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시간이 더 지났다.
동철은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훈철은 중학교 2학년이다. 특히 동철은 이때는 대구에서 하숙을 하며 특목고에 다니고 있었다. 원래 서울에서 대기업에 취직 크게 출세하고 싶다는게 동철의 바램이었는데 어쨌든 대구에 있는 특목고에라도 진학을 할수 있는 정도면 학교다닐 때 공부는 그래도 잘한편에 속한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한편 초등학교때는 아이들을 손수 차에 태워 학교에 데리고 다녔던 나연은 동철이 중학교에 들어간뒤에도 계속 그와같이 했는데 동철이 다니는 중학교는 아무래도 거리가 좀 더 떨어진곳에 위치해 있다보니 보통 가까운 거리의 훈철을 먼저 초등학교에 내려다주고 그 다음에 동철을 중학교에 데려다주는 그런식으로 이와같은 일을 계속 했었다. 그러나 동철이 대구에서 하숙을 하며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제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은 중학생인 훈철에게만 하면 되는일이 되었다.
그런식으로 고등학생 동철, 중학생 훈철을 키우며 성수와의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나연. 한편 3년전 첫 임신을 했던 나연은 이듬해 동철이 중3이고 훈철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딸을 하나 출산했고 2년후에 딸을 하나 더 출산했는데 그게 바로 최근의 일이다. 그러니 성수와 결혼한지 최소한 3년 이상이 지나 어느덧 6년에 이를 때 자신도 딸 둘을 보게된 나연. 나름의 행복감과 만족감에 젖고있을때였다. 그렇게 나연이 성수와의 사이에 두 번째 딸을 출산하고 아직 몸조리가 다 되지 않았을 어느 무렵. 대구 기차역에서 동철이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중학교 2학년 훈철이었다.
“ 훈철아... ”
토요일이니 학교는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긴 한데, 그런날 동생을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훈철. 문경에서 대구까지 오는 기차가 있긴 한지 여하튼 그런 완행열차를 타고 훈철이 대구에 도착한 듯 하다. 그리고 그런 동생을 동철이 재촉한다.
“ 어서 빨리 기차에 타자. 이러다 늦겠어. ”
토요일이니만큼 아무래도 기차 이용객은 많을터이고, 그러니 늦으면 안된다며 이미 문경에서 기차를 타고 온 동생에게 다시 기차를 타야한다고 말하는 동철. 그리고 두 사람은 이내 곧 서울행 KTX에 몸을 싣게 된다.
“ 형... ”
뭔가 걱정되는듯 형을 부르는 훈철. 한편 요즘은 특히 주말같은데 먼 지역까지 여행이나 기타등등의 목적으로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는 듯,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명이 함께 기차에 탄 모습을 별 의심을 하는 승객들은 없는 듯 하고, 그렇게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있는 두 소년. 훈철의 말이 이어진다.
“ 우리...정말 괜찮은거야 이래도 ? ”
그 말에 답하기가 난감한것일까. 별다른 대꾸가 없는 동철. 한참만에 훈철이 다시 입을 연다.
“ 그러니까...우리가 지금 만나뵈러 가는 사람이...‘이모할머니’가 되는거지 ? 우리
에겐... ”
그 말에 동철도 좀 혼동이 되는건지 뭔가 생각에 잠기는듯한 모습. 그러다 입을 연다.
“ 엄마한테...이모인거니까... ”
“ ...... ”
“ 이모할머니라고 부르는게...아마 맞을거야. ”
실은 지금 이 두 사람은 다름아닌 이들 생모인 오상희 여사의 이모. 그러니까 지금 동철이 언급한바대로 ‘이모할머니’ 되는이의 칠순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헌데 생각해보면 어느덧 6년전인 초등학교 5학년때. 새엄마 나연이 직접 대구까지 데려다줘서 5년만에 친엄마와 재회했을 때 오히려 그 친엄마 상희에게 ‘훈철이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달라’며 가급적 이렇게 연락하고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제법 단호한 어조로 말하기까지 했던 그런 동철이 아니던가. 헌데 그런 동철이 동생 훈철까지 데리고 그것도 ‘이모할머니’ 칠순잔치에 참석을 하러 간다니. 무엇보다 그런 친엄마쪽 집안의 정보를 알고 있다면 동철은 친엄마와 이따금씩 비밀리에 연락을 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 동철은 얼마전 자신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오상희의 전화를 이와같이 받은 것이다.
“ 너흰...이모할머니 기억 못하겠지만...이모할머니는 너희 어릴 때 모습 기억하고 계
시단말야. 그리고 연세가 이미 칠순이시니 이제 사시면 또 얼마나 사시겠니... ”
“ 그러니까 어쨌든 저희보고 이모할머니 칠순잔치에 참석하러 와달라, 그 말씀이신
거 잖아요. ”
사실 정히 내키지 않으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빠져나갈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전혀 그런 핑계를 대지 않은채 응한 것을 보면 동철도 모처럼만에 걸려온 친엄마 상희의 그와같은 부탁을 마냥 야멸차게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던 듯. 그렇게 문경에 있는 동생 훈철까지 대구로 내려오게 하여 함께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중인 것이다. 훈철이 다시 동철에게 묻는다.
“ 형은 그럼 그...이모할머니란 분 기억이 나 ? ”
성수가 상희와 이혼했을 때 동철이 만 6세인 유치원생, 훈철은 세 살도 되기 전이다. 따라서 훈철은 친엄마에 대한 기억도 원래 거의 없었던차에 그런 친엄마쪽 외가 식구들이 누가 있을지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다만 여하튼 자신보다 세 살 많은 형의 기억은 다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와같이 물은것인데 동철의 반응은 뜻밖이다.
“ 아냐, 나도 실은... ”
“ ...... ”
“ 이번에 처음 알았어. 엄마한테 그런 이모할머니가 계시다는걸... ”
“ 그러면서 뭘... ”
성수와 상희의 결혼생활이 일단 순탄치가 않았고 게다가 상희는 성수와 결혼해서 멀리 문경까지 내려와 사는 상황에서 상희의 다른 친정식구들은 서울이나 대략 그 근교지역에 사는 상황이라면, 동철이든 훈철이든 그런 엄마의 외가쪽 식구들을 만나보거나 하는일은 거의 없었을터이다. 게다가 그런 어린나이면 이모든 이모할머니든 외삼촌이든 그런 친족관계를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을터이고, 다만 상희는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 그런 아기들을 데리고 명절때가 되었든 그 외 다른 기회나 이유가 있었든 친정식구들을 만나보러 갈 기회가 있었다면 그런 ‘친척어른’이 조카딸 상희가 낳은 아이들 즉 조카손주들을 어릴때라도 몇 번 본 기회는 있었을터. 게다가 그런 조카가 이혼까지 한 사실을 전혀 모르지 않는 상황이라면 여하튼 그런 말을 한두번쯤 입에 담았을법한 그런 사람이다.
“ 가만...헌데 그럼...상희네 애들은 대체 지금 어찌되는게냐 ? 듣자니 상희도 뭐 그
렇게(이혼) 되었다면서... ”
여하튼 상희가 이혼을 한 사실도 알고 그런 상희가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들을 어린시절 본 기억도 있는 이모할머니. 그런 이모할머니가 상희네 아이들도 이런때 한번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상희가 직접 동철에게 연락을 해온 듯. 상희의 말처럼 이모할머니는 기억을 하지만 아이들은 기억을 못하는 그런 먼 ‘친척어른’ 그런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 동철과 훈철은 지금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KTX 열차를 타고있는 것이다.
“ 훈철이는 어디 간거요 ? ”
바로 동철과 훈철이 그러고 있을 때 성수는 사정을 통 알지 못한채 태연하고 의아한 마음으로 아내 나연에게 물었다. 그러자 나연은 이렇게 답하다.
“ 그...뭐 에이핑크 콘서트라던가...그걸 서울에서 하는건지 친구들이라 보러 가기로
했대요. 그래서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 오늘 밤늦게 들어올수 있다나... ”
훈철도 생각했던것보다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성격인걸까. 실은 형 동철과 함께 이모할머니를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을 나연에겐 이런식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다만 그래도 젊은 나연과 달리 40대인 성수는 그런 요즘 아이돌,걸그룹에 대해 잘 모르는 듯 의아해하고, 어쨌든 그런 콘서트를 제 친구들과 보러 서울까지 간다는 말에 좀 놀라면서도 어이없어한다.
“ 허허...참. 요즘애들은 하여튼 우리때하고 달라도 많이 다르다니까. 뭐 또 그런걸
한사코 본다고 서울까지 가는지... ”
“ 그래도 직접 보는게 어디에요 ? 집에서 TV로 보는거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죠. ”
“ 다르나마나...우리때야 그런게 어디있어 ? 더욱이 도시에 사는 잘사는 애들이라면
모를까 우리같은 시골애들은...우리때만해도 그냥 서태지든 현진영이든 룰라든 그저
TV로 가요톱텐이다 뭐다 이런걸로 보는걸로 만족해야 했지...무슨 그런걸 보러 서
울까지 올라간다 ? 아이구...꿈도 못꾸던 시절이었지. ”
지금 시대적 배경을 대충 2010년대 중반쯤이라 치고, 나이 40대 중반에 이른 박성수라면 확실히 그런 초창기 아이돌 가수들을 보며 사춘기를 보냈을 그런 세대다. 허나 어쨌든 그런 90년대 초,중반하고 비교해봐도 확연히 다른 요즘의 분위기.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는 성수의 모습.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지 다시 나연에게 묻는다.
“ 헌데 교통편은 어떻게...문경이 워낙 시골이라서 서울까지 올라가는 교통편이 그렇
게 쉽지가 않은데말야. ”
실제 전통 목공예 기능장으로 이런저런 행사같은데 참석하러 서울에 올라가는 일이 종종 있는 성수이긴 하지만 그래서 문경에서 서울까지 가는 직행 교통편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성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의문이 가고 또 한편으로는 의심이 가는지 이렇게 묻는데 그 물음에도 나연은 이렇게 해맑게 답한다.
“ 인터넷으로 지가 다 알아봤대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기차편이고 고속
버스편이고 다 알아볼수 있잖아요. 아마 점촌역에서 대구까지 가는 기차타고 내려
가서 거기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던데요 ? ”
“ 허허...인터넷으로 벌써 그런것까지 알아봤다구 ? ”
(* 확실히 요즘 젊은애들은 좋은세상 만난줄 알아야 한다. 사실 진짜 요즘이니까 이 정도지 한 90년대만 되었어도 만약 실제 경북 북부 지역이나 강원도 농촌지역에 사는 어린 학생이 엄마를 만난답시고 서울이나 경기지역으로 가야한다면 그야말로 현실버전 ‘엄마찾아 삼만리’가 벌어졌을 것이다. 일단 인터넷으로 그런 정보를 알아볼수 있는 그 시대 이전이고 물론 전국 교통망이나 그런 정보를 알기위해 책자나 자료를 구입하려 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 가령 서울역 같은데도 기차역 ‘시각표’ 같은 것을 책자 형식으로 팔던 시절이니 – 구할수야 있지만 중,고생 정도 나이에 다른지역을 가본 경험이 그때까지 없는 학생들이라면 그런 것을 구할수 있는 정보 자체가 아예 없는 문외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훈철은 적어도 교통편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볼수 있는 그런 세대니 이미 잽싸게 그런 것을 다 알아본것이고 – 무엇보다 대구에 있는 형 동철도 자기가 알아서 그런 교통편을 알아봤을수도 있는 것 아닌가. - 그래서 함께 그렇게 대구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게 가능했던 것이다. 허나 이런 아이들의 대담한 음모(!!!)를 전혀 알길없는 성수와 나연은 그저 자기들끼리 순진하게 엉뚱한 대화만 주고받을뿐이다.
“ 헌데 서울가는 기차를 타려면 차라리 김천쪽으로 가는게 빨랐을텐데...거기서 경
부선을 타는게 더 나았을거요. 나도 예전엔 주로 그런식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었으니까. ”
“ 뭐 어쨌든 훈철이는 일단 대구에서 KTX를 탄대요. 뭐 지네들끼리 그런식으로 알
아봤다니까. ”
“ 멍청한 짓을 했으니까 그러는거지. 거리나 시간상으로도 김천에서 올라가는게 더
빠를텐데 뭐하러 더 남쪽인 대구까지 내려가냐 그 말이지. ”
대구에서 동철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런 부분을 전혀 의심도 하지 않은채 그저 아직 어린 훈철이와 그 친구녀석들이 서울에서 하는 무슨 걸그룹 콘서트를 보러 간답시고 엉뚱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성수는 씁쓸히 웃고 있다. 여하튼 성수와 나연은 일단 집에서 그렇게 태연자약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훈철과 동철을 태운 KTX는 어느새 빠른 속도로 서울역에 당도하고 있었다.
“ 동철아...훈철아... ”
사실 오상희도 이따금 동철하고 전화통화만 몇 번 주고받은것이지 두 아이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그때 6년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2학년때 잠깐 만나보고 그 뒤로 6년만이다. 그래서 다시금 감격의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는 현장. 무엇보다 어느덧 고등학생,중학생으로 성장한 두 아이를 보니 상희는 그저 대견하고 몸과 마음이 떨리기만 하다. 한바탕 두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그리고 이어서 상희는 함께 있는 옆의 두 남자를 아이들에게 인사시킨다.
“ 어서 인사드리렴. 너희들은 어릴 때 봐서...아마 기억이 잘 없을텐데. 그러니까 엄
마 동생들이야. 그러니 너희들 외삼촌들이시지. ”
상희에게 밑으로 두 남동생이 있고 그렇게 상희는 1녀2남중 장녀였던 것이다. 물론 이들도 상희가 성수와 이혼하기전 어린 동철과 훈철을 키우던 시절에나 명절에나 가끔 보고 했을 사람들일터. 그리니 이미 최소한 10년 이상이 지난 어린아이 기억으로밖에 없는 동철과 훈철을 보니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다. 두 외삼촌이 번갈아가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 그러니까 네가 동철이고 네가 훈철인가보구나. 허허 참...이 녀석들...내가 너희들
기저귀 너희 엄마대신 갈아주던거 기억은 하려나 모르겠다. ”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아무리 그래도 기억에조차 없는 ‘외삼촌’에게 그런식의 호칭은 입에 잘 붙지 않는지 이렇게 정중한 인사말만 건넬뿐인 동철과 훈철. 한편 상희는 그런 아이들을 어서 재촉한다.
“ 자, 이럴게 아니라 어서 OO 호텔로 가야지. 윤석아. 어서 차 대기시켜. ”
동철과 훈철에게 ‘이모할머니’가 되는 상희의 이모 칠순잔치라더니. 바로 그 칠순잔치가 열리는 파티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갈 모양. 아마 상희의 두 동생중 한명이 운전을 하는 듯 그 동생이 서울역 역사앞 광장 한곳에 이미 차를 몰고 와 있고 상희는 그 차를 향해 두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렇게 상희와 두 동생 게다가 동철과 훈철까지 탄 자동차가 곧 서울역 광장을 빠져나간다.
“ 이모... ”
한 10여분 정도 시간이 걸려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한 호텔 고급 연회장에 도착했다. 그러고보면 동철과 훈철은 무슨 딱히 정장을 하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대충 집에서 입던 옷 – 동철은 하숙집에서, 훈철은 집에서 입던 옷 – 을 챙겨입고 왔는데 이건 아니다 싶은지 상희가 차안에서 미리 준비한 양복 두벌을 꺼내 아이들에게 입힌다. ‘이모의 칠순잔치’니 자신에게 외가가 되는 그쪽의 웬만한 일가친척은 거의다 참석을 한다고 봐야할 것 아닌가. 그런 자리에 – 게다가 자신이 이혼을 했다는 사실은 알만한 친척은 거의 다 알고 있을것이고 – 꾀죄죄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보일수는 없어서인지 미리 아이들 입힐 양복정장을 준비해온 모양이다. 다만 아이들을 보는 것이 6년만이고 키워본 경험은 이미 10년전의 일이 아니던가. 어느덧 고등학생,중학생으로 자란 아이들 옷 치수를 맞추거나 할 기회는 없었을터이니 애써 장만한 양복정장은 한 녀석은 너무 작아 낑낑대고 한 녀석은 너무 커서 대충 옷을 접어서 입혀야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해프닝까지 벌어진다. 여하튼 시간을 너무 지체할일은 아니라 대충 그렇게 아이들을 옷을 입혀서 함께 연회장으로 데리고 가는 상희. 마친 가족친지들이 다 하나하나 칠순을 맞은 ‘상희의 이모’님께 큰절을 올리는 순서가 되어 있었다. 상희가 일단 급한대로 자신의 외가 친척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그중 한명이 ‘상희의 아이들’이 왔음을 행사 진행자에게 귀띰을 해준다. 그러자 사회자가 임기응변으로 소개를 한다.
“ 자 그리고...인사 올려야할 조카따님이 한분 더 계시다네요. 오늘 칠순을 맞으신
정윤옥 여사님의 조카 오상희 여사님. 그리고 밑으로 자제분 두분이 더 계시다구
요. 그렇게 정윤옥 여사님의 조카 오상희 여사 가족분들이 큰절 올리시겠습니다. ”
“ 이모...상희네 애들이래요. ”
요즘 세상에 나이 70이면 아직 그렇게 정신이나 기억력이 혼미해질 나이는 아니다. 오래전에 이혼을 했다는 오상희란 조카. - 정윤옥에겐 정확히 동생의 딸이 된다. - 그리고 그 오상희가 자기 아이들까지 데리고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정윤옥 여사도 적잖이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 게다가 윤옥 스스로 칠순잔치 이전에 ‘상희네 아이들도 한번 보고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면 그 기억을 못하고 있지 않을터. 허나 그녀 스스로도 상희가 자기 아이들까지 데리고 인사를 오리라곤 별 기대를 안 했었는지 크게 놀라면서도 감격스런 모습을 보인다.
“ 그래...그래...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상희네 아이들이란 말이지 ? 우리 큰조카 상
희...그 상희네 아이들이란 말이지 ? ”
그리고는 동철과 훈철을 가까이 오게 한다. 그와같은 정윤옥 여사의 말에 다른 친지들이 동철과 훈철에게 ‘어서 가까이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고 그렇게 동철과 훈철은 생전 처음보는 – 아주 애기때나 보았을터이니 기억에 있을수 없다 - ‘이모할머니’란 분에게 가까이 가본다. 그러자 윤옥은 무척이나 떨리는 손으로 어느덧 고등학생,중학생이 되어있는 장성한 조카손주들을 팔이며 다리며 여기저기를 마구 어루만져본다.
“ 그러니까...너희가 상희네 아이들이지 ? 그러니까...이름이 그 뭐였더라...그래 박
동철이랑 박훈철이었지 아마 ? 상희가 낳은 애들...동철이,훈철이란 말이지 ? ”
일단 정신이 오락가락하거나 혼미한 노인은 분명 아니다. 다만 오늘 이렇게 조카들이 되었든 동생들이 되었든 자기 자녀들이 되었든 그네들의 절을 받고 따라주는 술을 받느라 좀 취기가 오른 상태이긴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상희조카가 오래전 이혼을 한 여성이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를 하고있는 노인. 그래서 나름 할말,못할말은 가려가며 하면서도 두 조카손주를 부둥켜안고 한바탕 이렇게 울먹이며 말한다.
“ 아이구 그래...이것들...어미없이 자라며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 그래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그래. ”
그렇게 두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며불며 어쩔줄 모르는 노인. 그렇게 자기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고 새엄마 밑에서 자랐을터이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구박도 받고 고생도 많았겠구나’ 이렇게 지레짐작을 하는것일까.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두 아이 팔,다리를 거듭 어루만지며 어쩔줄 모르는 노인. 따라서 동철과 훈철도 좀 난감하긴 하다. 이런 ‘이모할머니’란 분 앞에서 차마 ‘새엄마가 잘해주셔서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마세요’ 이런 말을 하기도 참 난감하고, 게다가 급히 입은 양복으로 제대로 맞지도 않는 옷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말하기도 한다.
“ 세상에 몹쓸 것 같으니...아무리 전부인 아들들이 제 친엄마를 만나러 간다 하기
로 세상에 옷이 이 꼴이 다 뭐야 ? 세상에...세상에...옷이라도 제대로 입혀보내지
도 않고 대체 이 꼴이 다 뭐냐구... ”
“ 이...이모... ”
사실 그게 아니라 실은 이 옷은 상희가 바로 대충 아무렇게나 편한 복장으로 입고 올라온 두 아이를 자신의 이모나 다른 친척들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미리 준비해놓은 양복을 급히 입혀 호텔로 데리고 온 것 아닌가. 허니 오히려 상희나 그녀의 두 동생도 모두 당황할 지경이 되고 이모할머니 정윤옥의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한마탕 울부짖는 넋두리는 아직 계속된다.
“ 이것참...이런 손주들한테...그 고생을 하면서도...그 구박을 받으서도 이리 곱게 자
란 이런 손주들한테...이 할미가...너희들 오는줄만 알았으면 진작에 뭐라도 준비해
놓았을텐데...너희 엄마가 진작에 귀띰이라도 해주었으면...이 할미가 진작 뭐라도
챙겨주었을터인데...지금 갑자기 줄 것도 없고...가만있거라... ”
여하튼 새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고생(?)했을 조카손주들에 대한 안타깝고 애달픈 심정만은 거듭되는지 바로 그런 아이들한테 뭐라도 챙겨주고픈 할미의 마음이 솟구쳐서 바로 급조하듯 대충 지갑에서 만원권 몇 개를 꺼낸다. 그리고 봉투에 대충 넣어 건네주는 정윤옥 여사. 동철과 훈철뿐만 아니라 주변 다른 친척들도 좀 당황할 지경이다.
“ 이모...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게 무슨...그러진 말아요. 애들도 당황하겠다 ”
“ 왜들그려 ? 이 할미가...이모할미가 되어갖고 조카손주들한테 해준것도 없는데...내
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산다고...모처러 이렇게 어렵게 만난 조카손주들 챙겨주는것도
안 돼 ? ”
그리고는 한사코 봉투에 꽤 많은 5만원권과 만원권을 섞어넣어 건네주는 윤옥. 처음엔 당황하던 동철과 훈철도 ‘일단 받아라’는 다른 친척들의 귀띰에 일단 그걸 건네받긴 한다. 그리고 동철과 훈철은 식사를 해야하는 자리로 가고 그런 조카들에게 윤옥은 ‘많이 먹고 가라’는 말도 끝내 잊지 않는다. 새엄마 밑에서 설마 지난 10년 세월을 쫄쫄굶으며 살지야 않았을터인데, 마치 그러고 살아온 아이들이라도 되는양 다른 동생이나 조카들에게도 그리고 호텔 직원들에게도 ‘저 아이들 좀 잘 챙겨주라’는 말을 잊지않는 윤옥. 그만큼 두 아이에게 갖는 감정이 남다르고 애달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아이고...아이고 어머니,아버지. 왜 그리 일찍 돌아가셨습니까. 왜 그리 그렇게 빨
라도 가셨습니까 아버지,어머니. ”
동철과 훈철은 일단 친엄마 상희 및 외삼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바탕 대성통곡의 넋두리가 들려온다. 그 대성통곡의 장본인은 다름아닌 오늘 칠순연회의 주인공인 정윤옥. 그러고보면 자녀들이든 조카들이든 동생들이든 그네들의 절도 받고 술도 한잔씩 받으면서 많이 취했을 것 같다는 짐작은 들긴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한바탕 넋두리가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 그래 우리 6남매가 지금까지 어찌 살았는데...어머니 아버지 다 돌아가시고 나서
어찌 살았는데... ”
동철과 훈철의 경우엔 여하튼 이모할머니란 분이 좀 남다르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면 좀 가까이 자리하게 했을수도 있을터인데 연회장 사정상 그렇게 하긴 쉽지 않았는지 좀 떨어진곳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동철이나 훈철은 물론 상희까지 있는 자리에 생생히 들려올정도로 칠순 노인의 제법 큰 울부짖음이 한바탕 이어지는 것이다.
“ 우리 윤정이 그렇게 암으로 오래 고생하다 젊은 나이에 죽고...그래서 그 집 애들
상희,윤석이,윤철이...걔네들까지 내가 다 자식처럼 거두다시피 하게되고...뿐입니까.
윤수는 20년전 삼풍백화점 사고때 그 나변으로 그집 아들 경철이 대학 여러번 떨어
지고 군대에서 큰 부상당해...그거 좌절해 자살해 죽고 그 집 딸 경희는...남자랑 사
이가 여의치 않자 역시 비관자살해 자살하고... ”
“ 이...이모... ”
“ 어...어머니... ”
뭔가 심상찮은 이 집안의 가정사가 그래서 그동안 한이며 사연이 더더욱 쌓인게 많은 듯 정윤옥 여사의 한바탕 넋두리가 계속 이어진다. 덕분에 당황한 다른 조카나 아이들의 만류조차도 뿌리치는 가운데.
“ 뿐입니까. 윤태네 큰딸도 이혼해서 지금까지 혼자살고 있고 경태네 둘째도 지금껏
변변한 직장하나 잡지못해 저리 방황하고 살고...윤지는 반신불수되어 이 자리에 오
지도 못하고 윤지네 아들 태식이는 또 어릴때부터 반 병신이라 사람구실하나 제대
로 못하며 저리 살고있고...그러니 이런 기가막힌 가정사가 대체 어디에 또 있느냐
이 말입니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아버지...아이고 산신령님...이내 칠십년 한많은
사연...하소연이나 한번 들어보소. ”
뭔가 확실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맺힌것도 많고 억울하고 한많은 사연도 많은듯한 칠순노인의 넋두리. 정신이 혼미하지 않고 정정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 아닌 탈이 된 것인지 술에 어느정도 취한 칠순노인의 어쩌면 진짜 대하소설 한편 써도 될것같은 기가막힌 한바탕 가정사 넋두리고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그렇게 내가 우리 어머니,아버지 돌아가시고...나 혼자 어린 동생들 건사하겠다며
이 나이까지 악착같이 살았는데...세상에 나보다 먼저 세상뜬 동생이 둘이나 돼...
게다가 반신불수된 동생까지 있어. 뿐입니까. 그렇게 애들(자신의 동생들)이 두고
간 애들(조카들)도 하나같이 이혼해,사업망해,취직못해,실연당해 평생 방황하다
자살해...그러니 세상 이런 박복한 팔자가 또 어디있고 이런 기막힌 팔자가 또 어
디 있답니까. 뿐입니까. 삼풍백화점 사고때 죽은 동생, OO호 침몰 때 죽은 조카,
OOO 비행기 추락사고때 죽은OO이 남편....아이고 세상에...무슨놈의 세상 대형참사
가 한번씩 나기만 하면 이런 우리집 식구들 다 하나씩 데려간답니까. 산신령님도
무심하고 마군이들도 참 악질이지...어찌 그리 이런 기막힌 팔자가...그것도 모자라
그리 앞날이 창창한 동생이며 조카며 사위며 손주며...그렇게 하나하나 전부 데려
간단 말입니까. 아이고 산신령님...아이고 아버지,어머니...듣고 계시면 제발 말 좀
해주시오... ”
“ 이모...이제 제발 그만 좀 해요. ”
듣고보니 좀 너무하다 싶기도 하고, 별로 들추고 싶지도 않은 가족구성원 각자의 아픈 사연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니 그런 칠순의 이모나 언니나 할머니를 지켜보는 동생이나 조카나 손자,손녀들의 심정은 또 어떨까. 게다가 그리 좁지 않은 연회장에 다른 호텔 직원이며 경우에 따라선 연회장 바깥에까지 들릴만큼 큰 소리니 그야말로 이 정윤옥 여사(동철,훈철에겐 이모할머니가 되는)네 집안 복잡한 속사정이 만천하에 광고가 될 지경이다. 상희도 더는 안되겠다 싶은지 다가와서 그런 윤옥을 만류한다.
“ 이모...이제 그만 하세요. 아무래도 많이 취하신 것 같아. 언니들, 그러지말고 이
모 그만 다른방에서 좀 쉬게 하세요. ”
“ 쉬긴 뭘쉬어. 놔. 이거...나 아직 할말 다 남았어 !!! 내 칠십평생 기가막힌 사연
우리집안 그 기가막힌 가정사 다 늘어놓으려면...아직 시작도 안 했단말야. 놔 !!!
놔 !!! 아직 할말 더 남았대두 그러네 !!! 놔라 이 X들아 !!! 나 아직 할말 많은 사
람이다. 아직 쏟아붓지 못한 한과 사연이 백두산만큼 쌓여있는 사람이란말이다 이
것들아 !!! ”
분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자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지 상희의 두 동생 윤석과 윤철이 동철과 훈철에게 손짓을 해서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연회장에선 거리가 좀 떨어진곳에 있는 의자에 앉게 하고는 자판기 커피를 몇잔 뽑아와 자신들도 하나씩 들고 아이들에게도 한잔씩 먹게하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 미안하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
술주정인건지, 노망은 확실히 아닌 것 같고 여하튼 이해할수 없는 횡설수설을 한바탕 늘어놓던 아이들에게 이모할머니가 되는 정윤옥 여사. 덕분에 칠순잔치장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헌데 이런 모습을 결국 그것도 부모의 이혼으로 지금까진 친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산 조카들에게까지 보인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솔직히 털어놓는다. 허나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이해시키려는 듯 윤석과 윤철중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윤석의 말이 이어진다.
“ 하지만 너희가 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너희들에게 이모할머니가 되는 아까 그
분은 다 그럴만한 남다른 이유가 계셔. ”
“ ...... ”
“ 원래 너희들 외할머니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머니가 되는 정윤정 여사의 형제
가 총 2남4녀 6남매였다. 그중 가장 첫째가 바로 너희들이 오늘 뵌 이모할머님
이시고 그 바로 밑에 여동생이 너희들 외할머니이시자 우리들 어머니인 정윤정
여사님이시지. 헌데 불행히도 암으로 오랫동안 투병을 하다...세상을 떠나신게
이미 20년도 넘어. 그때가 너희들 엄마가 대학생, 내가 고등학생 그리고 여기 작
은 외삼촌(윤철)이 중학생때 일인데... ”
동철,훈철의 친엄마 상희는 어쨌든 대학생이었다지만 그 밑의 두 동생은 고등학생,중학생때 그렇게 어머니를 잃었다면 그네들도 나름 그만큼의 상처와 힘든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보면 어릴때 부모 이혼으로 엄마없이 지금껏 자라온 동철과 훈철 형제에게 그런대로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이 될 순간이기도 한데, 윤석의 말은 일단 조금 더 이어진다.
“ 그리고 그 밑으로 우리에게 외삼촌이 되는 남동생이 한분 더 계시는데 그분은 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돌아가셨다. 헌데 그 엄청난 참사가 있던게 벌써 20년전 일
이니 그 외삼촌도 한참 젊은 시절에 돌아가신 셈이지. 그 슬하에 아직 어린 자녀
- 우리에겐 외사촌 동생이 되는 아이들이기도 하지만 – 도 둘씩이나 있었는데말야.
”
“ ...... ”
“ 뿐만 아니라...삼풍백화점 사고로 돌아가신 외삼촌 밑으로 외삼촌 한분이 더 계시
고 또 그 밑으로도 작은이모 두분이 더 계시긴 한데 그중 또 가장 나이어린 막내
이모님이 지금 중병으로 투병중이셔. 그래서 오늘 그분에게 큰언니가 되는 너희 이
모할머니 칠순잔치에도 참석을 못 하신것이고...의사 말로는 그 이모님도 현재로선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시더구나. ”
여하튼 총 6남매 2남4녀중 둘째이자 동철,훈철의 외할머니 되는이는 20년전에 이미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고 그 밑으로 남동생 둘이 더 있는데 그중 또 하나가 20년전 대략 비슷한 시기에 삼풍백화점 사고로 사망. 게다가 막내 여동생마저 현재 가망없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니 6남매중 맏이인 정윤옥 여사 입장에선 이미 동생 둘을 먼저 떠나보낸 처지에 이제 잘하면 아직 남아있는 세명의 동생중 또 하나를 떠나보낼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그 한과 사연이 오죽하랴. 아직 사춘기 소년인 동철과 훈철이 생각해도 참 기가막힌 사연이라는 생각에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 게다가 아까 정윤옥 여사 넋두리로 미뤄볼 때 아마 윤옥 6남매의 부모님도 그네들이 아직 어릴 때 세상을 떠난 듯 하고 그런 상황에서 윤옥이 집안에서 맏이이자 가장으로 동생들을 지금까지 건사하고 돌보며 살아왔다는 것 같은데, 그러니 그 파란만장한 시간이 오죽했으랴. 이미 그것만으로도 시대극으로 100부작 공영방송 대하극 하나 뽑을만한 분량이 되지 않겠는가. 헌데 사연은 그게 전부가 아닌 듯 윤석의 한숨섞인 이야기는 좀 더 이어진다.
“ 뿐만 아니라...그 밑의 자손들도 영 사정이 만만치가 않아. 어쨌든 일단 너희들
어머니도 그렇게 10년전에 이혼을 한 몸이고...또 투병중이신 막내이모님에게도
아들이 한분 있긴 한데...어릴 때 크게 다쳐 정신이 성치 못한 그런 사람이란다.
그리고 이건 둘째 외삼촌네 이야긴데말야. 물론 둘째 외삼촌은 아직 생존해 계시
고 아까 너희들도 잠시 인사드리긴 했지만...그분에게도 자녀가 둘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여객선 침몰 사고로 얼마전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보다 훨씬전
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남편을 잃고 현재 미망인이 되었단다. ”
그러고보면 정말 기가막힌 가정사가 아닌가. 6남매중 한명은 40대 중년 나이에 암투병중 사망 또 한명은 삼풍백화점 사고로 사망 또 한명도 현재 중병으로 투병중 그것만으로도 기가막힌데 또 그 자녀들도 이런저런 사고로 죽은 사람에, 투병중인 사람에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한 사람이거나. 그야말로 1대 6남매 사연들로도 모자라 2대째 사촌들의 사연들로 또다시 ‘시즌2’ 대하사극 하나 찍어야할판인 그런 가정사. 동철과 훈철도 막상 그런 이야기를 듣자니 기가막힐판인데, 헌데 아이들 친엄마인 오상희가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 그때쯤이다.
“ 애들 데리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가 그렇게 많니 ? 이제 그만해 !!! ”
연회장이야 이미 엉망진창 사실상 파장분위기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손님들도 이미 자리를 하나하나 뜨는 그런 분위기다. 그런 상황에서 상희가 자기 아이들은 물론 동생들도 보이지 않자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뒤늦게 동생들과 아이들 있는곳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른건 몰라도 자기 아이들에게까지 자기네 기가막힌 가정사를 일일이 들려주고 싶지는 않은지 동생들을 만류하는 상희. 그리고 두 아이를 보며 이렇게 사과한다.
“ 미안하다...이런 모습 보이려고 너희들 부른건 아닌데...너무 유감스럽게도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모양이구나. ”
애초에 바로 그 문제의 이모할머니가 이혼하고 혼자산다는 조카 상희(* 게다가 따지고보면 정윤옥 입장에선 바로 자기 밑의 여동생(그것도 20년전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의 큰딸이다.)의 아이들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어렵게 아이들을 서울까지 오게한 것인데, 바로 그런 자신의 큰이모 칠순잔치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으니 상희로선 그저 미안한 마음뿐. (* 그래도 어느정도 경우있는 여자라고 볼수도 있다. 솔직히 오상희 입장에선 한바탕 자기네 집안 기가막힌 가정사 아이들보고 알아달라고 정말 한바탕 또 사설을 늘어놓으며 하소연 할수도 있는 그런 상황일수도 있다.) 이쯤에서 아이들을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은 상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차에 태운다.
“ 아, 참 그리고 너희들... ”
운전은 어차피 차를 몰고온 아이들 외삼촌이 하는것이고, 중간에 상희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이와같이 말한다.
“ 모처럼 그래도 이모할머니 칠순잔치까지 그 먼길을 오게헀는데...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구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그러지말고 이걸로 돌아가는 길에 맛있는거 사 먹
어. ”
헌데 아까 이모할머니란 분이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동철과 훈철한테 주는 것을 상희뿐만 아니라 다른 친척들도 목격을 하지 않았던가. 헌데 또 친엄마 상희가 거기에 잔치에서 제대로 먹이지도 못해 미안하다며 가는길에 맛있는거라도 사먹으라며 돈을 더 챙겨준 것이다. 동철과 훈철로선 ‘이게 대체 웬 횡재냐’ 싶으면서도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돈이다. 어차피 문경까지 내려가야 하는 아이들이니 서울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지체하게 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 다른 먹을 것을 사준다던가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이와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서울역에 도착 바로 아이들을 기차에 태워 내려보낸다.
아무리 그래도 주말이니 만큼 바로 출발할 시간에 기차를 타진 못하고 저녁에 출발하는 기차를 탈수가 있었다. 그리고 동철과 훈철이 탄 KTX가 대구에 다가가고 있을때쯤은 이미 어두워진 시간. 동철이나 훈철이나 착잡한 심경에 기차안에선 별다른 말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었는데 그러다 한참만에 훈철이 동철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 형... ”
“ 왜 ? ”
동철도 편치않은 심정으로 동생의 부르는 소리에 되묻고 그런 형을 보며 훈철이 그래도 궁금함에 이와같이 묻는다.
“ 아까 돈 전부 얼마 받은거야 ? ”
“ 그건 갑자기 왜 ? ”
“ 그래도...궁금하잖아. ”
“ 칫~~~!!! ”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세 살많은 고등학생 형에게도 드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아까 그 소동을 지켜보고도 지금 용돈 얼마 챙겨받았는지 그거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동철은 아까 이모할머니로부터 받은 돈봉투 그리고 친엄마에게서 받은 돈봉투까지 모두 꺼내보인뒤 그걸 전부 훈철에게 건네준다.
“ 난 필요없으니까 너 이거 다 써 !!! ”
“ 형... ”
“ 너 다 쓰라구 !!! ”
더 이상 토달면 한 대 두들겨 패기라도 할것같은 기세로 형이 이렇게 나오고 그래도 중학생 훈철도 여전히 개운찮은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 그러지말고 반씩 나누자. 아...아니 그보다...우리 어디 이거 불우이웃 돕기 성금
같은걸로 내는게 어떨까 ? ”
어쩄든 형이나 자신이나 피차 그 돈을 개운한 마음으로 받아 쓸 생각은 안드는 것을 확인한 셈이니 즉석에서 그런 제안을 한 훈철. 그러나 동철이 어이없어하며 이렇게 한마디 한다.
“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그냥 더 나 가져 !!! 까불지말고 !!! ”
무슨 생각인지 어쨌든 동생보고 다 가지라고 하는 동철. 어차피 기차가 어느덧 대구에 도착하고 있으니 더 길게 수다떨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훈철은 여기서 또 기차를 타고 문경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훈철은 결국 형한테서 건네받은 두 개의 돈봉투를 모두 손에 쥔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9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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