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대도사 일대기
“ 사람은...때리면 피가 나는걸까 ? ”
노승홍의 첫 고뇌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헌데 원래는 이진호란 친구가 승홍에게 ‘입양되어 온 아이(업둥이, 혹은 주워온 아이)’가 맞는지를 물어본것이고 그것을 되려 박정태라는 친구가 ‘그런식으로 친구를 놀리면 안된다’고 만류한것인데 승홍은 되려 그런 정태를 때렸다. 마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격으로 사실상 승홍이 입양된 아이가 맞음을 확인시켜준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라 그게 더 승홍의 화를 돋군것이긴 하지만 정태 입장에선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승홍이 정태네 집까지 거리가 꽤 되고 또 사실상 정태네 집을 찾아가보는 것이 처음임에도 여하튼 직접 찾아가 사과를 하려고도 했는데 허나 정태는 그런 승홍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 정태야, 미안해.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 ”
“ 됐어 !!! 이제 너랑 안 놀아 !!! ”
정태 어머니마저 ‘그만 가고 다시 여기 찾아오지 말라’며 승홍을 내보내려 하자 하는수없이 집에서 나오긴 했지만 승홍은 정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정태를 때렸던 자신의 주먹을 다시금 어루만져보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사람은 때리면 아픈것일까... ”
당연한 상식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어린아이에겐 이제야 처음 깨달은 진리일지도. 그래서 더욱 더 깊은 고민의 늪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 사람은 때리면 아프다...아프면 피가 난다. 사람은 때리면 피가 난다... ”
물론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감정과 감각을 느끼는 똑같은 생명체인 것은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1학년 자연시간에 이미 배우게 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홍은 여전히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하루는 좀 느닷없이 넷째누나 승미의 방으로 가보았다. 그래도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승홍이 이 집으로 입양이 된 것이니 승홍이 이곳에서 노사장의 네 딸들과 함께 살게된지는 이미 여러달의 시간이 지났다. 허나 아무리 손귀한 집안이고 아들이 필요하기로 이미 딸이 넷이나 되면서 굳이 아들을 하나 양자로 들이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못했지만 자기네들끼리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던 딸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네 딸들은 막내로 입양이 되어 들어온 승홍에 대한 감정이 과히 좋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딱히 구박을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승홍을 그렇게 애정이나 사랑으로 대해주지는 않는 그 정도 분위기라고나 할까. 헌데 그 네명의 누나중에도 승홍과 세 살터울로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이차가 적은 넷째 승미. 조심스럽게 노크까지 하면서 그 방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 누나, 실은 저 물어볼게 있는데요. ”
보통의 어린아이들 같으면야 터울 몇 살 안 지는 누나들에게 반말을 쓰겠지만, 아무래도 승홍과 누나들의 관계는 그리 가깝지 못해 존대말을 쓰고 있었다. 승미도 다소 성가시다는 듯 승홍을 대한다.
“ 뭐야, 무슨일인데 그래 ? ”
사실 승미도 학교 공부를 그리 썩 잘하는 편은 아닌데 – 그래도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이니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겠지만 – 혹시 학교공부에 관한 질문이면 어쩌나 하는 순간에 겁까지 덜컥 나고 있고, 헌데 승홍의 물음은 엉뚱하기만 했다.
“ 사람은 때리면 아픈거에요 ? ”
“ 뭐 ? ”
혹시 학교공부와 관련해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어쩌나 해서 승미는 순간 머릿속이 좀 어지러워지기까지 했는데 막상 그런 승홍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이 황당하고 어이없기만 해서 한동안 멍하게 승홍을 바라보았다. 승홍의 질문은 거듭되었다.
“ 사람은 때리면 피가 나는거죠 ? ”
“ 그...그거야 당연히 때리면 아프고...세게 때리면 피도 나고 그런거지...그런데 그런
걸 갑자기 왜 ? ”
“ 아뇨, 그냥 궁금해서... ”
“ 뭐가 ? 대체 뭐가 궁금한건데 ? 고작 기껏 궁금한게 사람이 때리면 피가나는지
그게 궁금한거야 ?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승홍. 승미로선 그저 어이없고 화가날뿐이었다. 무엇보다 얼마전 승홍이 반 아이를 때린일로 아버지까지 학교로 불려간 일은 그 네 딸들이 지금 모르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승미는 더욱 기가찰뿐. 그래서 동생을 핀잔주듯 말한다.
“ 아니,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고작 겨우 그런걸 물어보려고 들어온거야 ? ”
“ 그냥...궁금해서요... ”
아무래도 누나들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승홍도 어느정도 느끼는것인지 여타의 보통 남매들처럼 누나한테 친숙하게 다가가진 못하고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어렵사리 말을 건네고 있는 승홍의 모습. 허나 승미는 그런 승홍의 모습 자체가 한층 더 짜증만 난다.
“ 그러게 넌 왜 학교에서 애는 때리고 그래 ? 그런 말썽을 부리고 돌아다니면 어떻
게 해 ? ”
“ 죄...죄송해요. 그건 정말...하지만... ”
확실히 정태를 때린 일에 대한 잘못은 인지하고 있는 승홍이고, 다만 그래서 거듭 궁금하고 의아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왜 때리면 피가 나는지. 지금 승홍의 궁금함은 오직 그곳에 쏠려있을뿐이다.
“ 도대체...어떻게 들인 이 집 자식인데...니가 그럴수록 더더욱 잘 해야지. 그렇게
말썽을 피우자면 어쩌자는거니 도대체 ? 도대체 왜 그런짓을 한건데 ? ”
“ 자...잘못했어요 누나. 우아아앙~~~!!! ”
자신의 궁금함은 풀어주지 않은채 되려 자신이 학교에서 반아이를 때린일을 다시금 언급하며 거듭 나무라자 승홍은 겁이나서 결국 울음까지 터트린다. 공연한 질문을 하러 왔구나 하는 후회도 생기고. 그래서 터져나온 울음소리. 승미가 당황한다.
“ 아니, 근데 얘가 울긴 왜 울어 ? 내가 뭘 어쨌다구 ? 울지마 !!! 뚝 !!! ”
부모님이든 다른 언니들이든 이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오면 더더욱 난감해질수도 있어서 승미는 일단 아이를 달래보려고 한다. 그야말로 여간 난감하고 당황스럽지 않을수 없는 순간인 것이다.
“ 누나가...이거 줄게 이거 먹고 울음그쳐. 알았지 ? 이거 먹고 울지말고 니방가서
놀아. 알았지 ? 그리고 다음부터 사람 때리고 그러면 못써 ? ”
아까 먹다남긴 간식인듯한 과자부스러기가 마침 방안에 굴러다니고 있어 대충 그것을 동생에게 쥐어주며 내보내는 승미. 승미가 그러자 승홍도 좀 진정이 되는 듯 누나한테서 건네받은 과자를 들고 방에서 나가기는 한다. 허나 자기방으로 들어온 승홍은 누나가 준 과자도 먹지 않고 – 무엇보다 그래봤자 어차피 먹다남은 작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정도다 – 혼자 다시 방에 우두커니 앉아 고뇌의 시간에 빠지게 된다.
몇 년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노승홍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한편 1학년때 사귀었던 이진호나 박정태는 그 사건 이후로는 교류가 거의 끊기다시피 하였고 4학년 되어 새로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한동수란 친구다. 진호나 정태는 사는 집도 멀고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방향도 다소 달랐던 반면 동수네 집은 노승홍의 사는 집과 거리도 그리 멀지 않고 집으로 가는 방향도 거의 엇비슷해 – 사실상 한동네 사는 셈 – 그만큼 더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런 동수와 함께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가는길이었다.
“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이야 데이야~~~ 북망산천 어드메뇨~~~ 어허이야~~~데
헤이야~~~ ”
장사를 치르는 길인가. 소위 노제(路祭) 행렬인 듯 한떼의 장례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꽃상여가 지나가고 생전 고인의 가족,친지 혹은 그 외 친우나 이웃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바탕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고인을 잃은 슬픔이야 가족이든 친구이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개중에서도 한 여인의 가슴을 쥐어짜는듯한 곡소리가 순간적으로나마 승홍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 아이고 아버지이~~~!!! 아이고 아버지이~~~!!! 이렇게 가시면 저는 어쩌라고...이리
가시면 저는 어떡하라구...이 OO이는 이제 어쩌라구 이렇게 가세요. 아이구 난 몰
라요 아버지. OO이는 어찌살라구...이 OO이는 어찌 살라구 아버지이~~~!!! ”
“ OO아, 그만 진정해. 어쨌든 장례는 치러야 하는 것 아녀 ? ”
“ 그래요 고모님. 그만 진정하시고 일어나세요. ”
유가족중 너무 안타깝고 슬픈 나머지 그렇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처절하게 울부짖는 여인이 하나 있었고 덕분에 노제 행렬이 잠시 멈춰지는 방해가 되어 다른 가족들이 다가와 그 여인을 진정시켜 일으켜 세운다. 어서 노제에 이어 장지까지 가 시신을 매장해야 하니 그 절차가 늦어지면 곤란하겠기에 이런 유족에겐 거듭 일어나라고 재촉하는수밖에 없다. 한참을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는듯한 슬픔을 쥐어짜는 여인을 달래는 유가족의 모습. 승홍과 동수가 한참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O씨 할아버지가 아마 돌아가셨나봐. ”
초등학교 4학년 정도면 집안은 물론 동네 분위기나 경우에 따라선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네주민의 인적사항도 어느정도 인지할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일까. 아마 동수가 ‘아는 할아버지’의 장례인 듯 그렇게 말했고 의아하게 보는 승홍에게 동수가 제법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 아마, 그 할아버지네 막내딸일거야 저 아줌마가. 아마 그래서...많이 슬픈가봐. ”
그저 단순히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혹시 모르는 남모르는 사연이 저 집안에 있는것인지 여하튼 동수의 설명도 있고 해서 그렇게 지나가는 노제 행렬을 승홍이 한동안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조금전까지 그렇게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슬피울던 여인은 다른 가족들의 달램과 다독임을 받으며 겨우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노제행렬에 참여하긴 했다. 그렇게 노제행렬은 지나가고 승홍은 괜시리 이상해지는 기분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 시절 시골마을이라면 구멍가게는 동구밖 정도에 하나 있을만한 그런 분위기일 것이다. 무엇보다 입양된 막내아들인 승홍에게 노사장은 누구보다 끔찍하게도 잘 챙겨주었기 때문에 이따금씩 승홍은 아버지로부터 용돈도 두둑히 받을수 있었다. 마침 그렇게 아버지에게 받아둔 용돈도 제법 모아졌고 밤에 출출하기도 해 간식거리라도 사고 싶은지 혼자 집을 나갔다. 여하튼 구멍가게까진 거리가 제법 있기 때문에 뛰어갔다 오는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중간에 잠시 승홍의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하는 풍경이 있었다.
“ 아이고 아버지...이리 가시면 어찌합니까...이리 가시면...저 OO이는 어찌하라구...
”
어쨌든 노제까지 치렀으면 장례절차는 다 끝난뒤일텐데, 그리고 엊그제 본 노제행렬에서 구슬프게 우는 여인은 사실 거리가 좀 있었기에 원래 얼굴을 아는 듯 하던 동수라면 모를까 승홍이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 승홍이 있는 어느 집 앞 분위기도 어두우면 어둡다고 할수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자기집 문앞에서 청승을 떠는 여인이 엊그제 노제행렬에서 본 여인과 동일인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노제까지 치렀으면 장례절차는 이미 다 치룬뒤가 아닐텐가. 그럼에도 장례까지 다 치렀는데도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것인지. 나이가 어느정도인지 불분명하지만 그렇게 젊은 여인은 아닌 듯 했고 한 40 가까운 아주머니 ? 그렇게 추정되는 이가 청승을 떨며 어느 집앞에선가 그렇게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OO아, 거기서 뭐해 ? 어서 들어와 저녁 먹으래도. ”
“ 싫어요 생각없어요. ”
여하튼 이 시대 농촌마을이면 5대8촌 이내의 친척이면 거의 가까운 지역이나 동네에 살던 그런 시절이다. 따라서 장례를 치렀더라도 이런저런 걱정이 되어서라도 자주 와서 가족이나 친척의 사는 모습을 살펴보는 경우도 있을것이고 그런 경우까지 아니더라도 원래 왕래가 잦으면서 자주 보는 사이일수도 있다. 어쨌거나 청승떠는 여인에게 이 밤늦은 시간에 가족인지 친척인지 대충 그렇게 추정되는 이 두어명이 나와 ‘들어가서 식사라도 하자’며 여인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 OO아, 그만 기운차리고 일어나래두 그런다. 어쨌거나 떠난 사람은 떠났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 ”
“ 그래요 고모님, 이제 그만 들어가서 진지 드세요. ”
대략 그렇게 죽은이의 막내딸쯤으로 추정되는 30대 후반의 여인. 그리고 그녀의 언니나 오빠 혹은 조카쯤 되는이 두어명이 나와서 여인을 달래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한편 그러는 가운데서도 웬 꼬마아이가 이런 풍경을 제법 긴시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성가시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신경이 쓰였는지 승홍을 잠시 흘겨보기도 한다. 당황한 승홍이 그곳을 도망치듯 다른곳으로 달려가긴 했다.
헌데 원래 과자나 음료수라도 사고파서 집을 나온 승홍이었는데 구멍가게로 가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 집앞에서 그렇게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혼자 긴시간 넋두리를 늘어놓는 여인이 그 이틀전쯤 봤던 노제행렬의 여인의 모습과 거듭 겹쳐져 잔상으로 남은것인지. - 아니면 가다가 저승사자라도 만나는 것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상상이라도 잠시 했는지 –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해져서 한가하게(?) 과자나 음료수 사먹자고 구멍가게까지 달려갈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 승홍아, 뭐 하느냐 ? ”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승홍은 한동안 그 모습이 뇌리에서 쉬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망자의 노제 행렬과 그 과정에서 슬피우는 유가족의 모습. 그리고 장례를 이미 치른 것 같은 분위기임에도 여전히 망연자실하게 있는 그런 한 중년여인의 모습이 이래저래 계속 승홍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아버님. ”
그래서 하루는 정중하게 이렇게 아버지 노사장에게 여쭈어보았다. 양자라서인지 아무리 ‘아버지’라도 한 계단 정도의 거리감이 느껴져서인지 ‘아빠’나 ‘아버지’도 아닌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어린 양자 승홍. 그의 질문은 이와 같았다.
“ 사람은 왜 죽게되는건가요 ? ”
“ 뭐라구 ? ”
갑자기 어린아이의 뜬금없고 당돌한 질문에 당황하는 노사장. 사실 소위 ‘미운 일곱 살’이니 뭐니 하는 말이 있는것처럼 한참 자라면서 세상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물음은 종종 당돌하거나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면이 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한번씩은 그렇게 그런 어린시절을 거쳐갔을것이고 또 어른이 된 뒤에도 한참 말배우고 글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조카나 이웃 동생의 당혹스러운 질문 받아본 경험 한두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노사장은 제법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하는 노하우가 있는것인지 – 하긴 이미 딸을 넷이나 키우고 있는 노사장이다 – 차분하게 이렇게 답을 해준다.
“ 글쎄 사람은...나이가 들어 죽기도 하고 병들어 죽기도 하고...죽는 이유야 여러가
지가 있지. ”
이 시절엔 물론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유도 있지만 그 외에도 질병이라던가 무엇보다 식민지와 전쟁의 그 지독했던 시간을 겪은지 얼마되지 않는때가 아닌가. 그래서 노사장이 초등학교 4학년 어린아이가 ‘사람이 죽는 이유’에 대해 묻는 답이 이와같은 것이다. 한편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건가요 ? ”
“ 허허...글세... ”
종교에서야 천당이니 극락이니 하는 내세(來世)를 말하곤 하지만 직접 가보지 않은 다음에야 그곳에 대해 확신하거나 증명해낼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어쨌든 그런류의 종교에 심취해 있는 이라면 적당히 그런 교리에 짜맞춰서 답을 해줄수도 있겠지만 노사장도 기독교든 불교든 그런 종교와는 별 인연이 없었는 듯 다만 애매하게 얼버무리고 있다.
“ 이 세상에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면...그게 어디 귀신이지 보통사람이
라 할수 있겠느냐. ”
초등학교 4학년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말이 되어서일까. 승홍은 이해 안간다는 듯 이렇게 말하고 있고 그런 아들을 보며 노사장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 어떤이들은 죽어서 천당,지옥이 있다고도 하지만...뭐 그걸 직접 가본적도 없으니
확실하게 있다고 말할수도 없고...허나 승홍아... ”
“ 네, 아버지. ”
“ 사람이 죽은뒤 어디로 가는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이겠느냐.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하게 살아가느냐 거기에 그 사람 인생이 결정되
는 것 같더구나. ”
“ ...... ”
“ 이 애비의 말을 다른이들이 들으면 수긍해 줄련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지금
까지 생을 살아오면서 또 주변의 많은 이들의 생노병사를 접해보면서 느끼고 깨달
은 점은 그거야. 누구든 결국 이 세상에서 얼마나 열심히 성실하게 살다 갔는가...
중요한건 그게 아닐까 하는... ”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승홍은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학교는 여전히 무탈하게 잘 다니는 중이고, 다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하교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다 바로 1년전쯤 동네 할아버지 한분의 노제행렬이 지나갔던 바로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사실 승홍 입장에선 늘 지나가는 등하교길에 있는곳이니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여하튼 동네 인근 야산쪽으로 향하는 길목이고 인근엔 약간의 수풀이 우거진 대충 그 정도 분위기의 길이다. 다만 오늘따라 좀 지치기라도 했는지 인근 수풀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 오라버니,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자는건데 ? ”
사실 예전엔 ‘오빠’보다는 ‘오라버니’란 표현을 더 많이 쓰긴 했지만 그래도 50년대 중반 정도에 스무살 전후의 젊은 여자가 평상시 가까이 지내는 비슷한 연배의 남자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썼을지 ‘오라버니’라고 불렀을지 좀 확실치가 않다. 다만 어찌되었거나 아마 인근 동네에 사는 그리고 아무래도 평상시 알고 지내는듯한 사이인 젊은 남녀가 좀 이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승홍의 귀에 들려온다는 것이다.
“ 니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그까짓 사모님 패물 몇 개 훔치는걸로는 어
림도 없다고. ”
어쨌든 50년대 정도의 젊은 남녀라면 구 시대 표현인 ‘아씨’니 ‘마님’이니 하는 표현은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느정도 잘사는 집에서 허드렛일이라도 돕는 하녀나 하인쯤 되는 대충 그쯤 위치에 있는 남녀간 같은데 아무래도 뭔가 적절해보이지는 않은 분위기의 대사. 일단 남녀간의 대화는 이어진다.
“ 그래서 아예 황소까지 한 마리 훔쳐 달아나자는 소리야 ? ”
“ 그 영감 집에서 황소 한 마리 훔친들 무슨 표나 나겠냐 ? ”
대체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금품에 황소까지 훔친다면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수준의 절도행각이다. 헌데 그런 모의를 별다른 죄책감이나 거리낌없이 나누는듯한 남녀. 다만 여자가 좀 망설여지는 것이 있는지 이런말을 하긴 한다.
“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나 혼자 그 큰 황소를 무슨수로 훔쳐 ? ”
대체 어찌된 곡절의 남녀가 이런 절도행각 모의를 하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젊은 여자 혼자서 황소 한 마리를 훔친다는 것은 분명 무리. 그래서 남자가 뭔가 좀 더 궁리를 하는듯한 모습이다.
“ 물론 쉽지 않지. 그러니 작전을 좀 짜봐야지. ”
그렇게 두 사람은 어떤 부잣집에서 한 밑천 챙겨 달아나자는듯한 그런 작당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런 범죄모의의 대화가 좀 더 이어지는 듯 하더니 확실히 예사로운 남녀사이는 아닌 듯 곧이어 정분 나누는 소리로 이어진다. 처음엔 그저 단순히 서로 ‘좋다’, ‘사랑한다’ 그런식의 대화수준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러다 이내 곧 달아오른 열정과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는지 두 남녀는 끌어안는다. 그리고 풀밭에 누워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시작된다.
“ 허헉~~~!!! ”
사실 일부러 보려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정도면 저 정도 수준의 대화 내용을 이해 못할 나이는 아니고. 그래서일까. 승홍 입장에서도 대체 어떤 나쁜 동네 형과 누나가 저런 위험한 범죄모의를 하나 궁금해서라도 좀 더 들어보려 한 것이고 헌데 그러다 공교롭게도 둘의 애정행각까지 그대로 목격하고 만 것이다. 헌데 불륜남녀도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하긴 애초부터 떳떳하지 못한 절도 모의를 하고 있었고 남녀간의 관계도 뭔가 정상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 두 사람이라서인지 아무래도 주위를 경계하거나 신경쓰지 않을수 없었을 터. 그래서인지 뭔가 인기척을 느껴서 그쪽을 바라보다 결국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를 발견하고 만 것이다. 다름아닌 노승홍. 여자는 기겁하여 다 풀어헤친 옷을 서둘러 챙겨입고 있고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일은 아니라 놀라 달아나려는듯한 아이를 남자는 단숨에 달려가 붙잡는다.
“ 너 이 X끼 뭐야 도대체 !!! ”
“ 아...아니에요 아저씨. 자...잘못했어요. ”
일단 뭔지 모르겠지만 우선 잘못했다고 빌어야겠다는 생각에 승홍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나왔고 꼬마아이가 이런식으로 나오자 아무래도 더 꺼림칙한지 남자가 본격적으로 추궁했다.
“ 뭐야 ?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건데 ? ”
“ 그...그게...잘못했어요 아저씨. 안그럴께요. 다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께요. 어
어어엉~~~!!! ”
이렇게 나오는 꼬마아이를 보니 남자는 더 당혹스럽고 신경쓰여 어쩔줄 모르고 있고 살짝 뒤를 돌아보니 바로 조금전까지 애정을 나누던 상대 여자가 ‘이제 그쯤해두자’는 듯 손을 내젓고 있다. 남자는 허공을 잠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그나마 노승홍은 행운이라고 봐야하는것일까. 사실 정말 성정이 사악한 인간이었다면 아예 자신들의 범죄나 불륜행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현장을 목격한 작은 꼬마아이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경우에 따라선 유괴를 해 갔을수도 있다. 허나 그래도 차마 그렇게 끔찍한 짓까지 저지를만한 사람들은 아닌지 대신 남자는 승홍을 흠씬 두들겨패고 ‘우리를 본 것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우리일이 소문이 날 경우 니가 떠벌리고 다닌 것으로 알겠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확실하게 입을 막아놓아야겠다는 듯 몇푼 되지는 않지만 주머니에 있는 돈을 좀 꺼내 아이에게 쥐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불륜남녀는 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지만 젊은 성인 남자한테 흠씬 두들겨맞은 노승홍은 그렇게 피멍투성이가 되어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 뭐야 노승홍 ? 너 이게 웬일이야 ? ”
집에 돌아와보니 이 광경을 본 누나들이 깜짝 놀랐다. 사실 아직 초등학생인 노승홍보다 이미 중,고등학생인 누나들이 귀가시간이 늦을텐데 따라서 처음 승홍이 집에 들어섰을 때 이 광경을 처음 목격한 것은 이 집 일을 보는 가정부격에 해당하는 여자들이었다. - 가정부 일을 보는 여자가 하나가 아니고 두세명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 다만 그런 가정부 누나들에게까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게 싫은지 자존심 때문에라도 승홍은 가정부 누나들에게 자신이 밖에서 맞고 들어온 것을 누나들이나 가족들에겐 말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 했다. 허나 어린아이가 이꼴을 당해고 돌아온 것을 가정부 입장에서 상전격인 주인아저씨 내외나 이 집 딸들에게 어찌 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결국 오후 늦게 귀가한 현재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셋째누나 승희와 넷째누나 승미가 승홍의 방으로 들어와보았다.
“ 노승홍 도대체 너 어떻게 된건데 ? ”
‘말하지 말랬더니...’ 승홍 입장에선 가정부 누나들 원망하는 마음까지 생길 수밖에 없고, 셋째누나 승희와 넷째누나 승미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자기네들끼리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다.
“ 아니 도대체...1학년때는 누굴 때렸다고 아버지를 학교에까지 불려가게 만들더니
이젠 되려 맞고 다니냐 ? 도대체 너 뭐야 ? 어떻게 된건데 ? ”
“ 야, 노승미 !!! ”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 저 지경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걱정하는 말투라기 보단 놀리거나 핀잔을 주는 말투라서 좀 너무하다 싶었는지 셋째누나 승희가 넷째승미를 이렇게 나무라고, 허나 승홍은 승홍대로 아까 그 아저씨한테 흠씬 두들겨맞고 단단이 받은 경고가 무서워서인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결국 답답해지는 것은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하는 누나들과 가정부 누나들이다. 어찌되었거나 누나들은 아버지,어머니에게 가정부들은 주인 아저씨,아주머니한테 말을 안 할수 없는 사태 아닌가. 허나 승홍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어 누나들이든 가정부 누나들이든 이래저래 답답한 시간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노승홍은 고뇌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사람을 때려보았다. 비록 자신이 입양아(업둥이)냐고 시비를 걸어오는 아이로 인해 발생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 때린 아이에게서 피가 나는 것을 보았고 그때 처음 충격을 받았다. ‘왜 사람은 때리면 피가 나는걸까 ?’ 승홍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본 의문이었다.
작년 이맘때는 한 동네 살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그 유가족이 노제를 치르며 떠나는 장례행렬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마 그 집안 막내딸 정도로 추정되는 여성의 슬피우는 모습, 그리고 한동안 망연자실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이 평범한 진리를 어느정도 인지하게 되거나 깨닫게 되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승홍은 그때 처음 ‘동네 할아버지 장례식’을 보았고 유가족의 슬픔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았다. 죽음 그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이 그때였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이상한 광경을 하나 보았다. 사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눈에도 그 젊은 남녀의 대화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남녀 관계는 아닌 듯 했고 심지어 나누는 대화내용은 절도라는 ‘범죄’를 모의하는 광경이었다. 허나 그 광경을 지켜본 자신을 발견한 남자가 그렇게 무참하게 자신을 때리고 돈까지 줘가며 입막음을 하려 한 것은 단순히 범죄모의 현장이 발각났기 때문만은 아닌것같다. 일단 자신이 생각해봐도 그 범죄모의 대화에서 남자가 자신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음을 안것까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뒤이고 그 사이에 중요한(!)일이 있지 않았는가. 남녀는 뭔가 분명 심상찮은 대화를 주고받다 서로 후끈 달아오르는듯한 이상한 알 수 없고 야릇한 대화를 좀 나누다 그렇게 바닥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서로 옷을 풀어헤치며...그렇게 한참 달아오르는 열정을 발산하려다 그만 웬 아이한테 그 광경이 발각되고 만 것. 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두 남녀는 소스라치게 놀란것일까.
두 남자가 – 적절한 사이이건 그렇지 못한 관계건 간에 – 그렇고 그런 사이인것까진 그렇다 치고 왜 그렇게 두 남녀는 정신없이 땅바닥을 뒹군것일까. 남녀간에 정분이 나면 하는 뭔가가 있는것일까. 사실 승홍의 기억에 예전에도 얼핏 동네 아저씨나 아줌마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또는 집에 가정부 누나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이상한 이야기’를 얼핏 들은적이 없지는 않다. 누구랑 누가 잤다던가 누구랑 누가 물레방앗간이나 풀밭에서 뭘 어쨌다던가. 대체 그게 뭔지는 알수 없지만 뭔가 확실히 남녀간에 정분이 나면 ‘하는’ 뭔가가 있긴 있나보다. 그런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는것이었다.
헌데 심지어 며칠전엔 분명 그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따금 그렇게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가정부 누나들이 ‘누구랑 누가 잤네’ ‘풀밭이나 물레방앗간에서 뭘 했네’ 하는 이야기가 그걸 말하는것인가.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아이라면 충분히 연결고리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남녀간에 정분이 나면 정말 하는 뭔가가 있긴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면서 ? 또는 물레방앗간이나 풀밭같은데서 ?
“ 누나... ”
이런걸 집안의 누나들한테 물어도 되는것일지 모르겠다. 노사장의 딸들인 누나가 되었건 가정부 누나들이 되었건. 허나 어차피 지금 노승홍의 입장에서 그런 것을 물어볼만한 마땅한 상대가 있는것도 아니지 않나. 일단 그나마 나이터울 가장 적은 넷째누나 노승미에게 묻긴 했는데 승미는 성가시다는듯한 반응을 보였다.
“ 남녀간에...정분이 나면 하는게 있어요 ? ”
“ 뭐 ? ”
이 시대엔 아직 ‘사랑’이란 단어는 그리 보편화되지 않았던 것 같던데 – 대체로 보면 ‘사랑’이란 단어는 드라마나 영화,소설같은 대중매체가 널리 읽히고 보게 되면서 대중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된 것 같다. - 여하튼 ‘정분’이란 말은 있던 시대이니 이렇게 물어본 승홍. 그와 세 살 터울인 승미가 중학생이긴 하지만 아직 ‘성교육’이 체계화되어있진 않은 시절이니 중학생 승미라고 해도 그런걸 제대로 알리는 없다. - 안다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아이가 생긴다는 생물시간에 배우게 되는 상식 정도 – 허나 중학생 넷째누나가 모르면 고등학생 셋째누나한테라도 물어볼 것 같은 기세인 승홍. 그래서일까 승미가 적당히 이렇게 동생의 입을 막아버리려 한다.
“ 넌 도대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 그리 쓸데없는걸 궁금해하고 그래 ? 어서 들
어가 공부나 해 !!! ”
넷째누나의 면박과 핀잔에 도로 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승홍. 허나 승홍의 뇌리에는 아직도 수수께끼만 같은 그날의 광경과 그리고 그 현장의 당사자인 아저씨한테 죽도록 두들겨맞고 돈 몇푼을 받고 돌아올수 있었던 일이 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이런일이 있었다. 노사장이 하루는 승홍을 불렀다. 양자기는 하지만 어쨌든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들인 그런 아들이기도 하지 않은가. 따라서 노사장 입장에선 그래서 더더욱 귀하고 귀할 아들. 그런 승홍을 쓰다듬어보며 노사장이 밤하늘을 잠시 바라본뒤 이렇게 말했다.
“ 승홍아. ”
“ 네, 아버지. ”
아무리 그래도 양아버지니만큼 거리감은 있는것일까. ‘아빠’라기 보다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주로 쓰고 있는 승홍. 그런 승홍을 보며 노사장의 말은 이와같이 이어진다.
“ 언젠가 네가 그런말을 물어본적이 있었지 ?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되는거냐
구. ”
그러고보면 그 질문은 벌써 1년여전의 일인데 아직 그걸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그걸 생각해보면 노사장이 기억력이 대단히 좋거나 그런게 아니면 아직 아들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노사장의 말은 이어진다.
“ 사실 아버지도 오래전 그런 고민을 한적이 있었다. 아니...오래전 어릴때뿐만 아니
라...사실 나이가 들어서도 그건 참 쉽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와도 같은것이란다.
”
“ ...... ”
“ 어디 죽음뿐이겠느냐 ? 우리의 삶과 태어남도 수수께끼인 것은 마찬가지란다. 물
론 누구나 다 부모님에 의해 태어나게 되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도대체 왜 이 세상
에 태어나게 되는것이고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것인지...그건 정말 아주 수
백 수천년전 수많은 옛 조상님네들도 끝끝내 풀고가지 못하셨을 그러한 영원한 수
수께끼인게야. ”
그러고보면 맞는말이긴 하다. 이 일대에서 과수원을 하고 정미소를 하는 어쨌든 OO군 일대에서 그런대로 이름난 부자중 하나이기도 한 노사장. 허나 그런 노사장이기에 그런 철학적 고민을 이따금씩 할수도 있게되나보다. 아닌말로 죽어서 싸갖고 가지도 못할 재산을 이 다음에 다 어찌할것이며 또 주의에 이제 하나둘씩 죽어가는 친구나 지인,동료,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삶과 죽음의 의미 한번쯤 곱씹어보지 않은 시간이 어찌 없었으랴. 그러고보면 이미 나이 50을 넘긴지가 오래된 노사장. 그의 말이 이어진다.
“ 뭐 얼핏 듣기로 불가에선 전생에 지은 업보나 인과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는
하지만...뭐 솔직히 그런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쉽지는 않아. 만약 그런 업
보나 인과가 존재한다면...착한사람이 오히려 더 가난하고 힘들게 살고 오히려 남을
속이고 교활하게 살고 속임수를 쓰며 남을 핍박하는 그런 이들이 더 잘 사는 이치
는 어찌 설명이 가능하겠느냐. 이미 거기서부터 모순이 생기는 것을... ”
어쨌든 이 나라 백성들이 불교와 유교 그리고 무속신앙의 영향은 수백수천년전부터 받고 살아왔으니 이런식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은 평상시 종교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이라도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다못하 부모님 장례나 제사를 치르면서도 불공드릴 스님을 한두번 불러오거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도제라도 드렸을수도 있고. 여하튼 그렇게 노사장도 나름의 회한에 잠기며 이런말을 입에 담는것이고 그러면서 아들 승홍의 손을 한번 잡아보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삶과 죽음이란 어쩌면 그렇게...이 땅에 사는 수많은 백성들...수많은 중생들...수
많은 이들...그들이 영원히 풀지못할...그런 영원한 수수께끼의 존재인것이야. 하
지만 또 어찌 아느냐 ? 세상이 더 발전하고 문명이나 과학이 더 발달하면 삶과
죽음의 이치...아니면 어쩌면 이 세상이 만들어진 그런 이치 자체를 더 명확하게
구현하고 밝혀낼 더더욱 신통한 존재가 태어날지...그건 아무도 모르는거란다... ”
지난번처럼 ‘지금 사는 인생’ 또는 현재가 중요한 것이라는식의 똑같은 말을 반복하긴 좀 그런지 약간의 궤변처럼 될 지언정 그와같은 말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는 노 사장. 삶과 죽음 그리고 이 세상이 만들어진 이치는 이 세상 인류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 같은 존재. 그러나 어쩌면 세상이 더 좋아지고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그 이치를 정말로 깨닫게 되는 더 신통한 존재가 나올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노승홍의 눈망을이 잠시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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