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젊은 새엄마 3
윤지호 사장의 일을 도와주러 갔던 도현은 열흘만에 집에 돌아왔다. 헌데 지연은 그런 도현이나 윤사장은 물론 세상 모든게 원망스럽고 한스럽기만 한 그런 절망스러운 감정에 빠져있었다. 무엇보다 왜 하필 도현이 집을 비웠을 때 이런 봉변을 당했나,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장기간(열흘) 집과 가게를 비우고 윤사장의 일을 도와주러 가야했던 도현에 대한 원망감이 한꺼번에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도현도 도현대로 열흘만에 집에 돌아와서는 뭔가 심상찮음을 느낄수가 있었다. 일단 근본적으로 편의점 진열대의 물건들이 그간 많이 줄었음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5-6명 정도의 흑인 불한당들이 중규모 정도 크기는 되는 편의점의 물품들을 전부 다 쓸어갈수는 없었겠지만 대략 3분의 1 정도의 물건은 가져갔다. 게다가 지난 열흘도 지연이 정상적으로 편의점을 운영할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편의점을 열어놓은것도 닫아놓은것도 아닌 그냥 방치상태가 되어 그런 상황에서 든 좀도둑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편의점에 진열대며 냉장기등은 훨씬 더 휑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도현은 지연에게 연유를 물었다.
“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그 많은 물건들이 다 어디로 간거야 ? 설마 열흘
동안 당신이 저 많은 물건들을 다 팔았단말이야 ? ”
허나 물건을 정상적으로 팔았다면 그로인한 수입이 당연히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게 없는 상황이니 이미 그런식의 거짓말이나 둘러댐은 통할 수가 없는 상황. 바로 도현이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 아니,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 강도가 들었던거야. 도둑이 들었던거야 ? 대
체 무슨일이 있었던거냐구 ? ”
“ 몰라...난 아무것도 몰라. 어어어엉~~~!!! ”
도현이 다그치듯이 그렇게 물어오자 지연은 답답한 심경에 다시금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그동안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것인지 남편에게조차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할수 없는 상황이라 지연은 더더욱 답답해졌다. 도현은 일단 도난사고 정도로 생각하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려 들었다.
“ 아니, 도대체 도난을 당했으면 바로 신고를 해야지. 물품이 한두개도 아니고 저
많은걸 누가 싹 쓸어가다시피 했는데...그걸 망연자실하게 보고만 있어 ? 안 되겠
다. 내가 바로 신고전화할게. ”
“ 하...하지마... ”
그러나 기겁하며 바로 도현을 만류하는 지연. 무엇보다 경찰에 신고하면 도난사고 문제뿐만 아니라 그 흑인 불한당들한테 겁탈을 당한 사실도 밝힐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도난당했을때의 정황이라더가 이런 것을 물어볼 때 결국 지연은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범인들을 잡는다 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일까. 지연은 황급히 도현을 만류하며 도현은 더더욱 이해할수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 아니 도대체 ? 아니 뭐...도둑들이랑 한패거리가 되기라도 해 ? 도대체 신고를
왜 하지 말라는건데 ? ”
“ 몰라...그냥...하지마. 제발 하지마 여보. 우와아앙~~~!!! ”
사실 웬만한 여자가 그런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한동안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그 모멸감을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헌데 심지어 워낙에 여리고 순박한 심정의 지연이 그것도 흑인 불한당 대여섯명에게 그런일을 당했으니 그 심정이 어떨까. (* 흑인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쭉 나고자라 그때까진 흑인을 접해볼만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게다가 워낙 여리고 순한 성품의 지연이었으니 그런 지연이 이 먼 카나다까지 와서 하필 그것도 흑인에게 그런 봉변을 당했을 때 그 수치심과 모멸감은 한층 더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더더욱 남편 도현을 만류하며 신고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지연. 도현은 더더욱 이해할수 없다는 듯 나왔다.
“ 아니, 도대체...도난신고를...그것도 한두푼이나 사소한 물건 한두개도 아니고..,
편의점안을 도둑이든 강도든 저리 싹쓸이해가다시피 했는데 그걸 보고만 있자구 ?
이런 정신없는 여자를 봤나 ? 아니 무슨...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건줄 알아 ?
돈이 그렇게 쉽게 벌리는건줄 알았냐구 ? 아닌말로...돈이 그렇게 쉽게 벌리는거면
나도 이 먼 카나다까지 와서 편의점 운영하며 이 고생 안 해 !!! 윤지호 사장의 일
을 도와주러 그렇게 열흘씩이나 다녀올일도 없고말야 !!! ”
“ 아앙...제발 어쨌든 신고는 하지말아줘.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넘어가달란말야. 아
앙~~~!!! 나 몰라...제발...제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채 넘어가달란말야. 그냥 아무
것도 없었다는 듯 그냥 좀 넘어가주면 안돼 여보 ? ”
“ 아니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말했지만 나도 그냥 푼돈 몇푼이 사라졌거
나 사소한 물건 한두개 없어졌으면...에이 그냥 오늘 재수 옴붙었구나...아니면 헐벗
고 굶주린애들 위해 하루 보시좀 해줬다...그렇게 대충 넘어가줄수도 있어. 그러나
이게 어디 한두푼 정도 손해여야말이지. 당신눈엔 저 냉장기며 진열때며 전부 텅텅
비어버린게 보이지가 않아 ? 대체 이게 어떻게 그냥 대충 넘어갈일이냐구 !!! ”
“ 앙앙...몰라...제발 신고만 하지 말아줘. 제발 아무것도 모른채 그냥 넘어가달란말
야. 제발...제발 그냥 넘어가줘. 그냥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넘어가달란말야 !!! ”
사실 남자 입장에서 그것도 자기 여자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혹시’나 하고 자연스러 그런쪽의 의심도 들법도 한데, 그러나 의외로 도현도 쑥맥같은면이 있는것일까. 지연이 그런 봉변을 당했을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고 어쩌면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니 지연도 더더욱 답답하고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고, 도현은 답답함에 거듭 지연을 나무라기까지 한다.
“ 그리고...도둑맞은 것 까지야 뭐 어쩔수 없다치더라도...저 빈 진열대는...빨랑 유통
업자 불러서 새로 물건들을 쌓아 놓던가 해놓았어야 하는거아냐 ? 저대로 그냥 방
치해 두면 어떡하냐구 ? 도난사고 한번 당했다고 이후론 장사 더 안하고 그냥 때려
치울참인가 ? 어서 손해난 액수를 채울 생각에서라도 장사는 더 박차를 가해야 하
는 것 아니냐구 !!! ”
생각해보니 도둑맞은 물품도 물품이지만 그렇게 비어버린 칸들을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놓을 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아내가 더더욱 기가막혀 도현은 이와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바보같은 아내였나 ?’ 하는 그런 실망감이 들 지경이다. 사실 도현도 지현의 의외의 때묻지 않은 천진함, 정말 이전까진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 보이는 그 순진무구한 면이 도현의 마음을 지연에게 이끌리게 한 것일수도 있다. 허나 천진난만함이 한꺼풀 벗겨보면 결국 ‘바보’일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것일까. 도난사고 자체도 자체지만 그 이후의 후속조치를 경찰에 도난신고를 하는 문제든 도둑맞은 물품들 대신 빈 진열대를 새로운 물건으로 채워넣는 일이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채 그냥 망연자실하게 지난 열흘동안 있었다는 점. 이런 바보같은 아내였나 하는 생각이 도현을 진심으로 그녀에게 실망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어쨌든 신고를 바라지 않는 지연으로 인해 흑인 불한당들의 겁탈사건은 그럭저럭 넘어가지는 듯 했다. 허나 한달여쯤 지났을 때 정말 뜻하지 않은 그리고 진짜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상징후는 이미 며칠전부터 지연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따금 아무 이유없이 현기증이 난다거나 몸이 오슬오슬 떨려온다던가 좀 역한 냄새가 거부감이 들때도 있었다. 심지어 편의점에 진열한 물건을 정리할때도 살짝 그런 문제 때문에 거부반응이 들기도 했는데 그러다 결국.
‘ 욱...우욱... ’
마침내 입덧을 하게 된 것이다. 헌데 이미 전처 은정과의 사이에 아들까지 낳은 전력이 있는 도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일에 의외로 진짜 쑥맥같은것일까. 도현의 반응은 이와같았다.
“ 어디 아픈거 아냐 ? 아프면 병원이라도 가보던가... ”
그리고 실제로 걱정이 되어 지연을 병원에 데리고 가 보았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아니겠지’ 아니 ‘아니겠지’ 정도가 아니라 사실이면 정말 큰일이기에 몸살기운이 있는것이든 속이 안 좋은것이든 그런 정도의 증상이길 바랬다. 헌데 내과의사는 빙긋이 웃으며 도현과 지연내외에게 이렇게 권했다.
“ 산부인과에 가보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
“ 산부...인과... ? ”
사실 도현이 지연에게 영호를 생각해서라도 아이를 갖지 않는게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적도 있지만 오히려 처음 지연과 단둘이 카나다로 와서 별장에 은신했을때는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지연을 안았던 도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하튼 아이 생기는 문제만 조심하는 편이었지 성관계 자체를 안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도현으로선 이런 상황에서 그야말로 긴가민가하는 묘한 심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 자기...설마... ”
허나 순간 지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봉변을 당한 이후로는 한동안 망연자실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도현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수 있는 그런 심리상태가 아니었다. 기억에 아마 도현이 윤지호 사장의 일을 도와주러 떠나기 직전에 도현이 미안한 마음에라도 지연과 한번 관계를 가져준적이 있긴 하지만 그런 애매한(!) 부분은 있을지언정 지연으로선 ‘혹시’ 하는 사태를 걱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연은 – 겁탈당하기 며칠전 도현과 관계를 가진적이 있음에 – 한줄기 희망이라도 걸어야할판이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연으로선 정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적인 사태가 되지 않을수가 없다.
“ 자기 그럼 정말... ? ”
어쨌든 막상 지연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일단 기쁜 마음이 용솟음치긴 하는 도현. 허나 영호문제 때문에 가급적 지연과의 사이에 아이는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도 했던 도현인지라 여하튼 심경이 복잡해져오긴 했다.
“ 여보... ”
“ 미...미안해요. ”
지연이 이런 도현 앞에서 지금 무슨말을 할수 있을까. 결국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지연. 허나 그래서 도현이 지연을 안심시키려는 듯 다가와 손을 한번 잡아본다.
“ 미안할일이 뭐가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
“ 여...여보... ”
자신이 미안해하는 문제가 지금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허나 그런 내막을 알길없는 도현은 지연이 애초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랬던 자신의 바램과달리 무성의하게 아이가 생길수도 있는 상황을 그냥 방치해둔것에 대한 그 미안함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지연을 꼭 안아보며 그녀를 격려해준다.
“ 걱정마...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우리에게 축복아닌가. ”
“ ...... ”
“ 영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도 그게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어쩄든
영호도 차음 이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겠지. ”
사실 영호의 경우엔 단순히 ‘전처소생 자녀’ 이 문제뿐만이 아니지 않는가. 다른건 몰라도 자기 친엄마 은정이 이 먼 카나다까지 달려와서는 지연과 그 한바탕 난리를 치는 것을 다 목격한바 있는 아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 ‘불륜이 아니었다’는 식의 변명이나 해명을 한다한들 그게 통할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은 그런 아이다. 헌데 이런 상황에서 지연의 임신이라니. - 사실 도현의 아이도 아닌것이지만. - 어쨌거나 여러 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도현과 지연. 일단 얼마 지나지 않아 도현은 지연이 있는 자리에서 아이를 불렀다.
“ 여보... ”
허나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지 지연이 결국 도현을 만류했다. 사실 지금 지연은 속이 지금 속이 아니다. 차마 남편에게조차 말할수 없는 그런 엄청난 문제가 있는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자신의 임신사실을 전처소생인 영호한테 알린다 ?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골치아픈 문제라 지연으로선 도현을 만류할 수밖에 없다.
“ 걱정하지마 여보... ”
허나 그런 지연의 진짜 고민의 실체를 알길없는 도현은 그저 지연의 걱정이 영호가 이 일을 어찌 받아들일지 그것을 염려하는것으로만 아는지 다시금 다정한 음성으로 아내를 설득한다.
“ 나도 참...이걸 영호한테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어차피
알려야할 사실이라면 늦기전에 미리 알려주는게 좋아. 무엇보다 이런일이야말로 숨
기고 적당히 넘어갈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안 그래 ? ”
바로 일전의 의문의 강도사건에 대해 ‘그냥 모른체 넘어가달라’며 울며불며 애원하던 지연을 기억하는 도현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이런식으로 아내를 설득하고 있었다. 도현의 말은 계속된다.
“ 지금 당장은 뭐 적당히 얼버무릴수 있을지 몰라도...머지않아 당신배도 불러올거고
또 결국 출산도 하게 될텐데...그게 어떻게 영호한테 계속 비밀로 해둘수 있는 일이
되겠나 ? 그렇지않아 ? 그러니 이런일은...영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있게 해주
는게 좋아. ”
“ 여보... ”
지연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솔직히 지금 자신이 왜 우는건지 지연 스스로도 모를 지경이다. 단순히 남편 도현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에 이런 사태까지 터지게 만든 운명에 대한 원망인지. 아니면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북받쳐 터져나오는것인지. 한바탕 대성통곡을 하는 지연. 도현이 그런 아내를 거듭 감싸며 달랜다.
“ 울긴 바보같이 왜 자꾸 울고있어. 그러면 우리 태아에게도 안 좋을텐데...그만 진
정해 우리애기 뚝... ”
그렇게 실제 지연의 뱃속의 아이가 아닌 지연에 대한 애칭마냥 그녀를 이렇게 부르고 있는 도현. 그리고 급기야 영호를 불렀다. 그리고 지연도 있는 앞에서 이와같이 말했다.
“ 영호 잠깐 이리와서 좀 앉아볼래 ? ”
일단 별다른 생각없이 아빠와 새엄마 지연 앞에 와서 앉는 영호. 그런 영호를 보며 도현의 말이 이어진다.
“ 영호가 지금까지 아빠한테...또는 우리집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으리라 본다. 어쨌든 영호도 다 지켜보고 목격한것들이 있고... ”
“ 여보... ”
공연한 서론이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만류하는 지연. 하지만 오히려 도현이 차분하게 그런 지연을 진정시키고 도현의 말은 다시금 이어진다.
“ 나중에 영호가 자라서 모든 것을 좀 더 이해할수 있을때쯤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
겠지만...여하튼 아빠는...영호 친엄마와는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갈라서게 된
거야. 그리고...애초엔 여하튼 영호 친엄마가 영호를 쭉 키워왔지만... ”
“ ...... ”
“ 영호 친엄마가 영호를 더 키울수 있는 상황과 사정이 못되어 아빠와 새엄마에게
영호 맡기고 간 것. 그건 확실히 알고 있지 ? 아빠 말 무슨말인지 알아듣는거지 ?
”
“ 알고...있어요... ”
대체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을 불러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것인지 아이는 짐작하고 있는것일까. 차분하게 이와같이 답하고 있는 영호. 도현은 공연히 말돌릴 것 없다는 듯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 실은 새엄마가 아이를 가지셨다. 그 사실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영호를 부른거
야. 어차피 영호도 다 알아야 할 일이니까... ”
그 말에 영호가 지연을 바라본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시선에 지연이 순간 어떤 두려움까지 느낄 지경이다. 흠칫 놀라며 주춤하기까지 하는 지연의 모습. 일단 도현이 그런 지연을 다시금 달래면서 영호에게 이렇게 설명을 해준다.
“ 사실 새엄마도...막상 이렇게 한국에서 카나다로 와서 모든게 적응도 안 되고 많이
힘들어하시기도 했지만...영호도 느낄거야 아마. 새엄마...생각보다 그렇게 나쁜사람
은 아니라는 것. ”
글쎄. 과연 영호가 지금 지연이란 이름의 새엄마에 대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도현 입장에선 여전히 지연히 때론 ‘바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순박한 그런 여자이지만 과연 영호는 지금까지 지연을 어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일단 도현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어쨌든 새엄마가 이렇게 아이를 가진 이상 영호도 그걸 받아들이고 새엄마가 낳
은 동생하고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다 그 부탁을 하고 싶어서 부른거야. 아빠 말 무
슨말인지 알겠지 ? 새엄마도 앞으로 변함없이 계속 영호한테 잘 해 주실테니까 영
호도 동생이 태어나면 앞으로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그 바램이 있어 영호를 부른거
란다. ”
영호가 아무런 말이 없는 가운데 도현의 설명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지연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일단 한동안은 별다른 탈이나 문제없이 무난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헌데 안 그래도 고민중인 지연을 더더욱 소름끼치게 만드는 것이 영호의 태도였다. 일단 그날 편의점에서 있었던일을 영호가 대체 어디서부터 목격했는지는 확인할길 없지만, 일단 아이에게 ‘아무것도 못본 것’으로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던 지연. 그리고 그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호는 대체로 말이 없었다. 그러고보면 지연이 영호와 함께 지낸지도 어느덧 1년여정도의 시간이 흐른것인데, 처음 영호를 돌볼때는 카나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며 엄마가 보고싶다며 심지어 한밤중에 ‘엄마에게 가고싶다’는 말도 안되는 투정과 고집을 부리기도 했지만 일단 이 편의점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난 뒤에는 대체로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다. 일단 여기선 그래도 한국 음식을 구하는게 이전에 살던곳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고 또 영호도 이제 더 이상 친엄마 은정과 함께 살수 없고 젊은 새엄마 지연과 그리고 아빠 박도현과 함께 살아야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깨닫게 된것일까. 대체로 현실에 수긍하고 순응하며 적응을 해가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헌데 언제부터인가 영호는 말수가 많이 적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 영호 성격이 그런것인지 아니면 아빠와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성격이 변한것인지는 지연으로선 파악하기 힘들겠지만 여하튼 이전의 작은 평수의 빌라에 살때는 엄마 보고싶다며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며 그리 칭얼대던 아이가 편의점을 하며 살게된 이후로는 일단 별다른 말썽은 부리지 않았지만 대신 말수가 적어진점이 지연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말썽을 부리고 칭얼댈때는 그렇게 지연을 힘들고 짜증나게 만들더니 이젠 말썽은 안 부리는대신 말수가 적어진 것이 지연을 불안하고 신경쓰이게 만드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지연은 그날 한밤중 편의점에 쳐들어온 흑인 불한당에게 성폭행을 당한일을 아이가 목격했거나 인지했는지 그 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런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생한 임신. 지연은 현재 바로 그 흑인 불한당들의 아이일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는데, 다만 그날일을 아이에겐 ‘아빠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말라’고 아무것도 못본걸로 해야한다고 단단히 입단속까지 시킨 지연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지연이 아이에게 무슨말인들 더 할 수가 있으랴. 그렇게 임신을 한 상황에서도 행복하기는커녕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연. 다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도현만 사랑하는 아내 지연이 자기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만 그저 입이 헤 벌어져 세상을 다 얻은 사람마냥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사실 지연의 임신 초창기엔 편의점을 찾는 손님중 그녀의 임신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연이야 지금 그걸 무슨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떠들만한 처지가 못 돼고 도현의 경우엔 어차피 아직까지 카나다에서 그렇게 가까이 사귄 친구나 동료가 별로 없으니 이 기쁜 소식을 전할만한곳이 없는 그런 처지였던 것이다. 그나마 도현을 한국의 나이트클럽 시절부터 아껴주었던 윤지호 사장하고 전화통화할때나 지연의 임신소식을 말해준것뿐. 그로인해 지연은 졸지에 윤사장으로부터도 축하한다는 전화인사를 받기까지 했으나 지연이야 기뻐할 처지는 아니었을터이고. 여하튼 그런식으로 일상이 쭉 흘러가는 가운데 지연의 배도 조금씩 불러오고 있던 것이다.
“ 어머...임신하신거에요 ? ”
그런 지연의 임신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된 손님은 다름아닌 30대 초반의 한국 교민. 일전에 지연에게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소란스럽게 하는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주의사항을 세세히 알려주기까지 한 지연과도 나이차이가 대략 열 살 가까이 난다고 봐야할 왕언니같은 느낌의 그런 여자다. 여하튼 30대 초반의 여자교민은 이후에도 지연의 편의점에 종종 들르긴 했는데 지연과는 덕분에 가벼운 대화라도 나눌수 있는 말동무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 다만 그 여인도 아직 지연의 성폭행 피해 사실은 모르고 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불러오고 있던 지연의 배. 마침내 30대 초반 교민 여성이 눈길이 가서 이렇게 물어온 것이다. 여인의 이름은 ‘메리 송’이라고 했고 한국 이름은 송경아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뒤의 일이었다. 여하튼 메리송이든 송경아든 그런 이름의 여인과 가까운 사이가 된 지연. 다만 그런 메리 송 조차도 지연의 임신 사실은 뒤늦게나 인지하게 된 것이다.
“ 어머나 미안해요. 그러고보니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왜 여태까지 그런 이야
긴 안 했었어요 ? ”
사실 웬만한 경우엔 임신 한 5-6개월정도만 지나도 그렇게 눈에 띌 정도로 배가 불러오지는 않는다. 따라서 임산부가 배가 불러와 편한 임산부복을 하고 다닐때는 이미 최소한 그 정도의 시간은 지난뒤의 일인것인데 지연의 경우엔 임신사실을 자랑하고 다닐 처지도 못 되고, 그래서 옷도 일부러 티나는 임산부복을 챙겨 입지는 않았던지라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것도 한국교민인 메리송이 인지하게 된 것이다. 놀라고 뜻밖인듯한 메리송이 이렇게 축하인사를 건넨 것이다.
“ 축하해요...정말...헌데 그러고보니 둘째인가 보네요 ? 아이가 하나 더 있지 않았
던가... ”
그러고보면 살림집과 편의점을 들락거리며 생활하던 영호가 메리송의 눈에도 뜨인적이 있었나보다. 상대적으로 지연내외의 편의점에 그리 자주 들르지는 않는 편인 메리송. 헌데 그런 메리송의 눈에조차 뜨일 지경이었던 영호인데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연의 아이를 둘째로 인지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지연으로선 더더욱 난감해져 결국 이렇게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 실은 그 아인 제 친아이는 아니에요. 남편이 한국에서 이혼하고 이곳에서 저와 재
혼을 한거거든요. ”
“ 어머...그랬었어요 ? 몰랐어요 전...그런 사연이 있으신줄은... ”
무엇보다 아이가 누구 아이든 지연으로선 첫 임신의 경험이 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어차피 이 부분은 사실대로 밝힐 수밖에 없는 터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더욱 난감해져서인지 진땀이 날 지경인 지연. 허나 메리송은 그런 지연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듯 오히려 더더욱 격려하는 말을 건넨다.
“ 축하드려요. 아무리 재혼이라도...그래도 지연씨 배아파 낳게되는 첫 아이인거잖아
요. 모쪼록 무사히 순산하기를 바래요. ”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말을 하는것인지. 메리송으로서야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채 평범한 축하인사의 말을 건네는것이겠지만 여하튼 지연으로선 이래저래 신경이 안 쓰일수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아무리 한국인을 비롯해 동양인,흑인등 여러 인종들이 뒤섞여 사는 지역이라지만, 그리고 원래 지연의 사정상 가급적 자신을 알아보는 한국인을 안 만나기를 바랬던 지연이건만 오늘따라 상황은 더더욱 난감하다. 처음엔 한국 교민인듯한 이가 편의점에 들르면 자신을 알아볼까봐 조마조마했고 여하튼 메리송은 카나다에 산지는 꽤 오래된듯하고 또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아 지난 몇 달간 그런대로 편한 말동무 상대는 되어줄수 있었다. 허나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남의속도 모르는채 이렇게 축하인사말을 건네는 메리송이 더더욱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질지경. 적당히 그만 가주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메리송도 어쨌든 자기 볼일을 보러 돌아가야하긴 했는지 그쯤에서 편의점을 나가긴 하는데, 지연은 메리송이 나가자마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질어질 느껴지는 현기증. 쓰러지지 않은게 다행이라고나 봐야하는것일까. 이래저래 지연의 심정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 그러고보니 이젠 정말 얼마 안 남았구만 그래. ”
“ ??? ”
다시 두어달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고 지연의 배는 점점 불러와 어느덧 만삭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하 평범한 임산부 같으면 그동안 뱃속 태아의 진동도 느끼고 엄마와 아기 사이의 대화도 – 비록 뱃속의 태아가 알아들을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도 – 나눠봤을법한 그런 때이지만 지연은 그런 평범한 임산부처럼 마냥 행복에겨워 할수만도 없는 처지. 그것도 하필이면 전처소생 자녀까지 떠안아 키우게 된 새엄마의 몸으로 흑인 불한당 일행에게 겁탈을 당해 임신이 된 몸이다. 그러니 이 뱃속의 아이가 누구인지는 천상 나와봐야 확인이 될 터. 지연은 자신의 배가 불러오면 불러올수록 머리는 더더욱 아파올 수밖에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채 그저 흐뭇하고 뿌듯해하는 표정의 도현을 속으로 원망하고 있었다. 무슨 팔자가 이렇게 기박한가. 정말 자신의 운명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신에게 한없이 욕설이라도 퍼부어주고픈 그런 심경인데, 아무것도 모르는채 마냥 좋아하기만 하는 도현도 그리고 가면 갈수록 말수가 적어지는듯한 아이 영호도 모를 때 지연은 혼자 아무도 보지않은 집구석 은밀한 공간에서 한참을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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