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17세 새엄마의 육아일기
한편 집으로 돌아온 지은은 본격적으로 아버지 한우택에게 반항하고 있었다. 이후 학교에도 가지않고 자기방에서 나오지도 않은채 ‘계두를 도와달라’ 또는 ‘삼촌(또는 정사장)한테 더 이상 학대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아버지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밥을 굶기까지 하는 지은의 모습을 보고 우택이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다.
“ 지은이 너 아빠한테 솔직하게 이야기해봐라. 그래 그 계두인가 뭔가하는 이상한
X이랑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냐 ? ”
“ 아빤 도대체 무슨말을 그렇게...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고계신거에요 ? ”
마치 자신이나 계두를 어찌보고 그런말을 하느냐는 듯 나오고 있는 지은. 허나 우택은 더 어이가 없다는 듯 발끈한다.
“ 이녀석아 !!! 누가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한대 ? 니가 너무 달라져있으니까 이러는
거 아냐. 게다가 여행을 갔든 실종이 되었든 그래봤자 한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뿐인데, 그 사이 니가 너무 달라져 있으니까 이러는거잖아 !!! ”
“ 제가 뭘 어쨌다구요. ”
“ 게다가 그 계두인지 뭔지 하는 X이랑 한 몇 달,몇년을 같이 지내기라도 했다면 내
가 말을 안해. 그래봤자 한 일주일 넘는 시간 거기서 같이 지냈을뿐인데...도대체
니가 이렇게까지 그 계두인지 뭔지 하는 X 역성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
구 !!! ”
“ 아빠... ”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 못하냐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짓는 지은.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아빤 그날 그 현장을 직접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 삼촌인지 뭔지 그것도 다
거짓말이고 계두한테 친삼촌도 아니에요. ”
“ 내가 듣기론 그 정사장이든 삼촌이든 그 사람이 어릴 때 버려진 계두를 키웠다고
하더만... ”
“ 키운게 아니라 그걸 빌미로 학대를 한거라구요. 맨날 폭행하면서 그런 산속에 숨
겨놓고 학교도 안보내고 닭만 치게 하면서...그러고 지금까지 살았던거에요 계두씨
는. 게다가...이름만 봐도 모르겠어요 ? 도대체 사람 이름이 계두가 뭐에요 계두가
? 무슨 닭대가리도 아니고...사람 이름을 그런식으로 지었다는것만 봐도 그 정사장
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만한거 아니에요. ”
“ 어쨌든 아빠가 정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 계두라는 친구를 어릴때부터 거
두어서 그런곳에서 닭치는 일이라도 돕게 하면서 키웠다는...그렇게 보호해주었다는
말밖에 들은게 없다. ”
“ 보호가 아니라 학대라니까요 아빠 !!! ”
한숨을 내쉬는 우택. 딸의 말이 맞는것인지 틀리는것인지 판단을 하기도 전에 도대체 한사코 그 계두를 역성을 드는 딸의 태도는 지금의 우택으로선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그런 모습이다. 솔직히 그 여행을 떠나기 전까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부잣집 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게다가 비록 재혼가정에서 자랐을지언정 그런 환경 때문에 오히려 더 아버지한테 매달리고 의지하는 면까지 있었던 그런 아이가 지은이었다. 헌데 일주일여 사이에 돌변한 지은의 모습. 새삼 다른 의문이 생겨 우택은 지은에게 이와같이 묻는다.
“ 근데 넌 진짜 그곳에서 일주일씩이나 머물며 대체 뭘 하고 있었던게냐 ? 대체 무
슨생각으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온통 걱정일것이란건 생각도 안하고 거기 그냥
머물러 있었어 ? 게다가 니 말마따나 그 계두란 청년이 너 치료도 해주고 그렇게
빨리 다친데가 나았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해야할거 아니냐 ? 게다가 심
지어 계두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노라며 길안내까지 자처했다면서... ”
“ 그...그게... ”
바로 그 솔직한 심정이 지금 우택에게 바른대로 말하기 어려운 사안 아닌가. 솔직히그간 새엄마가 이복동생을 세명이나 낳고 새엄마 딴에는 아무리 자신에게 잘해준다 하더라도 지은 자신이 그 자체가 몹시나 거북하고 불편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그런식으로 사느니 그런데서 차라리 계두라는 청년과 숨어살까. 그런 생각까지 헀던게 지은이다. 물론 화장실을 이용하는게 불편해서 그때마다 다시 생각이 달라지기도 헀던 지은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문제만 빼놓고는 그냥 이대로 여기서 살아도 좋을것만 같다는 생각까지 했던 지은. 하지만 그래서 더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고 있는 지은. 그저 계두만이라도 ‘자칭삼촌’ 정사장의 학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그 애원만 거듭할뿐이다.
“ 애 유학보낼 준비라도 해줘요. ”
“ 네에 ? ”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은 우택이 30대 중반의 젊은 아내 경희와 본격적으로 그 문제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경희로서도 솔직히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 아니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게다가 유학도 무슨 명분이 있어야 가는거지 무작정
간다고 보내지는건 아니잖아요. ”
하긴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내리는 결말이 삼각관계나 이런 상황에서 힘들게 헤어진 어느 한쪽을 처리하는 가장 흔한 설정이 ‘해외유학’이긴 하지만 말이 쉽지 유학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아무나라로 다 갈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아직 서울에 있는 상대적으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대학 1학년생에 불과한 지은. 그 지은을 갑자기 유학보낼수 있는 명분이 있기나 할지. 경희는 그 걱정이 드는 것이다.
“ 무슨 편입학을 하는것도 아니고...교환학생도 아니고...대체 무슨수로 갑자기 유학
을 보내자는거에요 ? 게다가 유학을 간다고 해도 거기서 먹고자고 하는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하자구요 ? ”
하긴 그렇다고 한우택의 집안이 아주 떵떵거리며 사는 재벌가도 아니고 그저 중산층(中産層)보다 조금 잘사는 중상층(中上層) 정도의 생활수준의 가정이다. 그 정도 수준의 집안이라면 1년이든 2년이든 그런식으로 해외유학을 보낸 딸의 생계문제 해결하는 방법등. 생각보다 골치아픈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계모이기도 한 경희가 쉽지 않은일이란 반응을 보이고 우택의 한숨이 깊어질수밖에 없는 가운데 그래서 하는수없이 이번엔 경희가 지은을 한번 설득해보려 나선다. 차라리 이런 기회에 지은과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눠보는 계기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나름 그런 의도도 담겨있는 셈이다.
“ 이봐요 지은씨. 우리 이야기 좀 하죠. ”
사실 경희는 젊은 새엄마라고 하지만 이미 30대 중반이니 이제 대학 1학년생인 지은과는 열다섯살 차이. 게다가 지은이 대략 초등학교 6학년때쯤 경희가 우택과 결혼한것이라면 그때 나이 이미 20대 후반으로 접어들 나이니 경희의 첫눈에도 지은은 그저 ‘어린조카’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허나 그동안 사이가 딱히 좋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게다가 어느덧 성인이 된 지은이라서 더 말을 놓기가 조심스러운 경희의 입장. 여하튼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 그러지말고 저한테라도 한번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아보는게 어때요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거에요 ? ”
하지만 계두와의 일주일을 새엄마 경희한테 또 처음부터 다 이야기하자니 그것도 귀찮고 난감해져서인지 지은의 입이 쉬이 열리지 않는다. 경희는 일단 다시 인내심을 갖고 지은을 설득해보려 한다.
“ 듣자하니...무슨 그 산골에서 만난 청년이 치료도 해주고...또 그 청년을 도와달라
는 말까지 했다는데...그럼 정말 그 청년을 마음에 두고 있는거에요 ? ”
경희는 아직 그 계두란 청년이 중증장애에 기형아란 사실까진 모르는지 그저 그곳에서 어찌어찌하다 한 일주일 지내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나보다 그 정도로 짐작하는 것 같다. 허나 그래서 지은은 더더욱 답답한지 소리만 꽥 지를뿐이다.
“ 그런거 아니라니까요 !!! 정말 다들 왜그래요 진짜 !!! ”
그래도 어쨌든 사이 어색했던 의붓딸과 소통의 시간을 마련해보려고 다가간 것 뿐인데 이렇게 나오는 지은의 모습. 정말이지 젊은 새엄마랑 의붓딸의 관계라는건 새엄마 입장에서 아무리 잘해주려 해도 당사자가 마음을 닫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로구나. 그것만 깨닫는 순간이라서일까. 경희가 무슨 부처님 가운데토막 같은 후덕한 성품을 가진 여자도 아닌 그저 보통 젊은 여성인 이상 이런식으로 나오는 버릇없는 의붓딸의 태도에 더 화가나 그저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갈뿐이다. 지은은 지은대로 답답하고 속상해 방구석에서 혼자 울음을 터트린다.
얼마후 우택이 지은이 다니던(* 현재 학교에 다시 나가고 있지 않다.) 학교로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여행길에 함께했다는 남학생 네명을 다시 불렀다. 1학년 동기생 세명외에 이번엔 2학년 선배까지 모두 네명이 우택에게로 왔다. 지난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빠졌던 2학년 선배도 이번만큼은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직감했음인지 함께 온 것이다. 우택이 학생들을 노려보며 말한다.
“ 자네들... ”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우택. 그의 입이 열린다.
“ 나한테 원래 숨기는게 있었지 ? ”
“ 저...아...아버님... ”
어쨌든 지은을 찾아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3학년 윤정선배로부터 들어서 알고있고 실은 윤정으로부터도 한바탕 나무람을 들은바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윤정도 모든 진상을 알게되고는 어이없다는 듯 하루는 이들을 불러 다그쳤었다.
“ 아니, 도대체 아무리 그렇기로...남자애가 넷이나 되면서 여자애를 혼자만 거기에
달랑 놓아두고 전부 달아났단말야 ? 게다가 나한테는 무슨 바쁜일이 있어서 돌아
간다느니 그런식으로 말하고... ”
“ 저...저희도 그날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생각해보세요 선배. 그렇게 무슨 사람
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그런 이상한게 밤중에 헛간으로 들어오는게... ”
사실 이들 네명은 그날 본 계두라는 자의 이상한 형상이 아직도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태이기도 하다. 윤정선배나 지은 아버지 우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당사자인 지은이 이들을 만난다면 그날 제대로 배신당한꼴인 문제에 대해 정말 이들을 물어뜯고 싶은 심정으로 달려들고도 남겠지만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의 처지와 입장이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2학년 선배가 이들 셋을 감싼답시고 이렇게 나왔다.
“ 그래요 선배. 그날은 정말 너무 무서워서 아무 정신 없었다니까요. 우리도 어쩔수
가 없었어요.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하다못해 나라도 부르던가 해서...지은이가 있는데로 다시
가보던가 했어야 할거아냐 ? 도대체 나한테는 무슨 갑자기 바쁜일이 있어 돌아간
다 어쩐다 그러더니만... ”
실제 그날 그렇게 산밑까지 한달음에 달려가서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결론을 내린뒤 산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윤정선배에겐 터미널에서 전화를 해 그러식으로 둘러댔던 이들. 뒤늦게 모든 진상을 알게되자 윤정으로서도 너무 기가막힐 따름이다.
“ 내가 진짜 화나는게 뭔지 아니 ? 지은씨 아버님은 그렇다치고 심지어 나까지 속이
려 들었다는점이야. 난 그래도 너희들 생각해서 여름방학때 추억이나 쌓으라고 그
런 산장으로 초대까지 했던거구만...최소한 나한테라도 진상은 제대로 말해줬어야
우리끼리라도 지은이를 다시 찾으러 가보든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든 그렇게 대책을
세웠을거 아냐. 그런데 도대체가 어쩜 그렇게... ”
“ 잘못했어요 선배. ”
“ 그리고 그 계둔가 뭔가 하는 남자...뭐 딱히 그렇게까지 무섭게 생긴 인상도 아니
더구만...그 정사장인지 뭔지 동네 아저씨 말로는 그렇게 버려진 아이를 자기가 거
두어 키운거라더만... ”
윤정도 정사장의 사연은 그날 대충 들어 알고는 있기에 그부분까지 들먹이며 거듭 후배들을 다그쳤고 2학년 선배와 1학년 후배 세명, 이렇게 총 네명의 남학생들은 그저 쥐죽은듯한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래도 와중에 한명이 나름 변명이라도 한답시고 나온다. 경상도 사투리 쓰는 후배다.
“ 선배는 그날 낮에 보셨으니까 그렇죠. 우린 그렇게 비오는 어두운 밤에...생판 영
문도 모른채...헛간에서 그렇게 마주쳤으니...와아...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 우
린 진짜...선배한테서 지금 이 이야기 듣기전까지만 해도...영락없이 그날 귀신을 본
줄만 알고 있었다니까요. ”
“ 됐고...나중에 지은이 보면 제대로 정중하게 사과할 생각들이나 해. 지은이도 지금
오죽 상처입고 배신감을 느끼면 학교도 안 나오고 저러고 있겠니 ? 어쨌든 지은이
찾아서 집으로 데려온지도 시간이 꽤 지났는데말야. ”
상처나 배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계두라는 이에 대한 걱정때문인지 어쨌든 학교에는 다시 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은지 여러날이 된 지은. 그런 상태로 우택이 여행을 같이 갔다는 남학생 네명을 찾아 따지러 온 것이다. 이들로선 그저 그날일에 대해 백배 사죄하는수밖에 없었다.
“ 아버님이라고 부르지도 말게 !!! 자네들 같은 아들 둔적도 없고...게다가 자네들같
이 무책임한 남자들 사위삼을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까말야. ”
물론 사위는커녕 이 자리가 무슨 미팅이나 소개팅 주선하자고 모인 자리는 더더욱 아니고 분노가 극에 달해있는 지은 아버지의 그날 여행길에 함께 했다는 대학생들과의 만남자리다. 우택의 다그침이 거듭된다.
“ 도대체가 그러니 그게 말이나 되느냐는 말이지 ? 아무리 비오는 그 어두운 시간에
이상한걸 봤어도...최소한...귀신인지 아닌지 확인이라도 해보던가...무엇보다 나중에
지은이라도 구해오거나 할 생각은 했었어야 할거아냐 ? 근데 도대체 사내X끼들이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어 ? 게다가 그렇게 돌아와서는 입 싹 씻고 되려
진상을 은폐하고 거짓말이나 하려들고... ”
“ 면목없습니다 아버님. 제가 대표로 사과드립니다. ”
2학년 선배가 그저 백배사죄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겠다는 생각에 그저 정중히 사과의 말을 거듭 올리고 우택은 여전히 분이 안 풀리는듯한 모습으로 남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이 자리에서 네명을 죄다 두들겨 패기라고 하고픈 심정을 겨우겨우 참고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계두라는 이가 애초에 귀신이나 괴물로 오해한 이들의 판단과 달리 그리 천성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 지은이 무사하고 다친곳을 치료까지 해주었길래 망정이지, 만의하나 정말 그런곳에서 평생 숨어살면서 성정이 비뚫어지거나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갖게된 그런자였다면 어쩔뻔했는가. 정말 그때는 지은이가 그런 이상한 자에게 어떤 봉변을 당했을지 모르는일 아닌가. 그것만 생각해보면 거듭 아찔해질 지경인 한우택. 한숨을 쉬고는 다시 네명의 남학생을 바라보고 있다.
“ 되었네...어쨌든 딸은 찾았으니...그 일을 더는 추궁하지 않기로 하겠네. ”
“ 감사합니다 아버님. ”
더는 추궁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나마 어두컴컴한 가운데서도 희망의 빛줄기라도 보는듯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남학생들. 허나 우택은 더 어이없다는 듯 테이블을 한번 탁 친다. 대학 근처에 흔히 있을법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이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중이다.
“ 감사는 무슨...후우 되었고...그대신 자네들이 날 도와주었으면 하네. ”
갑자기 이건 또 무슨 ? 사윗감(?)은커녕 이들 네 사람을 인간으로도 보지 않을것만 같은 우택의 태도였는데 그러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네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한다. 그래도 가슴한켠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 가운데, 일단 우택의 말이 이어진다.
“ 자네들이 그 대신 내 부탁 한가지만 들어주게. 그 부탁만 들어주면 내 이 문제는
더는 추궁하지 않겠네. 솔직히 생각같아선 진짜 그날일...무슨 명목으로라도 고소를
할까 어쩔까...아는 변호사들한테 자문이라도 구할 생각이었건만... ”
“ 아...아버님... ”
고소에 변호사란 말까지 나오자 당황한 듯 그중 한 사람이 또 우택을 그렇게 부르지만 일단 우택은 정말 그렇게까지 할 의도는 없는 듯 손을 내젓고 그리고는 대체로 진정된 분위기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 그대신 자네들이 내 부탁 한가지만 좀 들어달란말일세. 그럼 내 이번일은 더는 추
궁하지 않겠네. 무슨말인지 알아듣겠는가 ? ”
그리고는 패스트푸드점은 다른사람들 눈과 귀가 있으니 난감하고 다른 조용한곳으로 이동하자고 그들에게 제안한다. 학생 네명은 여전히 의아한 가운데 일단 우택의 뒤를 따른다.
그로부터 얼마후 한우택이 이번엔 애초 지은이 실종(?)되었던 충북 북부지역의 산골마을을 다시 찾았다. 허나 계두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고 그 계두의 자칭 삼촌이라는 정사장을 만나러 온 것이다. 애초 그렇게 정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딸을 데리고 돌아갈 때 주고받은 명함이 있기에 정사장의 집과 연락처는 알고 있었다. 뜻밖에 자신을 다시 찾아온 우택으로 인해 정사장도 적잖이 놀란다.
“ 아이고, 선생님. 어르신 여기까진 또 어쩐일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
“ 허허...식사라도 나누며 차분히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
그리고는 이곳은 산골마을이니 일부러 인근 도시지역까지 차를 몰고가(* 대략 충주나 제천쯤) 그곳의 괜찮은 식당에서 밥을 사는 우택. 산골마을에서 평생을 닭을 팔며 살아온 정사장이라서인지 인근 도시지만 여기까지 직접 와보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서인지 정사장은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 정도 도시에도 놀라면 만약 서울로 올라오게되면 얼마나 놀랄까 싶을 정도로 전형적인 촌사람의 모습이다.
“ 그래, 그날 따님은 무사히 집으로 달아갔는지요 ? ”
“ 허허...제가 제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무렴 별 탈이 있었겠습니까. 지
금은 별일없이 잘 지냅니다. ”
정확히는 ‘별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택 입장에서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정사장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듯하고 우택은 나름 궁금한 것을 정사장에게 묻는다. 온화한 음성이다.
“ 헌데...그 계두인가 뭔가하는 친구는...선생님께서 어릴때부터 거둬서 키워온 그런
친구라고 하셨죠 ? ”
“ 예...뭐...그렇게 제가 조카처럼 키우고 그리고 지금은 제가 하는 닭장일을 돕고있
는 그런 아이입죠. ”
대충 그렇게 지난번 했던 설명을 다시한번 입에 담고있는 정사장. 우택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런데...그날 저도 그 청년을 보긴 했습니다만 참 몰골이 말이 아니더군요. 사람
이 어찌 그런 형상을 타고 태어났을지... ”
“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뭐 다 제 팔자고 인연이다 생각하고 거두어 키운아이지만.
..그 아일 볼때마다...오죽했으면 그 부모가 아이를 버렸을까 그게 이해가 가다가도
또 한편으론 아무리 그렇기로 그런 몸도 성치않은 아이를 산골에 버려두면 어쩌자
는건지...참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에잉...누군지야 알길 없지만 세상 몹쓸 부
모 같으니... ”
그렇게 정사장이 계두를 낳았을 친부모에 대한 흉까지 입에 담고있고 우택은 우택대로 다른 생각이 있는지 말없이 정사장을 바라본다. 정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 헌데 그런 아이가...참 그렇게 그때는 딸을 몰래 제 거처에 숨겨두기까지 했으니...
솔직히 따님이...그 젊은 아가씨가 얼마나 놀라고 기겁했을까...그걸 생각하면 저도
참 면목없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
“ 아아...뭐 되었습니다. 딸이 많이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그래도 지금은 대체로 무
탈하니까요. ”
어떻게 말을 이어가는게 좋을까 좀 망설이는듯한 우택의 모습. 주문한 음식이 나와 그것을 들면서 우택의 말이 이어진다.
“ 헌데 그날 제 딸 이야기로는... ”
“ ??? ”
“ 언뜻...선생이 무슨 그 청년을 학대한다 그런말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
순간 정사장이 당황하면서도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 아이구 선생님. 무슨 그런 당치않은 말씀을...아무리 산골에서 닭이나 키우며 사는
촌놈이기로 절 어찌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날 선생님도 보셨겠지만...그
렇게 몸도 성치 않은 아이...저까지 세상떠나면 도대체 누가 저 아이를 돌봐줄까 하
는 생각에...그래도 저도 이 다음에 너 혼자라도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냐며 닭 키우
는거 하며 파는 요령까지 하나하나 일일이 다 가르치고 있는건데...무슨 그런 당치
도 않은 말씀을... ”
그렇게 거듭 부인하는 정사장. 헌데 우택이 한번 씨익 웃어보인다. 사실 이 시대에도 가끔 다큐나 시사프로에 그런일이 보도되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령 어디 기도원이나 산골같은데 장애인이나 고아들을 일을 시켜준다 거둬 먹여살려준다 하는 명목으로 오히려 그런곳에서 묶어놓고 강제노역을 시킨다던가 감금시키고 폭행하는...뿐인가. 무슨 아이들을 잡아다 어디 산골이나 바닷가 같은데 인신매매로 팔아 넘긴다는 그런식의 흉흉한 소문도 있던 그런 시절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면 실제 그런식의 사례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그런일들이 전해지면서 다소 과장된 헛소문같기도 한데. 여하튼 그런 소문이 있기도 하고. 또 게다가 한우택의 직업이 공무원이라 여기저기 임지를 돌아다니며 제법 많은지역 많은 사람을 만나봤을법한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대충 정사장이 어떤 사람일지는 짐작이 갈 것 같기도 한 그런 표정인데. 다만 지금은 정곡을 찌르지는 않고 유도심문이라도 하듯 이렇게 말을 건넨다.
“ 헌데 정사장은 그럼 그 계두란 청년 외에 다른 가족은 없으신건가요 ? 보아하니
거처는 그 산속이 아닌 읍내마을에 따로 계시던 것 같던데... ”
이미 명함까지 주고받은 사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명함에 적혀있는 정사장의 주소는 확실히 그 산속은 아닌 다른 지역명이었다. 게다가 실제 그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하면서 정사장을 만나기 위해 차를 몰고 집근처까지 가게되기도 한 우택이고. 일단 정사장이 답변이 이어진다.
“ 뭐...저도 나이가 50이지만 살림이나 여러 가지로 변변찮아서 그런지...결혼도 못
하고 지금껏 이리 혼자 살아왔습죠. 그러니 제게 식구라 할 수 있는 아이래봤자...
피붙이도 아닌 계두 그 아이 하나뿐인거죠. ”
“ 그렇군요. ”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한우택. 그리고 정사장을 다시금 바라본다.
“ 헌데 여하튼 대체로 벌이는 시원찮으셨겠습니다 그려. 고작 이런 시골에서 닭과
알이나 팔며 생계를 유지하기는... ”
근데 정사장도 나름 인생을 살만큼 산 사람이라서일까. 뭔가 자신이 실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느낌상 우택의 어떤 유도심문에 자신이 말려드는 느낌이라서일까. 이 사람의 질문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답을 하는게 좋을지 망설여지는 순간. 그래서일까. 살짝 화제를 돌려본다.
“ 선생님 어떻든 이렇게 먼거리까지 절 만나시고자 와주셨는데...술이라도 한잔 할까
요. 대신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
그런식으로 권하는 정사장. 헌데 이번엔 우택이 손을 내젓는다.
“ 아...아닙니다. 이제 겨우 점심때...그것도 이른시간에 점심을 하고 있는건데 술이
라뇨. 그러기엔 진짜 너무 이른시간이네요. ”
그리고 다시 말없이 정사장을 바라보는 우택. 괜한 기분탓인지 안절부절하는 정사장의 모습. 우택의 말이 이어진다.
“ 어쨌든 그 계두란 청년을 학대하거나 그런일은 없단 말씀이시죠 ? ”
“ 아이구 선생님...정말 절 어찌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따님이 뭔가 잘못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게 틀림없다니까요. 게다가 따지고보면 계두 그 아이가 따
님을 그런식으로 산골구석에 가둬놓은 격이기까지 한데...따님이 피해자지요. 계
두 그 X이 진짜 몹쓸짓을 한거구요. ”
그렇게 슬쩍 계두에게 뭔가 책임을 떠넘기려는듯한 정사장의 모습. 우택이 한숨을 내쉰다.
“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뭐 그런 문제를 자꾸 추궁하는게 별 의미는 없겠군
요. ”
“ 술이나 한잔 하시죠 선생님. ”
“ 아뇨...그보다는... ”
의아하게 우택을 바라보는 정사장. 우택의 말이 이어진다.
“ 선생께서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시죠. ”
“ 예 ? ”
“ 만약 선생께서 제 부탁만 하나 들어주신다면... ”
“ ...... ”
“ 선생께 어떤 흠결이나 문제가 있더라도 내가 그걸 문제삼거나 하진 않으리다. 허
니... ”
확실히 두 사람이 술을 시키거나 하진 않았고 대신 물 한잔을 마시고는 우택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 선생께서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그럼 제가 선생의 일은 문제삼지 않으리다.
”
그리고는 뭔가를 내미는 우택. 사람들 눈도 있으니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다. 상투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돈봉투였다. 봉투안을 바라본 정사장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어두컴컴한 공간 어딘가를 거닐고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방향도 위치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는 어둡기만 한 공간. 따라서 어떤 공포감과 두려움까지 밀려들어가는데 귀옥은 일단 그 어두운 공간 어디를 계속 헤매고 있었다.
‘ 여기가...대체 어디야 ??? ’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곳에 와 있는지조차 판단하기 쉽지 않은 그런곳. 그러고보면 시한부 인생이라더니 벌써 죽어 저승에라도 온것인가. 머릿속으로는 그 짧은 순간이나마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어둠속을 헤맸을까. 그러다 저쪽에 아주 작고 가느다란 불빛같은게 보였다.
‘ 저건...뭐지 ? ’
궁금하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방이 모두 어둠인 이곳에서 방향이나 위치도 가늠하기 위해선 불빛이 보이는쪽으로 가보는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그러고보면 두손,두발이 모두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은 가운데서도 가까스로 불빛 있는데까지 갈수가 있었는데.
‘ 으어...으아... ’
웬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건장한 청년 하나. 헌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귀옥이 두려움속에 본능처럼 물었다.
“ 누...누구세요 ? ”
‘ 으어...으아... ’
허나 이 청년은 말을 못하는것인지 멀쩡하게 생긴 건강한 사내의 모습과는 달리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헌데 귀옥은 순간 어떤 본능처럼 드는 생각이라도 있는것일까. 이렇게 묻는다.
“ 아가...혹시 우리 아가니 ??? ”
사실 갓난아기때 버린 그 아이는 지금 설사 자라서 성인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원제든 귀옥이든 그 아이를 바로 알아볼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중증장애에 기형으로 태어난것만은 부부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심지어 주변 친척들까지 거듭 그렇게 설득해서 내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이. 그 산속에 그 비오는날에 내버렸으니 생존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게 맞겠지만 그래도 혹여 극적으로 살아나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그 아이가 자라서 성장을 했다면 혹시 이런 모습 ? 귀옥이 본능적으로 의문의 청년에게 다가가려 했다.
“ 아가...우리아가... ”
귀옥은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그렇게 자신이 오래전 내버린 아이가 성인이 된 모습으로 자신앞에 나타난것인줄만 알고 얼싸안아보려했다. 허나 생각보다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말못하는 이상한 청년은 그런 엄마(?)와의 상봉이 싫은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내다버린 친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지금 새삼 되살아나는것인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뒤로 후퇴하려 했다. 귀옥이 안타깝게 아이를 불렀다.
“ 아가...이리온. 엄마야 !!! 엄마야 !!! ”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가운데서도 애타게 기를쓰고 불러보려 했는데. 그러다가.
“ 여보...여보...정신차려 왜 그래 !!! ”
누군가 깨우며 흔드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면 그렇지.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역시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귀옥이 한숨을 내쉬고 원제가 걱정스러운 듯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 여보...왜 그래 ?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꾼거야 ? ”
“ 어...그...그게... ”
말을 해야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솔직히 꿈속에서 본 것을 깨어나 생시에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긴 하다. 개중에는 물론 예지몽이라던가 죽은 조상이 나타나서 어떤 위험이나 앞일을 말해주었다던가 하는 과학적으로 입증이나 설명이 불가능한 일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꿈은 역시 개꿈일뿐. 허나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갓난아기때 버린 아이로 추정되는 자의 모습이 나타난 것을 그저 단순히 꿈으로 치부해버려도 되는것일까. 귀옥은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더니 입을 연다.
“ 여보... ”
땀에 젖은 얼굴을 닦아내며 겨우 기운차린 모습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 귀옥.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우리 그 아이 정녕...찾을 방법은 없는건가요 ? ”
“ 여보... ”
그러고보면 이렇게 위암말기로 오래 못산다는 판정을 받아놓고나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입에 담게된 귀옥이다. 어느덧 18년 세월. 그리고 그 긴 시간을 앚고산 존재이건만. 그래서 나중에 태어난 이들의 딸 네명. 혜정,수정,미정,유정은 까맣게 그 존재를 모르고 있는 갓난아기때 태어나서 버린 중중장애에 기형으로 태어났던 사내아이건만. 지금이라도 그 아이를 찾아보고 싶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는 귀옥. 남편이 다시금 아내를 진정시키며 설득하려 애쓴다.
“ 여보, 제발 그 일은 이제 잊읍시다. 그리고 설사...이제와서 우리가 그 아이를 찾는
다고 해서 뭘 어쩐다구...자칫 서로 더 마음아파지는 결과만 만들수도 있으니 이제
그만 잊읍시다. ”
여하튼 중증장애에 기형으로 태어난 그 모습만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부부가 아니던가. 따라서 설사 성인으로 자라났다 하더라도 어디서 기적적인 수술이라도 받아 멀쩡한 몸이 되지 않았다면 태어났을때의 그 기형의 몸 그대로를 갖고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니 설사 성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중증장애의 제 몸하나 건사하기 힘든 처지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할터.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중병으로 얼마 살지도 못하는 친엄마를 만나 뭐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 생각에 원제는 아이를 찾아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제는 다시금 아내를 설득하려든다.
“ 그 빗속에 산골에 버린 아이가...생존할수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요 ? 솔직히
나도 한 대여섯살이라도 되어 제발로 걷고 뛰고 할 수 있는 아이를 버린것이라면
그렇게 극적으로 살아났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않았을거요. 허나 그 갓태어난
아이를 내다버린건데 뭘... ”
그야말로 ‘살기는 뭘 살아’ 그런식으로 단정적으로 나오고 있는 원제. 허나 귀옥은 그건 정말 아니라는 듯 반박한다.
“ 하지만 누구에겐가라도 발견되어 극적으로 살아날수는 있는거잖아요. 혹시 누가
알아요 ? 정말 무슨 동화나 영화에서 보는것처럼 어느 자식없는 노부부나 마음씨
좋은 누가 나타나 그 아이를 거두어 정성껏 키워주었을지... ”
“ 허허 참...서울사는 사람도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런데 내버린 아이를 그런 시골
구석에서 누가 키워줘 ? 그런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제 가족 하루세끼 챙겨
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일텐데...그나마 멀쩡한 아이라면 모를까 그런 중증장애의 기
형아를 누가 감당해서 키울 생각을 할거라고...애초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는것이니
이제 그만 단념합시다 여보. ”
“ 여보...제발... ”
원제는 거듭 아내를 단념시키려 한다. 귀옥은 정말 그건 아닌 것 같다며 차라리 정말 죽기전에 한번 찾아나 보자고 거듭 남편을 설득하고 오히려 남편은 아픈 아내의 몸을 걱정해서라도 그 일을 생각하지 말자고 이러는 것 같다. 그렇게 남편은 사실상 아이를 찾을 의지 자체가 없는 가운데 아내의 안타까운 설득의 말. 그렇게 결론 안나는 평행선만 계속 이어지고 있을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귀옥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혼절까지 한 귀옥을 의료진이 급히 응급실로 데려가고 남편은 뭔가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는것일까. 보통 이럴때는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할 것 같다’ 이런식으로 힌트를 주기 마련인데 원제는 그보다도 전에 집에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아빠... ”
“ 응, 그래 아빠다. 다른 동생들은 뭐하니 ? ”
전화를 먼저 받은 것은 큰딸 혜정. 헌데 이 시간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혜정도 뭔가 불길하다는 직감을 한것일까. 하지만 일단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아빠의 물음에 답한다.
“ 나랑 수정이는 방에서 숙제하고 있었고...미정이랑 유정이는 거실에서 TV보며 놀
고... ”
엄마는 입원했지만 아이들의 일상 자체는 그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는지 그와같이 답하는 혜정. 원제이 말이 이어진다.
“ 너희들...옷 다 갈아입고 병원으로 와줘야 할것같다. 아빠가 지금 그리고 가긴 힘
들것 같으니 너희가 동생들 인솔해서 와줘야할 것 같아. ”
큰딸 혜정은 물론 2학년 둘째 수정이. 그 외 미정,유정까지 모두 오라는 아빠의 말. 혜정이 놀라서 묻는다.
“ 어...엄마...엄마 많이 아픈거야 아빠 ? ”
“ 일단 동생들 데리고 병원으로 오렴. 모든 것을 각오하고 준비해야만 할 것 같구
나. ”
“ 아빠... ”
- 마지막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