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대도사 일대기
원래 예나 지금이나 신화나 영웅담 혹은 창업군주나 정치지도자 또는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룰 때 그 서두나 탄생 이야기는 신비스럽게 미화하기 마련이다. 꼭 그런 영웅이나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시대를 다소 이채롭게 살다간 이인(異人)이나 기인(奇人)의 삶을 그릴때도 그 시작은 어느정도 신비스럽게 묘사해야 그 맛이 제대로 사는법이다.
사실 딱히 신비스럽거나 기이한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이 굳이 조선시대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대략 일제때는 물론 해방이후나 한 60-7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일은 종종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가령 성폭행 피해여성의 경우엔 여성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많던 그 시절에 정상적으로 창창한 앞날을 살아갈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 아주 죽을수는 없는 일이니 차라리 돈많고 나이많은 노인에게라도 시집보내 밥은 먹고 여생을 살아갈수 있게 해주는 그게 차라리 임시 방편이 될수 있었을 것이다. 비단 성폭행 피해여성뿐만 아니라 가난으로 생계를 제대로 이어갈수 없다던가 빚더미에 나앉게 된 집이라던가 혹은 전쟁,가난,질병등으로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은 여성의 경우에도 그 처리 방식은 이런식이 되는게 차라리 나을것이라는 그런 인식과 가치관이 대체로 못박혀 있던 그런 시절이다.
충북 옥천군 OO면. 무슨 특징은 없는 이 시절에 흔히 볼법한 그런 농촌마을이다. 그곳에 좀 특이한 노인이 하나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략 8.15 해방 전후에 이미 나이가 80을 넘긴 노인이라면 대충 계산을 해봐도 1860년대생. 그러니 조선 후기에 태어나 일제를 거쳐 8.15에 이르기까지 결코 간단치 않았던 그 시절을 살았던 그런 노인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역사적 사건을 대입하자면 1886년에 병인양요가 있었고 1871년에 신미양요가 있었다. 그런식으로 500년을 극동의 은둔의 나라로 살아온 조선이란 왕조가 서양세계를 차츰 알아가던 그런 시기에 태어나 8.15 해방 무렵까지 살아온 노인. 다만 이 노인이 어릴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던 사람인지는 확실치 않다.
일단 이름은 정확히 모르고 이 동네 주민들은 노인을 ‘김노인’ 혹은 ‘김씨’라고 불렀다. 사실 김씨라는 성이 적어도 조선시대 이후로는 이 나라에 가장 흔해빠진 성씨가 되었으니 그 김씨란 성이 원래 부모의 성을 딴것인지 아니면 살면서 대충 임시방편으로 갖다붙인 성씨인지조차 확실치가 않다. 여하튼 OO면의 김노인은 어릴때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고 대략 한 나이 40을 넘긴 무렵쯤 이 동네까지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노인의 말로는 한양에 산적도 있다고 하고 함길도나 평안도 같은 이북지역이나 심지어 만주에 가본적도 있다고 하니 그전까지는 제법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었나보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런 노인이 충북의 이 한 작은 농촌마을까지 흘러들어와서는 그 무렵무터 40년을 살아온 것이다.
다만 천덕꾸러기나 민폐나 끼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고 나름 손재주가 있어서 동네에 무슨 수리나 공사같은게 할 일이 있으면 손수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고 또 스스로도 작은 대장간을 만들어 낫이나 이런저런 도구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 때론 싼값에 팔기도 하고 사정이 좀 딱한 주민들에겐 그냥 무상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게 대체로 재주도 좀 있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살고있는 사람. 다만 어쨌든 한때는 한양에서부터 그 추운 북쪽 함경도나 만주까지 가봤다는 것을 보면 젊은 시절이 파란만장했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어쨌든 나름 성실하고 재주도 있어 동네 이런저런 대소사를 도와주기도 하고 손수 농기구나 공사도구 같은 것을 만들어 팔거나 주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라 동네 주민들은 대체로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그런 노인이었다. 다만 팔자가 기구하였는지 나이 80이 넘도록 장가를 못갔고 당연히 자손도 없었다. 종종 그와 어울리는 주민들이 궁금해서 ‘장가는 안 갔느냐 ?’, ‘자손은 없느냐 ?’ 이런식으로 물어보면 노인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뒤 ‘허허’ 웃기만 했다.
여하튼 그렇게 살아온 김노인도 어느덧 나이 80을 넘겼으니 살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봐야할터. 다만 동네주민들은 그 성실하고 손재주 좋은 노인이 장가도 못간채 혼자 살며 그렇게 늙어가는 것을 안타까와하는 중이었다.
연지라는 소녀가 있었다. 그 부모는 이 동네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이 시절의 평범한 농사꾼 집안. 다만 자손운이 없었는지 이 부부도 나이 40이 넘도록 자손을 보지 못하다가 늦은 나이에 딸을 하나 낳았으니 그게 연지다. 아무래도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하던 시절이니 5퍼센트 정도의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그러나 나이 40을 넘어 보게된 아이니 어찌 귀하고 금지옥엽같은 아이가 아니라고 할수 있으랴. 그야말로 불면 날아갈까 엎어지면 꺼질까 그렇게 귀하디 귀하게 키운 그런 아이다.
대체로 효성 지극하고 성격도 수더분해 동네 처자들하고도 잘 어울리는 그런 소녀였다. 헌데 그런 소녀가 열다섯살에 그만 몹쓸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한 것이다. 일단 이 동네 사는 청년이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 타지에서 잠시 여행이나 놀러온 그런 남정네들이 연지를 건드린 것 같은데 나중에 연지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을 건드린 남자중 일본순사나 군인 복장을 한 이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는데 다만 확실하진 않다. 하긴 그런 경황중에 자신에게 그런 몹쓸짓을 한 상대를 정확히 기억할만한 여자가 얼마나 있으랴. 그것도 그 어린나이에.
어쨌거나 부모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질것만 같은 청천벽력의 일이었고, 평상시 연지네 집과 교류가 있던 이웃주민들도 이를 안타깝게 여겼다. 여하튼 그렇게 성실하고 순박하게 살다 나이 40을 넘겨 늦둥이 딸을 본 그런 귀한 아이가 그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곁에서 그 부모를 지켜보는 동네 주민들의 심경은 어이하랴. 사실 나이 40을 넘어 본 딸이니만큼 그 나이 15세때는 부모의 나이도 어느덧 환갑을 바라본다고 해야할텐데, 이 시절 기준으로는 이미 고령이어서일까. 그 받은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연지 어머니조차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고민 끝에 나서기로 한게 동네 이장이었다. 일단 근본적으로 연지네 집안일이 너무나 딱하고 안타까와 이장으로서 그냥 지켜보기만 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나름 긴 시간 궁리 끝에 결심한 일이다. 아무리 이 시절 그런대로 보편적(?)인 처리방식이라고 해도 사실 당사자에겐 얼마나 기막힌 일이겠는가. 따라서 당사자에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혼자 궁리를 하다 찾아가본 것이 김노인이었다. 이장이야 평상시 그렇게 손재주도 좋고 동네 주민들 모두 좋아하는 그런 김노인이니만큼 친분이 깊었고 그래서 그를 찾아가 한번 사정을 말해보기로 했다.
“ 김선생님, 그래 그간 건강하셨는지요 ? ”
동네이장이라고 해봤자 그래도 나이 한 50 전후. 물론 이 시대 평균수명 기준으로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80의 김노인에겐 사실상 아들뻘 아닌가. 그래서 아버님 친구분이라도 대하는듯한 정중하고 어려운 말투로 입을 열고 그러면서 찾아온 용건을 말한 것이다.
“ 저도 참...많은 시간 궁리를 했는데...사실 제가 가장 안쓰러웠던 것은...그래도 이
렇게 여지껏 고생하며 사신 김선생님께서 장가도 못가고 지금까지 혼자사신 그 문
제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제가 그래도 명색이 동네 이장으로서 이런 문제라도
진작에 해결을 해드렸어야 하는건데... ”
“ 여보시오 이장님. 그래서 내게 대체 하고픈말이 뭐요 ? ”
어쨌거나 결혼이나 자손문제는 당사자에게도 민망한 일인지 그동안 누가 결혼여부나 자녀유무를 물을때는 답변을 회피하며 허허 웃기만 했던 그런 김노인이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와서는 이런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동네이장의 모습에 그저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장은 결국 찾아온 용무를 꺼내고 만다.
“ 당치않소 이장님. ”
허나 막상 이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김노인은 당치 않다며 손을 내저었다. 물론 김노인도 한동네 사는 사람이니 연지네 이야기를 듣지 않을수는 없었을 것이다. 연지네와 김노인의 집안이 친분이 깊다고까지 할 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온 동네에 고장이나 수리 같은일과 관련된 것은 언제나 발벗고 나섰던 김노인이니 그 과정에서 연지 부부와도 면식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것이고 이래저래 연지 이야기를 듣지 않을수는 없는 위치에 있었을법한 김노인. 허나 그래서 더더욱 당치 않다는 듯 손을 내젓고 이장은 그런 김노인을 적극 설득하려 든다.
“ 선생님...그저 사람을 하나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거둬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그저 단순히 연지 그 아이의 딱한 처지만을 생각하고 이런일을 벌이는 것이 아닙
니다. 제가 선생님을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선생님의 인품을 이미 알고도 남
음이 있기에 그런 선생님이시니 그 딱한 연지를 보다 가엾고 애틋하게 안아주실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
사실 이 시대에 이따금 볼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상식선상을 벗어난 일인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김노인이 무슨 평상시 여색을 밝히는 호색한이나 한량이라면 모를까. 그런것과도 거리가 먼 김노인인데 나이 80을 넘겨 그 무슨 망령된 일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에 김노인은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이장도 많은 고민 끝에 김노인을 연지를 거둘만한 상대로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기로 그 불쌍한 연지를 아무 남자에게나 거둬달라고는 할수 없는일. 그 어리고 딱한 연지를 제대로 애틋하게 여기고 감싸안아줄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몇날몇밤을 그 궁리를 하다가 비록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이 가장 결정적인 흠이긴 하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장가도 못가고 혼자 산것만은 분명하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남들일 돕기를 좋아하는 그런 김노인이니 그런 사람이라면 그래도 연지를 거둬줄만하지 않을까 그 생각을 하고 결심한 것이다. 이장은 몇차례 설득을 해도 안되니 나중엔 연지 아버지까지 데리고 와 김노인을 설득하려 들었다.
“ 어르신...그저 이 불쌍한 늙은이를 봐서라도...이 불쌍한 늙은이의 어린딸을 어여
삐 여기셔서라도...제발 좀 거두어 주십시오. 솔직히 이 늙고 병든 애비마저 세상을
떠나면 저 어리고 딱한 것이 어디가서 제 몸 하나나 제대로 건사할지 그조차도 모
르는 것 아닙니까. 어르신 그러니 제발 이 늙은이를 봐서라도... ”
“ 이...이것보시오. 이게 무슨 민망한 일이오 ? 그만 두시오. ”
어쨌든 연지를 나이 40을 넘겨 본 연지 아버지니 지금 나이는 대략 50대 후반. 아무리 그래도 김노인 보다는 스무살 이상이나 연하의 인물이다. 그러니 호칭이나 상하관계는 일단 연지 문제를 별개로 놓고 판단한다면 김노인이 연장자고 어른이 분명하다. 허나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연지 아버지까지 이렇게 나서서 ‘어르신 아니면 저희 불쌍한 여식을 거둬줄만한 곳이 없다’며 울고불고 하고 있으니 김노인은 더더욱 민망해서 어쩔줄을 모를판. 결국 고민 끝에 이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왕 치러주는 혼인식이니만큼 이장은 성대하게는 아니더라도 격식은 다 갖춰 치러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열다섯살 연지는 물론이거니와 따지고보면 김노인도 나이만 80을 넘겼지 사실상 첫 번째 결혼일지도 모르는 일. 그러니 초야(첫날밤)을 치러야 하는 새신랑과 새각시인것만은 변함이 없다. 처음엔 당치않고 너무나 무안한 일이라며 손사래 치던 김노인도 결국 나이 80에 손녀뻘이나 되는 어린 새각시를 맞이하는 일이 되니 결국 좋아서 입이 헤 벌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연지는 나름 체념한 상태인것인지 무표정한 얼굴로 들러리들의 도움을 받으며 신랑에게 4배를 올리고 있었다.
“ 이 사람... ”
그리고 함께 치르게 된 첫날밤. 허나 연지는 울고 있었다. 사실 무슨 천만리 머나먼 낯선곳으로 시집을 온것도 아니고 상대또한 면식이 전혀 없지도 않은 한동네 사는 김노인 할아버지다. 친정이라고 해봐야 그것도 자신이 시집을 오면 아버지 혼자 계신 그 친정집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20-30분이면 도착할수 있는 가까운곳에 있다. 허나 지금 그런게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어린 나이에 그런 몹쓸 봉변을 당하고 이후엔 집밖 출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채 요즘식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은둔형 외톨이’나 다름없이 지금까지 한 몇 달을 살아온 연지이기도 하다. 허나 아무리 그렇기로 열다섯살 어린 나이에 80노인을 남편으로 맞이하다니.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에 연지는 한바탕 서럽게 울 수밖에 없고 김노인이 그런 어린 아내를 달래려 해본다.
“ 이름이...연지라 했던가... ”
그 이름 자체는 김노인도 전혀 못들어본 낯선 이름은 분명 아니다. 무엇보다 그런일이 있었다는 이야기쯤은 김노인도 확실히 들어 알고 있는터. 그런 상태에서 어린 연지를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김노인이다.
“ 자네 심정도 지금...여간치는 않을것이라 짐작은 하네. ”
“ ...... ”
“ 그리고 솔직히...보다시피 나도 뭐 딱히 돈이 많은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도 별로
없네. 하지만... ”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까. 김노인은 딱히 이 상황에서 연지를 위로할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지기까지 한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겨보다 김노인이 이렇게 입을 연다.
“ 내 지금 자네에게 이런말을 하는게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
“ ...... ”
“ 어쩄든 나도 이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 가고 그저 모진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몸
일세. 그러니... ”
아무리 서럽고 슬퍼도 인간의 힘에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너무 울어도 사람은 지치기 마련인지라 연지의 울음소리는 그런대로 그쳐있긴 한데 다만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린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연지. 김노인이 그런 연지를 바로 앉게 하려고 일으켜준다. 그런 김노인의 손길이 과히 싫지는 않은지 아니면 이젠 정말 체념이 된것인지 뿌리치지는 않는 연지. 김노인 앞에 수줍게 앉은채 그의 말을 듣는다.
“ 그저...내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주시게. 그럼 내 나하고 살아가면서
부족하나마 해줄수 있는 것은 다 해줄테니...무슨말인지 알겠나 ? 나중에 내 제삿
밥이나 얻어먹을수 있게 해줄 자손이나 하나 낳게 해달라 그 말일세. 알겠나 ? ”
연지는 여전히 말이없고 김노인의 말이 다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참으로 착잡하면서도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첫날밤인 셈이다.
“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아무튼 나도 어느새 나이가 80이니...
”
확실히 이 시대에 80까지 살았다면 무척 고령임이 불과하다. 다만 옛 문헌을 찾아보면 예전에도 왕실에서 80,90넘은 노인들을 불러 노인잔치를 벌였다느니 또는 역사속의 중신이나 장수들의 생몰년도를 살펴봐도 80,90까지 사는 경우가 그리 적지는 않았다. 다만 어쨌든 나이 60-70정도 되면 세상을 떠나는게 아직은 보편적으로 봐야하는 시절. 나이 80은 적어도 ‘엄청난 고령’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누가봐도 인정할만한 그런 나이. 그런 김노인의 연지를 달래는 말이 이와같다.
“ 그대신 내가 떠나고나면 자네를 자유롭게 해줌세. 그러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내 곁
에 있어주게나. 무슨말인지 알겠나 ? ”
어차피 지금 연지가 떠난다고 어디 갈곳이 있는 처지도 아니니 그건 싫든 좋든 그리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연지의 손을 간곡히 잡아보며 노인의 말은 다시금 이어진다.
“ 허나 그렇더라도...이 약조하나만은 좀 분명히 해주었으면 하네. ”
“ 무슨 약조를요 ? ”
의아한 것일까. 그러니 첫날밤의 새신부가 꺼내는 사실상의 첫마디인 셈이다. 한참을 서럽게 운 것 빼놓고는 지금까지 전혀 말이 없었던 연지인데 그런 연지에게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녀가 말이라도 건네주는것에 감사한지 김노인이 감격해서 그만 연지를 한번 와락 안아보기까지 한다. 연지가 순간 당황할 지경이기까지 한데 그런 연지를 보며 김노인의 간곡한 말은 다시 이어진다.
“ 내가 죽고나면 자네가 이후 이곳을 떠나든 다른이를 만나든 그것까진 개의치 않겠
네. 무엇보다 내가 죽은뒤의 일을 어찌 내가 제어할 방법이 있겠나. 다만... ”
“ ...... ”
“ 다만 자네가 다른 사람을 만나든 누굴 만나게 되든간에 자네하고 나 사이에 낳은
아이는... ”
연지가 말없이 김노인을 본다. 어쨌거나 자기 아이를 낳아달라는 소리가 아니던가. 지금 연지의 심정은 어떨까.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하고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인걸까. 여하튼 김노인은 거듭 간곡하게 이렇게 연지에게 원한다.
“ 자네와 나 사이에 낳은 아이가 이 김OO의 아이인것만은 분명하게 해달란 말일세.
무슨말인지 알겠나 ? 이 김OO이의 제사를 지내줄 김OO의 아이인것만은 분명하게
해달란 말일세. 알겠나 연지 ? ”
급기야 연지의 이름까지 부르며 간곡하게 애원하는 김노인. 헌데 그러고보니 연지 입장에서도 그의 실명을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거니와 어쩌면 이 동네 주민들중에도 김노인의 실명을 정확히 아는이는 그리 많지 않을수 있다. 보통 연지에 기억에 김노인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호칭은 ‘김노인’,‘김영감님’ 이런식이었고 김노인이 나이들기 전에는 ‘김씨’니 ‘아저씨’ 같은 호칭으로 불렸겠지만 여하튼 관공서에서 호적이나 이런 것을 관리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 다음엔 김노인의 정확한 실명을 아는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헌데 졸지에 그런 김노인의 실명까지 알게돼버린 연지. 여하튼 이렇게 내가 이 사람의 아내가 되는것이로구나. 그게 실감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다시 흘러내리는 연지의 눈물을 김노인이 차분하게 닦아주는 가운데 연지가 착잡한 표정으로 김노인을 바라보고 있다.
8월 중순이면 장마철은 분명 아니고, 무더위가 한참 기승을 부릴때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집중호우가 내리거나 태풍이 오기도 하는 그런때이다. 다만 아직은 일기예보 시스템이 그리 정확치는 못할때이고 일반인에겐 아직 라디오도 귀하던 시절이니만큼 이런 시골마을에서 정확한 일기예보를 접할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옛적 어르신들 말씀대로 이때쯤 되면 비가온다, 이때쯤 되면 더위가 한풀 꺾인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대로 때를 맞춰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것일뿐. 그렇게 살아가는 어느 한여름밤이다.
이례적으로 한바탕 소나기가 몰아치고 있었다. ‘우르릉 쾅쾅~~~!!!’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 태풍이든 집중호우든 이러다 어디 거목이라도 하나 벼락을 맞아 쓰러지거나 집채라도 강풍과 호우에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비바람이 세차게 불고 천둥번개가 몹시도 내려치는 어느 여름밤. 그 여름밤의 요란한 천둥,번개 소리가 무색할만큼 한바탕 신음소리가 한 시골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만 비소리며 천둥,번개 소리가 너무 요란해 그 한여름밤의 신음소리는 되려 소박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다름아닌 김노인과 연지가 성관계를 나누는 소리다. 어쨌거나 김노인의 나이는 80. 손재주가 있어 낫이나 쟁기같은 이런저런 물건들을 잘 만들고 고장수리 같은것도 잘 하는 김노인일지라도 나이가 나이니 기력은 쇠해있을터. 그렇더라도 80년을 참아온 정력이라서일까. 연지와 관계를 나눌때는 그야말로 80년동안 못한 한이라도 한꺼번에 쏟아넣듯 혼신의 열정을 다해 쏟아붓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정은 그야말로 한여름 뜨거운 태양마저 무색케 할 지경. 밖에는 비바람 거세게 불고 천둥,번개 소리 요란하건만 그런 차디찬 비바람 한가운데 있는 김노인의 집에선 노인의 뜨거운 열정이 한바탕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편 연지는 연지대로 이런 김노인의 열정을 어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쨌거나 성폭행을 당한 상처가 있는 그런 어린 연지가 아닌가. 그래도 어쨌든 강제로 당하는것과 서로간의 합의하에 나누는 것은 그 느낌은 다른것인지. 아무리 그래도 막상 이렇게 관계를 갖다보면 어느덧 반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일이기도 한 그때의 봉변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날수도 있을터인데. 여하튼 한여름밤 뜨거운 정사를 마친 팔순노인과 10대 소녀는 바닥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비바람 때문에 날이 차서 김노인이 감기들세라 어린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주기도 하고. 연지가 김노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 어르신... ”
간밤에 요동치듯 비바람소리 거세더니 다음날엔 거짓말같이 해가 쨍쨍 나 있었다. 덕분에 날은 다시 더워졌고. 아침식사를 곱게 차려주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연지가 김노인을 불렀다.
“ 왜 ? 무슨 할말이라도 있는가 ? ”
“ 아뇨...뭐 꼭 무슨 할말이 있다기 보담은... ”
무슨 쑥스럽거나 민망한 일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도 있는지 공연히 망설이는듯한 모습. 그러다 궁금해서 재촉하는 나이많은 남편 김노인을 보며 연지의 말은 이와같이 이어진다.
“ 실은 궁금한게 있었어요. ”
“ 내게 궁금한게 ? ”
“ 어르신 윗대...부모님들은 어떤 분들이셨어요 ? ”
한참 망설이다 꺼낸 질문이라더니 궁금한게 고작 그거였던가. 뭐 어쨌거나 김노인이 이제 연지의 남편인 이상 아내 입장에서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일일수도 있을터이고,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김노인의 과거나 출생내력은 동네사람 대다수에게 여전히 베일에 쌓여져 있는 수수께끼였다. 여하튼 한 나이 40 전후 했을때쯤에 외지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어찌어찌 살게되었다는것만 알뿐. 그 이전의 출생이나 전력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런 수수께끼의 노인이었으니 연지 입장에서도 비단 이렇게 부부가 되어있는 상태가 아니더라도 그녀 역시 같은 동네주민 입장에서도 궁금한일이 되긴 했을 것이다. 연지의 말이 이어진다.
“ 듣기로는 여하튼 OO리에서 사신지는 한 40년 가까이 되셨다면서요 ? 저희 아버
지,어머니로부터 듣기로도 그랬다고 하던데... ”
“ 허허...40년이라... ”
김노인 입장에서 새삼 자신이 이 동네에서 산지가 그렇게 오래되었나 하는 자각이 들어서인지 그 숫자를 잠시 되뇌어 보기도 한다. 그리고는 착잡한 표정이 되는 김노인. 연지의 말이 이어진다.
“ 제가 물으면...안 되는 질문인건가요 ? ”
혹시 괜히 물으면 안되는 김노인의 과거나 상처라도 건드린 것은 아닐까 싶어 연지가 이와같이 묻고 허나 김노인이 바로 손을 내젓기는 한다.
“ 아닐세 아냐. 다른 동네사람들이 내 과거에 대해 뭐라고 어찌 수군거렸는지는 모
르겠으나...뭐 그렇게 딱히 대단하거나 엄청난 비밀은 내게 없어... ”
사실 80년 인생은 정말 일일이 다 이야기하자면 제대로 된 장편소설이나 그 시대적 배경에 따라선 진짜 엄청난 분량의 대하소설 한편이 나올만한 이야기가 된다.(* 이병주의 대하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 비슷한 수준의 분량은 뽑을수 있을터. -.-;;) 그 파란많은 사연을 이 짧은 아침시간에 김노인이 어린 연지에게 어찌 다 들려줄수가 있을까. 다만 어느정도 내력은 들려준 적이 그간 있을법도 한데 연지가 그런 김노인의 손을 잡아본다.
“ 여보... ”
‘ 여보 ? ’ 순간 깜짝놀란 김노인이 그 단어를 다시금 되뇌어본다. 헌데 순간 연지가 스스로도 놀란 듯 당황해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한다. 그러고보면 김노인과 연지가 혼인을 치른지는 어느덧 서너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문제의 성폭행 사건은 두 사람의 혼례가 있기도 최소한 반년 이상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허나 열달이 지났든 1년이 지났든 여인의 입장에선 지우기 쉽지 않았을 상처. 그래서 어디 딱히 장래를 장담하기도 어려운 처지인 그녀를 동네이장이 고민하다 김노인과 혼인까지 시켜준 것 아닌가. 여하튼 성폭행 사건이 있은뒤로부터는 반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치러진 혼사. 그리고 김노인과 연지가 결혼한지 서너달 정도의 시간. 다만 연지 입장에선 그야말로 체념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치러진 나이많은 노인과의 혼사인 탓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아직 ‘여보’라는 호칭을 쓴적이 거의 없다. 단순히 나이어린 신부의 수줍음이라기 보단 원치않는 혼사였던데가가 아버지뻘도 아닌 그야말로 할아버지뻘 되는 신랑이기에 연지 입장에선 ‘어르신’ 혹은 ‘할아버지’ 같은 호칭이 더 자연스러웠을터. 허나 연지 스스로도 이제 김노인과의 이런 혼인생활이 익숙해져가고 있어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김노인을 여보라 불렀다.
“ 여보 ? 지금 날 여보라고 부른겐가 ? ”
연지에게서 그런 호칭이 나올것이란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서너달을 지내온 것일까. 김노인은 뜻밖에 나온 연지의 그런 호칭에 감격해서 어쩔줄 모르고 순간 당황하고 수줍어 어쩔줄 모르는 연지에게 그 호칭을 다시 불러줄 것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 허허 참...자네에게서 그런 호칭이 나올줄은 몰랐군. 다시한번 불러줄수는 없나 ?
”
“ 아...아니 저 그게 아니라... ”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 연지. 허나 김노인은 연지의 팔이며 다리를 번갈아 잡아보며 좋아 어쩔줄 모르며 거듭 연지에게 요구한다.
“ 허허...이 사람 방금 자네 입으로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날더러 ‘여보’라고 그러니
다시한번만 불러달란말일세. 방금처럼 그렇게... ”
“ 여...여보... ”
결국 어쩔수없이 다시금 연지에게서 나오고마는 그 단어 여보. 막상 그렇게 다시금 그 단어를 입에 담고 나니 연지는 웃음도 울음도 아닌 뭔가 알 수 없는 야릇한 표정이 되고만다. 김노인은 그런 연지에게서 ‘여보’라는 호칭을 들은것만으로도 좋아서 이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기특하다는 듯 연지를 한없이 쓸어안으며 뽀뽀도 해보고 여기저기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그저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노인의 모습이다.
두달 ? 석달까지는 확실히 아니고 두달이 조금 넘은 시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계절적으로 따지면 가을이 한참 무르익고 날씨도 많이 선선해지다 못해 슬슬 쌀쌀함이 느껴질때인데 연지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이 그 무렵이다. 처음엔 그저 뭘 잘못먹거나 체했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헌데 어쨌든 김노인도 인생 80년을 살며 그런대로 산전수전을 다 거친 사람이니 결코 쑥맥은 아니다. 적어도 음식 같은 것을 잘못먹은 체증이나 배탈같은 것이 연지에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짐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김노인 집이 잘사는 집도 아니고 그저 집안에 작은 대장간 시설 같은거라도 하나 만들어 농기구나 이런저런 도구를 만들어 싼값에 파는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집안에 식단이라고 해봐야 늘 먹는 김치와 두부 그리고 간단한 나물찬 한두가지 정도. 그렇게 먹는 사람들이니 특별히 상한 음식을 먹지 않는한 연지든 김노인이든 배탈이 난다거나 할 일이 없다. 김노인이 그래서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짐작에 바로 연지를 읍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진찰을 해본 의사가 무척이나 놀라며 그리고 특히 김노인을 경이로움과 신비함 그리고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시골병원이니만큼 규모가 크지 않고 의사의 부인이 간호사겸 비서겸 내조자 역할을 하며 운영하는 병원이니 만큼 그런 간호사 아내의 눈총마저 받을 지경으로 의사의 김노인에 대한 부러움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사실 김노인과 연지가 사는 OO면에서 읍내까지는 거리가 좀 있다. 그러나 나이 80이 다 되도록 장가도 못간채 동네에서 그런저런 고장이나 수리 같은일을 도맡아 해주는 그런 노인이 산다는 것 자체가 이채로운 사연이기도 하고 또 어느어느 마을에서 어린 여자에가 몹쓸 봉변을 당했다던가 그런식의 소문도 나지 않을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어린 여자애를 80 넘은 노인한테 시집을 보냈다더라’ 하는식의 소문이 구체적으로까진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저 귀동냥으로도 듣게될 수는 있는 일이기에 바로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들은적이 있는 읍내 의사 입장에선 김노인을 그저 놀라움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말로만 듣던 그 소문의 당사자(* 어느 마을에 대장장이 비슷한 일을 하며 동네사람들을 도와주는 장가못간 80노인이 있는데 그 노인한테 동네에 성폭행 피해를 입은 어린 여성을 시집보냈더라는식의 소문)를 눈앞에서 직접 보게되니 의사로선 더더욱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순간 김노인의 손을 와락 잡아보기까지 하며 이렇게 말한다.
“ 어르신...정말 축하드립니다. 허허...세상에 정말 어떻게 이런일이...저도 이런일이
현실에서 있을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
어쨌든 80 넘은 노인이 나이어린 신부를 맞아 아이까지 갖게 된다는게 어디 보통의 일인가. 의사는 그저 놀랍기만 해 김노인에게 이렇게 축하의 말을 전하는것이고 사실상 아내의 임신을 확인한 셈이라 김노인도 입이 떡 벌어진다.
“ 그럼 정말 제 아내가 아이를 가졌단 말입니까 ? ”
“ 예, 아마 저희가 종합적으로 검진을 해본 결과로는 2개월은 확실히 넘은 것 같습
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르신. ”
김노인은 너무 좋아서 임신을 한 어린 아내 연지를 얼싸안아보기도 하고 그저 어쩔줄 모르며 좋아하고 있었다. 연지도 어쨌든 좋은일이라서인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 으허허허...여보. 각시야...고마워. 세상에 나한테 정말 이런일이 벌어지리라곤 꿈
에도 생각 못했는데. ”
“ 여보...그럼 제가 정말...제가 아이를 가진거란 말이죠 ? ”
연지도 여전히 믿겨지지 않는 듯 감격해서 어쩔줄을 모른다. 사실 연지 입장에서도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맛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어느덧 1년여전의 일이지만 그런 몹쓸 봉변을 당하고 한동안은 정말 죽고싶은 절망적인 느낌이었고 이대로 죽어버리던가 아니면 집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세상과 영원히 단절된채 방구석에서만 살다 죽어버릴까. 별의별 생각을 다했던 연지였다. 80 넘은 노인에게 시집을 보낸다고 할때만해도 그저 체념의 기분이었는데, 어쨌든 김노인은 원래도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역시 그런대로 괜찮고 존경할만한 인물이었고 또 간간히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듣게되는 남편의 지난시절 이야기도 연지 나름대로 그의 처지와 현재 모습을 이해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진심으로 연지는 김노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가게 되는 단계였고 그런 상황에서 생긴 두 사람의 아기. 그러니 연지로서도 얼마나 놀라고 갑격스럽지 않을수 있겠는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두 사람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 여보... ”
연지가 김노인을 이렇게 불러보고 김노인은 연지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다. 사실 오늘 읍내에 다녀온 것은 둘이 함께 다녀온것이고 상식적으로도 노인인 김노인이 더 피곤하지 젊은 연지가 더 피곤하고 지쳐있겠는가. 그러나 김노인은 어린 아내 연지가 이것보다 더한걸 요구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들어줄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고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 고마워...정말 고마워 여보... ”
“ 여보... ”
연지도 그저 감격스럽기만 한 모습. 김노인이 그런 연지를 보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 솔직히 처음 막상 자내를 내 신부로 맞아들일때도...그런 생각이었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그저 사람하나 살리는 셈 치고 거둬주는것이니 내가 살아있는동안
만 그저 저 사람 아끼고 위해주고 그러다 나 죽으면 그냥 자유롭게 해주면 그만이
겠지 그 생각을 했던거였어. ”
“ 당치않아요 여보. ”
“ 허나...말타면 종 부리고 싶어지는게 사람의 성정이라 했던가. 막상 결혼을 하고보
니 기왕 이렇게 된거 나중에 내 제삿밥이라도 차려줄 자손 하나는 있어야겠다 그걸
자연스럽게 바란것이지만...솔직히 큰 기대는 안 했었어. 헌데 이런날이 오다니. ”
“ 여보...걱정하지 마세요. ”
“ ??? ”
“ 설사 당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저 당신곁을 안 떠나요. 어쨌든 전 당신의
아내고 이렇게 당신의 아이까지 가진몸. 설사 당신이 먼저 제 곁을 떠나신다 하더
라도... ”
여하튼 80이 넘은 김노인인 만큼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가 얼마 살지 못할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했을 것 아닌가. 허나 지금까지는 연지가 어떤 생각을 했든지 간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노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이 아이는 분명히 당신의 아이고 당신의 대와 핏줄을 이어갈 아이. 그런 아이라
고 분명히 가르칠거에요. 그리고 나중에 저 세상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더라도 부끄
럽지 않도록... ”
“ ...... ”
“ 당신 닮은 훌륭한 아이로 잘 키울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그러고보니 어린 나이에 벌써 나중에 세상 떠날 생각까지 하고 있는것인가. 어쨌거나 김노인에 대한 정조와 절개를 잃지 않겠노라고 이렇게 맹세하는 연지의 모습. 김노인은 그런 연지가 그저 이쁘고 사랑스러워 뽀뽀하고 안아주고 주물러주고 쓰다듬어주고 그저 어쩔줄 모를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덧 연지가 만삭이 되었고 진통을 시작했다. 그러고보면 연지가 몹쓸 봉변을 당한 시점에서부턴 이미 2년정도의 시간이 지난 셈이고 김노인과 혼인하여 아이까지 갖게된 시점으로부터는 열달, 그러니 두 사람의 결혼생활도 그런대로 1년 좀 넘게 지속되어왔다고 봐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연지의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급하게 김노인이 산파를 불렀고 그네들의 도움을 받으며 연지의 출산이 진행되고 있었다.
“ 거...아직도 안 된겁니까. ”
진통이 심한지 한참동안 어느덧 나이 열일곱인 연지의 찢어질듯한 비명소리만 들려왔고 김노인은 그저 밖에서 안절부절할뿐이었다. 김노인이 아무래도 불안해서 몇 번이고 방안을 들여보려는 시늉까지 할 지경이고 산파들이 안 되겠다는 듯 적당히 핑계를 대 김노인을 집안 멀리까지 보내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일이 다 끝나면 자신들이 부를테니 제발 방해좀 하지 말라며 그런식으로 김노인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곳에 가 있게했고 진통이 생각보다 심한듯한 연지의 출산과정은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 어...어찌되었나요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산파의 말에 그저 그대로 따를뿐이었던 김노인. 한참만에 그곳으로 아까 김노인을 거기까지 쫒아냈던 산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있는때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사람 표정 정도는 알아볼수 있긴 한데, 헌데 웬지 산파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불길한 예감까지 들 지경인데 산파가 일단 김노인을 진정시키려 한다.
“ 어르신...일단 진정하시고 차분하게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세요. ”
“ 아...아주머니 왜요 ? 혹시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했나요 ? ”
“ 아...아니에요. 무슨 당치도 않은. 아기는 아주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가 튼실하
게 아주 잘 태어났어요. 그러니 그건 안심하셔도 돼요. ”
어차피 전해줄바에는 기쁜소식부터 전해주는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일까. 너무 불안해하는 김노인을 일단 그런식으로 진정부터 시켜주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산파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잘 태어났다는 사실부터 확인시켜준다. 헌데 그렇다면 산파의 표정이 왜 이렇게 침울한것일까. 한참만에 울음을 터트리던 산파는 그러다 겨우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이렇게 입을 연다.
“ 아이고 참...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정말이지 천지신명이나 신령님이 계시면...어
떻게 이렇게 기가막힌 인간사를 만들어놓을수가 있는지... ”
“ 아주머니 왜 그러세요 ? 도대체 무슨일이 있는건데요 ? ”
80 넘은 늙은 신랑이 지금 열일곱살 어린 각시의 현재 상태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일단 어쨌든 아이는 80 노인에게 천지신명이 만들어주신 기적인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잘 태어났다는데 그럼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것일까.
“ 에이구...기구한 것...에이구 그 불쌍한 것. 이 불쌍한 것을 대체 어찌하면 좋을꼬.
”
“ 아주머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건데요 ? 저희 집사람한테 무슨일이 있는건가요 ? ”
“ 어르신 마누라가 죽었어요. 그 젊고 이쁜 새각시가 죽었단 말이외다. 어느덧 나이
열일곱인 연지가 진통이 심했는지 글쎄 제 아이만 그렇게 튼실하게 잘 낳아놓고 그
것은 글쎄 기구하게도 저 세상으로 간 것 같아요. 지금 숨을 쉬지 않고 있어요. ”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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