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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가수 팬픽 - 채연 (11) 솔로가수 팬픽


                            부제 : 대도사 일대기
 

 

 “ 푸른하늘 높은구름 우리의 기상~~~ / OO님 크신 진리로 하나가 되어~~~ 

   선행에 앞장 서고 우애로 봉사하여~~~ / 이 어두운 세상에 밝은빛 되리라~~~ 

  

                        - OO교 ‘도덕가(道德歌)’로 청운회 주제가인 ‘청운가’ ” 

 

              (* 18...진짜 추억 솟는다...기문모나 하늘빛72 애들은 어릴떄 교회에서 부르던 

                 복음성가 커서 다시 부르면 추억솟는다고 하더만... -.-;;)  

 

 결국 대진교의 학생회,청년회 단체인 ‘청운동지회(靑雲同志會 : 약칭 청운회)’가 발족되었다. 대진교가 창립된지 대략 3-4년쯤이 지난뒤의 일로 봐야할텐데, 청운회가 창립되면서 청운회 주제가인 ‘청운가’란 제목의 ‘도덕가(道德歌)’도 함께 만들어졌다. 도덕가란 굳이 비유하자면 기독교의 찬송가나 불교의 찬불가 비슷하게 대진교의 교리나 신을 찬양하고 기리는 그런 주제의 노래인데, 대략 청운회가 발족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청운회의 주제가인 ‘청운가’를 비롯한 10여곡 정도의 ‘도덕가’가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역시 연림 순도사의 아이디어로 알고 있다. 

 “ 도덕가라니 ? 그건 또 뭔데 ? ” 

 “ 한마디로 저희 종단의 주제가를 만들어보자 이거죠. ” 

 “ 뭐...굳이 따지자면 교회의 찬송가나 복음성가 그런거 비슷한걸 만들어보자 이 이 

  야긴가 ? ” 

 대진교 ‘3대 순도사’중 하나인 중산도 찬송가나 복음성가같은 개념을 들어본적은 있어서인지 그런식으로 물었고 연림이 바로 그런 의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여하튼 대진교의 이미지를 좀 더 젊고 활기차게 해보자는 그런 의미지. 그러면서 

  이전까지 있었던 안좋고 어두운 일들을 싹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백지환원’한 상 

  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이 말일세. ” 

 연림의 말에 중산과 청죽이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대도사가 윤허(允許)하여 ‘도덕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도덕가 가사들은 대개 연림이 주도하여 ‘작사’하였으나 작곡은 아무래도 전문가가 필요하니만큼 연림이 주변에 아는 작곡가에게 의뢰 곡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 연세대인가 고려대 음대교수중 연림과 평상시 친분이 있는이가 있어 그 사람 도움을 받아 작곡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은 정확치 는 않다.) 

‘오만대등(五萬大燈)’이란 대진교의 소식지겸 회보 성격의 간행물도 만들어졌다. 명칭은 이후 두어차례 정도 바뀐걸로 아는데 여하튼 초창기 공식 명칭은 ‘오만대등’이었다. 연림이 이때 총무원의 ‘교화부장’을 맡으면서 청운회 창설에서부터 도덕가 제작은 물론 오만대등 제작까지 모든 것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연림이 1930년대 초반 태생으로 80년대에 이미 나이 50을 넘긴 여성 답지 않게 꽤 팔방미인같은 재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그렇게 대진교가 하나하나 조금씩 ‘종교단체’의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여하튼 고생이 많았으이. 그러고보면 청운회 창설, 도덕가 제작, 오만대등 제작까 

  지...사실상 연림이 혼자 다 했네. ” 

 이 무럽 대진교의 총무원은 ‘창원회관’에 소재하고 있었는데 연림과 중산은 사실상 이 무렵부터 한달의 반 이상은 총무원에 거주하다시피 하면서 종단일을 보고 있었다. 청죽의 경우엔 아직 아들 셋을 키우는 가정주부의 몸이라 쉽지 않았지만 남편을 여읜지 이미 오래인 연림이나 남편이 스무살 연상(* 이때쯤엔 이미 고령이라서 집에서 실권은 거의 중산이 쥐고 움직였을것으로 추정된다.)이라 부인이 하는일에 별로 관여나 간섭을 못하고 있는 중산은 상대적으로 이런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수가 있어서인지 그것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 무렵의 대진교는 중산,청죽,연림 이들 ‘3대 순도사’가 주도해서 이끌어갔던 것 같다. 

 “ 서울회관은 그럼 지금 OO법사가 이끌어가고 있는것인가 ? ” 

 원산(圓山)이라는 호남출신의 초창기 멤버도 이 무렵 법사가 되어 총무원에서 ‘법사부장’을 맡고 있었다. 호남출신이라 거주하는곳도 그곳이니 상대적으로 서울이나 인천까지 올라오거나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원산이 그쪽 소식이 궁금해서 그렇게 물은 것이다. 청죽이 답했다. 

 “ 맞아요. OO법사라고 원래 OO사에 계시다 오셨던분이... ” 

 “ 거...신비성 떨어지니까...OO사니 OO사니 하는 이야긴 이제 좀 그만 하래두 !!! ” 

 ‘땡중 4인방’이 모두 제명된후에 대진교 회관들은 가령 부산이나 이리의 경우엔 원래 그곳에서 신도회장을 하던이(남성)를 ‘법사’로 임명 승진시키듯이 ‘회관장’으로 임명했고 서울도 그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헌데 어쨌든 이 무렵에도 생각보다 원래 불교신자였다가 대진교로 들어온 이들이 제법 되었던 것 같다. 대개는 OO사나 OO사(* 이름대면 알만한 유명한 불교종단 사찰들이다.) 출신인걸로 아는데, 여하튼 어떻게 입소문이 났는지 생각보다 불교출신들이 많이 들어왔었고 다만 이런 문제는 지금 중산 순도사의 말처럼 ‘신비성’ 문제 때문에 언급을 가급적 삼가는 분위기였다. 여하튼 ‘땡중 4인방’이 나가고 난뒤 새로 서울회관 회관장이 된 이도 대체로 종교 신도회 조직운영에 그런대로 노하우가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청운회도 만들어지고 도덕가도 만들어지고 그런식으로 대체로 종단 이미지가 젊어지고 활기차게 새출발을 하던 시기 추진하던 또 한가지 일이 있었다. 다름아닌 ‘문화재단(文化財團)’을 만들자는 논의였다. 

 “ 문화재단을 만들자구요 ? ” 

 사실 ‘문화재단’을 만들려고 한데는 두가지 속사정이 있었다. 그 하나는 어떻든 대외적으로 ‘사이비 이미지를 불식시키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실은 재산과 관련된 문제다. 이때까지 아마 대진교의 회관들은(총 6곳) 상당수가 개인소유로 되어 있거나 부산 같은 경우엔 상가건물을 빌려 흔한 건물 세입자처럼 월세나 전세를 내면서 운영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여하튼 그러다보니 세금문제나 이런게 생각보다 꽤 복잡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예 이런 회관들을 증여나 기부같은 형식으로 ‘문화재단’ 재산으로 귀속시켜 세금내는 문제등을 일원화 시키자는 대략 이런 논의가 그래서 시작되었던 듯 하다. 

 “ 제가 한번 그럼 힘을 써보도록 하죠. ” 

 민정당 원외지구당 위원장(* 지금의 당협위원장)을 지내기도 하고 공기업 감사도 잠시 지낸바 있는 황이사라는 인물이 이때 대진교의 신자로 있었다. - ‘산신도인(풍수사)’처럼 대외협력자 같은 위치는 분명 아니었고 신도였었던 것은 분명하다. 여하튼 이 무렵 대외적인 업무를 이 사람한테 일임하려 했던것인데 그래서 이 황이사의 주도로 ‘문화재단’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헌데 재단법인이든 사단법인이든 막상 만들려고 하면 그 작업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다. 여하튼 대진교도 이런 문제에 실무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니 민정당에서 원외 위원장까지 지냈다는 황이사에게 업무 일체를 일임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생각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진 않았다. 여하튼 종단측에선 이 무렵에 일시적으로 황이사를 ‘준(準) 법사’에 ‘총무원 총무부장’으로까지 임명하고 일을 맡겼던것인데 여하튼 생각보다 순탄하게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황이사는 졸지에 정치적인 오해까지 받게 되었다. 민정당 원외 지구당 위원장에 공기업 감사도 잠시 역임했던 황 모라는 사람이 무슨 재단을 만든다며 바삐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나자 민정당에서 이전에 그를 알던 동료 몇몇이 찾아온 것이다. 

 “ 황형, 차라리 우리가 각하께 잘 말씀드려서 다음 총선때 공천받을수 있게 해 드릴 

  께. 뭐 그렇게 쓸데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다녀. ” 

 정당의 원외 위원장에 공기업 감사까지 했다는 사람이 무슨 재단법인을 만든다며 돌아다닌다니까 주변에선 이를 사실상 ‘정치재개’의 행보로 받아들였던것일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런식의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러나 일단 황이사의 진짜 의도는 그것이 아니기에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다. 

 “ 그...참...정치재개를 하려는게 아니라니까. ” 

 “ 그럼 대체 왜 그러는건데 ? 지금 갑자기 무슨 재단을 만들겠다는거야 ? ” 

 일단 대진교에서 만드는 재단은 명목상 ‘전통문화 계승’사업을 하고 불우 청소년들을 돕는 ‘장학사업’을 하겠다는 것을 대외적인 명목으로 내걸었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는다 ? 누가봐도 사실상 정치재개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행보가 아니겠는가. 이래저래 오해는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허허...그것 참... ” 

 황이사도 나름 입담은 좋은 사람이니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적당히 해명할만한 변명거리를 만들지 못하진 않았겠지만 여하튼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꼬여갔던 것이다. 일단 황이사는 자신을 찾아오는 옛 정치권 시절 동료들을 만나면 이런식으로 해명하긴 했다. 

 “ 뭐...솔직히 나도 정치는 더 뜻이 없고...살면서 힘든일이 많았으이. 그래서 속세 

  와 인연을 끊고 유유자적 살아볼까 그 생각도 해봤었네만은... ” 

 다만 대진교라는 신흥종교단체에 신자가 되었다는것까지 밝히기는 좀 난감했던것일까. 이런식으로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그냥 어쨌든 나 나름대로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보고 가끔씩 이름있는 사찰같은데 

  들어가 수행정진도 해보고 그랬네마는...뭐 여하튼...세상이 참 가면 갈수록 복잡하 

  고 어지럽게 돌아간다. 그 생각밖에 안 들더군. ” 

 근데 어차피 이런식으로 말하면 정치권 주변인사들에겐 전부 ‘정치 재개하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릴수가 없다. 점차 변명거리가 궁색해지자 황이사는 나중에 이런 소리까지 했다. 

 “ 솔직히 자네들도 나와 정치권에서 교류해보면서 대충 알겠지만...나도 어쨌든 나름 

  ‘순수한 민족주의자’일세. ” 

 “ 하하...그건 우리도 잘 알지. ” 

 “ 어쨌든...내 어리석고 미욱하나마 소박한 작은 바램이 있다면 장차 통일시대를 준 

  비할만한 그런 새로운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해보고 싶다 그 말일세. ” 

 “ ...... ” 

 “ 그 가령...이를테면 이런건 어떨까. 나중에 한번 ‘남북 청소년’들을 한자리에 모 

  이게 하는 ‘통일 청소년 수련대회’ 같은걸 열어본다던가... ” 

 헌데 이쯤되면 단순히 국회의원 출마가 아니라 심지어 ‘통일 대통령’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리밖에 안되는 것 아닌가. 이래저래 황이사가 정치재개를 하고 싶어서 무슨 문화재단을 낸다더라 그런식으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정당에서 황이사를 아는 동료나 선후배들은 이런식으로 그를 설득한 것이다. 

 “ 거 참...그러지말고...우리가 각하께...총재님께 잘 말씀드려볼게. 다음 총선때 강원 

  도 어디서든(* 황이사 고향이 강원도임) 쉽게 뒬수 있는곳에 공천 받을수 있도록  

  말야. ” 

 (* 헌데 이때가 1980년대 후반(대략 1989년 정도) 이고, 1990년에 가서 이른바 ‘3당합당’이 

   벌어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무렵에 이런식의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안습이긴 하다.) 

 어쨌든 황이사라는 인물의 행보가 심상찮자 나중엔 안기부에서까지 은밀히 사람이 찾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안기부 인사가 황이사에게 전한 말은 경고라기 보단 사뭇 조언이나 충고처럼 보이는 애매한 이야기였다. 

 “ 황선생, 황선생께선 혹시 우리 각하께서 하시는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아 

  시오 ? ” 

 “ 그야 뭐...여소야대 정국에...재야,야당 인사들의 방북파동에...그런것 때문에 골치 

  아프신건 아닌가요 ? ” 

 “ 아니에요 아니야. 그런건 이미 세상에 다 알려져있는 이슈들이고...은밀히 골치아 

  파 하시는 문제가 있어요. ” 

 “ 그건 대체 무슨소린가요 ? ” 

 안기부 인사가 손까지 내저으며 탄식조로 한 말이다. 허나 황이사도 이 부분은 통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황이사를 보며 안기부 인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 실은...여당종교가 없어요. 그게 지금 가장 큰 문제란 말이지. ” 

 이 시절 유력 야당인사중 한명이 기독교 신자고 또 한 사람은 천주교 신자다. 그러다보니 기독교나 천주교는 대체로 야당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전OO,노OO는 대체로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부분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속사정이 있는지 안기부 요원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 그게 또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막연히 전OO,  

  노OO가 불교신자니 불교는 전OO,노OO를 편들겠거니 생각하나본데...그것도 알고 

  보면 생각보다 그게 쉽지가 않아요. ” 

 “ ...... ” 

 “ 솔직히 그게 우리 입장에서도 좀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에요. 불교계에 우리가 갖고 

  있는 서운한 부분이기도 하고. 아니 기독교는 김OO이가 예수쟁이라고 다들 김OO 

  편들고 천주교도 김OO이 천주교 신자라 김OO 편드는데 불교는 참 왜 그게 안되는 

  건지... ” 

 그렇게 각하의 은밀한 고충을 전한 안기부요원. 그러면서 각하의 뜻을 전한다. 

 “ 그래서...‘민족종교’를 한번 띄워보면 어떨까. 그런 내부논의가 좀 있어요. ” 

 “ 민족종교를요 ? ” 

 순간 솔깃해지는 황이사. 안기부 요원의 설명이 이어진다. 

 “ 그...예전 박정희 대통령 국장때 기독교,불교,천주교 ‘3대 종교 지도자’가 나와서 

  각하의 국장 추도의식을 진행하던거 아마 다들 기억할거요. 그렇게...어떻게 보면 

  그런 국장이든 국민장이든 그런 국가적인 추도행사때 장례의식까지 손수 집행할 

  정도로 현재(1980년대) 한국사회에선 기독교,불교,천주교가 대한민국이 공식적으 

  로 공인하는 ‘3대종교’다 이 말이지. 근데 그 3대종교중 두 개(기독교,천주교)가  

  야당이에요. 그렇다고 불교가 여당종교냐 하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우릴 편드는 것 

  같지도 않고... ” 

 “ 그래서 이를테면...민족종교를 정부차원에서 한번 띄워볼 생각이 있다 그런 말씀 

  이신가요 ? ” 

 “ 그렇지 !!! 바로 그거요 !!! ” 

 이제야 황이사가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아 안기부 요원이 손뼉을 쳤다. 대진교에서 만든 ‘대도문화재단(大道文化財團)’이 설립허가가 난 것이 이 부분과 꼭 연관이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여하튼 이 무렵 당시 집권세력은 ‘여당종교’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사실상 ‘야당종교’인 기독교와 천주교를 견제할 목적으로 ‘민족종교’를 띄워볼 논의가 내부적으로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음은 일정부분 사실인 듯 하다. 황이사가 은밀히 만났다는 안기부 요원으로부터 전해들었다는 이야기다. 

 윤승환이란 사람을 만난것도 아마 이 무렵인 듯 하다. 윤승환과 황이사의 교류 혹은 인연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까진 필자가 알기 어렵다. 다만 이 무렵 종종 황이사와 교류하던 윤승환은 그에게 이런말을 했다. 

 “ 황형, 지금부터 내가 하는말 그리 고깝게 듣진 마시고 한번 들어주기 바라오. ” 

 “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 ” 

 “ 황형은 2천년전 예수의 기독교가 왜 갑자기 퍼지게 되었는지 그 이치를 혹시 아 

  시오 ? ” 

 “ 글쎄요 뭐...난 예수쟁이도 아니고 원래 순수한 민족주의자니 그런데 별 관심이 

  없소. ” 

 “ 그러지말고 내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보시오. 원래 예수가 태어나기 전까지 이스라 

  엘 민족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를 섬겼단 말이지. 그...유대교에선 구 

  약만을 성경으로 친다는 그 정도 이야기는 황형도 들어봤을거요. ” 

 “ 들어는 보았습니다만. ” 

 “ 2천년전 유대교는...뭐 꼭 썩어빠졌다기보단...뭐랄까 민중과 너무 괴리되어있는 그 

  런 것이 있었소. 유대교에서 설교를 하는 랍비들이...율법타령만 하고 민중의 가슴 

  에 와 닿는 그런게 별로 없었단말이지. ” 

 “ ...... ” 

 “ 헌데 예수라는이가 나와서 그렇게 말한거요. ‘내가 곧 생명이고 진리라. 이웃을 사 

  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라.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것보다 어 

  렵다. 가난한자, 헐벗고 굶주린자들을 사랑으로 감싸안고 그들을 도와라.’ 그런식의 

  이야기들이 그 시절 유대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거지. ” 

 “ 그래서...그게 뭐 어쨌다는겁니까 ? ” 

 여하튼 황이사도 정서적으로 기독교를 불편하게 보는 사람이었으니 이런식의 윤승환의 장황한 설명이 편하게 들렸을리는 없다. 그 의도를 알다가도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허나 윤승환은 그런 황이사를 진정시키며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 따지고보면 기독교도 300년동안은 이단이고 사이비였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 

  제가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공인하기전까진...오히려 그전까진 심지어 로마 황제들 

  이 기독교인들을 사자우리에 처넣기도 하는등 – 뭐 그 자체가 과장된 이야기란 주 

  장도 근래에는 있지만...뭐 어쨌든... - 그렇게까지 핍박하던게 기독교 아니겠소. ” 

 “ 그야 그렇지요. ” 

 그 정도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다 한두번쯤 들어본 이야기라서인지 이렇게 대꾸하는 황이사. 윤승환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내 말은...기독교가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유대인으로부터 시작 로마에 이르기 

  까지 300년을 끈질기게 이어갈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던 것 같겠냐 그 말 

  이요. 단순이 이유나 원인이 아닌...원동력...즉 그 힘이 어디에 있었을 것 같냐 그 

  말이지. ” 

 “ 그...글쎄요. ” 

 “ 그만큼 기독교 진리가 그 당시 민중들에게 그 이전의 종교에 비해 나은 뭔가가 

  있고 그만큼 가슴에 와닿게 하는 진리나 교리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소 ? 사실 그 

  래요. 흔히 인간이 나약하기에 종교에 의지하게 되고 종교를 믿게 되는거라지만... 

  또 그만큼 나약하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는것도 인간의 마음이라오. 아무리 순교 

  (殉敎)가 어쩌구 해도...사람의 목숨은 어차피 한번뿐이고 죽으면 끝 아니오 ? 솔 

  직히 죽은뒤에 정말 천당,지옥이 있는지 아니면 나중에 후세들이 자신을 순교자로 

  추앙해 주기나 할지. 그걸 어찌 확신할수 있느냐는 말이지. ” 

 “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그렇게 모진 핍박속에서도 300년을 이어가다 결국 

  로마시대에 이르러 국교로 공인되기에 이른것이란 말이오.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 

  게 전 세계적으로 퍼질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어느덧 지금으로부터 1700년전 일인 

  그 당시 유럽 최대의 강자였던 로마에서 국교로 공인받고 이후엔 유럽이 역사에서 

  강자가 되고 승자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 

 “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건가요 ? ”  

 아직은 윤승환의 말하는 의도가 이해 안가고 그저 자신의 어설프게 아는 지식 좀 현란하게 늘어놓는 느낌이라 황이사 입장에선 좀 짜증이 날법도 한데 윤승환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 차를 한모금 음미한뒤 차분하게 자기말을 이어간다. 

 “ 기독교가 그렇게 300년을 핍박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이어가다 결국 국교로 공인받 

  을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있었겠냐 그걸 묻고 있는게요 나는. ” 

 “ 그...글쎄요. ” 

 “ 결국 이유는 둘중 하나가 아니겠소. 첫째로 기독교가 정말 그전의 유대교나 다신 

  교를 신봉했던 로마등...그 이전의 신앙보다 확실하게 민중들의 마음을...대중을 사 

  로잡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가... ” 

 “ ...... ” 

 “ 그런게 아니라면 결국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인도하심으로 해석하는길 밖 

  에는 달리 방도가 없지 않겠소 ? 안그렇소 황선생. ” 

 빙긋이 황이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윤승환. 그에게 황이사가 이렇게 말을 건넨다. 

 “ 그래서 뭘 어쩌라는 말씀이신가요. ” 

 “ 난 뭐 근래들어 소위 후천개벽이다 뭐다 이런 주장을 하는 종교들이 계속 생겨나 

  는 것을 일종의 ‘세기말적 현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그러고보 

  니 20세기도 이제 정말 한 10년정도밖에 남지 않았구려. 바로 그런 시점에 소위 

  후천개벽이다 뭐다 이런 주장을 하는 종교들이 생겨난다는게 일종의 세기말적 현상 

  일수도 있다 그 말이지. 어쨌든 인간들이 다시 뭔가 불안해 하고 있다. 그 방증이 

  아니겠소 ? ” 

 “ 그래서요 ? ” 

 “ 헌데...내 말은 결국 그거요. 신흥종교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 교세를 제대로  

  확장하려거든 기성 종교의 교리나 이런것들과는 다른 확실하게 대중의 마음을 사 

  로잡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이지. 어쨌든 ‘아, 저 종교엔 확실히 기독교나 불 

  교와 다른 뭔가가 있구나’ 하는 그런게 있어야 신흥종교의 생명력이 길어질수 있다 

  그 말이오. ” 

 “ 아...네에... ”


 

 대충 윤승환의 말하는 의도가 이해가 가서일까. 그제서야 황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윤승환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그리고 실은...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황선생에게 하는게 어떨지 모르겠는데...내가 

  이전에 봤던 어떤 책에 보니 그런말이 있더이다. ” 

 “ 어떤 이야기가요  ” 

 “ 뭐 대략 사이비나 이단 혹은 신흥종교 그런걸 연구하는 책자니까 그런말이 적혀  

  있겠지만...사이비가 되었든 신흥종교가 되었든 신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면  

  세가지가 필요하다 적혀있었소. ” 

 “ 어떤게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 ” 

 “ 두려움과 적대감. 그리고 구성원들의 소속에 대한 일체감이지. 종교란게 결국 그 

  렇지 않소 ? 그 신도를 이루는 구성원들간에 하나가 되는 일체감이 없다면 어찌 

  그 종교가 유지가 가능하겠소. 그렇지 않소 ? ” 

 “ 듣고보니 그건 그러네요. ” 

 도대체 윤승환은 무슨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것일까. 어쨌든 그런대로 들어둘만한 이야기다 싶어서인지 황이사는 윤승환의 말을 계속 경청하고 있다. 

 “ 아까도 내가...정히 신흥종교의 교리를 펴려면은 결국 그 이전까지 존재했던 구(舊 

  ) 시대의 종교를 대체할만한 구시대 종교의 모순이나 문제점 이런 것을 대체할만한 

  확실한 대안이 있어야 그게 가능하다 그 말을 하는게요. 뭐 자꾸 기독교를 언급하 

  는게 좀 그렇긴 하지만...그렇게 예수가 나서서 기존 유대교의 대체재가 될수 있었 

  던것처럼...막연히 다신교를 믿었던 로마의 일반 백성들에게 확실하게 그들의 마음 

  을 사로잡을수 있게 했던것처럼... - 따지고보면 우리도 조선후기에 처음 그렇게 천 

  주교가 쉽게 민중속에 파고들 수 있었던 것 아니오 ? 양반,상놈이나 따지고 공자왈 

  ,맹자왈도 모자라 자기네들끼리 기득권 유지를 위해 당파싸움이나 하는 그런 시대 

  에 핍박받는 백성들에게...하나님만 제대로 믿으면 구원받을수 있다...하나님 앞에선 

  양반이건 상놈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 평등하다. 그런 진리가 얼마나 기가막힌 새 

  로운 대안체제로 부상할수 있었겠냔 말이오. 난 그 점을 말하고 있는것이오. ” 

 “ ...... ” 

 “ 실은 나도 대진교 집회에 몇 번 참석해서 설법을 들어보긴 했지만... ” 

 “ 윤선생님께서 저희 대진교 집회에 참석하신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 

 그건 좀 뜻밖이라 황이사가 좀 의아해져 묻고 윤승환이 해명삼아 덧붙인다. 

 “ 뭐...그 대도산가 뭔가 하는이는 아니고 다른 법사가 설법을 하던 법회긴 했지만 

  ...두어번 그 종교 집회에 궁금해서 가본적은 있소. 근데 솔직히... ” 

 “ ...... ” 

 “ 내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는 뭔가가 없더구료. 그게 좀 안타까왔소. ” 

 “ 윤선생님... ” 

 윤승환의 반응이 결국 이와같자 좀 실망스러우면서도 안타까와져서일까. 황이사가 약간 뭔가 간곡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고 황이사를 바라보는 윤승환의 말은 이어진다. 

 “ 자꾸 다른 종교를...그것도 기독교를 비유해서 들먹이는게 그렇긴 하지만...안 그래 

  도 요즘 그 무슨 시한부 종말론(* 1980년대 후반이다.) 그런걸 떠드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 뭐 정통 기독교단에선 ‘시한부 종말론’도 따지고보면 이단이라 

  고 하지만...여기서 내가 황이사와 기독교 신학을 깊이있게 논하려고 이런말을 하는 

  건 아니니 그건 그 정도로 하고 넘어가고...결국 중요한건 말이오. ” 

 “ ...... ” 

 “ 시한부 종말론도 아무것도 모른채 대충 외곽에서 보면 그냥 말도 안되는 헛소리  

  같지만...그것도 막상 유의깊게 들어보면 그 역시 사람들...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 

  고 사로잡는 그런 뭔가가 있는거란 말이오. 그런게 아니라면...아무리 세기말적 현 

  상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찌 ‘시한부 종말론’ 같은게 그렇게 쉬이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수가 있었겠소 ? 아니 그렇소. 하다못해 지하철이나 서울역전 같은데서 무작 

  정 ‘예수 믿으시오.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열변에도...결 

  국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기에 결국 그게 통하는거다 그 말 이외다. 

 ” 

 “ ...... ” 

 “ 헌데 아쉽지만 대진교 법사들의 설법에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뭔가 

  가 없었던 것 같구려. 난 그 말을 하고 싶었던게요. ”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대도문화재단’은 설립이 되었다. OOO 정부가 (야당종교인) 기독교,천주교를 견제할 생각으로 민족종교를 한번 키워주고 싶었던 의도와 뜻이 통했던것인지 아니면 황이사가 각고의 노력을 다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대도문화재단’이 창립이 된 것이다. - 허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대도사 이하 대진교 성직자들이 참 순진했던 것 같다. 문화재단이든 종교재단이든 정부산하에 그런곳은 수십수백군데도 넘는다. 따라서 제3자의 입장에선 – 솔직히 일반인 입장에선 재단법인이니 사단법인이니 하는 그런 개념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고 – 그저 수많은 문화재단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늘어난것일뿐 큰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굳이 비유하면 마치 로마가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공인한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 -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나게 되는줄 알았던것일까. 허나 결과적으로 놓고보면 문화재단을 설립한 것은 종단의 재산이나 대외 행정업무 처리가 좀 더 수월하게 될수 있었던 것을 제외하건 특별히 달라진것도 거의 없었다. 

 허나 막상 그렇게 어렵사리 수많은 난관을 거쳐 ‘대도문화재단’이 만들어지자 종단은 대단한 성과라도 올린 듯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특히 이 재단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황이사는 대도사의 치하를 흠뻑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맡기기위해 대도사가 직접 총무원 총무부장의 일을 맡기기까지 한 황이사가 아니던가. 공을 치하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황이사에게 호까지 지어주었다. 

 “ ‘소나무의 절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황이사도 아마 모르진 않을게요. 바로 그런 

  절개의 소나무가 숲을 이룬 곳. ‘소나무 송(松), 수풀 림(林)’ 이제 그대의 아호는  

  송림이 되는것이오. ” 

 “ 감사합니다. 이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대도사님. ” 

 이때는 이미 새로 입교한 성직자나 신도들에게 순도사나 법사들이 ‘호’를 지어주는 ‘수계식(受戒式)’이 이미 제도화 되었지만 종단에 특별히 공을 세웠거나 혹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이에겐 대도사가 직접 호를 지어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니 더욱 특별한 의미가 될 수밖에 없는 대도사가 직접 내려준 황의사의 호. 그것이 ‘송림(松林)’이었다. 

 “ 그나저나 이제 그래 송림 도자(道者)께선 어찌하실 작정이시오 ? ” 

 “ 무슨 말씀이신가요 대도사님 ? ” 

 “ 기왕 이렇게 된거(* 게다가 ‘준 법사’에 총무원 총무부장이란 직위까지 임시직으로 

  나마 받은 상태니) 우리와 함께 앞으로 계속 대도법(大道法)을 피는데 함께 하실 생 

  각이시오 ? 아니면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 ” 

 굳이 말하자면 성직자인지 신자인지 이때까진 아직 황이사의 위치가 애매한 상태라서일까. 황이사의 진정한 의향을 물은 대도사. 허나 막상 그렇게까지 하기엔 자신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아직은 나름 속세에 미련이 있어서인지 황이사는 손을 내저으며 뜻을 이렇게 밝혔다. 

 “ 말씀은 감사합니다만...저같은게 감히 감당할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 

  니 그 부분은 제가 이쯤에서 내려놓겠습니다. ” 

 “ 허어...그럼 대체 앞으로 속세에서 더 무엇을 하시게요 ? 아니면 정말 국회의원 출 

  마라도 하실 생각이시오 ? ” 

 “ 아...아닙니다 대도사님. 그건 정말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안그래도 제가 이 재 

  단 설립 일을 주도하면서 옛 정치권 동료들로부터도 불필요한 오해를 그렇게 받았 

  는데...게다가 저도 이미 나이 70이 다 되어가는 몸입니다. 이미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데 출마는 당치않죠. ” 

 “ 그럼 뭐...앞으로 대체 어쩔 참이시오 ? ” 

 “ 그냥 고향인 강릉에 내려가서 모텔사업이나 마저 계속 하면서 그렇게 여생을 보 

  낼 생각입니다. 종단에서 무슨 큰 중책을 맡는다던가 할 생각은 없습니다 도사님 

  . ” 

 대도사도 다른 순도사들도 다소 실망스럽고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여하튼 이쯤에서 황이사는 ‘송림’이라는 대도사가 직접 내려준 호만 받고 재단일을 할 때 임시로 받았던 준법사와 ‘총무원 총무부장’의 직위는 모두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완전히 종단에 발길을 끊은 것은 아니고 이따금 집회때 모습을 드러내긴 했다. 황이사는 1990년대 후반쯤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바깥에 비가 세차게 내려붓고 있었다. 대진교 총무원은 창원회관 소재 아래부분에 가건물 하나를 지어 그곳을 사무실과 도직자(道職者 : 총무원의 도직(道職) : 부장,국 

장 등)들이 기거할수 있는 방 그런식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하루는 밤깊은 시간에 연림이 자기방으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사무실 창가에 서서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여하튼 이땐 연림이 도덕가 제작하랴 ‘오만대등’이란 회보 제작하랴 종단일로 눈코뜰새 없어서 서울의 집에도 올라가지 않고 창원회관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할 때인데 그러던 하루는 이렇게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무실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진 중산이 잠시 그리로 들어와 연림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 근심이라도 있어 ? ” 

 “ 근심은 무슨... ” 

 그런식으로 살짝 말을 돌리는 연림. 중산이 여전히 의아하게 보는 가운데 연림의 말이 이어진다. 

 “ 그냥...하늘에서 비를 내려 천지만물이 소생케 하는 천지도리를 잠시 지켜보고 있 

  었소이다. ” 

 이런 비유는 좀 그렇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원래 대도사와 인연을 맺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했을 이들이건만 이젠 마치 불가의 스님 못지않은 선문답 같은 대화도 주고받을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다만 그런식의 대꾸가 좀 싱거워 보였는지 중산이 피식 웃어보인다. 

 “ 서울엔 안 올라가 ? ” 

 어쨌거나 선림이나 중산이나 다 자녀들도 있고 그런 몸이다. 여하튼 대진교의 순도사로 총무원의 부장으로 가정보다는 종단일에 더 얽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지만 한편으로는 근심도 되어 이렇게 물은 중산. 선림의 말이 이어진다. 

 “ 가봐야지. 가서 딸네미 시집가는것도 좀 보살펴줘야하고...아들녀석 공부하는것도 

  신경은 아직 더 써줘야하는데... ” 

 “ OO(* 연림의 아들)이가 지금 3수하는거지 ? ” 

 “ 그렇지 뭐. 에효...여하튼...아무리 대학입시다 뭐다 그리 말들이 많다지만...막상  

  그것도 직접 겪어보니 쉽지가 않네. 에효효... ” 

 여하튼 지금 선림에겐 20대 결혼 적령기의 딸과 3수하는 아들이 있는것이고 중산은 그런 선림에 비해 가정문제에 대해선 많이 자유로운 다소 특수한 처지에 있다. 선림이 그런 중산을 보며 말을 건넨다. 

 “ 그래 앞으론 어찌할셈이야 ? ” 

 “ 어쩌기는...이렇게 그냥...순도하다 가는거지... ”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의 ‘순도사’로 해놓았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 입장에선 참 이상하고 해괴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순도사’란게 그간 그만한 자질과 공로를 보인게 있어 내리는것이지 아무한테나 순도사를 주는 것은 분명 아니다. 여하튼 이때 이미 나이 50을 넘긴지는 이미 오래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을 연림. 그 연림은 지금 정말 이 대진교란 종단을 위해 남은 여생을 다 하기로 결심한걸까. 중산이 한편으론 근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 우리끼리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해봐. 정말 순도하겠냐구 ? ” 

 “ 그럼 뭐 내가 지금 여기서 달리 선택할길이 있나 ? 이 나이에 새서방을 만나 팔 

  자를 고치겠어 ? 아니면 지금와서 딸네미 좋은데 시집보내 그 덕으로 부귀영화 누 

  릴 꿈을 꾸겠어 뭘 하겠어. 그만큼 했으면 나 할만큼은 다 한거고... ” 

 연림은 정말 속세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달관한 여인처럼 그렇게 한숨섞어 말을 이어간다. 

 “ 이렇게...한생 살다가는거지 뭐. 여한은 없으이... ” 

 

1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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