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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트와이스 사나 (9.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평행우주 이야기 – 7. 고구려 비록 

 


 구려는 총 800년을 이어져 내려갔다. 그리고 ‘비녀전사단(秘女戰士團)’은 구려가 생긴지 대략 300년정도가 지난 14대 정홍태왕 시절 충신 원영권의 건의로 처음 만들어져 이후 300년간을 이어져 내려갔다. 그동안 비녀전사단에 위태롭거나 위험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300년 세월 가까이는 큰 문제나 무리가 없이 이어져 내려간 것이다. 

 37대 봉상태왕(峰想太王)시절이면 구려가 생긴지 어느덧 600년이 좀 넘은 시절이다. 비녀전사단이 생긴지도 대력 300년 정도가 지난 시점인데 봉상태왕은 본래 선태왕(先太王) 무성태왕(武星太王)의 차자(次子)였다. 어린시절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남달랐으나 숙부 구기성(具器盛)이 이를 시기하여 해치려하니 한동안 궁밖으로 나가 살았다. 태자 구도라(具導羅)가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나자 무성태왕이 하는수없이 그를 궁안으로 불러들여 새 태자로 삼았다.  

 22세때 즉위하여 이후 25년을 통치하였는데 덕망이 높고 포용력이 있어 널리 인재를 등용하며 무난히 국정을 이끌어갔다. 왕후(王后) 성씨(成氏)와의 사이에 아들 넷을 두었는데 첫째와 둘째가 모두 병약하여 불행히도 요절하였다. 하는수없이 삼남(三男) 용진(容眞)을 태자로 삼으니 그가 38대 성문태왕(成門太王)이 된다. 성문태왕은 왕자시절부터 그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좋아했으나 주색을 밝히는 것이 문제였다. 태왕의 자리에 오르자 한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여색만을 탐하니 많은 신료들이 걱정하였다. 

 심지어 성문태왕은 급기야 궐안 연회에 쓸 비용이 적다고 하자 비녀전사단 운영에 쓰는 비용까지 사사로이 유용하려 들었다. 이때가 비녀전사단이 생긴이래 어느덧 300년 세월인데 그동안 구려에 폭군(暴君)이나 암군(暗君)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래도 ‘비녀전사단 운영에 쓸 비용만큼은 절대 유용해서는 안된다’는 정홍태왕 시절부터 내려오는 엄명이 있어 웬만한 폭군이나 암군도 감히 거기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헌데 성문태왕은 심지어 여기에까지 손을대려 한 것이다. 급기야 비녀전사단 운영에 써야할 비용이 바닥나기 시작하고 전사단쪽 처우가 점점 열악해져갔다. 마침내 어린나이에 들어온 훈련생중에는 배고파 못견디겠다며 울다 탈출하다 죽는 아이들까지 생겼고 나이가 든 10대 훈련생들이나 20대 성인 공작원들도 열악해진 처우를 더는 견디다 못해 몇차례나 들고 일어나는일이 벌어졌고 전사단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운영할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전사단 물색관들도 이전에 비해 점점 성의없이 일을 하는게 느껴졌고 심지어 개인적으로 전사단 비용을 착복하거나 달아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런식으로 전사단은 차츰 막장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성문태왕의 주색잡기와 국정을 등한시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결국 이를 보다못한 한 이가 들고 일어나니 봉상태왕의 4남이자 성문태왕의 아우 용남(容南)의 아들 석호(錫鎬)다. 사실 석호는 성문태왕의 폭정이 점차 심해져가고 간신들이 주위에 태왕자리를 노리는 반란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참소하자 성문태왕이 조카 석호를 죽이려 하였다. 이때 한 궁녀가 극적으로 다섯 살이 채 안된 어린아이 석호를 데리고 궁을 빠져나와 민가에서 몰래 키웠다. 석호의 나이 스무살이 되니 궁녀가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마침내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불러모아 성문태왕을 몰아낼 반란계획을 꾸민 것이다. 석호가 성문태왕을 몰아내고 즉위하니 그가 39대 보명태왕(普明太王)이다.  

 보명태왕은 자신을 길러준 궁녀 예진(藝眞)을 배려하여 태후(太后)급으로 모셔 존중하려고 하였다. 허나 신료들이 구려 법도에 어긋난다며 모두 반대하였다. 하는수없이 예진을 태후에 봉하는 일은 보류하고 대신 숙명부인(淑明婦人)이란 칭호를 내려 어머니나 다름없이 모셨다. 정무를 보고 하루가 피곤하면 태왕은 종종 숙명부인의 처소에 들러 침수에 들었고 때로는 국사를 함께 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신료들이 부당하다 아뢰었으나 감히 말릴수가 없었다. 

 이때 숙명부인이 나름의 꾀(?)를 내니 그 안(案)이 이와같았다. ‘구려가 예전부터 많은 외적과의 전란에 시달려 백성들이 피폐해졌습니다. 따라서 구려의 백성들이 더 이상 전란으로 피폐해지고 굶주리고 죽어나가는일이 없도록 해주시오소서. 마땅히 이웃나라 거란,여진등과 화친하여 백성들을 더 이상 전란의 참화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소서’ 하니 태왕이 결국 부인의 말을 따랐다. 신료들이 모두 반대하였으나 이를 무릎쓰고 마침내 거란,여진등과 화친하였으며 심지어 거란,여진의 수장(首長)을 몸소 구려의 수도로 초청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거란과 여진의 진중을 방문하기까지 했다. 이로소 급기야 거란과 여진의 중신(重臣)들이 거듭 태왕에게 간하기를 ‘귀국(歸國)이 저희와 화친을 바란다니 그 뜻을 저희 역시 고맙게 받아들이나 안타깝게도 그 진정성을 믿기 힘듭니다. 듣기로는 구려에 예부터 무슨 전사단인가 뭔가하는 비밀조직이 있어 그동안 수도없이 저희 거란,여진등을 기습해와서 그 피해가 이루 말할수 없었나이다. 이에 태왕께 감히 아뢰오니 저희와의 화친이 오랫동안 지속될수 있기를 바라신다면 마땅히 그 의문의 전사단(* 거란,여진등은 아직 비녀전사단의 정확한 명칭을 파악 못하고 있다.)을 해체하시어 그들이 더 이상 저희 거란과 여진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시오소서.’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구려 중신들이 모두 불가하고 부당하다 반대하니 태왕이 고민하다 결국 숙명부인의 처소에 들렀다. 숙명부인이 사흘을 고민하다 말하기를 ‘구려백성들이 더 이상 전란에 휩싸이지 않게하기 위한 일인데 태왕께선 무엇을 두려워하시나이까 ? 마땅히 태왕께서 거란,여진 사신들의 뜻을 받아주시오소서.’ 하니 마침내 태왕이 부인의 뜻을 받아들여 전사단을 해체하기로 했다. 

 신료들이 반대하여 어떤이들은 울며 열흘이 넘도록 곡기(穀氣)를 끊으며 시위하였고 또 어떤이들은 더 이상 조정에 나가지 않았으며 어떤이들은 단체로 상소를 올리거나 궁궐앞에 엎드려 부당함을 거듭 간하는 연좌농성을 폈다. 허나 부인의 뜻을 받아들인 태왕의 고집을 꺾을수 없었고 마침내 전사단은 해체되었다. 

 비녀전사단은 급기야 해체되었다. 허나 이런식으로 갑자기 해체가 된 전사단은 그대로 구려의 일반사회로 나와 방치되어버리니 그로인한 부작용과 말썽도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비녀전사단에 들어가야할 지원비용이 끊긴지도 이미 오래되었으니 전사단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충성심도 이전과 같은 무력이나 기습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상 비녀전사단은 이제 허울좋은 이름뿐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사단이 있던 훈련소와 본부는 한동안 방치되어 폐허가 되어버리고 그나마 전사단 출신중 일부 뜻있는 이들이 전사단 훈련생 시절에 배운 무예나 백행지본 같은 덕목을 구려의 일반백성 마을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들었으나 전사단의 그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훈련과정이 이제 구려의 웬만한 백성들에게 알려질대로 알려진터라 전사단 출신들이 아이들을 불러모아 무예를 가르치거나 예도(禮道)를 가르치는 학원이나 학당엔 결코 자기 아이들을 보내려고 하지않아 이러한 후대들을 가르치는 작업도 오랫동안 이어지진 못했다. 이런식으로 비녀전사단은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 훗날의 역사학자나 일부 문사들은 ‘숙명부인’의 실체에 대해 거란이나 여진이 보낸 간자거나 혹은 구려인과 거란 혹은 여진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또는 거란,여진인간의 혼혈설등 별의별 주장이 나돌았지만 이 실체는 끝내 확인되지 못한다.) 

 


 반도에 3국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구려(句麗),백제(百濟),신국(神國)이라고 했다. 왕조가 세워진 순서로는 구려가 가장 먼저 세워졌고 백제와 신국은 이보다 100여년 뒤에 탄생했다. 허나 왕조의 존속된 기간은 구려가 800년, 구려보다 100년뒤에 태어난 백제가 700년 그리고 신국은 구려와 백제를 멸하여 반도를 통일하고도 이후 300년을 더 이어져가 1,0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영토는 백제가 보통 반도의 남서부지역을 장악했고 신국은 세력이 약할때는 반도의 동남부 일부밖에 차지하지 못한적도 있었지만 강성할때는 반도 중북부까지 치고 올라가 구려를 압박하기도 하였다. 구려는 강성할때는 반도의 북부지역은 물론 중강(中江)과 두강(頭江) 이북지역 4개주 대다수를 차지하다시피 했으나 세력이 약화되었을때는 중강과 두강 인근 극히 일부지역밖에 차지하지 못한적도 있다. (* 그냥 이해하기 쉽게 백제는 전라도,충청도 일대만 차지하고 신국(신국)은 경상도와 강원 경기도는 물론 잘나갈 때 황해도 북부지역까지 치고 올라갔다가 세력이 약할때는 경상도 일부지역만 차지한적이 있고, 구려의 경우엔 잘나갈때는 북쪽으로 동북3성 이북지역까지 남쪽으론 황해도와 강원도 남부까지 하지만 세력이 줄어들었을때는 압록강,두만강 인근 극히 일부지역밖에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구려가 비녀전사단등으로 주변국가들을 압박할때는 북쪽으로 거란과 여진의 옛 터전 대다수를 차지해버리고 급기야 흉노,몽골등과 대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신국의 북부지역 대다수까지 차지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비녀전사단이 사라진 이후로는 북방 유목민과 남쪽 신국의 압박을 받으며 다시 영토가 쪼그라들었다. 이에 구려백성들은 ‘이게 다 숙명부인 때문이다’며 그녀를 원망하기도 했다. 

 한편 신국은 34대 흥법성하(興法聖下)시절에 구려의 비녀전사단을 본딴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는데 다만 구려처럼 어린 여자아이들을 발탁하지 않고 대개 10대 남자 청소년들을 불러모아 무예와 호연지기를 가르쳤다. 특히 구려처럼 산속에 가두고 비밀리에 이를 양성하지 않고 공개된 군사조직처럼 기르니 이를 ‘화랑(花郞)’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흥법성하의 측근 이상돈이 비녀전사단의 ‘백행지본’을 본따 화랑으로서의 마땅히 지켜야할 덕목으로 다섯가지 계율을 만드니 ‘① 나라에 충성하고 ② 부모에게 효도하며 ③ 친구간에 신의를 지킬것이며 ④ 전쟁터에서 용맹과 지략을 발휘함에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될것이며(* 최선을 다하자 : 실은 저희 중학교 2학년때 급훈입니다 ^^;;) ⑤ 죄없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가 이 다섯가지 덕목이었다. 그리고 이 다섯가지 덕목을 일러 화랑은 물론 신국의 백성 누구나 가급적 지킬 것을 권할 것을 권장하니 ‘신국오계(神國五戒)’라 불렀다. (* 훗날 사학계에서는 신국의 ‘화랑오계’ 혹은 ‘신국오계’가 구려의 비녀전사단 ‘백행지본’을 표절한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두고두고 논란이 된다.)  

 화랑도가 점차 신국에서 자리잡혀가니 51대 진동성하(眞動聖下) 시절에 공태광이라는 화랑이 있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 부친(父親) 공진단은 신국에서 하급관리로 일해온자였다. 모친이 천한 신분이라 높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함을 탄식해왔다. 나이 19세때 이웃에 마도형(馬都衡)이란 권세가가 있어 집안 하인들도 위세가 대단하여 걸핏하면 마을의 부녀자를 희롱하고 시전(市廛)에서 돈도 지불하지 않고 함부로 물건을 갈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진단이 하루는 직접 마도형의 집 대문에 이르러 ‘이 집에서 패륜무도한 이와 도둑.강도들을 키운다는데 사실이오이까 ?’ 하였다. 마도형이 놀라 공진단을 불러 꾸짖기를 ‘네 무엇하는 아이길래 무례하기도 내 집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 대체 누가 패륜아를 키운다는것이냐 ?’ 하니 ‘이 댁 하인들이 세상의 법도를 거스르고 대감의 권세만 믿고 마을에서 함부로 힘없는 부녀자를 희롱하고 시장상인들의 물건마저 함부로 빼앗는데도 대감께선 이 지역의 권세가로 하인들의 품행을 마땅히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고 있으니 어찌 패륜아와 강도를 키우고 있다 하지 않을수 있겠나이까 ?’ 하였다. 마도형이 뜨끔하여 ‘네 말이 옳다’하고 하인들을 불러 꾸짖어 두 번다시 그런일이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공진단을 영특하다 여겨 자신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마도형의 딸 마씨는 이때 공진단보다 세 살이 많았는데 혼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년생으로 딸 둘을 낳았고 다만 결혼후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들이 없었다. 이에 마씨가 여러번 공진단에게 죄송함을 밝혔으나 공진단이 개의치않고 마씨를 다독이며 위로하였다. 공진단이 나이 40에 이르러 꿈을 꾸니 하루는 신녀(神女)가 말하기를 ‘동남방에 해운(海雲)이란곳이 있는데 그곳에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혼자 동생들을 키우느라 혼기를 놓친 처자가 있사옵니다. 성품이 후덕하여 공의 배필로 마땅하다 보니 마땅히 공께서 취하소서’ 하여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 이미 부인이 있거늘 다른 여인을 다시 취하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 하고 해괴한꿈이라 하여 신경쓰지 않으려 하였다. 허나 이후 몇 번이나 더 비슷한 꿈을 꾸고 급기야 졍신이 혼미하고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니 마씨가 그 연유를 묻자 사실대로 말하였다. 마씨가 고민 끝에 말하기를 ‘소첩이 일찍이 선친(先親)의 뜻을 이어받아 공과 혼인하였으나 마땅히 가문의 대를 이어야할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그 책임이 막중하오이다. 이에 천신(天神)께서 몸소 신녀를 보내시어 하늘의 뜻을 밝힌것이라 보니 마땅히 소첩이 물러나겠나이다’ 하고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갔다. 이후 공진단이 꿈에서 본대로 동남쪽 해운지역으로 나가니 그곳에 미라(美羅)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나이 이때 스물셋으로 이미 혼기를 놓쳤고 밑으로 네명의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공진단이 뜻을 밝히니 마침내 그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으니 이가 공태광이다. 

 공태광이 화랑으로서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나이 서른이 되니 장수로서 조정에 출사하였다. 그리고 성하(聖下)에게 간하기를 ‘구려와 백제가 오래전부터 신국을 핍박해오고 있으니 이는 나라의 오랜 복통거리이자 우환거리옵니다. 소신이 미력하나마 사력을 다해 구려와 백제를 정벌하여 신국과 반도의 백성들을 안정시키고자 하오니 마땅히 성하께선 허락해주시오소서’ 하였다. 이때가 52대 원명성하(元明聖下)때인데 원명성하가 놀라고 의아하여 고민하다 묻기를 ‘공에게 무슨 계책이 있는가 ?’ 하니 공태광이 아뢰기를 ‘원래 백제는 삼국중 가장 약체라 요충지 몇곳만 점거하면 백제는 쉬이 항복해 올것이옵니다. 허나 구려를 먼저 치려고 올라가면 백제가 마땅히 우리 신국의 빈틈을 노려 치려할것이오니 먼저 백제를 평정하고 구려를 처야합니다.’ 하고는 우선 장군 노상도,노형도,노진도 3형제에게 명하여 백제의 요충지를 먼저 점령하게 하였다. 이때 백제는 나라를 세운지 700년이 다 되어가 42대 어라하 무정(貿定)이 통치하고 있었다. 무정은 국정을 보살핌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으나 다만 충신 홍섬과 백현의 간언을 받아들여 군사(軍士)를 양성하지 않은 것이 흠이었다. 군대를 양성하는데 뜻을 두지 않고 오직 문예(文藝)와 오락(娛樂)만을 즐겼다. 무정이 죽고 43대 어라하 송진(松眞)이 즉위하니 무정의 후비(後妃) 양씨(梁氏)의 소생이었다. 송진이 즉위하자 이복형 송태와 송남이 반란을 일으켜 송진과 대치하니 마침내 백제의 조정이 어지러워졌다. 공태광이 이때를 틈타 노상도 3형제에게 명하여 백제를 치게 하니 백제는 43대 700년 왕조의 막을 내렸다. 

 백제가 막을 내리니 이때부터 비로소 공태광이 신료들과 구려를 칠 일을 의논했다. 공태광이 말하기를 ‘백제는 약소국이라 한번의 군사로 쉽게 진압할수 있었으나 구려는 잘나갈 때 그 영토가 신국의 열배가 되었고 또 그 옛날 비녀전사단이 강성하던 시절엔 심지어 우리의 성하를 두 번이나 암살한적도 있었으니 결코 무시할수 없는 상대요. 마땅히 계책을 써야 합니다.’ 하였다. 신료 태완선과 봉두완이 ‘공께선 무슨 계책이 있소이까 ?’ 하였다. 공태광이 말하기를 ‘신국 혼자만의 힘으로 정벌할수 없으니 ‘오로군사(五路軍士)’를 일으켜야 하오’ 하였다. 신료들이 거듭 의아해하며 ‘오로군사란 무엇이오이까 ?’ 하고 물으니 공태광이 계책을 말하기를 ‘(1) 먼저 거란과 여진에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며 공물을 주고 구려의 북쪽을 치게 할것이오 (2) 또한 흉노에도 밀사를 보내 그쪽의 명장 김태일의 능력을 칭송한뒤 그에게 날래고 빠른 기병으로 구려의 서북쪽 기슭을 쳐달라고 부탁할것이며 (3) 우리의 명장 동봉철에게 명해 신무기인 화포와 연노를 동원 구려의 서남쪽 성들을 한번에 대거 공략해야하오 (4) 아울러 지금 구려에는 실세 방세민(方世敏)이란 자기 있어 국정을 농단하고 있고 세민의 세 아들은 모두 황음무도하여 저마다 패륜행각을 일삼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소. 이에 사방에서 여기에 반발하는 도적들이 들고 일어났으니 이들 도적의 무리중 세력이 가장 큰 영홍,진태,성민등의 도적세력에게 은밀히 간자들을 보내 이들로 하여금 방세민의 아들들을 토벌하는 반란이 일어나게 할것이오 (5) 그리고 이렇게 네곳에서 군사가 동시에 일어나 구려가 어지러워져 겉잡을수 없는 혼란에 빠졌을 때 우리의 화랑출신 정예부대로 구려를 정벌할것이오’ 하였다. 공태광의 계책에 신료들이 옳다하여 동의하였다. 

 마침내 신국이 거란,여진,흉노등과 연합하고 구려의 내부 반란세력까지 충동하여 마침내 5로군사로 구려를 멸하게 하니 구려는 57대 800년만에 결국 막을 내렸다. 한편 공태광은 거란,흉노,여진등과 연합하여 군대를 일으킬 때 구려를 멸하면 일정부분의 땅을 떼어주겠노라 약조하였다. 원래 거란,여진,흉노등이 모두 구려의 비녀전사단이 강성하였을때부터 구려라면 치를떨던이들이라 신국의 제안에 선뜻 응하였으나 공태광은 약조대로 구려의 땅 일부분을 그들에게 떼어주어 특히 거란,여진등에겐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줄 수밖에 없어 신국은 구려를 정벌하고도 구려의 땅은 구려가 강성하던 시절의 영토의 절반수준밖에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공태광이 신국의 화랑으로 반도의 삼국을 통일하였으나 구려의 땅 절반 이상을 북방 유목민들에게 떼어준 죄로 탄핵을 당하게 되었다. 원래 신국은 화랑을 양성하면서 특히 은퇴한 화랑들을 중심으로 ‘원로의회(元老議會)’라는 것을 두어 나라의 중요한 문제나 세금을 거두고 쓰는 문제에 대한 의결권과 논의권을 주었다. 이는 구려가 비녀전사단을 양성하고도 정작 이들이 은퇴하여 사회로 나왔을땐 방치상태로 내버려두어 부작용이 커지고 비녀전사단이 무너지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화랑들은 은퇴후에도 계속 국사에 관여할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헌데 이 ‘원로의회’에서 공태광을 구려의 옛 땅을 거란,흉노,여진등에게 나눠준 죄를 물어 공태광을 탄핵하여 제주(濟州)에서 300여리 떨어진 성만도(成滿島)란 무인도로 귀양을 보냈다. 이에 공태광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 옛날 진대륙에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고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구나. 내가 이미 삼국을 통일하여 그 공이 큰데 작은 허물로 오히려 죄를 받게 하니 세상의 이치가 어찌 이렇게 모순될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비녀전사단’은 보명태왕때 해체되어 그후 전사단의 훈련소와 본부등은 구려가 멸망할때까지 약 300년간 그대로 방치상태가 되며 점점 폐허가 되어갔다. 신국이 거란,여진,흉노등과 연합 구려를 칠 때 구려의 황궁과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불살라 없애버렸지만 비녀전사단 본부등은 워낙 산속깊이 위치해있어 찾기도 쉽지 않았던데다가 신국이 구려를 멸망할 당시에 이미 전사단이 해체된지 300년 이상이 지난지라 굳이 그곳까지 신경쓰지 않았다. 게다가 전사단의 위치 자체가 워낙 베일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신국은 물론 거란이나 흉노,여진,몽골등 그 누구도 전사단 본부등의 정확한 위치를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그렇게 방치된 상태인 전사단의 숙소와 훈련소등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수풀이 우거지고 오만 잡풀이며 이끼 또는 풀벌레들로 인한 침식 심지어 산짐승까지 드나드는 그런곳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는동안 차츰 더 부서져가고 무너져갔던 것이다. 다만 전사단을 하다 전사(戰死)했거나 은퇴후 사망한이들을 추모하는 ‘추모동굴’만은 워낙 깊숙한곳에 위치해있어 일반 백성은 물론 산짐승들의 눈에조차 쉬이 뜨이지 않은채 천수백년 세월을 그 이름을 새긴 위패들이 보존되는게 가능했던 것이다. 

 한편 비녀전사단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 서책인 ‘고구려비록’이란 책을 신국의 중신으로 구려 정벌 때 참전한 태완선이 구려의 중신 민경찬으로부터 극적으로 건네받아 그 기록의 보존이 가능해질수 있었다. 사실 신국에서도 비녀전사단을 본딴 ‘화랑’이란 조직을 만들면서 이들 화랑의 명단과 활동사항,공적등을 적어 기린 ‘화랑서기(花郞書記)’란 책을 남겨 후세에 전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화랑서기는 신국이 삼국을 통일하고 대략 백여년쯤 지난 시점에 일어난 ‘대지진’때 유실되어 그 기록과 서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비녀전사단의 훈련소와 본부등의 유적이 천수백년 시절을 지나 아리수 문민국의 ‘옴베르트 대통령(* 옴베르트 대통령은 문민국에서 경제성장으로 나라를 근대화시킨 대통령이란 긍정적 평가와 함께 20년 장기집권을 하면서 독재와 인권탄압을 했다는 명암(明暗)이 갈리는 평가를 받고있는 대통령이다.)’ 시절에 극적으로 발견되어 비로소 ‘고구려비록’에만 기록으로 남겨져 심지어 그 비록의 진실성마저 의심받던 상황에서 ‘비녀전사단’이란 구려의 비밀 여성 전사조직이자 비밀특공대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비로소 사실로 확인되었던 것이다. 이후 비녀전사단은 아리수 문민국에서 특히 구려와 삼국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집중 연구대상이 된다. 

 아리수 문민국이 건국된지 대략 70여년 정도가 지난 어느 시점에 DBS란 라디오 방송국의 ‘역사대담’ 프로가 있었다. (* DBS는 옴베르트 대통령 시절 잦은 정부비판으로 정권의 미움을 받아 한때 강제 폐방되었으니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실로 7년만에 극적으로 부활한 방송사이기도 하다.) 여기에 하루는 이 시절 문민국의 떠오르는 신세대 사학자 4명이 패널로 모여 구려와 ‘비녀전사단’의 평가와 관련 이런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담자는 대략 다음과 같다 

 * 기용량 (수성대(首星大) 역사학과 교수 (* 수성대는 아리수 문민국에서 서열 2위 

  의 위치에 있는 대학이다.) 

 * 최예슬 (국립중앙박물관 수석 학예사 – 동민대(東民大) 역사학과 졸업 – 동민대 

  는 아리수 수도 서울에 거주하는 고3 수험생이 그나마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이 가능한 대학이다.) 

 * 한유진 (경산대(慶山大) 부설 향토 역사문화 진흥연구소 부소장. - 경산대는 아 

  리스 문민국 경산도(그냥 경상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서 서열 1위에 있 

  는 대학이다.) 

 * 이성호 (방송연예과 졸업. 하지만 대학시절 역사학 부전공. 전 교육방송 강사.  

  공영방송의 역사교양 프로 및 각종 지상파,케이블 방송의 역사 관련 교양 혹은 

  예능프로 다수 진행 및 출연 – 주요 출연작(‘침묵의 세계사’,‘여행으로 느껴보는 

  근현대사 기행’,‘역사와 종교와 철학이 만나는 길목에서’ 등) 

 

 대담내용 

 

 기용량 : 전 원래 ‘비녀전사단’의 실존여부는 물론 고구려비록 내용의 진위 여부 

        조차도 의심했던 사람으로서 설사 구려에 그런 조직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해줄수는 없네요. 비녀전사단과 관해 전해지는 

        기록이 만약 사실이라면 구려는 결국 순진한 어린 여자아이들을 꼬셔 그런 

        곳에 평생 가둬놓고 세뇌교육을 시키며 잔혹한 살상병기로 양성했다는 이 

        야기밖에 되지 않아요. 전 이래저래 비녀전사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줄수 

        없습니다. 

 최예슬 : 하지만 구려로선 그 당시에 불가피한 선택 아니었을까요 ? 설사 비록(고구 

        려비록)의 내용을 전부 불신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정사로 전해지는 구려본기 

        (句麗本紀)의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봐도 구려는 건국 초창기 한동안은 북방 

        의 거란,여진등의 침략에 시달리던 그런 약체국가였어요. 거기에 남쪽으로는 

        새롭게 일어나는 신국(神國)의 압박을 받는 과정에서...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한유진 : 게다가 현재의 아동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아이들의 심리를 아주 절 

        묘하게 잘 이용하고 있어요. 어쨌든 배고파 떠도는 어린 고아라던가 가난한 

        집 아이들...그런 굶주리는 아이들을 데려가서 잘 먹이고 잘 입히며...마치 친 

        구들과 어울리며 재미있게 뛰노는 그런 공간처럼 느끼게 하며 나이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아주 절묘하게 잘 시켜서 그런 여전사(女戰士)로 육성한거에 

        요. 천수백년전의 구려가 아동들의 심리를 이렇게 잘 파악하고 절묘하게 이 

        용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점수를 줄만합니다 

 이성호 : 하지만 그게 더 극심한 아동학대로 볼수 있는거 아닐까요 ? 오히려 그런  

        아이들의 순수하고 순진한 심리를 이용해서 제대로 자신들의 도구로 사용할 

        수있도록 그렇게 이용해먹을수 있도록 절묘하게 키운거에요. 비유가 적절할 

        지 모르지만 마치 서커스단에서 동물훈련을 시키는것과 비슷한거라고나 할 

        까요 ? 곡예단에서 동물을 훈련시킬때도 그런식이라잖아요. 어떤 본능적인 

        반응이나 심리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그 다음부턴 비슷한 상황에 

        놓여지면 바로 그런 반응이 나오게 하는...결국 아이들의 어린 심리를 이용 

        해서 서커스단의 동물같은 훈련을 시킨꼴이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최예슬 : 서커스단의 동물에 비유하는 것은 좀 심한 것 같군요. 단순히 군사훈련 

        만 시킨게 아니잖아요. ‘백행지본’ 같은 충,효,예,의등의 덕목이 담긴 책을 바 

        탕으로 인성교육,도덕교육까지 시켰어요. 이런 과정이면 어떤 의미에선 요즘 

        아이들 학교교육 과정과도 별반 다를게 없어요. 다만 체육시간 비중이 좀 많 

        은 학교쯤 된다고나 할까...어찌보면 마치 ‘체육특목고’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전 그런 생각마저 드는데요 

 기용량 : 현대의 체육특목고와 단순 비교하신 최예슬 교수님의 견해에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비밀스런 장소에 아이들을 가두어놓고 10년넘게 그런 

        훈련을 시켰다는것만 봐도요. 결국 아이들을 잔혹한 살인병기로 만들어 실컷 

        이용해먹은뒤 성인이 된 뒤엔 내팽겨쳐졌다는 것. 그것만 봐도 비녀전사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이성호 : 더욱이 비녀전사단을 신국의 화랑과 비교하거나 화랑제도가 사실상 신 

          국의 비녀전사단을 표절한거다 이런 주장까지 있는데 적어도 화랑제도는 

          오픈된 열린공간에서 군사훈련,인성교육을 시켰다는 점에서 결코 비녀전 

          사단과 단순 비교대상이 될수 없다고 봅니다 

  한유진 : 안타깝게도 ‘화랑서기’는 사라지고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아 우리가 신국 

          의 화랑제도에 대해 제대로 그 실체를 파악할길이 없는게 유감이고 안타 

          깝네요. 어쨌든 저도 일단 구려의 비녀전사단을 구려의 피치못한 상황에 

          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조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해주고 싶습 

          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대담내용은 아리수 문민국의 입장에선 신국이든 구려든 자신들의 역사니까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것일뿐. 주변국의 평가는 매우 가혹하다. 특히 구려의 비녀전사단으로부터 가장 많이 피해를 입었던 거란과 여진. 그 후속국가들의 사학자와 지식인들이 현대사회에서 구려의 비녀전사단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구려에 존재했던 비녀전사단은 철없고 굶주리는 불쌍한 어린아이들을 꼬셔 유괴해 

 서 잔혹한 살인집단으로 양성한 범죄행위고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권탄압이고 

 학대였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끔찍하고 잔혹하기 짝이없었던 국가개입형 폭 

 력이었다. 

 

           - 일경국(거란의 후속국가들의 맥을 잇는 근대국가)의 여성학자이면서 아 

            동심리학자 오스페라의 견해 ’ 

 

 ‘구려는 참으로 잔혹하고 끔찍한 여성 살상병기들을 양성 주변국의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해쳐 주변국들의 원성을 샀다. 구려의 비녀전사단은 그야말로 고대국가에 

 서나 가능했던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가혹한 폭력행위고 인권유린이다. 

 

           - 쌍봉국(여진의 후속국가들의 맥을 잇는 근대국가)의 프로파일러(범죄 심 

            리학자) 표로트리우스의 저서 ‘넥타(솔파행성에서 지적생명체인 자신들을 

            스스로 일컫는 명칭. 지구의 ‘인간,사람’이란 표현처럼. 다만 ‘넥타’는 솔 

            파의 지성체들이 현대에 들어와 만든 표현이니만큼 그 이전의 시대에는 

            이런 표현이 존재할수 없다)는 어떨 때 범죄를 저지르는가 ? (* 쉽게말 

            해 ‘인간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는가’ 대충 그런 의미)의 내용중 

            발췌 ’ 

 

 허나 상대적으로 구려나 비녀전사단과 악연이 적은편이었던 흉노나 몽골등은 비녀전사단에 대해 그래도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비녀전사단은 구려의 입장에선 불가피한 조직으로 북방 유목민과 오랜세월 대치할 

 수밖에 없는 그네들의 숙명적인 선택이었다. ‘우리에게 영웅이 상대에겐 역적일수 있 

 다’는 몽골족의 속담처럼 비녀전사단은 북방 유목민들에겐 끔찍한 살인집단이었지만 

 그녀들 역시 구려를 위해선 충성을 다 바친 훌륭한 여전사들이었다. 

 

               - 오성국(* 흉노의 후속국가들의 맥을 잇는 근대국가)의 역사학자 

                파라만자르의 논문중에서 ’    

 

 ‘비녀전사단’은 이제 옛 구려의 길주(吉州 - 대략 함경남도 지역 정도)땅 한곳에 허 

 허로운 유적으로만 남아있지만 구려를 뜨겁게 사랑했던 애국지사들의 흔적을 차분 

 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구려의 후예들은 그녀들이 세운 공로로 그리고 그녀들에 의 

 해 지켜진 나라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사라국(* 몽골의 후속국가들의 맥을 잇는 근대국가)의 4선 국회의 

                원 담다야스키의 회고록중에서 ’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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