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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레드벨벳 예리 (4)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박인수 장로님과의 대화록 

 


 “ 사실 백민곤 목사님의 경우엔 70년대 후반에 그 일을 겪기전까진 그냥 일반 목 

  회에만 전념해오셨던 분인데 정치권과 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대략 그 이후의 일 

  이지. ” 

 “ 정치권과 연을 맺었다면 뭐...정치목사의 길을 가게되었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 

 ” 

 “ 아...아냐. 하하...이런...내 말뜻을 그런식으로 오해하면 곤란해. 여하튼 우연히 계 

  기가 되었던것인지 아니면 역시 알 수 없는 어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계셨던것인 

  지 대략 80년대 초반 무렵부터 정치권이나 이런저런 사회 저명인사 크리스찬들끼 

  리 결성한 기도회라던가 신앙모임 혹은 세미나 같은데 종종 초빙이 되곤 하셨어. 

  그러면서 그런 자리에서 기도회를 주관하신다던가 세미나 같은데서 연설이나 강연 

  을 하신다던가 그런 일이 자주 계셨지. ” 

 “ 하긴 뭐...국회에도 크리스찬 국회의원들끼리 만든 조찬기도회가 있기도 하고 하니 

  그런 모임이나 세미나 같은데 자주 참석하신다는 것 자체가 색안경 끼고 볼 일은  

  아니겠네요. ” 

 박인수 장로의 말처럼 백민곤 목사는 대략 80년대부터 90년대까진 주로 정치인이나 사회 저명인사 기독교인들의 신앙모임이나 세미나 같은데 강사나 연사등으로 자주 초청되고 그러면서 정치권의 어떤 숨은 조력자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백민곤 목사 기도의 영적능력이 제법 있었음인지 정치인이든 여타 사회 저명인사든 어떤 고민이 있을 때 백민곤 목사를 찾아오거나 하는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백민곤이 14대 대선때는 기독교 장로이기도 한 모 대선후보를 적극 지지하기도 했었는데 그 취지와 이유에 대해 그 대선후보가 ‘우리사회 굴절된 현대사를 바로 잡아주는’ 그 정도의 역할은 해줄것이라는 그런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지지한것이란 소회를 밝혔다는 것이다. 백민곤 목사는 또 종종 이런말을 하기도 했다. 

 “ 크리스찬들이...그리고 한국 기독교가 현대사의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건으로 인 

  해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심령을 어루만져주는 그런 역할을 해주었 

  으면 합니다. ” 

 그런 백민곤 목사가 노무현때는 보수우파 단체들이 결성한 ‘반핵반김 집회’ 기도회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은적도 몇 번 있었으니 그 심정을 최광일 권사의 경우엔 충분히 이해할만 했다. 우리 현대사의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면서 일정부분 민주화 세력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는 그 정도 성향의 중도보수 목사쯤 된다고나 할까. 헌데 그런 백민곤도 오죽 세상 돌아가는일이 가관이었으면 몸소 반핵반김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기까지 했었을까. 그러나 성향상 백민곤과 다른 보수우파 관계자나 목회자들과는 안 맞는 부분이 다소 있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백민곤 목사의 경우엔 그곳에는 발걸음을 자제하게 된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위기때 몇 번 비대위원장이나 윤리위원장 후보로 거론된적도 있는 그런 인물이다. 

 “ 이건 좀 다른 별개의 이야기지만 백민곤 목사님은 좀 놀라운 예언의 은사도 있었 

  던 분이셔. ” 

 “ 예언의 은사요 ? ” 

 역시 그런 이야기까진 최광일이 들어보지 못해서인지 의아해져서 박인수 장로에게 묻는다. 허나 박인수는 손을 살짝 내저어보이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간다. 

 “ 뭐...예언의 은사라고 하니 너무 거창해보이긴 하지만...사실 뭐 그 정도까진 아니 

  고 실은 13대 총선과 15대 총선 결과를 미리 예측하신적이 있었어. ” 

 “ 백민곤 목사님께서요 ? ” 

 좀 놀라운 듯 최광일 권사가 그렇게 물었다. 사실 13대 총선은 원래 야당의 분열로 여당의 압승과 야당의 참패가 예견되었던 선거고 반면 15대 총선은 당시 정권의 실정과 경제난으로 여당의 특히 수도권 참패와 제1야당이었던 모 정당이 경우에 따라선 ‘원내 제1당’도 가능할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선거전까지 나왔던 그런 총선이었다. 허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3대 총선은 애당초 예상과는 달리 여당의 참패로 헌정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고 또 15대 총선은 여당의 참패가 예상되었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비록 과반수 달성은 실패했지만 그런대로 선전을 했고 특히 수도권에서 참패 예상과는 달리 제법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은 그런 선거였다. 사실 요즘같으면 여론조사도 자주하고 또 선관위 자료 같은 것을 참고로 선거판세 같은 것을 정밀하게 살펴보는것도 가능하니 어느정도 정세분석 능력이 있는 정치평론가나 논객이라면 선거결과가 직전까지의 예상과 다르게 나올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는게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까지만 해도 그런게 없던 시대고 또 백민곤은 어디까지나 정치권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할 지언정 정치일선에 나선 인물이거나 정치평론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목회자가 총선예측을 그것도 다른 많은이들이 하는 예상과는 다른 정 반대의 예측을 할수 있었다는 것. 확실히 놀라운 일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문제를 너무 의미를 두는 것은 좀 곤란할 것 같아 그 정도에서 끊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 하하...이런 이야기는 하지만 자칫 이단스러워질수 있으니 그 정도로만 하지. 어 

  쩄거나 그렇게 오랫동안 정치권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해주셨던 백민곤 목사에게 

  약간 예언의 은사 비슷한 신비한 능력도 생긴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일세 나는 

  . ” 

 원래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박인수 장로가 감리교단의 유명한 ‘원로목사 3인방’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해서 시작된 이야기다. 그 첫 번째로 들려준 이야기가 6.25 직후 개척교회에서부터 시작 오늘날 감리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로 부흥시킨 기적이 있는 차도균 목사의 이야기고, 두 번째 이야기는 정치권에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해주면서 우리나라 정치권에 ‘소통과 화합’의 목소리를 내온 그리고 그런 것이 은혜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예언의 은사’ 능력까지 한때 잠시나마 생긴 듯 했다는 백민곤 목사에 관한 이야기다. 굳이 두 사람의 목회활동을 비교하자면 첫 번째 사례는 그야말로 목회활동 그 자체에만 주력하여 교회와 성전을 부흥시킨 그런 인물이고, 두 번째 사례는 목회활동 그 자체보다는 직접 세상과 사회이슈에 정면으로 뛰어들고 부딪혀 일종의 빛과 소금과도 같은 그런 역할을 해온 목사의 이야기다. 박인수 장로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다. 

 “ 자, 그럼 이제 원로목사 3인방중 세 번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 

 


 박인수 장로가 들려주는 감리교회 원로목사 3인방중 세 번째 목사님은 오창석 목사라는 인물이었다. 헌데 최광일 권사 입장에선 차도균 목사에 대해선 이런저런 신앙관련 서적을 통해 그리고 백민곤 목사의 경우엔 한참 보수우파 운동 모임이나 북한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할 때 둘 다 몇 번 들어본적이 있는 이름이지만 오창석 목사의 경우엔 지금까지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래도 ‘감리교회 원로목사 3인방’이란 말까지 나올정도면 교단내에서 꽤 유명한 목회자라는 소린데, 왜 지금까지 그런분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나. 좀 의아해지는 가운데 박인수 장로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 사실 차도균 목사나 백민곤 목사나 다 6.25 직후에 20대 중,후반 정도의 교육 전 

  도사 신분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했고, 오창석 목사 역시 두분과 비슷한 연배임을 

  감안한다면 좀 늦은 나이에 교회개척을 시작한 셈이지. 아니, 오창석 목사의 경우 

  엔 처음엔 교회였다기보단...일종의 신앙공동체 같은곳이었다고나 할까... ” 

 오창석 목사는 60년대 초반에 서울은 아니고 경기도 남부쯤에 있는 한 지역에서 처음엔 인근의 부랑자라던가 장애인 또는 오갈데가 없는 고아,소년소녀 가장등을 모아 작은 시설 하나를 지었다. 그렇게 하나의 공동체 시설이 만들어졌고 인근에 작은 텃밭 하나를 일구어 평소에는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주일에는 함께 거처하는 시설에서 예배를 드려 교회와 공동체 시설이 동시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앙공동체’가 된 것이다.  

 “ 사실 60년대 정도면 그래도 전쟁직후의 피해복구는 어느정도 이루어진때라고는  

  봐야 하지만...그래도 여전히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은 많던 그런 시절이었지. - 뭐 

  나이많은 노인네들중 어떤이들은 우리의 1960년대가 딱 식량난으로 굶주리던 90년 

  대 북한 같았다고 말하기도 하니까말야. 사회복지시설도 그때는 많이 미비하던 시 

  절이었고...무엇보다 경기도 남부지역 정도면 60년대엔 – 요즘 젊은이들 머릿속으 

  로는 좀처럼 상상이 안될 – 그냥 시골마을이었고...헌데 그런곳에서 오갈데 없는 부 

  랑자나 장애인,고아,소년소녀 가장들을 모아 그런 신앙공동체를 일군것이지. ” 

 여하튼 그런 시설이 만들어졌다니까 그래도 소문이 퍼졌는지 오갈데 없는 처지인 부랑아나 장애인들 대략 30여인이 한때 그곳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오창석은 비슷한 연배의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불우한 이들을 돌보며 그들이 자급자족하며 생활할수 있고 예배도 드릴수 있는 그런 신앙공동체를 만든것인데,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고 한다. 

 “ 여하튼 경기도 남부지역이면 그때도 그저그런 시골마을이었으니까... - 다만 그래 

  도 오창석 목사가 처음 그 공동체를 만들었던곳은 그래도 읍내쪽이니까 비상시엔 

  병원이라도 갈 수 있고 경찰에 도움도 요청할수 있는 그래도 그 정도 위치에 시 

  설을 짓긴 했지만말야... ” 

 헌데 그런곳에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고 찾아왔는지 좀 수상스런 남자 하나가 숨어들었다. 사실 시설의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자신들과 비슷한 부랑아나 그런 오갈데 없는 처지라면 ‘여기서 함께 생활하지 않겠느냐 ?’고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제안을 할텐데 허나 그 남자의 경우엔 인상이나 분위기탓일까 ? 다른 구성원들이 그 남자하고는 함께 사는 것을 좀 꺼리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대체로 말수도 적고 무거운 분위기였던 남자. - 게다가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간첩일 가능성도 있고 – 다만 어쨌든 오갈데없는 신세라고 하니 단 며칠만이라도 오창석 목사는 이곳에서 머무를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헌데 그로부터 며칠뒤의 일이었다. 평상시 공동체 구성원들은 텃밭에서 밭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나 이 남자의 경우는 그때 몸이 좀 불편한 상태라 밭일에 동참하진 못하고 거처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헌데 아무리 그렇기로 기왕 이렇게 이 공동체내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상 마냥 그렇게 놀게만 내버려둘수는 없는 일. 오창석 목사가 읍내에 작은 심부름이라도 하도록 다른 공동체의 형제 두어명과 읍내 가게등을 좀 다녀오게 했다. 헌데 그때. 

 “ 아니, 이봐요 형씨 ? ” 

 목사님 심부름으로 물건을 사러 읍내 가게들을 다른 형제 두어명과 함께 돌아보고 있을 때. 그때 한 가게 종업원이 남자를 알아보는 듯 했다. 그러면서 이와같이 말을 건넸다. 

 “ 혹시 OO 교도소 OOO번 아니오 ? ” 

 그런식으로 남자를 알아보는 가게 종업원에 당사자도 놀랐지만 동행한 형제들도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전과자일것이란 것은 생각 못했는데 당황한 남자가 일단 바로 그 자리에서 저만치 달아나버렸고 어찌된 영문인지 그리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공동체로 갔나 해서 형제들이 돌아와보았지만 그곳에도 와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고 생각된 형제들이 어제 남자를 알아보는 듯 했던 그 가게 종업원에게 그에대해 물어보았다. 

 “ 전과 7범이라고 들었는데요...제가 아는 사람 맞아요. 저도 얼마전에 사소한 절도 

  죄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3년 복역생활 마치고 나와서 여기서 형님일을 도와드리고 

  있는중인데... ” 

 예나 지금이나 전과자가 자기 신분을 있는 그대로 밝히긴 쉽지 않은데 그래도 그 남자의 경우엔 굳이 말 안해도 될 자신의 전과까지 솔직하게 밝힌 셈이다. 그리고는 확인을 요구하는 형제들에게 이와같이 답했다. 

 “ 어제 절보고 바로 달아나던데...제가 아는 그 사람 맞을거에요. OO 교도소 OOO 

  번. 제 바로 옆 감방에 있었기 때문에 휴식시간이나 운동시간 같을때는 얼굴도 여 

  러번 봤고 시간 끝나고 감방안으로 다시 들어갈땐 같이 들어가기도 했었으니까... 

  여하튼...아마 사기,절도,강도등 전과가 7개라 들었는데... ” 

 ‘전과7범’이란 소리에 형제들은 무척이나 놀랐고 심지어 오창석 목사의 사모도 창석을 나무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람까지 공동체내에 들이다니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따졌다. 

 “ 여보, 목회도 좋고 불우한 이웃 오갈데 없는 어린양들을 돌보고자 하는 당신 뜻은 

  다 좋아요. 그래도 세상이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것도 아셔야죠 !!! 아무리 그래도  

  사람 가릴필요는 있는거라구요 !!! ” 

 어찌보면 고아와 과부를 위해 기도하라는 성경말씀을 순수한 열정으로 여전히 실천하고 있는 오창석 목사와는 달리 사모는 나름 현실인식을 갖고 그렇게 목사남편을 닦달하고 있는 셈이었다. 

 “ 세상 아무리 그래도 무서운 사람도 많고 이상한 사람도 많은데...아무리 그렇기로 

  OO 공동체에 전과 7범을 들여요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게다가 이런곳을 악용 

  하여 되려 더 나쁜짓을 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구요. ” 

 “ 거 당신 말이 좀 심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그 형제가 우리한테 무슨 피해를 끼 

  친것도 없는데말야... ” 

 “ 최소한 처음에 들일 때 신분확인 정도는 했어야 한다는거죠. 도대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그리고 그렇게 금방 지 신분이 들통나니까 그 전과7범의 흉악범이 바로 

  달아났길래 망정이지 여기서 다른 형제나 자매들에게 피해라도 입혔으면 어쩔뻔했 

  어요 ? 아닌말로 여기 나이어리고 몸 불편한 여자아이들도 많은데... ” 

 “ 거 당신... ” 

 사모가 사실상 그 전과7범이란 사내를 마치 나이어리거나 몸이 불편한 여성에게 무슨 몹쓸짓이라도 할것같은 사람으로 단정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오창석 목사는 거듭 그런 사모를 나무라고 있었다. 일단 부부싸움이 너무 길어지면 다른 형제나 자매들이 알게될 수도 있으니 오창석 목사는 그쯤에서 사모의 말을 끊으려고 하는데 헌데 대충 그렇게 적당히 마무리 된 부부싸움 직후에 진짜 사달이 났다. 실은 사모가 틈틈이 관리하고 있는 통장 하나가 없어진 것이다. 통장은 공동체 관리용이나 목사내외 개인용등 여러개가 있었고 모두 사모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게 없어진 것이다. 

 “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요 !!! 사람 가려가며 받아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건만... 

  그 사람이 훔쳐간게 분명하다구요 !!! ” 

 “ 당신 너무 단정지어 말하는거 아냐 ? 그리고 그 형제 그날 읍내 가게에서 자기 알 

  아보는 사람이 있어 그 자리에서 바로 달아났다며. 그리고는 여태 돌아오지 않은  

  것인데...그 형제가 다시 OO공동체로 들어와선 통장을 훔쳐갖고 달아났다는 소린가 

  ? 정황상 너무 앞뒤가 안 맞잖아. ” 

 “ 애초부터 그 통장을 노리고 있었던것일수도 있죠. 아니면 그렇게 막상 달아나려다 

  보니까 돈이 없어서 돈을 가져가려고 여기로 다시 들어온것일수도 있구요. ” 

 “ 여보 !!! ” 

 사모는 가능할수 있는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것이지만 그 모든 상황 자체가 사실상 그 누군지 이름도 여태 모르고 있는 ‘전과7범’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말하는 소리 아닌가. 허나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그게 사모의 오해임이 밝혀졌다. 실은 그 며칠전 사모가 목사내외의 살림방을 대청소한적이 있었는데, 이유가 아이들이 방을 너무 어질러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오창석 목사는 사모와의 사이에 자녀 두명이 있었는데 아직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인 어린아이들. 그래서 둘이 놀다가 그만 살림방을 너무 어지럽혀놓은 것이다. 그래서 사모는 아이들을 야단을쳐 벌을 세우게 하고 방청소를 시작했다. 헌데 그 복잡했던 와중에 통장 하나가 방구석 사각지대 뒤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것을 오창석 목사가 며칠뒤에 그곳에 있는 기물들 위치를 변경하려다 발견하고 말았고 사모는 얼굴을 붉히며 백배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 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전 그냥 혹시나 해서...그냥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려한 

  것 뿐인데... ” 

 “ 그만하구려 !!! 모든 가능성은 무슨...아무튼 자기 과실은 생각 못하고 남부터 의심 

  한 것 아니오 ? 앞으로 이런 경솔한 행동은 삼가기 바라오 !!! ”  

   


 오창석 목사의 OO 공동체는 이후 성장하여 현재는 경기도 OO시에 ‘OO복지센터’란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오갈데 없는 노숙자나 장애인 혹은 독거노인,고아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농사나 가내수공업등으로 자급자족 및 생산활동을 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OO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신앙공동체는 현재 경기도 OO시 외에도 5-6곳이 더 있으며 오창석 목사는 한 20년전까지 직접 이 복지선테 이사장으로 운영을 해오다가 그 이후엔 고령으로 은퇴하고 오창석의 차남이 2대 이사장으로 복지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 자넨 어떻게 보나 ? ” 

 박인수 장로의 물음에 최광일은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런 광일을 보며 박인수 장로의 물음이 이어진다. 

 “ 전쟁직후 개척교회에서부터 시작 지금 감리교회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 목사로 성 

  장한 차도균 목사, 그리고 오랫동안 정치권과 크고작은 인연을 맺어오면서 정치인 

  들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하며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역설해온 백민곤 목사, 그리 

  고 오갈데없는 헐벗고 가난한 이들이 구원받을수 있는 신앙공동체를 지금껏 이끌어 

  온 오창석 목사 이 셋중 누가 진정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목회활동을 해왔냐고 생 

  각하냔말일세. ” 

 “ 그...글쎄요... ” 

 솔직히 지레짐작으로는 대형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나 정치권과 이런저런 인연을 쭉 맺어온 목사가 아닌 우리사회 진정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해온 그런 목사님이 ‘진짜 목사’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긴 하는데 답을 망설이고 있는 최광일을 보며 박인수 장로가 힘주어 이렇게 말한다. 

 “ 사실은 셋 다 맞네. ” 

 “ 예 ? ” 

 “ 왜 ? 뜻밖이기라도 한가 ? 그럼 자네는 많은 영혼을 구원한 대형교회를 지금까지 

  운영하며 열성적으로 목회활동을 해온 목사나 정치권의 숨은 조언자로 빛과 소금 

  의 역할을 해온 그런 목사는 목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건가 ? ” 

 “ 아...아뇨 뭐 그런건 아니지만... ” 

 생각해보니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목회활동으로 많은 영혼을 지난 수십년간 구원해온 그런 목사나 정치권에 숨은 조언자 역할을 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온 그런 목사의 사회활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것도 좀 말이 안되는 것 같아서 최광일 권사가 당혹스러운 눈빛을 띤다. 그런 광일을 보며 박인수 장로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 요즘 교회개혁을 주장하는 젊은 친구들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아네.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성전도 제사도 없던 그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말이지. 원론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성장해온 그 밑바탕이 될수 있었던 요인들을 모조리 부인하는 태도는 

  옳지 않아. 안 그런가 ?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이렇게까지 성장해올수 있었던 것은 

  그런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라도 한단말인가 ? 적어도 지금이 옛 고대로마시대처럼 

  핍박받아가며 순교하며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시대도 아니고...여기까지 이끌어오 

  신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마귀나 사탄의 흉계라도 된다는 말인가 ? 내 말은 대 

  형교회를 이끌면서 많은 이들의 영혼을 구원한 목사나 정치,사회적으로 나름 의미 

  있는 활동을 한 목사도 다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는것이니 그 자 

  체를 깡그리 부정하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말을 하고 싶은것일세. ” 

 “ ...... ” 

 “ 자네도 기독교가 어떻게해서 오늘날처럼 크게 성장할수 있었는지 그 결정적인 계 

  기가 어느때였는지는 모르지 않지 ? ” 

 “ 아이구 장로님.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 저도 이래봐도 신앙경력 20 

  년의 감리교회 권사입니다. 그리고 그런건 굳이 교회 안 다녀봤어도 학교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배운 상식으로도 다들 아는 것 아닙니까. 원래 고대 로마시대에는  

  네로등 로마황제들이 크리스트 교도들을 핍박했지요. 그러다 서기 313년에 콘스탄 

  티누스 황제때에 이르러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승인했지요. 그리고 한발 더 나 

  아가 니케아 공회의(325년)에선 ‘성부-성자-성신’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어떻게보면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갈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한것에서 비롯된거라고 볼수도 있죠. 유럽 전 

  체를 한때 지배했던 로마가 국교로 공인한 기독교(당시엔 카톨릭) 그런식으로 유럽 

  전역에 뻗어나갔고 대향해시대를 거쳐 아메리카 그리고 천수백년의 세월이 흘러 결 

  국 이곳 한반도에까지도 기독교가 전파될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애초 로마에서 그 

  와같은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는 있을수 없었죠. ” 

 “ 그러니까 하는말일세.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말할수 

  있냐 그 말이지. ” 

 “ ...... ” 

 “ 이렇게 한번 물어봄세. 만약 정말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사 그 죄를 벗게 하 

  시려고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내려보내신것이라면 그런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시 

  작된 종교가 그냥 그저그런 비주류,군소종교로 남아 예수를 믿는 이들은 평생을 

  사이비나 이단을 믿는 이들로 손가락질 받고 핍박받고 그러다 죽어나가는 – 그것 

  도 가령 고대 로마시대처럼 끔찍하게 핍박을 받는 – 그런 세월이 계속되기를 바라 

  셨겠나 ? 한번 생각해보라 그 말이지. 그래도 과연 로마가 크리스크교를 공인해서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대항해시대를 거쳐 천수백년 세월이 흘러  

  이 먼 한반도에서도 ‘동방의 예루살렘’이란 말이 나올정도로 지난 수십년간 기독교 

  가 교회가 급성장하게 된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말할수 있느냔말이지. ” 

 “ 듣고보니 맞는 말씀이네요. ” 

 듣고보니 설득이 되는 이야기라서 최광일 권사가 이와같이 답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의문이 있어 박인수 장로에게 이와같이 묻는다. 

 “ 그럼 작금의 이 일련의 사태들은 어떻게 봐야 하는거죠 ?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 

  고 한사코 주일예배를 고집하는 교회들 때문에 기독교가 진짜 비호감의 종교로 전 

  락해 버렸어요. 그리고 반공보수 기독교단들이 진보정권에 대한 반정부 집회를 계 

  속 주도하는것도 솔직히 일반인 다수에겐 오히려 기독교를 비호감 종교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요. - 심지어 개중에는 전 모씨처럼 – 최광일은 그를 목 

  사라 부르지 않고 있다. - 정말 과도하고 지나치게 나오는 사람까지 나오고 말이죠 

  . 이 일련의 사태는 어떻게 봐야 하는거죠 ? ” 

 “ 자네 설마 벌써 치매가 온건 아니겠지 ? ”  

 “ 예 ? ” 

 뜬금없이 이게 웬 황당한 물음인가 싶어 황당해지는 최광일. 물론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박인수 장로의 정신과 말투도 이렇게 또렷하여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기까지 한데, 그보다 40살 이상 어린 40대 후반의 최광일이 벌써 치매끼가 있다면 말이 안된다. 헌데 광일은 정말 자기 입으로 직접 내뱉었던 말을 그 사이 진짜 잊어버리기까지 했는지 어안이 벙벙하여 박인수 장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오히려 박장로가 그걸 기억하고 있는 듯 광일의 기억력을 일깨워준다. 

 “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자네 입으로 먼저 하지 않았던가. ” 

 “ 아, 참. ” 

 그제서야 기억이 난 듯 최광일이 무릎을 탁 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을때는 흥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초심을 잃었을 때 결국 패망한 군주. 그 대표적인 사례로 광일은 다윗과 솔로몬을 꼽았었다. 어떻게보면 한국 교회의 성장과 지금 이 몰락(?)의 과정도 마치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과 솔로몬을 보는 것 같다고. 사실 비신자의 상당수는 다윗과 솔로몬에 대해선 ‘헛되고 헛되도다’는 말이나 솔로몬이 자기아이임을 주장하는 두 여인 앞에서 지혜를 발휘해 진짜 아이를 밝혀냈다는 그런 단편적인 일화만 알지 그 다윗과 솔로몬이 어떻게 패망해갔는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헌데 한국 교회 또는 (어찌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어 일제와 6.25의 환란의 시기를 극복해내고 오늘날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다고 말할수도 있는) 대한민국의 위기 또한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아 이리된 것은 아닐까. 이것이 최광일 나름의 성경적 해석인 셈이다. 박인수 장로가 그런 광일을 바라보며 말한다. 

 “ 이제 그럼 자네가 해법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나 ? ” 

 “ 예에 ? ” 

 “ 허어...이 사람이 참...젊은 친구가 생각보다 정신이 혼미하구먼 그래. 지금의 사태 

  를 그와같이 성경적으로 해석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그 해법도 내놓을줄 

  알아야지 해석만 하고 답은 찾지 않을참인가 ? ” 

 “ 아...아니 저 장로님... ” 

 다시금 ‘날더러 뭐 어쩌라는 소리냐 ?’는 난처함에 처하게 된 최광일. 그때 박인수 장로에게 카톡으로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어쨌거나 나이 이미 90이 다 된 아버지가  – 그것도 코로나 사태가 아직 완전히 잦아들었다고 할수 없는 상황에서 – 너무 오래 외출을 하고 있는 것이 걱정되어 장남 박동철이 ‘이제 그만 들어오시라’는 문자를 보낸 것이다. 사실 박인수 장로에겐 모두 열명의 아들이 있는데 최광일 권사와 면식이 있는 사람은 2천년대 중반때 박인수 장로가 탈북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식사초대를 해 박장로님 댁을 찾아뵐일이 있었을 때 만난적이 있는 장남 박동철 권사와 차남 박훈철 권사가 전부다. 어찌되었든 그중에서도 장남 박동철 권사는 확실히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참 지극해 보이는데, 박장로는 큰아들이 곧 차를 몰고 이리로 오기로 되어 있다며 이쯤에서 헤어지자고 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때는 반드시 그 해답도 가져오라는 숙제도 내어준다.



-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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