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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블랙핑크 제니 (2)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채영이 이야기 

                                                            - 응답하라 ! 1985 

  


 어떻게 보면 그 무렵(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때)은 김진동 사장보다는 아내 백승주 여사가 좀 더 정상적인 심리상태였던 것으로 봐야하는것일까. 아니면 아내와 다른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내색만 하지 않고 있었을뿐 실은 잃어버린 딸을 찾고 싶은 마음은 더 절실하고 애닳아 하고 있었던 것이 그런식으로 표출이 되었던것일까. 여하튼 6.25때 헤어진 가족들을 찾아준다는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까지 나갈 작심이었던 진동의 마음은 아내 승주의 적극적인 만류로 한두달쯤 지났을 때 진동이 단념하고 말았다. 

 오히려 승주가 이상징후를 보인 것은 그 이후부터다. 남편이 그 정도로까지 나오고나니 오히려 이번엔 승주가 잃어버린 딸에 대한 절실한 심정이 되살아난것인지. 채영이 진동의 집에서 일하게 된 것이 3년정도가 되었고 이산가족 찾기 방송때는 대략 1년정도가 지났을때니 집안의 그런 분위기 자체를 전혀 인지 못하지는 않았을때다. 헌데 가정부 채영의 등을 밀어주겠다며 ‘어쩜 너는 이렇게 등에 점이나 흉터 하나 없이 새하얗고 미끌미끌할 수가 있냐 ?’는 식의 반응을 보이던 것이 그때부터였다. 채영의 하얗고 매끄러운 등판을 보면서 살아있으면 아마 채영이와 비슷한 나이일 20년전 잃어버린 자신의 딸 경숙이라도 떠올려졌음인지. 여하튼 승주가 그런식으로 나오자 이번엔 진동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아내를 만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많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수도 있는 채영을 하루는 은밀히 불러 이와같이 말했다. 

 “ 채영아... ” 

 “ 네, 사장님. ” 

 진동과 승주내외는 채영에게 자신들을 부모처럼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을 동생처럼 한 가족처럼 생각하라고 헀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정부로 일하는 주인집 아저씨,아주머니에게 ‘아버님,어머님’이란 호칭까지는 안 나오는지 채영은 그냥 진동과 승주는 사장님과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여하튼 그런 분위기 속에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졌다. 

 “ 우리 집사람 하는 행동에 많이 놀라고 당황했으리라 생각한다. ”  

 “ 아...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사장님. ” 

 물론 이런식의 말은 진짜로 괜찮다는게 아니라 예의상 해보는 대꾸다. 그리고는 채영도 그녀 나름대로 지금은 대충 김진동 사장의 집 분위기를 파악할만큼 파악했는지 그런대로 이해한다는듯한 반응을 보인다. 

 “ 사모님께서 참 많이 힘드셨었나봐요 그동안. ” 

 무엇보다 그에 앞서 83년 이산가족 찾기때 진동이 20년전 잃어버린 딸을 찾겠다며 매일같이 여의도로 출근하다시피 했고, 그런 남편에게 이건 아니다라며 ‘20년전 잃어버린 딸을 왜 6.25대 헤어진 가족 찾아준다는데 가서 찾느냐 ?’며 만류하던 모습까지 모두 지켜본 채영이 아닌가. 따라서 그런 분위기는 충분히 이해하는듯한 모습. 그러면서 채영의 말이 이어진다. 

 “ 헌데...도대체 언제 몇 살때 큰따님을 잃어버리신거에요 ? ” 

 채영의 그와같은 말에 진동은 한숨섞어 사연을 대충 들려준다. 

 “ 그게 그러니까...경숙이가 세 살때니 정확히 22년전의 일이지. 그리고 그때 경숙이 

  가 세 살때였으니...만약 지금까지 살아있다면...허허 진짜 딱 지금 채영이랑 동갑이 

  구먼 그래. ” 

 “ 그러네요 정말. ” 

 우연치곤 좀 묘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냥 한두살 정도 차이나는 대충 비슷한 연배도 아닌 딱 자신과 동갑일 그런 딸을 22년전에 잃어버렸다니. 생각해보면 참 김진동 사장의 집과 자신이 묘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가운데 진동의 딸을 잃어버린 경위에 대한 설명은 좀 더 이어졌다. 

 “ 처가가...그러니 집사람 친정이 충남 논산이었어. 그리고 그 시절에 논산에서 과수 

  원을 하면서 그렇게 딸 하나를 키우던...집사람이 처가에선 외동딸이거든. 다른 오 

  빠나 언니,동생은 없는...허허허 요즘은 둘도 많다며 하나만 낳자고 하는 시대라 특 

  히 젊은 사람들은 아이 하나만 낳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지만...그 시절만 

  해도 다른 형제나 자매 없이 아들이나 딸 달랑 하나만 있는 그런 집이 오히려 보기 

  드문 참 희귀한 사례였던 시절이야. 정말 전쟁때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지거나 폭격 

  이라도 맞아 다 죽은 경우라면 모를까...논산...OO면의 과수원집 외동딸...보기드문  

  사례라서 집사람은 그 시절 동네에서 제법 유명했다고 하더군. 과수원집 외동딸... 

  그렇게... ” 

 “ 그러니까...논산의 과수원집이 사모님 친정이란 말씀이시죠. ” 

 “ 그렇지. 왜 ? 혹시 들어본적이 있나 ? ” 

 “ 아...아뇨. 논산 지명 자체야 방송 같은데서 가끔 언급되는걸 들은 기억은 있죠 하 

  지만...제가 논산의 과수원까지 갈 일이 뭐가 있겠어요. ” 

 묘한 미소를 살짝 지어보이며 대답하는 채영. 그런 채영을 보며 진동의 말은 이어진다. 

 “ 그래서 그때만 해도 이따금 휴일이나 휴가철 때 나랑 집사람이랑 논산 처가 과수 

  원에 놀러가곤 그랬었어. 가서 장인어른 장모님댁 과일 따는것도 좀 도와드리고... 

  허허...예전같으면 그런일은 집에 하인들이 하거나 했겠지만...이미 우리 젊은 시절 

  만 해도 그런 시대는 이미 다 오래전에 지났으니까말야...대충 보니까 그때 장인어 

  른,장모님께선 과일수확철이 되면 과일 딸 일꾼을 대충 일당을 주고 고용하는 그런 

  식으로 과수원을 운영하시더군. 그리고 사위도 자식이니까...나도 수확철이 되면... 

  과수원에 집사람과 함께 내려가 과일따는일을 도와드리곤 그러면서 지냈던게지. ” 

 “ ...... ” 

 “ 물론 경숙이가 아직 어린 애기때였고...다른 아이들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 

  우린 그럴 때 경숙이도 함께 데리고 논산 과수원에 내려갈 수밖에 없었어. ”  

 “ 그런데 그러다가 따님을 잃어버리셨다 그런 말씀이세요 ? ” 

 “ 그러게나 말이야. 그때 대충 과수원 근처 아이 맡길만한 곳에 아이를 맡기고 우린 

  장인어른,장모님을 도와 하루종일 다른 고용된 일꾼들과 함께 과일 따는일에만 열 

  중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저녁때 가보니 애가 없어졌다는거야. 허허 참...세살때면 

  아무리 그래도 걸음마나 겨우 할 그 정도 나인데...도대체 그 어린 것이 어디로 그 

  렇게 감쪽같이 사라진건지...아무리 찾아도 찾을길이 없더군... ” 

 “ 세상에...어쩜 그렇게까지... ” 

 “ 그러니 더욱 답답한게야. 차라리 진짜 무슨 ‘서울가서 김서방 찾기’식으로 단서나 

  막연하다면 모를까 우리 집사람 친정...즉 내 처가는 거듭 말하지만 그 동네에션 유 

  명한 집안이었어. 외동딸 하나가 있는 OO면의 과수원집. 그런식으로 말하면 읍내마 

  을에서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헌데 그런 과수원집 외동딸이 서울로  

  시집가 딸 하나를 낳았는데...그 세 살난 딸이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으니...우 

  리로선 답답한 노릇이지. ” 

 사실 60-70년대는 물론 80년대까지만 해도 잘사는 집안의 돈을 노린 젊고 몰지각한 흉악범들이 ‘부잣집 어린아이’를 유괴해가는 유괴사건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터져 온 나라를 공포와 경악에 떨게 만들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진동과 경숙 내외는 물론 경숙의 친정 부모님까지도 그런 ‘유괴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경찰에 수사의뢰까지 했건만 세 살 어린아이 김경숙의 행방은 어디에도 찾을길이 없었고 그렇게 딸 하나를 잃어버린채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숙에게 동생이 되는 아이 세명을 더 낳은채로 그렇게 20년 세월을 흘려보낸 것이다. 새삼 지나간 시간이 떠올려지는 고통때문인지 진동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기까지 한다. 

 


 그렇게 3년을 김진동 사장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한 이채영. 무엇보다 어린시절 잃어버렸다는 큰딸이 하필 그녀와 동갑이라서인지 그저 단순히 가정부 누나를 아이들이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게 하지 못하도록 ‘누나’나 ‘언니’로 부르게 하는 것 정도를 넘어서 마치 채영이 자신들의 친딸이라도 되는양 때론 채영이 당혹스러워질 정도로 다소 남다르게 그녀를 대해주었던 진동과 승주내외. 그러다 진동과 승주의 장남 경태가 고등학교 2학년, 둘째 경수가 중학교 2학년 그리고 아직 철부지 막내 경옥이 초등학교 2학년인 85년 여름방학을 앞두었을 때 일이다. 

 그보다 앞서 중간고사에서 고2인 경태가 전교1등을 했다. 이 정도면 경태는 공부는 확실히 꽤 잘하는 우등생인것만은 틀림없는데 (* 그것도 80년대 중반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한 것이다.) 그 중간고사 전교1등 선물로 뭘 해줄까 하는 아버지의 제안에 경태가 뜻밖의 바램을 내비쳤다. 일반 다른아이 같으면 작심하던 명품옷이나 명품시계 아니면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인기가수 콘서트에라도 갈수있게 해달라는 요구 정도는 할법한 나이고 시대인데, 경태는 ‘전교1등 기념선물’로 뜻밖의 바램을 내비친 것이다. 그 경태가 중간고사 전교1등 기념으로 부모님이 해주길 바라는 것이 이와 같았다. 

 ‘ 방학때 한번 기회되면 누나 고향에 한번 (피서나 여행삼아) 가보고 싶어요. ’ 

 이 정도면 경태도 좀 유별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시절 강남의 잘사는 이들이 집의 가정부나 파출부를 자녀들에게 이모나 언니라 부르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행여 가정부나 파출부를 무시할까봐 또는 가정부나 파출부 입장에서도 행여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가족처럼 친근하게 대하라는 뜻으로 그리하는것이지 ‘진짜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아닌말로 경태에게 채영이 무슨 ‘진짜 친누나’라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심지어 그런 채영의 고향집에를 가보고 싶다니. 이 시절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와 서울에서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30-40대 중년들이 많던 시대니 특히 이 시절 10대들은 외가나 큰아버지 또는 삼촌 집이 지방이나 시골인 경우가 평균 두명중 한명꼴로는 있던 시절이다. 서울에서 한 3대,4대쯤 계속 산 토박이 집안이라면 모를까. 지방이나 시골에 친척이나 외가가 없는 아이라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인 그런 시대다. ‘여름방학때 우린 시골 할머니네 놀러가기로 했다’, ‘시골 외갓집 가기로 했다’ 이런식의 말을 아이들이 다반사로 하던 그런 시절. 허나 일단 경태네의 경우 여름방학때 그런 피서를 갈 ‘시골 친척집’은 없는 상태다. 일단 아버지 김진동이 그 윗대서부터 쭉 서울에서 산 토박이 집안이고 엄마 고향이 충남 논산이지만 실은 백승주 여사는 그렇게 세 살때 딸을 잃어버리고 한동안은 논산 근처에서 딸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지만, 그후에는 오히려 일절 고향을 찾지 않은 그게 백승주 여사의 실체다. 상처때문일까. 트라우마 때문일까. 사실 어느덧 고등학생,중학생이 된 경태와 경수 조차도 엄마 고향이 충남 논산이라는것도 그리고 어린시절 잃어버린 누나가 위로 한명 더 있다는 사실까지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다. - 다만 장남 경태는 ‘어린시절 잃어버린 누나가 있다’는 것은 언제 아버지,어머니가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기라도 했는지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있는 상태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 ‘중간고사 전교1등 기념선물’로 ‘가정부 누나’의 고향집에 내려가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고등학교 2학년 소년 김경태. 한참 호기심도 많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아질 나이, 특히 방학때면 시골 외가나 시골 할아버지,삼촌댁에 놀러간다는 주위 친구들이 많던 그런 환경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경태가 막상 자신들은 방학때 그런 놀러가거나 할만한 시골이나 지방 친척집은 없다는데서 묘한 자격지심(?)이나 부러움 같은것이라도 느꼈음인지. 무슨 ‘꿩대신 닭’같은 심정인것인지. 하필 가정부 누나의 고향에 놀러가보고 싶노라는 의사를 내비친 것. 확실히 이 시절에 웬만해선 잘 볼 수 없는 사례고 특이한 학생이라는 점만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을 것 같다. - 상식적으로 세상에 자기네집 가정부나 파출부로 일하는 여성의 고향에 굳이 가보고 싶다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인지 애초부터 ‘가정부 언니’를 싫어하던 막내인 철부지 경옥은 그렇다치더라도 둘째 경수도 결국 형의 유별남에 약간의 반발을 하고 나섰다. ‘중간고사 전교1등 기념선물’을 그렇게 받고 싶다는게 경태의 의사였는데 바로 그런 여름방학이 가까워 질 무렵 경수가 경태에게 이렇게 말했다. 

 “ 형 참 유별난거 알아요 ? ” 

 “ 내가 뭘 ? ” 

 “ 아무리 그래도...채영이 누난 그냥 우리집에서 일하는 누나에요. 아닌말로 우리들  

  친 누나도 아니고...근데 거기가 뭔데...거기가 무슨 우리 외가에요 친정집이라도 돼 

  요 ? 솔직히 그쪽은 우리하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집이잖아요. ” 

 “ 누나 고향이잖아. ” 

 도대체가 혹시 김경태 학생은 자신보다 여덟 살 많은 ‘가정부 누나’에게 남다른 감정이라도 품고 있었던것인지 여하튼 경수는 형 경태의 이런 태도가 이해할수 없다는 듯 나왔고 다만 형의 바램에 지나치게 반발하며 나오는것도 혹시 자신도 ‘가정부 누나’가 싫었던것처럼 비칠까봐 더는 내색을 안하고 그 정도에서 물러나긴 한다. 일단 뭐 여름방학때 덕분에 피서겸 놀러갈데가 생겼다니 그런 관점에선 뭐 그리 싫을것까지는 없을 것 같고, 처음부터 가정부 누나를 싫어했던 막내 경옥이를 제외하곤 일단 그렇게 이번 여름방학 피서는 가정부 누나 채영이네 고향인 ‘전북 군산(* 사실 군산-옥구가 군산으로 통합되기 이전의 ‘구 옥구군’으로 봐야하긴 하지만 편의상 그냥 군산으로 설정합니다.)’에 한 3박4일정도 일정으로 피서겸 여행을 가보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다만 막내 경옥은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입이 댓발쯤 나와있었는데 이쯤되면 행여 그런 경옥이가 그것도 따지고보면 남인 가정부 채영이의 고향집 식구들에게 무슨 실례나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라도 두고갈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린애를 3-4일씩이나 혼자 집에 두기가 뭣하면 주위 다른 친구나 지인집에 맡길수도 있는일이고. 하지만 이미 22년전에 딸을 잃어버린 트라우마가 있는 진동과 승주 아닌가. 그래서 결국 막내 경옥이까지 달래고 달래 결국 군산으로 출발하는 진동과 승주 내외의 차에 태웠다. 채영이까지 총 여섯명이 그렇게 차는 군산으로 달려가고 입이 댓발쯤 나와있는 경옥이와는 달리 경태와 경수는 사뭇 들떠있었고 채영은 채영대로 또 진동과 승주내외는 그들 나름대로 어떤 남다른 감회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 아이고 이거 어서오십시오. 세상에...어떻게 저희같은 아무런 보잘 것 없는 사람 

  집을...누추하기만 할텐데...어떻게 이런데까지 오실 생각을 해주시고...그저 저희는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 

 큰딸 채영이를 포함 슬하에 총 4녀1남 – 막내가 아들이다. - 다섯자녀를 둔 그리고 나이 어느덧 60에 이르고 있는 채영의 아버지 이태일. 딸로부터 미리 연락을 받긴 했기에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나름 채영이 일하는 주인집 식구들이 4-5일간 묵을 숙소를 직접 알아보기까지 했다. 면장댁에 직접 도움까지 청해서 일단 읍내에 있는 한 여관방을 예약 그곳에서 진동과 승주내외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는 그곳에서 머물게 했다. 허나 어쨌거나 딸이 3년동안 가정부로 일했다는 주인집 식구고, 김진동의 가족 입장에선 바로 그런 채영이의 실제 고향 식구들. 피차 어렵다면 어렵고 남다른 인연이라면 남다른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 실제 이런일은 70-80년대에 웬만해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 밤 늦은시간 이태일은 아내 함옥희 여사가 차려온 간단한 술과 안주로 진동을 대접하며 여러 가지로 감회서린 표정으로 진동과 대화를 나누었다. 

 “ 저흰 그저...못난 저희딸을 지난 3년간 거두어 주신점에 몸둘바를 모를 따름입니 

  다. 그저...부족한 저희 딸이 행여 서울에서 무슨 실수나 하지 않을지 그저 매일 

  매일을 안절부절 불안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에 살았었는데... ” 

 “ 하하...아닙니다 어르신. 별 말씀을...오히려 저도 어쨌든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바 

  쁘고 또 아이들은 점점 커가면서 되려 천방지축이 되어가는데...그런 애들을 돌볼만 

  한 사람이 마땅치 않았던터에...채영이가 그 역할을 아주 똑부러지게 잘해주어 그저 

  오히려 제가 고맙고 감사했을 따름입니다. 또 이렇게 훌륭하고 똑부러진 딸을 키워 

  주신 부모님이 어떤 분이실지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했구요. ” 

 “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저 저희는 보다시피 여러 가지로 보잘것없고 누추한 처 

  지라...게다가 아이들도 많고...그런 상태에서 큰 딸이 집안 생계에 보탬이라도 되겠 

  다며 그렇게 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돈벌기 시작한지가 5년째인데...여하튼  

  여러 가지로 참...뭐라고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사람이란 아무래도 술이 두어순배 돌아가면 취하기 나름이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에 담아두었던 깊은 속내가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래서일까. 딸 넷에 막내아들까지 총 자녀 다섯을 키우며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태일은 새삼 어떤 감정이 북받치는 것 같다. 

 “ 없는 살림에...여하튼 딸을 내리 넷을 낳고 나이 40을 훨씬 넘겨 겨우 아들을 하나 

  보니 그땐 저나 저희 집사람이나 그저 기가막힐 따름이었죠. 그때는 진짜...이제 앞 

  으로 어찌 살아야하나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 

 무엇보다 ‘대를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한다’는 그게 기본가치관으로 자리잡으며 자란 그런 세대가 아닌가. 그러니 딸 넷을 낳고 나이 40을 훨씬 넘겨서 막내로 아들을 낳았다면 그 속사정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것같다. 게다가 대충 김진동의 눈에 봐도 결코 넉넉찮아 보이는 살림살이. - 그래서 다섯명이나 되는 김진동의 식구를 자신들의 집에서 재울수는 없어서 읍내에 여관방까지 미리 예약해 놓은 것 아닌가. 채영의 아버지 이태일 선생도 그 살아오면서 겪은 세상풍파와 시름이 얼마였을까. 그걸 생각하니 그런대로 그 심정이 이해갈 것도 같아 진동이 한번 태일의 손을 잡아보기까지 한다. 

 


 “ 어쨌든 그래도 막내로 아드님을 보셨으니 많이 듬직하시겠습니다 어르신... ” 

 “ 허허... ” 

 오죽했으면 딸 넷을 낳고도 한사코 아들을 낳으려 했을까.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진동이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태일은 태일대로 다른 회한이 있기라도 한지 씁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 저도 뭐 예전엔 집안에 대를 이을 아들 하나만 있으면 만사가 다 형통할줄만 알 

  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구요. ” 

 “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 ” 

 “ 막내에 아들이라서 저나 저녀석 어미 또는 제 누나들이 너무 오냐오냐하며 곱 

  게 키운것인지...완전 철부지에 세상이 다 자기가 해달라는대로 해줘야 하는줄 

  아는 그런 어리광에 응석받이가 되어버렸어요. 저래가지고 나중에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할지...사람구실이나 제대로 할지...이건 뭐 5학년이나 된 녀석이 여태 제 

  스스로 옷 하나 챙겨입을줄 모르니...저로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 

 “ 허허...그런 문제가 다 있으셨군요. ” 

 “ 게다가 제 누나들도 그래도 큰누나나 작은누나는 막내고 집안의 아들이니 우리 

  가 챙겨줘야 한다 그런 생각은 하고 늘 챙겨주는데 셋째나 넷째의 경우는 – 그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중학생입니다만 – 그런 문제로 또 제 동생하고 티격태격 

  다투기나 하고...또 어떨땐...아빠,엄마는 어떻게 남동생만 챙기느냐고 대들고...그 

  래도 우리때는 집안의 아들이면 그래도 집안의 기둥이니 더 위해주고 챙겨주는 것 

  을 당연시 했는데...요즘 애들 생각은 또 다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허허...저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애들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더라구요. ” 

 자식키우는 입장이야 피차 마찬가지라서일까. 태일의 탄식이 진동이 그런대로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나온다. 진동의 화답이 이어진다. 

 “ 저희집은 아까 보셨다시피 큰애와 둘째가 아들이고 막내가 셋째로 딸입니다만... 

  저도 막내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고보면 막내란게 아들이든 딸이든 

  다 마찬가지인 것 같더라구요. 어려서부터 아빠나 엄마 또 제 오빠들이 늘 이뻐해 

  주고 위해주기만 하니까...그저 매사에 칭얼대고 어리광만 부리니...저희도 막내여 

  식 때문에...저 아이가 앞으로 어찌 자랄지 걱정이 참 많습니다. ” 

 잘살건 못살건 또 아들이건 딸이건 자식키우는 입장에서의 고충은 피차 마찬가지인지 4녀1남중 막내라 귀히 자라서 제멋대로라 걱정인 아들이 있는 이태일, 막내딸이라 어릴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딸 때문에 걱정인 김진동. 그런식으로 확실히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진동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사실 그래서 여기 오면서도 걱정을 좀 했어요. 아직 철없는 막내가 혹시 여기서 

  선생님 댁에서 무슨 실수나 하지 않을지...그래서 웬만하면 막내는 두고올까 그 고 

  민도 해봤는데...뭐 그렇다고 요즘 세상에 아이 맡길만한 곳이 어디 적당하지도 않 

  으니...그래서 어쩔수없이 함께 데려오긴 했습니다만... ” 

 너무 술에 취해도 곤란할 것 같기에 진동과 태일의 피차 공감가는 자식들 문제에 대한 푸념은 그 정도로 마무리가 된다. 여관에서 묵게 되어있는 진동의 가족이건만 진동은 이미 술에 많이 취해있고 밤늦은 시간이라 하는수없이 태일의 집에서 자게된다. 

 한편 채영은 채영대로 볼일이 있는지 읍내의 한 커피숍으로 바로 밑에 동생인 지영을 불러냈다. - 김진동 가족이야 피서를 온것이지만 채영은 고향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 다른 가족들이 있는데선 이야기하기 곤란한 용무이기라도 한지 읍내 커피숍으로 조용히 동생을 불러낸 채영. 언니와 세 살차이 나는 스물두살의 직장여성 지영은 무슨일인가 싶어 언니가 부른 커피숍으로 나왔다. 

 “ 무슨일이야 언니 ? ” 

 의아해서 묻는 지영을 채영이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는 바로 나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 너 도대체 전주에 공장엔 왜 취직한거니 ? ” 

 “ 그야 돈벌려고 했지. ” 

 지영 역시 언니 채영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처지. 허나 채영은 태연하게 답하는 동생을 거듭 노려본다. 

 “ 너 내가...넌 꼭 대학 들어가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편지에도 그렇게 신신당 

  부 했는데... ” 

 사실 학교를 졸업하고 5년동안 서울에서 가정부등의 일을 하며 보낸 채영이기도 하지만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올만한 처지가 안된적이 더 많아서 그대신 때되면 편지로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는 그런 방식을 취해오곤 했다. 편지는 부모님 앞으로나 온 가족들 앞으로 보낸적도 있었고 네명이나 되는 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할말이 있을떄는 개별적으로 보낸적도 있었는데 여하튼 지영에게 보낸 편지엔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보다. 허나 지영은 오히려 발끈한다. 

 “ 언니...우리집이 그럴 형편이 돼 ?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영철이(막내동생 이름)  

  공부시켜야 하는거잖아. ” 

 “ 지영아... ” 

 여하튼 위로 누나가 넷이나 되고 맨 마지막 다섯째로 아들이 태어난 집안. 자연스레 부모님의 기대와 바램은 막내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위에 누나들이 막내동생을 위해 희생한 집안이라고나 할까. 허나 그렇기에 채영은 채영대로 답답한 무엇이 있었는지 이와같이 말한다. 

 “ 나 솔직히...우리 4자매 중에도 대학가는 애가 한명 정도는 나와주기 바랬어. 그리 

  고 막말로 요즘 세상에 누가 여자들을 고등학교까지만 보내고 그만둔다니 ? 여자도 

  기왕이면 대학은 나와야지 !!! ” 

 하긴 80년대면 이미 대학을 진학하는 여성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시대다. 게다가 20대 중반인 채영 역시 60년대 초반 태생이니 그 의식수준은 비슷한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여하튼 어려운 가정형편이니 5남매가 모두 대학까지 가거나 할 수 있는 형편은 못되는 집안. 막내인 남동생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누나들이 희생해야 하는 것은 그 시절 웬만한 가치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60년대생인 채영의 의식은 부모님하곤 달랐는지, 이건 아니라는 듯 거듭 절망스럽게 나온다. 

 “ 어쨌든...나 다른건 몰라도 너 대학가는 모습은 진짜 보고 싶었다. 근데 어떻게 니 

  가 ? 나야 어차피 대학갈 실력도 못되는 애니까 진작에 포기한면도 있지만...넌 그 

  래도 아니잖아. ” 

 아마 학교때 성적도 신통치 않았던 큰딸 채영에 비해 둘째 지영은 좀 달랐던 모양. 그래서 아마 채영은 바로 밑에 동생은 대학에 들어가길 내심 바란 모양인데 그 동생마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하다니. 그 답답함에 가슴을 치기까지 하는 채영. 허나 지영은 자신도 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듯 이와같이 나오고 있다. 

 “ 언니, 그리고 나도 다 우리집 형편 생각해서 내린 결정야. 여하튼 우린 아직 돌 

  봐야할 동생들이 많은거잖아. 수영이(셋째), 미영이(넷째) 그리고 막내 영철이까지 

  걔네들까지 다 챙겨야하는판에...게다가 엄마,아빠도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판에 

  내가 한가하게 대학갈 생각이나 하게 생겼어 ? ” 

 “ 이지영... ” 

 말을 듣고보니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라서인지 일단 말문이 좀 막힌 채영. 그러나 여전히 답답한 그 무엇이 있는 듯 지영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다. 허나 지영은 이미 자신도 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듯 나오고 있다. 

 “ 여하튼 나도 다 우리집의 미래를 생각해서 결정한 일야. 그러니 언니도 그만 내 

  선택을 존중해줬으면 좋겠어. ” 

 “ 뭐어 ? 존중 ? 미래 ? ” 

 세 살터울 동생의 말치곤 제법 당돌해보여서일까. 아니면 이젠 확실히 손아랫 동생 지영은 자신이 통제하는게 쉽지 않을만큼 다 자랐구나 하는 현실까지 실감하면서 채영은 거듭 어이없이 동생을 바라보고 그런 언니를 보며 지영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어쨌든 언니가 없을땐 내가 우리집 장녀 권한대행이잖아. 난 우리집 장녀 권한대 

  행으로서 동생들 돌보는 일을...내 책임을 다하교 있을뿐이야. ” 

 “ 뭐어 ? 권한대행 ? ” 

 ‘권한대행’이란 말은 이때는 정치권보다는 야구장에서 많이 들을수 있는 소리긴 했는데, 보통 팀 성적이 부진하거나 여타 사정으로 감독이 시즌중 사퇴해서 다른 코치가 감독을 임시로 대행할 때 그런 표현이 나오곤 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이들 역시 젊은 여성이니 야구 자체에 큰 관심까진 없더라도 그런 표현을 못 들어보진 않았을터. 헌데 어쨌든 집안의 큰딸인 언니가 부재한 상태에선 둘째인 자신이 ‘장녀 권한대행’이란 말까지 동생이 입에 담자 채영은 더더욱 어이가없고, 이런 동생을 기특하가도 봐야하는건지 당돌하다고 봐야하는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 이와같이 나온다. 

 “ 아이구, 그래요. 잘 나셨어요 우리 권한대행님. 우리 기특하신 둘째 동생님...아주 

  장하세요. 네네...훌륭한 권한대행 나오셨네요. ” 

 “ 언니... ” 

 비아냥으로 들려서 볼멘소리를 하는 지영. 채영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탄식한다. 

 “ 아무리 그래도...여자도 대학가는 애가 하나는 나와야 할거아냐. 우리집에서... ” 

 


 김진동 가족은 3박4일 피서여행을 온것이라 그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다만 중간에 다른 관광지를 하루 더 들러 총 4박5일의 피서여행 일정을 마치고 김씨 가족은 귀가하게 되었다.) 채영은 진동 내외로부터 여름 특별휴가를 얻어 아이들 방학기간동안 고향집에서 머물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대략 아이들 개학할때쯤 서울로 돌아오라고 진동내외가 말했으니 8월 하순경까진 채영은 집에 머물수 있게된 것이다. 

 진동의 가족이 돌아가고 난 뒤 채영은 모처럼만에 엄마 함옥희 여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덧 나이 50을 넘긴 채영의 어머니 옥희. 무엇보다 채영이 그래도 가끔은 1-2년에 한차례 정도 고향에 내려온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고향집에 이렇게 장기간 머물게 되는 것은 실로 5년만의 일이라 옥희가 이래저래 큰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짓는다. 채영은 그런 엄마를 위로한다. 

 “ 엄마 왜 그래...괜히 울기나 하고... ” 

 “ 다 내 죄다. 다 내죄야.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거여... ” 

 “ 엄마도 참...별소리를 다한다. ” 

 엄마의 이러는 모습을 보는 큰 딸의 마음이 더더욱 안쓰러운지 채영의 반응이 이와같고 옥희는 옥희대로 나름 그동안 5남매를 낳고 키우며 지금까지 살아온 회한이 이만저만 아닌지 그녀의 넋두리가 한동안 계속된다. 

 “ 부모만 잘 만났어도 이리 고생은 안 하는건데 니가...주책같이 그래도 아들 하나는 

  낳아야 한다는 니 아빠 성화 때문에 딸 넷을 낳는 끝에 마지막...나이 40을 훨씬  

  넘겨 영철이까지 낳는...그리 하지만 않았어도...내가 널 이렇게 고생은 안시키는거 

  였는데...그저 에미 잘못만난 죄고 부모 잘못만난 죄야 다... ” 

 “ 엄마...너무 그러지마. 나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아빠 원망해본적 한번도 없어. 그 

  리고 큰딸이 되어가지고 언니,누나가 되어가지고 동생들 챙기고 돌보는거야 다 당 

  연한거지 뭘 그래 ? ” 

 “ 아이고 이 착해빠지기만 한 것...이리 착한 것을 이 다음에 대체 누가 데려갈까나 

  ... ” 

 진심 부모님을 걱정하고 위하는 효녀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 장면인지라 딸의 천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라 옥희는 한층 더 미안한 마음에 딸을 끌어안고 채영이 그런 옥희를 겨우 달래 함께 잠자리에 든다. 이미 밤늦은 시간. 청승은 멈추고 피차 피곤하기도 해 곧바로 잠이들긴 했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눈이 떠진 채영이 갑자기 엄마를 깨운다. 

 “ 엄마...자... ? ” 

 자는줄 알았는데 옥희도 마침 화장실이라도 가기위해 깬것일까. 마침 그렇게 화장실에 다녀오는 엄마를 묵묵히 바라보던 채영이 문득 이렇게 묻는다. 

 “ 엄마...근데말야... ” 

 “ 왜 ? 또 무슨 할말이라도 있어 ? ” 

 한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가기위해 깬 것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사소한 용무라도 있기라도 한것인지 의아해하는 옥희를 보며 채영의 말이 이어진다. 

 “ 엄마...근데 우리 혹시...어릴 때 논산 산적이 있었어 ? ” 

 “ 뭐어 ? ” 

 엉뚱한 질문이라 황당해하기 보단 약간 당혹스런 말투로 나온 질문. 채영이 공연히 자신의 머리와 이마를 손으로 더듬어보며 말을 이어간다. 

 “ 아니...실은 나 아주 어릴때부터...어렴풋이 그런 기억이 있었던 것 같거든...엄마랑 

  같이 논산 과수원에 간 기억... ” 

 “ 뭐라구 ? ” 

 “ 그리고...혹시 엄마 ? 엄마 친정...그러니까 우리한테 외가가 논산 아니었어 ? ” 

 “ 얘가...얘가 자다말고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야. 갑자기 외가는 뭐고 논산은...그런 

  거 없어. ” 

 “ 아니 실은...방금전에도 꿈에... ” 

 “ 꿈에 뭐 ? ” 

 “ 나 지금까진 그저...하도 어렴풋한 기억이라 내가 뭘 잘못 기억하고 있는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 

 “ ??? ” 

 “ 꿈에...무슨 논산 과수원이고 거기가 우리 외가라는데 거기서 내가 길을 잃어버리 

  고 엄마가 막 날 찾아 헤매는...그런 꿈을 꿨어. ” 

 “ 뭐...뭐라구 ?  

 순간 당황해하는 옥희. 그러나 바로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는 듯 옥희가 말한다. 

 ” 얘가 무슨...아냐 이것아. 논산은 무슨...그리고 넌 외가 없어. 외할머니고,외할아버 

  지고 너희는 그런거 없다구. “ 

 ‘너희’라 할진대는 비단 채영뿐만 아니라 다른 동생들까지도 모두를 통털어 ‘너희에겐 외가가 없다’라는 소린데, 그렇다면 이게 더 엉뚱한 답이기도 하다. 그냥 외가가 논산이 아니고 다른 지역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외가가 없다’는건 또 무슨소린가. 여하튼 일단 옥희의 해명같은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아마 그거...니가 뭘 헷갈린게 맞아. 엄마가 어릴 때 행상하고 다닌건 알지 ? “ 

 ” 그건 기억나지. 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했었으니까. “ 

 ” 그래...그걸 다 기억하는 애가 이제와서 엉뚱한 소릴 하긴...그땐 알다시피 니네 아 

  빠가 학창시절 다쳐서 생긴 신체장애 때문에 농사도 못짓고 배를 탈 수 있는 처지 

  도 못 돼서...그래서 니 아빠랑 결혼하고 한동안은 엄마가 화장품이며 여자들 장신 

  구 같은거 파는 그런 행상을 하면서 한마디로 이 지역 저 지역 보따리장사를 하며 

  살았었어. “ 

 ” 그건 알아. 엄마가 그건 툭하면...그 시절 회상하면서 엄마니까 니 아빠 같은사람 

  하고 살아주는거지...솔직히 어떤 여자가 니네 아빠같은 사람과 살아주겠냐...그러 

  던거... “ 

 ” 그래,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애가 이제와서 무슨 엉뚱한 소리야. !!! 여하튼 이 엄 

  마가 아직 어린 너 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보따리 장사 하던때...아마 그때 논 

  산까지도 자주 가본적이 있는데...그래서 니가 그걸 헷갈려하는거 같아. “ 

 ” 엄마가 날 업고 논산까지 자주 갔었다구 ? “ 

 ” 그려 이것아. 너는 어리지. 그렇다고 반병신인 니 아빠한테 애기인 너를 맡기긴  

  영 불안하지. 그러니 어쩌겠냐. 논산을 가든 금산을 가든 어쨌든 다른 지역에 보따 

  리 장사하러 돌아다닐땐 그냥 너 업고 돌아다니며 장사했던거지. 그게 여하튼 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그러고 살았으니께...니가 그걸 잘못 기억하고 있는 모양 

  이여... “ 

 ” 그런가... “ 

 다른지역을 돌아다니며 보따리 장사를 한게 옥희의 젊은 시절이라면 군산에서 논산까지가 그런 행상에게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논산까지도 자신(채영)을 업고 장사하고 가곤 했었다는 것을 채영은 일단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듯 하다. 허나 그래도 아직 뭔가 석연찮은 것이 남아있는 것인지 채영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며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 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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