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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블랙핑크 제니 (9)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채영이 이야기 

                                                                - 응답하라 ! 1985 

 


 “ 황규철 너 이 X !!! 이 천하의 나쁜자식 !!! 도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 도대체 네 

  가 나한테 어떻게 이런짓을 할 수가 있어 ? ” 

 격노한 진동은 날이 밝는대로 가짜 경숙을 앞세워 규철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무엇보다 진동은 극도의 배신감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다른사람도 아닌 적당히 자신의 집 사정을 알고있는 주변인 정도도 아니고 그래도 한 10년 가까이 자신의 밑에서 일을 했던 황규철 전무가 가증스럽게 ‘연극단 단장’ 같은 허위신분으로 위장까지 해서 어떻게 이런짓을 벌인단 말인가. 누구보다도 어린시절 잃어버린 딸로 인해 가슴아파하는 자신과 아내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또 심지어 어떨땐 규철을 집으로 불러 직접 어린시절 채영의 사진이며 자신과 아내와 함께 그 채영이와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며 잃어버린 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달래며 나누기까지 했었는데, 그걸 이런식으로 이용해먹다니. 도무지 참을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휴가를 나온 경태야 어차피 군대에 복귀해야 하는 상태에서 아내는 충격이 너무 커 어떻게 될지몰라 집에서 쉬게하고선 자신이 가짜경숙을 앞세워 찾아간 사무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론 현재 열악했음인지 규철의 사무실은 서울에선 좀 떨어진 위성도시에 위치한 낡은 상가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단 진동의 집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음모를 꾸민 ‘비밀 아지트’라고 해야 뎌 정확하겠지만 어찌되었거나 그런 규철이 있는곳으로 찾아간 진동. 사무실안으로 들이닥치자마자 바로 규철의 멱살을 잡았다. 

 “ 황규철 너 이 X !!! 도대체 나한테 무슨짓을 한거야 ? 다 알고 온거니까 똑바로 

  말해...도대체 왜 네 X이...도대체 왜 네 X이 나한테 이런 엄청난짓을 벌여 ? 네X 

  이 도대체 나한테 왜 ? ” 

 규철이야 바로 자신을 10년전 그렇게 매몰차게 해고시켜 내치고 그 뒤로 자신에 대한 구명은커녕 면회한번 와주지 않은것에 대한 앙심을 품은것이지만 적어도 그 일은 자신이 원리원칙대로 행한일이라고 생각하는 진동. 그래서 더더욱 규철에 대한 분노만 폭발할 수밖에 없었고 헌데 규철은 의외로 뻔뻔스럽고 차갑게 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한 10년 가까이를 함께 일했던 김진동 사장이건만 마치 오늘 진동이란 사람을 처음 보는양, 아니 어쩌면 황규철의 기억에 애초부터 김진동이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 이 사람이...당신 뭐야 ? 당신 뭔데 남의 사무실에 아침부터 쳐들어와 행패야 !!! 

  이거 무단침입으로 고소감인거 몰라 !!! ”  

 “ 뭐...뭐가 어째 ? 너 이 X...어쨌든...이봐요 아가씨. 그...연영과 학생이었다는 아 

  가씨가 와서 말해봐요. 이 아가씨가 직접 다 자백했으니 당신귀로 직접 들어봐.  

  다행히 우리 경태가 밤중에 공중전화로 네X과 몰래 통화하는 것을 엿들었길래 망 

  정이지 하마터면...이 천하의 나쁜자식... ” 

 “ 아니, 근데...이 아저씨가 뭘 잘못 먹었나. 그리고 이 아가씨가 뭐 ? 이봐요 아가 

  씨. 나 알아요 ? 우리 언제 만난적이 있기라도 해요 ? ” 

 ‘모릅니다’, ‘기억이 안납니다’ 하는식의 국회 청문회 증인들의 잡아떼기식 말투가 한동안 아이들조차 흉내내는 유행어가 된게 불과 1년전(88년)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바로 그런 청문회 증인이라도 연상케 하듯 진동은 물론 진동이 데리고 온 가짜경숙까지 전혀 모른다는 듯 나오고 있는 규철. 그러고보니 진동은 너무 경황이 없어 가짜경숙 행세를 한 연영과 학생의 이름조차 여태 물어보지 못했는데 어찌되었든 그 연영과 학생조차 모른다는 듯 나오는 규철을 보니 진동은 물론 가짜경숙조차도 기가막힐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여기서 연극단원 면접(?)을 보고, 그리고 나중에 바로 그런일을 꾸미기 위한곳이라는 것을 알고 규철에게 지시를 받고 음모를 함께 꾸몄던 그 장소가 바로 여긴데 진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자신조차 모른다는식으로 나오니 진동은 물론 연영과 학생 입장에서도 그저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진동이 규철에게 분명히 말한다.  

 “ 어쨌든 나 네 X 절대 가만 못 둔다. 다른건 몰라도...감히 이런짓을 내게 벌인 네 

  X 절대 가만 못둬...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네X이 나한테 이런짓을...다른 사람도 

  아니고...잃어버린 아이 문제 때문에 그렇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10년을 곁에서 

  지켜보기까지 한 네가 어떻게 이런짓을 !!! ” 

 그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던 규철도 일단 더는 할말이 없는것일까. 이와같이 나오는 진동의 태도에 살짝 체념이라도 한 듯 별다른 반응이나 대꾸는 없이 자신의 책상의자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고 진동은 규철을 고소해버렸다. 사실 규철도 진동을 무단침입에 폭행으로 맞고소를 해버려 일이 좀 복잡하게 꼬이긴 했는데, 그러나 맞고소나 마나 일이 그렇게 복잡하게까지 갈 일은 없을 갑작스런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사무실까지 찾아가 격노하면서 혈압이라도 오른것일까. 아니면 충격이 너무 컸던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그만 거리에서 쓰러지고 만 것이다. 가짜경숙의 경우엔 정체가 다 탄로난 마당에 진동의 집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 헌데 어차피 자기짐이 지금 진동네에 있긴 하니 한번 더 들러야 하긴 하다. - 그렇다고 규철의 사무실에 머물기도 애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는 가운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가운데서 그만 쓰러져버린 진동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바로 신고 진동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헌데 진동이 병원에 입원을 한 상황에서 집에서도 또 다른 사달이 벌어지고 말았다. 1차 가짜경숙 사건이 있은지 3년만에 이번에 또다시 2차 가짜경숙 사건까지 겪은 승주 역시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던 것이다. 무엇보다 3년전의 가짜소동때문이라도 ‘이번에는 틀림없겠지. 3년전 가짜때 의심하던 둘째 경수가 밝혀낸 진짜(?)이니 이번엔 정말이겠지’ 하고 철석같이 믿고 품에 안고 눈물흘리며 감격했던 이번의 경숙도 가짜였다니. 정말이지 세상 자체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커져 도무지 무섭고 두렵기만 해 이제 외출이고 사람만나는 일이고 뭐고 어딜 돌아다닐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승주가 음독자살을 시도해버린 것이다. 

 출퇴근을 하는 파출부 아주머니가 집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상황이 끝나버릴수도 있었던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바로 파출부 아주머니가 병원에 신고 승주를 입원시키기도 했지만 진동이 쓰러지자마자 벌어진 승주의 음독자살 시도니 아이들이 받은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휴가를 나왔다가 부대에 복귀한 첫째 경태도 그렇거니와 둘째 경수의 경우엔 지금 대입 학력고사(보통 12월 중순경에 치렀음)를 한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중요한 시기인데 그런 상황에서 경수조차 시험도 정상적으로 치를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 집안에 벌어지고 만 것이다. 

 


 공교롭게도 진동과 승주 두 사람 다 같은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어차피 병원에 입원한 사유가 각기 달라서 다른 병동을 쓰기야 하겠지만, 부부가 같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사례(남편은 고혈압으로 쓰러짐, 아내는 음독자살 시도)도 웬만해선 그리 흔하게 벌어질수 있는일이 아니라 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진동은 뒤늦게야 아이들이 말해줘 승주도 같은 병원에 입원중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진동이나 승주나 둘 다 친척도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고3이라 입시를 준비해야하는 경수와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 경옥이 번갈아 아빠,엄마가 입원한 병실을 오가며 분주하게 부모님을 간호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아직 6학년인 경옥은 그렇다쳐도 사실상 경수는 대학입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 그나마 파출부 아주머니도 자신이 일하는 집안에 이런 우환이 닥쳤는데 남의 일처럼 손놓고 있을수도 없어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만한 것은 옆에서 도와주고 있긴 한데 – 가령 군대로 복귀한 장남 경수에겐 파출부 아주머니가 대신 급전(急電)을 쳤다. 허나 휴가에서 복귀한지 불과 하루만에 일반 사병이 다시 집안의 우환 때문에 귀가조치를 시켜줄수 있는지는 부대 관계자들이 결정하는 문제지 아이들이나 파출부 아주머니가 마음대로 결정할수 있는일은 아니다. 

 그렇게 기가막힌 상황이 벌어진 가운데 입원한지 2-3일만에 그런대로 상태가 호전이 된 진동이 아내 승주의 병실로 가 보았다. 승주도 아이들이 말해줘 남편의 입원사실을 알았으니 이제야 서로를 보며 부둥켜안고 한없이 고통스럽게 울어댈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기가막힌일 아닌가. ‘가짜 경숙’한테 두 번이나 속은것도 그렇거니와 그 충격으로 쓰러진 남편에게 또 그렇다고 자살시도까지 한 아내에게 서로를 원망하기도 하고 감싸주기도 하면서 한참을 그렇가 차마 눈뜨고는 못볼 한바탕 목불인견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왜 자꾸 우리집안에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하늘을 신을 원망하고도 남을것만 같은 그런 상황이다. 한참만에야 겨우 진정을 한 진동이 아내 승주를 보며 차분하게 말한다. 

 “ 여보...내 가만히 생각해봤는데말야...나도 병실에서 혼자 한참을 고민해봤어. 그런 

  데... ” 

 아직 남편말의 의도를 알길없는 승주. 의아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진동의 말이 이어진다. 

 “ 우리가 그냥 경숙이를 단념하는게 어떨까 ? ” 

 “ 여보 ? ” 

 순간 무척 놀라고 충격받은 듯 나오는 승주. 진동이 일단 그런 승주를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간다. 

 “ 생각해보니...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우리가 진작에 경숙이를 놓아주었어야 하는건 

  데...지금까지 미련을 못 버리고...어릴 때 그 시골마을에서 사라져버린 아이를 너무 

  오래 미련을 못 버리고 찾아다녔으니...그래서 자꾸 이런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 ” 

 “ ...... ” 

 “ 생각해봐. 우리가 진작 경숙이에 대한 미련을 버렸으면...진작에 경숙이를 사망신 

  고를 하고 천도제라도 지내주고 그랬다면...왜 이런일이 벌어졌겠어 ? 애초에 우리 

  가 경숙이를 죽었다 생각하고 살았더라면 어떻게 그런 가짜들한테 터무니없이 당하 

  는 그런일이 연거푸 벌어졌겠냐구. ” 

 사실 승주의 경우엔 2차 가짜사건보다는 1차 가짜사건때 받은 충격과 상처가 더 컸다. 2차 가짜사건 같은 경우엔 여하튼 김진동에게 앙심을 품은자가 벌인 음모니 흔하게 벌어질수 있는일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런일은 아니지 않는가. 허나 1차 가짜사건 같은경우엔 그야말로 전혀 터무니없는 정신질환자를 정말 자기 친딸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품에안고 했으니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는 백승주 여사다. 반면 진동은 1차 사건때보단 이번 2차 사건이 그래도 한 10년 가까이 자기 밑에서 일한 황규철 전무가 벌인 음모였다는데 받은 충격과 분노가 더 컸던것인데, 어느쪽이 되었든 차라리 애초부터 경숙을 단념하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진작에 장례라도 치러주고 살았더라면 왜 이런일이 벌어졌겠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긴 경숙을 잃어버린게 벌써 언제적 일인가. 60년대 초반에 벌어진 일이니 벌써 2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6.25때 헤어진 이산가족들이 33년을 소식하나 연락하나 알아볼길 없다가 공영방송사의 도움으로 상봉을 해서 전국적 화제가 된게 83년도의 일이긴 했지만 진동내외가 경숙이를 잃어버리고 가슴앓이를 해온 시간도 벌써 거기에 견줄만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허나 이건 전쟁때 가족을 잃은 경우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여하튼 부모의 부주의로 어릴 때 잃어버린 아이. 그 아이를 찾을길이 없어 26년 세월을 그토록 힘들어하고 가슴아파 했던 것 아닌가. 뿐만 아니다. 사실 60-70년대는 물론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대개는 가난한 사람이 돈 많은 집 재산을 노리고 그런 집의 아이를 유괴해서 금품을 요구하는일이 잊을만하면 터져 많은 학부모들의 치를 떨게하고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그런 시대다. 무엇보다 그런 유괴사건으로 실종된 아이들 상당수가 시간이 지난뒤에 죽은 것으로 확인된 것을 생각하면 진동내외도 그런쪽으로 치를 떨지 않을수가 없었던 시간이다. 사실 애초에 진동내외도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의뢰를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경숙의 행방은 찾을길이 없었고 그렇게 26년을 살아온 진동내외. 그러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가짜사건을 두 번씩이나 당하고보니 ‘차라리 경숙이를 단념하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다. 

 “ 여보, 하지만 그건... ” 

 허나 승주는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는지 반대의사를 밝혔다. 진동이 그런 승주를 설득했다. 

 “ 여보, 잘 생각해봐. 정말...정말 만약 경숙이가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상태 

  라면...만약 혼백이나 영혼이란게 정말 있다면...저 세상에서 그 어린 경숙이는 우릴 

  얼마나 원망하겠나 ? 응 ? ‘아빠,엄마. 난 지금 여기 있는데 도대체 엉뚱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지금 뭘 하시는거에요 ?’ 하면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겠어. 그렇게 울 

  고있을...그러면서 때가 돼도 지금껏 제삿밥 한번 못 얻어먹고 굶주려있을 우리 경 

  숙이를 한번 생각해보자구. ” 

 사실 진동내외는 평상시 종교나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평소 그런걸 잘 알지도 못하는 진동의 입에서까지 ‘차라리 천도제라도 지내주자’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경숙이가 정말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면 그야말로 이미 죽고 없는 아이를 지금껏 찾아다니며 ‘언젠가는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닌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 또한 기가막힌 일일터. 차라리 이쯤에서 경숙이를 놓아주고 천도제를 지내주든 제삿밥을 차려주든 그게 아이를 위해 더 낳은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 진동이 거듭 승주를 설득한다. 

 “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내 언젠가 사업을 하면서 만난 어떤 불교 

  신자도 그런말을 하더라. ‘산 사람이 죽은사람한테 너무 미련가지면 죽은이가 오히 

  려 이승에 너무 미련이 생겨 떠나지 못할수도 있다’고. 그러니 죽은 사람은 빨리 

  잊어버리고 단념하는게 죽은이의 혼백을 위해 나은 일일수도 있다고. 그러니 정말 

  그런게 사실이라면 경숙이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이만 경숙이를 잊고 보내주는게 낫 

  지 않겠어 ? 안그래 여보 ? ” 

 진동이야 사업을 하면서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테고 그런 과정에서 한두번쯤 만나봤을법한 불교신자의 이야기를 그런식으로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동의 설득이 이와같자 경숙도 조금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다. 정말 내세나 영혼같은게 존재한다면 그래서 이미 죽고 없는 그 어린 경숙이 - 두세살 때 잃어버린 아이다. - 의 혼령이 지금까지 자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부모님 때문에 떠나지도 못하고 제삿밥도 못 얻어먹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면 그 상상을 해본다면 그 또한 얼마나 기가막힌 일이겠는가. 그러니 차라리 경숙이를 이쯤에서 단념하는게 그 어린 경숙이의 혼백을 위해 나을지도 모른다는 일. 진동의 거듭되는 설득에 결국 승주도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두 사람 다 일주일쯤 뒤에 그런대로 회복이 되어 퇴원을 했는데, 그리고도 한 두어주 정도 심신의 안정을 집에서 취한뒤 본격적으로 경숙이를 이쯤에서 보내주는 작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지금 경숙이의 시신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고 공동묘지 같은데 접수를 하는것도 문제가 있을수 있으니 차라리 그런 묘역 근처 어디 빈터 작은곳을 파서 경숙이의 유품(?)을 태워 묻어주고 작은 무덤이라도 만들어주기로 했다. 경숙이의 어린시절 사진이 담겨있는 앨범, 그리고 경숙이가 어릴 때 입던 옷가지와 이부자리등 지금까지 진동내외가 보관하고 있던 경숙이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 태워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사실상의 경숙이의 ‘장례의식’을 치르기로 하고 승주가 평소 알고지내는 불교신자인 동료의 도움을 받아 스님까지 한분 청해 천도제까지 치러주기로 했다. 

 “ 경숙아아...경숙아아~~~!!! ” 

 마침내 경숙의 장례와 천도제를 치르기로 한날. 경숙이의 사진과 어릴적 물건들을 다 태우며 아내 승주가 울부짖었다. 진동은 아내처럼 처절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 역시 울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아이를 뭣하러 지난 26년 세월을 붙잡고 있었단 말인가. 그걸 생각해보니 더더욱 가슴아프고 비통해지는 것이다. ‘이젠 정말 경숙이가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어느덧 거의 다 태워져가는 경숙이의 어릴적 물건들을 바라보며 처절하게 울고있는 승주. 그리고 진동. 잠시후 경숙이의 무덤앞에 간단한 제물(祭物)을 차려놓고 절까지 올린다. 

 “ 경숙아...미안하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하는건데...그동안 얼마나 배고팠니 경숙 

  아 ? 가서 저 세상에서...맛있는 까까도...맛있는 우유도 마음껏 먹고 즐기렴. ” 

 그렇게 경숙의 무덤 앞에서 마치 살아있는 아이한테라도 말하듯 하며 울고있는 승주. 못난 부모 때문에 지금까지 제삿밥도 못얻어먹고 천도제 의식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했을 그 어린 아기를 생각하니 그저 비통할 수밖에 없는 부모마음. 덤덤하게 천도제 의식을 치르는 스님 곁에서 진동과 승주 내외는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울고 있었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 30대 중반에 다섯 살 연하의 함옥희를 만나 결혼한 이태일의 나이는 어느덧 70을 넘겼다. 90년대 중반이지만 이때도 나이 70을 넘겼으면 사실상 고령으로 쳐주던 시절이다. 무엇보다 젊은시절 고생을 많이 한데다 원래 몸도 성치못한 태일이라서인지 이때는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있었다. 가족들은 사실상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태일을 병원에 입원시킨채 초조히 그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편 이때 나이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채영은 90년대 초반까지 점집에서 경리,사무,가사일등을 봐주는 일을 더 하다가 그 무렵에 일을 그만두고 다시 다른곳에서 가정부 노릇을 1-2년 더 한뒤 이때쯤 손수 ‘가사도우미 업체’를 만들 생각을 하고 서울에서 더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90년대 중반쯤이면 바로 가정부니 파출부니 하는 말대신 ‘가사도우미’란 말이 새로 생겼을때고 무엇보다 아예 전문적으로 ‘가사도우미’를 교육,훈련시켜 잘사는 집에 인력을 공급하는 그런 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한때인데 채영도 그래서 지난 십수년 가사도우미 노하우를 살려 관련 사업에 나서볼 생각을 한 것이다. 태일내외 입장에선 ‘이제 동생들도 다 컸고 하니 그만 시집가라’는 성화를 수십번도 더 했을 나이이긴 한데, 어떻게보면 채영은 이제 고향 군산보다 서울에서 혼자 자유롭게 자기할일 하면서 사는게 더 좋은지 언제부터인가는 고향에 내려오는일도 더 드물어졌고 – 오히려 점집에서 일할때는 휴가를 자주내줘 그땐 고향에 자주 들렀다 – 서울에서 자기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한편 이때 둘째 지영과 셋째 수영은 모두 결혼을 한 상태. 지영은 90년대 초반쯤에 직장생활을 하다 알게된 사람과 결혼을 했고 수영도 그보다 한 2년쯤 뒤에 소개팅을 통해 만난 사람과 결혼을 했다. 채영의 부모 입장에선 아무리 그래도 언니가 먼저 시집간뒤 동생들이 시집가는게 낫지 않겠느냐며 약간 난색을 표했지만 이미 이 시대 애들은 그런걸로 서열 따질 세대가 아니다. 무엇보다 채영 자체가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는 듯 서울에서 자기 하고픈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채영의 부모도 큰딸의 혼사문제 만큼은 사실상 포기해버린 상태가 되었다. 

 한편 막내 영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대학 재수를 거쳐 삼수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원래 학교다닐 때 공부를 소홀히 한 편이라 삼수에도 기대는 어려워진 상태다. 따라서 영철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군대에 다녀온뒤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심 하고는 있었지만 차마 그 속내를 가족들에게 밝히진 못하고 있었다. - 따지고보면 바로 그 막내인 아들 영철이를 대학을 보내야하는 문제 때문에 누나 넷이 전부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든것인데 그런 누나들의 희생을 무색하게 만들만큼 영철은 대학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한 상태로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다니며 인생을 즐기는 그런쪽으로 20대 초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 그나마 군대라도 다녀올 생각은 하고 있으니 기특하다고 봐야할판이다. 하긴 부모가 빽을 써서 군대를 면제시켜줄수 있을만큼 대단한 집안도 아니고 오히려 늦게 본 막내아들 대학보내는 문제 때문에 누나들이 전부 대학을 포기할정도로 열악한 집안환경임을 생각해보면 영철 입장에선 어차피 군대는 빨리 다녀오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게 더 자연스러울수도 있다. - 솔직히 2-3년 정도 군대를 갔다오는게 날라리들에겐 ‘현실’을 잠시 피해갈수 있는 도피처의 의미가 되어주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어가고 있는 이태일. 그런 병석에서 채영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 채영아...어어...채영아... ” 

 “ 여보, 진정하세요. 의사선생님께서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 

 “ 채영아...채영아...채영이에게 꼭 할말이 있어... ” 

 “ 여보, 차라리 그럼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대신 전해드릴테니까... ” 

 “ 글도 모르는 사람이 대체 뭘 전해준다고... ” 

 “ 당신도 참... ” 

 하긴 태일은 어쨌든 중학교까지는 나온 사람이지만 옥희의 경우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닐 환경이 아닌 시대에 자라났기 때문에 글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간단한 전달사항이나 메모 같은 것은 딸들이 대신 적어주거나 할수도 있는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일은 계속 채영이만을 찾고 있다. 

 “ 채영이에게 꼭 할말이 있어...채영이한테 꼭 전해야할 말이 있으니...채영이를 불러 

  달래도 그러네. ” 

 하는수없이 옥희는 지영등 다른 딸들을 불렀다. 그리고 이와같이 말한다. 

 “ 서울에 언니한테 빨리 연락을 좀 해라. 아무래도 아버지가 언니한테 직접 전하고 

  픈 중요한 말씀이 있으신 모양이야. ” 

 어쨌거나 집안에선 동생들을 늘상 챙겨야하는 큰딸이었고 또 아버지하고 사이도 그만큼 각별하다면 각별한 딸이었다고 할수도 있으니 그런 큰딸에게 별도로 하고싶은 말이 있는 경우라면 이해못할일은 분명 아니다. 무엇보다 이때는 나이든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젊은 사람들은 이미 ‘삐삐(호출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던 시절. - 더욱이 영철이 같은 날라리과라면 오히려 지 친구들과 놀러다니며 연락을 취하기 위해 삐삐를 더 필수품으로 휴대하고 다닐 시절이다. 어찌되었거나 호출기를 사용하든 뭘 사용하든 가급적 빨리 서울에 있는 언니에게 연락을 취할 것을 다그치는 함옥희 여사. - 헌데 어차피 호출기란게 이쪽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해야 그 번호를 받고 당사자가 연락을 해올 수 있는 구조니 상대방이 호출기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하튼 일단 집에서 온 호출기 번호는 받아봤을 채영. ‘조만간 내려가겠다’는 전화를 집으로 했고 그리고 얼마후 채영이 내려왔다. 긴 이야기 주고받을시간이 없다는 듯 엄마와 동생들은 채영을 바로 아버지가 입원해계신 병원으로 안내했다. 

 “ 아버지...좀 어떠세요... ” 

 병색이 완연한 모습의 태일을 보고 진심 걱정되어 눈물이 고이는 채영. 그러고보면 지금까지 내가 한 몇 년 아버지한테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자책감까지 드는 순간. 헌데 일단 태일은 채영이외에 다른 식구들은 모두 나가보라고 한다. 

 “ 어여들 나가봐. 채영이한테 긴히 할말이 있대두 그러네. ”  

 “ 여보... ” 

 도대체 얼마나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일이길래 다른 식구들은 다 나가보라고 하는것인지. 심지어 의료진에게까지 괜찮으니 한두시간정도는 들어오시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한 태일. 가족에게까지 이리 당부한다. 

 “ 어디가서 식사라도 하면서 천천히 있다 와요. 난 그동안 채영이에게 할말이 있으 

  니까... ” 

 그렇게 가족들도 의료진도 모두 나가버린 상태에서 단둘이 남은 태일과 채영. 헌데 그런 상태에서 태일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려한다. 

 “ 아버지...진정하세요. ” 

 이 정도의 노환이면 사실 화장실 가는것도 가족이나 다른이들의 부축이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헌데 그런 상태에서 한사코 일어나려는 태일. 채영이 도와드리겠다고 하는데도 한사코 거부하는데 이미 몸 상태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결국 일어나려는 행동은 몇 번이고 해보다 실패하고 만다. ‘틀렸구나’ 하는 생각에 태일은 결국 그 부분은 체념하고 그대신 한바탕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채영 입장에선 ‘아버지가 대체 왜 이러시나 ? 정말 몸이 많이 안 좋으시구나’ 그런 걱정밖에 할수 없는 상황이기도 한데 한참만에야 태일이 천천히 입을 연다. 

 “ 아가씨... ” 

 “ 네 ??? ” 

 이게 갑자기 무슨소린가. 아가씨라니 ? 채영이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태일이 울먹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 죄송합니다 아가씨. 이 늙은이가 아가씨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 

 “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아가씨라니 ? 대체 누구더러 하시는 말씀이 

  세요. ” 

 “ 채영이는 죽었습니다. ” 

 “ 네에 ? ” 

 “ 채영이는 이미 30년전에 이 세상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가씨와 

  채영이를 바꿨습니다. 아가씨는 채영이가 아닙니다. 아가씨를 낳아주신 부모님은 따 

  로 계십니다. ” 

  

 사연은 대충 이랬다. 원래 다리도 몸도 불편해서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을수도 고기를 잡을수도 없는 몸이었던 이태일. 그래도 용케 어떻게 좋은 사람을 만나 지금의 함옥희와 결혼 지금까지 이른것인데, 어차피 이태일이 정상적으로 돈을 벌수 없는 몸이기에 한동안은 옥희가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보통 화장품이나 여자들 쓰는 장신구 따위를 파는 행상으로 대략 전북 북부지역과 충남 남부지역 정도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던것인데 첫째 채영이 태어나고도 한동안은 계속 그 일을 했다. 헌데 아무래도 아기를 업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는 힘들고 한계가 있었고 남편 태일 역시 그런 아내가 안쓰러워서 하루는 옥희에게 이제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돌볼테니 당신은 장사일에만 열중하라고 했다. 그게 채영이 아직 만 3세도 채 되지 않던 시점. 그래서 태일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옥희는 아이까지 업고 행상을 할 필요는 없이 다소 홀가분해진 몸으로 좀 더 먼 지역까지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는데, 헌데 그렇게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지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태일의 부주의로 그만 채영이 죽고만 것이다. 

 “ 채영아...채영아...아가 눈을 좀 떠보려무나. 제발 정신좀 차려봐 아가 !!! ” 

 허나 이미 숨이 끊어진 아기. 두려웠다. 이대로 아내를 어떻게 보나 그것도 무서웠고 무엇보다 아이까지 업고 장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아내가 불쌍하고 안돼보이고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아이를 맡겠다고 한것인데 그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이런 사고가 발생했으니 어쩐단말인가. 일단 급한대로 채영을 뒷산 어딘가에 대충 묻고 – 사체유기니 아동학대니 이런 개념은 아직 생기기 전이고 게다가 60년대 초반에 이런 시골이면 그런 개념이 있더라도 온전히 숙지하고 있을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 그리고는 일단 버스를 타고 논산으로 가보았다. 이 무렵 아내가 주로 논산,금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한다는 말은 보통 아내가 집을 떠나기 전에 하고가곤 했고 그래서 이 사실부터 아내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버스를 타고 논산으로 간 것이다. 

 직행버스도 없을터이고 기차를 타고 가기도 아직은 쉽지 않았던 시절. 게다가 휴대폰이니 호출기니 이런것도 없고 심지어 일반 집전화도 아직은 보편화되었다고 볼수는 없을테니 – 근본적으로 태일내외가 사는고장이 열악한 시골마을이다. -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길이 엇갈렸다. 마침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옥희는 ‘이 양반이 어딜갔나 ? 채영이는 또 왜 안 보이고 ?’ 하며 걱정과 우려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논산으로 간 남편은 막상 아내의 행방을 찾을길 없어 헤매기만 했다. 무엇보다 채영이가 죽은 사실을 어찌 알린단말인가. 그 점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그렇게 혼자 논산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과수원 인근 모처에서 잠시 몸을 쉴 때 눈에 들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채영이와 딱 엇비슷해보이는 연배의 아이였고 게다가 기분탓일까. 외모나 분위기도 채영이와 비슷해보였다. 사실 아기때는 얼굴이 다 엇비슷해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수는 있는데 그래도 두세살 정도 된 아이라면 이목구비는 이미 다 자리잡혀 있을테니 그렇게 혼동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않다. 그럼에도 기분탓일까. 느낌탓일까. 아무리 봐도 채영이와 비슷해 보이는 아이가 길이라도 잃었는지 울고 있었는데 그런 아이에게 태일이 말을 건넸다. 

 “ 얘, 너 혹시 길을 잃었니 ? ” 

 아이는 겁난 눈매로 태일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고 태일이 손을 내밀었다. 

 “ 그럼 이리오렴. 아저씨가 맛있는거 사주고 그리고 부모님한테도 데려다줄게. ” 

 아직 어린아이라 부모님이든 뭐단 제대로 인식이 되지 않는것일까. 일단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말에 길도 잃고 부모님도 잃은 두려움을 잠시나마 잃은 아이. 태일을 따라나섰다. 태일은 일단 논산을 벗어나 어떤 도시지역 같은곳까지 아이를 데리고 가 근사하고 예쁜옷을 사 입혀주기까지 했고 그리고는 그런 아이를 데리고 군산의 집으로 돌아왔다. 

 “ 여보, 여보...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 어딜 다녀온거에요 ? ” 

 “ 어...그...그게 당신 마중을 간다는게...길이 엇갈렸나봐... ” 

 허나 옥희가 돌아오고나서도 하루,이틀이 지나서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태일이다. 단순히 ‘길이 엇갈렸다’는 말로는 해명이 제대로 안될텐데, 그래도 성정이 착한 남편이 무슨 나쁜짓을 할것이라는 의심은 안 하는 옥희인것인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 채영이는요 ? ” 

 “ 여기...있잖아... ” 

 그 사이 예쁜 새옷으로 갈아입힌 아이를 혼동을 한 것일까. 아니면 어린아이인데다가 분위기도 그런대로 채영이와 비슷한 것 같아 옥희조차도 착각을 한 것일까. 생판 엉뚱한 아이를 새옷으로 갈아입혀 ‘채영이’라고 하는말을 아내 옥희는 곧이 들었고 그렇게 이름도 부모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이 세 살된 아이가 그날부터 ‘채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 아니, 도대체 당신은...그리고 전화라도 한통 해주던가 할거 아니에요. 도대체가... 

  제가 밖에서 일을 하는걸 뻔히 알면서...애를 데리고 그렇게 무턱대고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요 ? 그리고 옷은 대체 어디서 ??? 군산시장에서 산거에요 ? ” 

 “ 어...어 그렇지 뭐... ” 

 아무리 봐도 수상쩍게 얼버무리고 있는 태일이건만 옥희가 너무 순진한건지 세상물정을 모르는것인지 남편의 변명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날부터 태일과 옥희의 큰딸 채영이로 길러진 것이 태일인 것이다. 

 “ 뭐야...그럼 이건...이건 유괴잖아 ? 당신이 날 납치했던거야 ? 부모잃고 길 헤매던 

  날...당신이...당신이 날 유괴했던거냐구 ? ” 

 “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 

 지금은 90년대 중반이고 설사 30년전 60년대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예전같은 양반,상놈 가리는 신분제 사회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일때다. 그런식의 신분제 사회 표현은 일제 강점기나 구한말 시절 기억이 있는 나이많은 어른들이나 할법한 표현. 허나 지금 이건 그런 상황은 분명 아니지 않는가. 태일은 지금 30년전 뉘집 딸인지도 모를 그런 귀한 꼬마아이를 함부로 납치한것에 대한 사과를 하느라 채영을 ‘아가씨’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허나 모든 사연을 듣고보니 채영 입장에선 기가막힐 수밖에 없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 그러니까...아빠가 날 유괴한 유괴범이었던거네...아니 그러니까...아빠가 아니잖아. 

  !!! 당신은...당신은 그냥 유괴범인거잖아 !!! ” 

 “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 

 눈물까지 흘리며 대성통곡을 하는 – 이미 기력이 쇠잔해진 병약한 노인인지라 대성통곡을 할 힘조차 아직 그리 남아있지 않겠지만 – 태일. 그러나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 된 채영은 태일을 마구 때리고 할퀴며 따진다. 

 “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그런짓을 해 ? 당신이 뭔데 날 유괴해 ? 어떻게 나한테 그 

  런짓을...어떻게 나한테 그런짓을 할 수가 있어 !!! ” 

 “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 ” 

 “ 이게 죄송하다고 끝날일이야 !!! 내가 지금까지 누군지도 모르는 생판 남을 부모로 

  알고 동생으로 알고 살았고...게다가...정작 우리 부모님은 어디계신지도 모르고...근 

  데 이게 죄송하다고 끝날일이냐구 !!! ” 

 게다가 채영은 지금까지 집에서 큰딸이랍시고 특히 막내동생 대학보내야 한다고 지금까지 서울에서 가정부며 파출부며 심지어 점집 알바까지 오만가지 일을 다하며 그렇게 살아왔지 않은가. 그걸 생각하면 정말 법정소송을 걸어 수천억, 수천조를 배상해내라고 해도 시원치가 않을 것 같다. 허나 태일네 집안이 그런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낼 처지가 못된다는 것은 지금의 채영이가 누구보다 더 잘 알터. 그러니 그걸 생각하면 더더욱 기가막혀 이미 병약하고 노쇠해진 칠순 노인을 마구 때리고 꼬집고 할퀴고 물어뜯고 하면서 난리를 친다. 

 “ 채영아...채영아...너 왜 이러니 ? ”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큰딸과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른 아이들과 식사라도 하면서 한두시간 시간 보내다 오라고 한 남편 태일이 아무래도 미심쩍고 불안한 듯 그때 옥희가 병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일단 다른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다른데서라도 시간을 보내게 한뒤 자기 혼자만이라도 병실로 돌아와본것인데 그때 이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옥희로선 크게 놀라 채영을 만류할 수밖에 없다. 

 “ 채영아...채영아 너 왜그래 갑자기 ? 아버지한테 갑자기 왜 그러는거야 ? ”  

 “ 보호자분...가족분 진정하세요. 안정이 필요하신 환자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 ” 

 옥희는 물론 의료진까지 결국 달려와 채영을 만류하고 의료진이야 채영을 그저 환자의 가족이고 보호자로 알 뿐이니 이런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더 기가막히고 화난 채영은 더더욱 발악을 한다. 

 “ 놔 !!! 이거 안 놔 !!! 누가 가족이야 !!! 누가 보호자야 !!! 파렴치한 유괴범이 무  

  슨 가족이고 아버지야 !!! 당신 물어내 !!! 당신 이대로 편히 못죽어 !!! 내 인생 보 

  상해내기전엔 절대 못죽어 !!! 알았어 이 정신빠진 늙은이야 !!! 알았어 ? 이 돌아버 

  린 영감탱이야 !!! 당신 이대로 편히 못죽어 !!! 당신이 편히 못 죽게 내가 절대 가 

  만 안 놔둘거야 !!! 어어어엉~~~!!! 세상에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다 있어 !!! ”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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