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젊은 새엄마 2
민호와 혜진 내외가 강철규 교수의 전화를 받게된 것은 바로 부부가 그와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때였다. 전화는 민호의 휴대폰으로 걸려왔다.
“ 차민호 사장님되십니까 ? ”
“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 ”
강철규 교수의 정확한 이름은커녕 연락처조차 잊어버렸을 정도로 강철규의 존재는 지난 2년 차민호에게 그냥 잊혀진 존재였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인들 알아들을턱이 없다. 허나 철규는 어차피 말 빙빙돌릴일이 아니라서인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 지금 상황에서 잘 지내셨냐는 인사를 드릴수는 없을 것 같고...실은 저 강철규 교
수입니다. ”
“ ...... ”
“ 실은 차경현 학생이 다시 저희집에 찾아왔어요. 그래서 전화를 드리는겁니다. ”
바로 조금전까지 그때 경현이를 데리고 왔던 강 모 교수에 대해선 연락처조자 그 사이 지워버렸다는 말때문에 잠시 아내와 말다툼까지 벌였던 민호였고 게다가 민호는 실제로 ‘설마 또 그때 그 강 모 교수라는이 집에 찾아가진 않았겠지’ 하고 방심하고 있던터라 그런 상황에서 나온 강철규 교수의 말은 더더욱 민호를 기가막히고 황당하게 만들 따름이었다. 다른건 둘째치고라도 자기 아이가 강철규 교수라는 이에게 또다시 폐를 끼쳤다는 점 때문에 백배 사죄의 말부터 입에 올리고 있다.
“ 아이고 교수님. 정말 면목없습니다. 이거 진짜 뭐라고 사죄말씀 드려야할지...모든
게 다 제 불찰일 따름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르신. ”
실제로 철규는 민호보다 스무살정도 위이기도 하지만 그때 민호가 처음 봤던 철규의 인상이나 분위기가 자신보다 최소한 십여살은 위인 어른이 분명해 보였기에 ‘어르신’이란 호칭까지 입에 담으며 다시금 사죄의 말을 올리는 민호. 철규는 괜한 이야기로 시간끌일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 거듭 본론만 이야기 한다.
“ 그 어쨌든...저흰 차경현군을 다시 타일러서 집으로 돌려보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인데... ”
심지어 자신을 문하생이나 부리는 사람으로 받아달라고까지 애원했던 그런 경현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갈수 없다고까지 하면서. 그래서 철규도 그런 민호의 태도에 거듭 심경이 복잡하기만 했는데, 허나 진심은 역시 경현을 집으로 돌려보내는게 옳은 처사라 생각하는지 그와같이 말하는 철규. 그러지 민호도 더 말하고 자시고 할 것 있느냐는 듯 나온다.
“ 제가 곧 그리로 내려가겠습니다. 전주라고 하셨죠 ? ”
“ 네, 그렇습니다. ”
“ 제가 그때 2년전에 한번 내려가보긴 했지만 벌써 2년전 일이라 구체적인 길이나
주소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려서. ”
“ 주소랑 약도는 제가 곧 스마트폰 문자로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려
오시는 과정에서 저랑 통화를 하죠. ”
그렇게 일단 경현이를 데리러 다시 강철규 교수님 댁으로 내려가보기로 한 민호. 혜진 역시 경현이 또 그 집에 찾아갔다는 사실에 기가막힐뿐인데 서둘러 차를타고 내려갈 차비를 하는 민호를 보며 혜진이 이와같이 말한다.
“ 여보, 이번엔 저도 같이가요. ”
“ 당신이 ? ”
혜진의 이와같은 태도. 어찌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보이기도 해 민호는 어리둥절해하는데 그런 민호를 보면서 혜진이 이와같이 말한다.
“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그냥 당신만 보내고 전 손놓고 있는게 그래서요. 무엇보
다 그 강 모 교수란분이 저에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그것도 걱정이 되고... ”
혜진이 아주 머리가 나쁘거나 아둔한 여자가 아닌이상 경현이 최소한 그 집에 내려가서는 ‘새엄마가 싫어서 가출했다’는 식의 그런말이야 이미 충분히 했을것이라는 것 판단 못하지는 않을테고 그래서 더더욱 어찌되었거나 대학교수까지 된다는 사람이 바로 차경현의 새엄마가 되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인식이 박히게 되었을지 신경이 안 쓰일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도 좀 직접 내려가서 강철규 교수라는 이에게 사과를 드리든 대화를 나눠보든 그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럼 자연히 경현이와도 다시 대화를 좀 나눠보는 시간도 가질수 있을테니 겸사겸사 자신도 따라 내려가는게 좋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허나 2년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또다른 문제가 있다.
“ 하지만 그럼 유리는 어떻게 해 ? 우리가 내려가면 유리는 누가 돌봐 ? ”
“ 여보 지금 그게 문제에요 ? ”
유리고 뭐고 혜진은 그야말로 온 가족이 출동할 것 같은 기세로 나오고 그러나 민호는 아무리 그렇기로 아직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이런일로 전주까지 내려간다는 것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난색을 표한다. 그렇다고 이제 겨우 돌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전주에 내려가면서 집안에 방치해둘수도 없는 상황. 결국 혜진이 바로 꾀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다름아닌 민호의 나이트클럽에 전화를 한 것이다.
“ 어, 영선이니 ? 나야 혜진이. ”
“ 어머, 언니 ? 그간 잘 지내셨어요 ? ”
“ 언니가 뭐야 ? 내가 사장님하고 결혼한지가 언젠데. 이젠 사모님이라고 불러야지
!!! ”
“ 아...알았어요 미안해요 언니. 아니 사모님. ”
“ 다름아니라 영선씨, 급한일이 있으니 집으로 좀 와줄래 ? ”
바로 나이트클럽 무용수로 일할 때 알고지내던 동료 무용수 하나를 호출한 것이다. 어차피 민호가 나이트 사장이니 이런 문제는 사장 직권으로 허락만 떨어지면 되는일이라 생각했는지 바로 그 자신의 예전 동료 무용수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을 한 것이다.
“ 아니,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 영선이 그 아이한테 그러니까 우리 유리를
맡기자구 ? ”
“ 누가 뭐 나이트에서 갓난아기를 돌보래요 ? 우리집으로 와서 하룻밤 돌봐달라
고 부탁하는거죠. ”
“ 허허 참 나... ”
지금 언급한 영선뿐 아니라 혜진이 무용수로 일하던 시절 나이트 직원이든 가수든 무용수든 웬만한 이들은 다 지금도 혜진과 연락도 되고 인사도 나누는 사이다. 다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 밤에 일을 하는 직업이다보니 – 민호와 혜진 부부 집까지 직접 찾아오거나 할 일은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가 않았을뿐. 혜진은 그 영선이라는 나이트 무용수에게는 ‘남편의 먼 친척 상을 당해 지방까지 내려갔다 올라와야하니 아기를 데리고 갈수가 없어서 그러는것이니 하루만 봐달라’는 식으로 핑계를 댔다. 늦어도 내일 오전중에는 돌아올테니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며. 차민호 사장 입장에선 아내 혜진이 이런 잔꾀도 낼줄 아는 그런 여자였던가 하는 생각에 그녀를 다시 보게될 지경이다. 혜진은 영선이란 무용수에게 아기 돌보는 일이니까 괜하 야한옷차림으로 오지말고 수수하게 입고와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한편 철규는 한번 경현을 자신이 강의를 하는 대학에 데리고 가 보았다. 사실 철규는 대학 본 강의 외에도 세미나나 여타 다른 강연이나 행사참석등 그런 일정이 더 바쁜 몸이긴 하지만 여하튼 자신을 문하생이나 부리는 사람으로라도 써달라던 경현의 애원이 있었던탓에 고민 끝에 한번 그를 자신의 학교로 데려가본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밑의 조교를 불렀다.
“ 교수님, 웬 학생입니까 ? ”
“ 어, 정조교. 잠시만 이리와보게. ”
그리고는 조교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주는 철규. 조교가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 아니 저 교수님... ”
“ 솔직히 나도 여러 가지로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처지야. 하지만 저렇게 무작정
애원을 해대는 녀석을 돌려보내기도 좀 그렇고, 차라리 저 아이가 이런데서라도
아르바이트 비슷한 일을 해보다 정 안되면 제발로 떠나게 하던가 그렇게 하는게
어떨까 그 생각을 해봤어. ”
“ 교수님... ”
일단 조교는 2년전쯤에 웬 가출청소년 하나가 철규의 집에 찾아와서 잘 타일러 다음날 부모님이 내려오셔서 자기집으로 돌려보내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긴 대충 들은적이 있다. 헌데 2년전 그 학생이 또다시 교수님의 집으로 찾아왔다니 조교도 무척이나 놀라고 황당해했다. 일단 철규가 적당히 핑계를 대서 자리를 피한동안 조교가 경현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 교수님한테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뭐...새엄마가 싫어서 가출을 했다며 ? ”
“ 네. ”
조교도 뭐 ‘그쯤이면 알만하다’는 짐작이 되어서일까. 경현을 좀 딱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는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조심스레 입을연다.
“ 뭐...정 그렇게 새엄마가 싫어서 집에서 나온 처지라면...니 심정은 이해할만 하지
만...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야. ”
“ ...... ”
“ 뭐 듣자하니 교수님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런 뜻을 밝혔다던데...니가 뭐 우리
강철규 교수님에 대해선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
“ 교수님에 대해선 인터넷에서 그동안 많이 찾아봤어요. 책도 많이 쓰셨고 꽤 유명
한 학자시라는... ”
“ 나 원 녀석...그럼 아예 그렇게 미리 뒷조사를 다 해보고 작심하고 이번엔 찾아왔
다는거네 ? ”
“ 아...아니 저 그건... ”
사실 강철규 교수에 대해 지난 2년간 관심이 생겨서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심지어 강철규 교수의 책까지 찾아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처음 집에서 새엄마 혜진을 두들겨패고 무작정 나왔을때까지만 해도 강철규 교수를 찾아간다던가 하는 뚜렷한 행선지를 염두에 두진 않았었다. 물론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에 데려달라고 했을때쯤부턴 ‘강교수님을 다시한번 찾아가보자’ 그런식의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교수님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작심하고 계획적으로 찾아온것이냐는 조교의 말은 다소 억울하다는 심정도 들어 그와같은 반응을 보인건데 일단 조교는 그런 경현을 좋은말로 잘 타이르려는 듯 입을 연다.
“ 여하튼...듣자하니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을 안 했나보던데, 교수님 일을 돕는다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야. 때론 번역이나 통역같은 일도 해야할거고 대외
적인 홍보업무도 해야하고...그걸 고등학생인 니가 감당해낼수 있겠어 ? ”
“ ...... ”
“ 아니면 뭐...정말 교수님 밑에서 옛날 무슨 하인이나 집사 그런 사람처럼 집에서
허드렛일이라도 도와드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 ”
“ 네 !!! ”
아무래도 아직 나이어린 고등학생 신분인 경현에게 일종의 조교나 비서같은 그런일보다는 그런쪽이 더 현실적으로 어울릴 것 같긴 하지만 따라서 경현도 마치 그쪽을 바라고 있다는 듯 제법 또렷하게 이와같이 답한것이긴 하지만 조교역시 강철규 교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현을 여전히 딱하고 난감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조교와의 대화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전주로 출발한 민호와 혜진이 어느덧 목적지까지 다 와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규가 다시 교수실로 들어와선 경현을 불렀다.
“ 경현아, 이리오렴. 아무래도 이만 돌아가야할 것 같다. ”
“ 네 ? ”
“ 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어. 이미 전주까지 다 와가고 계시다는구나. ”
“ 교...교수님... ”
철규가 경현의 아버지한테 다시 연락을 취했을것이라는 것쯤은 경현도 능히 짐작하고 있을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막상 철규의 입에서 이런말을 들으니 경현은 다시금 당황하고 불안해한다. 철규가 그런 경현을 달래듯 다시금 한마디 한다.
“ 그러지말고 일단 내 집으로 가서 아버지하고도 같이 니 앞으로의 문제를 상의해
보도록 하자. 차라리 그게 낫지 않겠어 ? ”
민호는 철규에게 연락을 하면서 아내인 혜진과도 같이 오고 있다는 말까지 전했지만 그 말까지 전하면 경현이 더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 같아 그 이야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쯤에서 경현을 다시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는 철규. 조교는 조교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허나 어차피 새엄마도 함께 오고 있다는 사실이야 철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철규네 집에 도착했을 때 자연스레 알게될일. 새엄마 혜진까지 함께 철규의 집으로 들어서자 경현은 더더욱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그렇게 혜진의 얼굴을 두들겨패 쓰러트린게 불과 이틀전 일 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먼 전주의 강철규 교수 집에서 새엄마 혜진과 이틀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니 경현도 혜진도 피차 심경이 복잡하긴 하다. 철규는 일단 경현의 부모님과 먼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는 듯 경현은 방에 좀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마주앉아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려한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차를 내왔다.
“ 경현학생으로부터 집안 사정이야 익히 들은 몸입니다만...그러니까 이쪽분이...경
현군 어머니가 되시는거죠 ? ”
민호가 집안에 들어설 때 혜진을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를 했고 혜진도 더욱 정중하게 철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 새어머니든 뭐든 어쨌든 경현에게 어머니뻘이 되는것이니 그와같이 말한것이고 철규는 일단 그러면서 혜진의 인상과 분위기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경현으로부터 새어머니 혜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철규 아닌가. 그러니 그녀가 나이트클럽 무용수 출신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있을터. 다만 그런 무용수 출신 여성을 이렇게 가까이서 대해보는 것은 철규로서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서인지 공연한 호기심때문에라도 그녀의 얼굴과 분위기를 한번 더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솔직히 철규의 느낌에 혜진이 딱히 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대로 몸매는 괜찮아 보이는 느낌인데 화장을 안 한 탓인지 피부가 좀 가무잡잡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 정도였다. 그냥 길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나이트클럽 무용수 출신’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그냥 평범한 20대 후반 여인의 모습이었다.
“ 뭐...어머님께서도 여러 가지로 고충이 크셨을것이라 생각됩니다만...여하튼 경현
학생이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었나 봅니다. ”
“ 아...아니 저 교수님. ”
우려했던대로 철규는 자신을 그저 흔하디 흔한 의붓아들 구박하는 ‘나쁜계모’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바로 반발심이 들어 이와같은 반응을 보인다. 당황한 민호가 그런 혜진을 잠시 만류하고, 철규는 철규대로 그런 혜진을 안심시키려는 듯 이렇게 입을 연다.
“ 뭐 어쨌든 저도 대학에서 오래 학생들을 가르친 몸이고 또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사연을 가진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그런 사람입니다. 사람의 인
생이란게 다 저마다의 다른 처지와 입장이 있기 마련이지요. 뭐 제가...경현군 새어
머니를 그렇게 나쁜분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
예의상 하는소린지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와같이 말하는 철규. 혜진이 더더욱 불안한 표정이 되는데 철규는 철규 나름대로 상의할 문제는 상의해야할 것 같아 다시 입을연다.
“ 그...실은 제가 경현학생에게도 정 집에서 새엄마와 살기 싫으면 쉼터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느냐 ? 그걸 권했더니 경현학생이 그런곳은 낯설어서 그런지 싫다고 하
더군요. ”
“ ...... ”
“ 그리고는 하는말이 차라리 제 문하생이나 제 밑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그런뜻을
밝혔습니다. ”
이야기를 듣자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한지 혜진이 묵묵히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철규에게 이와같이 말한다.
“ 교수님,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어떻게든 아이를 제대로 타이르고
돌봤어야 하는건데... ”
이런곳까지 와서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한다는것에 어떤 인간적 모멸감이나 수치심이라도 느끼는것일까. 갑자기 울컥하며 감정이 북받치고 만다. 그래서 결국은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혜진.
“ 다 제 잘못이에요...저도 참...다 잘해보려고 했는데... ”
“ 아...아니 저 사모님...경현 어머님... ”
혜진의 반응이 이와같자 당황한 철규가 그를 진정시켜보려 한다. 민호도 일단 아내를 달래보려 하는데 한번 울음이 터지기 시작한 혜진의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가 않는다.
“ 다 제 잘못이에요. 세상일이 다 제 뜻대로 안 돼요. 저도 어쨌든 마음은 경현이에
게 잘해주려고 했던건데...뭐가 이렇게 일이 다 뜻대로 안되고 복잡하게 꼬이기만
하는건지...다 제 탓이에요. 다 제탓이라구요. 엉엉~~~!!! 흑흑흑~~~!!! ”
“ 여보...여보 진정해. 진정하라구. 여기까지 와서 이러면 난들 대체 어찌해 ? ”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혜진을 철규와 경현이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서 철규가 다시 입을 연다.
“ 경현군이 지금 고등학생인거죠 ? 1학년인가요 ? ”
2년전 처음 경현이 여기 처음 왔을 때 ‘중학교 2학년’이라고 자신의 학년을 정확히 밝혔으니 철규가 그것만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 민호가 답하자 철규가 이와같이 말을 이어간다.
“ 그럼 뭐 어쨌든...이제 한참 수능준비도 시작해야하고 그러겠네요. 뭐 아직 1학년
이니 시간은 좀 남아있는 처지긴 합니다만... ”
“ 그건 그렇죠. ”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온전히 대학에나 보낼수 있을지 그걸 생각하니 다시금 착잡해져 한숨섞어 민호가 답한다. 철규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헌데 좀전에 이미 말씀드렸던것처럼 경현군이 제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
히더라구요. 뭐 저도 어쨌든 학계에서 이런저런 명성이 좀 알려진 사람이라 제 저
술활동이나 논문작업 같은 것을 도와줄 비서나 조교같은게 필요한 사람이기도 합니
다만... ”
“ ...... ”
“ 그러나 어쨌든 경현군은 일단 학교부터 온전히 졸업을 해야할게 아닙니까 ? ”
“ 그건 그렇습죠 교수님. ”
정중하게 강철규 교수에게 그와같이 호칭하는 민호. 철규의 말이 계속된다.
“ 그래서 저도 경현군에게 이렇게 권했던겁니다. 정 그렇게 새엄마랑 사는게 싫으면
쉼터에 들어가보는게 어떻겠느냐고...헌데 경현이가 그건 또 싫다고 하더라구요... ”
일단 민호는 쉼터란 기능에 대해 생소해하는 듯 했고 혜진은 그런곳에 대해 들어본적은 있나보다. 그래서일까. 나름의 어떤 다급함에 이와같이 철규에게 나온다.
“ 제가 경현이한테 잘 할께요. 온전히 대학도 잘 보내고 그러면 되는거죠 선생님 ?
”
“ 뭐 저야 어쨌든...경현군이 집으로 돌아가 집안에서도 별다른 분란이나 혼란스러
운 일을 겪지 않고 착실히 남은 학업을 마칠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다행인 일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 그러니까요 제가 경현이 잘 돌볼께요. 그러면 되잖아요, 네, 선생님 ? 경현이 앞
으로 절대 구박하지도 않고 밥도 잘 먹이고...학교도 잘 보내서 대학도 무사히 들
어갈수 있게 할테니까...선생님, 제게 한번 기회를 주세요. ”
무슨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몸으로 이런말까지 입에 담고있는 혜진. 그 애원하는 모습이 애처로와보일 지경이다. 여하튼 이런식으로 경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결론이 난듯해서 철규가 다시 경현이를 부른다.
“ 경현이 이리 좀 나와보거라. ”
이번엔 아무래도 경현이와 단둘이 한번 이야길 나누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경현 부모님에게 잠시 자리를 피해달라고 하고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민호와 혜진은 산책삼아 잠시 주위나 한바퀴 둘러보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경현과 철규의 대화가 시작된다.
“ 지금 니가...여전히 내키지 않은 상황일거란거 잘 알아. 뭐 어젠 어쨌든 내 밑에서
일하게 해달라느니 어쩌느니 별의별 소리까지 다했으니까... ”
지금와 생각하니 좀 민망한 생각이 들어서일까. 경현의 낯빛이 살짝 붉어진다. 그런 경현을 보며 철규의 말이 이어진다.
“ 너무 원론적이고 상투적으로 들릴수도 있겠지만...아까 뭐 대충 이야기 방안에서도
들을수는 있었을거야. 새어머니가 내 앞에서 잘못했다고 울며불며 하는 모습까지도
”
철규에게 잘못을 빌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여하튼 ‘잘하려고 했는데 세상일이 내 뜻대로 안되더라’며 울머불며 한바탕 난리를 쳤던 혜진. 그 일을 입에 올리며 철규의 말이 이어진다.
“ 여하튼 선생님 생각도 니가 무슨일을 하든 일단 학교는 온전히 졸업하고 성인이
된 뒤 진로는 그 뒤에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때일은 그때가서 생각해도 늦지않아.
”
“ ...... ”
“ 일단 집으로 돌아가렴. 그리고 돌아가서 다시 새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아지면 그
때 다시 나한테 연락을 취해도 좋아. 정 여전히 새어머니랑 계속 살 수 없는 힘든
상황이 계속되면 그땐 선생님이 차라리 나서서 경현이 알바자리라도 하나 구해주
던가 할게. 그러니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진 군소리없이 집에서 공부만 열심
히 하는거다. 무슨말인지 알겠지 ? ”
더 이상 ‘싫다’며 우겨댈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한걸까. 사실 진짜 이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싫었다면 정말 더 목불인견으로 울며불며 애원을 하든 뭘하든 그렇게 나왔을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경현도 천성은 착한것인지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강철규 교수에게 너무 지나친 폐를 끼치는것도 예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뭔가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경현의 대꾸가 이와같았다.
“ 집으로 돌아갈께요... ”
좀 허무개그처럼 마무리되는 경현의 ‘2차 가출사건’ 같긴 하지만 여하튼 경현이 비로소 체념한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철규도 어쨌든 경현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허나 여전히 진심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이와같은 여지를 남긴다.
“ 그리고 아까 이미 말했지만 돌아가서 다시 새엄마와 불화하게 되면 그때 다시 연
락해. 그럼 그땐 아예 선생님이 경현이 만나러 서울까지 올라갈게. ”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경현이를 어쨌든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부득이하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어리고 착한 경현이는 그 말이 곧이 들리는 듯 했다. 여하튼 또다시 새엄마와 불화하는 일이 생기면 그때 자신이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화색까지 돈 경현. 그렇게 경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다만 어느덧 밤늦은 시간이라 경현과 민호,혜진 세식구는 오늘밤은 일단 강철규 교수댁에서 하룻밤을 잔뒤 다음날 아침 날이 밝는대로 떠나기로 했다.
“ 이것 참 여러 가지로 폐가 많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 ”
다시금 거듭 백배 사죄하는 민호. 그리고 철규는 이해한다는듯한 반응을 보인다.
“ 아닙니다 차사장님. 여하튼 차사장님이나 사모님이나 아이 문제로 이런저런 고충
과 고민이 얼마나 많으셨을지...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저야 이미 자식들 다 시
집,장가 보내고 어느덧 아이들과 떨어져 산지도 오래되었지만 자식 키우는 문제는
진짜 누가 되었든 보통 큰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 게다가 전 무슨 이혼이니 재혼
이니 그런 문제는 지금까지 한번도 없어서 그런쪽으로 고민을 할 일은 없었는데도
말이죠. ”
하물며 재혼가정에서 그것도 전처소생의 한참 예민한 사춘기 소년인 아들을 키우며 그 고충이 어땠겠느냐는 듯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이는 강철규 교수. 경현이에게도 거듭 격려의 말을 잊지 않는다.
“ 그리고 경현이는 어제 나하고 한 이야기 잊지 않았지 ?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학
교는 졸업하고 보는거야. 그리고 그 뒤에 문제는 그때가서 다시 상의해보도록 하자
꾸나. ”
강철규 교수의 말을 수긍하는것인지 아닌지 일단 경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네’하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민호 내외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타게된다. 두 번씩이나 가출을 해서 자신의 집에서 신세를 져서 당혹스럽게 만든 녀석이 두 번째 작별인사의 말 치곤 너무 단순하고 간단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순간이다. 차민호의 자가용은 어느덧 출발 강철규 교수가 사는 동네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다.
“ 경현아...차경현. ”
혜진이 경현의 손을 한번 잡아본다. 웬만한 진심이 아니고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행동이다. - 더욱이 경현이 집을 나가기전 혜진한테 했던 행동이 그녀를 두들겨패고 그로인해 태아까지 위기에 빠트릴뻔한 일이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 하지만 막상 그로인해 졸지에 이 먼 전주까지 내려오게 된 것을 생각하면 뭔가 나름대로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한편 민호와 혜진 내외는 강철규 교수님댁에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침도 들지 않고 바로 새벽같이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아직은 이른 오전시간이다. -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어차피 강철규 교수 집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 한가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너 내가 그렇게 싫으니 ? ”
허나 막상 이렇게 되니 답하기가 쉽지 않아서일까. 대꾸가 없는 경현. 안되겠는지 아버지 민호도 운전을 하면서 한마디 거든다.
“ 그냥 니 생각 솔직히 새어머니께 말씀드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짚고 넘어갈 문
제는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
여하튼 이런식으로 경현을 집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일단락지어진 경현의 ‘제2차 가출사건’이다. 허나 이대로 집에 돌아간다고 해도 경현이 앞으로 새어머니 혜진과 잘 지낼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고 또 강철규 교수한테 ‘문하생이나 부리는 사람으로 거둬달라’는 애원까지 했던 경현임을 생각하면 그런 경현의 장래문제까지 포함해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 경현아, 너 근데 대학은 갈거지 ? ”
문득 이렇게 묻는 혜진. 아마 그녀가 수년전 나이트에서 일할 때 들었던 동료 무용수 언니의 아는언니 사연. 새엄마 밑에서 자란 자신의 처지를 알고는 이복동생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진학을 포기한걸로 봐야할테고) 여군에 입대했다는 그 경우를 새삼 떠올리기까지 했던 혜진이기에 기왕 말이 나온 것 한번 그런 문제에 대해 이와깉이 묻는 것이다.
“ 가야죠 뭐... ”
그래도 대학을 안 가고싶진 않은것인지 아니면 하필 이런 상황에서 그 부분에 대한 정직한 생각을 말하고 싶진 않은것인지 퉁명스럽게 둘러대고 있는 경현. 혜진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경현아, 우리 이렇게하자. ”
“ ...... ”
“ 너 어쨌든 내가 대학까진 책임지고 보내줄게. 그러니 앞으로 두 번다시 이런 가
출같은거 하지 않는거. 그렇게 해줄수 있겠어 ? ”
여전히 경현은 대꾸가 없고, 그런 경현을 설득이라도 하듯 혜진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어차피 새엄마도 이제 아이를 가졌고 또 생겼고..새엄마 아이까지 둘씩이나 키워
야 하는판에 너한테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쓸수 있을거라곤 장담하지 못할거 같다.
하지만... ”
“ ...... ”
“ 너 어쩄든 대학까진 보내주고 그때까진 가급적 잘 돌봐줄게. 그러니 다신 가출같
은거 하지 말아줘. 무슨말인지 알겠지 ? ”
혜진으로선 나름 애원의미가 담겨있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그조차도 경현에겐 어떤 압박으로 느껴져서일까. 별다른 말이 없고. 결국 인근 휴게소에서 내려 민호와 혜진은 그 부분에 대한 다짐을 다시금 받아두려 한다. 경현 입장에서도 어차피 지금 다시 강철규 교수를 찾아간다거나 할수도 없고 강교수가 권했던것처럼 무슨 쉼터로 들어간다던가 하는것도 내키지 않다면 천상 아빠와 새엄마와 앞으로도 계속 사는 것 외엔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어서인지 결국 혜진의 제안을 수락하고 만다.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엔 따로 살지 어떻게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때가서 다시 의논을 해보더라도 대신 대학 들어갈때까지만은 말썽부리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사는 것. 헤진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자’는 제안까지 해 결국 그렇게 하고마는 경현. 혜진이 착잡하게 경현을 바라보고 있다.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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