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대도사 일대기
대진교(大眞敎)는 원래 시작할 때 총 6개의 회관(會館 : 기독교의 교회나 불교의 사찰괴 비슷한 개념)으로 출발을 했다. 일단 대도사는 이 무렵 서울 혹은 인천에 거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과 이리(지금의 전북 익산),경산(대구 옆 위성도시)의 경우엔 주택가의 집 한 채를 빌려서 그곳을 ‘회관’으로 했고 인천(송도)과 경남 창원 지역엔 한 야산 중턱 일부지역을 매입하여 그곳에 불가의 ‘사찰’ 비슷한 구조를 만들어 그곳을 ‘회관’으로 했다. 마지막으로 부산의 경우엔 4층짜리 상가건물 한층의 절반정도를 매입 그곳을 ‘부산회관’으로 했다.
헌데 상가건물을 구입했든 주택가의 집을 빌렸든 야산 일부분을 매입했든 그 당시 이미 그 정도의 재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젠장 이래서 알고보면 실화가 소설보다 더 말이 안된다니까 !!!) 어쨌거나 당시 회관으로 쓰인 공간(개인주택이 되었든 야산이 되었든 상가건물 한층이 되었든)을 구입,혹은 매입한 경위까지는 필자가 알아내기가 쉽지 않고 다만 대충 추정해볼만한 근거가 있다.
대진교 초창기에 삼대(三大) 순도사(殉道師 : ‘순도(殉道)’는 기독교의 순교(殉敎)와 비슷한 의미로 보면 된다)가 있었는데 그게 박명자(重山),이영자 그리고 김진아다. 이들 셋이 대도사가 처음 사주,관상등을 봐주고 천도제를 치를때부터 그를 따랐던 여인들로 보면 되는데, 애초 대도사가 박명자에게 중산(重山)이란 아호를 내려준데 이어 이영자에겐 청죽(淸竹), 김진아에겐 연림(蓮林)이란 아호를 내려주게 된다. 그리고 이들 셋을 순도사로 한 것이다. 일단 청죽의 경우엔 남편이 사업가였고 중산도 여하튼 전쟁직후 그 남편되는 이가 이미 나이 50에 가까운 이로 스무살이나 어린 박명자를 후처로 삼을수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역시 그 당시 일정부분 재력을 갖춘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김진아의 경우엔 남편 잃고 혼자 자녀 둘을 키우는 미망인이었는데 여하튼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며 나름 생계수단을 삼는게 있었을것으로 추정되지만 과연 그만한 재력을 갖춘 인물이었을지는 좀 의문이다. 여하튼 그 부분까지는 지금와서 필자가 캐볼수 있는 방법도 그럴만한 명분도 없으니 그 정도로까지 언급할수밖에 없고, 여하튼 대진교 창립 과정엔 이들 ‘3대 순도사’가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고 보면 된다. -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순도사’라고 하는게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이상할수도 있겠지만 대진교라고 해도 다 그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고 공로를 세운 이니까 ‘순도사’라고 하는것이지 아무한테나 순도사의 지위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서기 1984년에 정식으로 ‘창립선언’을 하고 출범한 대진교. 초창기 제자가 이른바 ‘땡중 4인방’으로 불리는 불교 스님출신인 네명 그리고 초창기부터 대도사를 따른 ‘3대 순도사’ 그 외 철물점 주인 부부, 경북 출신의 유씨 노인, 한때 무당 지망생(?)이었다는 강성희, 그리고 동대문의 옷가게 부부 이들 13인이 초창기 제자이자 멤버인 셈인데 대도사 입장에선 고민되는 부분이 없을수가 없었다. 일단 어쨌든 종교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은 거의 없는이들이 대다수니 사실상 초창기엔 종교의식,기도의식은 물론 조직운영까지 거의 불교 스님출신인 ‘땡중 4인방’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처음엔 사실상 불교의 절이나 다름없는 그런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진화,도일,관성,법흥 이들 땡중 사인방에게 대도사가 초창기에 모두 ‘법사(法師)’라는 성직(聖職)을 내려주었다. 어차피 이들 넷에게 사실상 조직 운영을 맡기다시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이들이 지도부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어야하니 고위급 인사의 의미로 ‘법사’란 성직을 준 것인데 그러고서 초창기부터 자신을 따랐던 박명자등 셋에게 ‘3대 순도사’를 내린 것 자체가 사실은 이들 ‘3대 순도사’가 ‘법사’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 것을 암시하는 대도사의 의지로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니 ‘법사위에 순도사’가 있는 이렇게 시작한게 대진교의 성직 구조다. - 법사 아래로 기독교 전도사 비슷한 성격의 ‘교사(敎師)’라는 성직을 새로 추가한 것은 그보다 시간이 좀 지난뒤의 일이다.
하루는 대도사가 박명자,이영자,김진아 ‘3대 순도사’를 불러 은밀한 의논을 좀 했다. 대도사 입장에선 아무래도 이래저래 걱정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어쨌거나...대진교가 이렇게 천지신명의 명을 받아 출범하게 된것이긴 하지만...
”
“ ...... ”
“ 저 불가출신 법사 넷이 행여 지들 멋대로 종단을 좌지우지 하지 않을까 싶어 난
그게 걱정이라 그 말이요. ”
“ 설마 무슨일이 있겠습니까 대도사님. ”
‘중산(重山)’이라는 호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촐싹대는 면이 있는 박명자, 은근히 한 성질 하는면이 있는 연림(김진아)과는 달리 대체로 차분하고 순한 성격의 청죽이 이와같이 말했다. 그러나 대도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오. 난 아무래도 걱정이 많아요. 안 그래도 저자들이...아무리 땡중이 어쩌구
해도 다들 불가의 스님들로 있으면서 다 종교의식을 치르거나 조직을 운영해보는
데 다 그만한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이지. 우리가 초창기에 그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것도 다 그럴만한 속사정이 있어서이고...하지만 여기계신 우리 순도사님들은
솔직히 ‘성직자’가 되기전엔 다 평범한 주부였던 이들이 아니오. 아무리 그래도 불
가에서 스님노릇하던 법사들과 평범한 보통아줌마였던 순도사들.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것이란 말이지. ”
“ 에이그...우리 도사님...도사님답지 않게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셔. 솔직히 나만해
도 남편없이 혼자 애 키우면서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거친몸이오. 근데 무슨 그런
걱정을 다 하고...걱정말아요 도사님. 나도 속세에서 혼자 돈벌면서 웬만한 남정네
들과 말싸움,입씨름으로 져본적이 없는 몸이오. 그까짓 땡중 4인방 내가 작정하고
주므를수도 있으니께... ”
“ 거...진짜... ”
아무리 그래도 대도사와 순도사의 관계가 주종(主從)관계가 확실해아 할 터인데, 헌데 연림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대도사를 만만하게 보는지 마치 스승이나 주군을 대하는 태도라기 보단 그저 비슷한 연배의 남성동료라도 대하는듯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중산과 청죽이 거의 동시에 ‘말조심 하라’는 듯 주의를 주긴 했다. 한참을 잘난체하며 나불거리던 연림은 중산과 청죽이 눈짓을 주자 곧 주눅이 두는지 수다가 멈춰지긴 했다.
“ 어쨌든...지금은 불가피하게 저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
“ ...... ”
“ 앞으로 대진교 종단은 여기 계신 3대 순도사가 궁극에 가선 주도적으로 이끌어가
야한다. 난 그 말을 하고싶었던게요. 그래서 내 우리 세분 순도사님을 은밀히 뵙자
고 한 것이오. 내 뜻을 아시겠소 ? ”
“ 명심해서 분부받들겠습니다 대도사님. ”
3대 순도사가 정중하게 대꾸했고 그제서야 대도사가 안심이 되는지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 중산,청죽,연림. 대도사로부터 직접 명을 받은 이들 3대 순도사에겐 나름 결의에 찬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사실 대진교 초창기의 한계이자 문제는 결국 종교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이가 없어 불가 스님출신인 ‘땡중 4인방’에게 이 부분을 전면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던 근본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여하튼 진화,관성,도일,법흥 이들에게 초창기에 ‘법사’라는 성직을 내리고 각 지역 회관장을 겸임시키기도 했는데 진화의 경우엔 초대 총무원장이면서 창원회관장을 겸임시키기도 했다. (* 사실 순서상 서울,송도회관등이 먼저 생기고 창원회관이 생긴 것은 좀 나중(대략 86-87년경)의 일이긴 한데 편의상 이 이야기를 먼저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화의 경우엔 원래 나름의 야심이 있었는지 종종 이런 불만을 토로했다.
“ 도대체가 이게 말이 되는 일이어야 말이지. 도대체가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순도사를 주는 경우가 어디있냐구 ? 순교란게 그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
미로 죽은사람에게 주는게 ‘순교자’의 의미인데, 근데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한테 순
도사 ??? 나 원...그것부터가 말도 안되는 짓거리지. 밖에서 제3자가 봤을때는 누가
봐도 사이비 짓거리가 아닌가말야. ”
“ 아니 저...법사님... ”
도일이나 관성이 이런 진화를 종종 만류하긴 했다. 사실 두주불사형으로 때로는 막걸리를 몇사발씩 들이키는것도 마다하지 않는 그야말로 땡중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진화였는데 그에 반해 도일이나 관성은 대도사처럼 술을 잘 즐기는 성격이 아닌지 이런 자리에선 사실상 이 두 사람이 진화의 술주정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실 대진교가 초창기엔 ‘총무원 소재지’를 송도(인천) 회관으로 했다가 다시 창원으로 옮기는등 몇 번 왔다갔다 하기도 했는데 이게 대진교 행정운영에 다소 불편을 초래하기도 했고 한동안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초창기부터 종종 이런 불만을 토로하던 진화가 하루는 법흥을 꼬드겼다.
“ 여보게 법흥이. ”
“ 원장님 왜 그러시는데요 ? ”
아무래도 진화가 총무원장과 창원회관장을 겸임하고 있을때로 봐야 할텐데,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진교도 신도가 조금씩 늘어나고 소재 회관도 한둘씩 늘어나자 총무원장과 창원회관장을 진화에게 모두 맡기는게 좀 벅차보였는지 법흥에게 창원회관장을 맡겨 업무를 분담시키긴 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이 둘이 역모(?)를 꾸미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 놓았다고나 할까. 총무원장인 진화를 ‘원장님’이라 부르는 법흥. 하루는 그에게 진화가 이렇게 물었다.
“ 자네가 볼땐 누가 더 나아보이나 ? ”
“ 무슨 말씀이신지 ? ”
“ 대도사와 나중에 누가 더 나아보이냐 그걸 물은것일세. ”
“ 아니...법사님... ”
대놓고 대도사와 자신을 비교하는 말까지 입에 담으니 법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답하기도 좀 난감할뿐더러 이런 질문을 하는 진화의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참 수상하지 않은가. 그런 법흥을 진화가 이렇게 꼬드겼다.
“ 자네도 대충 봐서 알겠지만...솔직히 대진교 신자의 한 반은 나를 따르는이라 봐도
무방해. 그건 자네도 알지 않은가 ? ”
초창기 대진교 신자를 굳이 구분하자면 그런식으로 대도사에게 사주,관상 같은 것을 보러오고 천도제도 지내고 하다가 신자가 된 이들이 있고 진화,도일등의 전직 승려들이 절을 떠나 대도사와 함께 대진교를 세우면서 그때 데려온 신도들이 있다. 헌데 그런걸 생각해보면 진화든 도일이든 비록 개인적인 물의등을 일으켜 불가에서 승적을 박탈당했을지언정 자신을 따르는 세력이 일정부분 있었다는 이야긴데 그러니 이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작정하면 자신을 따르는 신도조직을 갖고 대진교를 대놓고 흔들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모의를 이 둘이 시작한 것이다.
“ 그래서...대체 뭘 어찌하자는건데요 ? ”
“ 자네는 날 어찌 보는가. ”
진화는 사뭇 정중하고 장엄한 자세를 보이며 참선을 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형상(?)을 잘 살펴봐달라고 하는중. 법흥이 여전히 그 의도를 알 수 없어 여전히 의아해하기만 하는데 진화가 그런 법흥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바로 미륵(彌勒)의 현신(現身)이니라. 아직도 모르겠는가 ? ”
“ 아...아니 ??? ”
사실 소위 후천개벽 5만년 미륵의 세상이 열리고 한반도 배꼽땅에서 오만년 인류를 구원할 대철학이 나타날것임을 핵심교리로 하고있는 대진교이지만 대도사와 진화의 설법하는 스타일은 달랐다. 가령 ‘미륵’의 실체에 대해 대도사는 이런식으로 설법하곤 했다.
“ 오만년동안 인류중생을 구원하실 미륵이 곧 한반도 배꼽땅에서 나올것이라 천지신
명께서 일찍이 내게 시현(示現)으로 보여주셨으나 그 미륵이 누구일지 나는 잘 모
르겠습니다. 그러나 천지신명께서 이미 내게 말씀하신 것이 있으니 오만년동안
인류중생을 구원할 미륵이 지금쯤 어딘가 살아 법(法 : 교리 혹은 진리를 의미함)
을 펴고 있을것이라는 것을 여기계신 봉법제자(奉法弟子) 여러분께서는 아셔야
하실 것입니다. ”
한마디로 대도사는 자신은 ‘미륵이 아니다(또는 누구인지 모른다)’는 식으로 설법하는 셈인데 반대로 진화는 설법에서 대놓고 그런말을 하진 않았지만 종종 누군가와 독대하는 자리가 있으면 이런식으로 말하곤 한 것이다.
“ 내가 바로 미륵(彌勒)의 현신(現身)이니라. 아직도 모르겠는가 ? ”
한마디로 대도사는 자신이 ‘미륵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 측근인 진화라는 이는 대놓고 ‘자신이 미륵이다’라고 하고 있으니 진짜 해괴한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나름 야심이 제법 만만찮았던 인물이 진화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내심 다른뜻을 품기 시작했던것 같다.
“ 원장님...대체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 ”
여하튼 원래 초대 총무원장이면서 창원회관장을 겸임하고 있었던 진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진교가 세력이 늘어나면서 진화가 두 직책을 모두 다 겸하기가 벅차 법흥에게 창원화관장직을 내려 업무를 분담시켰던셈인데 이 둘이서 창원에서 함께 지내면서 이런식으루 궁합(?)이 맞았던 것 같다. 진화와 법흥의 역모(?)가 이런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 서울과 인천의 신도조직을 한번 움직여봄세. ”
“ 가능할까요 ? ”
법흥이 좀 우려가 된다는 듯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진화는 염려 말라는 듯 법흥을 설득했다.
“ 허허...내가 누군가. 내가 바로...미륵의 현신일세. 현세에 미륵으로 환생한 진화
라는 말일세.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서울회관,송도회관 신도의 절반이 다 내 사
람들이야.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내 사람들은 다 OO사나 OO사에서 신도회를 운
영해본 경험이 있는 능력자들이지만 대도사 꼬붕들이야 그런데는 전혀 경험이 없
는 쑥맥이고 등신집단 아닌가. 내가 충분히 서울회관과 송도회관 정도는 쥐고 흔
들수 있으니 그런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그렇게 이른바 자신을 따른다는 서울회관과 송도회관 간부들을 움직여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진화나 법흥은 이때 창원에 있었으면서 서울회관이나 송도회관 신도회를 흔들수가 있었다면 서울과 송도 신도회 간부들중에 은밀하게 진화와 교통하는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때가 어쨌든 80년대 중반이니 지금과 같은 휴대폰이나 이런 것은 없던 시절. 먼거리에 있는 이들끼리 연락을 취하자면 전화나 편지 외엔 다른 방도가 없을텐데 – 팩스도 아직 그렇게 대중화되어 있다고 보긴 어려운때다. 게다가 팩스내용은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있고 – 여하튼 그렇게 창원에 있으면서 서울과 송도의 몇몇 신도회 간부와 소통하고 있었다면 그 자체도 놀라운 일인것만은 분명하다. 분란은 보통 이런식으로 일어났다.
“ 아니, OO부인(婦人)님. 대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 돈을 떼어먹긴 누가
떼어먹었다는거에요 ? ”
‘OO부인’이니 ‘OO도인’이니 하는 명칭은 대진교에서 일반 신자들끼리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다. 여성들끼리는 ‘OO부인’ 남성들끼리는 ‘OO도인’이라 부르는데 보통은 수계식(受戒式)때 받은 아호를 따서 ‘OO부인’,‘OO도인’ 이런식으로 부른다. 상대방의 호를 잘 모를때는 그냥 성이나 이름을 따서 ‘이도인’,‘박도인’ 혹은 ‘김OO 부인’, ‘정OO 부인’ 이런식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게 대진교에서 일반신자들끼리 부르는 호칭이라는 소리고 이상하리만치 이때부터 서울과 송도 신도회에서 이상하리만치 특히 금전과 조직운영 문제와 관련한 분란의 소리가 자주 들려오곤 했다.
인천 송도회관의 경우에는 신도회 ‘재무사’라는 간부직을 맡은이를 중심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원래 대진교에서 처음 조직을 만들면서 총무원에는 ‘법사(法師)’의 성직을 받은이가 총무부장이라던가 재무부장,청년부장,교화부장,자경부장등 ‘부장(副長)’의 직책을 맡게 했고 각 회관의 일반 신도회에는 총무원 조직을 본딴 ‘OO사’라는 간부직을 두게했다. 가령 총무는 ‘총무사’, 재무는 ‘재무사’ 이런식이었는데 바로 그 ‘재무사’라는 신도회 간부직을 맡은이를 중심으로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진교의 주 수입원이 천도제를 치를 때 내는 (1) 천도비와 ‘축원기도’ 카드를 올릴 때 내는 (2) 기도비 그리고 각자의 신심(信心)이나 사정,곡절등에 따라 내게 되는 (3) 불사(佛事)가 있었는데, 솔직히 대진교의 재정집행 상황이 어찌 돌아갔는지 그 구체적인 내막까지는 필자가 알 수 없고 여하튼 송도회관의 경우에는 재무사를 중심으로 신도회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며 말썽을 부리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중 상당수가 결국 ‘진화법사’와 통하는 이들이었다는 이야기다.
하필 공교롭게도 서울회관에서도 송도회관에서도 모두 이런 문제가 생기니 대도사 입장에서도 의심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누군가 혹시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종교조직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 자신의 ‘3대 순도사(중산,청죽,연림)’를 불러 내사(內査)토록 했다. 사실 필자도 처음엔 대도사의 거처가 ‘혜화동 서울회관’이 원래 그 거처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고 대도사가 부인(원래는 사실혼 관계였으나 이후에 정식으로 혼인신고,출생신고를 함)과 아이들(1남1녀)과 함께 살던 거처는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 자신의 거처로 ‘3대 순도사’를 은밀히 불러 이 문제를 상의한 것이다.
“ 그 참...아니 도대체 재정집행들을 어떻게 하길래 이런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거야
? 도대체 원인이 뭔데 ? ”
대도사가 신(神)인지 미륵(彌勒)인지 성현(聖賢)인지 아니면 그냥 사이비교주거나 사기꾼인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때까지는 의외로 순진하고 순수한 성정을 갖고 있었던것만은 분명했다. 적어도 자신이 이끄는 종단(宗團)에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추호의 부패나 비리도 발생하지 않을것이라 자신했던것일까. 헌데 자꾸 이런문제로 분란이 일어나니 대도사도 적잖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3대 순도사를 불러 의논하기 시작한 대책. 여하튼 ‘3대 순도사’야 평상시 일반 신도회든 성직자든 늘상 소통하며 교류하는 이니 리더인 대도사와는 달리 조금은 더 내부 속사정을 잘 알수도 있겠기에 이들보고 신도회 내부사정을 좀 더 소상히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3대 순도사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긴 했는지 먼저 입을 연 것이 연림 순도사다.
“ 제가 볼땐...아무래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리 조직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
“ 의도적으로 흔든다고 ? 아니 대체 누가 ? ”
짐작가는이가 없는바는 아니었으나 아직 확신할 수가 없어서일까. 연림은 좀 더 조사를 해보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는 하다. 중산도 한마디 조언을 잊지 않는다.
“ 저어...대도사님. 제가 이 시점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긴 그렇습니다만... ”
“ 말씀 해보세요 중산 순도사님. ”
“ 우리가 애초에...너무 불가 출신들한테 의지한 것이 이 화근의 원인 아닌가 그 생
각을 하던중이었습니다. ”
어쨌거나 종교조직이든 종교의식이든 그런 것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대진교의 속사정이었기 떄문에 원래 스님노릇을 하다 짤린 이른바 ‘땡중 4인방’에게 이 부분을 사실상 일임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그게 태생적 한계였음을 ‘제1 순도사’인 중산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오는 것이다. 허나 이쯤되면 사실상 특정한 누군가를 지목하는 상황인지라 대도사도 당황하고 있었다.
“ 그럼 결국...진화 그 친구가 이런일을 벌이고 있단말인가 ? ”
사실 진화가 생각보다 야심만만한 인물이었고 심지어 ‘땡중’ 아니랄까봐 막걸리 한사발을 평상시 벌컥벌컥 들이키는 그런 기질의 인물임은 대도사도 잘 알지 않는가. 여하튼 대도사 입장에서도 그런 진화를 경계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을텐데 중산이 사실상 진화를 의심하는듯한 말을 꺼내자 대도사도 다소 혼란스러운 듯 했다. 대도사가 중산을 보며 말한다.
“ 그래서 중산 순도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소 ? ”
“ 일단 저희가 대도사님께 밀지(密旨)를 받은대로 앞으로도 계속 이행(내사활동)을
하겠습니다만... ”
“ ...... ”
“ 최악의 경우엔 결국 제명(除名)까지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헌데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흥종교단체가 그것도 지금까지 그런대로 출범과정의 핵심역할을 했던 사람을 ‘제명’한다는 것. 엄청난 부담이 가는일이다. 그것도 서울회관 신도회건 인천회관 신도회건 일정부분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있다면 그 ‘제명사태’ 자체가 바로 분열로 이어질것이란 것은 굳이 도(道)를 얻지 않아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미래 아닌가. 허나 이미 ‘3대 순도사’들은 최악의 경우엔 진화일당을 ‘제명처리’하는데까지 가야한다고 이미 강경하게 나오고 있었고 대도사 입장에서도 사실상 초창기부터 자신을 따랐던 ‘3대 순도사’를 더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일의 방향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총무원장이자 1대 창원회관장이었던 진화가 그 뒤를 이어 2대 창원회관장을 맡게된 법흥과 짜고 이런 분란행위를 일으킨 것을 알게되고 진화일당을 모두 제명시켰다. 당연히 서울회관과 송도회관에서는 한바탕 분란사태가 일어났고 진화를 따르던 이들 상당수가 모두 그를 따라서 탈퇴해버렸다. 사실상 종단이 출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신도의 절반이상이 빠져나가 버리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오만년동안 인류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종단의 기치가 무색할정도로 정식 출범(1984년)한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종단이 둘로 쪼개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 내 진화 이X을...내 진화 이X을... ”
대도사는 격분하고 있었다. 법사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사람에게 배신당해 보는 경험이 대도사도 이때가 처음이라서일까. 그야말로 그 진노(震怒)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급기야 이렇게 천명(天命)하기에 이른다.
“ 진화와 그 일당들은 내 기필코 앞으로 5만년동안 용서하지 않을것이야 !!! ”
‘오만년동안 인류중생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종단에서 그 ‘5만년동안 용서하지 않겠다’니. 이쯤되면 대도사가 진화일당에게 느낀 배신감과 분노가 어느정도였을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뿐만 아니라 진화가 종단을 떠날 때 그 진화편에 선 법흥까지 그를 따라 나가버렸으니 초창기 멤버이면서 대진교 창립과정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땡중 4인방’중 이미 절반인 두명이 나가버린 것이다. 게다가 대도사와 비슷한 연배로 어찌보면 대도사를 사뭇 만만하게 보는 면까지 있던 진화와 달리 법흥은 바로 도일,관성과 함께 스스로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와서 대도사에게 큰절까지 올렸던 이들 아닌가. 그 법흥까지 배신한 것이 대도사를 무척이나 서운하게 만들었다.
“ 자네들은 날 배신하진 않겠지 ? ”
그래서 하루는 도일과 관성을 불렀다. ‘땡중 4인방’중 애초에 제자가 되겠다며 자진해서 찾아왔던 도일,관성,법흥. 헌데 그중 법흥은 진화를 따라 나가고 남은 도일과 관성에게 자신의 서운함과 상실감의 감정을 담아 그리고 우려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한 것이다. 도일과 관성 입장에서도 어쨌든 대도사를 위로해줘야겠다는 듯 법흥을 비난하는 발언까지 함께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 법흥 그 친구가...원래부터 좀 귀가 얇고 사람말에 잘 넘어가는 그런면이 있었어
요. 저도 그래도 한때 그 친구 그런면을 걱정했는데...일이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
“ 도일 자네는 어찌할텐가 ? ”
그렇게 남은 두 제자중 도일을 바라보며 물은 대도사. 도일은 ‘자신은 결코 스승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사뭇 결의를 담아 이렇게 말했다.
“ 아이구 염려마십쇼 대도사님. 전 뭐...진화 그 사람처럼 야심이 크지도 않고...게다
가 승적박탈 당한뒤로 하도 떠돌이 생활을 오래해서...어차피 여기서 나간다고 갈데
도 없어요. 가령 출가(出家)하기전 속세의 식구들도 지금은 연락 끊긴지도 오래고...
또 지금 찾아간다고 해도 그것도 민망한일이고. 저는 평생 대도사님을 보좌하면서
오만년 인류중생을 구제하는일에 성심을 다할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도사
님. ”
그야말로 진심을 담아 맹세하고 있는 도일. 헌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이가 도일뿐만이 아니지 않는가. 관성도 걱정되어 이렇게 묻는다.
“ 관성 자네는 ? ”
“ 지도 뭐...아무런 욕심 없십니더. ”
경상도 출신이라 그런지 그 지역 사투리를 비교적 강하게 쓰는 편이었던 관성. 대도사는 관성도 여전히 걱정되고 쉬이 믿지 못하겠느듯 이렇게 말한다.
“ 관성 자네도 어쨌든...속세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지 않나 ? ”
“ 아이구 대도사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지가 아무리 미련한 X이라도...지는
평생 ‘바를 정(正)’자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입니더. ‘바를 정(正)’자만
보고 찾아온 지가 그리 쉽게 대도사님을 배신할일이 있겠십니까. 그런일은 천지에
없을끼니 염려 놓으십시오 도사님. ”
“ 허허 참... ”
도일도 그렇고 관성도 그렇고 너무 자신만만하게 ‘배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 말을 하니 그게 되려 미덥지 못한것인지 대도사는 그저 너털웃음을 지어보이기만 할 뿐이다. 그전까지는 적어도 사람에게 배신당해본일은 없는듯했던 대도사. 헌데 이때부터는 조금씩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것인지. 평소 잘 하지 못하던 술을 그것도 오늘따라 소주한잔을 기울이며 불안한 표정으로 도일과 관성을 바라보고 있다.
대진교는 초창기엔 회관장은 ‘땡중 4인방’이 돌아가면서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총무원의 부장들은 ‘3대 순도사’가 오랫동안 역임했는데 중산은 청년부장겸 자경부장(慈敬部 : 성직자나 신도의 제사,천도,장례,탄생,생일,결혼등 생노병사(生老病死)와 관련된 의식업무를 주관하는 부서)을 겸임했고 연림은 교화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재무부장은 철물점 주인 부부였던 편승훈의 아내 변보라가 이후 ‘법사’라는 성직을 받아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었고 원산(圓山)이라는 호남출신의 40대 신도가 초창기 신도로 나중에 법사가 되어 법사부장(法司副長)을 맡게된다. (* 어찌된 영문인지 원산은 순도사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대진교에서 교사(敎師)라는 성직을 신설하여 각 회관에서 회관장의 업무를 보좌하거나 총무원 각 부서에서 부장 밑의 국장(局長)으로 각 부서 실무를 담당하게 하도록 한 것은 시간이 좀 지난뒤의 일인데 그전까지는 회관장이 신도회중 대충 마음이 맡는 사람을 한두명 선발 자신의 비서 비슷한 임무를 맡게 했다. 헌데 이 비서업무를 남성이나 나이많은 여성이 담당하면 문제가 별로 없었는데 젊은 여성이 맡았을시 좀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도일법사(道日法師)는 대진교 창설 초창기엔 한동안 경북 경산에 소재한 경산회관(慶山會館)의 회관장을 맡았다. 처음엔 특별히 비서나 그런 기능을 하는 사람을 두진 않고 혼자 그냥 회관장 업무를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도가 차츰 늘어나자 아무래도 벅찼는지 젊은 여신도 하나를 자신의 비서일을 맡도록 했다. 조춘희라고 하는 20대 중반 정도의 여성이었다. ‘땡중 4인방’중 대도사와 비슷한 연배인 진화와 달리 도일,관성,법흥 이 세사람은 50년대 중,후반생으로 80년대 중,후반에 아직 20대 후반 – 30대 초반 정도의 연령이었으니 도일이 경산회관장때 조춘희가 그보다 한 서너살 정도 연하였을 것이다.
도일이 대체로 입담이 좋았는지 아니면 조춘희와 그런대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는지 도일의 비서업무를 하면서 둘이 자주 사담을 나누는 경우도 많았다. 도일이 좀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성격이었는지 자신이 예전 승려로 있을때나 승적을 박탈당한 뒤 떠돌이 생활을 할때의 일을 종종 과장되어 입에 담곤 했는데 그런 이야기에 조춘희가 빠져든 것이다. 가령 이런식이다.
“ OO산에서 수도생활을 할 때 멧돼지를 만난적이 있어. ”
“ 멧돼지를요 ? ”
조춘희도 대구에서 나고자란 도시출신 여성이라서 그때까지 멧돼지를 직접 보거나 한 적은 없는지 신기하다는 듯 물었고 도일은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 하루는 멧돼지가 내 수도생활을 하는데 그 옆을 자꾸 알찐거리면서 왔다갔다 하
는거야. 그래서 내가 호통을 쳤지. ‘이 X !!! 감히 어떤 요망한 멧돼지가 내 수도생
활을 방해하려 드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 그러니까 멧돼지가 겁이 났는지 한
동안 날 째려보는 듯 하다 앞발을 들어 한동안 싹싹 빌더니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가는거야. 그후 그 멧돼지는 두 번다시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지. ”
“ 어머나, 정말요 ? ”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도일이 조춘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략 이런식이었다. 심지어 이런식의 허풍까지 떨었다.
“ 한번은 OO산에서 수도생활을 할 때 호랑이를 본적도 있어. ”
“ 호랑이를요 ? ”
멧돼지까지는 몰라도 호랑이를 보다니.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일제때 다 멸종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80년대를 기준으로도 이미 오래전 일이다. 물론 이따금 어느어느 산에서 호랑이를 목격한 것 같다는 신문기사가 나온적은 있으나 진위여부가 확인된적은 없는데 여하튼 도일법사도 자신이 산에서 수도생활을 할 때 호랑이를 본적이 있다고 하는 것 아닌가. 도일의 입담은 늘 이런식이었다.
“ 도사니임~~~!!! 도사니임~~~!!! ”
“ 이 사람아 !!! 도사님이라니 !!! 대도사님께서 만의하나 아시면 어쩌려구 ? 큰일날
소리를 !!! ”
“ 아잉...어때요. 우리끼린데...전 그냥 도사님이라고 부르는게 더 좋아요. ”
한참 그렇게 도일과 조춘희가 가까워졌을 때 춘희는 심지어 도일을 그러식으로까지 부르고 있다. 여하튼 대진교에서 ‘대도사’는 교주격인 노승홍 오직 한사람밖에 없어야하니 만약 다른이를 농담이나 장난으로라도 ‘대도사’나 ‘도사’로 불렀다가는 큰일날소리다. 헌데 춘희는 농담인지 장난인지 가끔씩 그를 ‘도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도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는일이다.
“ 이 사람 춘희... ”
“ 예, 법사님. ”
“ 우리끼리니까 한번 솔직하게 털어넣고 싶어서 그러는데 자넨 어찌 생각하는가 ?
”
“ 무엇을요 법사님 ? ”
진지하게 두 사람의 장래를 의논한적도 있기는 했던것인지 대략 이런식이었다. 도일이 조춘희에게 나름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 나도 뭐 어찌하다가 이렇게 미륵법(彌勒法)을 펴는 대도사님의 제자리 이리 살고
있지만...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과연 여인과 인연이 있을까. 아니면 자손이 있
을까 하는... ”
대진교에서 성직자가 결혼을 할수있는지 여부는 이때까지 아직 교리로 확정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대진교 초창기 멤버로 나중에 법사나 교사의 성직을 맡게된 이들은 이미 결혼을 한 평범한 30-40대인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결국 승려출신인 도일이니 관성이니 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미혼. 특히 도일과는 비슷한 연배로 사실상 승적박탈 시절부터 함께 교류해왔던 관성은 이런 도일이 걱정되는지 하루는 이러날을 하기도 했다.
“ 이 사람 도일. 우리끼리니까 그냥 속시원하게 이야기 해 봐. 앞으로 대체 어쩔참
인가 ? ”
“ 무엇을 말인가 ? ”
“ 조춘희라는 도자(道者 : 대진교에서 일반신자를 부르는 명칭)와 앞으로 어찌할 참
인지말야. ”
“ 허허...글세. ”
도일도 그때까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것인지 이런식으로 애매하게 대응할뿐인데 대도사측에서 어떤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챈것인지 그를 갑자기 ‘이리(* 현 전북 익산)회관장’으로 발령을 냈다. 도일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 아니, 대도사님. 갑자기 이리회관장 발령이라뇨 ? ”
“ 그쪽에 지금 사람이 없으니 어떡하나. 신도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그냥 방치상태
로 놓아둘수도 없고...‘OO도인(* ’OO도인(道人)‘이란 호칭은 일반 남성신도나 미혼
의 여성신도를 부르는 명칭이다.)’이 임시로 신도회장을 맡아 관리를 하고 있긴 하
지만...어떻든 거기도 정식으로 회관장이 내려가 관리를 해야하지 않겠나. ”
대진교 초창기 조직은 아무래도 사람이 얼마 되지 않고 게다가 조직관리 경험이 있는 이도 별로 없다보니 여러 가지로 불안한 상태였던 것 같다. 초창기에는 그래서 ‘땡중 4인방’ 법사들이 돌아가면서 회관장을 맡기도 하고 시간이 좀 지난뒤에는 부산이나 이리(현재의 익산)등은 그곳에서 ‘신도회장’을 하던이에게 ‘법사’ 성직을 내려 마치 승진이라도 시키듯 ‘회관장’으로 임명하기도 했고 서울회관도 대략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허나 아직은 그런식으로도 하기 전인 과도기적 체제였기 때문에 신도회장에게 회관장을 맡기는것보다는 ‘땡중 4인방’중 하나였던 도일법사가 직접 내려가 회관을 맡는게 낫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도일이 한참 조춘희와 비밀스레 그렇고 그런 관계일 때 일이다.
- 1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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