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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가수 팬픽 - 채연 (5) 솔로가수 팬픽


                             부제 : 대도사 일대기
 

 

 고등학교 1학년때 시도하려 했던 첫 번째 가출은 일단 누나들의 만류로 실패로 끝났지만 그러나 승홍이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나들이 ‘니가 집을 나가면 우리가 아버지한테 혼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들에겐 어쨌거나 동생인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자신들이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그 문제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한 것 아닌가.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어쨌든 노사장에게 친아들도 아닌 자신이 누이들의 앞날을 가로막은 모양새고 그로인해 자신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누나들에게 시나브로 쌓여오고 있었다는 것. 그것을 깨달았기에 더더욱 노승홍은 자신이 이 집을 떠나는게 낫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었다. 다만 첫 번째 가출은 아직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너무 경솔하게 시도를 하는 바람에 가출을 시도도 하기전에 누나들에게 들켜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서 두 번째 가출은 더더욱 치밀하게 준비를 하려 들었다. 

 일단 근본적으로 아버지 노사장은 어쨌든 막내아들 승홍이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었고 승홍은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외형적으로는 열심히 공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심 알게 모르게 치밀한 가출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이야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다른 지역의 지리나 교통정보를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지만 60년대 정도만 해도 그것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 노승홍 같은 소년이 타 지역으로 가는 지리나 교통편을 알아내는게 그리 쉽지는 않다. 다만 대전이든 청주든 그런 OO에서 그런대로 가까운 지역에 있는 큰 도시의 지명을 못들어봤을 나이는 아직 아니며 ‘서울’에 대해서도 전혀 모를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대전이나 청주로 가는 교통편이든 서울로 가는 교통편이든 그것을 알아보려 은밀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막상 그렇게 한 가출을 하루,이틀도 못 되어 허무하게 돌아올수도 없는 일이니 한 며칠 버틸만한 여비 정도는 마련해야했기에 틈틈이 돈을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도 거의 끝나가는 무렵인 어느 겨울밤에 마침내 ‘가출’을 시도하였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대이니 단속에도 걸리지 않도록 준비를 치밀하게 해야 할텐데 일단 대전으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털이 있는 인근 지역의 산속같은데 몰래 숨어있다 날이 밝아 버스가 운행할 시간이 되면 첫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한밤중에 가출을 시도한것이니 만큼 날이 밝으면 어쨌든 표시가 날텐데, 게다가 이미 1년전에 한번 가출하려던 동생을 누나들이 만류한적이 있으니 이런 상황이라면 ‘혹시 승홍이가 또 집을 나간게 아닌가 ?’ 하는 짐작을 충분히 안 할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혹시 모르는 마음에 기차역이든 고속버스 터미널이든 찾아와보긴 할텐데 따라서 그렇게 되면 대번에 ‘2차가출시도’도 실패로 끝나버리는것이니 노승홍으로서도 초조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다행히 OO에서 대전으로 가는 시외버스 첫차가 이른 아침에 있어서 그것을 타고 갈수가 있었다. 노사장 가족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와 본 것은 그보다 한참뒤의 일이고 이미 그때 노승홍은 대전행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한두시간쯤 버스가 달려 대전에 도착했고 그곳에 내린 노승홍. 사실 60년대의 대전이라면 지금처럼 큰 도시는 아니지만 어쨌든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가 있는 중심도시고, 무엇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다른지역으로 갈만한 경험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 – 있었다면 그게 나이 80이 넘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옥천에서 살다가 이후 자신을 입양보낼 결심을 한 동네주민들로 인해 인근 OO군의 노사장에게 입양이 보내져 거처를 옮긴 것이 전부일 것이다. - 노승홍으로선 눈이 핑핑 돌 정도의 놀라운 첫 경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시골마을과는 비교될수 없을정도로 눈부신 건물들이며 집이며 사람들,차량들 최소한 시골에선 못보던 풍경들이 눈앞에 한없이 펼쳐져있는 것이 아닌가. 다만 그때 노승홍은 ‘아차 !’ 하면서 무릎을 쳤다. 뭔가 빼먹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승홍은 집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 묘역을 한번 가볼 생각이 있었다. 여하튼 80넘은 아버지와 일곱 살이 되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기억은 분명히 있고 그 아버지가 보여준 사진으로 인해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노승홍의 입장에서 나이많은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결혼 자신을 낳은것인지 그 구체적인 곡절을 알거나 이해할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사실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도 노승홍에게 그 부분은 분명 의구심으로 남아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나이많은 아버지가 새파랗게 젊은 어머니와 혼인 자신을 낳을수 있었던것인지, 그 뒤에는 대체 어떤 내막과 곡절이 있었던것인지. 그리고 자신을 낳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뒷산에 아버지가 몇 번 데리고 가 주시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하염없이 울던 모습을 승홍은 기억하고 있다. 승홍 아니 성국(친아버지와 살 때 이름)의 아버지야 나이많은 나이에 그런 사연있는 어린 여자를 거두어 아이까지 낳았고 처음에 성국의 아버지는 나이많은 자신이 어린 아내 연지보다야 일찍 죽을것이 분명하니 자신이 죽으면 젊은 아내를 자유롭게 해주고 다만 아이만은 자신의 제사를 이어줄 자신의 핏줄인것만은 분명히 해달라는 그 당부를 하지 않았던가. 허나 오히려 아이를 낳자마자 난산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어린 연지. 그 부분에 대한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비통함에 그렇게 슬피 울은것이지만 그때 아직 일곱 살도 채 되기 전이었던 어린 승국(지금의 노승홍)은 그 아버지의 비통한 내면까지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어쨌거나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원래는 나이많은 아버지와 살았고 자신을 낳자마자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승홍. 따라서 집을 떠나기전에 잠시나마 옥천의 친어머니 묘역을 한번 돌아볼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출을 시도하려다보니 노사장의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하고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들켜선 안된다는 생각에 우선 ‘시외버스 첫차를 타고 일찍 대전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만 앞서 옥천에 있을 어머니 무덤에 가볼 생각을 못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새삼 탄식이 되었다. 

 “ 오늘만 날이 아니고 다음에도 기회가 있겠지. ” 

 허나 지금 옥천으로 가는 것은 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자신이 어릴 때 아버지와 살던 옥천 고향을 정확하게 기억을 못하고 있는데다가 설사 어머니 묘역을 찾는다 하더라도 혹시나 하고 노승홍의 가족이 거기까지 자신을 찾으러 왔다면 그또한 낭패가 아닌가. 따라서 대전까지 와서 다시 옥천으로 가는 것은 일단 단념하고 다만 아버지,어머니 무덤이 있을 옥천지역 방향으로만 절을 두 번 정중하게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고는 정처없는 떠돌이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거기...누구요 ? ” 

 돈은 아껴야겠기에 처음부터 어디 여관방같은데서 잔다던가 하는 것은 엄두를 못 내고 일단 한 며칠을 대전 여기저기롤 떠돌며 어느집 처마밑이나 빈 창고 같은곳 그런곳을 전전하며 집을 보냈다. 어차피 이때쯤이면 아직 구걸하는 거지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제법 있을때이기 때문에 그렇게 남들눈에 띄거나 수상하게 여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러기를 며칠후. 다시 어느 잘만한 공간을 찾아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런 노승홍이 그만 누군가에게 그 모습을 제대로 들키고 말았다. 

 

 대전에서 이 무렵 제법 이름난편에 속한 교회였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개척이 되었다면 그래도 이 무렵이면 역사가 한 10년 가까이는 될 터인데, 여하튼 예배당과 교육관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부대시설도 제법 갖춘 그 정도 규모의 교회였던 것이다. 그 교회의 대충 잠을 청할만한 실내공간까지 들어와 하룻밤을 보낸것인데 그 교회 담임목사 장태수에게 그대로 걸려들고 만 것이다. 노승홍이 대전에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지는 어느덧 십여일정도 지난 시점인데 보통은 빈 창고나 남의집 처마밑에서 하룻밤 자다가 집주인이든 누구든 그런 사람에게 걸리면 ‘미안하다’는 식으로 인사를 하고 다른곳으로 옮기곤 하던 노승홍이었다. 허나 집떠난지 어느덧 십여일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일까. 노승홍은 장태수 목사에게 대뜸 큰절을 올렸다. 

 “ 선생님, 저를 거두어주셨으면 합니다. ” 

 일단 대충 자신이 하룻밤을 묵은곳이 교회라는 것은 모르지 않을테고 다만 자신을 발견한 이의 신분이 ‘목사’라는 것은 아직 눈치를 못 챈것인지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이와같이 밝혔다. 

 “ 실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여기저기 정처없이 떠도는 몸입니다. 허나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는 없으니 누구든 좋으니 저를 좀 거두어주셨으면 합니다. 제발 

  거둬주십시오. ” 

 ‘가출을 한 고등학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그대로 밝힐수는 없으니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정처없이 떠도는 몸’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 무렵은 그래도 ‘전쟁때 부모를 잃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핑계거리가 되긴 한다. 아직 6.25가 있은지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니 대충 계산해봐도 이때 10대 소년 정도면 6.25때 부모를 잃은 그런 몸일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장태수 목사도 ‘부모없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몸’이라는 말에 대충 사정을 이해할 것 같다는 듯 고개는 끄덕이긴 했다. 허나 그렇다고 무작정 누군지도 모르는이를 거둘수는 없는일. 일단 노승홍과 대화는 좀 나눠보려고 했다. 

 “ 하지만...그렇다면 어디 마땅한 일자리라도 알아보시던가 하실 일이지...무작정 거 

  둬달라고 하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 ” 

 일단 처음엔 난색을 표하면서 적당히 타일러서 돌려보낼 생각이었던 장태수. 허나 노승홍의 애원이 워낙 간곡했던 덕분일까. 장태수는 그에게 자신의 교회 수위겸 청소부 이른바 ‘사찰집사’를 맡기기로 했다. 여하튼 ‘대형교회’라고까진 할수 없어도 중규모 정도는 되는 교회이니만큼 사찰집사 한둘쯤 두는게 그리 어렵거나 이상하지는 않을만한 규모의 교회. 다만 장태수 목사의 사모는 좀 난색을 표했다. 

 “ 여보,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나 사찰집사로 들이면 어떡해요 ? 솔직히 우리 교회가 

  청소부나 수위로 사람을 따로 쓸만큼 그만한 여유가 되는것도 아니고... ” 

 사모의 잔소리가 그런대로 납득은 가는지 장태수 목사도 바로 이의제기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장태수 목사도 나름 고민하고 생각해둔바가 있는지 이렇게 사모를 설득했다. 

 “ 나도...난감하다는 생각은 했는데...어쨌든 집도절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몸이라고 하지 않소. ” 

 “ 전쟁때 부모잃고 여기저기 떠도는 신세가 된 사람이 어디 한둘이에요 ? 하지만 우 

  리가 교회를 운영하는것이지 고아원이나 복지시설을 운영하는건 아니잖아요. 그런 

  데 대체 어쩌자구... ” 

 “ 일단은 좀 지켜보기로 합시다. ” 

 “ 뭐를요 ? 대체 뭘 어떻게 지켜보겠다는건가요 ? ” 

 “ 일단은 그 형제(노승홍)에게 일을 좀 맡겨보고 쓸만하면 거두고...아무리 생각해도 

  영 아니고 능력도 안 돼 보이면 그때 쫒아내던가 하면 될거 아니오. 그러니 일단  

  좀 더 지켜보도록 합시다. ” 

 그래서 대전에서 그런대로 이름난 교회에서 사찰집사를 하면서 머물게 된 노승홍. 여하튼 한동안 먹고자고 하며 일할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것이니 노승홍으로선 한시름 던 셈이긴 하다. 게다가 생각보다 노승홍의 성격이 붙임성이 좋은 편인지 교회 성도들과도 대체로 잘 어울릴뿐 아니라 청년회나 주일학교 학생들과도 소통이 잘 되는 편이었다. 하루는 이 교회 중고등부에 속해있는 한 여학생과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건가요 자매님 ? ” 

 그래도 교회 사찰집사로 일한지가 꽤 되어서 어느덧 그도 ‘형제님’이니 ‘자매님’이니 하는 호칭이 제법 익숙해져 있을때다. 일단 그 교회 중,고등부 지체인 것은 분명했는데 중,고등부 예배가 있는날도 아닌데 가끔 교회로 와서 혼자 기도하고 돌아갈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노승홍이 그 자매가 기도할수 있도록 예배당 문을 열어주기도 했는데 그러다 하루는 궁금해져 이렇게 물은 것이다. 

 “ 아저씨... ” 

 어쨌든 사찰집사도 집사는 집사인데 ‘집사님’이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아저씨’라고 부른 여학생. 사실 노승홍은 이 교회에서 사찰집사로 일하면서 자기 나이를 두 살정도 높여서 말하기도 했다. 사실은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겨울에 가출을 한 노승홍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런 ‘가출청소년’ 신분이 발각나지 않게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나이를 두세살 정도 높여 밝힐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장태수 목사는 몰론 이 교회 다른 성도들이나 주일학교 학생들도 노승홍을 20대 청년 정도로 막연히 짐작할뿐 아직 고등학교 학생 신분의 나이라는 것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사이 해가 바뀌어 노승홍이 가출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나머지 학업과정을 밟고 있다면 고3이 되어있을 나이긴 한데, 다만 노승홍을 20대 청년 정도로 생각하고 ‘아저씨’라 부르고 있는 소녀. 그녀의 고민은 이와같았다. 

 “ 여자는 대학가면 안 되는건가요 ? ” 

 물론 그런법은 없지만 여하튼 아직 60년대라면 여자가 대학까지 진학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 시대다. 집안형편때문에라도 아들까진 몰라도 딸까지 대학까지 보내줄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당사자가 굳이 대학까지 갈 의지가 별로 없는 경우도 더 많았을 것이다. 다만 적어도 이 학생은 후자는 아닌지 이런식으로 운을떼고 노승홍 앞에서 이렇게 고민을 토로했다. 

 “ 저희 부모님이...오빠들은 다 대학까지 보내주셨으면서...저보고는 ‘기집애가 공부 

  는 더 해서 뭐할거냐 ?’며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몇 년 직장생활 하다 시집이나  

  가래요. 여자는 다 그래야만 하는건가요 ?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녀에겐 위로 오빠가 세명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면 3남1녀중 막내인 소녀나 4녀1남중 막내인 노승홍이나 막내인 처지는 같지만 소녀는 아들 많은 집의 막내딸이고 승홍은 딸 많은 집에 그것도 막내아들로 입양이 되었던 몸이니 같으면서도 정 반대인 그런 환경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노승홍은 양자지만 그래도 아들이라서 막내는 어떻든 대학을 보내야한다며 온갖 정성과 혼신을 막내에게 쏟아붓는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소녀는 반대로 위로 오빠들은 집에서 귀하게 키우지만 막내딸은 ‘기집애가 대학은 가서 뭐할거냐 ?’며 그냥 적당히 고등학교만 나와서 직장생활 몇 년 좀 더 하다가 시집이나 가라는 그정도 인식을 갖고있을만한 부모 밑에서 자란 환경. 그렇게 같으면서도 다른 두 환경의 남녀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여하튼 노승홍도 이 시대엔 아직 젊은 청년(정확히는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청소년이다.)이라 그런지 소녀의 고민에 그런대로 맞장구를 쳐준다. 

 “ 글쎄요. 뭐 솔직히 전 잘 모르겠네요. ” 

 하지만 소녀의 고민에 일개 교회 사찰집사 신분으로서 해결해줄수 있는 길이나 방법은 없어서일까. 그런식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노승홍의 모습. 일단 그의 말이 좀 더 이어지긴 했다. 

 “ 하지만 저도 뭐...여자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다면 대학도 나오고 또 좀 더 나 

  은 자기 인생이나 삶을 구현해보는 그런 길을 택하는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요. ” 

 “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달리 생각하세요. ” 

 그러나 대학을 가고싶은 의지와 달리 그것을 반대하는 부모님 뜻을 꺾기가 쉽지 않은지 소녀의 우울한 표정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난뒤의 일이지만 소녀가 부모님의 뜻을 끝내 꺾지는 못했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은행 직원으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승홍 입장에선 좀 씁쓸한 생각이 드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와 승홍은 사실상 동갑이었다. 승홍이 고등학교 2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가출을 했고 교회 사찰집사로 일한지 몇 달 지난 무렵에 소녀를 알게 되었으니 그때 고3 신분으로 대학을 갈것이냐 말것이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소녀를 만났다면 사실상 동갑이 아닌가. 허나 승홍은 ‘가출청소년’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나이를 여전히 두세살 정도 높여 말할 수밖에 없었을것이고 그러니 소녀 입장에선 그저 자신보다 몇 살 많은 사찰집사 아저씨 내지는 오빠 정도로만 알고 살았을터이니 그것이 노승홍에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게되는 일이긴 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겠습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 

  신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여 

  삐 여기신 뜻이 어디있겠습니까.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가 핍박받고 고통받는 백성 

  들.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리시어 말씀으로 구원받는 길을 

  이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꿀이 흐르는 땅인 예루살렘 

  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주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 

  과꿀이 흐르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그 아늑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심 

  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신앙을 회복하게 하신 구원의 하나님 뜻을 우린 알아야합 

  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지난 한세대 수도없는 환난과 핍박을 받았 

  던 우리 백성들은 이 민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있 

  습니까 ? 성경말씀을 돌아보았습니까 ?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서 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며 말씀대로 실천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은총을 받아 부흥 

  하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실천하며 이 세상 

  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오늘 여기 이 자리예 계신 대전 OO교회 성도들께선 깨달 

  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 아멘 !!! ”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 대전 OO교회 예배당에 나와 

  서 지난 일주일 잘못된 시간 회개의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품으로 회복되길 바 

  라며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성도들을 어여삐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말 

  씀대로 실천할때만이 우리의 삶이 부흥케 되고 우리의 신앙이 풍족하게 됨을 깨달 

  아 다시 지난 일주일 세상속에서도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실천하는 건전 

  한 그리스도인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스라엘 백성 구원하신 하나님. 천지만물 

  을 창조하고 구원하신 하나님. 우리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며 실천하는 삶 

  을 살아갈 때 하나님 사랑을 세상에서 몸소 실천할 때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 

  게 해주시옵소서.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살아가는 일주일동안에도 하나님 말 

  씀을 잃지않고 순종하며 죄악에 빠지지 않고 사탄에 미혹되지 않는 그런 건전한  

  대전 OO교회 성도들이 되도록 하나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 

 “ 아멘~~~!!! ” 

 주일 예배가 끝나고 그 뒷정리 작업을 마친 노승홍이 장태수 목사의 방으로 들어왔다. 교회 사찰집사 업무와 관련 상의하거나 궁금한일이 있나보다 하고 장태수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성경책을 들고있지 않은 노승홍의 질문이 좀 엉뚱하였다. 

 “ 목사님, 하나님께선 오직 이스라엘 백성만의 하나님이십니까 ? ” 

 “ 옛 ? ” 

 좀 엉뚱한 질문이라 장태수 목사가 당황했는데 순간 바라본 노승홍의 눈빛은 뭔가 혼란스러움과 의문의 열정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허나 이따금씩 있을법한 이런저런 성도의 엉뚱한 질문중 하나정도로 생각하고 장태수 목사는 적당히 받아넘기려 하였다. 

 “ 노승홍 집사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뜻은 성경에 다 나와있습 

  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어보도록 하세요. ” 

 그렇게 적당히 타일러서 돌려보내려 했는데 노승홍의 질문은 한층 더 도전적이 되어 있었다. 

 “ 그럼 대체 우리 민족의 하나님은 어디 계신것입니까 ? 우리민족, 우리 백성의 하 

  나님은 어디 계신것이냐구요 ? ” 

 “ 노승홍 집사... ” 

 어쨌든 교회 수위나 청소부일을 하고있는 사찰집사니만큼 ‘집사’라고 호칭할 수밖에 없고 허나 장태수는 집사라기 보단 좀 골치아픈 성도가 하나 생긴 것 같은 기분으로 이렇게 대꾸하였다. 

 “ 노집사. 하나님께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 

 “ 헌데 어째서 그 구원의 은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내리냐 이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에게...대한민국 백성들에게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 

 ”  

 “ 노승홍 집사... ” 

 거 참. 이런 사람을 집사라고 불러도 되는걸까. 장태수 목사가 순간 혼란스러워질 지경이기 까지 한데, 사뭇 따져드는 태도까지 보이는 노승홍을 일단 장태수는 적당한 권면으로 타일러야겠다는 그 정도 생각만 하는 중이었다. 

 “ 하나님께선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는데 

  그 귀하고 천한 높낮이가 따로 있을수가 없지요. 하나님께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 

  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 

 “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만 사랑하시지 이 민족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묻는 질문입니다. ” 

 저 인간이...‘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이냐 ?’는 반발심마저 생기고 있는 장태수 목사. 노승홍이란 인간 알고보니 생각보다 골치아픈 인간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 지경이고, 사실 주일은 오히려 교회로선 바쁜 시간이기 때문에 한가하게 이런 복잡한 신앙담론을 나눌 시간은 아닌지라 적당히 노승홍에게 할 일을 주어서 목사실에서 내보내긴 했다. 허나 뭔가 불길한 예감이라도 다가오는것일까. 오늘따라 도전적이기까지 했던 노승홍의 물음에 장태수 목사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비가 몹시도 쏟아지는 어느 장마철일 것이다. 헌데 하루는 노승홍이 그 비오는 날 교회앞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교회 앞에는 이런저런 풀밭이 있고 저만치는 농사짓는 이들이 일구는 논밭이 있기도 한데, 비가 많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논밭쪽에는 물꼬도 터야하고 작물에 피해가 가면 안되겠기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농부의 일손도 보이고 있다. 헌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노승홍이 장태수 목사의 눈에 띄었다. 잠시 그에게 다가와보았다. 

 “ 뭘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신가요 노집사 ? ” 

 “ 목사님. ” 

 그런 장태수 목사를 진지하게 불러본 노승홍. 헌데 그가 또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 참으로 신비한 천지만물의 소생원리를 지켜보고 있었나이다. ” 

 “ 예에 ? ” 

 이건 또 갑자기 무슨소린가. 좀 엉뚱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장태수가 그런 눈빛으로 노승홍을 바라보고 있는데 승홍의 말은 일단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 참으로 신비한 천지만물의 섭리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작물은 가뭄 

  이 들어 말라서 타죽게 됩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만물은 소생하게 되 

  지요. 만물이 소생하는 이치도 말라죽어 타죽는 이치도 알고보면 거기에 있더군요. 

 ”  

 “ 노집사... ” 

 “ 그런 천지(天地)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로인해 만물이 생성되는...어쩌면 인간과 인간의 사랑도 그와같지 않을지... ” 

 “ 예에 ? ” 

 여전히 황당한 듯 노승홍을 바라보고 있는 장태수 목사. 승홍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인간과 인간의 사랑나눔도 생각해보면 하늘에서 비를 내려 땅을 사랑케 하는 그  

  천지자연의 이치와 같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 

  만물이 소생하게 하듯...인간과 인간의 사랑나눔도 결국...생명이 탄생하는 이치로 

  이어지지 않습니까. ” 

 대체 무슨말을 하는것일까. 무엇보다 장태수 목사가 당혹스러운 듯 손을 내젓는다. 진지하게 가로젓는다. 

 “ 노승홍 선생... ” 

 아무래도 이런 사람을 ‘집사’로 불러줘선 곤란하다는 판단이라도 든 것일까. 정색을 한 장태수의 노승홍에 대한 호칭은 이미 ‘집사’가 아닌 ‘선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이제 스무살을 갓 넘은 노승홍이기도 하지만, 그러니 장태수가 노승홍을 사찰집사로 거둔지도 시간이 제법 지났다고 봐야하는데 태수가 아직 승홍의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고 있지 못한지 여하튼 ‘선생’이라고 부르고 있는 장태수 목사. 노승홍을 이렇게 타이르려 든다. 

 “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게 아닙니다. ” 

 “ 목사님... ” 

 순간 어떤 반발심이라도 든 것인지 편치 않은 목소리로 그를 부른 노승홍. 하늘에서 비를 내려 만물이 생성하게 하는 이치가 마치 남녀간의 사랑나눔뒤에 생명이 잉태되는 이치같다고 말한 그 뒤에 나온 이야기다. 장태수 목사가 거듭 경고하듯 일깨워주려한다. 

 “ 우리 하나님 사랑을 그렇게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그런게 아니래 

  두요. 성경을 다시한번 잘 읽어보시고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은 자신과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일까. 노승홍이 교회 사찰집사를 그만두고 그곳을 떠난 것이 대략 3년뒤의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듯이 우리들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사랑해주실것이라는식의 설교를 들으며 ‘그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사랑하신다는 뜻이냐 ? 그렇다면 우리 한민족의 하나님은(또는 구원자는) 어디계시냐 ?’는 식의 의문을 품었던 노승홍. 비가 내려 만물이 생성하는 이치를 보며 오묘한 생명탄생의 이치를 보는것과 같다는 비유를 하기도 했던 그 노승홍은 3년만에 교회를 떠난 것이다.
 

 한참동안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경기 남부의 사찰에 들어가게 된 것이 그로부터 얼마뒤의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3년정도 교회 사찰집사로 있었지만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은 자신과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음인지 그곳을 떠난 노승홍이 이번엔 출가(出家)를 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가출한지 시간이 꽤 지난 사람의 몸으로써 여기저기를 떠돌며 생계수단을 마련할만한 직업을 찾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고 그러면서 속세(俗世)의 삶에 어떤 염증이나 회의를 느끼기라도 한것인지 그러고보면 만 17세의 나이에 가출을 한 노승홍이 나이 스무살을 넘겨서는 그렇게 ‘중’이 될 생각을 하게된 것이다. 

 경기도 남부의 한 이름난 사찰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사실 요즘은 불교도 승가대학이다 뭐다 해서 스님이 되겠다는 이들의 출가(出家)절차도 꽤나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때(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냥 스님이 될 생각이 있다고만 한다면 삭발을 하는등 일정한 절차를 밟아서 스님이 되게 해주는 듯 했다. 그렇게 출가를 하게된 노승홍. 그곳의 주지스님이 직접 승홍의 법명(法名)을 지어주었다. 그가 처음 받게된 법호(法號)는 ‘대룡(大龍)’이었다.  

 주지스님은 마치 노승홍의 관상이라도 보는 듯 한참을 뚫어져라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그와같은 호를 지어준것인데 이제 갓 출가한 스님에게 내려주는 호 치고는 좀 요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호다. 가령 아직 그저그런 평범한(?) 스님 신분일때는 주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룡스님’, ‘여보게 대룡’ 뭐 이런식으로 부르며 교류할수 있겠지만 만약 정말 나중에 ‘큰 스님’이라도 되었을 때 ‘대룡법사’ 혹은 ‘대룡선사’ 괜시리 느낌이 좀 묘하긴 하다. 아니면 주지스님에게 나름 정말 어떤 예지력이나 사주관상이라도 보는 능력이 좀 있어 노승홍에게서 뭔가 범상찮은 기운이라도 느꼈던것인지. 여하튼 그 주지스님이 노승홍에게 처음 내려준 법호가 ‘대룡(大龍)’인 셈이다. 

 노승홍보다 다섯 살 많고 출가한지 이미 몇 년 된 진우(眞友)라는 젊은 스님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 일종의 선배이자 사형(師兄)격이라고나 할까. 주지스님은 진우에게 일러 대룡에게 이런저런 것을 많이 잘 가르쳐주라 지시하였다. 

 “ 여기 앉으시지요 대룡스님. ” 

 같은 방을 쓰게된 사제(師弟)를 정중하게 그와같이 부르며 방으로 안내하였다. 처음엔 그저 이런저런 가벼운 담소 정도만 나누다 한번은 진우가 대룡에게 이렇게 말했다. 

 “ 붓글씨 배워보신적 있으십니까 ? 서예 말입니다. ” 

 “ 글쎄요 뭐...학교다닐 때 미술시간에 배운적은 좀 있는데... ” 

 “ 하하하... ” 

 붓글씨라고 해봤자 학교다닐 때 미술시간에 배운게 고작이라. 괜시리 웃기기라도 한지 진우는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진우가 대룡에게 일러주었다. 

 “ 제가 스님께 서예를 좀 가르쳐 드리지요.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제가 어쨌든 큰 

  스님께 먼저 배운것들이 있으니까요. ” 

 “ 스님이...서예도 배워야 하나요 ? ” 

 대룡. 아니 노승홍도 일반인이던 시절에는 불교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지 특히 출가한 스님들의 생활이나 절간생활에 대해선 모르는게 많은 듯 했다. 그래서 더더욱 의아해져서 물었고 그러자 진우가 ‘그 뭐 당연한걸 묻느냐’는 듯 이렇게 답한다. 

 “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많이 있지요. 가령 경전의 글귀 같은 것을 써서 신도들한 

  테 주거나 그런일이 있을수도 있고, 얼마전 큰 스님께서 스님께 법호를 내리실때도 

  그리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쨌든 이래저래 스님으로 사찰생활을 하다보면 붓글씨 

  쓸일은 많아요. ” 

 그래서 진우에게서 붓글씨를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상 아주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간 셈인데 대룡이 생각보다 붓글씨 쓰는 솜씨를 잘 익혀갔다. 진우는 물론 주지스님도 기특하다는 듯 여러번 칭찬을 해 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루는 진우가 뭔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진우는 오늘 큰스님 심부름으로 마을에 좀 내려갔었는데 내려간 일이 뜻대로 잘 안 된것일까. 어쨌든 큰스님께 내려간 일에 대한 보고는 해야할텐데 주지스님의 방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고 자기방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의아한 대룡이 물었다. 

 “ 아니, 사형. 주지스님께 안 들어가 보십니까 ? ” 

 대룡도 진우가 오늘 큰스님 심부름으로 마을에 내려갔다 온 일은 알고 있을터. 갔다 왔으니 심부름 용건이 잘 되었는지 보고를 하는게 당연한 상식일텐데 안 들어가고 이러는 것이다. 진우는 그저 불안한 표정으로 한숨만 쉬고 있었다. 

 “ 모르는 소리 말게나. ” 

 “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 마을에 내려갔던일이 잘 안된건가요 ? ” 

 “ 일이 다 어그러졌어... ” 

 “ 사형... ” 

 대룡도 걱정이 되는 듯 진우를 그와같이 부르긴 했는데 진우는 여전히 큰스님 방으론 들어가지 않고 안절부절하였다. 보다못한 대룡이 사형인 진우를 설득해야할 판이다. 

 “ 그러지말고 들어가 보세요 사형.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고 용 

  서를 비시던가요. ” 

 아무렴 절의 큰스님이 일이 잘못되어 화가 났기로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겠는가. 대충 그런 심정으로 대룡이 거듭 진우를 설득해 보는데 진우는 그저 손을 내젓는다. 

 “ 자넨 모르는소리 말게나. ” 

 “ 사형... ” 

 “ 알고보면 우리 큰스님 저승차사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인걸 이제 곧 알게 될게야.  

 ”  

 “ 예에 ? ” 

 아직도 뭔가 상황파악이 안 되는 듯 대룡은 의아하기만 했고 ‘뭣을 하고 있는게야 !!! 내려간 일에 대해 당장 보고올리지 않고 !!!’ 하는 쩌렁쩌렁한 큰스님의 호통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기는 했다. 진우가 마을에 심부름 내려간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도 안 하고 이러고 있는것에 제대로 역정이 난듯하다. 하는수없이 진우는 한숨을 다시금 푹 쉬며 방을 나왔고 걱정된 대룡이 주지스님 방으로 가는 진우를 따라가보았다. 헌데 진우가 방문을 빼곰히 열고 들어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대충 눈치를 보고 있는 듯 했는데 갑자기 뭔가가 ‘슝~~~’하고 날아오는게 보였다. 

 “ 야 !!! 이 XXX아 !!! 니가 사람 XX냐, 소 XX냐 !!! 이 밥만 처먹는 후례자식X아 

  !!! ” 

 저게 도 닦는 큰 스님의 언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쌍욕이 쩌렁쩌렁 안에서 터져나왔다. 스님이라기 보단 말단 종업원을 야단치는듯한 어느어느 중소업체의 중년의 사장같은 그런 말투다. 그리고는 여전히 분이 안풀리는지 방에서 뛰쳐나와 진우의 따귀까지 후려갈겼다. 무슨일이 어떻게 된건지 아직 출가한지 얼마 안 되는 대룡으로선 상황파악이 제대로 될수 없었지만 일단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큰스님을 일단 만류하려 들었다. 허나 큰스님은 그런 대룡에게까지 욕을 퍼부었다. 

 “ 넌 또 뭐냐 !!! 이 XXX야 !!!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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