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젊은 새엄마 3
시간이 계속 흘러 지연이 결국 출산을 해야하는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이쯤되면 왜 아이를 지울 생각을 하지 않았나 의아해할만도 한데 지연은 여하튼 한국에서 대체로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여자고 그녀 역시 천성은 착하고 순한 여자였기 때문에 아이 아빠가 누구건간에 차마 아이를 지우거나 할 생각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속수무책으로 출산을 할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무렵 윤지호 사장으로부터 도현에게 자신의 일을 다시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아 지연은 도현이 부재한 상황에서 메리송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뱃속의 아이가 쌍둥이임을 확인한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지연은 이래저래 머릿속이 더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진통이 시작되었다. 지연은 분만실로 옮겨졌고 메리송은 그녀대로 도현에게 연락을 취해 그가 급히 차를 타고 산부인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편 아이를 분만하면서 먼저 충격을 받은 것은 의료진. 어쨌거나 산모가 동양인이고 게다가 입원기록에도 ‘한국계’라고 분명히 적어놓았는데 아이가 흑인인 것 아닌가. 혼혈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남편이 흑인이 아닌 이상 발생할 수가 없는 상황. 분만작업이 모두 끝나고나서 일단 의료진은 지연을 회복실로 보내고 보호자격으로 함께 온 메리송을 은밀히 불렀다. 메리송은 지연의 남편도 당연히 ‘한국인’이라며 사실대로 답했고 남편이 일 때문에 잠시 다른곳에 가 있는데 자신이 연락을 취해서 현재 오는중이라고 사실대로 답했다. 의료진은 더더욱 골치가 아파 머리를 싸맸다. 지연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인이라는 남편에게 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줘야하나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일단 메리송에게 산모의 사생활이나 이런것들에 대해 혹시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는 그녀는 같은 한국계인 편의점 주인이라 가벼운 말동무정도나 하는 사이였고 남편이 부재한 상태에서 그녀의 입원을 도와준것이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힐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연의 과거나 사생활 같은 것은 자세히 아는바가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일단 의료진은 지연은 일반 환자 병동으로 옮겨 잠시 쉬게하고 잠시후 연락을 받고 달려온 도현을 담당의사가 별도로 불러 잠시 면담시간을 가졌다. 도현의 얼굴을 아는 메리송이 그렇게 도현을 의료진에게 안내,소개했으니 자연히 그렇게 인지하게 된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의사가 ‘원래 산모의 경우 보호자와 별도의 면담시간을 가져야한다’는 식의 핑계를 댔다. 어차피 임신,출산에 관한 문제는 남자는 상식이 적은 경우가 많으니 적당히 그런식으로 둘러대는게 가능했다. 그렇게 도현을 부른 담당의사. 일단 일문일답의 단답형 질문을 건넸다.
“ 성함은 박도현. 그리고 한국계. 나이는 37세. 맞습니까 ? ”
“ 예, 그렇습니다. ”
신상명세에 도현이 적은 그대로 담당의사가 물은것이고 의사의 물음은 이어졌다.
“ 부인과는 결혼하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 ”
“ 카나다로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혼인신고를 올린것이니 일단 최소한 1년은 넘
었습니다. 거의 1년 반 가까이 되네요. ”
지연과 함께 시도한 카나다로의 도피. 그리고 서류정리가 원만히 끝나지 않은 은정과의 이혼문제를 은정이 뒤늦게 도착해 따져서 그제서야 해결을 하고, 이후 잠시 서민형 빌라로 거처를 옮겼다가 윤지호 사장의 도움으로 한국인,흑인등 여러인종이 밀집해 살게되는 지역에 편의점을 내 살수있을때까지 그 정도의 시간. 무엇보다 혼인신고는 편의점을 내고 여러 가지로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고나서 할수 있었지만 여하튼 서류관계상의 혼인신고는 그때 한 것이니 정식 서류에 접수된대로 있는 그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물음이 계속되었다.
“ 부인과 관계는 대체로 원만한 편이었나요 ? ”
“ 예, 그렇습니다. ”
“ 부인과 크게 다투거나 불화같은 것은 없었고요. ”
“ 전혀 그런일은 없었습니다만... ”
일단 도현 입장에선 의사가 묻는 그대로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는데 헌데 단순히 산모의 보호자에게 묻는 질문이라고 보기엔 다소 과하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다. 일단 의사의 물음이 계속되었다.
“ 실례가 안된다면 부인과 결혼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정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
실수 없을까요 ? ”
“ 그게...저어...그러니까... ”
다른건 몰라도 자신이 한국에서 유명 톱가수였던 과거는 숨기고 싶어하는 지연이 아닌가. 물론 카나다의 평범한 산부인과 의사가 90년대 중반경의 한국의 유명한 여고생 가수를 알고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허나 어쨌든 이래저래 아내의 모든 상황을 배려해 사실관계를 살짝 비틀어 답할 수밖에 없게된 도현. 그의 말이 이어졌다.
“ 아내와는...그러니까...저는 한국에서 밤무대 연주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아
내가 일하면서 여러 가지로 힘들어 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제가 종종 위로
해주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가급적 한국을 떠나 자신을 알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런 먼곳에서 살기를 바래서...그래서 카나다로 건너와 살
게 된것이고요. ”
“ 가만...그러니까 부인이 원래 밤무대에서 일하던 분이었다 그 말씀이신가요 ? ”
도현이 자신을 ‘밤무대 연주자’ 출신이라고 밝히면서 지연을 ‘일하다가 만났다’고 답하니 의사는 지연의 전직을 자연스레 그런식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의사가 파악하게 된 지연의 과거나 정황은 이와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의사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러니까...밤무대에서 일하던 부인과 사귀는 사이가 되어 이후 한국을 떠나 카나
다로 이민을 와서 살 생각을 하셨다 그 말씀이시군요. ”
“ 네, 뭐 대체로... ”
지연의 전직을 한국의 유명 톱가수가 아닌 ‘밤무대 출신’으로 의사가 인지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일단 사실관계가 그리 크게 다르진 않으니 도현은 시인하는답을 할 수밖에 없었고 허나 의사는 지연의 그와같은 전력(밤무대 출신 ?)을 주목하게 된 것일까. 잠시 한숨을 내쉬며 뭔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번엔 이런 질문을 건넨다.
“ 그러니까...한국에서 생활이 힘들어 이 먼 카나다까지 이민을 와서 살 생각을 하셨
다...그 말씀이시군요. 헌데 이곳 카나다에서도 정착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
“ 뭐 초반엔 좀 힘들기도 했지만...제가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사장님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
자연스럽게 도현은 카나다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윤지호 사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지금도 가끔씩 윤사장의 일을 도와주기위해 집을 장시간 비우는 일이 종종 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물었다.
“ 그러니까...그 윤지호 사장이란 분 일을 도와주느라 집을 종종 비우셨다 그 말씀
이시군요. ”
“ 네, 지금은 그래도 편의점을 하면서 어느정도 무난하게 정착을 하는 중이긴 합니
다만...솔직히 처음에는 한국에서 카나다까지 와서 이곳 사정에 대해 아는것도 거의
없어서 취직도 쉽지 않았고...그래서 윤사장님의 일이라도 도와주면서 그렇계 생계
수단을 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 그러니까 정착 초기엔 님의 정착에 도움을 주신 윤지호씨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집을 자주 비우셨다...그 말씀이시군요. ”
“ 예, 그건 그렇습니다만...자...잠깐만요 선생님. 그러지말고 사실대로 말씀을 해주시
죠. 도대체 집사람에게 무슨일이 있는겁니까 ? ”
처음엔 도현은 의사의 면담이 그저 산모 보호자이자 남편인 자신의 신상이나 산모의 건강상태나 유의사항 이런 것을 확인하고 전해주는 그런 성격의 면담인가 생각했다. - 무엇보다 남자는 근본적으로 산부인과 찾을일이 그리 많지 않으니, 이런식의 둘러댐에 쉽게 넘어갈수가 있다. - 허나 차츰 질문내용이 이상해지고 있지 않은가. 가령 부인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혹은 어떻게해서 만나 결혼을 했는가 하는 산모나 태아의 건강문제나 이런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듯한 질문이 계속 나왔고 자연스레 도현이 한국에서 밤무대 연주자 전력이 있었거나 혹은 카나다로 처음 와서 한동안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윤지호 사장의 일을 도와주며 생계를 유지했기에 집을 비우는일이 많았다는등, 자연스레 그간에 있었던일들을 사실대로 밝힐 수밖에 없는 질문이 이어졌고 그러자 담당의사가 밤무대 연주자, 카나다로 이주해와선 집을 비운일이 많았다는점등 이런 사실에 주목을 하는 느낌이라 도현도 결국 자연스레 의심이 안 들수가 없었던 것이다. 의사는 결국 어차피 사실을 말해주어야할 상황임을 깨닫고 모든 사실을 다 밝히고 말았다. 다름아닌 지연이 흑인 혼혈 쌍둥이 남자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도현은 앞뒤 재볼 것도 없이 당장 지연이 회복을 위해 쉬고있는 병실로 달려들었다. 사실 이때 지연도 담당 간호사로부터 자신이 흑인 혼혈아를 출산한 사실을 귀띰은 받았기에 망연자실한 상태로 있었다. 사실 자신이 흑인 불한당 일당에게 겁탈을 당해 임신이 된 것은 지연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 않는가. 다만 도현이 윤지호 사장의 일을 도와주러 떠나기전에 두 사람이 성관계를 가진 사실은 있기에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아도 도현의 아이일 가능성에 실날같은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던게 지연의 심리상태였다. 허나 결국 흑인 혼혈 쌍둥이 출산 사실을 알게된 지연. 사실 지연 입장에선 어느정도 예견된일이긴 하니 그것도 뜻밖에 쌍둥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리 놀랄일도 아닐 것이다. 일이 이렇게되자 지연도 망연자실해 체념상태가되어있던 것이다. 이제 남편 도현이 아는 것은 시간문제고, 도현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것인가. 그걸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햐질 지경이었다. 한편 도현을 대신해서 지연을 입원시키고 그녀를 돌봐주었던 한국교민 메리송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길없어 무척이나 놀라고 어리둥절해하는 중이었다. 일단 지연에게 ‘대체 어떻게 된거냐 ?’고 물어보긴 했는데 지연은 망연자실한 가운데서도 말없이 흐느끼기만 할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연의 태도가 이와같으니 메리송도 답답해질 지경이 되기까지 했는데 도현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온 것이 바로 그때의 일이다.
“ 너...뭐냐... ”
‘벌컥’ 병실문을 열고 안으로 들이닥친 도현. 지연을 한참을 노려보는 듯 하며 단번에 그녀를 어떻게 할것만 같은 기세로 달려들었다. 메리송이 어떻게든 만류해보려 했지만 그런 메리송마저도 밀쳐버리고 지연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흔드는 도현. 이미 산모의 건강상태고 뭐고 그런걸 신경쓰거나 할 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닐 수밖에 없는 도현의 모습이다.
“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구 ? 어떻게 니가 껌둥이 아기를...어떻게 니가 흑인 아이를
낳을수가 있느냐구 !!! ”
정확하게 동양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봐야할것이지만 그리고 껌둥이니 뭐니 이런게 흑인 비하 문제가 생길수 있는 발언이긴 하지만 지금 도현이 그걸 따지고 판단할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니지 않는가. 불과 얼마전까지 아니 윤지호 사장의 일을 도와주러 만삭의 지연을 두고 떠날때까지만 해도 아니 조금전 의사가 잠시 면담을 좀 하자는 이야기를 했을때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그런 엄청난 사태가 도현앞에 들이닥친 것이다. 지난 열달동안 지연의 뱃속의 아이가 영락없이 자신의 아이일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솔직히 자신들과 똑같은 피부색의 아이를 낳은뒤 시간이 지나 유전자 검사라던가 이런걸로 자신과 닮지 않았다거나 그런 의심을 해서 자기 아이가 아님을 알았을때도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텐데 도현의 경우엔 어쨌거나 그런 곡절을 겪으며 힘들게 결혼한 젊은 아내 지연이, 영락없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을것이라고 추호의 다른 의심도 한바없는 지연이 흑인혼혈 쌍둥이를 낳았다니. 지금 도현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사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지연으로서는 모든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 외엔 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도현의 닦달이 워낙 심해 차마 그런 말은 꺼낼 상황조차 되지 못했다. 도현은 지연을 붙잡고 그녀의 멱살을 마구 쥐고 흔들며 고래고래 있는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거냐구 ? 니가 어떻게 흑인 아이
를 낳아 ? 니가 어떻게 검둥이를...나하고 결혼해서 내 아이를 낳아야 정상인 니가
어떻게 흑인 아이를 낳는 일이 발생할 수가 있냐구 !!! 도대체 나 모르는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 ”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막히고 황당할 수밖에 없는 박도현의 심정. 옆에서 메리송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수가 없어 일단 도현을 만류해보려 하지만 도현의 정신상태는 이미 메리송 정도가 진정시킬수 있는 상태를 넘어서고 있었다. 정말이지 미쳐 돌아버려 무슨 극단적인 시도라도 하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봐야할 지경인 것이 지금 박도현의 심리상태라고 봐야할 것이다. 옆의 다른 병실에까지 다 들릴 지경으로 있는대로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도현. - 정말이지 도현은 한국말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외국인이 분명할 이웃 병실의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도현과 지연의 병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할수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봐야할판이다. 여하튼 옆 병실에서 계속 소란이 들리니 옆 병실의 다른 환자 보호자나 간호사가 와서는 ‘조용히 해달라’는 주의를 줄 지경이었다. 그러고보면 옆 병동에 입원해있는 다른 환자들도 결국 지연처럼 이제 막 갓 출산을 해 안정이 필요한 젊은 산모들일 것 아닌가. 그러나 정상적인 다른 산모나 보호자 일행과는 달리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 되어버린 도현. 다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봐야 결국 자신의 아내가 흑인 혼혈아를 낳았다는 그런 망신스러운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병실의 환자나 보호자까지 알게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던가. 그래서 여기서 있는대로 소란피워봐야 오히려 자신만 더 망신당할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도현이 지연에게 차분히 이렇게 말했다.
“ 일단 집에가자. 집에가서 이야기하자. ”
“ 여...여보... ”
“ 여보라고 부르지도 마 !!! 어디서 뻔뻔스럽게 나한테 니 X이 감히 여보라는 소리
가 나올수가 있어 !!! ”
지연에게 그야말로 무슨말이라도 꺼냈다간 당장 어떻게 할것만 같은 기세로 나오고 있는 도현. 다만 이후의 일은 집에가서 상의를 하는게 피차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듯 병원에서 소란피워봐야 이 망신스러운 상황만 보다 많은 다른 환자나 보호자 혹은 병원 관계자들만 알게될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도현이기에 집에가서 차분히 다시 상의해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메리송은 그녀대로 어떻게든 도현을 진정시켜보려하고 다만 지연이 이렇게되기까지의 경위는 아직 메리송에게도 설명을 안한 상태라 그녀 역시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것인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저 혼란스러워 하고만 있었다. 다만 지연의 그렇게 출산한 흑인혼혈 쌍둥이 사내아이 둘은 병원에 내팽겨치고 나올수도 없으니 일단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심을 했다. 헌데 막상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면 그 뒤의 일은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현은 답답해지기만 했다.
“ 이혼하자 !!! ”
며칠동안 도현은 지연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도현의 판단력의 범위내에선 지연이 어디 정말 흑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라도 자신몰래 갖지 않는한 결코 벌어질수 없는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따라서 아내에겐 더 이상 무슨 질문도 건네지 않고 말도 건네지 않은채 혼자 머리를 끙끙 싸매고 고민하고 있던 도현. 차마 너무 망신스러워 지금까지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도현의 유일한 의지처인 윤지호 사장한테도 아직 이 사태를 설명하지 못한채 그저 혼자만 고민을 거듭하다 지연에게 이렇게 통보라도 하듯 말한 것이다.
“ 니 X 하곤 더 이상 말섞고 싶지도 않고 얼굴도 보고 싶지 않으니 그만 이혼하자.
알았어 ? 괜히 일 시끄러워져 피차 망신당하는것보단 그렇게 깔끔하게 헤어지는게
너를 위해서도 훨씬 나을거야. 안 그래 ? 한때 그래도 한국에서 잘 나가는 여고생
출신 톱가수 이지연이 카나다에서 흑인 혼혈아 쌍둥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보단 차라리 그게 낫지 않겠어 ? 안 그래 ? ”
사실 도현 입장에선 이지연이란 여자한테 철저히 속고 기만당한 기분이라 그걸 더 참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적어도 지연이 한창 한국에서 가수활동을 하던 현역 시절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지연의 모습은 한없이 세상물정 모르고 천진난만해 보이기만 하던 그런 여리고 착하고 순수한 그런 소녀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밤무대 연주자로 일하다 그런 인연으로 지연을 알게되어 가까이 했을 때 느낀 지연의 이미지도 방송을 볼 때 느꼈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무렵 지연은 언제 하루아침에 추락할지도 모르는 스타의 위치, 그리고 그녀와 관련해 항간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해괴한 소문들, 무엇보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도없는 스케줄을 소화해야하는 그런 바쁜 톱가수로서의 생활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생활을 다 접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곳으로 가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단둘이만 조용히 살고 싶다는게 그게 지연의 그 당시 바램이었고 소망이었다. 그야말로 도현 입장에선 한없이 여리고 순진하고 겁까지 많아보이는 그런 자신이 한없이 감싸주고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싶었던 여자가 이지연이란 여자였는데, 헌데 그런 여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지도 모르는 흑인 남자와 그런 사이였다 ? 그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이지연이란 여자의 실체에 단단히 속은것만 같아 그것이 너무 화가나고 분해 견딜수가 없는 심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현의 이혼요구는 바로 그와같은 고민의 시간이 거듭되다 내린 결론인 것이다.
“ 여보...그게 아냐. 그런게 아니라니까. 제발 믿어줘. 사실은...사실은... ”
결국 지연은 모든 사실을 자백하는수밖에 없었다. 허나 막상 지연으로부터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안 도현은 오히려 더 기가막힐 수밖에 없었다. 아니 기가막히다기보단 이제야 이런 말을 하는 지연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도현의 반응은 이와같았다.
“ 너 지금 장난하냐 ? 나 갖고 노는거냐구 !!! ”
“ 여보... ”
“ 여자가 임신을 하는 기간이 어디 하루,이틀이더냐 ? 장장 열달이다 열달 !!! 사실
상 1년 가까운 시간이라고 봐도 다름없는 그런 기간인데...그 긴시간동안 아무런 말
도 하지 않고 있다가 뭐 ??? 이제와서 흑인 불한당들한테 뭘 당해 ? 지금 날더러
그걸 믿으라는거야 ? ”
도현은 정말 지연이 그런 성폭행을 입어 임신이 된것이라는 실제 있었던 사실(!) 보다는 오히려 지연이 그런 사람과 불륜관계였더는 쪽의 의심으로 확증을 굳히고 싶은것일까. 그러고보면 오히려 도현 입장에서 더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정황이 있다. 도현의 말은 이어진다.
“ 내 그러잖아도 그때...윤지호 사장 일 도와주고 열흘만에 집에 돌아왔을때도 그때
도 분명히 말했다. 무슨일이 있었던거냐구 ? 그 휑해있던 매장분위기 하며...헌데
그때는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그날일을 그냥 넘어가달라던 니 X이...뭐 ? 이제와
서 뭘 당해 ? 성폭행 ? 그런 이야길 이제와서 하는걸...날더러 지금 믿으라는거야
!!! ”
하긴 아무리 여자 입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해도 그런 봉변을 당하고도 열달동안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남편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 여자 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남자 입장에선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어쨌거나 그런 강도사건에 성O행까지. 이쯤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도 남았어야 하는일아닌가. 단순히 무슨 저가의 물품 한두개 훔쳐간 좀도둑 수준도 아닌 도현과 지연 내외 편의점 매장 물건을 대략 3분의 1 가까이 털어가고 게다가 가게주인인 지연까지 그 지경으로 만든 어느나라에서든 정말 끔찍한 ‘강력범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사건이다. 헌데 그걸 그때는 그냥 넘어가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더니 이제와서 그런 봉변을 당하고 임신이 되었던것이라니. 도현은 오히려 지연의 이제와서 하는 변명을 더 받아들일수도 믿을수도 없다는 듯 나오고 혼자 다시 장시간 고민을 하다가 나온 도현의 결심은 이와 같았다.
“ 떠나라... ”
“ 여보... ”
결국 이혼 결심에는 변함이 없는것일까. 성폭행 피해를 입었건 뭘했건 그렇게 생긴 아이를 지울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놓아두었다가 – 게다가 그 열달동안 도현은 지연의 뱃속에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헌데 그러다 이런 일을 당했으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도 이보다는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실제 지연이 임신을 한 정황과 진상은 어찌되었던간에 도무지 이런 상황을 도현은 받아들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지연의 처지를 조금은 감안해준 선심이라도 쓰듯 도현은 이렇게 말한다.
“ 한...한달정도 시간말미를 줄터이니 그 사이에 니 거처를 알아서 마련하든 뭘하
든 그렇게 알아서 떠나. 내 말 무슨말인지 못알아듣진 않겠지 ? ”
“ 여보... ”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수 있겠냐는 듯 억울하다는 듯 나오는 지연. 허나 도현의 심경은 변함이 없었다.
“ 너나 나나 피차 마찬가지로 이곳 카나다에 아는사람 하나 없는 홀몸인 것은 뻔히
아는 사이니 그나마 한달정도 시간여유를 주는거야. 그러니 여관방을 구하든 월세
방을 구하든 그래서 알아서 내 집에서 당장 나가. 그나마 난 윤지호 사장하고라도
아는 사이지...넌 이곳에 아는 사람이라곤 가족,친지도 친구도 단 하나도 없는 처지
인건 피차 아는 사이니까 그 정도의 시간여유는 주는거야. 허나 그 안에 좋은말로
할 때 내 집에서 나가. 정말이지 너하곤 두 번다시 한 지붕안에서 살고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아니 진짜 너 같은 X이랑 이런식으로 계속 한 집에서 산다는건 내가 몸
서리가 쳐지도록 징그럽고 기가막혀. 그러니 좋은말로 할 때 나가 !!! ”
“ 여보, 제발... ”
“ 혹시 방 구할돈이 모자라면 내가 그 정도는 보태줄 아량은 있어. 여하튼 빈털터리
로 카나다에 아는사람 하나 없이 나가야 하는 니 몸이고 니 처진데...그 정도는 봐
줘야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 여관방을 구하든 월세방을 구하든 니가 알아서
이 집에서 나가는거고 그 이상은 못봐준다. 분명히 말했어. 기한은 한달간이야 !!!
그 이상은 안돼. 그대신 방구할 돈 모자라거든 내가 그건 보태줄 용의까진 있어.
하지만 그 이상은 정말 안 돼 !!! 그 정도면 나도 참을만큼 참은거야. ”
하긴 어쨌든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이를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이런 상황 자체가 웬만한 남자라면 대개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게다가 도현이 무슨 대단한 대인배나 부처님 가운데 토막쯤 되는 남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국출신의 동양남자임에랴. 게다가 도현도 나름 보수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는 그런 요즘으로 치면 ‘꼰대’ 소리를 듣고도 남을 그런 완고하고 고지식한면이 있는 그런 남자이기까지 하다. 비록 고등학교때 반항끼가 있었던것인지 아니면 가정사에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 그렇게 가출 이후 밤무대 연주자등을 뛰며 대략 15년 이상 17-18년 정도 세월을 살아온 그런 도현일지언정 이런 여자문제나 가정문제등에 대해서만큼은 완고하고 고지식한 면까지 있는 그런 한국남자 도현. - 그러고보니 영호를 맡아 키우게 되면서부턴 새삼 그 영호가 ‘3대독자’임을 강조하기까지 하던 도현이 아니던가. 허나 그런 도현이 자신의 씨도 아닌 그것도 흑인 쌍둥이 남자아이를 거두어들인다 ? 웬만큼 배짱좋은 한국남자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일일 것이다.
“ 그리고...대충 짐작했겠지만 그 아이들은 데리고 떠나야한다. 니가 낳은 그 씨는
여하튼 니 책임이니 니가 거두란말야. 무슨말인지 알겠어 ? ”
“ 여보... ”
“ 설마 나더러 그 아이들까지 거둘 생각이나 기대까지 하는건 아니겠지 ? 너하고도
갈라서는 마당에 내가 미X다고 그 애들을 키우냐 ? 누구 씨인지도 모를 흑인 쌍둥
이를 ?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니까 그 문제는 손톱만큼의 기대도 하지마. 솔
직한 심정 그대로 말하자면...그 아이들한테 어떤 해꼬지라도 하지 않은게 다행
이라고 봐야할판이니까. ”
솔직히 그랬다. 어쨌든 애기들은 지금 어쩔 도리가 없으니 지연과 메리송이 데리고 와서 도현과 지연집에서 키운다기보단 방치된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하는 상황. 그래도 지연 입장에선 그래도 자기 배아파 낳은 아이들이니 불쌍하다는 측은지심은 생기는지 젖병이라도 대충 물리며 굶기지는 않고 두고 있는데, 여하튼 도현이나 지연이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키우고 거둘 생각은 없는 듯 하다. 도현도 도현이지만 지연의 입장에서도 그런 봉변을 당해 생긴 아이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몸서리가 쳐지도록 끔찍해 견딜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지연의 눈물. 도현의 분노.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도현이 한달안에 집에서 나가라는 그나마 월세방이나 여관비정도는 보태줄 용의가 있다면서 자신이 낳은 쌍둥이 아이까지 데리고 나가야한다는 그 최후통첩의 한달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연은 고민하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도현의 집을 나오기로 했다. 지연은 일단 그래도 편의점 단골손님으로 자신이 만삭이 되었을 때 병원에 데려다주기도 했던 메리송의 집에 잠시 의탁하기로 했다. 도현은 월세방이나 모텔방을 구하는데 금전적 도움 정도는 줄수 있다고 말했지만 어차피 도현과 이혼까지 하게 되는 마당에 구차하게 그런식으로 손벌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지금 마땅히 지연이 어디 갈곳이 있는것도 아니고 갑자기 어디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가 쉬운것도 아니니 일단 (* 흑인 불한당 일당에게 겁탈을 당해 생긴) 쌍둥이 아이들과 함께 그냥 메리송의 집에 머무는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뒤늦게 지연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된 메리송도 너무 놀라고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메리송 입장에선 아무리 그렇기로 이렇게 매정하게 집에서 쫒아낸 지연의 남편 도현도 그렇지만 지연의 지금까지의 처사도 너무 바보같고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던 것 아닌가 하는점에 화가 났다. 그래서 지연이게도 따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 아니 도대체...아무리 사람이 바보같고 세상물정을 몰라도 그렇지...어떻게 사태를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둬요. ”
지금 지연이 무슨 말을 할수 있을까. 다만 그 심정 같은 여자 입장에서 전혀 이해못할일은 아니기에 지연을 거듭 딱하다는 듯 나무랐다. 말투는 좀 누그러든 상태다.
“ 설사 성*행 피해 문제는 수치심 때문에 고소를 못했다 쳐요 !!! 최소한 도난사고
신고정도는 했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 그것도 단순히 물건 한두개정도가 아니
라 편의점이 3분의 1 정도가 빌정도로 그렇게 싹 쓸어갔다면서. ”
“ 몰라요...그땐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엉엉엉~~~!!! ”
“ 그리고 아이 문제도 그렇지...정 그렇게 미심쩍으면 진작에 낙태라도 하던가 했었
어야지 그걸 속수무책으로 방치해두면 어쩌냐구요 ? 이제 어쩔거에요 ? 이렇게 생
긴 아이를 이제와서 없애버릴수도 없고... ”
어쨌거나 보수적인 한국가정에서 자라난 지연과는 달리 그래도 메리송은 카나다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여자이니만큼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많이 다를까. 허나 어쨌든 유산이나 낙태같은 문제를 너무 쉽게 입에 담고있는 메리송이 순간 소름끼치기까지 했다. 물론 지연의 처지가 그런 문제를 따질 입장은 아니자만 어쨌든 차마 그런짓까진 할수 없어서 아이를 지우지도 못하고 결국 일을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것 아닌가. 도현이란 남자가 지연을 매몰차게 내친 것은 그렇다 치더리도 지연이 아이를 지우지도 않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것은 메리송도 좀처럼 이해가가지 않았던 것이다.
“ 차라리 그럼 나한테라도 이야기를 하던가...아니 도대체 그렇게 만삭이 되어 출산
이 임박해올때까지...그걸 입 꼭 다물고 혼자 속앓이만 하고 있으면 어쩌냐구요. 뭐
우리 사이가 그런 비밀까지 나눌수 있을 정도로 친한사이라고 보긴 어렵지만...어쨌
든 내가 그쪽을 직접 병원까지 데려다주기까지 한 사람 아니에요. 그럼 최소한 나
한테도...실은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말을 하던가... ”
메리송의 입장에선 솔직히 지연의 처지는 딱했지만 막상 그렇게 지연이 자기집에까지 데리고 온 쌍둥이 흑인아이를 보니 더더욱 짜증이 난 것이다. 지연이야 딱하고 동정이 가더라도 그녀의 아이야말로 메리송 입장에선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를 졸지에 떠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우려까지 생길판이다. 다행히 지연이 조만간 어디 거처나 일자리를 마련 집을 나간다면 모를까, 만의하나 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메리송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며칠 고민하는 듯 하다 메리송이 이런 대안을 내놓는다.
“ 아이들...입양을 보내죠 그럼... ”
“ 메리송... ”
“ 그럼 뭐 다른 대안이 없잖아요. 어떡하려구요 ? 설마 지연씨가 저 아이들 다 거둬
서 키우기라도 하게요 ? ”
솔직히 지연 입장에서 이렇게 생긴 두 아이를 키울 처지나 능력도 못되지만, 무엇보다 두 아이가 생긴 경위를 생각해보면 지연으로선 저 아이들에게 눈꼽만큼의 애정이나 측은지심이 생기기는커녕 보면 볼때마다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검은빛 찬연한 아이들의 피부색을 볼때마다 자신을 겁탈했던 그 흑인 불한당들의 얼굴이 떠올라 견딜수 없고 소름끼칠 지경이나고나 할까. 그런 몸서리칠 지경의 지연이니 솔직히 지금까지 그래도 한 며칠이라도 시간이 흘렀는데 그 갓난 두아이에게 어떤 해꼬지같은 것은 하지않고 그래도 생명줄은 지금까지 이어오게 해준 것이 신기하다고 봐야할 따름이다. 여하튼 지연의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아이들을 어찌 처리해아할지가 급선무인지라 메리송의 제안대로 두 아이는 일단 입양을 보내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 참 정말 사람이...그러게 어쩌자구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그냥 낳게 될 때까지 그
냥 내버려둘수가 있어요 ? 차라리 나한테라도 진작에 털어놓던가 하지... ”
메리송은 여하튼 진작에 아이를 지웠다면 이런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있는것인데, 일단 그건 지연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거나 수용하기 쉽지 않은일이라 이것으로 긴 시간 토론해봐야 결론낼수 있는 문제는 못될 것이다. 다만 어쨌든 태어난 아이. 자신들이 목숨을 거두거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입양보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메리송이 곧 입양기관을 알아봐 그곳으로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메리송과 함께 두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입양기관을 찾아갔을 때 입양사유는 ‘경제적 문제’로 둘러댔다. 어차피 딱히 다른 댈만한 이유를 대기도 그렇고 경위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도 그래서 그런식의 이유를 댄 것이다. 나이 이제 20대 중반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젊은 동양여성이 그것도 피부색도 다른 갓 태어난 쌍둥이 아이를 맡기면서 ‘경제적 이유’ 때문에 입양보내는수밖에 없다고 사유를 밝힐 때 입양기관 관계자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이고 또 그런 이지연이란 여자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연으로선 지금 이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도현과의 이혼문제도 머지않아 곧 서류정리가 되었다. 적어도 이혼문제는 두 사람 다 동의를 하고 있는터라 이 문제는 의외로 시간을 끌지 않고 일사천리로 해결을 본 것이다. 헌데 그러고보니 도현과 지연의 이와같은 상황은 도현도 지연도 두 사람의 부모님이 모두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도현은 근본적으로 고등학교때 집을 나와 밤무대 연주자등을 전전하며 쭉 살아왔고 그러다 중간에 한번 은정이란 여자와의 결혼과 별거를 거쳐 지연을 만난것이고 그때까지 부모님과는 일절 연락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아왔으니 도현의 부모님들이 도현이 결혼을 했는지 이혼이나 별거에 들어갔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그 자초지종은 도무지 알길이 없다. 사실 도현도 막상 지연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 문제에 대해선 ‘대를 잇는 문제’니 2대독자니 3대독자니 하며 전형적인 꼰대같은 가부장적 한국남자의 전형을 드러낸 사람이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박도현이란 사람은 그렇게 고등학교때 집을 나와 나이 어느덧 30대 중반을 지나 후반에 이르고 있는 20년 세월 가족과는 일절 의절하고 살아온 사람. 그러니 그런 도현이 되려 지연과 아이문제를 상의할 때 – 특히 아들 영호를 두고 – 가문의 대를 잇는문제니 3대독자니 이런 이야기를 언급했던게 우스운 상황이었을 따름이다.
한편 지연의 경우엔 그렇게 집에는 편지한장 달랑 남기고 무엇보다 한참 전성기와 인기 초절정을 구가하는 여고생 톱가수였을 때 갑자기 이렇게 열네살 연상의 밤무대 연주자와 갑작스럽게 카나다로 달아났던 것 아닌가. 가족은커녕 지금 대한민국의 그 어떤 방송,연예가 인사도 그 어떤 언론매체도 지연이 그후 2년여간 어떻게 살고 있는지 꼬투리도 단서도 잡고있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도현과 지연 내외가 가급적 한국인을 만날 수 없는곳에서 그것도 자신들의 정체와 과거까지 철저하게 숨겨놓고 살아온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후 지연이 편의점을 하다 흑인 남성 불한당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아이를 출산해 그로인해 남편 도현으로부터도 이혼당할 위기에 처한점. 부모님이건 한국의 언론이건 방송,연예가건 그러한 지난 2년간의 근황은 전혀 그 꼬투리도 단서도 찾을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 지연이 도현과 함께 편의점을 하는곳이 한국 교민들이 다소 살기는 하지만 그 비율도 열명중 한명꼴이라 그중에 대략 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단 3년간 톱가수로 활동했던 이지연을 알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 메리송도 카나다로 건너온지는 한 10년 가까이 되어 지연의 전력이나 정체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채 그저 이혼 전력이 있는 한국 남자와 함께 편의점을 하는 그런 젊은 주부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지연의 출산한 아이들은 입양기관에 맡기는 것으로 결론이 난 상황에서 지연은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망연자실하게 있었다. 아직까지 이런저런 복잡한 심경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지. 그런 지연을 걱정되는지 메리송이 불렀다.
“ 지연씨... ”
그런대로 이른 아침시간. 부르는 메리송에 말에 답은 하지만 지연은 여전히 핏기없는 얼굴이다. 그런 지연을 거듭 걱정되는 듯 메리송이 말을 건넨다.
“ 나 오늘은 회사 갔다와야 하는날인데...점심을 차려 놓고갈까요 ? ”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메리송은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다. 자신의 작품을 보통 집에서 주문받아 그 작품이 완성되면 관련 업체든 회사든 거기에 갖다주는게 메리송의 하는일인데, 오늘은 그렇게 주문받은 디자인 작품을 완성해서 관련회사에 갖다줘야 하는날인 듯 했다. 이래저래 집에 혼자 남게된 지연이 걱정되어서 건넨말. 지연은 힘없이 답할지언정 간단명료했다.
“ 제가 알아서 할께요. ”
“ 제가 뭐 맛있는거라도 좀 차려 놓을게요. 그러니 기운은 좀 차려요, ”
도현과 이혼을 했든 성폭행 피해로 낳게된 아이들을 입양을 보냈든 그와같은 일은 이미 흘러간 일이고 어쨌든 지연도 앞으로의 인생은 계속 살아야하는 사람 아닌가. 그게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인생의 선배고 언니같은 모습으로 말을 건네는 메리송. 지연은 그런 메리송의 신경씀에 오히려 진심으로 미안해지는지 이렇게 답한다.
“ 그냥 간단하게 인근 가게에서 빵이라도 사먹던가 할께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
“ 그러지말고 제가 밥을 차려놓을께요. 그리고 진열대에 카레분말 남은게 좀 있으
니 그거라도 해놓고 갈테니 카레밥이라도 해먹던가 해요. 여하튼 기운은 차려야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 아니에요. 안그래요 지연씨 ? ”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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