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대도사 일대기
유씨노인은 90년대 초반에 이미 나이 70을 넘긴 사람이다. 무엇보다 40년대생 아들이 셋 있고 90년대 초반에 이미 그 정도 나이라면 대략 1920년대 초반 태생 혹은 그 이전 출생이었을 가능성까지도 추정해볼수 있긴 한데(* 거듭 말하지만 필자도 유씨노인은 직접 만나본 사실은 없다.) 여하튼 이때는 이미 고령으로 몸져 누워있었던 것이다.
“ 으어...가야할때가 온 것 같구나. ”
“ 아버님... ”
유씨노인의 효자아들 3형제는 그렇게 몸져누운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경주 사저에 와 있다. 여하튼 이곳에서 나고 자라 나름 그렇게 파란만장한 70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고 자기아들 셋을 모두 대진교에 입교시키기도 한 대진교 초창기 멤버중 하나이기도 한 노인이 어느덧 이렇게 몸져누운 것이다. 유씨노인의 아들 3형제는 아버지의 고향 경주를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병수발에 힘쓰고 있었다.
“ 내가 직접 내려가 유OO 도자(道者)를 만나봐야겠소. ”
“ 대도사님... ”
대진교가 아무리 군소규모의 신흥종교단체라고 해도 이 무렵엔 회관 6개에 추가로 몇 개 회관을 더 세운다는 계획까지 세운 종단이고 집회때도 가령 각 회관 청운집회때는 평균 20-30명 정도 규모 성인집회때는 50명 이상도 모이는 그런 규모의 종단이다. 종단의 신도 기록카드로만 치면 어쨌든 수백명 규모 어느덧 1천명 가까운 규모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그런 종단이니 그런 대진교의 리더인 대도사가 그 많은 신자며 성직자들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일일이 다 챙겨볼수 없다. 실제 대진교는 종단 성직자,신도들의 생로병사(결혼,장례,병문안,제사,천도,생일,탄생,성인식 등)를 책임지는 자경부(慈敬部)란 부서가 있기도 하고 성직자나 일반신자 개개인의 장례나 천도같은 문제는 이미 각 회관에서 알아서 관리하는게 체계화 되어있을때다. 그러나 유씨노인은 대진교를 세우기 이전부터 대도사를 따랐던 초창기 멤버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중 상당수가 이미 대도사를 배신하고 떠나거나 한 경우도 많아 대도사 입장에선 어느덧 몇 남지않은 초창기 제자중 하나인 유씨노인의 노환에 신경을 쓰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때 대도사가 지방으로 일을 보러 갈때는 대도사의 차량운행을 전담하는 젊은 교사가 서울회관에 상주하고 있으면서 대도사의 급한 연락을 받으면 그의 차량운행을 전담하곤 했는데 그 교사를 급히 불러 직접 경주까지 가서 유씨노인의 병문안을 하기로 한 것이다.
“ 이보시오. 유OO 도자님... ”
어느덧 병색이 완연한 유씨노인의 손을 잡으며 대도사는 탄식하고 있었다. 여하튼 한 종교단체의 지도자쯤 되는 인물이 생자필멸의 천지도리를 어찌 모를까. 허나 초창기 제자중 한사람이었던 이가 이렇게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배신했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자기곁을 떠났던 초창기 제자들의 일보다 더 가슴아프고 쓰린일이 될 수밖에 없다. 모처럼만에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한 눈물까지 뿌리고 있는 대도사. 유씨노인이 그런 대도사를 바라보며 말한다.
“ 지는 이제...여한이 없십니더... ”
“ 유도자님... ”
“ 어쨌든 지도 그 모진 세월을 파란만장하게 산 몸. 제 지나온 70년 인생사도 대하
소설 한편분량 나올만큼의 사연이 있을기지마는...대도사님으로 인해 제 영혼의 본
질을 깨달았으니 거기 더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그저 저희 못난 자손들도 대도
사님께 모든 운명을 맡기고 후천 미륵세상에 진(眞) 극락을 맛보기를 바랄 뿐입니
더. ”
“ 이 사람... ”
대도사가 지금 그런 유씨노인을 바라보며 무슨말을 할수 있을까. 어쩌면 내면으로는 자신이 정말 이런이들을 제대로 극락으로 인도하긴 한것인지 아니면 공연한 짓을 벌여 이들을 괜한 고생을 시킨 것은 아닐지 그런 내면의 갈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한 중년남자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대도사. 그렇게 대도사의 병문안까지 있고 얼마후의 일이다.
“ 얘들아...광식아...하식아...형식아... ”
“ 아버님... ”
유씨노인의 병세는 점차 쇠약해져갔고 그런 병석에서 아들 셋을 부른 것이다. 그리고 이와같이 말한다.
“ 도사님은...대도사님께선 진정한 미륵(彌勒)이시니라. 이 시대 오만인류를 구원할
이 민족의 참 구세주...참 지로자(指路者)이신게야. ”
“ 아버님... ”
“ 너희는 그런 대도사님을 끝까지 충심으로 받들며 오만대성업(五萬大聖業)을 이루
기 바란다. ”
“ 아버님... ”
“ 이 애비야 이제 다 늙어 어찌 후천 극락세상을 볼수야 있겠냐만은 너희 아들대,손
자대에는 볼게 아니냐. 우리 대도사님 이루시려는 오만대성업이 이뤄지는 그 후천
극락의 세상을... ”
“ 아버님... ”
“ 진심으로 미륵부처님을...본심으로 대도사님을 받들거라. ”
대도사를 배신하고 떠난 초창기 멤버 몇몇의 일을 유씨노인도 잘 알기 때문일까. 굳이 진심이니 본심이니 하는 단어까지 덧붙여가며 아들셋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고 있는 유씨노인. 그의 말이 이어진다.
“ 진심(眞心)으로 미륵성현님을 받들거라. 본심(本心)으로 성문(聖門)을 수호(守護)
하여라. 그리고 양심(養心)으로 오만대성업을 이루는 그날까지 함께하거라. ”
“ 아버님... ”
“ 진심으로 미륵님을 받들거라...본심으로 성문을 수호하여라...그리고 양심으로(대
도사님과 함께) 오만대성업을 이룰수 있도록 성현님을 돕거라. 무슨말인지 알겠
느냐 ? ”
기독교를 믿든 천주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증산도나 대순진리회를 믿든 이단이나 사이비를 믿든 혹은 민족종교를 믿든 군소규모의 신흥종교단체를 믿든 그 어떤 종교단체를 믿더라도 인간이 언젠가 나이들어 죽는 것은 누구나 피할수 없다. 보통 생전에 신앙생활,종교생활을 했던 이들이라면 그가 몸담았던 종교에서 알아서 그 장례의식을 치러주기 마련이지만 그러나 죽은뒤에 천국,지옥이 정말 있을지 그것은 죽고나서 직접 확인하기전까진 그 실체를 아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다. 정말로 대도사(혹은 그가 천지신명에게서 직접 명받았다고 주장하는것처럼)의 예언대로 한반도 배꼽땅에소 오만년동안 만 인류중생을 구원할 대 철학이 태어났고 그 대철학으로 인해 오만년동안 55억 지구인류가 구원받는 후천개벽의 미륵시대가 열릴지.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어찌 그것을 확신할수 있을까. 허나 어쨌든 대도사를 초창기부터 따른 제자중 한사람이면서 아들 셋을 모두 대진교에 입교시킨(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집안 식구 22명이 나중에 모두 대진교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성직자나 신도회 간부를 역임하게 되는) 그런 집안의 어른인 유씨노인도 나이 70을 넘겨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대도사는 사저(私邸)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진교 교리에 고기를 금한다는 계율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 눈이 있으니 가급적 육식은 삼가고 있는 대도사. 그런 대도사를 위해 부인이 직접 무쳐준 콩나물 무침과 시금치 무침 그리고 해장국과 안주를 겸하는것인지 역시 손수 끓여다준 두부콩나물국을 들면서 그렇게 술을 들고 있는 것이다. 대도사가 부인에게 말한다.
“ 여보게... ”
“ 예, 대도사님. ”
“ 자네는 내게 제자 하나를 잃는 슬픔이 어떤 감정인지를 아는가 ? ”
다름아닌 초창기 제자중 하나였던 유씨노인이 어느덧 칠순고령으로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은때.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다는 세상이치를 어찌 대도사가 모르겠냐만 여하튼 초창기부터 자신과 함께했던 제자마저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대도사를 적잖이 상심(傷心)케 한듯하다. 그의 탄식이 이어진다.
“ 그러고보면...어느덧 초창기 열세제자중 반이 내 곁을 떠났구먼 ”
원래 불가에 몸담았던 스님이든 대도사가 처음 사주,관상,텔레파시등을 봐주던때부터 자신을 따랐던 순도사였든 혹은 궂은일을 하다가 대도사와 연을 맺은 이른바 생활도인(生活道人)이든 그렇게 후천 미륵세상이 열림을 함께 만천하에 선언했던 13인의 제자들. 헌데 어떤이는 대도사를 배신하거나 물의를 빚은뒤 대진교를 떠나기도 하고 또 이제 유씨노인 같은 이는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그렇게 초창기 13인의 제자중 어느덧 반을 잃은 것이다. 헌데 어찌보면 대도사를 배신하거나 물의를 빚은뒤 떠난 그런이들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일편단심 한마음으로 대도사를 봉심했던 그런이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더더욱 아프고 슬픈 듯. 대도사는 이때의 심정을 이와같이 표현한다.
“ 팔이나 다리 한쪽이 끊어져나가는 것을 경험해본 이가 세상에 과연 있을련지 모르
겠군... ”
“ ...... ”
“ 바로 그런 아픔에 견줄만하다 이 말이지. 제자 하나를 잃고 떠나보내는 내 아픔과
슬픔이 바로 거기에 견줄만하다 이 말일세. 팔이나 다리 하나가 끊어져나가는것과
같은 그런 고통. ”
정말로 그같은 아픔을 느끼는지 대도사는 사뭇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했다. 부인이 걱정되어 술을 그만들 것을 말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러고 싶지는 않은지 정신을 조금 차린뒤 한두잔 더 술을 입에 댄 대도사.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 여보게... ”
“ ...... ”
“ 그러고보니 연림이 청운횐가 뭔가 그것을 만들면서 두가지 목적이 있다고 헀지. ”
“ 대도사님... ”
연림의 경우엔 손수 청운회 창립도 주도하고 도덕가도 만들고 ‘오만대등’ 같은 소식지이자 회보 제작도 주도하고 그런 많은 일을 했음에도 자신이 나이들어 뒤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자 대도사곁을 떠나고 말았다. 새삼 그 연림에 대한 야속함과 서운함도 되살아나는것일까. 사실 애초 연림 순도사가 대진교에도 학생,청년회 단체를 하나 만들자면서 그 이름을 ‘청운동지회’로 하는 목적을 두가지라고 했었다. 바로 이와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 우선 종단의 이미지를 그만큼 젊고 활기차게 만들수도 있고 또 장차 대진교를 이
끌어갈만한 그런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할수도 있는 그런 두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추진해 보잔 말이지요. ”
새삼 그때 연림이 한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대도사. 허나 씁쓸한 표정을 한번 지어보인뒤 부인을 바라보며 말한다.
“ 허나...청운회중 그런 인재가 나올까 ? ”
솔직히 회의적인것일까. 대도사의 말이 이렇게 이어진다.
“ 아무리 그래도...그 청운회 젊은 아이들중 이 대도사가 한민족의 영혼을 되살리는
민족종교 대진교를 세우고 후천 오만년 미륵법을 펴기위해 일어선 그 뜻을 제대로
알고 내 뒤를 이어갈만한 인재가 나올거냐 그 말일세. 난 그 점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중이란 말일세. ”
“ 대도사님... ”
“ 허허...‘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이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몰라도 정말 기가
막힌 말이야. 맞아. 따지고보면 창업을 하는자보다 그 뒤를 이어 대를이어 지켜가
야 하는자의 유업(遺業)이 더 어렵고 힘든것인 것을... ”
아무래도 이제 대도사가 많이 취한 것 같아서일까. 부인이 이제 그만 술을 들것을 권한다. 대도사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쯤에서 술상을 치우게 하고 잠자리에 들려한다. 부인이 고운손으로 손수 이부자리를 챙겨준다.
“ 여보...부인 어디있소... ”
다음날. 날이 밝아 대도사가 깨어났다. 간밤의 술기운이야 밤새 가셨을터인데 갑자기 대도사가 부인을 부르는 것이다.
“ 예, 무슨일이신데요 ? ”
남편의 아침부터 나오는 큰 소리에 방금 막 욕실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부인. 이럴때를 보면 그야말로 평범한 부부의 아침풍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부인을 보며 대도사가 이렇게 말한다.
“ 법전도자(法田道者)에게 속히 연락을 취하시오. ”
‘법전(法田)’이란 다름아닌 편승훈의 아호다. 바로 대진교가 창립되기 전 대도사 거처 인근에서 철물점을 하면서 가끔씩 대도사 집에 하수구가 고장나거나 이럴 때 수리같은 것을 해주러 오다 처음 인연을 맺었던 편승훈. 그때 대도사는 말했다. 그저 속세와 인연을 끊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는것만이 도인이 아니라며 생활속의 고행끝에도 진정한 도(道)를 깨닫는 길이 일려는것이라며. 원래는 남의집 하수구 고쳐주고 변기청소 해주고 타일이나 벽지 같은거 수리해주고 하는 그런 철물점 주인에 불과한 편승훈이지만 그런 편승훈의 관상을 보면서 바로 그런 ‘생활도인’이 날것을 보았던것일까. 즉석에서 편승훈을 발탁하여 자신과 함께하자 하지 않았던가. 그때 대도사가 손수 내려준 아호가 ‘법전(法田)’이다. ‘법의 밭’이란 뜻이니 그 의미 자체가 무척이나 심중(深重)하게 느껴진다. 헌데 갑자기 아침부터 그 법전도자는 왜 찾는것일까. 무엇보다 법전도자도 이때는 엄연히 법사(法師)인데 그렇게 부르지 않고 ‘도자’라고 부르는게 좀 민망한 일이기도 하다. 여하튼 아침부터 갑자기 법전도자를 찾는것에 의아하게 대도사를 바라보고 있는 부인. 부인이 꾸물거리는 것 같자 대도사의 언성이 한옥타브 높아지기까지 한다.
“ 허허...내가 아직 간밤에 마신 곡차(술)가 아직 덜깬줄 아는겐가 ? 어서 빨리 법전
을 부르란말일세. ”
“ 예, 대도사님. ”
이때 법전 내외는 강북의 한 서민형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거리상 이른아침부터 대도사의 호출을 받고 달려오기까진 좀 부담스러운 거리와 위치이긴 하다. 허나 대도사의 호출이 있다는 부인의 전화를 받고 바로 부리나케 전철을 타고 달려온 법전. 집안에 들어선 그를 보며 대도사가 이렇게 엄명을 내린다.
“ 삼정불(三正佛)을 제작해주게. ”
“ 예 ? ”
‘삼정불(三正佛)’이란 대진교의 일종의 상징마크 같은것인데 – 굳이 비유하면 기독교의 십자가나 불교의 ‘만(卍)’자와 비슷한 것이다. - 이른바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그런 형상의 마크다. 사실 ‘천지인 합일사상’은 따지고보면 우리나라 전통 역사속에서 그 흔적을 꽤 많이 찾아볼수 있는데 여하튼 대진교도 표방하는 것이 ‘민족종교’다보니까 그 상징마크로 천지인을 상징하는 ‘○▢△’을 함께 그려넣은 그런 형상인데, 물론 그런 상징마크인 이른바 ‘삼정불’은 이미 대진교에서 사용하고 있긴 하다. - 아무렴 그런 상징마크 하나 없이 시작했겠나 ? ^^;; - 허나 아직 초창기라서인지 각 회관등에서 사용하는 ‘삼정불’ 마크는 좀 허접하고 조잡해보였다. 헌데 대도사가 이 무렵 법전에게 이런 종명(宗命)을 내린 것이다.
“ 법전도자께서 직접 창원이든 영월이든 기도터를 하나 정해 들어가 참선(參禪)을
하시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손수 ‘삼정불 문양’을 창조해내란 말이오. 그 삼정불의
기운을 받은이와 집안이야말로 오만년동안 영생복락,무병장수하는 운복을 받게 될
것이오. ”
단순히 회관이나 총무원에 걸어놓는 상징마크의 의미만이 아니다. 이런 의미도 담겨있다.
“ 삼정불을 모두 36개 만들도록 하시오. ”
“ 36개나요 ? ”
법전이 좀 놀란 듯 눈이 휘둥그래지기까지 하고 그런 법전을 보며 대도사가 이렇게 말한다.
“ 삼정불을 대진교의 진실한 신자(信者) 36인에게 나누어줄것이고. 그리고 그 36인
의 신자집을 후천 미륵회상의 임시 기도처로 삼을것이오. 삼정불을 천지신명으로부
터 하사받은 집안은 앞으로 세세생생 축원하는이의 염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참
기도 명당터가 될것이니 그 사명과 근기를 갖고 제작하시라 이 말이오. 무슨말인지
아시겠소 ? ”
“ 예, 대도사님. 분부받들어 거행하겠나이다. ”
이때부터 법전은 본격적으로 삼정불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헌데 어디 흔한 조형물 만드는 작업이나 건물짓는 작업이 아니지 않는가. 대도사도 말했지만 목욕재계라도 하고 창원회관이든 영월회관이든 좋은 기도터로 들어가 몸소 그곳에서 참선하면서 기선정진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야 하는일. 그래서일까. 법전도 나름 좀 갈등이 있는 듯 했다. 이때 법전(편승훈)은 비슷한 연배의 아내 변보라와의 사이에 총 2녀2남 네자녀가 있었는데 그래서 하루는 작심한 듯 그 네 자녀를 불렀다.
“ 무슨일이신지요 아버지 ? ”
사실 편승훈(법전)과 변보라 내외 사이에 모두 네 자녀가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모일수 있는 자녀는 모두 세명뿐이다. 왜냐하면 큰딸 편강진의 경우에는 이미 한 2-3년전쯤 결혼을 해 남편과 미국으로 이주 그곳에서 살고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큰딸 강진이 이미 한 몇 년전 결혼을 한 사람이라니 이때 나이 서른 안팎정도로 봐야 할것이고 둘째 편강희가 20대 후반 정도의 연령대. 그리고 셋째와 넷째로 아들인 편강일과 편강윤이 20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인데 여하튼 이런 네 자녀를 동향출신의 비슷한 연배의 부인과 지금껏 키우면서 30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철물점을 운영한 것이 그의 나이 대략 20대 초반때쯤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와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면 그렇게 40년 가까이 운영해왔을 철물점. 이래저래 이쯤에서 그 철물점을 접고 대진교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법전도 나름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 있어 이곳에 올 수 없는 큰딸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세 자녀를 모아놓고 아버지로서 하고픈말,당부하고픈말을 남기려는 것이다.
“ 그러고보니 내가 너희 어머니와 함께 철물점을 하면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어느덧
30년 세월이구나... ”
새삼 그런 회한에 사로잡히며 탄식을 내뱉는 법전. 잠시 눈물까지 고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뒤 그의 말은 계속 이어간다.
“ 남들처럼 잘 먹이고 잘 입히지도 못하고 애비로서 너희에게 미안한게 많았었어.
”
“ 아닙니다 아버지. 저흰 그저 아버지,어머니께서 저희 지금까지 키워주시면서 고생
하신거에 늘 감사하며 또 전혀 부족함없이 만족하며 살아오고 있었어요. 그러니 그
런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
겸손이든 진심이든 솔직히 그런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30년 살았는데 그 벌이가 좋아봐야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네 자녀를 온전히 키우는일이 순탄치 않았음에 부모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것이고 자녀들은 자신들 때문에 고생하신 부모님들에 대한 죄송함과 앞으로 더 잘모셔야겠다는 새삼 그런 각오라도 다지는 자리인 셈이다. 법전의 말은 이어진다.
“ 무엇보다 애비가 지금껏 하는일을 대충 너희도 지켜봐왔지만...이제부터 본격적으
로 대도사님을 따라 대진교 종사일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
대도사의 종명을 받아 ‘36 삼정불’ 만드는 제작에 착수하게 되면서 이쯤에서 철물점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렇게 밝히는 것이다. 법전 입장에서도 40년 가까이 운영해온 점포이니 이래저래 회한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터. 불행인지 다행인지 법전의 네 자녀도 부모님의 이런 행보에 별다른 이의나 불만은 없는 듯 하다. 다만 법전의 아쉬움이 남아있기는 하다.
“ 강희 시집가는거라도 보고 일을 접어야 하는건데...여하튼 세상일이 다 뜻대로 안
되는건가보구나. 어쨌거나 천지신명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것이니. ”
어쨌거나 큰딸 강진은 이미 시집을 가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고 나이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둘째 강희까지는 시집가는걸 보고 가고 싶었던 마음. 그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법전의 소회가 이런것이고 그래서 곱기만 한 둘째딸의 손을 꼭 잡아보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이 애비가...그래도 너 시집가는거까진 보고...너 시집가는것까진 챙겨주고 가고
싶었는데말야... ”
“ 당치않으세요 아버님. 전 그저 아버님의 뜻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
마치 조선시대 여인이라도 연상케 하듯 그저 순종적이고 다소곳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강희. 지금이 1990년대이길래 망정이지 아마 30년대쯤 태어났다면 그야말로 양반댁 귀한 규수로 좋은데 시집갔을지도 모르는 그런 분위기의 여인이기까지 하다. 여하튼 그렇게 남아있는 세 자녀에게 뒷일을 당부하고 법전은 40년 세월을 운영해온 철물점을 정리하고 창원회관으로 떠난 것이다. 대진교의 상징인 ‘36 삼정불’을 제작하기 위해.
“ 여보... ”
법전의 아내 변보라는 그런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과 창원을 오가고 있었다. 사실 변보라도 이때 총무원 재무부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종단일로 어차피 총무원에 자주 들러야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무부란 업무 자체가 어느곳이든 그 단체의 재정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 업무가 아닌가. 따라서 단체의 리더 입장에서도 그만큼 신뢰할만한 인물에게 맡길 수밖에 없을터. 변보라가 법사의 직책도 없이 총무원 재무부장 자리에 장기간 앉아있을수 있던 묘도리가 사실 여기에 있다.
“ 이제 어찌하시려구요. ”
“ 어쩌기는 뭘 어째. ”
허나 어쨌든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의 이런 행보가 걱정되어 한마디 하지 않을수가 없고 다만 이 무렵의 법전은 확실하게 대도사에게 충성을 다하는 제자가 되어있는 듯 그저 천지신명의 명대로 모든 것을 따를뿐이란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법전이 참선과 기선에 들어가고 삼정불 제작에 들어갔을 때 아내 변보라는 서울과 창원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아직 남아있는 세 자녀는 미혼인 것 아닌가. 게다가 셋째와 넷째는 아직 대학생 신분. 어머니로서 아이들 돌봐야할 임무는 아직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 변보라가 창원에 남편 내조를 위해 내려왔을 때. 한참 삼정불 제작에 여념이 없던 법전은 얼굴도 어느덧 검게 그을려져 있었다. 30년 넘게 같이 산 아내도 미처 못알아볼 정도로.
“ 그...그 모습 그대로 어디 돌아다니면 진짜 도사나 도인이라도 되는줄 알겠어요.
”
무엇보다 창원회관은 산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일반 주택가나 도시지역등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삼정불 만드느라 한참 눈코뜰새 없는 법전으로선 머리도 감지 못하고 수염도 깎지 못하고 그렇게 더부룩해져 있는 모습. 그런 남편을 사뭇 놀리듯 이렇게 한마디 한 것이다.
안개자욱한 어떤 몽환적인 공간이다. 대충 창원회관 비슷한 구조의 그런 공간인 것 같은데 뭔가 날아가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 정신을 못차리고 흰옷입은 여인 하나가 여기저기를 오가고 있었다. 헌데 그러다가.
“ 어어... ”
어디서 희한한 빛깔의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하나,둘 그런식으로 나중에 보니 어느 한곳에 모여드는 구름이 아홉 개였다. 그리고.
“ 어머...뭐야 ? ”
아홉 개의 구름에서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여인은 당혹스럽고 놀랍게도 그렇게 아홉 개의 구름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너무 오는 것 같아 좀 걱정도 되고 그런데.
‘ 우르릉~~~!!! 꽝꽝~~~!!! ’
이번엔 천둥,번개 치는 소리가 나기도 했고. 여인이 놀라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헌데.
“ 어...어 저게 뭐야... ”
아홉 개의 구름에서 억수로 쏟아진 비. 헌데 그 비가 쏟아진곳에서 만물이 생성하고 있었다. 오만 풀이며 식물. 신기하게도 비가 내려서 풀이나 식물이 자라나는것까지는 그렇다치고 비를맞아 동물이나 사람이 자란다는 소리까진 못들어본 것 같은데 비가 내린곳에서 비단 풀이나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과 사람도 무수하게 생성되고 있었다. 놀란 변보라는 소리를 쳤다.
“ 어어...뭐야 ? ”
그러다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옆자리에 자고있던 법전도 놀라 함께 깰 수밖에 없었는데 변보라가 곧 남편에게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해주었다. 법전이 한참 삼정불 제작에 박차를 가할때였다.
“ 내가 볼땐 기이하면서도 상서로운 길몽에 틀림없는 것 같소. ”
“ 그게 무슨말씀이신지 ? ”
“ 내가 볼땐 아무래도 삼정불이 다 만들어지면 대진교에 신도들이 무수히 몰려들게
돌 그것을 암시하는 천지신명의 시현(示現)이자 예지몽 같소. 삼정불 제작이 끝나면
대진교에 신자들이 무수하게 몰려들게 될거요. 마치 벌떼들 몰려들 듯이 새떼 몰려
들 듯이 아주 수많은 신자들로 대진교가 무수히 번성해서 그 법이 뻗어나가게 될거
요. ”
하루는 대도사가 사저에서 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체로 한가로운 분위기일 때 나온 이야기다.
“ 자넨 어찌 생각하는가 ? ”
“ 무엇을요 대도사님 ? ”
“ 미륵법을 펴나갈 후계자...다시말해 내 뒤를 이어 앞으로 대진교를 이끌어갈 이를
어떤이가 하면 좋겠냐 이 말일세. ”
“ 그...글쎄요. ”
사실 이런 질문을 할진대는 대도사도 결국 자신의 아들을 대진교의 2대 후계자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글쎄. 이럴 때 대도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특히 아내가 남편의 이런말을 들을 때 기분은 과연 어떨까. 사실 이런건 대도사의 부인 마음속이라도 직접 들어가보지 않는한 그녀의 이때 진짜 심리 상태가 어떨지 헤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혹시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라면 나름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동원 어떤 진단이나 판단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무리 무슨 후천개벽의 운을 받았고 오만년동안 만인류 중생을 구원할 그런 교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라지만 완전 제3자인 바깥의 남의 시선에서 봤을때는 그저 무명의 신흥종교인데다가 세력도 그다지 크지 않다. 이럴진대 한 사람의 여자로서 그리고 자식 키우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기 아이가 대도사의 뒤를 이어 대진교 2대 후계자가 되길 원할까. 아니면 평범하게 자라 기왕이면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나와 속세에서 출세하길 바라는 평범한 세상 어머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게 될까. 어쨌거나 대도사의 부인도 대도사의 교리와 종교에 동의하고 있으니까 함께 여기까지 왔지 그렇지 않다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다. 그럴진대 그런 여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들이 평범하게 사회에서 출세하는 길을 택하길 바랄지 대도사의 뒤를 이어서 대진교의 법을 펴는 일을 하게되기 바랄지. 그건 진짜 대도사의 부인의 처지와 입장이 되어보기 전엔 사실상 이해할수도 파악할수도 없는 그런 성질의 사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 애초에 청운회를 세운 목적도 거기에 있지. ”
원래 연림이 청운회를 만들자고 한 목적이 두가지 아니었던가. 그 하나가 대진교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좀 젊고 활기차게 해보자는것과 두 번째는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자는 것. 그럴진대 만약 청운회중에 합당한 인재가 양성이 된다면 그런 이에게 2대 교주자리를 물려줄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근데 과연 ‘2대 대도사 – 헌데 2대교주 명칭은 ’대도사‘로 하지 않고 다른 명칭으로 하려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자리를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느냐 아니면 청운회중 합당한 인재가 나올 경우 그런이에게 2대 교주 자리를 물려주느냐. 대도사 입장에서도 결정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 될 것이다. (* 아무래도 이런 문제는 교회 목사세습 문제로 골머리 썩는 대형교회 목사,장로들이 해답을 알고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
헌데 솔직히 대도사나 종단 고위 관계자들은 정말 청운회에서 대진교를 이끌어갈만한 차세대 지도자(경우에 따라선 2대 교주까지도)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는게 좋았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청운회는 대진교와는 좀 동떨어진 정서와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 다만 이 부분은 ’소설 ‘청운의 밤에 생긴일 – 솔로가수 팬픽 ’장윤정 편‘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했으니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궁금한 분들은 해당 소설을 참고하기 바란다.)
몇가지 대표적인 사건들을 열거하자면 이런것들이 있다. 한번은 서울-송도 청운회끼리 합동집회를 하는데 그곳에서 사회를 맡은 청운회원이 종단 고위층 인사 명단을 한두번도 아닌 최소한 세 번 이상 잘못말한일이 있었다.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려운일이 적어도 그만한 명칭을 평상시 숙지하지 못할만한 회원도 아니었고 또 당시 분위기나 흐름을 봐도 뭔가 고의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 이런걸 자꾸 정치판에 비유하는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령 박근혜 지지자들 모인 집회에서 행사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 연설순서를 말하면서 ‘자 다음은 박근에 민주공화당 총재님의 연설이 있겠습니다’라고 외친다면 분위기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 - 정치판에 자꾸 비유하는 것은 상황이해를 돕기 위함일뿐 다른 의도나 저의는 없으니 오해없기 바란다.)
선약(先約) 논란이 청운회 초창기때부터 있었다. - 솔직히 필자도 청운회에 가담했던 초창기엔 그게 무슨소린지 몰랐는데 한 몇 년 겪어보니 무슨이야긴지 알 것 같았다. ^^;; - 이건 결국 자연스럽게 교회다니는 아이들과 비교해서 언급이 될 수밖에 없는데 보통 교회다니는 아이들은 주일예배에 참석하든 교회 청년부든 중,고등부든 그런 자체 집회에 참석하든 그걸 다른 친구들이나 일반 사회동아리 모임 이런 약속들보다 우선시 하는데 청운회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가령 교회다니는 애들인 친구들이 ‘같이 어디 놀라가자’고 하더라도 가령 교회 청년부나 중고등부 집회같은 ‘선약’이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데 청운회의 경우엔 오히려 청운집회든 대진교 집회든 그것이 자신의 일반 사회에서의 모임 – 그게 친구들끼리 놀러가는것이든, 엄마,아빠 심부름이 되었든, 학교써클 모임이 되었든 누군지도 모르는 먼 친척 장례나 결혼식이 되었든 – 보다 우선시 되지 않고 청운회 집회나 대진교 집회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반사회에서의 모임이나 약속등을 이유로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즉 교회다니는 애들은 선약 즉 교회모임이 먼저 우선시되는데 대진교 청운회들은 반대로 사회에서의 모임이나 약속이 선약 즉 우선시되지 대진교 집회든 청운회 집회든 그런 것이 우선시되지 않아 그것이 청운회 집회가 잘 활성화되지 않는 주요한 고민거리고 딜레마였다는 그게 청운동지회 창립 초창기때부터 쭉 이어져내려왔던 고민이었던 것 같다.
어떤책에 보니까 그런말이 있었다. 사이비종교가 되었든 신흥종교가 되었든 그게 성공하려면 세가지 조건이 갖춰줘야 한다. 첫 번째가 (1) 구성원(신도)간의 소속적 일체감 그리고 (2) (구성원들을 하나라 묶을만한) 외부의 가상적 그리고 그 가상적에 대한 (3) 두려움. 그것이 있어야 신도들을 하나로 묶을수 있다고. 헌데 대체로 보면 청운회는 대진교와 ‘소속적 일체감’을 느끼지 못했다. 소속적 일체감이 없으니 설사 그 종단이 설정한 ‘가상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상적에 공감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가상적에 공감하지 못하니 그 가상적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수 있겠는가. - 솔직히 ‘서양귀신(기독교)이 우리 민족정기(혹은 민족영혼)를 다 잡아먹는다’는 말 만큼이나 확실한 ‘가상적’이 어디있다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진교 청운회는 대진교 종단 자체와 어떤 신앙적 일체감이 없었던 것 같다. 대체로보면 청운회 회원 상당수는 대진교의 청운집회를 그냥 비슷한 또래 친구들끼리 만나 어울리며 노는곳 그 이상의 의미로는 생각 안했던 것 같다. 사실 종교단체란 그 성격상 그 청년회가 되었든 학생회가 되었든 결국 그 구성멤버중 상당수는 성인신자들의 자녀등을 중심으로 구성되게 마련이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운회에게 대진교 종단과의 일체감이 별로 없었다는 것. 그것은 아무래도 인류종교사적 수수께끼로 남을것만 같다.
사실 청운회가 늘상 문제만 일으켰던 것은 아니고 의외로 착한일을 한번 한적도 있어 그 일화 하나만 간단하게 소개할까 한다. 아마 그 역시 90년대 초반쯤의 일이다. 창원회관 성직자와 청운회원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종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관광버스를 대절 서울로 올라오고 있을때였다. 헌데 아마 구마고속도로쯤이었을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곳에서 결코 간단치 않은 고속버스 추돌사고가 있었다. 뭔가 상황이 심각하다 생각했는지 청운회원 몇몇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타고가는 관광버스를 멈추게 하고 그 사고 생존자,부상자들을 구한 것이다. - 헌데 지금 생각해보니 전문적인 구조훈련 같은 것을 배운 것은 아닐 일반 청원회원들이 실제 구조활동을 벌였다고 보긴 어렵고 아마 현장에 도착한 앰뷸런스등 전문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는 것을 옆에서 돕는 보조역할 정도를 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 솔직히 그 일이 있었을 때 대진교 종단측에서는 그 일이 어떤 형태로든 신문기사에 나길 바랬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청운회원들이 구조활동을 도운 것은 신문에 나지 않았다. - 그래서 내 그 아쉬움이라도 달래주고자 이런 일화도 소개하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청운회를 통해 대진교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려 했던 초창기 종단 지도부의 구상은 실패로 끝난 셈이다. 솔직히 청운회원 상당수는 각 회관 청운집회가 되었든 1년에 한두번씩 전국 회원들이 모이는 동,하계 수련대회가 되었든 그것을 그냥 비슷한 또래 친구들 만나서 놀고 어울리는 그 정도의 의미로만 생각했었을뿐 그것이 종교집회고 신앙생활이라는 각성은 하지 못한 것 같다. 그게 청운회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자 이유로 보면 될듯하다.
“ 그럼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신가요 대도사님 ? ”
헌데 청운회에 마땅히 훗날 대도사의 뒤를 부탁할 지도자나 후계자감이 없다면 결국 선택할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지 않는가. 자기 아들한테 후대(後代)를 물려주는 것. 어찌되었거나 대진교의 역사는 그런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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