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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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블랙핑크 지수 (7)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써니 2020
 

                                              - 우정, 그후 30년 

 

 한편 현우에겐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있다. 아니, 넘어야 한다기 보단 모든 것을 각오해야 하는 포기와 체념의 산이라고나 할까. 실은 그날 모텔방에서 한참 지현과 관계를 갖다가 다급히 걸려온 봉명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것 아닌가. 그리고 치르게 된 규명의 상. 사실 그동안 지현의 전화가 몇 번 걸려오고 문자도 남겨놓긴 했지만 규명의 상을 치르면서는 어차피 한가하게 그것을 받고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한편 지현은 황당함의 극치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여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나름 혼전순결주의자고 보수적인 면이 있던 지현이 현우에게 그것을 허락했을때는 사실상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만남. 그것을 의미하는 허락이 될 터이다. 헌데 이건 그야말로 첫날밤에 소박맞는 새색시도 아니고 첫 경험을 나누던중 달아나는 남자라니. 무엇보다 소위 오르가즘이니 뭐니 하는 그런 절정의 기분조차 아직 잘 몰랐을 지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달아오르면서 느끼는 아픔과 짜릿한 전율 그리고 뭔가 날카롭게 속을 찌르는듯한 느낌과 함게 그 복잡다난한 감정의 느낌이 – 그것도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을 – 그것이 달아오르는 순간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으니 지현 입장에서 그 황망함이 어땠겠는가. 이래저래 그냥 넘어갈수 없는 일이라 제대로 따지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중이었다. 현우는 상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지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모든 것을 각오하고 만나기로 한 찻집으로 나갔다. 사실 현우도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지현과 정상적인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할것이란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을 각오하고 나가는 자리다. 무슨 의도인지 이례적으로 뜨거운 코코아를 시킨 지현. 이제 확실히 날이 추워지는 때이긴 하지만 일단 지현과 마주앉은 현우가 차분하게 입을 연다. 

 “ 어차피 이렇게 된거 차라리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말씀드리는게 낫겠다 그 생각 

  을 하며 오는길이었습니다. ” 

 현우가 무슨 해명이든 변명이든 사과든 하려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나오는 서두가 이와같자 지현은 다시금 어리둥절해 진다. 일단 이야기는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화를 조금 삭이며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지현. 팔짱을 낀 채로 현우를 노려보고 있다. 

 “ 그러잖아도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처음부터...이거 뭔가 일이 제대로 잘 

  못 꼬였고...뭔가 일이 단단히 잘못 진행되고 있구나 그 생각을 했거든요. 뭔가 마 

  치...그야말로 지구로 가야하는 은하철도가 방향을 잘못틀어 반대방향인 안드로메다 

  로 가버리는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 

 “ 지금 무슨말을 하고 있는거에요 도대체 ? ” 

 현우에게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알길없는 지현으로선 현우의 이런말이 그저 어이없게 들릴뿐이고 일단 현우의 말은 차분히 이어진다. 

 “ 원래 제가 고등학교때 함께 어울리던 4인방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신상훈,최상 

  진,풍규명 그리고 저까지 그렇게 넷이서 고등학교 3년동안 늘상 어울리며 다녀서  

  다들 저희 넷을 ‘4인방’이라 불렀었지요. ”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꼰대 아저씨의 과거사라도 장황하게 늘어놓을 참인지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에서부터 서두가 나오자 지현은 더더욱 기가막히고 그런 지현의 심정을 모르지는 않아서 현우도 가급적 요점만 간략하게 이야기하려든다.  

 “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신상훈,최상진 두 친구는 바로 대학에 붙었고 저도 뒤늦게 

  나마 어렵사리 전문대라도 들어갔지만...넷중에 가장 환경이 열악했고 5남매중 장남 

  으로 부모님 없이 소년가장 역할을 해야만 하는 풍규명이란 친구는 4인방중에 유일 

  하게 진작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 

  야 했지요. ” 

 “ 그런데요 ? ” 

 “ 여하튼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는 각자의 길을 간 네사람이라 그후 30년동안 소식 

  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러다 제가 30년만에 그 친구들 소식이 궁금해져서 하나하 

  나 만나러 가본거에요. 신상훈,최상진,풍규명까지...헌데 30년전 4인방중 신상훈과  

  최상진까진 만남이 이루어졌는데...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소식을 들을줄 알았던 풍 

  규명의 소식은 듣지 못한채 일이 이상하게 꼬여져버렸어요. ” 

 “ ??? ” 

 “ 원래 전 신상훈과 최상진까지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풍규명도 만나게 될줄만 

  알았어요. 특히 최상진이란 친구는 풍규명과 초등학교때부터 한반으로 절친이면서  

  소년가장이던 그의 처지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도와주기도 하던 그런 친구였다고 하 

  니...상진이만 만나면 자연스럽게 규명이 소식을 알게될줄 알았죠. ” 

 헌데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현우 입장에선 피치못할 설명이 되지만 지현 입장에선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이 아저씨의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어디까지 들어야 하는건가’ 하는 짜증까지 슬슬 밀려올 지경이다. 현우가 그래서 바로 본론의 핵심을 말한다. 

 “ 원래는 풍규명의 소식을 알려했는데...그 일은 꼬여져버리고 몰랐었는데...신상훈, 

  최상진...30년만에 만나게 된 그 두 친구가 저의 이혼 사실을 알고 재혼문제를 추진 

  하려 들더라구요. 그 과정에서 소개받은게 성지현씨입니다. 신상훈 목사가 자기 교 

  회 장로님의 사촌동생이라면서...그렇게 만나게 된게 지현씨였어요. ” 

 “ 허허 참... ” 

 이야기를 듣고보니 지현도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실소를 터트리기까지 한다. 허나 그 정도로 다 이해가 가는 스토리는 아닌지라 일단 현우의 말을 좀 더 들어보기로 한다. 

 “ 정작 풍규명의 소식은 그 뒤에 알게 되었어요. 그게 지현씨와 한참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게 될 때였습니다. 저 나름대로 풍규명,최상진 그 친구들 예전 살던 동네 

  를 돌아다니며 풍규명이란 친구 소식을 알아보던중 극적으로 풍규명의 동생이라 

  는 풍봉명이란 자매를 만나게 된거에요. 사실 제가 규명이하고만 고등학교때 어울 

  리던 절친이었지 봉명이란 동생은 어릴 때 병원에서 잠깐 본게 전부라 피차 기억 

  엔 거의 없는 사이였는데... ” 

 “ 그런데요 ? ” 

 “ 봉명이란 동생으로부터 규명이 그동안 많이 힘들게 살아왔고 지금 많이 위독하며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근 몇주간 지현씨에게 

  보여준 이해못할 몇가지 행동들이 다 그 문제와 맞물려 있었기에 이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 

 “ 그게 도대체 저랑 무슨상관인건데요 ? ” 

 고등학교때 옛 친구를 만나보려 했다가 소식을 알아보긴 커녕 중간에 엉뚱하게 현우의 재혼문제가 추진되어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게 자신이란 이야기까진 뭐 그런대로 이해한다 치더라도 이후의 현우의 이해할수 없는 행동은 또 어찌 이해하란 말인가. 일단 현우의 설명이 좀 더 이어진다. 

 “ 실은 지현씨가 저희집에 와서 그렇게 아이들 밥도 해주고 그럴 때...사실 전 사경 

  을 헤매는 규명이와 그 동생 봉명의 상태를 돌아보고 밤늦게 귀가했던겁니다. 여하 

  튼 상태가 위독한 규명의 연명치료 문제나 유언을 전해줘여 하는 문제등 복잡한일 

  이 그때 하나가득이어서... ” 

 “ 그래서 뭐...절 그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라도 했다는 말씀이신가요 ? ” 

 “ 그런건 아니고...말씀드렸다시피 뭔가 일이 잘못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겁니 

  다. 애초 제가 바랬던건 4인방 특히 그중에서도 풍규명과 재회하는거였지 재혼이니 

  뭐니 이런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일이 이렇게 엉뚱하게 진행되어버렸고...게 

  다가 30년만에 만난 친구는 저리 사경을 헤매는데 저 혼자만 젊은 지현씨만 만나며 

  즐길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생각을 한겁니다. ” 

 “ 뭐라구요 ? ” 

 친구 풍규명의 상황이 어찌되었든, 그런 사경을 헤매는 친구도 있는판에 한가하게 젊은 여자랑 연애질이나 하고 돌아다닐 상황이 아닌 것 같다. 현우 입장에서 그런 판단을 했는지는 몰라도 당사자인 지현 앞에서 할소리는 아니지 않는가. 지현은 그래서 더더욱 기가막히고 현우의 말인 좀 더 계속된다. 

 “ 그리고 실은 그날 모텔방에서의 일도...그 풍봉명이란 규명의 여동생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더라구요. ” 

 “ 자...잠깐만요...그러니까...그 전화가 30년전 그...지금은 사경을 헤맨다는 친구의 

  여동생 전화였다구요 ? ” 

 생각해보니 더더욱 어이없어 지현이 진짜 화가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자신과의 관계를 중단하고 한밤중에 병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진짜 기가막히고 화가나는 일이라 지현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 지현씨가 절 뭐라고 비난하셔도 할말은 없습니다만...제가 지금 한가하게 젊은 여 

  자와 만나며 재혼 생각이나 하고있을 상황이 아니구나 그 판단을 한 것 뿐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떠나간 친구가 있는 마당에 한가하게 저혼자만 좋다 

  고 젊은 여자와 재혼할 구상이나 하고 있을수는 없다 그 생각을 한거에요. ” 

 “ 이것보세요 !!! ” 

 지현이 진짜 화가나 소리를 지르고 현우는 여하튼 할말은 마저 해야겠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 어쨌든 말씀드렸다시피 처음부터 일이 이상하게 꼬인거였습니다. 저로선 고등학교 

  때 어울리던 4인방 친구들 소식을 뒤늦게나마 알아보고 싶어 돌아다녔던건데...그게 

  원래 소식을 알려던 친구(풍규명)의 소식은 못알아보게 되고 엉뚱하게 제 재혼문제 

  가 추진되어서...지현씨껜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밖에는... ” 

 하지만 현우는 이미 더 말을 이어갈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너무 화가난 지현이 테이블에 있는 코코아잔을 현우에게 그대로 끼얹어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의도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날도 한참 추워지기 시작할 때 시킨 뜨거운 코코아. 그것을 현우에게 전부 쏟아부어버린 것이다.  

 “ 어억~~~!!! ”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현우도 뜨거워 어쩔줄 모르고 있지만 지현에게선 그보다 더 뜨거운 분노의 용암이 터져나온다. 

 “ 그만두죠 !!! ”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지현. 다만 이 한마디를 내뱉을뿐이다. 

 “ 아무래도 제가 사람을 잘못봤던 것 같네요. ” 

 “ 아...아니 저 지현씨... ” 

 그러고는 성큼성큼 자리를 박차고 찻집을 나가버리는 지현. 현우로서도 어차피 지현과의 관계가 이제 온전히 지속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것이란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지현으로부터 그와같은 통보를 들으니 생각보다 충격이 큰 듯 하다. 이미 저만치 사라져버린 지현이 가버린쪽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슨 말도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상진이 귀국을 한 것은 풍규명의 장례를 치른지 일주일이 지난뒤의 일이었다. 원래 상진이 한달 조금 넘는 일정으로 독일등 유럽 출장을 떠난다고 했었고 현우가 신상훈,최상진에 이어 4인방중 또다른 한 사람이었던 풍규명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수소문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무렵. 그러다 규명의 동생 봉명을 극적으로 만나고 규명의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는 병문안을 가보았을 때 이미 상진은 한국에 없고 독일에 가 있는 상태다. 출장일정이 바쁜지 상진과는 좀체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현우가 규명의 문병을 가고 현우와 상훈이 보태준 수술비로 규명의 수술까지 진행되었으나 오히려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결국 풍규명이 사망하기까지 그것이 하필 상진이 유럽에 가 있는 한달동안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현우는 물론 상훈까지 그리고 규명의 동생 봉명도 현우가 직접 가르쳐준 연락처로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도무지 닿지 않았던 연락. 그러다 상진이 귀국을 한 것이다. 

 “ 상진아... ” 

 현우가 상진이 귀국하기로 되어있는날 몸소 공항까지 나갔다. 아무리 학창시절 절친이라도 무슨 어디 멀리 이민이라도 갔다가 오는것도 아니고 겨우 한달 해외출장 갔다오는 친구를 일부러 마중나가는 일이야 웬만해선 잘 없는데 그래도 현우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간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그만큼 엄중하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소한 사소한 문자로라도 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인지 궁금해서라도 한번쯤 물어볼만도 한데 규명의 소식이나 상태를 전혀 물어보지 않은 상진.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는 일이라 이렇게 규명의 사망소식도 전해줄겸 겸사겸사 공항까지 나가본 것이다. 

 “ 뭐야, 도대체 무슨일인데 그래 ? ” 

 상진도 일단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짐작을 한 것일까. 이례적으로 자신의 귀국날짜에 맞춰 공항까지 나온 현우에 의아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고 현우는 바로 본론을 이야기 한다. 

 “ 규명이 죽었어... ”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규명의 초등학교때부터 절친이었다는 상진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주게 된 현우. 헌데 상진의 반응은 담담하다 못해 엉뚱해보이기까지 했다. 

 “ 누구 ? ” 

 설마 상진이 풍규명의 이름을 기억 못하는것일까. 나이 50이 분명 아직 치매가 올 나이는 아니고 게다가 비록 ‘소식을 모른다’는 답을 받았을지언정 적어도 한달여전 현우가 오히려 상진에게 규명의 소식을 물어봤을때는 상진은 분명 규명을 기억하고 있었다. 헌데 불과 한달여만에 마치 그런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처럼 반응이 이와같은 최상진. 현우가 거듭 강조해서 일러준다. 

 “ 규명이말야 풍규명. 우리랑 고등학교때 같이 어울리던...그 규명이가 죽었어. ” 

 “ 어, 그래 ? 언제 죽었는데 ? ” 

 상진의 이런 반응은 마치 별로 친하지도 않던 학교 동창의 사망소식을 뒤늦게나마 들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 일들이 종종 있긴 하지만 적어도 상진과 규명의 사이는 그런 사이가 아니지 않는가. 초등학교 5,6학년때부터 여하튼 같은반으로 규명의 딱하고 어려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상진이라 고등학교에 들어와 얼마되지 않아 풍규명에 대해 잘 모를 때 현우가 그만 잘 모르고 규명에 대해 말실수를 했을 때 그런 현우를 나무라기까지 헀던 그런 사람이 최상진이다. 헌데 지금은 되려 최상진이 그런 풍규명을 잘 모르거나 별로 친하지 않던 학교 동창의 소식이라도 듣는듯한 그런 반응이다. 현우가 그래서 되러 울컥 치미는 심정까지 일며 거듭 이렇게 말한다. 

 “ 그...규명이가 너한테 전할말이 있다고 하던데... ” 

 “ 나한테...뭘 ? ” 

 그것 역시 규명의 유언 내용 자체가 궁금하다기 보단 뭔가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은 그런 상황에서 되묻는듯한 반응이다. 되려 현우는 규명의 동생 봉명이 ‘차라리 상진과 지금 연락이 안 되니 나한테라도 대신 규명이의 유언을 전해주면 안되겠느냐. 그럼 내가 나중에 상진이에게 전해줄테니’ 이럴 때 봉명이 그건 절대 안된다면서 펄쩍뛰며 만드시 상진오빠한테 전해주어야 하는 이야기라며 완강하게 나오던 모습을 불과 일주일전 일이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현우이다 보니 마치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대체 왜 전해줘야 하는건데 ?’ 이런식의 반응을 보이는 최상진에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상진이 이 녀석이 이런 친구였나 싶어 순간 화까지 나는데 여하튼 현우로선 상진에게 전할 용건을 마저 전해주는수밖에 없다. 

 “ 봉명이 만나봐. ” 

 “ 누구 ? ” 

 심지어 상진은 규명의 여동생 봉명까지도 기억을 못하는것일까. 오히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규명의 네명 동생의 이름과 신상은 상진이 줄줄 꿰고 있었고 규명에게 그런 동생들이 있다는 것을 상훈도 현우도 상진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헌데 지금은 상진이 그런 규명의 동생 봉명을 기억 못한다는 듯 나오고 있고 답답해서 현우가 이렇게 말한다. 

 “ 봉명이 말이야. 규명이 동생 풍봉명 !!! ” 

 “ 규명이한테 동생이 있었나 ? ” 

 “ 아...아니... ” 

 아니 도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상진이 어떻게 풍규명에 대해 이렇게 새카맣게 잊어버릴수가 있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가는 상황. 하지만 어차피 현우도 규명이 상진에게 전해주어야 한다는 유언내용 자체는 모르는 판이니 상진에게 어서 봉명이나 만나라는 권유밖에 할 수가 없다. 

 “ 어쨌든 내일이나 모래라도 봉명이 만나봐. 야 임마 !!! 봉명이가 널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데 !!! ” 

 해도 너무한다 싶어 현우에게서 결국 큰소리가 나오고 허나 상진은 담담한 태도로 이렇게 반응한다. 

 “ 내일도 모래도 바쁘지. 회사일이야 귀국해서도 늘 있는것이니. ” 

 “ 야, 이 녀석아 !!! 봉명이가 규명이 유언을...너한테 전해야하는 규명이 유언이 있 

  다고 말했다니까. ” 

 “ 나한테 뭘 어쩐다구 ? ” 

 “ 규명이가 너한테 유언 전할게 있대 !!! 봉명이가 나랑 상훈이한테 상치르는 동안  

  수십번도 더 이야기했어. 너한테 꼭 전해줘야 하는 규명이의 유언이 있다구. ” 

 “ 걔가 왜 나한테 그런걸 전해줘야 하는데 ? ” 

 마치 ‘그냥 너희들한테 유언 남기면 되는 것 아니냐 ?’는 듯한 상진의 태도. 현우는 진짜 순간 상진을 한 대 쳐버리고 싶다는 충동마저 일었다. 어떻게 사람이 지난 30년동안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그게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분명 최상진은 고등학교때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때부터 풍규명과 절친으로 ‘4인방’ 중에서도 풍규명과의 인연이 가장 먼저였고 부모님이 안 계신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가정환경에서 사실상 소년가장 노릇을 하는 규명의 처지를 누구보다 안타까와하고 걱정하던 그런 친구였다. 헌데 지금 최상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난 30년 세월동안 풍규명이란 동창의 기억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듯한 그런 사람의 모습이다. 그래서 더더욱 걱정이 돼서 현우가 다시금 강조해서 상진에게 말한다. 

 “ 어쨌든 봉명이라도 만나봐 !!! 봉명이가 너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알기나 해 ?  

  규명이 유언을 너한테 꼭 전해줘야 한다고 했단 말이야. 나나 상훈이한테는 절대  

  못 전해 준다면서 반드시 최상진 너한테 전해줘야 하는 유언이라고 했다구 !!! ” 

  

 안되겠다 싶은 현우는 상진과 봉명이 만나는 자리를 자신이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현우 입장에서는 이런식으로까지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자니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것이다. 봉명이 현우한테 그런식으로까지 말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현우 입장에선 이 봉명이란 여자가 자신을 혹시 사기꾼 취급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쾌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제일 처음 풍규명의 소식을 알아보러 다녔고 결국 규명의 병문안을 4인방중 처음으로 가고 – 사실 규명의 다른 학교 동창들 중에도 뒤늦게 규명의 소식을 듣고 찾아올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 결국 나중엔 규명의 마지막 가는 모습까지 자신이 지켜주었는데 뭐 유언이야 어쨌든 상진과 규명사이에 자신이나 신상훈 목사까지 모르는 어떤 둘만의 비밀이 있을수 있다고 이해한다 쳐도 아무리 30년전 규명의 막내동생 영명의 병문안을 갔을 때 병실에서 잠깐 본게 전부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오빠의 친구인데 아주 머나먼 남처럼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게다가 상진과 연락이 안된다고 하자 ‘왜 안되냐 ?’며 반드시 상진오빠와 연락이 닿아야 한다며 닦달해대던 모습. 어찌보면 자신을 믿을수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 영 언짢았던 것이다. 상가집에서 공연히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 참았지만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그런식으로 대하느냐 ?’고 한번은 따지고 싶었던게 봉명이란 여자의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래서 이래저래 봉명과 상진이 만나는 자리를 자신이 만들고 넘어가든가 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규명의 동생 봉명에게 대체 자신이란 사람이 어떤 인식으로 박혀질지 영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헌데 설상가상 최상진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풍규명을 아주 기억 못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절친은커녕 별로 친하지도 않던 동창 소식이라도 들은듯한 느낌으로 말했고 게다가 규명의 동생 봉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는 듯 나오지 않았던가. 봉명이 ‘반드시 상진오빠한테 우리오빠 유언을 전해줘야 한다’며 그렇게 울고불고 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상진의 이와같은 태도는 현우를 더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려는 상진을 귀찮을정도로 닦달하다시피 해서 만든 상진과 봉명의 만남자리. 대략 상진이 귀국한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는 주말 시점에 시내의 한 장소에 약속장소를 정했고 상진이 혹시 나오지 않을까 불안하기까지 해서 자신이 직접 그를 데리고 나갔다. 한편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해있던 봉명은 상진을 보자마자 바로 와락 안겨들며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우리오빠(규명) 불쌍해서 어떡하냐 ?’고 울부짖던 장례치를때의 모습 그 이상이었다. 

 “ 바보 !!! 오빠 바보야 !!! 이렇게 늦게오면 어떻게 해 어어어엉~~~!!! ” 

 상진은 대체로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런 봉명을 받아들이고 있긴 한데 그 와중에 봉명을 살짝 안아보기까진 한다. 여하튼 봉명은 계속 울며불며 한바탕 난리를 친다. 

 “ 오빠가 빨리 왔어야지...오빠가 왔어야 우리 오빠 그렇게 안 죽는단말야 !!! 우리  

  오빠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 이 바보 !!! 빨리 왔어야지.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해 !!!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해 !!! 오빠만 일찍 왔더라도 우리  

  오빠 그렇게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았단말야 !!! ” 

 사실 최상진이라 한들 상태가 그렇게 악회되어 있는 규명을 찾아왔다고 한들 무슨 손쓸수 있는 신묘한 방책이 있을리도 없었을텐데 – 게다가 상진의 직업은 어디까지나대기업 본부장일뿐 의사인것도 아닌데 – 마치 봉명은 상진이 늦게 온 것이 규명이 그렇게 쓸쓸하게 죽어간 원인이라도 되는양 원망의 피눈물을 계속 쏟아붓고 있었다. 

 “ 어어어엉~~!!!! 우리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구 !!! 오빠한테 전할말이 있었단말 

  야. 우리오빠가...오빠한테 전해주라고 한말이 있었는데...이렇게 늦게오면 어떻게  

  하냐구 오빠. 내가 얼마나 오빠 기다렸는지 알아 ? 내가 얼마나 오빠 보고싶어 했 

  는지 알아 !!! 이제 우리 오빠 어떻게 해.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구 !!! 그 

  렇게 쓸쓸하고 안타깝게 가버린 우리오빠. 이제 우리 어떻게 사냐구 !!! 어어어엉~ 

  ~~!!! 오빤 바보야...오빤 바보야 어어어엉~~~!!! 바보 !!! 바보 !!! 이 바보 !!! 우리 

  오빠 이미 그렇게 죽었는데...우리 오빠 그렇게 쓸쓸하게 가버렸는데...이제와 오면 

  어떡하냔말야 이 바보야 !!! 바보 !!! 바보 !!! 이 바보 !!! 내가 얼마나 오빠 보고싶 

  어 했는데 !!! 내 마음도 몰라주고...오빠 이렇게 늦게오면 어떻게 해 !!!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떡하냐구 오빠 !!! ”


 

 사실 말하는 것으로 봐선 단순히 늦게 온 오빠 친구에 대한 원망이 아닌 그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 헷갈리는 봉명의 말이기도 하다. 물론 너무 기가막히고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 생각나는대로 아무말이나 막 쏟아붓는거라고 이해할수 있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규명이 불쌍해서 어떡하냐느니 (유언을 전해줘야할 대상인) 상진이 꼭 왔어야 하는데 오기도 전에 죽어버렸으면 어떡하냐느니 그런 말까진 그렇다 치도라도 ‘오빠를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아냐’느니 ‘내 마음을 모르냐 ?’느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물론 친구의 오빠나 친구의 누이와 정분이 나는일은 인간사에서 동서고금에 수없이 있어왔긴 했지만 어쨌든 상진과 봉명 사이도 그런 현우가 모르는 그 무엇이 있기라도 했다는것인지. 아무튼 영 종잡을수도 없고 헷갈리기까지만 한 봉명의 태도. 일단 상진이 그런 봉명을 겨우겨우 달래가며 테이블 의자에 앉히고 현우는 아무래도 자신이 이 자리에 계속 있는건 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히 핑계를 대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간다. 이래저래 상진과 봉명 두 사람만이 대화를 나누도록 놓아주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현우가 가버린뒤에도 한참동안 여전히 진정이 안 되는 봉명의 모습. 상진이 가져온 휴지로 눈물콧물을 겨우 닦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화장실까지 가서 세수도 하고 그렇게 한참만에야 겨우 진정이 된 모습으로 두 사람은 마주하게 된다. 

 “ 그...대체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거야 ? ” 

 “ 오빤 그렇게...상진이 오빠는 대학에 들어갔지만...오빠는 우리 때문에 대학도 못  

  들어가고 진작에 공장노동자로 취직해 우리 넷을 계속 돌보며 힘들게 살았어요. ” 

 지금 여기서 풍규명 5남매의 지난 30년 파란만장했던 시간과 특히 장남 규명의 신산했던 고생을 다 털어놓을 참인가. 여하튼 글로는 한줄 요약하면 끝날수도 있는 문제지만 봉명의 심리상태상 한 서너시간 이상은 한바탕 넋두리를 늘어놓아도 다 하지 못할 것 같은 한바탕 지난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펼쳐지고 상진이 주문한 음료수를 쪽쪽 빨아대면서 봉명의 그 넋두리를 꾹꾹참고 다 들어주고 있었다. 

 “ 오빠도 아시겠지만...저희 아버진 원래 경제적으로 무능해서...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한지가 너무 오래 되셨고...게다가 엄마도 여러차례 가출을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가 그러기를 반복...진짜 아빠도 아빠지만...엄마는 우리한테 오래전부터 이미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어요. ” 

 5남매의 지난 30년 살아온 이야기로도 모자라 ‘시즌2’ 격으로 부모님 살아오신 이야기까지 다 할 참인지 그야말로 풍규명이네 가정사 근현대사 백년을 다 늘어놓을 기세인, 이 자리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박경리의 토지와 엇비슷한 분량일 뽑아도 직성이 다 풀리지 않을것만 같은 봉명의 분위기. 여하튼 확실히 규명의 절친이었던 최상진 이외엔 봉명이 자신의 그런 답답한 속내와 자기집안 한많은 가정사를 마음놓고 털어놓을만한 상대가 없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게 한 대여섯시간. 상진으로선 이미 쥬스 한잔으로도 부족해 몇잔을 더 시켜 비울때까지 그렇게 묵묵히 봉명의 한과 사연을 들어주었고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 근데...풍규명 그 친구가...나한테 남긴 유언이 있다면서 ? ” 

 “ 오빠... ” 

 그런 상진을 안타깝고 서글프게 바라보고 있는 봉명. 그녀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말씀드렸지만 저희 5남매중 가장 안타깝고 슬프게 자라온 사람이 우리 오빠에요.  

  근본적으로 엄마정도 제대로 못느껴보고 자란 사람이고 그런 몸으로 혼자 5남매  

  다 키우면서... ” 

 “ 그...그만... ” 

 다시 처음부터 5남매 가정사는 물론 부모님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을 것 같아서 상진이 봉명의 이야기를 막기는 한다. 대략 점심시간도 되기전에 만났던 두 사람이건만 지금 시간이 이미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다. 

 “ 어쨌든 그래서...대체 규명이가 나한테 남긴 유언이 뭔데 ? ” 

 여하튼 정현우,신상훈도 고등학교때 함께 4인방으로 어울리던 친구들인데, 그런 두 사람에게도 전하지 못하고 단치 초등학교때부터 절친이었던 최상진에게만 전해야 한다는 유언. 대체 그 유언이 무엇인지. 봉명이 애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 우리 오빠...마지막 소망이었으니...꼭 좀 오빠가 들어주셔야 해요. 그래서 이렇 

  게 오빠를 만나려고 헀던거에요. ” 

 “ 그러니까...그 소망을 이를테면 나보고 들어달라 ? ” 

 “ 다른 사람은 딱히 달리 부탁할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만약 섣불리 아무한테나 그 

  런 부탁을 했다간 그 사람들이 저희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곘어요. 그러니 오빠 제 

  발... ” 

 상진은 뭔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장탄식을 쏟아붓는다. 새삼 상진에게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 규명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대입 학력고사를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점에서 이미 진작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한 상태인 풍규명을 만나 그를 위로해주던 자리에서 규명이 마치 앞으로의 일들을 예견이라도 한 듯 안타깝게 외치던 그 말이.  

 “ 최상진 !!! 정현우 !!! 신상훈 !!! 우리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는거 맞지 ? 너희 

  들은 모두 대학가고 난 대학을 못가고 고졸의 공장노동자나 중소업체 직원으로 살 

  아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우정은 끝나지 않는거지 ? 우리 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나 

  가서도 계속 만날 수 있는거지 ? 그렇지 ?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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