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야 넌 !!! 거기서 뭘 보고 있는건데 !!! ”
설상가상이라고까지 할 것 까진 없고 좀 공교롭다면 공교로운 상황이 하나 벌어졌다. 사실 방문 밖에서 기철의 아들 경환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중학생 아들 경환도 지금은 새엄마 선신이 뭔가 아버지 기철을 단단히 속인게 있구나 하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터다. 비록 선신은 ‘SNS에서 장난좀 친걸 아버지가 순진하게 믿으셨던 것’이라고 둘러대긴 했으나 여하튼 무슨 간호사니 간호조무사니 하는 거짓 이력을 말한적이 있고 게다가 또 고아출신이라는것도 지금까지 아버지 기철을 속여온셈 아닌가. 다만 그런게 나중에 크게 문제가 되거나 하진 않겠지 하는 생각정도만 하고 있었는데 뭔가 집안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아빠와 새엄마가 저녁약속이 있어 늦게 오신다는 것 정도는 경환이 알고 있을터. 다만 어쨌든 뜻하지 않은 돌발상황이 있어 일찍 돌아오긴 했다. 그렇다고 이른 저녁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그렇게까지 밤늦은 시간은 아닌 한 밤 9-10시쯤 귀가한 것으로 봐야 할텐데 보통 이런 저녁모임 약속때 아버지와 새엄마가 함께 외출하면 보통은 자정 가까이는 되어서 들어오곤 하셨으니 상대적으로 좀 이른 귀가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정도 되었으면 이 시간이 그렇게 밤늦은 잘시간이라고 볼수도 없다. (* 난 중학교때까지도 한 밤 10시 정도에 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공부하는 애들중엔 중학교때부터 이미 밤 12시까지 공부하더라. -.-)
여하튼 그런 시간대에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로 아버지와 젊은 새엄마가 귀가를 한 것이고 그래서 경환도 편하게 2층으로 올라가 자거나 공부를 하거나 그럴수도 없는 심리상태인지라 잠시 아빠와 새엄마의 모습을 침실 밖에서 지켜본것인데, 자연스레 선신과의 부부싸움중에 너무 속상해 방에서 나오는 기철과 그 모습이 마주친 것이다. 기철도 이런 모습을 아들이 보고있다니 더 기가막혀 그렇게 한마디 한 것이고 다만 기철은 이런 상태에서 집안에 편안히 있을수도 없고 젊은 아내 선신의 얼굴도 더 보고 싶지 않아 그래도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때까지 어정쩡하게 있던 경환이 걱정되어 선신에게 다가와보았다. 그때까지 바닥에 엎드려 울먹이고 있던 선신. 경환을 보자 그만 그를 와락 끌어안는다.
“ 경환아...우와아앙~~~!!! ”
“ 새...새엄마 왜 이러세요 ? ”
갑자기 자신을 안으며 이렇게 서글프게 대성통곡을 하는 새엄마 선신을 보니 경환도 적잖이 당황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아까 아빠와 새엄마의 싸우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신의 나이가 실제 지금껏 기철이나 경환이 인지하고 있던 나이보다 몇 살 더 어리며 경환과 불과 일곱 살차이밖에 나지 않는것도 들었을터. 이래저래 경환의 심정도 한층 더 당혹스러워진다. 한참만에 가까스로 선신을 진정시킨 경환. 그녀를 대충 침대에 앉히고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경환아... ”
“ 네, 새엄마. ”
아무래도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것만은 분명한터. 그래서 더더욱 걱정되어 선신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아까...아빠랑 나 싸우는 소리 들었던거니 ? ”
선신도 비록 정신없던 와중이지만 여하튼 경환이 방 밖에 있던 기척을 느끼지 못하진 않았을터. 그래서 이렇게 물은것이고, 경환은 경환대로 어찌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 그런 경환을 보며 선신은 어쨌든 해명은 해야할 것 같아 나름 간곡함을 담아 이와같이 말한다.
“ 경환아...믿어줘. 새엄마 진짜 나쁜사람 아니야.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속이거나 사
기를 칠 생각은 정말 없었던거고. 새엄마 꽃뱀도 사기꾼도 정말 아니야. 그러니 제
발 그건 믿어줘. ”
그렇게 애원하듯 말하는 선신. 여하튼 경환은 새엄마 선신이 ‘고아출신’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을터이고,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신처럼 엄마없이 집도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그런 아이를 한번쯤은 사랑으로 감싸안아주고 싶었노라고 그래서 더더욱 경환에게 친절하게 잘해주고 싶었노라는 고백도 이미 한 바 있다. 다만 어쨌든 고아출신인 사실을 숨겼고 간호사니 뭐니 하는 전력도 다 거짓말이었던 것이 이제야 다 들통이 났나보다 경환 입장에선 상황을 이렇게 파악할 수밖에 없다. 헌데 그 와중에서도 경환도 궁금해진게 있어 이렇게 물어보긴 한다.
“ 근데 새엄마... ”
“ 왜 ? 뭐 궁금한거라도 있어 ? ”
아직 진정이 되진 않은듯한 선신의 심리상태. 그런 가운데 경환의 물음은 이와같다.
“ 좀전에 얼핏 이야기를 들어보니까...새엄마 저랑 나이차이 일곱 살밖에 나지 않는
다면서요. ”
어쨌든 그렇게 고아원에서 나온게 고등학교 2학년때의 일. 그리고 그 뒤로 아직 4년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얼마전 기철은 세실리아와 선신이 하는 이야기를 먼발치서 우연히 엿듣다 알게된것이고 그로인한 말다툼이 있었던 것 아닌가. 어쨌든 이제 나이까지 들통난 상황이니 선신도 뭐 숨기고 말고 할 것도 더 없는 상태. 그래서 오히려 뭐 어쩌라는 것이냐는 듯 경환에겐 이렇게 나오고 있다.
“ 그래, 맞아. 본의아니게 새엄마가 나이까지 속인건 맞는데...그래 맞아. 새엄마 이
제 겨우 스물한살이고...경환이랑 아마 일곱 살차이밖에 나지 않을거야. ”
그걸 직접 확인하자 경환도 좀 놀랐는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여하튼 선신의 외모가 어느정도 앳되어 보인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선신의 나이가 실제로 그렇게까지 어릴것이란 짐작은 못했던 것이다. 헌데 실제로 스물한살이라니. 경환도 좀 황당하긴 할 것이다.
“ 근데 뭐...그게 어쨌다는건데 ? ”
“ ??? ”
“ 내가 너랑 일곱 살차이밖에 안나서 뭐 달라지는거라도 있는거야 ? 여하튼 난 새
엄마고 넌 내 아들이야. 그런데 뭐...일곱살차이밖에 안 나면 결혼이라도 할수 있
겠다는거야 ?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 ”
“ 아...아뇨 뭐 그런게 아니라... ”
아무렴 진짜로 그런 생각까지야 하겠는가. 여하튼 생각보다 나이차이가 더 덜나는 젊은 새엄마라는게 경환을 당혹스럽고 어이없게 만든것일뿐. 허나 무엇보다 이런 이상한 농담이나 주고받을 상황은 분명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선신이 다시금 정색하며 경환에게만은 자신의 진심을 전해주어야겠다는 모습으로 이와같이 나온다.
“ 경환아...새엄마는 하지만...불우하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자라난건 맞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아로 자라면서...언제부터인가 남몰래 이렇게 기도해왔어. ”
“ 어떤...기도를요 ? ”
사실 경환도 지금껏 별다른 종교쪽 영향같은 것은 미칠만한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아니기에 이런식으로 말하는 이들의 화법을 잘 이해 못할수도 있다. 여하튼 그런 경환의 손을 다시금 슬며시 잡아보며 선신의 말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 어쨌든 훗날...혹시라도 나처럼 부모없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그런 아이랑 인연
이 닿게 된다면...난 그런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으로 감싸줄수 있는 그런 영혼으로
성장시켜달라고...최소한 새엄만...나처럼 부모도 없이 어릴때부터 집도절도 없이 떠
돌아다니는...그런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진짜 싫거든. 다만 그래서 그럤던 것뿐이
야. 다른 의도는 없어. ”
사실 따지고보면 지난번 했던 이야기와 대충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긴 하다. 여하튼 진심으로 부모없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그런 불우한 사춘기나 성장기를 거치는 아이를 보는 것은 싫다고. 실은 기철과 결혼하자마자 고모네서 산다는 중학생 아들 경환을 바로 데려오자고 보챘던것도 그런 이유때문 아니던가. 덕분에 선신이 ‘고아출신’임을 들킬뻔한 아찔한 순간이기도 했지만 여하튼 선신은 경환 앞에서 이런 자신의 진심만큼은 믿어달라며 거듭 애원하고 있다.
기철은 다시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고 회사 사무실에서 자고 있었다. 어찌보면 선신이 간호학과 출신에 간호조무사 경력이 있다는 것이 전부 거짓이었음을 안 직후에 있었던 일이 다시금 반복되고 있는 셈인데 사실 기철 입장에선 무척 억울한 생각이 드는 일이 될 것이다. 기철은 지난번 그랬던것처럼 다시 회사 사무실에서 자거나 가까운 친구,동료에게 부탁 하룻밤 묵는 그런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 다만 상가집에 가서 밤을새는식의 핑계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자존심 때문에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 생각해보니 진짜 억울하지 않는가. 아니, 도대체 집주인은 난데 왜 내가 되려 집없는 떠돌이처럼 밖에 나와서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지금 당장 내 집에서 나가도 시원찮을 젊은 아내인지 꽃뱀인지 사기꾼인지 실체조차 불분명한 김선신이란 여자는 아직도 자기집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오히려 명의도 분명히 자기명의인 자기집에서 자신이 나와 밖으로 겉돈다는 것.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진짜 억울하기 짝이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보면 회사 부하직원들이든 주변 친구,지인들이든 자기 신변에 어떤 이상이 생겼음을 인지하게 될 것 아닌가. 그때문에라도 이런 일상을 장기화시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불과 며칠전에 바로 어린 아내 선신과 그런 연회장에 같이 가서 다정하고 오붓한 부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점 때문에라도 이런 자신의 부부관계가 다시금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은 기철로선 진짜 곤란한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떠돌이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하는지 그게 확실히 고민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 헌데 바로 그런 상태에서 정말 뜻밖이면서도 공교로운 전화 한통화를 기철이 받게 되었다. 다름아닌 6년전 이혼한 기철의 전처 문미영의 뜻밖의 전화를 해온 것이다.
“ 나야... ”
일단 기철의 현재 휴대폰 전화번호는 모르는지 회사 사무실로 전화를 하긴 했는데, 퇴근시간이 임박했을때쯤 전화한 것을 보면 부하직원들이 있을때쯤 이런 전화를 하는게 기철이 난처해질수도 있는 일이란 배려를 그런대로 해준 것 같다. 기철은 사적인 전화니 신경쓰지 말고 어서 퇴근들 하라고 아직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을 독촉까지 하고 그리고 미영과의 통화를 이어간다.
“ 어쩐일이야 ? ”
사실 기철이 바로 미영의 목소리를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따라서 미영이 먼저 자신을 밝히고서야 본격적인 통화는 진행되었다. 여하튼 기철로선 여간 당혹스럽지 않을수 없는 상황. 일단 미영이 자신이 전화를 한 용무를 밝힌다.
“ 나 사실 한국에 잠깐 들어왔거든. 일이 좀 있어서...그래서 가기전에 당신도 좀 한
번 보고 싶어서... ”
미영은 이혼후에 유럽에 가서 산다는 소식 정도는 기철도 들어 알고는 있었다. 헌데 그런 미영이 공적인 업무든 사적인 업무든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 그런 상황이라면 여하튼 미영도 한국에 자기 가족(부모,형제등)이나 친척도 있을것이고 친구도 있을터. 출국하기 전에 그런 친구든 지인이든 전남편이든 한번 연락이나 해보고 가고픈 것.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인지상정이긴 하다. 여하튼 기철도 여러 가지로 난감한 상황이라서 그래서 되려 기철은 만약 다른 용무가 없다면 오늘중에라도 만나줄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까지 했다. 기철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만날 용의가 있음을 밝히자 미영으로선 예상못한 일이라서인지 기철의 뜻밖의 반응에 되려 당황할 지경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저녁식사시간에 함께 자리하게 된 두 사람. 6년만의 재회니만큼 이런저런 복잡한 감회가 서린 표정으로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다.
“ 당신 재혼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
“ 알고 있다구 ? ”
그러고보면 기철이 재혼한지 두어달정도 시간이 지났고 또 주변 친구,지인,동료들도 이미 그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니 미영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들어가는게 그렇게 이상한일은 아닐터. 다만 미영은 좀 뜻밖에도 기철의 소식을 듣게된 경위를 밝힌다.
“ 형님하고 얼마전 통화해봤는데, 그때 그러더라고. 당신 재혼했다구. 그것도 젊은
여자랑... ”
이야기하는 것을 봐선 비록 이혼은 했지만 기철의 누나와는 원래 사적 친분이라도 있었던것인지 개인적 통화는 가끔 하는 사이였던 듯 하다. 그래서인지 기철이 되려 불편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 뭐하러 누나한테 자꾸 전화를 하고 그래 ? ”
“ 그렇게 자주 한것도 아냐. 그래봤자 일년에 한차례도 채 안된다. 어쨌든 한달전쯤
형님한테 통화해보니 그러더라구. 당신 재혼했다구. ”
“ 맞아... ”
한숨을 살짝 내쉬며 대꾸하는 기철. 미영의 말이 이어진다.
“ 뭐 나도 어차피 재혼한 몸이니 당신보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그래서 어때
당신 새 여자는 ? 당신한테 잘 해줘 ? ”
“ 잘해주지 뭐...우리 잘 지내니까 당신이 걱정 안해도 돼. ”
지금 기철이 무슨말을 할수 있을까. ‘잘 지낸다’는 식의 원론적 수준의 답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 기철을 보며 미영이 걱정되는 듯 입을 연다.
“ 내 말은...당신 새 여자가 경환이한테 잘 해주는지 그걸 말하는거지. ”
역시 여러 가지로 난감하기만 해서 기철은 무슨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거듭 걱정되는듯한 미영의 말이 이어진다.
“ 형님 이야기로는...경환이가 당신과 새엄마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데...안 가겠다고
보채서...애를 좀 먹었다는데... ”
어쨌든 경환 입장에선 오히려 그간 함께 살았던 고모나 고종사촌누이들과 정이 좀 들었던터일까. 되려 그 무렵 기철쪽에선 젊은 아내 선신이 기철의 아들 경환을 두고 ‘집에 이제 엄마까지 있는데 한참 공부해야하고 안정되어야 할 나이의 아이가 집없이 떠도는 것은 보기좋지 않다’며 자신이 사랑으로 감싸주고 싶다며 속히 집으로 데려오자고 보챌때인데, 여하튼 경환은 젊은 새엄마와 산다는게 아무래도 어색하고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그간 고모나 고종사촌 누나들과 든 정 때문인지 잠시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경환을 고모와 사촌누나들이 설득하는 해프닝이 좀 있기도 했다. 따라서 이래저래 미영 입장에서 더더욱 걱정이 될 터. 기철의 말만 듣고는 안심이 안 되어서일까. 미영이 이와같이 나온다.
“ 그러지말고 당신말야... ”
“ ??? ”
“ 당신 지금 새부인 내가 한번 만나보면 안될까 ? ”
“ 다...당신이 ??? ”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는 기철의 모습. 차라리 자기 아들 경환을 보고간다면 또 모를까. 대관절 자신의 젊은 새 아내 선신을 그녀가 왜 보고간단 말인가. 더더욱 그 의도를 알 수 없어 기철이 당황하는데 미영의 말은 일단 이와같이 이어진다.
“ 다른 의도가 있는건 아냐. 그리고...이미 이혼하고 남편이 재혼해서 애들 새엄마랑
살고 있는데 자꾸만 전부인이 주변에서 맴도는거...사실 나도 재혼한 몸이고 또 내
친구들중에도 솔직히 이혼한 애도 있고 새엄마가 된 처지의 친구도 있는데...사실
그런 경우 진짜 신경쓰이고 힘들게 만드는게 남편 전부인이 그것도 애들 주변에
서 자꾸 맴돌고 헷갈리게 만드는 그게 진짜 사람 기분 이상하게 만드는거라 하더
라고. 차라리 전남편을 그저 옛정 때문에 잠깐 만나는거라면 모를까...특히 아직
자아나 가치관이 다 여물지 못한 애들이 친엄마와 새엄마 사이에서 자꾸 혼란스
러워지게 만드는거...그게 진짜 못쓰는거라 하더라구. ”
그래도 생각보다 좀 경우가 있는 여자로 봐야하는 것일까. 여하튼 자신의 주변의 다른 이혼,재혼가정 사례를 보니 오히려 전남편을 만나는것보다 이미 새엄마와 살고있는 상태인 아이를 자꾸 만나면서 주변에서 맴도는 것. 그것이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 새엄마가 된 여자를 더더욱 힘들게 만들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은 애 앞에는 안 나타나고 대신 기철의 새 부인만 잠깐 만나보고 가겠다는 것. 그게 미영의 의도있듯 하다. 처음엔 기철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미영이 거듭 애원하며 설득하자 기철도 마냥 거절할수도 없었다. 그래서 미영이 이번 일요일 비행기로 떠난다고 하니 그 전날밤에라도 약속장소를 정해 선신을 잠시 만나보고 갈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결국 선신을 만나게 된 미영. 기철은 미리 선신에게 쓸데없는 소린 가급적 하지 말아달라고 입단속을 하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미영의 출국 전날인 토요일 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이다. 레스토랑이나 찻집 같은곳도 아닌 기철이 사는 집에선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한 공터. 그곳에 선신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나중에 미영이 도착했다. 피차 얼굴을 알아보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기철이 미리 선신이 입고나갈 옷차림을 미영에게 전화로 귀띰해주었고 그래서 미영이 먼저 기철이 일러준 옷차림을 하고있는 젊은 여성을 보고 선신인가 싶어 다가가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 안녕하세요 ? ”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사실 그동안 6년을 외국에서 살던 미영이었기 때문에 한국어 발음이 많이 서툴러지긴 했다. 그래도 기철과 대화할때는 한때나마 아이도 낳고 몇넌을 함께산 부부라서인지 의사소통이 그리 어렵진 않았는데, 긴장한 탓이라 그런 심리까지 겹쳐져 웬지 제대로 발음이 잘 나오지 않고있는 미영. 하마터면 선신이 미영이 하는말을 잘 못알아들을뻔하기까지 했다. 여하튼 어렵사리 미영의 말이 이어진다.
“ 어떤분인지 궁금해서 한번 뵙고 가고 싶었던거에요. 제가 너무 당혹스럽게 하거나
한건 아니죠 ? ”
여하튼 그런대로 예의는 있는 편인듯한 미영의 모습. 미영의 이와같은 태도에 선신이 오히려 당치 않다는 듯 나온다.
“ 아니에요. 저도 어쨌든 경환이를 직접 낳아주신 친어머니라면 언젠가 한번은 만
나 뵈어야 하는가 그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
그러고보면 생각보다 예의있게 두 사람의 대화는 잘 진행되는 편인 것 같다. 미영의 말이 이어진다.
“ 듣기로 나이가 젊은분이라 했던 것 같은데... ”
다른건 몰라도 기철의 작은누나와 이따금 전화통화 정도는 하는 사이로 기철이 젊은 여자와 재혼했다는것까진 들어 알고있는터. 그리고 막상 만나보니 자신이 상상했던것보다도 훨씬 앳되어보여서일까. 미영 입장에선 당혹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될수도 있는 순간. 한편 선신은 선신대로 좀 고민스러워진다. 여하튼 지금까지 기철을 속였던 거짓신분은 이제 다 들통난터. 게다가 바로 그 점을 걱정했음인지 이미 기철로부터 ‘전처 미영을 만나 괜히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입단속까지 받은 상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미영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세상을 속여온 거짓신분을 밝혀야하는지 아니면 진실을 말해야하는지 그 조차 혼란스러워지는데 그런 선신을 보며 일단 미영의 말은 이어진다.
“ 경환이한테 제가...좋은 기억은 별로 없을거에요. 저 솔직히 젊은시절에...허영기
도 많고...좀 빨리 출세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그랬거든요... ”
“ ...... ”
“ 한참 엄마손 타며 자랄 나이에 그래서 애한테는 좀 소홀했던 편이죠. 그래서 지
금와서 새삼 지난일을 후회하고 있기도 하지만... ”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이혼하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기철과 비슷한 연배라면 그녀도 나이 40대 중반일텐데 그런 미영에게도 이 나이에 이르러 후회하는 젊은시절 자신의 모습 같은것들이 있나보다. 그래서인가. 아들 경환에 대한 미안함까지 섞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미영. 회한의 눈물같은게 서린다.
“ 아, 참 그러고보니 여태 이름도 제대로 못 물어봤네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 ”
“ 김선신...이에요. ”
다른건 몰라도 이름만큼은 거짓을 말한적도 없고 그래야할 이유도 없는지라 정직하게 답하고 있는 선신. 미영이 그 이름을 한번 되뇌어본다.
“ 김...선...신... ”
선신이 괜시리 긴장한 모습으로 미영을 바라보는 가운데 미영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제가 경환이를 직접 만나보지 않고 김선신씨만 보고가는 이유가 사실 경환이를 공
연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어쨌거나 이혼한 몸으로...게다가 자
기 아버지가 재혼해서 새엄마까지 생긴판에...자꾸 친엄마가 근처에서 맴돌며 한참
공부하며 자아와 가치관이 성장해가야할 그런 나이에 혼란스럽게 만드는거...그거
진짜 보기 안 좋더라구요. ”
기철에게도 이미 그와같은 말을 한 바 있는 미영. 확실히 미영은 그런 사례를 간접적으로나마 주위에서 지켜보거나 들은것들이 있는것인지. 미영을 바라보며 선신의 말이 이어진다.
“ 제가...많이 부족하고 나이도 어리지만... ”
“ ...... ”
“ 사실 저도 고아로 자라고 많이 힘들게 자란 몸이라...엄마없이 결손가정에서 자라
는 그런 아이에 대한 측은지심은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엄마없이 자란 경환이
에 대해 사랑으로 잘 감싸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
그러고보니 ‘고아출신’이란 사실을 미영에게도 사실대로 밝히고 있는셈인 선신. 따지고보면 의붓아들 경환에게도 그런 자신의 출신은 사실대로 먼저 고백했던 셈인데, 그럴거면 뭐하러 굳이 남편 기철에게만 사실대로 밝히지 않고 지금까지 시간을 끌어왔나 그 생각이 다 들 지경인 순간이기도 하다. 여하튼 고아출신이든 뭐든 미영으로선 기철의 재혼한 상대인 선신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젊은여성이라는 이야기 정도를 제외하곤 지금껏 없었을테니 조금 뜻밖이고 놀랐다는 눈으로 선신을 다시금 위아래로 훑어본다.
“ 고아...출신이라구요 ? ”
“ 네, 그래서 뭐...어릴땐 많이 힘들고 어렵게 자라긴 했지만...그래서 오히려 저처럼
부모없이 혼자 자라거나 하는 아이를...불쌍해서라도 사랑으로 잘 감싸주고 싶다는
그 정도의 생각은 하고 있어요. ”
허나 미영은 잠시 한숨을 내쉰다. 선신의 진심이 어찌되었든 경환을 두고 ‘엄마없이 자란 불쌍한 아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 책임은 결국 자신이 되는 것 아닌가. 공연히 다시금 눈물이 고이는듯한 미영. 선신의 손을 한번 살짝 잡아보더니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지금와서 제가 공연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거나 하진 않을께요. 선
신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진심을 믿어보겠다구요. 경환이를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을테니 경환이를 잘 부탁해요. ”
젊은시절엔 출세 야망도 있었고 허영기도 있어서 오히려 자기 아이이건만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자책도 하던 미영이 아니던가. 다시금 지난시절의 회한이 밀려들어서인지 눈물과 한숨이 뒤섞이고 있다. 그러면서 미영에게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 저도 어차피 한국 그렇게 자주 들어올일은 없어요. 유럽에서 한국까지가 무슨 옆
집도 아니고...지금 같이사는 남편 하는일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많이 바쁜 몸이
거든요. 어쩌면 한 10년 이내든 20년 이내든 한국 들어올일은 거의 없을수도 있어
요. 그래서 오히려 유럽으로 돌아가기전에 한번...그렇다고 경환이를 직접 만나보긴
그러니...경환이 새엄마라도 한번 만나보고 가야겠다 그 생각을 했던거고요. ”
어쨌든 이미 자신도 재혼한 상태임을 밝힌 미영. 그리고 진심인 듯 이와같이 말하고 있다. 긴장헀던 선신의 표정도 다시 풀리는 듯 한데 미영은 경환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미영이 저만치 시야에서 멀어져가자 선신이 한숨을 내쉰다.
“ 미쳤어 ? 이렇게 자꾸 전화를 하면 어떻게 해 ? ”
한편 기철은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 출국한다는 전처 미영의 전화를 다시금 받았다. 아직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있는 몸이라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기철은 그래서 더더욱 당혹스럽고 그런 기철을 보며 미영이 말한다.
“ 놀라기는...어쨌든 출국하기전에 잠깐 인사나 하려고 전화한거지. 누가 뭐 지금와
서 뭘 어쩌겠대 ? ”
“ 어...어제 집사람은 잘 만났어 ? ”
“ 집사람 ? ”
전남편으로부터 그것도 지금 함께살고 있는 재혼상대를 두고 하는 호칭을 이와같이 들으니 진짜 기분이 묘하다. 그렇다고 지금 뭘 어쩌자고 전화한 것이 미영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일단 한번 씁쓸히 미소지어보이고는 이렇게 말한다.
“ 어제 선신씨...이름이 김선신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당신 그 젊은 새부인...직접 만
나보니 괜찮은 것 같더라. ”
사실 기철은 지금 선신과의 관계가 심상찮음이 들키면 정말 곤란하기에 그야말로 진땀이 날 지경이다. 적당히 미영과의 통화가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램일뿐인데 오히려 미영이 여유있는 말투로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눈빛이 참 선해보이는 것 같더라구. ”
“ 그건 또 갑자기 무슨소리야 ? ”
“ 눈빛이 선한 여자는 나쁜짓을 안한다고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구. 헌데 직접 김선
신씨를 만나보니 눈빛이 참 선해보인다는 그 느낌을 받았어. 최소한 우리 경환이
어떻게 할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
“ 그...그럼...최소한 쓸데없이 허영기만 많았던 당신보다야 훨씬 낫지. 지금 우리 선
신이가... ”
“ 칫~~!!! ”
그렇다고 전처인 자신 앞에서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하는걸까. 어이없어서 피식 헛웃음을 터트린 미영. 여하튼 쓸데없는 소리로 시간을 길게끌 일은 아닌지라 미영이 이 정도로 통화를 마무리하려든다.
“ 여하튼 경환이 잘 부탁한다고 전해드려. 김선신씨의 그 선한 눈빛만 믿고 떠나는
거니까. 그럼 나 이제 진짜 갈게. 잘있어 여보. ”
무슨 의도인지 ‘여보’란 호칭을 괜시리 한번 붙여본 미영. 사실 실제로 곧 출국장으로 향해야하는 미영이기에 어차피 긴 통화는 곤란한게 마찬가지인 처지긴 하다. 미영은 통화를 마무리한뒤 여유있는 표정으로 유유자적 출국장을 나서고 통화를 마무리한 기철은 일요일인데도 머물러있는 화사 사무실에서 그저 진땀만을 흘리고 있다.
-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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