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팬픽 - 다이아 기희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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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안) 귀여운 새어머니 2 

 


 “ 승호야 !!! 승호야 !!! 김승호 !!! ” 

 어느덧 화창한 봄날씨라고 하긴 그렇고 이제 슬슬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무렵쯤. 강의가 끝나고 집(하숙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런 승호를 뒤에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승호를 그렇게 부르며 다가오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4학년 선배 김소리. 그러고보면 승호도 어느덧 3학년이긴 한데 그 승호가 1학년 신입생이던 시절부터 한 살위인 2학년 선배 소리와의 인연과 친분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렇게 같은대학 1년 선후배 사이로 누나-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인 소리와 승호. 헌데 그런 소리가 승호에게 무슨 다급한 용건이라도 있는것인지. 일단 승호가 무슨일인가 궁금해서라도 소리가 오는쪽으로 다가가보는데 어느덧 승호 앞까지 다다른 소리는 일단 숨을 헐떡거리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 승호야...그러지말고 내 체면좀...제발 내 체면좀 살려줘. ” 

 “ 무슨소리에요 그게 갑자기 ? ” 

 숨을 고르면서 겨우 침착함을 되찾으며 나온 소리의 말. 허나 승호는 여전히 무슨말인지 몰라 의아해하는 분위기고 그런 가운데에서 소리의 말이 이어진다. 

 “ 나나좀 한번만 만나 달라고. OO 학번 임나나. ” 

 “ 나나...를요 ? ” 

 나나라면 승호도 아주 모르진 않는다. 여하튼 금년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만나 알게된 그런 1학년 신입생이고, 그 나나를 이후에도 학교안에서 두어번정도 마주친일은 있다. 허나 그 외에는 승호가 나나에게 딱히 관심은 없었던 듯 한데, 그런 승호에게 지금 소리는 사뭇 간곡하게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 나나가...너 좀 한번만 소개시켜달라고 해서...하도 졸라서 나도 힘들어. 그러니 제 

  발 날 생각해서라도 한번만 만나달라구. ” 

 “ 네에 ? ” 

 이른바 나나와의 소개팅 자리라도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인것인지. 사실 그런 이야기를 이전에도 승호가 소리에게서 들어보진 못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아마 지난주에도 그리고 한 두어주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소리가 그져 스쳐 지나가는 말처럼 해서 승호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가령 이런식이었다. 

 “ 승호야...너 이번에 OO 학번 새로 들어온 임나나 어떻게 생각하니 ? ” 

 “ 야, 나나 걔가 너한테 관심있다고 그런다니까... ” 

 사실 소리선배 성격이 평상시 실없는 농담이나 장난같은 것을 즐기는 그런 성격은 아니다. 솔직히 승호 입장에서 1학년떄부터 지켜본 소리의 성격은 가령 남학생들하고도 곧잘 어울리고 달리기나 농구 같은것도 종종 즐기는 그런 성격이긴 했는데, 허나 그런 외향적인 활동과는 달리 평상시 인간적인 교류에서만은 그런 농담이나 장난은 잘 안하는 편인지 오히려 진지하고 차분한편에 속하는 그런 성격의 여자가 소리선배였다. 헌데 그런 선배가 저런말을 했다면 적어도 실없는 농담은 아니었을텐데, 그러나 승호가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였던것인지 이후 그 문제를 더 언급하거나 하는일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5월도 다 지나고 6월로 접어드는 그런 무렵인데 그런 어느날 하교길에 이렇게 소리가 다급하게 승호를 불러세운 것이다. 

 “ 그러지말고 나나 한번만 만나줘. 걔가 하도 성화라서 나도 미치겠다니까. ” 

 이쯤되면 확실히 그런 이야기들 자체가 소리선배가 실없는 농담으로 했었던 것은 분명 아닌 것 같고 승호도 어쨌든 이번 1학년 신입생중 임나나라는 이름을 가진 그런 학생이 있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소 짜증스럽다는듯 이렇게 나온다. 

 “ 누나, 저 그런데 관심 없다니까요. ” 

 “ 무슨말이야 ? 나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야 ? 마음에 안든다구 ? ” 

 “ 그런게 아니라...저 원래 여자고 연애고 그런거 관심 없어요. 누나도 아시잖아요.  

 ”  

 “ 김승호... ” 

 이렇게까지 나오는 승호. 정말 비단 나나뿐만 아니라 어느덧 대학 3학년이 되도록 그 흔한 미팅이며 소개팅 같은 자리에 한번 나가본적 없는 그런 승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딱히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냐하면 그런쪽도 아니고 가끔 보면 승호도 혼자 호프집도 가고 비디오방도 가고 즐길만한 것은 다 즐기며 사는 그런 ‘보통 대학생’일 뿐인데 유독 여학생에게만은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승호. 소리가 의아해서 묻는다. 

 “ 승호 너 진짜 그럼 연애나...아니 뭐 꼭 연애까진 아니더라도 소개팅이든 뭐든 그 

  런거 전혀 관심없는거야 ? ” 

 “ 아...아뇨 뭐 꼭 관심이 없다기 보담도... ” 

 처음엔 그렇게 말을 했지만 그래도 단정적으로 그렇게 ‘이성을 사귀는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좀 난감했는지 묘하게 말을 얼버무리고 있는 승호. 결국 이런 핑계를 댄다. 

 “ 그리고 어차피 군대도 가야하잖아요. 근데 지금 여자부터 사귀는건 솔직히 부담스 

  러워요. ” 

 그러고보면 어느덧 3학년이지만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승호이기도 하다. 보통은 그래도 한 1학년이나 2학년까지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는게 보편적인 것을 보면 3학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군대에 안 간 것은 좀 늦은편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다. 허나 어쨌든 남자니까 2학년이든 3학년이든 군대에 가야하는 문제를 고민해야할 시기인것만은 분명한 사실. 다만 소리가 좀 의아한 듯 묻는다. 

 “ 승호 너 2대독자라고 하지 않았어 ? ” 

 “ 누나. 그거 없어진지가 벌써 언제인데 그래요 ? ” 

 확실히 ‘2대독자’가 군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로 어느덧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허나 아무래도 여자는 남자에 비해 군문제에 대한 정보가 약해서 그런지 어디서 얼핏 ‘2대독자는 면제대상’이란 소리를 들은 것 같긴 한데 그 제도가 이미 오래전에 폐지되었다는 사실까진 모르고 있는 듯. 따라서 승호가 그런 소리에게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나오고. 그러자 살짝 무안해진 소리가 다시 말을 돌린다. 

 “ 승호야 그러지말구... ” 

 “ 누나... ” 

 “ 그냥 누나 체면 생각해서라도 한번만 만나주는건 안될까 ? 뭐 꼭 소개팅을 한다 

  고 그게 꼭 결혼을 전제로 사귄다던가 그런쪽으로 이어지는건 아니잖아. 그러니 뭐 

  정 만나보다 영 안 맞으면 헤어질수도 있는거고...또 소개팅 나가서도 상대가 영 마 

  음에 안들면 거절하면 그만인거구. 그렇잖아. 그러니 그냥 누나 체면 한번만 세워 

  준다 생각하고 만나줘. 응, 승호야 ? ” 

 그렇게 승호의 두손까지 꼭 잡으며 애원하는 소리의 모습. 안쓰러워보일 지경이다. 무엇보다 소리가 이 정도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나나라는 후배가 김승호라는 3학년 선배한테 관심이 있다며 한번만 하다못해 소개팅 자리 같은거라도 만들어달라고 어지간히 애원을 했던듯하다. 하긴 아직 1학년 신입생 여자라면 아직 여러 가지로 세상물정 모르고 서투른 나이. 여자가 먼저 남자한테 고백한다는거. 예의가 아니고 좀 헤퍼보일수도 있다는 식의 소리를 어디서 들었을수도 있고. 여하튼 이래저래 자신이 마음에 두고있는 남자가 있으면서도 쉬이 고백 못하는. 그런 흔한 1학년 신입생 여성중의 하나가 그 임나나란 후배인 듯 하다. 여하튼 승호의 손까지 잡아보며 애걸복걸하는 소리의 모습을 보니 되려 이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보이기까지 할 지경이고 승호가 이래저래 난감하고 복잡한 심경이 되어 어쩔줄 모르고 있다. 

 


 사실 소리선배가 아닌 다른 여학생 – 선배가 되었든 동기가 되었든 – 이 부탁을 했다면 승호가 더 야멸차고 단호하게 거절했을련지도 모른다. 허나 하필 그게 소리선배라서 승호로선 단호하게 거절하기가 더 어려웠었다. 소리에게 어떤 카리스마가 있거나 중압감이 느껴져선 아니고, 그냥 승호가 원래 소리에게 갖는 감정 자체가 그랬다. 이런건 어떤 사랑이나 연애와 관련된 감정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고 웬지 ‘이 사람만은 상처주고 싶지 않다’ 혹은 ‘이 사람만큼은 내가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뭔가 그런 느낌이 드는 그런 여자라고나 할까. 달리 비유하자면 정말 아주 싸이코패스처럼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그 사람을 꼼짝못하게 만들 수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하나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승호에게 있어서 소리는 그런 존재쯤 된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딱히 소리가 승호에게 지금까지 잘해주거나 승호가 은혜를 입었거나 한 일도 별로 없는데 승호 입장에서 소리는 어쨌든 상처주거나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대상. 그런 여자가 소리였던 것이다. 

 다만 나나가 딱히 거기까지 파악하고 소리한테 애원한 것 같지는 않고 여하튼 마음에 드는 선배가 있는데 차마 말붙이긴 어렵고 대충 먼발치서 지켜보니 소리라는 4학년 선배와 그런대로 가까이 지내는 것 같아서 소리에게 그런 부탁을 한것일뿐. 일의 공교로운 진행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여하튼 소리선배의 간곡한 부탁이기도 했으니 결국 소개팅 날짜를 잡고 약속장소로 나간 승호. 이미 소리는 그 자리에 없고 나나만 차분하고 다소곳한 옷차림으로 그 자리에 와 있었다. 무엇보다 옷차림만큼은 제법 신경쓴 그런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 학교에서 보는 나나의 옷차림만큼은 수더분한 차림새의 흔한 여대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여하튼 오늘따라 유난히 신경써서 입은듯한게 느껴지는 나나의 차림새. 그리고 두 사람은 마주앉게 된다. 

 “ 이름이...임나나라고 했죠 ? ” 

 그러고보면 승호 역시 이런 소개팅이나 미팅자리에 나와보는건 처음이긴 마찬가지다. 가령 학교나 써클모임 같은데서 남녀 여럿이 어울리거나 그런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은 승호도 경험이 아주 없진 않겠지만 두 살 어린 여대생과 이렇게 단둘이 마주앉아 보는 것은 오늘이 사실상 처음. 그렇다고 아주 초면도 아니고 여하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도 면식이 있고 이후에도 아주 못본 사이가 아니라서 첫 인사를 어찌 건내야할지 승호도 여기까지 오면서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 다만 어쨌든 면식이 있는 사이에서 마치 초면처럼 ‘실례지만 성함이...’ 혹은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런식의 인사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런식으로 운을 뗀 것이다. 그러고보면 3학년 김승호도 이런식으로 사회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는 마찬가지.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 선배... ” 

 나나는 일단 승호를 그와같이 부르고, 다만 그녀 역시 성격이 쑥맥인지라 무슨말을 어떻게 붙여야할지 난감하긴 마찬가지. - 오죽했으면 4학년 선배중 그나마 승호와 친해보이는 소리까지 찾아가 그런 애걸복걸을 다 했겠는가. - 허나 나나로선 모처럼 찾아온 이 천금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인지 이 자리가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던 승호와는 달리, 그래서인지 대화 분위기를 오히려 나나가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 그냥...우리 만나면 안 돼요 ? ” 

 여하튼 승호랑 사귀어보고 싶다는 의사를 그와같이 밝힌셈인 나나. 승호가 여전히 얼떨떨한 가운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그냥 가끔...식사도 하고...차도 한잔 하고...영화도 가끔 같이 보고... ” 

 “ 그럼 그게 결국 연애하는게 되는거네요 뭐. ” 

 이런 자리에서 아무리 평상시 면식이 조금 있는 대학후배라도 대놓고 말을 놓는 것이 좀 그렇다는 생각도 들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로 말투까지 바꾸고 만 승호. 일단 대화는 그런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승호는 승호대로 여하튼 내키지않는 자리에 나온것이기 때문에 괜히 말돌릴 것 없이 솔직하게 자기생각을 말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했음인지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만다. 

 “ 절 어떻게 생각하시고...이런 자리까지 만들려고 하신건지는 모르겠지만... ” 

 “ ...... ” 

 “ 어쨌든 지금 전 미팅이든 소개팅이든 딱히 관심이 없어요. 솔직히 여자를 사귄다 

  는것도 부담스럽고. 그러니... ” 

 “ 선배... ” 

 나나도 아주 바보가 아닌이상 이런식의 말을 거절의사로 이해 못하진 않을터이고 그래서 뭔가 안타까와진 목소리로 그렇게 승호를 부르고. 승호는 쥬스 한잔을 음미하고는 말을 이어간다. 

 “ 제가 볼때는 나나씨는 충분히 미인이고 매력적인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중에 충분히 좋은 인연을 만나실수 있을거에요. ” 

 예의상 하는 표현이 아니라 나나는 솔직히 미인이 맞았다. 그래도 평상시 학교에서 수더분한 옷차림새로 있을때까진 그런걸 못느꼈는데 오늘 이렇게 제대로 차려입고 나온 나나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런게 느껴졌다. 길가는 아무 남자나 봤어도 쉬이 반할만한 그런 미모라고나 할까. 허나 그런 지나치게 매력적일정도로 미인인 여자는 오히려 승호가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거듭 정중하게 승호는 거절의 말을 입에 담고 있다. 

 “ 어쨌든 전 지금 여자를 사귀든 뭘 하든 그런 문제에 관심 없습니다. 또 머지않아 

  군대도 가야하고 하니까...여하튼 나중에 나나씨가 좋은 인연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  

 적당히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헌데 승호가 이렇게 나오자 나나가 다급하게 승호를 막아섰다. 

 “ 선배... ”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데 울상까지 된 나나가 이렇게 말한다. 

 “ 이러지 말아줘요 선배. ” 

 첫 소개팅자리라기보단 마치 진짜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연인이라도 막아서는 듯이 나오는 나나. 승호가 황당해서 순간 주위를 살피기까지 하는데 나나는 승호를 확 안아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승호앞을 완강히 막아서고 있었다. 승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나나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러지말고...그냥 몇 번만 만나주면 안 돼요 ? 선배...제발... ” 

 그렇게 울상. 진짜 울음까지 터트릴것만 같은 나나의 모습이라 이 그리 넓지도 않은 커피숍 안에서 승호로선 어찌 대처를 해야할지 몰라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 일단 조심스럽게 나나를 살짝 밖으로 밀어내며 말을 건넨다. 

 “ 도...도대체 저보고 뭘 어쩌라는건데요 ? ” 

 “ 그냥 몇 번만 만나줘요 선배. ”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까지 해보이는 나나. 승호로선 진짜 난감하기만 할 따름인 장면이다. 정말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다른 손님이나 종업원들은 이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될까. 승호로선 진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고 어쩐 아찔한 감정까지 느낄 지경인데 일단 나나를 달래주긴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준다. 

 “ 지...진정하세요. 우실것까진 없잖아요. ” 

 “ 그냥...한번만 만나줘요...아...아니 몇 번만 만나줘요. 그리고 그 다음에 결정해도 

  상관없잖아요. 안 그래요 선배 ? ” 

 확실히 말주변이 없기는 나나도 승호와 별반 다를것이 없는 것 같다. 뭔가 말로서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한다거나 할수 있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게 확실한 나나. 아직 어린 여대생이라 그럴수도 있는 것 같고. 여하튼 나나는 그저 승호에게 애원하며 (한번이 되었든 몇 번이 되었든) ‘그저 만나주기만 해달라’는 식의 말만 반복하고 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하기까지만 한 승호. 결국 승낙하고야 말았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차선의 방편이기까지 했다. 

 “ 아...알았어요. 만나줄께요. 그럼 되는거죠 ? ” 

 커피숍 안에서 일어난 이 작은 소란에 눈길이 쏠리는 다른 종업원,손님들때문에라도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해야곘다는 생각에 승호가 결국 이렇게 나오고 말았다. 나나가 너무 완강히 앞을 막아서고 있어서 다른곳으로 달아나버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 그래서 결국 수락해버린 나나의 제안. 승호의 말에 나나가 뛸 듯이 기뻐한다. 

 “ 이얏호~~~!!! 신난다. 그럼 우리 이제 진짜 사귀는거 맞죠 ? ” 

 그렇게 그 미인형의 얼굴이 해맑아지기까지 하니 오히려 순간 어떤 혐오스러움까지 일어날 지경인데, 여하튼 상황은 빨리 마무리해야겠기에 승호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거듭 나나의 말에 ‘네,네 맞아요’ 하는식으로 답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얼떨결에 사귀는(?) 사이가 되어버린 승호와 나나. 그렇게 시작되었다. 

 


 애매하게 시작된 나나와의 만남인연의 시작. 사실 애초에 승호 입장에서 내키지도 않는데 나가게 된 소개팅 자리였고, 그나마 적당히 거절의사를 밝히고 자리를 뜨려는 것을 나나가 완강히 막아서는 바람에 어쨌든 상황정리는 해야할 것 같아 얼떨결에 수락해버린 나나의 제안.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승호는 사태를 대체로 안일하게 보고 있었다. 가령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는 굳이 뜨거운 연애경험까지 없어도 한 대학 3-4학년 정도의 인생경험,사회경험만 있어도 충분히 들어봤을만한 이야기고 또 공감할수도 있는 이야기다. - ‘군대간 사이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이미 70-80년대부터 비일비재했던것만 봐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 아니던가. 즉 승호의 생각은 처음 한 두어번 정도는 나나가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든 영화를 같이 보자고 하든 적당히 한 두어번 만나주다 이후 적당한 핑계를 대며 회피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나와 멀어지는 시간을 만들면 두 사람 사이는 간단하게 정리가 될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나로부터 같이 영화라도 한편 보고 싶다는 제안을 승호가 순순히 수락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는 그다지 유명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굳이 보자고 한걸보면 나나로선 어쨌든 승호와의 단둘의 시간을 갖고싶은 핑계거리를 만든듯한데 영화는 일단 좀 흔한 3류 신파극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 요즘도 저런 영화를 만드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 고전(古典)적인(?) 스토리였다. 대충 불치병을 앓는 여자주인공이 있고 남자는 그 여자주인공을 정성껏 곁에서 간호하며 하지만 보람도 없이 결국 여자는 세상을 떠나며 남자는 그녀를 평생 못잊고 살아간다는 어떻게보면 진짜 60-70년대 한국 영화에도 저런 소재는 흔하지 않았을까 싶은 신파영화였다. 헌데 승호는 아무래도 취향에 안 맞아서인지 다소 영화가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적당히 ‘시간만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자리 나나는 훌쩍훌쩍 울면서 그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라도 그렇지 뭐 저 정도 영화에 유치하게 질질 짜고 그러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식사를 같이 하면서 나나는 심지어 이런 이야기까지 했다. 

 “ 선배는 어떻게 생각해요 ? ” 

 “ 어떻게 생각하다니 ? 뭘 ? ” 

 “ 어떤 한 여자를 바라보며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남자. 그런 사랑에 대해서 어떻 

  게 생각하냐구요 ? ” 

 영화 내용이야 둘째치고라도 평상시 그런 생각까지 해본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승호는 그저 시큰둥하게 반응할뿐이었다. 그런 승호의 태도가 좀 안타까운지 나나가 이번엔 이렇게 물었다. 

 “ 선배 그럼 한번 이렇게 물어볼께요. ” 

 “ 또 뭘 물어보고 싶은건데 ? ” 

 “ 만약 제가 어디가 아프거나...정말 고치기 힘든 불치병이라도 걸렸다면... ” 

 “ 지금이 원시시대냐 ? 요즘 못 고치는 병이 어디있어 ? 정말 무슨 암같은 중병이라 

  도 걸린 경우라면 모를까. ” 

 “ 선배... ” 

 어떤 달작지근한 답변이라도 원했던것일까. 승호가 너무 시큰둥하고 어찌보면 무뚝뚝해 보인다 싶을 정도로 이렇게 나오자 나나가 결국 살짝 짜증을 냈고, 그러면서 투정부리듯 이렇게 말했다. 

 “ 무슨 그런말이 다 있어요 ? 재미없게... ” 

 ‘그래, 나 재미없는 남자니까 그만 만나자. 헤어지자’ 딱 이런말을 하면 좋은 타이밍인 것 같긴 한데, 다만 승호는 이때 그런 판단력까지 들지는 않았던것인지 그저 당혹스러운 기색만을 내비친채 아무런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헌데 나나가 문득 다른 궁금한 것이 있는지 이렇게 물었다. 

 “ 선배 그런데 말이에요... ” 

 “ 뭐가 또 궁금한건데 ? ” 

 “ 소리선배하곤 그냥 친한 누나-동생 사이인거죠 ? ” 

 여하튼 애초에 4학년 소리에게 애걸복걸하다시피 해서 그 소리가 마련했던 두 사람의 소개팅자리. 허나 적어도 나나 역시 소리랑 승호가 그만큼 친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터이고, 물론 요즘세상에 누가 유치하게 겨우 그런걸 갖고 질투의 감정까지 느끼겠냐만 여하튼 확인하고픈건 확인하고 싶은것인지 이와같은 질문을 건넨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때까지만 해도 승호도 소리를 그저 (상처주거나 함부로 대하고 싶지만은 않은) 그런 친한누나 정도로만 생각했는지 그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 나나 너도 그러고보면 생각보다 순진하구나. ” 

 “ 제가요 ? ”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진것일까. 나나의 그 미인형 얼굴이 (솔직히 승호 입장에선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다시금 해맑은 미소로 변한다. 일단 승호의 말이 이어진다. 

 “ 소리선배하곤 그냥 친한 누나-동생 같은 사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솔직히  

  소리선배 입장에서도 나 그저 어리고 귀여운 동생 그 정도로밖에 생각 안할걸 ? 

 ” 

 솔직히 대여섯살 이상 연상녀-연하남 커플도 흔하게 볼수 있는 시대에 그것도 이미 20대 성인이 되어 만난 사이에서 한 살차이가 그리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만 그래도 2학년 선배 입장에서 만났던 1학년 후배라면 충분히 ‘어린아이’처럼 느껴질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법 설득력있게 소리와는 그런 관계가 될수 없음을 역설하기까지 하는 승호. 그러자 나나가 이렇게 말한다. 

 “ 휴우...다행이다. ” 

 안도의 한숨까지 내쉰뒤 다시금 해맑게 웃는 나나.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 저 솔직히 걱정했어요. 제가 바보짓한건 아닌가 싶어서요. ” 

 “ 그건 또 무슨소리야 ? 바보짓이라니 ? ” 

 “ 만약 이미 소리선배랑 선배가 그런 사이라면...제가 얼마나 바보같아 보였겠어요 ? 

  사실은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인데 그런것도 모르고 제가 승호선배를 만나게 해달라 

  고 소리선배에게 애원한거였으면... ” 

 “ 아하하핫~~~!!! ” 

 적어도 아직까지는 승호 입장에서 어처구니없고 어이없는 소리로 느껴져서일까. 그야말로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는 듯 그와같은 웃음소리를 터트린다. 하도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뱉을법한 웃음소리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가는 승호. 

 “ 별 걱정을 다 하고 있었구나. 어쨌든 소리선배와는 그런사이 아냐. 애초부터 그런 

  관계가 될수 없는 사이라니까. ” 

 대학 1학년 신입생때 마치 친누나가 동생 얼르고 타이르듯이 혹은 학교에서 젊은 여선생이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남학생을 가르치듯이 그렇게 시작된 관계라면 혹시 남자 입장에선 다른 생각을 할수 있을지 몰라도 여자 입장에서 그런 상대를 이성으로 생각하는 감정이 일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쨌든 소리와는 결코 그런 사이가 될수 없음을 거듭 승호가 설명하고 있고 나나가 다시 미소띤 얼굴로 이렇게 묻는다. 

 “ 그럼 우리 앞으로 이렇게 계속 만나도 되는거죠 ? ” 

 “ 되지 !!! ” 

 어떤 비유를 하면 좋을까. 굳이 다른 비유를 하지 않아도 승호는 이순간 자신이 ‘적당히 두어번 만나주다 자연스레 핑계를 대가며 멀어지자’고 스스로 결심한 그 ‘작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없이 나나의 물음에 맞장구치며 대답해버린 ‘되지’라는 말. 자신이 그 순간 그렇게 대답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날 나나와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뒤 한참 지나서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날 발언 실수를 한것만 같아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나 앞에서 자기 스스로만 세운 ‘비밀작전’을 노출시킬수는 없는것이지만 최소한 나나 입장에서 ‘앞으로 계속 만나도 되는 상대’라는 그런 기대감을 갖게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바보. 무슨 작전을 이렇게 처음부터 실패한단말인가. 그 자책감에 잠을 못이루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나와의 두 번째 만남자리를 갖게 되었다. 

 


 사실 승호가 나나와는 안 맞는게 많아서 이제 그만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물론 애초부터 정히 나나의 마음도 상하지 않게하고 소리선배의 체면도 살려주려면 한 두어번 적당히 만나주는척 하다 차츰 핑계를 대고 멀어지는 방식을 택하려 했던것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최소한 서너달 정도는 소요되려니 그 정도의 예측을 했던 것이다. 허나 그렇게 막상 나나를 세 번,네번 만나보고 나니 ‘이 여자는 도무지 나랑 안 맞는 여자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어 시간낭비 그만하고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나나와의 소개팅자리가 있은지 한 두달 아니 한달이나 좀 지났나 하는 시점부터 하게되었다. 그래서 하루는 나나는 순진하게 같이 식사를 하든 영화를 하든 또 만나자는 전화에 나가서는 나나 입장에선 생각조차 못한 뜻밖의 말을 건넨 것이다. 

 “ 나나야. ” 

 “ 네, 선배. ”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번득이며 승호를 바라보고 있는 천진한 나나. 승호는 물 한모금을 마신뒤 말을 이어간다. 

 “ 근데 솔직히 우리 너무 안 맞는거 같구나. ” 

 “ 네 ? ” 

 나나는 순간 자신이 뭘 잘못들었나 싶어 귀를 의심하고 있었고 그러나 승호는 굳이 이런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나나는 자신과 안 맞는 여자라는 생각을 굳히고 있는중이다. 애초 처음에 그녀와 영화를 보러갔을 때 그저그런 신파영화를 보면서 눈물 질질짜는 모습도 마음에 안들었지만 나나는 요즘아이들 답지 않게 신나는 댄스음악이나 아이돌 노래보다는 트로트나 때론 분위기있는 발라드 그런걸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식성도 마찬가지라 나나는 의외로 김치나 된장찌개,부침개 이런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던 반면 승호는 그런류의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안맞는 여자와 어찌 원만한 관계가 지속될수 있을것이란 생각을 할수 있을까. 더 늦기전에 시간낭비하지말고 ‘이쯤에서 정리하자’는 생각만 거듭 하고 있을뿐이다. 

 “ 나나야. 내가 너 처음 만났을때도 이야기했지만 넌 충분히 매력적이고 미인인 여 

  자야. 그러니 나 아니더라도 이 다음에 더 좋은 인연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거 

  라 생각해. ” 

 “ 선배... ” 

 안타깝게 부르는 나나. 허나 이미 결심을 굳힌 승호는 거칠것이 없다. 

 “ 게다가 그러고보니 나 아직 군대도 가지 않았고...진짜 나도 머지않아 군대가는 문 

  제 결심도 해야해. 그러니 이래저래 너한테 괜히 못할짓 하기전에 이쯤에서 정리하 

  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거야. ” 

 “ 기다릴께요 선배 !!! ” 

 군대 이야기가 나오자 나나는 마치 이미 그런것쯤은 모든 것을 각오하고 결심하고 있는듯한 태도로 이렇게까지 나오고 있다. 다급하니까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은것인지 아니면 진짜 이미 그런 결심까지 하고있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나나가 승호와 마치 오래 깊이 사귄 연인이라도 되는양 이렇게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승호는 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하긴 요즘은 군복무기간이 많이 줄긴 했지만 2년반이나 3년을 가는 시절이든 1년반이나 2년만 가도 되는 요즘 시대든 만약 여자 입장에서 그 남자를 자신의 평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애매한 경우에는 확실히 그게 문제다. 1년이든 2년이든 3년이든 그 확실치도 않은 관계에서 마치 수절과부라도 되는양 무작정 남자가 제대할때까지 기다리라는말.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러니 남자쪽에서 기다려달라고 애원해도 여자가 ‘곤란해. 좀 생각해볼게’ 이런식으로 나오는게 사실 자연스러운것인데 지금 나나는 승호가 아직 ‘군대간다’는 문제를 아직 확정한것도 아닌데 마치 모든 것을 결심하고 각오한 여자처럼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없어 승호가 나나를 타이르듯 말한다. 

 “ 공연히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지금 미리 생각없이 내뱉지 마라. 그러다 나중에 괜 

  히 후회할일 만들지 말고...지금 우리 이쯤에서 정리하는게 좋아. ” 

 “ 도대체 언제 군대간다는건데요 선배 ? ” 

 허나 그런식의 질문이 승호를 다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실 승호가 아직 군대를 안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3학년까지 마치고 다녀오겠다는것인지 아예 졸업까지 하고 가겠다는것인지 그 문제까지 아직 결심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 나온 군대 이야기는 나나와 헤어질 구실을 적당히 만들기 위해 꺼낸 이야기일뿐인데 나나는 지금 마치 모든 것을 기정사실화해버리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난감하고 난처한 지경인 승호. 다시 나나를 설득해보려한다. 

 “ 거듭 말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 미리 지금 생각없이 내뱉지는 마. 내가 군대를  

  가고 안 가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건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우리 사인 정리하는게 좋다 이거지. ” 

 “ 도대체 뭐가 문제인건데요 선배 ? ” 

 군대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사실상 나나와 헤어지자(? - 근데 사실 ‘헤어진다’는 말도 이 상황에서 어폐가 있는 것이 승호 입장에선 나나를 그저 예의상 몇 번 만나준것에 불과한데 나나가 이것을 ‘사귀는 것’으로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 또한 곤란하다. 솔직하 남녀가 꼭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직장생활을 하던가 종교서클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공적인 문제로 둘이 식사를 하거나 차라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있을수 있는것이고) 단둘이 한두번 식사를 하거나 차한잔 마실일 정도는 충분히 생길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단지 식사 한두면 하고 차 몇 번 같이 마시고 영화 한두번 같이 봤다고 그게 마치 무슨 깊은 사이인양 단정해버린다는것도 분명 곤란하다면 곤란한 문제다.) 그래서 승호가 한숨을 쉬며 결국 ‘이 아이 나한테 오만정이 다 떨어지게 만드는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약한 여자한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찌보면 끈질긴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천진난만하고 세상물정 모르는것인지. 이렇게 안타깝게 달라붙으려 애쓰는 여자를 떼어내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 

 “ 나나야. 기왕 이렇게 된거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마. ” 

 “ 말해봐요 선배. 제가 고칠께요. ” 

 뜬금없이 뭘 고치겠다는것인지. 만약 자신의 성격이나 태도 같은게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고치겠다는 의사표시로 봐야하긴 하겠지만 지금 승호가 그런 문제 때문에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승호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괜히 빙빙 말돌릴 것 없다는 듯 정면돌파 하기로 한다. 

 “ 나 원래 너같은 애 싫어. ” 

 “ 네 ??? ”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나오자 나나도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도 그래도 자신이 순간 뭘 잘못들은것인가 싶어 이렇게 되묻기까지 한다. 일단 승호의 말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 이런말 굳이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 원래 너무 미인이거나 공주병 같은 그런 스 

  타일은 딱 질색이었어. 솔직히 나한테 너무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 

 “ 선배... ” 

 ‘너무 이뻐서 싫다’는 말을 세상에 공감해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지금 승호는 그저 자신의 솔직한 고백을 하고있을뿐이다. 상대가 이해해주건 말건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승호 입장에서 나나처럼 너무 이쁘고 공주같은 스타일은 자신에게 부담스럽고 싫다는 것. 승호의 설명이 이어진다. 

 “ 그래서 처음 만났을때부터 그런말을 했었는데 너 정도면 충분히 이쁘고 매력적이 

  니까 좋은사람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라도 널 설득해서 돌려보내려 

  했던건데 넌 그걸 단지 내가 예의상 하는말로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 

 “ 선배... ” 

 어쨌든 중요한건 자신이 싫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너무 이뻐서 싫다’는게 대체 말이 되는 이유일까. 그래서 더더욱 나나는 납득을 못하고 그래서 이렇게 되묻기까지 한다. 

 “ 그럼 선배는 도대체 어떤 여자가 좋은건데요 ? 아...아니...어떻게 해야 선배의 

  마음에 드는 여자가 될수 있는건데요 ? ” 

 “ 너한테 굳이 그런말을 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구나. ” 

 “ 선배... ” 

 울상까지 되어버린 나나. 허나 승호의 태도는 단호하기만 하다. 

 “ 그저 누구에게나 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상형이나 스타일은 있기 마련이야. 헌데 

  넌 적어도 내가 바라는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는 것. 그것만 이 시점에서 말해주고 

  싶구나. 네가 상처받을까봐 가급적 말하려 하지 않으려 했는데...네가 이렇게까지 

  고집피우니 결국 말해줄 수밖에... ” 

 근데 남녀관계란게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쉽게 승복하지 못하는게 이런 경우다. 차라리 선거나 운동경기에서 패배의 승복이 이보다는 더 쉽게 된다고나 할까. 자신은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서 다가가려 했는데 정작 그 상대는 내가 싫다고 한다. 그럼 사람은 억울함때문에라도 이 상황이 더더욱 승복이 안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듯하다. 나나도 지금 역시 그런 심리상태라 울며불며 승호에게 매달려보기까지 하는데 승호는 결국 나나를 밀쳐내고 그 자리를 나가버린다. 어차피 나나가 자신에게서 오만정이 다 떨어지게 만들려고 벌이는 일인데 주저하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다. 작전도 아니고 의도적인 은유나 메시지도 아닌 그저 승호의 진심일뿐이다. 허나 그렇게 승호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자 승호의 밀쳐냄으로 인해 저쪽으로 나자빠져버린 나나는 그 자리에 엎드려 한참을 서럽게 우다. 넘어져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더 아파서 우는 것이다.  

 

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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