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다 혀 니 여 라
세월이 많이 흐른 1970년대 초반 어느날. 다현은 뜻밖의 초청장을 한 장 받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청와대에서 온 초청장이었다.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께서 6.25 직후 지방에서 전쟁고아들을 거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이들을 보살피고 키워온 그런 복지 활동가들을 직접 청와대로 초청 서울구경도 시켜드리고 청와대에서 식사대접도 한번 해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TV방송은 1956년 HLKZ-TV가 제일 먼저 시작했고, KBS,TBC(현 JTBC의 전신격),MBC등이 TV방송을 시작한 것이 1960년대부터의 일이지만 60년대는 물론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반인에게 TV는 아직 그리 쉬이 접할수 있는 대중매체는 아니었다. - 한국과 외국팀의 국제 스포츠 중계나 어느어느 일일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간이면 온 동네 주민들이 TV가 있는집에 한자리에 모여들곤 했다는 그런 일화가 있던 시절 아닌가.
물론 다현처럼 전주에서도 그만한 고아원을 운영할 정도면 한 1960년대 중반 정도에라도 TV를 고아원에든 자신의 살림집에든 구해놓을만한 형편은 되었을 것이다. 허나 다현은 공교롭게도 TV로 드라마나 뉴스 따위를 시청할수 있게되기 한 몇 년전에 은밀히 자신의 고아원을 다녀갔던 의문의 여자 방문객이 누구와 동일인물이란 것을 눈치 못채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 그 여성 방문객은 고아원 직원에게 ‘금일봉’도 하나 전해주고 갔다고 했는데, 여하튼 애초 자신의 정확한 신분을 밝히기를 꺼리던 의문의 여인이 혹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하녀 ‘말순이’가 세월이 흘러 자신을 찾아온것인가 혹시나 짐작했었고 일단 몇가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정황상 말순이와는 너무 거리가 떨어져있는 인물인것까지는 확인을 할수 있었다. 그래도 청와대에서 초청을 받았을떄쯤에는 다현도 TV 뉴스를 통해 그분의 얼굴 정도는 확인이 가능할텐데 ‘의문의 여인’이 방문하던 시기가 다현이 TV를 구입한 시점으로부터도 이미 몇 년전이라 기억을 정확하게 하지 못했고, 사실 그분의 세 자녀중 첫째가 유명해진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후 퍼스트레이디 활동을 대행하면서 부터고 막내는 아직 어리고 귀여울때라 상대적으로 매스컴의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둘째는 당사자가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거나 청와대로부터 ‘지방에서 전쟁고아들을 거두어온 복지활동가’들을 초청 영부인께서 직접 치하하고 싶다는 초청을 받아 올라갈때까지만 해도 다현은 그저 영부인께서 은밀히 그런 지방의 복지시설들을 한번씩 돌아보신적이 있으시다는 전언 정도만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었을뿐이다. 헌데 막상 그렇게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다현은 결국 기겁하고 만다.
“ 아...아이고 영부인 마마...국모마마...지가 죽을때가 다 되었는지 그때는 어른을 몰
라 뵙고 큰 실수를 했구만이라. 지가 그저 무식하고 배운 것이 없어 높으신 어른
을 몰라 뵙고 큰 실수를 한것이니 그저 너그러이 선처해주실 것을 바랄뿐이지라
... ”
사실 육영수 여사가 은밀히 지방에서 전쟁고아들을 거둔 고아원을 돌아봤을 때 –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TV가 귀하던때라 – 육영수 여사를 몰라본 것은 비단 다현뿐만 아니라 이날 초대를 받은 다른 고아원 관계자나 대표등도 다 마찬가지다. - 청와대에 식사초대를 받은 지방의 고아원 관계자들은 대략 10여명 정도다. - 여하튼 그런대로 기품있어 보이고 신원은 제대로 밝히지 않는 좀 이상한 여자가 마치 고아원 호구조사라도 하듯 몇가지 물어보고 관계자를 통해 직원에게 금일봉 하나를 전해준것만 알고 있을뿐. 그때 다녀간 사람이 육영수 여사라는 것은 그때까지 아무도 생각조차 못한 것은 다들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때 육여사를 몰라뵌 실수를 한 것은 다른 참석자들도 다 마찬가지니 다현의 모습이 좀 유난스러운 것은 분명하다. 가령 다른 참석자들의 경우엔 ‘전 그저 돈 많은 귀부인이 후원을 하시러 오신 것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사님.’ 하며 그때 행여 실례를 범한 것은 아닌가 하는 가벼운 정도의 사과만 건네면 그만인데 마치 임금님 앞에서 용서를 비는 대역죄인마냥 무릎까지 꿇고 싹싹비는 다현의 모습. 좀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수도 있는 한 장면이다. 육영수 여사도 다현의 반응이 좀 유난스러워 보였는지 이쯤에서 일어날 것을 권한다.
“ 아휴 송여사님(송다현) 괜찮으니 일어나세요. 따지고보면 제가 누구인지도 제대
로 밝히지 않은것도 잘못이죠. 이제 그만 일어나셔요. ”
“ 그래요 여사님. 어차피 우리도 다 그때 영부인 못알아본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
허나 다현 입장에선 육영수 여사나 다른 참석자들(지방의 고아원 운영자들)이 모르는 다른 사정이 하나 있지 않은가. 바로 육여사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 다현은 잠시나마 혹시 ‘말순이가 찾아온 것이 아닌가’ 짐작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릴 때 함께 자랐던 그 하녀 말순이가 그렇게 떠나고는 한번 찾아오지 않는것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 그리고 그래도 언젠가 한번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대감의 심리가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영수 여사를 감히 자신의 한때 하녀였던 ‘말순이’일지도 모른다는 착각과 기대를 했다는 것. 물론 혹시나 싶어 고향이라든가 몇가지를 물어봤을 때 정황이 말순이와 너무도 달라 바로 그런 기대를 접긴 했지만 여하튼 국모(國母)님을 자신의 하녀 ‘말순이’로 짐작하다니. 어쨌거나 대통령을 옛날 임금님 비슷한 것 쯤으로 인식하던 시절. 따라서 대통령 영부인이면 그야말로 옛날 ‘왕비마마’ 같은 것 아닌가. - 심지어 공식석상에서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지식인에 속하는 이들도 ‘국모님’이란 호칭을 공공연히 쓰던 시절이다. 그러니 다현 입장에선 육영수 여사를 비록 수년전 잠시나마였지만 혹시 자신의 하녀였던 ‘말순이 아닌가’ 그런 짐작을 했다니. 그야말로 대역죄라도 지은 것 같은 기분이라 머릿속이 아찔해져왔던 것이다. 육영수 여사와 다른 참석자 몇몇이 그런 다현을 겨우겨우 진정시켜 자리에 앉도록 권해 그제서야 해프닝은 마무리가 되었다.
“ 어떤분들일지 궁금했어요. 6.25 이후에 지방에서 전쟁고아들을 거둬 친부모님이
나 다름없이 정성껏 돌보고 키워주시는 그런분들이 많다고들 들었는데...대개는
교회나 성당같은 종교시설이 중심이 되어 그런곳을 운영하기도 하고...또...미군
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는곳도 많다고 들었는데...과연 어떤분들이 그 난리통에
그렇게 불쌍한 어린 고아들을 거둬 친어머니나 다름없이 잘 품어안고 양육하고
계셨는지 한번쯤 쭉 돌아보며 찾아 뵙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분들을 이렇게
청와대까지 초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
그것이 육영수 여사가 한떄 그런 고아원들을 은밀히 한바퀴 돌아보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런 시설들을 운영하는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서울구경도 시켜드리고 식사대접을 하게 된 취지라는 말이다. 그날 참석한 송다현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각지에서 올라온 고아원 대표들도 육여사의 그 깊은 마음씀에 너무나 감격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대략 1-2년쯤 지났을 때 송다현은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되기도 한다. 어려운 시절 지방에서 그런 전쟁고아들을 거두어 훌륭하게 보살피고 돌봐원 그런 사회복지 활동을 한 인사들에게 내리는 표창이었다. 다현은 그때 또다시 서울에 올라올 기회가 있었고 영부인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직접 뵙게 되었다. 열아홉 나이에 세 살연하의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가 아이도 못낳고 설상가상 남자가 바람이 나 소박까지 맞은 그런 여인이 그로부터 20여년 세월이 흘러서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게되는 고아원 원장이 되어있는 실로 감격스러운 한 장면이 아닐수가 없다.
다시 얼마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전쟁이 있은지는 어느덧 20여년이 지났고 따라서 그 시절의 전쟁고아들이야 모두 성인으로 자라 각자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부모잃은 고아들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았다. 전쟁 이후에도 제각기 살길이 막막해서 또는 질병이나 기타 등등 이혼으로 혹은 가정불화로 그렇게 아이가 부모를 잃게 되거나 아이를 내버리는 일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고아는 과부나 독거노인등과 마찬가지로 인류사가 시작되었을때부터 존재해서 인류사가 끝날때까지도 영원히 해결할수 없는 그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그래서 송다현이 운영하는 ‘황성정원’에도 여전히 백수십명 정도의 고아들이 늘상 득시글했다.
한편 황성정원에서 제1호로 거두었던 황미정은 그 사이 성인이 되었다. 원래 다현은 고아들을 그렇게 하나하나 거두면서 이름은 원래 이름이 있는 아이들은 그 이름을 쓰는 것으로 하고 이름이 없거나 너무 어린 애기라 본래 이름을 확인하기 어려운경우엔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성은 황노인의 성인 황씨와 자신의 성인 송씨를 번갈아가며 지어주었다. 따라서 황성정원 출신의 반은 황씨고 반은 송씨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1호 황성정원 원아였던 미정의 성은 황씨가 된 것이다.
여하튼 그 미정은 이후 성실이 자라 교육대학을 나온뒤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이 되었다. 미정이 뜻밖에도 대략 사춘기 무렵부터는 국사과목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국사선생님까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래저래 다현으로선 가슴 뿌듯해지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미정도 어느덧 20대 중반에 이르고 있는데 마침 이 무렵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자신이 사귀는 남자와 ‘어머니’ 송다현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다. 황성정원 원생들이야 당연히 다현을 보통 ‘어머니’라 부르고 그 시초가 미정 아니었던가. 사귀는 남자는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학교선생을 하는 동갑내기 동료였는데 여하튼 그런 남자와 함께 다현에게 인사를 드리러 찾아온 미정. 다현으로선 그저 모든 것이 감격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 어머니, 이 사람이 참 얼마나 지극히도 아끼고 생각해주는지 몰라요. 그래서 결국
어쩔수없이 이 사람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러고 어머니한테 이렇게 인사
를 드리러 찾아온거에요. ”
“ 그려, 참 모든 것이 잘 된 일이구만 그려. ”
다현도 그동안 대통령 표창도 받고 청와대 구경까지 해보는등 참으로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만 솔직히 1호 원생이었던 미정이가 이렇게 사회에서 제 몫 성실히 다하는 성인으로 자라주고 이렇게 시집까지 가게된 것 이상으로 감격스럽고 감사한일이 더 있을수가 없다. 사실 다현보다 얼마뒤에 들어온 원래 동생과 구걸을 하러 돌아다니던 거지소년이었던 윤수도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한번 자신의 사귀는 사람과 직접 찾아 뵙고 인사드리고 싶노라는 연락을 취해오기도 했다. 이렇게 황성정원 1기생들이 어느덧 하나하나 사회각계에서 제몫을 다하며 어느덧 결혼소식까지 들려오는 판이니 이래저래 다현은 기쁘지 않을수 없을터. 애초 자신을 후처로 받아준 황노인의 뜻을 알게되고 그걸 받들어 이런 고아원을 차리게 된 셈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런 보답을 받게 될줄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비록 첫 번째 결혼은 세 살연하 남편과 슬하에 자손도 못보고 거기다 남편이 새 여자가 생겼다며 자신을 쫒아낸 셈인데다가 두 번째 남편이었던 다 늙은 할아버지였던 황노인과의 사이에도 자녀는 갖지 못했지만 그보다 복된 그야말로 마음으로 거둔 자녀들이 이제 수십수백명이 되는 것 아닌가. 바로 그런 황성정원 아이들의 ‘큰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다현은 인생의 보람을 찾을수 있을것만 같았다.
“ 참, 그리고 엄마... ”
뭔가 다른 중요한 이야기거리가 있는 듯 이렇게 말을 건네는 미정. 의아해하는 다현을 보며 미정의 말은 이어진다.
“ 실은 제 결혼식을...뭐 이건 시댁어른이 되실분들과도 합의를 봐야할일이겠지만
전 가능하면 결혼식을 이곳에서 치르고 싶어요. 어쨌든 제가 성인이 되어 이곳을
떠날때까지 지넀던 그런곳인데... ”
“ 자기야, 아무리 그래도 결혼식을 고아원에서 치르는건 좀 그렇지 않아. 우리 그냥
부모님 뜻대로 서울에서 제대로 된 결혼식을 치르는게 어때. ”
“ 싫어. 나에겐 어쨌든 여기가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곳이고...게다가 서울에서 결혼
식을 하려면 엄마가 우리 결혼식 챙겨주시기 위해 전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셔야
하는데 그런 수고까지 끼쳐드리고 싶진 않아. ”
이렇게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는 듯 하자 일단 다현이 만류한다. 이 분위기 좋은날 공연히 이런걸로 분위기를 잡칠수는 없지 않은가. 다현이 적당히 중재한다.
“ 왜들 그랴 ? 괜히 이런걸로 싸우지말고...그럼 결혼식까진 아직 날짜가 좀 남았응
께 차근차근 좀 더 상의를 해보기로 하고 결혼식 장소와 날짜가 확정이 되면 그때
다시 연락을 줘. ”
다시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황성정원 제1호 원생인 미정의 결혼은 애초 바램이었던 ‘황성정원’에서 직접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같은 원생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치르고 싶다는 미정의 바램과는 달리 남자쪽 집안 뜻이 워낙 완고해서 결국 서울의 정식 결혼식장에서 제대로 격식을 갖춰 치르게 될 수밖에 없었다. 미정으로선 불가피하게 시댁어른이 될 분들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한가닥 서운한 기색을 지우기 쉽지 않았고, 헌데 그 경사스러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야하는 아침이었다.
“ 아...내 가슴이 왜 이런다냐 ? ”
“ 원장님. 왜 그러세요 ? ”
사실 미정에겐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다현이기에 단순히 신부 어머니로서의 참석이라기 보단 이것저것 챙겨주고 지켜주고 해야할것이 많아 결혼식 사흘전쯤 미리 올라가보기로 한 것인데,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따라 아침부터 공연히 가슴도 아프고 머리도 좀 어지러웠다. 아직 다현의 나이 50대 정도니 그렇게까지 고령이라곤 볼수 없는데, 게다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다현의 이상증상. 관계자들은 물론 몇몇 원생들도 병원부터 먼저 가보시고 미정이 결혼식날 다른사람을 보내는게 어떻겠느냐고 권고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고집을 피워 결국 서울까지 올라간 다현. 미정의 결혼식이 토요일에 잡혀있고 그 사흘전인 수요일 저녁에 도착 미정의 결혼식 준비를 도와주기로 했다. 수요일 저녁에 서울에 도착한 다현은 미정의 신랑측에서 마련해준 서울의 여관에서 묵으면서 미정의 일을 돌봐주는 중이었다.
“ 탕 !!! 탕 !!! ”
수요일 밤을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오전.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헌데 여관에서 제공되는 TV로 국가기념일 경축행사나 보며 시간을 보내려 하고 있을때였다.
“ 이...이것이 갑자기 뭣이다냐 ? ”
여관에는 혼자 있는것이었기 때문에 TV 시청을 하던 다현에겐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총소리는 TV에서 나온것이지만 다현은 여관 근처에서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놀라 잠시 밖으로 뛰쳐나올정도였다. 허나 일단 여관에서 무슨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 주변은 평온했고 다만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게들중 몇몇은 뭔가 엄청난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듯 어수선해하고 있었다.
“ 어...어떻게 이런일이...어떻게 이런일이... ”
바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있었던 1974년 8월 15일의 일이다. 그리고 이틀뒤인 17일 토요일이 다현은 자신의 1호 원생인 미정의 결혼식날이라 어머니 입장에서 그것을 돌봐주러 전날밤 서울로 올라온것인데 바로 그 다음날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며 TV 시청을 하던도중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피격소식이야 그렇게 갑자기 방송 중계가 중단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바로 속보자막이 떴지만 육영수 여사 서거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녀가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어 장시간 수술 끝에 더 이상 가망없음이 발표된 그날 밤늦은 시간. 무엇보다 다현도 직접 육영수 여사를 뵌적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그 한번은 육여사가 은밀히 전쟁고아를 거두고 있는 시설중 하나은 황성정원을 들렀을 때, 그리도 두 번째가 육여사가 직접 자신과 같은 전쟁고아들을 거두어 보살피는 보육시설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초청했을 때, 그리고 얼마후 대통령 표창을 받는날에도 대통령 내외와 직접 인사를 나누었을테니 다현으로서도 그렇게 세 번이나 직접 뵌적이 있는 이 시대(1960-70년대)의 대한민국 국모 육영수 여사의 서거 비보를 그렇게 접하게 된 것이다.
“ 아이고 국모님 이 무슨 지원극통한 일입니까. 이게 대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과도 같은 일입니까. 국모님 대체 이게 어떤일이다요 국모님 !!! 어어어엉~~~!!! ”
대통령 영부인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 테러리스트에 의해 피격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엄청난 일이지만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미 10년 넘게 장기집권하면서 대통령을 옛날 임금이나 다름없이 여기던 그런 시절 아닌가. 헌데 바로 그런 시대에 대통령 영부인이면서 국모(國母)로 추앙받는이의 서거. 국민장(國民葬)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이미 사회분위기 자체가 그야말로 국상을 당한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육영수 여사 자체가 평상시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우리사회의 불우하고 소외된곳을 각별히 돌보며 그야말로 나라의 ‘큰 어머니’ 같은 행보를 지금까지 보여왔기에 그로인해 도움을 받은이들은 물론 비록 직접 도움을 받거나 만나뵙지는 못하더라도 그야말로 그 옛날 왕비마마나 집안의 큰 어른이라도 갑자기 세상을 떠난것이나 다름없는 비통함에 잠길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다현 역시 그런 육영수 여사가 불시에 자신이 운영하는 고아원을 직접 방문한적도 있고 그녀로 인해 청와대 초청도 받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으니 그런 송다현 여사가 받은 충격과 슬픔은 이루다 말할 수가 없었다. 직접 청와대의 빈소까지 찾아가 문상을 드리고 잠시 유가족을 위로해드리고 오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현 입장에선 하필이면 황성정원 1호 원생이었던 미정의 결혼식을 앞두고 이런일이 터져 참으로 난감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랑쪽 부모님과 극비리에 만나 긴급히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지금와서 결혼식을 미루기도 쉽지 않으니 일단 결혼식은 치르되 가급적 차분하고 조용하게 치르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토요일날 예정되어있던 결혼식은 오기로 한 하객중 올만한 사람들은 그래도 대개 참석을 했으나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다현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미정내외를 배웅하고 전주로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다현도 한동안 허허로운 심정을 지우기가 쉽지 않았다. 공연히 한동안 고아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물건을 매만져보거나 하기도 했다. 사실 육영수 여사가 다현의 ‘황성정원’을 들렀던 것은 63년 5대 대선이 있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일이니 벌써 10년 이상이 지난일. 게다가 그조차도 접견실에서 대표인 다현과 한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환담을 좀 나눈게 전부다. 무엇보다 육여사 입장에서 극비리에 자신의 신분을 숨긴채 방문한것이라 접견실에서 대표를 만나보는 것 외에 특별히 더 할수있는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공연한 심리탓일까. 다현은 육여사가 마치 이 고아원을 각별히 아끼고 꽤 여러차례 들렀던것만 같은 착각에 잠시 빠지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일이 있은후 이따금 서울에서 거액의 금일봉이 익명으로 당도한적이 있긴 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다현이 그게 청와대에서 내려오는것임을 눈치채게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육여사가 황성정원을 들른것이래고 해봐야 한차례가 전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현에게 육여사가 퍽이나 가까웠던것처럼 느껴지는 그게 어쩔수 없는 사람의 심리인걸까. 육영수 여사 서거소식을 접하도고 다현은 비통함과 슬픈 감정을 한동안 쉬이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 어머니... ”
어쨌든 미정은 그런 와중에 시집을 보냈고 황성정원의 원생들 대다수가 다현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긴 하다. 허나 지금 다현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뜻밖에도 황노인의 차남 정태다. 사실 정태는 다현이 고아원을 세울 당시에만 일을 좀 도와준것뿐 그 뒤엔 일반 직장인 생활을 하며 아내와 세 딸등 자신의 세 식구 생계를 책임지는 일에만 전념해왔고 다현의 황성정원에는 이따금 생각이 날 때 들르는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런 정태가 모처럼만에 황성정원을 들른 것이다.
“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세요 어머니 ? ”
어쨌든 정중하게 늘상 다현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는 황정태. 사실 다현 입장에서도 자신보다 몇 살 많은 황노인의 아들들로부터 ‘어머니’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이래저래 어색하긴 했지만 이제 다현이나 정태나 피차 50을 넘은 사람들이니 그런 호칭에 딱히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느끼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냥 이것을 자신들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대로 살기로 한것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정태의 물음에 다현의 답이 이어진다.
“ 무심한 사람 같으니... ”
“ 예 ? ”
정태의 물음에 대한 뭔가 정확치는 않은 대답같아 순간 어리둥절한다. 대체 누구더러 무심하다는것인지. 주어가 불확실한 이 표현에 다현이 바로 부연설명을 덧붙여주긴 한다.
“ 말순이란 여자 이야기를 내가 정태씨한테 한적 있는지 모르겄소... ”
“ 아...말순이요 ? ”
사실 다현이 자신이 시집가고 소박맞고 하기 전의 일들은 그렇게 정태나 황노인등에게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말했던적은 없다. 뭐 좋은 기억들이라고 그런것들을 굳이 세세하게까지 설명을 하겠는가. 다만 어쨌든 다현이 시집가기전 하녀라기보단 동기간처럼 지냈다는 말순이란 하녀 이야기는 정태도 들어본 기억은 있어서인지 이렇게 대답한다.
“ 언제는...아씨 시집가면 지 혼자 어찌 사냐며 떠나라고 내가 그리 일렀는데도 날
따라가겠다고 울고불고 하더니...이젠 아예 소식조차 없네요. ”
바로 그 말순이를 그것도 육영수 여사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무슨 ‘근영이 엄마’ 어쩌구 하면서 애매하게 신분을 밝히는 그녀를 ‘혹시 말순이가 아닌가’ 하고 지레짐작하기까지 했던 다현이 아닌가. 그만큼 그리워했고 혹시라도 한번쯤 찾아와주길 내심 바랬던 사람이 말순이인데, 정작 그 말순이는 정말 한번도 이곳을 찾아주는 일이 없고 그날 바로 순간적으로 ‘말순이’로 착각한 대통령 영부인에겐 그야말로 엄청난 실수를 한 셈이라 나중에 청와대에서 육여사를 알아보고는 무릎까지 꿇고 큰절 올려가며 백배 사죄까지 드리지 않았는가. 덕분에 만찬장에 초대받은 다른 참석자들까지 당황할 지경이었는데. 어쨌든 육영수 여사 일은 육여사 일이고 다현은 그저 말순이가 이곳을 한번 찾아와주지 않는것에 이렇게 서운해하고 있는 것이다.
“ 뭐 어쨌든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일 아니겠어요 ? 어쨌든 그동안 전쟁도 있었고
전쟁 이후에도 너무 많은일들이 벌어졌으니... ”
“ 설마...죽었을까요 ? ”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것이냐고 묻는 정태의 말. 사실 그간의 세월이 보통이 아닌 모진 세월이었음을 생각하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수도 없지만 – 심지어 말순 자신조차도 떠나라는 자신이나 아버지 송태권의 말에 평생 아씨곁에서만 살았던 자신이 아씨곁을 떠나 장사인들 할수있겠냐 지금와서 공부를 하겠냐며 떠나기가 쉽지 않은 난감한 이유를 그리 밝히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런 말순임을 생각하면 결코 간단치 않았던 그 지난 20여년 세월을 배운것도 없고 신분도 천했던 그런 어린 여자의 몸으로 결코 쉽지 않았을것이라 생각하니 다현도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적어도 다현이 열아홉 나이에 시집을 가기전까진 늘 함께 지내고 어울렸던 그런 말순이. 그 말순이가 한번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찾아오지 않는게 아니라 혹시 이미 찾아올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새삼 그 생각을 하니 다현도 가슴이 아려온다. 설마 진짜 그리된 것은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가능성이 컸으면 컸지 배제할 수가 없는것이기에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마음. 주체하기가 쉽지 않다.
“ 어머니... ”
“ 말씀하시오. ”
“ 혹시 또 뭐 마음에 담아두거나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으세요 ? ”
갑자기 이런 질문은 왜 하는것일까. 여하튼 열아홉 나이에 시집갔다 3년만에 소박맞은뒤 자신의 아버지 후처가 된 송다현. 그런 인생을 살아온 다현의 과거임을 생각하면 자신이나 아버지가 모르는 또다른 어떤 과거가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라도 하는것일까. 일단 다현의 대답은 이와같이 이어진다.
“ 사실 또 다른 그리운이가 하나 있기는 있지요. ”
“ 예 ? ”
단순한 되물음이라기 보단 뭔가 좀 당혹스러운 말투의 질문. 일단 다현의 말은 이어진다.
“ 그 사람도 참...잘 살고 있는지 원... ”
“ 대체 누굴 말씀하시는건데요 ? ”
“ 조한욱씨 말이오... ”
“ 아... ”
바로 그 전남편 조한욱. 설마 그렇게 야멸차게 자신을 내친 그런 사람이건만 설마 그런 사람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것인지. 정태의 표정의 뭔가 편치 않아보이는데 일단 다현의 말은 이와같이 이어진다.
“ 조한욱씨 그 사람이 그립다기 보단 그 일 이후론 어찌되었는지 그 일이 가끔은 좀
궁급합디다. ”
“ ...... ”
“ 어쨌거나 새 여자가 생겼다면서 날 그렇게 야멸차게 내친 사람 아니오. 그러면...
날 그렇게 쫒아낸 이후론 어찌되었는지...그렇게 새로이 생긴 여자와 다시 새장가
라도 들어 이후 알콩달콩 잘 살고있는건지 원... ”
어쨌든 조한욱이 이후 그 서울 신여성(진숙)과 재혼을 했는지 그 여부도 지금 다현으로선 알길이 없다. 솔직히 일부러 궁금해서 소식을 알아본다던가 하기도 난감한 일이었을테고. 여하튼 가끔은 그쪽의 일도 궁금하긴 한가보다. 그렇게 다현에게 지금 그리워하는 혹은 궁금해하는 이가 둘이 있는 셈이다. 그 하나는 바로 자신의 옛날 하녀 말순이 그리고 조한욱의 이후 소식. 그러고보면 둘 다 그렇게 소박맞고 집을 떠난 이후로는 소식이나 행방을 알길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곳 황성정원까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고.
“ 앗뜨거 !!! ”
이 무렵엔 황성정원도 커피자판기를 한 대 들여놓긴 했는데 목이라도 축이고 싶었던것일까. 정태가 다현의 넋두리같은 이야기를 좀 듣다가 돌연 저만치 있는 자판기로 가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뽑아왔다. 그냥 자신이 마시려고 뽑아온 것은 분명한 듯 한데. 헌데 사고일까. 갑자기 다현 뒤쪽으로 가까이 다가와서는 그것을 쏟아버린다.
“ 이게 무슨짓이오 ? 갑자기 왜 이러시오 ? ”
“ 아...죄...죄송합니다 어머니. 커피잔을 바로 잡으려고 손을 움직인다는 것이 되려
헛도는 바람에... ”
어쨌든 실수로 커피잔을 떨어뜨렸다는것인데 고의인지 실수인지 상황이 좀 애매하다. 정태도 미안하고 놀란지 한마디 하기는 한다.
“ 어머니 괜찮으세요 ? 안 뜨거우세요 ? ”
“ 그 뜨거운 커피를 하나가득 쏟아버렸는데 안 뜨거울 사람이 어디 있겄소. 화상이
라도 입은거 아닌지 모르겠네... ”
병주고 약주는 상황이 될련지는 몰라도 젖은수건을 가져와 정태가 다현의 커피묻은 목이며 어깨등을 닦아주고 적셔주긴 한다. 다현이 공연히 정태를 노려보자 정태는 무안한지 살짝 시선을 돌린다.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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