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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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블랙핑크 제니 (10.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채영이 이야기 

                                                                             - 응답하라 ! 1985 

 



 채영이 한바탕 난리를 치는 바람에 그만 태일이 혼절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의료진의 응급조치로 태일은 몇시간만에 깨어나긴 했지만 이미 병약해진지 오래인 태일. 바로 그런 상황에서 채영이에게만 죽기전에 꼭 할말이 있다며 애타게 불렀던 태일이 아닌가. 그런일이 있은 일주일여후에 태일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편 채영은 짐을 챙겨 집을 나갔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상황에서 태일의 가족과 함께 계속 있는다는 것이 소름끼치고 몸서리쳐질 지경이었다. 짐을 챙겨 나가버린 채영. 어차피 서울에서 쭉 직장생활을 하며 살아온 그녀이기도 했지만 여하튼 완전히 태일의 나머지 가족과도 절연할 생각으로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이후 채영은 서울의 일터에도 또 군산의 집에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은채 행방이 묘연했다. 무엇보다 채영의 문제는 사실상 태일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태일이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다른 가족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진 채영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될 터이고 그런 상황에서 태일이 세상을 떠났으니 장례는 옥희와 나머지 그녀의 친 자녀 네명(3녀1남)하고만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채영은 대충 서울에선 좀 떨어진 모처의 여관에 머무르고 있었다. 태일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사실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머리를 도무지 주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막상 모든 것을 알고나니 그동안 태일의 집 큰딸로 살면서 있던 모든일 서울에서 돈벌어 동생들 뒷바라지 한답시고 겪었던 모든일들. 그런것들을 생각하면 그저 채영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무엇보다 그럼 자신의 친부모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태일은 실제 어린 채영이 죽은 상태에서 논산의 과수원 근처에서 길을 잃고 우는 아이 하나를 주워 데려왔다지 않는가. 허나 따지고보면 사실상 유괴나 다름없는 상황. 헌데 그러다 채영에게 문득 떠오르는일이 있었다. 

 “ 에이...설마... ” 

 허나 채영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80년대 초,중반에 – 어느덧 10년전 일이다. - 3년간 가정부로 일했던 김진동 사장과 백승주 여사 내외의 집. 그 집에도 어릴적 잃어버린 딸이 하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것도 논산 과수원이 승주의 친정이었는데 그곳에 딸아이를 데리고 놀러갔다가. 그리고 무엇보다 승주가 늘 채영의 등을 밀어주며 하던 말이 있었다. 

 “ 우리 경숙이도 살아있으면 딱 너만할텐데...그리고 경숙이 등도 딱 너 같았어. 점 

  이나 흉터하나 없이 깨끗하고 매끄러웠는데... ” 

 ‘그럼 설마 ?’. 무엇보다 승주가 그렇게 늘상 세 살 때 잃어버린 딸로 인해 가슴아파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지는 채영. 허나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일. 일단 논산에 가서 문제의 ‘과수원’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사실 시골에 대략 읍이나 면단위 별로 웬만한 과수원은 한두개쯤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 그리고 그 시절 과수원 하나 정도 보유하고 있으면 잘사는 집이다. - 따라서 막연히 ‘논산의 과수원’이라고 하면 생각보다 찾는 단서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따라서 일단 채영은 ‘딸 혹은 손녀를 잃어버린적이 있는 과수원집’을 중심으로 탐문해보기로 했다. 일단 이 시절만 해도 젊은 사람들은 모를까 나이많은 노인들은 오래사는 토박이들이 많으니 그런분들을 중심으로 ‘혹시 60년대 초반경 두세살정도된 딸이나 손녀를 잃어버린 과수원집을 아느냐 ?’고 수소문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대로 똑똑한 면이 있는 채영이다. 

 “ 아이를 잃어버린 과수원이라면...혹시 백두현 선생집을 말하는거요 ? ” 

 얼마를 수소문을 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는듯한 대략 60-70대 정도 되는 노인 하나를 찾을수가 있었다. 노인의 반응은 이와 같았다. 

 “ 아따 그렇다고 생전 부모집 한번을 안 찾아오는 그런 딸이 워딨다 그려. ”  

 “ 예에 ??? ”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는 충청도식 화법을 그대로 보여주는 노인. 어리둥절해 하는 채영을 보며 차분히 설명을 해준다. 

 “ 외동딸이 하나 있는디 서울서 좋은 사람 만나 시집을 갔다하지 않것소. 그래서 잘 

  사는지 어쩌는지 가끔씩 지 신랑이랑 애들 데리고 몇 번 오는걸 보긴 혔는디... ” 

 “ 그런데요 할아버지 ? ” 

 “ 아따...그렇다고 지 부모집 한번을 안 찾아오는 그런 딸이 어딨다 그려... ” 

 “ 할아버지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어쨌든...잃어버린 딸이 있는 과수원집 그 

  런곳이 있기는 한거에요 ? ” 

 “ 30년도 더 된 일인데 그걸 워찌안댜 ? ” 

 30년전이니 그런일에 대해 기억을 못한다는것인지 아니면 30년전에 여하튼 그런일이 있었다는 힌트를 주는것인지 지금까지 자라면서 충청도쪽과 별 인연이 없었던 채영으로선 알아듣기 힘든 말투. 일단 노인의 말이 이어진다. 

 “ 그...이쁘장한 애기랑 같이 있던 젊은 아줌마가 있지 않았것소...아 근데 없어졌댜 

  ... ” 

 “ 그러니까...딸을 잃어버린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 ” 

 “ 나머지는 거 백선생집 찾아가 물어보시던가 하쇼. 난 잘 모른께...저기 OO천 뒤쪽 

  으로 쭉 가다보면 있을게요. ”  

 어찌되었거나 백씨성을 가진 그런 과수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런 집에 딸이 있었는데 서울로 시집을 갔고 그런 여자가 딸을 과수원 근처에서 잃어버린적이 있는건 사실이란 소리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애매해 결국 관공서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자초지종과 사연을 모두 설명하면서 호적대장등 관련있는 서류들을 모두 찾아보며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 여기 백두현씨가...60년대까진 논산에서 과수원을 운영하시던분이 맞네요. 그리고 

  딸이 하나 있고...백승주라는 딸만 하나 있는걸로 나오네요. ” 

 다른건 몰라도 60년대 초반에 과수원을 하던 사람이 백씨성을 가졌다는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외동딸 이름이 승주. 그러면 그 이상은 더 확인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채영은 충격과 함께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야 만다. 

 “ 그럼 내가...그럼 정말 내가... ” 

 생각해보니 정말 기가막힌일 아닌가. 다른곳도 아니고 자신이 3년을 가정부로 일했던 그 집 주인 아저씨,아주머니가 자신의 친부모였다니. 게다가 그 집 아이들이 그럼 자신에게 동생이라는 소리 아닌가. 경태,경수,경옥 그 세 아이와 3년을 함께 지내며 있던일. 그 모든 것들이 떠올려지며 채영의 머릿속은 다시금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때 김진동의 가족은 더 이상 이전에 살던 강남 아파트에 살지 않고 다른곳으로 이사를 한 상태다. 이때가 이미 90년대 중반이니 분당,일산등의 신도시가 만들어져 많은 이들이 그곳으로 이주를 시작할때이긴 하지만 진동의 가족의 경우엔 그곳으로 이사한 것은 아니고 좀 더 여유있는곳에 2층짜리 단독주택을 짓고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진동의 사업은 그때보다 더 번창해진 상태고 장남 경태는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재수를 해서 지방에 있는 대학에 겨우 들어간 경수의 경우엔 이 무렵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가 있었다. 그리고 막내 경옥도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있을때인데 일단 그러한 변동사항을 전혀 알리 없는 채영은 이전에 자신이 가정부일을 했던 그 진동의 집으로 찾아가보았다. 허나 이미 그곳엔 다른 가족들이 살고있는 상황. 어리둥절해하는 집주인에게 채영은 이와같이 물었다. 

 “ 실은...예전에 김진동 사장님께서 사실 때 가정부를 하던 여자인데요...군산이 고 

  향인 이채영이라고...실은 김진동 사장님께 중요한 상의할일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 ” 

 초면의 모르는 사람이고 게다가 이사를 간 진동네의 뒤를 이어 이곳에 사는 새 식구에게 자신의 사연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일단 그와같이 둘러댔고, 일단 다행히 새로 이사온 가족들은 이전 김진동 사장에 대해 알기는 하는지 연락처와 주소를 가르쳐주긴 했다. 

 “ 아, 그...자녀가 셋이던 그 사장님 ? 알아요. 한 4년전쯤에 이 집 팔고 다른곳으 

  로 이사간걸로 아는데...혹시 모르니 새 주소와 연락처를 저희에게 남겨주시긴 했어 

  요. ” 

 만약 중간에 집주인이 두어차례 정도 바뀌었다면 진동네에 대해 모르는 집일수도 있는데, 다행히 김진동네가 이사를 가고 그 뒤에 바로 새로온 집이 지금까지는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진동네는 그때 그렇게 경숙이를 정리하기로 하고 아이를 죽었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물건을 다 태워버리고 천도제까지 지낼 때, 그러면서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그야말로 경숙이 문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싶은 생각에 다른곳으로 ‘이사를 갈’ 생각을 그때부터 했었다. 어차피 어느덧 경태도 대학생, 경수도 – 그 난리통에 그해엔 대학입시를 못 치긴 했지만 – 곧 대학생이 될 터이니 이런식으로 변해가는 가정환경에 따라 생활,주거 환경도 좀 변화를 줄 필요가 있긴 했다. 여하튼 겸사겸사 이사를 가기로 했던 진동의 가족. 허나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다고 바로 가게되는 것은 아니고 집도 팔아야 하고 새로 이사할만한 곳도 알아봐야 하니 그 준비기간이 한 1년여정도 걸렸고 그 뒤에 집이 팔려 이사를 간게 벌써 4년전 일인 것이다. 여하튼 다행히 새 집주인이 이전에 살던 진동내외 연락처를 받아놓은게 있어 그것을 받아갖고 바로 채영은 떠났다. 사실 예전에 일하던 가정부가 그때 일하던곳을 나중에 찾아오는 것 자체가 웬만하면 잘 벌어지지 않는 일이라 – 벌써 10년전 일이다. -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 하면서 새 집주인 가족도 의아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긴 한데 일단 그렇게 주소를 받아갖고 떠난 채영. 주소만 안다고 바로 위치까지 파악할 수는 없는일이라 시간이 제법 걸려 마침내 진동네 가족이 새로 이사한곳을 찾아낼수가 있었다. 

 확실히 진동네는 서울 도심에선 다소 벗어난 다소 한적한 공간에 새로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2층짜리 주택을 짓고 살고 있었다. 뒤에 산도 있고 해서 그런대로 경치도 좋고 쾌적한 공간인데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가기엔 거리가 좀 먼게 흠이라면 흠이다. 여하튼 채영은 뭔가 설레는 마음으로 김진동 가족의 새 집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실 아직 진동의 가족과 확실하게 가족이 맞는지 확인을 한것도 아닌데 진동네의 새 집이 채영에겐 벌써부터 ‘이제부터 여기가 내가 살 집’이란 생각이 드는것일까. 묘하게 흥분되고 부풀어오르는 가슴으로 집 대문까지 달려가보았다. 그리고 벨을 눌렀다. 

 “ 누구세요 ? ” 

 진동네서 가정부로 일한게 벌써 10년전 일이니 바로 인터폰을 받은 사람의 목소리를 누군지 구분하긴 힘들었다. 일단 남자목소리긴 한데 채영은 ‘뭐라고 답해야하나’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 

 “ 저어...경숙이에요... ” 

 바로 잃어버린지 31년이 지난 그 이름. 부모님이 그토록 애타게 찾고 기다렸던 그 애달픈 이름 ‘경숙이’를 떨리는 목소리로 부른 채영. 헌데 이상하다는 생각이라도 든것일까. 상대는 이렇게 답했다. 

 “ 누구라구요 ? ” 

 “ 경숙이라니까요. 저에요 엄마... ” 

 사실 인터폰을 받은 것은 남자인데 그만큼 경황이 없었던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엄마’라고 부른 채영. 잃어버린 딸 때문에 눈물짓던 그리고 자신의 등을 밀어주며 ‘어쩌면 이렇게 잃어버린 경숙이 등처럼 매끄러울까. 흠이나 티 하나 없이’ 그렇게 되뇌이던 백승주 여사의 모습이 바로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시금 채영은 이렇게 부른다. 

 “ 저 경숙이에요 엄마...경숙이가 엄마 찾으러 왔어요. ” 

 헌데 인터폰이 바로 끊기고 말았다.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벨을 눌렀는데 일단 다시 인터폰을 받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 아빠...엄마...아니면 경태 ??? 혹시 경수니 ??? ” 

 “ 누구에요 ? ” 

 상대는 뭔가 경계하는 듯 그리고 살짝 화가난듯한 목소리로 반응을 하고 채영이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 저 경숙이라구요...경숙이... ” 

 허나 다시 ‘철컥’하고 인터폰이 끊겼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채영. 혹시 내가 집을 잘못 찾아온것인가 싶어 이전 집의 새 주인이 적어준 주소를 다시금 확인해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 인터폰을 눌렀다. 

 “ 아니, 누구에요 도대체... ” 

 혹시 ‘경숙’이를 자처하는게 너무 황당해서 이러는것일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그래서 자신의 본래 신분을 밝히기도 한다. 

 “ 저...채영이 기억나세요 ? 저...한 10년전에 김진동 사장님 강남 사실때 그때 가정 

  부로 일했던... ” 

 “ 누구요 ? ” 

 “ 채영이요 !!! 10년전에 사장님 댁에서... ” 

 허나 인터폰은 다시 끊기고 말았고 하는수없이 채영이 다시 벨을 눌렀다. 그러나 이번엔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다싶어 다시 몇 번이고 벨을 눌러보았다. 그러니 여전히 반응이 없다 다시 누군가가 받는듯한 소리가 들리긴 했다. 

 “ 당신 누군데 이런 장난 치는거야 ? 도대체 누구야 !!! 한번만 더 이런 장난치면 바 

  로 경찰 부를거야 !!! ” 

 “ 저...채영이라니까요...시...실은 채영이가 경숙이에요. 채영이가 경숙이라구요 사장 

  님 !!! ” 

 허나 다시 끊기는 인터폰 소리.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헌데 따지고보면 두차례나 ‘가짜 경숙’ 소동을 겪었던 그런 진동의 가족들 아닌가. 그걸 생각하면 무작정 ‘경숙’이를 자처하며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면 진동네 가족들은 일단 경계하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바로 그 경숙이를 마음속에서 정리하고 잊기 위해 아이의 물건과 사진까지 다 태우고 천도제까지 지내고 이사까지 온 그런 진동의 가족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모든게 이미 채영이 진동네 가정부 일을 그만둔 이후에 생긴 일이니 채영이야 지난 10년동안 진동네 가족에서 벌어진 일은 알수가 없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일단 근처 공중전화로 가서 이번엔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 저...죄송하지만 김진동 사장님 댁인가요 ? ” 

 “ 아닌데요. ” 

 더 무슨말을 물어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혹시 상대방은 어떤 경계를 하는것일까. 다시 두 번세번 전화를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채영은 혹시 자신이 뭘 잘못 알았나 싶어 다시 이전집을 찾아가 진동네 새로 이사간 집 주소와 연락처를 다시금 확인해보기까지 했다. 사실 진동네가 새로 이사간 집에서 강남의 아파트 단지까진 거리가 꽤 되는데 따라서 채영 입장에선 제법 고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강남 아파트의 새 집주인은 자신들이야 이전 김진동 사장이 적어준 주소와 연락처 그 이상은 아는바가 없다고 말하고 채영 혼자만 강남 아파트와 새로 이사했다는 김진동의 집을 몇 번이고 다시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밤늦은 시간. 몇 번이고 그렇게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찾아온 새로 이사를 갔다는 김진동의 집. 사실 이쯤되면 아무래도 진동네 집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수 있을터인데 – 게다가 강남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또 다른 곳으로 이사갈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젠 불안함에 지쳐가기까지 하는 채영. 다시 진동네 새 집 벨을 누르자 이번엔 인터폰을 받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집에서 직접 나왔다. 다름아닌 진동과 승주 내외. 

 “ 아...아빠...아니 저...아저씨,아주머니... ” 

 당황하고 놀라서 ‘아빠’란 단어가 입에서 먼저 튀어나와버린 채영. 그러나 바로 이건 아니다 싶은지 호칭을 정정하긴 했는데 일단 채영을 알아본 진동이 이렇게 묻는다. 

 “ 채영이 아니냐. 네가 그런데 어떻게 ? ” 

 “ 아...아저씨...저 일단 들어가서 말씀드릴께요.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자신이 경숙이을 밝히면 너무 놀라고 황당해할 것 같아 집안에서 차분히 이야기 나누는게 좋겠다 생각한 채영. 헌데 이번엔 승주가 나선다. 

 “ 니가 낮부터 장난을 친거냐 ? 경숙이가 어쩌구 저쩌구... ” 

 “ 아...아주머니... ” 

 헌데 아까 전화나 인터폰을 받은 사람은 분명 남자였는데 아까 경숙이라고 밝힌 사람이 채영임을 이미 알고있는 진동과 승주. 이번엔 진동이 묻는다. 

 “ 너냐 !!! 아까 낮에 인터폰으로 경숙이 어쩌구 하던게 ? ” 

 “ 네...네 맞아요. 아저씨...아니 아빠... ” 

 헌데 채영의 이런 태도를 본 진동의 손이 갑자기 번쩍 들려졌다. 그리고는 냅다 채영의 뺨을 때린다. 너무 놀라 황망해하는 채영을 보며 진동이 이와같이 말하다. 

 “ 이젠 너까지 우리한테 사기를 치고 우롱할 작정이냐 ? 한 3년동안 가정부로 가족 

  처럼 대해줬더니 그걸 빌미로 우리한테 사기를 치려들어 !!! ” 

 


 진동과 승주는 바로 채영을 집에서 다소 거리가 떨어진 한 공터로 끌고갔다. 그리고 거기서 채영을 밀어버린다. 

 “ 당장 우리 앞에서 꺼지거라 !!! ” 

 “ 아...아저씨...대체 왜 그러세요 ? ” 

 “ 왜 그러다니 ? 지금 그 이유를 몰라서 물어 ? ” 

 진동과 승주의 이와같은 반응을 도무지 이해할길 없는 채영. 허나 진동에 이어 승주까지 그런 채영을 보며 불같이 화를 낸다. 

 “ 이미 너같은 것한테 두 번씩이나 사기를 당한 우리다. 하물며 또 이런일에 우리가 

  당할거라 생각했어 ? 천하의 못된 것 같으니. 아무리 우리가 가족처럼 잘 대해주고 

  예뻐해줬기로 우릴 아주 능멸하려 들어 ? 어디서 너 따위가 가짜 경숙이 행세를 하 

  려고 들어 !!! ” 

 실제 두차례 가짜경숙 소동을 겪었고 그 일로 받은 정신적 상처와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진동내외. 그로인해 진동은 쓰러지고 승주는 음독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차라리 경숙이를 잊기로 경숙이를 죽은걸로 생각하고 마음에서 지우기로 했던 두 사람이다. 차라리 정말 경숙이가 죽었다면 죽은 영혼이 우리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면서 천도제까지 치러주었던 두 사람. 그렇게 경숙이를 지우기로 하고 살아온 두 사람인데 이제와서 그것도 10년전에 가정부로 일했던 여자애가 찾아와서는 경숙이 행세를 하려드니 이 또한 얼마나 기가막히겠는가. 그래서 더더욱 분노의 감정이 끓어올라 채영을 야멸차게 내치려 하고 하지만 이미 진동의 집을 떠난지 10년 세월이 흘렀던 채영 입장에선 그동안 진동네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턱이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기가막히고 억울한 일이다. 게다가 알고보면 어릴 때 자신을 유괴한 유괴범이었다는 사실을 죽기전에 자백해버린 이태일이기 때문에 그로인한 분노로 참을수가 없어 어찌보면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이태일의 가족과는 연을 끊을 작정까지 하고 찾아온 친부모이건만 이제 되려 그 친부모에 의해 내쳐질 상황이니 이 또한 얼마나 기가막힌일인가. 채영이 그래서 더더욱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 아저씨...아주머니...그게 아니고 제가 진짜 경숙이가 맞아요. 그...아주머니도 아시 

  잖아요. 어쩌면 그렇게 제 등이 하얗고 매끄럽다면서...그...어릴 때 잃어버린 경숙 

  이도 점도 흉터도 하나없이 하얗고 매끄럽기만 했다며...경숙이가 살아있다면 딱 저 

  만할거라 하셨잖아요. 그래요. 제가 그 경숙이가 맞아요. 엄마가 논산 외갓집에서 

  저 세 살때 잃어버리고 그동안 애타게 찾으셨던 경숙이가 이렇게 찾아온거란말이에 

  요. 엄마 !!! 엉엉엉~~~!!! ” 

 이런 채영의 모습을 보니 다시금 정신이 어질어질해질 지경인 승주. 허나 이미 두 번의 사기사건으로 얼마나 상처가 많았으며 그로인한 음독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런 승주던가. 그래서 승주 역시 다시한번 독하게 마음먹는다. 

 “ 좋은말로 할 때 그만 돌아가거라. 그래도 3년간 우리집에서 가정부로 일한 옛 정 

  리를 생각해서 이 정도로 봐주는것이니...더 우릴 기만할 생각말고 어서 돌아가버려 

  !!! ” 

 “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건데요 ? 논산 과수원일을 제가 어떻게 기억하고...어릴 

  때 엄마일 도와준답시고 과일깎아주려다 손가락 베고...그런걸 제가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어요. 정작 함옥희(이태일의 아내) 그 여자는 제가 어릴 때 그런일이 있었는 

  지 알지도 못한대요 !!! 그러니 그게 제가 바로 경숙이란 증거가 아니고 뭐겠어요 ? 

 ” 

 “ 아니 근데 이 기집애가 정말 !!! ” 

 진동이 더 불같이 화를 내며 채영의 뺨을 후려갈긴다. 바로 5년전에 사기를 쳤던 황규철 전무가 그와같이 않았던가. 자신의 밑에서 10년 가까이를 일하면서 어릴 때 잃어버린 경숙에 대한 정보를 세세히 파악하고는 그와같은 사기극을 벌인 황규철 전무. 허니 가까이 지낸 정도도 아닌 3년을 한 집에서 살면서 진동네 집안 사소한것까지 모두 파악해버린 그런 가정부라면 얼마나 더 절묘하고 치밀한 사기를 칠수 있겠는가. 그걸 생각하니 10년전 자신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여자가 아주 작정하고 우리집에서 한몫 챙겨갈 작정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진동 입장에선 그야말로 ‘제2의 황규철’이 나타난것만 같은 느낌. 한때 가까이 했던 이가 그만큼 속속들이 알게된 집안 사정을 바탕으로 사기를 치는 똑같은 상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더더욱 채영에겐 분노의 호통만을 내려칠뿐이다. 

 “ 그러고보니 네가 우리집에 머물면서 아주 단단히 뒷조사를 했었구나. 세상에...우 

  린 널 친 가족처럼 대해주려 했는데...그걸 빌미로 이런 사기극을 벌이려 하다니.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거야 ? 언제부터 작심하고 우릴 기만할 음모를 꾸몄던거야 ? 

 ” 

 그러고보면 한 3년정도 가정부일을 하다 어느날 갑자기 새 일터가 생겼다면서 떠났던 채영이 아니던가. 채영이야 그때 우연히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고향친구의 추천으로 ‘점집에서 경리,사무같은 일을 대신 봐주면 돈을 더 잘 벌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일터를 옮기기 위해 가정부 일을 그만둔것이지만 진동내외 입장에선 혹시 채영이가 그쯤부터 어떤 변심을 하여 자신들을 우롱하고 기만할 음모를 꾸미기 위해 계획적으로 떠났던 것이 아닌가. 그런 의심까지 들 지경이다. 그야말로 소설같은 추정이긴 하지만 진동내외 입장에선 충분히 그런 의심까지도 해볼수 있을터. 채영으로선 그저 기가막힐 뿐이다. 

 “ 아저씨,아주머니. 제가 정말 경숙이가 맞아요. 아빠,엄마가 논산 외갓집에서...엄마 

  가 친정집 과수원에서 세 살때 잃어버렸던 그 경숙이...그 경숙이가 이렇게 찾아온 

  거란말이에요. 이태일 그 인간이 뒤늦게 자백했어요. 사실은 길 잃어버리고 헤매다 

  니는 아이를...그런 저를...유괴해간거래요 엄마,아빠. 그러니까 사실은 진짜 죽일X 

  은 이태일 그 인간이에요 !!! ” 

 “ 이제 하다하다 네 친부모까지 팔아먹으며 사기를 칠 작정인게냐 ? ” 

 하긴 죽은 자신들의 친딸 채영이를 대신해서 길가다 우연히 본 길을 잃고 헤매던 아이를 유괴 가짜 채영이로 둔갑시켰다는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고 허점도 많다. 혹시 아주 갓난아기라면 모를까 그래도 이미 만 세 살 가까이 된 아이를 슬쩍 바꿔치기한다고 태일은 그렇다치고 그 아내 옥희가 그걸 몰라볼수가 있을까. 혹시 아이를 잃어버린 충격에 실성이라도 한 여자가 아닌 다음엔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허나 그만큼 어릴 때 채영이와 경숙의 분위기가 – 아주 똑같이 닮진 않았더라도 – 대충 비슷했다는 이야기도 될법한데, 여하튼 그렇게 바꿔치기된 것이라는 채영과 경숙.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서인지 진동과 승주는 채영의 말을 더더욱 믿지 않는다. 

 “ 그만 사기치고 어서 돌아가거라. 멀쩡한 네 부모님까지 죄인 만들어버리지 말고 

  그만 돌아가 !!! 그래도 우리가 옛정을 생각해서 경찰까지 안 부르고 이정도로 해 

  두려는거다. 그러니 어서 이만 돌아가 !!! ” 

 거듭 야멸차고 차갑게 나오는 진동과 승주. 채영은 그저 기가막힐 따름이다.  

 “ 아빠,엄마...저 진짜 경숙이가 맞아요. 경태도 경수도 경옥이도 그러니까 제 친동 

  생들이 맞는거구요. 정말 제가 우연찮게 하늘이 도우시기라도 했는지 아빠,엄마 

  집에서 가정부 일이라도 하게 되지 않았다면...평생 얼굴도 존재도 모르고 살뻔한 

  동생들...경태,경수한테 제가 누나고 경옥이한테는 제가 언니가 되는거라구요 아빠 

  ,엄마...엉엉엉엉~~~!!! ” 

 “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돌아가지 못해 !!! 정말 경찰 부르기전에 돌아가버려 !!! ” 

 사실 유전자 감식기능이 생긴 시대라면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을 확인할수 있겠지만 그와같은 유전자 감식기능이 보편화되는건 최소한 9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 (* 대체로 공영방송의 아침프로에사 하는 가족찾기 프로그램 같은데서 가족을 만났을 때 정히 미심쩍은 경우 ‘유전자 감식’으로 확인을 해보자‘는 식으로 확인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유전자 감식기능‘이란게 있다는게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아직은 90년대 중반이니 그런 감식기능으로 채영이 정말 진동과 승주내외의 어릴 때 잃어버린 친딸이 맞는지를 확인하려면 최소한 5년 이상은 지나야 가능한 일. 채영은 결국 승주와 진동 앞에서 억울함만을 거듭 호소하다 두 사람이 여전히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체념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채영이 군산으로 내려왔다. 친부모인 진동과 승주는 여전히 자신이 30년전 잃어버린 딸 경숙임을 믿어 주지를 않고, 그런 상황에서 사실은 자신을 30년전 유괴해간 유괴범 이태일의 가족들과 다시 살기도 영 찝찝한 그런 상태. 그럼에도 딱히 갈곳도 마음붙일곳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채영이 그래도 어떤 미련이 남았는지 군산 집으로 다시 내려온 것이다. 사실 이때는 둘째 지영도 셋째 수영도 다 시집을 가 전주에서 남편과 함께 신혼살림을 차린 상태였고 넷째 미영조차도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집에는 이제 세상을 떠난 이태일의 아내 함옥희 여사와 막내아들 영철 둘밖에 남아있지 않다. 무엇보다 옥희가 3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산 남편 이태일을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허전하고 공허한 심리를 쉽게 달래지 못하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막내 영철이는 형식적으로는 삼수생이지만 사실상 대학을 포기한 상태로 지 친구들과 놀러만 다니기에 바빠 그런 막내를 위해 대학가는 것을 포기했던 네명의 누나들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지 오래인데 따라서 그런 상태에서 옥희의 심리와 건강상태는 더더욱 염려되는 때이기도 하다. 마침 이때 전주에 있던 둘째 지영이 잠시 집에 와 있기는 했다. 지영과 수영이 이제 엄마와 말썽꾸러기 영철이 단 둘만 남은 집에서 엄마 옥희의 안위가 영 걱정이 되어 가끔씩 이렇게 번갈아가며 군산집을 찾아오곤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영은 결혼한지가 이미 3년이 지나 그 사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동갑내기 남편과의 사이에 이미 딸까지 하나 낳은 상태인데 그런 상태에서 엄마 옥희를 좀 살펴보러 아이를 데리고 와있는 상태. 헌데 그때 집안으로 들어서는 채영을 보고 몹시나 놀랐다. 

 “ 언니... ” 

 역시 언니도 엄마가 걱정이 돼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지영은 놀라면서도 반가와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직전 그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그 이후 일절 행방을 찾을수가 없던 채영이 아닌가. 심지어 아버지 장례를 치를때도 나타나지 않았던 큰딸 채영. 그래서 지영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도대체 아버지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무슨말이 오갔던것인지 그것 역시 더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럴 때 나타난 채영. 태일이 죽은지는 어느덧 한달여가 지난뒤의 일이다. 

 “ 언니 도대체...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서울에 아무리 연락을 해봐도 전화도 받지 

  않고...도대체 어디 있었던건데... ” 

 언니가 서울에서 한동안 가사도우미 업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진 지영도 대충 들었다. 허나 그렇게 마련한 채영의 사무실에 전화를 해봐도 연락도 없고 그래서 더더욱 궁금하고 걱정되었던 지영. 한편 채영은 기력이 모두 소진되기라도 했는지 집 마루로 들어서서는 그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는다. 

 “ 언니, 왜 그래 ? 어디 아파 ? 도대체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 ” 

 다른건 둘째치고라도 그날. 그토록 큰딸 채영이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노환으로 병세가 많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한사코 찾던 채영. 그 딸과 결국 단둘이 남은 상태에서 가족들이 모두 자리를 비켜 주었는데, 그리고 그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던 것 아닌가. 그 문제부터 지영이 지금 묻고싶은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허나 걱정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지영을 채영은 묘한 미소를 띤채 바라본다. 그리고 입을 연다. 

 “ 호레이쇼... ” 

 “ ??? ” 

 “ 이 세상에 네가 모르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단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가정부등의 일을 했던 채영이지만 세익스피어 희곡 햄릿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는 얼핏 들어본적이 있는지, 아니면 언제 한번 틈이 있어 그 유명한 희곡 햄릿 연극공연을 한번 본적이라도 있는지. 햄릿이 아버지의 유렁이 나타나 자신이 죽게된 경위를 말하고 사라지자 이후 친구 호레이쇼에게 말해주는 그 유명한 대사. 그것을 읊조리고 있는 채영.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 언니, 어디가 ? ” 

 다시 발걸음을 옮겨 집을 나서려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채영을 지영이 걱정되어 붙잡는데 채영이 그런 지영을 뿌리친다. 

 “ 난 이제 그냥 혼자있고 싶으니 좀 놔둬. ” 

 “ 언니...그게 도대체 무슨...엄마라도 한번 보고 가. 엄마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힘들어하고 계신데... ” 

 그렇게 말하는 지영을 바라보는 채영. 

 “ 이지영... ” 

 “ 응, 언니. ” 

 “ 이제 엄마도 동생도 다 니가 책임져라. ” 

 “ 뭐 ? ” 

 “ 니가 이 집 가장이니까 이제 니네집 문제는 니가 알아서 하라구. 그러고보니 처 

  음부터 그랬었어야 하는건데...아...아닌가...생각해보니 그게 아니구나...아...아니다 

  여하튼 잘 지내... ” 

 어쩌면 이대로 남은 이태일의 가족들과는 완전히 절연할 생각이라도 한 듯 집을 나서고 있는 채영. 지영은 영문을 모르는채 채영을 붙잡으려 하지만 지영이 그럴수록 채영은 그런 지영을 더 거세게 뿌리치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 채영은 집을 나와서 동네 뒷켠에 있는 한 야산 중턱에 와 있다. 거기에 한 작은 무덤이 있다. 채영이 그 앞에 와서는 풀썩 주저앉는다. 

 “ 그러고보니...당신이었군요. ” 

 사실 그 난리가 벌어지고나서 일시적으로 이태일이 혼절을 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 무렵에 몰래 채영이 다시 병실에 들르긴 했다. 아직 해결해야할 용무가 남아있긴 한것인지. 그때 물은 질문이 있다. 

 “ 무덤...어디에요 ? ” 

 “ 뭐라구 ? ” 

 “ 채영이...나 말고 3년전에 당신 실수로 그만 죽었다는 당신 진짜 큰딸 채영이...그 

  애 무덤 어디에 있냐구 ? ” 

 “ OO산에 묻어주었다. ” 

 “ 뭐라구요 ? ” 

 순간 좀 황당해하는 채영의 모습. 태일의 말이 이어진다. 

 “ 너희들 데리고 추석이나 명절 때 성묘가곤 하던 OO산을 알게야. 내 아버지,어머 

  니. 그러니 지영이등 다른 아이들에게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시는분. ” 

 비단 이태일의 가족뿐 아니라 태일네가 사는 마을 뒤쪽에 사람이 죽으면 가족들이 그 시신을 묻곤 하는 뒷산이 하나 있긴 하다. 그리고 명절떄 그 뒷산에 들러 마을주민들은 성묘를 하곤 하는데, 따라서 태일의 가족들도 태일의 부모님 즉 아이들 조부모님 성묘는 늘 그곳에서 해오곤 했는데 그 산 올라가는 길 한 중간쯤 무렵에 작은 바위가 하나 있고 그 뒤쪽에 그보다 작은 무덤 하나가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듯한 작은 무덤 하나. 다만 생각보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곳이라 비단 태일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주민들도 성묘길에 그 쓸쓸한 무덤을 보면 묻곤 하였다. 

 “ 아빠, 저건 근데 누구 무덤이에요 ? ” 

 허나 다른 마을주민들이야 무덤의 사연을 알턱이 없고, 채영의 아버지 이태일은 무덤의 진실을 이제야 밝힌다. 

 “ 그게 사실은 진짜 채영이의 무덤이란다. 그날 그 사고가 나고나서 바로 내가 뒷산 

  에 데려가 대충 그쯤에 묻어두었지. 그리곤 종종 틈이 나면 나 혼자 가서 그 불쌍 

  한 아이 제물도 좀 차려줘 차례나 제사도 지내주고 무덤도 돌보며 그리 살아왔단다 

  . ” 

 “ 그러니까...늘 보던 그 임자없는 작은 무덤이 진짜 당신딸 채영이 무덤이라고 ? 그 

  눈에 잘 띄는곳에 있던 그게 ??? ” 

 생각해보니 진짜 소름끼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채영은 그저 기가막히기만 했다. 그 때로는 무심히 또 때로는 곁눈질로 바라보았던 그 알 수 없는 무덤의 주인이 실은 진짜 채영이었다니. 그리고 그 진짜 채영이가 묻혀있는 근처를 명절이나 때가되면 가짜 채영인 자신이 가족들과 함께 그곳을 지났다는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다. 그래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도 기가막히고 분해서 태일을 그대로 병실에 팽개쳐놓은채로 채영은 다시 뛰쳐나왔다. 그 일주일후 태일이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나서 바로 태일이 알려준 그 진짜 채영이의 무덤을 찾은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당신이...진짜였어요 ? 나에요...그동안 내가 당신 행세를 지금까지 하며 살았네요. 

 ”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막힌 일이라 진짜 채영이의 무덤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고 있는 가짜 채영이 아니 김경숙. 30년전 몸이 불편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행상을 하며 돈을 버는 그 아내를 대신하여 아이를 돌봤던 이태일. 그러다 부주의로 그만 죽게한 아이가 여기 묻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짜 채영이라도 급히 만들어 유괴해온 30년전 논산 과수원 근처에서 길잃은 어린아이 경숙이 유괴를 당해 30년을 가짜 채영이로 살았으면서 진짜 채영이 앞에 무릎꿇고 사과하고 있는 것이다. 

 “ 미안해요 채영씨...하지만... ” 

 무덤이야 답을 할 이유가 없고 다만 경숙의 한바탕 넋두리가 이어질뿐이다.  

 “ 차라리 당신 신세가 부럽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난 이제 경숙이로도 채영이로도  

  살아갈수 없는 몸이 되었어요. 당신 아버지가 30년전 저지른 그 엄청난짓 때문에   

  이제 난 채영이로도 경숙이로도 살아갈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에선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허나 경숙은 아랑곳없이 쏟아지는 비를 그냥 맞으며 한바탕 울부짖고 있다.  

 “ 당신은 그래도 저 세상에서 편했을거 아냐. 차라리 나도 30년전에 그때 논산 외가 

  과수원에서 길 잃고 헤맬 때...그때 무슨 변이라도 당해 죽었더라면 차라리 편했을 

  까. 그 생각이 다 든다구. 차라리 그때 나도 죽었더라면...이렇게 채영이로도 경숙이 

  로도 살아갈수 없는 이상한 신세가 되진 않았을거 아냐 !!! ” 

 “ ...... ” 

 “ 말해봐 !!! 이제 난 어쩌면 좋냐구 !!! 채영이로도 경숙이로도 살아갈수 없는 신세 

  가된 난 이제 어떡해야 하냐구. 난 이제 어쩌냔말야. 난 이제 어쩌면 좋냐구 !!! 어 

  어어엉~~~!!! ” 

 비통하게 울부짖고 있는 채영 아니 김경숙. 어느새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고 ’우르릉 쾅쾅‘ 천둥번개까지 내려치고 있다. 빗물에 흠뻑 젖은 것은 이제 비단 경숙의 몸뿐만 아니라 채영의 무덤이기도 한데 어느덧 빗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리기까지 하는 채영의 작은 무덤을 부둥켜안은채 가짜 채영이로 30년을 살았던 김경숙이 비통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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