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후.
아침에 기철이 출근준비를 서두르고 있고 선신이 그런 기철을 옆에서 거들고 있다. 잠시후 기철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서는 선신. 헌데 뭔가 잊은게 있기라도 한 듯 기철이 선신에게 말을 건넨다.
“ 아, 참 그리고말이지... ”
“ 네, 여보. ”
이제 결혼을 한지 몇 달정도 지나서인지 선신도 어느덧 ‘여보’라는 호칭이 익숙해져가고 있긴 한데 여하튼 그런 상황에서 기철의 말이 이어진다.
“ 그...옷 좀 세련된걸로...그래도 너무 야하거나 화려하면 곤란하고 좀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럽고 품격있는 그런 분위기의 옷으로 좀 몇벌 구하던가 그렇게 해봐요. ”
“ 당신옷을요 ? ”
기철의 말뜻을 잘 이해못했는지 선신이 그와같이 묻고 그러자 기철이 나무라듯 한마디 한다.
“ 누가 내 옷을 말했나. 당신 입을옷이 좀 필요하다 그 말을 하는게지. ”
“ ??? ”
아직 기철의 말을 이해 못하는 듯 어리둥절하기만 한 선신. 기철이 그런 아내를 보며 말을 이어간다.
“ 지난번 OO회장님 칠순잔치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했을 때, 당신 옷차림이 너무 낡
아보여서 사실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줄 아나. 뭐...덕분에 나이어란 당신이 참...소
박하고 검소한 여자다...그런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긴 했지만...여하튼 그런 자리
에 참석할때는 그래도 잘 나가는 중소업체인 OO실업 최기철 사장의 부인으로서 어
울리는 품격도 좀 필요하단 말이오. 여하튼 그런 자리에 나가는데 어울릴만한 옷좀
몇벌 구해놓도록. 아니, 그럴게 아니라 이번 주말에 시간내서 당신 옷 몇벌 구입할
겸 백화점에라도 같이 갑시다. ”
“ 무슨...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할 사람이 필요해서 저랑 결혼하신거에요 ? ”
살짝 볼멘소리를 하는 선신. 사실 사업을 하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종종 부부동반으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 기철과 함께 하긴 했던 선신이긴 하지만 솔직히 나이어린 선신 입장에선 다들 나이많은 어른들이고 또 여하튼 사회적으로 그만한 지위나 위치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라니 선신 입장에선 더더욱 불편하고 어려운면도 있었다. 솔직히 그런 모임이나 행사장 같은데 나가는게 지금까지 경험도 없고 그래서 더더욱 불편하고 어려웠던 선신. 게다가 선신은 여자로선 드물게 백화점 쇼핑이나 이런 것을 그리 즐겨하는 성격도 아니라 기철의 이런식으로까지 나오는 모습이 오히려 한층 더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아내가 이와같이 나오자 기철이 달래듯 한마디 한다.
“ 어쨌든...그런 자리에 나갈 때...좀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의 의상을 입는게 좋기에
하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고...오히려 당신도 그런 자리에 자주 나가고 하는게 당
신을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이란 말이오. 아닌말로 당신은 내가 당신을 늘 집에 틀
어박혀있게만 해놓고 허구헌날 밖으로만 나돌면...그건 좋겠나 ? ”
“ 누가 뭐 그렇대요 ? ”
어쩄거나 나이어린 선신이 스무살이나 많은 애딸린 이혼남인 기철을 선택했을때는 경제적인 의지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세상일이 다 명암이 존재하고 일장일단이 있음을 이제사 느끼게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잘 사는 중소기업가와 결혼하고보면 그만큼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선신. 어차피 기철은 출근시간이니 아내와 길게 이야기를 하거나 할 시간은 없다. 잠시후 기철이 차고안의 차를 움직이기 시작하고 잠시후 기철의 자동차가 저만치 멀어져가긴 하지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선신의 표정이 오늘따라 그리 밝아보이지가 않는다. 일단 대충 표정을 풀고 무덤덤하게 집안으로 들어가는 선신. 살짝 한숨을 내쉰다.
그러던 어느날. 한밤중에 선신이 집은 아니고 거리가 다소 떨어진 어떤 술집 같은데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대충 주류와 음식등을 파는 그런 음식점 같긴 한데, 오늘따라 좀 유별나게 그런곳까지 나와서 술잔을 기울이는 선신. 차라리 이게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는 집에서보다 편하고 부담이 없어서일까.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선신. 좀 횡설수설 내뱉기까지 한다.
“ 어차피 내가 한 선택이야...후회 없다구... ”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혼자 지껄이는 선신. 술집에 다른 손님들도 좀 놀라고 의아해 흘깃 바라볼 지경인데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선신의 횡설수설은 좀 더 이어지고 있다.
“ 나 어쨌든 후회안해...그리고 날더러 뭐라고 하지 말라구...니들도 나같은 처지였어
봐. 나처럼 살았어봐. 차라리 이런 선택이라도 하고 말지...나한테 무슨 다른 방법
다른 대안이 있기나 했었겠냔말야...대안...대안...무슨 다른 방도가 있기나 했을 것
같냐구...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것인지 그리고 누가 들으라고 하는것인지. 여하튼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소리만 계속 지껄이고 있는 선신 그녀의 술주정은 좀 더 이어진다.
“ 새X들...그렇다고 니들이 뭐 나한테 도와준적이 있기나 하냐. 나한테 뭐 보태준거
있기나 하냐구 !!! 나 힘들 때 한번 도와준적도 없는것들이...취직한번 시켜준적 없
는것들이 까불고 있어...니들이 언제 나 취직이나 한번 제대로 시켜줘봤냐 !!! 아니
면 월세방 월세값인들 한번 보태줘본적이 있냐 !!! 생전 도와줘본적도 없이 헛소리
만 한 것들이 꼭 이 지X들이라니까... ”
대관절 무슨 소린지는 둘째치고라도 선신이 이렇게 욕을 잘하는 여자였나 하는 생각도 드는 한 장면이다. 그러고보면 술도 이렇게 잘하는 여자였는지 우려스럽기도 하고. 다만 너무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무리 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여자혼자 이런데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위험하다면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그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신. 카운터에 돈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온다. 그래도 그 정도의 정신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아주 인사불성인 정도는 아닌 듯. 비틀거리며 걸어서 10여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잠시후 집안으로 들어선 선신. 출입문을 제대로 못 찾아서일까. 뭔가 더듬거리고 있다.
“ 으음...이건 뭐지 ? 내 집에 이런게 있었나 ? 어떤게 내가 들어가는 문인거야 ?
”
선신이 이전에 어떤 집에서 살았었는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녀가 기철과 결혼한지도 이제 한 두어달 정도가 지났다. 따라서 2층짜리 기철의 단독주택에 대문에서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어야 거실로 들어갈수가 있는 집구조에 여태 익숙해지지도 않은것인지 헤매고 있는 선신. 그나마 다행히 이때 1층에 내려와있던 경환이 걱정되는 듯 나와서 선신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아마 아버지가 오늘 일 때문에 늦으시는데 새엄마까지 외출을 한 상태라 걱정되어서 잠시 1층으로 내려와본 듯 하다. 경환의 부축을 받으며 1층 거실로 들어설수 있었던 선신. 경환이 선신의 구두를 벗겨 현관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선신을 가까스로 침실에 데려다놓는데 침대에 그대로 풀썩 쓰러진 선신. 경환이 말없이 그런 선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하루는 주말 저녁시간에 기철이 선신과 함께 TV를 시청하고 있다. 사실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말극이나 일일극 따위를 챙겨보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편인데 기철은 그래도 주말극 정도는 그런대로 즐기는 그런 취향에 속한다. 물론 사업을 하느라 늘 바쁜 기철이다보니 평일엔 저녁시간대에 방영되는 일일극을 일부러 챙겨볼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편은 아니지만 주말엔 가끔 시간 있을 때 주말극 정도는 챙겨보는 그런 사람이라고나 할까. 기철은 특히 출생의 비밀 같은게 담긴 막장형 복수극이나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여자주인공이 부잣집 아들을 만나 잘 되는 그런유형의 스토리를 즐기는 편이다.
마침 근래에는 한 방송사 주말극으로 고졸출신의 간호조무사인 여자 주인공이 재벌가 3대독자를 만나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그런 스토리가 방영중에 있었다. 헌데 그러고보면 기철의 아내 선신도 간호조무사로 3년동안 일했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A여대 간호학과를 나왔다는 것은 거짓임이 들통나고 말았지만 여하튼 간호조무사 경력이 있는것만은 아직 의심하지 않고있는듯한 모습의 기철. 다만 선신이 생각보다 학력이나 전력같은데 콤플렉스도 많고 또 어떤 말못할 사연 같은게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굳이 그녀의 전력문제를 더 이상 추궁하거나 하진 않았었다. 간호조무사 출신이든 아니든 자신이 스무살 연하의 젊은 새아내 김선신과 행복하게 잘 살기만 하면 그만아닌가. 대충 그런 생각중에 있다고나 할까. 헌데 그런 상황에서 하필 공교롭게도 고졸의 간호조무사가 주인공으로 설정된 그런 드라마가 주말에 방영되고 있다니. 기철 자신도 그렇거니와 혹시 아내 선신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 살짝 그녀의 눈치도 보는중이다. 일단 드라마를 한참 시청하다 문득 궁금한게 생겨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 간호조무사가 주사를 놓을수 있나 ? ”
마침 드라마에서 바로 그와같은 간호조무사 출신 주인공이 극중에서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어 의아해진 기철이 선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순간 선신이 화들짝 놀라 이렇게 답한다.
“ 아...아뇨. 못 놓을걸요. ”
“ 지금 저 드라마에선...주인공이 간호조무사라면서 그냥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있
잖아. 그럼 저 드라마가 잘못 묘사하고 있는건가 ? ”
사실 웬만한 드라마 작가나 영화감독들중에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구분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실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와같은 설정에 오류가 종종 있는듯한데(* 자세한 것은 나무위키 자료 참조 ^^;;) 사실 지금 기철이 보고있는 드라마도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엔 간호사 혹은 간호학과 출신임을 주장하는 몇몇 네티즌이 극중 간호조무사 설정이 잘못되어 있다며 항의글이 종종 올라오곤 하는중이다. 다만 기철이나 선신은 일부러 해당드라마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챙겨보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지라 그런일까진 잘 모르고 있고, 여하튼 기철은 기철대로 드라마를 보다 문득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차이가 궁금해져 간호조무사로 3년을 일했다는 아내에게 이렇게 물은 것이다.
“ 그...정확히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어떻게 틀린거야 ? 당신은 어쨌든 알거아냐 ?
”
“ 그...그게 그러니까...간호사 옆에서 일종의 보조업무를 하는거죠 뭐... ”
“ 그래 ? 구체적으로 어떤 보조업무를 하게되는데 ? ”
추궁을 한다기보단 그저 해당직업에 대해 잘 모르는 평범한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물어본 수준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아내가 간호조무사 출신인건 의심하지 않고 있기에 순수하게 나온 질문. 허나 선신이 진땀을 흘리며 답한다.
“ 그게 그러니까...뭐...청소...빨래 대충 그런 작업이겠죠. ”
“ 청소 ? 빨래 ? ”
“ 그러니까...아휴, 병원에도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런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가령 환
자복이나 환자가 쓰는 침대 이불,시트같은것도 그렇고 또...이런저런 의료도구라던
가 그런것들... ”
“ 그래 ? 그럼 그런건 다 깨끗하게 소독하고 그래야할거아냐 ? 어쨌든 환자가 쓰는
거고...또 감염문제도 철저하게 예방을 해야하니까... ”
“ 그...그렇죠 뭐...
“ 그래 ? 그럼...환자들에게 식사 날라다주는것도 간호조무사들이 하는건가 ? ”
사실 기철은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수준에 불과하다. 허나 순간 선신은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정말 무슨일이 잘못 꼬여도 이렇게 복잡하게 꼬일수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이다. 결국 선신은 이렇게 자백을 하고야만다.
“ 아저씨...잘못했어요. ”
결국 무릎꿇고 싹싹 비는수밖에 없게된 선신. 게다가 어느덧 ‘여보,당신’같은 호칭도 이제 익숙해져가고 있건만 결혼전과 신혼때 기철에게 불렀던 ‘아저씨’란 호칭까지 쓰고 있다. 순간 놀라는 기철. 허나 선신은 울며불며 이렇게 말한다.
“ 저...사실은 간호조무사 출신 아니에요. 간호학과를 나왔다는것도 간호조무사였다
는것도 다 거짓말이었어요. ”
“ 아니...뭐라구 ? ”
하필이면 간호조무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방영중인 상황이라 그로인해 선신의 지금껏 해온 거짓말이 들통날 지경인 실로 공교로운 상황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차이에 대해서까지 묻는 남편 기철이다보니 모든 것을 자백할 수밖에 없게된 선신의 처지. 그저 울며불며 이렇게 애원할뿐이다.
“ 아저씨...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엉엉엉엉~~~!!! 처음부터 아저씨를 속일생각은
아니었는데...어쩌다 그만 일이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어요. 사실 저 간호사고 간호
조무사고...그런게 어떤 직업인지 구체적으로 잘 몰라요. 간호조무사 출신 아니에요
아저씨. 엉엉엉엉~~~!!! ”
기철은 기가막혀 말이 안 나오고 있다. 솔직히 얼마전 친구 차민호의 내외를 초대했을 때 그때 하필 민호의 아내가 다름아닌 바로 지금까지 아내가 자신이 졸업한 학교라고 주장해온 A여대 간호학과 교수로 10년을 재직했던 여인이라 결국 들통나고만 학력과 관련된 선신의 거짓말.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기철은 어쨌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학력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사회가 되다보니 SNS를 하든 뭘 하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적당히 허세를 부린 그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감싸주려 했었다. 허나 학력은 허위였을지언정 간호조무사로 3년을 일했었다는 것만은 거짓말이 아닐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그마저도 거짓이라니. - 사실 기철 입장에선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진 부분이기도 했다. A여대 간호학과를 나왔다는 말은 거짓말이라 치더라도 간호조무사란 직업도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나와야 할 수 있는 직업인지 아니면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간호조무사를 교육하는 무슨 간호대학이나 간호학원같은(* 얼핏 그런 명칭정도를 들어본 기억인 있을터이니) 별도의 교육기관이 따로 있는것인지. 허나 어쨌거나 아내가 불편해할까봐 여하튼 간호조무사 출신이라는 아내의 전력만은 믿어 의심치않고 그냥 넘어가준것인데, 이제와서 그것도 거짓말이라는 것 아닌가. 기철은 기가막힐 지경이다.
“ 아니, 도대체...너 그럼 어디까지가 진실인거야 ? 아니 도대체가...A여대 간호학과
를 나왔다는것도 거짓말...게다가 그러니까 간호조무사로 3년을 일했다는 경력도
전부 거짓말이라는 소리잖아 !!! ”
“ 아니에요. 저 간호조무사고 뭐고 그런거 일한적 없어요. 전부 거짓말이었어요. 용
서해주세요 아저씨. 엉엉엉엉~~~!!! ”
무릎꿇고 울면서 거듭 사죄의 말을 올리고 있는 선신. 어차피 지금 온전히 TV나 시청하고 있을 정신머리는 아니니 TV는 꺼버리고 그리고 아내 선신을 일단 소파에 바로 앉으라고 권한뒤 그리고는 그녀의 양 팔을 붙잡고 선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미 지금까지 기철을 속여온 거짓말들이 있으니 선신은 차마 고개를 똑바로 쳐들지도 못하고 기철은 진짜 선신의 뺨이라도 한데 세차게 후려치고 싶은 심정을 꾹 눌러 참고있는중이다. (* 솔직히 80-90년대 정도의 드라마,영화라면 흔하게 나올 장면이긴 하나 요즘은 그마저도 큰일날 노릇이다.)
“ 너 도대체...어디까지가 니 진실인거냐 ? ”
“ 죄송해요 아저씨. ”
“ 지금 죄송하다고 끝날일이 아니잖아 이게 !!! ”
버럭 소리를 지르는 기철. 사실 이 정도만 되었어도 이미 적당히 넘어갈일이 아니다. A여대 간호학과를 나왔다는 학력도 거짓말, 게다가 간호조무사로 3년 일했다는 전력도 거짓말. 그러고보면 학력도 직업(전력)도 모두 속인 그런 여자가 김선신이 아니던가. 게다가 기철과 선신의 첫 인연이 SNS를 통해서였음을 감안하면 진짜 심각한 문제다. 확실히 요즘은 90년대 pc통신 동호회 같은 낭만적인 ‘온라인 로맨스’를 기대할수 있는 시대가 분명 아니다. 되려 무슨 대단한 학력이나 배경,가문 것이 있다며 허위로 신분을 속여 오히려 돈많은 남자들의 금품을 갈취하거나 하는 그런 ‘인터넷 사기극’을 벌이는 꽃뱀들의 이야기. 기철도 익히 들어왔다. 헌데 학력도 속이고 전력도 속이고 스무살이나 많은 이혼남인 기철에게 이런식으로 접근했다면 누가봐도 딱 그런 사례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기철은 순간 ‘아차 !’ 싶어서 불현 듯 떠오르는 문제가 있어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일이 아니라는 듯 선신에게 따진다.
“ 너 똑바로 말해라 !!! ”
“ 뭐...뭐를요 ? ”
아직 기철의 의도를 이해 못하는것일까. 일단 의아하게 묻고있는 선신. 기철의 추궁이 이어진다.
“ 너...아버지가 케이블회사 사장이라는거...혹시 그것도 거짓말이냐구 ? ”
“ 아...아저씨... ”
“ 아버지는 케이블회사 사장에...친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이후 고등학교 수학선생이라
는 큰어머니(아버지의 본부인)에 의해 거두어져 이복오빠 세명과 함께 살았고...혹시
그것도 다 거짓말이냐구 ? 너 아버지가 케이블회사 사장이고 큰어머니가 고등학교
수학선생이라는 그것도 다 거짓말이었던거야 ? 내 눈 보고 똑바로 말해. 혹시 니
가정사에 대해서도 전부 뻥쳤던거 아니냐구 !!! ”
1980년대에 나이많은 강남 아줌마들은 종종 이런소리를 했다. ‘여자애가 직장에서 성차별 안 받고 적당히 한 몇 년 돈 좀 벌다가 시집보내게 할 수 있는 직업’이 ‘간호사,교사 그리고 방송작가’라고. 꼭 그런 1980년대 구시대 아줌마들의 의식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에서 간호사 정도되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면 사회에서든 또는 SNS같은 온라인 공간에서든 그런대로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을수 있는 그만한 직업군으로 판단을 한 것인지. 어쨌든 명문여대 간호학과를 나와 ‘간호조무사’로 3년간 재직했다는 ‘거짓 학력과 이력’을 그대로 간직한채 최기철과 결혼한 김선신. 헌데 그러고보니 전형적인 SNS 꽃뱀과 하나 다를바 없는 그런 모습이 된 것이다. 허니 기철이 아주 머리가 나쁘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선신의 아버지 직업이나 가정사도 어쩌면 전부 거짓말일수도 있다는 의심.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듭 매섭게 추궁하는 기철. 허나 선신은 어찌된 영문인지 답을 하지 않고 있다.
“ 어서 똑바로 말하지 못해 !!! 니 아버지가 케이블 회사 사장이고 무슨...그 숨겨
진 사생아니 어쩌니...그거 사실이야 거짓말야 ? 어서 똑바로 말하지 못해 ? ”
그러나 어떤 마지막 자존심 같은것이라도 생긴것일까. 아니면 그와같은 가정사의 사연이 100% 사실은 아니더라도 단 몇퍼센트라도 진실에 가까운 그 어떤 사연이 실제로 있는것일까. 여전히 무슨말도 하지 않고있는 선신. 기철은 선신을 한번 노려보다 한숨을 내쉰후 다시 입을 연다.
“ 아버지 직업이 케이블방송 사장이라 치고...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자야 ? 그거라도
말해봐. ”
“ 내가 알기론 케이블 회사 사업이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거든. 가령 우리가 흔히 아
는 무슨 엠넷이니 드라마넷이니 그런 방송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하거나 송출하는
그런 케이블이 있고 각 지역에서 케이블방송을 송출하는 지역 케이블 사업이 있어.
그러니 구체적으로 둘중 어느쪽인지 그거라도 말해봐. ”
여하튼 지역 케이블 위주로든 방송사업자 위주로든 적어도 100여곳은 넘을 케이블 사업자. 어떻게보면 전경련에 가입해있는 대기업 숫자보다도 많은것인데, 과연 선신은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들킬염려가 없을것이라는 생각에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치밀한 계산까진 하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그와같은 거짓말을 꾸며낸것인지.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구체적으로 이런식으로 탐문해볼 생각인듯한 기철. 그의 말이 이어진다.
“ 행여...무슨 아버지와의 그간 관계가 어쨌느니...가족과 연끊고 살아왔느니...이런식
으로 어물쩡 넘어갈 생각은 하지마라. 자녀 입장에서 부모 직업에 대해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쉽게 알아낼수 있는 정보야.(* 가령 아버지가 대기업에서 근무하셨다면
구체적으로 어느부서나 어느직책에 계셨는지는 누구나 쉽게 알수있는 것 아닌가.)
사생아든 뭐든 그런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안이란말이지. 그러니 어서 똑
바로 말해. ”
허나 여전히 답이 없는 선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것인지 도무지 그 속을 짐작하기 어려울판인데, 선신이 이런식으로 나오자 기철도 그녀에게서 정직한 대답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포기한걸까. 다시금 한숨을 내쉰뒤 말을 이어간다.
“ 됐다. 그만두자. 차라리 내가 직접 알아보는게 낫겠지. 어쩌면 그게 니X한테서 정
직한 답을 듣는것보다 더 빠른 길일지도 모르겠지. ”
“ 아...아저씨... ”
기철이 이런식으로까지 나오자 선신은 더 겁에질려 이와같이 기철을 부르고, 허나 그런 상황속에서도 기철이 정말 작심하고 나오는 기세임에도 정직한 자백은 하지 않고있는 선신의 모습. 솔직히 진짜 이해가 안 가는 태도이긴 하다. 일단 기철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부인이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고 그리고 아들이 세명이라...뭐 그 외 숨겨진 딸이
하나 더 있든 어쨌든...그걸 일부러 공개하고 다닐만한 사람은 케이블 사장이 아니
라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그런식으로 알아보면 되겠
군. 케이블 회사 사장이고 부인은 고등학교 수학선생...그리고 아들이 셋인데...나
이가 한 서른 안팎이라 치면 그 아버지라는 사장은 지금 나이 60 정도는 된 그 정
도가 되어야 나이가 맞겠군. ”
“ 아...아저씨... ”
이복동생이든 숨겨진 딸이든 여하튼 20대 중반의 선신이 막내라고 가정할 경우 여하튼 위의 세명의 오빠 나이가 그 정도 나이일 것 아닌가. 그러나 대략 나이 60 전후(혹은 그보다 더 많을수 있는) 그리고 부인이 고등학교 수학선생(전직이 되었든 현직이 되었든) 이런식으로 한번 그런 가족관계가 있는 케이블 방송사 사장이 있는지 여부를 한번 알아볼 기세인 최기철. 헌데 이쯤되면 차라리 진짜 스스로 자백을 하는게 나을텐데, 아니 이미 기철도 사실상 아버지가 케이블 회사 사장이고 친어머니는 중학교때 돌아가셨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란 이는 그 케이블회사 사장의 본부인이란 소리고) 그 말이 정직한 말이 아닐것이라 확신하고 있는듯한데. 그럼에도 선신은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철로선 이런 선신의 태도에 더더욱 절망스러워질 지경인데,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궁금한거나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는 생각에 기철이 다시 선신에게 묻는다.
“ 참, 그러고보니 너 진짜 나이는 어떻게 되냐 ? 아니, 그보다 대학을 졸업한건 맞
는거야 ? 아니면 전문대나 고졸이거나 그렇거나 ? ”
20대 중반이란 나이 자채가 4년제 대학을 나오고 간호조무사로 3년을 일했다니 그 가정하에 계산을 해보고는 자연스레 나온 나이. 헌데 대졸이든 아니든 일단 A여대 출신이라는 것은 거짓말이고 간호조무사 출신도 아니다. 그렇다면 선신의 나이도 나이지만 그녀의 진짜 전력이 무엇인지 그것도 제대로 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실제 기철은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김선신이란 여자의 학력은 물론 출신과 전력까지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처음부터 확인해볼 생각으로 이렇게 나온다.
“ 그것부터 말해봐. 뭐 학력 콤플렉스때문에 그동안 학력을 속여왔다 하더라도...나
도 거기까진 대충 이해해줄 아량은 있으니까. 고졸야, 대졸야. 그것부터 확실하게
말해. ”
“ 아저씨... ”
마치 ‘너무한 것 아니냐 ?’는듯한 원망의 눈빛으로 선신은 기철을 바라보고 있다. 허나 그게 정말 선신의 진심이라면 기철로선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을 것이다. 기철 입장에서 그야말로 ‘사기결혼’을 당한것이고 혹시 정말 자신의 돈이나 재산을 노리고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한 SNS 꽃뱀이 아닌지 그것부터 확인을 해봐야할판인데 학력문제를 추궁하는것에서부터 이미 선신은 입을 다문채 좀처럼 답을 할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오히려 원망의 의미가 담긴듯한 야속한 눈물마저 하염없이 흘리는 선신. 기철은 진짜 이런 선신의 태도에 더 화가나 진짜 어디 한 대 발길로 뻥 차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인다. 나이 40대 중반에 행여 젊은 아내를 폭행한 그런 무지막지하고 못된 남편으로 세상에 알려지는게 싫어 참고있을뿐, 정말 극한의 인내심으로 기철은 그 충동을 참아내고 있는중이다.
“ 고졸이든 대졸이든...어쨌든 그럼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어 ? 간호조무사는 아니더
라도...뭐 어쨌든 먹고살기 위해 하는일은 있었을거 아냐 ? 도대체 학교 졸업하고
지금까지 무슨일을 하며 살았냐구 !!! ”
“ 아저씨 !!! ”
“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해결될일이 아니잖아 지금 !!! ”
선신은 정말 마지막 어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기철을 부르지만 설사 그런 심정이라도 기철은 선신의 그 마지막 희망의 동아줄마저 걷어차버릴 기세다. 정말이지 사기결혼으로 당장 고소라도 해버리고 싶은 것이 지금 기철의 심정. 더욱 선신의 정체가 의심되어 이와같이 추궁한다.
“ 아니면 진짜 학교 졸업하고 지금까지 이런 SNS 꽃뱀 노릇을 하며...돈많고 나이
많은 남자들 등처먹고 살았던거야 ? 응 ? 무슨 A여대 간호학과를 나왔네...간호사
나 간호조무사 출신이네...그런 허위학력에 전력까지 만들어서...게다가 아버지가 돈
많은 케이블회사 사장이네...그런 사기까지 쳐가면서 ? 그러고 살아왔던거야 ? ”
“ 아니에요 아저씨 !!! 저 정말 그런 여자 아니에요. 다른건 몰라도 절 그런여자로
보시면 저 정말 억울해요 !!! 저 SNS 꽃뱀 아니에요 아저씨 !!! ”
다른건 몰라도 그런식으로 오해받는 것은 진짜 억울해서인지 발끈하는 선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쥔채 다시 한바탕 울음까지 터트린다. 허나 아무리 그런다고 기철에게 지금와서 선신을 동정하거나 하는 그런 마음이 생길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내가 정말 순진한척 온갖 내숭을 떨며 나한테 접근하는 그런 나이어린 꽃뱀한테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 속이터질 지경. 울고있는 선신을 기철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 아저씨...저 정말 그런여자 아니에요. SNS 꽃뱀 아니란말이에요 아저씨 !!! 그냥
자존심 때문에...SNS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네티즌들한테 무시당하는게 싫
어서 그냥 직업과 학력을 좀 속였던것뿐...아저씨를 만나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
한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저 정말 꽃뱀 아니에요. 저 정말 그런 여자
아니라구요. 다른건 몰라두 절 그런여자로 보신다면 진짜 억울하단 말이에요. 흑
흑흑~~~!!! 아저씨한테 사실대로 말씀드릴 기회를 놓친것뿐이지 처음부터 작정하
고 속인게 아니라구요. 저 정말 그렇게 오해하시면 진짜 억울해요. 사실대로 말씀
드릴 기회를 놓친것뿐이지 아저씨를 작정하고 속일생각은 아니었다구요. 엉엉엉엉
~~~!!! 흑흑흑흑~~~!!! ”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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