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젊은 새엄마 3
“ 얘가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하고 있어 ? 여기가 어딘줄 알고 니
가 니 엄마를 찾아 간다는거야 ? 여기가 무슨 한국 지방도시쯤 되는줄 알아 ? 여
긴 카나다야 !!! 카나다에서 한국까지 니가 엄마를 무슨수로 찾아가 !!! 너 혼자 태
평양이라두 헤엄쳐갈래 !!! ”
“ 싫어 !!! 비켜 !!! 나 엄마찾으러 갈거야. 엄마한테 김치볶음밥 해달라고 할거야 !!!
계란후라이 해달라구 할거야 !!! 그러니까 빨랑 비켜 !!! ”
이곳은 카나다고 영호의 친엄마 은정은 한국에 있으니 지금 아이 혼자 엄마를 찾으러 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쨌든 대충 설명을 하는데, 아무래도 다섯 살짜리가 – 그것도 자기 엄마랑 그렇게 싸웠던 이상한 누나가 그런 소리를 하는데 – 그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을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지연은 문앞을 꽉 막아서고 있고 어떻게든 나가려는 영호와 실랑이가 계속 벌어지고 있고, 그러니 방안에 있는 도현조차도 잠에서 깨 안 나와볼수가 없다.
“ 잠 좀 자자 !!! 잠 좀 !!! 나 일하느라 늘 피곤한 사람인거 몰라 ? 대체 이 한밤중
에 이게 무슨 소란이야 ? ”
“ 당신 이리좀 와봐. 잘 됐네. 당신이 직접 이야기해. ”
“ 잠 좀 자자구 !!! 잠 좀 !!! ”
잠결에 너무 시끄러운 소리가 나와 거실로 나와본것이라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것일까. 그렇더라도 도현과 지연이 사는집이 평수넓은 집도 아니고 그래봤자 열평 조금 넘는 그런 빌라인데 도현과 지연의 침실에서 발걸음으로 다섯발자국도 채 안될 것 같은 현관에 서 있는 자기 아들의 모습이 안 보일리도 없을텐데 도현은 그저 ‘시끄러워 못살겠으니 제발 잠 좀 자게 해달라’는 짜증만 거듭 낼뿐이다. 어쨌든 영호는 도현에게 자기 아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무심한 아빠가 있을수가 있나 그런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무엇보다 지연이 도현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해보려 다가간 사이에 아이가 집을 나가려 하면 진짜 큰일이다 싶어 지연은 다시 현관으로 달려가보았고 도현은 그저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사람처럼 바로 다시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사실 도현과 지연의 사는집 문은 너무 낡아 여닫이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인데, 사실 지연은 그래서 돈이 좀 모아지면 문수리부터 좀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도 하던 중이었다. 헌데 아이가 저러는 것을 보니 문수리 하는 것을 차라리 보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여하튼 성인의 힘으로 있는대로 힘을 써야 겨우 열릴까말까 하는 그런 문이라서인지 다섯 살 영호는 그 앞에서 그저 낑낑댈뿐 어쩔줄을 모르고 지연은 그런 영호를 강제로 끌어내 제 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이가 또 말썽을 부리지 않을까 싶어 아이 방으로 직접 들어가 감시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날은 남편 도현이라도 있던 날인데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가 또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려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도현이 들어오지 않는날. 그런 깊은 밤에 아이는 딴에는 용의주도한 계획이라도 세운것인지 아빠도 없고 지연도 한눈을 팔만한 그런 깊은 밤시간을 이용 다시 집을 나갈 생각을 한 듯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쉽게 열리지 않는 문. 사실 키가 문고리에 제대로 닿지 않아 문고리를 영호가 만지기도 쉽지 않을터인데 원래 잘 안 열리는문에 문고리까지 아직 키가 닿지 않는 영호. 그러니 차라리 이 상황을 다행이라고 봐야하는 것일까. 지연은 남편도 없는 밤에 혼자 방에서 TV – 어차피 영어로 하는 방송이니 아직 지연이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을수도 없지만 – 라도 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는데 그러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잠시 거실로 나가보았다. (* 어차피 카나다 방송내용을 지연이 아직 제대로 알아들을수도 없으니 TV프로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다.) 헌데 그렇게 잠깐 다시 방에서 나와보니 아이가 현관에서 며칠전처럼 또 그러는 것이 보이는 것 아닌가. 기겁한 지연이 다시 아이앞을 막아선다.
“ 너 왜 이래 ? 또 무슨짓을 벌이는거야 ? ”
“ 우와아앙~~~!!! 시러시러~~~!!! ”
“ 아니 도대체 얘가 울긴 왜 툭하면 우는거야 ? 도대체 뭘 잘한게 있다구 ? 너 또
왜 그러는거야 ? ”
“ 집에 갈래 !!! 엄마한테 갈래 !!! 우와아앙~~~!!! ”
“ 이젠 여기가 니네집야. 여기서 우리랑 살아야한다구. 너 이제 니네 엄마랑 살수
없어. ”
그래도 차마 아이한테 제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실을 알리고 싶진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되니 지연도 현명하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있는대로 아이한테 쏟아붓는다.
“ 니네 엄마가 너 버리고 떠난걸 대체 날더러 어떡하라구 ? 니네 엄마가 너 키울 자
신 없다구 우리한테 무작정 맡기고 가버린거란말야. 나 원...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날 내가 얼마나 황당했었는데... ”
“ 우와아앙~~~!!! 아냐아냐. 엄마 영호 안버렸어. 집에 갈거야. 엄마한테 갈거야...엄
마한테 가서 김치볶음밥 해달라고 할거야. 말할거야 !!! ”
“ 여긴 김치볶음밥 없어. 김치볶음밥을 할 수 있는 재료가 없다구. 아니 재료를 구
할 수가 없는걸 자꾸 해달라고 하면 난들 어떡하니 ? 나도 돈 없어서 한국까지 그
렇게 자주 오가지 못해. 그래서 김치고 쌀이고 구하기도 쉽지않아 짜증나는데...도
대체 너까지 이러면 날더러 어쩌라는거야 !!! ”
“ 엄마한테 갈거야 !!! 엄마한테 갈거란말야. 우와아앙~~~!!! ”
“ 아니 근데 얘가 진짜... ”
보자보자하니 진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순간 지연은 아이를 발길로 뻥 차버렸다. 그 바람에 저만치 나가 떨어지는 영호. 허나 그 정도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바로 아이를 끌고 제 방에 처넣어버리고는 그대로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는 아이가 행여 또 도망갈세라 그러잖아도 없는 살림에 의자며 베개며 심지어 부엌에 있는 가스렌지나 전자오븐같은 조리도구까지 전부 끄집어내 여하튼 아이가 문을 쉽게 열고 빠져나올수 없도록 막을수 있을만한 집기는 있는대로 전부 가져와 문 앞을 막아버린다. 아이는 한참동안 방안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는데, 일단 그 울음소리가 그쳤고 다시 방에서 나가려는지 문을 열어보려다 제대로 열리지 않음을 깨달았는지 이번엔 문을 쾅쾅 두드리기까지 한다. 지연이 소리를 꽥 지른다.
“ 시끄러 !!! 이 꼬맹이가 이제 하다하다...왜 이 한밤중에 문은 있는대로 두들기고
지X이야 !!! 지금이 대체 몇신데...어서 자빠져 자지 못해 !!! ”
“ 우아아앙~~~!!! 집에 보내줘어~~~!!! 엄마한테 보내주어~~~!!! 엄마한테 보내달란
말야. 우아아앙~~~!!! ”
“ 시끄러 !!!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할래 ? 너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계속 지껄
이면 니 혓바닥을 확 칼로 썰어버린다. ”
“ 우아아앙~~~!!! 시러시러. 엄마한테 갈래. 엄마한테 갈거야. 우와아앙~~~!!! 엄마
어디있어. 엄마 어디있냔말야. 우와아앙~~~!!! ”
아침. 아니 아침이라기보단 새벽이라고 봐야할 이른시간에 벨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도현이 들어오는 날이긴 하지만 도현은 보통 오후 늦게나 저녁때 들어오지 이렇게 이른 아침에 오지는 않는데, 의아해하며 지연이 문을 열어보았다. 평상시에도 잘 열리지 않는문이 오늘따라 짜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일단 문을 열어보니 지연보다는 나이가 좀 있어보이지만 그렇게까지 많아보이지는 않는 나이의 여성 하나가 문 앞에서 있었다.
“ 이봐요. 내가 그래도 많이 참은거에요. 간밤에 바로 신고를 해버릴까. 아니면 와
서 따질까 고민하다 저집도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참은거에요. ”
“ ??? ”
“ 사실 나도 새벽같이 나가 일하다 밤늦게 들어와야 하는 사람이고...피차 경제적
으로 열악하게 사는 사람들끼리 그 사정 이해 하자면 해줄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여야 말이죠. ”
물론 상대여성은 지금 영어로 말하는 중이고, 지연이 여하튼 영어실력이 그래도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침부터 일찍 문을 두드린 평범한 젊은 저소득층 카나다 여성의 항의성 이야기를 100% 제대로 알아들을수 있는 수준은 못 된다. 상대 역시 막상 와보니 젊은 동양인 여성인 것을 보고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영어를 잘 못알아 들을수도 있겠지 생각하고 최대한 인내심을 가져가며 설명하는 중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심은 제법 있는 여성이라고 봐야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여성이 새벽같이 찾아와서 항의를 하는 것이다.
“ 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 간밤에 그렇게 소리지르며 싸우고,울고불고 난리였는지 몰
라도 최소한 이웃에 사람이 산다는 것 정도는 생각해줘야죠. 그것도 다 같이 새벽
같이 일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그렇게 힘들고 열악하게 사는 처지에... ”
말하는걸로 봐선 이 젊은 저소득층 카나다 여성의 지나온 인생도 보통은 아니었던 듯 싶다. 허나 그래서 더더욱 힘들고 어렵게 살아갈법한 이웃의 사정을 조금은 참아주려 했는데 참다참다 이렇게 지연의 집 문을 아침부터 두드렸다고 봐야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제 대충 상황파악이 될것같다. 지연이 정말 머리나쁘거나 모자란 사람이 아닌 다음엔 그것도 이미 간밤에 그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판에 항의하는 이웃주민 하나 없대서야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상대여성의 말을 100% 정확히는 못알아 들어도 대충 상황파악은 되는지 황망한 표정으로 거듭 사과의 말을 입에 담는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게 실은...간밤에 아이가 좀 말썽을 부려서... ”
영호의 구체적인 상황까지 지금 – 지연이 그걸 다 설명할수 있을만큼 영어실력이 좋지도 못하고 - 설명할 수는 없는 처지라 ‘아이문제 때문에 그런것이니 양해해달라’는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고 그러자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서일까. 여인이 다시 묻는다.
“ 아이 ? 아이가 있단 말이죠 ? ”
간밤에 그 난리가 벌어진 것이 옆집까지 다 들렸다면 아이 울음소리도 들렸을것이고, 허나 여인이 보기에 ‘아이’가 있는 엄마라고 보기엔 너무 나이어린 여성으로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다른 문제(아동학대)에 대한 의심을 품는것일까. 뭔가 물어보려고 하다 어차피 긴 영어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단념하는 듯 하다. 다만 지연을 다시금 유심히 살펴보는 듯 하더니 ‘미안하다’는 취지의 말을 남기고 돌아가긴 한다.
“ 당신 나 좀 잠깐 봐. ”
한편 그날 저녁 대략 이틀만에 귀가한 남편 도현은 다른 무슨 할말이 있는지 지연을 부른다. 간밤의 일도 일인데다 아침엔 그로인해 옆집 카나다 여성의 항의까지 받은터라 남편이 이렇게 나오는데 지연이 다시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대체 무슨일인가 의아해하는 지연에게 도현은 이렇게 나온다.
“ 당신 도대체 요즘 왜 그러는거야 ? 뭣 때문에 계속 그러는건데 ? ”
도대체 뭘 갖고 그러는건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연 입장에서 이런식이라면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있을수가 없다. 안 그래도 아이문제도 그렇고 아직 도현과의 혼인신고도 정상적으로 안된 상황에서 그 문제를 상의하려 하자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게 불과 며칠전 일 아닌가. 어이없어 차마 무슨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지연을 보며 도현은 이렇게 말한다.
“ 당신 애는 왜 굷기는건데 ? 영호 밥을 왜 굶기는거냐구 ? ”
“ 누...누가 그래 ??? 대체 누가 밥을 굶겨 ? ”
다른건 몰라도 ‘밥을 굶겼다’는 것은 지연 입장에서 억울한 오해이자 누명일 수밖에 없다. 일단 한국인들이 흔히 머릿속에 생각할만한 그런 밥상(밥,김치,된장찌개,두부,시금치,콩나물...)일수는 없어도, 게다가 무엇보다 카나다에서 구할수 있는 식재료라야 결국 빵 아니면 베이컨이나 햄,소시지,계란 또는 그 외 육류등 그런것들 뿐이라 무엇보다 지연도 이런식으로 한두달 살다보니 그런 식재료속에서도 삼시세끼를 다른 종류로 만들어가는 노하우가 이제 조금씩 생길판인데 그런 지연을 보고 ‘아이 밥을 굶긴다’니. 대체 누구한테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냐고 따지고픈 심정인데 그런 지연을 보며 도현이 말한다.
“ 아이가 그러더만 !!! 당신이 애 밥 안 준다구 !!! ”
“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 그리고 도대체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해 !!!
”
다른건 몰라도 지연 입장에서 억울할 수밖에 없는게 아이가 여하튼 그런식으로 차려주는 서양식 식사가 입에 안 맞는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달라느니 엄마한테 가서 해달라고 할거라느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계속 해서 지연이 화를 내서 그렇지 ‘삼시세끼’ 식사를 거르게 한적은 단연코 없다. 아이 머릿속에 있을법한 그런 ‘한국인의 밥상’이 차려진적이 없어서 그렇지 지연이 아이를 고의적으로 굶긴적은 분명히 없다. 그래서 더더욱 억울할 수밖에 없는 지연. 그래서 이렇게 나온다.
“ 도대체 무슨 그런...내가 언제...안 그래도 못 하는 영어실력에 하루가 멀다하고 매
일 상점가서 식재로 챙겨 사오고...애 삼시세끼 챙겨먹이고 있구만... ”
“ 영호가 당신이 밥 안준다고 분명히 그랬는데 무슨소리야 ? 당신이 밥 안줘서 엄마
한테 갈거라구 그러고 있구만 !!! ”
“ 뭐...뭐라구 ? ”
하긴 지금 도현에게 지연의 그런 문제를 이야기할 사람은 어차피 영호밖에 없다. 여하튼 그럼 도현과 영호 부자간에 그 사이 별도의 대화를 나눠본적도 있다는 소린데, 어찌되었거나 그런 상황에서 영호가 지연을 두고 ‘새엄마가 밥을 안준다. 굶긴다’ 이런식의 말을 한다면 지연으로선 더더욱 억울한일이 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지연도 빵식 위주의 서양음식이 입에 안맞아 힘들어하는 아이가 처음엔 나름 안타깝기도 해서 멀리까지 가서 쌀을 구입해 계란후라이라도 해주며 비벼먹게 해주려고 했는데. 바로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서 나온말이 ‘김치볶음밥이 먹고싶다’는 것 아닌가. 허나 김치볶음밥은 근본적으로 카나다의 평범한 저소득층 주민 밀집지역인 빌라촌에서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식재료의 음식. 그래서 ‘못한다’는 것을 짜증나는 상황속에서도 얼마나 설명을 했던가. 헌데 안된다고 하자 마치 단식투쟁이라도 할 기세로 ‘안먹는다’며 제방으로 들어가버린 아이를 그래도 딴에는 안타까와 다시 밖으로 나가 시장에서 산 과자 두어봉지를 방안에 던져 넣어주기까지 했다. 물론 ‘과자’가 식사일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 와중에도 아이가 굶는 것은 안타까와 그렇게 나온 지연인데 이제와서 나오는 소리가 ‘아이 밥을 굶긴다’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적반하장이 어디 있을수 있는가.
“ 영호가 이미 말했는데 자꾸 시치미 뗄거야 ? 대체 아이 밥을 왜 굶기는건데 ? ”
“ 당신이 한번 가서 직접 구해와봐 !!!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 ”
“ 뭐라구 ? ”
듣자듣자하니 지연으로선 너무 기가막히고 분하고 화가나 소리를 안 지를수가 없었다. 과연 이 도현이란 남자는 지난 한두달동안 자신의 고충과 고민을 눈꼽만큼이라도 이해하려 드는 자세가 되어있는것일까. 게다가 심지어 막상 아이 문제로 할 이야기가 있다니까 ‘일 때문에 피곤하다’며 핑계를 댔고 심지어 얼마전에는 아이가 ‘한국으로 엄마찾아 가겠다’고 나서는 것을 겨우 만류하며 막았는데 도현은 그 소란이 벌어지는 것을 뻔히 방에서 나와 목격을 했으면서도 되려 피곤하다는 것을 핑계로 방으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자신은 그렇다치더라도 어쨌든 제 아이만이라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주던가 만류해보던가 그럴 노력은 하지도 않은채. 헌데 그랬던 남자가 이제와서 하는말이 이와같다. ‘당신 왜 애 밥을 굶기냐 ?’고. 세상에 지금까지 자신에게 어떤일이 있었는지 남편은 도대체 이해나 하고 있는것일까. 파악이라도 해보려는 마음이 있는것인가. 지연이 참다못해 다시금 소리를 꽥 지른다.
“ 당신이 한번 여기서 구해보라구 !!! 영호가 먹고싶다는게 여기서 구하는게 어디 가
능한지 !!! 대체 이 근처에 하다못해 한인타운이 있길해 ? 뭐가있어 도대채 ? 이
카나다 한구석에서 김치볶음밥,된장찌개,장조림을 어디서 구하냐구 !!! 당신이 한번
직접 나가 시장이며 마트며 돌아다녀봐.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지 !!! ”
“ 아니, 근데 ? 원래 당신이 당신 아는사람 아무도 없는곳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
고 해서 이렇게 한거 아냐. 당신 배려해서 일부러 한인타운에서 멀리 떨어진곳에
한국사람을 아예 볼수도 없는곳에 우리 보금자리를 마련한건데 대체 이제와서 무
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 ”
“ 뭐라구 ? ”
물론 애초 이렇게 굳이 한인타운이든 뭐든 한국인을 가급적 만나볼수 없는 그런곳에 거처를 마련한 것이 한때 톱가수였던 지연이 그로인한 불안감과 연예계 생활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나려할 때 그래서 가급적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아무도 없는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가급적 한국인을 만나볼수 없는곳에 거처를 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지연이 따져묻는 문제의 본질이 그게 아니지 않는가. 막상 아이 삼시세끼를 챙겨주려하니 – 따지고보면 지연도 빵식위주의 서양음식이 입에 잘 안 맞는 면도 있고 – 김치볶음밥이든 된장찌개,장조림이든 그와 관련된 식재료를 전혀 구할 수가 없는곳인데 이를 어쩌란말인가. 그 고충을 토로하려는것인데 되려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지연은 너무 분하고 서러워 다시금 한바탕 울음을 안 터트릴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일은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도현은 집에 없을때인데 오전에 문을 두드리는이가 있었다. 경찰이었다. 지연의 집에서 계속 나는 이런저런 소란을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이웃집에서 결국 신고를 한 모양이다. 그 사이 도현과 지연사이에 큰소리 부부싸움이 한두차례 더 있었고 영호가 사소한 말썽을 부려 지연이 급기야 손찌검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소란이 계속 옆집까지 들리자 참다못해 결국 신고를 한듯하다. 하는수없이 경찰에 출두해야하는 지연을 바라보며 옆집여자는 대충 이런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 미안해요. 나도 웬만하면 사정을 이해해주고 참아주려 했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
야 말이지. 그러게 부부싸움을 하든 뭘하든 좀 적당히 하지 그랬어요. ”
여인은 사실 불가피하게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담아 말하고 있었는데 영어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는 지연에겐 그녀가 자신을 경멸하듯 말하고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여하튼 경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게된 지연. 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단 ‘심야소란’등의 이유로만 신고가 들어왔지 아동학대 문제의 신고는 아직 되지 않았다. 그 여러차례 났던 한밤중의 소란중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도 분명 몇 번 뒤섞여 있었는데 그래도 ‘설마’하며 이웃여자는 아동학대 가능성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사실 얼마전 문제의 그 여인이 항의를 하러 찾아왔을 때 바로 전날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가겠다며 그 난리를 치는 아이 때문에 못 나가도록 문을 닫아놓고 의자를 비롯한 오만 집기를 쌓아놓은 모습이 오전까지 그대로 방치상태였으니 항의를 하러 온 여자의 눈에도 그것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지는 않았을터인데 허나 그 쌓아놓은 물건들이 설마 방안에 아이를 가두어 놓은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어쨌든 ‘아동학대’ 문제는 아직 신고가 되어있지 않았다.
“ 집안에 그동안 문제가 있었습니까 ? ”
차분하게 경찰은 ‘1문1답’ 형식으로 심문을 진행하였다. 다만 동양인이고 한국인인 지연이다보니 경찰도 좀 난감해했다. 사실 지연도 간단한 1문1답형 질문은 이제 어느정도 알아듣고 답할수 있는 수준이긴 한데 경찰은 이 젊은 동양여성이 영어를 못하거나 못알아들을것이라 지레짐작한것일까. 급히 ‘통역관’을 찾기에 분주했다. 무엇보다 처음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 지레짐작했는데 국적을 물으니 일본도 중국도 아닌 ‘Korea’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당황을 한 현지 경찰관들. 애초에 지연이 그렇게 원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인근 지역에 사는 한국인이라곤 도현과 지연(* 굳이 포함시키자면 영호까지 세사람)이 전부라고 봐야하는 그런곳이다. 따라서 경찰관들도 한국인 통역사를 따로 둔다거나 할 필요는 거의 느끼지 않고 지금껏 살아왔을터. 자기네들끼리 뭔가 분주하고 난감하게 움직이는 듯 하더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찾아오긴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카나다 주재 한국 영사관에서 오래 근무한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사관 일은 그만둔뒤 쭉 카나다에 정착해 살고있는 사람으로 어쨌든 한국교민인 것이다. 영사관 시절 인연이 있던 경찰관이 이곳에 근무중이었는데 따라서 그 경찰관이 그것을 기억해내어 급히 연락을 취해 그에게 임시로 통역을 부탁한 것이다. 따라서 통역을 맡을 영사관 직원출신 한국교포가 도착할때까지 지연은 불안하게 만 하루 이상동안 그곳에서 대기하다가 그제서야 본격적인 ‘1문1답’형 심문이 시작된 것이다.
“ 결혼은 했나요 ? ”
일단 애초 신고를 했던 여자는 지연이 결혼(?)을 한 여자로 인지는 하고 있는 듯 했다. 일단 옆집여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는 젊은 직장여성(대략 20대 후반–30대 초반 정도). 그리고 2-3일에 한번씩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현이 직장여성의 눈에 몇 번 뜨이긴 했었나보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건없건 그런 문제를 떠나 남편이건 혹은 애인이나 남자친구건 또는 내연남이건 그렇게 ‘집을 드나드는’ 남자가 하나 있던 것 같더라는 이야기까진 신고자가 한듯하고 그래서 질문이 이런식으로 진행이 된 것이다.
“ 네. ”
사실 정확히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는데 따라서 이 상황에서 어찌 답해야할지 좀 난감한 질문이긴 하지만 일단 지연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심문이 계속 이어졌다.
“ 남편과 그동안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 ”
“ 문제가 있었다기보단...아이 문제 때문에 몇 번 다퉜어요. ”
“ 아이가 있나요 ? ”
“ 네 ? 네...저어 다섯 살짜리... ”
얼떨결에 그냥 다섯 살 영호가 자기아이라는 듯 대답해버린 지연. 경찰의 심문은 계속된다.
“ 아이문제로 다퉜다는 말인가요 ? ”
“ 그게...아이가 자꾸 여기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한국에 제 엄마한테로 돌아가겠
다고 해서... ”
“ 엄마라뇨 ??? ”
“ 아...그게 사실 제 아이는 아니고 남편의 전부인 아들이에요. ”
“ 전부인 아들 ? 양육권은 그럼 현재 두분에게 있는건가요 ? ”
“ 그...그게 네. 아마 그럴거에요. ”
일단 도현이 은정과의 이혼서류를 정리하면서 모든 것을 깔끔히 마무리한다고 했으니 – 아이만 맡아주면 깔끔하게 이혼해주고 떠나겠다고 은정이 말하지 않았던가. - 일단 지연은 이런식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아직도 순진하기만 한 지연. 딴에는 그래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정직하게 대답해야 그래도 엄벌에 처해지지 않을것이란 생각에 있는그대로 대답하는 중이다.
“ 그럼 재혼은 언제 했나요 ? ”
“ 아...저 그게...혼인신고를 아직 안 했는데... ”
결국 ‘혼인신고’가 되어있지 않다는 대답을 하고 만 지연. 그제서야 경찰관은 뜻밖이고 좀 의아하다는 듯 나온다. 심문은 계속된다.
“ 그럼 혼인신고는 안 하고 현재 동거상태란 말인가요 ? ”
“ 네. ”
일단 사실대로 답한 지연. 경찰이 다시 의아해서 묻는다.
“ 왜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죠 ? ”
“ 그게...남편이 전부인과 아직 이혼문제가 정리되지 않아서. ”
“ 전부인과 이혼이 정리되지 않다뇨 ? 그럼 남편이 이혼도 하기전에 지금 부인을 만
났다는 말씀이신가요 ? ”
사실상 ‘불륜’이었음을 시인해버린 셈 아닌가. 뭔가 이상하게 일이 계속 나쁘게 꼬여가고 있는듯한 상황. 심문은 계속된다.
“ 그러니까...이혼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유부남과 만나는 과정이었고...그 유부남과
현재 동거중이고... ”
“ 아...아니 저 아저씨. 그게 아니라요. 사실은 한국에서 카나다로 도망오면서 남편
의 아는 선배 별장에서 잠시 묵었어요. 헌데 그때 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남편
전부인이 찾아와서... ”
헌데 지연은 어디까지나 현재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현을 계속 ‘남편’이라 칭하고 있고 그 남편 도현과 이혼문제가 정리되기 전의 부인을 ‘전부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편의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이 있긴 하지만 일단 경찰도 그 부분을 굳이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는 것 같은 듯 본질적인 문제를 다시 짚어가기 시작한다.
“ 한밤중에 소란은 왜 피운건가요 ? ”
“ 아이가 자꾸 제 엄마한테 가겠다고 해서... ”
“ 그러니까 동거남 박도현씨의 부인의 아이가 자기엄마한테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
인거죠. ”
“ 네. ”
“ 아이는 왜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했나요 ? ”
“ 그게...아이가 자꾸 밥도 잘 안 먹고...여기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해서... ”
“ 아이가 카나다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했나요 ? ”
“ 네. ”
“ 아이에게 카나다 음식을 먹였나요 ? ”
“ 아이가 자꾸 안먹겠다고 해서...억지로 먹이는수밖에 없었어요. ”
물론 이와같은 질문은 경찰관계자들이 급히 불러온 한국 영사관 출신 교민의 통역을 통해 진행되는 중이었다. 물론 지연도 그동안 영어실력은 다소 늘었고 무엇보다 경찰의 심문 내용이 대개 단답형의 답변을 유도하는 쉬운 영어였기 때문에 ‘이 정도면 자신이 직접 대답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지연도 들기는 했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이 직접 말하겠다고 나오기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심문하는 경찰은 ‘닥칠 것’을 지연에게 요구한뒤 통역관을 통한 심문을 계속 진행하였다. 사실 이렇게 되니 진짜 난감해진 것은 결국 이지연이다 여하튼 그렇게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일 심지어 자신과 둘러싼 이상한 소문까지 떠돌던 시점에서 바로 그런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껴 도망치듯 떠났던 지연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을 때 한국 방송,연예계가 발칵 뒤집혔을것이란 것은 지연도 충분히 예상했을것이고 그 갑작스러운 도피사건의 충격이 이제 슬슬 사그라들고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갈때쯤 하필 이런식으로 ‘한국교민’을 만나게 되다니. - 도현과 윤지호사장등을 제외하면 지연이 카나다로 와서 사실상 처음 보게되는 한국교민이다. 만약 이런식으로 말이 나오면 소문이 또 어떻게 퍼질지 그걸 생각하니 더더욱 난감한 지연. 다만 이런 경찰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아직 나이어린 20대 초반의 지연으로서도 첫 경험이니 – 그것도 하필 외국 경찰서에서 – 무섭고 두려워서라도 모든 것을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만 답하고 가급적 중벌만은 면하는 정도로 일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는데 뭔가 일이 그렇지 않게 꼬여가고 있음은 지연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터이다. 한편 통역을 맡은 영사관 직원출신 교민은 뭔가 안되곘다는 듯 경찰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신들끼리 잠시 이야기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어차피 오늘 처음보는 초면일터이니 그런 통역사와 피의자가 무슨 작당을 할 일이 있겠냐먄은 어쨌든 경찰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기도 할텐데 교민은 피의자가 나이가 어리고 외국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않아 많이 두렵고 겁을 내고 있는 것 같다며 심신을 좀 안정시킬 시간을 달라는식으로 핑계를 댔다. 하긴 지금까지 심문하는 내용을 보더라도 다른건 몰라도 이 20대 초반 여성이 카나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란건 충분히 사실확인이 된 것 아닌가. (* 여태까지 심문내용에 의하면 지연은 (이혼을 하기 전이니) 유부남 신분인 도현과 카나다로 와서 한동안은 지인의 별장에 숨어 지내다가 최근에야 현재 사는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말했다. 어린 동양여성이 많이 두렵고 떨고 있다니 카나다 경찰도 약간 측은지심이 생겼는지 시간을 주었고 다만 너무 오래끌면 곤란하다는 단서정도는 주고 경찰서 한곳 의자에 두 사람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수 있도록 했다. 그런 상황에서 영사관 직원출신 교민은 이렇게 물었다.
“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아동학대 사실은 없는거죠 ? ”
“ 그...그게 애가 밥을 잘 안 먹더라구요. ”
일단 그런건 사실대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데 영사관 출신 교민은 ‘이 여자가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나보다’ 하는 답답함에 다시금 이렇게 말을 건넨다.
“ 지금 그쪽은 ‘심야소란’등의 문제로 고발을 당한 상태에요. 그러니 이 정도는 그저
간단한 벌금형 정도만 받고 일이 마무리될수 있는데 자칫 아동학대 혐의로까지 번
질수 있는 상황이라서 그러는거에요. 여하튼 아동학대 사실은 없는거죠 ? ”
“ 그...그게... ”
모든걸 사실대로 말하고 선처를 바란다고 다 용서가 되고 일이 잘 해결될수 있는 것은 아니로구나. 그런걸 깨닫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이런 상황에서 지연이 ‘영호가 자꾸 밥을 안 먹고 떼를쓰고 한밤중에 느닷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제 엄마한테 가겠다고 해서 그래서 발길로 차고 방에 감금을 시켰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어찌되는가. 지연으로선 그저 모든게 답답하고 눈앞이 아득하기만 해 어쨌든 한국말로 대화를 나눌수 있는 교민 앞에서 울며불며 애원하고 있었다.
“ 아저씨, 저 정말 억울해요. 저 정말 억울하단말이에요. 진짜...나중에 다 따로 말
씀드리고 싶을 정도로...뭐...한밤중에 소란 일으키고 그런것 때문에 고발당한거라면
그건 제가 다 감수할께요. 하지만 저도 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
“ 진정해요. 진정하세요 아가씨. 어차피 저도 영사관에서 일하면서 교민이건 유학생
이건 한국인 관광객이건 별의별 사람 다 보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이에요.
어쨌든 분명하게 말씀해주세요. 아동학대 사실이 있어요 없어요 ? ”
사실상 이제 ‘없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천성이 원래 사소한 거짓말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지연은 더더욱 어떻게 해야할지몰라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데 당황한 교민이 그런 지연을 거듭 달래며 설명한다.
“ 진정하세요. 이름이 아까 그러고보니 지연씨라고 헀던가...네. 지연씨...어쨌거나
전 세계 어떤 경찰이든 법조인이든 그건 다 마찬가질거에요. 대개는 보통 고소나
고발당한 사건 중심으로만 심문이나 질문을 하지 고소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문
제까지 일부러 묻거나 그런걸 집요하게 파고들진 않을거에요. 후우...그러니 어쨌
든 사태가 아동학대 문제로만 번지지 않으면 되는데... ”
허나 한밤중의 소란 원인이 그동안 ‘아이가 밥을 안먹고 보챘고’ 심지어 자기 친엄마한테 가겠다고 해서 그걸 만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답하지 않았는가. 그 과정에서 결국 지연이 이혼관계가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남자와 불륜관계였고 심지어 현재는 도현은 이혼문제가 정리가 되었지만 그 도현과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채 도현의 (이혼서류 접수를 하고난 뒤의) 전부인의 아들을 맡아 키우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일. 누가봐도 ‘아동학대’ 상황이 발생할수 있다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경찰이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 같아 결국 그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키고 지연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 다시 심문을 한다.
“ 아이에게 밥을 굶겼나요 ? ”
“ 아...아뇨 그런 사실 없어요. ”
일단 아동학대 혐의로까지 일이 번지지 않으려면 ‘거짓말’이라도 해야한다는 상황판단정도는 하는 중이다. 아무리 천성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지연이라도,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지연이 고의적으로 밥을 굶긴 사실이 없으니 그 대답은 분명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지연의 불안함과 두려움은 더 커지고 있으니 좀전에 교민이 ‘피의자가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아 심리적 안정을 시켜주고 싶다’고 한 핑계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경찰이 다시 묻는다.
“ 아이를 고의적으로 때리거나 감금한 사실이 있습니까 ? ”
“ 없어요 전혀 !!! ”
눈을 질끈 감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순간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지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해보는 사람’의 심리가 아마 이렇지 않을까. 만약 이때 거짓말 탐지기를 들이댄다면 대번에 들통이 날 수 있는 사실이긴 한데 여하튼 지금 경찰이 물어보는 심문의 핵심과 본질은 ‘한밤중에 자주 소란이 벌어졌단 이유’가 아니던가. 지연이 결국 이런식으로 답했다.
“ 아이가 카나다에서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을 못했고 그래서 그 문제로 남편과 자
주 다퉜고 또 아이도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 과정에서 제가 좀 짜증을 냈습
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
여하튼 아직 ‘아동학대의 확증’은 없어서일까. 좀 귀찮고 피곤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라도 경찰은 이 정도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지으려 했다. 다만 ‘아동학대’ 문제는 이지연이란 피의자의 석연찮은 결혼과 관련된 과정을 봐도 의심의 눈길이 가시지 않는지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 저희가 당분간 예의주시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일이 없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만 하루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록(* 경찰서 관계자들이 통역을 할 한국인을 찾아 데려오는 시간도 있었으니) 경찰서에 갇혀있다시피 하다 겨우 풀려난 지연. 이땐 도현도 집으로 돌아와 대충 사태를 파악하고 있기는 한데 그런 도현이 다시금 지연에게 짜증을 낸다.
“ 아니, 도대체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 ”
“ 뭐라구 ? ”
자신을 보자마자 이렇게 화를내는 남편을 보니 지연도 다시금 기가막힐 수밖에 없고 도현은 거듭 지연을 나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 아니 도대체 무슨 여자가 애 하나를 간수 못해서...이렇게 경찰서까지 붙들려가고
이제 진짜 하다하다 별 짓을 다 벌이는구나. ”
“ 여보... ”
그러고보면 웬만해선 잘 붙지않던 ‘여보’란 호칭이라 지금까진 대체로 ‘오빠’로 부르는 일이 더 많았던 지연. 헌데 오히려 화가나니 되려 이 표현이 더 입에 잘 붙는 것 같다. 무엇보다 지연은 모든 원망이 다 도현에게 쏠릴 지경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게 다 누구때문인가. 애초 아이 문제를 상의하자고 헀을 때 귀찮고 피곤하다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 뿐인가. 애초에 도현이 이혼문제가 깔끔히 정리되지도 않았고 아이까지 있던 사람임을 지연이 알았다면 그녀도 이렇게까지 무모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니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게된 원인제공자가 누구인가 그 생각을 하니 지연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다.
-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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