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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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트와이스 미나 (3)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헌데 얼마가지 않아 정말 예기치못한 뜻밖의 사태가 터졌다. 실은 주희도 임신을 한 것이 확인이 된 것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여자가 임신사실을 인지하게 되는게 4-6주정도 지난뒤의 일인데, 일단 주희는 납치사건을 당하고 한 일주일정도를 전남 시골마을에 있었고 그러다 그쪽 주민의 연락을 받은 미나가 주희를 데리고 와 자신과 병규의 월세방에서 그녀를 보호해주기 시작한지 2-3주 정도가 지난 무렵이다. 그렇다면 주희는 납치사건이 있기 2-3주전에 윤섭과 그런 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안 가는 일이긴 하다. 주희는 납치사건 일주일만에 미나의 보호를 받으며 돌아오는길의 기차안에서 윤섭과 헤어질뜻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가. 

 물론 납치사건 이전까진 윤섭의 어머니가 설마 자신에게 그런짓까지 하리라곤 예상을 못했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가 3대독자이기도 한 윤섭 집안의 반대로 앞날이 불확실한 상황인것만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을터. 허나 오히려 그랬기에 서로를 더 뜨겁게 원해 안았을수도 있고, 어쩌면 윤섭 입장에선 어쨌든 주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녀를 간절히 원했을수도 있다. 아니면 윤섭이나 주희나 피차 서로의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울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가운데 그래도 그동안 나눈 사이가 있으니 이대로는 헤어지기 아쉬워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랬을수도 있고. 헌데 중요한건 어떤 심리상태에서 관계를 가졌던간에 지금 주희가 임신을 했다는 것 아닌가. 산부인과에서 확인을 해보니 어쨌든 납치사건 두어주전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이 된것만은 분명한 듯 한데, 막상 그와같은 사실을 함께사는 미나와 병규에게 알릴 때 주희의 태도는 제법 단호하고 당당하기까지만 했다. 어떻게보면 그녀를 걱정하는 미나와 병규가 되려 더 당혹스러워질정도로. 

 “ 낳을거야. ” 

 “ 주희야... ” 

 병규나 미나나 주희가 이미 윤섭과 헤어질뜻을 분명히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있지 않은가. 헌데 이런 상황에서 임신한 아이를 어쩔것이냐는 물음에 낳겠다니. 두 사람 다 더더욱 주희를 걱정되는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일단 주희는 사뭇 결연한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 다만 이 아이는 이 순간 이후로 더 이상 이윤섭의 아이가 아냐. 그냥 하주희의 아 

  이일뿐이야. 무슨말인지 알겠어 ? 물론 내가 이윤섭 그 인간 외에 다른 남자와 관 

  계를 가진일은 없지만 그래도 이 아인 이윤섭과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 이 하주희의 

  아이로만 키우겠다는 소리야. 호적도 당연히 내 호적에 당당히 내 아이로 올릴거고 

  ... ” 

 미나도 병규도 이렇게 말하는 주희를 더욱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90년대 중반 정도면 이혼녀에 대한 시각은 어느정도 너그러워져갈때이긴 하지만 미혼모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곱지 못할때다. - 사실 미혼모에 대한 곱지못한 시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 다만 어쨌든 태어난 아이가 출생신고는 되고 학교도 보내긴 해야할테니 아버지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거나 연락이 안되는 경우에 한해 엄마 호적에 올릴수 있는 그 정도의 법적 아량은 생겨난때다. 그러니 주희 입장에서 그냥 하씨성을 쓰는 자기아이로 하겠다는 주장. 사실 이때만해도 보통 강단있는 여자가 아니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주장이긴 하지만 주희가 지금 어디 방송에 나가 마이크 붙잡고 기자회견이라도 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절친한 10년지기와 그 10년지기의 연인 두 사람 앞에서만 하는 이야기니 그 정도면 굳이 그렇게 거리낄일도 아니리라. 허나 그런 하주희이기에 더더욱 미나도 병규도 그런 주희의 결심을 걱정스레 바라볼뿐이다. 

 헌데 이쯤되면 주희의 이런 상태를 방치해두고있는 이윤섭이란 남자의 처신도 이해가 안간다. 최소한 다른건 몰라도 주희가 납치의 봉변을 당했다는 사실 정도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윤섭의 어머니 권경애 여사가 그런 구체적 사실까지 아들에게 알리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이제 두 번다시 주희 그 아이를 만나진 못할 것’이라던가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그런곳으로 보냈다’는 식의 언질은 주었을터이고 윤섭이 아주 머리가 나쁘거나 눈치가 없는 남자가 아닌 다음엔 자기 어머니가 혹시 주희한테 무슨 해꼬지라도 한 것 아닌가 그런 의심도 하지 않고 더더욱이 주희의 행방이나 소식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채 연락도 안부도 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굳이 추정을 해보자면 이윤섭의 부모가 비서진을 동원하든 경호원을 특별히 고용하든 해서 자기네 아들이 주희를 다시 만나는일이 없도록 그의 동태를 24시간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까진 추론해볼수 있다. 허나 아무리 그렇게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있어도 그렇지. 정히 서로를 그렇게 절실히 원하고 헤어질수 없다면 차라리 단둘이 지구끝까지 도망가서라도 단둘이 조용히 살려고 하는 것이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의 의지다. (* 헌데 따지고보면 현실에선 지구끝까지 달아나기전에 이미 사전에 발각나 깨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니 평등이니 이런 개념과 인식이 이전보다 더 커진 시대로 갈수록 남자든 여자든 짝은 가급적 엇비슷한 환경이나 학력등의 상대를 고르려하지 일부러 힘든 사랑을 하려는 남녀는 갈수록 점점 많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서 흔하게 보는 가난한집 딸과 재벌2세의 사랑이라던가 반대로 고등학교 중퇴정도 학력의 남자가 명문대 출신 여자와 사랑을 해서 결혼에 이른다던가 하는 사례는 현실에선 웬만해선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게 정답이다.) 

 어찌되었거나 이윤섭이란 남자는 의외로 우유부단하거나 겁이 많거나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그런 남자인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아니면 부모님 엄명은 웬만해선 거역을 못하거나 자기 고집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하는 마마보이거나. 그런 성향의 남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어떤 성격이나 성향 혹은 가치관을 가진 남자이건 어쨌든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지금 이 지경이 되었는데 이를 방치해두고, 아니 방치해두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이나 신경을 끊은 듯 아무 연락도 해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안가는 일이 분명하다. 

 어쨌든 주희가 자신의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판이니 어쩌겠는가 미나나 병규도 주희의 그런 선택을 존중해주는 도리밖에. 다만 졸지에 지금 미나와 병규가 함께 사는 집에는 졸지에 두명의 임산부가 한 집에 사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쯤되면 입장이 좀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미나의 남자 병규다. 평수도 그리 넓지 않은 방만 두 개인 작은 월세방에 젊은 남자가 비슷한 또래의 두명의 여성과 살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 여자가 모두 임산부라니. 누가봐도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 구성원이 분명해보이지 않는가. 물론 아직은 미나나 주희나 둘 다 임신 초기단계니 주위 이웃들 눈에 뜨일 염려는 없지만 시간이 차츰 지나면 두 여자 모두 배가 불러올것이고 그때 행여 이 두 젊은 임산부를 함께 데리고 외출이라도 한 모습이 이웃 주민들 눈에 뜨이면 그네들은 또 이 상황을 어찌 이해하고 받아들일것인가. 그러고보니 미나는 몰라도 적어도 미나의 남자 병규 입장에선 머리가 아파올 수밖에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한편 함께 살면서 미나와 주희 사이엔 좀 작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미나나 주희나 둘 다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여성임은 분명하다. 조만간 만삭이 되면 한 두어달이라도 일을 쉬게되긴 하겠지만 여하튼 지금은 임신한몸으로 계속 출근을 하는 상태. 다만 문제는 주희의 직장이 미나의 직장보다 상대적으로 더 거리가 멀다는 점에 있다. 주희의 경우엔 광명에서 대략 구로방면쪽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2호선 전철을 탄뒤 그곳에서 강남에 있는 자신의 직장(의상실)까지 출퇴근을 하게된다. 어쨌든 상대적으로 미나보단 먼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그로인한 피곤함과 지침도 한층 더할터. 그래서일까. 주희는 퇴근을 하면 바로 곯아떨어져 잠자는 것 외엔 별로 하는일이 거의 없었고 쉬는날에도 그저 집에서 쉬고만 있기 일쑤였다. 그래서일까. 보다못해 하루는 미나가 한마디 했다. 

 

 “ 주희야. 물론 너도 아직 임신 초기고 그래서 모든게 힘이 들고 조심스럽겠지만 그 

  래도 이런건 협조는 해줘야하는거 아니니 ? ” 

 “ 왜 그래 갑자기 ? ” 

 미나의 의도가 아직 이해가 안가는듯한 주희의 모습. 결국 미나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 아무리 그래도 이 집에 나혼자만 사는것도 아니고 기왕 같이 살기로 한 이상 최소 

  한 가사일에 협조 정도는 해줘야 하는거 아냐 ? 하다못해 청소 같은건 좀 도와줘야 

  하는거 아니냐구 ? ” 

 “ 나...나도 청소는 가끔씩 하잖아. ” 

 “ 그게 도와주는거냐 ? 그냥 가끔씩 지 방만 대충 물걸레질만 하는거지. ” 

 어떻게보면 미나와 주희의 살아온 과정과 태도 그리고 성격의 차이에서 나오는 문제라고나 할까. 주희의 경우엔 어린시절엔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학교를 졸업한뒤엔 쭉 자취생활을 했고 그래서 오히려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아 대체로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편한대로 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고 반면 미나는 중학교때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이후 혼자 동생 둘을 돌봐야하는 소녀가장으로 살면서 매사에 꼼꼼하고 빈틈없이 살아야 하는 그런 습관이 몸에 밴듯하다. 다시말해 청소하는 스타일의 차이인 셈인데 주희의 경우엔 한 3-4일에 한번정도 그냥 먼지좀 쌓이고 지저분한게 눈에 많이 뜨이는 것 같으면 그제서야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좀 닦기도 하는 그걸 청소라고 생각하는 반면 미나의 경우엔 매일같이 집안 구석구석 더럽고 지저분해져있는 것을 못 보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사실 고등학교때부터 같은반이었고 이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절친하게 지내온 친구고 동료지만 한 집에 직접 같이 살아본 경험은 거의 없어서 이렇게 함께 살면서 본격적으로 상대방의 생활습관이나 태도를 파악하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봐야할 것이다. 오히려 주희는 그런 미나를 이해할수 없다는 듯 나온다. 

 “ 그러는 미나 넌 피곤하지도 않냐 ? 어쨌든 매일 직장에 출퇴근을 해야하는애가 밤 

  늦은때도 대청소를 꼭 한번은 하고자는 스타일이니 난 그게 더 신기하더라. 난 퇴 

  근해 집에 돌아오면 솔직히 밥도 그냥 대충 챙겨먹고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 

 그렇게 서로의 생활습관을 갖고 약간의 말다툼이 생긴 하루. 공교롭게도 쉬는날이긴 했는데 마침 안병규의 경우엔 다른 볼일이 있어 외출을 한 상태에서 집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일요일이건 쉬는날이건 이런 열악한 월세방에 일부러 찾아올 사람은 없을텐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미나가 문을 열어주긴 했지만 결국 더 의아해질일은 없었다. 집으로 찾아온 사람은 다름아닌 이런곳에 월세방을 내어준 ‘집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대충봐도 나이 40은 넘어보이는 중년의 아저씨. 헌데 안에서의 소란이 바깥에까지 들려서일까. 대충 찾아온 용건을 말한 집주인이 그리고는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 헌데...이 아가씨는 ? ” 

 그래도 주희가 이 집에서 살게된지 한두달 정도는 지난 것 같은데, 다만 월세를 받는 달이든 그 외 다른 용무든 집주인이 찾아왔을 때 주희가 일부러 피하거나 미나가 일부러 숨기거나 하는일은 없었는데 그래도 이제야 집주인은 주희와는 처음 면식을 트는지 그렇게 물은 것이다. 허나 그러자 주희가 되려 왜 기억 못하냐는 듯 살짝 집주인을 핀잔주듯 말했다. 

 “ 지난번에 소개시켜드렸던 것 같은데 기억 안 나세요 ? 하주희라고 제 고등학교때 

  부터 10년 지기고요...강남에 있는 의상실에서 일해요. ” 

 ‘이래봬도 강남 의상실에서 일하는 친구 둔 여자’라고 자랑질이라도 하고 싶었던것일까. 미나는 뿌듯하게 소개를 했는데 집주인이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는 듯 물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 가...가만 그러니까...아가씨 친구라는 이 여자분도 이 집에서 같이 살게된거다 이 

  말인가 지금 ? ” 

 “ 네, 지난번에 말씀 드렸잖아요.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이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 

  다고... ” 

 “ 좀 분명히 말해봐. 한 며칠이나 몇 달 여기 잠시 머물겠다는 소리야 ? 아니면 앞 

  으로 계속 여기 살거란 소리야 ? ” 

 이전에 미나가 주희를 ‘앞으로 함께살 친구’라는식으로 말했을 때 집주인은 실없는 농담처럼 받아들였던것인가. 아니면 무슨 개인사정이 있어서 한 며칠 이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것인가. 아니면 나이가 나이니만큼 불과 몇주전의 일이라도 그 사이 잊어버리기라도 한것인가. 사실 미나 입장에선 ‘이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 ?’는 듯 한 말이겠지만 집주인 입장에선 적당히 넘어갈일이 아니다. 친구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집주인 입장에선 세입자가 한명 더 늘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월세를 올려받아야 하나, 친구라는 여자한테도 별도의 월세를 더 받아야 하는것인가. 자연스레 그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일까. 집주인이 거듭 확인차 묻는다. 

 “ 가만 그러고보니 아가씨...아니 그러고보니 결혼을 한건가 안한건가...그조차도 확 

  실치 않았는데...원래 처음에 이 집에 세들어왔을 때 남자하고 같이 들어왔나 ? 그 

  때 기억에 부부라고 했던거 같은데... ” 

 연인이든 동거에 들어가는것이든 어쨌든 사실혼의 경우까지 포함해서 ‘부부’라고 쳐두고 따라서 집주인 입장에선 미나라는 젊은 여성 세입자에 대한 호칭까지 난감해질 지경인데, 여하튼 집주인 입장에서 거듭 확실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문제라 새삼 추궁이라도 하듯 묻는다. 

 “ 아니, 분명히 말해봐. 이거 아무래도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여 

  하튼 젊은 아주머니가 남자와 함께 살게된 집에 아주머니 친구까지 같이 들어와 살 

  게 된거다 그 말인거야 지금 ? ” 

 “ 네 뭐...친구 사정이 좀 딱하고 피치못해 그렇게 되었어요. ” 

 미나는 마치 ‘불쌍하고 오갈데 없는 친구 도와주는게 뭐 그리 잘못이냐 ?’는 듯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집주인은 거듭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엇보다 그러고보니 미나라는 여자와 동거관계든 연인관계든 사실혼 관계인 것은 분명한 그런 남녀인데 거기에 여자 한명이 또 추가된다 ? 아무래도 뭔가 정상적인 사이같아 보이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집주인은 골머리를 싸매는듯한 모습을 보이다 일단 이쯤에서 물러나게 된다. 

 사소한 해프닝은 얼마지나지 않아 또 있었다. 하루는 역시 쉬는날, 집에서 TV라도 보며 – TV는 미나 방에 있다. -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러다 급히 생필품을 사야할게 생겼는지 미나가 잠시 집을 비웠다. 헌데 병규가 간식으로라도 할려고 냉장고에서 과일 두어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먹기위해 과일을 칼로 깎으려는데 그러다 그만 손을 베이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 아얏... ” 

 “ 어머나, 이를 어째요 병규씨. ” 

 청소는 게으른편이지만 이런 응급처치에 대한 상식은 제법 있는 주희라서인지 재빨리 응급조치를 하고 칼로 베인 부분을 밴드를 가져와 붙여주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혹시 덧나거나 할 위험은 없는지 세심히 살펴주기까지 하는데 미나가 그것을 목격한 것이 하필 그때였다. 

 “ 아아...괜찮다니까요 주희씨. 되었어요. 밴드 붙였으면 되었죠 뭐. ” 

 “ 아니에요. 그래도 좀 더 살펴봐야 한다니까요. 지혈이 아직 제대로 안 된거면 나 

  중에 더 큰일이 날수도 있어요. ” 

 그렇게 병규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거듭 세세하게 살펴주고 있는 주희. 하필 그때 편의점에 생필품을 사러 나갔던 미나가 들어온 것이다. 일상에서 사소하게 벌어질만한 사고고 해프닝이긴 하지만 미나는 순간 기가막혔다. 

 “ 둘이 지금 뭐하는거야 ? ” 

 “ 어, 미나 왔구나. 아니...보다시피 병규씨가 과일을 깎다가 칼에 손가락을 좀 베어 

  서... ” 

 “ 과일을 하필 내가 나간 사이에 깎아야 하는거야 ? 게다가 그런걸 깎으려면 여자 

  인 니가 손수 나서던가 할 일이지 왜 우리 병규씨가 그 지경이 되도록 그냥 방치해 

  두고 있냐구 !!! ” 

 “ 미나야... ” 

 10년지기 친구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질 정도의 미나의 태도다. 아직 임신 초기인지라 여러 가지로 예민해있는 상태라도 그렇지 이건 그야말로 10년 친구와 자기 남자와의 관계를 의심이라도 하는듯한 모습 아닌가. 주희도 결국 지지않고 한마디 한다. 

 “ 미나 너 왜 그래 ? 그래 뭐...병규씨가 과일 손수 깎을때까지 내가 무심하게 지켜 

  보기만 한건 내가 잘못헀다고 쳐. 그렇다고 이게 이렇게까지 화를낼 일이냐구 ? ” 

 “ 미나야...너 답지 않게 왜 그래 ? 내가 잘못한거야. 내가 사과할테니 그만 진정해 

  . 그리고 주희씨도 다 나 걱정해서 그런건데...그만 화풀어. ” 

 이렇게 되니 결국 중간에서 난감해지는 것은 병규인지라 그런식으로 두 사람 사이를 중재시키려해본다. 헌데 병규가 이렇게 나오자 미나가 더 약이 오르는 듯 한마디 한다. 

 “ 둘이 지금 대체 뭐하는거야 ? 그러고보니 병규씨 어느새 주희 얘 역성까지 드는거 

  잖아.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두 사람 관계가 그리된건데 ? ” 

 “ 미나야... ” 

 보자보자하니 너무하지 않나 싶어 주희도 결국 화가났다. 우연치곤 공교롭게도 그때 하필 집주인이 또 무슨 용건이 있어 찾아왔는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진짜 큰 싸움으로 벌어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여하튼 10년지기란 사이가 무색할만큼 미나와 주희는 함께 살면서 티격태격하는일이 자주 벌어지던차라 그러면서 서로의 사이가 약간 금이가는듯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두어달쯤 시간이 지났을 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그러고보면 주희와 미나도 어느덧 임신 5-6개월 정도로 접어드는 때인데 그래서 대충 아랫배가 조금씩 불러오는게 누가 봐도 육안으로 표가나기 시작하는 무렵. 찾아온 사람은 다름아닌 미나의 남자친구 안병규의 어머니 김경희 여사였다. 김경희는 이때 나이 50을 넘긴 중년부인인데, 하주희가 사귀는 남자 이윤섭의 어머니 권경애 여사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치않던 사람이었던 반면 김경희는 뭔가 느낌부터가 좀 달라보이는 여자였다. 일단 대체 어떻게 정보를 입수한것인지 어쨌든 김경희 이 여인도 사람들을 풀어 아들과 아들의 여자 행방을 수소문하거나 뒷조사를 하는 정도까진 해본것인지 여하튼 아들이 집을 나가버려 미나와 이렇게 살림을 차린지 실로 몇 달만에 어렵사리 거처를 알아내고 이렇게 손수 찾아온 것이다. 무엇보다 경희의 눈에도 이미 불러오기 시작하고 있는 미나의 배가 대번에 눈에 뜨였을터. 한숨부터 내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편 주희는 주희대로 미나가 동거하는 남자의 어머니가 찾아오셨다는데 자신이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을 했는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고 작은방 두 개와 거실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하는게 정확할듯한 부엌으로 쓰는 공간만 사람 지나다닐 정도의 넓이로 있는 그런 작은집 한가운데 마주앉은채 미나에게 말을 건넸다. 

 “ 지금...아이를 가진건가요 ? ” 

 당장 눈에 뜨이는 그 부분부터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와같이 물은 김경희. 미나 입장에서도 어차피 부인할수 없는 일이라 ‘네’ 하고 짤막하지만 또렷한 대답을 했다. 경희는 다시금 한숨을 내쉰뒤 말을 건넸다. 

 “ 내가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난 뭐 그쪽이 소녀가장이라던가 가난하게 살아온 그 

  런 사람이라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다만... ” 

 “ ...... ” 

 “ 어쨌든 병규 아버지도 유력 언론사 간부로 20년 넘게 재직하다 3선 국회의원까지 

  역임한 그런 저명인사고 나 역시 거의 엇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내조자에요. ” 

 일단 그런대로 잘나가는 재벌가 3대독자인 주희의 옛 애인 이윤섭의 집안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것인지 경희는 새삼스레 미나앞에서 그와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그러면서 말을 이어간다. 

 “ 병규가 지금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는것인지...그것까진 내가 확인을 못 했 

  는데 어쨌든 병규도 위로 누나가 둘 있는 막내아들이고...그런 독자인 병규에게 아 

  버지가 오래전부터 가져온 기대같은게 있었어요. ” 

 확실히 재벌가 3대독자라 그래서 더더욱 자기네 아들이 고아출신의 가난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고 펄쩍뛰었던 이윤섭 집안의 경우와 안병규 집안의 경우는 상황과 사정이 많이 다른 듯 했다. 일단 병규도 위로 누나가 둘인 막내아들이긴 했지만 가령 3대독자...4대독자...이런식으로 나가는 집안 내력은 아니었다. 안병규의 아버지로 언론인 출산 3선 국회의원이기도 한 안동일은 5남매중 셋째로 위로 누님과 형님 그리고 밑으로도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기 한명씩 더 있다. 따라서 굳이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던가 그런 문제에 대한 집착은 좀 덜할만한 집안. 다만 경희는 자신이 진짜 걱정한게 무엇이었는지 그 진짜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 물론 나도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서 서로 살아온 환경이나 처지가 다른 그런 젊은 

  남녀가 집안반대 무릎쓰고 결혼하고 그런 이야기 안 봐왔던건 아니에요. 하지만  

  살다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구. 잘 사는 집안이든 명문가 집안이든 그런 집안 

  의 여자가 되면...그래서 갖춰야하는 사회적 지위나 품격같은게 있는거거든...아까 

  도 내가 미나씨를...우리 병규의 제대로 된 내조자가 될만한 그런 능력을 갖춘 사 

  람인지 그걸 걱정한 것이다 그런말도 했지만... ” 

 사실 드라마 같은데서 흔히 보는 그런식의 설정때문이 아니더라도 환경문제라던가 종교문제 등등 평생을 함께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사람이 막상 결혼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그런 현실적 조건들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는것도 어쩔수 없는 문제라고나 할까. 다만 어쨌든 경희는 이미 임신까지 했다는 미나를 무작정 반대할 생각은 아닌 듯 뭔가 한발 물러난듯한 모습을 보인다. 

 “ 내 일단 조금은 지켜보겠어요. 내 말은...여하튼 우리 병규의 내조자로 적절한 자 

  질을 갖춘 사람인지 그걸 지켜보는 시간을 갖겠다는말이지. ” 

 “ 어머니... ” 

 그래도 아주 절망적이었던 주희의 상황과는 달리 – 게다가 주희는 이미 윤섭과는 결별을 선언했고 심지어 아이도 자기혼자 키우겠다는 선언까지 한 상태다. - 그래도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미나의 경우라고나 할까. 경희의 말에 살짝 화색이 돋는듯한 미나. 경희가 그런 미나의 손을 살짝 잡아보기까지 한다. 

 “ 어쨌든...아이까지 생긴몸을 어쩌겠어요. 나야 뭐 종교문제같은건 별 관심없는 사 

  람이긴 하지만...아이를 지운다던가 하는 문제도 그렇게 경솔하게 결정한 문제는 분 

  명 아니거든요. ” 

 “ 어머니... ” 

 “ 일단 내 지켜본다고 했어요. 우리 병규의 내조자가 될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그걸 좀 지켜본다는 말이죠. 그리고 결혼문제는 그 뒤에 차분하게 다시 생 

  각해보도록 합시다. ” 

 이미 임신까지 한 여자를 그럼 대체 언제 결혼을 시키겠다는것인지 그 부분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은 것이 걸리긴 하지만, 어쩌면 임신한 몸으로 여자가 결혼식장에 그냥 들어서는것도 여러 가지로 적절치 못하고 사람들 보기에도 좋지 못하다는 판단을 한것일수도 있다. 여하튼 최소한 두 사람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뭔가 한발 물러난듯한 태도를 보이는것만은 분명한 김경희 여사의 모습. 미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다. 

 한편 그 시간 주희는 인근 편의점에서 대충 시간을 때우고 있다. 그러고보면 주희가 미나의 월세방을 임시 거처로 정하고 함께살게 된지도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셈인데, 허나 아침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바쁜 일상을 보내온 주희라서 오히려 집 근처 동네는 돌아본 경험이 별로 없어 되려 여전히 이 근방 지리엔 익숙하지 못한면마저 있다. 여하튼 미나가 동거하는 상대인 안병규의 어머니가 오셨다는데 자신이 거기 있는 것은 적절치 못할 것 같아 잠시 자리를 비워주느라 집을 나온 상태. 그래서 대충 가까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음료수를 하나 사 그것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중이다. 헌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좀 공교로운 상대에게 이 광경이 목격되었다. 다름아닌 미나의 월세방 집주인이다. 

 “ 어이...이봐요... ” 

 주희가 집주인 얼굴을 지금은 못알아보는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 같아 못들은척 혹은 나한테 아는척 하는건 아니겠지 하고 외면을 하려는데 이미 집주인은 주희가 컵라면을 들고있는 자리 앞까지 와있다. 그리고 주희한테 무슨 용무가 있는지 그녀가 앉으란말도 안했는데 이미 앉아버린 집주인. 주희 입장에선 참 난감한일이 벌어진것만 같아 순간 눈을 질끈 감아본다. 40대의 집주인은 일단 아랑곳없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 그...젊은 아주머니랑 함께 사는 여자분 맞죠 ? ” 

 어떻게 답을 해야하나. 주희는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오기만 할 뿐인데 집주인은 새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부연설명까지 덧붙인다. 

 “ 그...OOO번지...4층짜리 교회 건너편 주택가 그쪽에 월세방에 살고있는거 맞잖아 

  요 ? 그 근처 한 10여채가 다 내가 월세내주고 전세금 받고 그러면서 관리하는 집 

  들인데... ” 

 “ 무슨일이신데요 ? ” 

 주희는 피곤한 듯 대꾸하고 있고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중요한 용무가 분명 있다는듯한 태도로 나오고 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 헌데 그 젊은 아주머니는 여하튼 남자분과 그렇게 같이 사는 것 같고...헌데 그쪽 

  도 그 아주머니랑 계속 그리 같이사는거에요 ? 그러고보니 어쨌든 그 아주머닌 동 

  거든 뭐든 그렇게 같이사는 남자가 있는 것 같고...그쪽은 미혼인가, 기혼인가 ?  

 ” 

 주희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기배를 가렸다. 다른건 몰라도 자신도 임신을 한 상태라는 것을 집주인이 확인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난감해서 그렇다. 집주인도 주희가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 정도는 눈치를 챘는지 일단 해명삼은 설명을 덧붙인다. 

 “ 이봐요. 그게 아니라...나도 어쨌든 월세받고 전세금 받고 사는 입장이라서 중요 

  한 문제라서 확인은 해야겠기에 그러는거에요. 뭐 여하튼...그 아주머니 말로는 10 

  년 지기라던데...그...맞긴 한거에요 ? 그러고보면 내가 집에 들를때마다 둘이 싸우 

  는 소리밖에 안 나던거 같던데... ” 

 악연이란게 확실히 세상에 존재하는것일까. 집주인이 월세를 받기위해 찾아왔든 수리나 관리같은 용무가 있어 찾아왔든 하필 그럴때마다 주희와 미나가 사소한 말다툼을 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와봐야 바로 그냥 눈앞이 방이고 부엌으로 쓰는 공간이고 하는 작은집이니 그런 집에서 싸우는 말소리가 밖에까지 쉬이 들리는 것은 충분히 있을수 있지만 여하튼 집주인 입장에선 그 월세방에 사는 두 여자(미나와 주희)가 평상시 자주 싸우는것처럼 느껴진것일까. 여하튼 집주인은 확인하고 넘어갈 사안은 분명 확인하고 넘어가야겠는 듯 거듭 이와같이 나온다. 

 “ 이봐요. 이게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일이 아니라고. 사람하나 들어올때마다 돈이 

  다 공짜로 그냥 되는게 아니라고. 돈이 어느날 하루아침에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전기요금...수도요금 그거 다 쓰는사람 숫자대로 다 비용 들어가는거에요. 내 말  

  무슨말인지 알아듣겠어요 ? ” 

 “ 그래서 뭐 절더러 어쩌라구요 ? 저까지 월세를 내란 소리에요 ? 아니면 저보고 

  따로 다른 월세방이든 전세든 다른 집을 구하든 하란 소리에요 ? 하고픈 이야기 

  가 도대체 뭔데요 ? ” 

 “ 아니, 이봐 그렇게 화만낼 일이 아니라구. 나도 그동안 많이 봐준거라구. 아무리 

  그래도...그러고보니 그쪽이 그 젊은 아주머니 집에 들어와 산지도 어느덧 한 반 

  년 가까인 지난 듯 한데...그정도 봐줬으면 많이 봐준거 아냐 ? 세상에 나같이 착 

  한 집주인이 어디있는지 한번 나와보라고 해 !!! 세입자가 사전 계약에도 없던 다 

  른 식구를 갑자기 한명 더 들였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고도 대여섯달이나 대충 넘 

  어가준 그런 착한 집주인이 나말고 또 있으면 한번 나와보라고 하라고 !!! ” 

 밥맛 아니 컵라면맛,,음료수맛 다 떨어질것만 같은 소리만 하는 아저씨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주희는 들고있던 나무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아직 반도 채 비우지 않은 컵라면과 음료수캔을 그냥 두고 편의점을 나가버린다. - 어쩌면 용기안에 아직 온기가 많이 남아있는 라면국물을 집주인 아저씨한테 전부 뿌려버리고 싶었던 심정일수도 있다. - 그리고는 성큼성큼 편의점에서 멀리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가버리는 주희. 그러고보면 광명시 교통편은 이 집근처에서 서울 구로동으로 가는 시외버스 외엔 아는 교통편도 아직 거의없는 주희이건만 눈에 보이는 버스를 그대로 타버린다. 어차피 미나와 병규 어머니의 대화는 오래 걸릴듯하니 시간을 밖에서 많이 허비해야하는 것은 달라진 것이 없는 처지. 차라리 이참에 광명시내나 한번 버스타고 한바퀴 다 돌아버릴까. 그럴 각오까지 하고 무작정 타버린 버스다. 한편 그렇게 갑자기 달아나듯 편의점에서 나가버린 집주인 입장에서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자기 용무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 그것도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 이야기도 다 끝나기전에 마치 도망이라도 치듯 편의점에서 나가버린 그런 여자가 아닌가. 어떻게보면 집주인 입장에선 아직 신분조차 불확실한 젊은 아주머니랑 함께 살고있는 여자 – 집주인은 아직 하주희의 실명도 모른다. - 그렇게 자신의 월세방에 들어와 살고있는 여자에게 확인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직 한둘이 아닐터인데 그렇게 갑자기 나가버렸으니 집주인 아저씨 입장에서도 그저 어처구니없고 황당한일일 수밖에 없을터. 어이없이 그녀가 남기고간 라면용기와 음료수캔만 멍하니 바라보며 이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 나 원...진짜 살다살다 뭐 저런 막돼먹은 여자가 다 있나그래. 아무리 요즘 젊은애 

  들이 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진짜 50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일은 겪어보다 처음 

  이구먼 그래. ” 

 

 이듬해 봄에 미나와 주희는 한달정도 시차를 두고 순서대로 출산을 했다. 미나가 임신을 한 시기를 6월말-7월초 정도로 잡고 주희가 임신이 된 시기를 7월 중,하순 무렵 정도로 잡는다면 그로부터 열달(* 정확히는 약 270일 정도)이 지난 이듬해 3-4월 정도가 이들이 출산을 할 때가 되었는데 둘 다 건강한 딸을 무난히 순산하였다. 한편 미나의 경우엔 병규의 집안에서 그래도 아들의 아이까지 출산을 한 여자를 마냥 방치해두고 모른체 할 수는 없었는지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용인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었다. 다만 아직 내키지가 않는 무엇이 있기라도 한지 ‘결혼해도 좋다’는 확답은 받아내지 못한채 미나도 주희도 출산을 하고 대략 두어달 정도의 시간이 그렇게 더 흘러갔다. 

 헌데 이런때면 봄도 지나고 여름으로 접어드는 날도 한참 더워지는 때인데 이럴 때 웬만해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사실 이 인근의 월세나 전세방들은 대개 아직 도시가스 시스템이나 보일러가 되지 않아 연탄을 때는 그 정도로 열악한 환경의 가정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탄불이라는게 보통 겨울에 난방이나 요리등을 위해 때는것이지 날 더울 때 일부러 연탄불을 피울 사람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이때쯤 되면 웬만큼 가난하고 힘든 가정환경이 아닌 다음에는 연탄을 사용하는 집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 시기다. (* 실제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검색을 해보면 ‘연탄가스 중독’과 관련된 사고는 보통 60-70년대를 거쳐 80년대 중반까지 집중되어 있고 80년대 중반 이후론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로 가다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거의 사라져가는 분위기다.) 

 실제 우리나라에 도시가스 시스템이 들어온 것이 대략 70년대부터인데 그래도 한 80년대 초,중반까지도 어느정도 사는집이 아닌 다음에는 아직은 연탄을 쓰는집은 많았다. 가령 연탄가스 중독사고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야기나 연탄가스 사고 예방같은 안전요령을 웬만한 중,고생들도 방학직전 안전교육시간 같을 때 들어봤을 그런 세대다. 따라서 90년대 중반에 20대 중반인 미나나 주희도 연탄가스나 연탄가스 중독 같은 문제에는 그런데로 익숙해있는 세대. 헌데 그런 젊은여성 둘이서 생각지도 못한 대형사고를 친 것이다. 

 문제는 비가 한참 오고 해서 습기 때문에 집안이 많이 눅눅해져있었던 때문이다. 연탄불이라도 때워 집안 건조라도 시키자는게 미나의 제안이었고 주희도 거기에 응해 대략 저녁시간때쯤 연탄불을 피우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사실 갓난아기들만이라도 그렇다면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대비 안전한곳에 피신시켜 놓는다던가 하는 지혜라도 있었어야 할 터인데 둘 다 하루,이틀정도 아이를 맡길만한곳이 없기는 피차 마찬가지일터. 미나는 병규와 함께 그리고 주희는 자기방에서 각자 아이를 품에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먼저 깨어난 것은 주희였다. 그러나 뭔가 매캐한 느낌과 메스꺼움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쉽지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술에 많이 취해있는 상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뭔가 움직여서 이곳을 벗어나긴 해야할 것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 그나마 주희는 ‘아 ! 이게 말로만 듣던 연탄가스 중독이구나’ 그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않아 ‘빨리 집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다른 식구들에게도 알려야하고’ 그 생각은 하고 있는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일단 혼신의 힘을 다해 가까스로 일어난 주희. 그리고 자신의 아이부터 품에 안았다. 무엇보다 연탄가스 중독사고때는 김치국물 따위가 정신을 차리게 하는게 좋다는 이야기는 주희도 익히 들었을터. 그러나 집도 작고 살림도 열악한 그런곳에서 지금 한가하게 김치국물이든 동치미든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김치국물이나 동치미만큼 효과가 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희는 싱크대로 가서 찬물이라도 한껏 들이켰다. 정신이 좀 나아지는 것 같은 상황에서 일단 자기 아이만 안은채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일단 아기를 집 밖 대충 10여미터 정도 떨어진곳 그런대로 안전해보이는 곳에 내려놓았다. 

 허나 이게 끝이 아니지 않는가. 집에 아직 식구가 세명이 더 있다. 미나와 그의 남자 안병규. 그리고 두 사람의 아이까지. 미나와 병규는 아이 이름을 혜진이라 지은 것으로 아는데, 어쨌든 이들도 다 구출해야한다. (* 실제 연탄가스 중독 가족 구출담 같은 것을 들어보면 여하튼 정신을 조금이라도 차릴수 있는 가족 한두명이 나머지 가족을 집안에서 끌어내다시피 해서 생명을 구했다는식의 이야기가 많다.) 

 일단 그런대로 급히 미나부터 깨웠다. 미나도 어쨌든 정신을 차리긴 한것같은데 주희도 입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미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미나가 언뜻 입모양을 뭐라고 벙긋거리긴 한 것 같은데 ‘나 죽는거야 ?’ 혹은 ‘나 (연탄가스) 중독이니 ?’ 하는 말을 한것같다. 여하튼 한가하게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상황이 아니니 주희는 있는힘 없는힘 모두 쏟아부어 미나를 안기도 하고 강제로 끌어내려 하기도 하고 부축도 해보기까지 하면서 일단 가까스로 집밖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하긴 했다. 미나는 대충 두어발자국 더 걸어가는 듯 하더니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주희는 아직 구출해야하는 가족이 더 남아있다. 미나도 아무래도 자기 아이가 걱정되는지 쓰러지는 와중에도 ‘아이...아이...’ 하는식의 말을 모기소리만하게나마 하고 있었다. 주희도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아직 방안에 있는 미나의 아이 혜진을 품에안고 필사적으로 다시 집안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방 두 개만 달랑있는 작은 월세방이고 그 방안에서 빠져나와 한 열발자국 정도 걸어가는 짧은 거리. 헌데 그 정도 거리를 세 번(자신의 탈출과 자신의 아이 구출, 미나 구출, 미나 아이 구출) 왔다갔다 한것인데 이미 주희는 혼신의 힘을 다 한 상태라 더 이상 힘을 쓸수도 걸을수도 없었다. 세 번째로 가까스로 아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 그 아이를 품에 안은채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다치게 해선 안된다는 어떤 본능적 힘이라도 솟아났는지 아이만은 꼭 품에 안았는데 다만 그대로 안타까이 다시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직 집안에는 미나의 남자 안병규가 남아있다. 

 방 두 개의 월세집 앞에 쓰러져있는 두명의 여자성인과 두명의 아이. 두 아이중 한 아이는 한 성인여자가 품에 꼭 안고있고 또 다른 아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또 다른 여자에게서도 조금 떨어진 위치에 방치되어있다. 아이도 정신은 잃은것인지 울음소리도 나지 않는데, 이른아침시간이긴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 누가봐도 심상찮은 상황임을 직감할 것이다. 목격한 사람이 바로 달려왔고 경찰과 119 구조대도 급히 달려왔다. 집주인도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연탄가스 중독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월세를 받으며 관리하는 집에서 그런 사태가 터졌으니 그 자체가 집주인에게도 큰일이 아닌가. 여하튼 앰뷸런스도 경찰도 모두 달려와 쓰러져있는 두명의 성인과 두명의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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