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이면 아직 휴대폰은 보편화되기 전이고, 젊은 사람들이 호출기(삐삐)를 쓰긴 했지만 여하튼 아직은 집전화로 소통하기가 무난한 시대다. 주희가 알려준 미나의 집전화로 일단 전화통화를 시도해본 남자. 그러고보면 미나라는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인지 아닌지 여부가 확실치 않은데 일단 알려준 전화번호는 집전화번호라고 했다. 일단 낮에는 집에서 전화를 받는이가 없었고 저녁때가 되어서 통화가 가능해진 상황. 일단 바로 남자는 이미나란 여자가 맞는지 여부부터 확인하려 했다.
“ 실례지만 거기가 이미나씨 댁입니까. ”
“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 ”
낯선 남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본능적인 경계심이라도 들었음일까. 미나는 살짝 긴장된 목소리로 답했는데 남자는 일단 차분하게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 초면에 죄송합니다. 여긴 전라남도 OO군 OO면이고 제 이름은 OOO이라고 합니
다. ”
“ 전라남도...어디라구요 ? ”
20대 중반의 미나이지만 여하튼 지금까지 그쪽지역엔 별다른 연고도 갈일도 없었기 때문인지 그저 어리둥절하고 의아한 반응이었고 남자는 차분히 본론으로 진입한다.
“ 하주희씨라고 아시죠 ? ”
“ 네 ? 하주희...제 친군데...그쪽이 저희 주희를 어떻게 알고계세요 ? ”
여하튼 주희와는 고등학교때부터 10년 지기라는 그녀는 현재 주희가 실종상태임을 인지하고 있는것일까. 무척이나 놀라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이와같은 반응이 나왔고 남자가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 실은...한 일주일전쯤에 저희 마을에서 피투성이가 된 여인 하나가 밭두렁에서 발
견이 되었습니다. ”
“ 네에 ??? 뭐라구요 ? ”
“ 일단 발견된대로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도 가고 치료도 해주었는데...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신원이나 가족사항을 물어봐도 통 답을 하지 않더라구요. 뭐 가족사항
에는 언뜻 고아출신이라는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
“ 네, 맞아요. 저희 주희 맞아요 !!! ”
‘고아출신’이란 신원에 더더욱 확신을 가졌는지 미나의 반응이 이와같았고 우선 두 사람의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남자는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 사실 여기가 시골이라서...서울까지 직접 갈 수 있는 차편은 잘 없어요. 보통 서울
갈일이 있을때는 목포에서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하는데, 그리고 목포에서 여기까
지 오가는 시외버스가 있습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목포까지 오는 고속버스를 타세
요. 그리고 목포에서 OO번 버스를 타고 10여분 정도 가면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습
니다. 거기서 OO번 버스를 타면 저희 OO 지역까지 오실수 있어요. 시외버스로 아
마 30분 좀 넘게 걸릴텐데 그러니 고속버스를 타고 목포에 내리신뒤 시외버스를 타
시기전에 저희한테 연락을 주세요. 그럼 저희가 OO면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시간맞
춰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이렇게해서 어쨌든 주희를 비록 가족은 아니지만 친구라는 이에게 인도해줄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주희를 한동안 맡고있었던 남자와 그의 노모도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고 주희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주희도 그간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고 미나는 더 미루고 할 것도 없다는 듯 다음날 날이 밝자 바로 아침일찍 고속버스를 탔다. 어차피 평일이니만큼 좌석에는 여유가 있었고 바로 목포에 내려 남자의 말대로 미리 전화를 건뒤 시외버스를 탔다. 남자는 커다란 종이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서울에서 오신 이미나씨 !!! 친구 하주희씨를 데리러 오신분이면 여기서 내려주세요’ 하는 안내문구를 써서 시간맞춰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나가 미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저...아저씨가 저희 주희 데리고 계셨다는 분이세요 ? ”
“ 네,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대체 무슨봉변을 당했는지 저희 시골마을 밭두
렁에...여하튼 하주희씨가 그렇게 쓰러져있는 것을 저희가 발견해서 병원에도 데리
고 가고...경찰에도 신고를 했는데...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건지는 하주희씨가 통 자
신의 신분에 대해서 입을 열지를 않더라구요. 그래서 가족한테 인도하거나 집에 연
락할 방법도 없고, 그러다 한 일주일만에 자신의 10년지기 친구라며 이미나씨 연락
처를 가르쳐주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연락을 드린겁니다. ”
남자는 다소 수선스럽게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는데 미나는 주희의 일에 대해 현재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주희의 문제에 대해 너무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좀 꺼리는 듯 했다. 다만 주희의 신변에 대해서는 궁금해할 것 같아서 짤막하게 답은 해주었다.
“ 주희가 고아출신인 것은 맞아요. ”
여하튼 대체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아출신’은 맞다는 하주희. 남자 입장에선 혹시 동명이인인데 일이 잘못 꼬인 것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도 살짝 들기까지 했는데 일단 주희가 머물고 있는 자신의 집에까지 미나를 데려다주었을 때 그 우려는 말끔히 걷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한바탕 울음을 터트렸다.
“ 기집애...너 어떻게 된거야 ? ”
막상 이런곳에서 이런모습으로 있는 친구를 보니 미나는 기가막혔고 주희 역시 미나를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트렸다. 서로 그렇게 한바탕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고 그렇게 북받치는 감정을 한바탕 토해낸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나 차라리 죽으려고 했었어.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구. ”
“ 기집애, 도대체 죽기는 왜 죽어 ? 어떻게든 살 생각을 해야지. 그런데...도대체 누
가 널 이렇게 만든거야 ? 누가 널 이런데까지 데려온거냐구. ”
고아출신이든 뭐든 주희나 미나나 서울에서 나고자란 여성들인건 분명한 듯 한데 그런데 주희가 이렇게 먼 전라남도 남서부지역까지 오게되다니. 만약 정말 어떤이들이 악의를 품고 주희를 강제납치 이런곳까지 끌고온것이라면 엄청나게 큰 범죄행위가 아닌가. 그때문에라도 미나 입장에서도 그냥 넘어갈일은 아닌 듯 한데 일단 주희는 일을 너무 크게 벌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서인지 미나를 그쯤에서 진정시켰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갈뜻을 밝혔다. 자신을 그동안 돌봐준 마을주민들에게는 고맙다는 인사와 폐끼친것에 대한 사과까지 입에 담고 그리고는 이런말까지 했다.
“ 그동안 너무 폐끼쳤는데...제가 지금 빈털터리 몸이라 딱히 보답해드릴 것도 없어
서...어떻든 그동안 신세진거...그러고보면 병원비에 옷까지 이렇게 새로 사주셨는
데...나중에 기회가 오면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
“ 아이구 별 말씀을 다 하시오. 우리야말로 대체 무슨 딱한 사정과 사연이 있는것인
지 젊은 처자가 이런 먼곳까지 와서 그런 봉변을 당했다는게 얼마나 안타까왔는지
...대관절 무슨 사연이 있는 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용기내서 꿋꿋하게 잘 살
기만을 바라겄소. ”
그리고 주희는 바로 미나와 함께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그러고보면 미나가 아무리 아침일찍 출발했어도 지금은 오후시간인데 두 사람은 밤차를 타고라도 원래 살던곳으로 돌아갈 생각인듯하다. 그러고보면 막상 이렇게되니 주희도 이런 시골구석에서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내키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지경인데 그렇게 돌아가는 주희와 미나를 그간 한 며칠동안이라도 주희를 돌봐주었던 30대 초반의 남자와 그의 어머니만 괜시리 아쉬운 표정으로 두 여성의 뒷모습만 바라볼뿐이다.
그래도 목포에서 용케 아주 밤차는 아니고 저녁때 출발하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그래도 서울까지 가는데 한 대여섯시간은 걸릴터이니(* 아직 KTX 생기기 전) 천상 그래도 밤늦은 시간에 도착하게 되는건 마찬가지다. 어쨌든 자정이 되기전에 서울에 도착하도록 하는게 좋겠다는 판단을 두 사람은 한것같다. 사실 주희의 경우엔 그렇다치더라도 미나의 거처는 정확하게 서울은 아니고 경기도 광명시다. 사실 광명은 90년대에도 이미 서울과 1일생활권인 ‘위성도시’나 마찬가지인곳인데(*96년 15대 총선때 탤런트 이덕화씨가 출마한 지역 아니던가 ^^;;) 다만 그래도 지방에 볼일을 보러 내려갔다가 돌아올땐 교통편이 묘하게 애매해지는 지역이긴 하다. 아마 미나의 판단엔 영등포역쯤에 내려서 전철로 구로쯤까지 가서 거기서 광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버스나 택시를 잡아탈 생각으로 있는듯하다. (* 아직 5호선,7호선등은 개통전이다.) 여하튼 그러니 고속버스로 굳이 반포터미널까지 가느니 기차로 호남선을 타고 영등포에서 내리자는게 미나의 판단인듯하다.
그것도 그렇거니와 주희를 좀 기차에서 편히 쉬게하면서 간식이라도 좀 먹이며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눠볼생각이었던 것이다. 미나도 어디까지나 주희의 납치사실만 인지하고 있을뿐, 또 굳이 그 배후를 의심하거나 짐작하자면 짐작못할 처지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하튼 이후의 자초지종은 주희로부터 이야기를 듣기전까진 자세히 알수 없는일 아닌가. 게다가 정작 주희가 전남의 시골마을에선 조사를 하러온 경찰에게도 심지어 입원한 병원관계자에게도 ‘고아출신’이라는 신분정도만 밝혔을뿐 그 외에는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기에 그래서 미나도 더더욱 주희의 그간의 일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 주희야. 그러지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해봐. 여긴 어차피 우리뿐이니 안심하고...한
번 차분하게 말좀 해보라니까. ”
평일이니만큼 손님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그래도 오후나 저녁기차나 고속버스는 지방에서 일을 보고 서울로 복귀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래도 손님은 좀 있는편이다. 그러나 여하튼 비좁은 고속버스보다는 그래도 좀 편하게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기차를 태운둣한데 아직도 불안함이 채 가시지 않는지 말없이 창밖만을 내다보고 있는 주희. 그런 주희를 보면서 미나도 대충 짐작은 가는게 있는지 이와같이 묻는다.
“ 혹시...그 권경애 여사라고 하던가...그 여자가 그렇게 한거야 ? ”
권경애는 사실 주희가 사귀는 그녀보다 네 살 연상인 이윤섭이란 남자의 어머니다. 사실 주희는 이 무렵 한참 잘나가는 재벌가의 3대독자이기도 한 남자를 사귀는 중이었는데 그게 이윤섭이었던 것이다. 허나 아무래도 윤섭의 집안에선 고아출신이고 가난하게 살아온 주희를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두 사람의 만나는 것을 반대해오던 중이었는데 아마 단순한 반대수준이 아닌 어떤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려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듯한 납치행각. 주희도 충분히 짐작은 가는일이라 한참만에 한숨을 내쉬며 흐느끼는 듯 하더니 결국 어렵사리 입을 연다.
“ 권경애...그 여자 아니고는 이런일을 시킬만한 사람이 또 따로 있기나 하곘냐 ? ”
그리고는 설명하는 자초지종은 대략 이러했다. 주희는 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고아원을 나와 따로 자취를 하며 살게된 이후론 대체로 의상실등에서 일을하며 지금껏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된 이윤섭이란 남자. 그가 재벌가 3대독자임을 알게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뒤의 일인데, 일단 윤섭의 집안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백주대낮에 납치행각이 벌어진 것이 일주일여전쯤의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사주를 한 배후가 누구이든 보통 이런일은 퇴근시간이나 으슥한 골목길 같은곳을 거사장소로 정한다던가 어쨌든 사람들의 눈에 잘 안뜨일 시간과 장소를 택할텐데 대낮에 그런짓을 벌인 것을 보면 생각보다 꽤 대담한 조직임엔 틀림없다. 뭔가로 주희를 마취시킨것만은 분명한데 그렇게 쓰러진 주희는 그녀를 납치하려는 일당에 의해 꽁꽁묶여 커다란 마대자루에 넣어졌고 두팔과 다리는 물론 입까지 밧줄과 천 같은 것으로 꽁꽁 묶였다. 무엇보다 이미 마취제같은 것으로 기절을 시킨 상태라 주희는 이미 그때의 구체적인 상황은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일이 있기 대략 일주일여전쯤 어떤 한떼의 불한당 같은 남자를 부른 50대 중년부인이 있었다. 바로 이윤섭의 어머니인 권경애 여사라는이로 대체 어디서 사람들을 불렀는지 대략 5-6명 정도로 되어보이는 장정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다.
“ 주의할점은 내가 그 하주흰가 뭔가하는 기집애를 해치우라던가 무슨 해꼬지를 하
라는건 아냐. 다만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로 아주 인사불성을 만들어...단단히 망
신을 줘서...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구를 할수 없거나 반은 실성한 그런 상
태로 만들어버리란 말이지. 알겠지 ? 절대 주의할 것은 신체적 위해는 절대 가해
선 안 돼. 그러다 나중에 일이 복잡해지면 더더욱 곤란하니까. 성X행 같은 것은 더
더욱 안될일이고... ”
어쨌든 납치라는 일을 지시하는것부터가 끔찍한 일인데 그러면서도 일이 너무 커지면 큰일이라는 판단은 하는것인지 신체에 위해를 가하거나 성*행 같은 것은 하면 절대 안되며 대신 단단히 망신을 줘서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에 복귀가 불가능할정도로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 권경애 여사의 지시다. 헌데 일당은 이런일에 제법 도가트인 전문가(?)들이기라도 한지 씨익 웃어보이며 권경애 앞에서 답한다.
“ 걱정마십시오 권사님. 저희가 아무리 깡패기로...나쁜짓도 다 사람 가려가면서 합
니다. 무엇보다 저희도 감방가긴 싫은 몸들인걸요 ? 절대 신체적 위해나 성적으로
건드리는 그런짓은 안 하고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저희 방식대로 요절을 내놓겠습
니다. ”
“ 어쨌거나 실수없이 잘해야한다 알았지 !!! ”
“ 예, 명심하겠습니다 권사님 !!! ”
그러고보면 권경애를 ‘권사님’이라고 부르는 일당이다. 사실 이런식의 호칭을 주고받는 것은 교회다니는 사람들끼리가 아니면 잘 안 하는 행동인데, 그것도 ‘권사님’이란 호칭을 굳이 붙여가며 명한대로 행하겠다고 답하고 있는 무리들. 이쯤되면 권경애 여사라는 이의 사회적 지위가 대관절 교회 권사인지 아니면 조폭 두목인지 그 정체성조차 의심이 갈 지경인데, 그렇게 권사님(?)의 명을 받을어 일을 행하기로 한 5-6명의 무리들. 그리고 백주대낮에 하주희를 납치 봉고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끌고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간곳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남서부지역의 시골마을이었다.
사실 굳이 그렇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곳까지 주희를 데려갈 필요가 있는것인지는 좀 의아하긴 한데 여하튼 권경애 여사의 지시는 자기아들에게 꼬리를 친 하주희란 여자를 정상적인 사회복귀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으라는것이었다. 그리고 무리중에 아마 전남 남서부쪽 지리에 익숙한이가 있었는지 이런식으로 이죽거리며 말한다.
“ OO으로 가요 형님들. 거기가 원래 우리 외삼촌 사시던 고향이라 저 어릴 때 몇
번 가보았거든요. 그래서 그쪽 지린 제가 좀 익숙합니다 형님. 그러니 그리로 데려
가자구요. ”
어쨌거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면 그만큼 들킬위험도 적고 또 권경애의 지시마냥 하주희를 원래 살던 직장이든 거처든 돌아와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재개하긴 쉽지 않을만한 그런 먼곳으로 판단한것인지 그리로 가기로 결심한 일당들. 무엇보다 마취제 성능이 좋았는지 봉고차를 이용하든 뭘하든 어쨌든 대여섯시간은 걸릴 그 전남 남서부 시골마을로 갈때까지 주희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때쯤엔 주위는 사방이 어두컴컴했고 느낌에 어떤 창고같은곳이었다. 일단 마대자루에 넣어졌던 주희는 대충 풀려져서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일단 팔,다리는 여전히 묶여진 상태. 무엇보다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들로 인해 몹시 놀라고 겁에질려 있었다. 주희가 물었다.
“ 누...누구세요 당신들은 ? ”
“ 입다물고 조용히 해라 !!! ”
원래 권경애의 지시도 그와같았기에 일단 폭행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어보이는 이들. 허나 저마다 각목같은 것을 들고 주희를 실제 때리기라도 할것같은 기세로 나오는 이들의 모습에 주희는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달아나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용을 쓰기도 해보았다. 남자들이 막아보긴 했지만 주희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세자 일단 저만치 밀쳐버리긴 했다. 쓰러져 상처가 나며 피가났다.
“ 야 !!! 살고싶으면 쓸데없는 반항말고 아가리닥치고 조용히 있어. 우리 괜히 피보
고 싶은 그런 X들은 아니거든 이래봬도 ? ”
“ 호...혹시...권경애 여사 그분이 시킨거에요 ? 윤섭씨 어머니가 ? ”
아무래도 그런쪽으로 짐작이 갈 수밖에 없어 물어본 주희. 그러자 무리중 우두머리격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침을 한번 공연히 바닥에 탁 뱉어보고는 다가와서 주희의 턱에 손을 괴어보고는 괜시리 장난스레 흔들어보기까지 한다. 그러며 이렇게 말한다.
“ 우린 권경애 권사님 명이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
들이야 !!! 그러니 까불지마 이 아가씨야. 응 ? ”
역시 권경애 그 여자가 시킨거구나 하는 생각에 주희도 어떤 절망감에 빠지긴 한다. 그나저나 권경애가 교회다니는 사람이란 것은 주희도 대충 윤섭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교회 권사라는 사실은 그녀도 오늘 처음 알았다. 게다가 그런 사람이 이런 깡패조직까지 동원해 자신을 협박하다니. 더더욱 기가막힌일 아닌가. 헌데 대충 주희를 에워싸고는 이런저런 이죽거리거나 빈정거리는 말을 좀 더 내뱉으며 분위기(?)를 띄운 이들은 어디선가 미리 준비해 놓았는지 봉고차 안에서 술을 한바탕 꺼낸다. 대충보니 소주부터 시작해서 맥주며 중국술까지 오만 종류의 술이 다 모아져 있음이 한눈에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엔 일행중 한 남자가 주희의 코를 막고 자연스레 벌려진 주희의 입속에 술 한병을 털어넣는다.
“ 악 !!! 악 !!! 무슨짓이야 이게 ? ”
무슨 폭행을 하는것도 아니고 협박을 하는것도 아니고 사람을 이런식으로 괴롭히는 방법도 있나. 주희가 생각해도 기가막힐판인데 강제로 입안에 술을 털어넣으려 하자 주희가 반항을 하고 그런 주희의 뺨을 한 남자가 몇 번 때리기도 한다. 그 바람에 나는 피. 남자는 주희에게 이런식으로 말한다.
“ 입 다물고 잠자코 있으랬지 !!! 분명히 말하지만 우린 너 어떻게 안 해 !!! 그러니
괜한 봉변 당하기 싫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게 좋을거야 !!! ”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것인지. 주희로선 이 불한당들의 행동의 의도가 제대로 이해안가 그저 어이없기만 할 따름인데 남자들은 준비해온 술병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꺼내 술을 주희의 입안에 강제로 털어놓다시피 한다. 사실 갑작스럽게 술이 그것도 한꺼번에 입안으로 들어가는지라 몸이 무척 놀랐는지 주희는 몇차례 구토까지 했다. 허나 남자들은 아랑곳없이 주희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있는대로 그녀의 입안에 털어넣었다.
“ 악 !!! 악 !!! 이게 무슨짓이야 !!! ”
헌데 이어서 더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일당들이 주희의 하체를 벗기기 시작한 것이다. 주희는 이날 바지차림이긴 했는데 바지하며 팬티등 속옷까지 전부 벗겨버린 남자들. 물론 주희가 신고있던 스타킹까지 모두 벗겼다. 사실 주희는 이미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들어간 술로 이미 취기가 돌고있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인사불성이 되진 않은터라 남자들의 이와같은 행동에 도와달라며 있는대로 비명을 지른다. 허나 주희의 비명소리엔 ‘입닥치고 가만있으라’는 듯 남자의 억센 후려갈김만 돌아올뿐이다.
어느새 술이 있는대로 강제로 들어가져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진 주희. 게다가 아까 몇차례 얻어맞은 주먹질에 피가나 그것이 주희의 상의를 온통 범벅시켰다. 한편 주희의 벗긴 하의는 대체 어찌할참인지 돌려줄생각도 안하고 자신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바탕 장난을 쳐대더니 그것은 다 자신들이 타고온 봉고차안에 처넣다시피 했다. 그리고 하의가 다 벗겨진채 쓰러진 주희의 모습을 이번엔 카메라를 가져와 마구 찍어댔다. 이때는 아직 휴대폰이 보편화되기 전이긴 하지만 이 시대에도 아날로그 카메라 따위로 협박이나 장난을 칠 생각이 있을시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짓이긴 하다. 그렇게 시골 농협창고에 감금시킨 주희를 술을 잔뜩먹여 인사불성을 만들어놓고 하의는 다 벗겨버린뒤 그것을 카메라로 마구 찍어버리고 그렇게 ‘주희를 정상적인 사회복귀가 불가능할정도로 X신을 만들어놓으라’는 권경애 여사의 지시에 따라 이들 일당은 그와같은 행동을 이렇게 해버린 것이다. 어느덧 밤늦은 시간. 농협창고 한쪽에 인사불성이 되어버려 (하의는 벗겨진채로) 쓰러진 주희. 그런 주희를 놓아둔채로 일당은 차를 운전 창고안을 나와 유유히 자신들이 왔던곳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 세상에...어쩜 그렇게까지... ”
듣고보니 너무나 기가막힌일 아닌가. 아무리 아들 윤섭과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더라도 아무리 자기 아들 윤섭의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여자라도 그렇지 멀쩡한 한 인격체를 어쩜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을수가 있는지. 무엇보다 졸지에 그런 봉변을 당한 주희의 정신적 충격은 또 어땠겠는가. 그걸 생각해보면 막상 그런몸으로 시골 밭두렁에서 발견되고도 병원에서도 경찰조사에서도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주희의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을것같다. 무엇보다 그런 지경을 당한 주희를 생각하니 더더욱 친구가 걱정되어 미나가 다시금 말을 건넨다.
“ 주희야...헌데 그럼 이제 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
“ 헤어질거야 !!! ”
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한것인지, 혹시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나 그 30대 농촌총각집에 머물때부터 그런 고민을 하다 결심을 한것인지 아니면 서울행 기차를 타고 돌아가게 되면서 기차안에서 한 한두시간 상관에 그런 결심을 한것인지. 너무나 망설임없이 제법 단호하게 나오는 주희의 어조에 미나가 사뭇 믿겨지지 않을 지경인데, 주희는 어쨌든 나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민하고 생각한게 많았던 듯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쉰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런 상황에서 이윤섭 그 사람과의 관계를지
속하거나 결혼을 밀어붙인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뿐만 아니라 설
사 어떤 드라마나 영화의 한창면처럼 극적으로 결혼허락을 받는다해도 나한테 이
런짓까지 벌인 그런 사람들과 이후 원만한 가족관계가 지속될수 있을지...그런걸 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니 이대로 윤섭씨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는 것 아무리 생각
해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
하긴 솔직히 그것은 주희의 말이 설득력 있다. 어느어느 흔한 재벌2세와의 사랑놀음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선 남자쪽 집안에서 결사반대를 하며 심지어 두사람의 관계를 깨버리려고 오만가지 악행을 저지르다가도 결국 궁극에 가선 결혼등의 해피엔딩(?)으로 적당히 그간의 갈등을 봉합하며 화합(?)으로 마무리하곤 하는데, 현실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가능키나 한 일일지는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근본적으로 어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걸 막는 문제든 자녀의 혼사를 방해하는 문제든 그런걸 막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무슨짓인들 벌이는 그런 사람이라면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여부와는 별개로 근본적인 천성이나 사고방식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하루,이틀도 아닌 앞으로 수십년 세월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게 과연 가능한일일까. 드라마야 어떻든 그런식으로 적당히 그간의 갈등을 봉합해버리는 마무리를 해버리지만 현실이라 가정할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따지고보면 이윤섭과의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주희의 결심이 오히려 현명하고 훨씬 합리적인 판단이다. 아무리 주희가 고아출신의 가난한 여자라도 그렇지 아무리 그런 여자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교제하는게 못마땅해도 그렇지 그것도 심지어 정상적인 사회복귀가 불가능하도록 아주 엉망을 만들어버리라는 그런 지시를 내린 여자. 설사 그렇게 납치한 불한당들이 주희를 전남 남서부의 시골마을 농협창고에 가둬버리고 술을 마구 먹이고 하체를 벗기는 린치를 가하고 심지어 그런 모습을 사진촬영까지 한 것은 권경애라는 여자가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닌 불한당들 자체적으로 세운 작전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그런짓을 벌이는 자들에게 그런 지시를 내려 주희를 그 지경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한 여자도 분명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한 여자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러니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이윤섭이란 그런대로 잘나가는 중견기업 가문의 3대독자와의 관계를 지속하느니 헤어지는게 낫다. 주희의 결심은 확실히 잘한것이라 봐줄만한 일이다. 허나 미나는 여전히 걱정되는 문제가 남아있는지 다시금 말을 건넨다.
“ 헌데 그럼 너 거처는 앞으로 어떡할 생각이야 ? ”
현재 주희는 서울 강서지역의 한 빌라에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상실에서 일한지 대략 3년여만에 얻게된 전셋집이다. 어쨌거나 자의로 구하게된 집이지 무슨 이윤섭이나 권경애등의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니 그네들이 주희에게 그 집에서 나가라 마라할 권한은 없다. 허나 주희나 미나가 걱정하는 것은 결국 권경애든 또는 그 권경애란 여자가 보낸 사람들이든 그런이들이 주희의 집까지 찾아와 또 어떤 협박이나 위해를 가하진 않을지 하는 그런 문제다. 그래서 미나도 일단 당분간은 주희를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킬 생각은 하고있던중이다. 권경애든 이윤섭이든 어쨌든 미나가 현재 사는집까진 알수 없을것이라 생각해 그곳이 안전할것이라 판단을 한것이고 주희도 일단 그 점은 현재 미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 어쨌든 당분간은 니네집에 머물고 있을께. 그리고 다음일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
지 뭐. ”
“ 직장은 ? ”
직장까지 굳이 옮길 필요는 있을까 ? 일단 주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주로 의상실등에서 일해왔으며 나름 이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있는 실력자이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다른 의상실로 옮기거나 할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녀가 일주일 넘게 실종상태였으니 그녀가 지금껏 일해오던곳도 비상이 걸려있는 상태다. 여하튼 주희가 무사히 살아돌아왔으니 그녀가 일하던 의상실에서도 사실을 알면 기뻐할것이고 직장에 복귀하는것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나 결국 우려하는 것은 권경애 그 여자의 해꼬지 문제. 물론 주희의 직장도 누구 도움을 받아 그런곳에 취직을 하게된것도 아닌 주희 자신의 실력과 능력으로 그리된것이고 이윤섭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기업체도 의류라던가 그쪽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업체이니 하물며 그런 기업체 사장의 사모님에 불과한 권경애가 그런곳까지 찾아와 주희를 해고시켜라마라 한다면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비상식적인 일이다. 허나 이미 작정하고 윤섭과 주희를 갈라놓기로 작정한 여자가 그보다 더한짓인들 못하겠는가. 무엇보다 이미 불한당들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을 때 ‘하주희란 계집을 (폭행등 신체적 위해만 가하지 말고) 정상적인 사회복귀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요절(* 허리가 꺾일 지경)을 내놓아라’고 말했던 권경애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런 주희가 집으로 돌아오는것도 직장에 무사히 복귀하는것도 권경애 입장에선 분명 용납 못할일. 이래저래 앞으로의 주희 거취를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 두 사람의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거듭 주희는 윤섭과의 결별을 결심한 듯 이와같이 말한다.
“ 생각해보면 나...고아로 자라서 업신여김과 놀림도 좀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고아원 규칙대로 사회를 나와야하긴
했지만...그래도 누구 하나 도움받지 않고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왔어. 모든게 다 나
스스로의 의지대로 해낸일이야. 어떻게보면 나이 20대 중반에 만난 이윤섭이란 남
자의 존재 자체가 내게 오히려 훼방꾼이었을뿐...그렇지 않아 ? 이윤섭이만 만나지
않았어도 내가 왜 이런일까지 당해야했겠니 ? ”
막상 그렇게 말을하는 주희는 새삼 북받쳐오르는 감정이 있는지 다시금 흐느끼기까지 한다. 미나가 그런 주희를 진정시키며 달래고 주희는 거듭 윤섭과의 이별 결심이 확고한 듯 그런 의지를 밝힌다.
한편 그러는 사이 기차는 어느덧 서울 가까이에 도착하고 있었고 아직 밤 열한시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영등포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구로쪽으로 가 거기서 광명으로 가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런식으로 광명에 미나가 사는 월세방에 오게된 주희. 헌데 그렇게 도착한 월세방에는 미나외에 또다른 남자가 한명 더 있었다. 사실 그는 현재 미나와 동거중인 그녀와 비슷한 연배의 안병규란 남자다.
“ 주희씨... ”
일단 안병규라는 이도 주희와는 면식이 있는 사인지 그렇게 그녀를 알아보며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주희의 상황을 일단 미나로부터 대충은 들어 알고있는터. 병규도 주희를 위로하는말을 건넨다. 무엇보다 밤늦은 시간이니 그만 씻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그러다 미나가 주희에게 전해야할 말이 있는 듯 그녀를 다시 불렀다.
“ 아, 참 그리고 주희야... ”
“ 왜, 미나야 ? ”
무슨 대수로운일은 아닐거라 생각한 주희. 미나는 미나대로 막상 이런 상황이라 공연히 착잡해지는지 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허나 이렇게 잠시 함께 살게된 친구가 알건 알아야겠는 듯 이와같이 말을한다.
“ 사실 너한테 그러고보니 깜빡하고 기회를 얻지못해 말을 못했는데 실은 나 아이를
가졌어. 6주째야. ”
이걸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미나 역시 주희처럼 집안 반대에 시달리는 교제를 하는중이었다. 다만 미나는 주희처럼 고아출신은 아니고 중학교때 부모님을 잃은 소녀 가장이다. 미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미나 밑으로 초등학생인 여동생과 남동생 두명이 있었는데 미나는 그런 두 동생을 중학교때부터 책임지고 돌봐온터다. 그렇게 하나는 고아출신, 하나는 소녀가장. 그렇게 어떤 동질감이 싹터 고등학교때부터 절친한 사이가 되어왔던 것 같은데 주희의 경우도 그렇지만 미나의 경우에도 공교롭게도 남자쪽 부모님이 현재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중이다. 헌데 그런 상황에서 주희와 윤섭의 경우와는 달리 미나와 병규의 경우엔 병규가 아예 집을 나와 미나와의 동거를 강행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동거에 들어간지 대략 두어달만에 미나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미나가 자신의 임신사실을 안 것이 주희의 납치사건이 있기 직전의 일이라고 한다면, 이후 주희의 납치소동으로 그녀의 소식을 알수 없었던 것이 대략 일주일정도 그러다 미나가 뜻밖에 전남 남서부지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녀를 데리러 내려갔다 온것이니 일주일동안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봉변을 당한 주희를 안정시키며 데려오기까지는 그런 이야기를 할 겨를이나 상황이 못되었을수도 있다. 따라서 이제야 미나가 자신의 임신사실을 주희에게 말해주는 것은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다. 다만 여하튼 주희로선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주희나 미나나 사귀는 남자와의 결혼문제로 남자 집안의 반대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그 몹쓸짓을 당한 주희는 윤섭과 헤어질 결심을 한 반면 미나는 임신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주희로선 괜시리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허나 여하튼 절친한 친구의 임신사실에 뭐 어쩌겠는가. 담담하게 축하인사를 건넨다.
“ 축하해 미나야... ”
축하인사를 하는 쪽이나 받는쪽이나 대놓고 기쁜 기색을 드러내진 못하는 상황. 미나도 그저 축하를 건네주는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뿐이다. 다만 앞으로 미나는 또 어찌할것인지. 다만 이날은 너무 밤도 늦었고 피곤하니 그쯤에서 휴식을 취한뒤 다음날 미나가 퇴근을 한뒤 저녁식사때 주희가 그 문제에 대한 걱정을 건넸다.
“ 일단 저희로선 이렇게 아이가 생긴이상 더 물러날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것 아닙니
까. ”
“ ...... ”
“ 어쨌든 부모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끼리 밀어붙인 동거. 그리고 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인
정하시고 저희를 받아들여주시기만을 기다리는수밖에 없다 그 생각을 하는중입니
다. ”
그렇게 나름 적극적으로 당당하게 자기 의사를 밝히는 안병규의 모습. 적어도 주희의 남자 이윤섭과는 뭔가 다른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비록 주희가 윤섭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하더라도 윤섭이 만약 못헤어진다고 버티거나 이렇게 나온다면 일은 또 다르게 전개될수 있는일 아닌가. 헌데 윤섭은 아무리 그래도 자기 여자가 그런 봉변을 당한일 – 하다못해 납치사실 정도라도 – 을 전혀 모르지는 않을터인데 여태까지 무슨 연락도 안부소식도 없다. 생각보다 무책임한 남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남자라면 더더욱 헤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주희다. 게다가 병규의 부모님의 경우 일단 두 사람 결혼을 반대한다는것에선 윤섭 부모님의 경우와 별반 다를것이 없지만 그래도 둘을 갈라서게 하기위해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하지는 않는것만 봐도 그래도 성품이 윤섭의 부모보단 조금 나은분들이 아닐까 그런 지레짐작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윤섭과의 관계를 단념하기로 할 결심을 한 주희와 달리 자신들의 이런 상황을 부모님이 받아들이시기만을 기다리겠다는 두 사람의 태도로만 봐도 적어도 미나와 병규쪽은 주희쪽과는 달리 그래도 어떤 희망을 조금은 둘만한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봐야하는 경우 아닐까. 이래저래 주희의 마음속은 여전히 착잡해질 수밖에 없다.
“ 헌데 주희씨...몰랐었는데 양손잡이셨어요 ? ”
그렇게 주희가 미나와 병규의 월세방에 임시기거를 하면서 직장은 출퇴근을 하며 생활한지 대충 일주일여 정도가 지났다. 그러고보면 납치사건이 있은지는 한 보름 이상이 지났다고 봐야할텐데, 사실 병규야 주희와 면식은 있어도 10년 절친인 미나와 달리 주희의 사는 모습이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는 아직 그리 많지 않았을 것 아닌가. 헌데 이렇게 한집에서 살게되면서 그전엔 미처 몰랐던 주희의 습관이나 버릇들을 관찰하게 된 병규다. 어쩌면 10년지기 미나가 오히려 평상시엔 그런걸 별 신경쓰지 않았기에 미나조차도 자신에게 일부러 말해주진 않았던것일수도 있는데, 새삼 주희가 양손잡이인 것을 발견한 병규가 그와같이 묻자 주희는 살짝 무안해지는 듯 한번 씨익 웃어보이고는 답한다.
“ 뭐 어릴때부터 어떻게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어요. 오른손이든 왼손
이든 그때그때 편한손을 쓰다보니까...그걸 뭐 누가 일부러 지적하거나 놀리는
사람도 없었고...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자리잡아갔나봐요. ”
오른손잡이,왼손잡이 문제를 선천성으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어릴 때 습관을 잘못들인 탓으로 봐야하는지도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어오기도 했지만 – 여하튼 지금은 유전으로 보는쪽이 맞다는게 정설인 듯 하다. - 대체로 완고한 집안에선 왼손으로 수저를 들거나 하는 아이들을 꾸중을 해서라도 고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30-40년전까지만 해도 제법 있었던 나라다. 허나 주희야 고아원에서 나고 자랐으니 오히려 그런곳이라면 – 적어도 그런 유교적 전통문화나 가풍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란 것 아닌가. - 그런 습관을 일부러 지적을 하거나 하진 않았을터이고 그래서 편한손을 그냥 쓰다보니 양손잡이로 자리잡아간 것 같다는게 주희의 설명. 여하튼 병규 입장에선 아직 지금까지 흔하게 본 모습은 아니라서인지 – 가끔 프로야구에서 좌투수나 좌타자를 보는 경우라면 모를까 – 신기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되려 10년지기 미나가 고아출신인 주희는 오히려 감싸주고 위해주며 살다보니 그런걸 굳이 문제삼거나 지적을 하진 않았었는지 여하튼 병규에 의해 새삼 목격된 주희의 양손잡이 습관인 것이다. 한편 주희의 이채로운 습성이랄까 특성은 또 하나가 있었다.
“ 근데 주희씨는 김치볶음밥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 ”
어쨌든 이렇게 미나와 함께 살면서 다니던 직장은 계속 출퇴근을 하면서 살았던 주희. 무엇보다 주희의 직장은 미나나 병규의 일터보다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좀 있어서 밤늦게 귀가하는일이 많았다. 그래서 주희는 미나나 병규에겐 저녁은 자신이 알아서 할터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며 미리 연락을 주던가 했고 그리고 밤늦게 퇴근하면 혼자 김치볶음밥이라도 해먹는 것이 종종 병규의 눈에 뜨였던 것이다. 그냥 밤늦게 다른 식구들에게 폐끼치기 싫어서 간단히 그렇게 해먹는가보다 하기엔 그것도 나름 취향이라면 취향이라고도 볼수 있는 모습. 주희의 설명이 이와같았다.
“ 아, 그것도...뭐 어떡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거에요. 원래 고아원에서 자
랄때야 그냥 고아원에서 주는 밥을 먹으며 자랐고...고아원을 나와서 혼자 살때는
무엇보다 일 때문에 늦게 퇴근했을때나 또 휴일에도 혼자 밥먹을 때 뭐 특별하게
해먹거나 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김치주문해 시켜서 거기 고기라도 대충 볶아서 해
먹다보니 그게 습관이 되었나봐요. 라면도 가끔 끓여먹긴 했지만 라면도 너무 매일
먹긴 그렇잖아요. 그래서 간단히 뭐라도 좀 해먹으려고 하면 김치볶음밥을 해먹던
게 자연스레 습관이 되었지 뭐에요. ”
역시 혼자 살면서 식사해결을 위해 하던 것이 자연스레 습관으로 굳어졌다는 주희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어떤 유전적 요인으로 봐야할지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할 터인데 여하튼 그렇게 미나와 병규의 경우엔 주희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주희의 생활습관을 그렇게 가까이서 관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다행히 미나와 병규의 월세방은 방이 두 개라 주희는 미나와 병규가 함께 쓰는 방 외에 별도의 다른 방을 쓰는중이었다.
- 3회에 계속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