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대도사 일대기
소싯적에 수호지 매니아였었다고 들었다. 허나 그 시기가 구체적으로 언제쯤인지가 분명치 않은데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교 5,6학년때로까지 올라가는건 너무 무리인 것 같고 그렇다고 고등학교때로 잡는것도 시기적으로 좀 늦지 않을까 싶어 중학생때 정도가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싶어 이때를 시기로 설정하기로 했다.
헌데 물론 삼국지니 수호지니 하는 중국고전소설들이 오래전부터 우리에게도 전해져 내려오는 친숙한 작품들이니 그런 작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시골의 촌부들도 설사 직접 접해보진 않았더라도 그런 이야기들은 꽤 오래전부터 한두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허나 서울이나 부산같은 대도시 지역이라면 모를까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사이 충북 농촌지역에서 그런 소설을 직접 구해보는 것은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대전이나 청주 정도쪽에 친척이나 아버지 친구 혹은 그런식의 지인이 사는 상황이었다면 그런대로 무난한 설정이 되지 않을까 ?
노사장은 당사자는 독자(獨子)고 외동아들이지만 그 윗대는 총 6남매다. 아버지가 그중 셋째로 위로 형님과 누님이 각기 한분씩 계시고 아래로는 여동생 두명과 남동생 한명이 더 있어 노사장도 사촌형제는 대략 스무명가까이 된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5대 8촌’식 가족문화가 대체로 유지되던 시절이니 노사장은 젊은 시절까지만 해도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 때 그 많은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곤 하는 풍경을 겪으며 자랐고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 집안 경,조사도 챙기고 종종 인사나 왕래가 있는 그런식으로 살아왔다. 다만 이 무렵엔 사촌들은 대개 대전이나 청주 그 외 이런저런 충남,북의 농촌이나 도시지역에 제각기 흩어져 살고 있을때다. 아버지에겐 큰누님이 되시고 자신에겐 고모가 되는 6남매중 첫째였던 이에게 슬하에 아들이 둘 있다. 물론 노사장에겐 사촌형님들이 되고 노사장이 50대에 접어들었을 때 이미 나이 60에 이른 사람들이다.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명절때는 물론 집안 경조사때 왕래가 종종 있는 그런 사이였으며 당연히 노사장이 딸 넷을 본뒤 아들이 없자 막내로 양자를 하나 들인 사실을 알고 있다. 허나 아무래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선 각자 생계유지에 바빠 사촌동생네 양자로 들인 아이까지 굳이 신경쓰거나 할 겨를이나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러다 하루는 그 두 고종사촌형님이 작심한 듯 노사장의 집을 찾았다. 그래도 이따금씩은 있는 사촌형님들의 방문이니 그리 놀라거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명절때도 아닌데 보이는 선물 꾸러미가 노사장을 좀 놀라고 당혹스럽게 했다.
“ 아니, 형님들 ? 갑자기 그건 뭡니까 ? ”
“ 일단 승홍이라고 했던가...그...자네 아들이나 잠깐 오라고 하게. ”
“ 갑자기 승홍이는 왜요 ? ”
“ 왜는...실은 우리가 늘 미안했었어. 자네가 어쨌든 피치못한 사정으로 그리 양자를
들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어쨌든 우리도 그 아이에게 5촌당숙뻘인데 별로 신경도
써주지 않고 살았던게 늘상 마음에 걸리더군. ”
“ 허허...형님들도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렇게 가끔씩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게
다 신경써주시는게 되는거죠 뭘. ”
“ 어서 승홍이나 오라고 하게. ”
그렇게 해서 불려온 노승홍. 어느덧 중학생으로 의젓해진 그는 당숙뻘인 아버지의 고종사촌 형님들께 정중하게 큰절을 올린다. 그러자 두 당숙어른은 준비해온 선물꾸러미를 승홍이에게 내준다.
“ 승홍이 너 이거 받아라. ”
“ 아니, 형님. 승홍이한테 갑자기 이게 다 뭡니까 ? ”
선물꾸러미를 풀기 전에는 그 내용을 알수 없으니 그야말로 ‘뭘 이렇게 많이 사오셨습니까 ?’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부피이긴 한데 일단 풀러본안에서 나온 것은 책이었다. 두 당숙어른은 이렇게 설명을 붙인다.
“ 사실...승홍이가 어쨌든 이제 중학생이기도 하니...무슨 선물을 어떻게 해주는게 좋
을지 많이 망설였어. 여하튼 이제 어린아이도 아니고 하니...그러다 책을 한번 선물
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 생각을 했거든. ”
“ 그...뭐지 삼국지하고 서유기...중국 4대기서라고 있지 않은가. ”
“ 삼국지,수호지,서유기...뭐 대충 그렇지 않던가요 ? ”
(* 정확하게 중국 4대 기서는 ‘삼국지연의’,‘수호지’,‘서유기’,‘서상기(금병매)’다.) 허나 요즘도 어느정도 학식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도 종종 헷갈리는게 이 ‘중국 4대기서’이니 이 시대 그냥 나이만 많은 60대 어른들이 4대기서를 혼동하는 것은 무리는 아닐터이고 여하튼 이들은 삼국지보다는 수호지를 택해 노승홍에게 선물을 한 셈이다.) 삼국지가 아닌 수호지를 굳이 택한 이유를 당숙어른 한분이 이렇게 설명한다.
“ 원래 내 어릴 때 집안 어른들께 듣기로 젊을 때 삼국지는 별로 읽으면 안 좋은 책
이라고 들었어. 너무 권모술수나 이런게 판을 쳐서 어린아이들에게 별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하시더군. 그러나 수호지는 의협심이나 이런 것을 기를수 있
는 좋은책이라고 해서 삼국지대신 수호지를 택해 우리 승홍이 선물로 주려고 사왔
지. ”
헌데 사실 이런식의 속설은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더 많다. (* 정확히 중국에서 내려오는 속설은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마라’다. - 사실 ‘수호지’가 되려 범죄미화나 이런 문제 때문에 요즘의 잣대에선 아직 자아나 가치관이 여물지 않고 올바른 판단력이 생기기 전에는 읽으면 안 좋은 책에 속한다.) 어찌되었거나 노승홍에게 당숙어른뻘 되는 친척어른들이 선물로 사준 것은 ‘삼국지연의’가 아니고 수호지다. 어쨌거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양자까지 들였다는 그런 사촌동생네 그런 집의 아들에게 나름 친척어른으로서의 애틋한 감정을 담아 전한 선물이라고나 할까. 그때까지 아직 삼국지니 초한지니 수호지니 이런것들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노승홍은 그렇게 친척어른이 주신 선물을 감사히 받은 것이다.
헌데 막상 읽어보니 수호지가 노승홍과 코드가 맞았던것일까. 사실 처음엔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까지 한 선물이었는데 막상 수호지를 처음 접한 승홍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사실 전체적인 스토리 맥락을 보면 수호지는 중국 북송 인종때가 배경으로 어떤 이유로 천상의 36 천강성과 72이 지살성 소위 그런 ‘108성’이 그곳을 탈출 빠져나와 이 생에서 호걸로 각기의 생을 살아가다 소위 ‘양산박 108 호걸’로 조우하게 되는 그런 줄거리다. 한마디로 전생에 108 신령이었지만 이생에선 호걸로 저마다의 생을 살다가 다음생에 다시 천상의 신령으로 복귀하게 되는 그런식의 스토리라고나 할까. 대략 불교식 인과응보나 윤회론과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수호지를 분석하는 이들은 그보다 ‘도교(道敎)’의 영향을 받은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한다. (* 사실 평행우주 이론과도 소름끼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
다만 그런 시대적 배경 같은 것을 담은 해설서나 이런 것은 이 시대엔 잘 없었을 것이고 – 기억에 삼국지연의만 해도 대략 80년대 출간된 책에서부터나 종종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시대적 배경이나 해설 이런 것을 덧붙여 출간하곤 했다. - 따라서 노승홍은 그런 시대적,종교적 배경이나 이해없이 일단은 무비판적으로 수호지를 접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소설과 현실이 구분이 가능한 사춘기때 이 소설을 처음 접한게 다행이라고 봐야하는것일까. 승홍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수호지의 매력에 푹 빠져든 듯 하다.
부득이하게 사람을 죽이고 출가(出家)를 하게 되었으나 막상 그렇게 시작한 절간 생활도 맞지 않았음인지 그곳에서 오만 X판을 치다 쫏겨나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하게되는 노지심이란 땡중 이야기, 소위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았다는 무송이라는 인물, 고위관료의 재물을 운반하는 심부름을 하던 도중 사전 치밀하계 계획된 7인조 도적단을 만나 모조리 털리게 되는 양지라는 참 운수나쁜 무관(武官) 이야기 등. 대충 그런 인물들의 일화에 매료되어 갔다.
그래도 중학생 정도면 소설과 현실 정도는 어느정도 구분할줄 아는 판단력은 있다고 봐야 할텐데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력이 서기는 아직 부족한 나이라고 봐야할까. - 이때보단 이후의 일이지만 이소룡,성룡 영화를 보며 무작정 따라하는 사춘기 소년들이 많았던 70년대나 또 지금도 소위 ‘중2병’ 어쩌구 하는 말이 있는것처럼. - 사실 삼국지와는 달리 수호지는 가치관의 혼돈을 느끼게 하는 일화가 생각보다 많다. 가령 불가피하게 출가의 길을 택했으나 막상 그렇게 시작한 절간 생활도 맞지 않아 떠나게 된 노지심 같은 인물의 정서나 자아는 일정부분 이해해줄수 있는 측면이 없지않아 있다. 또한 부패한 고위관료의 재물을 운반하는 심부름을 하는 양지 일행의 재물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여 터는 ‘도적질’을 감행한 7인조의 이야기도 그런대로 ‘부패한 탐관오리’를 응징하게 하는 이야기로 이해해 줄수도 있다. - 하지만 그 도적떼가 그렇게 턴 부패한 재물을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들에게 나눠준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로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날벼락까지 맞게 된 인물은 부패한 송나라 고위관료도 아닌 양지라는 임무상 부득이하게 심부름을 할 수밖에 없는 하급무관이다. 또한 수호지를 읽어보지 않았던 이들도 한두번은 들어봤음직한 일화인 소위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장사 무송의 경우에도 알고보면 17명이나 되는 사람을 연쇄살인하게 되는 인물이다. 물론 맥락상 부당하게 자신을 모함한 사람과 그 집안을 몰살시킨 이야기긴 하지만 실제 자신의 모함을 주도한 무슨 장몽방이니 장단련이니 또는 그들의 명을 받아 자신을 살해하려 한 자객들을 해치운 것 까지야 그런대로 이해해줄수 있지만 죄없는 하인들이나 심지어 나이어린 처자까지 살해한 것이 과연 옹호해줄수 있는 일일까.
노승홍이 이때 수호지를 읽어봤다면 충분히 이런 고민을 해봤음직하다. ‘악을 몰아내기 위해 더 큰 악을 부르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 노지심이나 양지를 턴 도적떼까지는 해당사항이 된다고 할수 없어도 무송의 저와같은 일화는 한번쯤 그런 고뇌와 고민에 빠지게 하는 에피소드임에 틀림이없다.
허나 아직 노승홍은 사춘기 소년이라면 소년이다. 아직 50년대 후반이니 무슨 홍콩영화나 이소룡,성룡 보면서 열광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고, 따라서 노승홍은 그냥 소설 수호지속에 나오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이따금 학교 운동장에서 이런저런 무술행위를 하는 시늉을 해 보았다. 그러면 아무래도 영문을 알 수 없는 학교 친구들이 달려올 수밖에 없다.
“ 야, 노승홍. 너 거기서 뭐하냐 ? ”
허나 노승홍의 복잡한 심리를 알길없는 친구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고 의아하게 그렇게 말할뿐. 자신의 머릿속 고뇌를 어찌 이야기를 해야할지 말하기 쉽지 않은 노승홍은 따라서 마치 선문답 같은 이야기만을 꺼내놓을 뿐이다.
“ 너희들 그런거 어떻게 생각하냐 ? ”
“ 뭘 ? ”
“ 차라리 노지심같은 땡중처럼 천하를 유유자적하며 떠돌아다닌다던가... ”
“ 무슨 소리야 그게 갑자기 ? ”
사실 어쨌든 시골 중학교 학생들이다. 삼국지니 수호지니 하는 중국 고전소설을 이야기는 한두번 들어봤을지 몰라도 그런 책을 직접 구해본다거나 하긴 쉽지 않을 환경의 아이들. 솔직히 집에 하루 삼시세끼 풀칠하기도 쉽지 않은 그런 환경의 아이들이 대다수일텐데 하물며 노승홍의 경우처럼 누가 특별히 신경이라도 써줘서 선물해주지 않는한 단행본으로 무려 열권 가까운 분량이 되는 그런 장편의 대하소설을 특별히 읽어볼수 있을만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수호지를 읽어본 소년 노승홍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의 대화엔 어느정도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노승홍의 혼자만의 깊은 고뇌는 더해질뿐이다.
어떤 몽환적 공간을 노승홍이 걷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가고 있는걸까. 무슨 들판을 하염없이 걷고 있기도 하고 수풀을 헤치며 지나가거나 심지어 어떨땐 바닷가 모래사장 같은곳을 거닐고 있기도 했다. 헌데 이따금씩 그렇게 거닐다 보면 가끔씩 팔,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당황할때도 있고 여하튼 그런식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는 노승홍. 헌데 자신이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깎고 승복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때였다.
“ 허헉...뭐...뭐지 이건 ? ”
헌데 이번엔 장면이 바뀌어 갑자기 자신이 웬 한떼의 무리를 이끌고 어떤 짐을 운반하고 있었다. 헌데 그때 갑자기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일행들. 무슨 요술을 썼는지 도술을 썼는지 일행과 함께 운반하던 짐을 모조리 갖고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그들을 잡으려고 뒤쫒아가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어 이번엔 자신이 웬 부잣집에 쳐들어가 그곳의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꿈까지 꾸었다. 그러고보면 수호지의 노지심+양지+무송의 일화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내용이라고나 할까. 이 뒤죽박죽 헷갈리는 이야기 한가운데서 자신을 주체못하고 있을때다.
“ 노승홍...노승홍 !!! 학교 안가 ? 그만 일어나야지 !!! ”
그렇게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넷째누나 승미가 자신을 깨우기 위해 방에 들어와 있었다. 확실히 날이 밝아 있었고 어서 아침먹고 학교가라고 아직 자는듯한 자신을 누나가 방에 들어와 깨운둣 하다. 그러고보니 방 저쪽에는 자신이 간밤에 읽다만 수호지 책 한권이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수호지속 오만가지 에피소드가 그야말로 짬뽕이 된 꿈을 꾸더라니. 좀 허탈하기도 하고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어서 승홍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노승홍의 사춘기 시절도 지나가고 있었다. 딸이 이미 넷이나 있는 집안에 막내아들로 입양이 된 노승홍. 열 살 가까이 터울이 지는 큰누나 승자와 둘째누나 승옥은 그 사이 이미 시집을 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었고, 다섯 살 터울의 셋째누나 승희는 학교를 졸업한뒤 현재 읍내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세 살터울의 승미가 현재 고등학생이다. 그러고보면 노사장에게도 딸들도 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킨다는 정도의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충 고등학교까지만 나온뒤 직장생활 몇 년 좀 하면서 돈 좀 벌다가 시집을 보내는게 무난할 것 같다는 딸에 대해서는 그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는 이 시대의 ‘보통어른’임에 분명하다.
여하튼 그 사이 첫째와 둘째는 이미 시집을 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셋째는 직장인 넷째가 아직 고등학생인 상태에서 노사장은 막내이며 입양된 아들인 노승홍의 대학보내는 문제에 신경을 곤두서기 시작할때다. 헌데 그때 하루는 읍내에서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승희가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왔다. 승희는 이때 읍내 직장에서 집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기는 거리가 좀 멀어 읍내에 아는 선배언니 집에서 기거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두번씩 집에 들어오곤 하는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헌데 그런 승희에게 두 살 터울의 막내동생 승미가 하루는 좀 작정한 듯 불만을 털어놓고 있었다.
“ 언니, 나 솔직히 마음 같아선...그래도 나도 대학까지는 가고 싶은데... ”
자녀를 대학보내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확실히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는 문제인것만은 달라진게 없고 특히 이 시절은 그 부담이 더 할 수밖에 없으니 사람들 가치관이나 시대 분위기도 기왕이면 그래도 가급적 아들은 대학을 보내고 딸은 그런 오빠나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도록 하는게 이 시대 보편적인 어른들의 자녀들 키우는 방식이다. 사실 이 정도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편이고 더 열악하고 형제도 8남매,9남매쯤 되어 그 많은 아이들 일일이 다 학교보낼 형편이 안 되는 집은 똑똑한 아이 한두명 정도에만 올인을 해서 그 아이만이라도 대학에 들어가도록 오만 지극정성을 다 펴는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사실 가난한데 자식만 많은 그런 집안이라면 한두명이라도 어떻게 학비를 지원해줄수가 있어 대학에 보내줄수 있는 사정이라도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한다. 진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은 정말 아이들을 중학교나 고등학교 딸의 경우에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상태에서 그냥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하는 경우가 아직은 더 많았을테니 그것도 이런 시골마을에서 그것도 딸이 아무리 잘사는 집이라도 ‘대학을 보내달라’는 바램을 내비친다면 그 자체가 사치일수가 있다. 허나 적어도 ‘대학’이라는 고등학교 보다 상급학교 개념의 교육시설이 있고 그 대학을 나와야 더 크게 출세할수 있다는 개념은 이제 슬슬 시작하는 시대. 적어도 공부나 출세에 대한 야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여자아이라면 ‘대학을 가고 싶다’는 바램이나 생각 안 생길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재 고등학생인 넷째달 승미가 직장생활을 하는 언니 승희에게 대놓고 이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아직 승홍이 고등학교까지 들어가진 않았을때고 중3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러니까 날이 한창 추운 겨울날이었다. 셋째 승희가 동생 승미의 방에서 함께 군고구마라도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승희 입장에선 동생의 속내라도 한번 허심탄회하게 들어보고 싶어서일까. 이렇게 묻는다.
“ 승미야, 그러지말고 우리끼리 있을 때 언니한테 솔직하게 말해볼래 ? ”
“ 뭘 ? ”
그러고보면 승미가 바로 지금 고3 아닌가. 허나 노사장이 적어도 딸들을 고등학교에까지 보내줄 생각은 있어도 대학까진 보내줄 생각은 없어 보이는 듯.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지난 1년여의 시간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지금 승미는 고등학교 졸업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 아버지의 뜻이 워낙 완고했으니 대학진학의 꿈을 완전히 접은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런 동생의 생각이나 한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에 언니 승희가 이렇게 물은 것이다. 결국 승미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 난 사실...그래도 기왕이면 대학 나와서 좀 더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하고... ”
“ ...... ”
“ 그러면서 서울에서 대학 다니면서 좀 더 신문물,신문명 체험도 더 해보고...그리
고 기왕이면 아무리 여자라도...혹시 출세할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런쪽으로도 나가
보고 싶고 그랬었어. 그런데... ”
사실 이때쯤엔 지방에도 대학은 생기기 시작하는 시절이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을때고 무엇보다 수준이나 품질에 있어 서울에 있는 대학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시대일 것이다. 게다가 굳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승미도 학창시절 공부는 어느정도 했다는 이야기도 되는 셈인데, 여하튼 대학에 가고픈 의지가 있었고 나름 야심도 있던 그런 승미였다면 그래서 더더욱 –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는것과 별개 문제로 – 악착같이 공부했을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막상 그렇게 대학 진학의 꿈이 물거품처럼 좌절되고 말았으니 승미의 지금 그 심란함과 상실감은 어느정도일까. 승희가 그런 동생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그녀를 한번 안아주기도 하고 손을 한번 잡아보며 말을 이어간다.
“ 승미야...사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
“ ??? ”
“ 사실 나도 꿈이 좀 있긴 했어. ”
“ 언니가 ? ”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진 못해서일까. 승미 입장에서 셋째 언니 승희는 그저 큰언니나 둘째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뜻대로 고등학교 정도만 졸업한뒤 직장생활 한 몇 년 좀 하다가 시집가는 그런 코스를 자연스럽게 밟게될줄만 알았는데, 그런 언니에게도 다른 생각이 있었다니. 좀 뜻밖이고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승희도 승희 나름대로 어떤 아쉬운 비애가 있는 듯 눈물을 살짝 훔치고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 사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나중에 한번 역사 선생님이 되어보고 싶다. 그
생각을 한적이 있었어. ”
“ 언니가 ? ”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아직까지 들어본적 없고, 여하튼 자신과 두 살 터울인 승희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는 이제 2년정도가 지났는데 그런 승희에게 원래 그런 생각이 있었다니, 무엇보다 그러면서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아버지뜻에 순종했다는게 더더욱 이해가 안간다는듯한 승미의 표정. 일단 승희의 말이 이어진다.
“ 그냥 나...학교다닐때부터...그러니까 결국 중,고등학교때겠지만...역사나 세계사 이
런게 참 흥미진진했었어. 그래서 나중에 학교 졸업한뒤 국사선생 같은걸 해보면 어
떨까 그 생각을 했었는데... ”
“ ...... ”
“ 하지만 아버지가 막내로 저렇게 아들까지 굳이 입양하셔서...그래서 승홍이한테 모
든 기대를 걸고 전력을 다 하시는데...그런 아버지에게 폐가 되면 안되겠구나. 내가
이 집안에 폐가 되어선...아버지의 뜻을 거슬러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그래서
아쉽지만 자연스럽게 포기를 했던거야. ”
“ 이해가 안가 정말. ”
아무리 그래도 막내아들을 대학보내야 하기 때문에 위에 누나들이 희생을 해야한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가 안 가는 이 시대의 사고방식이긴 하다. 그러나 어쨌든 집안 대를 이어야 하기에 양자까지 들인 그런 노사장임을 생각해보면 그런 입양한 막내 승홍이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그런 막내아들에게 투자하는 모습. 그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의지를 꺾은 누나들의 모습. 승미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지만 승희가 그런 동생을 거듭 설득하려 든다.
“ 나도 참 내심 많이 가슴아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어. 하지만 그게 손귀한 우리 집안
에서 아들을 위해 딸들이 희생해야 하는게 그게 순리라면 순종하기로 결심한거야.
물론 그 결심 하는데...참 쉽지는 않았지...하지만 막상 포기하고 이렇게 직장생활
한 몇 년 더 하다가 시집갈 그 생각을 하니까... ”
그리고 지금은 읍내에 아는언니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승미.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년이 지났으면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는 볼수 없을텐데, 여하튼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승미다. 여하튼 중요한건 바로 그런 막내를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했다는게 승미의 말인 셈인데 그런 자신의 길과 생각을 보여주며 동생 승미에게도 자신과 같은 포기와 순응을 요구하는 언니의 모습.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안갈 이 시절의 풍경이지만 이 시대엔 흔히 볼 수 있는 한 장면이긴 하다. 울고있는 승미를 승희가 달래고 있다.
“ 어엇... ”
헌데 다 먹은 고구마라도 치우기 위해 쟁반을 들고 방에서 나오는데 좀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바로 문제의 막내 승홍이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것이다. 날도 한참 추운때니 밖에서 긴 시간 그러고 있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설마 일부러 자신들의 대화를 엿듣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 승미도 승희도 당황해서 일단 승홍에게 말을 건넨다.
“ 너...거기서 뭐해 ? ”
“ 아...아니에요 그냥...바람이나 좀 쐴까 하다가... ”
이 추운 겨울에 무슨 바람을 쐰다고 긴 시간 밖에 나와있나. 누가봐도 상식적으로 납득 안가는 변명이긴 하다. 헌데 일단 승홍은 무안하고 민망한지 피하듯이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리고 승희와 승미는 일단 다 먹은 고구마 쟁반은 치워야겠기에 부엌으로 향하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고등학교에 들어간 승홍이 1학년 과정을 한참 지내고 있을때다. 헌데 승홍에게 무슨 고민거리라도 생긴것일까. 그렇다고 승홍이 무슨 말썽을 피우거나 학업성적이 떨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종종 말없이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승홍이 원래 집안의 네 누나들하고도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었고 하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 누구도 그런 승홍의 심경변화를 눈치 못챈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하루는 저녁시간에 승홍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 승홍아...너 뭐해 ? ”
이때는 여행가방 같은것도 구하기 쉽진 않을터인데 어디서 구했는지 간단한 옷가지와 세면도구 이런 것을 챙길만한 가방을 어디서 구해 거기에 뭔가를 챙겨넣고 있는 것이다. 헌데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했던것일까. 그 모습을 바로 셋째누나 승희와 넷째누나 승미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누가봐도 학교에 갈 가방을 챙기는 그런 모습은 아니고 그래서 의아해서 승홍에게 묻는 승희와 승미. 난감한 가운데 승홍은 대충 변명을 해본다.
“ 아뇨...그...그게...친구들이랑 봄소풍을 함께 떠나기로 해서... ”
“ 지금이 6월인데 무슨 봄소풍이야 ? ”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 변명이지만 그런 여행을 간다면 사전에 미리 어른께 말씀드리고 가는 것이 이 시절의 상식이고 예절이다. 헌데 하루를 다녀온다는것인지 1박2일을 다녀온다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그런 여행을 간다면서 여태 부모님께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는것인가. 무엇보다 대충 짐싸는 분위기가 이미 하루,이틀 어디 놀러가는 짐 같아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누나들이 승홍을 앉게했다.
“ 승홍이 너 설마...집 나가려는거 아니지 ? ”
정곡을 찔렸음일까. 승홍은 당황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자기 속내를 말하려한다.
“ 어차피 누나들도 바라던 일 아니던가요 ? ”
“ 무...무슨소리야 그게 ? ”
사실 승홍의 네명의 누나들이 딱히 승홍을 괴롭힌다거나 구박하는 그런 것은 없었다. 허나 아무래도 단순히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입양되어온 아들이라서인지 그런 막내를 대하는 심기가 편치는 않았던것인지 승홍과 네명의 누나들의 관계는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었다. 그나마 열 살 가까이 터울지는 큰누나 승자와 둘째누나 승옥은 승홍이 이 집에 들어오고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순서대로 시집을 가서 함께 지내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었지만 셋째 승희와 넷째 승미는 여하튼 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 할때까지 그리고 승홍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지내온 것 아닌가. 허나 그러면서도 동생의 취미나 기호 혹은 고민이 어떤것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정도로 누나들과 동생의 사이는 먼 편이었다. 헌데 그러다 승홍이 정녕 셋째 승희와 넷째 승미가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는 대화의 시간을 가질 때 그 이야기를 엿듣기라도 한것인지. 혼자 남몰래 몇 달의 고민의 시간을 갖다가 이런 결심을 한 것인지. 승홍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 공연히 저 때문에 누나들한테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했어요. 그러니 제가 떠나면
되는거잖아요. 제가 모든걸 포기하고 떠날테니까 대신 누나들이 대학도 가시고 서
울 올라가 누리고 싶은것도 마음껏 누리시고 그러면서 사세요. 그간 폐끼쳐서 죄송
했어요. 그냥 제가 떠날께요. ”
“ 무...무슨소리야 그게 ? 서울은...누가 서울을 간다고 했다는거야 ? ”
사실 ‘서울에 가서 누리고픈 것 마음껏 누리며 즐기고 싶다’는 말은 넷째 승미는 한적이 있어도 셋째 승희는 한적이 없다. 허나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국사선생이 되고 싶은게 승희의 꿈이라면 그 의미 역시 별로 다르지는 않은 것 아닌가. 그래서 승홍은 자신 때문에 공연히 그것도 굳이 따지자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누이들이 고생하고 희생하는 것 같아 그로인한 미안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몇 달을 고민하다 한 가출의 결심. 누나들이 승홍을 일단 잡아보려 하지만 승홍의 뜻을 꺾기는 쉽지 않았다.
“ 그러지말고 승홍아 일단 앉아봐. 이건 정말 아닌거 같다. 그리고 이렇게 니가 갑
자기 집을 나가버리면 아버진 또 우릴 얼마나 책망하시겠니 ? 그러니 이래저래 그
건 아냐. 니가 나가면 우리가 아버지한테 혼나. 그러니 제발 그런 생각은 하지 말
아줘. ”
누나들의 말이 애원조가 되어있긴 했지만 사실 이런 태도도 좀 문제가 있긴 하다. 적어도 승홍의 가출을 만류하려는 ‘제1이유’가 ‘아버지한테 혼날까봐’서라지 않는가. 적어도 승희든 승미든 당황해서 동생의 가출을 말려보려고는 하지만 그런 동생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은 별로 없다는 방증이 된다. 물론 승홍의 성격이 쩨쩨하게 굳이 그런것까지 일일이 따지려는 성격은 아니지만 여하튼 누나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단 승홍 입장에서도 ‘오늘만 날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좀 허무하게 들켜버려 좌절하고 만 ‘1차 가출 시도’는 그쯤에서 마무리되고 만다. 허나 승홍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승홍은 결국 이 집을 떠나게 된다.
-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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