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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블랙핑크 제니 (3)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채영이 이야기 

                                                            - 응답하라 ! 1985 

 


 “ 채영아, 엄마랑 잠깐 이야기좀 할까 ? ” 

 심각하다기 보다는 뭔가 은근한 말투로 딸을 부른 다음날 오전의 함옥희 여사. 간밤에 했던 이야기 때문이라서인지 채영도 약간 심상찮은 느낌을 받으며 옥희 앞으로 갔다. 헌데 방학때라 아직 동생들이 집에 있을때라서일까. 어린 동생들이 있는 집에서 이야기하긴 좀 난감한 주제라도 되는지 옥희는 채영을 집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곳의 공터까지 데리고 갔다. 적당히 앉을만한 장소가 있는곳을 찾느라 좀 먼곳까지 간것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대충 그쪽에 자리잡고 앉은 옥희는 큰딸 채영의 손을 살며시 잡아보더니 말을 건넨다. 

 “ 너...엄마 외가에 대해서 어제 물어봤었지 ? ” 

 “ 아니...엄마 외가가 궁금하다기 보단...그냥 그런 이상한 꿈도 꾸고...그래서 좀 이 

  상해서... ” 

 근데 이럴땐 정확히 ‘채영이’의 외가지 ‘엄마 외가’라고 하면 주어가 ‘엄마’가 되는 셈이라 함옥희 여사의 외가가 되는 느낌이다. 여하튼 어느쪽이 되었든 옥희는 그녀 나름대로 어떤 작심한 것이 있는 듯 딸을 보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간다. 

 “ 사실 언젠가는 이야기를 해줘야하지 않을까 그 고민을 하긴 했는데...채영이 넌 어 

  쨌든 이제 다 컸으니까...그리고 니가 이 집에서 가장 큰딸이니까 (다른 동생들은  

  몰라도) 너 정도는 알아두는게 훗날을 위해서라도 좋을거 같아...아무래도 좀 일러 

  주어야겠어. ”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것인지 채영이 공연히 긴장까지 되는 가운데 옥희의 말은 계속된다. 

 “ 결론적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채영이 너 뿐만 아니라 지영이,수영이,미영이...너  

  희들에겐 외가가 없어. ” 

 “ 엄마, 그게 대체 무슨말이야 ? 외가가 없다니. 그럼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안 계 

  시다는 소리야. ” 

 그렇다면 옥희가 고아출신이기라도 하다는 소린지. 진상이 어찌되었거나 채영이 간밤에 꾼 꿈 그리고 그녀가 어렴풋이 기억한다는 어린시절 모습. 과수원이 있는 논산 외갓집에서 과일을 따다 길을 잃어버리는 꿈이나 기억은 진상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된다. 아니면 정말 엄마가 행상을 하던 시절의 일을 채영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것인지. 어쨌든 옥희의 말은 좀 더 계속된다. 

 “ 채영이 너...6.25 사변에 대해 알지 ? ” 

 “ 엄마도 참...내가 6.25를 왜 몰라 ? 어린애도 아니고, 학교때도 다 그래서 공산당 

  을 무찌르자...김일성은 뿔달린 도깨비 그렇게 배웠고...때되면 방송에서도 늘 상기 

  하자 6.25 그렇게 가르치는게 6.25 동란인데... ” 

 “ 그래...김일성이고 공산당이고 다들 뿔달린 도깨비가 맞지. 나쁜놈들이고 하지만 

  ... ” 

 옥희가 탄식을 내뱉는다. 어떤 회한같은게 담겨있는 모습. 그녀의 말이 일단 좀 더 이어진다. 

 “ 실은 엄마는 그 6.25때 가족들을 다 잃었어. 엄마의 아버지,어머니...그러니까 채영 

  이 너희들에게는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되는거지만...거기다 실은 엄마도 오라버니  

  가 세분이나 계셨지만 그분들까지 모두... ” 

 “ 어머, 그런일이 다 있었어 ? ” 

 보통 전쟁때 가족들을 잃었다거나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이 있거나 하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들이 전쟁 이후에 태어난 자녀들에게 웬만하면 사실대로 다 일러주는게 일반적이다. 허나 옥희네 가족에겐 아이들에게 알려줄수 없는 뭔가가 있기라도 했는지 그녀의 탄식섞인 고백이 좀 더 이어진다. 

 “ 실은 엄마 어린시절 살던 고향에서 엄마 오빠들이...공산당들 일을 좀 도왔어...뭐 

  오빠들은 어떻게든 푼돈이라도 좀 벌어 집안 살림에나 좀 보태자 그런 생각이었지 

  만 그게 화근이 되어 나중에 공산당들 물러가고 나서...부역자 집안이라고 치안대에 

  게 총살을 당한거지. 그것도 외할아버지,외할머니는 물론 외삼촌 셋까지 모두... ” 

 “ 어머...그런일이 다 있었어 ? ” 

 6.25때 희생돤 사람들이라면 대개 공산당에게 총살당하거나 폭격을 맞아 죽었다거나 그런 이야기만 들어본 세대라서일까. 그 반대의 이런일이 있을수도 있음은 이때 이미 20대 중반이던 채영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서인지 무척이나 충격을 받는 얼굴이다. 옥희의 회한섞인 고백은 좀 더 이어진다. 

 “ 사실 그때...치안대가 엄마네 가족들 전부를 몰살시킬 작정으로 그랬으니...엄마도 

  그때 죽을 목숨이지만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죽을힘을 다해 그곳을 빠져나와...극 

  적으로 탈출했던거야. 그리고 한없이...한없이 걸어...엄마가 나고자란 고향에서 멀 

  리 떨어진 이곳 군산까지 와서 정착해 살게 된거지. 그게 엄마가 10대 후반때 일이 

  고...니 아빠를 만난건 전쟁끝나고도 10년이나 지나서의 일이지만... ” 

 여하튼 그런 사연이 있고 홀몸인 옥희마저도 감싸주는 그런 남자를 만나 자녀 다섯을 낳고 지금까지 살아온 그게 함옥희 여사의 인생이고 사연인셈이다. 게다가 그런식으로 자신의 부모님들은 물론 오빠 세명까지 치안대에게 잃었다니 그 한은 오죽했겠으며 쉬쉬하며 살아오는동안 그 속은 또 얼마나 새까맣게 탓겠는가. 게다가 그런 상처와 한을 안고 10대 후반시절 떠나온 고향이라면 두 번다시 그쪽은 돌아다보고 싶지도 않은 그런 지역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마치 채영이는 물론 그 밑에 지영이,수영이,미영이는 물론 영철이한테까지 그 아이들에게 엄마의 고향인 ‘외가’는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그렇게 인식되도록 살아온 옥희 여사의 삶. 이해해보자면 전혀 이해못할 인생도 아닐 듯 하다. - 게다가 10대 후반이면 아직 어리다면 어릴때고 또 전쟁 직후인데다가 교통이 아직 많이 발달되지 못한 50년대니 그 시절 체감으론 고향에서 꽤 멀리 떨어진곳까지 도망쳐온것처럼 여겼겠지만 실제로는 군산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지역이 옥희의 고향일수도 있다. 여하튼 옥희의 사연이 이와같을진대 ‘어릴 때 괴수원이 있는 외갓집(즉 옥희의 고향)에서 과일을 따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느니 이런식의 꿈이나 기억은 실제 옥희의 고향집 사연과는 전혀 진상이 먼 다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이런 이야기를 뭔가 작심한 듯 스물다섯살 다 큰 그리고 객지에서 가정부일까지 하며 집안 살림을 보태주고 있는 큰딸에게 들려주고 있는 50대 중반의 함옥희. 그리고는 다시금 채영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당부한다. 

 “ 그리고 채영아, 이런게 소위 노파심인건지 모르겠지만...이런 이야기는 너만 알고 

  있고 다른 아이들에겐 하지 말거라. ” 

 “ 동생들에게는 하지 말라구 ? ” 

 “ 뭐 연좌젠가 뭔가 그런게 박통(박정희 대통령) 죽고난뒤에 폐지되었다지만...그래 

  도 그런 사연이 있는 집안인게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좋을건 별로 없잖아. 외할머니 

  가 되었든 외갓집이 되었든...6.25때 공산당 돕다가 총살당한 집안이더라...이런게 

  알려지는게 뭐 좋을게 있겠냐. 그러니...넌 어쨌든 우리집 큰딸이고 살림밑천이니까 

  너 정도는 알아두고 있는게 좋을 것 같아 알려주지만...동생들은 가급적 모르고 사 

  는게 좋을거야. 무슨말인지 알아듣겠지 ? ” 

 스물다섯살이면 이 정도 말귀는 충분히 알아들을만한 나이. 게다가 그런 정도의 이야기는 동생들이 굳이 궁금해 묻지 않는다면 일부러 말해줄 필요도 없는 이야기 아닌가. 또 혹시 그런일이 있더라도 적당히 둘러대자면 둘러댈만한 머리 정도는 채영에게 충분히 있다. 엄마에게 알겠다며 그녀의 손을 굳게 잡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하는 채영. 그런 딸을 안아보는 옥희와 두 모녀간에 어떤 굳은 신뢰감이 한층 더 쌓여져 가는것만 같다. 

 


 아이들 방학기간동안이 진동 내외가 채영에게 모처럼 내준 ‘여름휴가기간’이었는데, 보통 서울보다는 남부지방인 전라도,경상도등은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까지 방학기간이 더 길던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진동내외 자녀들이 개학을 했더라도 군산의 채영의 동생들은 아직 방학기간이 한 며칠정도 더 남아있다. 여하튼 채영은 서울의 진동의 자녀들 개학때 맞춰 서울로 올라가야하니 그때쯤에 맞춰 올라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다음날인 월요일이 고등학생인 경태와 중학생 경수의 개학일이기 때문에 그때에 맞춰 고속버스 표를 사두고 일요일밤에 짐을 싸고있는 채영. 동생들은 언니와 누나가 다시 서울로 간다니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둘째 지영은 다음날인 월요일엔 오전시간 표를 예약해둔 언니 채영보다 일찍 집에서 나가야하니 그 아쉬움을 한층 더 보태고 있었다. 

 “ 나야 아침일찍 간단히 먹고 가야하지만 언니는 열시 고속버스리고 했으니...천상  

  언니 가는건 난 못보고 가게되겠네. ” 

 “ 그러게 지영아. ” 

 “ 언니 보고싶을거야...자주 연락할게... ” 

 마치 이대로 오랫동안 언니를 못보게 되는 동생이라도 되는양 지영은 언니를 끌어안으며 한바탕 청승을 떨기도 하고 그런 지영을 채영이 달래며 그런식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이면 채영은 서울로 지영은 전주로 각자의 일하는 일터로 떠나야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헌데 채영이나 지영이나 이대로 각자의 일터로 복귀할수 없는 돌발상황이 하필이면 일요일 밤늦게 벌어졌다. 

 “ 언니...언니...영철이가...영철이가 이상해. ” 

 모두 5남매인 태일의 자녀들은 부모님이 쓰시는 방 외에 나머지 두 개의 방을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적당히 반반씩 나눠 돌아가며 사용해오곤 했는데, 여하튼 지금은 막내 남동생 영철이와 한 방을 쓰는 수영과 미영이 급하게 언니들의 방으로 달려왔다. 

 “ 왜 그래 ? 무슨 일이야 ? ”  

 놀라서 잠에서 깨 동시에 묻고있는 채영과 지영. 수영과 미영은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한 듯 울상이 되어 말한다. 

 “ 영철이가...막 몸도 불덩이같고...계속 아프다고 신음소리만 내고 있어. 어떻게 해  

  언니 ? ” 

 이 소동이 벌어졌으면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잠에서 깰 수밖에 없고 일단 아직은 한여름이니 감기몸살이라도 걸렸을리는 없는데 갑작스런 영철의 발병이었다. 무엇보다 밤늦은 시간이니 읍내나 이런데 병원이 열었을리는 없어 급한대로 군산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아이를 데리고 가 보았다. 밤늦게 들어온 응급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일단 이런 진단을 내린다. 

 “ 신경성 장염 같은데요...혹시 환자가 최근 스트레스 같은 것을 받은일은 없나요 ? 

 ” 

 “ 아뇨, 뭐 딱히 스트레스 받을일 까지야...뭐 어차피 없이사는 집안이니 애한테 제 

  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쭉 살아온 집이긴 하지만... ” 

 “ 일단 신경성 위염이나 장염 혹은 영양실조등으로 오는 부작용...그런 가능성을 보 

  고 있습니다. 좀 더 정밀진단을 해보긴 하겠습니다만...가능하면 좀 더 큰 병원에서 

  한 며칠 입원하며 진단을 받아보는 것을 권고드리고 싶습니다. ” 

 일단 병원에 아이를 며칠씩 입원시키는 것은 형편상 무리인 집안이라 모두 충격에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렇게 고대하며 얻은 귀한 막내아들이 아니던가. 이 시대 부모님이 흔히 그렇듯 딸들 입장에선 너무 막내에게만 신경을 쓴다는 서운함이 생길정도로 막내 영철이에게 온갖 혼신의 힘을 쏟았을 부모님. 그리고 영철이를 동생이라기보단 자식이나 다름없는 마음으로 돌봤던 큰누나 채영이나 작은누나 지영도 큰 충격에 빠지는 일이었으리라. 일단 급한대로 치료를 받게 하고는 병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채영과 지영. 지영이 채영에게 다가온다. 

 “ 언니...어쩜좋아. 우리 영철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 ? ” 

 “ 일단 그렇게 중병은 아닐거라고 하니까...조금은 더 기다려보자. ” 

 둘 다 의학쪽에 무슨 지식이 있는 여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채영은 어디서 적당히 들은 풍월은 있는지 위염이든 장염이든 그렇게 당장 죽을병은 아니라는 상식 정도는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식으로 동생을 안심시키는 말을 건넨다. 채영의 말이 이어진다. 

 “ 어쨌든 한 며칠 입원하면 바로 나을수 있는 병이라니까 다행이지 뭐. 그렇게 큰 

  병은 아니라니까... ” 

 “ 언니...정말 우리집은...우리집은 왜 맨날 이 모양인거야. 우리 영철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 언니...흑흑흑흑~~~!!! ” 

 바로 얼마전 4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지영을 언니 채영이 나무랐을 때 오히려 ‘우리집 형편이 그럴 형편이 되느냐 ? 게다가 막내 영철이에게 기대하고 있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런식으로 항변했던 지영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하필 그런 문제로 언니 속을 긁을수는 없고, 여하튼 지영도 그녀 나름대로 막막한 심정에 울음을 터트리고 채영과 지영 자매가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울고 서로 달래고 목불인견인 모습이 한동안 지속된다. 다른건 몰라도 집안을 걱정하고 막내동생 영철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둘이 한결같은 것 같다. 일단 이런 막내를 두고 바로 서울이나 전주로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두 누나인지라 채영은 일단 급히 김진동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집안 사정이 있어 며칠 더 있다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지영의 경우엔 그래도 너무 오래 결근하면 곤란한 직장인지라 하루만 결석을 하겠노라 회사에 말하고 그리고 다음날 전주로 돌아가긴 했다. 

 지영과 달리 채영은 일주일정도 더 집에 머물며 막내동생 영철을 돌본뒤 서울로 돌아갔다. 대략 오전 10시경 고속버스 표를 사서 오후늦게 서울 터미널에 도착(반포) 그리고 강남의 김진동 사장의 집에 당도할때는 저녁때가 거의 다 될 때이긴 한데, 일주일 늦게 올라갈 수밖에 없는 사정을 김진동 사장과 백승주 여사는 충분히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긴 했지만 채영은 뜻밖에도 저녁때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이 집의 막내인 경옥의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 아주 팔자가 늘어졌구나 넌 ??? ” 

 저녁시간때니 혹시 김사장이야 좀 늦게 귀가할수 있어도 아이들은 일단 집에 있을 시간. 그리고 백승주 여사의 경우엔 전업주부이긴 하지만 남편 내조나 재산증식과 관련된 업무로 역시 눈코뜰새 없이 매일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다. 따라서 그녀도 평일에 일찍 귀가하는 날보다 늦게 귀가하는 날이 더 많은 그런 사람. 어쨌든 공교롭게도 진동은 회사일로 승주는 외부일로 둘 다 귀가가 늦는 그런 날에 채영이 당도하게 된 것이다. 서울의 아이들은 이미 개학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래서 경옥이 이렇게 핀잔을 주는 것이다. 

 “ 방학동안 휴가랬더니...너네고향 방학기간에 기준을 맞춘거냐 ? 서울집이 아니라 

  군산 방학기간에 맞추려고 했어 ? ” 

 초등학교 2학년짜리도 더운 남부지방인 전라도나 경상도등은 서울보다 여름방학 기간이 길다는 것 정도는 대충 들어 아는지 그런식으로 비아냥거리고 버릇없는 막내를 결국 오빠들이 나무란다. 

 “ 경옥아...너 왜그래 ? 그만하지 못해 ? 누나한테 도대체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 없 

  는 소리야 !!! ” 

 “ 왜 ? 내가 뭐 못할말 했어 ? 이 가정부X이...제 멋대로 휴가날짜도 어겨가며 일 

  주일이나 늦게오고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거잖아. ” 

 “ 경옥이 너 정말... ” 

 엄마나 아빠가 가정부인 채영에게 ‘언니’라고 말하라고 그렇게 일러주었건만 그리고 그 시간이 벌써 몇 년인데 여전히 가정부에게 이렇게 나오는 버릇없는 막내 태도를 도저히 두고볼수 없다는 듯 나오는 오빠들. 보다못한 채영이 되려 경태와 경수를 만류한다. 

 “ 왜 그래들...나 괜찮으니까...그만들 해. 그리고...배고프지 ? 곧 저녁 차려줄게. ” 

 “ 아...아니에요 누나. 군산에서 멀리까지 오느라 피곤하실텐데 그만 들어가 쉬세요. 

  저녁은 저희끼리 간단히 라면 끓여먹거나 토스트 구워먹으면 돼요. ” 

 “ 형 그보다는 패스트푸드점 가서 햄버거랑 후렌치후라이 사먹자. ” 

 일단 경태와 경수는 나름 채영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러나 막내 경옥은 그런 오빠들의 모습 조차도 가관이라는 듯 나온다. 

 “ 와...이건 뭐 가정부가 아니라 아주 상전 대접이네 ? 휴가까지 제 멋대로 일주일이 

  나 늘려갖고 이제야 나타난 가정부를...그것도 멀리서 올라왔으니 쉬라구 ? 우리끼 

  리 저녁해먹자구 ? 이건 도대체 누가 이 집 주인이고 이 집 가정부야 !!! 이 집 가 

  장이 대체 누구냐고 !!! 이 집 맏이가 대체 누구고 !!! 이건 도대체가... ”  

 ‘철썩~!’   

 보다못한 경태가 결국 버릇없는 동생 경옥의 뺨을 한 대 후려갈기고 만다. 하지만 경옥 성격도 오빠한테 맞고만 있을 그런 아이가 결코 아니다. 그래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 채영은 졸지에 한달만에 복귀한 주인집에서 아이들 싸움을 말리느라 한바탕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게다가 그 싸움 원인이 따지고보면 자신에게서 시작된것이니 채영으로선 어쨌든 다시금 힘든 시간이 시작된 셈이다. 

  


 다음날 저녁 승주가 조용히 채영을 불렀다. 채영이 실제 휴가기간보다 일주일이나 지나 서울에 돌아왔고, 하필 바로 그 당일 저녁 진동도 승주도 없는 가운데서 그 난리가 벌어졌으니 경태나 경수는 몰라도 경옥이 정도는 그 일을 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고, 물론 승주도 채영과는 가족처럼 지내라고 하는 쪽이었으니 그런 문제를 갖고 채영을 일방적으로 나무라거나 할 사람은 아니지만 어느쪽으로든 한마디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라서인지 채영을 부른 것이다. 헌데 뜻밖에도 어디선가 와인 한병을 꺼내와 채영에게 따라주는 승주. 이렇게 되면 분위기 자체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승주가 사과라도 하듯 채영에게 말한다. 

 “ 미안해. 내가 이래저래 채영이에게 미안해서 할말이 없어. ” 

 “ 아...아니에요 사모님. 제가 원래는 사모님 자제분들 개학때 맞추 왔어야 하는건데 

  그러지 못하고 일주일이나 늦게 온 제 잘못이죠. ” 

 “ 무슨말이 그래 ? 집에 그런 우환까지 갑자기 생겼다면서...그것도 집안의 장녀가 

  되어서 막내동생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못본체 할 수가 있었겠어 ? 채영이는 잘 

  못한게 없으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돼. ” 

 “ 제가...너무 죄송해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 

 오히려 이런 승주의 태도가 채영을 더더욱 무안하고 민망하게 만들고, 승주는 승주대로 탄식삼아 말을 이어간다. 

 “ 어쨌거나 묘옥이 쟤도 참...에미인 내가 봐도 걱정이 많아. 도대체가 언제까지 저 

  렇게 마냥 철모르고 세상물정 모르고 안하무인으로 저러려는지...저러다 나중에 자 

  라사 사람구실이나 제대로 할지...사회생활인들 제대로 할지... ” 

 “ 묘옥...이요 ? ” 

 막내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심정이야 뭐 그렇다 치더라도 헌데 승주의 막내딸 이름은 경옥이 아니던가. 헌데 갑자기 묘옥이라니. 자신이 뭘 잘못 들은것인가 아니면 혹시 승주에게 잃어버린 딸이 하나 더 있기라도 하단 소린지.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질 지경인 채영을 보며 승주는 실수를 깨닫는다. 

 “ 아, 참 내가...묘옥이라고 했었나 ? 미안해. 실은 그건 우리 경옥이 어릴 때 부르 

  던 이름이었는데...어떻게 그래도 그 이름이 그런대로 익숙해져서 그런지 가끔 내가 

  헷갈릴때가 있어. 경옥이든 묘옥이든 같은아이 이름인건 맞아. 묘옥이는 어릴 때 

  잠깐 불렀던 이름이고... ” 

 “ 그럼 중간에 이름을 바꿨다는 말씀이세요 ? ” 

 “ 어...그게 실은 사연이 좀 있어. ” 

 해명겸 설명삼아 승주가 덧붙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쨌든 첫째딸을 잃어버린 진동과 승주내외 아닌가. 그리고 이후 아들 둘을 더 낳았지만 둘째아들 경수를 낳고 6년만에 또다시 딸을 하나 더 낳게 된 진동과 승주 내외. 어떻게 보면 잃어버린 큰딸 경숙이 대신이라 생각하고 더 크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을수 있는 늦둥이 막내딸의 출산인데, 하지만 그래서일까. 혹시라도 이렇게 늦게 귀히 얻은 딸도 나중에 경숙이처럼 잃어버리거나 잘못되지는 않을지. 그래서 대충 소문으로 들어 알고있는 서울시내의 한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가보았다는게 승주의 사연이다. 그러자 그 점쟁이가 아이의 액운을 물리치려면 이렇게 하라며 이름 하나를 지어준게 ‘묘할 묘(妙)’자가 들어간 ‘묘옥이’인 것이다. 

 “ 뭐 어쨌든 아이한테 닥칠지 모를 액운을 막아줄 이름이라길래 한동안은 그냥 묘옥 

  이라 불렀지. 불안해서라도 말야...헌데 생각해보니 이름이 느낌이 좀 이상하고 나 

  중에 애 학교 보내고 나면 애들한테 딱 놀림받기 십상인 그런 이름 같더라구. 그래 

  서 어차피 제 언니(잃어버린 경숙),오빠들 이름이 다 ‘경’자 돌림이었으니까 그냥 평 

  범하게 ‘경옥’이로 다시 지은거야. ” 

 “ 아, 그러셨구나. ” 

 이래저래 경옥이의 이름과 얽힌 사연까지도 잃어버린 큰딸과 연관이 있는 셈 아닌가. 그만큼 진동과 승주 내외에게 어릴 때 잃어버린 큰딸에 대한 상처와 한이 얼마나 컸는지 그것을 다시금 가늠케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편 승주는 채영에게 와인 한잔을 따라주며 이와같이 묻는다. 

 “ 와인 들어본적이 있나 ? 채영이는 ? ” 

 “ 아...아뇨 전...전혀... ” 

 여하튼 서울 올라와서 5년을 가정부로 일한 채영이다. - 진동과 승주 내외 집에서 일하기 전까진 다른곳에서 가정부 생활을 했고 –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서울에서 지낸 5년의 환경이 그와같았을진대 와인이 되었든 소주나 다른 일반서민이 먹는 술이 되었든 채영이 쉽게 술을 입에 댈수 있을만한 환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일반 직장인이라면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끼리 만나 하다못해 소주나 막걸리 맥주라도 한잔 했을터이지만. 생각해보니 서울에 올라오고 5년동안 그 흔한 술 한번 입에 대볼 경험조차 제대로 없이 살아온 그런 채영인데 그래서 사모님인 승주가 건네주는 와인을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받아 마신다. 

 “ 좀 어때 ? 가끔 내 친구나 동료들중엔 술 전혀 못하는 애들중엔 소주 한잔만 마셔 

  도 취하는 아이들도 있던데... ” 

 승주도 지금까지 채영이 술마시는걸 본 경험은 거의 없어서일까. 걱정까지 되어 이렇게 묻고 일단 채영이 답한다. 

 “ 뭐 그런대로 먹을만 한데요 ? 한잔 더주세요 사모님. 힛~! ” 

 아무리 자신을 딸처럼 생각해주시는 사모님이라지만 그래서 만만해지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고작 포도주 한잔에 벌써 취기라도 돌았는지 이와같이 나오고. 그런 채영을 바라보며 승주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러고보니...채영이 원래 포도는 잘 안먹지 않았나 ? 그런데 포도주는 잘먹네 ? ” 

 “ 네, 맞아요. 전 어릴때부터 포도 별로였어요. ” 

 “ 그런데 포도주는 괜찮다고 ? ” 

 “ 네 뭐...포도주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네요. ” 

 그러면서 포도와인의 성분이라도 파악해봐야 되겠는지 라벨에 붙은 간단한 설명까지 유심히 읽어보는 채영. 그런 채영을 승주가 잠시 신기하게 바라본다. 

 “ 그러고보니 채영이가 포도도 싫어하고...오징어도 싫어하고...콩밥도 싫어하고 그러 

  지 않았나 ? ” 

 한 5년을 한 집에서 지내다보니 채영의 식성까지 파악하게 되어버린것일까. 승주가 그와같이 말하고 채영은 다소 민망해진 가운데서도 그런대로 솔직하게 말한다. 

 “ 네, 맞아요. 저 어릴때부터 포도나 오징어 같은건 싫어했어요. 무슨 딱히 이유는 

  모르겠고...그냥 싫었어요 어릴때부터... ” 

 “ 그래 ? 그건 희한하게 우리 경옥이랑 똑같네 ? ” 

 “ 네에 ? ” 

 순간 좀 놀라며 당황해하는 채영. 사실 3년을 그것도 가정부로 일하며 김진동 사장의 식구들과 지내온 채영임을 생각하면 이미 진동과 승주내외의 3남매 식성이나 취미,기호 같은 것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부분은 충분히 알고 있을만한 채영임에도 어쩐지 놀라는 반응인 그녀. 승주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경옥이야 뭐 내 딸이니까 날 닮아서 그렇다치더라도...채영이까지 그런건 진짜  

  신기하네. 포도는 싫어하는데 포도주는 그런대로 입에 맞는다. 신기한 현상이야... 

 ” 

 “ 사모님... ” 

 “ 실은 나도 어릴 때 포도나 오징어 그런건 싫어했거든...그래서 정작 대학들어가 

  고 성인이 되어서는 포도주를 넙죽넙죽 잘도 마시는걸 보면서 주위에서 다들 신기 

  해했어. 야, 넌 포도는 싫어하는 애가 포도주는 어떻게 그렇게 잘 먹냐 ? 진짜 신 

  기하다... ” 

 “ 사모님도 참... ” 

 무슨 생각인걸까. 묘한 미소를 띠며 승주를 바라보고 있는 채영. 그녀의 말이 일단 좀 더 이어진다. 

 “ 경옥이야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렇다 치더라도...나도 참 그런걸 보면 어려서 

  부터 식성이 참 유별난 애였던 것 같아. 포도나 오징어 또는 콩밥은 싫어하던 아이 

  . 헌데 포도는 안 먹는데 포도주는 좋아하는 여자. 콩밥은 싫은데 콩으로 만든 두 

  부요리나 된장찌개는 좋아하는 여자. 나도 참 유별난 면이 많은 여자애였나봐... ” 

 “ 사모님... ” 

 “ 실은 그래서 우리 경옥이 하는 짓거리 보면...‘혹시 나도 어릴 때 저럤나 ?’ 싶어 

  서 소름끼칠때가 종종 있어. 어쨌든 나도 집안에서 외동딸이었으니...귀하게 자랐다 

  면 귀하게 자란 아이니까. 그러니 경옥이 하는 짓거리를 지켜보다보면 혼자 남몰래 

  탄식할때가 많아. ‘아이고오...나도 어릴 때 저러면서 자랐던건가...그리고 그랬다면 

  주위 어른들은 날 얼마나 애물단지로 여겼으려나...’ 그렇게 말이지... ” 

 


 일단 김진동 사장의 집에서 채영의 가정부 생활은 한동안 별탈없이 계속되었다. 막내 경옥이가 버릇이 없는것인지 철이 없는것인지 여전히 채영에게 함부로 막 대하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가족들은 채영을 정말 딸처럼 아끼고 누나처럼 따르며 그렇게 대해주었으니까. 실제로 채영도 막내 경옥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가족들에 대해선 별다른 불만도 없었고 경옥의 경우도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면서 감내하는 중인 것이다. 한편 하루는 경옥은 김진동 사장과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 이런 고백을 한 적도 있다. 

 “ 사장님...저 근데말이죠... ” 

 “ 뭐가 말인가 ? ” 

 “ 저 솔직히 경태보다는 경수가 더 맘에 들어요. ” 

 “ 그건 또 무슨소리야 ? ” 

 학교에선 공부잘하는 우등생에 모범생이기까지 한 경태. 심지어 지난 여름방학때는 가정부 누나인 채영의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노라는 유난까지 떨었던 그런 경택가 아닌가. 헌데 정작 채영 입장에서 경태나 경수를 바라보는 감정은 좀 달랐던것일까. 장남 경태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편인 경수가 ‘마음에 든다’는 고백(?)을 하기도 한 채영. 이유는 대략 이러했다. 

 “ 저 솔직히...경태는 어떨 때 보면 너무 답답하고 숨막혀요. 너무 완벽해 보여서  

  그런건지...만약 제가 경태와 여덟살 차이가 아니라 비슷한 연배였다면 경태같은 

  남자는 진짜 별로라 생각했을거에요. ” 

 “ 허허 참...별스런 비유를 다 하는구만. 너무 완벽해보여서 싫다...그럼 경수는 ?  

 ” 

 “ 말씀드렸잖아요. 오히려 경수가 좀 적당히 짖궂으면서 그리 심하지 않은 농담 

  이나 장난도 잘 치고...솔직히 전 그런애가 더 좋아요. 경태처럼 매사에 너무 완 

  벽한 그런애는 별로에요. 너무 잘난체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 

 너무 잘난척 하는 것 같은 경태보단 오히려 약간 허점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적당히 장난도 잘 치고 농담도 잘 하는 그런 경수가 마음에 든다. 그게 채영의 취향이라면 취향이랄까. 실제 채영은 자신의 연습장에 하루는 이런 낙서를 몇줄 끄적인적도 있다. 

 ‘ 만약 나한테 생사여탈권 같은게 주어져서 사장님댁 3남매중 딱 한사람만 구해줘야 

  하는 기회가 온다면 그때 구해주고 싶은 애가 경수다. ’ 

 그렇게 너무 완벽해보여 짜증나는 경태나 애초부터 자신을 싫어하고 경멸하는 것 같았던 철없는 막내 경옥이 보다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농담이나 장난도 잘 치는 그런 경수가 더 좋다고 말한 채영. 다만 그와같은 3남매를 돌보며 함께 지내는 김진동 사장댁에서의 가정부 생활은 더 이상 지속되진 않았다. 그것은 채영과 김진동 가족과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느덧 한 겨울인 그해 연말 좀 뜻하지 않은 돌발변수가 생겼다. 

 실은 그 무렵 뜻밖에도 채영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당연히 고향친구기도 한 민주라는 아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민주도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서울에 올라와 지금까지 쭉 직장생활을 해 왔는데 가정부로만 일해온 채영과는 달리 민주는 좀 능력이 되었는지 공장이라던가 일반 직장 사무보조같은 그런일을 해오며 살았는데 그런 민주가 최근에야 우연히 채영의 근황을 듣고는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채영이나 민주나 사실 명절때조차도 고향에 내려가긴 쉽지 않았던 처지. 그렇게 5년을 지냈으니 어쩌다 명절 때 하루이틀 고향에 내려가더라도 친구나 심지어 친구 부모님까지 만나거나 챙길만큼 시간이 한가하진 않았을 것이다. 헌데 그러다가 최근에야 문득 고등학교 동창인 채영이 소식이 궁금해진 민주가 추석휴가때 어렵게 시간을 내 채영의 부모님 댁에 잠시 들러 그녀의 근황과 연락처를 물어본 것이다. 허나 그러고나서도 두달이상이나 지나 연락을 취했을 정도로 민주도 그때까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로 바삐 지냈던 셈. 그러다 뜻밖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채영도 너무나 기뻐 단걸음에 민주를 만나러 나갔다. 약속장소인 시내 다방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너무나 기쁘고 반갑고 5년동안 변해버린 서로의 모습에 얼싸안고 눈물도 흘리고 한동안 그 감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5년만에 만나서 그동안 지낸일 하며 이런저린 이야기로 시간가는줄 모르다 문득 민주가 이런 제안을 했다. 

 “ 채영아, 너 근데 가정부 일보다 한번 다른일 해보지 않을래 ? ” 

 “ 어떤일 ? ” 

 비록 친구간이지만 순간적으로나마 슬몃 의심이 들기도 한 그런 질문이다. 어쨌거나 채영도 어느덧 서울살이 5년. 무작정 상경한 여자가 멋모르고 아무나 따라갔다가 유흥업소 쪽으로 가게되었다던가 그런 카더라 정도는 충분히 귀동냥으로 들어봤을법한 그런 시간이다. 따라서 아무리 친구지만 좀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민주는 민주대로 나름 가정부로 고생하는 채영이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이와같이 말한다. 

 “ 이상한데는 아니고...실은 내가 처음 서울 올라와서 부천 공단에서 일할 때...그때  

  한 1-2년 정도 알고 지내던 언니가 있거든. 근데 그 언니는 공장일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사실은 OO동에 있는 점보는 집이야. ” 

 “ 뭐어 ? ” 

 난데없이 점보는집이 왜 나오는가. 황당해하는 채영을 보며 민주는 일단 안심시키려는 듯 말을 이어간다. 

 “ 솔직히 나도 처음엔 황당했는데 그 언니한테 나중에 대충 이야기 들어보니까...야 

  이건 차라리...진짜 어디어디서 공장에서 공순이나 하면서 뼈빠지게 고생하는거나  

  아니면 부잣집 가정부나 파출부로 고생하는것보다 처지가 백배 낫더라... ” 

 “ 뭐...월급이라도 많이 준다 그런 소리야 ? ” 

 대충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듯한 채영. 민주의 설명은 이어진다. 

 “ 월급도 일반 부잣집 가정부보다 한 두배로 받지만...대충 가서 그 언니 하는거 보 

  니까...말이 점집이지 그냥 일반 직장에서 사무보고 경리보고 하는거나 별반 다를거 

  없어. 글자그대로 손님들 접수받고 거기 점집에 들어오는 수입 회계정리,장부정리  

  해주고 대외적으로 관공서 출입같은거 할 일 있으면 그 일 대신 봐주고...그러니 그 

  냥 일반직장에서 사무보조나 경리일 하는것과 뭐가 달라. 말이 점집이지...진짜 편 

  하게 일하면서 돈 버는 그 자체더라구. ” 

 “ 그래서 뭐...날더러 그런 일이라도 해보라 그런소리야 ? ” 

 아무리 그래도 점집에서 일한다는 것은 좀 꺼림칙해서 이와같이 나오는 채영. 민주가 그런 채영을 설득한다. 

 “ 편견갖지 말고...잘 생각해봐. 돈도 돈이지만 의외로 웬만한 공순이보다 팔자 편하 

  다고. 일단 근본적으로 (점집이니까) 일터가 그냥 일반 주택이지...사무실이나 공장 

  이 아니라...거기서 그냥 사무 봐드리고 장부정리 같은 경리일 봐드리고 하면서... 

  뭐 때로는 점보는 아주머니 – 거기선 보살님이라 부르지만 뭐 어쨌든... - 집 빨래 

  나 청소같은 그런 일 좀 도와드리며...그럼 진짜...팔자도 그런 팔자편한 일이 없더 

  라구... ” 

 “ 그럼 뭐 어떻게 보면 가정부 일에다가 사무일까지 겸하는 그런일인 셈이잖아. ” 

 “ 대신 돈을 두배로 받잖냐 이것아. ” 

 여전히 꺼림칙해하는 채영이에게 민주는 나름대로 돈 더 잘벌수 있는 일터를 소개해주는데 모처럼만에 만난 고향친구가 영 마땅치 않아하는 것 같아 거듭 적극적으로 친구를 설득하고 그런식으로 민주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너 잘 생각해봐 이채영. 아무리 그래도 가정부 일로 벌 수 있는 돈이 많아야 얼 

  마겠냐 ? 게다가 난 어쨌든 집에서 막내딸이니 상관없지만 넌 아직도 돌봐야햐는 

  동생들이 밑으로 주루룩인거잖아. 게다가 지난번에 아저씨,아주머니 만나뵈러 갔을 

  때 대충 이야기 들어보니까...너 동생이 여름방학때 아파서 큰일날뻔 한적도 있었다 

  면서 ? 거봐...넌 아직 그렇게 돌봐야하는 동생들도 많은데...언제까지 강남의 좀 잘 

  사는 집 가정부 일로만 그 많은 동생들 다 챙길수 있겠어 ? ” 

 “ 아무리 그래도... ” 

 여전히 꺼림칙해하는 채영을 민주는 안타까운 마음에 거듭 설득하고 나중엔 재촉까지 해댄다. 그렇게 민주의 채영을 설득하는 시간이 장시간 이어졌다. 

 “ 채영이 너 빨리 결정해. 이런 기회 그렇게 쉽게 오는거 아냐. 그래도 다 내가 너 

  생각해서 일부러 이렇게 연락을 취해온건데...실은 바로 그 점집에서 일하는 언니가 

  개인 사정이 있어서 조만간 그만두어야 하기 때문에...무책임하게 바로 그만둘수는 

  없어서 – 그래도 그간 그곳에서 일한 정리가 있으니 – 후임자 하나 정도는 추천을 

  해드리고 가고파서...그래서 나한테까지 도움을 청해서...그래서 내가 문득 니가 생 

  각나서 연락 취한거야. 그러니 이채영...오래 고민해봤자 너만 좋은기회 놓치는거야. 

  시간 그렇게 한가하지 않으니까 빨리 결정해봐 이채영 !!! ”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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