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외국인 새엄마 4
“ 으아아악~~~!!! 으아아앙~~~!!! 가아~~~!!! 가아~~~!!! 아아아앙~~~!!! ”
그것은 괴물이었다. 실례가 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 명수의 눈에 자기방으로 들어서는 어나이의 첫 인상이 그와같았다는 이야기다. 그냥 잠시 집안에 들른 아버지의 친구나 지인 혹은 직장동료라도 기겁을 했을터인데, 그것도 앞으로 한 집에서 살아야하는 ‘새엄마가 될 사람’이라면 그런 여인을 마주하게 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 사실 어나이는 못생긴 여자도 아니고 뚱뚱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그런 여자이긴 하다. 다만 키가 좀 큰 편에 살이 약간 오른 통통한 체형인지라 특히 어린아이 눈에 ‘좀 크고 시커먼 뚱뚱한 아줌마’ 같은 느낌으로 보였던것이지 남태평양 출신이기도 한 어나이는 흔히 머릿속으로 떠올릴법한 그런 피부가 완전히 검은 ‘흑인여성’과도 거리가 먼 여자였다. 오히려 혼혈이거나 동남아 출신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피부가 약간 가무잡잡한 여자일뿐 ‘시커먼 뚱뚱한 흑인여자’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 자란 성인의 눈에 그렇게 비치는 것일뿐, 어쩌면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대면한것일수 있는 외국여성, 그것도 흑인(?)여성이라면 낯설다는 느낌 때문에라도 본래의 어나이의 이미지나 피부색 혹은 체헝에 비해 훨씬 과장되게 와닿았을지도 모를일이다. 혹시 ‘새엄마’에 대해 그려보라고 하라면 아주 뚱뚱하고 시커멓게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아줌마를 이 시점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그려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단 명수의 첫 인상에 20대 중반에 남태평양 출신 여성 ‘어나이 아줌마(?)’의 첫 인상이 그랬다는 것이다.
“ 으아아악~~~!!! 아아아앙~~~!!! 가아 !!! 가란말이야 !!! 가아아아~~~!!! 아아아앙
~~~!!! 아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아앙~~~!!! ”
일단 아직 어나이가 명수의 아버지 박현준과 정식으로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니 그녀가 아직 명수의 새엄마는 아니다. 허나 일단 아버지 현준은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어나이에 대해 ‘아버지가 사귀는 여자’거나 ‘새엄마가 되실분’이라는 식으로 소개를 했을터이고,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하는 심정으로 긴가민가 했을 아이. 아이에게 인사라도 나누고 말이라도 걸어볼 요량으로 아이 방으로 들어선 그런 어나이를 보며 명수는 이렇게 기겁을 한 것이다.
“ 우와아앙~~~!!! 싫어 !!! 싫어 !!! 가아아아~~~!!! 싫단말이야 !!! 가아아아 !!! 아아
아앙~~~!!! 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아앙~~~!!! ”
아이와 인사라도 나누고 말이라도 걸어보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채 방안으로 들어섰던 어나이는 아이의 반응이 이와같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40대 초반의 한국인 사업가 박현준과 사귀는 20대 중반의 남태평양 출신 여성이라면 한국말이 전혀 서툴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취업이나 일 때문에 한국에 온 그런 출신의 여성이라면 오히려 그래서라도 더더욱 한국말을 배우는데 적극적으로 나왔을것이고, 그러니 적어도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의 반응이 이와같자 지금까지 현준에게서 들었을 아이에 대한 정보와 기대, 그런 방향은 분명 아니었던지 일단 방에서 나와 의아한 표정으로 현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 현준...씨...현준...씨...좀 와봐요. ”
일단 한국말이 확실히 서툰편은 아니고 다만 발음이나 역양 또는 표현방식이 정확하지는 않아서 온전한 성인이라기보단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 수준의 한국말을 구사하는것처럼 느껴지는 어나이. 여하튼 어나이의 반응이 이와같자 현준도 좀 의아해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 왜 그래 어나이 ? 무슨일이야 도대체 ? ”
“ 아이가...겁을 먹은 것 같아요. ”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곤 설마 예상을 못했는지 어나이도 확실히 당황한 기색이다. 여하튼 머나먼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한국까지 와서 살게된 여자. (* 자칫 특정국가 비하같은 문제가 생길수가 있어서 어나이 출신지는 그냥 ‘남태평양 섬나라’로 막연히 설정하였다.) 여하튼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략 2-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혹시 미국 혼혈이냐 ?’라는 이야기나 ‘동남아나 중동출신이냐 ?’는 물음이었다. 사실 ‘검다’기보단 ‘가무잡잡한’편에 속한다고 봐야하는 어나이의 피부색 덕분(?)인지 어나이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아프리카 출신’이란 오해보다는 흑인혼혈의 미국이나 카나다 출신 혹은 동남아나 중동출신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어나이는 어떨때는 한국인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할 자신의 출신국명을 굳이 대느니 차라리 다른이들이 오해(?)하는대로 미국출신 혼혈여성이거나 동남아 출신인 것으로 적당히 얼버무리기도 했고, 여하튼 확실히 어나이는 흔히 머릿속으로 생각할수 있는 ‘아프리카 흑인 여성’과는 거리가 너무 먼 그런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나이 역시 초등학교 정도에 다니는 나이어린 한국인을 대하는 것은 첫 경험이라면 첫 경험이라서인지 아이가 기겁하여 우는 이유를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듯 무척이나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인 현준이 방안으로 들어가 아이를 달래보기로 했다.
“ 명수야...명수야...왜 그래 ? ”
아이를 야단치려는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은 잃지 않으려는 현준. 그렇게 일단 울음은 좀 진정이 된듯한 아이에게 앉아보라고 하고는 말을 건넸다.
“ 아빠가 말했지. 조만간 명수에게 새엄마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
아마 그렇게 아이가 다섯 살도 되기전에 이혼을 한 명수 아버지 현준은 아이에게 자신이 사귀는 여자가 있다는 정보를 그런식으로 알렸나보다. 그러나 외국인 여성이고 게다가 남태평양 출신이라는 것을 아이한테까진 알리지 않았던것이 불찰이라면 불찰이랄까. 과연 무작정 아버지 현준이 ‘새엄마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을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에게 했을 때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머릿속으로는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였을까. 동화 같은데서 흔히 보는 ‘마귀할멈형’ 새엄마 ?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 이따금씩 등장하는 (솔직히 다소 환타지적이라고 해야할) 젊고 이쁜 새엄마 ? 사실 이렇게 어려서 부모의 이혼이나 사별등으로 엄마없이 자란 아이들은 그래도 심리적으로는 ‘새엄마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리가 어느정도 생기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초등학교 2학년 명수 어린이는 과연 아버지가 처음에 새엄마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여하튼 그런일이 있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데리고온 남태평양 출신의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에 키도 다소 큰 편인 그런 20대 중반의 여성 어나이. 그런 어나이가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의 눈엔 ‘뚱뚱하고 덩치큰 검둥이 괴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새엄마’임을 굳이 언급하면서 아이에게 제대로 인식시키려는 아버지를 보며 명수는 더욱 세차게 울고 있었다. 우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어떤 공포감에라도 휩싸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 우와아앙~~~!!! 싫어싫어~~~!!! 싫단말야 !!! 실어 !!! 검둥이 새엄마 싫어 !!! 싫어
!!! 싫어 !!! 싫단말야 !!! 우와아앙~~~!!! 아아아앙~~~!!! ”
현준이 고민상담을 위해 대학선배 이형진을 만난 것이 그 며칠후의 일이다. 현준보다 다섯 살 위인 형진은 현준이 대학 1학년 신입생이던 시절 군 제대후 복학한 3학년이었지만, 서로 그런대로 마음이 맞는 부분이 있었는지 그때부터 시작된 교류가 어느덧 2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형진이 첫 결혼상대였던 명수의 친엄마와 결혼을 할때나 또 그런 그녀와 이혼을 결심했을 때 그리고 이제 나이 40을 넘겨 두 번째 인연으로 그것도 남태평양 출신의 외국여성 어나이를 사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렸던 사람이 이형진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그저 단순히 우정이나 우애를 다져온 선후배 사이 정도가 아닌 현준이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가장 먼저 고민을 토로하고 의지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그런 사람이 이형진으로 보면 된다. 그런 형진을 만나 막상 그렇게 사귀게 되었고 사실상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을 정도로 깊은 관계가 되어버린 열다섯살 연하의 어나이를 집에 처음 데리고 간 날, 막상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아들 명수의 극단적인 거부반응을 보인 모습에 대해 다시 이렇게 고민을 토로하게 된 것이다. 형진이 담배 하나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 내가 자네와 친분을 다져온지가 20년이 넘었지만 말이야... ”
“ ...... ”
“ 여자문제에 있어선 참 자네처럼 독특한 취향인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
을 하곤 했었어. ”
“ 선배님... ”
자신을 놀리는것인지 서두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이와같자 현준이 약간 항변조로 그를 불러본다. 형진이 그런 현준을 잠시 진정시키며 입을 연다.
“ 내...뭐 하나만 물어보지. ”
“ ...... ”
“ 자네, 명수를 사랑하나 ? ”
명수는 다름아닌 바로 지금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박현준의 아들. 그런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누가 있을까. 혹시 부적절하게 태어난 아이거나 아니면 부모 당사자가 아주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인간말종이 아닌 다음에야. 그러나 형진이 굳이 어나이보다 앞서 아들의 이름을 언급한건 다 그만한 뜻이 있을터. 일단 담담하게 현준이 ‘그렇다’고 답하고 그러자 다시 형진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럼...그 어나이 그 아가씨의 경우엔 어떻게 생각해 ? ”
“ 선배님... ”
20대 중반의 어나이는 박현준보다 열다섯살 연하. 그러니 그런 현준보다도 다섯 살이 많은 형진 입장에선 어쨌든 새파랗게 젊은 여성으로 느껴져서일까. - 초등학교 2학년 명수에겐 ‘덩치큰 검둥이 아줌마’처럼 느껴졌던것과는 정 반대로 – 어나이를 굳이 ‘그 아가씨’라고까지 호칭하며 이와같이 묻는 이형진 선배. 어찌 대답을 해야하나 망설이는 현준의 모습을 보며 형진의 말은 이와같이 이어진다.
“ 내 말은...명수와 어나이 둘중에 하나만 꼭 택해야 한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하겠
느냐...그걸 묻고 있는걸세. ”
“ 선배님... ”
아무래도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라서일까. 난처한 표정의 현준. 비록 아직 정식 결혼식을 올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여하튼 나이 40대 초반에 어렵사리 만난 두 번째 인연인 어나이다. 헌데 그런 어나이와 이혼후에도 자신이 쭉 혼자 키워온 그런 하나밖에 없는 아들 명수. 이 둘중에 어느 누가 과연 현준에게 포기하고 말고 또는 선택하고 말고 하는 우위의 가치를 둘수 있는 것이 될수 있을까. 그래서 거듭 난감한 표정을 짓는 현준을 보며 형진은 담배연기를 한번 길게 내뿜어본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진다.
“ 정 어나이와 헤어지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이런 방법정도는 생각해볼수가 있겠네.
. ”
“ 어떤 방법이 있나요 선배님 ? ”
그래도 절망스러운 가운데서도 어떤 희망의 빛이라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현준은 어두웠던 눈이 갑자기 탁 트이는것만 같은 느낌을 받으며 형진에게 묻고 형진이 그런 현준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 아이가...어나이에게 엄마정을 느낄수 있을만한 그런 시간을 갖게 해보란 말이지.
”
“ 무슨 말씀이신지... ”
아직 이형진 선배의 말뜻이 잘 이해가 안 가서일까. 현준이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이와같이 묻고 그런 현준을 보며 형진의 말은 다시금 이어진다.
“ 나야 뭐 자네의 결혼생활도 가까이서 쭉 살펴보았고...그러다 불가피하게 이혼까지
하게된 그 사정도 어느정도 이해하는 사람이지만...여하튼 명수 그 아이는 다섯 살
도 채 되지 않은 그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은 아이다 그 말일세. ”
“ ...... ”
“ 꼭 그래서일지는 몰라도 내가 명수 그 아이를 지켜볼때마다 느껴지는게 그거였
어. 뭔가 모르게...어딘가 모르는 그늘이 느껴지는...헌데 그 어린 아이가 뭐 그리
세상고민이 많고 어두운 그늘이 많겠나. 있다면 결국...엄마없이 자라왔다는 그 문
제가 아니겠는가 ? ”
어쨌거나 늘 아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처지인 아버지보다는 한단계 먼발치서 이따금씩 아이를 보게되는 이형진이었기에 현준이 미쳐 살피지 못한 부분이 느껴졌던것일까. 그와같은 충고를 이렇게 입에 담고 형진의 말은 좀 더 이어지고 있다. 현준은 진지하게 형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어쨌든...초등학생 어린아이에게...어느날 갑자기 새엄마가 생긴다는 것...많이 놀라
고 충격이고...당혹스러운 일이었을거야. 그냥 단순히 젊은 새엄마라도 충격이 컸을
텐데...게다가 국적도 다르고 피부색까지 다른...그런 새엄마라니. 우리야 다 어른이
고 어차피...어나이란 아가씨가 내 아내도 아닌 내 후배고 동료의 아내될 사람인데
굳이 그런걸 세세히 따질 필요야 없는 처지이지만...아이 입장에선 분명히 다른 것
아니겠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서 내가 어린나이때 그런 외국인 새엄마가 생긴다고
해도 나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솔직히 정신적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을게
야. 그걸 생각해보면 이제 겨우 2학년 어린아이인 명수 그 아이가 어나이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전혀 이해가 안가는 일도 아닐 것 같더군. ”
어쨌든 인생을 몇 년이라도 더 산 선배의 연륜이 느껴지는 말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심정을 나이 이미 40대 중반인 현재가 아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로 환원시켜보니 그 정서가 어느정도 이해가 갈 것 같다는 형진의 역지사지의 심리. - 물론 형진의 아버지는 대체로 인생을 반듯하고 온전하게 살아온 사람으로 이혼이라던가 외국인과의 재혼이나 그럴일은 거의 없었던 사람이다. 여하튼 지금 박현준의 다섯 살 많은 선배 이형진이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인 명수의 심정을 한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그런 이해도 갈 것 같다는 그런 의미의 이야기다.
“ 솔직히 내 생각을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아이가 그렇게 싫어하고 완강하
게 거부한다면...차라리 어나이와의 결혼을 포기하는게 어떻겠나. 그 충고도 하고
싶었어. ”
“ 선배님... ”
허나 다른건 몰라도 지금 그건 정말 당치않은 이야기라서일까. 현준이 다시금 발끈하며 나오고 있고 형진이 다시 그런 후배 현준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간다.
“ 내 말은 어쨌든...자네한테 지금와서 생긴 새 여자의 가치가 아이보다 우선시 되
어선 안된다는 이야기지. 뭐...정히 결혼이 아이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면...결
혼은 안 하고...그냥 친구이상 연인이하 정도의 의미로...그냥 애인이나 연인같은
관계만 계속 이어가던가... ”
‘친구이상 연인이하’ 같은식의 말이 대충 90년대부터 생겼던 이야기니 40대 중반의 이형진 입장에서 충분히 입에 담을수 있는 말이다. - 현 시대적 배경을 지금부터 10여년전인 2010년 전후 정도로 잡는다 해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 여하튼 예전에 비해 학교나 직장,종교활동,사회단체나 동아리등을 통해 이전에 비해 비슷한 연배의 남녀간의 교류가 좀 더 활발해지던 그런 시절부터 생기기 시작한 말이 아닌가. 형진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걸세. 아주 어나이와 헤어지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무슨 그
냥 친구이상 연인이하...그 정도 사이도 싫고 정히 어나이와의 결혼 아니면 안되겠
다는 그게 지금 자네의 생각이라면... ”
“ ...... ”
“ 아이에게 어나이에게서 엄마정을 느껴볼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마련해주는게 좋을
것 같다 그 말이지. 무슨말인지 알겠나 ? 명수 그 아이가 어나이를 좀 더 친숙해
지고 익숙하게 되는 그런 시간을 마련해보란 말일세. ”
현준은 지금 형진의 이런 충고를 어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단 형진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도 부정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은채 그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만 있다. 뭔가 답답하기라도 한지 냉수도 한잔 컵에 가득부어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고, 뭔가 미묘한 표정으로 잠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형진 선배의 충고를 들은 현준이 며칠후 어나이를 만났다. 그러고보면 토요일 오후시간이기도 한데, 지난주 이미 현준의 아들 명수의 당혹스러운 반응을 겪은뒤라 어나이도 마음속이 많이 복잡하고 어지럽긴 했을터. 일단 현준이 그런 어나이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 어나이에게...한가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
일단 담담하게 어나이가 현준을 바라보는 가운데 현준의 말이 이어진다.
“ 어쨌든 내가...이혼전력이 있는 사람에 혼자 아이를 키우는 몸이란것도...나이도 이
미 40을 넘긴 사람이란것도 어나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터...그런 상황에서 어떻
게 날 선택할 생각을 했었지 ? ”
사업을 하는 현준은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외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일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 과정에서 남태평양 출신의 여성 어나이를 알게된 듯 하다. 아마 해당업체에서 일종의 여비서나 여직원 같은일을 하고 있었던 여인인 듯 한데 여하튼 인연은 묘하게 현준과 이어진 셈. 무엇보다 현준의 나이나 신분을 대충 알만한 그런 위치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더더욱 현준이 새삼 궁금해진 것 같기도 하다. 어나이가 일단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
“ 사실 저야 처음부터...아저씨가 나이도 저보다 많고 아이도 있다는걸 알고 있었지
만...그냥 아저씨한테 점점 호감이 생기다보니...그런건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어요.
”
“ ...... ”
“ 거기다가...아저씨한테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상황이라서...
뭐랄까요...그냥 만만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
“ 그건 또 무슨소리야 ? ”
“ 그땐 아직 아저씨 아들을 직접 만나보기 전이긴 하지만...그냥 아직 초등학교 1-
2학년 그 정도 어린아이라면...제가 충분히 다루고 통제할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거거든요. ”
어쨌거나 20대 중반 이상의 성인여성 정도 되면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그 이하의 어린아이는 그야말로 자신이 다룰수 있는 ‘만만한 아이’ 정도로 생각이 되는걸까. 실제 아이가 어느정도 자란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경우라면 모를까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그 이하의 어린아이가 있는 이혼남이나 사별남인 경우엔 의외로 (어린아이니까) 만만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 실제 2천년대 초,중반경에 새엄마 관련 카페에서 사례들을 수집할 때 보면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하긴 그 정도 나이(대략 20대 중,후반경)에 유치원 선생이나 고아원 선생님 또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 또 딴에는 유아교육이나 아동심리학 같은 것을 전공한 젊은 여성도 더러 있을테니 한 중,고등학생쯤 되는 사춘기 자녀라면 모를까 초등학생이나 그 이하 미취학 아동이라면 그 정도 아이 한둘정도는 자기가 충분히 통제하고 제어할수 있을것이란 ‘자신감’에 넘치는 것.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심리일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건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출신이건 또는 남태평양 출신이건 어나이도 여하튼 그 정도 나이가 든 20대 중반의 성인여성인지 초등학교 2학년 어린 아이가 그저 자신이 다루기 쉬운 만만한 어린아이로 느껴졌던것인지. 다만 똑같은 국적의 한국여성이 아닌 자신에겐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기엔 – 국적과 피부색깔 – 두가지 걸림돌이 더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채 무작정 박현준을 택한 것이 26세의 어나이 심리인 것 같다. 그러나 일이 예기치않게 이와같이 꼬이자 지난 일주일동안 어나이도 고민이 좀 많았던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간다.
“ 사실 저희 나라에도요... ”
“ ...... ”
“ 계모한테 구박받는 그런 어린아이에 관한 설화같은게 하나 있긴 해요. ”
흔히 생각하는 우리나라나 서양의 이런저런 계모관련 설화나 동화말고 머나먼 남태평양 나라에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는것인지. 어나이도 아마 어릴때부터 부모나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었을법한 그런 전설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 에이프리 아가씨의 전설이었던가...옛날옛날에...에이프리라고 어려서 어머니를 잃
고 아버지와 살면서 동생 둘을 키우는 착한 효녀 아가씨가 있었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프리 아가씨의 아버지가 심술궂은 계모를 맞이한거죠. ”
“ ...... ”
“ 헌데 심술궂은 계모는 매일같이 에이프리 아가씨를 비롯한 두 동생까지 3자매에게
이 먼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오라 시킨거에요. ”
“ 에헴...에헴... ”
헌데 어차피 자신이 애딸린 이혼남의 처지로 그것도 나이 40을 넘겨 재혼을 생각하고 있는 박현준이 그것도 하필 자신이 재혼상대로 생각하고있는 젊은 여성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좀 불편하면 불편한 상황일수도 있고 그것도 하필 어나이가 이런 이야기를 입에 담는 의도도 좀 이해가 안가는 일일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현준이 헛기침을 거듭하면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데, 일단 어나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 계모는 매일같이 에이프리 아가씨를 비롯한 3자매에게 매일같이 먼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오라고 일을 시켰고...비오는 날이나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날이나 그
일은 그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거센 풍랑이 몰아치던날 계모의 엄한 명령
으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 에이프리 3자매는 풍랑에 배가 뒤집혀 실종되고 말았고
그러나 계모는 에이프리 아가씨의 아버지가 딸들의 행방을 묻는데도 끝까지 사실을
말하지 않고 은폐하려 했대요. ”
“ 그래서 뭐...어쨌다는건가 ? ”
대충 그런 못된짓을 한 계모가 벌을 받았다는 그런 스토리로 흐르나보다 하는 짐작은 될듯하고, 역시 현준이 짐작한대로 스토리가 대충 마무리된다.
“ 헌데 어느날 바다의 신령님이 노하셔서 그 계모에게 벼락을 내려치게 해서 계모를
돌이 되게 만들었고 실종된 3자매는 바다 신령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
올수가 있었대요...그래서 에이프리 아가씨 3자매와 아버지는 다시 행복하게 오래오
래 잘 살았대요. ”
그러고보면 의붓자녀 구박하는 계모의 설화는 어느나라나 다 한두개씩은 있는것인지. 하긴 사람들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다 똑같다는점을 생각해보면 그런대로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질병,전쟁,천재지변등으로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을것이고 또 가난의 이유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떠나버리는 일도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차라리 잘사는 집이라면 모를까 없이사는 집으로 시집을 온 젊은 여성의 경우엔 그런 나이많고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온것도 분해 죽겠는데 아이들 뒤치닥꺼리까지 자신이 맡아야한다면 그로인한 스트레스나 심리상태는 또 어떻겠는가. 게다가 그런 가난한 집이라면 경제활동이나 가사문제를 어린 아이들에게도 일정부분 분담시키거나 심지어 전담시킬 수밖에 없는것도 불가피한 일일터. 친부모가 그렇게 하는 경우라도 서러울텐데 계모가 그렇게 할 경우 그 설움이나 상처가 더 크고 극에 달했으리라. 그걸 생각해보면 그런식으로 사람들 입에서 전해지고 전해져 내려와 전처소생 자식들을 구박하는 ‘못된 계모’ 이야기가 어느나라,어느지역이든 한두가지 이상은 꼭 존재하는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같아 보이기도 하다.
여하튼 어나이나 박현준이나 피차 착잡한 심정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계모설화일텐데 허나 어나이의 경우엔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더 덧붙인다.
“ 헌데 저도 뭐 자라면서 실제 새엄마랑 사는 경우를 주위에서 한두건 보긴 했는데
뭐 꼭...좋다,나쁘다 그렇게 말할 것도 없더라구요. 보니까 그런대로 새엄마랑 별탈
없이 무난하게 사는 경우도 있고...또 새엄마가 싫다며 집 나가고 싶다며 맨날 칭얼
거리는 아이도 있었고...뭐 그렇게 사례에 따라 다 다른 것 같더라구요. ”
여하튼 어나이가 사는 남태평양 국가에도 그런식의 이혼,재혼 가정은 존재했던것인지 어나이 스스로 그렇게 20년 넘게 인생을 살면서 보고 듣고 느껴온 것을 그런대로 솔직하고 정직하게 사랑하는 남자 박현준 앞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경우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있는 박현준이란 남자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고.
“ 그리고 뭐 전...어쨌든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어린아이라면...충분히 제가 다룰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만만하게 생각했던건
데... ”
허나 그 만만하게 봤던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 박명수에게서 전혀 예기치못한 사태를 겪었던 어나이. 여하튼 자신이 현준이나 명수 부자와는 국적도 피부도 완전히 다른 ‘외국인’이란 것을 그때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것인지. 하긴 현준이야 다 큰 어른이고 무엇보다 젊고 그런대로 섹시한 외모를 갖췄다고 볼수도 있는 어나이에게 푹 빠져 충분히 그럴수 있을터이지만 그 현준의 아들 명수까지 현준과 같을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던게 어나이의 불찰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나이를 데리고 처음 집에 찾아갔다가 현준의 아이 명수가 그 난리를 치는 모습을 이미 목격한 뒤. 앞으로의 일을 어찌 처리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두 사람으로선 머리에 가득할 수밖에 없다.
“ 아저씨... ”
모텔방에 두 남녀가 나란히 누워있다. 다름아닌 박현준과 어나이다. 사실 현준의 재력 정도면 호텔방을 택해도 무난할텐데, 그래도 남들 눈을 의식해서인지 아직 혼전인 상태에서 서울 외곽 위성도시에 있는 후미진 모텔방을 택한 것이다. 여하튼 두 사람이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한것도 아니고 또 이미 현준의 아들 명수가 그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모습도 보았으니 현준의 집에서 그러기도 쉽지 않을터. 그래서 택한 것이 서울 외곽의 위성도시 모텔방인 듯 한데 어나이가 현준의 품에 안겨 이렇게 말한다.
“ 솔직히...저도 나름...상처가 많은 인생이었어요. ”
“ ...... ”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직장생활을 했었죠. 아무래도 저희
나라도 원래 미국령이었던곳이다 보니 미국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거나 미국땅을 오
가며 사업이나 일을 하는분이 많이 계셨거든요. 그래서 그런분의 추천으로 미국까
지 가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던거에요. ”
침을 한번 꿀꺽 삼키는 현준. 그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런 이야기는 아마 일전에도 한번 들었던 것 같아. ”
여하튼 어나이와 현준이 정식으로 사귀게 된지가 한 1년여가 지났고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더 이전으로 친다면 어쨌든 2-3년정도 시간. - 그러니 어나이 입장에선 한국에서 생활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현준을 알게된 셈이다. - 그러니 그동안 어나이가 자신의 이력정도는 자기소개 삼아 현준 앞에서 한두번정도는 할 기회가 있었을터. 그래서 기억이 난다는 듯 현준이 이렇게 대꾸하고 어나이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미국에서 그렇게 5년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우연히 한국을 종종 드나드는 어떤분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분이...한번 한국에서 일해보는게 어떻겠느냐는 그런 추
천을 해주시더라구요. 사실 전 그전까지도...남한,북한 이런 구분이 있는줄도 몰랐고
한국 대통령이 누군지도 모를정도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하 문외한이었는데...그
분 하시는 말씀이 의료보험이나 교통,치안 혹은 복지시스템 이런건 한국이 미국
보다 훨씬 낫다며 한번 한국에 가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그렇게 권하시더라구요.
”
솔직히 90년대까지만 해도 잘 안나오던 이야기인데 2천년대 이후론 의외로 그런 이야기가 동남아나 중앙아시아같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 외에도 미국이나 유럽 혹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입에서도 종종 나왔다. 차라리 의료나 치안,교통문제 같은 것은 한국이 더 낫다고. 소위 한국드라마나 K-pop 같은 한류의 영향탓인지 그런 요인 외에도 이전과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 덕분인지 적어도 그런쪽으로는 한국을 추천하는 외국인이 차츰 늘어나기 시작하는 추세. 아마 그런 인연으로 – 어쩌면 어나이가 일하기에 한국이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고 – 한국이란 나라에 가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는 어나이. 그렇게 한국으로 들어온 그녀가 이곳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이 40대 초반의 애딸린 이혼남 박현준이었던 것이다.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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