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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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트와이스 모모 (1)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부제 : 젊은 새엄마 3 

 


 1990년대 중반 어느날. 

 카나다라면 아무래도 한국이나 미국보다는 추운 북부지방. 그래서일까. 일단 호텔이나 모텔같은곳은 분명 아니고 누군가의 별장같은 그런곳인데 일단 주변 경치와 경관은 좋은편이다. 다만 대체로 짙은 낙엽색깔하며 간간이 부는 바람의 느낌과 무엇보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옷차림이 날이 어느정도 추워진때를 짐작하게 만든다. 바로 그럴 때. 별장안에 한쌍의 남녀가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함께 있다. 

 바깥 날씨는 추운편이지만 그래도 안은 난방시설이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는것일까. 간편한 츄리닝같은 실내복 차림으로 함께있는 두 사람. 그러나 뭔가 어두우면서도 복잡한 심경의 두 사람의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를 않고 있다. 

 남자는 올해 나이 35세의 박도현. 허나 서글서글한 눈매에 대체로 동안인 분위기 탓일까. 바로 그런 도현의 품에 있는 나이 스물한살의 어린여자 지연과 열네살이나 나는 나이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이들이 봤을 때 도현과 지연의 나이차이는 그리 많이 나 보이진 않을 것 같다. 여하튼 무슨 사연이 있는 한쌍의 커플인지, 이름만 봐도 한국인이 분명한 둘이 어찌하여 이 먼 카나다에까지 와 있는것일까. 살짝 도현을 바라보고 있는 지연의 눈빛이 뭔가 슬퍼보인다. 아직 어린나이 탓일까. 이런 멀고먼 낯선 고장까지 와 있다는것에 어떤 두려움마저 느끼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데 도현이 그런 지연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한참만에 한동안 말이 없던 지연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 오빠... ” 

 ‘오빠’와 ‘아저씨’는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이 두 단어의 차이는 크다. 헌데 대체로 젊은 여자들의 경우 보통 그리 친하지 않은 이웃주민이나 주변 동료에게도 ‘오빠’라는 단어대신 아저씨란 표현을 더 쉽게 쓰는 것 같은데, 실제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이차이도 그리 적지 않은 여자한테 그런 호칭으로 불린다면 듣는 ‘젊은 아저씨’의 느낌도 과히 좋지는 않을 것 같다. 허나 지금 지연은 그런 몇 살차이 나지 않는 남자도 아닌 열네살 차이나는 도현을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 그만큼 지금 이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해져 있는것인지. 아니면 지연 입장에서 도현에게 그만큼 더 친밀함을 느끼고 싶어 그런 호칭을 쓰는것인지. 도현은 일단 그런 지연을 다독여주듯 어깨를 한번 어루만져준다. 또다시 고개떨구며 눈물흘리는 지연. 다시금 입이 열린다. 

 “ 알지 오빠 ? 나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거. ” 

 “ 알지 그럼. ” 

 지연을 이해한다는 듯 그와같이 대꾸하고 있는 도현. 그러면서 그녀를 다시금 안아주기까지 하는데, 헌데 그러고보면 도현에게 반말투의 말을 쓰고있는 지연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래도 열네살이나 많은 사람이라면 반말투로 말을 건네긴 쉽지 않을텐데. 그만큼 지연 입장에서 도현이 만만해져 있는것일까. 아니면 당돌한걸까. 아니면 반대로 순진한걸까. 이 짧은 한 장면만으로 어찌 한 여인의 깊은속을 다 짐작할수 있겠냐마는 여하튼 지연은 도현을 바라보며 다시금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나 이제 그냥 여기서 이렇게... ” 

 “ ...... ” 

 “ 오빠와 단둘이서만 살고 싶어. 나를...아니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곳 

  에서...그렇게 우리 둘만이서 단촐히... ” 

 “ 지연아... ” 

 “ 그렇게 우리 둘만의 행복을...둘만의 사랑을 느끼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다구. ” 

 헌데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라고 지연이 표현했을진데 도현입장에선 좀 당혹스러울 것이다. 지연 입장에선 그만큼 도현과의 함께하는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 이련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도현은 적어도 한국땅에서 그렇게 유명한 인사는 아니었다. 사실 지연은 한때 잘 나가던 10대 여고생 가수로 방송사의 주요 가요순위프로에서부터 심지어 각종 오락프로나 코미디프로는 물론 심야에 공영방송에서 하는 뉴스시간에조차 ‘화제의 손님’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해 뉴스 스튜디오에 직접 나갔을 정도로 한참 초절정에 오르던 스타급 가수였다. 허나 지연의 경우엔 이렇게 카나다로 떠나오기전까지는 한국땅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란 소리가 나올정도로 대략 2-3년 정도 여고생 나이에 데뷔해서 그 짧은 시절을 그야말로 갑자기 화르르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한참 그 뜨거운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그 별의 순간을 맛보다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그곳에서 도망쳐나온 것이다. 그것도 자신보다 열네살이나 많은 밤무대 무명의 연주자에 불과한 박도현과 함께. 도현은 잠시 자신만의 착잡한 심경을 정리하려는지 지연을 떨어뜨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그리고 서서히 발걸음을 옮긴다. 무슨 특별한 의도가 아니라 창가에서 바깥경치라도 잠시 내다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려는 것 같다. 허나 그 몇발자국 안 되는 발걸음동안에도 절고있는 그의 다리가 대번에 눈에 뜨인다. 여하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어느덧 나이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략 17-18년의 시간을 밤무대 무명의 연주자로 살아온 박도현인데, 그러면서 한때 너무 무리를 한 탓일까. 그 와중에 잠시 다쳤던 사고로 인한 부상이 채 아물지 않아 이렇게 다리를 절고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나이 30대 중반의 밤무대 연주자가 – 그것도 다리까지 저는 장애인 신분으로 – 한참 대한민국 방송,연예가에서 톱스타의 지위를 구가하던 그런 여고생 가수출신 연예인과 이런 관계가 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어느 할짓없는 3류 무명작가의 소설이라면 모를까. 실제로 이런 일 – 톱스타 여가수와 30대 중반 무명의 연주자의 도피 – 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현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실제 지금 이미 대한민국 방송,연예가는 발칵 뒤집혀 있다. 엊그제까지 톱가수의 지위를 누리며 그것도 불과 하루,이틀전까지 정상적인 방송 스케줄을 무난히 다 소화하고 있어 평상시 그녀와 가까이 지내던 동료 연예인이라던가 예능.쇼프로 PD 및 그 외 방송 관계자들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던 상황에서 그녀가 이렇게 열네살이나 많은 무명의 밤무대 연주자와 카나다로 떠났다는 것. 대한민국 방송,연예가에 지난 수십년동안 웬만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초유의 사태가 되어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발칵 뒤집혀져있을 대한민국 방송,연예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도현과 지연은 그저 두 사람만의 망중한에 잠겨있다. 

 “ 오빠... ” 

 “ 말하렴 지연아. ” 

 이미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말한 지연. 자신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라 지연 혼자만 해당되는 사안이겠지만 – 그런곳으로 단둘이 달아나 자신들만의 사랑과 행복을 느끼며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런 지연의 소박한 바램. 정녕 어쨌거나 한 3년을 여고생 가수출신 톱스타로 그 ‘별의순간’을 느끼던 그런 여성이었는데 그 3년동안 오만 방송 프로그램 그 어느것하나 출연하지 않은 프로가 거의 없다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무수한 방송,행사 스케줄을 소화해낸 그녀였는데, 그 바쁜 와중에 정녕 그녀와 가까이 지내던 방송,연예가 동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저 자신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먼곳으로 단둘이 떠나 그 톱스타로서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그저 자신들만의 소박하고 행복한 ‘보통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며 조용히 살고 싶었노라는 그 작고 소박한 내면을 아무도 파악하지 못했단 말인가. 진실은 결국 당사자만이 알고 있겠지만 일단 지연은 현재 도현과 함께 있다. 그녀를 다시금 달래주려는 듯 다시금 다가와 안아주는 도현의 품에 포근히 안기며. 

 


 1990년대면 아직 인천 국제공항은 생기기 전이고 김포공항만 존재할때다. 허나 김포공항이든 인천공항이든 국제선 출국방식이 뭐 크게 다르진 않을터. 게다가 카나다든 미국이든 이런 나라들은 이때도 한국에서 그곳까지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을 그럴 시절이니 미국이나 카나다를 잠적이나 도피처로 생각하는 유명인사나 지식인은 이때에도 제법 있었다. 

 지연은 밤 비행기표를 사전에 예약 구매했다. 혹시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봐 일단 가명으로 예약을 하긴 했는데 평일날 밤시간을 출국시간을 잡은 것은 역시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국제공항이 평일 밤이든 낮이든 이용하는 이들이 한 몇십명이라도 있을것이며 거기에 공항관계자며 직원들 이런 사람들을 포함하면 사람들 눈 숫자가 이미 최소한 200개는 넘는다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그점을 우려해서 지연도 선글라스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발까지 쓰는 특급 변장을 하긴 했다. - 다만 지연의 원래 헤어스타일이 긴 생머리였다가 최근에 갑자기 단발로 바꾸긴 했는데 그것이 결국 장발로 분장하고 출국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는지까지 확인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여전히 하루가 멀다하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는 당대의 톱가수 이지연인데, 톱스타 연기자가 하루만 보이지 않아도 잠적설에 와병설에 별 이야기를 다하는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곳 연예부 기자들의 속설임을 생각하면 지연은 생각보다 치밀하게 도현과의 ‘사랑의 도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평상시 방송에서 보였던 마치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듯한 마냥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그런 이미지와는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은 그런 뜻밖의 스타일이기도 한데, 설마 이전까지는 정말 마냥 세상물정 모르고 천진난만하기만 했던게 지연의 본성이요 본심이라도 방송국 물을 한 2-3년 먹으면서 주위에서 들은 이런저런 풍월이나 그런것들도 있었으니 그런것들을 바탕으로 하고 참고삼아 사전의 치밀한 ‘도피계획’을 세운다는게 그렇게 무리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도현과 떠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분장을 하고 도착한 지연. 어쨌거나 상대적으로 공항이 그리 북적거리지 않은 시간을 택한것이니만큼 사람들 눈에 뜨일만한 위험은 그리 높지 않아보였고 또 기자들도 아직까지는 지연의 이 갑작스러운 일탈행위를 전혀 눈치채진 못한 것 같다. 이제 둘이서 차분하고 조용하게 사람들 눈에 뜨이지만 않게 출국장으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일이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한국땅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근본적으로 지연 자신으로서도 첫 경험이기도 하고 또 이런식으로 떠나면 언제 한국땅을 다시 밟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을 하니 팔다리가 후덜덜 떨려왔다. 그래서일까. 지연이 잠시 선글라스를 살짝 벗어보이며 도현에게 말한다. 

 “ 오빠... ” 

 “ 지...아니 저...미경아... ” 

 하마터면 지연의 실명을 자기입으로 언급할뻔한 도현. 허나 ‘그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전 예약때 했다는 지연의 가명으로 일단 언급을 하긴 한다. 순간 지연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도현에게서 나오자 당황할 지경인데 일단 지연은 도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나...한번만 안아줘... ” 

 “ 미경아... ” 

 여하튼 이 순간엔 지연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것이고 – 차라리 언급을 안 하는 것이 나을련지도 모르겠다. - 지연은 도현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 나...확실하게 사랑하는거지 오빠 ? ” 

 “ 당연하지. ” 

 그것도 하필 지금 이런 순간에 무슨말을 그렇게 하느냐는 듯 도현이 이렇게 답하고 지연은 이 순간이 순간이니만큼 한층 더 불안하고 떨려오는것일까. 다시금 도현의 다짐을 받아두고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 나...어떤일이 있어도 버리면 안돼. ” 

 “ 물론...내가 왜 널 버려 ? ” 

 공연히 너무 대화가 길어지는것도 좋지 않을수가 있어 도현은 대화를 가급적 빨리 마무리하고 출국장으로 빠져나가고 싶은데 허나 지연은 한국땅을 뜨기전에 확실하게 도현의 다짐을 다시한번 받아두고 싶은 듯 거듭 이렇게 말한다. 

 “ 만약...오빠가...오빠가 날 버리면... ” 

 “ ...... ” 

 “ 나 정말...죽어버릴지도 몰라. ” 

 “ 무슨말을 그렇게 해 ? 죽다니 ? ” 

 “ 나 정말...많이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웠어. 그리고 그 고민의 깊이와 무게가 내 

  가 감당할수 없을 그런 지경이 되었을 때... ” 

 “ ...... ” 

 “ 그 순간에 나타났던게 오빠야. 그리고 내가 그래서 오빠를 택한거고. ” 

 “ 그래, 니 맘 알아. ” 

 “ 그러니 오빠, 약속해줘. 이후 어떤일이 있더라도 날 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거라고. 

 ” 

 “ 알았어. 니 맘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으니까. 자...비행기 시간이 늦겠다. 더  

  시간이 지체되기전에 어서 여기를 떠나자. ” 

 여하튼 출국장에서 공연한 대화가 길어지다보면 둘의 정체가 발각날수도 있으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지연이야 이 무렵에 대한민국땅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당대의 톱가수지만 도현은 그저 한낱 일개 무명의 밤무대 연주자 – 가수도 아니고 – 에 불과했으니 적어도 박도현을 알아볼만한 사람은 대한민국땅에 그와 가까운 가족,친지나 친구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그래도 혹시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도현도 어느정도 분장을 하고 공항으로 나오긴 했는데, 그래서일까. 이 순간만큼은 자신도 이지연과 맞먹는 어떤 톱스타 연기자나 가수라도 되어 있는것만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하긴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솔직히 한 반년전까지만 해도 도현도 다른 사람도 아닌 당대의 톱가수 이지연과 이런 관계가 되어서 카나다로 단둘이 떠나는 일이 발생하리라곤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헌데 지금은 그게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명의 밤무대 연주자가 어찌어찌하다 인연이 되었는지 여고생 가수 출신의 당대의 톱스타 가수와 이런 관계가 되어 떠나는 사랑의 도피. 완전한 현실로 만들기 위해 도현은 이제 그만 지연을 재촉하여 김포공항 출국장을 빠져나가려 한다. 

 이 무렵에 한국에서 비행기로 미국이나 카나다까진 대략 8-10시간 정도가 걸렸을텐데 어찌되었거나 한참 사랑을 나누는 한쌍의 남녀 사이라면 비행기에서 그렇게 단둘이 서로간의 회포를 풀고 마음을 나누기엔 충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아직은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날짜변경선은커녕 시간대를 변경해야하는 선도 아직 넘기전이라 사방은 어두컴컴한 밤이기만 한데, 지연은 그런 밤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고 있다. 

 “ 지연아... ” 

 이제 비행기를 탔으니 안심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도현이 그녀를 불러보았다. 비행기안에 승객은 많지는 않고 드문드문 보이긴 하는데 여하튼 밤늦은 시간에 한국에서 출발해서 카나다나 미국 현지시간으로 이날(다음날이 아닌) 오후나 저녁때쯤 도착하는 비행기라 치고 (* 카나다를 경유해서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편이다.) 어쨌든 승객들은 대체로 깊은잠에 빠져있는 시간이라 지연과 차분하게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 것이다. 

 “ 무슨...생각을 해 ? ” 

 그냥 아무생각없이 비행기 바깥을 쳐다보고 있는것인지 – 그래봤자 이 시간에 비행기안에서 어두운 밤하늘외에 보이는게 더 있겠냐만은 – 아니면 진짜 무슨 하는 생각이라도 있는것인지. 궁금해서 물은 도현에게 지연이 문득 짧고 또렷한 단답형 대답을 한다. 

 “ 아빠생각 !!! ” 

 “ 뭐 ? ” 

 지연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좀 뜻밖이라는 생각이라도 든 것일까.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도현이 주위까지 살펴보며 지연을 바라보고 지연이 그런 도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 아빤...원래 반대하셨었잖아. ” 

 “ ...... ” 

 “ 나 연예계 데뷔하는거말야. ” 

 무슨 생각에서 지금 이런말을 하는것인지 대충 이해가 갈 것 같아서일까. 도현이 다시금 착잡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지연이 살짝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낸뒤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간다. 

 “ 지금쯤 아빠도 내가 남긴 편지 읽어보고 계시겠지 ? ” 

 “ ...... ” 

 “ 아니면 하다못해 언니들이나 막내동생 수연이라도. ” 

 “ 지연아... ” 

 “ 식구들 누구라도 지금쯤 내 편지 읽어보고 있을거아냐. 그러니... ” 

 “ 지연아.... ” 

 “ 그래서 진심으로 궁금해. 아빠도 또 언니들이나 수연(동생이름)이도 지금쯤 내 편 

  지 읽어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 ” 

 (* 실제 80-90년대 있었던 어떤 특정한 방송,연예가 상황이나 사건과는 관련없는 가상의 설 

  정이니 이 점 오해없기 바랍니다.)  

 


 지연의 아버지 이영규 선생은 공장노동자로 한 30년 이상 일해온 그 외 별다른 특별한 점은 없는 이 시대의 흔한 ‘보통 아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이다. 굳이 별다른 점이 있다면 슬하에 딸을 다섯이나 두었다는 점인데, 90년대 중반 현재 20대 초반인 지연이 밑으로 세 살 터울지는 동생이 하나 있고 위로도 언니 셋이 있다면 대체로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는 구호가 범 국민적 계몽 캠페인으로 자리잡아가던 그 70년대에 딸을 두세명도 아니고 다섯씩이나 낳았다면 이영규 선생 역시 ‘그래도 대를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지금 잣대로 보면 너무나 고루한 방식을 가졌던 허나 그 시절엔 흔하게 볼수 있던 보통의 사고방식을 가졌던 평범한 어른이고 아버지임이 틀림없다. 

 허나 현재 지연의 나이가 어쨌든 20대 초반이고 그녀가 가요계에 데뷔하던게 고등학생 신분이던 3년전. 그때 위로는 7살,5살,2살 터울지는 언니가 셋이나 있었다면 그때 이미 나이 50을 넘긴 나이인 이영규는 여하튼 나이 서른을 넘겨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남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정상적으로 제대하고 이후 대기업에 취직하든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에 합격하든 그렇게 정상적인 직장에 자리잡으려면 최소한 10년 가까이 그러니 사실상 20대 청춘시절의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야했던게 대략 1960년대부터 70-80년대까지 이 시절 보통 젊은 남성들의 모습이라면 서른 넘어 결혼한게 그리 이상할게 없지만 대학을 가지 않거나 못한채 군대만 다녀온뒤 취직을 했다면 그땐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하튼 20대 중,후반에 연애든 중매든 그런식으로 결혼을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그 정도는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결혼을 할 수가 있었다면 이영규에게 무슨 별도의 문제가 혹시 있었던 것은 아닐지. 허나 어쨌든 영규는 그 무렵 비슷한 연배의 여성을 중매로 만나 딴에는 ‘대를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일념하에 딸 다섯을 내리낳은 용감한 젊은이기도 했다.  

 다만 사회적으로 크게 출세하거나 무슨 방송,연예가나 문화,예술계쪽으로는 별다른 인연이 없이 살아온 그런 사람이 지연의 아버지 이영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영규도 연예가와 관련 떠도는 이상한 풍설이나 소문같은 것은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경험이 있었던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향이 보수적인것인지 지연이 막상 연예계애 데뷔한다고 하자 결사반대한 것이다. 사실 ‘고등학생 가수’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게 대략 80년대 중,후반부터인데 – 물론 그 이전에도 무슨 ‘천재가수’니 ‘꼬마가수’니 하는 식으로 중,고생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으나 80년대 중,후반쯤 트렌드가 되었던 ‘고교생 가수’와는 그 의미가 많이 다르다. - 어쨌든 아직 대학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딸이 느닷없이 ‘가수로 데뷔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어느정도 보수적이고 고루한면도 없지 않은 이영규를 적잖이 놀라고 충격받게 만드는 그런 일임에는 분명했다. 

 “ OOO 사장의 말빨과 수완은 여하튼 제법이었던거지 뭐... ” 

 지연이 자신의 데뷔때 일을 상기하며 아버지의 일을 떠올리자 도현도 그때의 비화는 대충 지연으로부터 들어 아는 것이 있는 듯 이런식으로 말한다. 바로 지연을 데뷔시킨 소속사 사장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마른체구 탓인지 웬지 파리해보이기까지 하는 지연의 얼굴을 잠시 걱정스레 바라보며 도현의 말은 이어진다. 

 “ 어쨌든 OOO 사장도 확실히 이제 더 이상 이전의 OO 가요제 출신의 순수해보이 

  던 청년가수 OOO은 더 이상 아니더군. 그후 한동안 작곡가나 음악프로 PD로도 잠 

  시 활동하긴 했지만... ” 

 “ ...... ” 

 “ 확실히 내가 봐도 OOO 사장은 이전의 그 순수청년 OOO이 더 이상 아닌 것 같 

  아. ” 

 지연의 가요계 데뷔가 실은 바로 도현이 언급한 그 OOO 사장이라는 이가 운영하는 기획사의 오디션에 붙으면서 이뤄졌던 것이다. 그 무렵(3년전) 한참 뜨기 시작하는 신규 연예기획사가 있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아이돌이나 연습생 양성,훈련과정이 아직 체계적으로 잡혀져 있던 그런 시절은 아니라고 봐야 할탄데, OOO 사장은 박도현의 말대로 한때 OO 가요제에서 입상 이후 한동안 ‘순수청년’ 이미지로 가수활동에 작곡까지 손수 하며 그런식으로 명성을 누렸던 그런 가수다. 이때 이미 나이는 대략 30대 중반을 넘겨 후반으로 접어들때이기도 할텐데, 이제 연예계에서는 서서히 OOO을 더 이상 가요제 출신 순수청년이나 작곡가라기보다는 ‘수완좋은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더 잘 기억하는 그런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지연은 그 OOO 사장이 기획사를 처음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의 오디션 공모에 붙어 가수로 데뷔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허나 막상 그렇게 오디션 공모에 붙은 지연은 정작 그때 부모님께는 사전에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었다. 그런데 공모한다고 해봤자 어차피 부모님이 허락해주지 않으실것이란 생각을 했던것일까. 오디션을 보러가던 당일에도 집에는 ‘학교 써클 친구들과 M.T를 가기로 했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오디션을 보러갔던 것이다. 어쩌면 그리 큰 기대는 하지않고 지원을 했던것일수도 있는데 뜻밖의 합격. 바로 가수데뷔를 위해 음반을 준비해야한다면 – 아직 아이돌이나 연습생 훈련과정 같은 시스템은 없을 시절이다. - 천상 집안에 미리 말씀드리지 않을수가 없을것이고 지연으로선 고민이 되었다. 그러자 OOO 사장은 놓치기 아까운 대어가 걸려들었는데 이렇게 쉽사리 흘려보낼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는지 지연의 집까지 손수 찾아와서는 그녀의 아버지를 직접 설득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대학가요체 출신 가수로 한때 ‘순수청년’이란 별명까지 있던 OOO이 자기집으로까지 직접 찾아왔을 때 이영규도 어지간히 놀리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자리가 무슨 가수 OOO의 사인이라도 기념으로 한 장 받아놓을 자리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가수 OOO이 아닌 기획사 사장의 신분이자 자격으로 그것도 자신의 딸을 달라(?)는 설득을 하러온 OOO. 생각해보면 이영규 입장에선 얼마나 기가막힌 일이었으랴. 딸이 학교 써클 M.T를 간다고 ‘거짓말’까지 하고는 기획사의 무슨 오디션에 지원했다는것도 그렇거니와 심지어 합격을 해서 그 가수데뷔 설득을 회사 사장이 직접 하러 오다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기가막힌 일일 수밖에 없는 이영규. 딸을 크게 나무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 아니, 도대체 지연이 너... ” 

 평소 잘 하지 않던 술까지 깡소주처럼 퍼마셔가면서 지연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안할 수가 없던 이영규. 그나마 영규가 보수적인 성향과는 달리 그나마 천성은 그리 거칠지 않고 순한편이라 손찌검까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대신 정말 철없는 고등학생 딸아이한테 욕이라도 한바가지 퍼부어버리고 싶은 심정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소줏잔만 기울이고있는 이영규. 그러면서 말을 이어간다. 

 “ 애비가...여러번 말했지. 너희들 원한다면 딸 다섯 전부 대학까지 보내줄 용의가 

  있다고. 헌데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 ” 

 보수적인 성향도 성향이지만 대기업 간부나 중소기업 사장쯤 된다면 모를까 공장 노동자 출신인 이영규 입장에서 딸이 한둘이나 세명정도까지라면 모를까. 다섯명이나 되는 딸을 정상적인 4년제 대학까지 모두 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좀 무리가 가는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부분만은 이영규도 ‘딸도 웬만하면 대학까지 나와야 한다’는 그 정도 생각은 하던분이라 – 그리고 80년대 정도만 되어도 어른들중에도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 ?‘는 소리보다 ’그래도 딸도 기왕이면 대학은 나와야...그래야 나중에 좋은데로 시집보내거나...하다못해 취직이라도 좋은데 하지...‘ 이 정도 생각은 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던 시절이다.   

 헌데 이건 대학은 고사하고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넷째딸이 그것도 학교 써클 M.T가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기획사 오디션까지 보러가서는 덜컥 합격까지 해서 ’딸 가수데뷔를 허락해달라‘고 설득하러 기획사 사장이 직접 찾아와 설득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다니. 사실 말이 났으니말이지 이영규는 80년대 중,후반에 이런저런 고교생 가수니 여고생 가수니 하는 이들이 앞다투어 데뷔하며 이 시절 연예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갈 때 이런식으로 그런 가수들을 나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하던 사람이다. ’아니, 아무리 연예인 되고싶어 환장을 했어도 그렇지 최소한 대학은 들어가고 봐야 될거아냐 !!! 게다가 애가 저지경이 될 정도로 그 집에선 뭐했대 진짜 ? 부모가 뭐하는 인간들인지 진짜...‘ 그렇게까지 고교생 가수는 물론 그걸 방치하는 부모까지 이해할수 없다는식으로 나오던게 이영규 선생이었는데 이제 그 이영규가 그 꼴이 되게 생긴 것이다. 그러니 이게 어찌 기함하지 않을수 있는 일일수 있으랴.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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