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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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선문법사 이야기 

 


 접대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유가족인 강성희의 언니 강은희가 준식등의 일행에게 다가왔다. 사실 선문법사의 유가족이야 회관 관계자들과는 예전에 무슨 교류가 있었을 사람들은 아니다. 허나 그래도 동생의 죽음에 문상을 와준데 대한 고마운 인사라도 다시 전하고 그리고 동생이 이후 어찌 지냈는지라도 알려줄 의무를 느꼈음인지 다시금 다가와 잠시 그녀와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갖게된 것이다. 먼저 준식이 이와같이 물었다. 

 “ 강성희 여사님께선 그럼 이후 쭉 언니분과 같이 사신건가요 ? ” 

 선문법사니 회관장이니 하던 회관에서 쓰던 호칭을 (기독교인이기도 하다는) 선문법사의 유가족들에게 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을 했는지 일단 그와같이 호칭을 하고있는 준식. 은희가 착잡한 심경으로 답을 한다. 

 “ 사는건 저 혼자 따로 살긴 했죠. 여하튼...그렇게 몸이 불편해져서 한 10여년전에 

  회관인지 뭔지 거기서 나온뒤에... ” 

 준식은 이미 김철규로부터 예전 법사나 순도사님들 상당수는 지금 돌아가셨거나 회관을 떠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다. 고령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그렇다치고 그동안 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예전 사람들이 다 나갔다는 이야긴지. 허나 여하튼 선문법사도 그런 종류의 불화로 회관을 떠났으면서 정작 자기 가족들에겐 회관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싶진 않아서인지(* 종단 관계자들은 그런 대외 이미지를 보통 신비성(神祕性)이라고 표현한다. - 보통 ‘신비성 떨어지는 언행 삼가라’는 식으로 말한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신비주의 컨셉’이 되는셈) 여하튼 자신이 나이도 들고 몸도 불편해 그런 개인 신병문제로 회관일을 그만두었다는식으로 말한 듯 하다. 여하튼 그러니 선문법사도 신규 관계자들과의 불화로 회관을 나왔으면서 되려 그런 내막은 밝히지 않음으로써 종단과의 의리는 지킨셈. - 하긴 어떻게보면 애초부터 가족들에겐 자신이 무슨 순도사나 창원회관장 같은 종단 고위 핵심직을 맡고있지 않고 말단에서 허드렛일이나 좀 생계수단삼아 돕고있는것처럼 알려지게 한 것을 보면 차라리 그렇게 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을수도 있겠다. 강은희는 성희의 이후 생활에 대해 아는대로 대충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다. 

 “ 그 이후엔 택시기사라던가 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나봅니다. 하지만 

  원래 몸이 약한 아이라서인지 이렇게 나이 60을 좀 넘겨 세상을 떠나고 말았네요 

  . ” 

 기억에 90년대의 선문법사는 그렇게까지 허약한 몸은 아니었다. 키나 체구는 좀 마르고 작은편에 속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좀 더 강단있어 보이는 이미지이긴 했어도 ‘병약하다’던가 그런쪽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다만 언니 입장에선 어릴때부터 이미 학업을 포기하고 무당이 되겠다고 설쳐대던 동생이 ‘몸이 약했던 아이’처럼 느껴졌나보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백세시대’ 소리 나오는 시대에 나이 60을 조금 넘겨 자신의 언니들보다도 먼저 세상을 등진 선문법사. 준식은 물론 문상을 온 다른 옛 청운동지 출신 김철규,박성호,이종태등도 다시금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힌다. 

 “ 여하튼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어렵게 찾아오신 자리실텐데... ” 

 종교문제야 어찌되었든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이나 동료가 세상을 떠났을때는 한번쯤 인사정도는 가주는게 비단 이 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상 대다수 웬만한 나라들의 상식이고 도리이리라. 허나 여하튼 그런 문상자리에서 종교가 다른 이들끼리는 간간히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질수도 있기 때문에 좀 망설이는 경우도 이따금 있다. 헌데 이미 선문법사가 회관을 떠난지가 이미 10년 이상이 지났는데 그때 동생을 알고 지냈을 관계자들이 이렇게 찾아와준것에 유가족인 언니가 이렇게 감사함을 다시금 표하는 것이다. 준식은 김철규,이종태등과 조용히 병원을 나왔다. 

 “ 저기... ”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웠는지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간식삼아 햄버거랑 음료수라도 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다. 여하튼 이들도 서로 실로 20여년만의 재회가 되는 옛 청운동지들이 아니던가. 헌데 김철규가 끝내 뭔가 아쉬운 뭔가가 남는지 이렇게 말한다. 

 “ 윤서인씨한테도 연락을 취해봤어야 했던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 

 그 이름이 김철규에게서 언급이 되자 비단 윤준식뿐만 아니라 박성호나 이종태도 잠시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 박성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서인이가 지금 연락이 되겠나. 그 아도 이미 회관 떠난지가 20년이 넘는데... ” 

 “ 그건 저도 알아요. ” 

 윤서인은 청운동지로 봐야하는지 좀 애매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긴 했는데, 일단 청운회원이나 또는 종단에서 법사나 교사같은 어떤 성직을 맡거나 총무원이나 회관에서 어떤 보직을 받고 일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대다수 그 당시 회관 관계자들이 알고 있기로는 윤서인은 그냥 어릴때부터 회관에 맡겨져 길러진 그런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 헌데 서인의 나이 역시 준식이나 이종태등과 다를바 없는 70년대 초반 태생으로 대진교가 공식 창단된게 80년대 중반의 일이고(* 종단 공식 교리집에는 상원(上元) 갑자년(甲子年 : 서기 1984년)에 천문(天門)이 열려 대진교가 처음 생겼다고 표현하고 있다.) 창원회관이 만들어진게 종단이 설립되고 대략 1-2년 정도가 지난뒤의 일이라 했으니 70년대 초반 태생인 윤서인이 어릴때부터 ‘회관에 맡겨져 길러졌다’는 것은 정황상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여하튼 무슨 곡절이 있어 대진교 법사든 순도사든 그런 사람이 어릴때부터 길러온것만은 확실한 듯 한데, 일단 이후(* 대략 80년대 후반 이후)에 대진교 청운회든 성직자든 이런식으로 가담하게 된 이들의 상당수는 윤서인을 선문법사의 양자(養子)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헌데 실제로 윤서인이 선문법사를 ‘엄마’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선문법사 입장에선 그런대로 대하기를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마치 ‘아들을 대하는 엄마’처럼 윤서인을 대해온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헌데 어쨌든 그 윤서인도 대략 90년대 중,후반경 대진교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역시 지금 연락이 닿기는 쉽지 않은셈. 이종태가 침착하게 그 불가능함을 설명한다. 

 “ 지금...서인이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연락이나 되겠어 ? 또 연락이 닿는 

  다 하더라도...지금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판에 서울에 법사님 영안실까지 문상하러 

  오기도...시간상으로 쉽지 않고... ” 

 어쨌거나 이들이 선문법사 별세소식을 전해받은 것이 당일인 어제 저녁이나 밤의 일이다. 그리고 다음날인 이날 점심때 서로 만나서 문상을 하고 그곳에서 식사를 한뒤 나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있는것이니 시간이 이미 대충 오후 두시도 넘어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 어떻게든 윤서인에게 연락을 취해 그래도 ‘어머니같은 존재였던(* 실제로는 사실관계가 다를수도 있지만)’ 선문법사에게 한번쯤 인사를 드리러 오라는 말을 하고 그래서 그 서인이가 늦어도 오늘밤이나 하다못해 내일 발인전까지만이라도 도착하게 하는 것. 굳이 신경을 써서 하자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도 같지만 박성호도 이종태도 사실상 쉽지 않을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연락이 닿는 옛 청운회 멤버 몇몇에게 바로 연락을 취해보긴 했지만 이들 역시 지금 윤서인의 행방이나 소식은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을 전해왔다. 선문법사에게 양자와도 같은 존재였던 윤서인. 그가 강성희 여사의 부음소식에 문상을 하러 온다는 것은 이렇게 사실상 불가능해져버린 것이다. 

 


 김철규등과 다른 이런저런 이야기등을 좀 더 나누다가 헤어진게 대략 오후 3시를 넘겼을때쯤이고 문상을 갔던 서울 강서지역의 종합병원에서 준식의 빌라가 소재하고 있는 서울 남서부쪽에 있는 위성도시(대략 광명이나 시흥정도)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에도 준식은 밤늦게야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이렇게된 것을 보면 막상 그렇게 선문법사의 부음소식을 접하고 문상까지 다녀오고는 여러 가지로 심경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것만은 분명해보인다. 혼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다 이제야 도착한것인지 밤늦게야 자신의 빌라로 도착한 준식. 마침 그때 웬 여학생 하나가 빌라 입구쪽 앞 마당에 혼자 서성대는 것이 보였다. 준식이 전혀 모르는 학생은 아니다. 아마 101호에 사는 여학생으로 알고있고 준식의 거처가 301호이니 그 두층아래 사는 학생인 셈. 101호에 이사온지는 한 1년여정도 된걸로 아는데, 다만 학교는 다니지 않는지 낮에 할 일없이 빌라 근처 여기저기를 공연히 왔다갔다 하는게 눈에 띄기도 한 그런 여학생이다. 여하튼 면식이 전혀 없는 사이가 아니라서인지 학생이 준식을 바라보자 공연히 씨익 웃어보이며 인사를 건넨다. 

 “ 어디 다녀오시나봐요 ?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 ” 

 허나 여러 가지로 속이 편치못한 준식이라서인지 시큰둥하게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 아저씨 지금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하거든. 너랑 농담따먹기나 할 기분 아니니 

  가만히 놓아다오. ” 

 그리고는 자기집으로 올라가기 위해 빌라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그러고보니 101호 여학생이 피고있던 담배가 눈에 거슬렸는지 기어이 한마디 한다. 

 “ 야, 너 그리고 그 담배꽁초좀 화단에 함부로 버리지 마 !!! 나중에 치우는 사람도  

  좀 생각해줘야지. 나 원...나이든 노인네같으면 옛날 사람이니 분리수거나 이런 개 

  념이 없어서 그렇다 치지만...도대체가 젊은 기집애가 왜 그래 진짜 ? 도대체가 내 

  빌라 앞마당에서 뻔히 담배피우는걸 알고도 적당히 못본척 넘어가줬으면...어린 기 

  집애가 좀 알아서 기는맛이 있어야지. ” 

 안그래도 이따금씩 그렇게 빌라 앞마당에서 담배를 피운뒤 대충 화단에 내던지고 돌아가는게 눈에 거슬렸는데, 잔뜩이나 심경도 복잡한 판이라 101호 학생의 그런 모습이 기어이 트집거리가 되고야 만 것이다. 허나 준식의 현재 복잡한 심리를 알리없는 101호 여학생은 ‘칫~! 괜히 나만갖고 그래’ 그런 심정으로 뾰루퉁해져서 괜시리 입술을 삐죽 내밀기까지 한다. 여하튼 그 학생과 길게 입씨름이나 말장난할 심경이 아니라서 바로 자신의 거처로 올라가버린 준식. 자기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서도 방에 혼자 한동안 털썩 주저앉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창원회관에 기도하러오는 청운회원이나 총무원(대진교 총무원 소재지는 여러차례 창원과 인천을 왔다갔다 했고 서울에 별도 사무실을 두었던적도 있다.) 국장급의 보직을 맡고 있는 젊은 교사들에게 대체로 잘해주던 선문법사이긴 했지만 준식과는 사이가 그리 좋았던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애증이 교차하던 그런 관계였다고나 할까. 그랬던 사이인데 준식이 이미 대진교를 떠난지 어느덧 24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나중엔 그 창원회관장마저 대진교와 결별하고 속가에서 개인 생계에 전념하다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경이 복잡해 잠을 이루지 못하면 준식은 보통 인근 편의점에서 술이라도 한두병 사 마시다 잠드는게 습관인데, 허나 오늘만큼은 하필 101호 여학생이 아까 담배도 피우고 있어서 그걸 핀잔까지 주고 들어간판에 바로 술을 사러 나가기도 뭣해 적당히 방안에서 TV라도 보며 시간을 좀 보내다가 ‘지금쯤 101호 학생이 들어갔으려니’ 싶을때쯤 나와서 술을 사러갔다. 

 준식이 대진교 청운회와 인연을 맺은 것이 고등학교때인 80년대 후반의 일이긴 하지만 ‘나도 한번 총무원으로 들어가볼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략 1년여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의 일이다. 허나 이제와서 새삼 본질을 따지면 애초부터 준식이 그런길을 택한 것은 준식이 뭔가 판단이나 이해를 잘못한 면도 있고 어떻게보면 대진교에 그런 소위 성직자니 혹은 총무원의 무슨 국장이니 부장이니 그런 보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과는 가는길이나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던 셈이다. 

 애초 준식은 그런 종교단체에 몸담아 일한다는게 출가(出家)나 득도(得道)같은 소위 수행(修行)의 길임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사춘기때 책을 잘못읽은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준식은 원래 대략 초등학교 5,6학년때부터 삼국지니 초한지니 하는 중국고전이나 ‘조선왕조 500년’ 같은 역사소설 혹은 ‘격동 30년’이니 ‘제3공화국’이니 하는 주로 70-80년대 한국 정치비화를 다룬 그런 역사비화집을 즐겨 읽었다. 그러다보니 ‘후천개벽’의 시대를 연다느니 한반도에서 ‘인류를 구원할 철학’이 나올것이니 하는 그네들의 핵심교리를 마치 무슨 혁명이나 쿠데타라도 나중에 꾀하게 되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박정희나 전두환이 육사8기나 하나회등과 쿠데타 일으키듯 또는 태종 이방원이나 수양대군등이 자신의 측근들과 정난이나 ‘왕자의 난’ 같은 것을 일으키듯 혹은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나 초한지의 유방,항우같은 인물들이 자신들끼리 의형제나 혈맹 같은 것을 맺고 세상을 바꾸거나 천하를 얻기위한 만리 대장정을 떠나는것처럼 대진교라는 것을 이루는 청운회니 뭐니 이런식으로 몸담고 일하는 종사자들도 마치 그네들끼리 똘똘뭉쳐 나중에 세상을 뒤엎는 쿠데타라도 일으키는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준식은 사춘기때부터 나름 ‘민족주의’ 경향이 있는 그런 기질이 있었다. 좀 순진하고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릴 때 만화영화 같은걸 보면 전부다 일본만화고 영화는 미국 헐리웃 영화고 그런게 다 속상하고 화가났고, 또 일제 강점기-6.25와 분단 그렇게 사방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데다 그런 곡절로 인해 수난이 계속되는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화가 많이 났던 것이다. - 오죽했으면 우리나라 사람이 ‘UN 사무총장’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 - 한마디로 이런 잔뜩이나 편협하고 나약하고 어지러운 나라. 그런 나라에서 어떤 뜻있는 기인,지사들이 들고 일어나 – 마치 박정희,전두환이 쿠데타 일으키듯, 이방원이나 수양대군이 왕자의 난이나 계유정난이라도 일으키듯 마찬가지로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가 또는 초한지의 유방이나 항우같은 인물이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 잡겠다며 들고 일어나듯 – 한번 세상을 제대로 뒤엎어줄 혁명이나 쿠데타라도 한번 다시 일으켜줬으면 내심 그런 바램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런 후천개벽이니 뭐니 그런 것을 떠드는 ‘종교단체’에 귀의(?)해서 출가나 수행자의 길을 가는것보다는 차라리 정치판쪽으로 가는게 준식의 성질이나 기질과 애초부터 어울렸던것인지 모른다. 허나 그런 자신의 모습과 자아를 깨닫게 되기까진 시간이 훨씬 지난뒤의 일이고 막상 그렇게 총무원에서 말단 보직이라도 받고 일하게 되었을때는 그냥 마냥 모든게 신기하고 호기심으로만 가득하기까지 했다. 허나 그런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도 좀 저질렀다. 

 선문법사와의 관계(?)문제도 굳이 따지자면 그런 종류의 사건중 하나다. 선문법사는 그 당시 ‘창원회관장’의 직책에 있는 인물이었고 또 실제 종단의 집회나 천도제때 의식때 있는 법복을 입고 있을때는 사뭇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기까지 했지만, 일반 사복을 입고 종단이나 회관 업무를 볼때나 또는 회관내의 이런저런 청소나 수리작업 같은 것을 손수 할때는 아무것도 모르는채 지나가면서 볼때는 그냥 ‘일하는 아줌마’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여인이었다. 어찌보면 무슨 ‘파출부 아줌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공양(식사시간)시간에 사소한 실수를 좀 몇 번 저질렀던 것이다. 

 “ 아줌마. 이 식판은 어디다 치우면 돼요 ? ” 

 “ 아주머니...저 오늘 속이 좀 안 좋아서 식사 안하니까 그렇게 알아주세요. ” 

 대놓고 ‘회관장’을 ‘아주머니’로 부르는 실수를 초창기에 몇 번 저질렀던 준식. 헌데 그건 굳이 변명을 좀 하자면 일반 성직자,신도등 성인 조직과 약간 동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는 청운회의 특성상 충분히 있을수도 있는 실수이긴 했다. ‘후천개벽’이나 ‘미륵’이니 혹은 ‘인류를 5만년동안 구원할 철학이 한반도 배꼽땅에서 나올 것’이라느니 하는 그런식의 교리가 나이많은 어른들이라면 몰라도 어린 학생들에겐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개념이었던것일까. 실제 청운회원들의 상당수는 대진교 교리나 이런저런 예법같은데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태반이었고, 또 종단 전체의 돌아가는 분위기나 조직,명칭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인지 심지어 부모가 종단의 법사나 순도사쯤 되는 이의 자제가 되는 청년이나 청소년중에도 회관장이나 총무원 부장같은 이들을 못알아보고 – 또는 호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 그냥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라 부르는 경우는 태반이었다. 그러니 초창기에 준식이 몇차례 창원회관장을 그냥 ‘아주머니’라 부른 것은 충분히 면죄부가 주어질만한 일이긴 했다. 

 허나 ‘이건 안되겠다’ 싶은지 준식에겐 선배격이라 할수 있는 그리고 총무원에서 서무국장이란 보직을 맡고있는 진선교사(眞善敎師)와 교화국장으로 있는 봉명교사(鳳鳴敎師)가 ‘군기잡기’에 나섰다. 준식이 총무원 말단 보직을 맡고 – 당시엔 아직 창원에서 거주하진 않았음 – 생활한지 한달여쯤 되었을때의 일이다. 

 


 “ 윤준식이 니 우리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 

 보직만 맡겨졌지 아직 본격적으로 창원이든 인천에서든 총무원 생활은 하고 있지 않았을 때. 다만 일이나 행사가 있으면 참석해서 한 2-3일이든 일주일이든 머물다 돌아가곤 하던 그럴때였다. 여전히 ‘창원회관장’을 아주머니라 부르고 있는 준식을 더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인지 부른 서무국장 진선교사와 교화국장 봉명교사. 준식에게 대뜸 이와같이 물었다. 

 “ 니 선문법사님이 어떤분인지는 아나 ? ” 

 “ 선문법사님이요 ? ” 

 일단 준식이 그때까지 ‘선문법사’와 ‘창원회관장’이 동일인물이란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진교는 성직자든 일반신자가 되었든 일단 가입을 하면 아호(雅號 : 흔히 생각하는 그 호(號)의 개념)가 내려지고, 성직자끼리는 보통 ‘OO법사님’,‘OO교사님’ 이런식으로 호와 성직을 붙여 서로 부르긴 했지만 일반신자나 청운회의 경우엔 굳이 호를 붙이는 경우가 잘 없었다. 그래서 일반 청운회원의 경우엔 무슨 회관장이든 무슨 부장이든 그런 보직을 받고 있는 성직자가 ‘OO법사님’이나 ‘OO교사님’ 이런식으로 불릴 때 그 둘이 동일인물임을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준식의 경우에도 대체로 그런 경우라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창원회관장’은 알아도 ‘선문법사’님은 모르고 게다가 창원회관에서 살아본 경험도 그때까지 적은 상황이라 ‘창원회관장’님이 어떤분인지 전혀 파악못하고 있던 준식은 그저 어리둥절한 반응을 거듭 보일뿐이다. 그런 준식을 진선교사가 한 대 툭 치기까지 하며 이렇게 나무랐다. 

 “ 그래, 니는 회관장님을 계속 ‘아주머니’라 부르면 우짜자는긴데 ? ” 

 우연치곤 좀 공교롭게도 진선교사,봉명교사 두 사람이 다 부산출신이긴 했는데 그래서 배어있는 경상도 사투리로 거듭 준식을 나무라고 있는 두 사람. 봉명교사도 딱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 회관장님께서 사람이 좋으셔서 공양시간에 후원(식사등을 하는 주방 및 식당같은  

  공간)에서 손수 배식도 하시고 설거지나 청소까지 하셔도...그래도 여태 그분이 

  회관장님이신지도 모르면 어떻게 해요 ? 그분이 바로 창원회관장님이신 선문법 

  사님이시란 말이에요 ? ” 

 일단 준식이 파악하고 있기론 여하튼 창원회관에서 후원일을 보는 사람은 평상시 2-3명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나이많은 아주머니 두분이 계셨고 그 두분보단 상대적으로 젊지만 그래도 젊은 여성이라기보단 좀 나이가 들어보이는 여성이 있어서 그냥 그 셋을 다 ‘아주머니’라 불러왔던것인데,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하는듯한 준식에게 진선교사와 봉명교사가 창원회관장이 어떤분인지를 정확히 알려줬던 것이다. 사실 준식도 그제서야 처음으로 창원회관장이 누구인지 안 듯 제법 놀라는 반응이었다. 준식의 반응이 이와같았다. 

 “ 그럼 사무실에 계신분은요 ? 전 그분이 회관장님인줄로 알았는데... ” 

 창원회관의 구조가 위쪽에 ‘성전’이 있고 성전 옆으론 주요 행사때 일반 신자나 참석자들이 머무를수 있는 ‘방’이 있고 상주(常住)를 하는 성직자나 총무원 관계자들이 쓰는 거처는 후원 뒤쪽으로 그리고 후원이 성직자들 거처와 성전의 대략 중간 아래쪽에 위치해 있고 총무원과 회관 ‘사무실’로 쓰는 건물이 가장 아래쪽에 있었다. 준식은 아직 그때까지는 사무실 출입은 금지되어 있는 상태이긴 했는데, 여하튼 가끔 일을 보러 사무실에 들르거나 지나갈 때 사무실을 지키는분이 한분 더 있기는 했었다. 남자분이고 나이는 50이 좀 넘어보이는 사람에 항상 검은색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창원회관의 사무실 구조가 총무원용 사무실과 회관용 사무실이 회의실을 중간으로 하고 양 옆으로 그리고 총무원 사무실이 회관 사무실보다 조금 큰 크기로 만들어져 있기는 한데, 따라서 준식은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 늘 계시는 그 50대 남자가 ‘창원회관장’님이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실제 회관장인 선문법사가 사무실에 있을때보단 청소나 수리작업을 하러 회관 여기적를 돌아다닐때가 더 많아 준식이 자연스레 그런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것인데 준식이 지금까지 회관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냥 다른 상대적으로 나이많은 성직자로 회관장이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 대행(代行)처럼 사무를 대신 봐주는 성직자고 지금까지 준식이 후원의 ‘아주머니’로 잘못 알고 있던 사람이 실은 회관장임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다만 얼마나 큰 과오를 저질렀는지는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그저 사소한 잘못이라도 한 어린아이나 청소년처럼 답했다. 

 “ 알았어요. 앞으로 주의할께요. ” 

 “ 이눔아가...진짜 큰일낼 아네. 그런 실수를 해놓고 얼렁뚱땅 그냥 넘어갈라꼬 ? ” 

 “ 네 ? ” 

 “ 선문법사님께 정식으로 사과하세요. 회관장님께 정중히 사과하시라고요. ”  

 봉명교사까지 그렇게 나오고 그리고 바로 회관장실로 준식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정중하게 회관장에게 큰절까지 올리며 사과하게 했고, 다만 뜻밖에 선문법사는 원래 성격이 그런것인지 아니면 그리 대수로운일로 신경쓰지 않는지 ‘알았으니 앞으로 조심하라’는 말만 짧게 하고 그만 나가보라고 했다. 생각보다 일이 싱겁게 끝나서일까. 진선교사와 봉명교사는 이대로 대충 넘어갈일이 아니라며 준식의 군기를 거듭 바짝 잡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 성전에서 제대로 55배 하시며 참회하세요. 저희가 지켜보는 앞에서 하세요. ” 

 ‘55배’ 의식은 글자그대로 절을 ‘55차례’ 올리는 일종의 참회의식으로 굳이 개념을 설명하자면 ‘경범죄 처벌’의 벌칙정도 되는 그런 벌이다. 다만 55배가 되었든 108배나 200배 같은 그보다 더 많은 절을 올리든 그건 각자 알아서 시간날 때 재량껏 양심적으로 지성을 드려 하는것이지 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헌데도 진선교사와 봉명교사는 자신들이 입회한 자리에서 55배를 준식에게 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혀 준식은 두 교사(敎師)이자 총무원의 국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전에서 ‘55배 참회의식’을 행해야만 했다. 선문법사와의 첫 인연이 대략 그와같았던 것이다. 

 첫 인연이 그래서인지 여하튼 준식과 선문법사의 사이는 썩 좋은편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청운회나 젊은 총무원의 교사들에겐 진짜 자식이나 조카라도 대하듯 후하게 잘 대해주던 선문법사였지만 준식에겐 그 정도까지 잘해주진 않는 듯 했다. 준식이 그렇게 느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것일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정작 대진교 총무원에 몸담아 일하던 시절엔 그리 가까운편이었다고 말할수 없는 선문법사. 헌데 막상 종단을 때려치우고 나온지 20여년이 지나서 그 선문법사 별세소식을 듣고 문상까지 가게 되었으니 준식으로선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했던 것이다. 

 어떤 안개자욱한 몽환적인 공간을 준식이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꿈인 것 같은데 여기가 집안인지 바깥 거린지 도시인지 시골인지 혹은 자신이 사는 동네인지 다른 지역인지 분간조차 쉽지않은 그런 공간. 어쩌면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 아닐까 불현 듯 그런 생각까지 들것만 같은 그런 공간이긴 한데, 여하튼 그런곳을 준식이 헤매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 준식아...준식아아... ”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귀에익은 목소리는 아니고 준식은 의아하게 여기며 어디론가를 여전히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떤 건물 혹은 창고같은게 보이며 준식은 아무생각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헌데. 

 “ 허억... ” 

 순간 놀라며 겁에질릴 지경인 준식. 그 안에 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선문법사였다. 분명히 선문법사님 돌아가신 소식까지 접하고 문상까지 다녀왔는데 도대체 이게 웬일. 헌데 뭔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선문법사는 준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 오랜만이구나 준식아. ” 

 “ 회...회관장님... ” 

 얼떨결에 선문법사를 그렇게 부른 준식. 헌데 선문법사는 준식을 한참을 뭔가 딱하고 애처롭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준식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 이거...너 가져... ” 

 무슨 하얀 천 조각같은 것을 준식에게 건네주려 하는데 그래서 준식은 더더욱 놀라 선문법사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며 거듭 멍한 표정인데 선문법사의 말이 계속 들려왔다. 

 “ 이거 뭔지 알지 ? 내가 그때 넌 정작 이거 챙겨주지도 못했는데...지금이라도 너  

  가져. ” 

 “ 네에 ? ” 

 ‘ 허어어억~~~!!! ’ 

 그러다 깜짝놀라 눈을 떴다. 실은 꿈이었다. 준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을 바라보니 날은 이미 밝아있었는데 방바닥 저쪽에는 간밤에 준식이 마신 술병과 과자안주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간밤에 그렇게 선문법사 문상을 다녀와서는 심란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술을사러 나갔던 것 같은데, 다만 101호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핀잔을 주고 들어간것이라 그녀와 다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간을 좀 보내다 좀 더 늦은 시간에 술을 사러 나갔었다. 그리고 그것을 방안에서 마시다 잠이 든 것 같은데, 그러다 간밤에 그런 꿈을 꾼 것이다.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는 준식. 다만 간밤에 마신 술기운이 아직 덜 깬것인지 준식은 다시 상념에 잠긴다. 

 꿈속에 본 문제의 천. 그 실체를 준식이 모르진 않는다. 원래 10대때부터 무당이 되려 했으나 뜻은 이루지 못하고 대진교에서 법사이자 순도사로 그리고 창원회관장으로 10년 이상을 지냈던 선문법사. 그녀가 가끔 젊은 청운회나 교사급의 성직자들에게 내주는 하얀천이 있었다. 그 곡절이 이랬다. 

 “ 내가 성전에서 밤에 혼자 천도제를 지내거나 기선(氣禪)을 드리면 꼭 억울하게 죽 

  은 처녀귀신이나 나이어린 과부의 영혼이 찾아오곤 했었지. 그때마다 난 흰 천을 

  들고 그 원혼을 달래는 천도의식을 지내주곤 했어. ” 

 “ ...... ” 

 “ 한마디로 이 천은 내가 그런 영혼들의 원혼을 달래줄 때 쓰던 천으로 다시말해 바 

  로 그런...①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이나 ② 어린나이에 과부가 된 그런 불쌍하고 

  나이어린 여자들의 한이 깃든 그런 천이야. ” 

 “ 헌데 그런걸 왜 저희에게... ” 

 “ 아무소리 하지말고 받아. 이 천을 고이 간직하면 나중에 틀림없이 좋은일이 생길 

  테니까... ” 

 사실 꿈속에선 선문법사가 ‘준식에게만 그 천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실은 준식도 그 천을 받은적이 있다. 그리고 좀 묘한 징크스라면 징크스랄까. 선문법사에게서 그런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이나 어린나이에 과부가 된 불쌍한 어린여자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천도제를 지낼 때 쓰던 천을 받은 젊은 청운회나 성직자중엔 그리고 머지않아 회관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각자 소식을 나중에 받아보면 그냥 평범하게 사회생활하면서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사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혹시 대진교 생활을 오래 못버티고 나갈 것 같은 사람들을 선문법사가 미리 내다보는 ’예지력‘이라도 있었던것인지. 그렇다면 그런 불쌍하게 어린나이에 죽은 여성들의 원혼깃든 천을 선문법사가 주는 것은 일종의 ‘이별의 선물’이라도 되었던것인지. 여하튼 뭔가 기묘하면서도 선문법사의 의도를 제대로 알수없을 것 같은 그런 천이기도 했다. 

 사실 준식도 그 천을 받은적은 있다. 그게 준식도 대진교를 떠나기 1년여전인 한 96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준식도 그 천을 한 1-2년정도 갖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주었다. 실은 준식은 90년대 중반에 하이텔의 ‘삼국지클럽’이란 동호외에 한 몇 년 가입 활동한적이 있는데 그때 잠시 알고 지내던 고등학생 회원에게 그 천을 주었던 것이다. 하이텔 삼국지클럽의 그 고등학생 회원에게 문제의 천을 준 것은 준식이 선문법사로부터 그 천을 받은지 한 1-2년쯤 지난뒤의 일인데 준식이 당시 정확한 자신의 신분을 삼국지클럽 회원들에게 말하지 않아 그 당시 중고생 회원 대다수는 준식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모임장소에서 ‘흰 천’을 한 고등학생 회원에게 건네주며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산과 어려서 과부가 된 불쌍한 여자들의 혼령이 깃든거래요’ 라는식으로 말하자 농담이나 장난인줄로만 여겼는지 다들 박장대소 하였다.



- 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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