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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레드벨벳 예리 (8.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박인수 장로와의 대화록 

 


 “ 왜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요. 원래 초대교회때는 오늘날과 같은 그런 큰 성전은 없 

  었다. 그리고 장로니 권사니 하는 그런 직분도 없었다고. 물론 최소한의 모여서 예 

  배드리는 그런 형태의 신앙공동체는 있었을지언정 오늘날 우리가 머릿속으로 흔히  

  생각하는 그런 형태의 큰 교회는 없었던거에요 그러니... ” 

 “ ...... ” 

 “ 꼭 그렇게 우리 눈에 보이는 예배당이 있고 교육관이 있고 또 청년부니 남선교회 

  니 여선교회니 하는식으로 모일 수 있는 그런 교제실이 있고 성가대도 있고 헌금 

  걷는 봉헌위원까지 그야말로 있을건 다 있는 그런 눈에 보이는 형태의 교회에서만 

  구원을 찾을수 있는건 아니다 그런말을 하는거에요. ” 

 최광일이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미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 광일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뭐 요즘 코로나 사태 때문에 그렇게 예배당에 보여서 예배드리는 그런식의 교회  

  예배를 강행하는게 옳으니 그르니 말도 많지만...중요한건 그런 초대교회 시절의 초 

  심이 어떤것이었을지 한번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는 이야기에요. 과연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으며 어떻게 모여서 예배드렸을지...그걸 생각한다면 

  꼭 눈에 보이는 교회에 마치 학교에 등교하거나 직장에 출근하듯 의무감으로 예배 

  드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에요. 제 말은 교회가는게 정히 부담스러우면 그렇게까 

  지 할 필요는 없다는 그런 취지로 하는 이야기지만... ” 

 “ 솔직히 전... ” 

 광일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소미가 이제야 입이 열린다. 그녀의 고백이 이어진다. 

 “ 어쨌든 전 고등학교때부터 친구따라서 교회 다니기 시작했지만...솔직히 그땐 딱히 

  하고 싶거나 무슨 꿈이 있거나 그런거 별로 없었어요. 대학도 그러다 여하튼 점수  

  되는대로 대충 진학하게 된것이긴 하지만... ” 

 다른건 몰라도 대학을 대충 자기 점수 맞는데 따라서 아무런 목표나 비전도 없이 들어가게 되는 것은 20-30년전 청소년이나 요즘 청소년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 어쩌면 이런식의 대한민국 청소년 문화(?)는 앞으로 세월이 많이 흘러도 – 특별히 교육제도나 입시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한 –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소미의 말은 일단 좀 더 이어진다. 

 “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차츰 세상과 사회에 대해 알아가면서 막연히 ‘디자이너’를 

  해볼까 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보니까 주위에 여자애들 같은 경우엔 디자이너쪽 

  으로 직업을 택하는 애들도 많은 것 같고 그래서 막연히... ” 

 “ ...... ” 

 “ 그래서 시작한게 디자이너 일인데 어쨌든 하다보니 생각보다 적성에 맞는지 능력 

  을 인정받는 그런 분위기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프리랜서 디자이 

  너’까지 되어서 자유롭게 제 작품을 제출할수 있는 그런 위치까지 되긴 했지만... 

 ” 

 소미의 나이를 지금 20대 후반 정도로 추정한다면 꽤 빠른시일내에 디자이너 분야에서 자기 실력을 인정받은 그런 셈이긴 하다. 그런 소미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한 30-40대때는 그렇게 내가 인 

  정받는 분야에서 열심히 돈 벌고 그리고 나이 50 넘어서 그때까지 번 돈으로 경제 

  적 여유가 생기면 그때가선 좀 인생을 즐기자. 그리고 그땐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으니 사회봉사도 어느정도 할 수 있고 헌금도 제대로 낼수있겠지...뭐 막 

  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어요 ” 

 “ 어허허헛~~~!!! ” 

 순간 어떤 미묘한 기분이 들어서인지 광일이 순간 묘한 웃음소리를 냈다. 광일의 지금 심정을 모르는 입장이라면 좀 기분나쁜 생각이 들수도 있는 웃음소리긴 했는데 실은 광일은 소미의 지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딱 20대 중,후반때의 자기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소미의 구체적 나이를 지금까지 물어보진 못했지만 여하튼 그만한(4-5세 정도) 아이를 키우는 나이대의 여성을 ‘아는 언니’라 부를 정도의 연령대면 대충 서른 안팎, 아직 서른은 안된 20대 후반 정도로 추정하는게 대체로 적절할 것 같긴 한데 여하튼 그렇게 소미의 나이를 추정해본다면 지금 하는 모습이 딱 20대 후반 시절 자기같지 않은가. 그래서 순간 묘한 느낌이 들어 그런 웃음소리를 낸 것이다. 일단 혹시 소미가 오해할지도 몰라 바로 그 부분은 사과의 말을 건넨다. 

 “ 미안해요. 실은 나도 20대때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거든. 30-40대에 열심히 돈 

  벌고 그러고나면 나이 한 50 넘어서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하면 그때가 

  선 내 마음대로 하고싶은 것 할수 있겠지 나도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 

  고 보면 인간의 생각이란게 다 알고보면 거기서 거기인것인지 원... ” 

 “ 아저씨두 제 나이때 그런 생각을 하셨었다구요 ? ” 

 그러고보니 여태 광일이 방송작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소미에게 제대로 밝히진 않았는데 따라서 ‘얼마전 실직한 실직자’ 정도로만 여전히 알고있을 소미. 그래서인지 더더욱 그런 광일의 20대 모습도 지금의 소미와 같았다니 소미는 괜시리 불안한 생각마저 든다. 그런 소미를 보며 새삼 궁금해진 듯 광일이 묻는다. 

 “ 그러고보니 여태 소미자매 나이도 안 물어봤네요. 뭐 실례가 될것같아 안 물어본 

  거지만... ” 

 “ 뭐 아직 서른은 안 되었어요...이제 곧 되겠지만... ” 

 그렇게 튕기기라도 하듯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소미. 그리고 볼멘소리처럼 말한다. 

 “ 아저씨도 제 나이때 딱 저같았다면서요 ? ” 

 그럼 대충 자기 나이가 짐작갈 것 아니냐는 듯 나오는 소미. 여하튼 웬만해선 자기 나이 정확하게 안 밝히는 여자들의 천성은 20-30년전이나 지금이나 이 역시 크게 달라지진 않은것같다. 그런 소미를 보며 광일이 문득 다른 생각이 났는지 이와같이 묻는다. 

 “ 소미자매... ” 

 “ 네, 아저씨. ” 

 “ 혹시 원수를 위해 기도해본적이 있나요 ? ” 

 좀 갑작스러운 질문이라서이까. 의아한 표정으로 소미가 광일을 바라보고 광일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사실 생전 교회 한번 안 다녀본사람도 한두번은 들어봤 

  을 성경말씀이지요. 그만큼 대표적인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허나 실제로 보면 정말 원수를 위해 기도할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 

  더라구요. ” 

 “ ...... ” 

 “ 보니까 대개 그래요. 제 아무리 무슨 크리스찬 명문가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또 제  

  아무리 신앙생활 수십년한 집사나 권사,장로라도 혹은 무슨 국회의원,장관,대학교수 

  쯤 되는 그런 유명한 사회 저명인사인 크리스찬이라도 대개는 개인의 바램이나 욕 

  망 혹은 자기 자식이나 배우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바람. 그런 원초적인 욕망이나  

  복을 바라는 수준의 기도에 머물지 세상에 진심으로 원수를 위해 기도할줄 아는 사 

  람은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 ”  

 


 2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는 현역 드라마 작가로 일하면서 그리고 그 외 북한인권단체나 보수우파운동 모임에서 활동한 시절 만나보았던 그 많은 크리스찬들. 그리고 20년만에 내리게 되는 최광일 권사의 결론이라면 결론이랄까. 알고보면 아무리 신앙심이 깊고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이라도 또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유명한 크리스찬이라도 결국 자기자신의 삶이나 자기가족에 대한 문제로 간구하게 되지 진심으로 원수를 위해 기도할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것. 광일의 말은 계속된다. 

 “ 혹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어찌보면 명색이 ‘나는 기독교인이오’ 하는 자기과시나 

  자기만족처럼 – 가령 뭐 그런거 있잖아요. ‘아무개 형제님, 기도해 드릴께요’ 뭐 이 

  렇게 인사치레정도로 해주는거지. 진심으로 자신이 미워하거나 원수로 여겼던 그런 

  이의 영혼구원을 바라며 기도할줄 아는이는 얼마 없더라는 것. 그게 내가 지난 20 

  년 많은 크리스찬들을 만나보며 느끼게 된 결론이에요. ” 

 “ ...... ” 

 “ 하지만 난 그래본적이 있어요. 진심으로 원수를 위해 기도해본적이. ” 

 “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구요 ? ” 

 소미가 생각해봐도 웬만해선 그런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고, 소미의 입장에서 솔직히 실직자이고 교회 다닌지 한 20년 되는 그런 나이많은 아저씨라는 것 외에 – 얼마전 잠시 말하는 투와 분위기로 봐서 ‘혹시 목사님이신가 ?’하는 황당한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 별로 아는바가 없는 이 아저씨가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은 잘 믿겨지지 않아 다소 놀라운 표정으로 그와같이 물었다. 광일은 나름 어떤 착잡한 감정을 담아 입을 연다. 

 “ 뭐 솔직히...‘원수’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고 90년대 중반쯤에 살면서 좀 이런저 

  런 악연이 얼키고 설켰던 그런 사람이에요. 헌데 교회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던 어느날. 문득 한번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죠 ? ” 

 “ 글쎄요 뭐...내가 그렇게까지 착하거나 순수해서 그런 기도를 했다고까지 말하진  

  않을께요. 솔직히 어떤 오만이나 오기에서 그런것일수도 있고 – 가령 뭐 당신이 

  정말 그렇게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이 문제 한번 해결해봐라 그런 오기도 좀 있었 

  던 것 같긴 한데 – 또 한편으로 어떻게보면 좀 또라이짓을 한걸수도 있죠. 무엇보 

  다 다른건 몰라도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위해 이런 기도를 한적이 있다는 것을 알 

  지도 못할텐데 말이죠. ”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으니 그 사람이 아직도 최광일이 자신을 위해 기도한적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 역시 나름 성경말씀을 실천한 것이 된다. 광일의 말은 이어진다. 

 “ 여하튼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직접 기도원까지 찾아가서 철야예배 시간에 

  밤새 진심으로 울면서 기도했어요. ‘OOO을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솔직히 그렇게 가까웠던 사이도 아니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 

  람에 대해 이름 석자와 나이정도를 제외하곤 신상이나 정보에 대해 별로 아는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는데...여하튼 그때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울며 밤새 기도했어 

  요. ‘OOO이란 형제를...OO시 OO구 어디 산다는 (그 당시) 나이 약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되는’ 그 형제가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진심을 담아 밤새 피를 토하는듯한 심정으로 기도했었죠. 정말 적어 

  도 그 시간만큼은 다른 사심이나 정욕의 마음 없이 온전히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 

  고 싶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주님앞에 간구드렸죠. ” 

 “ 그래서 그 뒤엔 어떻게 되었나요 ? ” 

 소미 입장에선 그 뒤의 일이 궁금해서 자연스레 이와같은 질문이 나온 것 같은데 광일은 일단 손을 내젓는다. 

 “ 아...하하하하...하지만 그 사람 소식은 그 뒤에 거의 들은바가 없어요. 말했지만  

  친한사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악연으로 얼킨 그런 사람이었다니까. 게다가 그 악연 

  자체가 어느덧 20여년전의 일이니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그런 사람이지요. 

  그저 모든 것을 하나님뜻에 맡긴다는 그런 마음으로 그냥 잊어버리고 지난 20년을 

  살아온것뿐 그 사람의 이후 소식은 지금까지도 알길없어요. 알 방법도 없고.. ” 

 “ 주여... ” 

 그런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는 최광일에게 어떤 대단하다거나 존경스럽다는 생각이라도 든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알고보니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 아저씨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인지 소미가 그와같이 내뱉는다. 광일이 그런 소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소미자매... ” 

 “ 네, 아저씨. ” 

 “ 뭐 꼭 소미자매에게 내 방식을 본뜨거나 흉내내보란 말은 하지 않겠어요. 뭐 나야 

  나름대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초신자때 한번쯤은 실천해보고 싶어서 그 

  렇게 한것이지만 그게 뭐 꼭 온전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확신할수도 없는거고... 

  다만... ” 

 “ ...... ” 

 “ 소미자매께서 지금 어떤 그런 영적빈곤을 채우길 갈구한다면 한번 그렇게 이전과 

  는 다른 방식으로의 신앙생활을 해보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권유를 드리고 싶네 

  요. ” 

 “ 다른방식이라면 어떤 ? ” 

 “ 이미 말했잖아요. 정 교회가는게 마치 의무감에 그냥 건성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면 그런 형식적인 예배참석에 너무 얽매일 필요까진 없다고. 요즘은 여하튼 코 

  로나 때문에 비대면 예배를 권유하는 사회분위기다보니 차라리 잘 된면도 있네요. 

  차라리 그러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 또는 내가 잘하는게 무엇이 있는지 또 그중에  

  어떤 것이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고 흡족해하실 일일지 잘 생각해 보라는 

  거죠. 그러다보면 어쩌면 소미자매도 답을 찾을수 있을련지 몰라요. ” 

 “ 감사합니다 아저씨. ” 

 그런대로 최광일의 말에 공감을 한 것인지 이와같이 인사를 건네는 소미. 약간 쑥스럽다는 생각도 들어 광일은 얼굴이 약간 붉어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그렇게 한시간여 정도 소미와 대화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괜시리 마음이 개운하고 가뿐해지는 것 같다.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화를 받은 것이 집으로 돌아온 뒤의 일이다. 

 “ 최광일 작가 ? ” 

 드라마 작가로 20년 조금 넘게 활동해온 그런 최광일이다. 헌데 전화를 걸어온이는 뜻밖에 한정호 피디라는 사람이었다. 광일이 지금까지 20년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면서 열편 정도의 미니시리즈와 열편정도의 일일극,주말극 그리고 대하사극 세편을 집필했는데 그 일일극,주말극의 절반정도 그리고 대하사극 한편을 함께 제작했던 일종의 ‘콤비’처럼 활동해온 그런 피디이기도 하다. 

 “ 아, 예 한정호 피디님.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 ” 

 나이는 최광일보다 열 살정도 많은 사람이고 무엇보다 작가일이 끊기면서 한동안 연락이 없던 사이라서 꽤 오랜만에 이루어진 통화다. 그래서 뜻밖이고 놀라운 반응을 보이는 최광일. 전화를 걸어온 한정호 피디의 말이 이어진다. 

 “ 자네...한번 새 작품 해볼생각 없나 ? ” 

 “ 새 작품이요 ? ” 

 드라마 작가일도 거의다 떨어져나가고 앞으로의 정치상황을 생각해봐도 자신에게 일이 거의 주어질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 종편 정치평론가나 하고 유튜브 방송이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볼 최광일의 생각이었는데 그런 광일에게 새 작품 제의가 들어오다니. 뜻밖이고 놀라운 마음에 광일의 반응이 이와같다. 

 “ 뭐 저야 다시 드라마를 쓸수 있다면 좋죠. 헌데 요즘 방송제작 환경이 많이 달라 

  져서...가능할까요 ? ” 

 “ 자네...‘역시기행’이라고 들어봤지 ? ” 

 “ 역사기행이요 ? ” 

 ‘역사기행’이란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한 3-4년전부터 방송하고 있는 ‘재연 드라마’ 형식의 역사다큐 프로다. 보통은 우리나라나 중국 또는 일본의 역사속에 주요한 에피소드나 사건,인물등을 중심으로 매회 한시간 안팎 분량으로 한회당 두편씩 한편당 평균 30분 정도의 분량으로 제작되는 그런류의 프로그램이다. 헌데 그 프로와 관련해서 한정호 피디가 왜 전호를 해온것일까. 

 “ 실은 그 ‘역사기행’이란 프로가 새로 개편을 하면서 패턴을 좀 바꿀 모양으로 있 

  나봐. 그러면서 새로운 작가를 찾는 중이라길래 내가 자네를 추천했지. 어떤가 ?  

  한번 해볼텐가 ? ” 

 


 새로운 일이 주어진다는 이야기에 바로 광일은 한정호 피디를 만나러 나갔다. 한피디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엔 나이 40 전후한 한 여성이 함께 와 있었다. 실은 그녀가 한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역사기행’이란 재연다큐에서 메인피디를 맡고 있는 여민주란 피디였다. 사실 한 10-20여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방송가에선 작가는 여성, 피디는 남자인 경우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그림이었는데, 요즘은 피디에도 여성이 제법 많아졌고 방송작가의 경우엔 한때 너무 여초현상이 심했던것에 대한 반작용인지 신인급중엔 남성 작가도 심심찮게 볼수 있게된 것이 오늘날 방송가의 모습이다. 

 “ 실은 저희가 ‘역사기행’을 제작,진행한지가 벌써 5년째에 이르는데 그래서 소재도 

  좀 고갈이 되어가는 측면이 있고 그래서 새로운 패턴을 구상중에 있었어요. ” 

 “ 어떤 구상을 하고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 ” 

 “ 한번 삼국지라던가 초한지 같은 중국 고전을 단막 연작시리즈 형식으로 제작해 

  보는게 어떨까 그 생각을 해봤거든요. 실은 저희가 역사기행을 다루면서 삼국지나 

  초한지에 등장하는 작은 에피소드나 역사속 사자성어 같은 것을 간간히 단막극 형 

  식으로 이미 제작을 해본적이 있어요. 가령 읍참마속이나 조식의 이야기 같은 삼국 

  지속의 고사나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초한지속 이야기도 항우의 

  죽음이라던가 이런 이야긴 몇 번 다뤄봤고...그러다 제작진끼리 농반진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이런식이면 차라리 삼국지나 초한지를 아예 단막 시리즈물로 제 

  작하는것도 불가능하진 않겠구나’ 그 생각을 해봤거든요. ” 

 흔히 생각할수 있는 그런 웅장한 규모의 대하사극 같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비록 저렴한 제작비 때문에 세트장이나 의상 같은 것은 조촐해서 사극이라기보단 다소 학예회 분장 같은 그런 분위기를 띠는 면이 있을지언정 재연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덕분에 그런대로 제법 분위기있고 무게감있는 그런 ‘정통사극’의 분위기를 잘 자아내고 있는 것이 ‘역사기행’의 장점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런 장점을 살려 삼국지나 초한지를 ‘단막 연작시리즈’ 같은 형식으로 제작해보는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논의가 제작진들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메인피디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 뭐 전쟁씬처럼 사람 많이 동원해야하고 그런 장면이야 적당히 컴퓨터 그래픽이나 

  자료화면 활용등으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니까 지금까지 해온것처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면 충분히 할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 

  러면서 한번 집필을 맡을만한 작가를 찾아보다가 최선생님을 추천받아서 이렇게 한 

  번 직접 만나뵈려 한것입니다. ” 

 20년동안 작가일을 하면서 미니시리즈 열편 그리고 주말극과 일일극도 열편 가까이 써본 최광일이지만 대하사극 집필 경력도 이미 세 번이나 있으니 그런 최광일의 역량과 능력이면 충분히 할수 있을것이라 생각을 했는지 이렇게 광일과의 만남시간을 갖게된듯하다. 일단 ‘역사기행’ 메인피디와의 면담 자리에선 최광일이 이를 수락해 역사기행 집필은 이루어졌고,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최광일은 한정호 피디와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된다. 

 “ 사실 저 진짜 남은 여생은 그냥 유튜브 방송이나 하고 정치평론가라 하며 그렇게 

  보낼 생각으로 있었는데... ” 

 “ ...... ” 

 “ 뭐 어쨌든 잘된 일이네요. 이러게 그냥 현역작가에선 밀려나는 분위긴가보다. 더 

  이상 내가 드라마 작가로 집필활동을 할 일은 없을 것 같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 

  었는데... ” 

 그렇게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는 광일. 그러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간다. 

 “ 사실 저 그리고 솔직히... ” 

 “ ??? ” 

 “ 한 10년정도는 차라리 이렇게 정치평론가나 하면서 생계수단을 삼으면서 그렇게  

  10년 계획잡고 하고 싶었던일은 따로 있었어요. ” 

 “ 어떤 ? ” 

 “ 두가지 장편소설을 한번 10년 계획잡고 써보고 싶었는데 그 하나는 한번 우리나라 

  현대사를 제대로 한번 규명해보는 진짜 해방직후부터 최근까지의 일들을 한 두세가 

  족 정도가 등장하는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고요... ”  

 “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야 지금까지 많이 있었지. ” 

 “ 그렇긴 하지만...전 좌우 양쪽에서 이론이 있는 그런 역사적 사건들을 그런 편견을 

  배제하고 좌우 양쪽의 시각을 모두 담은 그런식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던거에 

  요. 좌우 양쪽의...어떻게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모두 담아 그릴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 

 좀 추상적으로 들릴수 있겠지만 최광일에게 어쨌든 그런 구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광일의 말이 계속된다. 

 “ 그리고 또 하나는...마찬가지로 한 10년 계획잡고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이긴 한 

  데... ” 

 “ ...... ” 

 “ 한번 아주 반공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을 중심으로 특히 그네들의 시각에서 비친 진 

  보정권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부터 작금의 이야기까지 

  를... ” 

 “ ...... ” 

 “ 반핵반김 집회라던가 이런데 참석하면서 그때 신앙심 깊은 많은 교회 장로님,권사 

  님 이런분들을 만나뵙게 되면서 그때부터 하게된 막연한 구상이긴 했는데... ” 

 “ ...... ” 

 “ 여하튼 그런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의 눈에비친 진보정권 이야기...그걸 한 10 

  년 계획잡고 장편소설이나 대하사극 같은 형태로 써보고 싶었다 그 말이죠. ” 

 정치평론가나 하면서 틈틈이 시간나면 그런 대하소설을 집필하는걸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는게 최광일의 구상인 셈인데, 여하튼 다시 새로운 방송작가일을 – 일단 드라마는 아니고 ‘역사기행’이라는 제목의 재연다큐 프로그램이다. - 하게 되었으니 그 계획은 일단 수정을 봐야할 것이다. - 어쩌면 현대사 소설 집필이든 반공보수 기독교 가정의 눈에 비친 진보정권 이야기든 그런 소설 집필은 아예 포기해야 할수도 있고. - 다만 어쨌든 새로운 생계수단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홀가분하고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최광일은 개운한 맘으로 집으로 돌아오게된다. 

 그리고 한 며칠후. 본격적으로 ‘역사기행’ 집필에 들어가게 되어 피디등 다른 제작진과 만나 회의도 해야하고 하는데 그런 스케줄이 잡히기 며칠전쯤. 지금까지 늘 하던대로 아침산책삼아 동네 놀이터로 나가보려던 참이다. 그냥 평상시 같은 발걸음으로 걸어가다가. 

 “ 어이쿠 !!! ” 

 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늘 지나가던 길이고 아주 완만하게나마 오르막길 같은 경사가 지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포장이 잘 된 평형한 도로고 어디 돌부리 같은데 걸려 넘어질일도 없는데 그런곳에서 갑자기 넘어지게 된 최광일.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갓난아기가 앞뒤 안가리고 막 걸어가다 넘어진것만 같은 그런 난데없는일을 당하게 된 광일. 넘어지는 바람에 살짝 머리를 다치기까지 했다. ‘쿵’ 하는 기분에 한참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 허허...아직 숙제는 해오지 못한게로군... ’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광일이 이 동네 산지는 10년이 넘고 또 동네 가까운 교회에 출석한지도 대략 그 정도 시간이 되었으니 이른 오전시간이긴 하지만 자신을 알아볼만한 사람이 없지는 않을테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행인도 그리 많지 않은 이른시간에. 그것도 길가는 사람이 딱히 보이지도 않는데. 정신을 수습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아직 숙제는 해오지 못한게로군. ’ 

 박인수 장로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그때 박장로님이 최광일을 바라보며 한말. 원래 광화문집회에 모처럼 참석했다가 뭔가 실망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 우연히 박인수 장로를 만나 그와 모처럼 차나 한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때 광일이 이런말을 하지 않았던가. 마치 다윗이나 솔로몬의 몰락을 보는 기분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때는 크게 부흥했으나 초심을 잃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졌을 때 몰락해간 다윗과 솔로몬. 지금 한국교회의 지난시간 부흥의 기적이(한국 현대사 경제부흥의 기적도 마찬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에 크게 흥했던 다윗과 솔로몬 같다면 지금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져서 몰락해간 다윗과 솔로몬의 말년을 보는 것 같다고. 허나 ‘그럼 이런 세태에서 과연 무엇을 어찌해야 하겠나 ?’는 박인수 장로님의 물음에는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 사이 박인수 장로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박인수 장로님은 천국 가셨겠지만 아직 답을 찾지못한 최광일. 늘 산책삼아 나오던 놀이터에 일단 대충 정신을 수습하고 가보았지만 이따금 그곳에서 만났던 안소미 자매도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어떤 아쉬움에 혹시 소미가 오지 않았나 좀 더 두리번 거리다 아예 집으로 찾아가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내 곧 단념하고 놀이터 한쪽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돌아가 기도하기 시작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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