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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트와이스 사나 (1)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평행우주 이야기 – 7. 고구려 비록 

 


 * 솔파행성의 구체적 설정은 ‘걸그룹 팬픽 – 여자친구 유주 (부제 : 솔파행성의 세은공주님) 

   편’ (1)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불편하면서도 안타까운 진실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역사는 결국 강자와 승자를 중심으로 쓰여지게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을 과시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고픈 욕망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왕이면 자신들이 승리한 기록,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기록을 중심으로 역사를 남기고 싶어하지 굳이 자신들이 패하거나 굴욕의 역사를 일부러 많이 기록하거나 또는 자신들이 무너뜨리거나 정복한 약자나 패자의 기록을 굳이 많이 남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역사는 대체로 강자의 기록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으며 패자와 약자의 기록은 적을 수밖에 없다. 혹 강자나 승자가 역사적으로 기록하거나 보존할 가치가 있거나 또는 어떤 승리한 영웅이 뜻밖에 대인배적 요소를 과시하고 싶어서 패자나 약자의 중요한 부분 – 가령 열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끝까지 저항한 적장이라던가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굴복하지 않은 패전국의 충신같은 이야기 등 – 을 기록으로 남겨주는 경우는 있어도 자신들이 무너뜨린 나라 멸망시킨 나라의 기록을 일부러 많이 남겨줄 필요를 느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봐야할 것이다. 또한 기록이란게 아무래도 세월이 많이 흐르다보면 유실되거나 마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거 고대역사의 기록이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따지고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고대의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아있는 것을 굳이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하물며 고대에 존재한 ‘패전국이나 약소국’의 기록이나 흔적은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다. 

 저 머나먼 어느 외계행성에 지구상 인류와 유사한 성질을 가진 ‘지적생명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문명발달과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네들의 역사 역시 자연스럽게 강자와 승자를 중심으로 많이 남게되고 고대의 패자나 약자의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로 봐야할 것이다.  

 여기 솔파행성 지성체들의 문명 발달사도 따라서 지구의 그것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네들의 역사 역시 대체로 강자와 승자를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후세의 사학자들일수록 솔파의 고대 약소국,패전국들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무척이나 안타깝고 아쉬워한다. 허나 그것은 지성체의 문명발달사 본질 자체가 그런 것을 어찌하랴. 애초에 고차원의 존재로 우주 바깥에 존재해야 하는 신의 존재가 3차원 우주안 지성체의 성질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누구를 원망할수도 없는 속절없는 일일뿐이다. 다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솔파행성에서 가장 큰 대륙인 에이핑크 대륙(지구의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합친것만큼 크다.) 중북부에 위치한 ‘아리수 반도’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아리수반도의 역사가 지구 한반도의 역사와 유사한 이유는 각자 ‘평행우주 이론’을 참조해서 이해해주기 바라고 여하튼 아리수에도 고대에 신화인지 실체가 있었는지 불분명한 대략 천년 내지 2천년정도 존재한 고대왕조(古代王朝)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그 고대왕조가 진대륙(* 아리수 북서쪽에 위치한 드넓은 대륙국가를 예전에 보통 그런식으로 불렀다고 한다.)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이후 아리수와 그 인근지역에 대략 10-20여개 정도의 부족국가가 존재하다가 이후 구려(句麗),백제(百濟),신국(神國)의 ‘삼국(三國)’으로 정리가 되는 ‘삼국시대’가 열렸다. 삼국시대 구려는 아리수반도 북부지역과 반도 북부의 더 넓은 광활한 지대 일부분까지를 차지하였으며 백제는 대체로 반도 남서부지역 그리고 신국은 반도 동부와 중부 일부지역을 차지하였다. 전성기때의 영토순으로 구분하면 백제가 가장 세력이 약해 신국의 절반정도 수준이고 구려는 신국의 열배나 되는 크기의 광활한 영토를 지니고 있었다. 왕조는 백제가 800년, 구려가 900년 그리고 신국은 대략 천년넘는 세월을 이어져갔는데, 신국은 삼국을 통일한뒤에 약 300년정도 통일왕조가 더 이어져갔다. 

 원래 백제의 경우 영토가 신국의 절반정도밖에 안되는 삼국중 가장 약체국가로 백제가 신국에 의해 막을 내린 것은 후세의 사가들도 당연한 귀결이고 역사의 순리라 보고 있다. 허나 이변은 역시 신국이 자신들의 열배크기 영토와 세력을 지닌 구려를 끝내 멸망시킨점에 있다. 후세의 사가들은 신국이 구려를 멸망시킬수 있었던 요인으로 (1) 여진,거란등 북방 이민족과 손잡은 덕분이라 분석하기도 하고 (2) 구려를 꺾을수 있는 신무기를 개발하고 지혜로운 책사와 명장을 많이 등용한 덕분이라 말하기도 하고 (3) 지리적으로 봤을 때 신국은 농사를 짓고 산업을 융성케할만한 땅이 많았으나 구려의 영토 상당수는 북방의 춥고 황량한 쓸모없는 땅이라 실제로는 별로 실속이 없는 영토였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 다만 (3)의 주장은 오히려 세월이 더 지난후 거란,여진,흉노등의 북방 유목민들이 수백년씩 이어져가는 강성한 왕조를 계속 이어져가게 했음을 들어 설득력이 적다고 논파되기도 한다. 여하튼 신국이 구려를 꺾을수 있었던 것은 문명이나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천수백년전에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이변’과도 같은 일이라 학계에선 분석하고 있다. 

 역사기록 문제를 놓고 보면 후세의 사가들은 백제의 기록이 신국의 절반정도 남아있고 고구려의 남아있는 역사기록 분량은 백제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평하기도 한다. 백제의 남은 기록이 신국의 절반정도인데 신국보다 열배나 더 컸다는 구려의 역사기록이 그 백제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이해되지 않는일이 분명하다. 실제 신국은 그래도 백제와는 서로 동서로 인접한 국가라 그런대로 남다른 정(?)이라도 있었는지 백제를 멸망시킨후에도 왕실이나 귀족,신료들의 명맥은 거의 끊기지 않고 보존할수 있도록 남겨두었고 역사기록도 어느정도는 보존할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신분에서도 차별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허나 구려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원래 역사적으로 구려와 신국이 너무 자주 다툰 탓인지, 신국은 구려를 무너뜨린후 구려의 옛 일반백성은 물론이려니와 구려의 왕실,귀족,공신,장수의 자손이라면 혹독하게 탄압했고 거의 씨를 말려버리다시피 하려 했다. 살아있는 지성체들에 대한 대접이 이 정도였을진대 하물며 ‘역사기록’에 대한 대접은 또 어찌했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따라서 구려의 역사가 900년이나 되고 심지어 그 성립된 시기는 삼국중에서도 제일 먼저로 앞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신화같은 구려 건국과정의 이야기와 그리고 구려 왕실의 역대 왕(태왕)의 즉위와 승하 그리고 왕실 계보 및 주요사건들만을 ‘연표(年表)’처럼 기록한 대략 굳이 책으로 계산하면 3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그 정도의 짧은 기록만 남겨 전해지고 있다(* 실제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본기’가 이병도 역본(譯本) 기준으로 총 190p 분량이니 그 6분의 1 분량도 채 안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아리수 후세의 역사가들은 삼국시대를 연구할 때 이중 ‘구려’ 역사연구에 가장 많은 애를 먹는다고 한다. 

 다만 그중에서도 특이하고 다행스럽다고 할수 있는일이 ‘고구려비록(高句麗祕錄)’이란 책자가 전해져 그나마 구려의 문화나 일반백성들의 삶 특히 여성들의 삶과 사회적 지위를 가늠해볼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비록은 신국이 구려를 정벌할 때 동행했던 민경환(閔景煥)이라는 책사가 막상 신국이 구려를 멸망시킨후 왕명을 받들어 구려의 옛 기록을 싸그리 없애버리는것올 보고 안타까이 여겨 평소 친분이 있던 구려의 충신 태완선(太完善)이라는 이에게서 극적으로 입수 이후 자신의 집에 비밀리에 보존하여 후대에 전해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비록’의 존재를 신국이 존재하던 시절엔 민경환의 집안에서 철저하게 숨겼으나 신국의 통일왕조가 300년을 채 이어져내려가지 못하고 멸망하고 이후 후삼국시대를 잠시 거쳐 새로 후삼국을 통일하고 세워진 화려(華麗)라는 왕조가 ‘옛 구려(句麗)의 계승’을 천명하자 비로소 민경환의 먼 자손이 화려왕조 왕실에 ‘비록’을 바쳐 지금까지 전해질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비록’에 대해서는 사실 후세의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위서(僞書)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일단 비록이 민경환의 집안에 입수되어 300년을 비밀리에 보존되다가 화려왕조에 바쳐진것만은 사실이고 적어도 원본으로 알려진 책자가 훗날까지도 꾸준히 보존되고 있어 일단 위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위서논란보다도 ‘고구려 비록’과 관련 특이하고 눈길이 가는 부분은 비녀전사단(秘女戰士團)의 기록이다. 사실 고구려비록의 80퍼센트 이상이 바로 이 ‘비녀전사단’과 관련된 기록이라 이 기록을 통해 구려가 북방의 이민족이나 백제,신국등을 상대로 어떤 전쟁이나 테러,첩보전을 펼쳤는지 또는 수수께끼로 알려진 비밀승전(祕密勝戰)의 실제 곡절이 어떠하였는지를 추정해볼수 있는 중요한 실증기록(實證記錄)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비녀전사단’과 관련된 기록이 구려시대 여성들의 지위와 삶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삶이나 구려왕실의 복지 혹은 교육정책등 이런것들을 어느정도 추정해볼수 있는 중요한 ‘2차사료’가 되고있는 것이 비녀전사단의 기록으로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고구려비록’의 유물적 가치다. - 비녀전사단 이외의 기록은 대개 구려가 세운 전승비나 태왕릉비 혹은 몇몇 유적이나 유물과 관련된 기록 구려시절 역대 관직표와 벼슬아치들이 받던 녹봉기록 그 외 구려시대 음악과 미술이라던가 사소한 전설,설화수준 이야기 몇가지 정도다.  

 


 ‘고구려비록’이 150쪽이 가까이 되는 분량인데 이중 120쪽이 채 안되는 분량이 이른바 ‘비녀전사단’과 관련된 내용이다. 초반부 약 10여쪽 정도는 비녀전사단을 만든 취지와 그 구체적인 기획안이랄까 그에대한 내용이 실려있고 그리고 이어서는 비녀전사단의 발굴과 양성,교육과정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그리고 비녀전사단이 실제로 첩보나 공작,전투(기습전이나 테러 형식)활동을 하여 성공한 사례들이 일종의 ‘보고서’ 같은 형식으로 80쪽 가까이 수록되어 있고 그리고 마지막 30쪽 가까운 분량에는 놀랍게도 비녀전사단전체 명단이 각 기수별로 일목요연하게 수록되어 있다.  

 구려본기(句麗本紀 : 구려의 역대 왕계와 연대별 주요 사건등을 수록한 기록을 이후 학계에선 이와같이 불러왔다.)에 의하면 ‘비녀전사단’은 구려 제14대 태왕(太王)인 정홍태왕(定弘太王)때 충신 원영권의 발의로 만들어졌다고 되어있다. 구려가 900년을 이어가면서 약 40여명의 태왕이 있었으니 대략 구려왕조의 역사가 3분의 1쯤 흘러갔을 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본기 ‘정홍태왕’편에는 충신 원영권의 상소가 제법 간곡하고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이와같다. 구려가 개국 이래로 남쪽으론 신국 그리고 북쪽으론 거란,흉노,몽골,여진같은 북방 유목민의 침략에 자주 시달려왔고 서북쪽으로는 진대륙쪽 국가들의 침략도 적지 않았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구려가 외적과 맞서 싸워 이긴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원영권은 그 이유로 구려의 땅이 원래 척박하고 인구도 많지 않아 많은 병사들을 양성 외적에 대처하기 좋지 않은 환경임을 이유로 들었다. 따라서 적국(敵國)과 전면전을 벌이는 무모한일보다는 차라리 소수의 ‘특수부대’를 양성해서 이들로 하여금 외국의 첩보를 수집하며 또한 적국의 요인이나 장수들을 암살하거나 화력을 무력화 시키는 일종의 테러행위를 전담하는 그런 ‘특수부대’를 양성하자는 제안이었다. 특수부대 양성이 필요한 취지를 밝힘과 함께 원영권의 제안이 기가막혔다.  

 비단 구려뿐만 아니라 과거 먹고살기가 쉽지 않았고 산업이나 직업도 다양하지 않던 시절엔 가난한 백성들은 굶어죽기가 일쑤였고 그 사정은 구려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그렇게 어려서 부모를 잃고 떠돌아다니거나 집이 가난해서 더 이상 아이들을 먹여살릴수 없는 그런 집의 대략 6-7세 정도의 여아(女兒)를 배불리 먹게 해주겠노라 약조한뒤 깊은 산속에 데리고 가서 약 10여년 정도의 과정을 거쳐 ‘세뇌교육’과 함께 각종 테러나 기습전등에 용이한 그런 ‘특수부대’로 양성하자는 것이다. 어릴 때 흉년으로 다 굶어죽게 되었거나 고아로 떠돌아다닌 아이들은 구려가 거두어서 먹여살려주었으니 그로인해 자연스레 구려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생길것이며 이들에게 구려란 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일정기간 충분히 주입시켜 구려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이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자라나게 만들고 그런 과장을 거쳐 자라는 아이들을 차츰 무기나 독초제조 살인,요인암살같은 특수한 훈련을 시켜 ‘비녀전사단’이란 특수부대로 자라나게 하면 능히 그 과업을 성사시킬수 있을것이란게 원영권의 제안이었다. 

 어찌보면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영토만 컸지 늘상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는 ‘덩치큰 약소국’ 구려로선 외적에 대항하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신묘한 방책일수도 있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그런 원영권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구려는 이후 약 300년동안 ‘비녀전사단’을 양성 그네들로 하여금 적국에 대한 첩보와 정보수집 같은 공작활동 또는 요인암살,테러 같은 ‘특수공작’을 수행해갔던 것이다. 

 사실 생각보다 제법 방대한 분량으로 – 사실상 ‘고구려비록’의 대다수 부분을 할애해서 기록으로 남겨놓았을 정도로 - ‘비녀전사단’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천수백년을 내려왔으나 후세의 사학자들은 그 ‘비녀전사단’의 실존여부에 대해선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방대한 기록과 달리 과연 고대에(* 편의상 고대,중세 같은식으로 시대구분을 하고 있으나 솔파행성에선 그와같은 역사구분 개념은 없다. 고대니 중세니 하는 것은 일단 작가가 읽는이의 이해를 돕기위해 쓰는 표현이라고 보시면 된다.) 그와같은 특수부대 조직이 가능했을지 그것도 심지어 그런 나이어린 여자들을 발굴해서 깊은 산속으로 데려가 장시간 ‘세뇌교육’을 시켜가며 아이들을 특수부대 ‘여성공작원’으로 양성한다는게 과연 가능한일이겠느냐는 것이 세월이 흐른뒤에 아리수 문민국 대다수 사학자들이 ‘비녀전사단’ 실재여부에 회의론을 펴는 이유였다. - ‘고구려비록’ 자체가 위서의심을 받은것도 대략 그와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반전이 일어났다. 대략 문민국 옴베르트 대통령 집권 중반부(* 1970년대)때 이런일이 있었다. 아리수 반도 북동부에는 과거 삼국시대나 화려왕조 시절엔 함주(咸州)혹은 길주(吉州)라 불렸고 현대에 들어서는 대체로 함길도(咸吉道)라 불리는 지역이 있는데 북쪽 산악지대라 상당수가 고산지대고 특히 도(道)의 3분의2 정도가 ‘성진산맥(成眞山脈)’이라 불리는 지역으로 이루어져있다. 

 여름철엔 종종 대학생들이 이쪽으로 피서나 M.T를 오기도 하는데, 그러다 한해에는 비가 몹시도 쏟아지는 장마철에 M.T를 왔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대학생 몇몇이 있었다. 이들이 비를 피해 잠시 어느 깊은 동굴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쏟아지고 날도 추워서 이들 일행은 비도 피하고 몸도 녹일겸 좀 더 동굴안쪽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 자신들끼리 잠을 청하기 위해 대충 동굴 안쪽에 자신들끼리 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물건들이 나왔다. 처음엔 작은 나무도막 같은것들이라 누가 버리고간 쓰레기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한쪽에 치워버렸는데, 날이 밝았을때쯤 그것을 다시 확인해보니 손바닥만한 목간(木簡)에 글씨같은 것이 적혀져있었다. 한편 대학생들은 간밤에 조난신호를 받고 달려온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곳에서 발견한 이상한 나무도막(혹은 목간)들이 신경이 쓰여 해당지역 파출소에도 신고를 했고 자신들의 대학 교수님에게도 의뢰를 해보았다. 이에 결국 이상하게 여긴 해당지역 관청의 조사와 대학 사학과 교수들의 출동으로 그 일대가 과거 ‘비녀전사단’을 양성하던 ‘훈련소’였음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무령왕릉(헉~~~!!! 아니지... -.-;;) 비녀전사단 훈련소의 발굴은 아리수 문민국 출범이래 최대 고대유적 발굴로 오랫동안 화제가 되었다. 이후 사학자들의 연구가 거듭된 끝에 약 3만여평의 부지에 유치부부터 초등부,중등부,고등부까지 10여년에 걸쳐 제법 치밀하고 집요한 세뇌공작과 병행해가며 그와같은 ‘비녀전사단’ 훈련소에서 소위 구려를 지키기 위한 ‘비녀전사’들이 양성되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발굴된 유적에는 각 유치부,초등부,중등부,고등부(* 이는 편의상 갖다붙인 현대적 개념) 까지 연령대별로 구분된 훈련소와 해당 숙소 및 화장실과 휴게실 그리고 단원들이 잘못을 했을 때 임시로 가두는 징벌방등 제법 많은 공간이 예전 그곳에 있었음이 확인이 되었다. 애초 동굴에서 발견된 목간들은 바로 그 비녀전사단원의 이름이 적힌 ‘목간’이었던 것이다. 이후 비록에 실린 단원 명단과 대조해 확인해보니 놀라울정도로 대다수 명단이 일치되었다. 애초에는 이 목간이 발견된곳이 전사단의 숙소나 휴게실 정도로 추정되었으나 연구와 발굴이 거듭되던 과정에서 그것이 아니라 비녀전사단에서 공작활동을 하다 전사(戰死)한 단원들을 추모하는 추도공간임이 확인되었다. 발굴된 목간들은 실은 바로 그 전사한 단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위령패(慰靈牌)였던 것이다. 

 


 “ 전방을 향해 크게 함성 지른다 !!! 실시 !!! ” 

 “ 이야 !!! ” 

 “ 만세 !!! ” 

 “ 야호~~~!!! ” 

 “ 야아악~~~!!! ”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다들 흔히 해본 추억의 경험담이겠지만, 사실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이런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마치 유치원 젊은 여선생 같은 분위기의 조교(助敎)다. (* 옷차림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약 20-30여명 정도 되는 그리고 나이는 6-7세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아이들이 그다지 잘 맞춰진 줄은 아니고 그저 자유분방하게 하지만 너무 널리 퍼져있지는 않고 어느정도 원형 비슷한 모양을 그린채 모여 신나게 함성을 지른다. 그냥 유치원 어린아이들 재잘거리는 아침풍경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이른아침 기상을 하고나면 일단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며 체력을 기른다. 오전 일과의 시작인 것이다. 

 “ 내가 일등할거야 !!! ” 

 “ 아냐 !!! 오늘은 내가 일등할거야 !!! ” 

 유치원 앞 마당보다는 조금 크다고 할 수 있고 대락 아파트 단지 같은데서 볼 수 있는 그런 놀이터 규모의 크기라고나 할까. (* 편의상 현대식으로 비유해 표현하고 있지만 엄연한 고대사회입니다 ^^;;) 그런곳에 대략 정글짐이나 미로찾기 놀이 혹은 계단이나 사다리 같은 것을 타고 오르내릴수 있는 그런 놀이기구(?)가 몇 개 놓여있다. 아이들의 오전 일과는 그렇게 4-5개 정도되는 놀이기구를 돌아다니면서 한번씩 타면서 1-2등을 다투는 그런 시합을 즐기지만 사실은 고도의 정예요원을 양성시키기 위한 기초훈련의 출발이다.  

 다만 아이들은 아직까지 이곳을 그저 또래 친구들과 그리고 언니들이랑 매일같이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나 하는 그런 공간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마치 ‘매일매일 운동회하는 유치원’쯤 되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정글짐 통과 시합이든 미로찾기 공간 통과시합이든 1등이나 2등을 한 아이 대충 3등까지 한 아이에겐 과자나 사탕,빵 혹은 떡같은 약간의 간식류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보통 1등에게 다섯 개, 2등과 3등에게는 두세개 정도의 간식거리가 주어지고 3등안에 들지 못한 아이들도 한 개정도의 떡이나 빵,과자는 하나씩 받을수 있다. 게임 하나를 마치면 간식 하나가 주어지는 대충 그런식의 훈련과정인 셈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겐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면 언니들이 간식 나눠주는 그런 ‘즐거운 놀이’로 자연스럽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개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떠돌아다니거나 입에 풀칠하기 조차 어려운 그런 집에서 살다가 대략 6-7세 정도 되었을 때 ‘비녀전사단 물색관’들에 의해 발탁되어 오게된 그런 아이들이다. 당연히 간식은커녕 하루 풀죽도 끓여먹기 어려운 그런 형편에서 나고자란 그런 아이들이니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줘 그것도 모자라 오전에 이런 미로찾기,정글짐놀이,사다리타기 이런 것을 하고나면 간식이 꼬박꼬박 챙겨져나오는 그런 유치원(?)이니 천국도 이런 천국이 없을 것이다. 대신에 부모,형제와 떨어져 이런곳에서 살아야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쩌면 이 아이들은 혹시 물색관에게 발탁되어 이곳에 처음 왔을때는 엄마,아빠 보고싶어 한동안은 칭얼댔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란 말이 있듯이 한달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이내에 그런 부모,형제에 대한 기억은 새카맣게 잊어버렸을수도 있다. 

 대개는 고아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 간식은 고사하고 하루 밥한끼 그것도 죽조차 끓여먹기 어려운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고아인 경우는 더 말할나위도 없겠지만 혹 그나마 부모,형제가 있는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밥한끼 제대로 먹기 어려운 그런 집이었다면 배고프다며 울며 칭얼대는 아이에게 부모는 또 속상해서 얼마나 손찌검을 했을것인가. 부모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먹을 것도 제대로 하나 챙겨준적 없으면서 ‘아동학대’만 일삼았을 그런 어른들. 바로 그런 환경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이미 가슴 한켠에 싹텄을 아이들인데 그런 아이들에게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주고 또 매일같이 이렇게 언니들이 간식챙겨주면서 친구들이랑 즐거운 놀이하는 이런 공간이라면 천국도 이런 천국이 없을 것이다. 

 “ 진옥이 !!! 진옥이 왜 그래 ? ” 

 “ 이거 내거야...내거란말야. ” 

 “ 하나만 줘...하나만 더 먹고 싶단말이야. ” 

 “ 아냐 이건 내거야 !!! 원래 우승한 친구가 다섯 개 갖는거잖아. 그러니까 이건 다 

  내거란말야 !!! ”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을 한 20-30명 정도 모아놓고 이런일을 벌이는 공간이니만큼 작은 트러블이 안 생길수는 없다. 여하튼 놀이에서 우승하면 3-5개 정도의 빵이나 떡,과자 같은게 주어지고 등수안에 들지 못한 아이들에겐 하나씩밖에 주어지지 않는 간식 구조라면 매일 하나밖에 갖지 못하는 아이들은 상을 탄 아이들에 대한 시샘이 안 생길수가 없다. 그럴 때 조교 언니들은 보통 이렇게 중재해준다. 

 “ 진옥아, 상미에게 그냥 하나만 양보해줘 !!! ” 

 “ 언니...이건 내가 오늘 1등해서 탄 상인데... ” 

 “ 그래. 진옥이가 우승해서 타는 상은 맞는데 진옥인 그동안 우승 많이 해서 상 많 

  이 타갔잖아. 헌데 오늘 상미가 배가 많이 고팠나보네 ? 그러니까 착한 진옥이가 

  친구한테 하나 양보해준다고 생각하고 하나 양보해줘. 알았지 ? ” 

 마지못해 아이는 자신이 부상으로 받은 간식중 하나를 아이에게 나눠준다. 그러자 조교가 이렇게 지시한다. 

 “ 상미는 진옥이한테 이렇게 말해. ‘진옥아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 

  럴게.’ ” 

 “ 진옥아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 

 아이들끼리 먹는거 갖고 사소한 트러블이 생길때는 이렇게 중재해주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승한자는 이기지 못한 다른 아이들에게 조금씩 양보해주는 법을 배우고, 또 양보를 받은 아이도 아이대로 나눠준이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게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이렇게밖에 할수 없는 필연의 곡절이 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평생을 그야말로 ‘살아도 같이살고 죽어도 같이죽어야하는’ 그런 운명공동체의 삶을 살아야하는 아이들이다. 따라서 첫 출발부터 어떤 싸움이나 갈등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서로 앞으로도 계속 함께가며 우정을 쌓아야하는 친구며 동료,동지들이란 그런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 옛날에 어느 마을애 백홍이란 청년이 살고 있었어요. 이 백홍에겐 자신을 여섯 살 

  때부터 거두어준 새엄마가 있었는데 이 새엄마도 나중엔 나이가 들어 늙게 되어서 

  병약하게 되었거든요. 새엄마는 백홍에게 부탁을 했어요. 한겨울인데 산딸기가 먹 

  고 싶다고...백홍은 어렵사리 온갖 산골을 뒤지고 뒤져 산딸기를 찾아 새엄마를 봉 

  양할 수가 있었죠. ” 

 “ 민철이,태수,경철이는 어릴때부터 한 동네에 살았습니다. 헌데 하루는 경철이가 

  배가 너무 고파서 부잣집 담벼락 밖으로 나와있는 나무의 과일을 몰래 따먹으려 

  하는거에요. 헌데 그걸 태수가 몰래 보고는 경철이가 관아에 고발하려고 했어요. 

  헌데 관아의 사또나리는 오히려 경철이를 고발한 태수를 야단쳤답니다. 왜 그랬을 

  까요 ? 네, 맞아요. 사또 나리는 ‘친구가 나쁜짓을 하는 것을 보았으면 먼저 그러 

  지 못하도록 좋은말로 잘 타일러야지 무조건 관아에 고소부터 하는 것은 의롭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배가고프기로 부잣집 담 너머로 나온 나무의 과일을 따먹은 

  태수를 잘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친구를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도록 인도할 생각 

  은 안 하고 관아에 고발부터 한 태수도 잘못이다. 따라서 경철이에겐 장 다섯 대, 

  태수에겐 장 일곱 대의 벌을 내리도록 하겠다.’ 이런거에요. 이런게 바로 친구간의 

  의리인거에요. 친구가 나쁜길을 가지 못하도록 바르게 인도해주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친구간의 우정이고 의리랍니다. 여러분 아셨죠 ? ” 

 오전에 대개 정글짐이나 미로찾기 같은 것을 하는 ‘놀이’를 한다면 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에는 보통 이런 ‘정신교육’ 시간 일정이 잡혀진다. 정신교육 시간에는 보통 충(忠),효(孝),의(義),예(禮)등과 과련된 백여가지 일화를 돌아가면서 마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라도 들려주는듯한 방식으로 하루 한가지씩 가르쳐준다. 원래 구려에는 3대 명천태왕(明天太王)시절 명신(名臣)이었던 을두지(乙豆指)라는 이가 있어, 그가 천하를 떠돌며 세상에 존재하는 충.효,예,의,생(生 : 함부로 생명을 죽여서는 안되는 대략 불교식 교리나 세속오계의 ‘살생유택(殺生有擇)’ 비슷한 것.)과 관련된 각기 백여가지 사례들을 묶어 낸 ‘백행지본(百行之本)’이란 책이 있었다. 이후 백행지본은 구려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교화(敎化), 교육(敎育) 지침서가 되었다. 나중에 ‘백행지본’은 구려가 멸망한뒤에 신국은 ‘백행지본’이란 책과는 전혀 별개의 ‘천하지계(天下之計)’란 ‘교육지침서’를 만들게 된다. 허나 훗날 사학자들은 신국의 ‘천하지계’ 내용의 상당수가 구려의 ‘백행지본’을 사실상 표절한것이라고 해 논란이 되기도 한다. 다만 ‘백행지본’의 경우엔 그 원전이 전해지지 않아 천하지계의 백행지본 표절 여부는 끝내 확인되지 못한다.  

 어쩄든 이 ‘백행지본’을 비녀전사단에서 ‘유치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기초체력단련이 주 목적인 오전의 사다리타기니 정글짐,미로찾기 놀이니 이런것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오후에 잡혀있는 ‘백행지본’ 중심의 ‘정신교육’ 시간이다. 사실 이 아이들은 이 ‘비녀전사단’ 교육과정을 거쳐 자라서 나중에 타국의 요인암살,테러,첩보공작등 대개는 끔찍한 살상행위를 직접 행해야하는 그런 ‘특수공작원’ 교육을 받으며 자라야하는 아이들이다. 헌데 그런 아이들이 기본적인 인성(人性)까지 비뚫어져 자라나게 된다면 그건 더더욱 곤란한일이 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훗날 생길수 있는 그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비녀전사단 교육과정에 갓 들어온 6-7세 나이때 기초체력단련 훈련과 병행해서 지성체로서 당연히 가져야하는 ‘소양(素養)’을 갖추도록 하기위해 이런 ‘정신교육’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정신교육 시간에 가르치는 수업내용은 인성교육 이외에 또다른 중요한 교육내용이 있는데 다름아닌 ‘역사교육’이다. 사실 이건 역사교육이라기보단 일종의 ‘세뇌공작’이다. 무엇보다 따지고보면 이곳 비녀공작단 양성소에 발탁되어 들어오기전까진 대개 고아로 떠돌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살던 그런 아이들이다. 역사는커녕 자신들이 사는 나라가 대체 어떻게 돼먹은 나라인지조차 알수 없었을 그런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구려란 나라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고 현재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음을 일깨워주는 그런 시간이다. 역사라기보단 일종의 종교교육 시간 비슷한 ‘세뇌교육’ 시간이라고나 할까. 이 구려를 만든 존재(* 정확히는 구려를 세운 건국시조)가 누구며 그런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그런 구려를 세운 건국시조가) 다 굶어죽어가게 된 너희들을 구해주셔서 이곳까지 오게되었다. 그러니 너희는 우리 구려를 세우고 만들어주시고 또 너희를 발탁해주신 구려시조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하기 위해 앞으로 애국(愛國)과 충성(忠誠)을 다 해야한다는 것이 비녀전사단 ‘유치부’ 과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역사 정신교육’ 내용인 것이다. 물론 ‘역사 정신교육’ 내용에는 구려시조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아 나중에 구려가 나중에 외적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게 되면 너희는 나쁜 외적 오랑캐들에 의해 다 죽게되거나 아니면 이곳 비녀전사단 양성소(* 유치부때는 아직 이곳이 그런곳이라는 것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로 들어오기 전처럼 비참하게 떠돌거나 굶주리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그런 비참하고 끔찍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그런 내용의 ‘정신교육’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비녀전사단 양성소에 들어오기 전까진 그야말로 굶어죽기 직전의 비참한 처지에 있던 아이들. 헌데 지금 자신들이 있는곳은 삼시세끼는 물론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는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를 매일같이 하고 배불리 먹을수 있는 재미있는 유치원’. 그러니 이 유치원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끔찍하고 공포감을 줄수 있는 그런 협박(!)이 되는 것이다.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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