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선문법사 이야기
“ 근데...아저씨는 혼자 사세요 ? ”
아버지가 이미 10년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은 했었고, 그래서인지 세아가 지레짐작이 들어서일까. 이와같이 묻고 준식이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듯 하더니 씁쓸히 웃으며 답한다.
“ 허허...뭐 그런 셈이지. ”
“ 어쩌다가요 ? ”
어쨌든 이미 나이 40을 넘겼고 어쩌면 세아의 어머니보다도 나이가 많을수 있다는 짐작을 하게된 세아인데 그런 준식이 아직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산다니. 자연스럽게 궁금함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식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 천천히 입을 연다.
“ 그냥 뭐...운이 없었나보지 뭐. 그냥 살다보니 어쩌다 그렇게 되었어요. ”
그런식으로 말하는 준식을 보며 여전히 납득을 못하는 표정의 세아. 그런 세아를 보며 무슨말을 어찌해야할지 준식은 여전히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여는 준식.
“ 아니면...그 천을 버린 것이...좀 영향이 있던건가...저주를 받았다던가... ”
선문법사가 창원회관장을 할 때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이나 젊은 과부의 영혼을 천도할 때 썼다는 천. 그리고 그 천 조각을 몇몇 청운회나 총무원 국장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데 그 천을 받은이들에게 두가지 징크스가 있었던셈이다. 첫째로는 그 천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개 대진교를 떠나게 되었고 둘째로는 허나 막상 그렇게 떠나서는 별탈없이 좋은사람 만나 결혼하고 취직도 하고 무난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 천조각에 깃든 처녀귀신이나 젊은 과부의 영혼이 천을 받은이를 지켜주는 수호령같은 역할이라도 해서 그렇게 대진교를 떠나고도 별다른 탈없이 잘 살고 있는것인지 모르겠지만 준식의 경우엔 회관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천을 더 이상 간직하고 있는게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는지 준식이 90년대 중반 잠시 가입해 활동한적이 있었던 pc통신 하이텔의 ‘삼국지클럽’이란 동호회의 당시 고등학생이던 회원에게 모임때 만나서는 줘버렸다. 그러니 선문법사에게 천조각을 받고 대진교를 떠난 다른이들이 대개 무난하고 별탈없이 잘 살고 있는반면 그 천을 다른이에게 넘겨버린 준식은 지금껏 장가도 못가고 혼자 살고 있다. 대충 이런 논리도 성립이 되는것일까. 헌데 천을 버렸다느니 어쩌느니 이런식의 말은 어차피 세아가 알아들을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 바로 준식은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는 후회를 한다. 허나 굼금하고 의아해진 세아가 재차 묻자 결국 이와같이 답한다.
“ 그냥...예전에 어떤 여자분한테 그런걸 받은적이 있어요. ”
“ 어떤 여자요 ? 여자친구요 ? ”
아직 나이어린 세아 입장에선 여자라니까 그저 단순히 그런 생각이 든것인지 그렇게 묻고 준식이 순간 어이없어져서 손을 내젓는다.
“ 아니에요. 하하...그분과 내가 나이차이가 얼만데 그런 말도 안되는 오해를...아마
그 여자분...아저씨보다 최소한 12살 이상 한 15살 가까이 그렇게 많은 분이에요.
그야말로 거의 고모나 이모뻘은 된다고 해야하는 분인데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그냥 어른일 따름이에요. ”
준식이 70년대 초반 태생이고 선문법사는 50년대 후반 태생이니 대충 나이계산을 해보더라도 그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더욱이 준식이 대진교에 몸담고 있던 20대 시절 선문법사는 이미 나이 30대 중반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준식에겐 그냥 ‘아줌마’ 같은 느낌일뿐 그 이상의 생각은 들 이유가 없다. - 물론 선문법사 입장에서도 가당찮은 일이고. - 다만 준식은 일단 선문법사와는 대체로 불편한 관계였고 또 그 문제의 천을 받고나서 다른 청운회나 젊은 교사들과는 달리 그 처녀귀신의 혼이 깃들었다는 천을 나중에 다른이에게 줘버렸다는 차이가 있을뿐이다. 다만 여하튼 막상 그런 선문법사의 별세소식을 듣고 문상까지 다녀온 처지라 그저 여러 가지로 그분과의 이런저런 애증의 인연들을 생각해보니 착잡한 감회에 휩싸일뿐. 그래서일까. 준식이 세아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 세아양이 그럼 약속을 하나 해줄수 있어요 ? ”
“ 어떤 약속을요 ? ”
“ 세아양에게...아저씨가...예전에 잠시 알고지내던 어떤 좀 이상한 여자분의 이야기
를 들려줄께요. 그러니... ”
“ 대체 어떤 이상한 여자길래 그래요 ? ”
세아 입장에서도 새삼 궁금함과 호기심이 발동하는지 재촉하듯 이와같이 묻고 빙긋이 미소지은 준식의 말이 이와같이 이어진다.
“ 좀전에 아저씨도 잠시 말했다시피...아저씬 일단 현역으로 데뷔한 작가는 아니고
20대때는 한번 삼국지를 드라마로 써본다던가 근현대사 드라마를 써보고 싶다는 그
런 생각도 잠시 해봤던 그런 사람이에요. ”
“ ...... ”
“ 하지만 아저씨는 현역 작가로 데뷔하진 못했고...또 그러기엔 이미 글러먹은 나이
기도 하고...그냥 여기서 이렇게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빌라 세채나 관리하며 그러고
있는 사람이지만... ”
세아가 캔엔 남아있는 음료수를 어느덧 다 비워가는데 준식의 말은 좀 더 이어지고 있다.
“ 나중에 세아가 어떤 유명한 드라마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 혹은 소설가를 만나게
되면... ”
“ ...... ”
“ 한번 그 여자분의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줄수 없겠느냐고 그 부탁을 혹
시 전해줄수 없겠냐 이 말이지... ”
세아에게 무슨 드라마 작가나 그런쪽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직 나이어린 학생이고 앞날이 창창하니 앞으로 살면서 혹시 그런쪽의 종사자를 만나게 되면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번 전해달라는 소리다. 어찌보면 좀 막연한 부탁일수도 있는데 일단 준식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한마디로 세아양이 한번 곽리자고의 아내 역할을 좀 해달라는 말이지. ”
“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저 유명한 고조선때부터 전해진다는 현존 우리나라 최고(最古) 가요 ‘공무도하가’. 보통 그 공무도하가에 대해 중,고등학교때 배우게 되는데 학교에 잘 가지않는 세아라서인지 공무도하가의 내력에 대해 배워본 기억이 없는지 여전히 이해할수 없다는 듯 나온다. 준식의 설명이 이어진다.
“ 공무도하가가 만들어진 내력이 대충 그와같다지 않나. 강물에 빠져 죽는 백수광부
를 보며 노래를 지은 백수광부의 처. 그 아내를 지켜본 곽리자고가 돌아가서 자기
아내에게 그 사연을 전해주었고 그 아내가 다시 이웃의 여옥이란 여인에게 이야기
를 전해주자 여옥이란 여인이 ‘공후인’이란 악기를 타며 지었다는게 ‘공무도하가’가
아닌가. 그러니 실은 백수광부 부부와 관련된 사연을 곽리자고가 아내에게 전해주
고 또 그 아내가 이웃 친구에게 전해준 그런식으로 ‘공무도하가’가 만들어진 것 아
닌가. 그러니... ”
“ ...... ”
“ 세아양이 바로 그런 곽리자고나 곽리자고의 아내처럼 누군가의 사연을 전해주는
일종의 전달자 역할을 해달라는것이지... ”
강성희 여사가 1950년대 후반 태생이니 일단 편의상 1957-58년생 정도로 설정을 하면 그녀와 나이터울 얼마 안 지는 언니 강은희를 대략 1954년생 정도로 설정하는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90년대 초반에 이미 대학생 자녀가 있는 그런 언니가 한두명 더 있는게 강성희였으니 그러한 언니 두명을 1940년대 중,후반 태생정도로 잡으면 대체로 합리적인 가족관계 설정이 되리라. 그렇게 4자매중 막내로 설정을 한다면 여하튼 위로 세명의 언니가 있게되는 강성희. 그러나 그녀는 대체로 초등학교 5,6학년경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언니...언니...성희가 아파...많이 아픈 것 같아. ”
성희와 한 방을 쓰는 셋째언니 은희가 하루는 울상이 되어 다른 두명의 언니를 다급하게 불렀다. 이들 4자매에게 부모가 안 계신 것은 아니고 모두 살아계시나 이럴 때 해결은 나이드신 부모님보다 언니들이 더 잘할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일까. 큰언니와 둘째언니가 함께 쓰는 방으로 울면서 달려간 은희. 자연스럽게 놀란 부모님도 함께 달려오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놀라고 걱정되는 눈으로 신열이 불덩이와 같은 성희를 살펴보았다.
“ 성희야...너 왜 그래 ? 너 대체 왜 그래 ? 어디가 아픈거야 ? ”
“ 그냥...그냥 열이 많이 나고...그래...움직이기도 힘들고... ”
일단 아이를 학교에 가게 할 수는 없는 상황. 부모님과 세명의 언니들은 다급하게 성희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찰을 해본 의사는 일단 정확한 원인을 판단하긴 어려운 듯 이런 진단을 내린다.
“ 일단 감기몸살 증상인 것 같습니다. 약을 먹이도록 하고요...그래도 정 상태가 호
전되지 않으면...큰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개인병원의 의사로서는 도무지 자신이 없는지 그렇게 큰병원 입원을 권유하는 의사. 다만 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하는 것은 자신들의 경제형편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일단 약만 지어가지고 성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성희는 한 2-3일 정도는 몸살(?)기운으로 그렇게 앓아눕다 그래도 약을먹은 덕분인지 좀 호전되는 기미를 보여 다시 정상적으로 학교에 나갈수는 있었다. 허나 그 이후에도 그런 증상은 몇차례 더 반복되었다.
“ 성희야...교회에도 못 가겠니 ? ”
성희의 큰언니 강주희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의 일이다. 사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된지 이미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 (* 천주교의 전파과정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이 무렵(1960-70년대)이면 그러한 기독교의 교세도 나날이 확장되어가던 그런 시절이긴 하지만 바로 그럴 때 큰언니 강주희가 평소 알고 지내는 친구 권유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른 동생들과 부모님에게도 전도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뭐 그다지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닐것이고 동생을 걱정하는 언니의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것일텐데, 성희와는 열한살 터울이 지는 강주희의 경우엔 이때 20대 초반 직장인이었다.
“ 몰라...미안해 언니.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래. ”
“ 그래 뭐...너무 무리하지는마. 하지만 성희야. ”
“ 응, 언니. ”
“ 아무리 아파서 교회에 못나가더라도 하나님께 기도드리는것만은 잊지 말으렴. 하
나님께서 우리 성희를 항상 지켜주실테니까. ”
이때는 성희도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때는 ‘국민 학생’)이고, 무엇보다 집안의 큰딸인 주희가 부모님이나 동생들에게 전도를 한 목적 자체가 가족들을 생각하는 큰딸의 지극한 효심과 우애 때문이었을테니 동생을 걱정하는 언니의 마음이 앞서 이와같이 말한 것이다. 허나 그런 성희에게 본격적으로 이상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중학교때부터였다.
“ 얘들아... ”
사실 1960-70년대에는 아직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은 높지 않던 시절이고 남학생들과는 달리 여학생들은 대체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을 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또는 각자의 인연(연애)대로 결혼을 하게 되거나 그런 경우가 많던 시절이다. 하지만 의무교육이 아직 초등학교까지만 실시되던 시절이니만큼 딸 넷을 모두 고등학교까지 다니게 했을 정도면 (부자나 중산층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경제적으로는 그런대로 먹고 사는데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는 않은 그 정도 분위기의 집안으로 봐야할 것이다. 여하튼 그런 시절 4자매중 막내로 어느덧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 성희. 그런 성희가 종종 학교 친구들에게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런말을 했다.
“ 얘들아...이상해...뭔가 이상해... ”
“ 뭐가 성희야. ”
“ 김일성을 암살하러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
“ 뭐어 ? ”
성희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바로 60년대가 다 지나가고 대망의(?) 70년대가 시작되는 그런 무렵이다. 무엇보다 6.25 동란이 있은지 아직 얼마되지 않은때이고 냉전이 아직은 싸늘하게 전개되던 그런 시대였으니 분단국가인 한국이야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던 시절. 전쟁 이후에 태어나 학교를 다니게 되는 아이들이 그런 반공교육을 통해 김일성을 ‘뿔달린 도깨비’로 인식하게 되기 시작한 바로 그런 시절이 아니던가. 헌데 바로 그런 무렵 중학생이 된 강성희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말. ‘김일성을 암살하러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과연 학교 친구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성희야...너 자꾸 그런말 하지마. 무서워... ”
일단 ‘똘이장군’ 만화가 나오려면 한참 더 시간이 지나야 한다. 허나 어찌되었거나 ‘김일성을 해치웠다’는 사람이 누군가 나오기만 한다면 대략 국민영웅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구한 영웅쯤으로 추앙받았을지도 모를 그런 시절이긴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성희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2년전에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러 온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있어 그중 한명이 생포되기도 했고 또 그 얼마지나지 않아서는 미국 잠수함을 북한이 나포해가는일도 있어 그야말로 다시 전쟁이 날것같은 분위기가 되어 온 국민이 벌벌떨기도 하던 그런 시절이 아닌가. 바로 그런 시대를 초등학교 5,6학년 나이에 생생하게 겪었을 세대. - 그러고보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때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다 죽은 소년이 있어 그 소년을 ‘반공교육의 상징’으로 추앙하기 시작한것도 이무렵의 일이다. 헌데 바로 그런 시절을 보고자란 강성희가 중학교때부터 뜬금없이 외치는 말이 이와같았던 것이다.
“ 이상해...이상해...아무래도 김일성을 암살하러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
“ 성희야...이제 제발 그만좀 해. ”
친구들은 물론 언니들도 걱정이 되어 성희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물론 감기몸살기운이 있어 병원에 데려간 것은 아니고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알아보기 위함이다. 이때는 지금처럼 정신의학 기능이 세밀화되어있지는 않은 시절이고 대중적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적어도 ‘정신문제’를 진단해보는 그런 기능의 병원이 없지는 않았다. 정신과 담당의사가 일단 성희를 면담해보고 이렇게 말했다.
“ 제가 볼땐...불안증세가 너무 극도화되어 나타난 증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 ”
“ 사실 요 근래 2-3년 이내에 극도의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느낀다며 저희 병원을
찾아오신 분들이 많아요. 제가 알아본바로는 제 선배,동료 의사들의 병원에도 비슷
한 증상의 환자가 많이 찾아왔었고요. ”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등 연일 거듭되는 북한의 무장공비 남파행위등 일련의 사건들로 불안해진 사회현상으로 봐야하는것일까. 허나 그런 불안한 사회분위기속에 느끼는 불안감이나 스트레스. 그런것과 같은 선상에서 단순히 판단하기에는 강성희의 그것은 뭔가 달랐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약을 지어온 이후에도 성희는 계속 이와같은 말을 뇌까렸다.
“ 이상해...이상해...김일성을 암살하려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
그로부터 1년후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한여름에 갑자기 인천 앞바다에 상륙 서울로 침투하려다 대다수가 살해되는 그런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김일성 암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부대 요원들이 벌인 ‘실미도 사건’. 애초 1.21 사태에 대한 보복조치로 김일성을 응징하고자 만든 특수부대였고 그러나 그 계획이 흐지부지되어 특수부대가 버려진채 장기간 방치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부대원들이 벌인 난동. 그러나 이와같은 진상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이 훨씬 지난 민주화가 이뤄진 때의 일이고 이때는 그저 어떤 특수범죄를 저질렀거나 특수한 목적으로 외딴섬에 감금시켜놓은 이들이 처우에 불만을 품고 벌인 난동으로 얼버무렸다. 따라서 막연하게 (그것도 북괴 무장공비와 다를바 없어보이는) 웬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그런 난동을 인천과 서울 한복판에서 벌였다는 보도를 접한 대다수 일반시민들은 또 한번 무섭고 두려워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이어린 여학생들의 그 공포와 충격의 강도는 한층 더했을것이고. 헌데 그런일이 있기 1년전에 강성희는 이런말을 뇌까리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 이상해...이상해...김일성을 암살하러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
그러던 성희가 ‘무당이 되고싶다’는 의사를 밝히기 시작한 것이 대략 중3-고1 무렵부터다. 이미 큰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고 있는 다른 언니들도 그렇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도 황당하며 식겁해할일이 틀림없었다. 교회에 다니고 안다니고 또는 신앙심이 깊고 아니고의 문제를 떠나서 무당이라면 예전에도 천시를 받던 그런 직업 아닌가. 그러니 1920년대생으로 나이 이때 이미 50을 넘긴 성희의 부모님 입장에서도 기가막힐일이 아닐수 없었다.
“ 성희 니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
하고 한 몇 년 직장생활 착실히하며 돈 벌면 그때쯤 좋은사람 소개시켜줘서 시집
보내줄께. ”
여자들의 경우엔 대략 고등학교 정도 나온뒤 한 몇 년 직장생활 하다 시집가는 그게 보편적인 케이스가 되어있는 시절이다보니 성희 어머니도 바로 그런식으로 성희를 타일렀던것이고 허나 성희는 이 무렵부터 종종 학교를 부모님이나 언니들 몰래 빠지며 나름 수소문을 해 그런대로 이름난 무당이나 점쟁이를 직접 찾아가보곤 했다. 요즘처럼 무슨 인터넷 정보같은게 없던 시절이니 그런데를 자주 만나는 이웃주민들이라던가 또는 월간지나 주간지같은데 이따금씩 나는 이런저런 사주,궁합따위를 본다는 보살이나 무당따위 광고에서 연락처나 정보를 알아내 그런곳을 직접 찾아가보곤 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교통정보든 뭐든 나이어린 학생이 정확하게 알아내기 쉽지 않던 시절이니만큼 주간지에서 정보를 얻었든 월간지에서 정보를 얻었든 그런 무당이나 보살이 있는곳을 직접 찾아가보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연히 그런 무당이나 보살이 있는곳 한두곳을 찾아가보는데도 하루,이틀 정도가 소요될 수밖에 없었고 친구들한텐 보통 아프거나 집에 일이 있어서 학교를 빠진다는식으로 핑계를 대고 그런곳을 찾아갔던것인데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얼마지나지 않아 언니들이나 부모님한테 성희의 그런 행보는 포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니 도대체 요즘 어딜 쏘다니는기고 ?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벌써 그간 몇 번을 전
화하셨는지 아나 ? 대체 니 요즘 뭘하고 돌아다니는건데 ? ”
성희는 어머니의 추궁에 결국 사실대로 실토할 수밖에 없었고 놀란 어머니는 성희를 종아리까지 치며 야단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런데 찾아가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아낼때까지 창고에 성희를 감금시켜놓기까지 했다. 그러자 성희는 진심인지 아니면 일단 이 상황은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에서인지 ‘다시는 그런데 찾아다니지 않고 착실하게 학교 잘 다니겠다’고 울면서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감금된 창고에서 나올수 있게된 성희. 헌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학교에서 성희가 친구들과 어울리던 어느날. 또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 얘들아... ”
“ 왜 성희야 ? ”
“ 국상(國喪)이 날것 같아... ”
국상. 중,고생들에게 좀 어렵다면 어렵다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혹시 사극같은거 즐겨보는 학생이라면 이런 단어 못들어보진 않았을 것이다. 일단 70년대면 TV가 제법 보급되기 시작 시골이라면 몰라도 서울등 도시지역은 TV 보유 가구가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시절이고 ‘여로’니 ‘아씨’니 하는 일일연속극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던 그런 시절이 아니던가. 뿐만아니라 어린이 대상 인형극중에도 역사속의 인물이나 설화등을 소재로한 인형극을 종종 방영하던 시절이니, ‘국상’이란 단어를 그런곳을 통해서라도 한두번쯤 들어본 학생이 제법 있을수 있다. 헌데 ‘국상’이라니 ? 의미를 모른다면 모를까. 아는 사람이라면 기겁할 수밖에 없는 소리다.
“ 너 그건 또 갑자기 무슨소리야 ? 난데없이 국상이라니 ? ”
국상이라면 그야말로 옛날로 치면 왕이나 왕비쯤 되는 그런 사람이 돌아가신다는 그런 뜻이 아닌가. 게다가 이미 수년전에도 ‘김일성을 암살하러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해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적잖이 두렵고 무섭게 만들기도 했던 그녀. 헌데 성희가 ‘국상이 날것같다’며 뜻모를 소리를 또다시 지껄이니 성희와 평상시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은 다시금 놀라고 무서워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헌데 그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 성희야...너 도대체...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은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있었으니 학생들은 한참 여름방학일때고 그 국민장(國民葬)이 치러진 후에 학교들은 개학을 했는데 개학을 해서 성희를 만난 친구들은 그 ‘국상이 날것같다’ 어쩌구 소리를 했던 성희에게 다시한번 기겁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성희는 다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나 아무래도 무당이 될 팔자인 것 같아... ”
“ 서...성희야... ”
“ 난 아무래도 무당이 될 팔자인 것 같아. 뭔가 보이고...느껴지는게 있거든 ? 그러
니 너희가 이런 날 좀 이해해줘. ”
심각한 표정으로 목소리까지 내리깔며 이렇게 말하는 성희를 보니 평소 그래도 어느정도 성희를 이해해주며 가까이 해주려던 친구들도 한동안은 그녀가 무서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성희는 학교에서 한동안 친구들이 무섭고 두려워 멀리하려해 왕따아닌 왕따를 당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고 (* 다만 ‘왕따’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생긴 것은 이때보다 훨씬뒤인 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고 이땐 그런 개념은 없었다.) 그런식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다 하루는 반 친구 하나가 이렇게 성희에게 다가왔었다.
“ 저어...성희야 ? ”
“ 왜 ? OO아 ? ”
“ 너 혹시 사주같은것도 볼줄 알아 ? ”
의도되지 않은 따돌림을 당하게 된 성희가 불쌍해져서인지 아니면 개인적 호기심이 발동해서인지 한 친구가 이렇게 다가온 것이다. 헌데 성희가 실제 틈틈이 그런 사주,관상같은것과 관련된 서책을 사본적이 있는것인지 – 용돈을 틈틈이 모아 구입하려 했다면 그 시절 구입해보기엔 그리 부담스러운 액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 아니면 (* 어머니의 엄명으로 이미 ‘다시는 그런데 안 찾아가겠다’고 약조를 한 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틈틈이 이름난 무당이나 보살을 찾아가서 직접 배우기라도 한것인지 실제 성희는 사주를 좀 볼줄 아는 듯 손가락을 헤아려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사주를 좀 봐달라고 의뢰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일복이 많다. 그리고 결혼은 20대 중,후반때쯤 한 대여섯살 많은 남자와 결혼하게
될 것 같아. ”
“ 정말 ? ”
일복(福)이 많다면 어쨌거나 학교졸업한뒤 무난히 취직해서 한 몇 년정도 직장생활하며 돈벌수 있다는 소리고, 또 그정도 나이에 좋은사람 만나 시집가게 된다면 그 시절 여성으로선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케이스다. 따라서 무난하고 순탄한 사주라는 판단을 했는지 친구는 화색이 되는 기분이었다. 헌데 성희의 표정은 심각했다.
“ 헌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 ”
“ 왜 ? 무슨 문제가 있는거야 ? ”
혹시 자신의 사주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싶어 불안해진 친구. 허나 그런뜻은 아니라는것인지 고개를 좌우로 흔든 성희. 헌데 순간 잠시 눈을 감아보며 참선이라도 하는듯한 자세를 취하던 성희가 갑자기 눈을 확 떴다. 그리고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이렇게 외쳤다.
“ 왕도 총맞아 죽어 !!! ”
“ 뭐...뭐라고 ??? ”
바로 얼마전 ‘육영수 여사 서거’를 맞춘적 있는 성희가 아니던가. 헌데 그런 성희의 입에서 또 이런말이 나오니 친구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성희가 설명이라도 해주듯 차분하게 말했다.
“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왕도 머잖아 총맞아 죽게될게야... ”
“ 서...성희야... ”
대통령을 거의 임금님과 동격으로 생각하던 시대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한 몇 년씩 임기제로 돌아가며 하는게 아니라 어느 특정인물이 평생 하는 것으로 알았던 그런 시대다. 헌데 그런 시대에 여고생 강성희의 입에서 이런말이 나오니 어찌 기겁할일이 아닐수 있겠는가. 성희는 마치 자신의 눈에 보이는 ‘다가올 미래’라도 있는 듯 뭔가 딱하고 안타깝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감정에 취한것인지 살짝 눈물짓기까지 하더니 거듭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 불쌍하신분... ”
“ 성희야, 왜그래 또 ? 도대체 누가 불쌍하다는건데 ? ”
“ 굶주리는 백성들 살려낸 공로로 한 오만년은 칭송받을 그럴 팔자이거늘...뭣하러
그리 욕심을 부리셨는고... ”
“ ...... ”
“ 욕심을 더 이상 부리지 않으셨으면 굶주리는 백성들 살려낸 공으로 오만년은 칭
송받을 그런 팔자인 것을... ”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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