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이야기 – 8. 솔파행성을 찾아온 E.T
한편 체로키와 에바는 다시 정보위에 의해 감금되었다. 다만 감옥에 갇힌 것은 아니고 의회사무처에서 20년 넘게 일해온 에바나 역시 국립천문연구원에서 20년 가량 일해왔던 체로키도 ‘이런곳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생전 처음보는 낯선 공간인데, 일단 사방은 어두컴컴하게 막아놓은 방안이고 위에 흐릿한 전등불이 켜져 있어 서로를 알아보며 대화정도는 나눌수 있는 그런 분위기다. 얼핏 위쪽에 작은 창문과 통로같은 구멍 비슷한게 보이고 있긴 한데 아무것도 모르는채 보면 그저그런 창문이나 철문 혹은 통풍구 비슷하게 느낄수 있는 그런 장치다. 한편 에바는 애초 전남편 체로키를 잠시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되려 이젠 아예 체로키하고까지 갇힌 꼴이 되어버린것인데 일단 체로키나 에바나 정보위에서 추후 다른 추가조사나 조치를 하기전까지 둘을 그냥 대기시켜놓고 있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피차 허심탄회한 속내나 털어놓고 있다.
“ 이제...어떻게 할거야. ”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에바다. 체로키도 이런 상황에서 더 무슨말을 할수 있을까 싶어 한숨과 함께 답한다.
“ 당신한텐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 ”
지금와서 일이 이렇게 된게 누구탓인지 그걸 논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체로키나 에바나 그저 막막하고 절망스러워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에바가 다시 입을 연다.
“ 외계생명체...당신이 가져간거 맞지 ? ”
이제 엘리어트를 체로키가 데리고 있는지 여부는 더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그것이나 확실히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에바가 이와같이 묻는다. 한편 외계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지금까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던 모습이던 체로킨데, 그런 체로키도 지금 속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것이지만 에바에게 정확한 사실만은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결국 이렇게 말해버리고만다.
“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한짓은 아냐. ”
“ 뭐라구 ? ”
에바가 순간 좀 황당해져 이와같이 묻고 체로키가 결국 진실을 털어놓는다.
“ 멘시니아라고 나와 함께 일하는 연구원이 있어. 젊은 친군데 평소에 참 당차고 일
도 열심히 하고...내 뜻도 참 순순히 따라주는 것 같아서...참 고마운 연구원으로 생
각했는데... ”
“ 그랬는데 ? ”
“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멘시니아가 이런짓을 벌일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네. 헌
데 결국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줄이야. ”
결국 엘리어트를 데려온것도 외계생명체를 데려간것도 모두 멘시니아가 주도해서 꾸민 일이란 것을 실토해버린 체로키. 에바가 황당해하며 체로키를 바라본다.
“ 아니, 당신은 도대체...그런 부하직원 하나 제대로 관리못하고 대체 뭘한건데 ?
대체 멘시니아 그 여자가 뭔데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느냐구. 아니, 그보다
그 멘시니아라는 애는 지가 뭔데 도대체 지멋대로 그런일을 벌인거냐구 ? ”
한가지 분명한건 체로키와 에바는 이미 이혼한지 10년이 지난 사이다. 따라서 체로키가 지금와서 다른 여자를 만나든 재혼을 하든 그건 에바가 뭐라고 할 이유가 없다. - 남자는 재혼할 경우 자녀의 동의를 받아야한다는 앨리스의 법제도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것일뿐 – 허나 에바는 마치 멘시니아란 여자를 남편의 직장 부하라도 되는듯한 말투로 원망을 쏟아붓고 있고, 허나 그러는 가운데서도 대체 멘시니아가 어떻게 엘리어트나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알수 있었는지 여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 것 아닌가. 체로키는 그마저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알파고가 정보를 알려주었어. 헌데 그걸 멘시니아가 엿듣고 있었을줄이야. ? ”
“ 뭐라구 ? ”
“ 당신도 알파고 그 친구 기억하잖아. 내가 국립연구원에서 일할 때 갇히 일하던 동
료...그 친구가 사실 밤에 은밀히 날 찾아와서 메이시에서 있었던 의문의 추락사고
때 외계생명체가 발견된걸 정부에서 찾고 있다며...그 외계생명체만 확보되면 나하
고 공동연구를 해보자는 말을 하더군. 헌데 그런 이야기를...멘시니아가 그 밤늦은
시간에 엿듣고 있을줄이야. ”
헌데 이렇게되면 자연스럽게 멘시니아와 체로키가 동거중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지는 것이다. 물론 체로키와 에바야 이미 이혼한지 10년이 지났으니 체로키가 다른 젊은 여자와 동거중이란 것을 뭐라고 할 이유는 없지만, 그것도 하필 이런 상황에서 그런걸 밝히는 것 역시 민망해지는 일이긴 마찬가지다. 허나 지금 둘은 실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정보위에서 자신들에 대한 어떤 추가조사나 조치같은 것을 취하기 전에 자신들을 대기시켜 놓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고 허심탄회하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것인데 사실 여기엔 도청창치가 되어있었다. (* 다만 이땐 아직 솔파행성의 도청기술이 그렇게 고도로 발달하진 못했다.)
실은 통풍구 비슷하게 만들어진 시설에 전화선 같은 것을 깔아놓고 그것을 연결하여 방안에 있는 이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감시하게 되어있는 그런 구조였던 것이다. 아직 세상에 그런게 있다는것까지는 잘 모르고 있는 체로키와 에바. 위층방에서 창문으로 내려보며 이들의 대화를 도청하고 있던 정보위 관계자가 지시를 내린다.
“ 멘시니아란 여자 조사좀 해봐. 그리고 신병이 확보되면 바로 체포하고. 그리고 알
파고도 수사를 해봐야겠군. ”
“ 저어...실장님...근데... ”
그렇게 지시하는 실장급 관계자에게 부하직원이 추가로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 듯 말을 꺼낸다. 의아해하는 실장을 보며 부하직원이 말한다.
“ 체로키의 사설연구원의 여직원은 모두 두명인걸로 저희가 확인했습니다. 멘시니아
말고도 혜시니아란 비슷한 연배의 여직원이 하나 더 있더군요. ”
이미 체로키의 사설연구소와 관련된 조사는 모두 마쳐놓았을터. 그걸 보고하는 부하직원에게 뭘 더 망설일게 있냐는 듯 실장은 직권으로 추가지시를 내린다.
“ 혜시니아란 여자도 역시 가급적 신병을 확보토록 하고...두 여자 사는곳을 직접
급습하든 집주소를 알아내든 탐문수사를 하든 여하튼 지금 즉시 혜시니아와 멘시
니아 그리고 알파고까지 모두 체포하는 작전에 들어간다. 실시 !!! ”
“ 예, 알겠습니다. ”
엘리어트와 도우너는 지금 멘시니아가 보호(?)하고 있다. 아니, 보호보다는 보유(保有 : 가지고 있음)하고 있다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하려나. 어쨌든 보호가 되었든 보유가 되었든 지금 엘리어트와 도우너 두 지성체(!)를 멘시니아가 데리고 있는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멘시니아가 부잣집 딸인 것은 분명하더라도, 지금 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을터인데 현재 임시 거처로 하고있는 창고에 엘리어트와 도우너가 지낼만한 별도의 방까지 만들어주고 둘이 쓸 수 있는 화장실겸 욕실까지 하나 지어주었다. 적당히 칸막이를 하고 욕실겸 화장실은 상하수도가 연결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면 되긴 하지만 여하튼 멘시니아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셈이다. 하긴 멘시니아 입장에서도 앞으로 귀중한 실험체로 사용해야할 아이들이니만큼 소중하게 다루어줘야할 대상이긴 하다. - 당연히 음식도 충분히 공급해줘서 둘의 영양상태와 건강상태가 온전히 유지될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한편 혜시니아는 지금 체로키의 연구소에 출근은 할수 없는 상태가 된 몸으로 멘시니아가 있는창고로 올 수밖에 없다. 멘시니아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실험을 위한 ‘가상 과학체험관’ 만드는 준비에 한참 열중하고 있는데, 그곳으로 온 혜시니아. 무엇보다 멘시니아의 속내를 잘 알기에 그 문제로 인해 격노하여 그녀의 따귀까지 때렸던 혜시니아가 아닌가. 허나 지금같은 상황에서 어차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있기에 멘시니아의 창고로 올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출퇴근길은 무척이나 멀어진 셈이긴 한데 여하튼 혜시니아는 멘시니아의 경우와는 반대로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 놓여져버린 것이다.
한편 멘시니아가 만들어준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엘리어트와 도우너. 그러고보면 이둘도 지난 한두달 사이에 무척 엄청난 많은 일들을 겪었다. 우선 엘리어트가 의문의 비행체 추락을 한밤중에 목격하고 그곳에 가본뒤, 대략 이틀뒤 비행체가 추락한 호수 근처에서 도우너를 처음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으나 엘리어트의 누나들은 도우너를 유기견이나 들개로 오인 수용소에 신고 데리고 가도록 하지 않았던가. 허나 그 도우너의 탈출을 극적으로 도와준 엘리어트. 그렇게 도우너를 다시 데리고 집에 오긴 했지만 이미 정보기관에서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포착, 엘리어트의 어머니인 에바를 압박했고 그 에바로 인해 도우너는 이번엔 정보기관에 끌려갈 위기에 놓여졌다. 그러나 체로키의 국립천문연구원 동료였던 알파고가 정보를 주는 것을 멘시니아가 우연히 엿듣게 되는 바람에 그로인해 극적으로 엘리어트와 도우너를 모두 체로키가 있는 청호시까지 데려오게 된 상태. 일단 엘리어트의 아버지 체로키 박사의 거처에서 임시로 기거하게 된 엘리어트와 도우너지만 다시 상황이 안좋게 돌아가자 멘시니아가 다급하게 이들을 체로키 박사의 거처에서도 멀리 떨어진 이 창고까지 데리고 온 것 아닌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엘리어트와 도우너 입장에서도 모든게 다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터. 그나마 엘리어트야 언어가 통하는 같은 앨리스 공화국 국민들끼리니 상황 돌아가는 것을 그런대로 짐작할 수가 있지만 언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도우너는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것인지 알 수 없어 더더욱 불안해지고 무서워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엘리어트와는 그래도 지난 한두달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최소한 단답형의 대화는 주고받을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그런 가우데 도우너가 솔파행성 앨리스 공화국의 언어로 이렇게 말을 건넨다.
“ 엘리어트... ”
그렇게 엘리어트의 이름을 부른 도우너.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은 이제 익숙하게 부르는 도우너를 보면 엘리어트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헌데 도우너는 그런 엘리어트를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렇게 말한다.
“ 미안해 엘리어트, ”
그러나 지구행성의 언어를 쓰는 도우너의 말을 100% 알아들을수 없는 엘리어트이기에 비록 앨리스 말로 표현하긴 했지만 그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지 엘리어트가 도우너가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엘리어트가 도우너에게 이렇게 묻는다.
“ 뭐가 ?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건데... ”
“ 미안해...너무 미안해 엘리어트. 흑흑흑흑~~~!!! ”
그렇게 엘리어트의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한바탕 대성통곡이라도 하듯 울고있는 도우너. 엘리어트로선 그저 도우너가 지금 많이 힘든가보다 하고 막연히 짐작하며 달래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아직 도우너가 장문의 대화는 엘리어트와 나눌수가 없기에 그래서 더더욱 답답해진 모습으로 엘리어트의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은채 그저 울고만 있다.
‘ 미안해 엘리어트. 나는 실은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괴짜 천문학 매니아였어. 그런
데 윔홀을 통과하여 수십수백만 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순간이동을 할수있다는 가
설 하나만을 믿고 그런 우주선을 개발하려고 했지. 그래서 나의 천문과학 동아리
몇몇 회원들을 내가 개발한 우주선에 태워서 그곳으로 보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남은 우주선은 내가 타보고 조종을 하려 했던거야. 헌데 그것을 타고서 이렇
게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머나먼 행성으로 와버렸구나. 미안해 엘리어트. 난 이제
내가 먼저보낸 친구들도 다시 만날 수 없고(* 도우너가 다른 행성으로 보낸 천문과
학 동아리 회원들) 나 역시 지구로 돌아갈수 없는 몸이 되었어. 생각해보면 친구들
에게도 몹쓸짓을 한거고 나 역시 지구로 돌아갈수 없는 처지가 되어 엘리어트 너에
게만 민폐를 계속 끼치고 있는 것 같구나. 이제 난 어쩌면 좋니 ? 흑흑흑흑~~~!!! ’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도우너가 앨리스의 언어로 그 말을 표현할 수가 없고 지구행성의 말을 해봤자 엘리어트가 못알아듣는다. 그러니 더더욱 답답함에 그저 엘리어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있는 도우너. 엘리어트가 안타까이 그런 도우너를 바라보며 달래주고 있을뿐이다.
“ 도우너... ”
한밤중에 침대에 나란히 누워 도우너의 손을 살짝 잡아본 엘리어트. 그러면서 말을 건넨다.
“ 근데 너 정말 외계행성에서 온거니 ? ”
지금 이 말을 도우너가 알아들을수 있을까 ? 순간 좀 흠칫하며 눈빛이 빛난 도우너. 엘리어트의 말이 이어진다.
“ 우리 앨리스에는 이런 전설이 있어. 밤하늘의 별똥별은 사실 아주 위대한 존재가
태어나거나 올것이란 암시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죽어 하늘로 돌아가는 신호라고
...물론 지금은 과학이 발전해서 그런 전설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학교에
서 과학시간엔 별똥별이 우리 항성계를 떠도는 소행성이 스쳐 지나가것이라고 배우
지. ”
“ ...... ”
“ 우리 항성계엔 모두 9개의 행성이 있어. 그리고 우리 솔파가 네 번째 행성. 그리
고 선생님들은 9개의 행성중 세 번째 행성부터 다섯 번째 행성까지가 생명체가 살
수있는 그런 조건을 가진 행성이라고 해. 그리고 여섯 번째 행성은 ‘가미’라고 부
르는 아주 덩치가 큰 (* 지구의 목성처럼) 괴물행성이지. ”
새삼 자연과학시간에 배웠던것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려지니 괜시리 기분이 묘해지기까지 하는 엘리어트. 마치 친절한 자연과학 선생님이라도 된것마냥 이렇게 도우너에게 설명을 이어간다.
“ 자연과학 시간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셔. 저 머나먼 우주에는 우리와 똑같은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수십수백만광년 이상 떨어진 저 머나먼 어
느 우주에는...어쩌면 우리 솔파보다 엄청나게 과학문명이 발달한 그런 고도의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
도우너는 지금 엘리어트가 하는말을 알아들을수 있을까. 말없이 엘리어트가 도우너를 바라본다. 도우너는 실은 속으로 이렇게 묻고 있다.
‘ 엘리어트...근데 여기가 혹시 안드로메다는 아니지 ? ’
엘리어트와 도우너가 어차피 지금은 단답형 대화는 가능해질 정도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밥먹었냐 ?’던가 ‘화장실에 가고싶다’는 본능적인 의사표현 정도만 가능한것이지 이런 깊이있는 철학적 담론까지 서로 대화로 나누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어차피 말해도 못알아들을것이라는 생각에 도우너는 그저 허공만을 바라보며 이렇게 눈물짓는다.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 우리 지구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말하곤 하지.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날
려 보냈냐 ?’고 안드로메다가 그렇게 머나먼 우주에 있는 별(실제론 은하)이라는
소린데...근데 엉뚱하게 난 그런 생각을 가끔 했었어. 왜 자꾸 죄없는 안드로메다
만 들먹일까. 안드로메다 외계인들이 들으면 무척 기분나쁘겠다 하고... ’
“ ...... ”
‘ 그러고보면 어릴적 보았던 공상과학만화에도 등장하는 외계인은 늘상 ’안드로메
다 외계인’이었는데... ’
착잡해진 심경으로 그저 허공만을 바라보는 도우너. 헌데 밤늦은 시간이라서일까. 엘리어트와 도우너가 잘 자고 있는지를 확인하러 멘시니아가 잠시 들어와본다.
“ 너희들 거기서 뭐하니 ? ”
‘ 어엇... ’
이젠 굳이 도우너를 숨기거나 할 필요도 없고 그 자체가 아무 의미없는 행동일텐데 이제 습관이 되어서인지 본능적으로 엘리어트는 도우너를 숨기려고까지 한다. 몸보다 머리가 ‘아, 참 이제 그럴 필요가 없지. 어차피 다 들킨 마당에 뭘... ’ 하고 판단하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린다. 여하튼 그 어색한 동작이 재미있기도 하고 귀엽게 느껴져서일까. 멘시니아가 피식 웃어보이는데, 그러면서도 아이들 건강은 걱정하는지 이렇게 묻는다.
“ 너무 밤늦게 자 버릇하면 건강이 나빠질수도 있으니까 일찍 자. 무슨말인지 알겠
지 ? ”
“ 네, 누나. ”
그렇데 대답하는 엘리어트. 멘시니아가 다시 묻는다.
“ 내일 아침은 뭐 해줄까 ? 먹고싶은거 있으면 말해. 누나가 해줄테니까. ”
그러고보면 엘리어트와 도우너가 여기서 생활한지 그 사이 그래도 한 며칠이 지났는데, 다른건 몰라도 삼시세끼는 꼬박꼬막 잘 챙겨주는 멘시니아라 고마운 마음까지 생기면서 엘리어트가 이렇게 말한다.
“ 저...저흰 상관없으니까...그냥 늘 먹던대로 해주세요. ”
“ 응, 알았어. ”
마치 친절한 누나처럼 씨익 미소짓고있는 멘시니아. 엘리어트와 도우너가 멀뚱멀뚱 그런 멘시니아를 바라보고 있다.
사실 혜시니아도 지금으로선 아예 멘시니아의 창고에 기거하도록 할수있게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미 정보위는 체로키와 에바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간의 상황을 모두 파악 애초 엘리어트와 도우너를 데려간 멘시니아는 물론 혜시니아까지도 모두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멘시니아는 물론 혜시니아에 대해서도 한바탕 조사가 들어갔을터. 물론 이미 멘시니아는 체로키와 동거하던 집에서조차 달아난 상태지만 혜시니아의 월세방을 정보위에서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실제 이미 월세방 주인에겐 누군가가 다녀갔다.
“ 20대 후반정도의 여성이 이곳에 살았었죠 ? ”
“ 예. 그건 맞습니다만... ”
“ 이름이 혜시니아인가...그렇게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 ”
“ 네, 아마 기억이...저희 월세방에 계약할 때 이름이 아마 그럤던걸로 기억합니다
만... ”
기억이 정확치 않은지 월세방 주인은 자신의 월세방 계약 명부를 가져와 혜시니아의 이름을 확인시켜주고 그곳엔 그녀의 직업까지도 다 적혀있었다. 월세방 주인 입장에선 누군지 정체를 알수없지만 심상찮아 보이는 이들이 찾아와 이렇게 물으니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을터. 헌데 불행중 다행히도 마침 혜시니아가 퇴근(?)을 하다 이 광경을 목격하였다. ‘위험함’을 직감한 혜시니아는 바로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지금 어디 딱히 갈곳이 있는 처지도 아닌 혜시니아이니 결국 멘시니아의 창고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아니, 혜시니아. 어쩐일로 다시 온거에요 ? ”
일단 현재로선 혜시니아는 낮에는 이렇게 멘시니아의 일을 도와주면서 이런식의 출퇴근(?)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퇴근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여기는 체로키의 연구소에서도 혜시니아의 월세방에서도 거리가 꽤 되니 왔다갔다 하는데 시간이 그만큼 걸릴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밤중에 창고로 돌아온 혜시니아에 멘시니아가 크게 놀랐고 혜시니아로선 그저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
“ 멘시니아. 우리 큰일났어요. 일단 저부터 당분간 여기서 살게 해줘요. 제가 지금
집으로 돌아갈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니까요. ”
멘시니아의 창고는 일단 한쪽 구석에 엘리어트와 도우너가 지낼 수 있는 방을 멘시니아가 직접 만들어주었고 그 반대편 구석엔 멘시니아 자신이 지낼수 있는 방도 별도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앞으로 ‘가상체험관’을 만들기 위한 이런저런 재료며 도구를 가득 쌓아놓았는데, 어쨌든 혜시니아가 무작정 도와달라고 하니 혜시니아는 그녀를 자신의 방에 재울 수밖에 없을터. 일단 그리로 혜시니아를 들어오게 하였다.
“ 이제 어떻게 할거에요 ? ”
일단 정보위 관계자들이 혜시니아의 월세방까지 찾아온 것은 충분히 짐작할수 있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이라면 이미 멘시니아나 이 창고도 위험하긴 별반 다를게 없다. 그나마 이들이 안도할수 있는 것은 창고가 있는곳이 연구소나 체로키 박사 혹은 혜시니아의 거처등에서 멀리 떨어져있는곳이라는 점. (* 청호시에서도 거의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청호시는 앨리스 북부국가와 인접한 국경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위치해 있다.) 허나 무슨 SF 영화에서 보는것처럼 어느 비밀 지하공간이나 으리우리한 저택 한쪽의 은밀한 공간에 이런 시설이 있다면 모를까 누가 봐도 눈에 확 띄는 커다란 창고라면 언제까지 안전할수 있을것인지 장담하기 쉽지 않다. (* 시골 웬만한 농협창고보다도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거듭 걱정되어 멘시니아에게 묻는 혜시니아. 멘시니아가 일단 태연하게 대답한다.
“ 일단 계획한 것은 그대로 추진해야 하는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 ”
“ 장난해요 지금 ? ”
다른건 몰라도 체로키 박사의 연구를 이어가기 위한 ‘고도의 문명을 가진 외계 지적생명체가 장시간 지속할 수 있는 행성은 그리 많지 않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가상실험을 하기위한 시설을 만드는 계획을 그대로 추진할 생각인듯한 멘시니아. 그래서 혜시니아가 다시금 화를 낼 수밖에 없다. 피치못해 결국 멘시니아에게 자신을 숨겨달라고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맞거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거의 없는 멘시니아란 여자. 무엇보다 당장 체로키 박사의 안위부터 걱정되는 마당에 오직 연구성과 내겠다는 일만 계속 추진하겠다는 멘시니아가 그저 기가막힐뿐이다. 허나 이제 멘시니아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무조건 그녀에게만 뭐라고 할 수밖에 없게된 자신의 처지. 이래저래 혜시니아도 답답해지긴 마찬가지다.
“ 혜시니아. 이리와서 이것 좀 도와줘요. ”
여전히 고민투성이인 혜시니아와 달리 멘시니아는 가상체험관 만드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생각인지 아침부터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망연자실하게 방안에 있는 혜시니아를 책망까지 하면서.
“ 뭐에요 도대체 ? 언제는 날더러 도대체 청소한번을 하는걸 못봤다고 핀잔까지 하
더니...지금은 혜시니아가 내가 지금 이 고생을 하며 일을 하는데, 손 하나를 깜짝
안하잖아요 ? ”
사실 그게 원래 멘시니아의 성격 아니던가. 혜시니아가 체로키 박사의 연구실에서 일할 때 그녀는 연구작업 외에 기타 자잘한 잡무며 청소작업 같은것까지 자신이 알아서 적극적으로 서슴없이 해내는 반면 멘시니아는 연구와 직접 연관이 없는일은 자신이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라도 탑재되어 있던 것 같은 여자. 허나 지금은 상황이 정 반대가 된 모양새라고나 할까. 혜시니아가 다소 한심하다는 듯 멘시니아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입을 연다.
“ 멘시니아. ”
“ 네, 왜요 ? ”
“ 엘리어트와 도우너 좀 잠깐 내보내죠. 그리고 우리끼리 이야기 좀 해요. ”
아무리 크고 넓은 창고라지만 그래도 둘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엘리어트나 도우너에게까지 전혀 들리지 않을만큼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아무리 자신들끼리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근본적으로 출입문을 제외하곤 사실상 사방이 막혀있는 창고공간이 아닌가. 그러니 엘리어트나 도우너가 들으면 안될 것 같은 대화내용의 주제인지라 둘을 내보내고 따로 이야기를 하는게 좋겠다는게 혜시니아의 판단인 듯 하다. 허나 멘시니아가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뛴다.
“ 지금 장난해요 ? 상황이 그렇게 위험하다면서 엘리어트와 도우너를 밖으로 내보
내자구요 ? 그러다 만약 진짜 저 둘이 남들 눈에 뜨이기라도 하는날엔 그땐 어떻게
책임질거에요 ? ”
“ 그만한 판단 못할만큼 어린아이들도 아닌 것 같은데...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남들
눈에 뜨이지 않도록 몸조심해라. 그 정도 주의사항만 주고 한두시간 내보내면 되죠
.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 ”
“ 혜시니아... ”
허나 멘시니아는 거듭 그것만은 곤란하다고 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멘시니아는 만의 하나 엘리어트와 도우너가 도망이라도 가는 경우를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둘을 실험대상으로 쓰려던 멘시니아의 계획 자체도 수포로 돌아가버릴뿐더러 그러다 자칫 결국 이 공간마저도 들킬 위험이 더더욱 큰 것 아니가. 그래서 더더욱 그건 안된다며 완강하게 나오고 있는 멘시니아. 혜시니아 입장에서 질려버릴 지경이다.
“ 멘시니아는 도대체 이 판국에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 도대체 멘시니아는 지금 가
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뭐에요 ? 박사님 연구성과에요 ? 아니면 그냥 멘시니아 개
인적 욕심이에요 ? 지금 솔직히 박사님 행방도 묘연한 상태에서 그것도 박사님 아
들까지 납치해와서...지금 이러는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요 ? 만약 진짜 박사님까
지 어떻게 되고...나중에 엘리어트까지 잘못되더라도 그저 멘시니아 개인 욕심만 채
우면 된다 그 생각인거에요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거에요 ? ”
“ 이봐요 혜시니아. 말조심하지 못해요 ? ”
결국 멘시니아도 화를 내고 그렇게 혜시니아와 멘시니아의 대립도 점점 극에 달하는 것 같다. 혜시니아는 혜시니아대로 멘시니아란 여자와는 진짜 대화가 안 통한다는 생각에 어떤 절망감마저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그녀와 쉽게 결론 안날듯한 말싸움을 너무 오래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혜시니아 자신의 신변도 위험한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는것도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멘시니아 얼굴을 보면서 머리아픈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인걸까 ? 대충 바람이라도 쐬러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잠시 밖으로 나가긴 한다.
한편 체로키와 에바는 일단 정보위에서 풀려났다. 체로키의 연구소 직원이었던 멘시니아가 애초부터 엘리어트와 도우너를 데려가는일을 주도했고 그리고 정황상 그네들을 데려간것 역시 멘시니아가 확실한 이상 그쪽의 행방을 찾는데 주력하고 둘은 풀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편 에바의 두 딸 라라와 유라도 더 이상 그녀들까지 감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 에바의 두 딸에 대한 감시는 며칠만에 이미 해제가 된 상태였다.
한편 에바는 직장인 의회사무처 자료실에서 짤렸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에바같은 여자가 그것도 공직자로 그런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압력을 넣은 것이다. 비록 앨리스뿐만 아니라 티알스 대다수의 국가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나 이혼녀를 직장에서 해고시키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일이란게 아주 드물게 이런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허나 의회사무처의 다른 일반직원들이야 그동안 에바에게 일어난 일련의 복잡한 일들을 알고 있을리는 만무해 에바가 갑자기 해고된것에 대한 원망과 원성은 의회사무처 고위 간부들에게 쏠리고 있었다. 당사자들 입장에선 정보위의 압력에 불가피한 조치를 취한것인데 그렇다고 그 속사정을 그대로 말해줄수도 없어 답답하고 억울하기 짝이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체로키도 어차피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아진 상태다. 일단 엉망이 된 집과 자기 연구실을 대층 정돈한다 할지라도 연구실 운영이 계속 가능할지 그것이 미지수다. 당장 자신을 지금까지 돕던 두 연구원 혜시니아와 멘시니아의 행방이 모두 묘연하지 않는가. 게다가 아들 엘리어트도 아직 행방불명 상태이니 이런 상태에서 체로키가 정상적으로 연구소를 계속 운영해나가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 얼마후 에바의 집엔 구잘이 찾아왔다. 물론 구잘 역시 에바가 해고된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고 다만 갑자기 그녀를 해고한 의회사무처장등 상위 간부들만 원망하고 있을뿐이다. 무엇보다 시온시에서 나고 자라 쭉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해온 구잘이 지금까지 남부의 도시 메이까지 올 일은 거의 없었는데 지난번 에바의 ‘재혼동의서’를 써준다고 직장동료 안젤리나와 함께 내려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된 셈이다. 구잘은 구잘대로 궁금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라 에바에게 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 에바...도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 내가 모르는 무슨일이 있었던거에요 ? ”
에바와는 열 살차이지만 여하튼 한 10년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가까운 동료가 되어있던 구잘이 아닌가. 헌데 그런 구잘조차 모르는 다른 에바의 속사정이 있을수 있다는게 믿겨지지 않아 이렇게 운을 뗀 것이다. 허나 에바는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 아니에요. 그냥 제가 여러 가지로 힘이들고 피곤해서 그만둔 것 뿐이에요. ”
“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어요 ? 아직 자녀 셋을 앞으로 10년은 더 키
워야 하는 에바가 지금 고작 그런 이유로 갑자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게 말이
나 돼요 ? 그러지말고 솔직히 나에게 말해봐요.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에요 ?
”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메이시에서 있었던 괴비행체 추락사건까진 몰라도 거기서 발견된 ‘외계생명체’와 관련된 일들은 ‘국가기밀’ 사안이다. 외계생명체 도우너의 행방을 찾는일 자체가 은밀히 진행되어온것인데 따라서 체로키도 에바도 풀려날 때 자연히 이 일에 대해 함부로 입 열지 말것에 대한 각서를 받아냈고 라라와 유라 역시 자신들에 대한 감시가 해제될 때 비슷한 각서를 제출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에바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수 없는 처지인 것은 마찬가지. 그저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라 적당히 말을 돌리며 구잘이 이쯤에서 가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뿐이다. 허나 구잘은 구잘대로 지금의 이 상황이 나름 견디기 힘든지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아무튼 참...이 나라도...여자들 살기가 참 불편한게 많긴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
이혼한뒤 재혼할 경우 남자는 자녀들의 동의를 얻어야하지만 여자는 그냥 친구나 동료,지인 세명의 동의만 받으면 가능한 나라.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나 미혼모는 절대 직장에서 해고시켜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는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입장에선 아직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것일까. 구잘의 불만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 나만해도 그렇잖아요. 여하튼 저도 시온시에서 쭉 나고 자라 학교 졸업하고 어느
덧 10년째 이렇게 독신으로 살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하여튼 여러 가지로 살
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남자들도 참...여자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남자 별로 없는
거 같고... ”
나이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안하고 독신으로 사는것에 대한 이유를 대충 그렇게 대고있는 셈인 구잘.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남자가 되어야 구잘의 성에 차겠다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한바탕 늘어놓은 구잘이 다시금 이렇게 한숨섞어 말한다.
“ 그래서...저도 일전에 에바에게 이런말 했었지만... ”
“ ...... ”
“ 그냥 저도...의회 도서관 사서일 그만두고 기회봐서 카라로 건너가고 싶어요. ”
“ 구잘... ”
일전에도 그런말을 한적이 있는 것 같아 에바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카라대륙과 티아라 대륙은 약 300년전 솔파행성 세계사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릴정도로 큰 전쟁을 벌여 두 대륙의 지성체가 상대에게 갖고있는 감정은 여전히 좋지 못하다. 헌데 그런 상황에서 굳이 카라로 가겠다는 여성은, 혹시 핏줄이나 그 외 기타 어떤 연고나 인연이 카라대륙쪽과 있는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게 티아라 대륙의 평범한 여성 지성체의 보편적 정서다. 헌데 하필이면 카라로 가겠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구잘의 생각이 이해가 안가 에바가 다시금 그 연유를 묻는다.
“ 도대체 왜 하필 하고많은 나라중에...그쪽으로 가겠다는건데요. 솔파에 대륙만 일
곱개고 그 안에 나라가 무수히 많아요. 그런데 왜...왜 하필 카라로 가겠다는건데
요 ? ”
게다가 에이핑크 대륙에서 시작된 석문교를 오래전부터 신앙해온 에바는 정서적으로 오히려 그쪽에 더 친근함이나 호감을 느끼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에바는 차라리 다른 세상(대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보고 싶다면 카라보단 에이핑크가 어떻겠느냐는 추천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구잘은 거듭 손을 내젓는다.
“ 여기서 카라대륙 지성체들을 욕하는건 그냥 우리들의 개인적 감정일뿐이죠 여하
튼 300년전 그런 큰 전쟁을 치렀으니 왜 그 앙금이 지금껏 남아있지 않겠어요 ?
하지만 전... ”
“ ...... ”
“ 그런 편견을 갖지 않고 카라대륙과 한번 부딪혀보고 싶어요. 그냥 그곳 지성체들
은 어떻게 사는지 한번 그들의 문화, 그들의 삶과 향기를 함께 느껴보며 제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단지 그것뿐이에요. ”
구잘의 의지가 그와같다면 에바 입장에서 굳이 말릴 이유나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대충 그런 내용의 수다를 떨다가 구잘은 그쯤에서 도와준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된 에바를 위로해준답시고 찾아왔다가 피차 좀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고받고 돌아간 셈이다. 구잘이 돌아가고 난뒤 에바는 혼자 1층 거실 베란다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공연한 허허로움이 밀려오고 있다.
“ 엄마... ”
그런 엄마 에바가 걱정이 되어서일까. 딸 라라와 유라가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이 두딸도 지난 얼마동안 큰 곤욕을 치렀던 것 아닌가. 그래서 에바 입장에서 그런 라라와 유라의 놀란 심령을 달래줄겸 한번씩 품에 꼭 안아본다. 그리고 말없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 엄마,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세요 ? ”
“ 별 좋아하는 남자 조심해라. ”
“ 네 ? ”
난데없이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인지. 라라와 유라가 어리둥절해서 묻고 에바는 여전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어릴때부터 그렇게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더니만 결국은... ”
도대체 누구를 두고 이런말을 하는것인지. 에바는 뜻모를 소리를 한두번 더 하더니 딸 유라와 라라를 보며 마무리라도 하듯 다시 이렇게 말한다.
“ 라라야, 유라야...너희들은 말이지... ”
“ ??? ”
“ 이 다음에...이 다음에 절대... ”
한숨을 잠시 내쉬는 에바. 어느덧 눈물까지 고여있다. 눈물을 닦아낸뒤 에바의 넋두리가 좀 더 이어진다.
“ 너희들 아버지 같은 사람은 절대 만나지 말으려무나. 무슨말인지 알겠니 ? ”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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