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외국인 새엄마 4
어나이는 떠나고 주희가 결국 현준의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다만 현준도 양심이 있는지라 차마 세 번째 결혼까지 주위에 요란하게 알리고 결혼식을 할 수는 없어 간단하게 혼인신고만 올리고 함께 사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주희는 이때 임신 3-4개월 정도가 된 무렵인데, 아직 표나게 배가 나와있진 않지만 신경은 좀 예민해 있는때다. 무엇보다 현준이야 세 번째 결혼이지만 아직 20대 초반의 주희는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결혼 아닌가. 헌데 식도 올리지 않은채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야 하는데 대한 투정이 벌써 시작되었다.
“ 이런게 어디있어 ? 세상에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사는법이 어디있냐구 !!! ”
여하튼 아직 어린나이로 봐야하는 주희는 세상의 모든 부부는 일단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양가 하객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식을 올리고 시작하는 것으로 머릿속에 인식이 되어있는것인지 혼인신고만 하고 함께 사는것에 무척이나 황당해하고 있었다. 사실 주희도 고아출신이니 결코 평범하게 자랐다고 할 수는 없는 몸인데, 오히려 그래서 만약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정상적인 성대한 결혼식을 화려하게 올리고 싶은 그런 꿈에 부풀어 있던것인지 여하튼 출발부터 현준과 주희의 부부생활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 주희야, 그건 아저씨 사정이 여의치 않은걸...좀 이해해주면 안 되겠니 니가 ? 어
쨌든 아저씨는 세 번째 결혼이야. 주위에 여기저기 청첩장 뿌리고 식 올리는건 보
통 난감하고 민망한 일이 아니라구. ”
그렇게 혼인신고만 올리고 조용히 정식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거듭 설득했지만 주희는 막무가내였다.
“ 아저씨는 친구도 없어 ? ”
“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야 ? ”
물론 현준이야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알게된 지인,동료도 많고 고등학교,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교류해온 친구,선후배도 많이 있다. 허나 그 많은 친구들에게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임을 또다시 알리기가 면구스러워 이런식으로 주희와의 결혼생활을 시작한 것 아닌가. - 심지어 20여년 가까운 선배였고 게다가 어나이와 결혼때 일시적으로나마 명수를 맡기기도 했던 이형진 선배 조차도 지금은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나이와도 이혼을 하고 말았고 어나이는 자기나라로 돌아갔다는 것 정도만 대충 소식을 들어 알고 있을뿐 현준에게 새 여자가 생겨 세 번째 새살림을 시작한 사실까진 모르고 있다. 여하튼 여러 가지로 난감한 처지라 가까운 친구든 선후배나 동료든 혹 두 번째 이혼까진 아는 사람이 몇몇 있을수 있어도 ‘세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했음은 아직 대다수가 모르고 있는 상황. 그래서 더더욱 주희의 물음이 엉뚱하기만 했는데 일단 주희의 말이 이어진다.
“ 아저씨 부모님이나 집안어른들한테 이야기하기 정 그러면 아저씨 친구들이라도 몇
몇 불러서 어디 가까운 교회나 성당 같은데서 간단하게 올려도 되는거잖아. 그런
데 그 정도도 안되는거냐구 ? ”
나이 어느덧 40대 후반의 현준은 부모님은 이미 다 돌아가신 상태고 3형제중 둘째인 그의 형님이나 동생은 둘 다 아직 멀쩡히 생존해있다. 다만 주희와는 여하튼 정상적으로 시작한 관계도 아니고 또 주희가 고아출신이기 때문에라도 일부러 집안이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정작 주희는 주위 가까운 친구들이라도 몇몇 불러 그런데서 조용히 올리는 대안(?)을 제시한 셈 아닌가. 여하튼 주희도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은 가끔 즐겨보는 편인지 아마 그런데서 어떤 사정으로 양가 부모나 주위 친구,동료들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교회나 성당같은 종교시설이라도 일시적으로 빌려 마치 ‘신 앞에서 언약’ 하듯이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그런 장면을 본적은 있는자 사뭇 그런식의 차선책을 내놓은 셈이다. 허나 여하튼 현준은 그러기조차도 영 면구스럽고 난감한것인지 주희에게 자신의 불가피한 처지만 거듭 설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 주희야...미안하지만 그것도...무슨 교회나 성당은 뭐 아무나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가고 그래도 되는건줄 아니 ? 여하튼 그런곳도 목사님이든 신부님이든 그곳
관계자분들 허락도 받아야할테고...그러려면 부득이한 사정도 말씀을 드려야할테고
...여하튼 쉽지 않은 일이야. ”
일단 현준은 지금까지 종교문제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다만 고아인 주희는 그런 시절에 교회나 성당같은 종교단체 지원같은 것을 받아본 경험은 좀 있어서인지 그런쪽에 정서적 호감은 어느정도 있는 그렇게 자라난 여성이었다. 허나 현준의 말처럼 실제로 그런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커플이 교회나 성당같은 시설을 일시적으로 이용해서 약식 결혼식을 올리는것도 드라마나 영화라면 모를까 현실에서 이루기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 현준 말마따나 그렇다고 주위에 보이는 아무 교회나 성당에 대낮에 부득불 들어가 자기네들끼리 결혼식을 올릴수도 없는것이고, 목사님이나 신부님한테 사정을 말씀드린다 하더라도 그런식의 약식결혼을 올리는 것을 허락해주실지는 결국 그분들 재량에 달린 문제다. 결국 드라마나 영화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약식으로 올리는 결혼식이 현실에선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겨우겨우 설명하며 어떻게든 주희를 납득시키려는 현준. 허나 주희의 토라진 마음을 달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허나 지금 현준보다 더 난감한 처지에 처해있는 것은 다름아닌 현준의 아들 명수다. 어나이는 결국 떠났지만 어나이가 낳은 아들 필립과 완스는 아직 집에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날 갑자기 떠나 돌아오지 않는 어나이. 그리고 어느날부터 갑작스레 집에 들어와 살게된 젊은 아줌마. - 아직 20대 초반의 여성이지만 5살,3살의 어린아이들에겐 그렇게 보일수도 있다. 이 상황을 대체 이런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킬수 있단 말인가. 일단 명수는 대충 어나이의 문제에 대해선 이런식으로 둘러댔다.
“ 엄마가 아마...외국으로 돈벌러 떠나셔서...좀 오래 있다 돌아오실거야. 그러니 몇
년동안만 참고 있으렴. ”
기억에 아마 아버지 현준이나 큰아버지,작은아버지도 자신에게 친엄마가 부재한 상황을 이런식으로 납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가령 명절 같은데 아버지가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등과 대충 이야기 나눌 때 아버지 현준의 이혼사실을 대충 귀동냥으로 들어 알게된것이고, 친엄마가 목포에 살고 그곳이 엄마 친정 종가집이라는 식의... – 사실은 명수가 잘못 인지하게 된 사실이고 명수 친엄마는 실은 경남 남해 출신이다. 그러고보면 현준은 첫 번째 부인은 경남 남해 출신, 두 번째 부인인 외국인 어나이는 머나먼 남태평양 섬나라 출신. 두 번의 결혼을 모두 섬출신 여성과 하게 된 셈이다. - 그런 이야기도 그때 대충 들었던 것이다. 여하튼 애들이 조금은 더 자랐을 때 이해할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기로 하고 지금은 필립과 완스에게 그런식으로 둘러댔다. 헌데 이러고보니 명수에게도 어나이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생길 수밖에 없었다.
“ 아무리 그래도...애들한테는...어떻게든 설명을 해주던가...어떻게 해줄것이지... ”
어나이 입장에선 여하튼 남편과 이혼하게 되고 떠나게 된 몸으로 아이들까지 떠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런 결심을 한 것이겠지만 명수 입장에선 어나이 역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엄마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여자였구나 바로 그런 실망감이 생기고 있는 상황. 그렇게 어나이는 아직 어린 어나이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동생인 필립과 완스를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아저씨, 저 설거지좀 대신 해줘요. ”
“ 아저씨...저기 빨래좀 대신 널어달라니까요. ”
주희는 현준의 집에서 살게 되면서 명수에게 종종 이런 사소한 가사일을 맡기곤 했다. 물론 요즘 세상에 가사일에 남녀 분담이 따로 있는것도 아니고 부모가 할 일 자식이 할 일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것도 아니다. 허나 주희와 명수의 경우엔 이렇게되면 자연스럽게 젊은 새엄마가 사춘기 의붓아들한테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시키며 구박을 하는 그런 모양새가 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어나이와 함께 지낼때는 그래도 이런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희로부터 종종 이런 부탁을 받는 명수는 처음엔 당혹스러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가막히기까지 했다. 물론 주희가 여하튼 아직 젊어서 가사일에 미숙하고 게다가 임신까지 한 몸이라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때이면 중학생 명수가 그걸 이해해 사소한 가사일 정도는 대신 못 거들어줄 사람은 아니다. 허나 주희의 경우 하다못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던가 부탁을 하는 방식도 아닌 무조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떠맡기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주희의 호칭도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만 14세)인 명수와 23세 주희는 정확히 9살 차이. 주희 입장에서 중학생 의붓아들의 새엄마가 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9살 차이면 막내동생뻘 되는 그런 학생이고 아이 아닌가. 헌데 그걸 마치 나이많은 어른을 부르듯이 ‘아저씨’라니. 근본적으로 주희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수 없는 그런 호칭이었다. 결국 더는 못참겠는지 하루는 명수가 주희에게 이렇게 따졌다.
“ 좀 심하지 않아요 ? ”
“ 네 ? 뭐가요 ? ”
아직 명수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는지 주희는 그저 어리둥절하게 물었고 그런 주희를 보며 명수의 말이 이어진다.
“ 아니...뭐 아닌말로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분리수거 쓰레기 대신 버리러 가고...그런
거 정도는 저보고 대신 해달라고 하면 못할 이유는 없어요.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
아요. ”
“ 아니,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구 그래요 ? 하기 싫으면 관둬요. 참 나... ”
누가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키기라도 했냐는 듯 되려 억울한 듯 나오고 있는 주희. 명수는 일단 헛기침을 두어번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킨뒤 다시 주희에게 말을 건넨다.
“ 그리고...저한테 도대체 아저씨가 뭐에요 아저씨가. 어떻게 제가 그쪽한테 아저씨
가 돼요 ? ”
“ 뭐라구요 ? ”
“ 좀...그렇잖아요. 어쨌든 제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학생인데... ”
새엄마와 전처소생 자녀와의 호칭. 의외로 생각보다 애매하고 힘들때가 많긴 하다. 그나마 나이차이라도 어느정도 난다면 모를까 이런 경우에는. 여하튼 새파랗게 젊은 20대의 주희로선 나이많은 남편의 중학생 아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럴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이많은 아저씨라도 부르듯 ‘아저씨’라니. 물론 일상을 살다보면 어느정도 자란 사춘기 소년의 경우 성인으로 오인을 했거나 말을 놓기가 그래서 ‘아저씨’라고 부르는 경우도 이따금 있다. 허나 고등학생 정도면 모를까 중학생 정도의 소년을 성인으로 착각해서 ‘아저씨’라고 부르는 경우는 웬만해선 잘 없다. 게다가 명수의 키나 인상,분위기등이 또래 중학생에 비해 딱히 크거나 조숙해보이는 외모도 아니고. 그래서 더더욱 억울하다는 듯 명수가 이렇게 나오고 이 참에 주희에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듯 명수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 어쨌든...기왕 아버지와 결혼하셨으면...좀 성실하게 해달라구요. ”
“ 뭐라구요 ? ”
난데없이 나온 ‘성실’이란 단어가 좀 어이없게 느껴져서일까. 주희가 발끈하는데, 일단 그런 주희를 보며 명수의 말은 계속된다.
“ 최소한 어나이는 이러지 않았어요. 어나이 새엄마는 최소한 그쪽처럼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다구요. ”
공교롭게도 두 번 이혼한 전력을 가진 아버지 현준을 두어서일까. 덕분에 새엄마도 두 번이나 생긴 셈이 된 명수. 그래서 되려 이전 새엄마인 (외국인이기도 했던) 어나이와 이번 젊은 새엄마 주희의 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비되고 대조되어 명수는 결국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이다. 게다가 주희도 어쨌든 지금의 남편 현준이 두 번 이혼한 전력이 있는 사람인것도 알고 이전 부인이 외국인이었던 것 정도는 대충 알고 결혼한 몸. 그래서 주희가 되려 이런식으로 따진다.
“ 그럼 당신이 그 여자 찾아가 살아요. 나 원...전에 새엄마가 나보다 나았으면 그
사람하고 살면 될거 아니에요 ? 왜 괜히 나보고 그래요 ? ”
주희가 거듭 이와같이 나오자 명수는 절망스럽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기까지 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명수는 자기방으로 가버리고 주희는 주희 나름대로 잔뜩이나 신경이 거슬러져서였을까. 아랫배가 아프기라도 한지 다소 고통스럽게 자기 아랫배를 손으로 어루먼져보기까지 한다. 아직 임신 초기인 주희로선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일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
“ 당신 아들 도대체 왜 그래요 ? ”
“ 뭐라구 ? 어떤 아들 ? ”
명수의 일을 주희도 그냥 못 넘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결국 그날 현준이 퇴근하자마자 주희가 이와같이 따져들었다. 헌데 무작정 이런식으로 말하면 현준도 좀 혼란스러워 진다. 어쨌든 현준의 아들은 지금 셋이지 한명이 아니다. 첫째 아들은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명수. 그리고 둘째와 셋째는 아직 5세,3세로 어린 두 번째 부인 어나이하고 사이에서 낳은 아들. 물론 그 아이들도 분명 현준의 아들들이지 다른 사람의 아이일수는 없는것이니 주희가 무작정 ‘당신 아들’이라고 하면 헷갈릴 수밖에 없을터. 허나 그런것까지 미처 생각을 못했는지 주희는 아랑곳없이 남편에게 따져들기만 한다.
“ 이제보니 성격 X나 까칠해 보이더라구. 아니, 내가 심부름좀 시킬려고만 하면 뭐
라고 그러고말야. ”
주희의 말투는 대체로 스무살 이상 많은 현준에게 존대보다 반말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만큼 확실하게 자신의 남자라는 것을 못박아두고픈 심리인건지, 아니면 그래서 더더욱 만만하게 생각해서인지. 이따금 존대말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반말투인 주희의 말투. 여하튼 주희의 말이 이와같자 설마 아직 나이어린 필립이나 완스를 두고 하는 소리같지는 않아서 현준이 이렇게 나온다.
“ 명수를 두고 하는말인가보군. 왜 ? 명수랑 무슨일이 있었어 ? ”
“ 그...당신 지난번 부인은 외국인이라고 했잖아. 두 번째 부인. ”
“ 그래 맞아. 당신이랑 결혼하기 전엔 외국인인 어나이하고 살았지. 물론 결과적으로
어나이와의 결혼도 6년만에 깨진 셈이지만... ”
새삼 다시 회한이 서리는지 한숨을 내쉬며 대꾸하는 현준. 주희가 이렇게 나온다.
“ 당신 아들말야...그 외국인...어나인지 뭔지 그 여자하고 살고 싶다 그러더라구 !!!
나보단 차라리 어나이가 나았대 !!! ”
“ 뭐라구 ? ”
주희의 말이 이러면 현준은 더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여하튼 다행히 명수와 그의 새엄마가 되는 현준의 두 번째 부인 어나이는 함께사는 3년동안 그런대로 큰 문제 없이 잘 지내온 편이었고 그러면서 되려 가까워진 면마저 있다. 허나 아무리 그렇기로 ‘어나이가 지금 새엄마보다 낫다’느니 설마 그런말까지 했을까. 도대체 주희가 지금 따지며 문제삼는 아들이 첫째 명수를 말하는것인지 어나이 소생의 필립이나 완스를 말하는것인지 더더욱 혼란스러워질 지경. 그래서 일단 확인부터 제대로 하고 넘어가야겠다는 듯 묻는다.
“ 아니, 도대체 어떤 아들을 말하는거야 ? 명수 ? 아니면 필립 ? 완스 ? ”
“ 당신 큰아들 !!! ”
그래도 현준하고 결혼해서 대략 한달여 정도 시간은 지났을텐데 여태 현준의 아들들 이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일까. 중학생 명수를 이런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주희. 그 명수를 되려 ‘아저씨’라고 부르는 주희임을 생각하면 명수를 얼마나 성가셔하는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 같다. 주희의 말이 이어진다.
“ 어쨌든 명수고 뭐고 그 아저씨 따로 나가살게 해줄수 없어 ? ”
“ 뭐라구 ? ”
순간 놀라고 기가막히기만 한 현준. 안 그래도 명수는 이미 현준 자신이 어나이와 재혼할 때 대학선배 이형진의 집에 3년정도 맡긴일도 있지 않는가. 헌데 이제와서 어떻게 또다시 그런단말인가. 명수에게도 못할짓이지만 주희와의 결혼은 이 자체가 비밀리에 진행한 세 번째 결혼이기떄문에 주의 선배든 친구나 동료든 그런 부탁을 하기도 쉽지 않아진다. 그래서 더더욱 골치만 아파지는 현준. 그런 남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주희의 짜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한편 현준이 주희의 임신 사실을 알고는 어나이와 이혼을 하고 그리고 주희가 현준과 함께 살게 되기까지 대략 두달여 정도가 소요되어 현준의 집에 주희가 들어왔을 때 주희가 임신 4개월 정도였는데 따라서 그 반년뒤 주희가 출산을 했다. 주희는 딸 쌍둥이를 낳았다. 생각해보면 현준의 경우 첫 번째 부인하고 사이에 아들 명수를 낳았고 두 번째 부인 어나이하고 사이에 아들 둘을 더 낳았는데 3형제중 둘째인 현준은 그 형님이 슬하에 아들 4형제가 있고 현준의 동생도 아들이 둘 있어 3형제가 모두 아들복은 있어도 딸과의 인연은 거의 없는 셈이었는데 그러다 현준이 나이 50이 다 되어 얻은 세 번째 부인인 스물네살 연하의 젊은 부인 주희가 딸 둘을 낳아준 셈이었다. 이래저래 현준이나 그 형님이나 동생 입장에서도 괜시리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 그사이 해가 바뀌어 명수는 새봄에 – 아직 겨울 – 중학교 3학년이 될 예정이고 그런 상황에서 하루는 현준이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 주희를 동행 외출을 하게 되었다. 사실 사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부부동반 모임이나 행사가 잦을 수밖에 없는 현준이기도 한데, 따라서 어나이때는 자연스럽게 어나이와 부부동반으로 그런 자리에 자주 나갔고, 하지만 어나이하고마저 이혼을 한 뒤엔 세 번째 부인 주희를 데리고 그런 자리에 나가기가 난감해 현준이 살짝 잔머리를 굴렸다. 일단 두 번째 이혼과 세 번째 결혼만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조용히 치렀기에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조차도 현준의 두 번째 이혼 사실은 알아도 세 번째 결혼은 잘 모르는 상황. 그래서 상대적으로 현준과 덜 친한 이들이 있는 모임자리부터 순차적으로 주희를 데리고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럼 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현준의 새 부인 주희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나 선,후배 동료,지인들도 자신의 세 번째 결혼 사실까지 자연스레 알게되려니 생각하고 그런식으로 작전을 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현준이 아내 주희를 데리고 부부동반 모임 행사장에 나갔을 때 덕분에 집에선 난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 주희의 경우 아직 갓난 아기들까지 데리고 부부동반 모임에 나갈수는 없는 일이라 자신의 애기를 이제 겨우 여섯 살,네살이 된 필립과 완스에게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간 것이다. 그러고보면 전부인 어나이의 경우엔 부득이하게 아기들을 집에 두고 남편과 모임약속을 나간다거나 할때는 일일 파출부라도 부른다던가 그런식의 조치를 취했는데 이번 주희의 경우엔 그조차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 명수는 겨울방학이긴 했지만 젊은 새엄마 – 그것도 어나이도 아니고 두 번째 새엄마이기까지 한 – 주희와 자꾸 부딪히는게 싫어서였을까. 친구와 약속이든 무엇이든 대충 그런식으로 핑계를 대고 아침일찍 집을 나가 밤늦게야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빠랑 새엄마도 없고 그렇다고 파출부 아줌마가 자신들을 돌봐주러 온다고 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필립과 완스가 밥을 쫄쫄 굶어가며 되려 주희의 아기들 분유라도 먹이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저녁때야 집에 들어온 명수가 그런 동생들의 모습을 보고는 기가막혔다.
“ 형아...형아...배고파아~~~ 아아아앙~~~!!! ”
4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부잣집 아이들이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 형 명수를 보자마자 배고프다며 칭얼대고 있는 필립과 완스.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희는 몰라도 이제 현준조차도 명수를 신경쓰지 않는지 부부동반 모임 때문에 늦는다던가 하는 간단한 연락이나 문자조차 주지 않았다. 따라서 집안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채 저녁때 귀가한 명수. 동생들의 이런 모습을 보자 적잖히 놀랐다.
“ 필립, 완스. 왜 그래 ? 새엄마가 저녁 안 줘 ? ”
놀라면서 이렇게 묻지 동생들이 이렇게 답한다.
“ 몰라...아빠도 없고 엄마도 새엄마도 없어. 밥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아아아앙~~~
!!! ”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서인지 새엄마 주희가 하다못해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이나 먹을거라도 챙겨주지 않은채 나간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자보자하니 너무 기가막힌 명수는 일단 동생들을 달래며 ‘먹을 것을 사올테니 금방 기다려라’고 하고는 급히 인근 편의점에 가서 라면과 참치캔,인스턴트 햄등을 사서 밥을 한뒤 동생들을 먹였다. 요즘 세상에 대충이라도 이렇게 – 게다가 명수네 집안이 가난한 집안도 아니고 – 해서라도 저녁 한끼 정도는 충분히 애들을 때우게 할수도 있는데(* 솔직히 80년대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해결할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은채 부부동반 약속이 있든 뭐가있든 집을 나간 젊은 새엄마 주희. 명수는 그저 기가막히고 화가나기만 할 따름이었다. 배고파 칭얼대는 필립과 완스를 그렇게 겨우 저녁을 먹이고 자신도 저녁식사를 한뒤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 현준과 새엄마 주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를 한 현준과 주희. 모임자리에서 술이라도 한잔 했는지 둘 다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다.
“ 이제야 오세요 ? ”
한바탕 두 사람에게 따질 기세인 명수지만 술에 취한 현준이나 주희는 그걸 받아줄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현준은 일단 피곤한지 대충 침실로 들어가 옷을 벗은채 자리에 눕고 술에 많이 취한듯한 주희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그나마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질 지경은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봐야할판. 명수가 그런 주희를 나꿔챈다.
“ 이야기좀 해요 잠깐 ! ”
“ 뭐...뭐에요 갑자기 ? ”
여하튼 술이 많이 취한 상태라 온전하게 명수가 하는 말을 받아줄수 있는 상태가 아닌 주희. 귀찮은 듯 명수를 밀쳐내기까지 한다. 이런 주희의 모습에 명수는 더 기가막힐뿐이다.
“ 도대체 생각이 있는분이에요 ? ”
“ 뭐라구요 ? ”
많이 취한탓에 명수의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희. 어차피 분위기가 주희에게 무슨 말을 한들 별 소용이 없을 상황인 것 같긴 한데, 허나 술에 이렇게 취한 사람을 대해보는 경험이 거의 없는 명수라서일까. 주희가 일부러 그러는것처럼 보여져 더 부아가 치밀었다.
“ 이야기좀 하자니까요 잠깐 !!! 도대체 무슨 사람이...어른이 생각이 이렇게 없을수
가 있어요 ? ”
“ 아웅...나 지금 피곤하니까 할말 있으면 내일 이야기 해요. 술 취한 사람한테 무
슨 이야길 하자구... ”
“ 뭐라구요 ? ”
명수는 술에 취한 주희가 오히려 일부러 이러는것처럼 여겨졌는지 더 화가 치밀어 오르고 주희는 주희대로 너무 많이 취해 만사가 다 귀찮은 여자처럼 나오고 있다. 대충 명수를 밀쳐낸뒤 자신도 휴식을 취하고자 자리에 누우려 하는데 헌데 현준도 술에 어느정도 취해 자리에 누운것이라 평상시처럼 온전한 위치를 잡은게 아니라 침대 한가운데 대(大)자로 뻗어버렸다. 그래서 주희가 취중에 그 광경이 웃기기라도 한지 푸히히 웃으며 횡설수설한다.
“ 어 ? 우웅...우리 자기야가 침대 다 차지해 버렸구나 ? 그럼 뭐 할 수 없지...우리
자기야가 침대 다 쓰면 난 그냥 바닥에서 잘래... ”
그리고는 대충 옷을 벗어던지고 방바닥에 그냥 누워 잠을 청하려는 주희. 명수로선 보자보자하니 기가막혀 결국 주희에게 손찌검을 하고만다.
‘ 철썩~~~!!! ’
그야말로 이성을 잃은 순간이라고나 할까. 차라리 주희가 그랬다면 취중에 그럤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하지. 멀쩡한 정신의 명수가 새엄마고 뭐고를 떠나 아홉 살이나 많은 어른인 주희의 뺨을 때린 것이다. 취중임에도 명수의 행동에 너무 놀란 주희가 눈이 휘둥그래진다.
“ 뭐...뭐야 지금 너...너 나 때린거야 ? ”
“ 정신좀 차려요 제발 !!! ”
“ 자기야...자기야 봐봐...자기 아들이 나 때렸어. 자기 아들이...미쳤나봐. 나 지금 때
린거 있지. ”
너무 어이가 없고 황망해 취중에도 남편 현준에게 바로 항의를 하는 모습의 주희. 하지만 현준도 지금은 많이 취하고 지쳐있는 상태라서인지 손을 내젓기만 하다.
“ 아웅...뭐야...한밤중에...나 지금 피곤하니까...할말 있거든 내일 이야기해. ”
현준은 술취한 주희가 그저 작은 실랑이라도 벌이는줄 알고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심지어 불까지 꺼달라는 주문까지 하고 아들 명수에게도 나가라고 손짓한다. 정말이지 이런 엉망이 되어있는 태도인 아버지 현준과 새엄마 주희의 모습. 실망스러움이 극에 달할뿐이다. 여하튼 지금 무슨말을 더 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명수도 그쯤에서 체념을 하고 한숨을 내쉰뒤 자기방으로 돌아가버린다.
“ 나 때렸다구 !!! 당신 아들이 !!! 아휴, 여기 멍 자국봐 !!! 당신 아들이 나 때렸다
니까. 아이구 아파~~~!!! 어어어엉~~~!!! ”
다음날. 간밤에 취중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은 생생하게 나는지 주희가 잠에서 깨자마자 아직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상태인 남편 현준에게 닦달하고 있었다. 허나 현준이야말로 전날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취중이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대로 옷만 풀어헤치고 벌러덩 침대에 누워버렸기 때문에 자신이 곯아 떨어진뒤 대체 무슨일이 벌어진건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잠결에도 주희와 명수 사이에 무슨 소란이 벌어지자 그만좀 하라는 듯 한마디 하긴 했었지만 그때도 상황파악은 제대로 안되던 터. 일단 아내가 이 난리를 치는 모습에 대체 간밤에 무슨일이 있었던것인지 파악은 제대로 해야겠다는 듯 명수를 불렀다.
“ 명수 너 똑바로 말해봐라. 간밤에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 ”
“ 아저씨가 나 때렸잖아 !!! 아저씨가 나 때린거 기억 안 나 !!! 봐 !!! 봐 이 멍자
국 !!! ”
거듭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는 주희의 호칭도 귀에 거슬리지만 근본적으로 동생들에게 밥도 제대로 차려주지 않고 단지 부부동반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나가선 밤늦게 들어와 술에취해 하는 모습이 명수를 격분하게 만들었던 것 아닌가. 허나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어떤일이든지 자기 중심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고 말하게 되기 마련이다. 주희 입장에선 그야말로 밤늦게 술도 많이 취했고 피곤해서 대충 자리깔고 누우려하는데 다짜고짜 남편의 중학생 전처소생 아들이 자신을 폭행한것밖에 안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약이 바짝올라 이와같이 나오고 명수는 명수대로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한숨을 내쉰다.
“ 어서 사과부터 드리거라. 다른건 몰라도 어른한테 그게 무슨짓이니 ? ”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현준은 일단 명수를 주희에게 사과부터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지 그와같이 말하고 허나 그것이 명수의 부아를 더 치밀어오르게 만들었다. 명수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 아빠 !!! ”
그 소리에 놀라는 현준은 물론 주희까지 기겁을 할 지경인데, 명수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할말은 해야겠다는 듯 한바탕 한소리를 늘어놓는다.
“ 아빤 도대체 이젠 이 여자 역성만 드실 참인거에요 ? 이 여자가 대체 뭘 잘한게
있다고 제대로 사과를 해야하는건데요 ? 새엄마가 되어가지고...전 그렇다치고 동생
들까지 쫄쫄굶기고...이게 이 여자가 지금 잘하고 있는거라고 보세요 !!! ”
“ 어머...어머 이 아저씨봐. 날더러 이 여자래...게다가 뭐 ? 쫄쫄 굶기긴 누가 쫄쫄
굶겨 ? 이 아저씨 진자 사람잡을 아저씨네. ”
“ 이것보세요 !!! ”
주희의 이런 태도가 명수를 더더욱 화가 나게 만들었고 현준이 보다못해 명수에게 손찌검까지 한다. 현준마저 이런식으로 나오자 명수는 더더욱 절망스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그리고 집을 뛰쳐 나가버리기까지 한다. 현준은 현준대로 집안꼴이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것 같아 골치가 아프고 주희는 그저 명수의 태도에 겁에 질린 듯 무슨말도 더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 자기야...자기야 많이먹어어어~~~!!! 내가 오늘 자기 위해 특별히 준비해놓았어.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루는 주희가 남편 현준을 위해 한바탕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다.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은 고기파티에 거기다 된장찌개도 한 냄비 정성들여 끓여놓고 거기다 부침개까지 정성스레 몇게 부쳐놓았는데 이 한바탕 진수성찬에 현준은 그저 입에 떡 벌어진다.
“ 아이구, 우리 주희...우리 주희가 이렇게 음식솜씨가 좋은줄 예전엔 미처 몰랐네.
”
“ 다 혼자살면서 그렇게 된거지 뭐. 나 여하튼 고아원 나와서는 쭉 혼자 살아온거
잖아. ”
이런건 확실히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솔직히 남자의 경우엔 혼자 사는 경우라면 기껏 해(?)먹는게 라면이나 좀 끓이거나 그나마 좀 진화된 버전이 김치볶음밥이라도 도전해보거나 아니면 편의점에서 참치나 햄같은 인스턴트 식품이라도 사서 대충 굽거나 지지거나 해서 간단히 해먹는게 전부일 것이다. 허나 여자들의 경우엔 이런쪽으로 유전자가 남자하고 근본적으로 다른것인지 국이나 찌개같은거라도 간단하게 만들어 해먹는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다. 여하튼 주희는 그렇게 혼자 살면서 직접 음식을 해먹어 버릇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솜씨가 는 듯. 하루는 모처럼 남편과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한번 남편에게 자신의 음식솜씨를 발휘해보고 싶었는지 이런 한바탕 상차림을 해놓은 것이다. 현준은 눈물겨운지 감격까지 한다.
“ 아이구...이래서 역시...한국사람은 한국여자랑 결혼해야 하는거라니까. 도대체 얼
마만에 맛보는 흰쌀밥이요 얼마만에 맛보는 김치에 된장찌개 그리고 삼겹살이냐
정말...이래서 국제결혼은...아무것도 모를땐 신기해 보이고 부러워보일지 몰라도
...막상 그거 살아보면 사는게 사는게 아니에요. 이건 도대체 여자가...김치를 좀
먹고 싶다고 할 수가 있나...된장찌개를 지손으로 직접 할줄을 아나...삼겹살,불고
기 파티한번 제대로 해볼수가 있나. 참...진짜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
언제는 남태평양 출신 어나이에게 그토록 푹 빠져 그렇게 살더니만 지금은 되려 이런 소리를 입에 담고있는 현준. 주희는 주희대로 남편의 전 부인이 외국인이었다는것까진 대충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세세한 사연까진 들어본적이 없는 듯 거듭 의아해서 묻는다.
“ 아, 참 그러고보니 자기 전부인 외국여자라고 했었지 ? 근데 왜 ? 그 여자는 그렇
게 안해 ? ”
그래도 현준과 결혼전에 인터넷에서 쇼핑몰까지 했던 여자면 세상물정이나 시사같은데 아주 어두울만한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졸의 고아원출신 주희의 머릿속엔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김치에 쌀밥,된장찌개,불고기 이런 것을 주식으로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던건지 거듭 의아하고 이해가 안간다는 듯 이렇게 묻는다.
“ 에효...말을 한들 뭣하냐 ? 여하튼 할줄 아는게 하나도 없었어요. 뭐 어쨌든 지도
한국땅에서 살게된 이상 어깨너머로 귀동냥으로 들어 아는건 좀 있었는지...대충 뭐
한국음식 만들어 차릴줄은 아닌데...에효...내가 말을 말지...그땐 진짜 내가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어요. ”
헌데 이건 사실관계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사실 어나이가 차라리 한국과 교류가 많은 동남아나 서유럽 대충 이런쪽 여성이었다면 적당히 그런쪽 전통 음식과 맞물린 식재료라도 구입하던가 해서 퓨전형으로 식사를 하던가 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나이는 한국과 교류가 거의 없는 남태평양 섬나라 출신이라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게다가 그런 한국남자 현준의 아들까지 거두어 키우게 되면서 ‘고향의 맛’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되려 어나이쪽이었다. 헌데 그런 불평을 이렇게 적반하장식으로 늘어놓다니. 일단 어나이와의 함께 살던 시절의 모습이 어땠는지 알고있는 명수라도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다면 당장 뭐라고 한마디 하고도 남을만한 그런 이야기긴 하다. 허나 지금 두 사람은 그런 눈치를 전혀 볼 상황이 아닌것인지 현준은 현준대로 하고싶은 말을 있는그대로 늘어놓는다.
“ 나 진짜...두번다시 아프리카 껌둥이 여자랑은 결혼 안한다. 이건 뭐...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특이한맛에 끌려서...한때 껌둥이 여자한테 내가 눈에 훼까닥 뒤집혀서 정
신이 나갔던거지...두번다시 그런 껌둥이 계집년하곤 결혼 안해. 역시 한국남자는
한국음식이 입에 맞는다니까 !!! 그래서 한국 여자랑 결혼하야 하는거에요 !!! ”
“ 마자마자 자기야...두번다시 그런 껌둥이 년은 만나지 마. 그런 이상한 아프리카
껌둥이 기집애는 두 번다시 상종도 하지 말라니까. ”
헌데 이건 진짜 명수가 보면 눈이 뒤집혀질 소리 아니던가. 오히려 애초에 남태평양 출신의 여성 어나이를 현준이 데리고 왔을 때 기겁을 했던게 초등학생 어린 소년 명수였고, 되려 현준은 그런 명수를 피부색이 다르다고 그런식으로 편견 갖는거 아니라고 조용히 타이르기까지 했다. 게다가 ‘아프리카 검둥이’란 말은 사실관계부터가 완전히 다르지 않는가. 어나이는 분명 남태평양 섬나라 출신이지 아프리카 출신은 분명 아니다. 게다가 피부색도 오히려 완전한 흑인보다는 약간 가무잡잡한 편인 그런 여성이라 한국땅에서 살면서도 되려 동남아나 중동출신 혹은 그런출신의 혼혈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던 그런 여자다. 헌데 적어도 어나이에 대해서 현준의 전부인이 외국인이었다는것만 막연히 알고 있을뿐 그녀를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고 따라서 어나이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없는 주희에게 현준은 완전히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사실인양 뇌리에 심어놓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심지어 ‘아프리카 검둥이’라니. 이미 남태평양 고향으로 떠난 – 다만 그곳으로 간게 맞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 어나이가 행여 들었더라면 정말 한바탕 이 자리를 뒤집어 엎고도 남을 그럴 소리다. 헌데 이 이야기를 결국 마침 친구들이라도 만나러 나갔다가 저녁때를 넘겨 귀가한 명수가 우연히 듣고 말았다.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설때까지 아들 명수가 온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채 그렇게 젊은 세 번째 아내와 수다를 떨고있던 현준. 결국 명수가 보다못해 소리를 질러댔다.
“ 아버지 !!! ”
“ 아니 너 명수... ”
“ 엄마얏 !!! 깜짝이야...이 아저씨가 또 왜 이래 ? ”
갑작스러운 버럭 소리에 현준도 화가 났지만 주희도 기겁을 하고, 허나 명수는 명수대로 이 광경이 너무 기가막히고 어이가 없어 한바탕 또 소리를 질러댄다.
“ 도대체 무슨말을 그렇게 하세요 ? 그리고 어나이가 뭐 어쨌다구요 ? 어나이가 무
슨...새엄마가 무슨 아프리카 출신이고 검둥이에요 ? 아빤 도대체 어떻게...새엄마에
대해 그런 말도 안되는 모함을 하실수가 있어요 !!! ”
“ 아니, 명수 넌 도대체 무슨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 ”
확실히 이럴 때 명수가 ‘새엄마’라고 지칭하는 여성은 다른이가 아닌 어나이.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주희도 분명 명수에게 새엄마임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헷갈릴만한 소리이긴 하다. 허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지 않는가. 명수는 정말 이런꼴을 더는 못보겠는 듯 정말 상을 한바탕 뒤집어 엎을 기세로 나온다.
“ 아니, 너 도대체...이게 무슨 배워먹지 못한 짓이야 !!! ”
솔직히 밥상을 엎는다는것은 60-70년대 드라마에서도 성격이 굉장히 못되거나 못배운 혹은 가난에 찌든(* 그렇다고 꼭 성격이 비뚫게 자라게 되는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등장인물이 아니고서는 웬만해선 잘 안 나오는 설정이다. 하물며 21세기에 그것도 아직 중학생인 명수가 어른들 앞에서 그런짓을 한 대서야 말이 되는가. 무엇보다 요즘의 식탁이야 예전에 앉아서 먹는 형태의 밥상이랑은 형태와 무게도 완전히 차이가 나니 그렇게 쉽게 엎어버릴수 있는것도 아니고. 여하튼 정말로 식탁을 들어올리기라도 할 기세였던 명수를 보니 현준은 그야말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명수를 거실로 끌어내 한바탕 두들겨 팬다. 주희는 주희대로 곁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고 방금 식탁이라도 한바탕 뒤엎을 기세였던 명수보다도 더 무식하게 아들을 두들겨패고있는 현준. 그렇게 현준의 집안은 막장 콩가루 집안이 되어가고 있었다.
- 1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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