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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트와이스 다현 (1)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부제 : 다 혀 니 여 라
 

 

 1930년대에 종종 그런일이 있었나보다. 사실 요즘이라면야 가난한 집 외동딸이 어찌어찌하다 부잣집 아들과 인연이 되어 시집을 가게 된다면 그야말로 전형적인 ‘신데렐라’형 인생역전 스토리가 되리라. 허나 양반-상놈식의 신분제 구분뿐만 아니라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사자성어(?)까지 만들어 직업의 귀천의 우위를 정해놓았던 것이 조선시대임을 생각한다면 그 시절 양반집 딸이 한낱 장사치 집안에 시집을 간다는 것은 꿈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말도 안되는 굴욕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때의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이 어느날 갑자기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일순간에 바뀔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령 해방후 20-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1960-70년대만 해도 나이든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아씨니 마님이니 하는 신분제 사회에서나 볼수 있었던 호칭을 쓰는 모습을 적잖아 볼수 있었다. 바로 그런 신분제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절 양반댁 귀한 따님을 부를법한 호칭인 ‘아씨’란 제목으로 만든 드라마가 1970년대 초반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것 자체가 신분제의 잔제가 아직 남아있던 일제 강점기의 향수를 느끼는 그 시절 어르신들의 추억,감성 코드를 제대로 자극시켰기 때문 아니겠는가. 

 따라서 아직은 신분제의 잔재가 아직 많이 남아있던 시절인 1930년대에 몰락해서 가난해진 양반가에서 입하나라도 덜기위해 딸을 장사로 부자가 된 졸부(猝富) 집안에 시집을 보낸다면 그 자체가 굴욕이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옛날같았으면 어디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을 그런 천한 장사치(* 그 시절 가치관에 의하면)에게 귀하디 귀한 딸을 시집을 보낸다 ? 부모된 입장에서라면 장탄식을 쏟아붓지 않을수 없는 그런 애틋하고 딱한 그런 사연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 그런 시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직은 신분제의 잔재가 남아있고 나라의 주권이 우리것이 아니던 시절이긴 했으나 인간과 인간사이의 정과 애틋함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던 그런시절.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전북 군산에 사는 OO송씨 OO공파 집안 자손인 송태권도 그런 조선이 망하고 일제로 넘어가면서 몰락하게 된 그런 양반집안중 하나다. 사실 조선시대 신분제란게 이미 영,정조 시절을 거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것이고 ‘돈을 주고 양반족보를 산다’는 식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던게 바로 그 시절부터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과거시험에도 붙지 못하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산도 나날이 쪼그라들어 차라리 족보라도 팔아 연명을 하려는 그런 몰락한 양반이 있는가하면 장사로 돈벌어 부자된 이들은 돈으로라도 양반족보를 사서 비록 ‘절름발이 양반’이란 손가락질은 받을지언정 허세라도 한번 부리고 살아보는 그런 분위기가 이미 조선 영,정조시대를 거치며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게 이때부터란 주장이 오래전부터도 있어왔지만 일단 그 부분은 논외로 치고 그런 시절을 거치면서 살아온 사람들. 사실 송태권의 집안도 한때 잘나갈때는 ‘5대봉사’까지 하던 그런 뼈대있는 집안이었다. 허나 5대봉사고 뭐고 그런것들도 근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가능한일. 시절이 흐르고 가산이 기울면서 조상님 제사는커녕 삼시세끼 끼니조차 연명하기 힘든 그런 처지가 되어갔다. 한때 많았던 친척들중에도 이제 점차 가난해진 이런 집안을 굳이 신경쓰거나 돌아보는이가 거의 없어지고, 그저 ‘양반가 족보’ 하나만큼은 그저 그래도 자존심 하나로 지키며 버텨온 그게 송태권의 집안인 것이다. 

 그 송태권에게 어느덧 나이 열아홉이 되는 딸이 하나 있었다. 안타깝게도 태권의 아내는 딸을 낳고 얼마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 태권은 혼자 딸을 키우며 지금껏 살아왔는데 그 딸아이도 어느덧 출가(出嫁)를 시켜야할 나이가 된 것이다. 태권이 하루는 딸을 불렀다. 

 “ 다현아... ” 

 딸의 이름을 이와같이 애틋한 음성으로 불러보는 아버지. 곱디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딸 다현이 아버지에게 정중하고 예의있게 절을 올리고 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듣는다. 

 “ 네 혼처가 정해졌다. ” 

 이 시절이야 아직은 연애보다는 집안끼리 정해줘서 혼인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던 시절이 아닌가. 그러니 열아홉이면 이제 더 이상 철이 없다고 할수도 없는 양반가 규수 다현이 여기 무슨 토달일이 있을까. 단정하고 고스란히 아버지 앞에 앉아있는 딸을 바라보는 태권. 허나 한숨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다. 

 “ 조사장이라고 아마 너도 들어본적은 있을게야. 헌데 고맙게도 그 집에서 너를 거 

  두어줄 용의가 있다고 하더구나. 그 집도 여하튼 손이 귀한 집안이라서 그런지... 

  우리가 딸을 출가시킬 용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줄 생각이 있다고 하더구나. ” 

 조사장은 태권이 사는 마을에선 거리가 좀 떨어진곳에 위치해 있는 OO리에서 정미소와 과수원을 직접 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이 시절에 과수원에 정미소까지 하고 있다면 그런대로 떵떵거리며 사는 집이라고 봐야할텐데 여하튼 그런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 뼈대깊은 양반가문의 딸 송다현. 그녀는 별다른 망설임없이 이렇게 고분고분 답한다. 

 “ 순종하겠습니다 아버님. ” 

 아무리 몰락했기로 그래도 양반가 교육을 받은 여식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분고분 대답하는 다현. 아무리 그래도 나이어린 여자 입장에서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막상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여러 가지로 심경이 복잡해지지 않을수 없을텐데, 그래도 부모님께는 순종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여식이라서일까. 실제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그 속 드러내지 못하고 –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훈련받지 못하고 살아온 시대일수도 있고 – 그저 이렇게 다소곳이 대답할 따름이다. 허나 송태권은 여전히 이러한 처지가 딱하고 답답하고 아쉬운지 그 속내를 끝내 숨기지 못한다. 

 “ 싫으면 지금이라도 싫다고 말해도 좋아. 그럼 내 다시한번 생각해보도록 하마. ” 

 어쩌면 지금 아니면 다시 이런말할 기회가 있을수 없을지도 몰라서인지 기회를 한번 주는듯한 아버지의 모습. 허나 딸은 그저 순종하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태권의 말이 이어진다. 

 “ 아무리 시집가면 다 출가외인이라지만...그래도 너 역시 뼈대깊은 양반가의 자손이 

  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 이런거 내세우다고 알아줄 사람이 누가 있 

  겠냐마는 그래도 조선시대때 대제학도 배출하고 판서도 배출한 그런 집안의 여식인 

  게야 너는. ” 

 “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 

 어린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교육받아왔을법한 집안 내력에 대해 진짜로 잘 기억하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기억은 못해도 예의상 그리 대답하는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와같이 대답하고 있는 다현. 송태권이 그런 딸에게 다가와 손을 한번 잡아본다. 

 “ 불쌍한 것... ” 

 이미 딸에게서 ‘순종하겠다’는 말이 나왔으니 돌이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것일까. 순간 태권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물를수 있다면 물르고 싶은 그런 혼사라고나 할까. 아무리 몰락한 양반가기로 옛날같으면 사람취급도 안했을 그런 돈만 아는 장사치 집안에 어찌 이런 귀한딸을 시집보낸단 말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지는 아버지의 심정. 설상가상 태권이 이미 오래전 상처(喪妻)한데다 가난한 몸으로 어디 재취를 얻기도 쉽지 않아서 이렇게 혼자서만 딸을 키우며 지금까지 살아온 터. 그래서 태권의 마음은 더더욱 아프기만 하다. 

 “ 그 많던 머슴들도 다 하나하나 제갈길 찾아 떠나고 이젠 진짜 너랑 나 둘만 남았 

  는데...불쌍한 것... ” 

 “ 아버님... ”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자 지금까지 다소곳하고 고분고분하던 다현도 실은 내키지 않던 속내가 갑자기 폭발하는것일까.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런 딸의 심정을 아는것일까 모르는것일까. 품에 안고는 다독여주는 아버지 태권. 흐느끼는 딸을 달래며 이렇게 말한다. 

 “ 불쌍한 것...이 불쌍한 것 같으니... ” 

 “ 아버님... ” 

 “ 옛날같았으면...옛날같았으면... ” 

 순간 어떤 치미는 어떤 분노나 모멸감 이런것들이 있어서인지 몸을 한번 부르르 떨며 이렇게 되뇌이고 있는 태권. 자신의 어린시절 풍경과 비교해봐도 지난 20-30년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세상이라서일까. 그런 변해버린 새상에 대한 분노와 억화심정까지 겹쳐져 태권은 우는 딸을 품에 안은채 이렇게 흐느끼며 말하고 있다. 

 “ 옛날같았으면...정경부인 되고도 남을 상인 것을...옛날같았으면...옛날같았으면... ” 

 “ 아버님...흑흑... ” 

 “ 다 내 죄다. 시절을 잘못만난게 아니라 다 이 애비 잘못만난 죄야. 그러니 다 이 

  못난 애비 탓이니 그저 날 원망하렴. ” 

 “ 당치 않으십니다 아버님. 흑흑~~~!!! ” 

 “ 옛날같았으면 정경부인 마님 될 상인 것을...정경부인 소리 듣고도 남을 여식인 것 

  을... ” 

 “ 당치않아요. 아버님은 잘못 없으십니다. 아버님은 잘못 없어요. 흑흑흑~~~!!! ” 

 그렇게 북받치는 설움을 나누고 있는 태권과 다현 부녀. 다현아씨와는 어린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몸종이라기 보단 친구나 다름없었던 이 집안 마지막 남은 하녀 말순이가 이 모습을 방 밖에서 안타까이 지켜보고 있다. 

 

 송태권의 집에서 이렇게 애틋하면서도 딱한 울음소리가 들려나올 때 이곳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거리(대략 도보로 두세시간 정도 ?)에 있는 한 부잣집에서는 철없는 열여섯살 소년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다름아닌 이 일대에서 제법 큰 과수원과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는 조태선 사장이라는 이의 집이다. 무슨 아주 으리으리하고 대궐같은 그 정도의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는 필부(匹夫)들이 지나가다 보면 ‘저 정도 사는 집이면 그래도 먹고살 걱정은 안 하겠네’ 하며 부러움의 말을 주고받기도 할 법한 대략 그 정도 규모의 집이다. 헌데 그 집 대청마루에서 한 10대 소년의 찢어지는듯한 울부짖음이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 싫어요 !!! 저 장가 안간단 말이에요 !!! ” 

 교복차림으로 그렇게 울고있는 열여섯살 소년. 그러고보면 이제 막 학교에서 돌아온듯한 그런 차림인 것 같기도 한데, 이제 중학교(* 지금의 중학교-고등학교 통합과정) 4학년인 소년 조한욱이 회초리까지 든 아버지 조태선 앞에서 그렇게 우짖고 있는 것이다. 머리까치 세차게 흔들어제끼며. 

 “ 도대체 학생이 무슨 장가를 가요 ? 학교도 졸업하기전에 무슨 장가를 가냐구요 ? 

  싫어요. 전 공부할거에요. 공부해서 이 다음에 대학가서 훌륭한 사람 될거란 말이 

  에요 !!! ” 

 “ 허허...이렇게 딱하고 철없는 것을 보았나. 누가 널더러 학교를 가지 말라더냐 ? 

  공부해서 이 다음에 판,검사가 되지 말라더냐 ? 하지만 공부해서 출세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소임이 바로 가문의 대를 잇고 자손창성케 하는 것이 마땅히 이 집안 

  대를 잇는 아들의 소임임을 내 몇 번이나 말했어 !!! ” 

 “ 싫어요 !!! 그래도 저 장가 안 가요 !!! 학교에서 애들도 놀릴께 뻔하고...어쨌든 

  저 싫어요 !!! 장가 안간단 말이에요 !!! ” 

 그리고는 아버지의 말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를 박차고 제방으로 들어가버리는 한욱. 그 버릇없음에 아버지 태선이 결국 혀를 끌끌찬다. 

 “ 내 그렇게...내 그러잖아도...근본없는(족보없는) 집안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그 

  리 회초리까지 쳐가며 가르쳤건만... ” 

 비록 장사로 떼돈을 벌었을지언정 여하튼 양반가 자손이 아니면 어느정도 업신여김을 받는 그런 인식과 가치관이 있는 시대다. 따라서 말이 좋아 떼부자지 어느 한켠 한가닥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없을수 없는 그런 조태선 사장의 처지.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철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버르장머리가 나빠지는 것 같은 외동아들에 대한 답답함이 한층 더 가중된다. 그런 남편을 아내 임원희 여사가 안타까운 듯 만류한다. 

 “ 여보, 이제 그만하세요. 제가 다시 좋은말로 잘 타일러보리다. ” 

 “ 임자도 그냥 놓아두구려. ” 

 “ 여보... ” 

 전형적인 엄부자모(嚴父慈母)형 전통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 부부의 모습. 무엇보다 따지고보면 원희 입장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 안타까움을 더해 이렇게 말한다. 

 “ 저 아이 저러다 밥이라도 또 굶는날에는... ” 

 “ 허허...글세 그냥 놓아두래도 그러네. ” 

 “ 여보... ” 

 1930년대 후반의 10대 소년도 ‘단식투쟁’이란걸 할줄 알던가. 여하튼 철없는 부잣집 소년이라면 한두번쯤 해볼법한 투정이긴 한데, 그러나 그럴수록 아버지 태선은 한층 더 냉정하고 차갑게 나온다. 

 “ 우리집이 어디 밥세끼 굶는 그런 집안이라던가. 한두끼 굶는다고 사람 죽는거 아 

  니니 그냥 놓아두란 말이요. 또 제 녀석이 정 견디다 못하면 어디 만돌이나 진천댁 

  이라도 몰래 불러서 떡이나 양과자라도 챙겨먹겠지. 그러니 그냥 놓아두란말이오. 

 ” 

 어쨌든 철없는 외동아들 버르장머리 이번엔 단단히 고쳐놓을 생각인지 사뭇 강경하게 나오는 조태선 사장의 모습. 다만 집안에서 큰소리가 나온게 영 마음에 걸리는지 어느덧 나이 칠순이 넘은 한욱의 할머니 즉 태선의 어머니가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 왜 이렇게 큰소리가 나느냐 ? ” 

 “ 죄송합니다 어머니. ” 

 “ 한욱이 그녀석...기어이 장가 안 가겠다고 버티는게야 ? ” 

 “ 면목없습니다 어머니. ” 

 어쨌든 1930년대면 아직 10대 중,후반 나이에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나이 스물을 넘어 혹은 그보다 늦게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제법 결혼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있을 시대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던가 하는 그런 강박관념이 있거나 손이 귀한 집안이라면 여하튼 귀한 아들을 더 늦기전에 하루라도 빨리 장가보내 자손을 보내는쪽에 더 신경을 기울일터. 허나 이제 한참 신식공부 하며 앞으로 출세할 야망에 불타있는 철없고 혈기왕성한 나이어린 소년에겐 ‘장가를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그저 어이없고 기가막히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래서 더더욱 제 방문까지 걸어잠그고 고집을 피우는 소년. 아무래도 할머니라도 나서서 타일러야 하는일일까. 

 “ 내가 한번 직접 나서볼테니 아범은 가만있거라. ” 

 “ 어머니께서요 ? ” 

 어머니까지 직접 나서시는게 아들 입장에선 영 죄송스러운지, 아니면 아들인 자신이 직접 자기 아들 하나 제대로 타이르거나 가르치지 못하고 그 책무를 자신의 어머니한테까지 떠넘기는게 영 마음에 걸리는지 태선이 불안해서 이렇게 나오고 허나 칠순의 할머니는 결국 불편한 몸을 일으키고 있다. 

 “ 자고로 손자 설득하는데는 할머니만큼 좋은게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이 할미가 직 

  접 나설테니 아범은 그저 모른체 해. ” 

 “ 아휴, 어머니. 아무리 그렇기로...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까지 직접 나서는게 죄송스럽기만 해 아들은 거듭 이와같이 나오고 칠순의 노파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한번 제지해보려는 아들의 손길마저 제법 거세게 뿌리치고는 기어이 손자방으로 향한다. 아까는 방문고리까지 걸어잠근 듯 했던 한욱은 그래도 할머니의 부르심마저 거절하고 싶지는 않은지 결국 방문을 열어주고 만다. 

 “ 한욱이 공부하고 있느냐 ? ” 

 “ 네. 할머니. ” 

 그래도 어느덧 중학생(사실상 지금의 고등학생)이라고 의젓해져있는 한욱의 모습. 그런 손자를 보는게 기특하기라도 한지 할머니는 손자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그리고 마주앉은 두 사람. 한욱은 여전히 심통이 풀리지 않았는지 밝지 못한 얼굴인데 그런 손자를 보며 할머니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넨다. 

 “ 그리도 장가가기가 싫으냐 ? ” 

 차마 할머니 앞에서조차 버릇없고 거세게 뿌리치고 싶지는 않은것일까. 대답은 못해도 오히려 강한 거부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는 손자 한욱. 그러자 그런 어린 손자의 마음을 이해하겠다는 듯 할머니는 손을 한번 잡아주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하긴 이 할미도 할아버지한테 시집올때는 그럤었어. ” 

 “ ...... ” 

 “ 한욱이도 아마 들어서 알겠지만 사실 할머니는 경산이라고 군산에선 아주 멀리 떨 

  어진 그런곳에서 시집을 왔어. 그 시절에 어쩌다가 그렇게 먼곳까지 시집을 오게  

  되었는지는...그 곡절은 할머니도 할머니 부모님한테나 여쭤보던가 따져봐야 할 일 

  이겠지만... ” 

 새삼 자신이 시집올 때 일이 생각나서인지 회한까지 섞어가며 그렇게 말을 하는 할머니. 그녀의 말은 이어지고 있다. 

 “ 그렇게 천만리 머나먼길로 열일곱 나이에 시집와서 얼마나 하룻밤을 슬피 울었는 

  지...그래도 네 할아버지가 이 할미를 한번 따스히 안고 어루만져주시더구나. 그리 

  고는 그렇게... ” 

 좀 민망한지 일단 그쯤에서 말을 끊긴 하는데, 그래도 아직 손자를 설득해야하는 일이 남아는 있기에 할머니의 말은 좀 더 이어지고 있다. 

 “ 한욱아...이 할미가...글세 뭐...배운것도 없는 이 할미가 네게 가르쳐줄게 뭐가 그 

  리 있겠냐만... ” 

 솔직히 과거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신식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보단 인생을 오래산 선배 세대들의 가르침이나 인생에 대한 교훈이 더 이치에 맞게되는 법이다. 허나 세상이 변하고 신문명,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이 변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윗세대들은 변하는 시대에 부응못하는 그런 구시대 뒷방늙은이, 요즘식으로 말하면 ‘꼰대’가 되어버리기 마련. 그래서일까. 어쨌든 신식교육 받는 손자를 존중해주는 마음을 함께 담아 할머니의 자상한 말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그러나 막상 너도 살아보면 알게될거다. 세상사라는게 알고보면 다 거기서 거기  

  크게 다르고 별다를게 없다는 것을. 다 때되면 장가가서 시집가고 아이낳고 그 아 

  이 키우며...부모님 받들고 조상님 받들며 그렇게 살아가는게 인생이라는 것을 너도 

  알게될것이야. ” 

 “ ...... ” 

 “ 사실 할미도 처음엔 아직 한참 신식교육 받는 너 너무 일찍 장가보내는게 좀 마음 

  에 걸리긴 했다. 허나 너도 어쨌든 손귀한 집안의 3대독자란건 명심해야해. ” 

 뼈대깊은 양반집안 아니더라도 어쨌든 이만큼 떵떵거리며 살게된 부잣집인데 그 재산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를 이을 자손을 바라는 마음은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손귀한 집안의 3대독자가 조한욱이 아니라던가. 할머니의 설득은 좀 더 이어진다. 

 “ 그리고 너도 아직은 어리고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렇지...막상 그렇게 장가가서 살 

  아보면...이쁜 색시와 함께 사는 재미가 어떤건지 그런걸 느낄때도 올게야. 그러니 

  ...지금은 많이 당혹스럽고 창피할지라도 이겨내야하는 일이란다. 사나이 대장부가 

  언젠가 한번쯤 거쳐야 하는 과정인게야. 무슨말인지 알겠니 한욱아 ? ” 

 할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풀린것일까 아닌것일까. 일단 한욱의 표정은 아직 그리 밝지는 않다. 다만 굳이 다른 것이 있다면 아까 아버지한테 회초리 맞을뻔할때처럼 대놓고 싫다며 울며불며 반항은 하지 않고있다는 점이다. 할머니는 거듭 손자를 다독이고는 방을 나가고 한욱은 책상에 엎드려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99칸 한때 그 고대광실과도 같던 으리으리한 집은 다 어디로 가고 없는지 이제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나 다름없는 작은 집채 하나만을 유지하며 겨우 살아가는 송태권의 집. 그 한쪽 빈터에 허허롭게 앉아있는 여인이 있다. 다름아닌 태권의 딸 송다현이다. 어느덧 열아홉이라 이제 성숙한 티가 곳곳에 묻어나는 소녀라기 보단 ‘숙녀’라고 불러도 될법한 외모며 분위기. 헌데 그런 다현이 무슨 심란한 갈등이라도 있는지 빈터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며 그래도 한참 감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 해당되는 나잇대라서일까. 그저 저무는 저녁노을만 봐도 괜시리 슬퍼지는것인지. 그 다현아씨 곁으로 다가오는 여자아이가 있다. 다현보다는 한 살 어리고 그리고 이 댁의 이제 사실상 마지막 남은 ‘마지막 하인’이라고 해도 다름없는 말순이란 아이다. 말이 몸종이지 더 이상 양반댁으로 위세를 떨칠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서인지 말순이는 그냥 다현과는 어린시절부터 친구처럼 어울려 지냈다. 다만 그래도 엄연히 윗사람이니만큼 ‘아씨’라고 꼬박꼬박 부르긴 하지만, 여하튼 그런 말순이가 다현 곁으로 다가온다. 

 “ 아씨... ” 

 말순이나 다현이나 어쨌든 둘 다 이 지방 출신이니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배어있는 말투이긴 하다. 그런 말투로 다시금 다현을 불러보는 말순이. 

 “ 무슨 생각을 그리도 하시어라. 아까부터 한참을 그곳에서 저녁노을만 바라보고 계 

  셨어라. ” 

 “ 말순아... ” 

 그러자 한참만에 고개를 돌려 말순을 바라보는 다현. 작달막한 키에 동글동글한 얼굴은 겨우 한 살차이인 다현이 봐도 그런대로 귀여움이 느껴지는 외모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살짝 말순이의 볼을 매만져보기도 하고 말순이 순간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리기까지 한다. 그런 말순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는 다현. 

 “ 너도 이제 떠나도록 혀라. ” 

 “ 야 ? ” 

 어쨌든 이 댁에 남아있는 마지막 하녀인 말순이가 그것도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며 모셔온 다현아씨의 혼사말이 한참 오가고 있는 것을 모르진 않을터. 허나 아씨가 시집을 가면 당연히 자신도 아씨를 따라 그곳으로 가 아씨를 모셔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것일까. 조금은 뜻밖에 나온 다현의 이와같은 말에 말순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 무슨 말씀을 그리 하셔라. 아씨가 시집을 가면 당연히 지도 아씨를 따라가야지라. 

 ” 

 “ 우리집이 이게 어디 양반집이라더냐. 요즘 세상에 양반,상놈 따지는것도 우습고... 

  난 시집을 가면 그곳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며 살테지만 너는 그냥 니 살길 찾아 떠 

  나. 예전에 춘배 아저씨, 정태 오라버니, 삼식이 다들 그랬던것처럼... ” 

 어느덧 떠나버린 옛적 하인들 이름을 하나하나 되뇌어보며 그렇게 말하는 다현. 새삼 어떤 서운함과 그리움이 동시에 용솟음치는것인지 눈물까지 고이며. 허나 말순은 당치않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 무슨 말씀을 그리 하셔라. 아씨는 지한테 언제까지나 아씨구만이라. 아씨가 시집 

  을 가도 저도 아씨와 함께 그곳에서 그 집 귀신이 될것이구만이라. 평생을 아씨곁 

  을 지킬것이구만이라. ” 

 나름 갸륵한 충절(忠節)을 보이기까지 하는 하녀의 모습이다. 아니면 어쨌든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다현을 모시며 살아온 그녀라서 다현이 없는 세상은 지금까지 상상해본적이 없기에 그로인한 두려움이 함께 생겨서인지. 여하튼 거듭 ‘떠나라’는 말에 당치않다는 듯 나오고 있는 말순. 허나 그런 말순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다현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요즘은 계집아이도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공부도 하고 학교도 갈수 있다니께... 

  혹시 가능하다면 니도 학교도 한번 댕겨보고... ” 

 “ 당치 않구만이라. 지 주제에 학교는 무슨 학교여라... ” 

 어쨌든 신식 교육제도도 들어온지 이미 꽤 되었고 여자도 원하면 얼마든지 학교를 다닐수 있는 시대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들 인식이나 가치관이 아직은 ‘여자가 공부는 해서 뭐하냐 ?’는 식의 인식이 팽배할때고 또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도 딸자식까지 학교를 보낼만한 여력이 없는 집이 더 많은 시대일 것이다. 하물며 말순이같은 일개  하녀 처지에서 그런 부분에 기대할수 있는게 무엇이 있었을까. 허나 그래서인지 오히려 다현은 그런 말순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더욱 묻어나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니는 똑똑한께...시절만 더 좋은 시절을 만났더라면...여자가 학교 다니는게 더 이 

  상 흉되지 않는 시대만 되었어도 충분히 출세할수 있는 그런 아이였을것이여. 그러 

  니...지금도 늦지 않았어. ” 

 “ 당치않어라. 지는 그런거 생각해본적 없어라. ” 

 말순이 학교를 가지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을 다현이 이와같이 드러내건만 오히려 더욱 당치 않다는 듯 나오고 있는 말순. 진심으로 그러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말순은 이제와서 새삼 공부를 한다던가 학교를 간다던가 할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게다가 애초부터 그런 하인 신분으로 나고자란 몸이라면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더 큰것이고. 하지만 그래서인지 다현은 어릴때부터 함께 자란 말순에 대한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다시금 드러내고 있다. 

 “ 니는 또 뜀박질도 잘 항께...누가 아나. 그런쪽으로도 혹시 재주를 발휘해 달리 출 

  세할수 있는길이 있었을지... ”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이 있었던게 1936년의 일이긴 하지만, 이 시절은 아직 언론이나 보도 혹은 정보기능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시절이니 이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양반이고 뭐고 하더라도 그런쪽에 대한 정보는 아직 잘 없을수도 있다. 또 그런 정보를 접하더라도 관심이 없거나 그런 것(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아예 없을수도 있고. 여하튼 손기정이든 뭐든 그런데 관심이 있거나 알만한 사람이 일단 말순이나 다현은 아니다. 허나 어쨌든 어린시절부터 잔심부름을 하면서 잘 뛰는 재주를 나름 다현이 눈여겨봐왔던것일까. 그런 것을 새삼 재주라며 높이 치켜주기도 하는 모습. 여하튼 이 집안 마지막 하녀이기전에 어릴때부터 나고자란 동기나 친구로 봐도 무방한 그런 말순이라서인지 다현은 그녀에 대한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쉬이 떠나지 않는 듯 하다. 허나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더욱 이런 신신당부를 잊지 않는다. 

 “ 여하튼 내가 시집가고 나면 너도 그만 떠나. 가서 너 혼자 하고싶은 것 허고 그저 

  자유롭게 니 마음대로 살란 말이다. 내 맘 알것제 말순아 ? ” 

 “ 아녀라 아씨. 지는 아씨따라 갈거구만이라. 아씨 시집가는데로 따라가 지도 그 집 

  귀신 될거구만이라. 지는 절대로 아씨곁을 떠나지 않을것이구만이라. ” 

 오히려 그런 다현의 곁을 떠나는 것이 더욱 견디기 힘든 노릇이라서인지 말순은 이제 다현의 품에 안기면서까지 더더욱 그럴수 없다며 울며불며 한다. 이러니 다현 입장에선 이런 말순이 더더욱 안타까와보이고. ‘괜한 고집 피우지말고 가서 너 하고픈 것 하며 자유롭게 살라’는 다현아씨의 말에 말순은 거듭 고개만 가로저을뿐이라. 

 “ 싫다요. 싫구만이라. 지가 이제와서 아씨곁을 떠난다구...지같은게 뭘 하겠어라. 뭔 

  신식공부 한게 있어 아는게 있는것도 아니구...평생을 지금껏 아씨곁에서만 살았으 

  니 아씨곁을 떠나 다른 세상물정 아는 것이 있는것도 아니고...그렇다고 이 나이에  

  신식공부 시작한다는것도 우습구...지는 영원히 아씨곁을 떠나지 않을것이구만이라. 

 ” 

 하긴 막상 그렇게 떠난다고 한들 정말이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현의 몸종이자 하녀 그 이외의 인생은 생각해보적 없을 말순이니 다른곳으로 갈만한곳이 있는것도 아니고 가서 다른 할 일을 찾을만한게 있을수도 없고 그런 구상이나 생각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말순의 입장에선 ‘이만 놓아줄테니 자유롭게 떠나라’는 다현의 말이 오히려 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고. 평생 아씨곁 안떠나고 살겠다며 울며불며 하는 말순을 그래서 다현아씨는 더더욱 애틋하게 한번 더 품에 안아보기만 할 뿐이다. 열여덟,열아홉 두 소녀의 눈물고임이 저무는 노을빛에 더 짙어질뿐이다. 

 



 태권의 집에서는 비록 신분은 다르나 동기간,친구간이나 다름없는 끈끈한 우정을 쌓으며 자라온 두 여인의 앞으로의 일들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와하며 나누는 진한 눈물이 계속되고 있을 때 한욱의 집에서는 또다른 허허로운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욱의 할머니이면서 조태선 사장의 어머니이기도 한 칠순 노파가 한밤중에 잠을 못이루고 대청마루에 나와 바깥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잠시 화장실이라도 가기위해 나왔던 조태선이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며 의아해서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 어머니... ”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는 할머니. 태선의 말이 이어진다. 

 “ 뭐하고 계세요 이 시간에 ? ” 

 “ 그냥...나와봤다. 잠도 안 오고 해서... ” 

 그런식으로 할머니는 얼버무리지만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말 안해도 다 알 것 같다는 효자처럼 태선의 물음이 이렇게 이어진다. 

 “ 아버지 생각이라도 하고 계셨어요 ? ” 

 태선의 아버지는 지금 세상을 떠난지가 한 10년 가까이가 되는데 그러니 할머니도 어느덧 과부가 된지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셈. 허나 아들의 물음에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씁쓸히 미소짓는다. 

 “ 이미 저세상 간 사람 그리워해서 뭐하게... ” 

 “ 그러면...고향에 계신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생각이라도 하시는건가요 ? ” 

 무슨 곡절이나 사연이 있는것인지 머나먼 경북 경산에서 이곳 군산까지 시집을 와 아들 하나를 낳고 지금껏 살아온 칠순의 노파. (* 여인들에게 그 출신을 따 OO댁이니 OO댁이니 하는 호칭이 있는 것을 보면 타 지역과의 왕래가 쉽지 않던 시절에도 먼곳에서 시집을 오거나 이주를 해오는 여인은 제법 있었다는 이야기다.) 허나 그 먼곳에서 시집을 와 살아온 노인이니 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에 그 먼곳에 계시는 친정부모님이든 친정식구들이든 어디 만나볼 기회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런 아들의 물음에도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 이미 다 저 세상 가셨을 연세인 것을 무슨... ” 

 멀리 경산에 있는 친정식구들 소식을 그간 들을 기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녀의 나이가 이미 70이니 당연히 그녀보다 나이많은 부모님이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을 것 아닌가. 바보가 아니면 누구나 능히 짐작할수 있는일. 허나 지금 할머니는 죽은 남편을 또는 시집온뒤로 소식듣기 쉽지 않았을 친정 부모님을 그리워 하는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금 고개젓는다. 

 “ 네 조상님들께 좀 서운해하던 중이다. ” 

 “ 네 ??? ” 

 순간 어리둥절해하는 태선. 어쨌든 시집가면 ‘출가외인’이라느나 여자가 시집을 가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이 있던 시대이니 그런 시절에 이 집안의 조상 어른들을 마치 남의 식구들이라도 말하듯 ‘네 조상’이라 표현하는 것은 좀 적절치 않은 면이 있다. 허나 어쨌든 지금은 이 집안의 어른인 칠순의 할머니는 이와같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 진작에 차라리 그 흔한 몰락한 양반가문 족보라도 하나 사들였더라면 이 집안이 

  근본없는 집안 소린 안 들었을거 아니냐. 그런데도 참...야속한 어른들이셨지... ” 

 “ 허허...어머니도 참 별 말씀을... ” 

 어쨌든 몰락한 양반가에서는 족보를 팔고 그런 족보를 돈주고 사는 부자 장사꾼들이 제법 있던게 한 백년,이백년전부터의 일이니 어쨌든 이만한 부잣집에서 그동안 양반족보 하나 못사고 ‘근본없는 집안’이란 소리나 듣게 만들었으니 그런점에 대한 할머니의 이해할수 없음과 서운한 감정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런 서운함과 함께. 

 “ 어쨌거나 손 귀한 집안이니만큼 한욱이도 어여 장가를 가서 자손을 봐야해. 그래 

  야 내가 죽어서도 나중에 조상님들 뵐 면목이 설 것 아니냐. 그러니... ” 

 “ 하하...그래서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여하튼 할머니도 나름 지금까지 이 집에서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회한이 많았었나보다. 문득 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 그래도 아범은 반듯한 사람이었어. ” 

 “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 

 좀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말에 무안하기라도 한건지 민망하기라도 한건지 머리를 한번 긁적이는 태선. 그런 아들을 보며 할머니의 말은 이어진다. 

 “ 그래도 아범은 지금껏 어멈(며느리)만 바라보며 살지 않았느냐 ? 한눈한번 팔지  

  않고. 솔직히 꼭 그런 이유때문만 아니더라도 아들 하나밖에 달랑 낳지 못한 안사 

  람이 서운해서라도 밖으로 나돌만도 했을텐데... ” 

 “ 별말씀을 다하시네요 어머니. ” 

 어쨌든 남자가 첩실 한둘쯤 두는게 공공연히 용인되던 시절에 그것도 이만한 재력을 갖춘 남자가 자신의 부인 이외에는 한눈한번 안 팔고 지금까지 살았다면 그 역시 보통 아닌 가상한 일이기도 하다. 허나 할머니는 새삼 다른 회한 섞어 말을 이어간다. 

 “ 하지만 니 아버진 그래도...아들 하나밖에 낳아주지 못한 내가 서운했는지 나중에 

  소첩을 둘이나 보셨지. 덕분에 아범은 스무살이나 어린 이복동생을 한둘도 아니고 

  넷씩이나 두게 되었고. ” 

 “ 어머니도 참...이제와서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그리고 그 애들도 다 지금은 각기 

  다 좋은데 시집가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럼 되었죠 뭐. ” 

 여하튼 이 집에서 그렇게 조한욱이 손귀한 부잣집의 3대독자가 되는가보다. 여하튼 한욱의 아버지 조태선은 이런 시골마을에서 이 시절 흔치않게 몸소 정미소와 과수원까지 하는 재력가이면서도 다른 첩실을 두거나 하지 않은채 아들 한욱을 하나 달랑 낳고 지금껏 살았고, 아들을 하나밖에 두지 못한 것은 그 윗대인 태선의 아버지,어머니도 마차가지인 듯 하나 태선의 아버지는 그래도 남자라고 한 여자로는 만족치 못했는지 첩을 둘씩이나 두었다는 이야긴데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없었던것인지 아들은 하나 그 이상은 두지 못한 것은 같은처지. 그렇게 손귀한 3대독자가 어느덧 열여섯살인 한욱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새삼 다시 그 부분을 강조한다. 

 “ 그래도 죽기전에 한욱이 장가가는건 보고 가게되어 다행이야. 부디 한욱이 저 아 

  이는 참한색시와 함께 자손창성도 하고 또 신식교육도 계속 잘 받아 세상에서 출 

  세해서 집안도 일으키고 그러며 살아야할텐데... ” 

 “ 한욱이 잘 할거에요. 너무 걱정마세요 어머니. 똑똑한 아이잖아요. ” 

 “ 그래, 어쨌든 한욱이 장가가는것까진 보고가게 돼서 다행이래두 그러네. 콜록콜록 

  ~~~!!! ” 

 요즘은 나이 70에도 정정한 어른들을 제법 볼수 있지만 이 시대의 칠순은 꽤나 고령이다. ‘사람이 70을 사는 것은 드문일’이라는 식의 말이 괜히 있었던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런 고령의 노파인만큼 이미 건강은 많이 악화되어 있는 듯. 재채기까지 하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태선이 이렇게 말한다. 

 “ 바깥바람이 찬데 이만 들어가시죠 어머니. ” 

 “ 차기는 한참 좋은 봄날이구먼... ” 

 “ 어머니 건강이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이잖아요. ” 

 재채기뿐만 아니라 몸도 많이 쇠약해져있는지 다리까지 절고 있는 칠순의 노파. 그런 어머니가 걱정되어 효자아들은 어서 그만 방으로 들어가시라고 재촉하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거듭 자신의 회한을 담아 이렇게 읊조린다. 

 “ 어쨌든 한욱이 저 아이 장가가는것까진 보고 가게되어 다행이야. 이제 내가 죽어 

  도 저 세상에서 조상님들 뵐 면목이 설것만 같아.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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