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선문법사 이야기
여하튼 선문법사 조카일행 세명은 그렇게 이모를 만나러 온건지 수련대회에 참석하러 온것인지 그 성격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개회식과 오리엔테이션만 참가하고 밤늦은 시간에 차량으로 창원역까지 모셔드리겠다는 회관측 제안도 거절한채 걸어서 창원회관을 떠났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 물론 서울의 집까지야 창원역이든 터미널에서든 밤차를 타고 갔겠지만 – 애써 찾아온 조카들이 그렇게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바로 돌아가 버렸으니 이모인 선문법사 입장에서도 기분이 과히 좋지야 않았겠지만 그 불똥을 졸지에 윤서인이 맞았다.
“ 서인아, 니 빨리 안 일어나나 ? ”
윤서인은 어릴때부터 무슨 곡절이 있었는지 여하튼 창원회관에 맡겨져 길러지게 된 그런 청년인데,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도 선문법사가 서인을 종종 챙기는 것을 보니 선문법사를 윤서인의 어머니쯤 되나보다 그렇게 짐작하나본데 일단 사실관계는 그렇지 않다.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선문법사는 윤서인을 잘 챙긴다기보단 구박하는 경우가 눈에 더 자주 들어오는 그런 관계였다.
“ 니는 하여튼...청운회 애들도 다 수련대회 하고 그런때에 혼자 늦잠이나 자고 참
잘하는 짓이다. ”
사실 20대 초반인 윤서인도 연령상으론 청운회 청년부에 소속되어도 적당한 그런 나이이긴 했지만 대체로 청운회는 서인을 청운회원으로 쳐주지 않는 편이었다. 일단 창원회관 청년부 명단엔 윤서인이 등록되어 있긴 했지만 그런 창원회관의 청운회 조차도 윤서인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서인이 일반적으로 회관에서 하는일은 개별적으로 기도를 하러오는 청운회나 일반신자 혹은 성직자 또는 총무원 관계자들중에도 개인적 볼일로 창원시내에 나갈일이 있을 때 창원역이든 고속버스 터미널이든 시내의 백화점이나 기타 목적지든 그런곳까지 데려다주곤 하는 그런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일반 신자나 성직자들 중에는 그런 윤서인의 처지가 딱해서인지 적당히 용돈이라도 하라고 차비나 수고비조로 몇만원씩 쥐어주는 이들도 – 많게는 10만원까지도 받은적 있는 것으로 안다. - 있었고, 여하튼 그런식으로 어릴때부터 쭉 회관에서 생활해온 청년일뿐이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서인을 선문법사의 ‘아들’로 오인하게 된 것 같다. 허나 여하튼 일반적으로 목격되는 윤서인과 선문법사의 관계(?)는 대체로 선문법사가 서인을 이런저런 이유로 구박하는 경우가 다 많았다.
“ 니는 참...어제도 그리 중요한 손님이 오셨다갔는데 차로 모셔다드릴 생각도 않고
쿨쿨 자빠져 잠이나 자고... ”
“ 내가 무슨...내가 언제 잤다고 그래요 ? ”
“ 그럼 니가 간밤에 안 잤나 ? ”
지금 선문법사가 언급한 ‘간밤에 왔던 중요한 손님’이 바로 자신의 조카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그녀가 서인을 이런식으로 구박하는 것 역시 좀 적절치 않은 면이 있다. 오히려 선문법사 입장에서 안그래도 대진교 청운회 집회에 처음 참석해본 인상이 잔뜩이나 안 좋았던 것 같고, 그래서 이미 늦은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돌아가겠다는 조카아이들을 그러잖아도 얼굴도 험상궂고 게다가 출신이나 배경도 분명치 않은 그런 ‘남자’가 운전하는 봉고차를 20대 초반의 젊은여성 세명이 타고가게 한다면 그럼 더 불안하고 무서워하고 의심도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애초부터 윤서인은 배제하고 다른 총무원의 젊은 20대 여성교사 두명에게 차량운전을 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 아닌가. 헌데 자신이 처음부터 윤서인을 배제하고 그런식으로 조카들 보내는일을 처리했으면서 그 사안과 전혀 관련없는 서인을 마치 자신의 조카들이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버린 것이 윤서인 탓이기라도 한것처럼 이렇게 구박하는 것이다. 윤서인의 성정이 아무리 착하다 할지라도 화가나지 않을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 밤에야 잤죠. 아니, 근데 대체 무슨일이 있기에 나한테 그러는건데요 ? ”
“ 참...저렇게 아직도 정신 몬차리고...니가 여기서 해야할일이 아직 무엇인지 모리
나. 니가 여기서 밥값을 제대로 하려면 뭘 해야하는지 그걸 아직 그리도 몰라 ? ”
“ 저...전 그냥 기도하러 온 사람들 돌아갈 때 창원역까지 데려다주는게 제 일이잖
아요. ”
“ 그러니까 말이다. 일을 똑바로 해야 밥을 먹을거 아니가 !!! ”
“ 아니 도대체... ”
일단 윤서인은 근본적으로 청운회 수련회에 참석하는 사람도 아니고 종단의 일반 행사나 돌아가는 분위기 자체에도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청운회 수련회에 (다른 친구가 되었든 친척이나 동료가 되었든간에) 누군가의 추천이나 권유로 처음 참석한 회원이 바로 돌아가버렸든 아니면 선문법사를 찾으러 온 손님들이 그냥 돌아간일이든 그런 어제 오후 늦게부터 밤까지 있던 상황은 전혀 인지할 수가 없다. - 게다가 애초부터 선문법사는 그 시간에 방에 있는 서인을 아예 사무실로 부르지도 않았다. - 헌데 그래놓고서 마치 자신의 조카들이 그냥 돌아가버린 것이 마치 서인의 탓이기라도 한양 이렇게 구박을 하다니. 소위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가서 눈흘기는 경우’도 이 정도까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허나 여전히 억울해하는 눈빛의 서인을 선문법사는 더욱 닦달을 해댈뿐이다.
“ 뭘로 밥값 해야하는지를 알면...빨리 아침부터 차 운전 몬하나...OO부인과 OO도인
오늘 기도마치고 댁으로 돌아가신다 안하나 !!! ”
(* 대진교에서 청운회가 아닌 일반 성인 신자들끼리 서로 부르는 명칭은 남자는 ‘도인(道人)
’이고 여자는 부인(婦人)이다. 일반적으로 입교(入敎)시 종단에서 지어주는 아호(雅號)를 따
서 ‘OO부인’,‘OO도인’ 이런식으로 부른다.)
어쨌든 그날도 기도를 마치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시는 일반신자 두분이 있으니 그분들을 봉고차로 창원역(혹은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라는 선문법사의 엄명. 어느분의 명이라고 감히 천하의 윤서인이 거절하겠는가. 더 이상 군소리 없이 자기방에서 열쇠를 가져와 자신이 운행해야하는 봉고차로 향한다.
선문법사와 윤서인간의 관계가 대충 이래서인지 나중에 종단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개 자연스럽게 둘을 모자간으로 오해한 것이다. 가령 윤준식보다 한 2년늦게 대진교 총무원에서 보직을 받고 교사(敎師)가 된 어떤이도 이렇게 물었다.
“ 그...윤서인이란 도인은 그럼 선문법사님 아드님이신거에요 ? ”
“ 아니에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알았는데...아니더라구요. ”
“ 아니 전 두분이 함께 계시면서 이야기하는게 딱...누가봐도 엄마랑 아들이 이야기
나누는 그런 분위기라서 전 두분이 그런줄만 알고 있었는데... ”
“ 하하...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았어요. - 저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도 여기 처음
왔을땐 두 사람 사이를 다 그렇게 오해하더라구요. - 헌데 아니었어요. 그냥 뭐 무
슨 알지못할 속사정이 있는것인지는 저도 자세히 알수는 없어도...여하튼 어릴때부
터 그냥 대진교 회관에서 길러진 그런 사람일뿐...여하튼 저도 그 이상의 정확한 속
사정은 아는바가 없어요. ”
윤준식보다는 한 2년여 늦게 총무원에서 보직을 받은 그런 후배격이되는 사람이긴 하지만 대학도 나오고 군대까지 다녀와 나이는 준식보다 오히려 몇 살 많은 사람이기에 대화는 보통 그런식으로 이루어졌고 여하튼 일반적으로 다른 성직자든 일반 신자든 총무원 관계자든 처음엔 윤서인과 선문법사가 모자간인 것으로 오해했다가 시간이 지난뒤에 자연스럽게 사실이 아니고 자신이 잘못안 것으로 알게되는 늘상 그런식이었다.
청운회나 총무원의 젊은 교사들에게 대체로 잘해주는 편이었고, 그리고 어릴때부터 창원회관에서 길러졌다는 윤서인과는 남들이 볼때는 모자간으로 오해할정도로 그렇고 그런 일들이 많았고, 원래는 10대 시절부터 무당이 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못하고 후천개벽과 한반도에서 5만년동안 인류를 구원할 대철학이 나온다는 핵심교리로 출발한 ‘대진교’에서 초창기부터 창원회관장을 역임 법사와 순도사의 지위에까지 있었던 그 선문법사 강성희. 그러나 윤준식과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편이었는지 오히려 애증이 좀 교차하는 사이였던 그 선문법사도 여하튼 어느새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막상 그렇게 선문법사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문상까지 다녀오니 여러 가지로 심란했던것일까. 간밤에 술까지 한잔하고 잠이들었다가 날이 밝아서 깬 준식은 술기운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인지 한동안 망연자실하게 자기집 창가에서 바깥경치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밤에 마신 술 탓인지 아침은 별로 들 기분이 아니라 대충 세수만 하고 산책삼아 밖으로 나가보는 준식. 준식은 바로 이 서울의 위성도시인 OO시에 있는 4층짜리 서민형 빌라 세채의 건물주로 있는 몸이니 바로 그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세채의 건물을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니 아침일찍 출근을 한다거나 그럴일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냥 바람이나 쐬며 정신이나 좀 맑게 하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빌라 밖으로 나왔을때쯤 어제 밤늦게 귀가할 때 잠시 마주친 그 101호 여고생과 또다시 마주쳤다. 사실 간밤에 그 담배피우는 학생의 문제 때문에 핀잔을 주기도 했던 준식인데, 그걸 생각하면 자존심 강할 사춘기 여고생 나이인 그 소녀로선 그 간밤의 상처때문에도 준식을 별로 대하고 싶어하지 않을텐데 오히려 뜻밖에도 여학생은 준식을 보며 밝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아저씨 ? ”
“ 어...어 그래. 간밤에 잘 잤니 ? ”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평상시 그다지 좋은 이미지로 느껴진 여학생도 아니건만 – 이따금씩 빌라 앞마당에 나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학교는 정상적으로 다니지 않는지 대낮에 인근 골목을 서성이는것도 자주 눈에 띈 그런 여학생이기도 하다. - 결국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게된 준식. 그래서 기왕 다시 아침부터 마주친 마당에 평상시 궁금했던 그런것이나 좀 묻고자 말을 건넸다.
“ 넌 근데 학교 안가냐 ? ”
“ 학교...요... ? ”
일단 당황한 기색은 아닌 듯 살짝 그 말을 곱씹어보는 여학생. 그렇더라도 사실대로 답하기는 뭔가 난감한 무엇이 있기라도 한것인지 말은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한번 준식이 지레짐작삼아 이렇게 묻기도 한다.
“ 아니면...요즘 그 코로난가 뭔가 그것 때문에 학교 안 가는거야 ? 하지만 그렇더
라도 비대면수업은 할거아냐 ? ”
그렇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비대면수업’이라면 어쨌든 수업은 진행되는 것이다. 집에서 인터넷 영상을 통해 수업을 받는 방식이라도 수업을 듣긴 들어야 하는법. 하긴 지금이 아직 이르다면 이른 시간이니 등교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비대면 수업을 하는 학생이라면 아직은 수업시간이 되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는 그런 한가한 시간이긴 할 것이다. 여하튼 한번 학생이 민망해할까봐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물은것인데 의외로 학생은 또렷하게 대답한다.
“ 전 그런거 몰라요. ”
그런거 모르다니. 그럼 정말 학교에 아예 안가는 학생이란것인지. 아니면 어떤 개인사정 때문에 휴학이라도 한것인지. 하지만 그런 문제를 아무리 같은 빌라내 – 그것도 자신이 관리하는 빌라 – 이웃주민일지라도 요즘은 그런 문제를 너무 자주 캐묻는것도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더는 캐묻지 않으려하는데, 대신에 다른 궁금한걸 물어보려 한다.
“ 헌데...참...학생 이름은 어떻게되나 ? ”
“ 이름...이요 ? ”
‘그런건 갑자기 왜 묻느냐 ?’는듯한 표정으로 또렷한 눈빛으로 준식을 바라보며 묻는 101호 여학생. 그 강렬한 눈빛에 순간 준식이 당황할 지경인데 일단 이렇게 이유는 설명하긴 한다.
“ 아니, 그래도 한 빌라에 살면서...초면도 아니고 자주 봤다면 자주 본 사인데...이
름이라도 알면 좋을거 같아서. ”
“ 세아...에요. ”
“ 세아 ? ”
언뜻 그런 이름이 있나 좀 의아하긴 했다. 자신이 발음을 잘못 들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단 ‘세’자가 들어가는 여성이라면 ‘세희’같은 이름도 있고 신세경이란 탈렌트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성은 모르더라도 세아라면 여성으로선 그런대로 어울리고 이쁜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충 한번 고개를 끄덕여보는 준식. 헌데 준식이 묻지도 않은 것을 세아가 굳이 보충설명삼아 답해주기까지 한다.
“ 성은 좀 특이해요. 소위 말하는 희귀성이거든요. ”
“ 희귀성이라고 ? ”
그런 성을 가졌다면 자존심 강한 사춘기 여학생이 아니라 일반 남자 성인이라도 무안해서 잘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헌데 ‘희귀성’이라고 스스로 밝힌 세아는 준식이 궁금해할것이라 지레짐작이라도 하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한다.
“ 단(端)씨에요. ”
“ 단씨라구 ? ”
순간 우리나라에 그런 성이 있기나 했나 확실치가 않아 당혹스러워질 지경인 준식. 무엇보다 어릴때부터 지리나 지명 혹은 성씨 이런데 관심이 많았던데다 사람이름 잘 기억하기로 유명한 그런 윤준식임을 생각하면 그런 준식에게조차 생소한 성씨인걸 보면 정말 희귀성인 것은 분명하다. 얼핏 준식은 기억을 더듬어 연예인이든 유명인사든 그런 사람중에 그런 성씨가 있었나 한번 기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학교동창이든 대진교에 있을 때 만난 그곳 청운회나 성직자,관계자든 혹은 이후 하이텔 기독교 동아리에서 어울렸던 그런 회원의 이름이든 그런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기나 했는지 최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려 노력한다. 허나 그런 사람들 이름중에도 없었던 것 같은 성씨인 단씨. 그러니 준식한테조차 희귀한 성이면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그런 성씨인것만은 분명하다. 얼핏 생각에 홍콩영화배우 이름중에 단씨성일 가진 배우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조차 확실치는 없다. 여하튼 중국에는 우리나라엔 잘 없는 그런 성씨도 많이 있다는 것을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중국 고전소설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수 있을것이고 여하튼 성은 단이요 이름은 세아. 사실 세아란 이름 자체는 이뻤는데 성과 붙여서 다시 그 이름을 되뇌어보니 굳이 웃기거나 특이한 이름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괜시리 어감이나 느낌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긴 한다. 그래서 한번 피식 웃어보이는 준식. 여하튼 그렇게 이따금이라도 마주치는 빌라내 주민 사이라서일까. 피차 무료한차에 말동무나 삼자는 생각이 들었는지 인근 편의점에서 음료수라도 하나 사 마시며 두 사람의 대화는 좀 더 이어지게 된다.
“ 근데 아저씨. ”
“ 왜 ? 세아야. ”
“ 건물주가 요즘은 그렇게 돈 많이 번다면서요 ? ”
“ 뭐어 ? 누가그래 ? ”
일단 세아도 준식이 자신이 사는 빌라 건물주라는 것은 알고 있다. 월세같은 것을 받으러 집에 들렀을 때 그녀를 본적도 있고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자신이 이 집에 대해 새로 들어온 입주민 가정에게 설명을 해줄때도 세아를 보긴 했을 것 아닌가. 아마 기억에 세아네 가족이 101호에 들어와 산 것은 대충 1년여전 같은데 보아하니 세아는 아버지는 없는 것 같고 어머니와 함께 그렇게 단둘이 사는 듯 했다. 여하튼 준식이 건물주인 것을 아는 세아라서인지 그녀도 새삼 그런데 호기심이 생기는지 그와같이 묻고 그러자 준식이 탄식삼아 이렇게 묻는다.
“ 아니에요 그런건...아무리 요즘 경제도 어렵고 취직도 안 되는 세상이라도 그렇지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한건진 모르겠지만...건물주도...정말 강남에 삐까번쩍한 건물
이라도 한두채 보유하고 있는경우라면 모를까. 아저씨처럼 그저 이런데서 서민형
빌라나 한두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생각보다 그렇게 영양가 없어요. ”
“ 그래도 어쨌든 경제적 여유는 있는거잖아요. ”
어린 여학생 세아의 눈에도 준식이 괜한 겸손함에 그리 말하는것처럼 들려서일까. 그와같이 대꾸하고 있고 준식은 그야말로 친절한 선생님같은 아저씨처럼 열심을 담아 어린 학생에게 설명을 해준다.
“ 그렇지도 않대두 그러네. 건물이 되었든 빌딩이 되었든 그런건 근본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자산. - 그런걸 부동산(不動産)이라고 하는거에요. - 바로 현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그런 재산이 아니에요. - 막말로 집팔아서 소주사고 콩나물사고 그럴수는
없는일 아닌가. - 그리고 임대료든 월세든 그런것도 받고나서 세금내고 또 수도나
전기,가스 이런거 고칠 때 그럴때마다 일일이 수리비 나가고 그런 문제들 생각해보
면...건물주도 생각보다 남는거 별로 없어요. 뭐 굳이 따지자면 요즘처럼 다들 힘들
때 길거리에 나앉지않고 자신이 먹고자고 할 수 있는 거처도 있고 그것도 모자라
남들한테 월세라도 받아먹을수 있는 그런 자리가 또 어디겠냐만...여하튼 건물주도
알고보면 생각보다 별볼일 없는 위치에요. ”
경제도 어렵고 취직도 쉽지 않아지면서 차라리 건물이나 빌딩이라도 하나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가 낫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자조와 푸념섞인 말이 나오기 시작한지 꽤 되긴 하였지만 실제 아버지로부터 빌라 세채를 물려받은 준식의 그와같은 현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세아라는 여학생도 현실을 깨닫기는 했는지 좀 풀이죽은 느낌이다. 다만 그녀도 그녀대로 궁금한게 더 생기긴 했는지 준식에게 이와같이 묻는다.
“ 근데 아저씬 그럼 이 빌라 처음 생겼을때부터 쭉 건물주셨던거에요 ? ”
“ 아니, 그런건 아니고... ”
1년여전부터 엄마와 단둘이 101호에 월세로 들어와 살고있는 세아라서인지 그저 막연히 그렇게 생각한 듯. 따라서 준식이 그건 아니라면서 자신의 가정사를 곁들여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 원래 아버지가 대기업에서 30년 넘게 임원을 하시면서 틈틈이 주식투자하며 모으
신 돈으로 산게 이 건물이야. 뭐 굳이 따지자면...하나밖에 없는 못난아들 훗날이
걱정되어서 이런걸 미리 준비를 해 놓으셨던셈이지. 하지만 이 빌라는 그전부터 있
던 건물을 우리 아버지가 구입하신 셈이고 처음 한 10년은 그래서 아버지가 건물주
셨고 난 그 아버지 밑에서 건물 관리하는 일을 배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그때부
터 뒤를 이어 이걸 물려받아 관리를 해온셈이지. 그러니 실제 건물주가 된지는 한
10년이 좀 넘는다고나 할까. ”
“ 아, 그러시구나. ”
준식의 내력을 대충 알게된 세아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리고는 다른 궁금증이 생겼는지 다시 준식에게 묻는다.
“ 그럼 건물주 하시기전엔 다른걸 하셨던거에요 ? ”
그러고보니 현재 고등학생(?)인 세아는 준식의 나이를 어찌 가늠하고 있을까. 여하튼 준식의 아버지기 이 빌라를 구입한게 20년전일이고 그 아버지가 10년전에 돌아가시고 그 뒤를 이어 빌라를 관리해온것이라면, 과연 세아 입장에서 준식의 나이를 가늠할수 있을까 ? 일단 세아는 무슨 짐작을 어떻게 했는지 이렇게 묻는다.
“ 대학 졸업하신뒤 그럼 바로 건물주가 되신거에요 ? 아니면 어떻게... ”
“ 아...하하하...그런건 아니고... ”
그러고보면 세아는 아직 준식의 나이가 가늠이 안되는게 분명해보인다. 준식의 아버지가 이 빌라를 구입한게 20년전 준식이 물려받은게 10년전일이라면 비단 세아뿐만 아니라 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그런 준식의 나이를 어떻게 가늠하게 될까. 헌데 그런 문제보다는 준식은 이런 세아에게 자신의 전력이나 과거를 어찌 설명하는게 좋을지가 좀 난감해졌다. 일단 아직 나이도 어리고 세상물정도 모를 것 같은 어린 학생에게 그런 군소규모 종단에 잠시나마 몸담고 일했던 자신의 젊은시절을 굳이 말하고 싶지가 않다.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준식에게 소위 ‘흑역사(黑歷史)’가 되는셈인데, 그런일을 그것도 아직 잘 아는 사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린 여학생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을까. 사실 준식 입장에선 굳이 밝혀야하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한 웬만하면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20대 시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살짝 이렇게 말을 돌린다.
“ 사실 아저씨는...20대 시절을 좀 유별나게 보냈어. ”
“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 ”
헌데 말을 이와같이 할진대는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최소한 20대는 지난 사람이란 것이 짐작은 될터. 일단 준식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실은 그때 내가 하고싶었던게 두가지가 있었어. ”
“ 어떤걸 하고 싶으셨는데요 ? ”
“ 사실은 삼국지를 드라마로 한번 재구성,집필해보고 싶었고(* 일종의 대하사극 같
은 형식으로) 그리고도 시간이나면 근현대사 드라마란걸 한번 집필해보자 그런 생
각을 해봤었지. ”
“ 작가셨던거에요 그러면 ? ”
중국의 저 유명한 고전소설 삼국지연의를 드라마로 써보고 싶었다던가 또는 근현대사 드라마를 써보고 싶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어린 여학생 세아는 과연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까. 다만 그 말하는 것으로 봐서 자연스레 그런 지레짐작이 들긴 하는데 일단 준식은 해명삼아 손을 내저으며 이와같이 말한다.
“ 아...하하하...실은 그런건 아니에요. 솔직히 작가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굳이 부인하진 않겠지만 현역으로 데뷔하진 못했어요. 뭐 어쩌겠나...그건...방송
국에서 나같은 못난 사람은 필요로하지 않는지 안 받아주는 것을... ”
“ 그런데 어떻게... ”
무슨 삼국지 드라마를 써보고 싶었다느니 근현대사 드라마를 써보고 싶었다느니 그러더니 정작 현역으로 데뷔한 작가는 아니라는 소리. 세아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이해못할 소리긴 하다. 허나 대하소설이 되었던 대하드라마가 되었던 방송국에서 안 받아주더라도 쓰는거야 당사자가 결심하기에 달린문제다. 따라서 그걸 따지는건 굳이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다만 준식은 어린 세아에게 제대로 이해가 가도록 설명을 덧붙여준다.
“ 어릴때부터 삼국지 매니아기도 했지만...사실 삼국지연의는 그 자체가 고전이고 하
다보니...그걸 집필한 작가바다 해석하는 방식이 저마다 달라요. - 번역하곤 또 다
른 문제가 되는거니까. - 가령 박종화 삼국지라던가 이문열 삼국지 혹은 황석영 삼
국지...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역사와 인물에 대한 해석등 저마다 다 차이가
나기 마련이거든. 게다가 거슬러올라가면 일본작가 요시가와 에이지가 쓴 그런 삼
국지도 있고말야. 그러니... ”
“ ...... ”
“ 나도 한때나마 그런 생각을 해봤다는 이야기지. 그냥...나만의 독창적인 해석과 스
토리가 들어간 새로운 삼국지를 엮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뭐 20대때 잠시 해
봤던 좀 허망한 생각이긴 했지만... ”
세아가 이런 준식의 말을 어찌 이해할련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군소규모 종교단체에 가담한 전력을 굳이 숨기며 20대 시절을 이와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선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나름의 시각으로 공정하게 해석한 그런 드라마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 그게 어찌되었거나 준식이 20대때 잠시나마 해본 생각이었다는 소리다. 허나 어쨌든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최소한 20대는 넘은 사람이란 소리 아닌가. 그래서일까. 세아가 지레짐작에 이렇게 묻는다.
“ 아저씨 그러면 연세가 지금...혹시 40대 ? ”
“ 40대 ? 그리보였나 ? ”
어린 여학생 세아가 보기엔 준식이 지금 이 빌라의 건물주가 된 내력 그리고 20대때를 어찌 보냈는지 그런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그런식으로 지레짐작이 된 듯 하다. 허나 비단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어느정도 나이가들면 자신의 나이를 사실대로 밝히는게 좀 자존심이 상하는것일까. 세아의 궁금함에 바로 답은 해주지 않고 말을 망설이고 있는데 그런 준식을 보며 세아가 이렇게 묻는다.
“ 설마...우리 엄마보다도 연세가 더 많으신건 아니겠죠 ? ”
순간 준식의 가슴이 ‘쿵’하고 울렸다. 어쨌거나 이미 나이 40대 후반에 이른 준식이 자신이 이미 ‘나이가 많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결혼이나 연애쪽으로는 아무래도 운이나 인연이 닿지 않아서 지금껏 장가를 못가고 혼자 살고있긴 하지만 만약 대략 20대 후반 –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였을 90년대 후반 – 2천년대 초반 정도에 정상적으로 결혼을 했다면 고등학생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대학생이 된 자녀가 있을수도 있는 그런 나이가 이미 된 것 아닌가. 그러니 고등학생 – 실제 학교를 현재 다니고 있는것인지는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 세아의 어머니가 자신보다도 젊은 여성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자신이 과연 세아에게 나이를 제대로 밝히는게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그게 쉽게 예측이 되지않아 말을 망설이는 준식. 그러자 세아가 살짝 풀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 저...너무 나이많은 사람은 별론데... ”
헌데 이런식으로 말하는것도 따지고보면 좀 어이없는 소리다. 준식이 무슨 세아에게 사귀자고 한것도 아니고 피차 아침에 무료한 처지고 빌라 주인인 준식은 301호에 살로 세아가 101호에 사는 처지에 가끔 이렇게 빌라 입구에서 마주치곤 하던 그런 사이에 잠시 이야기나 나눠보자는 생각으로 이렇게 편의점 앞 테이블에 함께하게 된 것 아닌가. 그러니 준식이 나이가 많건 젊건 세아가 그런 것을 굳이 신경을 쓴다는것도 좀 어이없다면 어이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그런 세아를 보다 공연히 착잡해진 준식이 이렇게 답을 해주긴 한다.
“ 뭐 어쨌든...세아양 어머니와 대충 비슷한 나이일수는 있어요 어쩌면... ”
그렇게 세아 어머니의 나이도 불학실한 상황에서 이렇게 덤덤하게 말해주는 준식. 세아가 살짝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준식이 그런 세아를 말없이 바라본다.
- 5회에 계속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