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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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트와이스 다현 (6)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부제 : 다 혀 니 여 라
 

 

 세월이 흘러 어느덧 1945년. 8.15 해방이 되었다. 역사적으로야 ‘흙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춘다~~~’는 기념노래처럼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민족적인 경사요 그야말로 ‘해방’이 되는 날이긴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 개개인에겐 어쩌며 또다른 감정으로 맞이했을 그런 순간이기도 하다. 솔직히 황노인의 경우만 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일제 강점기에 그만한 부를 축적하며 떵떵거리며 살면서 일제에 협조하지 않고 살았다는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심지어 1940년대에는 ‘태평양 전쟁’이 있었으니 그 시절 방위성금이라도 내면서 자신의 재산을 지켜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거리에 평범한 백성들은 특히 글줄좀 들어간 지식인에 해당되는 이들은 오늘부터 마치 자신들의 세상이 된 듯 싱글벙글하며 ‘감격시대’를 맛보고 있었지만 황노인은 착잡한 심경으로 이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 어르신... ” 

 그런 황노인의 심정을 아는 다현이기에 다소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다. 허나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든 황노인은 이미 세상을 달관한 노인인양 허허거리고 있었다. 

 “ 세상이 또 다시 이렇게 바뀐게지 뭐... ” 

 “ 어르신... ”  

 사실 따지고보면 다현의 집안 역시 일제를 거치며 몰락해버린 양반가의 자손이 아니던가. 만약 조선이 망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갔다고 한다면 설사 제도적으로는 신분제가 폐지되었더라도 조선시대 기득권인 양반계층은 그 시절 권세를 한동안은 유지하며 살아갈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사실상 대다수 양반가는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봐야할 듯 하다. 당장 다현의 경우에도 한때는 ‘5대봉사’까지 하며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던 과거에는 뿌리깊은 양반이었지만 친척은 물론 그 많던 하인들까지 뿔뿔이 흩어지고 그 아버지외 다현의 대에서는 하루세끼 연명도 하기 쉽지않은 처지가 되어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장사치 집안에 시집을 보냈다가 결국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 아닌가. 따라서 그런 사연의 집안의 자손인 다현도 왜놈들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당장 그녀 역시 그렇게 소박맞고 쫒겨와서는 아버지가 ‘나라가 망하더니 이제 가문도 망하나보다’ 하며 장탄식을 하신뒤 쓸쓸히 자살하시던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런 아버지의 자살까지 겪고 자신마저 목숨을 끊으려다 이렇게 솔직히 열아홉살 나이에 시집갈때까지만 해도 꿈속에서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었던 고리대금업자의 후처가 되어있는 몸이 아닌가. 따라서 그런 다현의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이 될 수밖에 없는데 황노인은 황노인대로 그런 젊은 아내 다현을 보며 그저 이렇게 넋두리처럼 읊조린다. 

 “ 또 이렇게 새로 바뀐 세상에서 살아가면 그만인것이지 뭐. ” 

 “ 어르신... ”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새로 바뀐 세상에서 혹시 왜정때 일본에 협조하던 집안이라고 해서 어떤 불이익이 돌아오진 않을까 그 걱정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다현은 황노인이 실은 자신이 죽으면 그 많은 전 재산으로 ‘고아원’을 세워 부모없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거두는 그런일에 자신의 재산이 쓰이게 하고싶다고 한 그 구상을 알고있는 처지 아닌가. 과연 새롭게 바뀐 세상에서 황노인의 그 구상이 현실로 이뤄질수 있을지. 다현도 이런저런 복잡한 심경으로 그저 황노인의 고뇌를 지켜보기만 할 따름이다. 

 “ 그나저나 정수 이 녀석은 요즘 대체 뭐가 그리 바쁜게야 ? ” 

 사실 이 무렵 황노인의 진짜 고민은 따로 있었다. 사실 왜정때까지만 해도 대체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살아가던 장남 황정수. 내심 고리대금이나 하는 집이라 손가락질이나 받으며 사는것에 대한 불만은 없지 않았지만 여하튼 먹고살기에 어려움은 없는 환경이기에 그런 집안의 장남으로 지금껏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살아왔던것인데 새롭게 바뀐 세상에서 새로운 일을 찾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무슨 다른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매일같이 무슨 모임을 간다 집회를 간다 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걱정이 된 황노인이 정수를 부르지 않을수 없었다. 

 “ 대체 넌 뭐가 그리 바빠 ? 나이도 결코 이제 젊다고 할수 없는놈이 여태 장가도 

  갈 생각을 않고... ” 

 사실 정수의 나이는 이때 이미 서른을 넘겨 이 시대의 기준으로는 이미 혼기를 놓쳐도 한참 놓친 나이다. 황노인의 집안이 결코 자녀들 장가를 보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 아닌데 정수는 운이 없었던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것인지 아직 미혼인 상태. 오히려 동생인 정태와 정호가 형 정수보다 앞서 이미 얼마전에 결혼 분가해서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는 상태다. 허나 나무라는 아버지를 보며 복장부터 뭔가 달라져 있는 정수는 제법 자신의 변설을 앞세운다. 

 “ 전 새로운 나라에 애국하는 길을 찾고있을뿐입니다. ” 

 “ 그게 대체 무슨소리야 ? ” 

 “ 왜놈들은 물러갔지만 왜정때 잘먹고 잘살던 사람들...기득권을 누리면서 왜놈들에 

  게 협조하고 조선백성들을 핍박하던 이들. 그들은 아직도 잘먹고 잘살고 있어요.  

  이대로는 곤란한것이지요. 뿐입니까.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건국을 하는데 필요 

  한 인재들이 있어요. 그래서 전 그 길을 가고싶을 따름입니다. ” 

 “ 허허 나 참...도대체 무슨소리를 하고 있는것인지...그리고 이X아. 까놓고 말해 왜 

  놈들한테 협조한것으로는 설마 조선팔도까진 몰라도 전주땅 일대에선 이 애비부터 

  가 아마 다섯손가락안에 들텐데...대체 누가 누구를 징벌하겠다는것이야 ? 설마 이 

  애비까지 친일파라며 애비한테까지 칼을 들이대겠다는것이야 ? ” 

 “ 그런게 아니라요 아버지... ” 

 “ 그러면... ” 

 “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아버지때 못한 빚을 제가 대신 조국과 민족에 갚고있을  

  따름입니다. ” 

 “ 나 원 도무지 무슨소리를 하는건지... ” 

 “ 아버지도 몽양선생의 글과 책을 읽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시게 될거에요. ” 

 “ 뭐 ? 누구라고 ? ” 

 몽양이라면 저 유명한 여운형의 아호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황정수란 사람이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여하튼 몽양 여운형을 따르는 일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데 여하튼 황노인이든 다현이든 아직 정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수 없어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고 그래서인지 정수가 그런 아버지는 물론 어쩌면 젊은 새어머니 다현까지 일깨워 줘야겠다는 듯 이렇게 나오고 있다. 

 “ 몽양선생께선...사실 3.1운동때부터 조선의 독립의지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파리  

  강화조약 참여) 뒤에서 많은 일을 해오셨던분이고 임정에서도 많은 활동을 해오셨 

  던 분이세요. 게다가 듣기로는 아마 원래 왜놈들도 물러가기전에는 몽양선생의 건 

  준에 정권을 이양할 상의를 잠시 했었다고 하더라구요. ” 

 “ 나 원 도대체 무슨소리를 하는것인지...어쨌든 난 몽양이고 소양이고 그런데 관심 

  없고 앞으로도 이 집안과 재산을 어떻게하면 잘 지켜나갈수 있을지 그것만을 걱정 

  할 따름이다. 여하튼 세상이 전에없이 어수선한것만은 분명하니 너도 공연히 쓸데 

  없는일을 벌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 

 “ 쓸데없는일이 아니라 나라에 애국하는길이라니까요.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데 기 

  여하는 일이에요 아버지. ” 

 

 한마디로 황정수는 좌익활동에 가담하게 된 셈이다. 좌익활동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 보단 ‘정치활동’쪽으로 보는게 더 정확할 것 같은데 다만 황정수는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에게도 종종 ‘일제때 친일파라고 해서 무조건 다 매도해선 안된다’던가 ‘지주나 자본가라고 해서 무조건 원수보듯 적을 대하듯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는 정도의 온건한 주장을 하는 성향이었다.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자라기 보단 그저 ‘순수한 민족주의자’로 보는게 이 무렵의 황정수의 성향이라고 봐야할텐데, 다만 어쨌든 8.15 해방 이전까지는 그저 묵묵히 아버지의 일만 돕던 정수가 해방 이후에는 새나라를 세우는 건국활동을 돕겠다고 나선건 아이러니한 현상임에 분명하다. - 어쨌거나 일제때 협력한 고리대금업자(자본가)인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일종의 ‘빚진자’ 같은 심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해방직후의 정치활동에 가담하게 된게 황정수의 심리인 것으로 이해해도 될것같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6.25 사변이 터진다. 이미 3.8선을 넘은 북괴군이 서울까지 점령해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다들 마찬가지지만 황노인의 집안도 피난을 가야하는것인지 어찌해야 하는것인지 고민에 빠질수가 없었다. 

 “ 영감님, 다른생각을 할게 뭐 있어요 ? 공산당놈들은 지주고 자본가고 이런 사람 

  들을 가장 원수로 여긴다는데...공산당 세상 되면 우린 그날로 바로 죽은목숨 아니 

  어라 ? 그러니 빨리 피난을 가야지라. ” 

 “ 딱하고 철없는 아낙 같으니 !!! 누군 피난을 갈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가 ? 이대 

  로 피난을 가버리면 이 많은 재산은 다 어찌한단말인가. ” 

 하긴 그나마 현금이나 보석,패물 같은 현물이라면 어디 땅속이나 은밀한 곳에 숨겨 보존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부동산들은 어찌한단말인가. 이 시대의 개념으로는 부동산이라기 보단 땅문서,집문서 같은 개념으로 봐야할텐데 설사 땅문서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 난리통에 온전하게 보존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 헌데 정수가 한 며칠 고민한 끝에 아버지한테 나름 이런 대안을 내놓는다. 

 “ 아버지, 일단 정태나 정호 가족들부터 먼저 피난을 가라고 하지요. ” 

 이땐 이미 둘째 정태와 셋째 정호는 결혼해 따로 나가 산지 오래된터. 그리고 그 사이 낳은 손자,손녀들도 있다. 헌데 정수는 이미 그 두 동생은 우선 피난부터 가라고 한뒤 사실상 아버지한테 후보(後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 아버진 제가 일단 몸을 피신하실수 있을만한곳을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의 일은 제게 맡기십시오. ” 

 대체 이 난리통에 뭘 어쩌겠다는것인지. 어떻게보면 마치 미리 이럴때를 알고 준비해놓은것처럼 정수 나름의 계책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정태와 정호 가족은 이미 피난행렬에 몸을 실었고 정수는 그리고 며칠전부터 인근 야산에 토굴을 하나 파 그곳에 얼마후 아버지가 몸을 피신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사실 아무리 그래도 북한군이 남쪽인 호남까지 내려오는데는 며칠정도 더 시일이 걸릴터. 허나 이미 전쟁이 터지고 국가 수반이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버린 상태이니 아직 (북한의) 미점령지라 할지라도 숨어있던 공산당원들이 제세상 만난 듯 난리를 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한떼의 젊은 공산당원들이 황노인의 집도 습격했다. 

 “ 악질 지주 친일파 황OO을 처단하자 !!! ” 

 “ 인민의 고혈을 빨아 거부가 된 악질 자본가 황OO !!! 우리 손으로 때려잡자 !!! ” 

 그야말로 당장 인민재판장으로 끌고갈 기세로 쳐들어온 이들. 그러나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황노인이 아닌 황정수였다. 그간 정치활동을 하며 면식이 있는 청년들이 이미 몇몇 있는지라 이들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 아니 형 ? ” 

 그렇게 당황하며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 자신들끼리 망설이는 모습. 황정수가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 뭐야 너희들 ? 내 집엔 대체 왜 찾아 온거야 ? 무슨 용건인데 ? ” 

 그러자 상대적으로 황정수와 평상시 친분이 없었던 무리중 한 사람이 일단 다가와서 정수에게 말을 건넨다. 살벌한 인상이다. 

 “ 이 집이 그 말로만 듣던 악질지주 황OO 집 맞지 ? 그 유명한 황영감집 맞잖아 ? 

 ” 

 “ 무슨 헛소리야 !!! 여긴 내 집이라니까 !!! ” 

 “ 혀...형...형 아버지가 황OO인건 맞잖아요. 전주에서 그 유명한 고리대금업자 황 

  OO을 모르는이가 누가 있어요 ? ” 

 이번엔 그런대로 정수와 면식이 있고 집안사정도 어느정도 아는 또 한 청년이 나섰다. 허나 황정수는 여전히 지지않고 버틴다. 

 “ 우리 아버진 돌아가셨소. ” 

 “ 뭐 ? 돌아가셨다구 ? ” 

 “ 당신들이 우리집 찾아온 용무는 대충 알고도 남겠는데, 여하튼 이미 오래전에 돌 

  아가신분이오. 헌데 설마 돌아가신 아버지 시신까지 재판장(인민재판)에 끌어내 두 

  번 죽일셈은 아니겠지 ? 아니면 아버지 죄를 아들인 나한테까지 뒤집어씌울 참인 

  가 ? ” 

 “ 그...그런건 아니지만... ” 

 그런대로 황정수의 반박이 논리적이어서일까. 그 서슬퍼렇고 살벌하기만 한 공산당 청년 무리들은 더 이상 기세등등하게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물러간 이들. 다현입장에서도 나름 신기하게 보여 걱정되고 우려되는 가운데서도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 이보시오. 아니 대체 어떤 현묘한 계책을 다 발휘할수 있었던것이오 ? 대체 무슨 

  신통한 재주가 있어 그X들을 말 한마디로 다 물리칠수 있었단말이오 ? ” 

 함께 산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다현과 황노인이 혼인한게 40년대 초반이다.)의 시간이 흘렀지만 어쨌든 다현보다 나이많은 황노인의 아들들이고 하니 다현 입장에서 그네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건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다현은 다현대로 연장자에 대한 존중을 해주고 황노인의 아들들도 어쨌든 아버지의 ‘마지막 여자’쯤 된다고 생각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온게 지난 10년 세월이라 봐야 할텐데, 여하튼 이 난리통에 전주의 유명한 고리대금업자 황노인을 당장 인민재판장에 끌어낼 기세로 나온 공산당 청년들을 말한마디 솜씨로 물리칠수 있다는 것은 누가봐도 감탄할만한 재주가 아닐수 없을 것이다. 허나 정수는 아직 우쭐하며 자기자랑이나 하고있을 시간도 아니고 아직 마음을 놓을 단계도 아니라는 듯 조심스레 말을 이어간다. 

 “ 오늘은 저 녀석들이 다행히 그냥 물러갔지만 사실 앞으로 어찌될지는 아무도 장 

  담 못하는겁니다. 일단 당분간은 숨죽이며 조용히 사는수밖에 없어요. ” 

 “ 아버님은 잘 계시겄지요 ? ” 

 아까 공산당원들한테 ‘돌아가신지 오래되었다’고 말한 황노인은 미리 황정수가 준비해놓은대로 인근 야산 토굴에 숨겨놓은 상태. 다만 이런 시간이 장기화 된다면 나이 이미 60을 넘어 어느덧 70이 다 되어가는 고령의 황노인의 몸과 건강이 온전하리라 보장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불안하고 힘든 상황인것만은 달라질게 없는 상황. 정수는 일단 아버지를 좀 뵙고 와야겠다며 다현이 간단하게 싸준 먹을 것을 챙겨들고 황노인이 숨어있는 토굴로 갔다. 

 “ 아버지, 저 왔습니다. ” 

 행여 누가 들을세라 조심스럽게 그렇게 부르며 토굴안으로 들어간 정수. 아버지는 작은 촛불 하나도 켜놓기가 쉽지 않아 그나마 새어들어오는 달빛에 의지하며 정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일단 급한대로 먹을 것을 좀 챙겨왔습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며칠은 버티실수 있 

  을거에요. ” 

 며칠이라도 버티라며 집에 해놓은 밥과 나물과 김치종류를 작은 단지같은데 담아 가져온 것이다. 어차피 황노인이 나름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라 평상시 집의 식사도 찬거리가 세가지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엄중 단속을 하던 사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집에서 편안하게 먹던 밥과 이런 어둠의 토굴속에서 불안하게 먹는 밥의 맛은 하늘과 땅차이가 될 수밖에 없다. 황노인이 정수를 보며 말한다. 

 “ 헌데 이제 어찌하면 좋으냐 정수야 ? ” 

 “ 일단 저희 집과 재산은 안전하게 보존할수 있을겁니다. 다만 그 시간이...과연 얼 

  마나 버틸수가 있을지... ” 

 사실 엄밀히 따지면 6.25가 3년동안 치른 전쟁이라지만 실제 휴전선 이남지역이 적지에 있었던 시간은 석달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천상륙작전이 그해 9월 15일에 있었고 서울수복이 십여일이 지난 28일(9.28 서울수복)에 있었으니 최대한으로 따져봐야 겨우 그 정도의 시간 아닌가. 허나 한치앞의 일도 알수없는 것이 인간이니만큼 그 석달동안 어찌 자신들의 앞날을 장담하거나 짐작할수 있으랴. 게다가 그 석달의 시간이 보통의 시간이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주니 자본가니 친일파니 혹은 반동분자(반공주의자)니 뭐니 하며 인민재판장에서 죽어갔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강제로 인민군에 끌려가거나 납북되었던가. 그야말로 이후의 세대들의 상상으로는 도무지 짐작이 불가능할 끔찍한 지옥도(地獄道)가 펼쳐졌던 석달인 것이다. 그리고 황노인의 가족들은 아직 그 지옥의 도입부에나 와 있는 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 지옥도의 시간은 결국 석달밖에 가지 못했다. 허나 이후에 더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실 정수는 지난 석달간 ‘전주시 인민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공산당을 좋아하거나 지지해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 재산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자신의 진짜 속내를 숨기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인민위원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북한군측이든 인민위원회에 참여한 청년들이든 정수를 진짜 자기편으로 여겼던것일까. 막상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지고 남쪽의 인민군들이 북으로 후퇴하기 위해 어수선할 때 그때 함께 올라갈 결심을 한 공산당 청년 하나가 정수의 팔을 잡은 것이다. 

 “ 형, 우리도 같이가요. ” 

 어쨌든 적진인 공산진영을 도왔으니 국군이 수복을 하게 된다면 공산당을 도운 자신들이 무사하지 못할것이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충분히 짐작할수 있을일이다. 다만 이중에는 이참에 진짜 후퇴하는 공산군을 따라 북으로 가버릴까, 아니면 어쨌든 상황이 위급하니 한 몇 달동안만이라도 잠시 몸을 피신해있을까. 생각들은 제각기일 수밖에 없다. (* 역으로 1.4후퇴때 피난온 실향민들 대다수가 원래는 ‘애초엔 난을 피해서 한 몇 달만 남쪽으로 피신해있자’는 생각이었던것과 비슷한 이치다.) 허나 정수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지 공산당이 좋아서 도운 것이 아니다. 허나 수복이 된다면 이후의 일이 어찌될지는 누구도 장담할수 없다. 그럼 정말 이대로 북한까지 가는건 아니더라도 한 몇 달만 어디 다른곳으로 몸을 피신해있을까. 짧은시간에 정수의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형, 뭐해요. 우리랑 같이 가자니까요. ” 

 임시방편이긴 했지만 여하튼 적극적으로 인민위원회를 도운 자신을 이들은 ‘정말 자기편’으로 그동안 오해했던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수복이 되면 너도 죽은 목숨이니 우리랑 같이 가는게 어떻겠느냐 ?’는 식의 위협이나 압박인것일까. 정수의 머릿속 만큼이나 ‘같이가자’고 재촉하는 공산당 청년의 표정도 그 진짜 속내가 파악이 안될만큼 무척이나 복잡해보였다. 

 허나 지금이 한가하게 장시간 ‘지식인의 고뇌’를 하고있을때가 아니다. 빨리 결단해야 한다. 이미 인천에 상륙한 UN군은 서울로 진격하고 있고, 낙동강의 국군도 이미 반격을 시작했다지 않는가. 앞으로의 일이 또 어찌될지는 그야말로 누구도 한치앞을 예상할수 없는 긴박한 상황. 정수는 결국 결심을 했다. 

 “ 그래, 가자. ” 

 그렇게 결심하고 이들을 따라나선 것이다. 따라서 애매해지는 것은 결국 황노인의 집안이다. 원래 정수는 집에서 그렇게 출퇴근을 하듯 지난 석달간 매일같이 인민위원회를 오갔고 그리고 밤에는 며칠에 한번씩이라도 인근 야산 토굴에 숨겨놓은 아버지에게 식량을 가져다드리는 그런식의 일상을 살아왔다. 헌데 그 정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무슨일인지 다현도 궁금하고 불안해지지 않을수가 없다. 

 “ 이 사람이 대체 어찌된일인겨 ? 기별도 없고... ” 

 다현도 지금은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었고 조만간 국군이 이곳도 수복하게 될것이라는 식의 소식을 못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결국 인민군 치하 시간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는것인데, 인민군이 후퇴를 했든 안 했든 이 집안의 장남 황정수가 대체 왜 돌아오지 않고 있단 말인가.  

 사실 그동안 황노인 집안에는 또다른 손실이 있었다. 원래 애초에 정수는 차남 정태와 삼남 정호의 가족을 피난시키고 가장 막내인 정남은 함께 남아 이 집을 지키는 것으로 결심했다. 헌데 그 4남 정남이 그 사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미 북한군이 점령을 한 뒤의 일이니 폭격을 맞아 죽는다던가 하는 그런 것은 아니고 인민군이 동원한 건설사업에 동원되었다가 그곳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정수는 아직 그 일을 아버지에게도 알리지 못했고 이래저래 복잡하면서도 불안한 시간이 한동안 또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국군이 수복을 하게 되었고 다현은 이제 안심이다 생각하고 토굴에 숨어있는 황노인을 집으로 모셔오려고 했다. 근데 다현이 정확히 황노인이 숨은 토굴 위치를 모른다는게 문제였다. 애초부터 토굴의 장소를 아는 사람은 이 집안 식구중 황정수 하나뿐이었다. 다현을 믿지 못해서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기 보단 여하튼 가급적 한사람에게라도 덜 알리는것이 아버지 황노인의 비밀을 확실하게 지킬수 있는 길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나 덕분에 황노인의 토굴을 다현이 찾는데 며칠의 시간이 지났고 무엇보다 토굴안의 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어 어느덧 칠십의 황노인은 많이 병약해져있다. 국군이 수복을 했다지만 아직 모든 생활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 의원을 부르기도 쉽지가 않고 다현은 다만 뒤늦게나마 사남의 사망소식 그리고 장남의 소식이 끊긴 것을 알리는수밖에 없었다.   

 “ 죄송하구만이라...정남씨(4남 이름)가 세상을 떠난 것은 정수씨가 아버지한테 알리 

  지 않는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것이지만...게다가 지금은 그 정수씨마저도 행방 

  을 모르고... ” 

 “ 아닐세 아니야. 난리통에 자기몸 보전하기도 다들 쉽지 않았을 것을 그런것까지  

  다 챙길 겨를이 어디 있었겠나. 자네 잘못이 아니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게. 저 세 

  상으로 간 우리 정남이도 자네를 원망하진 않을터이니... ” 

 여하튼 지난 10년간 황노인의 나이많은 아들들과는 그럭저럭 서로를 존중해주는 관계로 그렇게 살아왔으니 정남의 사망이 다현의 책임은 아니라고 거듭 그녀를 위로하고 있는 황노인. 허나 정남뿐만 아니라 지금은 장남 정수도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그러니 다현도 황노인도 더더욱 불안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 도대체 이 사람이 어디로...설마 인민군 놈들이 강제로 끌고간 것은 아니겠지라 ? 

 ” 

 “ 설마 그렇게까지야 했겄나. ” 

 “ 아니여라. 후퇴하는 인민군놈들이 무슨 억화심정인지 이런저런 글줄쓰는 놈하며  

  힘쓰는 장정하며 모조리 끌고갔다는식의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라. 아무래도 정수 

  씨에게도 무슨일이 생긴 것 같어라. ” 

 그렇게 장남 정수의 일까지 걱정하고 있는 두 사람. 한편 피난을 갔던 정태와 정호는 한달쯤 뒤에 복귀할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4형제중 한명은 죽고 한명은 실종된 상태지만 그럭저럭 나머지 가족들이라도 다시 한자리에 있게 되었을 때. 헌데 새로운 시련이 닥쳐올 준비를 하고있었다. 

 “ 문열어 !!! 여기 황정수가 사는집 맞지 !!! 어서 문 열지 못해 ? ” 

 어느정도 집정리를 하고 정태와 정호네 식구들도 각기 원래 자기가 살던 집을 정리하며 생업에 다시 종사할 준비를 하고 있을때쯤 황노인의 집 문을 두드리는 한떼의 청년이 있었다. 치안대였다. 

 “ 황정수 그 자식도 빨갱이 맞지 ? 인민위원회에 함께 있었다는걸 본 사람이 한둘 

  이 아닌데 ? 황정수 그 자식 어디있어 ? ” 

 공산당이 물러가니 이젠 치안대 세상이 된것이라고나 할까. 나름 비록 수복이 되긴 했다고는 하지만 확실하게 안정적인 정부 통치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시절에 나름 자체적으로 지역 치안을 책임지겠다고 만든 조직들이다. 허나 이 치안대에 참여한 청년 대다수가 공산당 시절엔 호되게 당했던 이들이라 그 복수심에 혈안이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공산당보다 더 혈안이 되어 공산당에게 협조한 빨갱이들을 샅샅이 찾아내고 있을 때. 황정수의 행방도 그렇게 치안대가 찾고 있었던 것이다. 

 “ 이게 대체 무슨일이여라 ? 대체 아침부터 이게 웬 소란이여라 ? ” 

 이때 칠순의 황노인은 석달여의 토굴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인지 병세가 많이 악화되어있었다. 다현이 나름 백방으로 뛰어 의원을 두어번 부르기도 했지만 상태가 호전되긴 어려웠고 자연스레 다현이 지금은 이 집의 가장노릇을 하고있었다. 

 “ 아주머니가 이 집 주인이시오 ? ” 

 “ 이 집 주인 안 사람되지만...저희 바깥어른은 노환으로 거동을 좀처럼 못하시고... 

  대체 무슨일들이시오 ? ”  

 “ 황정수란 사람이 이 집 아들 맞소 ? ” 

 일제때 유명한 고리대금업자인 황노인. 그리고 그 장남인 황정수. 헌데 지금 어느덧 나이 서른을 넘긴 다현이 이래저래 너무 젊다고 느껴서일까. 치안대라며 달려온 이들은 아직 ‘다현’의 정확한 정체가 파악이 안 돼 자기네들끼리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이 지역 사정을 그런대로 알고있는 청년이 옆에서 거들었다. 

 “ 황OO 선생이라면 아마 왜정때 젊은 후처를 들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이 아주머니 

  가 아마 그분이신거 같네요. ” 

 



 “ 그럼 황정수라는 사람이 이 집 아들이 아닌건가요 ? ”
 

 자신들이 뭘 잘못알고 찾아온건가 싶은 생각도 들어 치안대의 우두머리급들은 뭔가 풀죽어하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이들을 보며 다현이 대답한다. 

 “ 황정수는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 죽은사람을 어찌 여기서 찾으신다요 ? ” 

 “ 죽은...사람이라구요 ? ” 

 이건 또 갑자기 무슨소린가. 어리둥절해진 치안대 대장급 인사가 묻고 다현으로선 순간 어떤 기지를 발휘할 생각이 떠오른것인가. 아니면 아무래도 이 상황이 적당히 넘어갈수 있는 사안이 아닌듯하니 이렇게 처리하는게 그나마 안전할것이란 판단을 한 것인가. 여하튼 현재 행방이 불분명한 상태인 황정수에 대해 거듭 이와같이 말한다. 

 “ 황정수라는 이가 저희 어르신(남편) 큰아들은 맞아요. 허나 저야 어차피 후처라서 

  사이도 그리 좋지 못혔고...여하튼 난리통에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 ” 

 “ 거...거짓말일거에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민위원회에서 빨갱이들을 돕고 있 

  는걸 뻔히 봤는데...아마 다른X들처럼 어디로 숨어버리던가 했을거에요. 다시한번 

  알아보세요. ” 

 치안대 무리중 평소 황정수와 어느정도 면식이 있었던이가 그와같은 증언을 한다. 물론 어치피 이들이 황정수란 사람은 죽었다는식의 다현의 답변을 바로 곧이 믿어주지 않을 것 같긴 했다. 거듭 치안대 대장이 압박해온다. 

 “ 아주머니. 거 대충 우리가 누군지 모르진 않을터이니 말씀을 드리리다. 우린 수복 

  지역의 행정과 치안이 정상적으로 돌아갈때까지 일시적으로 이 지역 안전을 책임지 

  는 치안대들이요. 물론 수복지역 행정과 치안이 다시 원활하게 돌아가면 공식기관 

  에 우리가 한 일들을 고스란히 보고해서 올릴테고요. 어쨌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동안 빨갱이들한테 협조한 부역자들을 찾아내는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황정수의 행방에 대해 바른대로 말씀하시는게 좋아요. ” 

 “ 이미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소. 이미 죽고 없는 사람에 대해 더 뭣을 이야기할수 

  있는게 있다요 ? ” 

 “ 얼마전까지 인민위원회에 있는걸 제가 봤는데요 ? ” 

 다시금 불과 얼마전까지(인민군이 후퇴하기 전까지) 황정수를 목격한적이 있는이가 이와같이 반박하듯 나왔다. 그러자 다현이 거듭 손을 내젓는다. 

“ 글쎄 그 사람이 얼마전까지 인민위원회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이라니께요. 그리고 이보시오. 그러고보니 그쪽도 내 

  그쪽 성함은 아직 모르지만 그쪽하고 나도 지금껏 면식이 전혀 없던 사이가 아닌  

  것 같은디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그리 서운하게 하신다요. 이보시오...그래 내 말이 

  나왔응게 하는 말이지만 이 집 막내아들도 그 공산당놈들 강제노역에 끌려가 죽은 

  거 그쪽도 모르지 않을거요. 그렇게 이 집안 막내아들도 죽고 큰아들도 죽고...내가 

  비록 이 집안 후처이기로 그 기가막힌 사연을 모르는 사람도 아닌디...어찌 그리 서 

  운한 말씀을 하실수가 있다요. ” 

 “ 어쨌든 아주머니...이 집 큰아들 빨갱이짓 한건 맞잖아요. ” 

 다현의 반박에 기가죽은 듯 하던 조금전 그 청년이 다시금 억울하다는 듯 반박한다. 치안대장이 일단 그를 진정시키고 이렇게 묻는다. 

 “ 아주머니는 황정수씨가 죽은걸 어떻게 알수가 있었나요 ? ” 

 “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요 ? 어쨌든 죽은것만은 확실하오. ” 

 “ 여하튼 황정수씨가 이 집 큰 아들이라면서요 ? 아주머닌 이 집 후처가 되는거고 

  ? ” 

 “ 야, 그렇게 된다오. ” 

 “ 황OO 어르신은 그럼 어디 계신가요 ? 지금 잠시 우리가 대화좀 나눠볼수 있을까 

  요 ? ” 

 여하튼 확인할 것은 분명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겠는 듯 치안대장은 거듭 집요하게 나오고 있다. 다현이 탄식조로 말한다. 

 “ 우리 어르신은 지금 살아계시긴 하시지만...이미 연세가 70이고 또 빨갱이들한테 

  하도 당해서 지금 몸이 몹시 말이 아니다요. 건강도 많이 나빠지셨고... ” 

 “ 어쨌든 잠시 좀 뵈어야겠으니 안내해주시죠. ” 

 황노인과의 면담을 요구하는것까지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다현은 결국 방안에 편찮아 누워있는 황노인을 보여주기로 한다. 다른건 몰라도 황노인도 이미 나이 70을 넘겼고 석달동안 토굴에 숨어살며 건강이 많이 악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적어도 그 부분만은 육안으로 확인이 되었다. 아까 황정수의 일을 치안대에게 증언했던 청년이 일단 나서본다. 

 “ 어르신...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 ” 

 “ 으어... ” 

 정말 건강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것일까. 거동은 물론이려니와 어찌보면 이제 말조차 꺼내기 쉽지 않은 그런 몸상태로 보이는 황노인. 일단 청년이 차분하게 말을 건넨다. 

 “ 어르신 저 봉식이라고...어릴때는 황정수 형하고도 같이 개울가에서 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참 그랬던 형이 어쩌다 빨갱이짓을 다 했는지...어쨌든 어르신...정수 

  형 지금 어디 있어요 ? ” 

 “ ...으어...몰라... ”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은 듯 손이나 겨우 내저어보이며 이런 반응을 보이는 황노인. 청년이 다시금 말을 건네보나 그 사이 정신까지 혼미해졌는지 황노인은 뜻모를 소리만 내뱉을뿐이다. 

 “ 배고파 밥줘... ” 

 “ 예 ? ” 

 “ 배고파...몰라...나 밥줘... ” 

 “ 아니 저 어르신...그런게 아니라...정수형 지금 어디있는지를 여쭤본건데... ” 

 허나 아무리 봐도 심각해보이는 노인에게 더 물어봤자 소용없을거라 판단한 듯 치안대는 이쯤에서 물러난다. 다만 아직 미심쩍은 의혹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 경고라도 하듯 다현에게 분명히 이렇게 못박아둔다. 

 “ 여하튼 우린 전주일대가 적지(敵地)가 되었을 때 이적(利敵)행위를 한 부역자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하는겁니다. 수복지역이 정상적인 행정과 치안상태가 회복되기전 

  까지 빨리 처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협조해주셨으면 합니다. 

 ” 

 “ 글쎄 황정수 그 사람 난리통에 이미 죽었다고 이미 몇 번을 말했다요. 죽은 사람 

  갖고 저만 이리 괴롭히시면 저보고 대체 어쩌라는 말씀이시오 ? 그리고 공산당놈 

  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지주와 자본가란건 세상이 다 아는데...우리같은 집안에서  

  공산당 도울일이 뭐가 있겄소 ? ” 

 사실 그런식으로라면 석달동안 이런 부잣집이 무사할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의혹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치안대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하며 이렇게 말한다. 

 “ 여하튼 우리의 임무는 이적행위를 한 부역자들을 처벌하는겁니다. 다만 우린 공산 

  당과는 달라서 연좌제 같은건 적용 안하니 나중에라도 황정수씨 소식을 알게되면  

  바로 전해주십시오. 물론 정상적인 행정상태가 돌아가게 되면 관련기관에 신고를 

  해야겠지만 여하튼 언제가 되었든 황정수씨 소식을 알게되면 바로 알려달라는 이 

  야깁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아주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연좌되어 피해를 본다거 

  나 하는일은 없을겁니다. 허나 만약 황정수의 소재지를 알고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죄가 될수 있으니 그렇게 아세요. ” 

 “ 야, 무슨말씀이신지 잘 알아들었어라.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사람 이미  

  죽고 없는 사람 맞다니께요. 뭐 나중에 죽은 그 사람 귀신이 다시 여기 찾아올일 

  이 있을려는지는 모르겄지만 여하튼 지가 알고 있기로는 난리통에 죽은 것이 맞 

  아요.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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