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가 나연과 결혼한지는 어느덧 반년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두 부부의 금슬은 좋았고 나연이 성수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껴주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사이도 대체로 무난하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밤중. 바로 잠이들진 않고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그런 분위긴데 그런 상황에서 성수가 나연을 부른다.
“ 여보... ”
“ 예 ? ”
한동안은 열다섯살 많은 남편이 어려워서였는지 혹은 새신부의 쑥스러움이었는지 ‘여보’란 말은 쉬이 입에 붙이지 못하고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나연. 하지만 지금은 그와같은 호칭도 대체로 잘 나오는 중인데, 그런 상황에서 성수의 말이 이어진다.
“ 괜찮으니까 당신 생각을 솔직히 말해봐. ”
“ 어떤...생각을요 ? ”
남편의 의도가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인지 나연이 이와같이 묻고 그런 아내를 보며 성수의 말이 이어진다.
“ 우리 사이에 아이를 갖는 문제 어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말해보란 말이지. ”
일단 두 사람의 잠자리 관계는 무난한 편이었다. - 가끔 나연이 밤에 혼자 마당을 거닐며 의아한 행동을 보인적은 있지만 – 허나 아이를 갖는 문제는 또 그것과는 분명 별개의 문제 아닌가. 그래서 진지하게 성수가 이렇게 물은것인데 허나 그런 남편을 보며 나연은 슬몃 근심띤 얼굴로 이렇게 묻는다.
“ 원하세요 ? ”
“ 뭐 ? ”
나연의 질문이 오히려 이해가 안가서인지 성수가 이렇게 묻고 그런 남편을 보며 나연은 이렇게 말한다.
“ 전 그냥 당신 뜻대로 할께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 여보... ”
진심으로 들리지 않아서인지 성수가 거듭 걱정스레 이와같이 묻고 허나 나연은 거듭 이와같은 말을 입에 담는다.
“ 전 괜찮으니까 아무걱정 마시라구요. ”
그리고는 슬쩍 몸을 돌리는 나연. 피곤한지 바로 눈을 감으며 잠을 청하고 있다. 뭐라고 말을 건네기도 그래서 성수는 그런 아내를 말없이 바라보다 자리에 눕고, 고요한 정작이 두 사람의 침실에 흐르고 있다.
한밤중에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보다 며칠이 더 지난뒤의 일이다. 요즘은 점차 휴대폰 사용자가 늘어나 집전화가 사라지는 추세인데 이런 전통 목공예 사업장을 운영하는 성수 입장에선 그래도 집전화가 필요한지 놓아두고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그 소리에 먼저 깬 것은 나연 같은데 일단 성수가 나가서 전화를 받아본다.
“ 여보세요... ”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부르는 말에 대답이 없는 상대방. 장난전화인가. 무엇보다 요즘 집전화로 굳이 이런 장난전화를 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텐데. 그래서 더 화나고 짜증나는 듯 전화를 끊어버리는 성수. 헌데 한참후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 뭐요 ? ”
아무래도 할 일없는 사람의 장난전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살짝 짜증섞어 성수가 이렇게 묻고, 헌데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지막하면서도 떨리는 음성이다.
“ 당신이야 ? ”
“ ....,,!!! ”
“ 당신...맞지 ? ”
순간 적잖이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성수. 일단 전화를 건 의문의 여인의 목소리는 좀 더 이어진다.
“ 내 목소리 잊은 것은 아니겠지 ? ”
“ 당신이...어쩐일이야 ? ”
실은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아닌 성수의 전처 오상희다. 전통 목공예 장인이 무슨 돈 많이 버는 직업인줄로 알았는지 그를 선택했지만 실상이 전혀 아닌 것을 깨닫고 아이 둘을 둔채 5년전에 집을 나가버린 그 오상희. 헌데 그런 상희가 이 한밤중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것. 성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뒤 잠시 침착함을 되찾으며 천천히 말을 건넸다.
“ 이 시간에...대체 어쩐일이야 ? ”
“ 어쩐일은...당신 보고싶어 전화했지. ”
“ 이...사람이 지금...누구 놀려 ? ”
그렇게 5년전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버리고 이제와 전화하는 사람의 말치곤 너무하다 싶은지 진심으로 화가난 성수. 헌데 상희의 말은 점점 더 뜻밖이고 성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나...지금 대구야. ”
“ 대구 ? ”
대구를 문경에서 가까운 지역이라고 해야할지 멀다고 해야할지 판단이 잘 서진 않는데, 여하튼 그곳에 와있다는 상희. 성수가 헛기침을 한번 해보인뒤 이렇게 말한다.
“ 대구라서 뭘 어쩌라구 ? ”
일단 지난 5년간 일절 소식이 없었던 아내 상희다. 그러니 지금 그녀가 무슨일을 하고 어디서 사는지 성수로선 전혀 파악을 할 길 없고 무조건 ‘대구’라고만 하는 말에 성수의 머릿속은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런 전처를 지금 과연 어찌 대해줘야 하나. 혼란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데 그런 전남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희의 말은 다시금 이어지고 있다.
“ 나...아이들 보고싶어. ”
“ 뭐 ? ”
기가막힌 말일 수밖에 없다. 자기 배아파 낳은 아이를 보고싶어하는 그런 어미의 심정을 어찌 이해 못하겠느냐만 그러나 5년전 그 어린 두 아이를 두고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버린 그런 여자 아닌가. 게다가 그때 유치원생이었던 동철은 그래도 친엄마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지만 세 살도 되기전인 둘째 훈철은 친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헌데 이렇게 갑자기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해서는 아이들을 보고싶다니. 그럼 성수가 이런 전처에게 대체 어떤 대응을 해줘야 하는가. 성수가 거듭 당혹스러워 무슨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있는데 상희의 애원은 거듭된다.
“ 나 여기 오래 못 있어. 어차피 일주일정도 뒤에 올라가야 해. 그러니 그 전에라도
한번만... ”
“ 올라간다면 ? 서울에 올라간다는 말인가 ? ”
“ 나 지금은 남양주에 살어. ”
어차피 지금 현재 상희의 근황은 성수로선 지금까지 전혀 파악할길이 없었다. - 어쩌면 이미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존재일수도 있고 – 헌데 그런 상희가 5년만에 전화해서는 지금 대구에 있다더니 대체 무슨일 때문에 대구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일주일정도 머물다가 남양주의 집으로 올라간다는 소리다. 사실 어쨌든 성수와 상희가 한 10년 가까이 결혼생활은 지속했으니 성수가 상희의 친정이라든가 이런곳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적어도 남양주라면 성수가 알고있는 상희의 친정집이든 그녀 친정부모든 이전에 살던 지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그런곳이다. 그래서 성수는 거듭 의아해질 수밖에 없는데 상희의 애원은 거듭되고 있다.
“ 나 여기 오래 못 있는다니까...일주일뒤에 돌아가야 해. 그러니 그전에만이라도 아
이들 잠깐만 만나게 해줘. 응, 여보 ? ”
난감한 성수는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은채 적당히 통화를 마무리하며 끊으려했다. 헌데 전화를 끊고 방으로 들어가기위해 뒤로 돌아섰을 때 더 당혹스러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실은 나연이 이미 방에서 나와 통화를 하는 성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애초에 전화벨소리에 먼저 깬 것이 나연이었고 무엇보다 자신 의 전화를 어디서부터 엿들었는지 전혀 알수가 없으니 성수로서는 변명을 하거나 얼버무리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는 나연이 입을 연다.
“ 무슨 전화에요 ? ”
“ 아...저...그...그게... ”
역시 답하기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는 성수. 헌데 나연이 뭔가 짚히는데가 있는지 결국 이와같이 묻는다.
“ 혹시...전부인 전화인거에요 ? ”
일단 요즘 세상에 집전화로 굳이 전화를 걸 정도의 사람이면 젊은 사람은 아닐것이고, 심지어 아마 예전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전화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일단 성수가 무슨 바람이라도 피우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전화를 할만한 사람으로 짐작될만한게 그쪽 아닌가. 더욱이 전화통화를 나연이 엿들으니 얼핏 ‘애들’ 어쩌구 하는 표현도 나온 것 같고, 결국 성수는 숨기기는 틀렸다는 듯 일단 아내를 방으로 들어가자며 달랜뒤 불을 켜고는 차분하게 사실을 밝힌다.
“ 당신이 짐작한 그대로야. 그러고보면 지난 5년동안 대체 어디서 뭘하고 지내는지
소식도 연락도 없었던 사람이...이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해서는...아이들을 한번
만나게 해주면 안되냐고 하더군. ”
“ 어디 있다는건데요 지금 대체 ? ”
“ 아까 들어서 알 것 아닌가. 지금 대구에 와있다는군. 무슨일 때문에 왔는지는 몰
라도...한 일주일정도 거기 있을거라면서...가기전에 아이들을 한번 봤으면 하는군.
”
문경에서 대구까지.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깝다고도 볼 수 있는 애매한 거리긴 하다. - 사실 경북 북부지역 지리에 익숙치 못한 사람이라면 부담스러운 거리일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만약 초등학교 5학년,2학년 어린아이가 어른의 동행없이 가게 된다면 더더욱 멀고 위험하다. - 그래서일까. 성수도 나연도 고민의 기색만 역력할뿐 쉬이 무슨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 어차피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는 나연. 헌데 애들을 태우고 가는 나연은 원래 학교가는길쪽으로 가지않고 좀 엉뚱한 방향의 으슥한 길쪽으로 간다. 그리고는 거기 차를 세운다.
“ 새...새엄마...저희 학교가야하는데... ”
자칫 지각할수도 있는데 왜 이쪽으로 가느냐는 듯 동철이 의아함과 항의의 마음을 담아 이와같이 말한다. 허나 운전대에 잠시 얼굴을 파묻고 고민하는 듯 하던 나연이 잠시후 아이들을 보며 이와같이 말한다.
“ 동철이, 훈철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지금 학교가 문제가 아냐. ”
“ 새엄마... ”
“ 학교엔 일단 너희들 지각할수도 있다고 말씀드릴께.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
”
그리고는 실제 학교로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학교에 늦게 보낼수도 있다는식으로 말한다. 이런 새엄마 나연의 행동에 더 의아해질 수밖에 없는 두 아이들. 헌데 나연이 그런 동철과 훈철을 자신의 앞에 불러세우고 그리고 두 아이를 애틋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는 듯 하다 이렇게 말한다.
“ 동철이는...친엄마 기억 난다고 했지 ? ”
“ 네 ? 아...아뇨... ”
갑작스러운 새엄마의 이런 질문에 5학년 동철은 뭔가 심상찮음을 직감한것일까. 그런식으로 바로 답변을 정정하려 들고, 허나 나연은 이렇게 말을 건넨다.
“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봐. 그리고 훈철이는 친엄마 기억 나, 안나 ? ”
아이들 친모인 오상희가 가출했을 때 아직 세 살도 되기 전이었던 훈철. 사실 일전에 그래서인지 친엄마 기억은 없다고 말한 것 같기도 한데 허나 좀 더 솔직한 아이의 답을 듣고 싶어서였을까. 헌데 훈철이 무슨말을 꺼내기도 전에 동철이 되려 동생을 대신해 이렇게 답한다.
“ 훈철인 친엄마 모를거에요. 아주 어릴때잖아요. ”
“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보라니까. ”
“ 새...새엄마 대체 왜 그러세요 ? ”
5학년 정도면 이쯤되면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나이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해지는 동철의 모습.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정면돌파라도 할 생각일까. 나연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 사실...너희들 친엄마가 간밤에 전화를 하셨어. ”
“ 네에 ? ”
그 말에 동철은 물론 훈철도 화들짝 놀라는 표정. 일단 나연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들려준다.
“ 사실 새엄마도 동철이,훈철이 친엄마에 대해 지금까지 아빠한테 이야기만 가끔 들
어봤을뿐 직접 만나본적은 없어. 실은 간밤의 통화도 아버지하고만 이뤄진거지 새
엄마하곤 통화도 못해봤으니까... ”
“ ...... ”
“ 어쨌든 지금 대구에 와 계시다는데 너희들 한번 보고 싶다고 하시더구나. ”
무슨일 때문에 와 있다는건지는 몰라도 여하튼 아이들 엄마의 의사가 이와같을진대, 행여 아이들이 나중에 이런 사실을 들었을 때 혹 생길지 모르는 갈등이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실대로 말해주는게 좋겠다고 판단한것인지. 헌데 나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헤 5학년 동철이 이렇게 말한다.
“ 싫어요 !!! ”
“ 동철아... ”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언성까지 한 옥타브 높여서 단정적으로 이렇게 말해버리는 동철로 인해 나연이 더 화들짝 놀랄 지경이다. 헌데 동철은 한술더떠 동생을 재촉하기까지 한다.
“ 훈철아, 너도 어서 말씀드려. 친엄마 만나볼 생각도 없다고. 넌 어차피 엄마 기억
도 없잖아. 그러면서 뭐... ”
심지어 친엄마 젖가슴이라도 만지듯 새엄마 젖가슴까지 스스럼없이 만지던 그런 훈철이 아니던가. 따라서 오히려 모정은 새엄마 나연에게서 더 느꼈을만하다고 생각한것일까. 허나 이건 아니다 싶은지 그런 동철을 새엄마가 만류한다.
“ 동철아 왜 그래. 훈철이도 자기 생각이 있을텐데...그러지말고 훈철이도 자기 생각
을 말해봐. ”
헌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훈철도 많이 혼란스러운것일까. 무슨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고 동철이 그런 동생을 거듭 다그치듯 재촉하자 나연이 동철을 다시금 만류한다. 아무래도 이러다 나이어린 훈철이 울기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지 나연이 그런 아이를 한번 안아주기까지 한다. 그리고 일단 다시 아이들을 차 뒷좌석에 태우는 나연. 허나 아직도 고민이 쉽게 해결되진 않아서인지 그녀는 여전히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그러자 동철이 그런 나연을 되려 재촉한다.
“ 엄마, 빨리 우리 학교나 데려다줘요. 이러다 진짜 지각하겠어요. 우리 아픈데도
없어요 !!! ”
일부러 그러는것인지 ‘새엄마’의 ‘새’까지 빼고 나연을 ‘엄마’라고 부르는 동철. 새엄마에서 ‘엄마’라고 바뀐 그 호칭을 듣자 순간 나연의 가슴이 요동치기까지 한다. 동철의 재촉이 거듭되자 하는수없이 일단 아이들을 학교부터 데려다주기로 결심한 나연. 그러나 이런 말을 잊지 않는다.
“ 그래 일단, 지금 너무 길게 이야기할일은 아닌 것 같으니...일단 학교부터 가자. 그
리고 그 문제는 학교 다녀와서 다시 상의해보던가. ”
일단 아이들을 친엄마와 만나주게 하는 문제는 확실하게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 듯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연.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나서는 돌아와서 성수에게 사실대로 밝힌다.
“ 아니, 당신은 뭐하러 쓸데없이... ”
허나 오히려 불쾌한 듯 화를 벌컥내는 성수. 되려 아내가 상황만 복잡하게 꼬이게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에서일까. 대놓고 볼쾌한 기색을 내비친다.
“ 뭐하러 애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 ? 괜히 애들 머릿속만 어지러워지게...그냥 우
리선에서 해결보면 되는 일이잖아. 근데 뭐하러... ”
“ 여보, 하지만 어차피 아이들도 알아야할 일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아
이들 의사구요. ”
“ 아니, 도대체... ”
헌데 ‘우리선에서 해결하자’고 했을진대 결국 아이들을 친엄마한테 보낼 생각이 없다는 소리 아닌가. 그래서 나연은 ‘그래선 안된다’는 식으로 계속 나오고 과연 아이들을 친엄마를 만나주게 할 생각이 없는 성수나 또는 오히려 앞장서서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는게 좋을 것 같다고 나오는 나연이나 둘 다 정말 100% 진심일지는 알기 쉽지 않은 상황. 일단 성수는 성수대로 침실에서 나연은 나연대로 혼자 집 앞마당을 거닐며 긴 시간 고민에 잠기는 모습이 계속된다.
결국 성수와 나연은 일단 두 아이를 앞에 불러놓고 아이들의 생각을 솔직히 들어보기로 했다. 어쨌든 이미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성수의 전처이자 아이들 친엄마가 전화가 왔고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이상, 차라리 온 가족이 모여 대책을 의논해보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헌데 아빠와 새엄마가 있는 자리에서 5학년 동철은 제법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 전 만나고 싶지 않아요 !!! ”
“ 도...동철아... ”
동철의 이런 태도에 되려 나연이 당혹스러울 지경. 뿐만아니라 동철은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동생 훈철을 다그치기까지 한다.
“ 훈철아 너도 뭐해 ? 어서 말씀드려. 친엄마 보고싶지 않다구. 넌 어차피 친엄마
기억도 안 난다고 했잖아. ”
“ 동철아 그럼 못써 !!! ”
결국 보다못한 나연이 그런 동철을 만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성수가 어쩔수없이 중재에 나서기까지 한다.
“ 그래 우선...훈철이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꾸나. 훈철이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기
회를 줘야지. ”
허나 성수와 나연이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해보라’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훈철은 여전히 말이 없다. 형 동철의 눈치라도 보는것인지. 사실 아이들 새엄마 오상희가 대구에 있겠다고 한 시간이 일주일이고 그 사이 한 이틀정도 시간이 지난것이니 시간이 많다고 할수도 없는 상황이다. 헌데 그러고보면 막상 그렇게 한밤중에 갑자기 집전화로 걸어온 상희는 이후엔 또 어떤 연락이나 전화도 없다. 어차피 성수나 나연이나 지금 상희의 연락처나 근황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 정히 그렇게 절실하다면 후속전화를 걸어주어야 자신들도 보다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상의를 해볼 것 아닌가. 답답함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단 성수는 동철과 훈철을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나연과 단둘이 다시 상의를 해보기로 한다.
“ 당신 생각은 어때 ? ”
“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요 ? ”
헌데 되려 이렇게 되묻는 나연. 따지고보면 아이들한테 친엄마 전화가 걸려왔음을 먼저 알려준 것이 나연인데 그런 나연이 지금은 또 왜 이러는것일까. 확실히 그와같은 행동들이 진심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것인지. 나연이 고민스런 표정을 짓다 이렇게 입을 연다.
“ 솔직히 전... ”
“ ...... ”
“ 아이들이 정히 친엄마를 만나보고 싶다면 제가 말리거나 막을수 있는 처지는 아니
라고 생각해요. ”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 ”
여전히 나연의 진심이 믿겨지지 않는것인지 성수가 이렇게 묻고, 그런 남편의 태도가 되려 답답한지 나연이 발끈한다.
“ 그럼 이 판국에 저더러 뭘 어쩌라구요 ? ”
“ 여보... ”
“ 전 지금 뭐 속이 편한줄 아세요 ? 그래요 뭐...저도 아이들 친엄마 만나는거 막을
수 있다면 막고도 싶어요. 하지만 그래봤자...나중에 그런 일들을 애들이 커서 알게
되면...절더러 뭐라고 하겠어요. 그 원망...그 설움...다 제가 받아내야 하는거잖아요.
제가 다 감당해야 하는거잖아요. 헌데 그런 절보고 대체 뭐 어쩌라구요. ”
역시 나연도 아이들을 친엄마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것은 본심은 아니었는 듯, 다만 결국 나중에 그로인해 아이들 원망을 들을수도 있다는 그 걱정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아내를 대체 어찌 달래줘야 하나. 나연도 나연대로 답답한지 급기야 울음까지 터트리는데 성수가 그런 나연을 달랠 방법을 찾지못해 그저 안절부절 하고 있다.
“ 몰라요 저도...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꼬일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어 !!! ”
“ 여보... ”
“ 내가 지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그래도 엄마잃고 외롭게
자란 아이들...엄마정도 모르고 자란 아이들...어떻게든 사랑으로 감싸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지금 내꼴이 대체 이게 뭐야. 엉엉엉엉~~~!!! ”
성수가 이런 나연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때 더 경악스런 상황이 벌어졌다. 제 방에 있을줄만 알았던 훈철이 어느새 침실에 들어와서는 아빠와 새엄마가 이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뒤늦게 알아챈 성수와 나연은 기겁할 수밖에 없고 성수가 먼저 벌컥 화를 낸다.
“ 훈철이 너 이녀석...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버르장머리없이...이게 대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야 !!! ”
“ 여보...여보 진정하세요 !!! ”
훈철에게 손찌검이라도 할듯한 기세인 성수라서인지 당황한 나연이 일단 그를 만류하고 그리고는 훈철에게 가서는 아이를 한번 안아준다.
“ 훈철아...방으로 가자. 방에가서...엄마가 재워줄게. ”
아직 잘시간은 아닌데 그래도 이런 어린아이를 달래주는데는 이게 최선이라 생각한것인지.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로 가서 아이를 눕힌 나연. 그리고 그 옆에 나연도 눕는다.
“ 훈철아... ”
무슨 생각인지 아이는 대꾸가 없고 나연이 어느새 웃옷을 풀어헤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엄마 젖 만져봐... ”
허나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라서일까. 평소같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새엄마 나연의 젖가슴으로 파고들던 그런 훈철이었을텐데 오늘은 망설이고 있다. 그러자 나연이 그런 아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 괜찮아. 새엄마 젖 만지는건 괜찮다고 했잖아. ”
결국 나연의 괜찮다는 말에 옆자리에 누운 훈철의 손이 자연스레 나연의 유방으로 향하고, 그런 아이를 보며 나연이 이렇게 묻는다.
“ 훈철아... ”
“ ...... ”
“ 엄마...보고싶니 ? ”
무슨 생각인지 여전히 대꾸없는 아이. 혹시 실어증에라도 걸린것일까. 걱정까지 될 판인데 그래서일까 나연은 그런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듯 한번 꼭 안아주며 뽀뽀까지 해주고. 그러자 아이가 한참만에 진심인듯한 입을 연다.
“ 보고...싶어요. ”
그랬구나 역시. 나연의 심경이 복잡해져온다. 여하튼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고 5년전에 친엄마가 집을 나갔으니 엄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려니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던것일까. 괜한 서운함과 서러움 또 한편으로는 어떤 억울함까지 겹쳐져 나연은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한편 이런 새엄마 나연의 태도에 당황한것일까. 아무 생각없이 나연의 유방을 만지작거리던 훈철이 천천히 손을 뗀다. 나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채 울먹이며 말한다.
“ 그래...친엄마 만나고 싶으면 만나... ”
“ ...... ”
“ 새엄마...괜찮으니까... ”
결국 아이들을 친엄마와 만나게 해주기로 결정을 했다. 한편 막상 그렇게 5년만에 전화를 해놓고는 성수든 나연이든 그녀의 현재 위치나 연락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수 없는 상황인데 이틀동안이나 후속 전화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던 상황에서 사흘이나 지나서야 상희는 전화를 해왔다. 성수는 일단 애들을 만나게 해줄 의사가 있음을 밝히면서 전처에 대한 항의도 잊지 않는다.
“ 그리고 그렇게 전화를 해놓고 그 뒤 아무말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 ? 하다못해 당
신 연락처라도 알아야 애들을 어디서 언제 어떻게 만나게 해줄건지 그런걸 상의를
하던가 말던가 할텐데말야... ”
“ 그날 당신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어버린거잖아. 난 또 그래서 당신이 아이들 만
나게 해줄 생각이 없나보다 하고 체념하려다가 혹시나 해서 다시한번 전화를 해 본
거지. ”
여하튼 그 사흘사이에 전남편 성수가 마음이 바뀐 것 같아 상희는 희망이라도 보는듯한 화색을 띈 목소리가 되었고, 아이들과 만날 약속장소를 정하면서 성수가 이와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 애들은 지금 집사람...애들 새엄마가 차로 데리고 갈거야. ”
“ 당신 지금 새 부인이 애들을 데리고 온다구 ? ”
어쩄거나 박성수의 전부인과 새부인 사이. 그리고 아이들의 친엄마와 새엄마 사이. 편할 수는 없는 사이 아닌가. 헌데 하필 그런 애들 새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니 상희는 다시 당혹스러워지고 성수가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한다.
“ 그럼 어떻게 하나 ? 난 어차피 운전할줄 모르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아직 초등학
교 다니는 어린애들을 지들끼리 길도 모르는 대구까지 내려가라고 할수도 없고...
그럼 당신이 문경까지 올래 ? ”
“ 아...알았어 뭐...그건 그럼 그렇게 해. ”
그래서 아이들과 만날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위해 나연과의 통화도 이루어졌다. 나연이나 상희나 피차 박성수의 전부인과 현부인인 처지에서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하게 된 셈. 주말에 대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약속 당일 나연이 동철,훈철 두 아이를 데리고 대구로 향했다.
“ 네가...동철이니 ? ”
어쨌든 실로 5년만에 아이들과의 상봉. 막상 약속장소에 들어서는 두 아이를 보자 상희도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생, 그리고 만 세 살도 채 되지 않은 그 두 아이를 두고 무작정 집을 나간게 5년전인데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으로 자란 두 아이를 보는 어미의 심정은 또 어떠하랴. 동철도 동철이지만 아직 세 살도 채 안된 어린 애기의 모습으로만 기억이 남아있을 훈철이라서인지 아이를 보자마자 그저 감격하여 와락 훈철을 끌어안고 만다.
“ 아이구...니가 훈철이었구나. 훈철아...훈철아...아이고...이 어린 것을 내가...이 어
린 것을 두고...내가 진짜 몹쓸짓을 했지. 아이고오... ”
그렇게 자책하는듯한 말을 입에 담는 상희. 한편 훈철은 훈철대로 막상 그렇게 제 친엄마의 품에 안기자 역시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한편 5학년 동철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다.
“ 그래...그간 어떻게 지냈니 ? 밥은 잘 먹고...새엄마는 어떠니 ? 너희들 구박하거나
하진 않아 ? ”
친엄마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걱정이긴 하지만 여하튼 아이들을 직접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성의까지 보이는 것을 보면 아주 막돼먹은 여자는 아니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상희는 들긴 한다. 동철과 훈철이 친엄마를 만나는동안 나연은 약속장소에서 좀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충 인근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산 출신인 나연에게도 대구는 첫걸음이라서 그런지 그런대로 흥미로운 경험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어느정도 시간을 보내고나서 아이들이 친엄마와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오자 나연은 아이들을 차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상희를 별도로 만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 생각했던것보다 젊은 분이네요. ”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기에 전화통화는 하긴 했지만 목소리만 그렇게 처음 들어봤고 직접 만나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 상희는 공연한 당혹스러움으로 이와같이 반응하고 나연이 그런 상희를 보며 대꾸한다.
“ 저도 어떤분인지 궁금하긴 했어요. ”
“ 그 사람이...잘해주나요 ? ”
공연한 시기나 질투심일까. 슬몃 이렇게 물어보는 상희. 나연이 좀 고민하는 듯 하다 이와같이 말한다.
“ 좋은분이세요...아버지처럼...큰오빠처럼 잘 해주는...마음도 넓고 따뜻하고... ”
마치 보란 듯이 이런식으로 말하는 나연을 보니 상희가 좀 어이없는지 피식 헛웃음을 터트린다. 사실 나연 역시 새엄마 밑에서 자란 그런 사춘기를 보낸 여자가 아니던가. 물론 그런 이야기를 지금 굳이 상희 앞에서 하고싶진 않겠지만 나연의 머릿속도 지금 많이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한편 나연도 나연대로 궁금하긴 한지 조심스레 이렇게 물어보기도 한다.
“ 근데 대체 어쩌다 이혼을 하신거에요 ? ”
“ 그냥...뭐...성격차이죠... ”
가만보면 이혼사유에 대해 제대로 말하기 난감한 그 무엇이 있을 때 대개 ‘성격차이’라고 둘러대는 것 같다. 헌데 원래 성수가 나연에게 한 이야기는 ‘전통 공예 기능장이라고 하니까 돈 많은 직업인줄 알고 결혼했다가 막상 실상이 그렇지 않은걸 알고 실망해서 집을 나간모양’ 이라고 하지 않던가. 일단 적어도 나연이 한 몇 달이라도 겪어본 성수는 폭력을 쓴다던가 성격이 괴팍한 면이 있다던가 그런 남자는 분명 아니었다. 술은 좀 하는 편이긴 하지만 대체로 큰 문제는 없는 그런 사람. 그렇다면 결국 경제적 문제로 갈라섰다는 성수의 주장이 맞는편으로 봐야하는것인지. 오죽하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두 어린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을까. 그 생각을 해보니 나연도 일단 성수말이 맞는 것 같다는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같은데, 여하튼 나연도 나연대로 상희에 대한 궁금함은 남은 것이 있어 몇가지 질문을 더 한다.
“ 그럼 지금은 어디 사세요 ? ”
“ 남양주에서...지금 남편과 함께 살아요. 지금 남편은 대학교수죠. ”
“ 대학교수님이시라고요 ? ”
사실 요즘은 대학교수도 흔해빠진 직업이 된지 오래이지만 20대 중반의 나연도 아직은 세상물정을 모른다면 모르는편에 속한다고 봐야 하는지라 여하튼 돈도 그런대로 잘 벌고 사회적 지위도 갖춘 그런 사람과 사는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긴 한다. 나연이 그런 상희에게 한가지 부탁을 한다.
“ 가끔 연락정도는 하죠. ”
“ 예 ? ”
“ 뭐...지금은 어쨌든 제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고...또 아직은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의 일이 어찌될지는 모르는거잖아요. 그러니...혹시 나중에라도 그런 문제는
상의를 할 일이 있거든 해봐야 할 것 같아서...그래서요. ”
일단 휴대폰 연락처야 이미 주고받은 상태일거고 집주소까지 알려달라는 나연의 부탁. - 그렇다면 나연은 지금 (혹시 앞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최악의 경우엔 아이들을 친엄마한테 보내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의미인것인지 – 헌데 의외로 상희가 좀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연이 ‘사람일은 모르는것이니까 훗날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면서 거듭 상희를 설득하자 결국 마지못해 자신의 집 주소까지 나연에게 건네주긴 한다.
“ 엄마, 잠깐만요. ”
헌데 이제 그만 상희와 헤어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려 하는데 마침 가야하는 방향이 같아서 나연의 차 있는곳까진 함께 오게 된 상희. 갑자기 동철이 차에서 나와 상희에게 달려온다.
“ 잠깐...할말이 좀 있어요. ”
“ 할말이 있다고 ? 나한테 ? ”
나연은 나연대로 당황하고 상희로선 아이한테 어떤 기대감이라도 생길만한 상황이긴 한데 일단 동철은 상희를 나연과 차가 있는곳에선 가급적 멀리 떨어진곳까지 제 엄마를 잡아 이끌고 졸지에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골목까지 오게 된 상희. 대체 갑자기 왜 그러나. 아니면 5년만에 만난 엄마한테 무슨 특별한 선물이라도 주려는것인가. 잠시동안이나마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순간이긴 한데 헌데 동철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입을 연다.
“ 엄마, 전 어차피 이제 다 큰 5학년이잖아요. ”
“ 그래, 5학년...우리 동철이도 벌써 그렇게 자랐구나... ”
새삼 다시 감회젖은 말을 입에 올리기도 하는 상희. 허나 동철의 말은 뜻밖이었다.
“ 그러니 전 상관없지만 훈철이까지 혼란스럽게 하진 말아주세요. ”
“ 뭐라구 ? ”
순간 당황하는 상희. 동철의 말이 이어진다.
“ 전 다 컸지만 훈철이는 아직 어린아이잖아요. 아직 정서나 가치관,판단력 같은게
온전히 다 자라지 않은 아이라구요. 그러니 그런 훈철이가 온전한 정서나 가치관이
몸에 배일때까진 훈철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
“ 동철아, 대체 그게 무슨말이니 ? ”
이제 5학년인 동철도 ‘정서’니 ‘가치관’이니 그런 단어는 어디선가 제법 들어본적이 있는지 그런 표현들을 거창하게 늘어놓았고 따라서 상희 입장에선 큰아들 동철의 이런 태도가 더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동철은 다짐이라도 받아놓으려는 듯 거듭 이렇게 말한다.
“ 나중에 훈철이도 더 크고 자라면 제가 훈철이랑 상의해서 적절한 기회가 있을 때
어머니한테 연락을 취해보던가 할께요. 그러니 그때까진 좀 기다려주세요. 저는 상
관 없지만 아직 어린 훈철이까지 혼란스럽게 하는일은 만들어주시지 말란 소리에
요. ”
동생을 돌보는 형이나 누나가 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아는 선배나 어른이 된것같은 착각에 빠지는것일까. 5학년 동철의 동생을 걱정하는 이런말은 어찌보면 당돌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좀 어이없어 보이기도 하고 뭔가 많이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긴 하다. 여하튼 동철의 말의 요지는 이렇게 갑자기 자기들을 만나고 싶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찾아오지 말란소리 아닌가. 그것도 자신은 괜찮지만 훈철이까지 혼란스럽게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 상희는 순간 멍한 표정으로 동철을 바라보고 있고 용무를 마친 동철은 저벅저벅 나연의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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