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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블랙핑크 지수 (8.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써니 2020
 

                                               - 우정, 그후 30년 

 

상진은 한 방송국 앞에 와 있다. 사실 상진도 방송국에 와 보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본관이니 별관이니 신관이니 하는 개념 구분은 잘 없긴 한데, 여하튼 대충 분위기 봐서 적당한 매점 휴게실쪽에 앉아 누구를 좀 만났으면 한다고 관계자에게 말을 전하긴 한다. 그렇게 말을 한다고 당사자가 나와줄지는 확실치 않은데 일단 다행히 관계자가 전해주긴 했는지 당사자가 그곳으로 나온다. OOO이라고 하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방송사 기자이면서 종종 주말 10분짜리 뉴스 진행을 담당하기도 하는 그런 방송기자 겸 앵커다. 

 “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구요 ? ” 

 OOO 입장에서야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니 의아하면서도 살짝 경계하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OOO이 무슨 유명한 탤런트나 아나운서가 아니니 열성팬이나 이런게 있을 가능성도 별로 없고 그래서 더더욱 의아해하는듯한 모습. 한편 상진도 상진대로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해야할지 몰라 그저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사실 상진도 나름 긴장하면서 무엇보다 가급적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진지하게 말을 전해야겠다 오만가지 생각을 머릿속으로 다 해 보긴 했지만 일단 근본적으로 상진도 방송국을 찾아와보는 것 자체가 첫 경험인데다가 비록 TV로 보거나 한 적은 없어도 그런 이 방송사 기자겸 뉴스앵커쯤 되는 위치에 있다는 여자를 가까이서 직접 보니 여러 가지로 긴장하고 떨리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해둔 나름 논리적이고 차분한 말들은 그 긴장감속에 어느새 다 지워져버리고 사라진 판이다. 결국 상진은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해야할지 몰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와서는 잠시 손으로 이마를 짚어보기까지 한다. 이런 상대의 태도에 의아해진  OOO이 묻는다. 

 “ 어디...불편하신데라도 있으세요 ? ” 

 “ 아...아닙니다. 그런건 아니구요...허허허... ” 

 순간 당황한 상진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젓는다.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입을 연다. 

 “ 일단 제 소개부터 하는게 낫겠군요. 제 이름은 최상진이라고 하고 OO그룹 OO본 

  부장으로 있는 사람입니다. ” 

 OO그룹이라고 하면 공영방송 기자에 뉴스진행까지 하고 있는 OOO 입장에서도 못들어본 기업체가 아닌지라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한다. 헌데 대체 그런 기업체의 본부장까지 한다는 사람이 자신을 이 시간에 왜 찾아온단 말인가. 더더욱 궁금하고 의아해서 상진을 바라보고 상진은 일단 이런식으로 용건을 이어간다. 

 “ 그...실은 저희 업체에서 새로 출시하는 신제품이 있는데 그 광고모델을 섭외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 

 그런 광고모델 섭외를 부장급에서 직접 하나 ? 사실 일반적인 연예인이야 CF가 되었든 그 외 다른 무엇이 되었든 보통은 소속사 매니저를 통해 연락을 취하거나 접촉을 시도해보겠지만 OOO의 신분은 일단 공영방송 기자일뿐 그런 연예인은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도 이런 경험은 지금까지 잘 없었나보다. 그래서 의아함과 경계심이 겹쳐지는 그런 표정과 분위기로 상진을 바라보는데, 일단 상진은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이건 제 명함이구요...여하튼 저희 회사 신제품 광고모델로 적당한분을 찾다가...그 

  래서 이렇게 찾아온겁니다. ”  

 “ 아...네에... ” 

 뭐 그런대로 납득이 가는 용건이라서일까. OOO이 고개를 끄덕이긴 한다. 그리고 아직 그런 CF 출연 경험까지는 없는 OOO임을 감안하면 처음 들어오는 이런 제안이고 그러니 순간적으로나마 어떤 설레임이나 흥분 같은 감정이 있을법도 하다. 일단 OOO은 무슨 CF 모델 섭외차 왔다는 최상진이란 사람을 별 의심은 안 하는 눈치이긴 한데, 그래서 이렇게 말을 건넨다. 

 “ 그럼 뭐...이리로 연락드리면 되는건가요 ? ” 

 어떻게보면 CF 모델 섭외에 승낙한것만 같은 이런 질문. 그러니 상진 입장에서 더더욱 아찔한 감정마저 느껴지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이제 어찌해야하나’. 난리났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냥 밀어붙일까. 아니면 이쯤에서 그냥 달아나는게 상책일까. 그렇게 한 2-3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일단 이 자리만큼은 상대방을 최대한 불쾌하지 않게 순리적으로 마무리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적당히 그 정도에서 마무리하려 들긴 한다. 

 “ 네, 그럼...어쨌든 전...CF 모델 섭외차 온 것이니까요. 생각있으시면 그리로 연락 

  주십시오. ” 

 나중에 뒷 수습을 어쩔 작정인지. 일단 OOO은 별 의심없이 상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눈치고 상진은 너무 시간을 길게 끌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그 정도에서 용건(?)을 마무리하고 방송국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방송국을 다 빠져나와서는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어질어질한 머릿속이 아직도 제대로 진정이 안 되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어디 아픈 사람이나 정신에 좀 문제가 있는 사람 아닌가 오해할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다. 얼마나 오랜시간 방송국 담벼락 옆 한쪽에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수없이 자신의 얼굴만 매만져보고 있단 최상진. 그러다 한참만에 정신을 겨우 수습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 규명아... ” 

 이러는 것을 보면 상진이 확실히 풍규명의 존재를 잊지는 않았나보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 그저 30년 세월이 너무 길어서 학창시절 절친이었건만 그 긴 시간동안 그냥 잊고 살았던것인지 아니면 자신은 어쨌든 4년제 대학을 나와 대기업 본부장까지 지내는 몸으로 고등학교도 채 안나온채 공장 노동자나 중소업체 직원등을 전전하며 산 사람과 친구로 연결되는 것은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했던것인지. 여하튼 어찌보면 최상진은 풍규명이란 존재를 애써 잊어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한 장면이다. 여하튼 상진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추운날씨에 공연히 맑기만 한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금 탄식을 내뱉는다. 

 “ 규명아...풍규명... ” 

 여하튼 이제 풍규명은 가버리고 없는 존재. 게다가 상진은 어쨌든 독일출장 문제 때문에 그 풍규명이 사경을 헤매는동안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결국 규명이 죽고 장례까지 다 치르고 난 뒤에야 귀국하게 되었던 상진. 그런 최상진이 이렇게 탄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규명아...이 녀석아... ” 

 어쨌든 납골당에 안치가 되었다고 하니 나중에 현우나 상훈의 안내를 받은 또는 규명의 동생 봉명등의 안내를 받든 찾아가면 될터인데, 상진은 그저 공원 벤치 한쪽에 주저앉아 한참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있을 따름이다. 

 

 6개월쯤 전의 일이다. 

 안동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규명이 (* 건강문제 때문에 일은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서울의 큰 병원에서 정밀치료나 수술을 받아보는게 어떴겠느냐는 의료진의 권유가 있어 봉명이 거듭 고민하다 결국 서울로 옮긴지 얼마되지 않은때다.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기력이 조금은 남아있어 병문안을 온 가족이나 지인과 간단한 대화 정도는 나눌수 있는 그 정도 상태일때다. 봉명이 오빠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사실상 그를 간병하고 있을때이기도 한데 그렇게 된지 얼마되지 않은 무렵이다. 

 규명은 3인 병실에 일단 입원해 있었는데 병실에는 한 침대는 비어있고 다른 한 침대에는 70대 노인이 입원해 있었다. 대충 그런 병실. 헌데 하루는 휴일쯤에 TV를 시청중인데 70대 노인이 딱히 재미있는 프로가 없는지 간병인인 아내를 시켜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는 중이었다. 헌데 그때였다. 

 “ 저기...어르신 죄송하지만 잠시만요. ” 

 노인과 그의 아내가 돌아서 규명을 보았고 규명이 이와같이 원했다. 

 “ 저...조금전에 그 채널 잠시만 좀 다시 보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 ” 

 아마 노인의 아내가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던중 잠시 스쳐 지나갔던 채널을 규명이 보길 원하는 듯 했다. 노인 부부 입장에선 저 환자가 그냥 즐겨보거나 재미있어하는 프로가 있나보다 하고 시청권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규명이 보길 원하는 프로는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퀴즈와 토크쇼가 반반쯤 섞인듯한 대충 그런 내용의 프로였다. 원래 규명이 이런류의 프로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규명은 그 방송내용을 한참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는 TV를 집중해서 시청하기도 쉽지 않은데 여하튼 나름 주의를 기울여 방송화면을 지켜보는 규명. 모르는 사람들이 볼때는 그저 ‘저 사람이 재미있어하는 프로인가보다’ 그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 그런 장면이다. 

 그로부터 며칠후. 봉명은 서울의 아는 친구집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병원과 그곳을 오가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 봉명이 오빠 간병을 위해 병원을 찾은 날이다. 규명이 봉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 봉명아... ” 

 “ 왜요 오빠 ? ” 

 어쨌거나 건강상태가 많이 악화된 오빠를 동생은 그저 안타까이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런 봉명을 보며 규명이 이렇게 말한다. 

 “ 엄마...젖이 먹고싶어... ” 

 “ 네 ? ” 

 순간 봉명은 자신이 순간 뭘 잘못들었나 싶어 어리둥절해하는데 규명은 그런 봉명에게 강조라도 하듯 악화된 건강상태에서도 제법 목소리를 높여보려 기를쓴다. 규명의 말이 이어진다. 

 “ 엄마 젖이...먹고 싶어...엄마 젖...흑흑흑... ” 

 “ 엄마 보고 싶어요 오빠 ? ” 

 하지만 이 풍규명 5남매에게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몇차례 집을 나갔다가 몇 년만에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곤 했던 어머니. 그런 가정에서 규명이 사실상 상명(남),봉명(여),정명(여),영명(남) 네 동생의 부모노릇을 사실상 하고 살았으니 이들 5남매에게 온전한 ‘엄마의 기억’은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헌데 규명이 사뭇 필사적으로 봉명한테 이렇게 애원하는 것이다. 

 “ 엄마젖이 먹고싶다...엄마젖이...흑흑~~~!!! ” 

 “ 오빠...지금와서 엄마는 찾아서 뭘 어쩌자구요 ? ” 

 사실 봉명에게도 엄마의 기억은 거의 없거나 좋은 기억도 별로 없고 사실 이미 나이 30-40대에 이른 이들 5남매의 나이를 고려해봐도 5남매의 아버지든 어머니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봉명이 되려 답답하다는 듯 오빠를 힐난하듯 말하고 헌데 규명이 순간 손을 내저으며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디론가 손가락을 뻗는다. 

 “ 저기... ” 

 의아해서 봉명이 바라본 규명의 손가락 방향은 다름아닌 TV 화면. 헌데 거기 규명이 최근 즐겨보고 있는 한 케이블 오락프로가 방영중이었다. 마침 프로에 출연하는 젊은 여성 패널 한명이 TV 화면에 비치고 있었는데 그 여인을 잠시 바라보던 규명이 울음을 왈칵 터트린다. 놀란 봉명이 그런 오빠를 진정시켜보려 하는데 규명이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 어머니를...닮았어... ” 

 “ 네에 ? ” 

 “ 어머니를 닮았어...지금 저기 방송에 나오는...아나운서... ” 

 그러고보면 여하튼 집중에서 해당 프로를 시청하고 있었지만 방송 내용을 100% 정확히 파악하긴 쉽지 않았던것일까. 사실 규명이 지목한 그 방송인은 아나운서라기 보단 최근 이런저런 케이블 예능프로그램 같은데 종종 나오곤 하는 이른바 ‘방송예능인’에 해당되는 그런 여자였다. 여하튼 그런 장르까지 구분해서 판단하는건 규명으로선 한계가 있는지 그렇게 막연히 ‘아나운서’로 판단한 듯 하고 그리고는 어느 밤늦은 시간. 옆의 노인환자는 잠들어 있을 때 봉명과 둘이만 있는 자리에서 규명이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 젖을...먹게 해줘... ” 

 “ 오빠...도대체 무슨말을 하는거에요 지금 ? ” 

 여하튼 ‘엄마젖이 먹고싶다’는 말을 근래들어 봉명 앞에서 여러차례 반복했던 그런 규명이다. 물론 그동안 사실상 부모없이 특히 어머니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그런 5남매를 생각해본다면 엄마를 그리워한다던가 그런 정서가 가슴 한켠에 적잖이 자리잡아 있으리라는것까진 충분히 생각해볼수 있는 일이다. 헌데 규명은 단순히 엄마가 ‘보고싶다’는게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엄마젖이 먹고싶어... ” 

 “ 오빠 도대체...지금 그걸 뭘 어쩌자구요 ? ” 

 일단 규명이 무슨말을 하고 싶은것인지는 대충 파악한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고 설사 살아계시다 할지라도 나이 이미 70이 넘었을 할머니인 그런 사람을 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지. 헌데 규명이 그런 봉명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지 친동생쯤 되니까 이해해줄수 있는 심리나 정서지 다른 여자가 봤다면 혹시 변태나 사*코 아닌가 그런 의심을 할만한 고백이긴 하다. 

 “ 그...케이블에 나오는 아나운서... ” 

 정확히 아나운서는 아니고 케이블 예능에 종종 나오는 젊은 방송예능인이긴 하지만 규명은 여하튼 ‘아나운서’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 엄마...젊은 시절을 많이 닮았어. ” 

 다른 네명의 동생들과 달리 장남인 규명은 여하튼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규명이 어느덧 몸이 많이 안 좋아져 살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 모르는 규명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엄마 대신이라고 생각하고...먹게해줘. 내 죽기전 마지막 소망이야...그냥 엄마정을 

  대신 느끼게 하는 순간이라 생각하고 한번만 먹어보고 싶어. ” 

 대체 이 무슨 황당하고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아무리 사실상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채 소년가장 노릇을 하며 지금껏 살아온 풍규명이고 그래서 그만큼 모정에 대한 굶주림과 결핍이 가득한 그런 풍규명의 자아라 할지라도 실제 ‘엄마’도 아닌 그냥 젊은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막연히 좀 닮은 느낌이 나는 방송에 출연하는 아나운서. 아니 엄밀히 따지면 아나운서도 아니고 그냥 요즘 이런저런 케이블 예능에 자주 출연하는 ‘방송예능인’이다. 여하튼 봉명이 일단 오빠의 소망이 그렇다니 해당 방송인의 이름과 출연하는 프로그램 몇 개를 확인하긴 했다. 규명의 동생에게 마지막 남기는 말이 이와같았던 것이다. 

 “ 엄마젖이라 생각하고...죽기전에 단 한번만 먹게 해줘...그냥 엄마젖이라 생각하고 

  단 한번만 먹게해줘. 느끼게해줘. 엄마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그러니...죽기전에 제 

  발 단 한번만이라도...내 마지막 소망이니...내 마지막 소원이야 봉명아... ” 

 그게 규명의 마지막 남기는 소망이자 유언이었던 셈이다. 무슨 유산을 누구에게 물려주라는것도 아니고 유골을 어디 뿌려달라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전 어떤 채무나 금전관계로 엮인 인연이나 악연을 좀 풀고싶다는 그런 유언(* 가령 옛날에 누구한테 꾸거나 훔친돈을 갚고 싶다거나)도 아니고 마지막 소원이자 소망이라며 엄마가 부재한것이나 다름없이 소년가장으로 50년 인생을 힘들게 살았던 풍규명이 죽음에 임박한 시점에서 동생에게 남긴말이 그것이다. 모 케이블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예능인 아무개(규명은 아나운서로 오인)가 엄마의 젊은 시절을 그럭저럭(확신하는것도 아니고) 닮은 것 같으니 엄마정을 대신 느껴보고 싶으니 엄마정을 대신한다 생각하고 그 방송인의 젖을 ‘먹게’ 해달라는 것. 엄마정을 느끼지 못하고 힘들게 50년 만고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풍규명의 마지막 소망이 그것이었던 것이다. 

 

 봉명이 그와같은 유언을 차마 정현우나 신상훈한테는 전하지 못하고 반드시 최상진에게 전해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운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사실 결코 정상적인 유언이 아니고 자칫 변태적이고 엽기적으로 보일수도 있는 유언이 아니던가. 아무리 풍규명의 지난 50년 힘들게 살아온 인생사와 특히 어머니가 부재했던 인생을 모두 이해한다 치더라도 그것도 어머니와 그저 좀 비슷하게 생긴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방송인의 ‘젖’을 엄마젖 혹은 엄마정을 대신 느끼고싶어 먹고싶다니. 아무리 마지막 소망이라고 해도 차마 아무에게나 전해주거나 쉽게 말할수 없는 그런 성질의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봉명 입장에서는 오빠 풍규명의 친구로 초등학교 5,6학년때부터 같은반이었고 따라서 자기집에도 종종 찾아오곤 했단 최상진까진 알아도 정현우나 신상훈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게 문제였다. 여하튼 30년전 막내동생 영명(남동생)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때 한번 함께 병문안을 왔을 때 잠깐 본게 전부였던 두 사람. 게다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봉명에겐 그 일조차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런 정현우니 신상훈이니 하는 사람에게 자칫 그와같은 오빠의 유언을 전해주었다가 두 사람이 자기 오빠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도 걱정되는 문제였고 그러니 더더욱 그 사람들이 자기 오빠의 ‘마지막 소망’을 이뤄주게 해줄지는 더더욱 불분명하다. - ‘말도 안 되는 짓’이라며 펄쩍뛰며 손사래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닌가. 

 그래서 봉명은 그래도 학창시절 자기 오빠 규명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최상진만이 자기 오빠 심정과 심리,정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것이고 그래서 자기 오빠의 마지막 소망이자 유언을 들어줄수 있는 길을 조금이라도 도와줄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고 있던 것이다. 첫째로는 규명의 그런 심리상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만한 친구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유언이었고 또 두 번쨰로 그 유언이나 소망을 듣고서 들어줄수 있을만한 그런 사람이어야 했기에 봉명이 그동안 한사코 그렇게 안타깝게 자기 오빠 학창시절 절친 최상진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 이제 이미 풍규명은 죽었고 따라서 오빠의 그와같은 ‘마지막 소망’도 들어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허나 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정현우의 배려가 있어 뒤늦게나마 만나게 된 봉명과 상진. 그리고 그런 상진 앞에서 봉명은 뒤늦게 찾아온 그리고 상진의 그와같은 무심함에 대해 한바탕 그렇게 원망과 야속함의 피눈물을 쏟아냈던 것이다. 

 허나 막상 상진이 봉명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 역시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풍규명 5남매의 지난 30년(어쩌면 그 이전부터로 봐야할) 만고풍상, 그리고 혼자 동생 넷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온 풍규명의 인생 그리고 사실상 어머니가 부재했던 그 시간의 힘들었음등. 풍규명의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 치더라도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연예인을 방송에서 얼핏 보고 차라리 그 연예인을 찾아가 엄마젖 혹은 엄마정을 느끼고 싶으니 그 젖을 물려달라고 하는 것. 누가봐도 엽기고 변태적인 짓임에 틀림없다. - 솔직히 요즘이라면 대번에 성추행에 성희롱으로 경찰에 신고할 짓이고 70-80년대라도 아마 ‘미XX끼’라며 당사자한테 따귀나 한 대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 될 것이다. 

 헌데 그보다 진짜 문제가 생겼다. 사실 상진은 원래 평상시 TV를 잘 안 보는 사람이라 TV 방송프로그램이나 연예인 그런것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애초 풍규명이 ‘엄마젖 대신’이라 생각하고 먹고싶다고 한 그 당사자인 여성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는 지상파는 아니고 ‘케이블 방송’이었다. 케이블의 이런저런 예능프로에 이따금씩 출연하는 소위 ‘방송예능인’에 해당되는 서른살 안팎의 여성 연예인이었는데, 일단 봉명은 대충 그 연예인에 대해 들어 알고있어서 어느어느 프로에 출연하는 OOO이란 연예인이더라 이렇게 가르쳐주긴 했다. 헌데 거기서부터 일이 꼬였다. 실은 그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가 방송되는 방송사는 지상파가 아니라 지상파 계열의 케이블방송사(예를 들자면 MBC 에브리원이니 MBC 드라마넷이니 SBS funE이니 SBS sports니 대략 그런곳 같은)였다. 헌데 상진이 그런 구분 자체를 할줄 몰라 봉명은 확실히 해당 케이블 방송사(이를테면 ‘MBC 드라마넷’ 이런식으로) 이름을 댔는데 상진이 지상파 계열의 케이블 방송사명을 원래 그 지상파 방송사 명으로 오인한 것이다. 

 따라서 본관,신관,별관등이 따로따로 있는 – 케이블 방송사가 아닌 – 그 방송사로 오인하고 잘못 찾아간것이고, 설상가상 상진이 만난 상대 방송인은 규명이 애초에 말했던 그 연예인(지상파 계열 케이블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여성 방송 예능인)이 아니라 바로 그 연예인과 동명이인인 지상파의 뉴스기자겸 앵커였던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애초 규명이 ‘엄마젖(또는 엄마정)을 느끼고 싶다’며 만나게 해달라고 동생에게 애원한 그 연예인은 한 지상파 계열 케이블 방송사의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여성 ‘방송예능인’이었고 공교롭게도 그 방송예능인과 동명이인인 기자겸 앵커가 한 지상파 방송사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상진은 지상파 계열 케이블 방송사를 그냥 지상파 방송사로 오인하고 그 방송국을 찾아간것이며 공교롭게도 그 방송국 기자겸 앵커가 모 케이블 방송사에 출연하는(규명이 애초에 지목했던) 방송예능인과 동명 이인이라 해당 방송사 관계자는 그 OOO이란 기자겸 앵커(동명이인)으로 오인하고 그녀를 만나게 해준것이었다. 

 한마디로 상진이 방송사명도 오인하고 게다가 그 방송사에 동명이인인 기자가 있어 이중으로 혼선이 생긴것이지만 사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동명이인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그렇게 막상 그 연예인이든 방송인이나 기자든 그 상대방을 만나 대체 무슨말을 어떻게 할수 있겠는가. 아닌말로 ‘제 30년전 친구가 다 죽어가는데 엄마없이 혼자 동생들 키우며 힘들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엄마정(또는 엄마젖)을 모르고 살아온 그 친구가 죽기전에 엄마젖을 한번 느껴보고 싶다며...’ 이런말을 한다고 치자. 그야말로 이거 ‘미XX끼 아냐 ?’ 하면서 따귀한대 얻어맞거나 당장 경찰이나 앰뷸런스라도 부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상진은 애초에 무슨말을 어떻게 전해야하나 오만 고민을 다하다 찾아온것이며 – 헌데 그 찾아간 방송사마저 애초에 규명이 말했던 방송사도 아니고 그 자리에 나온 사람도 규명이 말한 방송예능인이 아니라 동명이인인 해당방송국 기자다. - 허나 막상 그렇게 상대를 마주하니 대체 무슨말을 어찌 꺼낼지 몰라 혼자 고민고민 하다 결국 무슨 ‘CF 모델 섭외를 하러 왔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적당히 엉뚱한 소리만 얼버무리다 그냥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것이다. 

 “ 규명아... ”  

 그렇게 풍규명의 죽기전 마지막 소망이자 유언이라고 했던것도 전해주지 못하고 허무하게 방송국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최상진. 방송국 인근의 공터 의자에 앉아 그저 허망한 탄식만을 내뱉을뿐이다.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한병을 사와 그것을 마시고 있다. 새삼 그렇게 안타깝게 마지막 소망을 말하며 죽어갔다는 30년전 친구, 그리고 그 친구를 잊고 살았던 30년 세월에 대한 자책감이 일어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면 30년전 대입학력고사를 얼마 앞둔 고3 어느날. 정현우,신상훈,최상진,풍규명 이들 넷중 유일하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일반직장에 취직을 한 풍규명을 위로하려고 만든자리. 헤어지면서 풍규명이 외친말이 다시금 상진의 뇌리에 떠오른다. 

 “ 최상진 !!! 신상훈 !!! 정현우 !!! 우리 학교 졸업한뒤에도 계속 만날 수 있는거지  

  ? ” 

 규명은 그렇게 절규했지만 결과적으로 놓고보면 그후 고등학교 시절 절친했던 4인방은 대학을 진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며 완전히 다른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최상진은 지금 대기업 본부장, 신상훈은 대형교회 목사, 그리고 정현우는 그해 대학입시에선 떨어졌지만 이후 뒤늦게나마 전문대라도 들어가 이후 방송작가와 보수우파 운동가를 거쳐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 되어 신상훈,최상진과 떳떳하게 30년만에 재회할수 있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진작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도 졸업하기전부터 공장에 취직 일할 수밖에 없었던 풍규명은 나머지 세 친구와 완전히 다른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풍규명은 지난 30년 혼자 오만 풍상을 거치다 어느덧 이렇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 미안하다 규명아... ” 

 단순히 지난 30년 풍규명을 잊고 살았던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풍규명이 마지막 남긴 유언이자 소망은 아무에게나 쉽게 전해줄수도 없는 말이지만 이제와선 설사 그런 유언이나 소망을 당사자에게 전해준다 한들 이미 죽어서 납골당의 유골함으로 안치된 풍규명을 두고 이제와서 뭘 어떻게 해줄수 있다는 말인가. 아닌말로 죽은사람 시신이나 해골에 젖을 물리게 할수도 없는 일이고(물론 그 조차도 무척 엽기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미 시신이나 백골의 상태도 아닌 유골의 형태로 안치된 그 풍규명에게 뭘 어떻게 해줄수 있을까. 아닌말로 유골함을 열고 해당 연예인 젖가슴에 풍규명의 유골이라도 묻히게 할수도 없는 일이고, 이래저래 지금으로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된 풍규명의 마지막 유언. 상진은 그래서 더더욱 답답하게 탄식하며 소리치는 것이다. 

 “ 풍규명 이 바보같은 자식아 !!! ” 

 종이컵에 술을 하나가득 따라 허공에 뿌린다. 규명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그가 케이블 방송에서 우연히 봤다는 서른살 안팎의 여성 방송 예능인에게 그녀로부터 엄마젖(또는 엄마정)을 느껴보고 싶다며 그녀의 젖을 물리게 해줄수 있는 행위는 해줄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대신에 술이라도 그렇게 허공에 뿌리는 것으로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풍규명의 영혼을 조상(弔喪)하고 있는 것이다. 

 “ 술이나 한잔 먹어라 이 바보같은 녀석아 !!! ” 

 엄마젖을 또는 엄마정을 느껴보고 싶다던 풍규명의 마지막 소원이자 유언. 그것은 결국 들어줄수 없는 성질의 것이 되어버린채 상진은 그렇게 거듭 30년전 친구였던 풍규명의 이름만을 거듭 부르며 허공에 소주만을 뿌려대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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