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다 혀 니 여 라
사실 소박맞은 과부나 젊은 미망인뿐만 아니라 심하게는 성*행 피해여성이나 빚에몰려 팔려가게된 여인이 나이많은 남자의 후처나 첩실이 되는일은 이 시대까지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여자 입장에선 기가막힌일이 아닐수 없지 않은가. 다현으로서도 막상 황노인의 그와같은 제안을 받자 고민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도 살려주시고 일시적으로 거두어주신 고마운 사람들로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다른 흑심이 있었더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반가의 핏줄이었던 자신이 이런 늙은 고리대금업자의 후처가 된다는 것.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허나 또 한편으로는 어차피 오갈데 없는 천애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자신이 이제 이곳을 나가면 자칫 여기저기 떠도는 정처없는 떠돌이 신세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차라리 그럴바엔 나이많은 남자의 후처라도 되는게 낫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번민의 밤을 보냈다.
한편 아버지로부터 이런 의사를 전해들은 황노인의 네 아들도 자연스럽게 반발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나마 장남 정수는 그래도 혼자되신(?) 아버지를 애처롭게 여기는 효성스러운 마음이 있어서인지 아버지를 이해해드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으나 차남 정태와 삼남 정호는 이미 당치도 않다는 듯 펄쩍뛰고 있었다. 사실 가부장 중심 문화인 이 시대에 아버지가 ‘자기뜻이니 거스르지말라’고 엄명만 내리면 아들이든 딸이든 끽소리 못하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긴 하다. 그래서 아버지를 설득하거나 반항을 하느니 차라리 다현과 직접 담판을 짓는게 낫겠다고 판단한 정태와 정호가 다현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잠시 들어갔다.
“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하죠. ”
이미 이 집안에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라 피차 무슨 용무로 찾아온것인지 모르진 않을터. 그런 상황에서 빙빙 말돌릴 것 없다는 듯 정태가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 안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만약 그렇게 되면 저희 아버지 몇 번째 부인이 되시는
건지 알기는 하세요 ? ”
“ 예 ? ”
사실 다현은 황노인으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로부터 이미 상처한지 10년이 지난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만 이야기를 들었다. 엄밀히 말해선 죽은 것은 아니고 전부인이 제발로 집을 나간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죽은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데. 그러니 다현으로선 황노인의 네 아들의 친어머니가 되는 전부인이 그렇게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지 오래되어 죽은것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단말인가. 다현이 여전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정태등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멍하니 바라만 보는데 정태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 네 번째에요. ”
“ 네에 ? ”
순간 황당해하는 다현. 그러나 ‘설마’하는 심정으로 있는데 삼남 정호가 보다 구체적은 설명을 해준다.
“ 그러니까 저희 4형제의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게 맞아요. 그걸 아버지
가 얼렁뚱땅 ‘사별’로 얼버무리신 모양인데 여하튼 저희 막내가 아직 어릴 때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신것이니...10년이 뭐에요.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일이지. ”
4남 정남의 현재 나이가 20대 초반이니 여하튼 그 정남의 어릴 때 아이들 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여하튼 그 정도 세월이 흐른것만은 맞다. 헌데 그 뒤의 곡절이 대체 또 어찌 돌아갔다는것인지. 정호의 설명이 마저 이어진다.
“ 이후 새어머니가 두 번정도 더 들어오셨어요. 다행히 그 두분 다 성품이 그리 모
질지는 않고 저희도 잘 챙겨주시던 그런분이었지만...여러가지로 저희 아버지와 맞
지 않았는지 결국 두분 다 집을 나가셨어요. 저희 아버지와 사신지는 첫 번째 새어
머니(두번째 부인)는 3년을 채 못 버티시고 집을 나가셨고 두 번째 새어머니(세번째
부인)는 그보다 좀 더 오래 버티시긴 했는데 그래도 역시 5년을 못 버티시고 집을
나가셨죠. ”
그러니까 도합 20년 가까운 세월이 된다. (* 4형제의 친모인 첫 번째 부인이 여하튼 아들 넷을 낳고 10년 가까이를 황노인과 살았다고 하니 그 시간까지 포함하면) 헌데 어쨌든 황노인의 나이가 이미 60을 넘었고 그의 네 아들이 모두 20대. 그러니 그래도 두 번째 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오래 살았다는 세 번째 부인 역시 집을 나간지는 10년정도 시간이 흐른 셈인데 그 복잡한 사연을 황노인이 교묘하게 뭉뚱그려 ‘전부인이 집을 나간지 이미 10년정도 세월이 흘러 지금은 사별한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다현 입장에서도 황노인한테 제대로 속은 것이 분명한데, 그러니 막상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다현도 기가막히고 분할터. 그런 다현의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지 차남 정태가 다시 묻는다.
“ 어떻게 하시겠어요 ? 이래도 기어이 저희 아버지 네 번째 부인이 되시겠어요 ?
”
다현은 순간 설움이 북받쳐 왈칵 울음을 터트린다. 그 심정을 그런대로 이해는 하는지 정태와 정호가 달래주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나름 대안이랍시고 그들 나름대로 이런 제안을 하기도 한다.
“ 사실 저희도 다현씨가 지금 오갈데 없는 처지인 것은 그 사연을 익히 아는터라...
저희도 나름 고민을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양반가 핏줄이란분을 이 집에서
하녀로 부려먹을수도 없고. ”
“ 지...지는 그런건 다 상관없어라. 빨래를 하든 청소를 하든 시키는건 뭐든지 할 각
오가 되어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지라... ”
여하튼 다현도 이미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된 마당에 양반가 핏줄만 계속 내세울수 없다는 자각은 이미 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집에서 설사 자신을 하녀로 부려먹는다 하더라도 목숨이나마 겨우 건진 처지로 그나마 감지덕지하게 받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는것인데 일단 그건 정태나 정호도 아니다 싶은지 손을 내젓고 이런 제안을 한다.
“ 그보단 차라리 저희 누이동생이 되시는게 어떻겠어요 ? ”
“ 야 ? ”
“ 어쨌든 다현씨 나이가 저희 막내 정남이보다도 한 살 어린게 되는거잖아요. 그러
니 차라리 저희 아버지 호적에 올려서...한마디로 아버지 양녀가 되는게 어떻겠냐
이 말이죠. 나중에 그럼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유산은 심심치 않게 배분
해 드릴께요. 또 여동생으로 이 집 딸로 인정하고 그만한 대우도 대접도 다 해드리
고... ”
“ 아...아니어라. 당치도 않어라. 지가 언감생심 어떻게 그런... ”
어차피 다현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마냥 황노인의 집에 눌러살며 신세만 질수는 없으니 이곳을 떠난다면 떠난다고 다현이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의탁할만한 곳도 마땅찮은 처지인 것은 달라질것이 없고, 그러니 양반가 여식이란 자존심 다 버리고 이곳에서 허드렛일이라도 돕는 하녀로라도 살 것인가. 아니면 그 둘 다 자존심 때문에 못하겠다면 황노인의 제안대로 비록 ‘네번째 부인’일 지언정 그의 후처가 되던가 아니면 아들들의 제안대로 이 집 수양딸이 되던가. 여하튼 다현도 아주 뻔뻔스럽거나 양심이 없는 여인이 아닌 이상 아무리 갈곳없는 처지기로 무작정 여기에 눌러살기만 할 수는 없을터. 그렇다고 간다고 갈곳이 있는것도 할수있는일이 있는것도 아닌 처지라면 결국 선택지는 그리 많지가 않다. 사실 원래는 자존심 다 버리고 여기서 하녀노릇이라도 할까 생각까지 해본 다현이건만 뜻밖에도 그녀의 고민끝 최종 선택지는 황노인의 후실이 되는것이었다.
“ 어르신 뜻대로 하겠어라. ”
황노인이 기뻐서 다현을 안았다. 아무리 돈만 많은 수전노같은 노인이기로 그래도 양심이 전혀 없는 성격은 아닌 처지로 너무 어린 여자애한테 차마 못할 제안을 한 것이 아닌가 황노인도 미안해하긴 했는데 결국 그 제안을 받겠다고 하니 황노인은 기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도 남을 일이었다. 아들들 입장에선 아버지의 뜻이 그러하다니 무작정 반대만 하고 쌍심지를 켤수도 없었지만 여하튼 씁쓸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현실이 다가오게 된 것이다.
여하튼 첩실을 들이는것도 아닌 네 번째일지언정 정식으로 부인을 맞이하는 일이니 결혼식도 성대하게 치러주었다. 황노인도 무려 네 번째 장가를 가게 되는것이지만 다현도 사실상 두 번째 혼례복을 입게 되는 일이니 만감이 교차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감격의 눈물이 흘려지기도 하는 그런 날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대에 남자도 아닌 여자 입장에서 혼례복을 두 번씩이나 입는날이 올것이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어느덧 4년전 열아홉 나이로 조태선의 외동아들 조한욱에게 시집을 갈때는 물론 한욱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거나 시댁에서 소박을 당할때도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에 앞으로의 일들이 막막해 차라리 자살을 시도하려 들었을때는 더더욱 이런날이 올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 다현이 한욱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을때가 대략 지난해 여름이고, 그로부터 반년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으로 보면 된다. 다현의 나이는 어느덧 스물셋이다.)
그렇게 감격스러운 눈물속에 치러지게 되는 다현의 두 번째 혼례. 한편 황노인 자체가 인맥도 넓고 이 일대에서 제법 유명한 고리대금업자이니 그 혼례식장에 많은 하객이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이들은 황노인의 네 번째 장가가는 모습에 어이없어하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어쨌든 요즘은 돈많은게 최고구먼’ 하면서 내심 부러워하기도 하는. 그렇게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서 별의별 생각과 감정이 다 들 수밖에 없는 그런 성대한 혼례식이 치러진 것이다.
이것도 초야(첫날밤)의 개념에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황노인과 다현이 합방을 하는 첫날밤인것만은 분명하다. 다행히(!) 첫날밤은 대체로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다현에게 아직도 4년전 그 꼬마신랑이나 다름없던 한욱이 신방에 들어와 자신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뛰쳐나가던 모습이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있을 터인데, 이제야 이렇게 나이많은 신랑일지언정 정상적으로 자신을 안아주는 황노인을 보니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다시 흘러나오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며칠쯤 지났을때부터 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황노인의 새신부가 된 다현. 헌데 하루는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는데 어디서 가져왔는지 황노인이 무슨 고무줄 같은 것을 방 한가운데 치고 있었다. 대충 한쪽에는 대략 촛대나 이런 끈같은 것을 묶을수 있는 그런 기물을 가져와 그쪽에 묶고 다른 한쪽은 옆의 자개장 같은곳 너무 높지는 않고 그런대로 낮다고 볼 수 있는 위치에도 고무줄을 묶었다. 그렇게 방 한가운데 줄이 쳐진것인데 쳐진줄의 위치가 그렇게 높다고 볼수는 없고 대략 성인 무릎보다는 아래쪽에 있는 옷장이나 자개장 서랍 맨 아래 첫째칸 위치까지는 올라오는 그 정도 위치에 쳐진 것이다. 여하튼 그냥 지나가려먼 치마에든 다리에든 걸릴것이 분명하고 그나마 건너가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발과 다리만 살짝 들기만 하면 무난히 건너갈수 있는 그 정도 높이에 줄이 쳐진 것이다.
“ 어르신...이게 다 뭣이여라 ? ”
속옷바람으로 잠자리에 들려던 다현이 궁금해서 물었는데 황노인이 그런 다현을 보며 요구한다.
“ 저길...건너보아라. ”
“ 야 ? ”
이게 갑자기 무슨 해괴한 요구인가. 다현은 여전히 황노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그저 황당한 듯이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런 다현을 보며 황노인이 거듭 재촉한다.
“ 저기...건너서 지나가보란말이다. 저기 조금전에 내가 줄을 쳐놓은데... ”
바로 그 대략 무릎 아래정도 위치까지 올라오게 쳐놓은 줄을 건너가 보라는것인데 일단 다현은 별다른 의심없이 그곳을 건너가 보았다. 어쨌든 다리만 살짝 들면 무난히 건널수 있는 높이니 다현은 별 의심없이 건넜는데 그 바람에 다현의 속치마가 살짝 열려져 그녀의 하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긴 한다. 헌데 황노인이 거듭 요구한다.
“ 거길 폴짝폴짝 건너보거라. 마치 고무줄놀이나 줄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
“ 야 ? ”
이게 대체 무슨 해괴한 짓인가. 다현은 거듭 황노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그저 어이없기만 하고 황노인이 거듭 다현을 재촉한다.
“ 허허...어서 마치 고무줄 놀이라도 하는 어린 계집처럼 폴짝폴짝 건너가 보라니께.
내가 이리 원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어서. ”
그리고는 자신이 원하는 동작을 그대로 해줘야 한다는 듯 자신이 마치 고무줄 놀이를 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60 넘은 노인의 그러는 모습을 보니 순간 좀 우스꽝스럽기도 했는데, 여하튼 일단 다현은 ‘설마 뭐 별일이야 있으랴’ 하며 고무줄로 쳐놓은 그곳을 황노인이 시킨대로 살짝살짝 두어번 넘어가 보긴 했다. 여하튼 확실한건 다현의 속치마 사이로 다현의 양 다리가 거듭 드러나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선 허리나 허벅지는 물론 엉덩이까지도.
“ 하이갸...하이갸...어서 또 해보거라 !!! 또 !!! 또 !!! ”
황노인은 마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라도 해달라며 할머니를 조르는 어린아이같은 말투로 ‘또 !!! 또 !!!’ 해달라고 하고있고 다현도 그쯤되니 ‘이거 뭔가 이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허나 거듭되는 황노인의 재촉은 다현이 거부하면 호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기세라서 결국 다현은 노인이 시키는대로 계속 하기로 했다. 고무줄이라도 넘듯 줄을 폴짝폴짝 넘으며. 원래 줄의 높이 자체가 그냥 다리만 살짝 들어도 건널수 있는 무난한 높이긴 했지만 여러번 반복되며 속도도 차츰 빨라지니 다현도 숨이 차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 하아...하아...어르신 대체...이걸 언제까지 해야하는 것이어요 ? ”
“ 어서 빨리 해...어서 빨리 또 줄을 넘어보라니까. 어서 !!! ”
대체 황노인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여하튼 확실한건 그런 동작을 취하면서 다현의 속치마 아래로 가려지는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경우에 따라선 허벅지와 엉덩이 부위까지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러고보면 황노인이 바로 이 모습을 즐기는것인지. 노인의 이런 요구가 거듭되자 다현도 급기야 지치고 만다.
“ 어르신...저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구만이라. 도대체 지가 언제까지 이걸 해야만 하
는 것인디요 ? ”
“ 어여 해...어여 해보라니까 !!! 또 !!! 또 !!! 또 !!! ”
다현은 시간이 갈수록 지쳐서 힘들어하고 기어이 울음까지 터트리지만 황노인은 이런 광경이 더 재미있고 흥분이 되는지 희열넘치는 표정이 되어가고 있다. 하얀 턱수염과 콧수염 사이로 헤벌레 벌어지는 미소와 입술은 그야말로 희열을 느끼는 노인 그 자체의 모습이다. 다현은 계속해서 노인의 요구대로 하고 다현은 지쳐가며 울고 노인은 좋아하고 그런 모습이 한동안 지속되고 있다.
“ 아니 도대체 저 영감탱이...도대체 방안에서 무슨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거야 ? ”
방안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니 밖으로도 새어나오지 않을수가 없게된걸까. 우연히 그런 소리를 듣게된 둘째 정태가 해도 너무한다는 듯 순간 발끈하고, 도저히 못보겠다는 듯 아버지 방으로 뛰쳐들어갈 기세인 정태를 일단 정호가 만류한다.
“ 진정해 형. ”
“ 진정하게 되었냐 저게 ? 뭐 다 좋다 이거야. 젊은 여자를 후처로 들이든 네 번째
마누라를 삼든...다 좋다구. 근데 저게 대체 다 뭐하는...못할짓이냐구 저게 도대체
!!! ”
일단 정태나 정호나 이런 밤에 아버지의 방을 엿보거나 한적은 없으니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100%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고 방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로 대충 지레짐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처음엔 그저 나이많은 아버지와 관계를 갖는 젊은 새어머니의 신음소리 정도로 짐작한 소리가 아무래도 그런 소리가 아닌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정태가 기가막히는 것이다.
“ 저러니 들어오는 새어머니들마다 다들 몇 년을 못버티고 다 도망가고 말았지. 도
대체 젊은 여자 들여서 밤마다 대체 저기 무슨 못할짓이냐구 정말...노인네가 망령
을 부리는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
“ 형... ”
아무리 그렇기로 아버지한테 하는 아들의 말로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지 동생 정호가 그런 형을 거듭 만류하고 정태는 정태대로 이런 집구석이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자기방으로 들어가는 정태. 정호도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바깥에서 서성이다 딱히 여기서 지금 할 것도 없어 이쯤에서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몇 달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밤에 잠자리에선 다현에게 다소 엽기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황노인이긴 했지만 그 외에는 황노인도 대체로 젊은 새 아내 다현을 예뻐하고 아껴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은 대체로 큰 탈 없이 무난하게 잘 흘러갔다. (* 허나 그 변태적인 행위 요구 때문에 이미 전부인 둘이 몇 년을 못 버티고 달아나버린 황노인이기도 하다.) 하루는 낮에 그런대로 한가한 시간에 다과상을 나누며 황노인이 다현에게 말을 건넸다.
“ 허허...다현아. ”
“ 네, 어르신. ”
다소곳하게 답하는 다현. 그런 아내를 보며 황노인의 말이 이어진다.
“ 넌 나를 어찌보느냐 ? ”
“ 야 ? ”
조금 갑작스러운 황노인의 물음인지라 의아하기만 한 다현. 황노인의 말이 계속된다.
“ 그저 고리대금업이나 하며 남들이 꿔간돈을 안 갚으면 갖은 방법으로 괴롭히는 그
런 몹쓸 영감으로 보이냐 ? 아니면 지독한 수전노,노랑이로 보이냐 ? ”
“ 어...어르신... ”
설사 평상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어린아내 다현 입장에서 솔직하게 답할수 있는 말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다현은 답을 망설이는데 일단 이런말을 하는 황노인의 표정엔 어떤 회한이 담겨있다. 그의 말이 계속된다.
“ 아니면 너한테 밤마다 이상한 짓거리나 시키는 그런 정신나간 망령난 영감으로 보
이냐 ? 괜찮으니 그간 네가 지켜본 내가 어찌 생각되는지 솔직하게 말을 해다오.
”
사실 황노인에게서 이런말까지 나올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던지라 다현은 더더욱 당혹스럽다. - 어쩌면 속으로는 ‘알긴아네’ 하며 빈정거리고 있을지도 – 그러나 아직은 황노인의 이런 의도를 알 수 없어 더더욱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황노인은 다현의 고운손을 한번 어루만져보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허허 참...네가 날 어찌 생각하려는지는 모르지만... ”
“ ??? ”
“ 난 사실 어릴 때 한때 이런 생각을 했었어. ”
지금(1940년대 초반) 이미 나이가 60을 넘긴 노인한테 어릴적이라면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말하는것인가. 다현 입장에서 좀 황망하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는데 일단 노인의 말은 계속된다.
“ 사실 난 어릴적에도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면서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넉넉한 환경
에서 자랐기 때문에 적어도 배고픈건 모르고 자란 사람이란다. 헌데 하루는 어머니
를 따라 저자거리를 나갔는데 그러다 거기서 구걸을 하는 거지아이들을 본적이 있
어... ”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것인지 다현은 여전히 황노인의 의도를 알 수 없고 노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 나로선 그때 사실상 처음본 풍경이라 겁도 좀 낫고 또 처음보는 그런 거지아이들
의 낯선 풍경에 궁금함도 일어 어머니한테 물었지. ‘어머니, 세상에 거지는 왜 있는
거에요 ? ”
“ ...... ”
“ 그러자 어머니가 날 보시며 장탄식을 한번 하시더니 이리 답을 하시더구나. ‘나랏
님이 일을 똑바로 못하시니 저지경이 된거지 어찌된거겠니 ?’ 하고... ”
여하튼 1940년대 초반에 60넘은 노인에게 어린시절이면 대략 1880-90년대 정도이리라. 소위 ‘구한말’로 불리는 대한제국은 아직 공식 건국되기 전이니 그냥 조선시대 말엽으로 봐야할텐데 일단 교통,통신이나 일반인들이 세상이 어찌돌아가는지에 대한 정보를 접할길은 더더욱 발달되지 않았고 접하기 어려운 시절. 아무리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들어오는 서양의 선진문물하며 세상이 뭔가 어수선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어느정도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눈치챌만한 시절. 사실 ‘없는데선 나랏님도 욕한다’는 말이 이미 왕조시절부터 존재했으니, 이 시대에 가난의 탓을 나라에 돌리는 말이 장사꾼 어머니한테서 나오는게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헌데 황노인은 그런 어린시절 일을 회상하며 다현에게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 실은 난 그때 어릴 때 이렇게 결심했다. ‘이 다음에 내가 어른이 되면 세상에서
나라와 집이 가난해서 구걸하며 동냥하며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이 모두 없어지
게 하겠다’고... ”
1880-90년대 정도에 열 살도 채 안되는 어린아이가 과연 이런 결심을 할수 있는것일까. 여하튼 아직 세상물정 모르고 철없는 어린시절에 단순하게 생각한 것일수도 있고. - 굳이 다른 비유를 들자면 사극 사모곡(* 1980년대에 방영된 조선 후기 배경의 사극)에서 천민신분 만강이가 ‘이 다음에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 만큼이나 철없는 – 황노인의 이와같은 회한에 찬 고백은 계속된다.
“ 허나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은 차츰 깨닫게
되었다. 뭐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도 있고, 나도 차츰 세상물정을 알면
서 생각해보니까 가난이나 거지,질병같은 것은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도 영원히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헌데 어쨌든 남들한테 돈꿔주고 나중에 그거 이자쳐서 갚으라는 소리나 하는 고리대금업자가 하는 넋두리치고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헌데 그래서 다현은 더더욱 황노인의 의도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고 일단 그의 말이 계속된다.
“ 허나...가난이나 거지를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어느어
느 특정지역에서 또는 어느어느 세월만큼이라도(한 10년동안이 되었든 20년동안이
되었든) 가난 때문에 또는 부모가 없어서 고아로 떠도는 그런 아이들을 일정부분
거두어 먹여살릴수는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
“ ...... ”
“ 내 말은...실은 그래서 나중에 고아원을 한번 세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 ”
‘고아원’이란 개념이 이때도 있기는 했다. 허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개념의 고아원은 대개 6.25를 거치면서 전쟁고아들을 거두면서 생기게 된것이고 그 이전 일제때도 가령 천주교나 기독교 같은데서 운영하는 고아원 시설이 존재하긴 했었다. 허나 황노인이나 다현이나 그런데까지 일부러 관심 가졌을만한 사람은 아닐테고 여하튼 황노인은 자라면서 ‘고아원’을 한번 나중에 세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것인데. 일단 다현 입장에서도 좀 뜻밖의 이야기인지라 놀라 좀 두렵고 떨리는 눈빛으로 황노인을 바라보기까지 하고. 황노인이 잠시 눈물을 비치는 듯 하더니 다현을 한번 사랑스레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이와같은 말을 이어간다.
“ 헌데 그런걸 세우려면 우선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악
착같이 돈을 벌려고 결심한거야. 그러고 언제부터인가 시작하게 된게 고리대금업
이란다. ”
황노인을 그저 지독한 돈만 밝히는 영감에 구두쇠,수전노 그렇게만 생각한 것은 다현도 분명 다르지 않았건만 그런 황노인에게 이런 면모가 있음은 다현도 오늘 처음 알게된 것이다. 실은 다현이 황노인이 돈만 밝히는 정도가 아니라 지독한 구두쇠란것도 이곳에 살게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미 알게되었다. 가령 황노인은 자신은 물론 네명의 아들에게도 식사때 찬거리는 김치와 두부 그리고 나물 한두가지 정도(대략 콩나물이나 시금치 같은)그 이상은 올리지 못하게 했고 고기반찬은 한달에 두 번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늘 하녀들에게 엄명을 내리고 감시를 해왔다. 그나마 다현은 그래도 객식구니 좀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에 고기반찬 한번 더 챙겨주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그렇게 찬거리조차 아끼려고 악을 쓰는 그런 못말리는 구두쇠였던 것이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황노인 아들중 한명이 평상시 어울리는 친구 두어명을 집에 데리고 온적이 있는데 아버지 눈을 피해서라도 진수성찬을 한번 잘 차려주고 싶었다. 하녀들에게 은밀히 그렇게 명을 했는데 기어이 황노인에게 들키고 말았고 불호령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들이냐 ? 돈이 어디서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더냐 ?
당장 치우지 못해 !!! ”
“ 아버지...아무리 그래도 친구들을 모처럼 집으로 초대했는데... ”
“ 닥쳐라 !!! 이런짓을 벌이려거든 이 다음에 나 죽고나서 하던가 하고...아무리 그렇
기로 집까지 찾아온 손님을 야박하게 내칠수는 없으니 간단한 주안상 정도만 올리
도록 하고 다시는 이런 푸짐한 진수성찬은 없도록 하여라 !!! ”
사실 그래서 황노인의 아들들은 원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접대를 한다던가 하는 것은 애초에 꿈도꿀수 없는 일이었고 혹 어쩌다 아버지 눈을 피해 제대로 한상 대접을 하다가도 들키는날엔 이런 불호령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돈을 꿔가든 꿔간돈을 갚는일이든 그렇게 황노인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그에게서 식사대접을 받는다던가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일이었고 황노인 역시 기방을 찾는다던가 밖에서 식사를 하는일은 거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황노인이란 것을 다현도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기 몇 달전부터 이미 대충 지켜봐왔기에 비록 황노인의 아들들이 자신을 살려주고 거둬준 은인이긴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황노인을 이렇게 욕하기도 했다.
“ 지독한 노인 같으니...도대체 그 많은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 나중에 대체 뭣을 할
려고...정말 나중에 죽어서 저승에 싸갖고 가기라도 할 작정인것인가 ? ”
헌데 그런 황노인이 이 다음에 부모를 잃었거나 구걸을 하며 떠도는 고아들을 거두는 ‘고아원’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같고 있다니. 그저 돈만 밝히는 수전노로 알았던 황노인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일단 황노인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지금 내 재산이(부동산까지 포함해서) 전부 합하면 1억환이 되려나...10억환이 되
려나...(1940년대 초반 기준) 허허...진정한 부자는 자신의 전 재산이 얼마인줄을 모
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그렇게 평생동안 모은 내 재산인 이 다음에 고아원을
세우는데 다 쓸 생각으로 있어. 그래서...내가 설마 이 생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
는 모든 고아와 가난한집 아이들의 문제를 일순간에 다 없애지는 못할테지만...그
래도 내가 나고 자란 이 전주땅과 그 인근지역에서만큼은 한 한세대 정도만이라
도 고아나 가난한집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거두어 먹여살려주는 그런 고아원을 만
들고 싶다 그 말이지. ”
“ 그럼 재산을 자제분들한테 물려주시진 않으실 생각이여라 ? ”
다현이 유산에 욕심이 난다기보단 일전에 황노인이 다현을 후처로 거둘 생각이 있음을 밝힐 때 황노인의 아들들이 다현에게 다른 제안을 한적이 있지 않던가. 차라리 저희 아버지 수양딸이 되어준다면 나중에 유산은 심심찮게 나눠주겠다고. 헌데 황노인은 지금 자신이 죽은뒤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털어 고아원을 세우겠다는 구상을 다현에게 밝히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황노인의 아들들은 아직 아버지의 이런 구상을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겸사겸사 궁금해져 묻는것인데 황노인은 그런 다현을 흘깃 바라보다 이렇게 묻는다.
“ 자네는...자식이 부모유산 물려받아 거기에 의지해 사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가 ? ”
“ 그...글쎄요. 지는 잘 모르겠어라... ”
실제 그런 생각이나 고민은 거의 안해보고 살아온 다현이라서인지 판단이 쉽지 않은듯한 모습. 황노인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 글쎄 뭐...나중에 또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뀐다면 그땐 또 나의 이런 생각을 어
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자기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개척해 나갈 생각을 해야
지 무조건 부모 유산 물려받아 그걸로 잘먹고 잘 살 생각을 한다면 그건 도둑놈 심
뽀야. ”
“ ...... ”
“ 물론 뭐...몸이 반신불수라던가 아니면 정신에 큰 문제가 있어서(* 가령 요즘식으로
말하면 지적장애인이라던가) 그래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건사할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면 그건 부모가 그냥 자기네들 업보라 생각하고 끝까지 곁에서 지켜줘야겠지만...그
렇지 않은 사지육신 멀쩡한 자식이 일찌감치부터 부모유산 물려받을 그 생각을 하
고 있다면 그건 도둑놈 심뽀라는 그런말을 하고있는걸세. ”
“ 어르신... ”
“ 여하튼 중요한건 내 재산은 이 다음에 고아원을 세워서 부모를 잃거나 집이 가난
해 고아나 거지로 정처없이 떠도는 그런 아이들을 거둬 먹여살리는 그 역할에 쓰고
싶다는 그 생각을 밝히는것일세. ”
“ 지는 몰랐어라...어르신께서 그런 훌륭한 생각을 하고계신 분이신줄은... ”
순간 황노인의 몰랐던 인품을 재발견하는 느낌이라 다현은 감격의 눈물까지 흘린다. 그런 어린 다현을 사랑스레 다시금 안아주는 황노인. 그녀의 손을 다시금 어루만져보며 노인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 그리고...내 자네한테는 진심으로 고마워. ”
“ ??? ”
“ 사실 내 이 구상을 지금까지 마땅히 고백할 사람이 주위에 없어서 그걸 고민하고
있었어. 사실 아무에게나 함부로 말할수 있는일은 아니지 않나. 당장 자식들한테도
여하튼...지들한테 유산 안 물려주고 고아원 짓는데 다 쓰겠다는데 그걸 어느 아들
이 좋아하겠나. ”
“ ...... ”
“ 게다가 내게 한동안 부인이 없었으니...이런 이야기를 나눌 안사람이 곁에 있는
몸도 아니었으니...그렇다고 하녀들을 어느날 불러 이런말을 하겠나 집사한테 이런
말을 하겠나. 그래서...사실 그게 고민이었어. 이 고백을...사실상 유언이나 다름없
게 될 이 이야기를 언젠가는 누구한테 해야할텐데...이 이야기를 누구한테 하나. 그
고백을 할 마땅한 대상이 없어 고민이었단 말이지. ”
헌데 어쨌든 지금은 새로운 젊은 부인이라도 있으니 그 다현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다. 그러고보면 다현 입장에서도 이미 다 늙은 노인이 아직 어린 자신을 후처로 거두겠다는게 그저 자신의 늙은 욕정을 채우고 싶은 탐욕일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외 이런 다른 의도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거듭 황노인을 다시 보게 된다. 물론 부인이 그렇게 연거푸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데는 그런 피치못할 비밀스런 사정이 있었던것이지만 성적으로 다소 변태적인 면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황노인도 제법 훌륭한 사고방식과 인품을 갖춘 그런 노인이 아닌가. 다현이 새삼 애정어린 눈빛으로 황노인을 바라보며 그를 위로하며 격려하듯 말한다.
“ 어르신...용기 내시어요... ”
“ ...... ”
“ 지가 아직 어리고 세상물정도 잘 모르지만...나중에 때가 되면 어르신의 뜻은 꼭
받들어 그대로 이행해줄것이구만이라. 그러니 아무런 걱정 마시어요 어르신. ”
“ 허허...그래준다면 내가 저승에서도 그 은혜는 잊지 말아야할 일이 되겄지. ”
“ 혹시 자제분들이 어르신의 그 뜻을 받들지 못하겠다 하더라도...솔직히 저보다 나
이도 많은 자제분들이 절 새어머니로 인정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언젠가 그 때가
되면 제 힘 닿는데까지 자제분들도 잘 설득해서 어르신의 그 뜻이 헛되지 않도록
제 열과 성을 다하겠구만이라. 그러니 염려놓으시고 마음 편하게 여생을 보내시어
요 어르신. ”
적어도 이다음에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고아원을 세워 전주와 그 인근지역의 고아나 어린 거지들이라도 거두어 그 아이들을 편하게 먹여살리고 싶다는 황노인의 의지. 그것을 꼭 받들겠다고 하는 다현을 보니 황노인도 진심으로 마음이 놓이는지 얼굴이 푸근해지는 것 같다. 솔직히 어느덧 반년 이상이 지나 1년 가까이를 모셔온 황노인이지만 그 얼굴이 이렇게까지 평온히 느껴지는 것을 본적이 없다. 다현이 말없이 황노인에게 안기고 황노인은 그런 어린 다현을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듯 거듭 쓰다듬어준다.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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