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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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블랙핑크 지수 (4)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써니 2020
 

                                          - 우정, 그후 30년 

 

한편 현우가 풍규명을 찾는 문제는 이미 총체적 난국에 봉착하고 있었다. 애초 현우가 신상훈 목사를 찾아가본 일 자체가 그렇게 고등학교때 함께 어울리던 ‘4인방’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고 싶어 벌인일이기도 했지만 여하튼 신상훈과 최상진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풍규명의 소식도 알게되리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정현우. 허나 막상 상훈,상진을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에선 풍규명의 소식은 물어볼수조차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고, 심지어 한술 더 떠 자신의 재혼을 주선하겠다며 선자리까지 마련된 상태.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현우는 여하튼 상진과 만났으니 그 최상진과 가장 절친했고 심지어 초등학교때부터 한반으로 누구보다 풍규명의 딱한 사정을 잘 알고 그를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던 상진임을 생각하면 규명의 소식이야 언제든 마음먹고 상진에게 전화 한통화만 하면 충분히 알아낼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허나 막상 그렇게 전화를 해보니 상진은 규명의 소식은 ‘모른다’고 아주 짧고 간단명료하게만 대답하지 않았던가. 모른다는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최상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풍규명과 전혀 연락한번 하지 않았단 말인가. 대학입시를 앞둔 시점에서 이미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한 풍규명을 만난 자리에서 규명이 안타깝게 상진,상훈 그리고 현우의 이름까지 부르며 ‘우리 이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는거지 ?’ 이렇게 물으며 눈물짓던 그 표정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현우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는 일이었다. 

 어쨌든 상진조차도 풍규명의 소식을 모른다니 이제 정현우 자신이 직접 찾아나서는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 상진도 곧 한달여 정도 일정으로 독일출장을 간다고 하니. 물론 상진이 아주 영원히 어디 멀리 떠나는것도 아니고 한달 출장 일정이 끝나면 돌아오게 되겠지만 현우 입장에서 그때까지 막연히 기다리는것도 답답한 일이 될것같고 또 어차피 상진조차도 풍규명의 소식을 모른다고 하는 판이면 한달뒤든 두달뒤든 상진과 다시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보는 것이 (풍규명의 소식을 알아보는 문제엔) 별 의미없는 일이 될것만 같았다. 그래서 직접 나서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허나 그러다보니 그야말로 ‘서울 한복판에서 김서방 찾기’ 만큼이나 막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현우 입장에서 1차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고등학교 졸업앨범 뒤에 수록되어있는 동창명부를 전수조사하다시피 해서 규명의 소식을 알만한 친구를 찾아보는 일이다. 요즘은 사생활이나 개인정보 유출 문제 때문에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만 해도 졸업한 동창들끼리 가끔 연락도 주고받고 선생님들도 찾아 뵙고 하라는 배려인지 졸업생 전원은 물론 학교 선생님 전원의 주소와 연락처까지를 전부 졸업앨범 뒤에 수록해 놓았었다. 허나 막상 졸업앨범을 펼쳐놓고보니 이게 더 막연한 일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일단 생각해보니 이미 다 30년전 전화번호고 연락처 아닌가. 그동안 전화번호 체계가 바뀐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그 30년동안 세상도 그리고 정현우등 4인방이 졸업한 OO구의 H고 인근 지역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시의 인구가 그동안 신도시 개발이나 집값등의 문제로 많은 이들이 경기도 신도시 지역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던가. 또 풍규명처럼 열악한 환경에 살던 이들도 개발이나 이런 문제 때문에 다른지역으로의 이주가 불가피했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예상해볼수 있는 일이다. 일단 현우는 기억나는대로 고등학교때 같은반 친구든 다른반 학생이든 풍규명의 소식을 알것만 같은 친구 몇몇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는 했다. 허나 결과는 그중 상당수가 이미 결번이 되어 있거나 찾는 당사자(혹시 풍규명의 소식을 알지도 모르는 다른 고등학교 동창)가 다른곳으로 이주하고 그곳엔 지금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전에 살던 사람의 소식은 모른다는 답만 받아낼수가 있었다. (* 하긴 이미 30년전의 일이 아닌가)  자신이나 상훈 혹은 풍규명의 1,2,3학년때 담임 선생님이나 다른 담당과목 선생님에게도 전화는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 대다수가 거기 살고 있지도 않았지만 사실 동창들도 소식을 모르는 학생을 선생님이 무슨수로 소식을 안단 말인가. 게다가 이미 30년전이니 당시 한 30-40정도 연령대의 학교 선생님이라면 그 사이 이미 타계하신분도 제법 계실수 있다. 

 여하튼 허탈하게 현우는 졸업앨범을 덮어버리며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풍규명의 소식을 알아내는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령 SNS나 인터넷 검색 같은 것을 통해 소식을 알아보는것도 유명인사의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경우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또 개중에는 역시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같은 문제 때문에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못하도록 해놓았을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인터넷이나 SNS를 검색해 찾아본다 한들 풍규명의 소식을 알아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우는 결국 가장 재래식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차라리 풍규명의 옛날 살던 집 근처를 찾아가봐서 그곳의 나이많은 어른이라던가 이전부터 살던 주민들을 중심으로 풍규명의 소식을 하나하나 수소문해보는 길이다. 헌데 그것도 생각해보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현우가 생각해보니 풍규명의 집까지는 직접 방문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님이었던 상훈의 집이나 아버지가 택시기사인 상진의 집도 자주 방문한적 있는 현우이긴 하지만 풍규명의 경우엔 아무래도 열악한 가정환경 때문에 다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만한 여건이 못되어서인지 어쨌든 규명과 절친했던 상진 정도라면 모를까. 실은 현우는 물론 상훈도 풍규명의 집까지는 가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규명이 살던 집은 자신이 고등학교때 살던 집과도 정 반대방향이다. 당시 현우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대략 4-5정거장 정도 가면 있는 신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고 상훈은 그보다 몇정거장 더 가서 도착하는 주택가에 살고 있었다. 한편 상진과 규명은 그 당시 H고 앞 버스정류장에서 현우나 상훈은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했다면 상진과 규명이 사는곳은 네거리에서 앞쪽으로 쭉 한참을 더 가 도착하는곳에 있는 주택가에 살고 있었는데 상진의 집이 학교 버스정류장에서 직진으로 4-5정거장 정도 더 가서 있는곳에 위치한 주택가에 있었다면 규명의 집은 주택가에서 한참을 더 위쪽으로 걸어가 있는곳에 위치해 있었다. - 그 위치 조차도 현우의 경우엔 상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알고있는것이지 직접 가본적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막상 그쪽 동네를 가보니 그쪽도 어느새 다 개발이 되어 새로운 아파트 단지라던가 상가건물들이 들어서서 30년전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규명이 살던 집 위치를 정확히 모르는 현우가 아닌가. 차라리 이럴줄 알았으면 상진에게 그 당시 규명이 살던 집 위치 정도라도 물어볼걸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허나 지난번 규명의 소식을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을 때 현우가 귀찮을만큼 여러차례 반복해 물어본 탓도 있지만 느낌에 웬지 상진이 규명의 문제에 대해 답하는 것을 성가셔하는 것 같기도 해 현우는 규명의 이전에 살던 집 위치나 그런 것을 다시 확인해보기 위해 상진에게 다시 전화한다는 것은 이미 난감해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총체적 난국에 부딪혀 현우는 절망적으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우가 풍규명의 여동생 풍봉명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실로 기적과도 같은 우연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헌데 누구말마따나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와서 도와주게 되는 것’인지 그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현우는 일단 쉽지 않은대로 예전에 상진이 살던 주택가 지역 그리고 그보다 더 위 풍규명 가족이 살았다는 좀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 위주로 규명의 흔적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허나 상진이 살던 주택가도 지금은 신축빌라들이 수없이 들어선지가 꽤 오래 되었고 그 인근에는 이런저런 상가건물이나 먹자골목 그리고 그보다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무슨 병원이나 공원 이런것들이 만들어져 있어 예전 풍규명 가족이 살았다던 동네의 흔적은 사실상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인근의 좀 나이많은 사람이나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을법한 나이많은 사람들 중심으로 탐문을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한 4층짜리 빌라 인근에 딱히 할 일이 없는지 어슬렁거리며 근방을 배회하는 한 노인이 있었다. 현우가 조심스레 다가와서 물었다. 

 “ 아저씨, 죄송하지만 뭐 좀 여쭤볼게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이 동네 사신지 오래 

  되셨나요 ? ” 

 “ 여기 산지 좀 되긴 했는데...왜 그러시오 ? ” 

 “ 아니...실은 제가 30년전 친구를 좀 찾고 있는데...보니까 예전에 있던 동네나 이 

  런데는 다 없어지고...개발이 되었는지... ” 

 “ 저쪽 빈민촌을 찾는거면 포기하는게 좋을거요. 거기 사라진지 이미 20년이 넘어. 

  . ” 

 “ 예 ? ” 

 헌데 어찌되었든 이전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 사는 동네가 개발이 되어 지금은 다른 시설이 들어선 곡절은 알고 있는 사람이란 것 아닌가. 일단 실날같은 희망을 갖고 좀 더 질문을 건네보았다. 

 “ 사실은 제가 H고 40회 졸업생인데요 그때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중 풍규명이란 

  친구가 있어요. 밑에 아마 동생이 네명이나 되는 소년가장이나 다름없던 친구였는 

  데... ” 

 “ 풍규명이를 안다구 ? ” 

 말하는 것을 봐선 노인도 어쨌든 풍규명을 안다는 소리 아닌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온 뜻밖의 반응이라 현우는 반갑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일단 이렇게 노인에게 묻는다. 

 “ 아저씨, 풍규명이를 어떻게 아세요 ? 말씀드렸지만 제가 그 풍규명 학생과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라니까요. ” 

 “ 젊은이뿐만 아니라...가끔씩 그렇게 예전 빈민촌 있던데 살던 사람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해. 그래서 내가 기억나는대로 가끔씩 그때일을 가르쳐주긴 했지. 

 ” 

 어쨌든 과거 빈민촌때 살던 주민들을 조금이라도 안다는 소리다. 여하튼 실날같은 단서라도 잡을수 있게 된 상황이라 현우는 기뻤고 허나 노인은 그래도 쉽지 않은건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겠지만...아마 규명이네도 저기 OO 기념관과 OO병원 있 

  는 그 일대...개발되기 전에 다 뿔뿔이 흩어져 떠났을게야. 아마 그때가 OOO이가 

  대통령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일텐데... ” 

 말하는걸로 봐선 어쨌든 대략 90년대 후반쯤 일이라는 소리다. 노인이 기억을 더듬으며 거듭 추가설명을 해준다. 

 “ 나도 풍규명이란 학생 기억은 해. 젊은이 말마따나 혼자서 동생 넷을 키우는 착하 

  고 성실하면서도 불쌍한 학생이었지. 여하튼 그렇게 OOO이 대통령 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저기도 개발된다 어쩐다 이야기가 나왔을 때...동생들 데리고 다 떠났어. 

 ”  

 “ 어디로 떠났는지는 모르시구요 ? ” 

 “ 경기도 어디로 떠난다는 말까진 했는데...어쨌든 그 청년이 워낙 효자고 착한 청 

  년이라 떠나기 전에 동네 아저씨들한테 일일이 인사드리고 동생들과 함께 떠난걸 

  기억을 하거든 ? 그때 어쨌든 경기도 어디로 간다고 했었어. ” 

 헌데 경기도 어디라고 하면 그 자체가 또 막연해지는 것 아닌가. 경기도가 어디 시골마을도 아니고 근 20여년 이내에 생긴 신도시 지역만 수십군데다. 게다가 풍규명은 어쩄든 열악한 환경에 사는 친구였으니 신도시 지역으로 갔을것이란 보장도 없는것이고,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같은 막연한 상황은 마찬가지. 다만 어쨌든 풍규명네 가족은 90년대 후반경에 이곳을 떠났다는 그 이야기까진 들은터. 현우는 그쯤에서 혹시 다른 단서를 또 찾을만한게 없을까 해서 인근지역을 더 탐문해보았다. 얼마를 그렇게 돌아다녔을까. 배도 고프고 해서 인근의 편의점에 잠시 들렀다. 편의점이 그리 크지는 않고 작은곳이었는데 적당히 라면이랑 음료수나 좀 살려고 들어왔다가 젊은 직원한테 몇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 저기...학생. 아니 자매님...젊은 사람한테 성가시게 굴어서 미안하긴 한데...뭐 좀 

  하나만 물어볼께요. 이 인근이 개발된지가 오래되었나요 ? ” 

 “ 예 ? ” 

 젊은 직원은 현우의 의도를 바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어리둥절해서 물었고 현우의 설명은 좀 더 이어진다. 

 “ 아, 저 실은 저 이 동네에서 30년전에 살면서 학교도 다녔고 했던 사람이에요. 근 

  데 이 지역이 개발된지 꽤 되어서 그때 흔적이 영 찾을수가 없고...종잡을수가 없네 

  요. 그때 아마 이 근처에...최상진과 풍규명이란 친구가 살았거든요. ” 

 “ 아저씨 혹시 저희 오빠를 아세요 ? ” 

 그렇게 무척이나 놀란 말투로 물어보는 것은 편의점 직원이 아니라 그때 막 가게안으로 들어오던 한 여성이었다. 나이가 30대인지 40대인지 첫눈에 바로 가늠이 되진 않았는데 그것보다 더 현우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이 여인이 크게 써서 가슴부위에 들고있는 벽보같은 것이었다. 마치 83년 이산가족 찾기때 모 방송사에서 흔히 보던 사족찾는 벽보와 흡사하게 만들어져있는데 거기 이렇게 적혀있었다. 

 “ 찾는사람 : 최상진 (오빠 풍규명의 OO 고등학교 동창(40회 졸업. 1988.3-1991.2 

             까지 재학. 두 살 연하의 여동생 최OO이 OO여중에 다녔던 것으로 기 

             억하고 아버지 최OO 선생은 개인택시 기사로 일했습니다. ” 

 아주 꼼꼼하게 바로 4인방중 한 사람인 최상진의 신상을 저렇게 마치 이산가족 찾기 벽보마냥 크게 써서 들고있는 것이다. 여인의 정체가 누구이던 바로 현우에게 4인방 친구중 한명이었던 최상진에 대해 그것도 가족사항까지 저렇게 세세하게 적어놓았으니 현우가 무척이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다가와서 물어보았다. 

 “ 아니 저기...자매님. 혹시 최상진 학생을 알아요 ? ” 

 “ 저희 오빠 친군데...그럼 그쪽이 ? ” 

 가게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 현우가 편의점 직원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바로 풍규명의 이름을 언급했고 그것을 여인이 얼핏 듣고 무척이나 놀라 ‘우리오빠를 아냐 ?’고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현우가 다가오자 이렇게 묻는다. 

 “ 상진이 오빠에요 ? ” 

 “ 아뇨 최상진은 아니고 제 이름은 정현우입니다. ” 

 “ 예 ? ” 

 풍규명을 안다는듯한 사람을 여인은 바로 오빠 규명의 절친인 최상진으로 지레짐작한것일까. 허나 현우가 바로 자신을 소개하자 여인은 당황하면서도 바로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고, 그러자 현우가 재차 확인차 이렇게 말을 건넨다. 

 “ 저랑 신상훈 그리고 최상진,풍규명까지 그렇게 4인방이 넷이서 늘상 어울려다녔죠 

  . 그리고 풍규명 그 친구가 아마 동생이 넷이나 되는 소년가장으로 꽤 힘들고 어 

  렵게 산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론 도와주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 

 “ 제가 규명이 오빠 동생 봉명이에요 풍봉명. ” 

 그러고보니 현우가 규명의 동생들을 직접 만나본 경험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온 현우보다는 규명과 초등학교때부터 같은학교를 나온 상진이 훨씬 규명의 절친이었고 게다가 열악한 환경의 규명은 친구들을 자기집으로 초대하기가 쉽지 않아 절친인 최상진 정도만 이따금 규명의 집을 가보았을뿐 현우는 물론 상훈 조차도 규명의 집까지는 가본적이 없다. 다만 현우의 기억이 규명의 동생들을 딱 한번 만나본적이 있다. 그게 규명의 막내동생 풍영명(남동생)이 병원에 입원했을때인데 당시 규명은 물론 현우,상훈등 다들 고3이었지만 그 한참 공부할때임에도 막내동생이 갑자기 입원한 규명이 걱정이 되어 함께 병문안을 가주기도 했고 각자 아버지께 말씀드려 규명이 동생의 병원비를 약간 보태주기도 했었다. 여하튼 그때 규명의 동생 병문안을 함께 갔을 때 봉명,정명등의 규명의 다른 동생들도 잠시 보긴 했었다. 규명의 두 여동생중 그때 봉명이 초등학교 6학년 그리고 정명이 4학년이었는데 그게 벌써 30년전 일이고 피차 만나본 것이 그때가 전부이니 얼굴을 기억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우 입장에선 여하튼 규명이에게 밑으로 동생이 많았다는것만 기억하고 봉명의 입장에선 오빠 규명의 친구로 초등학교때부터 같은학교를 다녔다는 최상진 오빠만 기억하지 다른 오빠 친구들에 대해선 잘 모르는 듯 했다.  

 

 현우와 봉명은 일단 인근 공터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무슨 이산가족 찾기 벽보 비슷한 것을 만들어갖고 ‘최상진 오빠’를 찾고있는 봉명이나 마찬가지로 오빠 풍규명을 찾고있는 (봉명 입장에선 기억에 없는) 정현우라는 오빠의 학교동창이란 사람도 피차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것인지 의아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안한 마음에 편의점에선 약간의 술과 안주가 될만한 과자류를 사갖고 나와서 인근 공터 벤치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아직 날이 추워지긴 전(대략 9-10월 정도)이니 그렇게 무리가 가는 상황은 아니다. 

 “ 오빠는 지금 병원에 있어요. ” 

 “ 규명이가 지금 아프다는 말인가요 ? ” 

 현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봉명. 일단 현우가 풍규명의 가족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10년 가까이가 지났을 무렵(90년대 후반) 다른곳으로 이주를 했다는 이야기까진 들은터. 그 이후의 일들을 봉명이 차분히 설명을 해준다. 

 “ 그 뒤에도 오빠는 때론 공장노동자로 때론 중소업체 같은데 취직도 하고 그러면 

  서 그렇게 저희 동생들을 돌보면서 살았어요. 저도 어차피 대학 들어갈 형편이 안 

  되는건 마찬가지니까 오빠랑 마찬가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취직을 해서 

  가족을 돌보는데 나설 수밖에 없었죠. ” 

 “ 잠깐...기억엔 아마 규명이랑 그쪽 자매님 중간에 동생이 하나 더 있는걸로 아는 

  데... ” 

 규명의 막내동생이 병원에 입원해서 문병을 갔던 고3때 현우는 그곳에서 아직 초등학생이라는 규명의 여동생 봉명과 정명외에도 중학생인 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정확하게 그때 고등학생 규명에게 중학생 남동생과 초등학생 여동생 두명 그리고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인 막내 남동생이 하나 더 그렇게 네명의 동생이 있었다는 이야긴데 지금 5남매중 셋째인 셈인 봉명 역시 학교를 졸업한뒤 가족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였던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규명과 봉명 사이에 있는 또 다른 남동생(봉명,정명한텐 둘째오빠)은 어찌되었다는 것인지. 일단 봉명이 바로 부연설명은 덧붙여준다. 

 “ 그 오빤 지금 감옥에 있어요. ” 

 “ 감옥에 있다구요 ? ” 

 뜻밖의 사실에 놀라는 현우. 봉명의 설명이 이어진다. 

 “ 학교다닐때도 통 말썽만 부리더니만 졸업하고 나서도 별로 달라지는게 없더라구 

  요. 어떨땐 폭행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사기를 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고...그러 

  다...그렇게 감옥을 몇 번 들락거리기까지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되어있어요. ” 

 “ 세상에... ” 

 “ 다행히 올케언니가 현숙한 성품이라 그런지 지금 경기도 OO에서 혼자 조카 키 

  우며 남편 옥바라지 하면서 그러고 살고 있어요. 오빠가 언니하고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구요. ” 

 그야말로 어느집이나 하나쯤 있다는 애물단지였던 셈인 규명의 남동생 풍상명. 그나마 결혼을 해서 아들도 있고 그 아들을 부인이 키우고 있다는 소리니 그나마 다행이란 것인지. 봉명의 나머지 가족들에 대한 설명은 좀 더 이어진다. 

 “ 제 밑에 동생 정명이가 그나마 5남매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와 대전에서 유치원 선 

  생님을 하고 있어요. 결혼해서 딸도 둘 있고...5남매중 그나마 온전한 가족을 유지 

  며 살고있는 셈이죠. 그리고 막내는... ” 

 막내라면 역시 상훈등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유치원도 다니기 전인 어린나이였던 그 막내 영명이를 말함일테다. 고3때 규명의 막내동생 영명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을 때 함께 병문안을 가서 그 어린 아이를 잠시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기억이 현우에게도 아직 생생하다. 그게 벌써 30년전이니 그 영명이도 어느덧 대략 30대 중,후반의 나이일 것 아닌가. 그 영명이가 어찌 살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이어진다. 

 “ 영명이도 뭐 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여기저기 떠돌기도 하고 잠시 공장이 

  나 중소기업에 취직도 하고 그러면서 살았는데... ” 

 “ ...... ” 

 “ 지금은 전남 진도에서 올케(영명의 부인)랑 같이 농협슈퍼를 하며 살고 있어요. 그 

  리고 올케하고 사이엔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고... ” 

 “ 가만...근데 진도까지 내려가 있다고요 ? ” 

 그러고보면 감옥에 있다는 둘째 상명의 가족은 경기도에 넷째 정명은 대전에 그리고 막내 영명은 전남 진도에 그렇게 전국 각지에 5남매가 뿔뿔이 흩어져 살고있는 것 아닌가. 그걸 생각해보면 5남매의 지난 30년 풍상이 또 어땠을지 그것만으로도 주말극 분량 하나 더 찍어야할 판이 될 것이다. 헌데 그도 그렇거니와 아까 봉명의 말이 규명이 지금 아파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게다가 아까 그 마치 이산가족 찾기 벽보같은 규명의 학창시절 절친 최상진을 찾는 그런 피켓까지 만들어서 돌아다니고 있는 봉명의 모습.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봉명이 순간 어떤 북받치는 설움에 왈칵 울음을 터트리고 현우가 그런 봉명을 달래는 가운데 한참만에 진정이 된 봉명의 말이 이렇게 이어진다. 

 “ 사실 저희 5남매중 큰오빠가 가장 불쌍해요. ” 

 “ ...... ” 

 “ 무능한 아버지에...사실상 없는것이나 다름없던 엄마...그런 상태에서 초등학교 5,6 

  학년때부터 사실상 우리 네명 돌보는 소년가장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도맡아하다 시 

  피 했었던 그런 큰오빤데...그러다보니 여태 장가도 못가고... ” 

 그러고보면 아픈데다가 아직 미혼이라는 규명의 말. 헌데 아까 봉명이 하는 말로는 어쨌거나 다른 형제들은 다 결혼을 했다는 것 아닌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건 머나먼 남쪽 섬지역까지 가서 농협슈퍼라도 하며 겨우 연명을 하는 신세가 되었든 어쨌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그렇게는 되었다는 이야긴데 규명은 대체 어찌되었다는것인지. 봉명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오빤 그렇게...저희 동생 넷 다 결혼해서 온전히 사는 모습을 보고나서 장가를 가 

  든 어떻든 해야지...어떻게 나혼자만 먼저 장가를 갈수 있겠느냐. 그렇게 저희 동생 

  들 돌보는일에만 전념하다 지금까지 결혼도 못하고 쭉 혼자 살았던거에요. 그러다 

  ... ” 

 “ ...... ” 

 “ 그러다 어느덧 나이 50에 이르러서...처음엔 안동에서 – 사실 저와 오빠는 지금까 

  지 안동에서 살았었어요. 전 남편과 좀 안 맞는게 있어서 이혼했고 오빠는 그렇게 

  여전히 독신인채로...하지만 오빠가 수년전부터 병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서...안 

  동에서 제가 전통문화 안내사 일이라도 하면서 그렇게 생계를 유지하며 아픈 오빠 

  를 지난 몇 년간 돌보았었죠. ” 

 그러니 동생 넷을 돌보느라 삶에 지친 규명은 수년전부터 앓기 시작했고 그 규명을 이혼한 여동생이 지금껏 병수발을 하고 있었다니 더더욱 기가막힌 일이다. 무엇보다 안동까지 내려가 있다는 것은 진짜 뜻밖이었다. 여하튼 아까 만났던 풍규명네 가족을 기억하는 동네 할아버지 말로는 90년대 후반쯤에 규명의 가족이 이곳을 떠났다는 것 아닌가. 허나 서울을 떠나 경기도 신도시든 여타 지역으로 이주했든 그 정도까지는 현우도 짐작해볼수 있어도 경기도나 심지어 천안이나 세종시도 아닌 그 먼 경북 안동까지 내려가 살아야 했다니. 그야말로 풍규명 5남매의 지금까지의 만고풍상을 더 설명 안해도 능히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사실 안동이 원래 전통 양반가 고장이나 하회탈 그런 전통문화로 유명한 고장이긴 하지만 규명이나 봉명이 그런것과 관련되어 안동까지 내려갔을리는 없고 여하튼 이런저런 공장노동자나 중소업체 직원등을 전전하다가 그 먼 안동까지 내려갔다는 소리다. 그리고 안동이야 어쨌든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그런쪽으로 생계수단을 삼을만한 일거리가 있었는지 봉명이 그곳에서 박물관이나 전통유적 같은곳을 안내하는 그런 안내사 역할을 하며 아파서 병이 나 이제 더 이상 생활전선에 뛰어들수도 없을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그런 오빠 병수발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막힌 풍규명 5남매의 사연이다. 

 “ 사실 오빠가 안동에서 한 1-2년전부터 병원을 몇 번 들락거리긴 했는데, 무엇보 

  다 그땐 이미 더 이상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 없을만큼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고... 

  병원에선 신경쇠약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겹친 것 같으니 더 늦기전에 서울 큰 병 

  원에라도 가보라고 권하시더라구요. 헌데 그거야 저희도 병원비 문제 때문에 쉽지 

  않은일이라...결정을 못하고 있었는데...오빠 병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으니 더 미룰 

  수도 없더라구요. ” 

 “ 그래서 규명이는 지금...서울 병원에 입원해 있나요 ? ” 

 “ 제가 결국 결단을 내려서 오빠를 서울 OO병원에 입원시키긴 했어요. 오빠는 지 

  금 거기 있어요. ” 

 서울에서 대표적인 병원명을 언급하며 그와같은 말을 입에담고 있는 봉명. 그녀의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 무엇보다 오빠가... ” 

 “ ...... ” 

 “ 글쎄요, 상태가 악화되다보니...그리워진건지...아니면 어쩌면 살날이 얼마 남지 않 

  았을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상진이 오빠를 한번 만나봤으면 한 

  다 그런말을 하더라구요. 얼마전부터... ” 

 여하튼 동생 네명을 혼자 돌보면서 온갖 잡일을 다 해오다 병세가 날로 악화된 풍규명. 그런 규명이 상태가 악화되어 어쩌면 살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차라리 학창시절 절친이었던 최상진이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하는 마음. 거기까진 충분히 있을수 있는 스토리이긴 하다. 봉명의 설명이 좀 더 이어진다. 

 “ 헌데 막상 그렇게 상진오빠 소식을 알려고 하니 그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무슨 지 

  금 연락처나 주소를 알만한 단서 같은게 있는것도 아니고... ” 

 하긴 현우도 막상 풍규명의 소식을 알려고 하니 그것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 막연한 일임을 바로 깨닫게 되지 않았던가. 하물며 봉명 입장에서 자기 친구도 아닌 오빠의 학창시절 친구 소식을 알아보는일.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현우는 학창시절 졸업앨범이라도 남아있지만 그런저런 풍상을 겪으면서 온갖 고장을 다 떠돌아다닌 풍규명 5남매가 비단 규명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졸업앨범까지 일일이 챙기고 있을 형편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 한가하게 졸업앨범이나 펼쳐보며 옛 추억이나 곱씹고 있을정도로 정신적으로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었을테고. - 

 여하튼 사경을 헤매고 있는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봐야할 풍규명. 그 풍규명이 마지막 소망이라도 되는지 학창시절 절친 최상진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말을 동생 봉명한테 한 모양인데. 봉명 입장에서도 찾기는 막연한 일. 그래서 마치 이산가족 찾기 현수막 비슷한거라도 만들어서 혼자 작심하고 이 일대를 돌아다녀보기로 헀다는 것이 봉명이 그때 그런 것을 들고 편의점에 들어서게 되었던 연유였던 것이다. 그러니 현우는 풍규명의 소식을 알아보고자 마침 예전 최상진과 풍규명의 살던 동네를 수소문하며 단서를 찾아보려고 할 때 봉명은 마찬가지로 상진오빠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어린시절 오빠의 절친한 친구였던 최상진의 가족사항등을 기억나는대로 적어 그와같이 돌아다니며 상진의 소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현우와 봉명의 극적인 만남이 이뤄졌던 것이다.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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