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이야기 – 8. 솔파행성을 찾아온 E.T
엘리어트의 친아버지 체로키 박사는 현재 앨리스 북부에 위치한 ‘청호시’라는 도시에서 개인 천문연구원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원래 체로키 박사는 앨리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 천문연구원(* 국립 천문연구원은 과학기술부 산하에 있다.)’ 연구원이었으나 종종 이단적인 주장을 해서 수년전에 해고된 이다. 사실 이 시절 솔파행성 대다수 국가들이 그렇지만 앨리스에서 운영하는 국립천문연구원의 주된 업무는 솔파행성 주변의 행성이나 위성등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외 또다른 부차적인 (* 어쩌면 은밀하게 진행되는) 업무가 저 드넓은 어디엔가 존재할지 모르는 외계 비행체 혹은 외계생명체를 찾는 일이었다.
사실 체로키도 바로 그와같은 외계 생명체나 비행체를 찾는 ‘특수활동팀’에 한때 소속되어 활동을 했는데 이 무렵부터 체로키가 종종 이상한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솔파행성 외에 ‘고도의 지적수준과 문명수준을 가진 외계생명체’가 사는 행성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다는게 체로키 박사 주장의 핵심이었다. 체로키의 주장은 역으로 솔파행성의 환경을 생각해보면 외계에 그런 고도의 지적수준을 가지고 장기간 문명을 지속할수 있는 그런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는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게 박사의 주장. 가령 근본적으로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일정한 물과 공기가 있어야하며 중력이나 자전,공전주기도 일정해야하고 또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식물도 있어야하고 바다와 육지의 비중도 적절해야 한다는등...헌데 그런식으로 열거하다보면 ‘생명체’가 무수히 번성할수 있는 행성이 알고보면 그리 많지 않고 또 용케도 그런 생명체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생명체가 고도의 지적수준과 문명수준을 가지고 장기간 지속해서 생존할수 있는 그런 환경도 만들어지기 쉽지 않으니 아무리 우주가 넓고 별이나 행성이 무수히 많아도 알고보면 우주를 마치 이웃집 드나들 듯 수십수백만 광년 거리를 씽씽 날아다닐수 있는 그런 ‘고도의 과학문명 수준을 가진 외계 생멩체’ 그런 생명체가 장기간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이 체로키 박사 주장의 핵심이었다.
사실 이와같은 주장이 그냥 체로키 박사의 개인 주장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주장을 펴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면 결국 과학적으로 연구를 해보고 실험을 해봐야 하니 그와 관련된 연구비를 좀 더 달라고 상부에 요구했다가 결국 ‘이단’으로 몰려 해고가 된 것이다. 헌데 그렇게 체로키 박사가 국립 천문연구원을 그만두고 나올 때 그의 주장을 지지한다며 따라나온 두명의 젊은 여성 연구사가 있었다. 하나는 멘시니아고 하나는 혜시니아라고 하는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한뒤 국립 천문연구원 연구사로 발탁된지 얼마되지 않는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체로키는 이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두명의 여성과 함께 청호시에 개인 ‘천문연구원’을 차린 것이다. (* 청호시는 시온시에서 북쪽으로 약 200km정도 떨어져있다. 사실상 국경지대에 위치한 도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혜시니아와 멘시니아. 둘 다 20대 후반의 젊은 체로키박사 지지파였지만 둘의 체로키 박사의 주장을 지지하는 방식은 좀 차이가 있었다. 혜시니아는 가령 체로키가 ‘소금 가마니를 이고 바닷물로 뛰어드는 실험을 해보자’는 주장을 하면 군소리없이 바닷물로 뛰어들정도로 맹목적으로 체로키를 지지하고 따르는 경우라면 멘시니아는 일종의 ‘비판적지지’쯤 된다고나 할까. 때론 체로키 박사 주장의 허점이나 모순에 반박을 하긴 하지만 어떻게보면 체로키 박사의 주장을 더 강화시켜주는 일종의 ‘보완재’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가령 체로키 박사의 주장에 ‘이런이런 반론이 나올 우려가 있으니 차라리 직접 우리가 실험을 해 입증을 해보자’며 오히려 체로키 박사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와같이 해줘야 한다는 박사의 주장을 되려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역할을 멘시니아가 해주는 셈이다.
혜시니아와 멘시니아는 성격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방식도 극과극으로 차이가 난다. 가령 혜시니아의 경우 체로키의 개인 연구원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는 연구실의 공적인 일은 물론 청소라던가 잡무는 물론 관공서나 은행출입같은 서류나 회계업무 심지어 때론 체로키 박사의 점심식사까지 챙겨줄정도로 체로키 박사와 연구소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슨일이든 가리지 않고 손수 찾아서 하는 성격이라고 한다면 멘시니아는 원래 성격이 그런것인지 아니면 인식 자체가 ‘연구원은 연구만 하는 역할이지 청소나 기타 잡무까지 하는 자리가 아니다’ 라는식으로 박혀있어서인지 공식적인 연구활동만 할뿐 잡무를 보는일은 거의 없었다. 사실 국립 천문연구원 정도만 되어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청소나 잡무를 보는 ‘별정직’이 따로 있긴 했지만 개인 사무실이 그런 자리까지 따로 둘수야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청소가 되었든 관리나 수리업무가 되었든 연구원들끼리 알아서 교대로 돌아가면서 하는수밖에 없을터인데 멘시니아의 성격이 워낙 그런 방식이라 공교롭게도 연구원에서 잡무는 대개 혜시니아가 거의 도맡아 하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체로키는 혜시니아보다는 멘시니아에게 더 관심과 애정을 주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사무실에서 드러내놓고 둘을 차별하거나 하는일은 없었지만 실은 언제부터인가 멘시니아와 체로키의 관계는 사실상 연인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성격만 봐도 혜시니아는 그저 체로키가 하자는대로 순순히 따르는 그런 성격인 반면 멘시니아는 뭔가 좀 꼼꼼히 따지고 보는 성격이라 남자 입장에선 오히려 멘시니아보다도 순종적인 혜시니아한테 더 정이 갈만도 할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체로키는 혜시니아보다는 멘시니아와 언제부터인가 그런 깊은 관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혜시니아가 연구원에서 남서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주택가에 월세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다면 멘시니아는 현재 사실상 체로키와 동거나 다름없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애초 국립 천문연구원을 나와 개인 연구소를 차릴 때 천문관측에 수월한 지역을 찾다보니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청호시를 선택한게 체로키와 두명의 여성 연구사들이다. 헌데 체로키든 혜시니아든 멘시니아든 이 먼 북부의 지방도시까지 와서 일을 하려면 천상 여기서 방을 구하거나 하는수밖에 없었다. - 개인연구소를 운영하는 이가 무슨 별도의 숙소까지 마련해줄수 있는 처지는 못될테니. 헌데 혜시니아는 별도의 월세방을 구할수 있었던반면 멘시니아는 뜻밖에 이런 방식의 일에도 서투른것인지 청호시로 온 뒤에도 한동안은 별도의 잘 곳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는수없이 처음엔 한동안 혜시니아가 구한 월세방에서 둘이 함께 생활하였다. 허나 방이 협소해 성격까지 상반되는 둘이 함께 지내기에 불편한게 많았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멘시니아는 차라리 체로키 박사의 거처에 들어가 사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그곳에서 함께 지내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체로키는 연구소에선 차로 2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떨어져있는 4층짜리 빌라에 방을 하나 구입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25평짜리 집에 방도 두 개나 있는곳이니 어쨌든 처음엔 체로키가 쓰는 방 외에도 여분의 방 하나가 있는 모양새가 되어 체로키가 멘시니아에게 ‘혜시니아와 함꼐 불편하게 사느니 내 집에서 지내는게 어떻겠느냐 ?’고 권유 멘시니아가 체로키의 집에 함께 살게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미 멘시니아는 체로키의 방 침대에 함께 나란히 누워 있었다.
많이 익숙해져 있는 분위기로 체로키의 방에 나란히 함께 누워있는 멘시니아. 살그머니 자신의 양손으로 체로키의 팔을 감싸보기도 한다. 허나 체로키가 뭔가 부담스러운 듯 살짝 멘시니아를 밀어낸뒤 탄식을 한번 내뱉고는 입을 연다.
“ 멘시니아... ”
그런 체로키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멘시니아. 마치 말을 안해도 눈빛만 봐도 당신의 마음을 다 알 것 같다는 그런 분위기라고나 할까. 허나 체로키가 살짝 고개를 내저어보인뒤 말을 이어간다.
“ 이 나라는 참 남자한테 불공평한 나라야. 그건 뭐 다른 이웃나라들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
뜬금없이 대체 뭘 갖고 이러는것인지. 허나 멘시니아는 체로키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알고 있음인가. 살짝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본다.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 도대체...남자가 재혼하려고 하면 무조건 자녀들의 동의를 받아내야 하는데 반면
여자는 주변 친구나 지인,동료 세명의 동의만 얻어내야하는 그런 말도 안되는 경우
가 어디있냐는 말이지. 그야말로 여자는 그저 주변 친구들만 대충 동의해주면 재
혼해도 된다는 소리지만 남자는 무조건 애들 허락 받고나서 하라. 그 소리잖아 ?
그러니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경우냐구 ? ”
그게 법적으로도 그렇지만 그러한 문화가 이미 수백년전부터 일종의 관습이나 문화처럼 굳어져 내려온것이라 보면 된다. - 이웃 나라들의 사정도 법적으론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제도 자체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 그러니 어떻게보면 남자한테 일방적으로 불리한 ‘재혼제도’라고나 할까. 남자는 여하튼 무조건 애들 허락이 떨어져야 재혼할 수가 있는것이지만 여자는 주변 친구,지인,동료들의 동의(세명 이상)만 있으면 된다. 그게 왜 체로키 입장에서 진짜 불리하고 불합리한지 그 불만토로가 이어진다.
“ 가령 나만해도 그래. 에바 그여자와 내가 갈라선지가 이미 10년도 넘어. 게다가
에바가 이후론 애들을 만나주지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그렇게 아이들 얼굴조차
못보고 산게 10년세월인데...이런 상황에서 무슨수로 아이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받아내냐 그 말이지. 그것도 ‘재혼동의서’를 말야. ”
하긴 10년동안 연락조차 없고 어쩌면 얼굴도 잊어버렸을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불쑥 나타나서는 ‘재혼동의서’를 써달라고 하면 아이들 입장에서 황당한 정도가 아니라 그 정신적 충격조차 이만저만 아닐텐데, 그런 상황에서 흔쾌히 재혼 동의서를 써줄 자녀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 게다가 그렇게 5년이든 10년이든 오랜만에 만난 자녀라면 더더욱. (* 게다가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더 큰 것 아닌가. 실제 현제 체로키의 세자녀 라라,유라,엘리어트 3남매가 모두 아직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들이다.) 어떻게 보면 앨리스나 그 외 이웃나라들이 그러한 입법이나 문화,관습이 존재하는 것은 남자가 재혼하려거든 자녀들에게도 그에 준하는 의무를 다하라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곘지만 만약 체로키처럼 이미 자녀들과 연이 끊어진지 오래인 경우라면 사실상 재혼을 하고 싶거나 뒤늦게 사랑하는 여자가 새로 생겼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답답함에 가슴을 치는 체로키. 물론 멘시니아도 앨리스의 이런 법과 제도에 대해 모르진 않을터. 그래서일까. 나름 어떤 궁리해본 꾀나 구상이 있는 듯 의미심장하게 입을 연다.
“ 그래서 말인데요 박사님. ”
“ ??? ”
“ 아이들을 하나하나 제가 이리로 데려오는게 어떨까요 ? ”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
멘시니아의 의도가 잘 이해가 안가서 나오는 질문.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일단 아이들을 하나하나 이리로 데려와서 저희와 함께 지내면서 이 분위기가 익
숙해지게 만들자 이거죠. 너희 아빠와 엄마는 오래전에 이미 갈라섰고 이제 더 이
상 함께할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헌데 아빠가 뒤늦게 이렇게 좋은 사람이 생
겼으니 너희가 이런 아빠의 인생을 이해해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하나하나 차분히
잘 설득해보자 그 말이죠. ”
“ 허허...참...아이들을 유괴나 납치라도 해오잔 말인가 ? 그것도 아직 성인이 안된
학생신분인 아이들을 ? ”
미성년자라도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면 유인이나 납치가 되지 않을수도 있지만 여하튼 뒷탈이 생길수도 있는 일이다. 따라서 멘시니아의 작전이 오히려 더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체로키가 손을 내젓고. 허나 멘시니아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있다는 듯 입술을 한번 다시금 지그시 깨물어보고는 체로키의 팔을 더욱 간절히 붙잡아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 만약 정히...저희의 사랑이 이 나라가 용인해불수 없는 그런 사랑이라면... ”
“ ??? ”
“ 전 그냥...박사님 연구의 영원한 지지자가 될 각오로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마
세요. ”
설사 자신과 체로키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냥 체로키의 연구를 지지하고 곁에서 도와주는 그런 동조자이자 동지로 남고싶다. 그게 멘시니아의 마음인걸까. 정식으로 그의 여자가 될수 없더라도 그의 열성 지지자의 위치로 만족한다. 허나 그러면서도 멘시니아는 체로키에게 아직 개운치 않은 뭔가가 남아있는 듯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헌데 박사님... ”
“ ...... ”
“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의 상황에 불과하지만 만약에 말이죠... ”
가설을 좋아하는 과학도라서일까. ‘가정의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는 멘시니아.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만약...만약에 말이에요 박사님. ”
“ 허허...무슨 이야긴데 그리 뜸을 들이나 ? ”
“ 만약 세상에 여자가 저하고 혜시니아 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면... ”
“ ??? ”
“ 그때 박사님은 저랑 혜시니아중 누구를 택하고 싶으세요 ? ”
의외로 멘시니아가 신경쓰고 있던게 혜시니아인걸까. 헌데 이런 질문이 오히려 체로키에게 쉽게 답하기 힘든 문제가 되는것인지 쉬이 어떤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체로키의 태도가 애매하자 멘시니아가 좀 더 간절해져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데 체로키가 다소 묘한 미소를 던지며 마치 농담같은 이야길 꺼낸다.
“ 그...차라리...일부다처제를 하면 어떨까 ? ”
“ 뭐라구요 ? ”
“ 그...그런걸 허용해주는 나라가 세상에 있을련지는 모르겠지만...일부다처제를 허용
해주는 나라가 있다면 어떻겠나 그 말이지. ”
“ 아니, 뭐라구요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있는거에요 ? ”
그것도 하필 혜시니아와 멘시니아 둘만 이 세상이 있는 상황이라면 누굴 택하고 싶냐는 물음에 나온 반응이 이와같다. 그러니 여자 입장에선 더더욱 기가찰일이다. 그것도 비록 이혼한지 이미 10년이 넘었건만 여하튼 에바라는 전처도 있는 그런 체로키가 혜시니아와 멘시니아중 누굴 택하고 싶냐는 물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일부다처제’라니. 멘시니아는 더더욱 불같이 화를낸다.
“ 도대체 세상에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있어요 ? 부인을 둘씩이나 거느린다
구요 ? 도대체 그런... ”
사실 티알스 부족 대다수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부일처제’를 법제화해서 이어내려왔다. 이혼이나 재혼같은 예외가 티알스에도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앨리스에선 일단 재혼 문제는 그러한 전제조건까지 있고, 어쨌든 그런 문화와 관습이 있는 나라에서 하물며 ‘일부다처제’ 언급은 더더욱 황당한 소리다. 그래서 체로키는 더더욱 싹싹빌며 진심으로 멘시니아에게 사과하는수밖에 없다.
“ 미...미안해 멘시니아. 그냥...장난이었어. 농담이었어.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마.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뱉어본 이야기라니까. ”
“ 농담을 할게 따로있죠. 게다가 나이라도 젊거나 철이 없다면 모를까. 이미 나이
50이 다 된 분이 그렇게 생각없이 세상을 사세요 ? 도대체 일부다처제라니. 도대
체 평상시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면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와요 ? ”
“ 미안해...미안해 멘시니아. 내가 정말 잘못했어. 두 번다시 그런 소리 안할게. ”
거듭 싹싹빌며 잘못하다고 해서 멘시니아의 흥분을 진정시키는수밖에 없었다. 허나 멘시니아는 오늘은 정말 화가 났는지 체로키의 방에서 함께 자지도 않고 옆의 빈방으로 이불을 챙겨 가버린다. 멘시니아의 반응이 이와같자 체로키는 진짜 씁쓸한 감정에 빠진다. 확실히 일부다처제 운운은 체로키가 실언을 한 것이 분명하지만 여하튼 남자가 재혼을 하려거든 ‘자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일부다처제는 농담으로조차 쉽게 꺼낼수 없는 그런 이야기인것만은 분명하다. (* 단 여자는 주변 친구,동료 세명의 동의만 있으면 재혼이 가능하다.) 사실 비단 멘시니아뿐만 아니라 체로키는 얼마전에 혜시니아와도 이런일이 있었다.
“ 혜시니아는 혹시 일부다처제 어떻게 생각하나 ? ”
혜시니아가 차려준 점심을 함께 먹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이렇게 물은 체로키. 솔직히 이게 자신에게 점심까지 늘 챙겨주는 부하직원에게 할 수 있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체로키가 약간 농담이나 장난처럼 혜시니아에게 떠보듯 물은것인데 혜시니아는 그러자 말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의아해서 나가보니 혜시니아는 연구소 밖에서 혼자 웅크리고 울고 있었다.
“ 이봐...이봐 혜시니아. 왜 그래 갑자기 ? ”
“ 도대체 무슨 그런 말씀이 있으세요 ?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
에요. 어어어엉~~~!!! ”
일부다처제건 뭐가 되었건 적어도 체로키의 의도가 결혼이라도 하거나 같이 살림이라도 차리자는 그런 의도가 담긴 물음은 분명 아니었는데 혜시니아는 그런말 자체가 체로키에게서 나오자 울음부터 터트린 것이다. 도무지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데. 일부다처제란 표현 자체에도 혜시니아의 상처는 그렇게 크고 깊은것인지. 어쨌건 위로라도 하거나 달래보려고 내민 체로키의 손을 혜시니아는 뿌리치기까지 했다.
“ 됐어요 박사님. 박사님 위로 같은건 받고 싶지 않아요. ”
“ 아, 아니 저...혜시니아... ”
참 이걸 어떻게 해명하며 사과해야 하나. 거듭 난감해하는 체로키를 보며 혜시니아의 반응은 이와같았다.
“ 어차피 박사님 마음은 이미 멘시니아에게 가 있는거잖아요. 그러니 그런 가당찮은
말씀 두 번다시 하지 마세요. ”
그리고는 체로키를 뿌리치고 저만치 가버리는 혜시니아. 체로키가 그런 혜시니아를 진정시키고 달래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편 이 무렵 에바의 집엔 뜻밖의 손님이 와 있었다. 다름아닌 에바와 동향출신이면서 함께 의회 사무처에서 일했었으나 지금은 사직하고 고향에서 가구점을 하고있는 크리스 그리고 역시 의회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으나 에바나 크리스처럼 메이시 출신은 아닌 구잘의 방문이다. 무엇보다 구잘은 아직까지 에바나 크리스의 고향인 메이시를 와본 경험도 없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방문이었다. 헌데 일행에 한사람이 더 있었다. 다름아닌 역시 의회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구잘의 동료 직원이자 후배인 20대 후반의 안젤리나였다. 크리스,구잘,안젤리나. 대체 이 셋이 동시에 무엇 때문에 에바의 집을 방문한것인지. 사실 구잘도 메이시는 첫 방문이긴 하지만 안젤리나는 구잘에겐 후배직원이지만 에바하곤 딱히 친분이 있던 사이도 아니다. 다만 에바가 의회 사무처에서 일하면서 면식이 전혀 없던 사이는 아닌데 여하튼 특별한 친분은 없는 안젤리나까지. 이렇게 셋이 동시에 그것도 에바의 집을 찾아올 이유는 거의 없어서 에바가 더더욱 놀라는 표정으로 말한다.
“ 아니 도대체 크리스,구잘 그리고 안젤리나까지...도대체 내 집까진 무슨일이에요 ?
”
헌데 에바와 동갑이면서 당연히 에바를 찾아온 일행 셋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크리스가 마치 이번 방문을 애초 계획한 리더나 조장이라도 되는 듯 다소 수선스럽게 에바에게 뭔가를 내밀며 말한다.
“ 에바, 긴말하지 않고 우선 이것부터 받아요. ”
“ 대체 이게 뭔데요 ? ”
“ 보면 모르겠어요 ? 에바의 재혼 동의서지요. ”
앨리스에서 이혼한 남자가 재혼할 경우에는 자녀의 동의서가 필요하지만 여자의 경우엔 친구나 동료,지인 세명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일단 대충 생각해봐도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의 재혼이 더 수월해질 수밖에 없는 제도다. 일단 앨리스는 물론 그 주변 국가들에서 이혼가정 자녀들은 엄마보단 아빠와 함께 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 대개 경제적 이유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런 결정을 내린다) 허나허나 아이들 입장에서 아빠가 재혼해서 새엄마가 생기는 문제 자체가 그렇게 쉽게 결정할수도 없는 문제일뿐더러(* 더욱이 미성년 자녀일 경우엔 더더욱 난처해할 것 아닌가.) 만약 아이들이 아빠와 살지 않고 엄마와 사는 경우라면 더더욱 쉽지 않은일이 될 것 아닌가. 그나마 아이들이 아빠와 한 몇 달이나 몇 년만에 한두번씩이라도 만나는 교류라도 있다면 또 모를까. 최악의 경우 체로키의 경우처럼 이혼하고 한 10년 가까이 – 설사 그게 에바가 의도적으로 아이들과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한것이라 할지라도 – 아이들과 연락도 못하고 산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란 사람이 불쑥 나타나 ‘나 재혼해야겠으니 동의서 좀 써다오’ 이런다면 그걸 수긍하거나 납득할 자녀가 대체 누가 있겠는가.
허나 반면 여자의 경우엔 친구가 되었든 직장동료나 사회 동아리 같은데서 만난 친우나 벗이 되었든 그 외 기타 이웃주민이 되었든 여타 다른 지인이 되었든 평상시 잘 알거나 친분이 있는 친구나 동료 ‘세명’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당연히 이혼하고 혼자 사는 주변 친구나 동료의 처지를 주위에서 본다면 그 힘든처지를 걱정해서 ‘재혼이라도 하는게 어떻겠냐 ?’며 권하는 경우가 많을테니 여자 입장에서 그런 동료나 친구 세명 동의를 받아 재혼하는건 그야말로 ‘누워서 햄먹기’ 만큼 쉬운일이 되는 것이다. 다만 그래도 어느정도 악용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니 친구가 되었든 동료가 되었든 가령 같은 학교를 다녔던 졸업 증명서라던가 같은 직장을 다닌 재직 증명서 혹은 동향출신이나 이웃에 산다는 호적등본이나 거주증명서 같은 최소한의 증빙서류를 ‘1부’ 정도는 함께 제출해야 한다. 허나 그런 졸업증명서나 재직증명서,출생증명서 같은 것을 떼기야 너무 쉬운일이고, 사실 재혼을 할 경우 아무리 그래도 상대 배우자의 자녀 학대 가능성등이 없지는 않으니 그와 관련한 설문문항 몇 개 정도가 ‘재혼동의서’를 쓰는 당사자에게 주어지긴 한다. 가령 ‘재혼 당사자가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있느냐 ?’ 또는 ‘재혼 당사자의 예비 배우자 성격이 좋아보이던가 ?’ 하는식의 대략 열가지가 채 안되는 설문 문항이 있긴 하지만 이것 역시 형식적일뿐. 근본적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이혼여성에게 주위 친구나 동료가 재혼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면 그런 상황에서 쓰는 ‘재혼동의서’에 그런 설문지에 일부러 ‘아니오’라고 쓸 친구나 동료가 누가 있겠는가. 한마디로 ‘재혼동의서’ 1부와 함께 동의서를 써준이가 친구나 동료가 맞는지를 입증할 증빙서류를 졸업 증명서나 재직 증명서,거주 증명서 이중 아무거나 한 장 있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재혼 당사자와 관련한 ‘설문지’ 한 장. 그것만 준비되어 있으면 재혼은 만사 오케이니 엘리스에서 이혼한 여성이 재혼을 하는데 걸림돌은 사실상 거의 없는 편이다. 그리고 재혼을 바라는 여성이 있다면 지금 현재 에바 집안에서 벌어지고 있는일처럼 오히려 친구나 동료들이 ‘잘되었다’며 축하한다며 미리 ‘재혼동의서’까지 써갖고와 난리나 수선을 피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인 경우다. 허나 지금 에바는 한가하게(* 현재 사귀는 남자가 있는것도 아니고) 지금 그런 재혼동의서나 받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 손을 내젓는다.
“ 무슨...왜 시키지도 않은일을 벌이고 그래요 ? ”
“ 에바... ”
크리스는 물론 구잘도 에바의 반응이 이와같자 뜻밖인 듯 당황한다. 그러고보면 크리스나 구잘이나 둘다 이미 한달여전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에바의 힘든 처지를 걱정하며 재혼을 권유하던 그런 여성 아닌가. 그런 친구들이 혹시 ‘재혼동의서’를 쓰는 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는건가 싶어 ‘뭘 그런걸 다 걱정하고 있느냐 ?’는 듯 미리 앞다퉈서 재혼동의서까지 써온 셈인데, 게다가 ‘세명’이 다 채워지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에바와는 별로 친분도 없는 단지 구잘에게 직장후배가 될 뿐인 안젤리나까지 데리고 와 세명을 채운 것이다. (* 물론 에바에게도 같은 의회사무처에서 일하는 직장동료니 그냥 의회사무처 재직증명서만 동봉하면 그걸로 에바의 직장 ‘동료’라는게 충분히 입증된다. 단지 실제로는 구잘이라면 모를까 안젤리나까진 딱히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 사실일뿐.)
“ 에바, 걱정말아요. 저도 이미 이렇게 재직증명서까지 다 떼 왔어요. 그러고보니 깜
빡잊고 설문문항 작성하는것까진 못했는데 그것도 곧 쓸께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말
아요. ”
사실 이런 안젤라니의 경우에처럼 혹시 친구나 동료가 ‘세명’이 못 채워지는 경우를 대비 그야말로 ‘친구의 친구’쯤 되는 다른 동료나 선후배를 한명 더 추가시키는 일도 일종의 관행처럼 비일비재하다. (* 심지어 음성적으로 혹시 알바비를 받고 이런 ‘재혼동의서’만 전문적으로 써주는 그런 여성들은 없을지 그걸 걱정해봐야 하는게 앨리스나 그 외 주변국가들 이혼여성의 재혼문화와 관련된 사회분위기다.) 실제 안젤리나는 구잘의 부탁을 받고 함께 초행길인 메이시로 내려오면서 씨익 웃으며 능청스럽게 이런말을 하기도 했다.
“ 저 그러고보니 재혼동의서 써주는것만 이번이 세 번째네요 ? ”
아마 구잘의 경우처럼 이전에도 실제로는 안젤리나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면식이 한두번이라도 있거나 이름정도는 들어서 알고있는 가령 ‘친구의 친구’라던가 ‘동료의 이웃’ 그쯤되는 한단계 건너 아는이쪽의 부탁을 받아 ‘재혼동의서’를 써준 경험이 몇 번 있었나보다. 그래서일까. 농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안젤리나의 말을 듣고 구잘도 생각해보니 좀 웃기긴 한지 파안대소했다. 그야말로 재혼동의서만 써주는 ‘전문가’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는게 안젤리나의 모습 아닌가. ‘이런거 한 장 써주는데 한 몇천원이라도 받고 알바라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 안되는 이야기를 둘이 메이시로 오면서 함께 하기까지 했다. 허나 어떻게 보면 이렇게 장난같이 ‘세명’이 채워진 ‘재혼동의서’. 에바가 지금 한가하게 그런거나 받아 재혼한다고 수선피울때가 아니라서인지 그녀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손으로 한번 짚어보며 거듭 손을 내젓는다.
“ 아휴, 글쎄 지금 난 이런거 할 생각 없으니 다들 돌아가라니까요. 왜 도대체 시키
지도 않은일은 벌이고 그래요 ? ”
“ 에바, 서류가 다 준비되었으니 그냥 관공서에 가서 접수만 하면 되는거 아니에요
? 근데 왜 화를내고 그래요 ? ”
구잘이 이해할수 없다는 듯 나오자 크리스가 깜빡한 문제가 있다는 듯 역시 장난처럼 한마디 내뱉는다.
“ 중요한 문제가 있잖아요. 에바가 아직 재혼할 상대가 없다는거. 에바, 아직 사귀
는 남자 없는거에요 정말 ? ”
“ 에바씨. 사귀는 남자가 없더라도 그래도 서류는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니 보관은 하
고 있어요. 이런거(재혼동의서) 미리미리 준비해 놓는게 그래도 나중에 재혼할 때
바빠서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하거나 그런일이 발생할수도 있으니...미리미리 준비해
놓는게... ”
재혼동의서 써준 경험만 벌써 세 번째라는 안젤리나가 마치 이 분야의 전문가(?) 라도 되는양 한마디 덧붙이기까지 하는데 그러자 에바가 더욱 기가막혀 버럭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다.
“ 아니 글쎄 나 재혼 안한다는데 다들 왜들그래 진짜 ? 그리고 구잘씨와 안젤리나
씨는 그렇게들 한가해요 ? 아직 국정감사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 바쁠 때 지들 고
향도 아닌 여기까지 내려와서 이게 대체 뭐하는 짓들이에요 !!! 다들 돌아가요 당
장 !!! ”
얼마후. 체로키 박사를 은밀히 찾아온 누군가가 있다. 다름아닌 체로키와 대학 동기동창이기도 하면서 함께 천문학을 전공한뒤 ‘국립천문연구원’에서 20년을 함께 일한 알파고라는 이다. 체로키가 비록 이단으로 몰려 국립 연구원에선 나와야 했지만 알파고는 대학때부터의 정리가 있어 체로키와의 개인적 교류는 계속 해오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전 연락도 없는 밤늦은 시간에 체로키 개인집에의 은밀한 방문이라 그도 적잖이 놀랐다. 이 무렵 체로키의 집에 함께 기거하고 있는 멘시니아의 경우 방에서 세상 모르고 쿨쿨 잠들어 있었다. (* 알파고는 아직 체로키와 멘시니아의 관계는 잘 모른다.)
“ 체로키 자네의 고향이 남부의 메이시 아니던가 ? ”
알파고와 체로키가 함께 나온 대학은 수도인 시온시에 위치해 있고 그러나 둘 다 출신지는 다른셈. 허나 대학 동기이자 20년 지기인 알파고가 체로키의 그만한 신상을 모를리는 없을터. 허나 별안간 자신의 출신지를 묻는 알파고를 의아하게 보며 체로키의 말은 이어진다.
“ 메이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쭉 자랐었지. 적어도 국립천문연구원 연구사가 되기
전 까지는...결혼후에도 한동안은 아내와 이이들과 쭉 그곳에서 살았네만... ”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의 경우에도 직장과 사는집이 멀 경우엔 자신은 직장에서 마련해주는 별도의 사택이나 숙소에서 생활하며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아이들 학업이나 이런 문제때문에라도 직장이 수도인 시온시에 있으면 아예 그곳으로 이사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국립천문연구원의 경우엔 그 특수성 때문에 천문관측이 쉬운 앨리스 북부지역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메이시에 가족들이 있는 체로키는 오랫동안 직장문제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생활을 그때부터 해야했다. (* 그런점을 생각해보면 체로키와 에바의 이혼 사유는 그런 문제와 무관치 않았다고도 봐야한다.) 여하튼 새삼 그런문제를 묻는 알파고에게 의아해하며 체로키가 답변한것인데 알파고가 잠시 진지하게 그런 체로키를 바라보다 말을 이어간다.
“ 내 말은 그런게 아니라...자네도 메이시에서 얼마전 있었던 괴비행체 추락사고는
알 것 아닌가. ”
물론 신문에서도 한동안 제법 비중있게 다룬 사건이기 때문에 천문학 연구자이면서 메이시 출신인 그가 그 의문의 사건에 관심을 안 가질수가 없었다. 일단 대외적인 언론 보도등은 먼나라 비행체가 여기까지 와서 추락했을 가능성 정도로 적당히 얼버무리며 사건을 가리긴 했지만 체로키 같은 천문학 연구자 입장에서 더더욱 관심이 안 갈 사안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일단 언론이 더 이상 보도를 해주지 않고 정부당국에 이 문제를 문의한다 하더라도 정직한 답변이 나올거 같지 않아 체로키도 나름 좀 답답해하긴 했는데 알파고가 그런 이야길 꺼내니 순간 본능적으로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수가 없다. 그런 체로키를 보며 알파고의 말은 이어진다.
“ 실은 정부당국에서 찾아온 관계자와 내가 얼마전 만나보았는데 그곳에서 이상한
일이 좀 있었던 모양이야. ”
“ 대체 무슨 ??? ”
만약 정부당국이 정말 의문의 괴비행체 추락사고를 무슨 외계비행체나 외계생명체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있다면 관련업무와 관련이 있는 천문 연구원 관계자에게도 정보를 흘리거나 접촉을 안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어쨌든 은밀하게 진행되는 문제이긴 할텐데,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체로키를 찾아온 알파고. 체로키가 한층 더 긴장한 가운데 알파고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실은 문제의 사고현장에서...한 초등학생이 이상한 생명체를 데리고 가는 것을 정
보당국에서 목격한 모양이야. 그래서 그 아이를 주목하고 찾고있는 듯 하더군. ”
“ 초등학생 아이가 뭘 어떻게 했다구 ? ”
이게 대체 무슨소리인가. 체로키도 순간 놀라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안 들수가 없는데 알파고가 좀 괴로운 표정을 짓는 듯 하다 결국 하려던 말을 꺼낸다.
“ 자네 아들도 아마 지금쯤 한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되지 않았나 ? 자네 이혼할
때 막내아이가 두세살 정도 되었을테니... ”
“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게야 ? 우리 엘리어트가 무슨 외계 생명체를 확보하고
있거나 그 생명체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소리야 ? ”
비록 이혼후 그것도 설사 에바가 의도적으로 체로키와 아이들의 만남을 막고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되어서 아이들 소식을 이따금씩 알아보려 하지 않을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체로키도 지금쯤 자신의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랐는지 인지는 하고있는터. 헌데 하필 그것도 막내 엘리어트의 나이를 언급하며 이런말을 하는 알파고니, 아무리 친구라도 화가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알파고가 그런 체로키를 진정시키며 말을 다시 이어간다.
“ 좀 진정하게. 일단 내 말은...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일단 상의를 하려는것일세.
무엇보다 지금 정부당국은 문제의 외계생명체와 외계생명체를 데리고간듯한 아이
를 찾고있단말이지. ”
“ 그래서 뭐 ? 내가 지금 당장 엘리어트를 찾아가서 니가 외계 생명체 데리고 있냐
다그치기라도 하라는 말인가. ”
알파고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체로키는 더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외계생명체나 엘리어트의 행방을 설사 정부당국이 찾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만약 정말 정부당국이 외계생명체를 확보하여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한다면 그런 문제를 국립 천문연구원 관계자와 은밀히 의논하는 것은 충분히 추정해볼수 있는 일이긴 하다. 허나 지금 다름아닌 체로키 박사는 그것도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자신들이 살고있는 솔파행성의 경우처럼) 그 이유는 고도의 지적수준을 가진 외계생명체가 장기간 문명을 이루며 생존할수 있는 행성이 알고보면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그런 가설을 내세우고 그걸 입증해내려는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아니던가. 그러니 한마디로 외계생명체의 존재와는 상극의 연구조사를 하는 셈인데 그런자를 지금 알파고가 대체 왜 찾아온단말인가. 더더욱 알파고의 의도를 알 수 없어 하는데 일단 알파고가 거듭 그런 체로키를 설득한다.
“ 자네도 내가 세운 가설은 알고있지. ‘이 상자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 하는
... ”
알파고가 지금은 나름 논리계를 세운 학설이 되어있긴 하지만 처음엔 주변 친구나 동료들이 장난처럼 생각하고 하던일이 있었다. 알파고는 종종 상자안에 작은 동물이나 물건을 넣어놓고 친구나 동료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이 상자안에 과연 뭐가 있을까 ?’라고 하는. 물론 이렇게 질문하면 상대의 반응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 여보쇼 !!! 지금 장난하는거요 ? 그 상자안에 대체 뭐가 있는지를 당신이나 알지
그걸 내가 어찌 알수있다는거요 ? ”
허나 알파고가 내세우는 가설은 ‘직접 보기전엔 아무것도 확신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외계인 이론(?)에 대입하자면 가능성은 결국 두가지다. 외계인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경우의 수가 두가지 되는 셈인데 알파고의 가설은 외계인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눈으로 직접 보거나 증명되기 전에는 ‘100% 확신하지 말라’는 것이 알파고의 과학이론인 셈인데, 여하튼 그런 지론의 선구자인 셈인 알파고가 체로키를 이렇게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 자네의 가설 역시 외계인이 존재한다는걸 입증하는 가설이 될수도 있고 없다는걸
입증하는 가설이 될수도 있어. 그러니 우리 함께 연구를 해보자는거지. 정말로 자
네 주장처럼 지적수준을 가진 고등생명체가 장기간 문명을 이루며 지속적으로 생
존할수 있는 그런 행성이 과연 (솔파행성 외에) 또 어딘가에 존재할수 있는지 ?
또 그런 행성에 정말 지적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고 두가
지 가능성은 어쨌든 모두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가 함께 그 연구를 해
보잔 말일세. ”
- 6회에 계속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