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대도사 일대기
그냥 용케 찍은것인지 아니면 옥련보살이 나름 노승홍의 뒷조사를 해보거나 아는게 좀 있었던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고등학교 2학년때 가출을 했고 실은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이후 입양이 되어 살아왔던 승홍의 어린시절 정황을 거의 비슷하게 맞힌것이나 다름없는 옥련보살. 그 충격과 두려움때문일까. 노승홍은 결국 옥련보살을 다시 안 찾아가볼수가 없었다.
“ 조상 영가(靈駕 : 영혼,귀신) 천도를 지내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 ”
“ 제 사주가 그렇게 안 좋다는 말씀이신가요 ? ”
‘영가천도’를 지내라는 이유가 노승홍의 전생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든 조상 업연을 끊기 위해서든 결론은 노승홍의 사주가 안 좋다는 의미가 되는 것 아닌가. 머리가 아주 나쁘거나 눈치없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그 정도까지의 짐작은 가능할터. 그러자 옥련보살은 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 조상 업장을 소멸하는건 지저분한 유리창을 닦는 이치와 같아요. ”
“ 그건 또 무슨말씀이신가요 ? ”
“ 자신의 영혼을 맑게 하는 이치가 담겨있다는 말이죠. 더럽고 지저분한 유리창이
있다면 그것을 그냥 놓아둘수는 없잖아요 ? 그러니 그것을 맑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거죠. ”
“ ...... ”
“ 어떻습니까 ? 지금이라도 그대 노승홍 선생의 영혼의 때를 맑게 청소해보시는 것
이요. ”
옥련보살의 설득에 수긍을 했는지 노승홍은 그때부터 옥련보살의 집에 기거를 하면서 천도의식을 드렸다. 옥련보살은 대충 이런 주문을 외웠다.
“ 옴...바라바라바라...파샤...옴...바라바라파샤...태을태을천지신명이여...태을태을 천
지신명이여...옴 바라바라바라 파샤~~~!!! 에이이잇~~~!!! 파샤 !!! 파샤 !!! 파샤 !!!
푸쉬 !!! 푸쉬 !!! 푸쉬 !!! ”
때론 북이나 장구,꽹과리를 치기도 하면서 그것은 사실상 무당이 드리는 굿이나 천도의식과 거의 흡사했다. 그렇게 낮에는 천도의식을 지내고 밤에는 옥련보살이 시키는대로 한두시간 정도 기선정진(祈禪精進) 의식을 갖는 시간을 가지며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처음에 한동안은 별다른 무리없이 천도의식이 진행되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런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 으어어어~~~!!! 으어어어~~~!!! 살려주세요~~~!!! ’
‘ 으어어어~~~!!! 축생귀가 되어버리다니~~~!!! 어르신~~~!!! 도인님~~~!!! 제 영혼을
구제해 주세요~~~!!! ’
‘ 오오오오~~~!!! 삼라만상 귀신들이 모두 여기 모였구나. 축생귀,업장귀,처녀귀 이
무시무시한 많은 귀신들이 다 어디로 갈꼬.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아 우리는 다 어
디로 갈꼬~~~!!! ’
때론 자면서 꿈속에서 그런 모습이 보이거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또는 천도의식이나 기도를 드릴때도 종종 그런 환청이 들리거나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그저 기도나 천도의식때 피곤해서 조는 와중에 헛꿈을 꾸었나 생각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찌보면 소위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나 혼령, 즉 영가의 피울음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도 했고 그것이 노승홍의 정신세계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노승홍은 사지가 뒤틀리는것과 같은 고통에 방바닥을 구르며 아프고 고통스러워했다.
“ 그대...노승홍 선생. 정신차리세요. ”
“ 으음...보살님...왜 이렇게 아픈거죠 ? 으어...너무 아파서...정신을 차릴수가 없어
요. 저는 왜 아픈겁니까 보살님 ? ”
옥련보살이 의미심장하게 노승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업장이 빠져나가는것이라 생각하세요. 그대 노승홍. ”
“ 업장이 빠져나가는 소리라고요 ? ”
“ 업장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영혼이 빠져나간다는것과 같은 이치가 있어요. 몸속의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는것이죠. 그럴 때 종종 온몸이 뒤틀리며 뼈와 살과 피가 찢
겨져나갈것만 같은 고통을 느낄수가 있어요. 그러니 조금만 고통을 버텨보세요. ”
100일 기도씩 세 번. 그렇게 1년을 그곳에서 천도의식을 드리며 기선정진을 했다. 그리고 그 기선과 천도의식이 거의 마쳐가던 무렵이었다.
“ 옴바라파샤 !!! 파샤 !!! 파샤 !!! 푸시 !!! 푸시 !!! 푸시 !!! 옴바라파샤 !!! 파샤 !!!
파샤 !!! 푸시 !!! 푸시 !!! 푸시 !!! ”
옥련보살이 쌀과 소금 같은 것을 노승홍에게 뿌렸고 노승홍이 다시금 온몸이 뒤틀릴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 고통이 한참 절정으로 치닫는 듯 하다 잦아드는 듯 하더니 노승홍의 몸과 영혼은 차츰 평온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씩 차분한 자세가 되어갔다.
“ 여길 한번 찾아가 보세요. ”
천도의식을 다 끝내고 이제 옥련보살의 집을 떠나야 할 것 같은데 그때 옥련보살이 뭔가를 적어주었다. 무슨 집 주소 같은것이었다.
“ 여기가 어딘데요 보살님 ? ”
“ 거기 그대 노승홍의 전생 어머니가 살고 계실것입니다. ”
“ 예에 ? ”
황당해하며 노승홍은 옥련보살이 적어준 쪽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대충 서울 어디 주소가 적혀있는데 아무튼 그걸 보여주면서 옥련보살이 거듭 이렇게 말한다.
“ 거기 그대 노승홍의 전생(前生)의 어머니가 살고 계실거에요. 그러니 한번 찾아가
보도록 하세요. ”
대체 옥련보살이 노승홍의 전생 어머니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그걸 어찌 알수가 있단 말인가. 또 까짓거 속는셈치고 그 말을 믿어본다고 치자. 헌데 그 전생의 어머니를 찾아가서 뭘 어쩌란 말인가. 가서 ‘어머니, 제가 어머니 전생의 아들입니다’ 하며 달려들어 통곡이라도 하란말인가. 여하튼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만 봐도 사람은 자신의 전생을 기억할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상식으로 인지할수 있는 일 아닌가. 헌데 대체 그 ‘전생 어머니’라는 자가 자신의 전생을 기억할지 또 그 전생의 아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그 조차도 불확실한데 대체 찾아가서 뭘 어쩌라는것인지. 그저 황당하고 어리둥절하게 노승홍이 옥련보살을 바라보고 있는데 옥련보살은 거듭 노승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 거기 그대 노승홍 선생의 전생 어머니가 살고 계실거라니까요. 그러니 한번 가서
찾아가 보도록 하세요. ”
(* ‘그대 OOO 선생’ 하는식의 호칭은 그냥 제가 만든 말이지 옥련보살이라는 이가
실제 그런 호칭을 쓴다는 것은 아니니 이 점 오해없기 바랍니다. 교회도 아닌데 무슨 아무
개 형제님,자매님 이런식의 호칭을 쓴다고 할수도 없고 절도 아닌데 무슨 보살이나 처사 같
은 호칭을 쓰는걸로 할수도 없어서 그냥 제가 임의로 만든 호칭입니다.)
헌데 어릴 때 헤어진 부모님을 성인이 되어 만난다고 해도 못알아볼 판인데 하물며 ‘전생의 어머니’를 무슨수로 알아본단 말인가. 일단 옥련보살이 추가 힌트를 좀 더 주긴 했다.
“ 한번 토요일 오후 4시쯤 그곳을 찾아가 보세요. 그럼 아마 그때쯤 그곳에 두꺼운
검은책을 품에 안고 나오는 검은색 상하의 정장을 한 여성이 있을겁니다. 그럼 아
마 그 분이 그대 노승홍 전생의 어머니일거에요. ”
검은색 두꺼운 책을 품에 안고있고 검은색 상하의 정장 ??? 이쯤되면 진짜 무슨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저승사자나 아니면 무슨 셜록홈즈 추리소설 같은데 나올 것 같은 무슨 ‘베일에 싸인 여인’ 같은 느낌인데 일단 노승홍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전생에 자기 어머니였던 여자’라고 하니까 묘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노승홍이라고 해도 전생을 기억하고 있을리는 만무한 상태에서 도대체 과연 전생에 자신과 모자 인연을 맺었던 이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 옥련보살이 일러준 주소대로 물어물어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전생의 어머니’를 찾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냥 ‘어릴 때 헤어진 먼 친척 소식이 궁금해서’ 찾는다는 식으로 둘러대긴 했다. 전쟁때 가족을 잃거나 헤어진뒤 몇십년이 지나도록 못 만나는 이가 아직도 많으니 이때 이런식의 둘러댐은 의심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을법한 적절한 핑계거리가 되기도 했다.
“ 아...아니 ? ”
사실 서울 어쩌구 하는 주소를 옥련보살이 건네줬을 때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좀 받긴 했다. 사실 노승홍이 경기도 남부의 절에서 승려생활을 3년정도 하다 그곳을 나와 여기저기 정처없이 떠돌다가 인천까지 와서 정착을 한 것이니 그 사이에 서울생활을 한 적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서울살이가 있어도 그냥 잠깐이었는지 노승홍이 서울의 구체적인 지리나 지명에 대해선 그때까지 이해가 별로 없을때였다. 다만 어쨌든 종로나 중구 정도가 서울 중심지라는 정도는 대충 들어 알고있는때인데 ‘서울 중구...무슨동’ 하는 옥련보살이 건네준 주소를 봤을때만해도 그냥 그런곳에 살고있는 여인이려니 그 정도 짐작만 하고 있었다. 헌데.
“ 아...아니 여긴... ”
사실 옥련보살이 적어준 주소는 실은 서울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봐야할 천주교 성당이 있는 그곳이었다. 헌데 거기에 ‘전생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니. 일단 기독교나 천주교는 전생이나 환생 이런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것이야 평상시 그런 종교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느정도 상식으로 들어 알고있을 것이다. 헌데 하물며 그렇게 유명한 성당에 ‘전생에 어머니’가 살고 있다니. 설마 그럼 전생에 노승홍의 어머니였던 이가 성당에서 수녀로 일하고 있기라도 하단말인가. 생각할수록 황당해서 노승홍은 어안이 벙벙해서 그 크나큰 성당건물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자신이 주소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옥련보살이 잘못 적어준 것은 아닌가 싶어 인근의 다른곳을 좀 더 돌아보긴 했다. 허나 OO성당 근처에 무슨 가게나 사무실 건물 같은곳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살만한 주택같은곳이 있을리는 없고, 그래서 더 황당한 표정으로 멍하니 성당건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하튼 옥련보살이 일러준 토요일 ‘오후 4시’는 거의 다 되어가고 있는데 이대로 물러설수도 없어서 일단 미친척하고 한번 성당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때 성당안에서 나오는 한떼의 학생이 있었다. 아마 토요일날쯤 있을법한 중,고등부 예배나 집회라도 있는지 대략 스무명 안팎의 중,고생 정도가 나오고 있었는데 일단 노승홍은 멍하니 그 한떼의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그중 한 절반정도가 여성이긴 했는데 대다수가 사복차림이었지만 교복차림의 여학생이 두명쯤 있었고 그중 한명이 성경책을 품안에 안고 있기는 했다.
‘ 두꺼운 검은책을 품에 안고 검은색 상하의 정장을 하고 있어요. ’
사실 처음에 옥련보살이 그런식으로 일러줄때는 무슨 ‘추리소설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그정도 짐작을 했고 옥련보살이 일러준 주소가 다름아닌 OO성당 소재지임을 확인했을때만 해도 ‘혹시 이곳의 나이많은 수녀가 자신의 전생의 어머니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그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다. 헌데 토요일 오후 4시에 중고등부 집회를 마치고 나오는 한떼의 학생들. 노승홍은 순간 어떤 절망적인 탄성까지 내뱉었다.
물론 전생의 어머니라고 해서 이생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것이란 보장이 없다. 전생의 어머니라고 해도 이 생에선 자신보다 늦게 태어났을수도 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태어날수도 있는 것 아닌가. - 만약 정말 불교식 삼생(전생,현생,내생)이 존재한다면 – 그러니 전생의 어머니라도 자신보다 나이어린 사람일 가능성까진 충분히 있다치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체 뭘 어쩌라는것인가.
“ 어머니...제가 당신 전생의 아들이었습니다 !!! ”
어쨌든 노승홍도 어느덧 나이 20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다. 헌데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릴 여고생한테 다짜고짜 ‘어머니’ 하고 달려들었다간 아무리 70년대 중반 정도라도 정신나간 사람이나 치한으로 취급당할게 뻔하다. 따라서 남학생도 제법 있는 그 한떼의 중고생 무리에 갑자기 달려들어 그 교복차림의 어린 여고생에게 ‘제 전생의 어머니셨습니다’ 이런식으로 말할수도 없고. 일단 노승홍은 그 일행에게 뭐라고 말을 좀 걸어보려고 하였다.
“ 저...저기 잠시만요... ”
성당에서 나오는 중고생 일행은 의아해하면서도 그저 길이라도 물어보려는 아저씬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았고 일단 노승홍이 의도적으로 그 교복차림의 여고생쪽으로 다가가보긴 했다. 여고생이 순간 어떤 경계심이 생겨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치긴 했는데 그렇다고 이대로 놓쳐버리긴 아쉬워 결국 뭐라고 말을 건네보려고 했다.
“ 호...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적 있지 않나요 ? ”
“ 네에 ? ”
허나 정말 노승홍의 전생 어머니라도 되는지까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보통 여학생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할리도 만무하고 게다가 그런 불교식 삼생이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지금은 천주교 신자인 여학생 아닌가. 그것도 중고둥부 집회에까지 별도로 꼬박꼬박 참석할정도로 열성 신자인 여학생에게 전생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면 어찌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소리는 못들을 것 같다는 생각에 노승홍은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 그저 망설이고만 있었다. 결국 아무리 봐도 이 남자의 행동거지가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중 대충 회장이나 리더정도로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여학생을 보호하려는 듯 그 앞을 막아서며 이렇게 나왔다.
“ 아저씨 무슨일이십니까 ? 하실말씀 있으시면 저한테 하시던가요. ”
“ 아...아니 오해하진 말아요. 난 그게 아니라...저기 저 여학생이 어디서 본듯해서...
혹시...내가 어릴 때 자란 시골 고향에서 본게 아닌가 싶어서... ”
“ 아...아니에요 전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
결국 용건(?)이 자신에게 있음을 눈치챈 여학생은 아니라는 듯 황당하다는 듯이 이와같이 답했고 그 부분을 확인시켜주듯 아마 평소 그 학생과 절친한듯한 다른 학생이 이렇게 설명을 덧붙인다.
“ OO이 OO 국민 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나왔어요. 저랑 5학년때 같은반이기까지 했
는데요. ”
그런식으로 무슨 시골고향 어쩌구 하는 이상한 아저씨에게 전혀 아니라며 확인시켜주듯 나오는 여학생. 리더인 남학생이 노승홍을 거듭 제지하면서 말을 건넨다.
“ 별일 없으시면 죄송하지만 이만 비켜주시겠어요. 저희도 다 바쁜 몸이라서... ”
그래봤자 성당 중고등부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길인 것 같은데 딱히 바쁠일이야 뭐가 있겠는가. 허나 어찌되었거나 지금 이 상황에서 노승홍이 더 덧붙일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은 달라지는게 없다. 아닌말로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 나이어린 여학생한테 ‘정말 전생에 우리 어머니가 맞는지 확인이나 좀 해보자’고 할 것인가 어쩔것인가. 노승홍은 결국 마치 허무개그의 한 장면처럼 뒤로 물러선채 자기갈길을 가는 OO성당 중고등부 일행의 뒷모습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속은기분마저 들어 노승홍은 옥련보살에게 가서 한번 따져보라고 했다. 헌데 사실 옥련보살이 노승홍을 속였다고 볼수도 없다. 어쨌거나 옥련보살의 말을 곧이 믿고 OO성당에까지 자기 전생의 어머니를 찾아가본 자신에게도 불찰이 있다면 있는 것 아닌가. 어쨌거나 노승홍은 옥련보살에게 가서 따질 생각으로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헌데 더 이상한일이 벌어졌다. 오전까지만 해도 옥련보살은 – 지금까지 1년동안 노승홍이 기거하며 천도제도 드리고 치성도 드렸던 –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헌데 토요일 오후에 서울에서 그 허탕을 치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 돌아와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불이 꺼져있는 것이 밤이 되어 벌써 잠들었나 짐작할수도 있겠지만 노승홍이 알기로 옥련보살이 그렇게 일찍 잠이 드는 여자는 아니었다.
벨을 눌러도 도무지 옥련보살이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노승홍은 일단 자신의 가게로 돌아가긴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되어 옥련보살 집 벨도 누르고 대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긴 마찬가지다. 헌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떼의 트럭이 오고 있었고 거기서 한 남자가 내렸다.
“ 아저씨 거기서 뭐하세요 ? ”
시비라도 걸듯 수상쩍다는 듯 말을 건네는 남자. 노승홍이 오히려 이 상황이 이해안가 물었다.
“ 그러는 그쪽은 누구시죠 ? 전 여기 보살님한테 볼일이 좀 있어서 왔는데... ”
“ 뭐라구요 ? ”
“ 여기 옥련보살이라고 점도 보고 천도제도 드리는 아주머니...그분좀 만나뵈러... ”
“ 이 아저씨가 무슨소리를 지금 하는거야 ? 이 집 팔린게 언젠데 ? 헛소리말고 비켜
요. 여기 우리가 새로 이사오기로 한 사람이니까. ”
“ 아니, 뭐라구요 ? ”
어제 그 무슨 전생의 어머니를 찾으러 갈때까지만 해도 옥련보살은 무슨 이사를 간다느니 집을 팔았다느니 그런말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옥련보살 입장에선 노승홍이 그냥 점보러 오는 손님에 불과하니 그런말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어서 안했다 치더라도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이삿짐이라도 싸는듯한 기미가 전혀 안보이던 옥련보살이었는데 간밤에는 불이 꺼져있더니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 집이 팔리고 이사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노승홍이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 아니 도대체...언제 집을 팔고 이사를 했다는건데요 ? ”
“ 아, 글쎄 잔소리말고 비켜요. 부동산 계약도 다 끝나고 여기 분명히 우리가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 맞으니까. ”
그러고보니 대충 자식 셋을 키우는 평범한 40대 부부로 보였는데 이들은 직접 계약서까지 보여주고 부동산 중개인까지 불러서 확인을 시켜주었다. 여하튼 이제 이곳에 옥련보살은 더 이상 살지 않고 아이 셋 키우는 40대 중년 부부가 들어와 살게 된다는 것. 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그야말로 귀신이나 여우한테 홀린기분이었다. 그러나 노승홍은 분명 옥련보살에게서 점도 보고 그녀의 집에서 1년 기거를 하며 조상업장 소멸하는 천도제까지 드리고 전생의 어머니를 찾아가보라는 말을 듣고 거기까지 가보기도 했다. 헌데 전날까지 전혀 그런 기미가 안 보이던 옥련보살이 더 이상 이곳에 살지않고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고 다른 평범한 가족이 와서 살게된다니. 그야말로 귀신에게라도 홀린 기분이라 노승홍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어떤 공포감에까지 젖으며 멍하니 이삿짐을 옮기는 새 가족들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대도사에겐 여자가 있었다. 헌데 이런식의 표현은 좀 어폐(語弊)가 있는데 불륜관계나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소리는 아니고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해서 부부가 되었다. 다만 그전에 이른바 ‘사실혼 관계’인 동거기간이 좀 길었다는데 그게 ‘7년’이란 소린지 ‘17년’이란 소린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과 특히 스토리 전개상 ‘17년간 동거를 했다’는 것은 너무 무리가 가는 이야기라 ‘7년동거설(?)’을 채택하기로 했다.
여하튼 대도사가 떠돌이생활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한곳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여인을 만난 것으로 보는게 무난할 듯 하다. 원래 듣기로는 무슨 ‘방생법회’에서 처음 만났다고 들었는데, 사실 방생법회는 근본적으로 불교의식 아닌가. 허나 대도사가 스님생활을 청산하고 그곳을 떠난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70년대든 80년대든 방생법회에서 상대 여성을 만났다고 보기도 좀 무리가 있다.
결국 대진교(大眞敎)의 창립비화 스토리와 함께 가는게 스토리 전개상 무난할 듯 하다. 원래 대진교 교리집엔 종단의 창립이 1984년(* 갑자년(甲子年 - 교리집에는 ‘상원(上元) 갑자년’이라고 되어있음)으로 되어있으나 정황상 이미 그 이전부터 사실상 ‘유사종교화’되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70년대에 주로 무속인,풍수사등과 교류했을 가능성이 높은 대도사가 그러다 정착지를 정하고 그곳에서 사람들 사주,관상,궁합을 봐주며 때로는 천도제도 치러주기 시작한게 대략 1980년 전후. 그때부터 그를 따르는 이들이 ‘도사님’ 혹은 ‘도인님’이나 ‘성현님’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 같은데 처음 그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있다. 나중에 이들이 대진교 삼대(三大) 순도사(殉道師)가 되는데 이들이 박명자,이영자 그리고 김진아라는 여인이다. (* 다만 이중 김진아는 나중에 개인적 물의를 빚어 종단을 탈퇴하고 순도사에서도 제명된다.) 셋 다 이때는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 신분이었던걸로 아는데 이영자의 경우엔 사업을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셋이 있는 80년대에 이미 나이 50을 넘긴 가정주부였고, 김진아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 미망인 신분으로 혼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워온 여인이다. 그리고 박명자라는 여인의 사연이 좀 특이한데 실은 그녀는 전쟁직후 스무살 연상의 남자를 만나 그 남자의 전처소생 아들 둘을 키우며 살았고 박명자도 스무살 많은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둘을 더 본 그런 좀 특이한 사연이 있다. (* 젠장...이렇게 되면 결국 또 ‘새엄마’ 이야기로 가는거잖아. 그래서 원래 박명자 이야기는 빼려고 했는데 어차피 대진교(大眞敎) 제일(第一) 순도사(殉道師)니 이 이야기를 뺄수도 없고...-.-;;)
어쨌든 이 무렵(대략 1980년 전후) 일정한 거처를 마련하고 사람들의 사주,궁합,관상등을 봐주고 천도의식을 치러주는 그런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 대도사. 헌데 단순히 사주,궁합만 봐주는 것이 아니라 좀 특이한 방법의 기도의식이랄까 종교의식을 만들었다. 그것은 일정량만큼의 ‘기도’를 스스로 드린뒤 ‘바를 정(正)’자를 써오면 그 ‘正’자를 보면서 기도한 이의 ‘텔레파시’를 봐주게 된다. - 기도한 횟수만큼 ‘정(正)’자를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도사에게 소위 사람들의 ‘텔레파시’를 보는 능력이 생겼다는 이야긴데 다만 이 과정은 합리적인 소설 스토리로 전개하기가 쉽지 않아 아쉽지만 생략한다.
보통 대도사가 이 텔레파시의 이치에 대해 설법(說法 : 기독교의 설교, 불교의 법문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을 하는 방식이 이런식이다. 가령 무슨 색깔 텔레파시가 부족하면 관운이 부족한것이고 무슨 색깔 텔레파시가 부족하면 재운이 부족한것이고...(* 하도 오래돼서 나도 다 까먹어 제대로 생각 안난다. -.-;;) 여하튼 기도를 하면서 ‘바를 정(正)’자를 기도한 횟수만큼 써오면 그 사람의 텔레파시를 봐주면서 ‘당신은 이런 텔레파시가 부족하니 이런 기도를 하시오 ’ 이렇게 길을 일러준다는이야기다.
여하튼 그렇게 사실상 유사종교화 되어가면서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 대도사. 무엇보다 이렇게 되니 대도사의 일을 봐주고 심부름을 하는 이들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래서 그 과정에서 인연을 맺게 된 이가 이영자,박명자 그리고 김진아였다.
그리고 이 무렵에 결국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된 것 같다. 하루는 비가 몹시도 쏟아지는 어느날이었다. 세상에 무슨 변고라도 일어나는지 아니면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나는것인지 몹시도 비가 쏟아지는 어느날. 빗소리에 공연히 심란해지기라도 했는지 대도사가 잠시 집에서 나와보았다. 대문을 열고 잠시 바깥이나 돌아볼까 했는데 집 문앞 처마에서 떨고있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놀란 대도사가 말을 건넨다.
“ 이...이봐요 학생. 거기서 뭘 하나 ? ”
놀란 대도사가 다가가 소녀를 흔들어보며 말을 건네보았고 소녀는 순간 놀랐지만 일단 울먹이며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 갈곳이 없어요. ”
“ 뭐...뭐라고 ??? ”
“ 갈곳이 없어요. 흑흑흑~~~!!! ”
소위 말하는 ‘가출 청소년’에 해당하는 소녀인지. - 그리고 사실 60-70년대엔 ‘가출청소년’보다 시골에서 돈벌겠다고 무조건 올라오는 ‘무작정 상경 처녀’가 더 큰 사회문제였다. 어쨌든 가출청소년인지 무작정 상경 처녀인지 신분이 확실치 않은 소녀는 ‘갈곳이 없다’며 계속 을고 있었고 소녀를 그대로 내버려둘수도 없어 대도사가 집안으로 소녀를 들어오게 했다. 70년대 후반이면 어쨌든 대도사 나이도 어느덧 서른을 넘겼다고 봐야하는데 일단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배려해준 10대 후반의 소녀. 욕실에서 몸이라도 씻게 하고 갈아입을 츄리닝이라도 내주었다. 그리고 소녀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 집을 나왔어요. ”
“ 나이어린 학생이 집을 나오면 쓰나. 부모님이 걱정하실텐데... ”
허나 소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 우리 아빠는 저한테 이미 관심 없으세요. 젊은 새엄마한테 이미 푹 빠지셨으니까
요. ”
“ 젊은 새엄마 ? ”
어쨌든 그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다는 소린데, 새엄마 구박 때문에 가출을 했다는 소린지 아니면 지가 새엄마가 생긴 것 자체가 싫어서 가출을 했다는것인지 이렇게 말하는 소녀. 그녀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 아빠는 젊은 새엄마하고 사이에 아들을 셋 낳았어요. 그러니 저한테 배다른 남동
생이 셋이 생긴셈이죠. 아빠는 그렇게 새엄마하고 생긴 동생들 보는 재미에만 푹
빠져있고 저한텐 관심도 없어요. ”
뭐 대충 알만한 집안사정 아닌가. 무엇보다 아직은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시절. 오히려 국가에선 인구폭발 문제가 걱정된다며 ‘둘만낳아 잘기르자’도 부족해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가 초만원’이라고까지 하며 한사코 산아제한을 하려들어 그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던 시절. 헌데 그런 시대에 딸 하나만 있던 남자가 나중에 재혼을 해 아들을 셋이나 더 보았으니 그 기쁨이 어땠겠는가. 집안의 관심은 결국 아버지가 새엄마하고 사이에 낳은 아들 셋에게 온통 쏠릴 수밖에 없고 첫째이면서 전처소생인 큰딸은 소외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 그래서 집을 나왔다면 대충 알만하고 짐작할만하다는 듯 대도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래도 아직은 좋은말로 잘 타일러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는게 상식적인 일일터. 대도사도 일단 그런 방향으로 소녀를 설득해보려 했으나 소녀의 고집은 완고하기만 했다.
“ 저 집에 안 들어간다니까요 !!! 죽으면 죽었지 집에 안 가요 !!! ”
“ 어...허허...학생. 아무리 그렇기로 죽는다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으면 쓰나. 다 천
지신명께서 주신 소중한 목숨인 것을. 그리고 전생의 업연대로 이생에 태어나고 이
생의 인과대로 다음생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인과로 윤회하는 삼생우주(평행우주 ??
?)의 이치를 깨닫는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면 안되는게야. ”
그렇게 나름 소녀를 타일러보려 했지만 소녀의 고집은 요지부동. 게다가 소녀가 자신의 집 주소나 연락처를 말하지 않는 이상 그녀의 집을 알아낼 방법도 없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대도사는 소녀를 일단 자신의 집에서 묵게했다. 그리고 다음날. 대도사의 일을 봐주는 박명자가 마치 출근이라도 하듯 아침일찍 그의 거처를 찾았는데, 박명자 입장에선 의아해서 묻는다.
“ 도사님, 웬 학생입니까 ? ”
“ 그게...집이 없다고 하더군. ”
“ 예 ??? ”
무슨소린지 바로 이해가 안가 박명자가 의아해서 물었고 대도사가 대충 간밤의 일을 설명해준다.
“ 지금으로선 어디 집이나 가족에게 연락을 할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니 잠시 여기에
머물게 하는수밖에 없지 않나. ”
“ 차라리...경찰서에 연락을 하시지 그러세요 도사님. ”
“ 허허...참...대충 봐도 작정하고 집을 나온 학생 같은데 경찰서로 보낸다고 저 학
생이 수긍하겠나 ? 오히려 더 크게 반항하고 반발할수도 있어서 그런 조치까지 하
진 않은게야. ”
“ 그럼 대체 어찌하시려구요 도사님. ”
“ 일단 지켜봐야지 별수있겠나. ”
오갈데 없는 처지인 소녀는 한동안 계속 대도사의 거처에 머무는 상황이 되었다. 어차피 아빠가 새엄마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동생들만 예뻐하는 가정환경이 싫어서 집을 나왔다고 했으니 이런 상황에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집 주소나 가족들에게 연락할 방법을 알려줄 것 같지도 않으니 한동안 그런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하루는 대도사가 소녀를 불렀다.
“ 한번 내가...자네 사주,관상을 봐주고 싶어 불렀네. ”
얼마간 머물면서 소녀도 대도사가 이런곳에서 사람들 사주,관상등을 봐주는 그런일을 하는이라는 것은 대충 알게 되었을터이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사주를 봐주겠다고 하니 소녀 입장에서도 그런대로 궁금함이 생기기는 하는지 별다른 의심없이 응했다. 일단 대충 그렇게 사주며 소녀의 관상까지 살펴본 대도사. 헌데 좀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 허어... ”
“ 왜요 도사님 ? 제 사주가 안 좋은가요 ? ”
대충 보니까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도 그를 ‘도사님’ 혹은 ‘대도사님’이라 부르는 것 같았고 도사의 일을 도와주는 박명자니 이영자니 하는 아주머니들도 그런식으로 호칭하는 것 같았으니 소녀가 그런대로 눈치있는 성격인지 바로 그런식으로 호칭을 부르고 있었다. 어쨌든 소녀의 사주를 다 본 대도사가 뭔가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 아무래도 인연법인 것 같으이... ”
“ 그게 무슨말씀이세요 ? ”
대도사의 의중을 알리없는 소녀. 도사의 말이 이어진다.
“ 아무래도 천지신명(天地神明)께서 인도하신 그런 인연인 것 같다 그 말일세. ”
박명자는 이때 대도사를 찾아오는 이들을 관리하고 재정을 맡아하는 그런일을 하고 있었다. 일종의 ‘총무겸 재정담당’쯤 된다고나 할까. 그렇게 사실상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듯 대도사의 거처에 들르고 있던것인데 그러던 박명자니 소녀의 일에 대해 모를일이 없을터. 피차 걱정이 되어서일까. 박명자가 먼저 소녀의 문제에 대해 물었다.
“ 도사님, 대체 어쩌시려구요. ”
그러자 대도사가 박명자를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전쟁직후에 스무살 연상의 남자를 만나 그 전처소생 아들 둘을 거둔 박명자라고 하나 그녀도 지금은 나이 거의 50에 이르는 나이. 그냥 ‘나이많은 아줌마’로 봐도 무방할 정도인 희끗희끗한 머리칼의 박명자는 대도사의 이와같은 모습에 공연히 긴장까지 되었다. 대도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자네가 비밀로 해줄수 있겠나 ? ”
“ 도사님... ”
“ 저 아이와 나의 관계를 자네가 끝까지 비밀로만 해준다면... ”
뭘 어쩌곘다는것인가. 이래저래 박명자는 거듭 긴장이 되는데 느닷없이 대도사는 자기방 문갑에서 이른바 붓,벼루,먹등의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꺼낸다. (* 대도사는 이미 서예를 배운 이력이 있다.) 그리고 뭔가를 화선지에 쓴다.
“ ‘무거울 중(重)’에 ‘뫼 산(山)’일세. ”
‘중산(重山)’ 굳이 의미를 해석하자면 ‘무거운 산’이란 뜻인데 대체 뭘 어쩌겠다는것인지. 대도사가 박명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내 자네에게 아호(雅號)를 써주고 싶어 한번 지어보것일세. ”
불가(佛家)에선 출가를 한 스님이 있을 경우 그 스승격인 주지스님이라든가 이런이들이 보통 법호(法號)를 지어준다. 그리고 대진교는 훗날 정식으로 창립이 된 뒤에 이른바 ‘수계식(受戒式)’이란 입교(入敎)절차를 갖게 되는데 때로는 대도사가 직접 혹은 법사나 순도사급의 고위 성직자가 새로 성직자가 되었거나 새로 신도로 입교한자에게 ‘아호(雅號)’를 지어주는 절차를 밟게된다. 허나 아직은 대진교라는 정식 종단으로 출범하기 전. 대도사가 박명자에게 이런 호를 써주는 것이다.
“ 이걸 제 호로 지어주신단 말씀이십니까 ? 아이구 감사합니다 도사님. ”
‘중산’이라는 예정된 아호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촐싹대는 면이 좀 있는 박명자라서일까. 벌써 감격하여 고맙다고 큰절까지 올리려 하는데 대도사가 당황해서 멈추라고 한다.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박명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 누가 지금 당장 이 호를 지어준다고 했나 ? ”
“ 아...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도사님 ”
“ 저 아이와의 관계를 때가 될 때까지 비밀로 해주게. ”
결과적으로 놓고보면 결국 대도사와 소녀는 7년후 정식으로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해서 부부가 되고 일반 신자들에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공개가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엄중한 비밀일 수밖에 없는 일종의 대도사의 사생활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대진교가 나중에 종교단체로 정식 출범한뒤에도 한동안은 그야말로 ‘종단의 일급비밀’이 될 수밖에 없는 대도사의 사생활이 되는것이고 따라서 지금 아직 정식 종교로 출범하기도 전이고 아직은 그저 사주,관상등을 봐주고 천도의식도 치러주는 ‘도사’의 신분으로써 그 대도사의 개인 사생활을 일급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 훗날 ‘중산(重山)’이란 아호를 지어주겠다는 약조와 함께 대도사가 이렇게 말한다.
“ 저 아이와 나의 관계를 자네가 목숨으로 비밀로 지켜준다고만 약조한다면 내 훗
날 이 호를 자네에게 내려줄것일세. 그대신 자네는 나와 저 아이의 관계를 때가 될
때까지 반드시 엄중한 비밀로 지켜주어야 하네. 무슨말인지 알겠나 ? ”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대도사와 소녀는 그렇게 동거(同居)를 하는 상태가 되었고 하루는 대도사가 무료하기라도 한지 자신의 거처에서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소녀가 의아해서 다가왔다.
“ 도사님, 거기서 뭘 하고 계세요 ? ”
아직 대도사와 함께 살게된지는 1년이 채 안된 시점이라고 봐야할텐데 그러나 어쨌든 ‘도사님’이란 호칭은 그런대로 익숙해져있는 소녀. 대도사가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묻는다.
“ 허허...도자(道者)야... ”
‘도자(道者)’는 역시 나중에 대진교가 정식 창립되었을 때 그곳의 일반 신자끼리 부르는 호칭이 된다. - 기독교,천주교 등에서 평신도나 청년회끼리 서로 ‘형제님’,‘자매님’ 이런식으로 부르는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단 대진교의 청년회,학생회 단체였던 ‘청운동지회(靑雲同志會) : 약칭 청운회)’에선 서로를 ‘동지’라고 불렀다. 여하튼 ‘도자’라는 호칭을 이때부터 쓰기 시작한 모양인데 대도사 입장에서 아무리 나이어린 소녀라도 그냥 어린애 대하듯 ‘아무개야 어째라 저째라’ 이런식으로 말하기도 그래서 이런 호칭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여하튼 대도사가 소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 너는 천지신명의 이치를 아느냐 ? ”
대도사의 말을 알아듣는것을까 못알아듣는것일까. 소녀는 그저 어리둥절하게 대도사를 바라보고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대도사의 말은 이어진다.
“ 하늘에서 비를 내려 땅에서 천지만물이 소생케되는 그 이치를 네가 아느냔 말이
다. ”
“ 비가 오면...뭐 풀도 꽃도 나무도...싱싱하게 되고 자라게 되고...뭐 그런 것 아닌
가요 ? ”
“ 허허허...하지만 때론 비가 너무 많이오면 흙탕이 되기도 하고 작물들이 오히려
물을 너무 많이 먹어 못쓰게 되거나 홍수에 다 떠내려가기도 하지. 그러니 하늘이
땅에 비를 내리는것도 적절하게 내려야지 아무 때나 마구 내리면 못쓰는거란다. ”
“ ...... ”
“ 허허허...너와 천지만물의 도리를 논하는게 적절할지는 모르겠구나. ”
대도사의 말을 알아듣는것인지 못알아듣는것인지 그저 도사를 멀뚱멀뚱 바라만보는 소녀. 대도사가 소녀를 한번 쓰다듬어준다.
-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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