소리라니. 이해가 안갈수도 있지만 지금 나나로선 딱히 도움을 요청할곳이 없다.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안계신 상태고 게다가 학창시절이라고 해서 교우관계가 원만했거나 그랬던 나나도 아니니 지금 딱히 도움을 청할만한 친구도 없다. 그나마 대학시절 좀 가까이 지냈던게 승호와 소리선배 정도인데 어쩌겠는가. 하는수없이 나나는 소리가 거처하는 오피스텔로 찾아가보았고 뜻밖의 나나의 방문에 소리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나나야. 니가 어떻게 여길 ? ”
물론 이미 며칠정도의 시간이 지났으니 소리도 승호로부터 나나의 일을 전해듣긴 했을 것이다. 헌데 그 나나가 자신의 거처에 나타나다니. 이래저래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고 시간을 끌거나 말을 빙빙돌릴 상황이 아닌지라 나나가 소리에게 바로 도움을 청했다.
“ 도와줘요 선배. ”
“ 도와달라니 갑자기 뭘 도와달라는건데 ? ”
승호네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니 혹시 한동안만이라도 자기집에 의탁하게 해달라는것인지. 소리로선 순간적으로나마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 수밖에 없는데, 허나 이어서 나나에게서 나온 말은 그런 문제보다도 훨씬 소리를 충격받게 했다.
“ 아이를 가졌어요 선배. ”
“ 뭐 ? ”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는 소리. 확인이라도 해주듯 나나의 말이 이어졌다.
“ 저희 사장님...그러니까 승호선배 아버지의 아이를 가졌다구요. ”
일반적으로 나나가 준성을 부를 때 호칭이 ‘여보’나 ‘사장님’이었는데 따라서 소리 앞에서도 처음엔 준성을 ‘저희 사장님’이라고 불렀고, 나나가 어디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거나 혹은 승호와 진짜 무슨 이상한 관계였던게 아닌이상 승호의 아버지 김준성 사장의 아이일것만은 누가봐도 분명한 사실 아닌가. 따라서 소리는 나나가 산부인과에서 처음 임신사실을 알았을때보다도 훨씬 충격과 절망스러운 감정으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허나 지금 진짜 다급한 것은 나나인지라 그런 소리를 붙잡고 울며불며 애원부터 한다.
“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저 이제 어떻게 해요 선배. 어어어엉~~~!!! ”
글자그대로 ‘골치아픈 상황’. 소리도 하도 어이도 없고 머릿속이 복잡해 오피스텔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 이마를 손으로 짚은채 한참을 고민스런 모습으로 있었다. 나나도 망연자실한 상태로 여전히 훌쩍훌쩍 울고만 있는데, 소리가 더 주저할 것 없다는 듯 바로 일어나 나나의 손을 잡아 이끈다.
“ 가자 얼른. ”
“ 가다니요. 어디를 ? ”
이대로 준성의 집으로 함께 다시 찾아가자는 소리는 아닌 것 같고, 소리에게서 나온 이야기는 나나를 더 충격받게 만든다.
“ 내가 곁에 있어줄테니 걱정마. 아이 지워야지 어쩔거야. 내가 옆에 있어줄테니 걱
정말고 나랑 같이가. ”
그렇게 이대로 다시 산부인과로 갈 기세인 소리. 허나 나나가 바로 기겁하며 소리의 손을 뿌리친다.
“ 싫어요 선배. 무슨말을 그렇게 해요 !!! ”
“ 그럼 지워야지. 이 판국에 뭘 어쩌자구 ? 아닌말로 그 아이를 너 혼자 키우기라도
할래 ? ”
낙태에 대한 찬반이나 윤리성 문제는 이 상황에서 논할 사안은 아니고, 확실히 나나가 요즘 여자 같지 않은 그런 고전적인 가치관을 갖고있는 여성인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혹시 독실한 크리스찬이라 신앙적 소신 때문에 그런다면 그렇게 볼수도 있겠지만, 나나는 확실히 그런쪽하고는 거리가 먼 여자고 ‘아이를 지우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며 나나를 설득하려 드는 소리에게 그녀는 이렇게 항변한다.
“ 어떻게 선배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지우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어떻게 선배는 그런 아이를 두고 그런 소리를 해요. 어어어엉~~~
!!! 그건 진짜 말도 안 돼요. 어어어엉~~~!!! ”
“ 뭐 ? 사랑 ? ”
소리가 더 어이없다는 듯 나오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지울수 없다’ 지금 소리 입장에서 나나의 그런 가치관을 ‘기특하다’고 칭찬해주기도 난감한일 아닌가. 나나가 누구를 사랑하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 키우든 그건 나나 자유의지에 달린 일이지 제3자가 간섭하고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만 그 나나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문제 때문에 이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준성이나 승호의 문제는 그렇다치고 이미 승호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것이나 다름없는 소리. 그런 소리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하면 대체 어쩌자는 소린가. 소리가 그야말로 어이없어 버럭 소리를 지른다.
“ 지금 내 앞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 그래서 대체 뭘 어쩌자겠다는건데 ? 니가
내 시어머니라도 되겠다는 소리야 !!! ”
그야말로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듯 나오고 있는 소리. 나나가 울며불며 애원을 한다.
“ 도와줘요 선배. 저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어어어엉~~~!!! ”
“ 선배라고 부르지도 마 !!! 아니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절친한 선후배간이
었다고 꼬박꼬박 ‘선배’소리가 나오니 ? ”
딱히 그 외 적절한 호칭이 있을수도 없는 소리와 나나의 관계이긴 하지만 확실히 소리가 무슨 나나에게 소리가 힘들 때 의지하고 도움을 주는 그런 선후배지간은 분명 아니다. 애초에 소리가 승호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그런 승호를 소개시켜 달라며 다가왔던 나나가 아니던가. 게다가 어차피 승호가 처음부터 나나를 좋아했던것도 아니기에 나나와 소리의 사이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특히 소리가 승호와 여관방에서 하룻밤 잔 사실을 안 뒤로는 한동안 나나가 소리를 아예 안보려고 하기까지 했고 그러다 소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나는 1년여 정도 학교를 더 다니다 그만둔뒤 통역사 알바를 시작하고. 그랬던 사이니 만약 나나가 승호의 아버지 준성과 정분이 나는 사태만 벌어지지 않았어도 졸업후에 이 두 사람은 다시 만나거나 할 가능성도 그리 많지 않았을 그런 사이다. 헌데 그런 사이가 그것도 준성과 승호 부자 문제로 이렇게 꼬여버리다니. 정말 전생에 무슨 악연이라도 있었나 그런 생각까지 들 지경인 두 사람의 관계다. 소리가 냉정하게 나온다.
“ 난 모르겠으니 차라리 승호에게 가서 상의해. ”
“ 선배... ”
어차피 준성의 아이를 가진 나나가 아닌가. 만약 아이를 지울 의사가 없다면 어차피 남편인 준성을 만나든 그 아들 승호를 만나든 그쪽 식구와 직접 해결을 봐야할일이지 소리 입장에선 더 관여할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 그래서 안타깝게 도움의 눈빛을 보내는 나나를 소리는 더욱 차갑게 외면하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 전화하기 난감해서 그래 ? 그럼 내가 대신 연락해줄까 ? ”
“ 시...싫어요 그건... ”
어차피 지금 직접 만나서 솔직하게 다 털어놓기도 난감한 그런 상황정도는 이해해주겠다며 소리가 그렇게 나오기까지 하는데 그건 또 싫다며 기겁하여 손을 내젓는 나나. 소리가 한숨을 내쉬고 나나가 지금 바로 승호에게 연락하지는 말아달라고 하긴 했지만 어차피 다른 뾰족한 방도가 있는것도 아니라 소리는 승호에게 바로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결국 소리에게서 소식을 듣고 승호가 찾아왔다. 사실 승호는 나나의 임신사실 그 자체보다 나나가 소리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오갈데없는 처지고 주위에 마땅한 친구도 없어도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닌 하필 소리선배의 집에 머물 생각을 하다니. 소리로부터 연락을 받은 다음날 부리나케 달려온 승호. 일단 나나에게로 다가간다.
“ ...새어머니... ”
참 이 상황에서 호칭부터 어찌해야할지가 난감하긴 한데, 어쨌든 아직 나나와 준성이 서류상 이혼을 한 상태는 아니니 승호가 일단 나나를 그와같이 부른다. 민망함때문에라도 나나는 부끄러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런 나나의 손을 한번 잡아보며 승호가 설득하듯 말한다.
“ 일단 저와 함께 집으로 가요. ”
“ 선배... ”
그렇게 나오는 승호에게서 마치 구원의 한줄기 빛이라도 본 듯이 나나가 승호를 그렇게 부르고 승호는 승호대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는지 이렇게 말한다.
“ 임신을 하셨다면서요 ? 그럼...어쨌든...일단 집으로 가요. 아버지한테 모든걸 말
씀드리고 다시 시작(?)하는게 좋을거 같아요. ”
뭘 다시 시작하자는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그와같은 말이 입에서 나온 승호. 한편 승호의 그와같은 말에 감격이라도 했음인지 나나가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승호에게 기댄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위로하며 달래듯 나나를 안아볼 수밖에 없게된 승호. 승호에게 매달려 흐느끼는 음성으로 나나가 이렇게 말한다.
“ 선배...전 정말...전 정말 선배가... ”
“ 새어머니... ”
“ 선배가 이 아이 당장 지우리고 호통이라도 치면 어떡하나 그 걱정부터 하고 있었
어요. ”
그리고는 ‘이제 됐다’는 안도의 감정과 함께 그로인해 한층 더 승호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껴 그의 품에 안긴채 이렇게 흐느끼고 있는 나나. 승호가 어깨를 토닥여주며 달래고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건넨다.
“ 별 걱정을 다 하셨네요. ”
“ 선배...흑흑흑흑~~~!!! ”
“ 어쨌든 아버지 아이잖아요. 그러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요.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모든걸 말씀드리고 다시 시작해요 우리. ”
확실히 지금 나나는 준성의 아이를 가진것이지 승호의 아이를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근데 말하는 것으로 보아선 정말 모르는 사람이 봤을때는 나나가 승호의 아이라도 가진 여자라도 되는양 오해하기 딱 좋을 두 사람의 대화와 분위기. 그나마 이곳이 바깥이 아니고 실내라서 최소한 소리를 제외하곤 이 광경을 목격할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봐야할 판이다. 승호가 거듭 나나를 달래며 눈물까지 닦아주고 나나가 거듭 그런 승호에게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건넨다.
“ 헉~~~!!! ”
허나 순간적으로나마 좀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긴 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져서일까. 처음엔 소리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리를 피해주려 했는데 그래도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는 문제라 방문밖 저만치서 이 광경을 소리가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 상황을 인지한 나나가 수치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러워 어쩔줄을 모르고 일단 승호가 한마디 항의라도 하듯 나온다.
“ 뭐에요 선배 ? 남의 대화를 엿듣기나 하고... ”
“ 내...내가 내 방에서 마음대로 있지도 못하니 ? ”
마치 적반하장이라는 듯 항변하고 있는 소리. 딴에는 소리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하튼 이래저래 민망하고 난감한 상황 아닌가. 승호는 소리를 데리고 집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일단 그렇게 상황은 정리되는 분위기다. 임신 초기인 몸이라서인지 승호가 나나를 더욱 소중히 보호하듯이 집에서 데리고 있고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소리. 배웅도 제대로 하지 않은채 소리는 방안에 혼자 풀썩 쓰러져 혼자 나름대로의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 넌 뭐야 !!!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기어들어와. 기어들어오기를 !!! ”
승호의 아버지 준성이야 중소기업가로 직장생활을 하는 몸이니만큼 평일에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귀가를 하고, 그래서 나나의 상황을 미처 말할 겨를이 없던 상황이기까지 했던 승호. 퇴근을 하고보니 나나가 있는 것을 보고는 준성이 더욱 어이가없고 화가나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일단 승호가 그런 준성을 말리며 이와같이 말한다.
“ 아...아일 가지셨대요. ”
“ 뭐...뭐라고 ??? ”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서인지 마치 밑도 끝도 없는 말처럼 승호가 이와같이 나왔고 그래서 준성이 순간 뭘 잘못들었나 싶어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했다. 여하튼 준성의 노기가 조금이라도 풀어질 시간은 번 승호. 그리고는 차분히 사실을 밝힌다.
“ 실은 새어머니가 아이를 가지셨대요. 저도 어제 저녁에 소리선배가 전화를 해와서
그제서야 알았어요. ”
“ 뭐...뭐라구 ??? ”
이걸 기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나이 50을 넘긴 그만큼 인생을 많이 산 김준성 사장의 입장에서도 이런 경우는 웬만해선 겪기 힘든 상황이라 어찌 판단을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럽기만 하고, 어차피 승호가 이렇게 말한 이상 나나도 조금은 용기를 얻었는지 조심스럽게 남편 김준성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 병원에 가서 이미 확인까지 다 해봤어요. 2개월째래요. ”
“ 허헉~~~!!! ”
승호는 그렇다 치고 사실 가장 중요한게 결국 남편이면서 아이 아빠인 김준성의 반응 아닌가. 그래서 나나는 그런 준성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나나에게 지금 이 상황에서 어찌 반응을 보일지 몰라 더더욱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하고 준성도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질것만 같은 현기증을 느낀다. 일단 그런대로 차분하게 소파로 가서 앉는 준성. 그리고 나나보고 오라는 듯 손짓한다.
“ 일단 앉자. 앉아서 차분히 이야기나 좀 해보자구. ”
준성도 속이 복잡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기까지 하고 나나가 결국 다가와 앉는데 준성은 기가막힌지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나나를 바라본다. 하긴 어쨌든 혼인신고를 하고 두달 가까운 시간. 한집에 살면서 정상적으로 관계도 갖고 할건 다 했으니 나나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준성으로서는 다시금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운 상황. 무엇보다 나나의 정체와 승호와의 관계를 알고는 집에서 내쫒는 것으로 그렇게 상황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나나의 문제 아닌가. 근데 그 나나가 지금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니. 이걸 기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한 준성. 천천히 입을 연다.
“ 그러니까 그 아이가...분명 내 아이란 말이지 ? ”
“ 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 ”
나나도 나나지만 승호가 더욱 당치 않다는 듯 펄쩍 뛰고 있다. 나나의 인격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천의하나 만의하나 만약 준성이 나나가 가진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것이라는 의심을 한다면 대체 그게 누구의 아이란 소리인가. 그걸 생각해보니 승호가 더 어이없다는 듯 펄쩍뛰고 준성이 일단 그런 승호를 나무라듯 나온다.
“ 넌 좀 가만있거라. 아무튼 그리고...나나 당신이 내 아이를 지금 가진거라 이 말이
지. ? ”
“ 네, 여보. ”
나나에게 이미 준성을 부르는 ‘여보’란 호칭이 많이 익숙해져 있기는 한데 그러나 이 순간만큼이나 그 호칭이 두렵고 떨려온적도 없었던 것 같다. 준성은 여전히 한숨을 내쉰뒤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한참만에 무겁게 입을 연다.
“ 수용해야지 뭐 어쩌겠냐. ”
한숨을 쉬며 그렇게 나오는 준성. 나나가 감격한 듯 다가온다.
“ 여보... ”
준성의 이야기를 사실상 아이를 낳아 키우자는 그리고 나나를 다시 자신의 아내로 인정하고 받아준다는 말로 받아들였는지 감격해서 달려드는 나나. 준성이 되려 당황할 지경이다.
“ 아니 근데 이 사람이...진정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승호도 있는데...진정하라구
”
사실 장성한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 젊은 후처가 남편에게 애교나 아양을 떨며 이런 모습. 일반적(?)으로도 민망하다면 민망할수 있는 상황이 분명하다. 헌데 나나의 경우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승호의 대학 후배. 그것도 한데 승호를 짝사랑하기까지 했다는 그런 여자아이 아닌가. 헌데 그런 나나가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감격하여 자신에게 안겨들며 난리를 치다니. 나이 50에 서른살 어린 젊은 아내와 이러는 모습. 전후사정을 모르는 웬만한 중,노년 남성이 이 광경을 본다면야 부러워 죽겠을 한 장면이긴 하다만, 이래저래 지금 준성으로선 당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승호가 민망한지 피식 헛웃음을 터트린뒤 자리를 피한다.
한밤중.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마음이 어느정도 차분히 가라앉은 준성이 침실에서 나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고보면 솔직히 준성 입장에서도 고맙고 감사한일인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일주일전 그렇게 나나를 집에서 내보낼 때 그녀와의 관계는 모든 것이 끝난것으로만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들과 한때 그런 관계(?)였다는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받을수는 없는일. 그래서 이렇게 두 번째 결혼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는 절망감에까지 휩싸여 있었는데, 그런일이 있은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가 그것도 홀몸이 아니라 아이까지 품은채 돌아온 나나. 그걸 생각해보니 준성도 솔직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수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아들의 대학후배라는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진 어린 아내를 어찌 그리 쉬이 내칠수 있겠는가. 다시금 나나에 대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감정이 치솟아 그녀를 품에 안아보는 준성. 나나도 이제 다시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다시금 안도의 눈물이 고인다.
“ 여보... ”
그래도 나나 역시 준성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마음에 걸려 한마디 안 할수 없다. 그래서 말을 건넨다.
“ 승호선배...아...아니 승호씨하고는 진짜 아무 관계 아니었어요. 그냥 저 혼자 잠깐
일방적인 짝사랑만 하다 끝난거에요. 그러니 아무 염려 마세요. ”
무엇보다 그렇게 나나를 내칠 때 어떻게 자신의 아내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선배’라 부를수 있냐며 그조차도 불쾌해했던 준성이 아니던가. 그래서 호칭까지 이와같이 정정해 보이는 나나. 순간 준성이 한번 빙긋이 웃어보이더니 그래도 아직은 착잡한 감정이 쉬이 가시지는 않은 모습으로 말을 이어간다.
“ 뭐...승호 그 녀석 이야기로는...어쨌든 당신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금방 헤어
진거라며 ? ”
“ 그렇다니까요. 솔직히 사귀었다고 할수도 없는 시간이었어요. ”
“ 허허 참... ”
허나 바로 그 짝사랑의 대상이 승호였다는 것을 준성이 모를때는 그야말로 첫사랑의 상처가 깊어서 그로인해 실의에 빠지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기만 한것처럼 말하던 나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준성이다. 물론 어린 나이에 한때 한 짝사랑의 가슴앓이가 그만큼 상처가 깊고 실의가 컸던 것으로 이해해볼수도 있겠지만 지금와서 다시 그때 나나가 했던 말들을 다시 곱씹어보면 기분이 묘해질 수밖에 없는 준성. 결국 이럴때는 과거지사는 다 잊는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이제 그저 나나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어린 아내라는 점. 그것만 생각해야지 무슨 다른수가 있겠는가. 다시금 나나를 품에 꼭 안는 준성. 혹여 이런 나나를 다른이에게 뺴앗길까봐 그런 걱정이라도 순간 드는것인지 그만큼 절실하게 나나를 꼭 안아보기까지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살짝 통증까지 느끼는 나나. 천천히 준성에게서 몸을 뗀다.
“ 헌데...그럼 지금 승호녀석이 그...대학선배라는 여자랑 사귄다 그런말인가 ? ”
어쨌든 이미 승호에게서 나나가 아닌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사귀고 있다는 말은 들은뒤 아닌가. 그러나 나나를 그렇게 쫒아내고 바로 무슨 승호의 혼사문제를 논할수도 없는일이라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며 보류시켰던 준성. 헌데 이제 이렇게 되니 준성도 다시금 그 문제가 신경쓰이지 않을수가 없다. 여하튼 나나도 그 선배라는 여자를 모르지는 않을터이니 준성은 아내에게서라도 아들이 사귀는 여자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알고싶은 충동이 인다. 그래서 말을 건넨다.
“ 그럼 그 대학선배라는 여자가 운동선수란 말인가 ? 뭐...운동권 출신이란 소리는
물론 아닐테고... ”
그런말도 그전에 나나가 했었다. 운동하는 여자라던가 남성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그런 여자를 좋아해 오히려 너무 이쁘고 공주같은 나나는 질색하더란 말을. 그때도 잠시 ‘운동하는 여자’를 ‘운동권 출신’으로 오해해서 듣기도 했지만. 하긴 지금이 때가 어느땐데 요즘 세상에 80년대 그런 운동권 학생들처럼 격렬하게 반정부 활동을 하는 그런 운동권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운동권’이란 말 자체가 이미 구시대의 용어인것이고 그게 아니라 배구나 핸드볼 같은 sports에 해당하는 그런 운동(運動)하는 여자를 좋아하더라는 승호의 취향. 사실 승호의 아버지 준성 입장에서도 이제야 처음 알게된 아들의 특이한 이성취향인지라 다소 걱정도 되고 우려의 말이 나오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일단 나나가 부인하는 말을 건넨다.
“ 아니에요. 소리선배는...운동선수 출신은 아니고요. 그냥 달리기를 좀 잘한다던가
그런 이야긴 저도 들어본적은 있지만 그냥 성격이 남자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좀 터
프한면이 있는 걸크러쉬 스타일일뿐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는 아니에요. ”
“ 허어...그래 ? ”
여하튼 걱정은 되는듯한 준성의 모습. 아무리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하필 그런 여자를 사귄다는게 부모 입장에선 좀 떨떠름하고 내키지 않는 일일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나나가 되려 잘된일인가 싶은지 이렇게 운을 떠본다.
“ 여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 후우...글세... ”
헌데 지난 일주일. 승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나가 이렇게 일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올수도 없었겠지만 그전에 소리가 승호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않았어도 승호가 나나의 임신사실을 알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나는 그사이 소리네 집에서 하루이틀이라도 의탁을 했던 셈이니 나나 입장에서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은혜를 입은 고마운 선배이기까지 하다. 헌데 그런 승호와 소리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막는다. 그것도 양심상 못할일이긴 하다. 이대로 정말 승호와 소리의 관계를 방해해야하나. 아니면 두 사람의 관계도 그냥 인정해줘야 하는것인가. 나나도 다시금 심경이 복잡해진다. 준성이 잠시 고민을 하는듯하다 이렇게 입을 연다.
“ 헌데 당신이 그러지 않았나 ? 혹시 승호가 이혼가정에서 자라나 여자를 가까이서
대하거나 함께 지낼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그래서 여성관이 왜곡된 것 아니냐는...
”
“ 그렇게 말했었죠. ”
게다가 공교롭게도 준성에 이어 승호까지 2대 독자이기도 해서 친누이는 고사하고 사촌도 없는 상태인 승호. 물론 준성의 경우엔 그래도 준성의 부모님 세대는 형제가 많은 것이 보편적인 시대였으니 승호라면 모를까 그 아버지 준성은 준성의 아버지가 5남매중 둘째고 어머니가 6남매중 셋째라 준성은 그래도 사촌형제가 많아 그중 사촌누이들을 어릴때부터 명절같을 때 이따금씩 보며 자라온 그런 사람이긴 하다. 물론 사촌이란게 과거 5대8촌이 거의 한동네 살다시피 하던 농경사회라면 모를까 산업화가 되고 핵가족 사회가 되면서 어릴때면 모를까 자라서는 굳이 가까이 지내야하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않은 경우에는 사촌도 성인이 된 뒤에는 남보다 못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하다. 어쨌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혹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 승호가 그런 ‘왜곡된 여성관’을 가진게 된 것이 아니냐는 그것을 우려하는 상황. 준성이 나나에게 말을 건넨다.
“ 그럼 당신 생각은 어떤가 ? 내가 그 승호가 사귄다는 연상의 여자를 반대했으면
좋겠나 ? ”
“ 솔직히... ”
망설이는 듯 하다 운을 떼는 나나.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승호선배...아니 승호씨하고도 기왕이면 사이가 나빠지지 않고 잘 지내고 싶은 마
음도 있지만... ”
“ 호칭은 뭐 당신 편할대로 해요. 그날은 내가 너무 화가나서 그런거지만 어차피
그런게 하루이틀에 고쳐지는건 아니니까. 다만 너무 오래가지만 않게 주의해줘요.
”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어린 아내가 ‘선배’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한 준성이었기에 나나도 승호에 대한 호칭을 조심하려 하고 있지만 이제 그 부분도 되려 준성이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나나의 말이 이어진다.
“ 전 솔직히...승호선배가 기왕이면 정상적인 평범한 여자랑 결혼했으면 하지...소리
선배처럼 이상한 여자를 만나진 않않으면 좋겠어요. ”
그러고보니 소리를 대놓고 ‘이상한 여자’라고까지 칭하고 있는 나나. 그러고보면 준성 입장에선 아직까지 이름조차 몰랐던 아들이 만난다는 여자 이름을 이제야 처음 알게된 것이긴 한데 다만 오늘은 어쨌든 일주일만에 어린 아내 나나가 다시 돌아온날이라 복잡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 이만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 뭐 오늘 꼭 결론내야할 이야기는 아닐터이니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오늘은 피곤하니 이만 잠자리에 들도록 하자구. ”
“ 사랑해요...여보... ”
그런 준성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하는 나나. 준성이 나나를 안는다.
“ 나도 당신을 사랑해. ”
어쨌든 하마터면 실패로 끝날뻔한 두 번째 인연이 다시금 온전히 제자리를 찾은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처지인 준성. 그래서 한결 더 행복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나나를 안아보며 말한다.
“ 기왕 이렇게 된 것... ”
“ ...... ”
“ 우리 진짜 행복하게 잘 살아보도록 합시다. ”
어린 나나를 이쁘고 사랑스러운 듯 거듭 쓰다듬어주면서 말하고 있는 준성. 그의 말이 이어진다.
“ 기왕이면 승호 그 녀석이 질투할정도로 아주 보란 듯이 다정하고 행복한 부부로
잘 살아보자구. 무슨말인지 알겠지 여보 ? ”
어쨌든 한때 승호를 짝사랑하긴 했었는데 승호가 그런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상처받았다는 나나. 바로 그 점을 의식해서인지 일부러 이렇게까지 말하는 준성. 나나가 그런 준성의 마음씀에 고마움을 느끼며 그의 품에 안긴다.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이는 나나. 승리한듯한 모습이다.
- 8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