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젊은 새엄마 3
어찌된 영문인지 그 한바탕 소동을 겪고나서 지연의 집 상황은 다소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일단 경찰이 예의주시하겠다는 경고를 하고 지연을 돌려보내긴 했지만 어쨌든 애초에 ‘이웃소란’ 문제로 신고를 당한 지연이고, 게다가 하마터면 아동학대 문제로까지 불거질수도 있는 상황에서 천우신조로 훈방조치된것이긴 하지만, 따라서 지연으로선 더더욱 한동안 행동거지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행여 이웃의 눈밖에 날만한 일이라도 벌어질까봐 만사에 조심하며 보내는 나날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애가 또 말썽을 피우면 어떡하나. 그 생각만 하면 다시금 머리가 아파올 지경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영호도 그후 한동안은 쓸데없는 억지나 고집은 부리지 않았다.
물론 다섯 살이면 아직 ‘어린아이’ 그 이상의 덧붙일만한 다른 표현이 없지만 그런 어린아이일지언정 그래도 무조건 떼만 쓴다고 될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영호가 처음에 엄마랑 비행기까지 타고 이 먼곳까지 와서 엄마는 떠나고 이렇게 아빠와 낯선누나랑 살게된 상황 그 자체를 인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다시말해 무작정 ‘엄마한테 데려달라’고 하거나 ‘엄마한테 가겠다’고 떼를 쓴다고 해결될수 있는 상황이 이미 아님을 아이도 모르진 않을터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런 말도 안되는 억지나 떼를 또 썼다가는 지연한테 또다시 두들겨 맞지 않을까 그래서 겁이나서 아이도 딴에는 행동거지를 조심하는수밖에 없을것이고. - 사실 지연 입장에선 그날(* 영호가 무작정 가방챙겨들고 ‘엄마한테 가서 김치볶음밥 해달라고 할거다’라고 한 날) 영호가 너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자 너무 화가나 발길로 한번 뻥 차버린 것이 전부이지만 아이의 머릿속엔 그게 이미 그 이상의 의미로 각인되었을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만 도현은 도현대로 이 문제를 윤지호 사장과 상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주로 윤지호 사장의 일을 도우며 집에서 사업장까지 거리가 너무멀어 보통 평균 2-3일에 한번씩 집에 들어오고 나머지 시간은 윤사장의 일을 도와주는 그런 일상을 보냈던 박도현이 아니던가. 헌데 지금은 그와같은 일들을 지금까지 해왔던것처럼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이미 되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도현이 불안해서 도저히 집을 떠날수가 없는 심리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 도현도 정말 지연이 아이 밥을 굶기거나 학대를 하는 것 아닌가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게다가 이미 그런 소란문제로 경찰서까지 불려갔다온 지연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 상태의 집을 그대로 방치해두었다간 앞으로 또 무슨 큰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한 상황. 그렇다고 윤사장의 일 돕는 것을 그만둔다고 할 때 바로 또 딱히 이 먼 카나다에서 새로운일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도현은 결국 지호에게 고민을 토로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도현의 상황과 사정을 다 듣고난 지호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기도 하고 한숨을 여러번 내쉬는 듯 하더니 한 며칠만에 나름 궁리해본 대안이 있는 듯 만나자며 도현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윤사장이 도현의 처지를 감안 그쪽으로 가곘다고 했지만 도현이 그럴수는 없다며 늘 그래왔듯 자신이 직접 도현의 사업장으로 갔다.
“ 실은 자네말야... ”
“ ...... ”
“ 자네가 잘 모르는 것일수도 있지만 요즘 그러잖아도 미국이나 카나다 교민중 그런
쪽으로 새로운 활로를 트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어. 그래서... ”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것인지 의아함으로 도현이 지호를 바라보는 가운데 지호의 말이 이어진다.
“ 자네도 한번 편의점 같은 것을 해보는게 어떻겠나 ? 그 생각을 해봤네. ”
“ 편의점이요 ? ”
도현과 지연이 한국을 떠난게 90년대 중반이니 이때면 한국도 편의점이 기하급수처럼 늘어나고 있을때이긴 하다. 서울같은 대도시의 웬만한 지역은 물론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에서도 편의점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사람들을 종종 ‘세상이 이렇게까지 바뀌었나 ?’ 하며 놀래키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때다. 그러니 도현도 편의점이라면 그리 익숙치 못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카나다 한가운데서 편의점을 연다는 것은 좀 뜻밖의 제안이었는지 의아하고도 당황해하는 모습. 지호의 말이 이어진다.
“ 일단 편의점에서 일하면 자네가 혼자 이렇게 먼 일터까지 오느라 2-3일씩 집을
비워둘 염려도 없이...자네가 가족들과 하루종일 붙어있으니 지연씨든 영호든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취할수 있지 않겠나. 또 자네가 지연씨랑 영호 사이에서 두 사
람 문제를 적당히 중재할수도 있을터이고... ”
그러고보니 부부가 함께 가족이 편의점을 운영해보라는 소린데, 일단 그런대로 설득이 되어서인지 도현의 어두웠던 얼굴도 좀 펴지는 것 같긴 했다. 지호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게다가...지금 아이문제로 골머리 썩는게 먹는문제 아닌가. 그러니 한인타운 인근
에 편의점 같은 것을 세워서 하면 그런곳에서 요즘은 컵라면이나 김밥 같은 것을
진열해 팔기도 하니까...그런식으로 아이도 한국음식을 조금씩 먹이며 달랠수도 있
을거야. 아이고...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도 카나다에 처음 왔을땐 식사문제로 얼마
나 고민이었는지 아나 ? 나도 진짜 차라리 어디 한인타운같은데서 기반을 잡을걸
그랬나 그 후회를 수도없이 했대두 그러네. 게다가 나도 나지만 애들도...아니 솔직
히 난 그래도 애들은 한국에 있을 때 밥 먹느니 아침엔 빵같은걸로 때우거나 그런
거 더 선호하는 애들이라 그런대로 적응이 잘 될줄 알았아. 헌데 그것도 그렇지
않더라고. 한 한달넘게 무슨 빵이나 콘프로스트 같은걸로 식사를 하다보니 얘네들
도 질린지...얘들도 결국 ‘아빠, 카나다에선 한국 음식 구할수 없어요 ? 하다못해
된장찌개라도 한번 해먹어 봤으면 좋겠는데...’ 그 소리가 나오는거야. 아이구...그
나마 나야 애들이 말이라도 통할수 있는 사춘기 아이들이었으니 망정이지...근데
그런 애들도 그 정도인데 이제겨우 다섯 살인 영호가 오죽하겠나. 내 그 문제 만
큼은 자네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네. ”
나름 카나다로 이주해 정착해 사느라 힘들었던 한국인 출신의 애환을 있는대로 토로하고 있는 윤지호의 모습. 그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아이구, 그나마 나는 그래도 미국 LA 한인타운에 사는 고모님이 한분 계셔서 급
한 대로 그분께 연락드려서 한 몇 달에 한번씩이라도 한국음식 잔뜩 공수해 올수
있었길래 망정이지 – 그리고 사실 미국과 카나다도 아무리 이웃나라지만 그렇게 자
주 쉽게 오갈수 있는 거리나 시간은 분명 아니고말야. - 그런 고모님마저 안 계셨
다면 어땠을까. 그걸 생각해보면 나도 아찔해질때가 많아. (* 친고모라기 보단 대략
5촌고모(* 아버지의 사촌누이)쯤 되는분으로 설정한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이구, 진짜
옛날엔 나도 진짜...미국이나 유럽에 한두달 장기출장갔다 돌아온이들이 집에 오면
김치나 된장찌개부터 찾더라는 소리가 ‘설마 그 정도이랴’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
라구. 진짜 다른나라로 와서 오래 살게되면 먹는문제가 우선 보통 큰일이 아니야.
인간이란게 아무래도...나고 자라면서 먹던거...그런데 쉽게 익숙해지는 그런 체질
이라 그런건지... ”
카나다 생활을 한 5-6년 하면서 덕분에 인간체질의 본질까지 깨닫게 되기라도 한것인지. 여하튼 윤지호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현도 씁쓸히 웃고 있다. 여하튼 윤지호 사장의 설득을 듣고보니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기도 해 도현은 한인타운 근처에 편의점이라도 하나 하면서 사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기로 한다.
헌데 이것도 고민되는 문제가 또 있다. 사실 애초에 이지연이 무명의 밤무대 연주자와 카나다로 도피행각을 벌인 것이 연예계 생활에 환멸과 회의를 느껴 – 게다가 이 무렵 자신과 관련한 이상한 소문들이 돌기도 했고 – 이러느니 차라리 연예계 생활을 모두 접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곳으로 가서 평범한 ‘보통여자’로 살고파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거처도 일부러 한인타운 같은데선 멀리 떨어진 한국인이 아예 안살고 어쩌면 남은 평생 한국인을 만날일 자체가 아예 없을수도 있는 그만한곳을 피신처로 마련했던것인데 이제와서 되려 한인타운 근처에서 편의점을 한다 ? 다시 고민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허나 윤지호는 그건 걱정 안해도 된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 하하...사실 그게 오해야. 맨날 한국에선 매스컴이 ‘LA나 뉴욕같은 한인타운에서
살면 평생 영어 한마디 안 쓰고 김치,불고기,된장찌개 실컷 먹을수 있다’ 이런식으
로 말해서 사람들이 착각한거지...막상 와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구. 우선 근본적으로
한인타운이란게 결국 ‘한국인 밀집지역’ 아닌가. 그러니 웬만하면 미국이나 카나다
로 이주해와서 그런곳에 사는게 편하니까 그런곳을 거주지로 정하는 사람이 많은
거지 그런곳에서 조금만 떨어져 살아도 한국인 좀처럼 만날 수 없는곳이 더 많아.
”
하긴 그건 일단 맞는말이다. 미국이나 카나다 자체가 근본적으로 우선 얼마나 넓은곳인데. 그리고 그래서 도현도 애초 지연과 떠나올 때 그런곳을 도피처로 정한곳이고. 허나 이제 한인타운 근처든 어디든 여하튼 한국인을 만날 가능성이 높은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허나 그 문제도 윤지호가 손을 내저었다.
“ 그게...그런대서 산다고 다 한국방송 보고 살고 하는게 아냐. 나도 옛날엔 한국에
서 특히 모 공영방송사의 경우엔 자기네 방송을 미국이나 카나다같은 교민들이 실
시간 시청할수 있다...그런식으로 떠들길래...그냥 막연히 ‘그런가보다’ 생각했지. 헌
데 그게 아니더라고. 이른바 ‘한인방송’이란게 나오는곳이라야 한국방송을 시청할수
있는거거든. 그리고 그게 이른바 케이블방송이란건데...일단 그건 해당 한인방송이
나올수 있는 케이블을 신청해야 나오는거고 또 케이블방송의 나오고 안나오고도 다
지역에 따라 사정이 천양지차더라구. 그러니 미국에서 산다고 또 한인타운에서 산
다고 전부 한국방송 보고 사는건 분명 아니야. ”
(* 한국에서 케이블방송이 시작된게 95년부터고 극중 윤지호가 한국을 떠난게 이미 5-6년전, 그리고 도현 역시 밤무대 연주자로 일하던 사람이지 방송활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므로 이때면 둘 다 ‘케이블방송’에 대한 이해도는 거의 없을 것이다. 차라리 가수활동을 지난 3년동안 해온 지연은 그때 주변 동료 연예인이나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조만간 우리나라도 케이블방송이 시작된다더라’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있지 90년대 중반 시점이면 도현이든 윤지호든 케이블 방송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고 어쩌면 카나다로 와서 세상에 그런게 있는줄 처음 알게된 사람으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여하튼 미국이나 카나다 사는 교민이라고 다 케이블로 한인방송 시청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다소 장황하게 할 수밖에 없게된 윤지호. 그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그리고 잘 생각해보게. 교민이 되었든 현지인이 되었든 어쨌거나 다들 24시간 먹
고살기 바쁜 사람들인데 한가하게 24시간 한인방송이나 쳐보고 있을수 있는 사람들
이 얼마나 되겠나 ? 그게 알고보면...좀 나이든 노인들은 이래저래 – 한인타운에
살든 안 살든 – 적응도 안 되고 고향에 대한 향수병도 생기고...그래서 그런 마음
에 한인방송으로 가끔 무슨 ‘가요무대’니 ‘전국노래자랑’이니 그런거 들으면서 옛날
노래 들으면서 눈물짓고 그러는거지...솔직히 젊은애들중에는 한인방송 일부러 보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요. 아니, 상식적으로 미국이든 카나다든 여기서 보고 즐길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아무렴 걔네들이 여기 텔레비전 보지 케이블로 일부러 한인
방송 보겠나 ? 내말은 확률적으로 그렇게 자네 부인 이지연씨를 미국이든 카나다든
한국교민중 알아볼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말이지. ”
나이든 사람들은 그저 옛날노래 나오는 방송이나 가끔 보면서 향수에 잠기는것이고, 젊은 2세,3세들이야 여기서 지네들 보고즐길거리 찾지 일부러 한인방송 챙겨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 요즘이야 한류 때문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겠지만 한 십수년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크게 바뀐 것이 없었을 것이다. ) 따라서 한국에서 그래봤자 한 지난 3년 한참 뜨는 신인 여고생 가수에 불과했던이를 알아보는이는 확률적으로 한인사회에서 그리 많을수가 없다는 것. 도현이 지호의 말을 납득을 하는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호는 도현이 한인타운 인근에서 편의점이라도 차려 살아보라는 권유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굳혀지지 않았을까봐 거듭 간곡하게 설득하며 설명한다.
“ 그리고 교회다니는 사람들이야...아무래도 한국살면서 교회 다닐 때 그곳 목사님
들이나 그때 알던 지인들이 ‘자매님,형제님 힘내세요’ 하라고 자기교회 설교 테이
프 보내주고 하면, 그 설교방송 비디오로 틀어보고 그걸로 위로받고 위안거리 삼
고 그렇게 되는거지...여하튼 일부러 미국이나 카나다에서 한인방송 챙겨볼 사람
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고 따라서 한국의 이제 막 뜨기 시작하다가 3년만
에 사라진 여고생 가수를 알아볼 가능성 그리 높지 않아요. 그러니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
일단 도현은 한인타운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며 사는 것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래도 윤지호도 도현과 지연의 특수한 상황을 배려해 한인타운이라기보단 일본인,중국인등 동양인들도 많이살고 심지어 중남미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많이 사는 그런 다인종 사회가 되어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식 식재료를 구하기 쉬운곳. 그런 도시의 편의점을 인수 그것을 운영해서 살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다. (* 헌데 그러고보면 윤지호는 애초 도현과 지연의 도피생활은 물론 지금 편의점이라도 하며 정착을 할수 있도록 이부분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니 도현과 지연 내외로선 평생을 다 해도 갚을수 없는 큰 은혜와 신세를 진 셈이다.)
허나 도현과 달리 지연은 역시 여전히 철없고 순진한것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사람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것일까. 실제로는 한인타운이라기보단 상대적으로 동양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들의 식재료를 구하기가 쉬운 그런 다인종 사회를 이루는 지역에 편의점을 차리는것이라 말해도 그래도 지연은 불안함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 그래도 싫어요. 어쨌든 한국사람들 사는데라면서요. ”
“ 허허 참...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이 딱하도록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야 !!!
거긴 한국인만 아니라 일본인이나 중국인도 많이 사는 그런곳이에요. 한국인 비
율이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은곳이고... ”
“ 어쨌든 단 몇사람이라도 저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거잖아요. ”
“ 거 참...윤지호 사장이 한 이야기를 내가 그대로 몇 번이나 설명해주고 있는데도
그리 말귀를 못알아듣나. 미국 산다고 다 한인방송 보는게 아니래두 그러네. 그거
다 노인들이나 보고...가요무대,전국노래자랑보고 그러는거지...당신 알아볼 사람
거의 없대두 그러네. 그리고 요즘 젊은애들이야 까짓거 여기서 하는 재미있는 프
로보지...아무렴 여기서 일부러 그것도 한인 케이블방송으로 연예가중계,가요톱텐
그런거 챙겨보고 있겠어 ? 그런 걱정 안해도 된대두 그러네 !!! ”
“ 제가 3년동안 미국 공연을 몇 번이나 왔었는데요. 그때 박수도 얼마나 많이 받았
고... ”
여하튼 단 몇 번이든 미국까지 와서 공연도 해본 경험은 있었던 지연. 따라서 그때의 경험과 기억을 상기해내듯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현이 답답해서 가슴을 칠 수밖에 없다.
“ 이 답답한 여자야...그런건 무슨 추석특집이니 광O절 특집이니 하며 1년에 한두번
어쩌다 그것도 당신 혼자뿐만 아니라 가수,코미디언,연예인 수십명 데리고 와서 하
는 공연 아닌가. 거기 온 교민들이 아무렴 현O,송O관,태O아,주O미 이런 사람들 보
고 백O봉,남O원 이런 사람들 코미디쇼보면서 향수 달래려고 공연보러 온거지 당
신 보러 온건줄 아냐구. 참 답답한 아가씨...진짜 말귀 못알아듣네. ”
“ 아니래두 그래요. 저도 그때 LA나 뉴욕서 공연할 때 김O건 아저씨나 임O훈 아
저씨가 제 순서 소개할 때 박수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요. 김O건 아저씨나 임O훈
아저씨가 ‘요즘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가수. 대한민국 10대 청소
년들의 영원한 국민누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가수 이지연씨를 소개합니다 !!!’ 이
럴 때 얼마아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는데요 !!! ”
“ 이 답답한 아가씨야 !!! 임O훈이가 뭐랬든 김O건이가 뭐랬든 그건 그냥 소개멘
트니까 그렇게 하는거지...그럼 아무렴 임O훈이나 김O건이가 그 자리에서 ‘여러분
한국 최고의 여고생 톱스타가수 이지연씨를 소개합니다.’ 이렇게 소개하지 ‘여러분
거...요즘 한국에서 철없는 날라리들이 좋아 환장해하는 어린 기집애가 하나 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원로 선배가수들 공연하는 자리에 꼽살이좀 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개하겠나 ? 그래, 안그래 ? 쇼프로 진행자들은 원래 다 그렇게 온갖 미
사여구 다 붙여가며 소개하는거라구 !!! ”
어쨌거나 일단 도현과 지연은 동양인이나 흑인,중남미계열등이 대충 어우러져사는 그런 지역에서 편의점을 내 함께 운영하며 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연으로선 여전히 교민들중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을 염려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도현과 지호의 거듭되는 설득이 지연의 마음을 결국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헌데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말은 되려 지연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마음을 상하게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무리 한인타운이나 교민들의 성격,특성 이런 것을 다 감안하여 분석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3년동안 한국에서 최고 인기절정을 누리던 가수였는데 한인방송은 대개 나이많은 교포들이 보고 젊은 사람들은 그런데 관심없을것이며 나이많은 교민들은 더더욱 한국의 요즘 젊은 연예인들에게 관심이 없어 그래서 더더욱 지연을 알아볼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라는 것. 허나 한두차례가 되었든 서너차례가 되었든 미국교포 위문공연 자리에서 열화와 같은 박수와 성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지연으로선 믿겨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헌데 일이 이렇게 되면 정말 그렇게 한참 초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 되려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껴 모든 것을 그만두고 떠나 자신을 알아보는이가 아무도 없는곳에서 살기를 바랬던 이지연이 맞기는 한것인지 되려 그게 또 의심이 갈 지경이다. 막상 그렇게 연예계 생활을 다 청산하고 떠난 몸이라도 이제와서 ‘교민들중 당신 알아볼만한 사람 거의 없다’는 식의 말은 그런 한참 초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연예인 출신에게 되려 상처를 주는 말이 되는것인지. 이래저래 인간의 마음은 예전 누구말마따나 참 간사한것이로구나 그런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니 경찰서에서 만난 그 교민도 이지연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그때도 지연은 통역을 맡으러 온 교민이 결국 자신을 알아볼것이라는 그 걱정을 했었는데, 허나 실제 그 통역을 맡은이는 해외 영사관등에서 수년동안 일하다 얼마전부터 카나다에 교민으로 정착하게 된 사람. 이미 이지연이 데뷔도 하기 전부터 수년동안 외국에서 산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예계 활동기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3년이었던 이지연을 알아볼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자세한 정황을 경찰관계자나 이런이들이 알려줄리는 만무하고, 다만 지연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 교민의 언동은 그야말로 간단치 않은 사고를 친 그리고 나이도 어리고 영어도 아직 서툴러보이는 한국 교민을 같은 동포애의 심정으로 약간의 도움을 준것뿐 ‘가수 이지연’을 알기 때문에 도와준 사람 같지는 않았다.
여하튼 지연도 고민 끝에 어쨌든 아이 영호를 돌보는 문제하며, 만약 지금이라도 정말 아이 친모인 은정의 연락처를 다시 알아내어 아이를 그곳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아니라면 어쨌든 남편이 24시간 곁에 붙어있으면서 지연과 영호 사이에서 어느정도 중재를 해줄수도 있고, 또 한국식 식재료를 구하기도 상대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곳에 정착하는곳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국식 식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게다가 도현이 낯선 카나다에서 다른 새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판에 이렇게 2-3일에 한번씩 집에 들어오는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방식은 지연이 생각해도 ‘최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렇게 동양인이며 흑인,중남미계열까지가 대충 어우러져사는 그런 지역에 편의점을 내게 된 지연과 도현. 한국을 떠난지는 어느덧 6개월여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그러고보면 두 사람이 한국을 떠날때가 이미 여름이 다 지나고 슬슬 가을로 접어드는 무렵이었으니 어느덧 해가 바뀌어 이듬해 봄이 되어있는 시점. 대략 그때쯤에 지연은 도현과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며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 한편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채 못했던 혼인신고도 얼마전에 하게되어 지연과 도현은 드디어 정식 부부가 되었다.
확실히 애초에 윤지호로부터 들었던 정보대로 둘이 편의점을 낸 지역은 동양인은 물론 흑인,중남미계열등 다양한 인종들이 어우러져 사는 그런곳임을 직접 편의점을 하며 체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지연이 하루종일 편의점일을 하면서 맞이하는 손님들을 보니 일단 백인의 비율이 절반을 좀 넘는 수준이었고 그 나머지 절반중의 절반이 흑인이었고 동양인은 대략 3분의 1 정도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 흑인 비율이 25%인데 동양인 비율이 30%가 넘으면 되려 흑인보다 동양인이 더 많이 사는 셈이다.) 헌데 그 동양인 셋중 두명은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인 듯 했고 한국인은 그 셋중에서도 어쩌다 한명인 그런 비중이었다.
사실 동양인들의 경우엔 편의점 주인이 자신들과 같은 피부색 인종인 것을 보고 동질감을 느끼거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드는지 ‘혹시 어느나라 사람이냐 ?’고 꼭 물어보곤 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동양인을 어쩌다 보면 ‘혹시 한국사람 아니냐 ?’고 묻는것과 거의 비슷한 이치였다. 헌데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자신과 같은나라 사람인지를 물을 때 지연으로선 일단 ‘아니다’라는 대답까지는 가능했는데 그 뒤의 대답이 난감해졌다. 어쨌거나 ‘한국인’임을 사실대로 밝히기는 난감한 입장. 그래서 상대가 중국인일때는 ‘Japanese’라고 답했고 반대로 일본인일때는 ‘chinese’라고 답했다. 그리고 사실상 열명중 어쩌다 한명꼴인 한국인. 사실 느낌에 한국인 같을때는 이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되거나 굳어졌다. 만약 ‘혹시 이지연씨 아니세요 ?’라고 상대가 물어오면 어쩌지 ? 이지연이 아니라 그냥 ‘한국인이냐 ?’고 물어도 답하기 난감한데, 그래서 한국인 손님이 편의점에 들를 때 지연으로선 그야말로 진땀나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어느정도쯤 시간이 지났을 때 지연은 정말 이곳 교민들중엔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떠나 이곳 카나다에 정착한지 5년이상이 된 사람이건 아니면 10년 이상이 된 사람이건 아니면 그런이들의 교포 2세,3세건 여하튼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연이 감으로 얻게된 것이다.
일단 근본적으로 ‘혹시 한국인이냐 ?’고 물어보는이 자체가 없었다. 혹시 그동안 지연이 일본인 앞에선 ‘중국인’, 중국인 앞에선 ‘일본인’이라고 답한 덕분인지 이 편의점을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운영한다더라 그런식으로 소문이 난 것일까. 한국계로 보이는 이들중에 굳이 이 편의점일을 하는 이지연에게 어느나라 사람인지를 묻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한국인인지 자체에 흥미나 관심을 못 느끼는데 하물며 그 반년전쯤에 한참 인기절정이다가 무명의 밤무대 연주자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그런 가수가 있건없건 그런데까지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이 없을 듯. 그러니 되려 그런이들에게 ‘혹시 한국교민 아니세요 ?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 ? 저 가수 이지연인데...’ 이렇게 말할수도 없는터. 다행스러운 일이면서도 지연으로서는 생각해보니 진짜 서운하고 섭섭한 그런 일상이 한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호의 식사문제가 해결이 된 것이 도현과 지현으로선 다행이었다. 일단 근본적으로 동양인이 많이 사는 편의점이니 쌀이 근본적으로 유통이 되었고 김밥이나 라면같은것도 파는 편의점이 되었다. 그리고 소량이나마 김치를 ‘포장김치’로 팔수도 있는곳이라 그중 남는 것을 아니면 자신이 직접 구입해서 그것을 영호에게 해줄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가방챙겨서는 한국사는 친엄마에게 김치볶음밥을 해달라고 가겠다고 칭얼거렸던 그 영호를 위해서 천만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 영호야, 어때 ? 이제 여기서 김치볶음밥 해먹을수 있으니 되었어 ? ”
아무리 그래도 카나다는 카나다이니 한국에서처럼 충분하고 풍부한 양을 구입할 수는 없어도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영호가 좋아하는 그 김치볶음밥을 해줄수 있게 된 지연. 다만 영호는 영호대로 묵묵히 지연의 이와같은 말에 무슨 이유인지 별다른 반응이나 대꾸가 없다.
“ 왜 영호야 ? 김치볶음밥도 마음에 안 들어 ? ”
걱정이 되어 이와같이 묻고있는 지연. 헌데 한참을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식사를 하던 영호가 그 식사를 다 마쳐갈때쯤 이렇게 입을 열었다.
“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
“ 뭐라고 ? ”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어느덧 다섯 살이 아니라 여섯 살인데, 어쨌든 여섯 살 정도 된 어린아이의 어휘력이 이정도가 될수 있는지 지연이 순간 혼란스러워질 지경인데 여하튼 그간 한 살 더 먹은 아이라서인지. 아니면 지난 반년넘게 이렇게 이곳에서 도현과 지연과 이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영호도 차츰 이런 환경에 적응이 되고 이곳이 어떤곳인지에 대한 자각이 되는것인지 이렇게 말을하는 것이다. 그것도 또렷하게.
“ 한국음식 구하기 어려운 나라라면서요 ?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
하긴 김치고 쌀이고 그런거 쉽게 구할수 없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지연이 그동안 얼마나 말했던가. 때론 짜증을 내면서 때론 애원을 하거나 울며불며 하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니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말귀를 못알아들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일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지연이 순간 영호에게 애틋한 감정이 일어날 지경인데, 일단 살짝 짠해오는 감정을 좀 가라앉힌뒤 아이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 영호야... ”
“ ...... ”
대꾸없는 아이. 허나 별로 개의치 않고 지연의 말이 이어진다.
“ 아줌마가...그래 뭐...정히 새엄마라 부르기 싫으면 아줌마라고 하지. 솔직히 나도
아직 아줌마소린 듣고싶지 않은데...하지만 어쨌든 영호 아빠와 이렇게 결혼도 했
으니 아줌마지 뭐...어쨌든 솔직히 아줌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많이 서툴러... ”
“ ...... ”
“ 게다가 아줌만 어떤 피치못한 사정속에서 어찌어찌하다보니 영호 아빠와 결혼 이
렇게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카나다까지 와서 살게된거야. 이런 아줌마의 부득
이한 사정을...영호가 얼마나 이해해줄려는지 모르겠지만... ”
나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아이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는 지연. 어린 영호에게 이런 지연의 말이 얼마나 이해가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연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다.
“ 어쨌든...이렇게 같이 살게 된 이상 다 같은 한식구잖아. 안 그래 ? 그러니 아줌마
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여하튼 우리 영호 잘 돌봐주도록 할게. 그러니 앞으로
잘 지내보도록 하자. 알겠지 박영호 ? ”
아이에 대한 귀엽고 깜찍하다는 생각이 이제서 처음들 지경인 지연. 영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보기까지 하는데 이런 지연의 태도를 영호는 어찌 받아들이고 있을지. 일단 식사를 다 마친 영호는 묵묵히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린다.
편의점을 운영하게 된 다음부터는 도현과 지연의 살림집은 편의점과 연결이 되어있었다. 편의점 운영도 어차피 도현과 지연내외가 함께 하게 되는 것이지만 여하튼 이래저래 도현과 지연내외는 24시간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도현이 다른 볼일이 좀 있어 외출을 하는일이 없는한 도현괴 지연은 늘상 같이 붙어있게 된다.
살림집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리 큰 평수라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에 살던 집보다는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춘 집이었다. 여하튼 부엌과 거실이 근본적으로 구분이 되고 방 두 개도 이런저런 세간이나 물품따위를 들여놓을수 있을만한 그런 공간이 있는 그런대로 사람사는 모양새는 갖추고 살 수 있는 그런 집이라고나 할까. 도현과 지연내외 입장에선 그런대로 숨통이 트인채 일상을 살아갈수 있는 그런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래저래 영호문제도 그렇고 도현과 지연내외도 원만한 부부생활을 계속 이어갈수 있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헌데 이렇게 되자 얼마지나지 않아 또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아이 문제였다. 무엇보다 지연은 원래 의외로 세상물정모르는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여자였다. 한참 인기절정일 때 자신과 관련한 해괴망칙한 소문들이 연예가에 떠돌아서 그렇지 실제 인터뷰나 이럴 때 모습만 봐도 지연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한 아가씨고 여학생이라는 것을 한눈에 느낄수 있는 그런 여자였다.
물론 지연도 남자와 여자가 교접을 해야 아이가 생긴다는 그 정도의 상식까지 모르는 그런 쑥맥은 아이었지만 어쩌면 남녀간에 피부만 접촉해도 그런일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그런 착각을 한동안 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여자이기도 했다. 물론 일단 도현과 지연이 그런 관계가 된 이상 어차피 카나다로 도피하기 이전까진 무엇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쁜 하루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이지연임을 생각하면 그것도 비밀리에 만나 사귀는터에 도현과 그런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나 여건자체가 되지 못했겠지만 도현은 막상 카나다의 윤지호 사장 별장에서 은거하게 되면서는 마치 그동안 참아왔던 욕정을 뜨겁게 폭발해내듯 지연을 끌어안았다. 그 뜨거운 밤. 밤이 지나고 나서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지연은 울고 있었다. 첫 의식을 치르고 난 여성에게서 종종 있는 반응이라지만 지연의 경우엔 좀 심했다고나 할까. 관계는 이미 간밤에 치렀고 이미 잠도 자고 나서 날이 밝은 아침. 그제서야 우는 여자는 사실 별로 없을 것이다. 헌데 지연은 날이 밝은뒤에 새삼 울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욕실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오던 도현이 순간 당황해서 물었다.
“ 지연아...왜 그래 ? ”
“ 아냐...그냥...몰라...흑흑~~~!!! ”
아무래도 간밤에 자신이 너무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일단 지연을 달래줘야 할 것 같아서 도현이 이와같이 물었다.
“ 많이 아팠었니 간밤에. ”
그러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지연. 확실히 많이 아프고 힘들었었나보구나. 그걸 느낄수 있는 순간이었다. 도현이 지연을 달래준다.
“ 오빠... ”
“ 왜 ? ”
“ 나...무서워 오빠. ”
“ 뭐가 ? ”
결국 성관계를 하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는 소린지. 일단 대충 그런 짐작이 들 수밖에 없는 반응이긴 하지만 도현이 이런 지연을 어떻게 달래줘야하나 그 판단조차 쉽지가 않은 상황에서 지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 오빠... ”
“ 그래, 괜찮으니까 어려워말고 말해. ”
지연을 안아보며 이렇게 달래주고 있는 도현. 허나 아무래도 질문하긴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일까. 지연의 입이 쉽게 안 열린다. 결국 도현이 이렇게 말을 건넨다.
“ 어려워말고 말하라니까. 혹시 너무 아프거나 힘들었으면...오빠가 앞으로 살살 하
거나 할게. 그러니 걱정말고 말해. ”
“ ...... ”
“ 괜찮으니까...오빠 앞인데 뭐 어때 ? 걱정말고 말해보라는데두 그러네. ”
결국 마지못해 그런식의 답이 지연에게서 나오긴 했지만 확실히 지연은 첫 관계때 많이 아프고 힘들었고 그래서 성관계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런 지연을 배려해서일까. 별장에서 생활할 때 한동안 도현은 지연을 살살 다루었다. 허나 그건 어쨌든 별장에서 단둘이 편안한 시간을 보낼때의 일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현이 본격적으로 윤지호 사장의 일을 도와주며 2-3일에 한번씩 별장에 돌아오고 게다가 전처 은정이 아이를 맡기고 떠난뒤엔 평수 작은 빌라로 거처를 옮겼을때부터는 직장일을 하느라 바쁘고 피곤한 도현이 지연과 한가하게 그런 것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땐 도현은 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않고 잠자리부터 드는게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영호문제로 상의할게 있다고 했을때도 ‘피곤하니 자게 놓아달라’고까지 애원했을까. 무엇보다 그때는 영호문제로 일이 계속 꼬이고 그로인한 부부갈등도 심상찮을때라 한가하게 밤중에 침대에서 성관계나 즐기고 있을만한 부부사이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여유가 생긴 두 사람. 헌데 이제 지연이 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 여보...근데... ”
“ 왜 ? 무슨 할말이라도 있나 ? ”
다른건 몰라도 편의점을 하면서부터는 아내 지연과의 관계든 아들 영호의 문제든 대체로 안정을 찾은 분위기라 도현의 성격도 다시 이전의 온화한 성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헌데 그런 상황에서 함께 있는 깊은밤. 지연의 말은 이와같다.
“ 실은...우리 아이갖는 문제 말이에요. ”
“ 아이 ? ”
순간 당황하는 도현. 사실 처음에 지연과 사랑의 도피를 떠나 얼마되지 않았을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뜨겁게 자신의 욕망을 지연에게 분출해냈던 도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처 은정이 아이 영호를 맡기게 된 상황. 도현이 이 문제는 다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진지하게 지연에게 묻는다.
“ 왜 ? 아이를...갖고 싶나 ? ”
“ 안 그럴거라 생각하셨어요 ? ”
반응이 이럴진대는 더 확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않은가. 도현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거실로 혼자나가 뭔가 고민이라도 하는듯한 모습.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돌아올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이기까지 한데 여하튼 시간이 좀 지난뒤에 침실로 돌아온 도현. 지연에게 이렇게 말한다.
“ 지연아... ”
지연은 말이 없다. 고민하는것일까. 아니면 그저 당신의 처분대로 맡기고 따르겠다는 의미일까. 허나 남자가 어찌 여자의 깊은 속을 이루 다 헤아릴수 있으랴. 지연이 말하지 않으면 도현이 그녀의 생각을 알길이 없다. 결국 도현은 그냥 자기생각을 말하기로 한다.
“ 지연아...사실 난... ”
“ ...... ”
“ 그동안 종종 이야기한적이 있어 대충 눈치는 챘을거라고 생각했지만...우리 집안은
뭐 그렇게 대단한 명문가나 잘난 집안은 아냐. 아버지는 그냥 젊은시절 서울로 올
라와 공장노동자로 쭉 일해오신 분이고 할아버지나 그 윗대로는 쭉 고향에서 농사
만 지으며 살아오신 분이라 들었어. ”
따지고보면 지연의 집안 내력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아버지는 돈벌러 너도나도 서울로 올라오던 시절 무작정 상경한 젊은 청년이었고 그 윗대로는 쭉 시골에서 대대로 농사만 지으며 산.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막 이루어지던 그 시절에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람들이긴 한데, 여하튼 도현은 지연의 손을 한번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솔직히 난 영호를 이렇게 우리가 키우게 되는 일이 발생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
어쨌든 김은정 그 여자가 그렇게 말도없이 애까지 데리고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상태였고 그래서 그냥 전처는 포기한채 널 만났던건데... ”
“ ...... ”
“ 헌데...사실 나도 다른 형제나 자매가 없는 독자고 실은 아버지도 무녀독남 외동
아들이셨어. 그러니 내가 2대독자인 셈이지. 사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대개
8남매,9남매 낳고 하던 그런 시절이니 그런 시절에 흔히 볼수는 없는 그런 사례
이긴 하지만... ”
대충 무슨말을 하려는것인지 짐작이 가는것일까. 지연이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볼뿐 별다른 말이 없는 가운데 도현의 말이 이어진다.
“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그러고보니 영호가 3대독자가 되는 셈이구나. 참...나도 웬
만하면 이런말 하지 않고...적어도 영호를 우리가 맡게 되리라는 생각을 못했을때까
지만 해도...그냥 너랑 이렇게 살면서 아이낳고 행복하게 사는 그런 모습을 꿈꿨는
데... ”
“ ...... ”
“ 이렇게 된 이상 어쩔수없이 영호가 나한테는 너무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란
것을...네가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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