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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사 대하사극 시놉시스 > 여명의 물결 1. 기획안, 등장인물 드라마 소재,아이디어

< 시놉시스 > 

 

                        여   명   의     물   결 

 

Ⅰ. 장르 

 

    토일 주말 대하드라마. 60분물. 100부작 

 

Ⅱ. 기획의도 

 

 근현대사에 관한 논란이 대략 지난 20년 가까이 우리나라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지속되어왔다. 어떤이들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영광과 승리의 역사’라고 말하고 또 어떤이들은 ‘정의가 패하고 불의가 승리한 오욕과 치욕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봤자 고작 면적 20만㎢를 조금 넘는 작은 반도. 그것도 그 절반정도 되는 지역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왔으면서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 어떤 가치관이 자리잡아갔느냐에 따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는 시각이 이렇게 극과극으로 엇갈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지난 한세기 역사가 신산(辛酸)했기 때문이란 방증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어디 멀리 외국에라도 나가 살지 않는한 앞으로도 이 반도는 자자손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하나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작은 반도라는 공동체내에서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조부모님,증조부모님등 최소한 지난세대 한세기의 역사 정도는 누군가는 조금은 공정하고 분별심있게 판단하고 평가해서 후손들에게 일러줄 필요성이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외람되나마 깨달은 세상이치 하나를 말하자면 똑같은 사건,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떤 시각에서 그 사물이나 현상을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극과극으로 갈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가령 어느 특정 전직대통령을 다룬 문예창작물을 보고도 어떤이는 결국 ‘그 전직대통령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교묘하게 지능적으로 그 전직대통령의 장기집권이나 독재,인권탄압등 부정적인 부분을 노출시켰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또 어느어느 지상파의 지난 시절을 다룬 소재의 드라마를 갖고도 ‘결국 특정 전직 대통령 미화용’이라 말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반대로 ‘의도적으로 그 시대를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 같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고보면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자리잡아갔는지에 따라 똑같은 정치,사회,문화 현상을 보고도 그 평가가 극과극으로 엇갈리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시대를 논하든 어떤 인물을 평가하든 개개인의 주관적 감정과 판단력을 갖고 다소의 편파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필자 역시 어느어느 정치나 사상 혹은 지난 근현대사의 판단에 약간의 편파적 감정을 갖고있는 보통사람임을 굳이 부인하진 않겠다. 다만 그래도 주제넘으나마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도 그나마 그 수많은 필부들중 ‘편파의 감정’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감히 한번 이 대장정을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대략 1970-80년대 정도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다룬 대하드라마나 시대극을 방송사들이 종종 제작해 내보내기도 했었다. 방송사라고 해봤자 공영인 KBS와 준공영 MBC 달랑 두곳이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던 냉전시대,군사정권시절이었음에도 민감한 주제의 근현대사 드라마가 종종 제작될수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시절의 정권도 민감한 주제일지언정 근현대사에 대해 방송사들이 하고픈 말은 어느정도 할수있게 눈감아주었다는 방증도 된다. 또 한편으론 70-80년대 기준으론 불과 20-30여년전 일인 1940-50년대까지도 다루는 드라마 제작이 가능했던 것 자체가 우리의 현대사가 얼마나 파란곡절 많은 역사였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아무리 그렇기로 그 시절 다루는 근현대사 드라마의 기본 주제는 ‘반공’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공산주의,자본주의 양 진영이 대립하던 냉전시대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한 국가에서 그것도 반공을 제1가치로 내건 군사정권 하의 공영,준공영 방송이 그런 ‘반공주의’에서 벗어난 드라마를 제작할리 만무하지 않는가. 또 그 시절 그만한 방송사에서 그런 작품을 쓸만한 드라마 작가나 PD 정도라면 어느정도 반공사상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했을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젊은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 시절 근현대사 드라마들의 내용에 고개를 갸웃거릴 부분도 없지않아 있어 이 부분만 좀 말해주고자 한다. 반공이 근본노선일지언정 그 시절 근현대사 드라마 특히 해방직후 6.25 동란 사이를 다룬 드라마는 대개 (1) 결국 통일정부로 가지 못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로 간 점 (2) 해방직후 6.25의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주의 우파 정치세력은 대다수가 6.25때 납북되거나 사망 혹 그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의 탄압하에 대체로 몰락해갔다는 점에 대한 그 아쉬움을 어느정도 담고있다는 점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이 드라마의 주제를 ‘소통과 화합’으로 잡기로 하였다. 굴곡과 파란의 우리의 근현대사. 그 역사속에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다. 영광된 승리의 인생을 살았던 이도 있는반면 핍박과 탄압속에 울분의 나날을 보내야만했던 이들도 있다. 허나 그 수많은 이들의 과거사를 뒤로한채 이제 앞으로의 일들은 어찌해야 하는지 그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이 한반도 남부 작은 공동체 안에서 앞으로도 자자손손 살아가길 원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제 지난 과거사를 어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가야 하는지 그 문제를 후손들에게 일러주는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런 비유를 해보고 싶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어찌 평가하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 어떤 아주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성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여성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외모처럼 100%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하기만 할까 ? 그렇지 않다. 당연히 그녀도 배설행위도 할것이며 사적인 부분을 알아가다보면 어쩌면 뜻밖의 저속한 사생활의 과거가 있었음을 알수도 있을터이고 의외로 모자라고 못난 구석도 많음을 알게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만약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어찌해야할까. 막상 처음 보았을때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예뻤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배설행위도 하고 의외로 저속한 부분도 있고 모자라고 못난 부분도 있었다면 거기에 실망해 돌아서야할까 ? 아니다. 만약 진심으로 그녀를 가슴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외적인 아름다움 외에 다른 이면의것들을 알게된다 하더라도 그녀의 잘난부문도 못난부분도 때로는 그녀의 허물과 흠결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안아야만이 그것이 진정으로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자세’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만약 후세들중 누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어찌 평가해야 하느냐 ?’고 묻는다면 이와같이 답해주고 싶다.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의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으로 사랑해달라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혹은 헤어지기로 결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의 모든면을 사랑하고 감싸안는 ‘한 남자’처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사랑해달라고. 

 

 돌이켜보면 21세기 들어 지난 20년은 극심한 좌우갈등,이념갈등의 시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갈등의 뿌리가 결국 굴곡많았던 지난 한 세기가 남긴 결과물임을 생각해보니 그저 여러 가지로 착잡한 감회만 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쩌면 그 시절의 일들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공정하게 일깨워주고 지나간 시대의 긍정적인 원동력을 에너지삼아 새로운 미래비전을 창출해 후대들에게 남겨주었어야할 세대들이 그 역할을 외면한채 오히려 지난시대 이념갈등의 부산물인 정치갈등,이념갈등에만 함몰되어 버렸으니 실로 통탄스러운 일일 따름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소통과 화합의 시대를 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갈등,사회갈등만 더 극심해진 것이 지난 20년임을 생각하면 그저 선배 세대들에게 죄스럽고 후배 세대들에겐 부끄럽고 면목이 없을 따름이다. 무엇보다 이제 어느덧 우리도 구 시대의 인물로 퇴장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필자의 이 대하사극 시놉은 우리 세대가 원래 했어야할 제 역할을 하지못하고 허송세월한 죄업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위해 시도하는 작업으로 봐도 무방하다.  

 

 어떤이의 표현을 굳이 인용하자면 이제 지나간 시대를 말해줄수 있는 세대는 점점 나이들어 어느덧 역사의 저편으로 퇴장해가고 있다. - 심지어 한국 현대정치사 한세대를 풍미했던 3김조차도 어느덧 하나하나 저 세상으로 떠나지 않았던가. - 이런 흐름속에서 세월이 흐르면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후세에게 공정하게 편견없이 말해줄수 있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간이 더 늦어지기전에 누군가는 지난시대의 이야기를 후세들에게 조금이라도 공정하고 편견없이 무엇보다 지나간 세대가 남겨주었고 후세들이 보존해가야할 정신과 가치가 무엇인지만큼이라도 분명히 말해주기 위해 이 드라마를 한번 써보려고 하였다. 

 

 현역작가로 데뷔하지도 못한 내가 마치 진짜로 지금 당장 어느어느 공영방송에라도 제작될 드라마라도 되는양 이런 거창한 시놉시스를 쓰는 것 자체가 쓰는 나도 어쩌면 읽는이들도 좀 어이없고 황당해할 짓일지 모르지만 굳이 이런 드라마를 쓰는 ‘저의’를 밝히자면 70-80년대 공영방송등에서 제작되었던 근현대사 드라마의 맥락을 누군가는 이어가야한다는 사명감에 이 집필을 시직하였다. 

 

 내가 존경하는 신봉승,김교식,이환경 선생님(이상 무순)등께 누가 되는 작품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Ⅲ. 등장인물 

 

 박여옥 (1929년생) 

 

 큰오빠는 일제때 강제징용으로, 둘째오빠는 6.25때 공산당의 인민재판으로 잃은 우리나라 현대사 비극의 상징 그 자체. 경남 남해에서 농사를 짓는 보통사람 박상철씨의 2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제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큰오빠가 8.15 해방직후 귀국선을 타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작은오빠와 기대에 부풀어 부산항으로 가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오빠의 싸늘한 유골함뿐. 그로인해 한동안 비통함에 젖어 산다. 사실 여옥도 일제때 하마터면 정신대에 끌려갈 위기가 있었으나 기지를 발휘한 아버지가 딸을 남장을 시켜 살게했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다. 허나 덕분에 소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자연스럽게 더 이상 학교를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학력은 그것이 전부. 다만 어릴때부터 똑똑했던 동생을 딱하게 여긴 작은오빠 형철이 방학때 틈틈이 자기가 공부한 중학교(지금의 중,고등학교 과정) 과정 공부를 틈틈이 가르쳐주곤 해 1970-80년대 기준으로도 고등학교는 졸업한 여성 수준의 지적능력은 갖고 자라게 되었다. 

 징용으로 끌려간 큰오빠의 죽음으로 한동안 비통함에 젖어 살다가 둘째오빠 친구의 권유로 함께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대구사태의 혼란에 휩쓸리게 된다. 허나 그과정에서 폭력혁명을 선동하며 소련을 어버이처럼 섬기는 좌익들의 노선에 실망, 오빠와 오빠친구들과 함께 좌익성향 노조를 탈퇴 이후엔 공산당을 막는 반공단체에서 함께 활동하게 된다. 여옥은 비록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둘째오빠가 틈틈이 그런 동생에게 중학교 교과과정을 가르쳐주곤 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만한 지식은 갖고있는 여성이 되었고 따라서 그런류의 정치단체에서도 작은 심부름 정도는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던 것. 

 허나 6.25가 터지고 북괴의 치하로 넘어간 서울에서 둘째오빠가 바로 반공단체에서 활동한 혐의로 인민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한다. 이렇게 여옥은 큰오빠를 일제때 강제징용으로 잃은 수년만에 둘째오빠마저 6.25때 공산당에게 인민재판으로 잃는 끔찍한 비극을 연거푸 겪게되는 것. 먼발치에서 숨어서 둘째오빠가 공산당들에게 맞아죽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여옥. 사실 여옥도 오빠와 오빠친구들을 도와 함께 반공단체에서 활동했기 떄문에 공산당에게 걸리면 죽은목숨인 것은 마찬가지. 따라서 여옥은 천신만고 끝에 서울을 탈출 이후 홀몸으로 도망쳐 대구의 한 부호집에 잠시 의탁 살아가게 된다. 

 여옥이 피난지에서 거처하게 된 것은 일제때는 사업을 했다는 황태순이란 부호의 집인데 그곳에는 여옥 외에도 그렇게 피난을 와 몸을 의탁하게 된 서너가족이 더 있었다. 여옥은 그곳에서 만나게 된 이들과 남다른 교류를 하게되며 세상을 보는눈을 더 키워가게 되고 한편 황태순의 둘째아들 황정수와는 그만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까지 하게된다. 

 이후 전쟁이 끝난뒤에는 두 살연하 남편 정수와 함께 2녀2남 총 4남매를 낳아 키우며 60-70-80년대 경제성장과 군사정권이라는 명암(明暗)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박형규 (1923년생. 여옥의 큰오빠) 

 

 남해의 보통사람 박상철씨의 자녀 박형규-형철-여옥 2남1녀 3남매중 장남. 그 시절 가치관이 대개 그렇듯이 형규 역시 집안의 기둥으로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에서 돈을 벌수 있게 해주겠다는 친일 브로커의 농간에 넘어가 동갑내기 고향친구 3명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허나 그들이 간곳은 태평양전쟁을 후방지원하는 일본의 군수공장. 부족한대로 월급은 받을수 있었으나 고향에는 전보하나 칠수 없었고 해방이 될 때까지 5년 가까이 그곳에서 갖은 고생을 다 했다. 무엇보다 고향에 전보하나 칠 수 없어 가족들은 일본으로 간 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수없이 가슴졸이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무엇보다 형규는 일본의 군수공장에서 일한지 3년여되는 어느날 사고로 죽게된다. 친구들은 진상과 보상을 요구했지만 들어줄리 만무하고 자기네들끼리 간단하게 장례는 치를수 있게 배려해줘 화장을 한뒤 친구 형규의 유골함을 비밀리에 보관해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수 있는날만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해방이 되어 돌아간다는 전보를 보내게 된 형규의 친구들. 1년여를 비밀리에 소중하게 보관해온 친구 형규의 유골함과 함께 부산항에 당도한 형규의 고향친구들. 친구들은 모두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을 만났지만 형규는 유골함으로 동생 형철과 여옥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박형철 (1926년생. 여옥의 둘째오빠) 

 

 여옥과 여섯 살 터울지는 큰오빠 형규가 막내 여옥을 무척이나 귀여워해주고 예뻐해준 그런 오빠였다면 세 살터울 둘째오빠 형철은 어린시절엔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나중에 자라서는 여옥의 정서와 가치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게 해준 그런 오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3남매중 가장 똑똑해 그 시절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는 드물게 고등학교까지 나올수 있었고 특히 형철은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방학때 돌아오면 아버지가 행여 정신대에 끌려갈까봐 학교를 더 못다니게 하고 남장을 시켜 생활하게 했던 동생 여옥에게 틈틈이 중고등학교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다.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여옥이 고졸여성 수준의 지식은 갖게 되었던 것이 결국 둘째오빠 형철의 영향. 

 한편 형의 죽음으로 한동안 비탄에 빠져있던 형철은 주변 친구의 권유로 대구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게되고 그때 여옥도 오빠를 따라 대구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건국을 준비한다는 한 정치단체에도 가입 활동하게 된다. 허나 그곳은 실은 좌익단체였고 애초 형철에게 그곳의 가입을 권했던 친구들도 좌익단체의 폭력성과 특히 소련을 어버이처럼 섬기자는 것에 불만을 품고 그곳을 탈당 이후 공산당을 막자는 반공단체에 친구들과 함께 가입 활동하게 된다. 여옥도 이때 자연스레 오빠를 따라 그 단체에 가입 이후엔 서울에서 올라와 활동하게 된다. 

 한편 형철과 여옥남매는 대구에서 살 때 만주에서 장교를 지냈고 이후엔 고향 대구에서 별볼일없는 백수생활을 하며 제 형 일을 도와주고 있는 한 청년과 운명의 만남을 갖게되는데 그게 바로 ‘박정희’다. 한편 서울로 올라와서 일을 하던 형철과 여옥은 6.25를 맞게 되고 형철은 반공단체에서 활동한점 때문에 좌익들에게 숙청대상 1호가 되어 바로 인민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한다. 여옥은 이때 주변 동료의 귀띰으로 일시적으로 몸을 피했지만 먼발치에서 인민재판으로 공산당들에게 맞아죽는 둘째오빠의 모습을 충격과 비통한 모습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박상철 (8.15 해방 당시 50세 전후) 

 

 원래 고향 경남 남해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대로 살아오던 평범한 보통사람. 허나 나름대로 OO박씨 OO파의 먼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허나 조선시대 후반기의 일을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라면 실제 그런 양반가 자손이라기 보다는 상철의 고조부 이상 어느 대에서쯤 몰락한 양반가 족보를 샀거나 위조해서 양반행세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 다만 어쨌든 그 시절에 양반족보를 위조했든 불법으로 샀든 최소한 그만한 수완이나 재력은 갖춘 그런 조상은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그 조상이 자기 자녀들에게 전해주었을리는 없으니 그저 상철은 막연히 아버지나 할아버지 또는 그 윗대로부터 들은대로 ‘뿌리깊은 양반가문’이란 자부심을 갖고 살았고, 그와같은 밥상머리 교육을 형규,형철,여옥 3남매에게 하고 살아왔다.) 

 듬직한 장남, 똑똑한 차남 그리고 눈에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막내딸까지. 이쯤되면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듯 살아온 상철. 허나 일제때 사실상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큰아들이 싸늘한 유골함이 되어 돌아온 이후로는 비탄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장남이 죽기전까진 제법 성실하고 반듯하게 살아왔으며 심지어 막내딸 여옥이 정신대에 끌려갈까봐 남장을 시켜 살게할정도의 기지까지 있던 사람인데, 해방 이후에는 특히 장남 형규가 싸늘한 유골함으로만 돌아온 뒤로는 상철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기나 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갈수록 폐인이 되어갔다. 

 차남 형철이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차라리 대구라도 올라가 돈을 벌자는 생각을 한게 그때쯤의 일이고 그때 여옥과 함께 대구로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우익단체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의 권유로 아예 서울로 올라가 활동을 하려고 했던것인데, 실은 형철은 이때 그때까지도 고향 남해에서 술로 생활을 보내는 아버지도 이때 함께 모셔올 생각이었다. 허나 어찌된일일까. 막상 형철이 아버지를 모셔오려고 고향에 내려갔을 때 상철은 행방불명 상태였다. 이웃주민들에게 물어보아도 ‘어느날 갑자기 짐싸들고 떠났다’는 말 이외에 이후 상철의 소식이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황태순  

 

 일제 강점기부터 사업을 해온 부호로 대구출신. 6.25때 피난온 몇몇가족을 자신의 집에서 기거하게 해주는데 여옥도 이때 태순의 집에서 피난생활을 하게된다. 서울에서 둘째오빠 상철이 인민재판으로 죽는 것을 보게되고 자신 역시 죽을 위기에 극적으로 서울을 탈출한뒤 대구까지 오게되어 태순이 그 여옥을 거둬주게 된 것이다. 슬하에 동수,정수 두 아들이 있는데 이중 장남 동수는 6.25때 행방불명 된다. 

 

 황정수 (1931년생)  

 

 태순의 차남으로 약간 좌충우돌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의외로 생각깊고 말수도 적은편. 태순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차남 정수보다 장남 동수가 어려서부터 좀 껄렁껄렁하고 말도 잘 안 들었다고 한다. 6.25 과정에서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된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해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옥과 연분이 싹터 결혼에 이르게 된다. 전쟁이 끝나게 된뒤엔 여옥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살게된다. 

 

 황동수 (1929년생) 

 

 태순의 아들로 집안에선 장남이며 장손이기도 하다. 허나 그래서 귀하게 자란탓인지 오히려 껄렁껄렁한 성격에 말썽도 잦았고 제멋대로 하는면이 있었던 그런 아들이라고 한다. 허나 동수는 6.25 전란 과정에서 실종되었으니 여옥이 직접 태순의 장남을 본다던가 한 일은 없었고 이런 이야기들은 보통 시아버지 태순이나 남편 정수에게서 듣게된 이야기들이다. 사실 전쟁직전 결혼을 해서 동갑내기 아내와 사이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아이 아빠인 동수는 행방불명되고 아이 엄마마저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버려 태순은 집안의 장손이기도 한 동수의 아들을 여옥이 거두어 키워줄 것을 당부하게 된다. 따라서 여옥으로선 정수와의 사이에 낳은 4남매외에 동수의 아들이자 조카가 되는 아이까지 총 아이 다섯을 키우며 60-70-80년대를 보내게 된 셈이다. 

  

 김순주 (1929년생) 

 

 “절망할순 없어요. 비극은 언제나 절망하는 사람의 것이니까요...” 

 홍성유의 소설 ‘비극은 없다’의 여주인공 김윤애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대사. 바로 그 대사처럼 전란과정에서 남다른 사연 –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출생의 비밀’ - 을 갖고 태어난 두 아이를 자기가 직접 거두어 키우게 되는 여인.  

 순주는 원래 전란과정에서 부모를 잃고 대구로 피난을 와 황태순의 거처에서 몸을 의탁하게 된 여인.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지내게 된 여옥과는 절친한 사이가 된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순주는 서울로 돌아가 전쟁과정에서의 어떤 피치못할 사연으로 태어나게 된 두 아이를 거두어 키우게 된다. 서울에서 손수 ‘칼국수집’을 운영하며 살아가게 된다.. 

 

 남희 (1951년생) 

 

 (1) 출생의 비밀 

 

 순주가 거둔 두 아이중 첫째로 딸. 실은 전쟁이 나기 이전 S대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는 강욱이란 청년이 있었다. - 순주는 실은 강욱과 한동네서 자란 고향 동생이다. - 그리고 강욱에겐 대학시절 그를 (마치 변희재를 친동생처럼 돌봐주는 공희준처럼) 물심양면 도와주는 세 살연상의 윤태란 선배가 있었다. 다만 좌익활동을 하는 윤태는 강욱을 자신이 활동하는 좌익단체에 끌어들이고자 여러번 노력하는데 강욱이 거부해서 그 부분은 번번히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몸이 허약한 강욱에겐 그녀를 옆에서 지켜주던 지영이란 동기생이 있었는데 그러다 두 사람이 연분이 싹튼다. 헌데 공교롭게도 강욱의 대학선배 윤태도 지영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지영의 마음은 이미 강욱에게 기울어 있어 윤태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윤태가 상처받는다. 

 그러는 사이에 6.25가 터지고 강욱은 학도병에 자원한다. 한편 윤태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던 지영을 겁탈해버리고 그 바람에 지영은 아이를 갖게되어 하는수없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윤태와 살림을 차리게 된다. 한편 전쟁이전부터 열혈 좌익단체 활동가였던 윤태는 서울이 적지에 떨어지자 이후 인민재판을 자신이 직접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된다. 흔히 6.25때 적지 치하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 시간을 ‘지옥도(地獄圖)’처럼 묘사하곤 하는데 윤태는 바로 그런 지옥도를 주도한 장본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허나 인천상륙작전으로 상황이 역전될때쯤 윤태와 함께 활동하던 공산당원들은 윤태의 전쟁 이전 전력을 수상쩍게 몰아 그를 회색분자로 몰아 처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옥도를 주도했던 윤태가 똑같은 지옥도속에 처단된 셈이다. 지영은 하는수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 수밖에 없었고 이후 공산군이 물러간뒤 전쟁전에 강욱과 윤태등을 후견하던 윤승환 교수를 찾아가 아이를 맡기고 어디론가 떠난다. 승환은 처음엔 아이가 강욱의 아이일것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었으나 실은 나중에 아이가 강욱이 아닌 윤태의 아이임을 알고 충격받는다. 허나 이미 생겨난 아이를 어찌하랴. 일단 당분간 자신이 거두기로 했는데 그게 남희다. 

 

 (2) 성격 및 성장과정 

 

 순주는 민석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고향오빠 강욱의 아들이란 점 때문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각별하게 대했지만 남희는 조금씩 자라면서 뭔가 거리감을 느끼며 대하기 시작한다. 구박을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민석에 비해 뭔가 차별하는 것이 조금만 가까이 지내는 주변사람 눈에 뻔히 보일정도. 남희는 그래도 어릴땐 그저 그게 엄마의 성격탓이려니 또는 동생 민석은 아무래도 아들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대체로 감수하며 사는 편이었다. 허나 사춘기시절 어느날 우연히 여옥과 순주의 대화를 엿듣다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걷게된다. 

 

 민석 (1952년생) 

 

 (1) 출생의 비밀 

 

 순주가 거두게 된 두 번째 아이 민석. 아들. 학도병을 자원해서 출전했던 강욱은 전쟁중 부상으로 눈이 멀게된다. 그리고 그를 돌봐주던 간호장교 정미옥의 권유로 잠시 그녀의 고향에 머물게 된다. 미옥의 고향에 머물며 그녀의 간호를 계속 받게된 강욱. 허나 그녀는 자신의 첫사랑 – 지영이 윤태에게 겁탈을 당해 아이까지 낳고 어디론가 멀리 사라졌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 지영만을 못잊어하며 끝끝내 그녀만을 찾는다. 보다못한 미옥은 눈이 먼 강욱 앞에서 언젠가부터 지영의 행세를 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가족에게도 그렇게 당부해두어 강욱은 지금 자신이 미옥의 집이 아닌 지영의 집에 살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지영(?)과 결국 아이까지 낳게 되는데 그게 민석이다. 아이의 이름을 민석이라 짓고 여전히 자신이 지영과 아이까지 낳게 된걸로만 알게된 강욱.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미옥이 그녀의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는 속았음을 알게된다. 격분한 강욱은 총으로 미옥과 그녀의 가족들을 모두 사살해버리고 그 역시 절망속에 자살해버린다.  

 한편 아이는 일시적으로 이웃주민들에게 거두어져 길러지게 되다 강욱의 소식을 수소문하던 윤승환 – 원래 강욱과 윤태 모두 대학시절 윤승환 교수가 아끼던 제자였다. - 이 그러다 강욱의 아이 존재를 알게되어 결국 그 아이까지 자신이 데리고 가 일단 지영과 윤태 사이에서 낳은 남희까지 그렇게 그 두 아이를 일시적으로 거두게 된 것이다. 

 한편 순주는 원래 강욱의 고향 동생이었는데 강욱은 원래 순주를 고향동생 그 이상의 의미로 생각지 않아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었다. 헌데 그 순주가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강욱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윤승환 교수의 집을 찾는데 그러다 윤태와 지영사이에 생긴 아이 남희는 물론 강욱과 미옥 사이에 생긴 아들 민석의 존재까지 알게된 것이다. 그래서 순주는 고민끝에 남희와 민석 두 아이를 자신이 거두어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2) 성격 및 성장과정 

 

 어릴때는 순주가 친엄마고 남희 또한 친누나라는 것을 추호의 의심도 않고 살았다. 심지어 사춘기때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가출까지 한 누나를 직접 설득을 해 데려오기까지 한다. 허나 차츰 자라면서 민석 역시 자연스레 순주도 남희도 친어머니나 친누나가 아님을 알게된다. 자라서는 명문대를 나온뒤 기자가 되어 특히 정치,사회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게된다. 

 

 * 남희와 민석의 출생의 비밀은 캐릭터 설명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길게 설명한것뿐 저 부분이 극의 중심스토리는 아니니 오해없기 바랍니다. 

 

 윤승환 교수. 

 

 순주가 거두어 키우게 되는 두 아이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있는 대학교수. 원래 강욱과 윤태 두 학생을 아끼던 교수였고 그런 인연으로 두 사람과 두 사람 사이에 얽힌 여자등으로 인해 생긴 두 아이를 자신이 거두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윤승환 교수가 임시로 맡아 키우던 아이를 (황태순 선생의 거처에서 전쟁이 끝난뒤 돌아와서) 서울에서 강욱오빠의 행방을 알기위해 윤교수의 집을 찾아온 김은희가 두 아이의 존재를 알게되고 자신이 거두어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황미영 (1952년생) 

 

 박여옥-황정수 부부의 2녀2남 4남매중 첫째. 딸. 성격은 어릴때부터 엄마 여옥의 당차고 똑부러진 면과 아버지 정수의 진중하고 생각깊은 면을 모두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제법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 편. 따라서 아버지,어머니는 물론 할아버지한테까지 온 집안 식구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자랐다. 뜻밖에 음악쪽에 관심과 소질이 있어 이후 고등학교 음악선생이 된다. 

 

 황규선 (1954년생) 

 

 박여옥-황정수 부부의 2녀2남 4남매중 둘째. 아들.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있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라 명문대 법대를 나외 이후 법조계 엘리트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옥 입장에선 아들로는 자신이 낳은 첫 번째 아들이기도 하고 공부도 잘하고 똑똑해 가장 신경쓰며 예뻐하는 아들 

 

 황미선 (1957년생) 

 

 박여옥-황정수 부부의 2녀2남 4남매중 셋째. 딸. 첫딸이고 똑똑해서 이쁨받는 언니, 집안의 장남이면서 공부도 잘해 온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오빠. 그리고 막내라서 나름 귀여움 받고 자란 밑에동생 규진에 비해 공교롭게도 4남매중 가장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설상가상 할아버지 태순의 유언으로 정수와 여옥이 거두어 키우고 있는 큰아버지 동수의 아들 규옥도 여옥 내외가 이래저래 신경을 안 쓸래야 안쓸수 없는 처지라 미선은 4남매는 물론 4촌오빠 규옥까지 총 다섯명중에 집안에서 가장 천덕꾸러기로 자라났다. 게다가 미선이 자랄때만 해도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그만’이란 의식이 아직 팽배한 시절이라 공부도 별 흥미가 없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혼자 집을 나와 지방의 한 공장노동자로 취직 일하게 된다. 미선 입장에선 차라리 식구들과 멀리 떨어진 지방의 공장에서 일하는게 차라리 ‘해방구’가 되어버린셈. 허나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연을 맺게된다. 

 

 황규진 (1960년생) 

 

 박여옥-황정수 부부의 2녀2남 4남매중 막내. 아들. 막내라서 대체로 어려서부터 귀여움받고 자라서 그런지 다소 응석받이가 되었고 제멋대로인 경향이 있다. 80년대에 대학에 진학 이후 운동권의 길을 걷게 된다. 

 

 황규옥 (1949년생) 

 

 사실은 황태순의 장남 황동수의 아들로 그가 돌도 되기전에 6.25가 터져 그후 아버지 동수는 실종상태가 되었다. 심지어 할아버지 태순은 행여 동수가 북으로 가거나 했을 경우 연좌제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 전쟁이 끝난뒤 아예 아들을 사망신고까지 해 규옥은 그저 아버지(동수)는 전쟁때 돌아가신줄만 알고 자랐다. 태순의 유언대로 며느리 여옥이 조카가 되는 규옥을 거두어 키우게 되었는데 허나 이후 여옥이 자연스럽게 정수와의 사이에 자기 아이들을 출산하게 되면서 여옥은 아무래도 자기 아이들에게 더 관심이 쏠리고 규옥에 대한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옥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규옥으로선 작은어머니에게 여러 가지로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터, 따라서 사춘기때부터 가출등 여러 가지 일탈행위로 여옥의 속을 썩인다. 

 

 * ‘여명의 물결’ 중심 스토리는 40-50년대는 박여옥,김순주 두 여인의 삶이 그리고 60-70-80년대는 여옥이 낳은 자녀와 순주가 거둔 자녀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중심축이 됩니다. 

 


덧글

  • 광주폭동론 2022/07/01 01:35 # 답글

    산업화 이전은 ‘정의가 패하고 불의가 승리한 오욕과 치욕의 역사’ 맞습니다.
    이제는 건국전후의 괴뢰반동학살을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할 때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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